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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붉은 진흙

2012.08.31 23:0808.31

붉은 진흙
 


 아프또르 니까그다네브일롭스끼 지음
 정보라 옮김


 



 Тогда говорит ему Иисус: возврати меч твой в его место, ибо все, взявшие меч, мечом погибнут.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마태복음 26장 52절)
 
 ... теперь ваше время и власть тьмы.
 "이제는 너희의 시대요 어둠의 권세로다." (누가복음 22장 53절)
 
 인간에 대한 통념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은 계급과 성별과 인종과 국적을 막론하고 사람에게는 모두 똑같이 사지와 오감이 있어 모든 인간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고 코로 냄새맡고 혀로 맛보며 이런 감각을 통해 공통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인지한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오감은 인간이 공통적으로 갖추었을지언정 개개의 감각이 작용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수많은 소리 중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골라 듣는 귀를 타고났기에 음악가가 된다. 어떤 이는 수많은 선과 색 중에서 서로 어울리는 모양을 찾아내는 눈을 지녀 미술가가 된다. 우는 아기라도 안는 순간 진정시키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팔과 가슴의 촉감을 타고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수많은 들판의 풀 중에서 독이 되고 약이 되는 잎사귀를 구분하는 혀를 지니고 태어나는 이도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느끼고 해석하며 각자 서로 다른 자기만의 우주에서 살아간다.
 그가 타고난 것은 폭력의 감각이었다. 인간의 몸 어디를 때리면 접히고 어디를 공격하면 무너지며 어디를 어떻게 치면 죽는지 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배우지 않고도 잘 알았다. 사람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연마해도 체득하기 어려운 감각이 그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남들이 모르는 비밀스럽고 뛰어난 기술을 가진 특별한 인물이라 생각했으며 다른 사람은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타고난 감각을 발달시키기 위한 연습의 도구로 여겼다.
 
 그의 출생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부모 모두 본래 농촌 출신이었는데 아버지는 혁명과 내전 시기에 녹색군(공산당의 붉은 군대와 러시아 제국의 백색 군대 양쪽에 반대하여 마을을 지키기 위해 혁명 시기에 농민들이 구성한 민병대와 유사한 조직: 역주)에 가담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거의 산적에 가까운 활동에 참여했던 듯하다. 내전이 끝난 후에는 신경제정책(내전 직후인 1921년 레닌이 경기부양을 위해 실시한 부분적 시장경제 허용정책: 역주)에 편승하여 빵이나 야채 등을 팔기도 했으나 큰돈은 벌지 못했다. 그가 태어났을 당시 부모는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남동생 둘이 더 태어난 후 아버지는 중앙아시아의 건설현장에 자원하여 훌쩍 떠나버린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농장일을 하며 아들 셋을 키웠으나 1937년 대숙청이 시작되자 군인이던 외삼촌이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즉결처분으로 총살당했고 그의 어머니는 그 길로 병상에 누워 한 달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열 두 살이던 그는 바로 밑의 남동생과 함께 가장 가까운 도시의 고아원에 맡겨졌다. 고아원에 자리가 없어서 막내 동생만 다른 도시의 보육원에 수용되었기 때문에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폭력의 감각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이라 해도 언제나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뛰어난 운동선수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군인이나 경찰로서 타인의 생명과 안위를 위하여 용맹을 떨치기도 하며 조금 더 지적인 성향을 타고난 사람은 연관된 전문 분야를 연구하는 의사나 과학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운명을 결정하는 밑바탕은 개인의 타고난 본성이겠지만 그 이외의 많은 부분은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환경의 큰 부분을 결정하는 것이 역사와 사회다. 그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반기를 지냈던 시기의 사회는 마음이 병든 독재자가 지배하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곳이었으며 그런 환경은 그의 타고난 성향 또한 유사한 방향으로 형성하였다.
 고아원은 그의 본성인 폭력적 성향을 연마하기에 매우 좋은 터전이었다. 먹을 음식도 입을 옷도 거주할 공간도 언제나 만성적으로 부족했고 그 부족한 자원을 나누어야 할 원생들은 점점 숫자가 늘었으며 그들을 돌봐주는 직책을 맡은 실무담당자들은 어린 소년들을 짐승이나 죄수처럼 다루었다. 아무도 소년들을 보호해주지 않았고 때로는 기본적인 생존조차 보장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강한 자가 당연하게 약한 자를 지배했으며, 그 속에서 그는 연습을 거듭하여 강한 자가 되는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자신의 공격에 상대가 예상대로 무너지는 모습은 그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었고, 예상 외로 무너지지 않는 상대에게는 몇 번이고 덤벼서 끝내 쓰러뜨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기어이 찾아냈다. 무엇보다도 그는 상대가 자신에게 얻어맞으면서 느끼는 물리적 고통과 패배감, 모욕감, 두려움 등의 표현을 즐겼다. 상대의 표정과 몸짓에서 고통과 공포와 패배의 신호를 발견하는 것은 그에게 존재의 근본적인 희열이었다.
 
