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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죽은 팔

2008.11.28 23:2811.28

  집주인은 왼손만으로도 능숙하게 열쇠를 끼워 돌렸다. 문을 열고 그는 먼저 들어가서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남편과 아내는 집주인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부부가 들어오자 주인은 문을 닫고 말없이 하나밖에 없는 팔을 들어 집안을 둘러보라는 듯한 몸짓을 했다.
  평수에 비해 넓어 보이고 볕도 잘 드는 밝은 집이었다. 다세대 주택의 4층으로, 들어서면 우선 거실 겸 식당으로 쓸 수 있는 꽤 넓은 공간이 있고 왼쪽에는 조그만 부엌이 있다. 부엌이라고 해 봐야 공간이 따로 분리된 게 아니라 그저 싱크대와 조리대와 찬장들이 왼쪽 벽을 차지하고 빽빽이 늘어서 있는 것이다. 그 옆, 현관 바로 맞은편에는 다용도실이나 창고로 쓰이는 조그만 방이 하나, 방이라기보다는 좀 큰 붙박이 옷장 같다. 그 오른편에는 화장실이 있고, 화장실 오른쪽, 현관에서 대각선으로 마주 보이는 방다운 방이 안방이다. 부부는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방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주인은 내내 말없이 문간에 서 있었다.
  마침내 안방을 둘러보고 나온 남편이 부엌을 살펴보는 아내에게 말했다.
  “어때, 당신 보기엔? 여기가 제일 나은 것 같지 않아? 평수보다 넓어 보이고, 햇볕도 잘 들고.”
  “그런 것 같네요….”
  아내는 여전히 싱크대 아랫부분을 열심히 살펴보며 조그만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작고 호리호리한 젊은 여자로, 스물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였으며 이미 아기 엄마였지만, 가늘고 연약한 외모에는 아직도 어딘지 소녀 같은 구석이 남아 있었다. 체격이 크고 항상 과장되게 쾌활한 목소리로 요란스런 몸짓을 섞어 말하는 30대 중, 후반의 남편과는 여러 면에서 기묘한 부조화를 이루었지만, 대조적이라는 의미에서는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남편은 아내의 불분명한 대답에 특유의 우렁찬 목소리로 나무랐다.
  “그런 거면 그런 거지 그런 것 같네요는 또 뭐야. 저기, 주인아저씨, 여기 바람은 잘 통합니까? 여름에 시원해요?”
  집주인은 여전히 문간에 선 채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건물에 융자 안 끼어 있다고 하셨죠? 담보 잡힌 적도 없고? 하긴 그런 건 부동산에서 다 확인해 줬지.”
  집주인은 다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됐지 뭘 그래. 당신은 또 뭐가 불만이야?”
  아내는 싱크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집주인을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물은…, 잘 빠져요?”
  집주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일러는…, 기름보일러라고 하셨던가요?”
  집주인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남편이 기운차게 끼어들었다.
  “그런 건 부동산에서 다 알아봤잖아. 여기로 해. 여기만한 데가 없어. 자, 주인장, 계약하러 갑시다.”
  집주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현관문 밖으로 사라졌다.
  따라 나가려는 남편을 아내가 붙잡았다.
  “여보…, 난 저 주인 아저씨가 영 맘에 안 들어요. 사람이 이상하게 어두워 보이는 게….”
  남편은 여전히 쾌활했다.
  “뭘, 과묵하고 침착한 게 믿을 만한 사람 같던데.”
  “그렇지만 너무 말이 없고…. 저 아저씨 팔 봤어요?”
  집주인은 중키의 마르고 거무스름한 남자로, 40대 정도로 보였으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었다. 거의 말이 없었고, 질문을 해도 제대로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는, 어딘가 음산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오른팔 전체가 없어서 오른쪽 소매가 어깨에서부터 축 늘어져 있었다.
  남편은 걱정스러운 표정의 아내에게 어린애를 타이르듯이 말했다.
  “당신은 뭐 그런 걸 따지고 그래. 팔 하나 없으면 나쁜 사람이야? 그런 거 가지고 사람 판단하면 못 쓰는 거야.”
  “하지만….”
  “우리 형편에 이 정도 돈으로 이 정도 집 구했으면 횡재한 거야. 당신도 다녀 봤잖아. 요즘 시세가 얼만지 알아?”
  “그건 그렇지만….”
  남편은 아내의 어깨를 안고 토닥토닥 두들겼다.
  “걱정 마. 내가 열심히 일할게. 돈 많이 벌어서 금방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면 되잖아. 그 때까지만 여기서 살면 되지 뭐.”
  남편은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고 전세 계약을 하러 나갔다.
  
  이사 온 다음날의 아침이었다. 짐이 그다지 많지 않아 지난밤에 거의 정리는 했지만 아직 풀지 못한 상자가 몇 개 구석에 놓여 있었다. 아기 침대는 거실에 내다 놓았고, 아기는 그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남편은 거실에 내놓은 식탁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새로 이사 온 집이 흐뭇한 듯 몇 번이나 둘러보며 느긋하게 새 집에서의 첫 아침 식사를 즐겼다. 조그만 아내는 일어났다 앉았다, 조리대와 식탁과 냉장고와 찬장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남편의 식사 수발에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거실의 식탁 위쪽에는 이사 오기 전까지는 없었던 ‘팔’이 벽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말랐지만 제법 근육질에 피부가 거무스름하고 단단해 보이는, 남자의 오른팔이다.
  남편은 국그릇을 들어 소리 내어 들이키고는 식탁 위에 탕, 내려놓으며 여전히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새 집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야. 감상이 어때? 국 좀 더 줘.”
