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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za2 매미의 꿈

2008.10.31 20:0810.31

신음 섞인 얕은 기침소리를 내며 홍섭은 눈을 떴다. 시야가 흐리게 느껴져 도로 질끈 감은 후 몇 번을 깜빡였다. 주위는 뿌연 어둠. 모기장을 두른 듯 희미하고 답답한 느낌. 눅눅하고 씁쓸한 맛이 나는 공기. 정신이 들자마자 온몸이 욱신거렸다. 등과 엉덩이가 배기고, 목과 손목, 오른쪽 발목이 특히 쓰라리다.
눈이 조금씩 어둠에 익숙해지자 자기 주위의 공간이 너무 좁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놀랄 여유가 없었다. 손목과 발목이 결박당한 채 눕혀져 있다는 사실이 더 긴박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방이 짙은 회색이고, 천장에 달린 백열전구가 연한 빛을 뿌렸고, 몸을 뻗어도 닿지 않을 거리에 촛불 서너 개가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상태에 대한 파악이 끝나고 나자 주위 공간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졌다. 한 평에서 한 평 반 정도의 넓이? 잘 보이진 않아도 천장은 꽤 높은 것 같은데, 창문은 보이지 않는 밀폐된 공간. 시간이 흐르면서 안개가 걷히듯 서서히 내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홍섭은 골판지를 깔고 그 위에 얇은 담요를 덮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있었다. 양 손목이 빨랫줄 비슷한 걸로 묶여 있었고 목에는 애완견용 가죽 목줄이 채워져 있었다. 목줄에 연결된 끈은 위로 올라가서 자전거를 묶을 때 쓸 만한 쇠줄로 이어져 있었고, 이 쇠줄로 만든 큰 고리가 방 한쪽 가장자리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파이프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발목 을 묶은 빨랫줄은 구석에 있는 냉장고의 짧은 다리에 연결되어 있었다.
천장을 가로지르는 파이프…… 홍섭은 멍하니 올려다보다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와 비슷한 모습의 방을 알고 있다. 아니, 비슷한 정도가 아니다. 지금 이곳과 같은 크기, 같은 구조…… 설마, 설마를 입안에서 웅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어느새 흘러내린 땀방울이 그의 콧잔등을 간지럽혔다.
한쪽 벽에 붙어 있을, 귀퉁이에 흔적만 남은 종이들. 분명 익숙하다. 원래는 포스터며 사진이며 출력한 그림이 가득 붙어 있을 터였다. 지금은 누군가 손으로 찢고 불로 태운 듯한 지저분한 흔적만 남아 있었지만 과거의 모습이 겹쳐지자 퍼즐 조각을 맞추듯 딱 맞아 들어갔다.
이곳은 그가 잘 알고 있는 장소였다. 또한 절대로 와서는 안 될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이곳에 그것도 양손과 한쪽 발목을 묶인 채로 돌아왔던가. 가만히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침착할 수 없었다. 우선 파이프에 걸린 줄이 짧아서 목이 아프다. 일단 목줄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홍섭은 양손을 움직여봤다. 연결고리는 혁대처럼 생겼기에 개라면 풀기 힘들지 몰라도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으리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풀 수가 없었다. 줄은 정확하게는 손목이 아니라 양손에 묶여 있던 것이다. 손가락을 펴고 깍지를 낀 듯이 양손을 붙인 상태에서 손등부분을 몇 번이나 되감아서 동여매고 그 위에 손가락을 덮어 다시 줄을 되감아 묶어 놓았기에, 홍섭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양쪽 엄지손가락 뿐(그것도 끝부분만)이었다. 굉장히 꼼꼼하게 묶어놓은 솜씨처럼 보였고, 덕분에 홍섭은 엄지손가락만으로 목줄을 풀려고 낑낑대다가 제자리에서 바닥을 한 바퀴 굴렀다. 그 바람에 줄이 목에 감겨서 더욱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질식사의 공포를 느끼며 허겁지겁 처음 자세로 돌아가야만 했다.
툭툭툭. 그 때 작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홍섭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사람이 내는 소리가 분명할 텐데,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게 이토록 두렵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발소리가 점점 커진다고 느낀 것도 잠시, 어느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돌연 찾아든 침묵이 공포를 부풀린다. 어쩌면 상대는 그것을 노리고 있을지도. 문이 잘 열리지 않든가, 열쇠를 찾고 있는 걸 거야.  홍섭은 그렇게 생각하며 욕지기처럼 치밀어 오르는 공포를 억누르려 애썼다. 마침내 낡은 철제문이 끼익 소리를 내면서 열린다.
문 바깥도 어두워서 그런지, 문이 열려도 조금도 방은 밝아지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은 덩치가 작다는 것 외에는 알아낼 수가 없다. 손에는 뭔가가 담긴 비닐 봉투를 들고 있었다.
"깨어났네? 마침 잘 됐어. 준비물도 다 사왔으니까."
앳된 여자애의 목소리였다. 소녀는 냉장고를 열고 봉지에 담긴 걸 꺼내어 넣기 시작했다. 낡은 냉장고가 토해낸 빛이 소녀의 모습을 비추며 등뒤로 망토처럼 넓고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바닥에 축 늘어졌지만 당장이라도 펼치고 하늘로 솟아날 수 있을 듯한 악마의 날개처럼 보였다.
홍섭은 소녀의 몸 내부를 투시하려는 것처럼, 거기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려는 듯 힘을 가득 담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정말로 무언가가 떠올랐다. 얽히고 하나로 뭉쳐진 실타래가 서서히 풀리듯, 비비꼬인 전화선이 풀어지듯 점차 기억 속의 영상은 뚜렷해졌다. 갑자기 되살아나 쏟아진 기억을 주체못할 지경이었다.
이제 생각이 났다. 어제, 아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가 없으니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만, 정신을 잃기 전의 밤, 홍섭은 이 소녀를 만났다. 그것도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몇 마디 주고받은 후 곧바로. 사실 둘의 목적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어 긴 얘기가 필요없었다. 소녀는 자신의 나이와 가명을 가르쳐주고 원하는 액수를 제시했을 뿐. 홍섭은 만나서 외모가 자신의 마음에 들면 원하는 이상의 돈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리하여 둘은 만났고,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허름한 모텔로 갔고, 그 다음엔…… 그 다음엔?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 방은? 분명 6개월 전…… 발길을 끊었던 곳인데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 것인지.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팠다. 이상하게도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머리가 좀 아플 거야. 네 덩치가 커서 약을 좀 많이 썼거든."
소녀의 목소리는 약간 빈정대는 듯 들렸다. 짜증을 참고 있는 듯한 기분도 섞여서. 그의 말에 의하면 자신에게 약을 먹여서 이런 곳으로 끌고 왔다는 이야기인데, 왜 그런 짓을 한 걸까? 소리라도 치고 싶지만, 이 미지의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 묶여 있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입에서는 한심할 정도로 나약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너, 뭐야……? 나한테 뭘 한 거야?"
질문과 동시에 스스로의 안에서 대답이 떠올랐다. 그 밤, 침대에 앉아 있는 자신을 향해 소녀가 다가왔다. 분명 욕실 문을 열고 나왔는데 옷은 들어갈 때와 같이 입은 상태였다. 다만 얼굴에 마스크를 써서 눈만 보이는 상태였고, 오른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그게 뭔가 싶어 무심코 시선을 내리는 순간, 곧장 홍섭을 향해 다가온 소녀의 오른손이 올라가고, 모기약과 같은 스프레이가 얼굴을 향해 분사되었고, 홍섭의 기억은 거기에서 끊겼다.
"원하는 게 뭐야? 돈? 나 돈 없어. 부잣집 아들도 아니고, 그 날 타고 온 차도 사실은 아빠 거야."
스스로가 생각해도 한심할 정도로 비굴한 어조였다. 나 유괴해봤자 돈도 못 받을 테니 풀어달라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었다.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군입대를 핑계로 휴학중인 놈팽이가 바로 자신이었다. 집은 그럭저럭 살고 있지만 놀고 있는 자식에게 자가용을 사줄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아버지 차 몰래 타고 하룻밤 놀러 나갔다가 이런 꼴을 당한 것이다.
냉장고 문이 퉁 소리를 내며 거칠게 닫히자 주위는 다시 어두워졌다. 그 서슬에 신문지 위에 세워진 촛불의 빛이 일렁거렸다. 소녀의 그림자가 짙어졌다 흐려졌다를 반복하며 춤을 추었다. 그 모습은 미쳐 날뛰는 악령과도 같이 보였다. 그리고 소녀는 잠시 고개를 숙이는가 싶더니, 상체를 뒤로 젖히며 있는 힘껏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아핫하하하하!"
결코 즐거워서 절로 내는 웃음은 아니었다. 누가 들어도 억지로 쥐어짜는 웃음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홍섭을 오싹하게 만드는 효과는 충분히 발휘했다.
"이 바보 같은 새끼야. 아직도 날 모르겠어? 내 목소리를 듣고도? 얼굴이야 진작에 뜯어 고쳤지. 그렇다고 이렇게 감쪽같이 속아넘어가? 그리 멍청하니까 네가 그런 꼬라지가 되는 거야, 알겠어?"
소녀는 깔보는 투로, 꾸짖는 투로 입에 힘을 주고 이를 앙다물며 말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얼굴에 썼다. 공사장 인부들이 쓰는 방진 마스크였다. 그 날 밤 모텔에서 봤던 바로 그 모습.
"준비도 다 되었으니까 시작한다. 이 멍청한 새끼야."
소녀는 마스크 때문에 음성변조를 한 듯 텁텁한 목소리로 말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홍섭은 마스크를 쓰기 전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분명 흐릿한 기억에도 눈과 코, 턱의 모습이 어쩐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는 인상이 남았다. 하지만 지금 가까이에서 보니, 저 눈썹, 눈썹의 모습. 그렇다. 확신할 수 있다, 이 소녀가 누구인지. 홍섭의 얼굴이 뒤틀리듯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조그맣던 눈이 열리며 안구가 순식간에 팽창한다. 흔들리는 턱과 떨리는 입술 사이로 낱말을 뱉어내듯 말한다.
"너, 너, 너, 너, 네가……!"