 대조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는 아직 16세였으나 나이를 속이고 자원 입대했다. 당시 대다수의 청년들이 그러했듯이 어머니 조국의 부름에 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아원이 지겨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더 흥분되고 가슴 뛰는 신나는 삶을 원했으며 전쟁은 그런 열망에 딱 맞는 현장이라 여겼다. 어쨌든 그는 아직 어렸고, 그 어린 나이에 비해서는 많은 것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으나 진정 무자비한 극단적 대규모 폭력의 실상은 직접 체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은 것은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은 광기이다. 인간이 창조해낸 가장 커다란 광기이다. 고작 삼 개월간의 훈련을 대충 마칠 때까지도 알지 못했지만 전선에 나가자마자 그는 이 사실을 깨달았다. 전쟁에서 적군을 대면하는 방식은 그가 이미 오래 전부터 익숙해진 싸움에서 상대를 대면하는 방식과 완전히 달랐다. 적들도 인간임이 분명하되 그 인간 하나 하나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느껴지는 것은 어떤 커다란 기운이었다. 적의. 살의. 얼어붙은 벌판을 까맣게 메우며 다가오는 얼굴 없는 어두운 덩어리에서 그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그 군집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는 어디를 어떻게 나아가서 쳐야 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그 자신도 그러한 군집의 일원이라는 사실이었다. 폭력의 감각도 싸움의 기술도 개인의 용맹함이나 대담함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역사를 짓밟은 정치의 물결에 휩쓸린 하찮은 톱니바퀴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무력했고,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무력함과 무의미함을 깊이 느꼈다. 그 무력함이 그는 너무나 두려웠고, 두려웠기 때문에 그만큼 더 사나워졌다.
 이러한 경로로 그는 폭력의 광기에 자신을 내주었다. 어찌 보면 전형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3년을 지내며 그는 지나치게 빨리 어른이 되었다. 첫 해에는 거의 전투라고 할 만한 것을 경험해보지도 못했다. 독일군은 지나치게 강했고 지나치게 잘 정비되고 지나치게 조직적으로 사방을 침략해왔고 그래서 붉은 군대는 그에 대하여 지나치게 빨리 대대에서 중대로, 중대에서 소대로, 소대에서 분대 규모로 흩어졌다. 그 결과 전선에 투입된 첫 해 겨울에 그는 눈 덮인 벌판에서 덜덜 떨며 그저 버텼다.
 전투 중에 총에 맞거나 폭격을 맞아 죽은 사람보다도 이 첫 겨울에 얼어 죽거나 굶어죽은 사람이 훨씬 많았다. 다시는 따뜻한 태양을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아 기다리자 어김없이 봄이 오고 여름이 다가왔다. 그는 부대를 따라 툴라에서 모스크바로 올라갔다가 다시 보로네쥬로 내려왔다. 여름 한 달 동안 피와 땀으로 도시를 방어했다. 그러나 그들은 패했고 독일군이 도시를 점령했다. 부대는 대열을 정비하고 돈 강을 따라 남쪽으로 도망쳤다. 사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소비에트 역사상, 그리고 인류 전쟁의 역사상 보기 드문 대규모의 참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으나 그 때 그는 물론 그런 사실을 몰랐다. 42년 8월부터 이듬해 2월에 전투가 일단락될 때까지 부대는 스탈린그라드를 방어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루프트바페Luftwaffe – 독일 공군의 폭격이었다. 저항이고 뭐고 할 새도 없이 하늘에서 수시로 불덩어리가 쏟아져 사방을 몇 번이고 폐허로 만들었다. 하루 사이에 부대원의 절반이 죽었다. 대부분은 시체의 흔적도 제대로 찾지 못했다.
 폭격은 여름 내내 이어졌다. 8월 말의 어느 날 폭격이 너무 심해서 도시 전체가 말 그대로 불길에 잠겼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폭격 때문에 불이 난 자리에 다시 폭격을 하고 그 폭격 때문에 이어지는 포탄이 폭발을 하고... 하는 방식으로 겹치고 겹쳐 불 폭풍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 때는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스탈린은 루프트바페에 대항하여 붉은 군대 쪽에도 공군 병력을 최대한 지원했다. 땅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결과는 적군도 아군도 가릴 수 없이 하늘을 휩싸고 땅을 뒤덮는 무차별적인 불길이었다. 물과 식량은 이미 오래 전에 끊어졌다. 독일군 병력에 역이용되지 않도록 전투 시작 직전에 이미 붉은 군대가 철도를 파괴했기 때문에 군대는 물론이고 시민들조차 도시를 탈출할 수 없었다. 매일같이 하늘을 뒤덮는 불꽃과 땅을 뒤덮은 시체를 보며 그는 언젠가 아주 어렸을 때,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 보여 주었던 그림책을 떠올렸다. 그림 속의 사람들은 붉은 진흙 같은 것에 휩싸여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 붉은 진흙이 무엇이냐고 묻자 어머니는 진흙이 아니라 지옥의 불길이라고 설명했다.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어떤 광경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그는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폭격이 끝난 다음에는 «판쩌Panzer»가 들어왔다. 그리고 독일군은 곳곳의 건물에 흩어져 숨어 있는 생존자들을 잡아서 죽이기 시작했다. 독일군들끼리 그것을 '라튼크리크'Rattenkrieg, 즉 «쥐잡이 전투»라고 이름지었다. 안방과 거실을 이미 점령했으니 부엌에서 뛰어다니는 쥐 몇 마리만 잡아 죽이면 도시는 자기들의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는 그 표현을 정확히 이해했다. «쥐»를 잡은 것은 독일군이 아니라 그였다.
 폭격에 무너지고 굶주림에 지치고 겨울이 다가오자 추위에 떨면서 붉은 군대는 한때 볼가강 유역까지 밀렸지만 그래도 스탈린그라드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열 명씩, 다섯 명씩, 나중에는 두세 명이라도 조를 짜서 도시의 주요 거리와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건물을 하나씩 맡아 방어했다. 독일군은 숫적으로 우세했고 무기와 장비도 갖추고 있었으나 이렇게 긴 전투는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러시아의 겨울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했다.
 전쟁 시기에 겨울의 추위는 수많은 러시아인들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 조국을 지켜내어 러시아인의 손에 돌려준 것도 바로 그 조국의 겨울이었다. 소비에트의 군대가 볼가 강까지 밀리고 도시의 90%가 독일군의 손에 넘어갔을 때 쥬꼬프 사령관의 지휘 하에 붉은 군대는 추위에 지치고 사기가 떨어진 루마니아와 헝가리 군을 공격했다.
 
 그는 나치 제 6사단 소속의 루마니아 군인을 쫓아가고 있었다. 목표물은 한 명이었고 쫓아가는 사람은 그를 포함하여 세 명이었다.
 폐허에도 지형이 있다. 폭격으로 벽이 뚫려 뒤편으로 도망나갈 수 있는 건물이 있고 무너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방이 막히고 옥상까지 온전히 남아 있는 건물도 있었다. 무작정 뛰는 것 같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목표물이 도망가지 못할 막다른 구석으로 몰아갔다.
 루마니아 인을 붙잡은 곳은 건물 3층의 층계참이었다. 겁에 질린 루마니아 인이 돌아선 순간 그는 총을 겨눌 틈을 주지 않고 덤벼들었다. 루마니아인은 혼자 쫓기다가 궁지에 몰려 지치고 겁에 질려 있었다. 적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동료들이 3층으로 쫓아 올라왔을 때 그는 루마니아인을 깔고 앉아 철모로 적군의 얼굴을 짓이기고 있었다. 부서진 이빨과 살점이 피와 함께 사방에 튀어 벽과 천장과 그의 얼굴과 손을 뒤덮었다. 그가 루마니아 인을 죽이기까지 걸린 시간보다 동료들이 그를 진정시켜 으깨진 시체로부터 떼어내는 데 걸린 시간이 훨씬 길었다.
 그가 느꼈던 것은 애국심도 전우애도 증오도 원한도 아니었다. 그것은 극한의 도취였다. 길지 않은 일생동안 그는 그토록 눈먼 해방감을 만끽한 적이 없었다.
 
 42년 겨울을 기점으로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1943년 11월에 붉은 군대가 끼예프를 되찾았다. 그는 살아남아서 전투의 끝을 목격했다. 부대는 남쪽으로 내려갔지만 그는 자원해서 스탈린그라드에 남아 도시 재건 작업에 참여했다. 함께 생존한 다른 부대원들은 폭격의 여름과 지옥의 겨울을 보낸 스탈린그라드에 치를 떨며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꿈꾸었지만 그는 이제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이 도시에 깊이 연결되었다고 느꼈다. 그 자신은 깨닫지 못했지만 그 애착의 바탕에 있는 것은 피와 흥분과 비뚤어진 쾌락의 기억이었다.
 전투 중에 붙잡힌 포로들이 도시 재건 작업에 동원되었다. 그 중 절반 이상이 피로와 영양실조, 부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티푸스에 시달리다 죽었다. 43년 봄에 붉은 군대가 아직 우크라이나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을 때 그는 동료들과 함께 구덩이를 파고 티푸스로 죽은 독일군의 시체를 던져넣는 작업에 참여했다. 그 구덩이에 4만명의 독일군이 묻혔다. 불탄 흙 속에 검게 쌓인 적군의 시체 더미를 보면서 그는 도시의 하늘과 땅을 뒤덮었던 적들의 더러운 붉은 진흙을 어머니 러시아의 흰 겨울과 노란 질병으로 이겨냈다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만족했다. (티푸스 환자의 얼굴 색 때문에 러시아에서 티푸스는 종종 노란색으로 묘사된다. 역주) 살아남은 독일군 포로 중에서 고위 장교들은 선별되어 모스크바로 이송되었고 그 중 몇몇은 전향했다. 한 명은 완전히 귀화하여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이전의 조국 독일을 향하여 «앞으로 유럽의 유일한 희망은 공산주의»라고 선언하는 바람에 유명해졌다. 동료들 중에는 이것을 진정한 소비에트의 승리로 생각하고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는 절대로 믿지 않았다. 그 독일인 장교가 목숨을 구하기 위해 지저분한 거짓말을 밥 먹듯 내뱉을 뿐 진심으로 전향했을 리가 없으며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한 말조차 뭔가 숨겨진 암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쟁은 끝나고 나치는 패했으며 폐허만 남았던 조국은 서서히 재건되었다. 제대한 후에 부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스탈린그라드에 계속 남아 군수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무기를 좋아했다. 무기 자체의 성능이나 특성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군인일 필요가 없게 되었으나 그가 하루하루 목숨을 걸었던 극적인 시절, 무엇보다도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던 그 시절의 흥분과 전율을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군수 공장에서는 이유야 뭐가 됐든 참전 용사를 환영했으므로 일자리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동료들도 대부분 제대한 군인이었고, 그가 스탈린그라드에서 싸워서 도시를 지키고 재건하고 이제는 정착하여 이 도시를 위해 계속 일하려 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존경했다. 나이는 동료들에 비해 어렸지만 스탈린그라드에서 살아남았다는 전투 경험 때문에 그는 종종 같은 작업반에서도 비공식적으로 대장 역할을 맡았다.
 전쟁은 45년에 끝났다. 소년이 그의 작업반에 들어온 것은 46년 여름이었다. 같은 해 여름에 그는 작업반원들과 함께 소년을 때려 죽였다.
 