  아내는 일어나서 국을 퍼 오며 여느 때처럼 불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요….”
  남편은 아내의 소심한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가구 들여놓고 나니까 쪼끄만 집이 더 좁아 보이긴 해. 당신 그래서 불만인 거야? 장아찌 맛있네.”
  “더 드려요?”
  “응, 조금만 더 줘.”
  아내는 남편이 대답도 하기 전에 이미 식탁에서 일어나 있었다. 냉장고에서 장아찌 통을 꺼내 보시기에 덜어 말없이 그것을 남편 앞에 내려놓고 그녀는 다시 식탁 앞에 앉았다.
  남편은 적극적인 만족감을 나타내지 않는 아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들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월세 1년 만에 전세로 옮겨온 게 어디야. 이제 두고 봐. 나만 믿어. 정말 열심히 일해서 집도 더 큰 데로 옮기고 우리 애기도 방을 따로 멋지게 꾸며 주고….”
  남편이 말하는 도중에 식탁 위에 매달린 ‘팔’이 주먹을 쥐고 벽을 치기 시작했다. 치는 소리는 점차로 커져서 이윽고 남편의 말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남편은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쿵, 쿵, 하는 큰 소리에 아기가 놀라 깨어나서 울기 시작했다.
  아내는 당황하여 일어나서 아기를 안고 달랬다. 그러나 ‘팔’은 계속 벽을 치고 아기는 계속 울었다. 남편은 계속 장황하게 미래의 계획을 늘어놓았지만 말소리는 팔이 벽을 치는 쿵쿵 소리에 묻혀 들렸다 안 들렸다 하며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내는 아기를 안은 채 어쩔 줄 모르고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팔’과 아기와 남편을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한참 후에야 ‘팔’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남편의 인생 설계는 막바지에 들어서 있었다.
  “… 쯤이면 우리도 남부럽지 않은 노후를 보내게 되는 거야. 어때, 그만하면 괜찮은 인생 계획 아냐? 물 좀 줘.”
  아내는 아기를 안은 채 팔을 뻗어 찬장에서 가까스로 컵을 꺼내며 대답했다.
  “예,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기계적으로 물을 따라 남편 앞에 컵을 놓았다.
  아기는 이제 훌쩍거리다가 거의 울음을 멈추었다.
  남편은 호기롭게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런 거면 그런 거지 그런 것 같은 건 또 뭐야. 당신 항상 그렇게 불분명해서 탈이야. 사람이 자기 주관이 뚜렷해야지. 아, 잘 먹었다. 나 출근할게.”
  “예, 잘 다녀오세요….”
  “저녁에 봐.”
  남편은 현관에 따라 나온 아내의 품에 안긴 아기에게 가볍게 뽀뽀했다. 아기는 조금 칭얼거렸다.
  아내가 망설이면서 말을 꺼냈다.
  “여보, 저기….”
  “응?”
  아기가 다시 칭얼거렸다. 아내는 잠시 동안 식탁 위의 ‘팔’과 아기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마침내 말했다.
  “… 아무 것도 아니에요. 다녀오세요.”
  남편은 나갔다. 문이 닫혔다.
  아내는 칭얼거리는 아기를 달래며 방안을 왔다 갔다 했다. 아기는 조용한 집안에서 엄마 품에 안겨 꼬박꼬박 졸다가 금방 다시 잠들었다. 아기를 요람에 뉘어놓고 아내는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행주로 식탁을 훔치다가 아내는 ‘팔’을 쳐다보았다. 한참 요모조모 관찰하다가 건드려 보려는 듯 손을 들었다. 그러다 얼른 손을 내리고 대신 젓가락으로 살짝 건드려 보았다.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 번 더 건드려 볼까 하다가 아내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아내가 돌아서자 ‘팔’이 살짝 움직였다.
  설거지하는 도중 초인종이 울렸다. 아내는 손을 털고 앞치마에 닦으며 나가서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에 밝은 색 니트 카디건과 어울리지 않는 몸뻬 바지를 입은 중년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아주머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새로 이사 오신 댁 맞죠?”
  “예, 그런데요….”
  아주머니는 여전히 붙임성 있는 눈웃음을 지으며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슬리퍼를 벗고 집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아내는 얼떨결에 한 발짝 물러섰다. 아주머니는 집안을 둘러보며 중년 여인 특유의 입담을 쏟아냈다.
  “아유, 새댁이신가 봐. 집이 참 깔끔하네, 아늑하고…. 신혼 분위기가 팍팍 풍기네. 깨소금 쏟아지시겠수. 얼마나 됐어요?”
  갑자기 돌아보는 바람에 아내는 어리둥절하여 뒤로 물러서다가 냉장고에 부딪쳤다.
  “예?”
  “결혼 말이유. 결혼한 지 얼마나 됐냐구. 1년? 반년?”
  “2년…, 됐는데요….”
  “아유, 한참 좋을 때네. 어머나, 애기 봐.”
  아내가 말릴 사이도 없이 아주머니는 요람 속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안아 올렸다.  
  “까꿍! 아유 예뻐라. 몇 달이나 됐수?”
  “갓 돌 지났어요….”
  “어머나, 그럼 그 뭐냐, 허, 허? 허니문 베이비네. 좋겠수. 제일 예쁠 때지.”
  그리고 아주머니는 아이를 내려놓으며, 아내 쪽으로 다가서서 눈을 찡긋거리며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혹시 속도위반한 건 아니유?”