소녀의 눈이 가늘어진다. 이제 상대가 적을 파악한 것이다. 가벼운 흥분이 몸에 떨릴 정도다. 홍섭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일그러진 얼굴의 깊은 굴곡 사이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지금 기절했으면, 그래서 깨어난 후 굉장한 악몽이었어 라고 되뇌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홍섭은 꿈이라면 어서 깨라고 속으로 하염없이 중얼거렸으나…… 아무래도 꿈은 아직 깨어날 때가 아닌 모양이었다.
죽기 직전에는 지나온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했던가, 온몸이 저릿저릿할 정도의 공포감을 맛보고 있는 홍섭의 머리 속에서는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소녀의 기억이 눈사태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
                                * * * * * * * * * *
한일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을 2002년 6월 초, 축구와 월드컵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던 세 남자가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사실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나 구태여 만날 필요도 없는 관계였다. 그들의 교류는 거의 온라인에 한정되어 있었고 서로의 이미지는 모니터에 떠오르는 글자만으로 충분했다.
메신저로 채팅을 하며 밤을 새우던 세 남자는 늘 그렇듯 일본의 성인용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홍섭이 농담처럼 한 마디를 건넸다.
홍섭 : 요즘처럼 전 국민이 월드컵만 보고 있을 때는 누가 뭔 짓을 해도 모르겠네요
명석 : 여자애 하나 납치해도 모를껄요^^
인태 : 얼마 전에 뉴스에도 나왔잖아요. 또라이 같은 새퀴 뭘 어떻게 했길래 금방 탈출을 해ㅎㅎ
명석 : 영화도 있는 것 같던데 무슨 사랑의 사육이던가? 여자애가 납치범에게 반해서 어쩌구
홍섭 : 그거 그 영화 이완 뭐더라 스타워즈 나온 애 나온거?
인태 :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요? 그건 상관없는 내용이에요. 스톡홀름 증후군을 그리긴 했지만....
홍섭 : 그럼 어떻게 해야 안 들키고 오래 버틸 수 있겠심???
명석 : 일단 우리 아부지 상가가 지금 재건축이 자꾸 지연되고 텅 빈 상태니까 거기다 숨겨 놓으면 장땡
홍섭 : 역시 부자집 도련님은 스케일이 다르삼ㅎㅎㅎ
명석 : 아버지 말로는 올해까지 해결이 안 되면 내년쯤 경매에 내놓는다는데 -_-
홍섭 : 납치는 역시 어릴수록 쉽고 탈출할 능력도 없어 좋겠죠ㅋ
명석 : 아뇨 난 댁같은 뵨태가 아니라오 -_- 어린애를 납치해서 어따 쓴단 말예여 고딩이 최고지요^^/
홍섭 : 다같은 변태끼리 왜이러시나ㅋㅋㅋ
인태 : 그럼 딱 중간에 중학생은 어때요?
명석 : 할수없는... 그래두 요즘 애들은 발육이 좋아서 중학생도 잘만 고르면^^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납치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실제로 명석의 부친 소유 상가는 화재로 인해 폐허처럼 겉모습만 남은 이후로 몇 년 동안이나 재건축도 판매도 되지 않고 버려진 계륵 같은 존재였다. 현재는 명석이 옥상에 낡은 운동기구 몇 개를 놓고 잠시 쉬러 오는 장소가 되었고 겨울에는 노숙자 몇몇이 추위를 피하러 오곤 했다. 밤에는 도둑고양이들의 눈동자가 어두운 상가 건물 안을 반딧불처럼 밝히곤 했다.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지자 실행과정은 계획성 있게 추진되었다. 자신의 취향을 놓고 말싸움을 벌이던 그들은 고등학생이 저항할 가능성이 높고 탈출할 수 있는 능력도 되기 때문에 힘들다고 판단했고, 초등학생은 반대로 너무 어리고 약해서 다루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그 중간에 위치한 중학생으로 결정했다.
범행대상을 정하기 위해 그들은 셋이 사는 집과 관련이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작은 신시가지의 학교를 택했다. 높은 건물에서 망원경으로 하교하는 학생들을 면밀히 관찰하며 대상을 물색했다.
그들이 원하는 조건은 우선 외모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혼자 하교해야 했다. 둘만 있어도 납치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둘 다 납치하기도 벅찰 뿐더러 한 명만 한다고 해도 다른 한 명이 목격자가 되고 신고를 할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그 다음으로 인적이 드문 주택가를 지나서 큰길을 거쳐야 했다. 그들은 렌터카 업체에서 승합차를 빌려 좁은 길에서 큰 도로로 나오는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납치하는 즉시 도로를 통해 빨리 그리고 멀리 도주할 수 있다.
그들의 범행수법은 극도로 단순하지만 그만큼 확실한 방법이었다. 혼자 인적 드문 길을 걷는 가냘픈 여학생 앞에 한 남자가 막아선다. 그는 길을 물어본다며 근처에는 있지도 않은 은행 이름을 댄다. 소녀가 생각을 하는 사이에 뒤쪽 건물 담벼락에 숨어 있던 다른 남자가 몰래 다가와 클로로포름을 적신 수건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는다. 소녀가 실신하자 갖고 온 큰 담요로 몸을 감싼다. 둘이 소녀를 들고 대기하고 있던 승합차에 싣는다. 운전석에 타고 있던 남자는 두 사람이 타는 것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그곳을 벗어난다.
납치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소녀는 명석의 아버지 소유 빈 상가건물 지하 보일러실에 감금되었다. 그들은 소녀의 손발을 묶고 목에 개한테 거는 목줄을 걸어 천장의 파이프에 묶어 놓아 도망가지 못하게 해놓았다.
그들 스스로의 표현에 의하면 소녀는 '사육'되었고 '조교'되었다. 처음에는 자주 즐기던 일본 성인용 게임에서 나오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실제로 재현하며 즐기고자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성과 가학성을 드러내는 육체적·정신적 고문으로 변해갔다. 소녀는 살아있는 인간 이 아니라 그들의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욕망과 콤플렉스를 해소시켜 주기 위한 장난감에 다름 아니었다.
사육은 일 년이 넘게 계속 되었다. 소녀는 말을 잃었고 오랜 어둠에 빛을 보는 법을 잊은 듯 생기 없는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2003년 9월, 사상 최고의 태풍이라 불리는 매미가 몰아쳐 그렇지 않아도 가라앉을 듯 위태로운 낡은 상가 건물을 반 이상 무너뜨렸다.
태풍이 사라진 후, 그들은 소녀가 살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건물에 모였다. 사실 소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다. 태풍이 온 이후로 물과 음식도 주지 않았고, 건물이 무너졌으니 거기에 깔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시체가 끔찍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속에서 셋은 삽으로 익숙하지 않은 작업을 계속했다. 마침내 무너진 콘크리트와 구부러진 철근 사이를 헤집고 지하로 내려가 '사육실'에 도달했을 때…….
                                * * * * * * * * * *
"너, 너, 살아 있었구나. 타, 탈출했어! 어떻게?"
홍섭은 조금도 반갑고 기쁘지 않은, 그저 놀랍고 두렵다는 심정을 얼굴과 목소리로 표현했다. 말은 질문을 하듯 끝맺었지만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었다. 그저 어떻게 탈출이 가능했는지 믿어지지가 않는다는 절규일 뿐이었다.
그 날 그들이 사육실에 갔을 때 소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낡은 철문은 경첩이 뜯겨 나가고 반쯤 휘어 있었고, 천장의 파이프도 부러진 상태였으며 방의 절반 정도가 무너져 있었다. 삽으로 콘크리트와 부서진 벽돌 무더기를 파헤쳐 봤으나 그 안에 소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소녀가 무사히 탈출했다면 자신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경찰에 신고한다면 잡혀가는 건 시간문제가 아닐까? 이곳의 위치도 알고 있고 세 사람의 얼굴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건물의 지하실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경찰은 우선 건물주부터 조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건물주의 아들인 명석이 붙잡히는 건 시간문제. 그래서 명석은 그 즉시 유학을 핑계로 미국 친척집으로 도망가듯 떠났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궁금하지? 근데 그 새끼 뒈진 건 알아? 여기 주인 아들놈 말야. 날보고 암캐라고 불렀던 그 새끼."
그 말투 속엔 짙은 분노와 후련한 감정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살해당했다면 누가 그를 죽였는지 구태여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홍섭의 얼굴이 보랏빛에 가깝게 변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한다."
"뭐, 뭘 하겠다는 거야? 날 어쩌려는 거야?"
"간단해. 함무라비 법전 196조. 뭔지 알겠어?"
홍섭은 눈만 감았다 떴다. 그가 이름도 모르는 고대 왕국의 법조항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러나 함무라비라면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난다. 함무라미 법전이라면 단 하나의 문구가 생명력을 얻어서 긴 세월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것은 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진짜 한다.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아."
소녀가 꽉 다문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를 짓는다. 그 얼굴이 촛불의 역광을 받아 희생양을 노리는 흡혈귀처럼 창백하고도 잔인하게 보여서 홍섭은 까무러칠 뻔했다.
                                * * * * * * * * * *
봉투에서 꺼낸 것은 안전면도기였다. 뚜껑을 열고 날카로운 날을 촛불에 비추어 보였다. 홍섭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태연자약하게 미소짓는 소녀는 분명 제정신이 아님에 틀림없었다. 더구나 눈에는 눈이라면, 자신과 친구들이 했던 걸 되갚는다는 얘기? 그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사, 살려줘! 잘못했어! 잘못했다니까! 뭐, 뭐가 필요해? 돈? 돈줄게! 아니 차라리…… 차라리 경찰에 넘겨! 콩밥 먹으면 될 거 아냐!"
좁은 공간에 홍섭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너무나 대조적으로 소녀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돈? 콩밥? 그런 걸로 보상되지 않아, 내가 겪은 악몽은. 어차피 망친 인생, 끝까지 가자 이거야. 이게 바로 물귀신 작전이라는 거지."
소녀는 한 마디 한 마디를 씹어 삼키듯 강한 어조로 말하며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면도기를 들어 보이면서.
