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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단편 열쇠

2009.03.27 11:4003.27

Lantana7435@gmail.com
열쇠 (Potestas clavium, 열쇠의 힘)


브루노 야셴스끼 (Bruno Jasieński)
정보라 옮김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마태오의 복음서 16장 18-19절 [공동번역성서 - 역주]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마태오의 복음서 6장 12절, 루가의 복음서 10장


1.
 십자가는 오래 되고 매우 낡았다. 사람들 말로는 600년이 넘었을 것이라 했다.
 예배당 입구 바로 앞 벽감에 걸려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단단해져 돌처럼 변해서, 어떤 종류의 목재인지는 이미 알 수 없었다. 높이는 사람 키보다 조금 컸다.
 그 위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검게 변하고 말라붙은 채, 십자가에 세 개의 거대한 징으로 고정되어 박혀 있었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도의 얼굴이었다 ― 그 얼굴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이 캔버스 위에 표현하곤 하던 그 영적으로 고양된 얼굴 모습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것은 무뢰한의 얼굴, 괴물처럼 추하고, 눈가가 검고 푹 꺼졌으며, 튀어나온 짐승 같은 턱선이 무시무시하고 추악한 표정으로 굳어진, 성스러운 형상이라기보다 신성모독에 더 가까운 얼굴이었다.
 그것을 조각한 수도승은 뭔가에 씌었거나, 아니면 무시무시한 죄인으로서, 그 얼굴에 자기 자신의, 밑바닥까지 거미줄에 싸인 사악한 영혼을 새긴 것이 틀림 없으리라. 신앙심 깊은 입술들의 입맞춤으로 반 정도나 닳아버린 다리는 마치 시체의 다리처럼 뻣뻣하고 뼈가 앙상했다.