  아내는 당황하여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주머니는 아내의 어깨를 툭툭 치며 요란한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어머, 내가 무슨 주책 맞은 소리를…. 호호호호….”
  “그런데…, 저…, 무슨 일로…?”
  아내는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불분명하게 물었다.
  “어머, 참, 내 정신 좀 봐. 난 이 반 반장이구, 이 아랫집 사는 성민 엄만데, 누가 이사를 왔다길래 인사하러 왔지. 왜, 시루떡 같은 거 돌리고 그럴 때 생판 모르는 집에 초인종 누르기 좀 쑥스럽구 그렇잖우. 아는 이웃이 있어서 같이 돌리고 소개도 받고 인사도 하구 그럼 좋지. 안 그래요? 호호호호….”
  아랫집 아주머니는 매우 친한 사이처럼 아내의 팔을 꾹꾹 찔렀다. 아내는 당황하여 더듬거렸다.
  “아…, 예….”
  “그럼 같이 갑시다. 떡은 새댁이 들고, 과일은 무거우니까 내가 들어줄게.”
  아내는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떡…, 이요?”
  “그래, 떡. 이사 떡.”
  “저…, 그런 거 없는데….”
  아주머니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어제, 엊그저께 막 이사 와서…, 짐 정리도 아직…. 그래서…, 아무 것도….”
  아내는 말을 더듬었다.
  “아니 그래 아무 것도 없단 말이야?”
  아주머니는 더욱 언성을 높여서 마치 엄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꾸짖듯이 화를 냈다. 아내는 잔뜩 주눅이 들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아직 아무 준비도….”
  “아니 젊은 사람이 그렇게 정신이 없어서 어디다 쓰려고 그래? 그런 건 이사 오기 전에 미리미리 맞춰 놨어야지. 이웃들 무시하는 거야 뭐야?”
  “죄, 죄송해요….”
  아주머니는 움츠러든 아내에게 바짝 다가서며 잡아먹을 듯이 말했다.
  “다 새댁 위해서 하는 일인데 그렇게 성의가 없어?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야. 다 같이 사는 세상인데 그렇게 자기 생각만 해서 되겠어?”
  “저…, 정말 죄송해요…. 죄송해서 어쩌죠….”
  아내가 어쩔 줄 모르고 사과를 하자 아주머니는 조금 누그러졌다.
  “그래, 집들이는 언제야?”
  “그, 그것도…,아직….”
  아내는 여전히 주눅이 든 채 눈치만 보았다. 아주머니는 한심하다는 듯이 아내를 쳐다보았다.
  “집들이 준비도 아직 안 했어?”
  아내는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간신히 끄덕였다. 아주머니는 그런 아내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새댁이 아직 살림 살 줄을 몰라서 그러나본데,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새 집에 이사를 왔으면, 이웃들 불러 모아 고사부터 지내고, 떡이랑 음식도 나눠 먹고, 겸사겸사 집들이도 하고, 얼마나 좋아? 다 그런 요령이 있어야 이웃들하고도 빨리 친해지고, 응? 이웃들하고 잘 지내면 어려운 일 있을 때 도움도 받고, 다 새댁한테 좋은 일이지. 이웃사촌이란 말 몰라? 이웃사촌.”
  “예….”
  “자, 그럼 가야지.”
  아주머니는 갑자기 아내의 손을 잡아끌었다.
  “예? 어딜…, 요?”
  “어디긴 어디야, 장보러 가야지.”
  “장을…, 봐요?”
  “시루떡도 안 맞췄다, 과일도 없다, 집들이 준비도 안 했다, 아무 것도 없잖아? 그럼 장부터 봐야지, 안 그래?”
  “그렇지만…, 저….”
  “잔말 말고 따라와요. 내가 다 이런 일에 그 뭐냐, 배, 배, 배태랑이야. 장바구니하고 지갑 들고 어여 와.”
  손목을 잡힌 아내는 다른 한 손으로 앞치마를 벗었다. 당황하여 모습으로 요람 속에서 잠들어 있는 아기와 아주머니를 번갈아 쳐다보았지만 아주머니는 손목 잡은 손을 늦추지 않았다. 아내는 할 수 없이 지갑을 집어 들고 따라나섰다.
  아내가 문을 나서자 ‘팔’이 조금 움직였다.
  
  그 날 저녁 예정에 없던 집들이 잔치가 벌어졌다. 손님은 통장이라는 초로의 남자와 세 명의 이웃 아주머니들이었다. 이웃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시끄럽게 떠들며 먹고 마셨다. 거실 한쪽에는 고삿상이 차려져 만 원짜리 지폐를 입에 문 돼지머리가 웃고 있었다. 남편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아내는 혼자서 요리하고 식사 수발을 드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갈비를 뜯던 통장이 큰 소리로 물었다.
  “맥주 없나?”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핀잔을 주었다.
  “아니 통장님은 뭘 벌건 대낮부터 술을 찾고 그러세요?”
  집들이를 주최한 예의 아랫집 아주머니가 통장 편을 들었다.
  “그래도 집들이 상에 반주가 있어야지. 새댁, 맥주 사온 거 어디다 놨지?”
  “맥…, 맥주요?”
  아내는 전유어를 잔뜩 담은 접시를 상에 놓다 말고 잠시 멍청히 서서 되물었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짜증을 냈다.
  “아니 젊은 사람이 그렇게 정신이 없어서 어쩌려고 그래? 금방 사다 쌓아놓은 거 있잖아?”
  “거, 없으면 그만 둬요.”
  통장이 머쓱해져서 끼어들었다. 그러나 아랫집 아주머니는 주최 측의 명예를 걸고 굽히지 않았다.