 소년은 그보다 한 살 어렸다. 처음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했을 때 가족들과 함께 짐을 싸서 피난을 떠났으나 다음 해에 스탈린그라드가 공격당하자 자원해서 입대했다고 했다. 소년은 스탈린그라드 출신은 아니고 북서쪽으로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프롤로보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래서 소년은 고향을 지키고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를 지켜내려는 마음에 붉은 군대에 입대했다고 했다. 그러나 전쟁이란 일개 사병의 생각대로 진행되는 일이 아니라서 소년은 본래의 소망과는 달리 서부 전선으로 배치받았다. 처음에는 무서웠으나 전세가 역전되면서 붉은 군대가 나치를 쫓아 서쪽으로 서쪽으로 진격하게 되어 소년은 폴란드에서 강제수용소도 해방시켰고 프러시아 국경 부근까지 가 봤다고 순진하게 자랑했다. (당시 프러시아는 현재 폴란드 북부 지역을 말함. 역주) 그곳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나치 병사들에게 기습을 당하는 바람에 동료 부대원과 둘이서 숲 속으로 도망쳤다가 길을 잃고 사흘 밤낮으로 숨어서 헤맨 끝에 간신히 방향을 잡아 부대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이 소년의 가장 큰 실수였다. 함께 돌아왔던 동료는 적군으로 오인한 같은 부대 경비병들의 총에 맞아 죽었고, 그 광경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고 소년은 겁에 질렸다. 소대장이 직접 소년을 신문했지만 소년은 반쯤 넋이 나가서 길을 잃었었다는 말만 되풀이했기 때문에 결국은 소대장도 손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부대가 공격당했기 때문에 소년을 신문했던 소대장도, 소년이 처음 되돌아왔을 때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소대장에게 데려갔던 하사도, 소년과 함께 돌아온 부대원에게 총을 쏘았던 병사들도 모두 다 전사했다. 길을 잃었건 전투 중이었건 이유가 뭐가 됐건 간에 소년이 부대를 이탈했던 경위를 아는 사람이 전부 죽었으므로 그 뒤에 지원군이 들어오자 소년은 얼떨결에 소속 부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용기와 투혼의 생존자가 되었다. 그런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소년은 승전한 붉은 군대 병사로서 당당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소년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생각했다. 그리고 물었다.
 «독일군을 피해서 헤매 다녔단 말이지?»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으로서는 일생 일대의 모험이었던 그 사흘간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늘어놓으려는 순간 그가 중간에 말을 막고 다시 물었다.
 «독일군한테 붙잡혔던 적은 없고?»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같이 도망치던 동료가 거의 붙잡힐 뻔했다가 독일군을 죽이고 빠져나온 이야기를 또 자세히 들려주려는 순간 그가 다시 말을 막았다.
 «그런데 네가 부대에 복귀한 다음날 독일군이 쫓아와서 부대를 몰살시켰단 말이지?»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소년은 그제야 비로소 그의 질문들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작업반원들은 모두 마시던 맥주 잔을 탁자 위에 놓고 반쯤 몸을 일으킨 채 험악하게 소년을 둘러싸고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일어서지 않았다. 자리에 느긋하게 앉은 채로 소년을 쳐다보며 웃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독일군하고 직접 접촉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말이지?»
 그리고 소년이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덧붙였다.
 «똑바로 대답해라.»
 소년은 말을 더듬으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절박하게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그는 돌연히 팔을 뻗어서 고장난 스프링 인형처럼 고개를 젓는 소년의 뺨을 때렸다.
 «정직하게 대답하라고 했지. 독일군하고 접촉한 적이 없다고?»
 그가 세게 때리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맞았기 때문에 소년은 더욱 겁에 질렸다. 이제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손으로 뺨을 움켜쥔 채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는 반대쪽 뺨을 때렸다.
 «독일군하고 접촉한 적이 있어, 없어? 똑바로 대답해!»
 소년은 대답할 겨를도 없이 뺨을 맞고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그것이 신호 아닌 신호였다. 작업반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쓰러진 소년을 치고 때리고 밟기 시작했다. 흥분이 진정되고 작업반원들이 하나 둘씩 물러났을 때 소년은 겁에 질린 표정 그대로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뜬 채 죽어 있었다. 입가에는 미처 내놓지 못했던 억울한 대답처럼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는 소년을 죽일 생각이 아니었다. 작업반원 중 그 누구도 처음부터 소년을 죽일 생각으로 때리기 시작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소년은 한 명의 소년인데 비해 자신들은 여러 명이며 그 여러 명이 달려들어서 소년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세게 때리고 있는지 생각해본 사람도 없었다. 그는 그저 몇 번 툭툭 친 기억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소년은 죽어 있었다.
 그를 포함하여 네 명이 법정에 섰다. 그들에게 적용된 죄목은 살인이나 과실치사가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혁명 활동죄»였다. 소비에트 형법 제 58조에 근거하여 일단 여러 명이 함께 저지른 일이기 때문에 58조 11항의 <조직 범죄>에 관한 법조항이 적용되었다. 그리고 사건에 대해 진술하면서(라는 것은 즉 비밀경찰에 끌려가서 두들겨 맞는 사이사이에) 대조국 전쟁 중에 일어났을지 모를 국가 반역죄에 대해서 진실을 알아내려 했을 뿐이라고 변명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 여러 명의 «조직된» 노동자들이 수사권이 없는 민간인의 신분으로 반역죄라는 커다란 사건을 «수사»하려고 했기 때문에 비밀경찰에서는 소비에트 형법 제 58조 2항도 추가로 적용시켜 «국가 권력을 전복시키려는 무장 봉기»로 분류해버린 것이다.
 그를 포함하여 네 명 모두 예외 없이 일괄적으로 강제노동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가장 먼저 나서서 쓰러진 소년을 때리기 시작했던 한 명은 난데없이 «주동자»로 분류되어 모스크바로 보내졌다. 다른 한 명은 훨씬 남쪽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남은 작업반원 한 명과 함께 시베리아로 갔다.
 