"난 니들이 나한테 한 짓거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어. 그걸 잊을 수 있을 것 같아? 무덤 속에서도 그 생각만 하면 몸서리를 치며 돌아누울 걸. 하지만 걱정 마. 그걸 다 해줄 만큼 난 한가하지도 않아. 뭣보다 널 그렇게 오래 가둬놓을 생각도 없어. 내가 무슨 돼지치기인 줄 알아?"
"……."
"자 그럼, 털 깎자. 싹 깎아야지, 응? 니들이 나한테 그랬잖아. 더러우니까 깨끗하게 깎아주겠다고. 고마워하라면서?"
홍섭은 유일하게 자유로운 왼발을 들어올려 접근을 막으려 했다. 잠깐의 실랑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가만있어, 이 돼지새끼야!"
소녀가 빽 소리를 지르며 오른손을 휘두르자 홍섭의 몸이 순간 뻣뻣하게 굳어졌다. 몇 초가 지난 후 벌어진 그의 입에서 '꺼어어어……'하는 낮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의 왼쪽 허벅지에 포크가 꽂혀 있었다. 평범한 스테인리스 재질의 포크였기에 살을 뚫고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살 깊이 박힌 것처럼 보였다. 소녀가 손을 떼자 포크는 힘없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고 움푹 들어갔던 세 개의 구멍은 서서히 메워지기 시작했다.
"우아아아!"
번개가 번뜩인 뒤에 들려오는 천둥소리처럼 시차의 간격을 두고 홍섭의 비명이 좁은 공간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갑작스런 고통에 비명조차 제때 지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이미 소녀는 홍섭의 삼각 팬티를 무릎까지 잡아당기고 있었다. 두려움과 긴장으로 인해 홍섭의 성기는 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흥. 좆만한 새끼. 말 그대로 좆이 좆만하네. 날 그렇게 갖고 놀던 자칭 종마는 어디 가셨수? 자기를 볼 때마다 내가 오줌을 싼다고? 어디 오줌 한번 깔겨줄까?"
홍섭은 파리한 입술을 가늘게 떨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움직이지 마. 움직여봤자 네 살만 베이니까. 내 털 깎다가 난 상처 보여줘?"
소녀는 오른손에 면도기를 쥔 채로 왼손으로 상의를 들어올렸다. 배꼽 아래쪽으로 붉고 가느다란 상처가 여럿 있었다. 그들이 그의 성기 털을 억지로 깎으려 할 때 저항하다가 생긴 상처였다. 그걸 직접 본 홍섭은 더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면도기 끝이 배꼽 바로 아래부터 비죽 솟아난 털무더기 위에 거칠게 닿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홍섭의 왼쪽 다리를 깔고 앉은 채로 엎드리듯 홍섭의 몸을 꼼짝못하게 눌렀다.
"말했지, 움직이지 말라고. 괜히 저항했다가 너만 손해야. 열받으면 가위로 잘라버리는 수가 있어."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말에 기가 죽었는지 홍섭의 저항이 누그러졌다. 소녀는 말없이 면도기를 거칠게 놀리며 털을 잘랐다. 거품이나 크림을 묻히지 않아서 그런지 털은 깨끗하게 잘리지 않았다. 안전면도기로 자르기에는 성기 주변의 털은 너무 길었다.
"안 되겠어. 역시 가위로 큰 걸 좀 잘라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봉투에서 꺼낸 것은 전정가위였다. 크기는 보통 가위정도지만 날이 짧고 둥그런 모양이었다. 일반 가위보다 훨씬 단단해서 손가락 정도는 간단히 자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엔 까딱 잘못하면 네 고추 떨어지는 거야. 얌전하게 있어."
정말 할 것만 같은 진지한 목소리에 홍섭은 침을 꿀떡 삼킨다.
서걱서걱, 잡초처럼 털이 잘려 나갔다. 성기 주위의 털을 자르고 입으로 훅 불자 이제 수풀이 골프장처럼 되었다. 이제 다시 면도기를 들이밀자 아까보다는 수월하게 잘렸다.
"자, 털을 잘랐으니 이제 흥분을 시켜야지. 2막은 SM쇼야. 어때 기대되지?"
소녀는 면도기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고 양손을 털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홍섭의 눈이 그 일거수일투족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따라간다. 이미 흘러내린 땀방울이 시야를 방해할 정도로 얼굴 뿐 아니라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여길 봐. 내가 뭣땜에 촛불을 켜놨을 거 같아? 이렇게 전기불이 잘만 들어오는데."
방이 순간적으로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한다. 소녀의 손가락이 거칠게 스위치를 몇 번이나 올렸다 내렸다. 다시 불을 끈 후, 이번엔 냉장고 옆에 있는 낡은 가죽 가방에서 긴 혁대를 하나 꺼냈다. 버클부분을 떼어 낸 평범한 가죽 혁대였다.
"진짜 채찍은 구하기가 힘들어서 혁대로 대신할 거야. 니들도 혁대 같은 걸로 날 때렸잖아? 피장파장이지."
홍섭은 이미 백 미터를 달린 사람처럼 땀투성이가 되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혁대를 휘두르며 내리치는 연습을 하고 있는 소녀를 보자 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방에 가득 쌓인 먼지가 혁대의 난동으로 솟아올라 방 안 곳곳으로 흩어졌다. 두 사람 모두 기침을 몇 번했고, 소녀는 서툰 연습을 그만두었다. 대신 바닥에 놓인 촛불을 하나 집어들었다.
흔들리는 불빛. 춤을 추는 소녀의 그림자. 광란의 유희를 맞이하는 악마의 소리 없는 환호성. 촛불이 그려내는 소녀의 얼굴은 짙은 명암으로 인해 어둠 속에서 붕 뜬 것처럼 보였다. 미소를 지었다면 유령 흉내를 내는 여자애로 보일 수도 있었건만, 차갑고 진지한 표정은 소녀를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고딕 소설의 수도승처럼 만들었다.
"아하아악 으하아아악!"
언뜻 웃는 소리로 착각할 수도 있을 짧은 고음의 비명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다. 촛농이 홍섭의 옆구리에, 허벅지에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묶인 팔을 움직여 촛농을 막아보려 했으나 팔뚝에 떨어져도 뜨겁기는 마찬가지였다.
"걱정 마. 내가 맞은 촛농만 족히 1리터는 넘는 것 같은데 이렇게 멀쩡하잖아? 촛농은 화상도 안 입는대. 인터넷에서 다 찾아봤어. 뭣보다 내 몸이 살아있는 증거란 말야."
위로랍시고 하는 소녀의 말에는 충분한 양의 조롱을 함유하고 있었다. 홍섭이 파도치기를 하듯 몸을 사방으로 마구 흔들며 고통을 표현하자 피식 웃음도 흘렸다.
"그렇게 아파? 촛농에 데였을 때는 소주가 좋다더라. 이것도 인터넷에서 찾았지. 뭐든지 다 있어, 인터넷에는. 촛농도 있고, 소주도 있고, 혁대도 있고, 딜도도 있고, 너 같은 변태새끼도 있고!"
이번엔 소주병을 꺼내어 뚜껑을 돌려 따고 하얗고 동그랗게 남은 촛농 위에 부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식었긴 했으나 피부에 닿는 감촉은 물보다 차갑게 느껴졌다.
"자, 대답해. 넌 누구다?"
"……?"
어리둥절한 겁먹은 눈동자. 넘쳐흐른 눈물 때문에 흐려진 시야. 뭔가 말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서 파르르 떨리는 아랫입술.
"대답을 해! 넌 누구다?"
살이 접히기 시작하는 소녀의 미간. 까드득, 어금니를 꽉 깨무는 소리.
"이 새끼가 아직 매를 덜 맞았구만."
"나, 나는 호, 홍섭……"
"뭐 이 새끼야! 네가 돼지새끼지 누구야? 네가 그러고도 사람인줄 알아, 응?"
소녀는 벌떡 일어나 혁대로 홍섭을 마구 내려친다. 에구구, 어그그, 끄응, 홍섭의 비명이 혁대가 살에 닿을 때마다 제각각 다른 톤과 어조로 튀어나왔다.
"대답할 때까지 맞아. 넌 누구다?"
"돼, 돼지새끼."
내려치려고 뒤로 젖혔던 손이 멈췄다. 혁대는 공중에서 나풀거리다 소녀의 등뒤로 축 처졌다.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홍섭에게는 여전히 악귀의 조소처럼 보일 뿐이지만.
"그렇지. 아유 착해라. 돼지도 머리는 있네. 확실히 짐승 놈의 새끼는 두드려 패야 말을 잘 듣는다니까."
                                * * * * * * * * * *
응응응응, 엉엉엉엉. 울부짖음도 이제는 웅얼거림처럼 들렸다. 소녀의 쇼는 3막이자 메인 하이라이트로 접어들고 있었다.
홍섭은 무릎과 팔꿈치를 땅에 대고 엎드려 있었고 소녀는 그 뒤에 무릎을 꿇고 몸을 일으킨 자세였다. 울음섞인 신음소리를 내는 남자와 말없이 이를 즐기는 여자의 모습은 촛불만이 비추는 흐릿한 광경 속에서 목탄으로 거칠게 그린 우스꽝스러운 크로키처럼 보였다.
팔꿈치가 미끄러지자 그걸 핑계삼아서 홍섭은 그 자리에 엎어졌다. 딜도를 손에 든 소녀는 벌써 지쳤냐는 듯 체근하는 표정을 지었다. 끊임없는 긴장과 고통의 연속으로 바짝 얼어붙었던 몸이 조금씩 녹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완된 홍섭의 항문이 주인의 억제력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짧은 침묵을 깨트리는 방귀 소리와 함께 고개를 좌우로 흔들듯 거칠게 떨고 있던 홍섭이 흐흐흑, 하고 짧게 끊어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오줌이 가랑이 사이로 흘러나오고 대변이 벌어진 항문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툭,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소녀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입을 꾹 다물고 지그시 응시하던 소녀의 눈동자가 홍섭의 얼굴로 향하자 꾸중들을까 겁먹은 아이처럼 움츠려든다.
"예정에 없던 거지만 이것도 괜찮겠군. 너 같은 돼지새끼에게 딱 맞는 벌이야.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이거 다 전부 네가 처먹는 거야. 알겠어? 이 똥돼지새끼야."