2.
 신부는 이상하게그 십자가를 싫어했다.
 교구에 막 도착했던, 겨우 서른 살밖에 되지 않았던 그 때부터, 십자가 앞에 서면 이해할 수 없는, 미신적인 공포와 혐오감을 느꼈고, 그것은 해가 갈수록 자라났다. 몇 번이나 미사를 끝마치러 가면서 벽감 옆을 지나가야 할 때마다, 매우 빨리 작별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곳에서 이미 이십 년 넘게 지냈고, 성당과 마을과도 익숙해졌고, 더 좋은 교구로 전출 제의를 받았을 때 ― 그는 거절했다. 오직 예배당에 걸린 십자가에 대한 태도만이 도착한 날로부터 전혀 변하지 않았다.
 교구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여러 가지 일들을 알고 있었고 뒤에서 조용히 수군댔다.
 지난 해 가을에 죽은 가정부와 사이에서 아이를 둘 낳은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아들과 딸이었는데, 시내에서 세례를 받았다.
 교구 사람들에게는 엄격하고 가까이 대하기 힘들게 굴었다.
 쩨쩨하고, 구두쇠에, 부자와 가난뱅이를 가리지 않고 뭐든지 아까워했다.
 교구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지 않았고, 스스로 그 점을 잘 알았으며, 그 때문에 더더욱 뻔뻔스러워진 듯했다.
 여위고 어깨가 넓으며 가슴이 푹 꺼진 남자로, 폐병 환자였고,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잘 버티고 있었다. 말이 없고 음울하며, 마르고 검은 얼굴에 푹 꺼진 눈이 번쩍였고, 병 때문에 무너져가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특히 ―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 일은, 그 여위고 훌쭉한 얼굴에 인광이 번쩍이는 눈이 그 표정 때문에 예배당에 걸린 그리스도의 얼굴을 연상시킨다는 점이었다.
 신부는 이 닮은 점을 알고 그 때문에 십자가를 싫어한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바로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런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그 해 가을은 다른 해보다 더 힘들고 괴로웠다.
 비가 계속 내리고 대기는 안개가 끼고 축축해졌다.
 신부는 자신의 질병에는 한 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몇 년이나 지내면서 익숙해져서, 이미 그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한 번은, 미사를 마치면서, 찬송가를 부르다가 갑자기 무시무시하게 토혈을 하기 시작했다.
 단상에서 넘어져 성배를 놓쳤다.
 그는 사제관으로 옮겨졌다.
 토혈은 오랫동안 멎지 않았다.
 마침내 읍내에서 청해 온 의사가 토혈을 막았을 때 ― 신부는 완전히 기진맥진했다.
똑바로 누워서, 상제복[上祭服, 미사용 제복 위에 입는 소매 없는 사제복 - 역주]처럼 노랗게 된 채 힘들게 숨을 쉬었다.
 의사는 가루약을 처방하고, 침대에 누워 결단코 나오지 말 것이며, 비가 그치면 곧바로 떠나라고 명령했다.
 그리 [Gries, 프랑스 동부의 휴양지 - 역주] - 다보스 [Davos, 스위스 동부의 휴양지 - 역주] - 자코파네 [Zakopane - 폴란드 남부의 산악지대, 휴양지 - 역주]
 의사는 돈을 받고 가버렸다.
 신부는 이틀간 누워 있었다.
 사흘째 되던 날 일어나, 언제나 하듯이 아침 미사를 집전하러 갔다.
 매우 쇠약했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큰 소리로 기침을 했다.
 얼굴은 더더욱 훌쭉해지고 노랗게 되었다.
 되살아난 시체 같았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3.
 어느 날 밤, 저녁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때에, 사제관 문을 어느 농부가 두들기기 시작했다.
 산모를 위해 신부를 청하러 왔다.
 아낙은 죽어가고 있었다.
 신부는 큰 소리로 욕을 했으나, 옷을 입고 떠났다.
 비가 차갑게 끊임없이 쏟아졌다.
 마을은 멀었다.
 가는 길에 속까지 흠뻑 젖었다.
 신부는 깨끗하고 호화로운 침실로 안내되었다.
 아낙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신부를 보고 아낙은 베개 위에서 몸을 일으켜 그의 품에 쓰러졌다.
 고해하기 시작했다.
 ― 남편에게 낳아준 아이는 그의 씨가 아니에요, 남편 아이가 아닙니다 ― 아낙이 흐느꼈다.
 ― 남편에게 고백하시오. ― 신부가 명령했다.
 ― 상놈의 자식… 견디지 못할 거예요… 아이들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해코지를 할 거예요… 전부터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상놈의 자식 ― 아낙이 비탄했다.
 ― 남편을 부르시오. ― 신부가 말했다.
 창백하고 어깨가 넓은 농부가 들어와 침대 옆에 섰다.
 ― 말하시오. ― 신부가 명령했다.
 아낙이 베개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 여보, 난 하느님의 법정으로 가요. 하느님이 날 직접 심판하실 테니, 전부 다 말하겠어요, 성스러운 고해 때처럼.
 숨을 고르기 위해 끙끙거리다가, 아낙은 다시 빠르고 분명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 내가 낳은 아이는 당신 아이가 아니에요, 비ㅉㅔㄱ 쉼착의 아이예요, 여보, 용서해 줘요, 난 하느님의 법정으로 가요….
 ― 바시까도 똑같이 당신 딸이 아니에요, 지주님 아이예요. 여보, 고아가 될 애들을 기억해 줘요. 당신은 아이를 못 가지니까, 당신한텐 아무런 해도 안 끼쳤어요.
 농부는 천정처럼 하얗게 된 채 서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신부가 종부성사를 했다.
 단말마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4.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신부는 첫 번보다 더 긴 토혈을 했다.
 청해온 의사가 젤라틴을 주사했다.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엄격하게 말하고, 얼음과 가루약을 처방했다.
 떠나면서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 지금은 산에 가도 효험을 못 볼 겁니다. 시기가 나빠요. 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신부는 이해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틀간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다가, 첫 토혈 때처럼 사흘째에 일어나서 미사를 집전하러 갔다.
 그 무렵 우연히, 지난번 밤에 찾아갔던 아낙이 죽었으며, 남편은 비탄에 젖어 제정신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농군은 밤에 도끼로 아이들 둘을 모두 죽이고, 자기 자신은 헛간 대들보에 목을 매었다.
 그 날 아침부터 신부는 전보다 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움츠러들었다.
 병을 핑계로 고해 듣기를 그만두었다.
 다만 미사는 전처럼 정기적으로 집전했다.
 그의 눈은 전보다 더 움푹 들어갔고, 가죽밖에 안 남은 턱뼈는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미신적으로 작별을 고하고 오랫동안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을에서는 신부가 겨울까지 버티지 못할 것이며 죽음을 앞두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고들 수군거렸다.
 비는 계속해서 오랫동안 퍼붓듯이 내렸다.

5.
 지난번과 똑같이, 어느 날 밤, 농부가 사제관 문을 두드렸다. 아낙이 아이를 낳은 후 죽어가고 있었다.
 신부가 직접 문을 열고, 눈을 크게 뜨고 농부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아서, 마침내 농부는 신부가 어디 잘못된 것인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어쩌면 신부가 안 가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을 먹고, 여인이 죽어간다고 한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신부 없이 죽게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말은 튼튼하고 거리도 멀지 않다.
 신부는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기다리게!” ― 그리고 사제관 안쪽 깊숙이 사라졌다.

