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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애니멀 201

2009.10.31 01:2710.31

 1


 기이이잉, 기이이잉, 기이이잉, 기이이잉, …….
 귀를 찢는 듯한 경보음이 연구소 전체에 울리고 있었다. 덕분에 연구소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귀를 틀어막은 채 욕을 퍼부어야만 했다.
 “젠장, 도대체 저 경보음은 왜 이렇게 큰 거야! 뇌가 다 터져버릴 지경이잖아! 농작물이 도망이라도 친 거야 뭐야! 그게 아니라면 제발 누가 저 경보음 좀 어떻게 해보라고! 젠장, 이건 시끄러워도 너무 시끄럽잖아!”
 다들 경보음 때문에 욕을 퍼붓고 있는 동안에도 연구소 총책임자인 오나도 실장은 자신의 방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있었다. 경보음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마치 오나도 실장의 귀에는 경보음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 오나도 실장 방으로 누군가가 급하게 뛰어들었다.
 “엇, 식사 중이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오나도 실장 방에 뛰어든 사내는 검정색 양복에 검정색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었다.
 “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지요? 밖이 좀 소란스러운 것 같네요.”
 오나도 실장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사내에게 물었다.
 사내는 오나도 실장의 물음에 순간 정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실험 중이던 농작물 하나가 탈출했습니다. 품명 애니멀 201이라고 합니다. 담당 연구원이 애니멀 201을 수조에서 꺼내 상태를 점검하던 중, 애니멀 201이 갑자기 의식을 회복하더니 연구원을 공격한 뒤 탈출했다고 합니다. 공격을 받았던 담당 연구원 말로는 분명히 애니멀 201을 수조에서 꺼내기 전에 늘 하던 대로 디프리반을 다량 투입했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자신도 어떻게 애니멀 201이 의식을 회복했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일단 담당 연구원은 감금 조치 시켰습니다.”
 “음,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담당 연구원도 놀랐겠네요. 어쨌든 알았어요. 가서 김술 대위 좀 불러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대위님께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사내는 90도로 허리를 굽혀 오나도 실장에게 인사한 뒤 방을 나왔다. 사내는 그제야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휴우, 볼 때마다 섬뜩한 사람이란 말이야. 차가워. 너무 차가워. 사람이 아니라 그냥 얼음 같아. 얼음 같아서 곁에 있으면 오히려 식은땀이 흐른다니까. 가능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야. 연구원 새끼 때문에 괜히 식은땀만 줄줄 흘렸네.


 오나도 실장. 남자. 하지만 목소리만 듣는다면 여자로 착각. 나이 미정. 30대 중반으로 추정. 출신 성분 미정. 출신 대학 미정. 전공 분야 미정. 오나도라는 이름도 가짜라는 소문이 나돎.
 온통 미스터리에 휩싸인 인물 오나도 실장.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한 연구소의 총책임자다. 연구소 이름은 미래생명과학연구소.
 미래생명과학연구소에서는 태아의 세포 조작을 통한 질병 없는 아이 탄생,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질병 치료, 복제인간 실험, 냉동인간 실험 등을 연구하고 있다. 세상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미래생명과학연구소가 하는 일은 따로 있다.
 인간병기 양성.
 미래생명과학연구소는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는 일종의 전투용 무기 공장이다. 인간과 동물 간의 이종교배를 통해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연구소 설립 목적이다. 역사가 벌써 20년이나 되었다.
 미래생명과학연구소는 이미 20년 전부터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여러 명의 연구소 총책임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3년 전에 새로 부임한 총책임자가 오나도였다.
 미래생명과학연구소는 오나도 실장이 총책임자로 부임한 뒤부터 비약적인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던 연구가 급속도로 진행이 되더니, 오나도 실장 부임 1년 만에 미래생명과학연구소의 성과물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물의 능력을 갖게 된 인간의 탄생이었다. 이종 간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일종의 키메라 생산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연구소 탈출 소동을 벌인 실험체 역시 미래생명과학연구소가 생산에 성공한 키메라, 즉 동물의 능력을 갖게 된 인간이었다. 미래생명과학연구소에서는 그 실험체를 애니멀 201로 부르고 있었다. 물론 애니멀 201 이전에 연구소 사람들은 모두 실험체들을 농작물이라고 불렀다.
 연구소 사람들은 자신들이 일하고 있는 곳을 연구소라고 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는 연구소 대신 농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실험하고 있는 인간들은 모두 농작물이라고 불렀다.
 오나도 실장이 처음 부임하자마자 지시한 사항이 그것이었다.
 “이곳은 미래생명과학연구소가 아니에요. 농장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실험하고 있는 대상은 농작물이고요. 앞으로 우리는 그것들을 농작물이라고 부를 거예요. 우리는 새로운 품종의 농작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제 앞에서는 다른 명칭을 사용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농장, 농작물, 품종, 품명이라는 말들을 사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부탁드릴게요.”
 오나도 실장의 지시가 있은 뒤로는 확실히 연구원들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실험을 하면서 평소에 느꼈던 인간적인 감정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실험 대상을 인간 대신 진짜로 농작물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연구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술 대위가 방문을 노크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검정색 양복에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는 농장 경비대 대장이었다.
 “찾으셨습니까?”
 “어서오세요, 김술 대위님. 거기 소파에 잠깐 앉으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김술 대위는 오나도 실장이 가리킨 소파에 앉았다. 그의 움직임은 간결했다. 불필요한 동작이 없었다. 군대에서 잔뼈가 굵은 군인의 모습이었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경보음 때문에 식사하는 데 약간 불편했어요.”
 “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지금 경비대원들이 농장 안을 샅샅이 수색하고 있습니다. 곧 농작물을 포획할 수 있을 겁니다.”
 “음, 글쎄요. 제 생각은 좀 달라요. 그 농작물 품명이 애니멀 201이라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아마 포획이 쉽지는 않을 거예요. 애니멀 201은 이곳 농장 안에서 재배하는 품종 중 가장 품질이 우수하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농장 탈출에 성공할 수도 있어요.”
 “…….”
 “그렇게 되면 저도 나름대로 조치를 취할 테니까요, 대위님께서도 경비대원들 중 우수한 사람들을 뽑아주세요. 그래서 농작물이 있는 곳을 찾아내 데리고 와주세요. 아니면 농작물이 제 발로 다시 이곳으로 올 수 있게 하셔도 좋고요. 중요한 건 뭔지 아시겠죠. 세상 사람들이 농작물의 정체를 알아서는 안 돼요. 그리고 농작물이 다쳐서도 안 되고요. 원래 상태 그래도 이곳으로 데리고 오셔야 해요.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만일 농작물이 이곳을 탈출하게 되면, 그 즉시 우수 경비대원들을 뽑아서 농작물을 수거해 오겠습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아니요, 없어요. 참, 너무 많은 인원은 필요 없어요. 그럼 오히려 사람들 시선만 끌게 되잖아요. 알아서 몇 명만 뽑아주세요.”
 “알겠습니다. 대여섯 명 생각해 놓고 있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김술 대위는 오나도 실장에게 거수경례를 한 뒤 방을 나갔다. 그 순간 오나도 실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농작물을 꼭 잡아오셔야 해요.”
 오나도 실장은 그렇게 혼자 중얼거린 뒤 흘러내린 안경을 바로 하기 위해 혀를 길게 내밀어 안경 브리지를 밀어올렸다. 오나도 실장의 혀는 마치 도마뱀 혀처럼 가늘고 길었다.
 
 오나도 실장 방을 나오자마자 김술 대위의 송수신 겸용 이어폰 너머로 경비대원들의 외침이 들렸다.
 “으, 으악! 연구소 나동 서쪽 출입문 부근! 애니멀 201과 대치 중! 대원 세 명 사상! 즉시 지원 요청 바람! 지, 지원 요청, 으악!”
 김술 대위는 서둘러 연구소 나동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가슴에 두른 권총 홀스터에서 베레타 시리즈로 보이는 권총을 빼들었다. 그 사이 이어폰을 통해 경비대원들의 지원 요청이 몇 번 더 이어졌다.
 “여기는 연구소 나동 동쪽 출입문! 대원 두 명 사상! 즉시 지원 요청 바람! 지금 즉시 지원 요청…….”
 “연구소 나동 북쪽 출입문! 대원 두 명 사상! 지원 요청 바람! 현재 대원 두 명이 애니멀 201의 공격을 받고 있음! 즉시 지원 요청 바람!”
 그리고 김술 대위가 연구소 나동에 도착했을 때 또 다른 지원 요청이 들려왔다.
 “연구소 북쪽 초소! 애니멀 201이 대원 네 명 공격 후 숲으로 도주! 지금 대원 두 명과 함께 애니멀 201을 쫓고 있음! 하지만 움직임이 민첩해 추격이 어려움! 애니멀 201이 북쪽 초소를 지나 숲으로 도주 중!”
 끄응, 역시 오나도 실장 말대로 돼버린 건가. 꽤나 품종이 우수한 농작물인가 보네, 애니멀 201. 그래, 어디 한번 마음껏 도망쳐 봐라. 도망칠 수 있는 데까지 도망쳐 봐. 그래봐야 어디 시내 한복판에서 벌벌 떨고 있겠지. 평생 실험실 수조 속에서 지내던 네놈이 바깥세상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사람들 틈에 섞여서 벌벌 떨기만 할 뿐이지. 넌 사람이 아니거든. 농작물이잖아. 불쌍하군. 오히려 실험실 수조 속이 그리워질 거야. 그러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라. 내가 곧 가서 구해줄 테니까. 다시 안전한 수조 속에 넣어줄 테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애니멀 201.
 김술 대위는 곧장 농장 경비대 본부로 향했다.
 그 사이 오나도 실장은 국방부 산하 특수정보지원단에 연락을 취했다.
 “네, 농작물 하나가 도망쳤어요. 애니멀 201이라는 품종인데요, 우리 농장에서 가장 품질이 우수한 종이에요. 제가 아끼는 종이기도 하고요. 그게 도망을 쳐서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래서 단장님이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일단은 전국에 있는 특수정보지원단 소속 에이전트들한테 애니멀 201 실물 좀 보여주세요. 그리고 애니멀 201을 발견하게 되면 저한테 연락 좀 주세요. 다른 조치 같은 건 하실 필요 없어요. 저한테 연락만 주시면 돼요. 지금 제가 단장님한테 애니멀 201 실물 전송해 드릴게요. 외모, 체격 다 제가 보내드리는 실물 그대로예요. 부탁 좀 드려요, 단장님. 참, 그리고 인터넷 쪽도 검사해 주시고요. 애니멀 201이야 인터넷 사용은 못 할 테지만, 그래도 혹시 다른 사람이 애니멀 201의 정보를 인터넷에 올릴 수도 있을 테니까요.”