홍섭은 여전히 소녀의 시선을 외면하며 부르르 떨고 있었지만, 그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화가 나서 욕을 하고 있는 걸로만 여길 뿐. 하지만 소녀는 정말로 그렇게 할 작정이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이건 네가 입버릇처럼 내게 했던 말이야. 설마 잊진 않았겠지? 내가 아프다고 괴롭다고 그토록 서럽게 울고불고 사정하고 매달렸는데도 넌 그랬어. 내가 잘못한 거라고. 내가 네 마음에 들도록 안 해줬다고 벌을 준다면서 어떻게 했지, 응?"
그는 나무젓가락으로 똥 덩어리를 거칠게 떠내었다. 홍섭의 입이 무겁게 닫혔다.
"그걸 다 말하자면 날이 새도 모자랄 거야. 그래도 걱정 마. 그것까지 전부 되갚아 줄 정도로 한가하진 않으니까. 딱 너한테 어울리는 걸로 하면 되니까. 똥돼지라고 알아? 제주도에서는 옛날에 정말로 돼지한테 똥을 먹였대. 정말 그런 게 있는지 몰라도 화장실에 구멍을 뚫고 그 아래에 돼지를 키웠다는 거야. 사람이 똥을 싸려고 앉으면 똥돼지들이 입을 쩍 벌리고 밑으로 모여드는 거지. 딱 너 같은 새끼들이야. 걔들은 고기라도 맛있지, 너는 대가리나 몸이나 똥만 차있는 만고에 쓸모 없는 똥돼지새끼잖아, 자 얼른 처먹어!"
홍섭이 기겁을 하며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리자 소녀는 똥 덩어리를 입에 억지로 쑤셔넣으려 했다. 소녀는 화가 나서 발로 밟고 혁대로 몸을 마구 내리쳤다.
"이, 이 새끼가, 이 놈의 똥돼지새끼가! 지 똥도 안 처먹고! 뱃속에 처넣고 다닐 땐 언제고 왜 못 처먹냐고! 나는 그동안 처먹은 너희들 좆물에 헤엄이라도 칠 정도인데! 이 정도도 못하겠다고 지랄이야? 빨리, 빨리 처먹어! 안 처먹어? 입 안 열면 입을 찢어버리겠어!"
소녀는 씩씩대며 전정가위를 들고 입 근처를 휘둘렀다. 그 서슬에 홍섭은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입을 벌렸다. 한 덩어리가 입에 들어가자 우엑, 하며 토해내었다. 소녀의 발길질과 채찍질이 쏟아졌다.
자기 몸 속에 넣고 다녀도 싸면 거들떠보기도 싫어하는 게 똥이다. 그건 애새끼도 마찬가지다. 소녀는 공포와 고통 속에서 지낸 지난날을 떠올렸다. 그 악몽 같은 곳에서 빠져나온 후에도 공포는 쉽사리 그를 놔주지 않았다. 생리가 일정치 않고 아예 하지 않는 때도 있었다. 설마 그 버러지 같은 자식들의 애라도 생긴 걸까? 하지만 낙태는 범죄이고 시술받기도 쉽지 않았다. 그럼 그걸 낳아서 기르라고? 누구인지 몰라도 철천지원수임에는 분명한 새끼의 자식을 낳아서 금이야 옥이야 기르라고? 소녀는 속으로 연거푸 비명을 질렀다.
어이구 우리 아기, 네 눈은 첫째 아빠 닮고, 코는 둘째 아빠 닮고, 입은 셋째 아빠 닮았구나? 웃기고 자빠졌네, 똥이나 처먹으라지! 그따위 똥 같은 애새끼는 변기에 싸넣고 물을 내려버려라! 왜 못하겠는가? 그런 애를 낳으라고 말하는 작자들은 다 지가 싼 똥을 처먹고 살라지. 소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기원했다.
마음 속에 품은 앙금과 고통의 응어리를 한데 뭉쳐 가상의 태아를 만들어 변기에다 똥을 싸듯 낳고서 물을 내리는 상상을 하고 난 후에야 소녀의 마음은 조금 후련하고 홀가분해졌다. 그러자 얼굴이며 가슴팍에 온통 똥칠이 되어 정말 똥돼지처럼 보이는 홍섭의 알몸이 조금은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약해지면 안 된다. 마음이 흔들려선 안 될 일이다. 소녀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억지로 악마처럼 잔인한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피를 토하듯 웃었다.
"아하하하하! 진짜, 진짜 재밌어! 좆나게 웃겨! 똥씹은 표정이 뭔지 이젠 알 거 같아. 하하하하하, 하아…… 네 표정 진짜 좆같은 거 알아? 보여주고 싶다, 정말."
억지로 웃고 나자 물기를 다 짜낸 걸레처럼 후줄근한 상태가 된 기분이었다. 몸도 마음도 다 소진하고 껍데기만 남은 듯한 기분.
                                * * * * * * * * * *
기침을 한 번 하고, 바닥에 침을 뱉은 후, 소녀는 주저앉아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숨을 골랐다.
잠시 휴전상태와도 같은 적막이 찾아왔다. 좁은 방 안은 오직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 뿐. 가볍게 흔들리는 불꽃이 그림자를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었다.
소녀는 문득 홍섭의 눈이 벌어진 자신의 가랑이를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극도의 공포와 고통 속에서도 그의 눈은 본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방비한 마음에 치마가 걷어 올라간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앉아서 팬티가 훤히 보이고 있었다.
"흥, 꼴에, 그놈의 본능이란 게 살아 있는 모양이지? 좋아, 그럼 이제, 너한테 기회를 주겠어. 이것만 통과하면 풀어줄게. 진짜야! 간단한 거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야. 어려운 것도 아냐. 그놈의 본능을 이겨내면 되는 거야."
"너네 남자들은 그러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며. 뭐 머리는 안 그런데 좆이 말을 안 듣는다고? 본능이 이성을 이겨서 그런 거라고? 좆 까는 소리는 달나라 가서 하라지. 너 같은 돼지새끼에게도, 응? 제대로 된 뭐 이성이란 게 있다면 말야, 그 이성으로 본능을 이겨보라고. 네 몸 하나 네 맘대로 못하면 그거 살아서 뭐해? 죽어야지, 응?"
"3분이야, 3분. 더도 덜도 말고 딱 3분 준다. 3분만 참고 버티면 살려줄게. 꼴리는 대로 하란다고, 네 맘대로 꼴리지 말고 3분만 안 꼴리고 있으면 내가 진짜 풀어준다. 대신에 꼴리면 말이야…… 이걸로!"
전정가위를 치켜들자 홍섭은 반사적으로 끄응, 소리를 내며 움츠러들었다.
"구지가(龜旨歌)라고 알아, 응? 난 중학생인데도 알아. 넌 대학도 나왔으니 당근 알겠지? 하긴 네 대가리엔 여자애 납치해서 인생 조질 생각만 가득했었으니 알 리가 있겠어? 내가 가르쳐줄게. 난 지금 학교도 못 가고 있지만 문학소녀였어. 문학소녀 알아? 니들이 제일 싫어하는 큰 안경 끼고 만날 앉아 있어서 엉덩이가 펑퍼짐한 그런 애가 아니고 말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어때, 맞지? 그 거북이가 남자 좆대가리를 상징한다며? 내가 뭘 할 건지 알아? 노래대로야, 아니 노래 반대구나. 꼴리면 그냥 잘라서 구워 먹는 거야. 농담 아냐. 내가 농담하는 걸로 보이진 않겠지? 니들이 한대로 난 다 당했어. 내가 못할 것 같아? 니 고추가 무슨 맛이 나는지 궁금하면 한번 세워봐."
"그럼 한다. 진짜 한다고. 어 씨발, 그냥 할라니까 오바이트 쏠려서 못하겠어. 좀 있어봐. 소리쳐봤자 목만 쉴 테니까 기도나 하고 있으시지."
소녀는 문을 열고 나가 거칠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대로 문에 기대어 거친 숨을 내쉬었다.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조그만 균열이 거대한 댐을 무너뜨리듯 몸이 마구 떨리고 소녀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눈물이 왈칵 솟아나려 하자 눈동자에 핏발이 설 때까지 힘을 주며 억지로 참는다. 소녀는 스스로를 응원했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잘 버텼어. 떨지도 않았고, 당황하지도 않았고, 겁먹지도 위축되지도 않았어. 완벽했어. 목소리도 당찼고 눈도 피하지 않았어. 연기로 치면 너무나 훌륭한 여우주연상 감이었어.
하지만 마지막 생각을 부정하려는 듯 그는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연기가 아니라 진짜다. 내 의지로 움직이고 있고 진심으로 앙갚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악몽은 아직 깨지 못했다.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펼칠 시간은 얼마 없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저 얼굴을, 저 몸을, 저 존재 자체를 볼 때마다 몸이 본능적으로 움츠러든다. 사냥꾼을 만난 들짐승처럼 육체가 안에서 터져 버릴 듯 하다. 무섭다고, 달아나야 한다고 몸 안에서 외침이 뿜어져 나와 머리 위로 화산처럼 터질 것 같다. 그러나 버텨야 한다.
주머니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었다. 우울증약, 두통치통생리통약, 진통제, 갖가지 약을 섞어 담았다. 되는 대로 손바닥에 쏟은 후 물도 없이 삼켰다. 다른 쪽 주머니에선 먹다 남은 우황청심환 쪼가리를 꺼내어 입에 넣고 껌처럼 씹었다. 약은 어디까지나 플래시보(placebo)일 뿐이란 걸, 위안이 되어주는 역할이란 걸 알면서도 안 먹을 수는 없었다.
찌르륵, 찌르륵, 찌르르르르……
매미소리가 들린다. 머리 안에 매미가 몇 마리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여름이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울고 있는 바보 같은 매미였다. 매미소리가 가득 차 마침내는 머리가 뻥하고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약을 있는 대로 삼키고, 우황청심환을 씹어 삼키고 거친 숨을 토해낸 다음에야 조금씩 진정되는 자신을 느꼈다. 매미소리는 점차 희미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 * * * * * * * * *
위압감을 주려는 생각이었는지, 있는 힘껏 발로 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홍섭은 이미 실험실의 생쥐와도 같았다. 소녀는 사온 떠먹는 요구르트의 껍데기를 천천히 벗겼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블루베리 맛이야. 색깔은 좀 이상하지만 나쁘진 않을 걸."