 수용소에서 그는 십 년 수감생활 동안 온갖 종류의 사람을 다 만났다. 모두 예외 없이 형법 58조가 적용되어 10년 이상씩 형을 받은 «반혁명분자»들이었으나 그 중에도 위계가 있고 분류가 있었다. 노동자와 농민과 군인 출신은 그들끼리 어울렸다. 지식인은 지식인끼리 어울렸다. 바깥에서 고위직 관료였거나 장교였던 사람들은 수용소에 들어와서도 어느 정도 존중을 받았으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수용소의 모든 권력은 먹을 것에서 나왔으므로 바깥에서 가족이나 친지가 소포를 풍족하게 부쳐주는 사람이 어느 모로 보나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강제노동 수용소 안에서 출신 성분이나 가족 유무에 상관없이 가장 잘 사는 부류는 눈치 빠르고 사나운 사람이었다. 수용소 전체가 시베리아에 공장이나 숙소 등의 기반 시설을 짓는 노동에 투입되었으므로 몸이 튼튼하고 기술이 있는 사람은 존경받았고 함께 일하다 보면 죄수들 사이에 협동심이나 동지애도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죽고 사는 것은 운에 달려 있었고, 그 운을 피해 자기 한 몸을 챙길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 아주 익숙했다. 수용소에 들어와 처음에는 겁을 먹었으나 그는 곧 자신이 열두 살 나이에 고아원에 맡겨진 이후로 쭉 이와 같은 환경에서 생존해 왔음을 깨달았다. 수용소가 고아원보다 나쁜 점은 기후가 훨씬 춥고 일이 고되다는 것이었다. 수용소가 군대보다 나은 점은 총알이 날아오거나 공중에서 퍼붓는 폭격을 맞을 위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수용소 생활을 위해 평생 준비해온 사람처럼 순식간에 적응했고 수감생활 십 년 간 아주 잘 살았다.
 감옥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한다지만 스탈린 말기 강제노동 수용소의 죄수들은 실제로 거의 모두 죄가 없었다. 지식인 중에는 스탈린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던 사람이 가장 많았고, 종교를 믿었기 때문에 투옥된 사람은 숫자는 적지만 양순한 태도나 행동이 다른 죄수들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눈에 띄었으며, 러시아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잡혀 들어온 외국인은 국적도 다양하고 수도 많았다. (앞서 언급된 소련 형법 제 58조 3항은 «외국 정부와의 접촉»을 반역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외국인은 자동적으로 모두 외국 정부의 첩자로 의심받았다. 역주) 반대로 그의 경우처럼 폭력범죄를 저질렀으나 정치범으로 분류되어 들어온 경우는 극히 소수였지만 이런 죄수들이 수용소 내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이들은 실제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의도적으로 살인해본 경험이 있었으므로 수감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치범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자신도 이러한 부류에 속했으나 그는 현명하게 처신했다. 그는 필요에 따라 위협과 폭력과 협조와 동지애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할 줄 알았다. 다른 작업반을 대할 때나 죄수 중에서 위협적인 인물을 대할 때는 폭력이든 협박이든 기싸움이든 무슨 수를 써서든 지지 않고 맞섰다. 반대로 자신이 속한 작업대의 대장과 동료 작업반원들을 그는 무골호인처럼 순하고 즐겁게 대했다. 그래서 죄수들은 그와 같은 작업반 소속이든 아니든 일반적으로 그가 털털하고 유쾌한 성격의 좋은 동료이며 «자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정의로운 인물이라 생각하고 존경했다.
 사실 이런 태도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수용소와 아주 비슷한 환경에서 몸에 익힌 일종의 생존 기술이었다. 수용소에서 주는 정량의 식사 – 매끼 200그람의 빵과 한 공기의 죽만으로는 추위와 강제노동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소포로 음식물과 옷과 담배와 현금을 보내줄 가족이나 친척이 없었다. 그는 고위직 출신이 아니었고 권력층과 줄이 닿을 만한 인맥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간수나 특권층 죄수들의 허드렛일을 해주며 생존에 필요한 음식과 비품을 충당하기에는 그의 자만심이 너무 강했다. 그러므로 그는 «사납지만 강하고 정의로우며 소탈한 인물»이라는 긍정적인 인상을 굳혀서 다른 죄수들의 존경을 얻는 방식으로 수용소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갔다.
 그와 함께 잡혀들어갔던 군수 공장 출신의 동료 세라피모비치는 이러한 생존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세라피모비치는 그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그는 눈치 없는 인간은 방해만 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자신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수용소에 잡혀 들어온 동료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냥 죽게 내버려두었다.
 
 수용소에는 전쟁 중에, 혹은 전쟁 직후에 소비에트 형법 58조 1в항이 적용되어 잡혀들어온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주로 서부 전선에서 복무했던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그가 때려죽인 소년의 이야기와 무척 비슷했다. 독일군을 쫓다가, 혹은 독일군에게 쫓겨서, 낯선 시골의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독일군에게 포로로 붙잡혀 고생한 끝에 탈주해서 부대로 귀환한 사람들이었다. 부대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아군의 총에 맞아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살아서 복귀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예외 없이 «국경을 넘어 탈주하여 적군에게 기밀을 넘겨준 뒤에 첩자 노릇을 하기 위해 돌아왔다»는 죄목으로 수용소에 들어오게 되었다. 대부분이 독일군에게 잡혔을 때 고문을 당했고 돌아온 뒤에는 수용소에 무사히 안착하기 전에 군 보위부와 비밀경찰에서 또 고문을 당해 몸이 어딘가 망가졌고 평생 불구가 된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작업 전후에 혹은 식사를 마친 뒤의 짧은 휴식 시간 동안 작업 반원들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자신의 행동이 옳았음을 점점 더 확신했다. 소비에트 정부가 저들에게 정식으로 유죄를 선고했다면 그가 때려죽인 소년 또한 유죄여야만 했다. 그러므로 그의 행동은 정당했다. 그의 모든 것은 정당했다. 그의 잘못이라고는 조국을 대신하여 손에 피를 묻혔다는 죄밖에 없었다. 그는 불운하여 열두 살 때부터 고아원과 군대를 거쳐 이제는 감옥에 들어왔지만 그렇게 조국이 내리는 부당한 형벌과 핍박을 견디는 그의 양심에는 한 점 거리낌도 없었다.
 물론 그는 다른 죄수들에게 이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사람이 죄없이 잡혀들어와 고생하는 수용소에서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폭력사범들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는 했으나 호의나 존경의 대상은 절대로 아니었다. 게다가 전쟁 중에 적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했다는 사실이 죄가 되어 수용소까지 오게 된 동료 죄수들이 그의 사정을 달갑게 생각할 리 없었다. 그는 갖은 애를 써서 동료 죄수들의 호감과 존경심을 샀으며 그것이 유일한 생존의 길임을 알고 있었다.
 세라피모비치는 그렇지 못했다. 세라피모비치는 사색적이고 유약했으며 외모나 행동이나 사고방식 등 모든 면에서 청년이라기보다 아직도 소년이었다. 북쪽 시골 마을의 조그맣고 아주 가난한 집단농장 출신이었는데 생전 처음 고향 마을을 떠나본 것이 징집을 당해 스탈린그라드로 왔을 때라고 했다. 그러나 세라피모비치는 나이가 어려서 전쟁이 거의 끝날 무렵에 징집되었기 때문에 실제 전투는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주로 재건 작업과 독일군 전사자 및 포로의 시체 처리 작업에만 참여했다. 그 수많은 시체를 본 것만으로도 세라피모비치의 예민하고 섬세한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에 충분했다. 쉽게 깊은 인상을 받는 여린 청년이었으므로 세라피모비치는 자기보다 고작 두 살 위인데도 어렸을 때 «도시»에서 살아본 경험도 있고 군에 자원 입대하여 전투 경험도 있는 그를 무척 존경하고 의지했다. 군수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였을 때도 그러했고, 수용소에서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게 된 지금은 더더욱 그러했다.
 그는 세라피모비치와 같은 수용소로 오게 되었을 때 어떻게든 떼어버리려고 했다. 같은 작업반에 배치되고 나서는 친절하게 대했지만 언제나 적당히 거리를 두었다. 세라피모비치는 농장 출신이었으므로 육체 노동에 단련되어 있었고 웬만한 일은 그럭저럭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고향에 가족이 있기는 했지만 집단농장 자체가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감옥에 있는 아들에게까지 따로 소포를 부쳐줄 여력은 없었다. 세라피모비치는 눈치가 빠르지 못했으므로 수용소에서 배급하는 식사나 비품을 요령 있게 속이거나 빼돌리는 법도 끝내 배우지 못했고 마음이 여렸기 때문에 남의 것을 빼앗거나 구걸을 하는 데도 서툴렀다. 어떻게든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잔심부름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세라피모비치는 처음 2-3년을 어떻게든 버텼다.
 그러나 세라피모비치는 고분고분하고 착한 청년이었고 그것이 불운이었다. 그는 세라피모비치가 간수실에 자주 불려가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세라피모비치를 슬쩍 불러서 담배를 한 대 주며 물어보았다. 세라피모비치는 처음에는 간수실 청소 때문이라고 했다. 간수실 청소만 담당하는 죄수가 따로 있었지만 뭔가 사정이 있거나 청소한 상태가 마음에 안 들면 간수들은 지나가는 죄수를 아무나 불러서 따로 시키곤 했다. 세라피모비치는 비쩍 마르고 키가 커서 눈에 잘 띄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쩌다 한두 번 있는 일이어야 하는데 최근에는 언제나 같은 간수가 거의 매일같이 세라피모비치를 불러내곤 했다. 그래서 그는 넌지시 한 번 떠 보았다. 세라피모비치는 펄쩍 뛰었다.
 «밀고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나 그가 두세 번 더 묻자 세라피모비치는 금방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그냥 청소만 시켰는데, 자꾸 물어봐서... 하지만 한 마디도 안 했어요, 정말이에요.»
 그리고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밀고자는 다른 죄수의 음식을 훔치는 좀도둑이나 의무실에 처박혀서 강제노동을 피하려는 꾀병환자보다도 훨씬 더 미움받는 존재였다. 그는 한편으로는 이런 인맥도 어떻게든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마음 한 구석에 기억해 두면서도 앞으로는 세라피모비치를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그는 작업 현장에서 각목을 구하러 돌아다니다가 다른 작업반의 모르는 죄수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지나가면서 엿들었다.
 «38작업반 Г-358, 82작업반 Щ-504....»
 아르메니아 인들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돌아서며 자기 나라 말로 바꾸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작업반 번호와 누군가의 죄수번호를 분명하게 들었다. 각목을 구해 돌아와서 작업을 계속하다가 그는 시멘트를 나르는 세라피모비치의 가슴과 모자에 선명하게 새겨진 죄수번호를 보았다. 그리고 세라피모비치에게 무슨 일이 생기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틀 뒤 기상 시간에 세라피모비치는 침상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암살자는 줄톱이나 그런 종류의 꺼끌꺼끌한 날로 세라피모비치의 턱밑을 귀에서 귀까지 찢어놓았다. 세라피모비치의 비명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용소에서 죄수가 죽으면 눈밭에 내다 버렸다. 시신은 들개들이 뜯어먹었다.
 세라피모비치의 영혼은 신 앞에 나아갔다.
 