 2


 숲을 빠져나온 애니멀 201은 한동안 도로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며 신기해했다.
 뭐지. 굉장히 빠르다. 안에 사람이 있네. 나도 저걸 타면 빠르게 달릴 수 있을까. 그럼 농장에서 더 멀리 도망칠 수 있을까. 농장에는 가기 싫어. 매일 수조에만 갇혀 있는 건 싫어. 연구원들이 나를 쳐다보는 게 싫어. 이제 농장으로는 안 가. 연구원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어. 농장 밖에서 지내던 얘기를 들었어. 아주 즐겁게 얘기하고 있었어. 농장 밖으로 나가면 나도 수조 안에 갇혀 있을 필요 없어. 나도 연구원들처럼 즐겁게 지낼 수 있어. 극장이라는 데도 가고, 놀이공원이라는 데도 가고. 나도 연구원들처럼 즐겁게 지낼 수 있어. 이제 농장으로는 안 가. 수조 속에 갇혀 있는 건 싫어. 농작물은 싫어. 그런데 저거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애니멀 201은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었다. 게다가 발가벗은 상태였다.
 마침 애니멀 201이 차도로 뛰어들었을 때 마주 오던 차는 속도가 느린 이동형 주택이었다. 바퀴 열두 개에 이층으로 된 이동형 주택 차량이었다.
 1층 운전석에서 운전을 하던 집주인이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이동형 주택 차량은 가까스로 애니멀 201 앞에서 멈췄다.
 “젠장, 저건 뭐하는 놈이야!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쩌자는 거야! 가만, 저 놈 진짜로 뭐하는 놈이야! 왜 옷은 하나도 안 입고 저렇게 날뛰는 거야! 어디 무슨 종교 집단에라도 속한 녀석인가. 요즘에는 하도 별난 종교가 많아서 통 뭐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옷 안 입고 다니는 종교라도 생긴 건가. 차에 뛰어들면 구원이라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건가.”
 그때 2층 자기 방에서 내려온 고선이 도로에 서 있는 애니멀 201을 보자마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으악, 아빠, 제 뭐야? 왜 옷을 하나도 안 입고 있어? 아빠 혹시 차로 쟤 치기라도 한 거야?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 멀쩡하잖아.”
 “안 쳤어. 그냥 갑자기 차에 뛰어들었어. 왜 옷을 하나도 안 입고 있는지는 나도 몰라. 그리고 선이 너, 볼 거 다 봤으면서 새삼스럽게 손으로 얼굴은 왜 가리고 있냐?”
 “아직 다 안 봤어. 결정적인 부분은 봤어. 하지만 얼굴은 제대로 못 봤어.”
 “그럼 다 본 거야. 손 내려도 돼.”
 “그런가. 음, 그런데 아빠, 쟤 어쩔 생각이야? 그냥 지나칠 거야, 아니면 가서 얘기라도 나눠볼 거야?”
 “글쎄, 어떻게 하지? 저렇게 차에 뛰어들 정도면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아빠답지 않게 뭘 그렇게 고민해. 그냥 가서 얘기라도 해봐. 혹시 누구한테 옷이며 소지품 같은 거 몽땅 털린 걸 수도 있잖아.”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 생각을 못 했네. 그럼 일단 가서 사정 얘기라도 들어볼까. 너는 여기에 가만히 있어.”
 “알았어.”
 차 주인이자 집 주인인 고정도가 차에서 내렸다. 그때까지도 애니멀 201은 이동형 주택 차량 앞에 서 있었다.
 “어이, 이봐 자네, 그렇게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면 어쩌자는 거야! 목숨이 열 개라도 되는 거야 뭐야!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아! 그리고 옷은 어떻게 한 거야! 혹시 누가 뺐어가기라도 한 거야! 그런 거라면 저기 차 안에 내가 안 입는 옷 있으니까 아무거나 하나 주고!”
 “옷 줘. 그리고 나도 차에 태워줘. 농장에서 멀리 가야 하니까 나도 차에 태워줘. 걸어가는 것보다 차 타고 가는 게 더 빨라.”
 “당연히 걸어가는 것보다 차 타고 가는 게 더 빠르지. 그건 그렇고, 넌 어른 공경도 모르냐! 그렇게 함부로 반말 하면 안 돼!”
 “그런 거 몰라. 아무튼 나도 차 태워줘. 농장에서 멀리 도망쳐야 돼. 그리고 극장에 가자. 놀이공원에도 가고.”
 “도대체 농장이 어디에 있다는 거야! 이 근처에는 농장 같은 거 없어! 그리고 너 같은 건방진 놈은 내 차에 태워줄 수 없어. 보아하니 내 딸 또래인 것 같은데, 그럼 내가 네놈 아버지뻘이란 말이지. 너처럼 어린놈한테 반말 듣는 거 태어나서 처음이다. 일단 옷은 줄 테니까, 그거 입고 나서 다른 차 얻어 타든가 말든가 알아서 해.”
 그러면서 고정도는 다시 차로 돌아왔다.
 “아빠, 쟤가 뭐래! 왜 옷도 안 입고 있대! 우리 차에는 왜 뛰어들었대!”
 “몰라. 그냥 옷 달래. 그리고 농장에서 멀리 도망쳐야 한다고 우리 차에 태워달래. 웃긴 놈이야. 나한테 반말까지 해. 정말 웃긴 놈이야. 저런 놈 처음 봤어.”
 “아빠한테 반말을 해! 정말 웃긴 녀석이네. 보아하니 내 또래 같은데, 건방지게. 그나저나 농장은 뭐야! 이 근처에 무슨 농장 있어?”
 “없어.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건지 모르겠어. 아무튼 옷은 줘야 할 것 같고,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우리가 신경 쓸 일 아니야.”
 “음, 그래도 일단 시내에라도 데려다주는 게 낫지 않을까! 그냥 여기에 두고 가면 아무도 차에 안 태워줄 거 같은데. 정말로 강도한테 몽땅 다 털린 걸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조금 불쌍하기도 하고. 그런데 왜 혼자 있는 거지! 혹시 부모님이 무슨 사고라도 당했나! 아, 정말 궁금증투성이인 아이네.”
 “정말 아무도 차에 안 태워줄까!”
 “그렇겠지. 아빠도 태워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안 태워주겠지.”
 “음, 그러면 또 곤란해지는데. 그런데 저 놈이 말끝마다 반말이란 말이야. 그게 기분 나빠. 그리고 말투도 좀 이상하고. 어딘가 좀 모자란 녀석 같단 말이야.”
 “응, 내가 볼 때도 그런 거 같아. 말투가 좀 이상하더라. 꼭 어린아이 같다고나 할까!”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너 혹시 창문 열고 다 들은 거냐? 분명히 아빠가 차 안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그리고, 애초에 다 들었으면서 묻기는 왜 물어!”
 “아무튼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내가 보기에는 저 얘 좀 학습 능력 부족인 거 같아! 혹시 나이만 17세, 정신연령은 7세, 뭐 그런 거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까 극장에 가자는 둥 놀이공원에 가자는 둥 그랬잖아. 확실히 학습 능력 부족인가! 불쌍하네.”
 “맞다, 그런 말도 했었지! 그럼 확실하네, 학습 능력 부족! 혹시 정신지체나 뭐 그런 쪽일지도 몰라! 도와줘야지! 부모님도 찾아주고!”
 “그래, 그럼 일단 차에 태우고 나서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생각해 보자!”