소녀는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보라색이 된 손끝을 입에 넣고 쭉 빨았다. 그리고 홍섭의 앞에 바짝 엎드려 성기 위에 요구르트를 부었다. 걸쭉한 보라색 액체가 뚝뚝 떨어져 흘러 내렸다. 이어서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고 홍섭의 눈앞에 들이대었다.
"자, 봐. 3분만 버텨봐."
그 후로 길고도 긴 삼 분이 흘렀다. 홍섭은 고통과 창피함, 굴욕감과 분노, 공포와 역겨움이 전신에 가득 퍼져 있어 강렬한 쾌락을 느끼지는 못했다. 소녀는 그의 성기를 혀로 핥고 입안에 넣어 잡아당기듯 빨았다. 서툴지만 필사적인 입놀림이었다.
별다른 성과도 없이 알람 소리가 울리자 소녀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떼었다. 조금 커지는가 싶던 성기는 여전히 늘어진 상태였다. 홍섭의 마른 입술에서 안도의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이제 풀려나게 되었구나, 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성기가 바람넣은 풍선처럼 돌연 커지면서 머리를 하늘로 쳐들었다. 소녀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심술궂은 미소가 어렸다.
"아하, 역시 잘라야 겠어. 잘라달라고 이렇게 나오는 걸 보니까."
"뭐? 무슨 소리야! 약속이 틀리잖아! 3분이 지난 지가 언젠데! 풀어준다고 했잖아!"
소녀의 굳은 얼굴에서 홍섭은 이미 그가 약속을 지킬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음을 알고 분노와 경악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다 너희들 때문이야."
성큼 다가서자 홍섭은 온몸을 동원해서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고 소녀는 똥냄새가 나는 홍섭의 얼굴에 바짝 붙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다 너희들 탓이야. 너희들이 나를 망치고 못된 애로 만들어 버렸다고. 난 이래봬도 니들이 날 납치하기 직전까지 순진하고 착하고 세상모르는 문학소녀였어, 문학소녀. 너희들이 만든 악몽 속에서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기나 해? 이해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겠어? 지금 내 눈엔 이 세상이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보여. 하긴 너나 나나 다를 건 하나 없지. 어차피 같은 똥통 속에 처박혀서 뒤섞여 있는 처지란 말이야."
"날 풀어줘! 나한테 이런다고 달라질 건 없잖아! 경찰에 신고해! 내가 한 만큼 벌을 받으면 되잖아!"
"경찰? 신고? 벌을 받아? 그딴 소리는 달나라 가서나 해. 경찰이, 이 세상이, 너희들에게 벌을 줄 것 같아? 내가 겪은 고통을, 내 망친 인생을 보상해줄 것 같아? 이 남자들의 세상에서 상처 입은 여자애를 누가 구해줄 것 같아? 상처를 준 남자에게 어떤 벌을 주겠어? 고작 감옥에 몇 년 넣어놓고 할 걸 다 했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면 그걸로 자기 죗값은 다 치른 거라고 생각하고, 감옥을 나와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태양 아래를 걸어 다니겠지."
"없어. 절대 없어. 이 좆같은 세상에서 날 이해해줄 사람은 절대 없어. 그래서 내가 널 처벌할 거야. 내가 느낀 슬픔의 백 분의 일이라도 느끼도록 만들 거야. 여자는 세상의 검둥이라는 말이 있어. 내가 진짜 좋아하는 노래 가사인데, 들어본 적 있어? 그게 무슨 소리인지, 무슨 뜻인지 네가 이해할 수 있어? 아니, 넌 절대로 이해하지 못해. 불쌍하다고, 이해한다고 누구나 말해. 너 같은 사내놈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하지만 차별받고 고통받지 못해본 사람은 절대로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해.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한단 말이야."
"잠깐만, 잠깐만! 조금만 진정해. 진정하라고! 이제 알 것 같아.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 알겠어. 정말 잘못했다고. 잘못했어."
홍섭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끊임없이 용서와 참회의 말을 반복했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소녀의 귀에는 이미 그 목소리가 사람의 목소리로 들리고 있지 않았다. 머리 속을 뒤흔드는 매미소리처럼 그저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할 뿐.
소녀의 마음, 혹은 정신 안에 있는 재판정에서는 이미 판결의 망치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피고인 신홍섭을 사형에 처함. 땅땅땅. 그것도 집행은 거세형으로. 아니면 거세한 후에 사형. 사실 어떤 식이든 상관없었다. 그의 운명은 고문기계 안에 들어간 말벌처럼, 어떤 길을 택해도 결국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두루마리 휴지를 손에다 잔뜩 감아서 성기와 주변을 닦아낸 후 소주를 들이부었다. 홍섭은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가만있지 않으면 너만 손해야."
부풀었던 성기가 도로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 전에 잘라버려야 한다, 소녀는 이를 악 물고 가위를 최대한 벌렸다. 유일하게 자유롭게 움직이던 왼쪽 다리도 양 발목을 혁대로 묶어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자, 이 꽉 다물어. 한다. 하나둘셋하면 자르는 거야. 하나, 두울……!"
"으아아악!"
"이 새끼가 하지도 않았는데 비명부터 지르고 지랄이야."
후욱, 하고 긴 한숨을 내쉰다. 성기가 급격히 작아진다. 소녀는 그가 방심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한둘셋!"
한번에 셋을 다 센 듯한 짧은 외침에 이어 쭈욱, 가죽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우오오, 하는 홍섭의 긴 비명. 소녀는 문득 늑대의 포효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야성의 상징 늑대. 그런 사나운 울음소리가 야성을 잃어버린 남자의 입에서 솟아나다 이내 쉰 목에서 나오는 한숨소리처럼 찌그러지며 사그라들었다. 분수처럼 뿜어대다 기세를 잃고 부글부글 거품과 함께 흘러나오는 새빨간 피 역시 주인처럼 초라해지고 있었다.
소녀는 기다렸다는 듯 준비했던 물건을 꺼내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본 만화를 따라하는 거라면서 막대에 천을 감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 성기가 잘려나간 곳에 불을 갖다대었다.
피와 살이 타면서 역한 냄새가 나고 시커먼 연기가 구불구불 피어올랐다. 소녀는 방진 마스크를 쓰고 작업을 계속했다. 마침내 상처부위가 시커멓게 타고 말라붙은 피딱지 덩어리로 덮이자 막대를 치우고 발로 밟아 불을 껐다.
정말로 돼지가 내는 것 같은 끙끙거리는 소리가 홍섭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가운데, 소녀는 길에서 파는 닭꼬지를 먹고 남은 나무 꼬챙이에 잘라낸 성기를 끼웠다. 라이터에 불을 붙이니 검은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정말 굽는다, 응? 냄새 하고는……. 돈주고 먹으라고 해도 싫을 거야. 어때, 네가 자식이라 부르며 애지중지하던 이거 맛 좀 볼래?"
소녀는 까맣게 그을린 성기를 흔들었다. 억지로 먹어보려고 입으로 가져가긴 했지만, 고약한 냄새와 검게 탄 겉 부위 때문에 속이 메슥거려 차마 입을 댈 순 없었다.
"안 먹어봐도 뻔하지. 맛이 아주 좆같을 거야. 좆이 좆같은 게 당연하지, 안 그래? 내 인생이 좆같고, 네 인생도 좆같고. 다 좆이야."
장난감에 싫증이 난 아이처럼 소녀가 집어던진 성기는 꼬챙이에 꽂힌 채로 바닥을 뒹굴었다. 지금 여기 사라지고 있는 홍섭의 생명처럼 가볍게, 부질없이.
억지로 출혈을 막은 듯 했으나 임시방편일 뿐 검은 딱지 사이로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홍섭의 입에서도 피가 섞인 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눈은 흰자위만 가득한 상태로 까무러치기 직전이었다. 소녀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씁쓸한 표정으로, 마치 TV에서 보여주는 전쟁과 학살의 현장을 구경하는 것처럼, 나완 상관없는 먼 나라의 안타까운 일을 대하는 것처럼 말했다.
"안 되겠어. 이대로 놔두면 죽을 것 같아. 어쩔 수가 없어. 나 아무래도 널 죽여야 할까봐. 이젠 내 몸이, 마음이, 내 생각보다 먼저 움직이고 있는 거야. 누가 날 실에 묶고 조종하는 것처럼."
또 들리기 시작한다. 지겨운 매미소리가. 머리를 쥐어짜서 터뜨리려는 듯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머리는 단단하고 소리는 쉽사리 그치지 않는다.
"그때부터야. 머리가 지끈거리고 매미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있어.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나온 이후로 계속……. 이, 이 머리 속에서 계속 울리는 거야. 매앰매앰하고 매미소리가.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을수록 더 뚜렷하게 들려. 머리 속을 뒤흔들고 날 미쳐 울부짖게 만들려고 말야! 까치소리가 들리면 미쳐서 제 어머니 목이라도 조르고 싶어지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그런 거야. 내 의지가 아냐. 나도 조금쯤은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넌 죽어야 될 운명이야. 죽어야 될……"
휘청거리며 소녀는 문 쪽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두 번이나 쓰러질 뻔 하면서, 간신히 문을 열고, 슬쩍 뒤돌아보려고 했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최대한 살그머니 문을 닫고 나갔다. 홍섭은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고, 주위는 쥐 한 마리 죽은 것보다도 더 조용했지만, 소녀의 마음속 세상은 혼이 빠져나갈 듯 시끄러웠다.
                                * * * * * * * * * *
시원한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과일 파는 트럭에서 나오는 목소리만 아니면 완벽할 정도로 평화롭고 조용한 아침. 인태는 습관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뉴스 사이트를 죽 훑어보고 있었다. 대부분 기사를 대충 보고 넘기면서도 유독 세심하게 살피는 곳은 사회면. 마치 무언가 중요한 사실이 숨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찾아보는 게 습관이 된 상태였다. 어쩌면 납치 감금되었던 소녀의 신고로 경찰이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라도 기다리는 걸지도.