  “없긴 왜 없어요, 내가 아까 분명히 빡쓰로 사다 놨는데.”
  식탁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중재에 나섰다.
  “주인장 오기 전에 술부터 마실 거예요? 그러면 실례지.”
  “어머머 정말, 그러고 보니 주인장도 아직 안 왔는데 우리끼리 개시를 해 버렸네. 이 일을 어째, 호호호호….”
  “그래도 아직 본격적인 고사는 안 지냈으니까 괜찮겠지 뭐.”
  “그래요. 주인장 오면 절부터 하고 맥주 땁시다.”
  통장은 여전히 맥주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아내에게 물었다.
  “주인장이 빨리 오셔야 되는데. 새댁, 신랑은 늦게 오나?”
  “조금 있으면…. 곧 올 거예요….”
  아내의 대답은 이야기소리와 손님들의 이런저런 주문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새댁, 거, 부침개하고 갈비 한 그릇씩 더 가져오지?”
  “물김치도 좀 더 가져오고. 새댁이 요리솜씨가 좋네.”
  “다 그 뭐냐, 코, 코오치가 좋아서 그런 거지. 호호호호….”
  주최 측의 아랫집 아주머니가 자랑스럽게 말을 받았다. 식탁에 둘러앉은 이웃들은 한꺼번에 호들갑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초인종이 울렸다. 아내가 얼른 뛰어가 문을 열었다. 남편은 들어오려다 말고 놀라서 문간에 선 채 잔치가 벌어진 집안을 바라보았다. 통장이 일어나서 거드름피우는 목소리로 장엄하게 말했다.
  “어, 거, 이 댁 세대주 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어, 나 이 통 통장인데, 우리 동네에 새 이웃이 이사를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인사도 할 겸 집들이도 도울 겸 겸사겸사 왔소이다. 반갑습니다.”
  “아, 예….”
  통장은 남편의 손을 억지로 잡고 흔들었다. 남편은 얼떨결에 악수를 당하며 당황하여 꾸벅 인사를 했다. 통장은 여전히 거드름을 피우며 계속했다.
  “내 여기 이웃 분들 소개해 드리지. 여기는 뒷집 사시는 민희 엄마, 여기는 앞집 사는 경석이 엄마, 그리고 여기는 바로 아랫집 사시는 이 반 반장님 성민이 엄마. 자 인사들 해요.”
  남편은 얼떨결에 아주머니들과 돌아가며 인사를 했다. 이웃들은 대단히 반가운 척, 호들갑스럽게 자기소개를 한다.
  통장이 이어서 선언했다.
  “자 이제 주인장도 오시고 했으니, 고사 진행합시다.”
  “고…, 고사요?”
  남편이 되물었다.
  “아무렴, 새 집에 이사를 왔으면 고사부터 지내야지. 자 여기 돼지머리 있으니, 절하시고-!”
  남편은 얼떨결에 통장이 시키는 대로 고사상 앞에 엎드렸다.
  절을 하고 남편이 일어나려 할 때 ‘팔’이 벽을 쾅 쳤다. 아내가 움찔 놀라서 식탁 쪽을 홱 돌아보았다. 아기는 안방 침대 위에서 꼼지락거렸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무도 ‘팔’ 쪽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일어서자 모두들 왁자지껄 웃으며 박수를 쳤다.
  “자, 입에 만원 물리시고-!”
  통장의 선언에 남편은 당황하며 지갑을 찾아 바지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통장이 앞질러 자기 지갑을 꺼내며 호기롭게 말했다.
  “만 원 없수? 그럼 내가 빌려주지. 자 여기, 기분이다, 2만원!”
  보고 있던 이웃들이 시끄럽게 웃으며 또 요란스럽게 박수를 쳤다.
  “자 그럼 나도 절해야지!”
  통장은 지갑을 집어넣고 자기도 넙죽 절을 했다. 그가 일어나려 할 때 ‘팔’이 다시 벽을 쾅 쳤다. 아내는 놀라서 벽 쪽으로 홱 돌아서서 쳐다보았다. 안방 침대 위에서 아기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얼른 가서 아기를 안아 들고 어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기를 어르면서도 ‘팔’을 계속 쳐다보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팔’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변함없이 요란스럽게 떠들며 웃으며 박수를 쳤다. 남편이 지갑에서 3만원을 꺼내 높이 들어 보인 후 돼지 입에 물리자 환호성이 더 커졌다.
  “자 이제 인사도 하고 절도 했으니 건배합시다!”
  통장이 우렁차게 선언했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얼른 아내에게 다가가 꾹꾹 찌르며 다급하게 소곤거렸다.
  “새댁, 맥주, 맥주!”
  “아, 예, 예….”
  아내는 당황하며 아기를 내려놓고 얼른 부엌으로 가서 맥주를 따라 손님들에게 한 컵씩 돌렸다. 통장이 술잔을 높이 들었다.
  “자, 하는 일마다 잘 되시고, 사업 번창 소원 성취하시고, 여기 젊은 새댁은 옥동자도 쑥쑥 낳으시고, 새 이웃을 위하여!”
  “위하여!”
  모두들 잔을 높이 들고 쨍, 하고 큰 소리가 나도록 부딪쳤다.
  잔이 부딪치는 순간 ‘팔’이 벽을 치기 시작했다. 안방에 있던 아기가 놀라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술잔을 비우고 손님들은 술기운에 힘입어 다시 떠들어댄다.
  “통장님도 응큼하셔, 꼭 옥동자 낳는 얘기는 빼놓질 않으시더라!”