 세라피모비치는 살인자였다. 그러나 본성이 사악하여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선량하고 순진한 인간이었으며, 자신으로 인해 소년이 죽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진심으로 후회하고 괴로워했다. 세라피모비치는 시골에서 태어나 마을 사제에게 세례를 받았고 부모에게 성서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죽어 영혼이 신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무릎 꿇고 고개 숙여 참회했다.
 그리하여 신은 세라피모비치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그것을 진정 자비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한낱 인간이 어찌 감히 신의 뜻을 의심하랴.
 그래서 세라피모비치는 신의 명에 따라 다시 한 번 세상에 내려왔다.
 그리고 자신을 살인자로 만든 사람을 쫓기 시작했다.
 
 그는 십 년 형기를 하루도 감형 없이 마지막 1분까지 꽉 채웠다. 그리고 일단 중앙아시아로 유배당했으나 몇 달 뒤에 곧장 전면 복권되었다. 그가 석방된 것은 스탈린이 죽은 지 이미 삼 년이 지난 때였고 세상은 «해빙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흐루시쵸프는 스탈린이 저질렀던 모든 해악을 최대한 원상으로 되돌리고 스탈린을 공식적으로 비난함으로써 소비에트 연방을 «공포정치» «독재국가»의 악명에서 어떻게든 구해내려 했다. (소련 시대에 범죄, 특히 정치 범죄를 저지르면 감옥에서 형기를 마치고 석방되어도 시민 자격을 상실하여 신분증을 발급받지 못하고 그러므로 정식으로 취업을 할 수 없는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에서 제외되었다. 스탈린이 1953년 사망한 뒤에 흐루시쵸프가 공산당 서기장에 오르고 나서 1956년부터 1959년 정도까지 스탈린 시대에 박해받아 수감 생활을 했던 피해자들의 시민권을 회복시켜 주었다. 역주)
 그의 범죄 기록에도 «조직 범죄»와 «무장 봉기» 항목 끝에 뒤늦게 '무죄'라는 도장이 찍혔다. 신분증도 발급받았고, 그가 원한다면 유배지인 중앙아시아를 떠나 지금이라도 러시아 본토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는 그냥 유배지에 남았다.
 그곳은 기후가 온화하고 사람들이 친절한 느긋한 땅이었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 출신이었기 때문에 같은 소련 안에서도 다른 지역 출신에 비해 인종적으로 우세한 입장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스탈린 치하에서 강제수용소 생활을 했던 정치범»이라는 경력은 시대가 바뀌자 일종의 훈장이 되었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직장 동료를 집단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했던 어두운 과거는 말 그대로 과거의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시대의 피해자였고 자유를 되찾은 양심수였다. 주위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대해 주었고, 무엇보다 그는 수용소에 있을 때부터 자신의 정당함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선량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던 시대를 바로잡기 위해 이제 새 시대는 범죄자를 양심수로 만들었다. 한 쪽이 끔찍한 범죄라면 다른 한 쪽도 그에 못지 않은 죄악이었다. 그러나 피와 폭력으로 건설된 소비에트 정권은 그 자체로 유죄와 무죄, 선과 악을 구분할 만큼 깨끗하지도 현명하지도 못하였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이든, 깨끗하지도 현명하지도 못한 인간이 이룩한 불완전한 세상의 빛과 그림자는 모두 비슷한 모습이리라....
 그래서 그는 수용소에서 배운 기술을 이용하여 목수 겸 미장이로 일했다. 그리고 역시 수용소에서 배운 대로 동네 소년들에게 권투를 가르쳤다. 그는 순하고 유쾌하고 진정성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처세술을 아주 잘 알았고 시대의 피해자라는 후광을 업은 데다 공식적으로도 모든 권리를 회복했다. 그러므로 근방의 남자 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목공일과 권투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학부모들은 아들들에게 선생님은 나쁜 시대에 핍박을 받았던 선량하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알려주었으며 그래서 학생들은 그를 존경했다. 그리고 그는 커다란 눈망울을 빛내는 수줍고 유순한 처녀를 아내로 얻어 자신과 꼭 닮은 아들을 낳았다.
 그는 행복했다. 그는 자신이 일구어낸 제 2의 인생에 만족했다. '선생님'으로 존경받으며 유순하고 소탈하고 쾌활한 겉모습을 익숙하고 즐겁게 유지했다. 젊은 시절 그를 그토록 매료시켰던 폭력에의 욕구, 타인을 고통에 빠뜨리고 파괴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며 그 과정을 지켜보고 즐기려는 가해자의 욕구는 학생들과 스파링을 할 때만 가끔씩, 아주 작은 한 부분만 분출시켰다. 시베리아에서 강제노동 10년을 견디고 그는 체력적으로 많이 약해졌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나이를 먹고 성숙해졌으며 이전에 느꼈던 폭력과 파괴의 도취감 앞에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현명해졌다고 자만했다.
 그러나 폭력에의 욕구는 그의 본성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본성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군수 공장에서 일으켰던 사건의 나머지 공범 두 명 중 한 명과 마주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시베리아에서 일하면서 손이 동상에 걸렸다 낫기를 반복했고 거기다 풀려난 뒤에도 계속 목공 일을 했기 때문에 관절염이 생겼다. 그는 전면 복권되면서 대조국전쟁 참전용사로서의 권리도 되찾았기 때문에 인근 군인 병원 겸 요양소에서 진료받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군수 공장 사건의 공범이었던 게라시모프를 만났다.
 처음에 그는 알아보지 못했다. 게라시모프는 그보다 나이가 몇 살 많았지만 그래봤자 아직 삼십대 후반일텐데도 완전히 노인처럼 보였다. 창구 앞에서 항의하고 있었는데, 창구 일을 보는 처녀는 세 시간 뒤에 다시 오라는 대답만 기계처럼 되풀이할 뿐 전혀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몸이 불편해보이는 노인이 안쓰러워서 그는 도와주려고 다가갔다. 그 순간 노인은 포기한 듯 돌아섰고 그를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그가 뭔가 말을 걸려는 순간 노인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자네를 여기서 만나다니! 나야, 나! 누군지 모르겠어? 게라시모프, 스탈린그라드 군수공장, 1946년! 기억하나?»
 물론 그는 기억했다. 두 사람은 얼싸안았다.
 알고보니 게라시모프는 그와 비슷한 시기에 중앙아시아에 도착했고 뜻밖에도 지난 몇 년간 줄곧 꽤나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형기를 모두 마치고 석방되자마자 예상대로 유배당했다가 몇 달만에 사면, 복권된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게라시모프는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았다. 제대로 일을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얼마 안 되는 연금에 의지하여 겨우겨우 생활해 나가고 있었다.
 «수용소에 있을 때 간수와 다퉈서, 쿨럭.... 영창에 들어간 적이 있거든. 온기라곤 한 점도 없는 돌 감옥에 열흘 밤낮을 갇혀 있었더니 폐병에 걸렸지.... 쿨럭쿨럭.... 다들 죽을 거라고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남았어....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쿨럭쿨럭쿨럭....»
 기침을 절반 섞어 말하며 게라시모프는 웃었다. 결혼은 애초에 생각도 하지 못했고 물론 아이도 없다고 했다. 그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게라시모프는 쓸쓸하게 웃었다.
 «부럽군.... 그래서 자네는 완전히 벗어난 건가?»
 «벗어나다니, 뭘?»
 그가 물었다. 게라시모프가 진지하게 물었다.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말이야. 그건 쉽게 사라지는 기억이 아니지 않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을 망설임으로 오해한 게라시모프가 천천히 말했다.
 «수용소에 있을 때는 차라리 마음이 편했지. 쿨럭.... 몸은 괴로웠지만, 그래서 마음이 편했어.... 쿨럭쿨럭.... 이렇게 건강이 나빠지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연금을 받아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다가.... 쿨럭쿨럭.... 혼자 세상을 뜨는 게 나에게는 가장 알맞은 삶이라고 생각하네. 쿨럭.... 어쨌든 창창한 나이의 죄 없는 한 젊은이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지 않았나.... 쿨럭쿨럭쿨럭.... 그가 누리지 못했던 것을 감히 내가 누릴 수는 없지 않겠나....»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 속에서 그의 자만심이 요동쳤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 그 놈이 반역자였다, 수용소에서 그런 놈들을 많이 봤다, 조국이 그 놈들을 유죄라고 했으니 우리가 죽인 그 놈도 첩자였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제 사면되고 복권되었으니 조국이 확인해준 우리의 정당성은 아무도 의심할 수 없다고 소리 높여 반박하고 싶었으나 머릿속에서 조그만 본능의 목소리가 그에게 입 다물고 일단 들어보라고 충고했다. 그래서 그는 대답하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게라시모프는 다시 쓸쓸하게 웃었다.
 «쿨럭쿨럭.... 시대가 바뀌고 나니 사람들이 묻더군. 수용소에 있을 때 억울하지 않았냐고, 지금이라도 시대가 바뀌어 자유와 권리를 다시 찾았으니 다행한 일 아니냐고.... 쿨럭...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하지. 아니, 나는 강제수용소의 유일한 진짜 죄인이었소. 쿨럭쿨럭.... 죄를 짓고 감옥에 갔으니 사면도 복권도 누릴 자격이 없소.... 이렇게 말이야. 쿨럭쿨럭쿨럭....»
 «그런 걸 누가 물어보던가?»
 그가 물었다. 머릿속에서 조그맣게 울리던 본능의 목소리는 이제 조금 더 큰 경고음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게라시모프가 아무 의심 없이 대답했다.
 «누구긴, 병원 사람들이지. 내가 가는 데가 거기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게라시모프는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가끔은 물어보지 않아도 내가 말해줄 때도 있어. 병원 앞 벤치에 앉아서 접수 창구 아가씨가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고해를 하지. 나는 죄인이라고, 수용소에 들어갔던 건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쿨럭쿨럭쿨럭.... »
 그래서 그는 게라시모프를 죽여야겠다고 결정했다.
 