사실 수그러들었다고 생각한 뉴스 찾는 습관이 되살아날 정도로 초조해지기 시작한 건 명석에 이어 홍섭마저 메신저에서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사흘은 된 것 같았다. 명석이야 예전부터 메신저 접속을 잘 하지 않았기에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으나 늘 컴퓨터를 켜놓다시피 하는 온라인 게임 중독자 홍섭의 메신저가 며칠동안 로그아웃 상태로 있다는 건 어떤 불길한 상징처럼 보였다.
그때의 사건, 소녀가 사라진 이후 세 사람은 직접 만난 적도 통화를 한 적도 없었다. 그저 가끔씩 메신저로 안부만 확인하는 정도. 그나마도 상대방이 오래 메신저 접속을 안 한 상태로 있으면 불안해할 거란 사실을 잘 알기에 하는 의례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무심코 집어든 휴대전화의 조그만 창을 들여다보았을 때 인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침대 위에 걸터앉아 부품을 잔뜩 늘어놓고 프라모델 조립을 하던 그는 귀뚜라미처럼 울어대는 진동을 가라앉히려고 무심코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오랜만이다」
홍섭의 문자였다. 내용은 너무 짧았지만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늘 존대를 하던 홍섭의 말투와 달랐고 평소 하던 인사말도 아닌 것이다. 무슨 의도였는지, 문자는 그 즉시 또 날아왔다.
「내가 누군지 알겟어?」
뜬금없는 수수께끼였지만 인태의 머리는 재빠르게 돌아갔다. 홍섭은 결코 이런 식의 장난을 친 적이 없다. 휴대전화로 문자를 처음 보내던 때도 아니고, 서로의 번호를 등록해놓았기에 이름과 전화번호가 뜨는 걸 모를 리가 없는데 이런 질문을 했다는 건…… 답은 아주 간단했다. 이 문자를 보낸 사람은 홍섭이 아니라는 것. 누군가 홍섭의 전화기로 자신에게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다.
한번에 보낼 수 있는 짧은 글임에도 문자는 여럿으로 나뉘어져 오고 있었다. 궁금증을 증폭시키려는 의도였다면 꽤나 효과적이라고 인태는 생각했다.
「힌트줄까」
인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머리 속에서는 설마, 설마 하는 말만 맴돌고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첫번재 힌트 김명석은 죽엇어」
비트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이, 하얀 LCD 위의 검은 점 몇 개가 한 인간의 죽음을 선언하고 있었다.
「두번재 힌트 신홍섭도 디젓다」
디지다, 뒈지다, 죽다. 어떤 천박한 낱말로도 그 안에 담은 뜻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럼 나는 누구게?」
이제 답은 하나. 명석과 홍섭과 자신은 인터넷을 통해 만났고 항상 셋만 만났을 뿐 다른 누구도 그 사이에 관계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인태는 알고 있다. 딱 한 명이 있다. 이 세 사람을 하나로 이어줄 수 있는 사람. 인태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너 어디에 있니?」
인태는 망설이지 않고 문자를 보냈고 답신 역시 금방 도착했다. 쓰면서 바로바로 보내기 때문인지 한 문장씩 따로 오고 있었다.
「감방가기 실지?」
「내게 증거가 있어」
「니들이 찍은 사진이랑 다른것도」
「나 하라는대로 해」
「안그럼 바로 경찰서 간다」
그리고 휴대폰은 돌연 발랄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등록해놓고 연거푸 들었던 노래인데도 침묵을 깬 그 소리에 충격을 받을 정도로 놀랐다. 휴대폰이 뜨거운 물건이기라도 되는 듯 조심스레 귓가에 가져갔다.
"여보세요."
"10초 안에 집에서 나와. 밖에서 보고 있으니까 꾸물댈 생각 말고. 10초 안에 안 나오면 내가 아니고 경찰하고 만나게 될 걸."
불투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스크를 끼고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어린 여자의 목소리라는 정도는 구별할 수 있었다. 이제 99%의 확신이 100%가 되었다.
인태는 초조하게 주위를 살폈다. 초가을임에도 더워서 창문을 열어놓은 상태였다. 베란다 문도 열려 있었다. 건너편 아파트에서 망원경으로 본다면 안이 보일 법도 했다.
"대답해! 전화 끊지 마. 무슨 소리든 말을 해. 5초 이상 대꾸가 없으면……"
"아, 알았어. 지금 가겠어."
"10초를 거꾸로 세면서 나와."
"알았어. 십, 구, 팔……"
머리가 복잡했다. 지금 상태라면 소녀가 정말로 경찰에 신고하지 못할 법도 없다. 그들은 그때 무너진 방에서 소녀를 찍었던 사진과 괴롭혔던 여러 도구를 찾지도 챙겨오지도 못했다. 그걸 소녀가 갖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명석도 홍섭도 죽었다고 말했다. 매일 찾아보는 뉴스 어디에도 20대 젊은이의 사망사고는 보이지 않았다. 있다고 해도 밝혀진 신원에 따르면 그 둘은 아니었다. 이대로 소녀가 시키는 대로 하다가 자신도 두 사람의 뒤를 따르는 게 아닐까?
"칠, 육……"
어떻게 되었다고 해도 지금은 소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소녀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고 짧은 문자 메시지는 단호했다. 자기 말을 안 들으면 당장 경찰서로 뛰어가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래도 가만히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뭔가 자신을 보호할 것, 무기가 될 만한 게 없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런 걸 찾을 시간도 없고 야구 방망이 같은 걸 들고 나왔다간 소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정말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오, 사……"
다급한 마음에 프라모델을 조립하기 위해 쓰던 니퍼를 집어 올려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넣고 한 달음에 현관으로 뛰어나왔다.
"삼, 이, 일."
인태는 문을 닫고 열쇠로 잠근 후 한숨을 내쉬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 난 널 보고 있어. 딴짓할 생각하지 마.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 일단 아파트를 나와. 계단으로 걸어와. 엘리베이터를 타지말고 걸어 내려와."
휴대폰을 귀에 댄 채로 인태는 8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려왔다. 그가 사는 아파트의 비상계단은 앞뒤로 트여 있어 밖에서 쉽게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밖을 흘깃거리며 소녀가 어디쯤에 있을지 찾았다. 아마도 건너편 아파트 아니면 왼편의 상가 건물 옥상일 것이다. 그 이상 거리에서는 가까이 붙어 있는 건물들에 가려져서 보기가 힘들 것이다. 소녀의 지시는 계속되었다.
"왼쪽 길로 꺾어져. 쭉 내려와. 그쪽으로, 아니, 오른쪽으로 건너! 모습이 안 보이잖아! 고개 돌리지 마, 그냥 걸어! 알겠어? 대답을 해! 무슨 소리라도 내. 오른쪽으로 붙어! 그래, 그대로 내려와. 신호등 건너지 마."
"아, 알았어. 응, 응, 응……"
무슨 소리라도 내야 했기에, 인태는 '응'과 '어'의 중간 정도로 들리는 애매한 대답을 웅얼거리며 걸었다. 그리고 그 길은, 점차 그에게 익숙한 기억을 불러 일으켜 주었다.
불쾌하고 잊어버리고 싶은, 신발 밑창에 끈적하게 눌어붙은 껌 같은 기억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 삼십 분 정도를 걸어 상인들이 모두 떠나고 폐허가 되어 버린 재래시장을 지나 허물어진 상가 건물에 도달했다.
부스러져 쌓인 콘크리트 잔해와 그 사이에 우뚝 솟은 기둥, 곳곳에 불쑥 튀어나온 철근과 구부러진 굵은 철사들. 그 모두가 태풍의 쓰라린 상처와 세 남자가 남겼던 불쾌한 기억을 잊지 말라는 듯이 온몸으로 펼치는 행위예술 같았다.
"다시 와보니까 기분이 어때? 좋을 리가 없겠지. 피차 마찬가지야. 거기서 왼쪽 모퉁이로 돌아. 들어가는 입구가 있어."
건물의 오른쪽은 완전히 무너졌지만 왼쪽에는 그래도 예전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다만 곳곳에 금이 가고 깨진 벽의 모습만 봐도 언제 무너질지 모를 위태한 상황임엔 분명했다.
언제 입을 다물어버릴지 모를 거대한 괴물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듯이,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내딛었다. 안은 어둡고 눅눅했으며 공기는 탁했다.
한쪽에선 물방울이 툭툭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콘크리트 조각과 모래가 가득한 바닥은 걸을 때마다 버석거리는 소리를 냈다. 문명세계 한 복판에 나타난 고대의 동굴을 탐사하는 심정으로 그는 걸었다.
                                * * * * * * * * * *
"좋아. 열 발자국 더 나아가고 멈춰 서."
주위는 이미 어둠 뿐. 계단을 돌아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세상과 격리된 별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둔탁한 발자국 소리가 열 번 울리고 그쳤다. 침묵의 장막이 가라앉은 먼지 위를 살며시 덮었다.
소녀는 어디에 있는 걸까? 인태는 불편한 시각을 포기하고 청각에 온정신을 집중했다. 직접 다가온다면 발자국 소리로 금방 들킬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자신을 그 근처로 유인한 후 붙잡거나 공격하려고 할 게 분명하다. 그래서 인태는 건물 안에 들어온 이후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래층에 내려오니 수화기에서 들리는 소리에 희미한 메아리가 있음을 알았다. 더 집중해서 들어보면 어딘가 다른 곳에서 들려오는 반향음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소녀가 말을 하고, 그 목소리가 인태의 수화기에서 거의 동시에 나오고 있었다. 상대는 아주 가까이에 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인태의 오른쪽 벽에 있던 소화전이 벌컥 열렸다. 어둠 속이라 소화전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 안에서 방진 마스크를 낀 소녀가 튀어 나와 상대방의 얼굴 근처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향해 가스총을 쏘았다. 소녀 역시 정확한 얼굴의 위치를 찾지 못했기에 손전등을 킨 것과 동시에 닥치는 대로 최면가스를 뿜어대고 있었다.