  “왜, 그것도 중요하지. 새댁이 젊으니까 애기도 잘 낳을 거야.”
  “그러고 보면 신랑이 재주도 좋아, 저렇게 어린 새댁을 다 꼬셨으니.”
  “새댁, 신랑이 밤일 잘 하나봐? 좋겠수.”
  “좋기는 신랑이 더 좋지, 저렇게 젊은 새댁이랑…. 호호호호!”
  “거 주인장, 비결이 뭐요? 나도 좀 압시다.”
  이웃들은 요란스럽게 웃어대며 계속 떠들었지만 ‘팔’이 벽을 치는 소리가 점점 커져 말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아기는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아내는 재빨리 안방으로 가서 아기를 안아 들고 어른다. 그러나 ‘팔’은 계속 벽을 치고 아기는 계속 운다.
  “새댁, 애기 기저귀 갈 때 됐나 봐?”
  아랫집 아주머니가 역시 먼저 눈치를 채고 한 마디 했다. 아내는 몹시 당황하여 아기를 안은 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팔’과 아기와 이웃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웃들은 계속 떠들고 웃으며 잔치 분위기를 유지하려 했지만 ‘팔’은 계속 벽을 치고 아기도 점점 더 큰 소리로 울었다.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애가 참 보채네….”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낯을 가려서 그렇지. 이리 줘 봐요, 내가 달랠게.”
  아랫집 아주머니는 별것 아니라는 듯 성큼 일어나서 아내에게서 아기를 억지로 빼앗아들고 어르기 시작했다. ‘팔’은 계속 벽을 친다. 아기는 낯선 사람의 품에 안겨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자지러질 듯이 울어댔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조금 얼러 보다 골치 아프다는 듯 얼른 아기를 다시 아내에게 넘겼다.
  아내는 당황하여 거의 울상이 되어, 남편에게 구원을 청했다.
  “여보….”
  남편은 아내의 팔을 잡고 안방구석으로 끌고 갔다.
  “애 젖은 먹였어?”
  “먹였어요….”
  아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다.
  남편은 참았던 짜증을 폭발시켰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야?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고사다 집들이다 들떠서 애는 내팽개쳐 두고 여태까지 저 치들이랑 뭐 하고 다닌 거야?”
  “아니에요, 여보, 난….”
  아내는 울먹이며 변명을 하려 했지만 ‘팔’이 벽을 치는 소리와 품에 안긴 아기가 미친 듯이 우는 소리에 묻혀 자기가 하는 말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아기를 들여다보며 어떻게든 달래 보려 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뭐라고 좀 더 나무랐지만 역시 아기 우는 소리와 ‘팔’이 벽 치는 소리에 눌려 들리지 않았다.
  집들이는 이미 파장 분위기였다. 이웃들은 웃고 떠들기를 멈추고 아기 우는 모습과 남편이 화내는 것을 보며 안방의 눈치만 살폈다. ‘팔’이 계속 벽을 치는 가운데 마침내 통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애기가 아픈 것 같으니 우린 이만 가보지요.”
  이웃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동조했다.
  “그래요, 잘 먹었어요.”
  “잘 먹고 잘 놀다 갑니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나가면서 마지막으로 신칙을 했다.
  “새댁, 남은 음식하고 고사떡은 냉동실에 넣어 뒀다가 내일 꼭 돌려요, 잊지 말고?”
  아내는 아기를 안은 채 여전히 어쩔 줄 몰라 하며 거실로 나왔다.
  “저, 예….”
  “자, 그럼 우린 이만 갑니다.”
  이웃들은 몇 번씩 인사하며 몰려 나갔다. 남편이 배웅하러 따라 나갔다.
  문이 닫히고 집안에 아내와 아기만 남자 ‘팔’이 벽을 치는 것을 그쳤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아기도 조금씩 울음을 그쳤다.
  아내만 혼자 망연히 서서 아기와 ‘팔’과 잔뜩 어지럽혀진 집안을 보고 있었다.
  
  밤.
  집안은 깜깜하다.
  안방에서 소리가 난다. 옷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이불자락 스치는 소리.
  남편의 목소리.
  “이리 와, 여보.”
  “그만 두세요….”
  아내의 목소리는 기운이 없다. 그러나 남편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지 말고 이리 와.”
  “저 피곤해요, 그냥 잘래요….”
  “아까 내가 좀 뭐라 그런 거 가지고 화났어?”
  아내는 침묵.
  “뭐 그런 걸 가지고 토라지고 그래? 이리 와.”
  “여보, 저 정말 피곤해서 그래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남편의 숨소리도 따라서 거칠어졌다.  
  어둠 속에서 ‘팔’이 벽을 치기 시작했다.
  아기가 칭얼거린다.
  아내가 뒤척였다.
  “여보, 애기….”
  “가만있어.”
  남편이 헉헉거렸다.
  ‘팔’은 벽을 점점 더 세게 친다. 아기가 마침내 울기 시작했다.
  ‘팔’이 벽을 치는 소리와 아기 울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갑자기 불이 켜졌다. 아내는 이부자리에서 뛰어나와 아기를 안고 달래기 시작했다.
  남편은 파자마가 흐트러지고 머리가 헝클어진 모습으로 불만스럽게 아기와 아기를 안고 있는 아내를 노려보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잠시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빨다 재떨이에 비벼 껐다.
  남편이 잠자리에 눕자 ‘팔’이 벽을 치는 소리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팔’이 움직임을 멈추자 아기도 잠시 칭얼거리다가 이내 조용해진다.
  아내는 아기를 요람에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불을 껐다.
  
  아침.