 애니멀 201은 운전석 옆에 앉아서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멋대로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갑자기 자동차 유리 전체가 시커멓게 변하기도 했다. 야간에 차를 세워놓고 잠을 잘 때 작동시키는 장치였다.
 고정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른 자동차 유리를 다시 투명하게 만들었다.
 “신기하다! 또 해보고 싶어!”
 “안 돼! 지금 차가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유리를 시커멓게 하면 사고 나잖아! 그러니까 안 돼! 괜히 또 그러면 당장 내리라고 한다!”
 고정도의 말에 애니멀 201은 버튼을 누르려다 얼른 멈췄다.
 그런 애니멀 201의 모습을 보면서 고선이 피식 하고 웃었다.
 “넌 또 뭐가 웃겨서 그렇게 혼자 피식 웃는 거야!”
 “얘 너무 어린아이 같아서 귀여워. 행동도 귀엽고, 말투도 귀여워.”
 “쳇, 귀엽기는 뭐가 귀엽다는 건지…….”
 그러면서 고정도는 애니멀 201을 힐끔 쳐다보았다.
 애니멀 201은 창밖 풍경에 넋이 빠져 있었다. 창에 얼굴을 바짝 붙인 채 하늘, 구름, 건물, 자동차를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귀엽기는 하네. 안쓰러울 정도로 귀여워.
 “참, 그런데 넌 이름이 뭐야! 이름 정도는 알고 있겠지!”
 고정도가 창밖 풍경에 정신이 팔려 있는 애니멀 201에게 물었다.
 “이름! 그게 뭔데! 나 그런 거 몰라. 나는 농장에서만 살았어. 수조 속에서만 살았어. 그래서 그런 거 몰라. 이름이 뭔데!”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하냐! 내가 너한테 물었잖아!”
 그러자 운전석 뒤에 있던 고선이 끼어들었다.
 “아빠, 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 자기 이름이 뭐냐고 물은 게 아니고, 이름이라는 게 뭐냐고 물은 거잖아!”
 “알아, 알아! 그냥 귀찮아서 그렇게 대답한 것뿐이야! 그걸 내가 지금 얘한테 어떻게 설명하라는 거냐! 이름이라는 게 뭔지 설명해야 하는 경우는 없어. 살면서 그런 거 설명해야 할 상황은 거의 없단 말이지. 그러니까 그런 건 오히려 설명하기가 아주 귀찮다고. 그래서 그냥 대충 넘어가려고 그렇게 한 거야.”
 “귀찮기는 뭐가 귀찮아. 아주 간단한 거구만.”
 그러면서 고선이 애니멀 201의 어깨를 톡톡 쳤다.
 “내가 설명해 줄게. 이름이라는 건 말이지, 누가 나를 부를 때 쓰는 거야. 예를 들어서 아빠는 나를 부를 때 고선이라고 불러. 고선이 내 이름이거든. 우리 아빠 이름은 고정도고. 그래서 남들은 우리 아빠를 고정도라고 불러.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를 부를 때 뭐라고 불러?”
 “애니멀 201.”
 “애니멀 201! 진짜로 그렇게 불러!”
 “진짜로 그렇게 불러.”
 “그, 그래, 그럼 그게 네 이름인 건가, 애니멀 201이…….”
 “괜찮네, 애니멀 201. 그럼 앞으로는 우리도 너를 그렇게 부르면 되는 거냐! 애니멀 201!”
 둘의 대화를 듣던 고정도는 진짜로 괜찮은 이름이라며 감탄까지 했다.
 “그렇게 불러도 돼.”
 “그래 좋다, 애니멀 201! 그런데 이봐, 애니멀 201! 너 아까 왜 차도로 뛰어든 거야!”
 “차를 타고 싶어서.”
 “그렇구나. 간단해서 좋네. 그럼 왜 옷은 하나도 안 입었던 거야!”
 “원래 나는 옷이 없어.”
 “계속 간단해서 좋구나. 아무래도 내 질문이 좀 형편없는 것 같다.”
 “그런 거 같아.”
 고선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거들지 않아도 돼. 나도 충분히 내 질문이 형편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좋다 그럼, 질문의 수준을 좀 높여보자. 넌 집이 어디냐! 부모님 계시는 곳이 어디야!”
 “나는 농장에서 지냈어. 하지만 이제 두 번 다시 농장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거야. 난 부모님 같은 거 몰라. 그런 거 없어. 연구원들이 나를 수조 속에 가둬놓기만 했어.”
 “아빠, 그래도 얘 말이지, 이름이라는 게 뭔지도 모른다면서 다른 건 다 알아듣네. 집이라는 말 뜻도 알고, 부모님이라는 말 뜻도 알고.”
 “그러네.”
 “연구원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어. 그들은 내가 아무것도 못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틀렸어. 수조 속에서도 간혹 연구원들 얘기가 들릴 때가 있어. 그래서 나도 어느 정도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야.”
 애니멀 201은 여전히 창밖을 쳐다보면서 얘기했다.
 “그렇구나. 그런데 도대체 연구원은 뭐고 수조는 또 뭐야! 너희 집에 연구원들이 자주 찾아왔나 보네. 그럼 너희 부모님들 혹시 무슨 연구기관 책임자나 뭐 그런 거냐! 나랑은 꽤 신분 차이가 나네!”
 “나는 농장에서만 지냈어. 연구원들은 농장에서 나를 실험하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나를 수조 속에 넣어뒀고. 관 모양의 타원형 수조.”
 “대화가 자꾸 겉도는 느낌이다. 솔직히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통 모르겠어.”
 고정도는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다시 고선이 끼어들었다.
 “그럼 너는 부모님이 누군지 모른다는 거야? 집이 어딘지도 모르고?”
 “집 같은 거 없어. 나는 농장에서만 지냈어. 부모님 같은 것도 없어. 연구원들이 나를 하루 종일 관찰했어.”
 “역시 겉도는구나.”
 고선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너라고 뭐 별 수 있을 줄 알았냐!”
 “아빠, 역시 정신지체나 뭐 그런 쪽이겠지!”
 “그렇겠지. 이거 난감하게 됐네. 집이 어딘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누군지도 모른다, 이거 난처하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으니 이걸 어쩌면 좋냐! 일단 시내로 가서 경찰서에라도 보내야 하는 건가…….”
 고정도가 그렇게 말끝을 흐리자, 고선이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빠, 왠지 이 아이를 그냥 경찰에 넘기는 건 조금 무책임한 거 같아. 아빠답지 않아. 경찰에 넘기면, 그 사람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거야. 그냥 늘 하던 대로 유기아동보호소에 떠넘길 거라고. 그럼 유기아동보호소에서도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고. 그냥 부모가 알아서 나타날 때까지 방치하기만 할 거야. 그리고 이 아이 정말로 정신지체 쪽일지 모르잖아. 그러면 보호소에서 이 아이를 다른 데로 보낼 수도 있어. 인지로봇연구소 쪽으로 말이지. 정신지체아도 자신의 생각만으로 과연 인지로봇을 움직일 수 있는가 없는가, 뭐 그런 실험을 위해서 연구소로 보낼지도 몰라. 전에 그런 뉴스 본 적 있단 말이야. 인지로봇연구소에서 집을 잃었거나 부모가 없는 정신지체아를 상대로 그런 실험을 했대. 물론 그 연구소는 여전히 문을 안 닫았고. 그러니까 함부로 경찰에 넘기는 건 조금 무책임한 것 같아. 아빠답지 않아.”
 “글쎄, 그거 너무 선이 네가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냐! 설마 그럴 일이야 있겠어!”
 “그건 모르는 거야!”
 둘 사이에 잠시 대화가 중단됐다.
 “선이야, 너 혹시 얘 마음에 들어 하는 거 아니냐! 그래서 같이 지내고 싶은 거 아니냐! 사람은 솔직해져야 한다. 아빠가 늘 하는 소리가 그거잖아. 서로 솔직해지자. 속이지 말자. 하지만 사람들은 서로를 속이지. 사회에 속해 있으면 어쩔 수 없어. 속여야 살아남잖아.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속여야 대하기도 편하잖아. 솔직하면 오히려 서로 불편해지잖아. 그런 세상이잖아. 아빠는 그게 싫어. 그래서 이렇게 유목 생활을 하는 거고. 사회에 속하는 게 싫어서 말이지. 선이 너도 늘 그런 얘기를 입에 달고 살잖아. 서로 속이는 세상이 너무 싫다고. 그러니까 당연히 이 시점에서도 너는 솔직해야 한다. 어때, 아빠 말이 맞지!”
 “아 참, 생각났다!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
 “그래! 뭔데!”
 “뭐라 그랬지! 아, 애니멀 201! 그러니까 애니멀 201을 우리가 직접 실물 스캔해서 중앙미아센터 사이트에 들어가서 조회해 보면 되잖아. 애니멀 201 부모님이 혹시 중앙미아센터 사이트에 미아 등록을 해놓았을 수도 있잖아. 경찰에서는 이런 일조차 안 한다니까. 그냥 하던 대로 유기아동보호소에 넘긴다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선이 네가 애니멀 201을 좋아하느냐 아니냐 묻고 있는 거지.”
 “아빠, 우리 스캐너 어디에 있지?”
 “2층 아빠 방에 있을 거야.”
 고선은 고정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일반 노트북 크기만 한 구식 스캐너를 가지고 와 애니멀 201의 전신을 스캔했다. 그 다음 중앙미아센터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중앙미아센터에 있는 ‘등록된 미아 정보’ 코너로 들어가, 자신이 만든 애니멀 201 전신 스캔 파일을 ‘미아 등록’에 등록시켰다. 그러고 나서 검색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사이트 내에서 중앙미아센터에 등록된 미아들 중 애니멀 201과 일치하는 자가 있는지 검색을 시작했다.
 3초 정도 시간이 흘렀다.
 ‘일치하는 미아가 없습니다.’
 화면에 그런 메시지가 떴다.
 중앙미아센터에 등록된 미아의 수는 총 1만 5천 명. 그중 애니멀 201과 일치하는 미아는 없었다.
 “없네. 애니멀 201 부모님이 중앙미아센터에 미아 등록을 안 했나 보네.”
 고선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선이 네가 애니멀 201 스캔 파일을 만들어서 사이트에 등록해 놔. 그리고 우리가 애니멀 201을 보호하고 있으니까 연락처 남기라고 해놓으면 되잖아. 우리는 휴대폰이 없으니까 상대방 연락처 남기라고 해. 우리가 연락할 테니까 연락처 남기라고 하면 되잖아. 그럼 혹시 알아! 애니멀 201 부모님이 나중에라도 중앙미아센터에 미아 등록하려다가 우리가 먼저 등록한 걸 보고 연락처 남겨둘지. 어쨌든 우리가 수시로 중앙미아센터 사이트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되잖아. 너무 상심하지 말고.”
 “응, 일단 그렇게라도 해놔야겠네.”
 “하지만 오래 기다리는 건 안 돼. 길어야 며칠 정도야. 그때까지 애니멀 201 부모님이 중앙미아센터에 연락처 안 남기면 우리도 어쩔 수가 없어. 우리가 계속 애니멀 201을 보호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건 선이 네가 이해해야 된다.”
 “알았어. 우리가 계속 애니멀 201과 같이 지낼 수는 없겠지. 그런 건 나도 알아. 하지만 곧 애니멀 201 부모님이 연락처 남길 거야. 무슨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면 말이지. 아무튼 며칠 동안은 우리가 애니멀 201을 보호하고 있기다!”
 “그래, 그렇게 하자. 나도 지금 당장 애니멀 201을 경찰에 넘기는 건 좀 그렇다. 게다가 선이 네가 좋아하는 녀석인데,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떠넘겨버리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어쨌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지.”
 “그럼 이제 슬슬 저녁 준비를 해볼까. 오늘 저녁은 모처럼 3인분으로 준비해야겠네.”
 “그러니까 내 말은 선이 네가 애니멀 201을 좋아하느냐 아니냐 하는 거지!”
 “그런 건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야. 간직하고 있는 거야. 그게 더 행복해.”
 “그러니까 애니멀 201의 어떤 부분이 선이 네 마음을 흔들어놨느냐 하는 거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저 어린아이 같은 녀석을…….”
 “그래서 그래. 때 묻지 않아서. 내가 아빠를 좋아하는 것하고 똑같은 이유야.”
 “나와 애니멀 201을 같은 취급 하는 거냐. 나는 적어도 창문에 얼굴 바짝 들이밀고 창밖 구경하지는 않는다.”
 “어제도 운전하고 가다가 갑자기 차 세워놓고 창밖 구경했잖아. 그것도 애니멀 201처럼 창문에 얼굴 바짝 들이밀고. 얼마나 한심했는지 참.”
 둘 사이에 또다시 잠깐 대화가 중단됐다.