 혼자 사는 병약자를 죽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집 주인과 이웃 사람들의 이목이 신경쓰였으므로 그는 일단 집에 돌아가서 찬찬히 계획을 짜서 다시 기회를 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그는 게라시모프를 가능한 한 자주 찾아갔다. 게라시모프가 세들어 사는 조그만 방의 옆방 사람, 길 건너 앞집 사람, 그리고 자주 마주치는 이웃 사람들에게 그는 게라시모프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나서서 '스탈린그라드에서 함께 복무한 전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래서 이웃들은 즉각 그를 몹시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알고보니 게라시모프가 세들어 사는 집의 집주인 아들이 그의 목공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게라시모프의 이웃들 사이에서 그의 신원은 더욱 확실해졌다.
 그는 직장 핑계를 대고 가능하면 늦은 저녁이나 밤에 게라시모프를 찾아갔다. 함께 저녁을 먹고맥주나 차를 한 잔 하며 체스를 두거나 잡담을 나누었다. 게라시모프가 피곤한 기색을 보이면 침대로 데려가 눕힌 뒤에 그는 알아서 방문을 닫아주고 나와서 혼자 집에 가곤 했다.
 그렇게 별 이유 없이 찾아가서 안부를 살피고 잡담을 하다가 그는 지나가는 말처럼 물어보았다.
 «혹시 예르몰라옙스끼 어떻게 됐는지 아나?»
 예르몰라옙스끼는 군수 공장 사건의 범인 네 명 중에서 가장 먼저 나섰다는 이유로 주동자로 찍혀 모스크바로 이송된 이후 소식이 끊어진 인물이었다.
 게라시모프는 한참 생각했다.
 «예르몰라옙스끼? 예르몰라옙스끼....»
 모르겠다, 혹은 이미 죽었다는 대답을 예상하며 그는 기다렸다. 그러나 게라시모프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모스크바에 계속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 우리보다 먼저 사면돼서 아직도 모스크바에 있을 걸....»
 모스크바 정확히 어디에 사는지 아냐고 다시 물어보려는 찰나에 게라시모프가 발작적으로 기침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병들고 지친 친구를 거의 들어올리다시피 침실로 데려가서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게라시모프는 그가 이불을 꼭꼭 덮어준 후에도 한참이나 더 기침에 시달리다가 기절하듯, 죽은 듯 잠들었다.
 이런 방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게라시모프는 그가 침실까지 따라오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평범한 날의 늦은 저녁에 그는 평소처럼 찾아가서 잡담을 나누다가 지쳐 졸기 시작한 게라시모프를 침대로 데려가 눕힌 뒤에 베개로 얼굴을 덮고 눌렀다.
 환자가 손 아래에서 버둥거리다가 잠잠해지기까지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게라시모프의 목을 직접 손으로 조르거나 얼굴을 때리거나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싶은 충동을 눌러야만 했다. 살인이라는 의심을 받아서는 안 되었으므로 폭력의 흔적은 전혀 남길 수 없었다. 그 점이 몹시 아쉬웠지만 그는 베개를 떼고 나서 게라시모프가 완전히 숨이 멎은 것을 확인하고 절박하게 부릅뜬 눈을 감겨주면서 만족했다.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마음 속 깊이, 뼛속 깊이, 몹시 만족했다.
 
 게라시모프의 시신은 사흘 뒤에 옆방 남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빌린 책을 돌려주기 위해 찾아갔다가 게라시모프가 침대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옆방 남자는 집주인을 불렀고 그래서 구역의 이웃들이 전부 알게 되었다. 고인이 평소에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았고 자기 침대에서 눈을 감고 곱게 누운 상태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게라시모프가 잠든 채로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고 확신했다. 달리 연고가 없었으므로 집주인이 일단 군인 병원에 연락했는데 제대 군인 및 참전용사 관리부서 쪽에서는 게라시모프가 참전 경력이 있지만 수용소 수감 경력도 있기 때문에 장례를 맡아줄 수 없다고 거부했다.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 현지 중앙아시아 사람인 집주인은 이러한 소련식 관료주의와 구시대적 편견에 짜증을 내며 이웃들을 모아서 직접 간소하게 장례를 치렀다.
 장례식에 그도 참석했다. 게라시모프는 인간 관계가 넓지 않아서 장례 때 시신을 운구해줄 남자가 모자랐다. 그래서 그도 함께 나서서 중앙아시아식으로 관에 넣지 않고 공단 천에 싼 시신을 운구하여 구덩이에 묻었다.
 장례가 끝나고 나서 집주인은 그에게 게라시모프의 유품 중에서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뭐든지 가져가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게라시모프가 남긴 수첩과 일기장을 모두 가져왔다. 군수공장 사건이 언급된 부분이 있는지 샅샅이 뒤져보고 나서 그는 게라시모프가 남긴 불행한 일생의 기록을 뒷마당에서 전부 태웠다.
 그 불길과 연기를 보고 신의 뜻에 따라 죽은 뒤에 다시 땅으로 돌아온 세라피모비치가 그를 찾아냈다.
 