  남편은 와이셔츠 단추를 채우며 식탁에 앉는다. 숟가락을 집어 들고 밥을 한 술 뜨자 ‘팔’이 벽을 치기 시작한다. 이어서 아기가 칭얼거린다.
  남편은 아내에게 뭐라고 말한다. 들리지 않는다.
  아내는 겁먹은 표정으로 서서 남편과 아이와 ‘팔’을 번갈아 쳐다본다.
  남편이 꽥 고함을 지른다.
  “여보, 물 좀 달라고!”
  아내는 화들짝 놀란다.
  “예? 예….”
  아내는 물 컵을 꺼낸다. 아기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고, ‘팔’은 더 세게 벽을 친다. 아기는 점점 더 큰 소리로 더 고통스럽게 운다. 남편은 짜증스럽게 밥을 몇 술 뜨다가 숟가락을 팽개치고 넥타이와 웃옷, 가방을 집어 들고 나가 버린다. 문이 닫히자 ‘팔’이 멈춘다. 아내는 어쩔 줄 모르며 아이를 안고 따라 나간다.
  
  저녁.
  ‘팔’이 벽을 세게 쾅쾅 치는 가운데 남편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밥을 먹고 있다. 아기는 미친 듯이 운다. 아내는 아기를 달래면서 남편 식사 시중을 드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남편은 짜증스럽게 몇 숟가락 뜨다가 숟가락을 팽개치고 텔레비전 앞으로 가 앉아서 리모콘으로 텔레비전을 켠다. ‘팔’은 여전히 벽을 치고 아기는 여전히 운다.
  남편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소리 지른다.
  “거 애 좀 어떻게 할 수 없어?”
  아내는 우는 아기를 꼭 안고 무력하게 남편을 쳐다본다.
  “도대체 왜 그래? 병원은 가 봤어? 어디 아픈 거 아냐?”
  “가 봤어요….”
  아내는 아이를 어르며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한다.
  “뭐래?”
  “아무 이상 없대요….”
  “어떻게 아무 이상이 없어? 계속 저렇게 울어대는데! 밥을 먹을 수가 있나 잠을 잘 수가 있나!”
  고함을 지르며 남편은 흥분하여 주먹으로 방바닥을 쾅 때린다.
  ‘팔’이 멈춘다.
  아내가 더듬거리며 말을 꺼낸다.
  “하지만 여보….”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야? 애 우는 거 봐! 애 엄마가 제일 잘 알 거 아냐!”
  남편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아내는 겁먹은 채, 부부는 서로 쳐다본다. 침묵이 흐른다.
  아기는 조금씩 울음을 멈춘다. 아내는 아기를 어르다 가만히 아기 침대에 누인다.
  “내일 병원에 다시 가 봐.”
  남편이 명령했다.
  “여보…, 하지만….”
  “저렇게 우는데 아무 이상이 없을 리가 없어. 다른 병원 가 봐.”
  아내는 아이와 ‘팔’을 번갈아 쳐다보며 무력하게 서 있다. 남편은 신경질적으로 텔레비전의 채널을 여기저기 돌린다.
  
  주인집은 바로 같은 다세대 주택의 1층이었다. 아내는 아기를 안고 1층으로 내려가 초인종을 울렸다.
  아무 대답이 없다.
  다시 한 번 울렸다. 그래도 아무 대답이 없다.
  아내는 잠시 기다리다 문을 두들겨 보았다.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다. 아내는 한 발짝 물러서서 갈까 말까 망설인다. 막 돌아서려는데 문이 열리더니 하얗게 센 쪽찐 머리의, 쪼글쪼글 늙은 할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누구요?”
  “저, 윗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인데요….”
  “뭐라고?”
  할머니는 큰 소리로 되물었다. 바짝 마른 할머니인데 목소리는 마당에 쩌렁쩌렁 울릴 만큼 컸다.
  아내는 좀 더 큰 소리로 되풀이했다.
  “윗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인데요….”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안 들려!”
  할머니는 더 큰 소리로 고함쳤다.
  아내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윗집에! 새로! 이사! 왔다고요!”
  할머니는 얼굴을 찌푸리며 쨍쨍 울리는 목소리로 고함을 빽 질렀다.
  “젊은 년이 어디서 어른한테 언성을 높여? 버르장머리 없는 것 같으니!”
  아내는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려는 할머니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할머니, 저기, 저 주인 아저씨 만나 뵈러 왔어요….”
  “뭐라고?”
  “주인아저씨요, 주인아저씨 안 계세요?”
  “우리 할아범은 십 년 전에 죽었어!”
  “할아버지가 아니고요, 이 집 주인아저씨요.”
  “집주인?”
  “예!”
  “우리 아들?”
  “예, 예!”
  “지금 없어!”
  “예?”
  “출장 갔어!”
  아내는 기운이 푹 꺾였다.
  “그럼, 저기, 언제 오시는데요?”
  “한 달!”
  “예에?”
  “한 달 있다가 온다고 갔어! 볼 일 있거든 한 달 있다 와!”
  아내는 완전히 실망하여 힘이 쭉 빠져서 중얼거렸다.
  “한 달이나요?”
  “왜, 급한 일이야?”
  “예.”
  할머니는 잠시 아내를 쏘아보았다. 아내도 가느다란 희망을 걸고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한 달 뒤에 와!”
  할머니는 불시에 소리를 빽 지르고는 문을 쾅 닫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내는 어쩔 줄 모르고 문 앞에 서 있다가 아기를 안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간신히 안방으로 들어와서 침대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몸을 웅크리고 얼굴을 손에 파묻었다. 어깨가 소리 없이 들썩였다.