으음, 하고 가벼운 신음소리를 내며 인태는 무릎을 꿇으며 무너졌다. 소녀는 안심하며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머리를 허벅지 사이에 묻으며 웅크린 듯한 자세로 쓰러진 인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멍청한 새끼, 너네들은 그래서 안 돼. 소녀는 뿌듯한 승리감을 느꼈다. 그들은 늘 그렇게 자신이 넘치고 거만하고 부주의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는 이유로 그들은 소녀를 깔보고 위협했다. 그러니 이런 꼴을 당해도 싼 거야. 마음으로 훈계를 해주고 나서 불룩 튀어나온 치마 주머니에 담긴 빨랫줄 뭉치를 꺼내었다. 손목과 발목을 묶고 하나로 모아서 긴 줄에 연결하여 끌고 갈 심산이었다.
가스총은 뒤춤에 찔러 넣고 손전등은 겨드랑이에 낀 채로 빨랫줄을 풀고 있을 때, 기절한 줄 알았던 인태의 닫힌 눈이 살며시 열리며 어둠 속을 훑었다. 소녀의 가느다란 다리가 하얗게 빛났다.
"아아아악!"
찢어지는 새된 비명이 메아리를 이끌며 통로 안을 휘젓고 다녔다. 소녀는 손전등과 빨랫줄을 떨어뜨리며 뒤로 비틀거렸다. 쓰러지는 척 하면서 이미 니퍼를 오른손에 쥐고 있었던 인태가 니퍼로 발목을 찌른 것이다. 입을 다문 상태의 니퍼는 그 끝이 그리 뾰족하지 않아 충격을 주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한쪽 손잡이만 잡고 벌어진 상태에서 니퍼의 한쪽 날로 살을 찍었다.
소녀는 닭싸움 준비자세를 취하듯 한쪽 발로 통통 뛰면서 다친 발목을 붙잡고 손바닥으로 마구 비볐다. 살이 좀 찢어졌으나 출혈은 거의 없었다. 소녀는 씩씩대며 중얼거리듯 욕을 토해내었다.
그 틈을 타서 인태는 손전등을 주웠으나 바닥에 떨어지면서 뚜껑이 깨지고 건전지가 튀어나가서 무용지물이 되어 있었다. 어두워서 멀리 굴러간 건전지를 찾을 수도 없었다. 인태는 이빨을 갈며 손전등을 멀리 던져버렸다.
휘익. 바람 가르는 소리에 인태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니퍼와 비슷한 작은 무기가 그의 가슴팍 근처를 노렸다. 그러나 크고 어설픈 몸동작에 어두워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한, 그저 위협용 공격일 뿐이었다. 소녀의 전정가위가 인태를 노리고 덤벼들었다.
두 번의 승리로 소녀가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부분이지만, 인태는 이전의 두 사람과는 달랐다. 그는 군대를 제대했고(명석은 군 기피를 위해 도미했고, 홍섭은 공익 출신이다) 태권도 2단에 수영도 능숙했다. 그래서 건물 안에 들어올 때부터 위험에 대비해 신체의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 가스총이 분사될 때 오랫동안 숨을 참고 기절한 척도 할 수 있었다. 또한 운동을 잘하지도 않았고 무예를 익힌 적도 없는 소녀의 공격도 여유롭게 피해나갔다.
복도는 이미 두 사람의 목숨을 건 결투장으로 변해 있었다. 대충의 위치만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의 두 검은 물체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가끔 무기를 휘둘러 상대의 접근을 차단했다. 소녀는 전정가위, 인태는 니퍼. 무기라고 하기엔 너무 짧고 약했다.
점차 거리는 벌어지고, 어두운 공간에는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흙과 콘크리트 조각이 흩어진 시멘트 바닥을 직직 미끄러지는 소리가 어지럽게 뿜어나갔다.
인태는 최대한 심호흡을 하여 숨을 가라앉히고 주위를 잘 살폈다. 눈이 조금씩 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시야가 불편하자 대신 청각이 예민해졌다. 기회를 잡아야 한다, 한 순간이면 결판이 날 것이다. 인태는 오직 그 생각만 하며 가만히 몸을 숙이고 눈 대신 귀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복도에 어지러이 반사되는 발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상대와의 거리는 지척, 오 미터에서 십 미터 사이일 터였다. 소녀의 덩치와 체력을 감안하면 육탄전으로 그를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했으나, 가스총과 날카로운 날을 가진 흉기를 갖고 있었기에 결코 방심할 수 없었다. 그에 비하면 인태의 무기라고는 너무 짧아서 주먹 이상의 거리를 기대할 수 없는 니퍼 뿐.
소녀의 무기 역시 짧기는 마찬가지인 전정가위. 하지만 비장의 무기 가스총이 있었다. 다만 함부로 쏘면 자신의 위치를 가르쳐줄 뿐이라서 아껴야만 했다.
"너 무사했구나."
자신의 위치를 들킬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인태는 말을 걸었다. 다행히 소리는 여기저기로 튕겨 나가며 상대를 혼란시켰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좆까는 소리하지 마!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사실 많이 놀랐어. 그래도 무사히 잘 있으니 안심이야. 어떻게 탈출했니?"
"난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어."
"이 건물도 완전히 무너졌을 텐데…… 이곳은 생각보다 멀쩡하고, 이상해."
인태의 기억에 남아 있는 상가 건물은 지하가 완전히 무너져서 멀쩡한 곳이라곤 없었다. 하지만 이곳의 계단과 복도는 예전의 모습을 꽤 유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곳일 수도 있었다. 소녀는 그의 의문에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여긴 내가 만든 거나 다름없어. 말하자면 내 무덤이야. 아니, 고치야. 내 원념으로 만들어진 나만의 세계란 말야. 난 매미처럼 될 거야. 땅속에서 오래오래 갇혀 있다가 잠깐 날아올라서 마음껏 노래하다 죽을 거야. 그리고 너희들은 그런 내 날갯짓을 위한 먹잇감이지."
"걱정 많이 했는데, 이렇게 잘 있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분을 못 이겨 소리를 지르고 난 다음에야 소녀는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참아야 한다, 분명 녀석은 자신을 자극하여 덤벼들게 하려는 심산이리라. 흥분하여 무작정 달려들 때 반격하려는 작전일 거야. 침착해야 해. 지금까지 잘해 왔잖아.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소녀는 스스로를 달래고 다독였다.
"그동안 늘 미안하게 생각했어. 만나서 용서를 빌고 싶다고는 생각도 했고."
정말 미친 새끼다. 소녀는 그렇게 답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인태가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대꾸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꾹 참았다. 자신을 납치하고, 괴롭히고, 망쳐 놓은 주제에 이제 와서 좋은 소리를 늘어놓는다고 금방 혹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소녀는 가슴속에서 자라난 분노와 증오가 이미 온몸을 잠식하고 있음을 안다. 지금 자신의 몸뚱이와 마음까지 모두 증오로 바뀌어 있었고 원래의 소녀는, 좀 둔하지만 착하고 가끔 말을 더듬어도 미소가 귀여우며 책읽기를 좋아하고 예쁜 책갈피 만들기가 취미인 소녀는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우리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니? 이러지 말자. 무기를 내려놓고 이야기를 하자."
그러나 대답 대신 소녀가 달려드는 소리가 나자 인태는 얼른 오른쪽으로 피했다. 근접했다고 생각한 순간 소녀는 도로 물러나며 가스총을 쏘았다. 인태는 몸을 낮추며 왼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 짧은 순간 보였다. 천장에 뚫린 작은 구멍. 그 사이에서 희미하지만 소중한 빛줄기가 새어나오는 것을. 한순간 소녀의 모습이 보였고,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망막에 각인되었다. 분노로 끓어오른 눈동자, 방진 마스크로 감춘 얼굴, 먼지가 잔뜩 묻은 낡은 교복, 오른손에 꼭 쥔 전정가위, 왼손엔 정면을 향해 뿜어내고 있는 가스총…… 그 모든 게 뿌연 먼지와 주위를 감싼 어둠 속에서 그로테스크한 초현실주의 회화처럼 보였다. 등뒤로 뿌려진 빛줄기는 성화(聖畵)를 조롱하려는 의도로 그려진 조악한 후광 같았다.
가능하다면 더 오래 그 광경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에게 그럴 시간도 여유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인태는 찰나의 순간에 선택을 했고 그가 정한 바를 실행에 옮겼다.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쪼그리고 앉아 왼발을 축으로 하여 오른발을 힘차게 휘둘렀다.
일순간 소녀의 두 다리가 공중에 떴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짧은 비명이 한 박자 늦게 솟아났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날려 체중을 실은 상태로 그대로 착지하며 왼쪽 손목을 밟았다. 손가락이 펴지며 가스총이 날아갔다.
그렇게 왼발로 왼쪽 손목을 누른 상태로 오른쪽 다리를 꿇어 종아리로 소녀의 목을 눌렀다. 그리고 왼손으로 소녀의 오른팔을 붙잡고 오른손에 쥐고 있던 니퍼를 오른쪽 손목에 찔렀다.
두 날 중에서 한쪽은 확실히 손목의 피부를 뚫고 들어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피가 왈칵 솟았지만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다. 이제 그가 오른손 손아귀에 힘만 주면 소녀의 오른 손목은 찢어지고 말 것이다. 어디가 힘줄이고 동맥인지 어두워서 찾을 수가 없었으나 그 가냘픈 손목이라면 반 이상은 날아갈 터였다.
"헉, 헉, 내, 내 말 들어."
"……."
소녀의 얼굴을 볼 수 없어 표정을 알 순 없었으나 분명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인태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재채기도 내뱉으며 중간중간 끊어지면서도 비장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다 끝났어. 내가 너한테 했던 짓 용서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네가 한 짓 용서해줄 수 있어. 그 두 사람 죽인 것도 신고하지도 않을 거고 아무것도 안 할 거야."
"그러니까 너도…… 나 용서해주면 안 될까?"
"그리고 그냥 나하고 같이 살자, 응?"
"네가 마음에 들었어. 널 좋아한단 말야. 우리가 너한테 한 거 정말 나쁜 짓이고……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용서하고 싶지 않더라도…… 그냥 덮어두고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앞으로 내가 너한테 잘할게……."