 “애니멀 201, 왜 안 먹어? 배 안 고파?”
 고선은 약간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물었다. 기껏 애니멀 201을 위해서 솜씨를 발휘했건만, 정작 애니멀 201은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연구원들이 음식 먹는 거 본 적은 있어. 하지만 왜 먹는지는 몰라. 나는 이런 거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어. 왜 사람들은 이런 걸 먹어?”
 애니멀 201의 말에 고선 대신 고정도가 끼어들었다.
 “배가 고프니까 먹지.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어. 기운이 없어서 움직이지도 못해. 애니멀 201 너 지금 기운 없지!”
 “기운 없어. 쓰러질 것 같아.”
 “배가 고파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먹어.”
 “전에는 이런 적 없었어. 농장에 있을 때는 한 번도 이런 적 없었어. 기운 없었던 적 없었어.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 기운이 없어.”
 “배가 고파서 그런 거라니까. 그런 상태에서 계속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어서 먹어. 어떻게 먹는지는 알고 있겠지! 씹어서 삼키면 돼! 간단해!”
 “알고 있어. 연구원들이 이런 거 먹는 모습 본 적 있어.”
 그러면서 애니멀 201이 각종 소스로 버무려진 고기 한 조각을 빵에 얻었다. 그러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아빠, 혹시 말이지, 이건 그냥 추측일 뿐인데 말이지…….”
 “나도 알아. 이 아이, 정신지체 쪽이 아닌 거 같아. 어떤 연구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 아이, 연구소에서 도망친 거 같아. 농장이라는 곳이 연구소겠지. 정부 기관에서 비밀리에 운영하는 연구소. 하지만 인지로봇연구소는 아닌 것 같아. 이 아이, 정신지체 쪽은 아니야. 단지 태어날 때부터 학습을 전혀 받지 못한 것 같아. 행동 자체가 어린아이 같아. 이제 막 무언가를 보고 신기해하는 어린아이 같아. 정부 기관에서 비밀리에 운영하는 연구소는 많아. 그중 한 군데에서 지냈던 것 같아. 그리고 도망친 거고. 아마 지금쯤 연구소에서도 이 아이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거야. 자칫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날 수도 있을 테니까. 가만, 그러면 우리가 아까 실수한 거 아닌가! 그 중앙미아센터!”
 고정도의 말에 고선은 손에 쥔 음식을 내팽개친 채 곧장 노트북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바로 중앙미아센터에 접속해 ‘등록된 미아 정보’를 클릭했다. 그런 뒤 이미 등록된 애니멀 201을 찾아서 다시 한 번 클릭했다. 그러자 벌써 애니멀 201 사진 밑으로 누군가 글을 남겨놓았다.
 ‘안 그래도 막 우리 모리를 등록하려고 보니까 이미 어떤 분이 등록해 놓으셨더라고요.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우리 모리를 잘 보살펴주고 계셔서 다행입니다.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실은 우리 모리가 다른 아이들보다 약간 학습 능력이 모자랍니다. 지금 치료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상상 속에 빠져 지내기도 하고요. 이번에도 우리 모리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그만 제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우리 모리가 없어졌네요. 제 부주의 탓입니다. 혹시 우리 모리한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귀하께서 우리 모리를 보살펴주고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참, 혹시 우리 모리가 귀하께 이상한 얘기 같은 건 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가끔 저한테는 그렇게 이상한 얘기들을 합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연락처 남겨놓겠습니다. 이 글 보시는 대로 바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사례는 확실히 해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아빠, 벌써 누가 연락처 남겨놓았는데. 어떻게 하지! 연락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선의 말에 고정도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만일 우리 생각이 맞다면, 글 남긴 사람은 분명히 연구소 측 사람일 거야. 모리라는 이름도 대충 지어낸 것일 테고. 어쩌면 연락처 남긴 사람 이름이 모리일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 사람은 애니멀 201을 다시 연구소로 데려가려고 할 거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어.”
 “중요한 문제라니, 그게 뭔데?”
 “우리 목숨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거지. 이미 우리가 애니멀 201과 접촉한 걸 알아버린 이상, 우리가 자신들의 연구소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이상한 얘기 같은 거 하지 않았냐며 물어보는 거 보면, 그쪽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래서 비밀 유지를 위해 우리를 제거해 버릴 수도 있다는 거지. 정부 기관 연구소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 아주 무서운 곳이니까.”
 그 와중에도 애니멀 201은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아는 게 없잖아. 애니멀 201이 어떤 연구소에 있었는지도 모르고, 애니멀 201이 어떤 연구를 받고 있었는지도 전혀 아는 게 없잖아.”
 “그건 우리들 사정이고. 그걸 연구소 측에서 믿어줄 리 없잖아. 나 같아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일단 이 사람한테는 연락을 하면 안 되잖아. 다시 애니멀 201을 연구소로 보낼 수는 없잖아. 다시 애니멀 201을 실험용으로 만들어버릴 수는 없잖아. 그럼 애니멀 201이 너무 불쌍해. 그냥 우리가 계속 애니멀 201을 보호하고 있으면 안 될까? 어차피 우리는 계속 떠돌아다닐 텐데, 그냥 애니멀 201도 우리와 함께 다니면 되지 않을까?”
 고선의 말에 고정도는 이번에도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빠, 설마 아빠는 애니멀 201을 그 사람한테 넘기려는 거야! 그럼 우리도 위험해진다면서! 그 사람들이 우리를 죽일지도 모른다면서!”
 “그건 그렇지. 우리가 애니멀 201을 연구소 사람한테 넘긴다고 해도, 연구소 사람들은 우리를 살려두지 않겠지. 그렇다고 우리가 계속 애니멀 201을 보호하고 있을 수는 없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거든. 그들의 정보망을 무시할 수 없어. 언젠가는 들키고 말 거라고. 언제까지고 우리가 연구소 사람들을 피해다니면서 애니멀 201을 보호할 수는 없을 거야. 언젠가는 들키고 말아. 그때는 선이 너도 위험해지고.”
 “그럼 어쩌자는 건데! 방법이 없잖아!”
 그때 애니멀 201이 음식을 먹다 말고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맛있다. 우리 극장에 가자. 놀이공원에 가자.”
 “저럴 때 보면 정신지체 쪽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애니멀 201의 말에 고정도가 어이없다는 듯 내뱉었다.
 “아빠, 그러지 말고 우리 그냥 말 나온 김에 애니멀 201 데리고 놀이공원 한번 놀러가는 거 어때? 실은 나도 놀이공원 놀러 가고 싶은데……. 나 어렸을 때 한 번 가보고 여태 안 가봤잖아. 어차피 지금 당장은 애니멀 201을 우리가 보호하고 있어야 하잖아. 물론 계속 보호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만, 다른 방법이 떠오를 때까지는 일단 우리가 보호하고 있어야 하잖아. 아마 찾아보면 애니멀 201 같은 아이 보호해 주는 민간단체가 있을지도 몰라. 그런 단체 찾기 전까지는 우리가 보호해 주고 있어야 하잖아. 그러니까 그 전까지 만이라도 애니멀 201이 하고 싶어 하는 걸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민간단체에 들어간다고 해도, 애니멀 201이 당장 놀이공원에 갈 수는 없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아직 연구소 측에서 애니멀 201의 위치를 파악하기 전에 얼른 놀이공원부터 갔다 오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그러면 애니멀 201도 굉장히 좋아할 거고. 아마 평생 잊지 못하겠지. 그 기억만 갖고도 애니멀 201은 행복해질 수 있을지 모르잖아.”
 애니멀 201은 고선의 놀이공원이라는 말에 뛸 듯이 기뻐했다.
 “놀이공원! 놀이공원! 선이는 애니멀 201을 좋아해. 선이는 착한 사람이야. 애니멀 201도 선이 좋아해. 애니멀 201은 선이하고 놀이공원 가고 싶어. 놀이공원! 놀이공원!”
 애니멀 201의 말에 괜히 고선은 얼굴이 붉어졌다.
 고정도가 그 모습을 놓칠 리 없었다.
 “야, 고선! 너 꼭 누구한테 사랑 고백이라도 받은 표정이다. 너 그렇게 얼굴 빨개지는 모습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아빠랑 같이 떠돌기만 하더니, 그래서 그런가, 그동안 사람이 그리웠구나. 자유롭게 떠돌다 보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네. 하긴, 누군가와 친해질 만하면 곧 헤어져야 했으니까. 음, 어쨌든 네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은 애니멀 201을 다른 곳으로 보내기 전에 좋은 추억이라도 하나 만들어주자는 얘기를 하고 있었잖아! 그리고, 아빠가 내 감정을 이해하기는 뭘 이해한다고 그래! 그렇게 아빠 멋대로 내 감정 추측하지 마! 나 얼굴 하나도 안 빨개졌거든! 아니, 조금 빨개졌을 수도 있겠다. 음식에 약간 매운 게 들어 있어나 봐. 갑자기 입안이 확 맵네.”
 “선이가 해준 음식 아주 맛있어!”
 그러면서 애니멀 201이 마지막 남은 빵마저 다 먹어치웠다.
 “더 먹을래? 내가 더 만들어줄까?”
 고선은 애니멀 201에게 물을 건네주면서 물었다.
 “난 됐다. 더 안 먹어도 돼.”
 “아빠한테 물은 거 아니야! 애니멀 201한테 물은 거지. 더 안 먹을래? 금방 만들어줄 수 있는데.”
 “더 먹을래! 선이가 해주는 음식 아주 맛있어! 더 먹을래!”
 “그렇게 맛있어?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내가 금방 만들어줄게. 그 전에 여기 내가 먹던 거라도 좀 먹고 있어.”
 그러면서 고선은 자기가 먹던 음식을 애니멀 201에게 건네주었다.
 애니멀 201은 고선이 건넨 음식을 받아 덥석 입안에 넣었다.
 “조금씩 먹어야지. 그렇게 한꺼번에 먹으면 탈 나. 음식은 조금씩 꼭꼭 씹어먹어야 돼.”
 “선이가 해준 음식 아주 맛있어! 애니멀 201은 선이 좋아해!”
 그 순간 고정도가 얼른 고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고정도의 노골적인 시선을 느끼면서도 고선은 다시 얼굴이 빨개졌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별 수 없겠네.”
 “아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선이 네가 애니멀 201과 추억을 만들고 싶어 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소리야. 애니멀 201을 민간단체에 보내기 전에 놀이공원이든 극장이든 가야 한다는 소리야. 선이 네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지.”
 고정도의 말에 고선은 활짝 웃음을 지으면서 차량 뒤칸 주방으로 갔다.