  
  저녁 식탁.
  여느 때처럼 남편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고 아내는 분주히 상을 차린다.
  “여보, 저녁 드세요….”
  남편이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자마자 ‘팔’이 벽을 치기 시작한다.  이에 아기도 울기 시작한다.
  남편은 밥을 뜨려던 자세 그대로 멈추고 가만히 눈살만 찌푸리고 있다. 아내는 겁먹은 채 긴장하여 남편을 지켜본다.
  남편은 숟가락을 식탁에 세차게 메다꽂았다.
  “이젠 정말 도저히 못 참겠어!”
  “여보….”
  조그만 아내는 파랗게 질렸다.
  “당신 도대체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저렇게 울어대는 거야? 정말 병원 가 보긴 가 본 거야?”
  “가 봤어요, 그렇지만….”
  “이상이 없다? 이상이 없긴 무슨 얼어 죽을 이상이 없어! 이 집 이사 오고 나서부터 계속 저 모양이잖아! 벌써 얼마나 됐는지나 알아!”
  아내는 얼른 아기에게로 가서 안아들고 달래기 시작했다.
  “아가야, 울지 마, 울지 마….”
  남편은 계속 고함을 질렀다.
  “한 달이야, 한 달! 한 달 동안 밥 좀 먹으려고 해도 울고, 잠 좀 자려고 해도 울고, 그런데도 이상이 없어? 도대체 어느 돌팔이가 그래?”
  아내는 계속 아이를 안고 열심히 달랬다.
  “곧 그칠 거야, 착하지? 울지 마….”
  “그만 해!”
  남편은 성큼성큼 아내에게 걸어가 어깨를 꽉 잡고 자기 쪽으로 홱 돌려세웠다.
  아내는 그 서슬에 비틀거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깜짝 놀라서 겁먹은 눈을 둥그렇게 뜬 채 말없이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의 목소리가 위협적으로 낮아졌다.
  “오호라, 당신 일부러 이러는 거지? 쪼끄만 집에 전세로 왔다고 나한테 불만 있는 거지? 그래서 지금 애 울리는 걸로 시위라도 하겠다는 거야?”
  “아니에요, 그런 건….”
  남편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아니긴 뭐가 아냐! 그럼 당신은 시집올 때 얼마나 해 왔어? 엉? 말해 봐, 이불 보따리하고 숟가락 몽댕이 말고 당신 가져온 게 뭐가 있어? 엉? 뭘 잘 했다고 나한테 시위야?”
  “여보, 그런 게 아니라….”
  “시끄러워!”
  남편은 식탁을 쾅 내리쳤다. 아내를 움찔했다.
  “이제 보니 이거 정말 나쁜 년이구만? 애도 잡아먹고 나도 잡아먹을 년이었어! 그게 당신 속셈이지, 이 집안 말아먹는 게? 내 말 맞아, 틀려?”
  남편은 마구 소리 지르며 식탁 위에서 아무 물건이나 집어서 내던지려고 했다. 그 순간 누군가 문을 세게 두들겼다.
  동시에 ‘팔’이 멈췄다.
  아내는 얼른 현관으로 갔다. 등 뒤에서 남편이 소리 질렀다.
  “열지 마! 어디 남편이 말하는데 쥐새끼처럼 쪼르르….”
  아내는 문을 열었다. 걸려 있던 자물쇠를 돌리자마자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통장을 선두로 이웃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통장은 들어오자마자 위엄 있고 심각하게 잔뜩 눈살을 찌푸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집안을 둘러본다.
  남편은 집어 들었던 것을 얼른 다시 식탁에 내려놓으며 목소리를 가다듬어, 그러나 당황하여 약간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 저, 통장님, 저희 집에는 무슨 일로….”
  “이 집에 가정불화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왔소이다.”
  통장은 여전히 거드름을 피우며 매우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가정불화요?”
  남편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듣자하니 생후 12개월 된 유아한테 아동 학대를 자행하신다고 하던데요?”
  통장은 의미심장하게 아내 쪽을 바라보았다.
  “아기 우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데도 아기 어머니가 무관심하고 제대로 돌보지를 않는다던데….”
  옆에서 이웃들이 거들었다.
  “맞아요, 애가 어찌나 숨넘어가게 울어대는지….”
  “벌써 한 달이나 됐는데 계속 울잖아요.”
  “우리 집들이 왔을 때부터 저렇게 울어대지 않았나?”
  “맞아, 맞아, 그 때도 그렇게 자지러지게 울었어.”
  “이봐요 새댁, 아무리 첫 애고 경험이 없다지만 도대체 애를 어떻게 했길래 그렇게 울어대는 거예요?”
  “맞아, 맞아.”
  “큰일 낼 사람이네.”
  “애가 어디 아픈 거 아니우?”
  “병원은 가 봤어?”
  이웃들은 제멋대로 마구 떠들며 아내를 비난한다. 아내는 아기를 꼭 껴안고 조금씩 안방 쪽으로 물러섰다.
  통장이 점잖게 앞으로 나섰다.
  “자자, 진정들 하세요.”
  이웃들은 간신히 조용해졌다. 통장은 아내에게 날카롭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사실이 틀림없습니까?”
  아내는 당황해하며 아기를 꼭 껴안은 채 더듬거렸다.
  “그건….”
  그러나 통장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에게 향했다.
  “세대주 의견은 어떠십니까? 아기 어머니가 아기를 학대하던가요?”
  “뭐라고요? 아니 지금….”