그때 소녀의 얕은 재채기 소리가 들렸다. 힘겹게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인태는 그제야 자신이 목을 너무 세게 누르고 있다는 걸 깨닫고 오른쪽 다리를 살짝 들었다.
"즈, 조, 조, 조……"
쥐어짜는 처절한 목소리였다. 소녀의 남은 힘이 모두 목으로 모이는 듯 했다.
"좆 까는 소리는 달나라 가서 해!"
인태는 눈을 꽉 감았다. 그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의 팔뚝에, 소녀의 팔뚝에도.
"그래, 그렇지. 넌 한번도 말 잘 들을 테니 풀어달라고는 안 했지. 우리가 원하는 그런 애가 되겠다고 말하진 않았어……."
어쩐지 기운이 빠진, 체념한 목소리였다. 이미 소녀의 영혼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닿을 수 없다면, 내 것이 될 수가 없다면 남은 길은 하나 뿐.
'그래, 달나라가 아니라 하늘나라에 보내줄게' 인태는 그런 생각을 기도하듯 절박하게 하며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찌지직, 살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울컥울컥 솟아나는 피가 어둠 속에서 번들거렸다. 소녀는 악악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지독한 피 냄새에 고개를 돌린 순간 둘의 눈이 서로의 눈동자를 향했다.
그때 인태는 보았다. 야생 고양이처럼 번뜩이는 눈. 어둠 속에서도 명멸하던 분노의 불꽃. 그리고 온몸이 감전된 듯 저릿했다. 자신의 니퍼가 어느새 소녀의 왼손에, 그리고 그 니퍼의 날은 자신의 목젖 바로 옆에 꽂혀 있었다.
얼른 두 손을 모아 뽑으려 했으나 뻣뻣해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갑작스런 충격에 사지가 굳어버린 것 같았다. 소녀는 누운 상태에서 몸을 오른쪽으로 돌려 손목에 박힌 니퍼 날을 뽑은 후 다시 왼쪽으로 구르듯 몸을 돌리면서 팔에 반동을 실어 휘둘렀다. 니퍼의 날이 이번에는 목 오른쪽을 뚫고 들어갔다.
인태는 세워놓은 짚단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몸을 덜덜 떨면서도 소녀는 얼른 일어나서 무릎을 꿇어 가슴팍을 누르고 양손으로 니퍼를 꽉 쥐었다. 하지만 오른쪽 손가락은 이미 움직이지 않았고 그저 얹어놓은 상태였다. 손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니퍼의 플라스틱 손잡이와 금속 날을 타고 흘러 인태의 목에, 턱에, 인중에, 입술에, 콧잔등에 뚝뚝 떨어졌다.
온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스스로도 어처구니없다고 여겨지는 돌연한 생각에 인태는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소녀의 피가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피와 섞이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라도 둘은 하나가 되고 있었다. 결국 이런 식으로밖에는 될 수 없었지만. 인태는 그저 아쉬운 마음이었다. 문득 누군가 자신을 발견하면 온몸을 적신 이 피에서 어디까지가 자신의 피인지 구별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참을 수 없을 만큼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목 주위는 뻣뻣했고, 지독하게 아팠다. 그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밖에는 남지 않았을 때 소녀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너무나 긴 것 같이 느껴진 일순간의 정적이 지난 후 소녀의 양손은 중력에 이끌린 듯 아래로 툭 떨어졌다. 니퍼를 그의 목에 꽂은 채 소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감싸고 눌렀으나 이미 출혈이 상당했고 찢어진 손목에선 아픔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 말도 듣지 않는 오른팔은 이미 신체의 일부가 아닌 것 같았고, 그저 지독한 통증을 보내는 걸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듯 했다.
소녀는 비틀거리며 출구를 찾았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죽고 싶다는 마음 뿐. 홀가분한 마음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고통과 어지러움이 그를 휘감았다. 출구, 출구, 빛이 비치는 곳. 어둠과 고통의 고치를 벗고 마음껏 날아오를 수 있는 곳을 향해. 소녀는 구도자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걸었다.
몇 번이나 휘청거리고, 벽에 몸을 기대면서 억지로 다리를 잡아끌었다. 계단이 보인다. 열 개 정도의 계단을 오르고 모퉁이를 돌아 다시 열 개 정도의 계단을 오르면 위층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마흔에서 쉰 걸음 정도 걸으면 출구다. 그토록 짧은 거리가 지금껏 살아온 순간을 다 합친 것보다 멀고 아득했다.
복도를 걷는 것도 힘든데 계단을 오르기란 더 벅찬 일이었다. 어지러웠고 계단이 좌우로 앞뒤로 요동을 치는 듯이 보였다. 소녀는 벽에 몸을 붙이고 온몸의 힘을 실어 위로 밀듯이 하며 한 단 한 단을 힘겹게 올랐다. 마침내 모퉁이를 돌 차례. 계단의 반을 오른 셈이다. 이제 반만 남았다, 겨우 반이다.
빛이 보인다. 네모난 빛 덩어리가 보인다. 그토록 바라던 출구, 저곳만 다다르면…… 정말 모든 게 끝이 날까? 지금은 그저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세상은 변한 게 없고, 그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혔을 뿐인데. 오직 저 빛으로 가득한 출구를 희망 그 자체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난다.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크고 강한 발걸음 소리가 물밀듯 밀려들어온다.
네모난 빛 덩어리가 일그러진다. 커다란 몸뚱이들이 빛을 가린다. 역광을 받아 시커먼 실루엣이 가장자리에서 빛의 선을 뿌리며 나타난다. 탕탕탕, 거친 구둣발 소리를 내며 몰려온다. 소리가 점차 커진다. 사이렌 소리에 섞여서 또 다시 매미소리가, 떨쳐버리고 싶어도 못했던 지겨운 그 소리가 온몸을 뒤흔든다.
소녀의 눈이 공포에 잠긴다. 얼굴이 새햐애진다. 남자들이 오고 있었다. 소녀를 잡으러? 분명 그러리라. 소녀는 겁에 질려 떨기 시작한다. 다리가 떨려서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다.
남자들, 남자들이 온다. 그들은 언제라도 소녀를 붙잡아 가두고 괴롭히고 때리고 손가락질을 하고 욕을 하고 침을 뱉을 것이다. 한순간의 승리에 도취되고 출구에의 열망에 함몰되어 그토록 당연한 사실마저도 잊고 있었을 뿐이다. 아직 이 세상은 남자들의 것이었다.
상처입고 절망에 빠진 소녀가 숨을 곳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싸움이었지만 닥쳐오는 절망의 무게는 감당하기에 너무나 혹독했다. 저 빛을 넘어 하늘높이 날아가기에 그의 날개는 너무나 작고 초라하며 연약했다. 하물며 달나라는 아득히 멀었다. 좆 까는 소리를 하고 싶어서라도 달나라에 가고 싶었는데, 소녀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스스로가 실없다고 느끼며 피식 웃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방금 전까지의 일이었다.
얼른 방향을 돌려, 조금이라도 멀리, 조금이라도 빨리 달아나고 싶었다. 이 끔찍한 곳에서, 자신을 잡으러 온 남자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심한 출혈로 무기력해진 몸을 억지로 움직여 계단을 도로 내려가려다가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졌다.
발목을 접질렸는지, 뼈가 부러졌는지 찌르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고 한쪽 다리마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소녀는 손목을 움켜쥔 채 기어서라도 계단을 내려가려 했다. 사이렌 소리, 발자국 소리, 수천 수만의 매미가 울어대는 소리, 소녀의 마음이 질러대는 공포에 찬 비명이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미끄러지듯 계단을 내려다가 소녀의 몸은 계단 위에서 한 바퀴 굴렀다.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이미 입술이 가슴에 닿아 있었다. 피어올랐던 먼지가 초라한 연극의 막을 내리듯 서서히 가라앉았다.
건물 밖에서는 중년 여인이 119 구급대원 한 명을 붙잡고 자신이 신고할 당시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무너진 상가에 사람 소리가 들려서 노숙자라도 사나 싶었는데 비명소리가 연거푸 들리기에 무서워서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고 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신고부터 했노라고.
구급대원들의 전등에서 나온 빛이 어두운 건물 여기저기를 더듬고 다녔다. 그들은 오래지 않아 목에 니퍼가 꽂힌 채 누워 있는 젊은 남자의 시신을 찾아내었다. 아직 피가 따뜻하고 사후경직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수색을 이어가자 지하 골방에서 목줄이 걸리고 성기가 절단된 상태로 부패되고 있는 남자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구조활동의 단계는 지나 있었고 시체를 수습하는 작업이었지만 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들것을 옮기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계단 아래에 팽개쳐진, 구둣발에 밟혀 찢어지고 바스러진 한 마리 죽은 매미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진아
댓글 5
  • No Profile
    민트매냐 08.11.03 00:09 댓글 수정 삭제
    ...... 으아;
  • No Profile
    mypace 08.11.10 21:21 댓글 수정 삭제
    영화 하드캔디(hard candy)와 좀 많이 흡사한데요.

    만약 모티브를 따오신 거라면 표기를 해주시는게 좋을 듯 싶습니다.
  • No Profile
    mypace님 이야기가 아주 독창적이진 않다라는 말씀이면 모를까 그 영화에 모티브를 따왔다던가 표기를 해야 한다는 말씀은... 지나친 적용이 아닐까요?
    그렇게 따지면 그 하드캔디도 다른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표기해야 할겁니다.
  • No Profile
    pilza2 08.11.13 19:10 댓글 수정 삭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특정 영화나 다른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오진 않았습니다. 굳이 언급하자면 영화 『올드보이』가 약간의 영향을 주긴 했을 거예요.
    어떤 영화인가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 내용 소개를 보니까 피해 소녀가 복수를 한다는 큰 틀 외에는 별로 안 비슷한 것 같습니다(물론 보지 않아서 섣불리 말할 수는 없겠지만). 찾다보니 굉장히 흥미가 생겨서 보고 싶어졌는데, 국내에는 개봉도 안 했고 DVD로도 안 나온 것 같네요.
  • No Profile
    제법 긴글이였지만 어렵지 않게 읽었습니다. (물론 내용은 좀 불편한면이 있긴 하지만...^^) 왠지 결말은 너무 우울하네요. 암튼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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