6.
 그리스도 앞의 벽감에는 일년 내내 작은 기름 등잔이 타올랐다.
 신부가 예배당에 들어섰을 때는 거의 깜깜했고, 단지 조그만 등잔이 가느다랗게 올려보내는 불빛만이 어둠 속에서 연기를 내며 사그라들며 부서지고 있었다.
 마당에는 비가 쏟아지며 성당 지붕의 양철판을 뚝뚝 두들겼고, 차갑고 매운 바람이 유리창을 울리고 문을 두드렸다.
 신부는 바닥에 십자(十) 모양으로 엎드려 오랫동안 말없이 있다가,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고 앉아서 더더욱 창백해진 모습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 여러 번이나 힘든 일이 있었지만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천주님, 저 자신을 위해서 천주님께 기도한 적은 없습니다. 그건 천주님도 보셨고 기억하실 것입니다.
 ― 저는 개처럼 살아왔고 그렇게 죽어갑니다.
 ― 제 탓이오, 제 탓이오! 모두 제 큰 탓입니다.
 ― 그러나 이제 사람이 신부 없이 죽어가며 천주님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 저 자신이 죄와 잘못으로 가득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 교구민들의 돈을 훔쳤습니다.
 ― 어려운 이들을 위한 자비심이 저의 집에는 없었습니다.
 ― 과부와 고아들에게 해악을 저질렀습니다.
 ― 천주님의 말씀을 팔아넘겼습니다.
 ― 제 탓이오, 제 탓이오! 모두 제 큰 탓입니다!
 바람이 창 너머에서 몸부림치며 대문을 두들겨댔고, 빗방울이 지붕에 떨어지며 딱딱 소리를 냈다.
 ― 가정부와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 성당 돈을 훔쳤습니다. ― 신부가 쏟아냈다.
 ― 두 고아와 그들의 아버지가 저의 양심을 짓누릅니다. 제가 어떻게 죽어가는 사람에게 죄를 용서해 주겠습니까?
 ― 천주님, 제 눈은 지금 천주님께 간구하는 기적을 볼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람이 죽어가며 당신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 천주님, 내 외투를 입고 가십시오!
 신부는 마룻장이 울릴 정도로 바닥에 이마를 짓찧었고 그대로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움직이지 않고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입술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스도는 고개를 약간 옆으로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고, 말없이 돌처럼 매달려 있었다.
 ― 천주님, 이 종의 어깨에 힘에 겨운 짐을 지워주십니다. 보십시오, 넘어집니다.
 ― 저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사람에게 매인 것을 풀겠습니까?
 ― 천주님, 저희에게 내려주신 은총을 도로 거두어 가십시오.
 ― 천주님의 것은 천주님에게, 라고 성서에 쓰여 있습니다.
 ― 저는 사람이고 짐을 져 내지 못합니다.
 신부는 다시 한 번 바닥에 얼굴을 짓찧었고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누워 있었다.
 피가 그의 입과 코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몸을 일으켰을 때에는 ― 피투성이가 되어 무시무시했다.
 ― 원치 않으십니까? ― 그는 소리쳤다.
 ― 몸이 죽는 고통 하나만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하셨습니까?
 ― 당신 스스로도 들 수 없는 열쇠를 우리에게 내려주고 우리가 당신을 위해 들어주기를 바랬습니까?
 ― 당신의 열쇠는 원치 않습니다!
 ― 가져가시오, 도로 당신에게 내던지겠소!
 그는 자기 몸에서 사제복을 벗겨내기 시작하여 구겨진 채로 십자가 발치에 던졌고, 마침내 완전히 벌거벗은 채, 여윈 몸으로 우뚝 섰다.
 ― 당신이 잔혹하여 천주의 말씀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개처럼 죽어가도록 내버려둔 탓으로, 버러지와 같은 내가 당신의 고통을 대신 질테니, 당신은 가서 내 십자가를 지시오.
그는 벌거벗은 채 제기 보관소로 갔다가 잠시 후에 그곳에서 망치와 못, 렌치를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벽감 난간에 기어올라, 그리스도를 못박은 징을 렌치로 뽑아내기 시작했다.
 징은 오래 되어 이미 나무에 들어박혀 빠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징과 씨름했고, 피가 입에서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서 크고 검은 웅덩이를 이루어졌다.
 마침내 징이 빠졌다.
 세 번째 징을 빼낸 후, 그리스도를 떼어내어 땅에 눕혔다.
 그리스도는 납처럼 무거웠고, 나무 거스러미가 일어나 그의 팔에 박혔다.
 그리고 그는 망치와 못을 들고 다시 한 번 벽감으로 가서, 이전에 그리스도의 왼손이 있었던 곳에 자신의 왼손을 놓고, 손에 못을 찔러넣은 후 피묻은 손가락으로 못을 잡고 망치로 내리쳤다.
 고통으로 몸을 뒤틀었으나, 한 번, 또 한 번, 못 대가리가 손목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내리쳤다.
 그 때 갑자기 입에서 피가 쏟아져, 그는 입을 크게 벌린 채 핏기 없이 못 박힌 팔에 매달렸다….