 3


 고정도는 시내에 도착해 근처에 놀이공원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이 길로 한 두 시간 가면 꽤 큰 규모의 놀이공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성수기라 사람들이 좀 많겠네요.”
 고정도는 상점 주인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곧장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이 길로 두 시간 정도 가면 놀이공원 나온대. 잘 됐다. 오늘은 놀이공원에서 놀다가 근처에서 야영하자. 그리고 내일 국경을 넘어서 일단 중립국가 쪽으로 가보자. 그곳에 가면 다양한 민간단체들이 있겠지. 거기 가서 애니멀 201 거처도 알아보면 될 거고. 그러니까 선이 너, 오늘은 애니멀 201하고 신나게 놀아야 한다! 아주 후회 없이 놀아야 한다!”
 “알았어. 고마워 아빠.”
 그렇게 해서 도착한 놀이공원은 상점 주인 말대로 규모가 컸다. 국립공원 하나를 통째로 놀이공원으로 만든 곳이었다.
 “자, 차는 이쯤에서 세워두면 되겠고, 그럼 선이 너는 애니멀 201 데리고 놀다가 와라. 아빠는 여기 차 안에서 잠도 좀 자고 이것저것 알아볼 것도 좀 있거든. 중립국가에서 활동하는 민간단체들 정보도 모아야 하고, 혹시 아빠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민간단체에 소속한 사람들이 있나 없나 알아봐야겠다. 놀이공원 이용 요금은 나중에 아빠 계좌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갈 테니까,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타고 싶은 거 있으면 둘이 실컷 타고 와. 선이 네 정보는 아빠하고 연결되어 있으니까, 놀이공원 관리 시스템도 별 다른 간섭은 안 할 거야. 만약 길 잃어버리면 무조건 공원 입구로 오면 된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둘이 가서 놀다와. 일단 아빠는 잠부터 한숨 자야겠다.”
 “뭐야! 그냥 우리 둘이 가서 놀라고! 아빠도 같이 가자!”
 “괜히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실은 아빠가 빠져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으면서.”
 “그런 거 아니야! 진심으로 하는 소리라고!”
 “그래 그래, 진심으로 하는 소리겠지. 그래도 아빠는 별로 생각이 없어. 일단 둘이 놀다가 정 심심하면 아빠 데리러 오던가. 그것보다 선이 너 얼른 가봐야겠다. 애니멀 201 저 녀석 벌써 혼자 저만치 가버렸어.”
 “어, 그러네. 그럼 아빠 여기서 잠깐 자고 있어. 이따가 아빠도 데리러 올게. 아, 제 왜 저렇게 빨리 가는 거지. 그럼 나 갔다 올게!”
 “응, 가서 재밌게 놀다와!”
 그동안 내가 너무 선이를 신경 쓰지 못했어. 내 방식대로만 살아왔어. 그게 선이한테도 좋은 건 줄 알고 말이지. 자유롭게 떠돌면서 많은 사람들 만나고, 어디에도 엮이지 말고 자신이 느끼는 대로 행동하고, 무엇보다 사회에, 혹은 국가에 희생당하는 인간이 되지 말고 누군가를 희생시키지도 말고. 나는 선이를 그렇게 만들고 싶었어. 그래서 줄곧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살면 선이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줄 알고. 그런데 아니었나 봐. 그동안 사람이 그리웠나 봐. 자기 또래의 누군가가 그리웠나 봐. 그러니까 저렇게 어린아이 같은 녀석한테 흠뻑 빠져버리지. 흐흐, 아무튼 잘 됐어. 선이도 저렇게 즐거워하니까 잘 됐어. 그리고 애니멀 201을 위해서도 잘 된 일이고. 둘 다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게 됐잖아. 애니멀 201이 민간단체에 들어간다고 해도 오늘의 추억을 계속 간직할 수 있게 됐잖아.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날 때 오늘의 추억을 가지고 둘이서 또 신나게 떠들어댈 수도 있고. 자, 그럼 잠 자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애니멀 201을 맡겨도 좋을 만한 곳부터 한번 찾아볼까.
 그러면서 고정도는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고정도가 노트북을 켜는 순간 특수정보지원단에서도 다시 농장에 연락을 취했다.