  “게다가 가끔 부부간에도 불화가 있다는 신고도 들어왔던데 맞습니까? 세대주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뭐가 어째요? 아니, 부부라는 게 살다 보면 싸울 수도 있는 거지, 내 마누라하고 싸우건 말건, 내 자식이 울건 말건 남의 집안일에 왜 끼어드는 겁니까?”
  “끼어드는 게 아니라, 가정 폭력 방지 차원에서 통장인 내가….”
  “폭력이라니? 아니 이젠 사람을 폭력배로 몰아? 당신, 당신 이리 와서 말해 봐, 내가 언제 당신 때린 적 있어? 있어 없어?”
  통장은 잡아먹을 듯이 아내에게 달려들려는 남편을 붙잡으며 말했다.
  “아니 진정하세요, 부인께 그렇게 위압적인 태도로 나오시는 것 자체가 가정 폭력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남편은 어깨를 붙잡은 통장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 질렀다.
  “뭐가 어쩌고 어째? 이 늙은이가 남의 집에 와서 못 하는 소리가 없어?”
  통장도 지지 않았다.
  “뭐? 늙은이? 새파란 게 누구 앞에서…. 넌 애비 에미도 없냐?”
  “너? 너?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이 늙은이가?”
  둘은 멱살을 잡고 드잡이를 시작했다. 따라온 이웃들은 말리려다 도리어 싸움에 휘말렸다. 남편과 이웃들은 뒤엉켜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잡히며 고함을 질러가며 싸운다. 식탁이 쓰러졌다. 아기가 숨이 넘어갈 듯이 울기 시작했다.
  ‘팔’이 벽을 치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 해! 전부 나가!”
  갑자기 아내가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남편과 이웃들은 놀라서 잠시 싸움을 멈추고 아내를 쳐다보았다. ‘팔’도 움직임을 멈췄다.
  아내는 계속 발악하듯 소리 지르며 남편과 이웃들을 모두 쫓아냈다.
  “나가! 나가란 말이야! 전부 나가!”
  사람들을 전부 문 밖으로 몰아내고 아내는 싱크대로 달려가 식칼을 집어 들었다. 벽으로 달려가 식탁 의자 위에 올라서서 벽에 매달린 ‘팔’을 마구 찔렀다. 피가 튀었다. 아내는 멈추지 않고 계속 찔렀다.
  피가 눈으로 튀었다. 아내는 잠시 멈추고 눈을 비볐다. 다시 찌르려다 문득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얼굴과 손, 흥건히 피에 젖은 벽과 식탁, 그리고 손에 든 식칼과 난도질을 당한 ‘팔’을 보았다. 겁먹은 듯 칼을 떨어뜨리고 의자에서 내려왔다. 더듬더듬 안방으로 가서 아기를 꼭 껴안고 주저앉아 아기 옷 속에 얼굴을 묻었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들겼다. 아내는 움직이지 않았다. 문이 조금 열렸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문을 조금 열고 얼굴만 빠끔히 들이밀고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새댁, 저기….”
  아주머니는 말하면서 들어오다가 바닥에 떨어진 식칼 손잡이를 밟았다.
  “아야야. 이게 뭐야? 웬 식칼이 바닥에 있어? 위험하게….”
  그리고 칼을 집어 개수대에 아무렇게나 놓았다.
  “저기 새댁, 좀 나와 봐야겠는데….”
  아내는 고개를 들어 멍하니 쳐다보았다.
  “저기, 신랑이 지금 큰 쌈 나게 생겼거든…. 파출소에서도 오고…. 좀 나와서 말려 줘야겠어….”
  아주머니는 아내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운다. 아내는 기계적으로 일어나 아기를 안은 채 아주머니를 따라 나갔다.
  
  다음날 아침. 아내는 천천히 움직이며 기계적으로 상을 차린다. 눈가에 멍이 들고 이마에 반창고를 붙인 남편이 식탁에 앉아 있다. 남편이 숟가락을 들자 ‘팔’이 벽을 치기 시작했다. ‘팔’에는 아무런 상처도 자국도 없이 말짱하다.
  벽 치는 소리에 아기가 칭얼대다 울기 시작한다. 남편은 손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숙였다. 얼마간 그런 자세로 있다가 고개를 들고 아내에게 뭔가 말하려 한다. 그러나 곧 그만두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두 숟갈 뜨다가 남편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물김치 좀 줘.”
  아내는 말없이 냉장고에서 물김치를 꺼내 보시기에 덜어서 남편 앞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우는 아기를 안고 달래기 시작했다.
  초인종이 울렸다.
  ‘팔’이 멈췄다.
  아내가 문을 열었다. 들어온 것은 집주인이었다.
  아기가 조금씩 칭얼거리다 울음을 멈췄다.
  남편이 식탁에서 일어나며 조금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아니, 어쩐 일이십니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집주인이 깊이 울리는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물었다.
  남편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문제라뇨, 그런 건 전혀….”
  아내가 절박하게 끼어들었다.
  “팔이, 저 팔이, 자꾸 벽을….”
  “무슨 소리야, 당신은 가만있어.”
  남편은 아내의 말을 가로막고 억지로 웃으며 집주인에게 말했다.
  “문제라뇨,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아직 조반 전이시면, 같이 식사라도?”
  집주인은 아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집안으로 성큼 들어와 ‘팔’ 쪽으로 갔다. ‘팔’의 팔꿈치를 잡고 벽에서 뚝 떼어내서 자기 오른쪽 어깨에 붙였다. 새로 붙인 ‘팔’을 몇 번 앞뒤로 움직여 본 후 집주인은 남편과 아내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문 밖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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