7.
 마당에서 기다리던 농부는 이미 불안해져서 사제관 문을 다시 두드리려다가, 두건을 눈까지 내려쓴 채 성당에서 나오는 신부를 보았다.
 마차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비는 동이로 붓는 것처럼 쏟아진다.
 산모의 집까지는 생각보다 꽤 멀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좋이 지나 있었다.
 안방의 침대 위에서 아낙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미 호흡이 거칠고 힘들었고, 숨가빠 했다.
 신부는 아낙의 말을 듣기 위해 입가까지 귀를 갖다대야 했다.
 … 작년 가을… 비쩩 - 남편이… 군대에서 돌아왔어요… 유젝과 아이를 낳았는데… 서로 사랑했어요… 저기… 헛간 뒤에서… 유젝과… 도끼로…. 아아아!… ― 아낙이 흐느꼈다.
 ― 죄를 뉘우칩니까? ― 신부가 물었다.
 ― 물론이에요… 죄라는 걸 알아요… 남편을 죽이는 건… 분명히… 하지만 뉘우치지 않아요… 항상 날 때렸어요… 잔혹하게 괴롭혔어요… 좋은 말 한 마디 없었고…
 ― 뉘우치지 않는다면, 여자여, 당신의 죄가 무엇이오? 평온하게 가시오.
 아낙은 눈을 크게 뜨고 신부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에 흐느끼기 시작했다.
 ― 어떻게 그럴 수가?… 이렇게요?… 사도식도 받지 못하고?… 영원히 저주받은 곳으로?… 오 예수님!… 불쌍히 여기소서!… 그이가 날 때렸어요… 내 죄가 아니에요… 오 예수님!…
 ― 당신에게 말하겠소, 여자여, 뉘우침이 없는데 당신의 죄가 무엇이란 말이오? 평온하게 가시오.
 그러나 아낙은 양손으로 신부를 붙잡고 공포에 질려 그를 들여다보았다.
 ― … 하느님의 법정으로 가는데… 어떻게요? … 이렇게… 사면도 받지 못하고?… 하지만 난 신자예요… 사해 줘요!… 하지만 난 죽어간다고요…
 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창백하고 잘생긴 농부가 눈을 번득이며 들어왔다.
 문 밖에서 전부 엿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 아낙의 잘못이 아니오, 내 잘못이오. ― 신부에게 다가갔다. ― 죽어가는 사람을 사면해주지 않겠다고? 보시오 ― 숨이 끊어져 가는데…
 ― 내 다시 말하겠소, 뉘우침이 없는데 도대체 당신들의 죄가 무엇이란 말이오? 천주님과 함께 가시오.
 그러자 농부는 신부에게 다가가 양손으로 어깨를 움켜잡았으나, 그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바닥에 뒹굴었다.
 신부는 나갔다.
 ― 상놈의 자식… 사면을 안 해 주다니… 상놈의 자식… ― 아낙이 죽어가며 말했다.

8.
 다음날 아침 장로가 촛불을 켜기 위해 예배당으로 갔다가, 무시무시한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와 양팔을 휘두르며 마을로 달려갔다.
 그에게서는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단지 겁에 질려 고함을 지르며 성당 쪽으로 팔을 휘두를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서 장로를 따라 갔다.
 예배당 안, 십자가 위, 벽감이 오목하게 들어간 곳에, 그리스도 대신 신부가 완전히 벌거벗고 핏기 없이 뒤틀린 채 한 손에 못이 박혀 매달려 있었다.
 입술에는 굳어진 피가 고드름이 되어 매달렸고, 그 피가 마룻바닥 전체에도 튀어 있었다.
 땅바닥에는 십자가 옆에 망치, 못과 렌치가 놓여 있었다.
 나무로 된 그리스도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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