 놀이공원은 크게 두 가지 테마로 나뉘어 있었다. 동쪽은 과거관, 서쪽은 현재관이었다.
 동쪽 과거관은 10년 전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고, 서쪽 현재관은 일반 놀이공원과 다를 바 없이 꾸며 놓았다. 제트코스터도 자기부상 방식으로 움직였고, 사파리에 있는 동물들도 유전자 조작을 통해 검정색 사자나 표범 무늬 곰, 주변 환경에 따라 색이 변하는 호랑이도 있었다. 특히 사파리의 경우, 한 달에 한 번씩 다양한 모양의 동물들이 선을 보였다.
 애니멀 201과 고선은 어느 쪽으로 갈까 망설였다.
 물론 스릴 만점은 서쪽 현재관이었다. 하지만 입구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줄이 너무 길었다. 입장하는 데에만 한 시간은 넘게 걸릴 게 뻔했다.
 “애니멀 201, 어떻게 할래? 현재관이 더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한데, 줄이 너무 기네. 그래도 순서 기다렸다가 들어갈까?”
 “저쪽 현재관이 더 재밌어? 선이도 현재관 가고 싶어?”
 고선의 물음에 애니멀 201이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현재관이 더 재미있지. 놀이기구도 훨씬 스릴감 넘치고. 하지만 줄이 너무 기니까 들어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나야 뭐 과거관도 괜찮아. 어쨌든 놀이공원 자체는 과거관 현재관 상관없이 둘 다 신나는 곳이니까.”
 “그럼 애니멀 201은 선이랑 같이 과거관 갈래. 선이랑 같이 빨리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 타면서 놀고 싶어. 현재관은 사람이 너무 많아. 선이랑 둘이 즐겁게 놀기 힘들 것 같아. 그냥 과거관 갈래.”
 “그래, 그러자. 일단 과거관 먼저 갔다가, 나중에 사람 뜸해지면 현재관으로 넘어가자.”
 둘은 그렇게 합의를 본 다음 과거관으로 향했다.
 고선은 과거관 매표소 앞에 설치된 기계 모니터에 손바닥을 댔다. 곧이어 동행인이 있느냐는 메시지에 ‘1인 추가’를 클릭했다. 결재 방식으로는 ‘법적 보호자 계좌 이체’를 클릭했다. 잠시 뒤 모니터에 고정도의 이름이 나왔다. ‘보호자 고정도 님의 계좌를 이용하시겠습니까?’ 하는 메시지가 떴다. 고선은 ‘승낙’을 클릭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용할 놀이기구의 모든 요금도 동일 방식 선택’을 클릭했다.
 모든 절차가 끝난 뒤 둘은 마침내 과거관으로 입장했다. 그리고 둘이 과거관으로 입장하는 동시에 특수정보지원단에서는 또다시 농장에 연락을 취했다.
 과거관은 역시 사람이 뜸했다. 게다가 아이들보다는 중년을 훌쩍 넘긴 사람들이 더 많았다.
 “와, 저기 탈 거 되게 많다! 선이랑 같이 저거 다 타고 싶어!”
 비록 중년을 훌쩍 넘긴 사람들이나 즐기는 스릴 마이너스 놀이기구들뿐이었지만, 애니멀 201의 눈에는 신기해 보였다.
 막상 과거관에 들어와서 보니까 옛날 놀이기구들투성이라 약간 실망한 고선이었지만, 애니멀 201의 말에 새삼 마음이 들떴다. 애니멀 201과 함께라면 구닥다리 놀이기구라도 신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우리 저거 다 타보자. 음, 그럼 일단 어느 것부터 탈까! 처음부터 고난이도에 도전하는 건 무리일 테고, 뭐, 어차피 과거관이라서 고난이도라고 해도 현재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그래도 어쨌든 과거관에서의 시작은 상큼하게 범퍼카가 좋으려나! 애니멀 201, 우리 저거 범퍼카 타자! 운전은 내가 할 테니까, 애니멀 201은 옆에 앉아 있으면 돼. 어때, 괜찮겠어?”
 “괜찮아. 선이가 하자는 대로 할 거야. 그럼 다 괜찮아.”
 “알았어. 그럼 놀이기구 타는 건 나한테 다 맡겨. 내가 오늘은 특별히 애니멀 201을 위해서 놀이공원 완벽 체험 가이드 역할을 제대로 해줄 테니까.”
 그러면서 고선은 애니멀 201의 손을 잡고 범퍼카 타는 곳으로 갔다. 그때의 애니멀 201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피어있었다.
 애니멀 201의 놀이기구 체험 첫 도전이라 고선은 일부러 스릴 만점에서 한참 모자라는 범퍼카를 택했지만, 범퍼카를 타는 동안 애니멀 201은 무려 20번의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동시에 20번이나 고선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헉, 서쪽 현재관에서 공중부양 범퍼카라도 탔더라면 20번은 정신을 잃었겠네. 이제 보니까 애니멀 201에게 현재관은 무리였잖아. 현재관은 고사하고 과거관의 다른 놀이기구를 타도 괜찮은 걸까. 그냥 완전 아동용 붕붕카나 타면서 놀아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고선은 범퍼카에 내려서도 어지러워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애니멀 201을 부축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애니멀 201, 괜찮은 거야? 다른 거 탈 수 있겠어?”
 고선의 말에 애니멀 201은 부축 받던 몸을 꼿꼿이 세운 채 똑바로 걸음을 옮겼다. 주먹까지 불끈 쥐고 있었다.
 “괜찮아. 다른 것도 탈 수 있어. 선이하고 함께라면 여기에 있는 거 다 타도 괜찮아.”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몸이 휘청 했지만, 곧 자세를 가다듬고는 다시 혼자 씩씩하게 걸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선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고선도 애니멀 201과 함께 놀이기구를 탈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래서 얼른 뛰어가 애니멀 201의 손을 잡았다. 조금 힘을 줘서 꽉 잡았다.
 “좋았어! 그럼 이번에는 난이도를 좀 높인다! 각오해야 돼, 애니멀 201! 흐흐, 바이킹 도전!”
 “바이킹 도전!”
 애니멀 201은 바이킹이 뭔지도 모르면서 고선의 말을 따라했다. 물론 몸이 휘청거리지 않도록 여전히 다리에 힘도 잔뜩 싣고 있었다.
 “꺼이어흑, 으그그아아흑, 우웃, 우웃, 으극으극으극으그윽, 으아아아아아아아아하악, 으갹, 꺼이어흑, ….”
 애니멀 201이 바이킹을 타는 동안 지른 소리였다. 자신의 옷으로 입을 틀어막고, 그것도 모자라서 고선의 팔을 물어뜯으며 바이킹이 움직일 때마다 고함을 질렀다. 고함을 지르는 틈틈이 애니멀 201의 눈가에 흐른 눈물이 바람에 날아가기도 했다.
 덕분에 고선도 애니멀 201의 고함 소리에 맞춰 비명을 질렀다. 애니멀 201이 고선의 팔을 세게 물 때마다 입에서 저절로 비명 소리가 새어나왔다.
 바이킹에서 내려온 둘은 한동안 목이 잠겨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현재관에 가면 360도 회전하는 바이킹도 있다고. 그거 탔으면 아마 내 팔은 애니멀 201에게 다 뜯어먹혔을 거야. 절대 현재관에는 가지 말자. 처음부터 과거관에 온 건 정말 잘한 일이야. 그나저나 팔에 웬 침을 이렇게나 많이 묻혔는지. 앞으로는 가급적 떨어져 앉아야겠어.
 고선은 팔에 묻은 애니멀 201의 침을 닦으며 다짐했다.
 그때까지도 애니멀 201은 벤치에 앉아 꺼이어흑 거리고 있었다. 단지 벤치에 앉아 있을 뿐인데도 애니멀 201은 옆 손잡이를 꽉 쥐고 있었다. 벤치마저 공중으로 치솟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애니멀 201 쟤, 정말 괜찮은 걸까.
 그러자 고선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애니멀 201이 갑자기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괜찮아졌어. 또 타러 가자! 선이랑 같이 또 타러 가자!”
 이제 겨우 두 개 탔는데 저렇게 얼굴이 창백해졌어. 볼 살도 쪽 빠진 것 같고. 정말 계속 타도 괜찮은 걸까.
 “애니멀 201, 우리 조금 쉬었다 탈까? 피곤해 보이는 것 같아서 말이지.”
 “하나도 안 피곤해. 정말 하나도 안 피곤해. 얼른 또 타러 가자. 선이랑 같이 또 타러 가자.”
 그러면서 애니멀 201은 고선의 손을 잡았다.
 그때 멀리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애니멀 201은 비명 소리가 들리는 쪽을 쳐다보았다.
 높은 기둥 위에 사람들이 걸터앉아 있는 것 같더니 갑자기 아래로 뚝 떨어졌다. 기둥 높이만 족히 60미터는 넘고도 남았다.
 애니멀 201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저거 타자.”
 애니멀 201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까지 했다. 동그랗고 초롱초롱 빛났다.
 하지만 애니멀 201보다 눈이 더 동그래진 건 고선이었다. 다만 초롱초롱 빛나지는 않았다.
 자이로드롭! 결국 정신이 이상해진 건가. 역시 바이킹은 무리였나. 이제는 공포를 느끼는 감각을 상실한 건가. 너무 무서워서 웃음이 나오는, 뭐 그런 상태가 되어버린 건가.
 “애니멀 201, 저거 난이도 굉장히 높은 건데. 방금 탔던 거 하고는 비교도 안 돼. 뚝 떨어질 때 현기증까지 막 나고 그래. 저건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자. 우선은 난이도 낮은 것부터 몇 개 더 타보고 결정하자.”
 고선은 일단 애니멀 201을 안정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바이킹 후유증이 컸어.
 그러면서 고선은 적당한 놀이기구를 살펴보았다. 그때 또다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저거 되게 재미있을 것 같아. 사람들이 막 소리 지르고 그래. 선이랑 저거 탈래.”
 이번에는 애니멀 201이 먼저 앞장 서서 자이로드롭 쪽으로 갔다.
 에이, 나도 모르겠다. 그냥 타고 보는 거지 뭐. 설마 애니멀 201 저 녀석 울고불고 난리치는 건 아니겠지.
 결국 고선도 애니멀 201이 하자는 대로 하기로 했다. 어쨌든 놀이공원에 온 이유는 애니멀 201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애니멀 201이 원하는 대로 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선은 역시 애니멀 201을 끝까지 설득했어야만 했다.
 애니멀 201은 자이로드롭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이미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전장치가 양쪽 어깨에 걸쳐지는 순간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드디어 의자가 레일을 따라 원을 그리며 천천히 올라갔다.
 의자가 올라가는 동안 고선의 귀에는 애니멀 201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후읍 스읍, 후읍 스읍, 후읍 스읍, 후읍 스읍…….”
 애니멀 201은 거의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기를 반복하면서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마음이 잘 안정되지 않는지, 심호흡이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의자가 거의 다 올라왔을 즈음에는 심호흡이 너무 빨라 옆에 있는 고선이 다 불안할 정도였다.
 괜히 탔다. 애니멀 201 쟤 아무래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아.
 마침내 자이로드롭이 공중에서 멈췄다. 쉬잉 하고 바람 소리가 들렸다.
 “왜, 왜 이렇게 오랫동안 멈춰 있는 거야? 이거 왜 안 내려가? 혹시 고장 난 거 아니야?”
 애니멀 201은 이를 탁탁 부딪혀가며 고선에게 물었다. 그때의 애니멀 201은 거의 울기 직전의 어린아이 같았다.
 “이제 곧 내려갈 거야. 그것도 아주 빨리.”
 “언제! 언제 내려가는, 으, 으허엉!”
 결국 애니멀 201의 울음보가 터지고야 말았다.
 자이로드롭이 시속 100㎞에 육박하는 빠른 속도로 하강하는 약 3초 동안 애니멀 201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흘린 눈물만큼이나 많은 양의 눈물을 순식간에 허공에다 쏟아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자이로드롭을 빠져 나와 벤치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계속 훌쩍거리며 원망 섞인 시선으로 자이로드롭을 노려보았다.
 그건 자이로드롭 잘못이 아니라고. 애니멀 201 네가 타겠다고 한 거였잖아.
 “그만 진정해. 그만 진정하고 우리 아이스크림 사먹자. 내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그러니까 이제 그만 진정해.”
 옆에 앉은 고선이 계속 애니멀 201을 달래고 있었다.
 “그게 잘 안 돼. 자꾸 눈물하고 콧물이 나와. 나도 멈추고 싶은데 자꾸 나와. 저 기계 좀 이상해. 여기에서 볼 때는 천천히 내려오는데, 내가 탈 때는 굉장히 빨리 내려왔어. 내가 탈 때만 일부러 빨리 내려왔어. 그 생각 하니까 자꾸 눈물하고 콧물이 나와. 저 기계는 나를 아주 많이 싫어하나 봐. 나도 저 기계 싫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지.
 “그래, 내가 생가해도, 다른 때보다 우리가 탈 때 조금 더 빨리 내려온 것 같아. 하지만 애니멀 201이 싫어서 그런 건 아닐 거야. 뭔가 오작동이라도 일으켰던 거겠지. 이제 저거 안 타면 되잖아. 나중에 다른 놀이공원 가서도 저렇게 생긴 건 타지 말자. 그러면 되잖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진정해.”
 “나중에 놀이공원 또 갈 거야? 그럼 선이랑 또 놀이공원에서 놀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너무 자주는 못 가겠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놀이공원에 가서 둘이 신나게 노는 거야. 그때는 오늘보다 훨씬 더 신날 거야. 아무래도 오늘은 애니멀 201 네가 놀이공원에 온 게 처음이라 어리둥절하잖아.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그런 것도 없어질 거야. 그래서 오늘보다 훨씬 더 신나게 놀 수 있을 거야.”
 “그렇구나. 오늘은 내가 놀이공원 온 게 처음이라 조금 어리둥절한 거구나. 다음에 또 올 때는 지금처럼 어리둥절한 기분이 없어지는 거구나. 그러면 오늘보다 훨씬 더 즐거울 거고. 물론 오늘도 선이랑 같이 있어서 즐거워. 하지만 다음에 올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즐거울 거야.”
 “그래, 다음에는 훨씬 더 즐거울 거야.”
 “응, 이제 눈물하고 콧물 안 나와. 저 기계도 안 밉고. 하지만 다음에 놀이공원 가서도 저렇게 생긴 기계는 안 탈 거야.”
 “그래, 타지 말자.”
 고선은 겨우 애니멀 201을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럼, 애니멀 201 여기 잠깐만 앉아 있어. 나 잠깐 저쪽 가서 아이스크림 사올게. 아이스크림 되게 맛있어. 그거 먹으면서 우리 다음에 뭐 탈까 생각해 보자. 아니면 아빠 불러서 같이 놀아도 되고. 아무튼 나 올 때까지 여기에 가만히 있어야 돼. 다른 데 가면 안 돼.”
 “알았어. 여기 가만히 앉아 있을게. 맛있는 거 사가지고 빨리 와.”
 “응, 빨리 갔다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고선은 매점으로 향했다. 자이로드롭이 있는 곳을 돌아 둘이 처음에 탔던 범퍼카 쪽으로 갔다.   