 게라시모프가 남긴 일기장과 수첩의 내용은 대부분 개인적인 참회의 기록과 죽은 피해자에게 바치는 뒤늦은 사과의 말이었다. 마지막 공범인 예르몰라옙스끼의 행방에 대한 단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기록을 태운 것을 후회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내나 이웃 사람이 우연히 볼 수도 있었으므로 집안에 그런 기록이 굴러다니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 예르몰라옙스끼는 어떻게 찾아내야만 할까? 무작정 모스크바로 갈 방법은 없었다. 여행 허가를 받으려면 초청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모스크바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다.
 그의 고민은 저절로 해결되었다. 모스크바에서 전보가 한 통 날아온 것이다.
 «게라시모프 사망 소식 들었음 모스크바로 방문 요망 건강 나쁨 꼭 할말이 있음 예르몰라옙스끼»
 그리고 전보 끝에는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서둘러 짐을 챙겨 모스크바로 떠났다. 예르몰라옙스끼를 살해할 구체적인 방법은 가는 길에 여러 가지를 생각해둔 뒤에 일단 가서 상황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전보에 건강이 나쁘다고 했기 때문에 게라시모프 때와 마찬가지로 생각하여 별도의 도구는 챙기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는 예르몰라옙스끼가 어떻게 해서 자신을 찾아낼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저 과거의 마지막 증인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다시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하니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던 것이다.
 
 스몰렌스까야 거리 6/8번지의 아파트는 어두웠다. 문을 두드리자 삐걱, 하고 열렸다. 그는 예르몰라옙스끼가 열어준 것이라 짐작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껴안거나 악수하며 반갑게 인사할 것을 예상했으나 안에는 아무도 없이 그저 침침한 어둠이었다. 그 어둠 속에서 검은 형체만 어렴풋이 보이는 남자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나야.»
 그가 대답했다. 검은 형체의 남자가 웃었다.
 «오랜만이군.»
 «그래, 정말 오랜만이지.»
 그가 말하며 대충 발치에 짐을 내려놓았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손을 더듬었다.
 «전등 같은 건 없나? 촛불이라도.... 안이 너무 어둡군.»
 «불을 켤 수가 없네.»
 검은 남자의 목소리가 천천히 말했다.
 «불빛이 비치면 괴롭거든.... 이해해 주게. 나는 건강이 몹시 안 좋다네.»
 그는 예상보다 일이 쉬워지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검은 남자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곧 눈에 익겠지. 자네는 어떻게 살았나? 그렇게 몸이 안 좋은가?»
 «그래, 어둠은 곧 눈에 익을 거야. 어둠은 쉽게 스며드는 법이거든.»
 검은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무슨 소리냐고 그가 묻기 전에 남자가 곧이어 덧붙였다.
 «고생이 많았다네. 지독한 일도 많이 당했고.... 이렇게 돌아온 게 기적이지.»
 «그랬군....»
 그가 동정적으로 중얼거렸다.
 검은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에게 손짓했다.
 «이리 와서 앉지. 그렇게 멀리 서 있으니 얘기하기 힘들군. 말했다시피 몸이 안 좋아서 말이야.»
 «아, 그래.»
 그는 어둠 속에서 할 수 있는 한 황급히 검은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실제로 어둠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눈에 익었다. 그리고 거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커튼이 없는 창문 밖에서 가로등 불빛이 비쳐 들어와서 아주 희미하지만 그래도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는 보였다. 거실 안에는 테이블이 있었고, 검은 남자는 그 테이블 앞에 가로등 불빛을 등진 자세로 앉아 있었다. 테이블 맞은편, 그러니까 그가 서 있는 곳에서 고작 한두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의자가 또 하나 있었다. 그는 의자에 다가가서 앉았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돌아왔다니, 어디 다녀왔나?»
 검은 남자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창 밖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한데다 검은 남자는 창을 등지고 앉아 있어 역광 때문에 윤곽만 보일 뿐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먼 곳에 다녀왔지. 아주 먼 곳에.»
 «그래? 자네도 유배를 당했다가 모스크바로 돌아온 건가?»
 그가 다시 물었다. 검은 남자는 피식 웃었다.
 «유배....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그래서 게라시모프 소식을 들은 건가?»
 그가 물었다. 검은 남자는 잠시 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게라시모프하고는 계속 연락하고 지냈나? 자네가 모스크바에 산다는 걸 알고 있던데.»
 «게라시모프? 아니.... 아냐. 나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녔어.»
 검은 남자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는 조금 놀랐다.
 «다른 사람들? 누구? 나?»
 검은 남자가 다시 피식 웃었다.
 «그래, 자네도 그 중 하나라고 봐야겠지.»
 그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파악하려고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사건의 범인은 네 명이었다. 그와 상대방을 제외하면 게라시모프인데, 이미 죽었고 검은 남자는 게라시모프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세라피모비치? 그러나 세라피모비치는 이미 오래 전에 수용소에서 죽었다.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남자가 말했다.
 «자네를 오랫동안 찾아다녔네.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 전보에도 그렇게 썼지.»
 그는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재빨리 대답했다.
 «무슨 이야기인데?»
 «자네한테 뭘 좀 물어보고 싶었네.»
 검은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사람들을 죽인 일에 대해서.»
 «사람'들'이라니?»
 그가 되물었다. 그는 진심으로 어리둥절해 있었다.
 «내가 죽인 건 한 명이야. 그것도 나 혼자 죽인 게 아니지. 자네와 다른 사람들도 같이 죽였잖아.»
 «그 사건을 가장 확실하게 기억하나 보군?»
 검은 남자는 조용히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좋아, 그럼. 거기서부터 시작하지.»
 «시작하다니, 뭘?»
 그가 물었다. 그는 어쩐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었다.
 검은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물었다.
 «그 소년을 죽인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그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검은 남자가 다시 말했다.
 «소년은 자네를 존경하고 좋아했네. 그래서 자네가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한 거지. 그런데 자네는 그런 죄 없는 소년을 때려 죽였어.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후회하나? 아니면 처음부터 계획한 건가?»
 그는 검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검은 남자가 차분하게 덧붙였다.
 «아까 말했듯이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아. 시간이 많지 않네. 그러니 솔직하게 대답해 주게.»
 그는 생각했다. 어차피 상대는 죽을 것이다. 그의 손에 죽든 저절로 죽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솔직히 말해줘도 손해볼 것은 없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아니었어.»
 그가 입을 열었다.
 «자네도 알잖아. 우리 중에 처음부터 소년을 죽이려고 계획한 사람은 없었어.»
 «그럼, 우발적으로 그렇게 된 걸 후회하나?»
 «후회하냐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비밀경찰에 끌려갔을 때는 후회했지. 죽도록 맞았기 때문에 후회했어. 멍청한 짓을 했다고. 하지만 수용소에 가서 생각이 바뀌었어.»
 «어째서?»
 검은 남자가 조용히 물었다. 그는 반대로 조금씩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거기엔 그 소년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 거의 똑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어.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무죄였을 리는 없어. 그러니까 그 소년도 유죄였던 거야. 죄가 있었어. 반역을 저질렀다고!»
 «그 사람들은 모두 무죄였네. 소년을 포함해서.»
 «아냐!»
 그는 버럭 소리질렀다.
 «아냐! 무죄가 아냐! 그들이 무죄라면 내가 유죄라는 뜻이잖아! 나는 죄가 없어! 죄가 없단 말이야!»
 «죄가 있어.»
 검은 남자가 말했다.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어조에서 어쩐지 웃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네는 죄가 있네. 무고한 소년을 때려 죽였잖나.»
 «아냐, 난 죄가 없어! 그 놈이 유죄였다고! 반역자였단 말이야!»
 «그래?»
 검은 남자가 부드럽게 물었다.
 «그럼 게라시모프는 왜 죽였지?»
 그는 숨이 턱 막혔다.
 «자네가 어떻게 그걸 아나?»
 «지금 그게 중요한가? 말해 보게. 게라시모프는 어째서 죽였나? 그도 유죄였나?»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검은 남자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무슨 죄였지? 자네와 같은 죄? 그럼 자네는 어째서 죽지 않고 살아 있나?»
 «나는 죄가 없다니까!»
 그는 돌연히 악을 썼다.
 «나는 죄가 없어.... 수용소에서 십 년.... 핍박 받고, 겨우 자유를 찾았는데.... 게라시모프가 다 망쳐놓으려고 했어. 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갔다고, 병원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고백하고 다녔단 말이야....»
 «게라시모프는 자기 죄를 고백했어.»
 검은 남자가 다시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 죄를 고백한 게 아니야. 자네가 죄가 없다면 게라시모프가 자기 죄에 대해 뭘 자백하든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난 죄가 없다니까!»
 그가 다시 고함을 질렀다. 검은 남자는 다시 한 번 피식 웃었다.
 «어린 아이처럼 떼를 쓰는군. 누구에게 무슨 짓을 하든 자신은 항상 옳고 절대로 아무 죄도 없다는 거지?»
 그런 게 아니라고 다시 악을 쓰려 했으나 검은 남자가 말을 막았다.
 «좋아. 그럼 세라피모비치는 왜 죽였나?»
 «뭐....?»
 예상치 못한 이름을 듣고 그는 잠시 얼이 빠졌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이번만은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세라피모비치는 내가 죽이지 않았어.»
 «하지만 곧 죽게 될 걸 알고 있었지.»
 검은 남자가 반박했다.
 «왜 보호해주지 않았나? 어째서 귀띔이라도 한 마디 해 주지 않았지?»
 «어차피 소용 없었을 거야. 나까지 해코지를 당했을 지도 몰라.»
 «그건 자네 변명일 뿐이지. 사실을 세라피모비치가 없어지길 원했던 거 아닌가?»
 검은 남자가 느긋하게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 어째서 이런 일들을 전부 알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누구냐고 묻기 전에 검은 남자가 다시 말했다.
 «세라피모비치는 성격이 사납지 않았고 요령을 부리거나 수완이 좋은 편도 아니었지. 그저 수용소 생활에 겁먹은 보통 사람이었고, 그래서 동료였던 자네에게 의지한 거야. 그게 귀찮았나?»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검은 남자는 개의치 않고 다시 말했다.
 «사실 세라피모비치는 공장에서도 자네를 친구로 여겼기 때문에 함께 다닌 거야. 결국 자네 때문에, 자네를 따라서 살인자가 되어버렸고. 그런데 자네는 귀찮다고 그가 죽게 내버려뒀나? 하긴 살인자 사이의 의리란 그런 것이겠지.»
 «난 살인자가 아냐! 난 죄가 없다고!»
 그가 다시 고함쳤다.
 «세라피모비치는 밀고자였어! 간수들에게 밀고하다가 살해당한 거야! 내가 죽이지 않았어, 그건 자업자득이었어!»
 «자업자득이라.»
 검은 남자가 중얼거렸다.
 «하긴 자네 같은 인물을 친구라 믿고 의지했으니 자업자득이라 해도 할 말은 없군.»
 그가 다시 뭔가 악을 쓰며 변명하려 했을 때 검은 남자가 말했다.
 «그럼 루마니아 인은 왜 그렇게 죽였나?»
 그는 다시 한 번 어리둥절해서 말문이 막혔다. 루마니아 인? 수용소에 루마니아 인이 있었던가? 있었던 것도 같지만 그는 죽인 적이 없었다.
 검은 남자가 그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때 말이야. 건물 안으로 쫓아들어갔지. 철모로 머리를 으깨서 죽였잖아.»
 그 말을 듣고 그는 갑자기 기억해냈다. 오래 전,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기억이었다. 그는 무서웠고, 신이 났고, ... 전율하며 광란했다.
 «즐거웠지?»
 검은 남자가 마치 그의 마음 속을 꿰뚫어본 것처럼 말했다.
 «누구에게나 첫 경험이 가장 짜릿한 법이지. 흥분되지 않았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가 소리쳤다.
 «전쟁 중이었어. 나는 적군을 죽인 거라고. 그게 뭐가 잘못이야?»
 «전투 중에 적군을 죽일 때는 보통 총을 쏘거나 칼로 찌르는 법이지.»
 검은 남자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손맛을 음미하면서 철모로 두개골을 한 조각, 한 조각씩 으깨지는 않아.»
 «너, 도대체 누구야!»
 그가 드디어 물었다.
 «누구야, 어디 소속이야! 난 사면 복권됐어. 비밀경찰에서 따라다닐 이유가 없단 말이야!»
 «난 비밀 경찰이 아니야.»
 검은 남자가 아까처럼 소리 없이 보이지 않게 웃었다.
 «내가 누군지는 자네가 더 잘 알 텐데.»
 그래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검은 남자에게 덤벼들었다.
 