 30분 가까이 흘렀다. 그때까지도 고선은 나타나지 않았다.
 애니멀 201은 30분 가까이 꼼짝도 하지 않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고선이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벤치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 고선을 기다렸다.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고선을 기다리기만 했다. 놀이공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 채 계속 벤치에 앉아 고선을 기다렸다.
 그때 애니멀 201 앞으로 검은색 양복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애니멀 201도 아는 얼굴이었다.
 애니멀 201이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짐승처럼 그르렁거렸다. 그 소리는 마치 사자가 주변을 경계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혹은 늑대가 상대와 싸우기 전에 먼저 기선 제압을 하기 위한 소리 같기도 했다.
 그리고 동시에 애니멀 201의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두 개의 송곳니가 각각 4센티미터 정도 길어졌고, 양손의 손톱 역시 전부 4센티미터 정도 길어졌다. 볼과 손등에 가시 같은 털이 돋아났고, 팔과 다리의 핏줄이 도드라져 마치 살을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 상태로 애니멀 201은 계속 그르렁거렸다.
 애니멀 201의 변한 모습을 보자, 김술 대위가 양팔을 뻗어 대원들에게 더 이상 움직이지 말라고 지시했다. 자칫하다가는 대원들이 순식간에 애니멀 201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자자, 진정해라, 애니멀 201.”
 김술 대위의 말에 애니멀 201은 더욱 거칠게 그르렁거렸다.
 “진정하라니까. 안 그러면 여자아이가 다치는 수가 있어. 그러니까 얌전히 있는 게 좋아.”
 김술 대위가 다시 애니멀 201을 진정시켰다.
 그 말에 애니멀 201이 김술 대위를 향해 몇 걸음 다가섰다.
 그 순간 김술 대위 곁에 있던 대원들이 일제히 가슴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얼른 김술 대위가 대원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이름이 뭐였더라. 그래, 고선이었지. 이봐 애니멀 201, 만약 네가 우리들 몸에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히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고선이라는 아이가 죽어. 내 말 한 마디면 바로 고선이라는 여자아이가 죽는다고. 그러니까 애니멀 201 너는 내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해.”
 김술 대위의 입에서 고선이라는 말이 나오자 애니멀 201이 걸음을 멈췄다. 더 이상 김술 대위 쪽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고선, 선이를 어떻게 했지?”
 “그래 그래, 그렇게 얌전해져야지.”
 “선이를 어떻게 했지?”
 “성격이 꽤 급하네. 여자아이는 지금 우리 대원이 차에 태워서 안전하게 농장으로 데려가고 있는 중이야. 몸에 상처 하나 입히지 않았어. 그러니까 아무 걱정할 필요 없어. 참, 그 대신 여자아이의 아빠 있잖아! 잠깐, 이름이, 그래 고정도. 고정도라는 놈은 어쩔 수가 없었어. 차 안에서 계속 노트북으로 뭔가를 알아내려고 기를 쓰잖아. 뭐, 그 덕분에 우리가 애니멀 201 네가 있는 위치를 알아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고정도라는 놈이 계속 뭔가를 알아내려고 하잖아. 쓸데없이 말이지. 그래서 자칫하다가는 우리 농장 정체가 탄로 날지도 모르겠더라고. 뭐, 고정도 그 놈 혼자서야 제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 농장 정체를 알아내기는 어렵겠지만, 그 놈이 보기보다는 발이 좀 넓더라고. 여기 저기 민간단체들 사이트에 접속해서 자꾸 네 얘기를 하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 죽였지. 아, 이런 얘기 해줘봐야 애니멀 201 너는 못 알아들으려나. 안타깝네. 그래도 한 마디만 더 해줄게. 이왕 도망치려면 조금 더 신중했어야지. 그렇게 함부로 컴퓨터 가지고 장난을 치면 안 돼. 그럼 바로 우리가 위치를 알아내 버리거든. 위치뿐만이 아니라 컴퓨터 소유자가 누구인지도 알아낸다고. 그리고 가족 관계까지도 말이지.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너무 순진해. 왜 정부기관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거야. 왜 함부로 중앙미아센터 같은 곳에 그렇게 정보를 올려놓느냐 말이지. 그 바람에 우리가 너를 찾는 데 아주 쉬워졌잖아. 그리고 여자아이는 여기 과거관 들어올 때 알아서 컴퓨터에 자신의 정보도 입력해 주고. 진짜 너무 쉬워. 우리 능력을 너무 몰라준단 말이야. 어때, 내 말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겠어? 뭐, 못 알아들어도 하는 수 없고. 어차피 애니멀 201 네가 알아둬야 할 건 하나야. 지금 당장 우리하고 같이 농장에 가야 한다는 거지. 만약 여기에서 도망치면 여자아이는 죽어. 고선이라고 했지! 그 아이가 죽어.”
 애니멀 201은 김술 대위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 가지만큼은 확실히 이해했다.
 고정도가 죽었다. 고선이 잡혔다. 자신이 농장으로 가지 않으면 고선이 죽는다.
 “선이를 풀어줘.”
 “당연히 풀어줄 거야. 여자아이한테는 아무 짓도 안 할 거야. 몸에 상처 하나 내지 않을 거야. 약속하지. 하지만 그 전에 너도 약속을 해줘야 돼.”
 “그게 뭔데. 뭔지는 모르지만 약속할게. 그러니까 선이를 풀어줘.”
 “역시 성격이 급해. 그리고 기억력도 나쁘고. 동물은 원래 기억력이 좀 나쁜가, 하하. 내가 아까 얘기했잖아. 네가 우리한테 약속해 줘야 할 건 딱 하나야. 우리랑 같이 농장으로 가는 거. 다시 수조 속으로 들어가는 거. 그거면 돼. 네가 얌전히 수조 속에 들어가는 순간, 여자아이는 무사히 농장에서 나갈 수 있어.”
 “약속해, 내가 농장으로 가면 선이를 풀어준다고.”
 “약속한다니까. 우리도 그런 여자아이는 필요 없어. 우리한테 필요한 건 바로 애니멀 201 너란 말이야. 너만 다시 농장으로 돌아오면 돼. 너는 우리 농장에서 제일 귀한 품종이란 말이야. 그러니 다른 건 필요 없어. 당연히 여자아이는 풀어줄 거고. 필요도 없는 걸 갖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믿어도 돼. 이건 실장님 약속이기도 하니까.”
 김술 대위의 마지막 말에 애니멀 201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송곳니가 줄어들었고, 손톱과 발톱이 줄어들었다. 핏줄도 가늘어졌고, 볼과 손등에 난 털도 사라졌다.
 “농장으로 돌아갈게.”



 4


 애니멀 201은 차에서 내려 농장 안으로 들어갔다.
 “선이 보고 싶어. 무사한지 확인할 거야.”
 농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애니멀 201이 김술 대위에게 말했다.
 애니멀 201의 말에 김술 대위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한쪽 입꼬리만 올라간 기분 나쁜 미소였다.
 “지금 당장 만날 수 있어. 그리고 당연히 여자아이는 무사하고. 실장님 방으로 가봐. 방에 실장님이 계신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여자아이는 지금 실장님 방에 있어. 우리 대원이 그곳으로 데려갔다고 하더군. 어쩌면 여자아이 혼자 있을지도 몰라. 곧 애니멀 201 네가 올 거라고 우리 대원이 얘기해 놨어. 그러니까 여자아이는 지금 실장님 방에서 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리고 만약 방에 실장님이 없더라도 여자아이랑 잠깐 기다리고 있어. 곧 실장님도 방으로 가실 거야. 내가 지금 무전으로 실장님한테 연락하지. 어쨌든 애니멀 201 너는 지금 당장 실장님 방으로 가서 여자아이를 만나 봐.”
 김술 대위의 말에 애니멀 201은 곧장 오나도 실장 방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애니멀 201은 생각했다.
 내가 속을 줄 알고. 네놈들이 무사히 선이를 풀어줄 리 없어. 네놈들은 선이 아빠도 죽였어. 선이도 죽일 거야. 내가 수조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네놈들은 선이를 죽일 거야. 선이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 선이를 데리고 이곳을 나갈 거야. 선이 데리고 다시 이곳을 빠져나갈 거야. 네놈들은 나를 막지 못해. 내가 이곳까지 순순히 따라 온 것도 선이 때문이야. 선이랑 같이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따라 온 거야. 너희들은 나한테 속았어. 나는 그렇게 머리가 나쁘지 않아. 동물이 아니라고. 나는 사람이야. 선이처럼 나도 사람이야. 선이랑 같이 이곳을 빠져나가겠어.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해. 그러면 다 죽일 거야. 다 죽이고 선이랑 이곳을 빠져나갈 거야. 선이만 있으면 되니까.
 애니멀 201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오나도 실장 방으로 향했다.
 방문은 닫혀 있었다.
 애니멀 201은 거칠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나도 실장은 방에 없었다. 고선만 혼자 소파에 앉아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고선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바보, 진짜로 와버렸어. 그렇게 농장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해놓고선 진짜로 와버렸어. 오면 어떡해. 다시 돌아오면 어떡해, 이 바보야! 왜 왔어! 왜 왔냐고!”
 고선은 그렇게 소리 지르면서 눈물을 쏟았다.
 애니멀 201이 얼른 고선 옆으로 가서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 마. 선이는 울지 마. 선이는 울면 안 돼. 누구도 선이를 울리게 하면 안 돼. 그럼 내가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애니멀 201의 말에도 고선은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애니멀 201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더 크게 울었다.
 “죽었어. 아빠가 죽었어.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들이 그랬어. 아빠를 죽였다고. 자신들이 아빠를 죽였다고. 그러면서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어. 내가 이곳에 있으면 애니멀 201 너도 곧 이곳으로 올 거라고 했어. 틀림없이 올 거라고.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했어. 애니멀 201은 절대 이곳으로 오지 않을 거라고 했어. 애니멀 201은 이곳을 끔찍하게 싫어한다고, 그래서 절대 이곳으로 오지 않을 거라고 했어. 나 같은 건 신경 안 쓸 거라고 했어. 내가 이곳에 있더라도 애니멀 201은 절대 안 올 거라고 했어.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거라고 했어. 그러니까 차라리 나도 죽이라고 했어. 나도 죽여달라고 했어.”
 “선이는 안 죽어. 선이는 죽으면 안 돼.”
 “아빠가 죽었어. 아빠가 죽었는데 어떻게 나 혼자 살아. 아빠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 나 혼자 어떻게 살아.”
 “선이는 혼자 살지 않아. 나랑 같이 살 거야. 그래서 온 거야. 선이 데리러 온 거야. 난 이곳에 안 있을 거야. 선이 혼자 밖으로 보내지 않을 거야. 선이를 농장 사람들 손에 맡기지 않을 거야. 내가 선이를 데리고 갈 거야. 같이 이곳을 나갈 거야. 선이는 안 죽어.”
 애니멀 201의 말에 고선이 고개를 들었다. 애니멀 201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던 고선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애니멀 201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럴 수 있어? 정말 둘이 같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어? 애니멀 201하고 같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어?”
 “빠져나갈 수 있어. 쉬워. 저번에도 쉽게 빠져나갔어. 나는 힘이 세. 농장 사람들은 나를 못 이겨. 내가 화나면 농장 사람들은 나를 못 이겨. 선이 아빠를 죽인 사람들이야. 그리고 선이를 이곳으로 끌고 온 사람들이야. 나는 화가 많이 났어. 선이랑 같이 이곳을 빠져나갈 거야. 막는 사람들은 다 죽일 거야. 선이 아빠를 죽인 사람들이야. 그래서 나도 농장 사람들을 죽일 거야. 나를 막으면 다 죽일 거야.”
 그러면서 애니멀 201은 선이를 소파에서 일으켰다.
 “나가자. 이제 여기에서 나가자.”
 “나, 실은 조금 무서워. 애니멀 201하고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빠져나갈 수 있어.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아까 그 놀이기구 탈 때보다 훨씬 더 안 무서워.”
 “그래, 애니멀 201하고 함께 있으면 하나도 안 무서워. 하나도 안 무서울 거야. 고마워. 이렇게 나를 구하러 와줘서 고마워.”
 그러면서 고선은 갑자기 애니멀 201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혀를 내밀어 애니멀 201의 입술을 벌렸다. 그리고 자신의 혀를 애니멀 201의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애니멀 201은 눈만 멀뚱하게 뜬 채 움직이지 않았다. 고선이 왜 이러는지 몰랐다. 하지만 고선을 밀쳐내고 싶지 않았다. 고선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지 못했지만, 밀쳐내고 싶지 않았다. 기분이 묘했다. 몸 구석구석까지 파르르 떨릴 만큼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고선을 밀쳐내지 않았다. 가만히 놔두었다.
 그리고 애니멀 201은 소파에 쓰러졌다. 스르르 무너지듯 몸이 소파 위로 쓰러졌다. 
 고선은 소파 위에 쓰러진 애니멀 201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쉽네요. 당신 말대로 너무 쉬워요. 재미없을 만큼 너무 쉬워요.”
 그러면서 고선은 마치 소파 위에 쓰러진 애니멀 201을 놀리기라도 하듯 길게 혀를 뺐다. 마치 도마뱀의 혀처럼 가늘고 길었다.
 고선은 몸을 돌려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책상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고선의 몸은 어느새 오나도 실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오나도 실장은 책상 위에 있는 안경을 쓴 뒤 송수신 겸용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계획대로 일이 잘 진행이 됐네요. 지금 제 방으로 오셔서 애니멀 201을 데리고 가세요. 다들 이번에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그런 뒤 오나도 실장은 습관적으로 혀를 길게 내밀어 안경 브리지를 밀어올렸다.


 김술 대위가 농장 경비대 대원 한 명을 데리고 오나도 실장 방으로 왔다. 그리고 곧장 대원에게 애니멀 201을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경비대 대원이 소파에 쓰러져 있는 애니멀 201을 들어올렸다.
 애니멀 201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의식을 잃고 있었다. 오나도 실장의 침을 삼켰으니 앞으로 세 시간 동안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오나도 실장의 침을 삼키면 거대한 코끼리도 순식간에 의식을 잃는다. 그만큼 오나도 실장의 침은 강력한 마취 기능을 갖고 있었다.
 “실장님, 저도 나가보겠습니다. 애니멀 201을 다시 수조 속에 넣는 것까지 보고 나서 상황 종료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대위님께서 끝까지 수고 좀 해주세요. 그리고 두 번 다시 농작물이 탈출하는 일 같은 건 없어야 해요. 명심해 주세요.”
 오나도 실장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김술 대위는 오나도 실장의 방을 나와 경비대 대원과 함께 나동 연구소로 향했다. 나동 연구소 내에 있는 사육실에 다시 애니멀 201을 데려다놓기 위해서였다.
 이번 같은 일이 또 한 번 일어나면 오나도 실장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대원들과 연구원들한테 확실히 주의를 줘야겠어. 안 그러면 내가 죽을지도 모르니까. 저렇게 웃으면서 얘기하는 걸 보면 정말로 화가 났다는 거잖아. 정신 바짝 차려야지. 안 그러면 진짜로 내가 죽어. 일단은 감금 시킨 연구원부터 처리해야겠어.
 김술 대위가 사육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애니멀 201을 안고 있는 대원도 사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육실 양쪽에는 수십 개의 수조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관 모양의 타원형 수조였다. 그리고 각각의 수조 안에는 애니멀 201 또래의 남녀 아이들이 들어 있었다.
 김술 대위가 사육실 안으로 들어서자 곧이어 하얀 가운을 입은 젊은 연구원이 나타났다. 애니멀 201을 담당할 새 연구원이었다. 젊은 연구원이 경비대 대원에게서 애니멀 201을 받아 들었다.
 젊은 연구원은 애니멀 201을 안고 사육실 안에 있는 빈 수조 쪽으로 갔다. 그리고 빈 수조 안에 애니멀 201을 넣었다. 수조 앞 모니터에 애니멀 201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곳이 원래 애니멀 201이 들어가 있던 수조였다.
 김술 대위는 젊은 연구원이 애니멀 201을 수조에 넣는 것까지 확인한 후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는지 애니멀 201이 들어 있는 수조 옆을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애니멀 201 왼쪽에 있는 수조를 쳐다보았다.
 그 수조에는 애니멀 201 또래의 여자아이가 들어 있었다. 여자아이가 수조 안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수조 앞 모니터에 고선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김술 대위의 시선을 쫒으며 젊은 연구원이 말했다.
 “애니멀 201 덕분에 농작물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역시 농장에는 농작물이 가득해야 일할 맛이 나지요. 이 농작물도 곧 자기 이름 대신 품명을 부여받게 될 겁니다. 아직 어떤 연구에 쓰일지 정하지를 못해서요. 그래서 당분간 원래의 이름을 적어두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역시 농작물이 가득하니까 보기 좋군요. 농장에는 농장물이 가득해야지요. 이번에는 우리가 애니멀 201 덕을 좀 봤습니다. 그러니 특별히 신경을 좀 써주세요. 이 농작물도 마찬가지고요. 새로운 농작물에는 그만큼 관심을 가져줘야 하잖아요, 하하하하.”
 김술 대위는 그렇게 소리 나게 웃으며 사육실을 나왔다. 그리고 옆에 있던 대원에게 연구원을 처리하라며 감금실로 보낸 뒤, 자신은 곧장 상황 종료 보고를 위해 오나도 실장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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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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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 09.11.01 16:37 댓글 수정 삭제
    오OO, 보아하니 이놈도 농X물 출신 같은데... 이런 놈이 더 지독하죠.(자꾸 놈놈 해서 죄송...) 이야기가 더 이어진다면 오OO의 비참한 결말이 이어질 것도 같아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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