 남자의 목을 붙잡고 창가로 밀어붙였을 때 그는 손아귀에 잡힌 남자의 목 윗부분, 턱 아래쪽에 귀에서 귀까지 찢어진 상처가 크게 입을 벌린 것을 보았다. 바깥에서 비친 가로등 불빛이 어렴풋하게 남자의 얼굴을 비추었다.
 «세라피모비치?»
 그가 남자의 목을 잡은 채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너는 죽었는데....»
 «기억해주다니 반갑군.»
 검은 남자가 찢어진 목을 붙잡힌 채로 웃었다.
 그리고 남자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는 남자의 찢긴 목을 양손으로 힘껏 움켜잡은 채 뒤로 질질 밀렸다. 검은 남자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그는 맥없이 바닥에 쓰러져 큰 대자로 누워 버렸다.
 남자의 등에서 거대한 검은 날개가 펼쳐져 방안을 뒤덮었다. 깃털이 달린 천사의 흰 날개가 아니라 밤 하늘을 뒤덮은 검은 장막과도 같은 박쥐의 날개였다.
 남자가 그의 배 위에 올라탔다. 날개 끝에 달린, 발톱이 뾰족하게 솟아오른 날카로운 발로 남자는 그의 양 손목을 잡고 눌렀다. 그는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검은 남자는 그를 향해 몸을 숙이고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 없나?»
 «어째서?»
 그가 헐떡거렸다.
 «어째서 날 죽이려는 건데?»
 검은 남자는 잠깐 망설이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그게 신께서 맡기신 내 임무다.»
 «뭐?»
 검은 남자는 그를 향해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영혼은 죽어서 신 앞에 나아갔다. 살아서 악행을 저질렀으나 참회하고 회개했기 때문에 신께서 내 영혼이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만은 면하게 해 주셨다. 그러나 무고한 인간의 목숨을 빼앗은 벌로 나는 어두운 날개를 달고 다시 이 지상에 떨어졌다. 그리고 너와 같은 인간들이 더 이상 나와 같은 사람들을 수렁에 빠뜨리지 않도록 찾아내어 신 앞에 데려간다. 그것이 내가 맡은 일이다.»
 «날 데려간다고.... 신에게?»
 그가 말하며 자기도 모르게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박쥐의 발톱이 손목을 꽉 눌렀기 때문에 곧 몸에 힘을 빼고 다시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는 검은 남자를 향해 비웃었다.
 «너는 어리석어 스스로 나를 따랐다. 내가 악행을 저질렀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그러나 너는 눈먼 개처럼 타인을 따르며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깨닫지조차 못하였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를 재판하여 죽이고 살린단 말이냐?»
 «재판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다.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신의 뜻이다.»
 검은 남자가 대답했다. 다시 한 번 몸을 기울였다. 그를 온몸으로 짓누르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네 말이 옳다. 나는 어리석었다. 그래서 길을 잘못 들어 너와 같은 어둠의 권세가 기승하는 것을 도왔다. 그러나 언젠가는 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다. 선한 자들이 그 선량함 때문에 고통받지 않고 너와 같이 거친 자들이 그 폭압과 얕은 꾀를 지혜로 알고 자랑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을 위하여 어제는 내가 죽었고 오늘은 네가 죽는다.»
 속삭이면서 검은 남자는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는 몸부림치려 했으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박쥐의 발톱이 양 손목을 짓누르고 검은 남자의 손톱이 목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그는 붉은 진흙 속에 있었다. 사방에 붉은 진흙의 강, 붉은 진흙의 바다가 흘렀고 하늘은 끝없는 어둠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붉은 진흙의 일부가 되어 수천 번, 수만 번씩 산산히 흩어지고 녹아 부서지며 영원토록 타올랐다. 그는 몸부림치며 검은 하늘을 향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타오르는 목에서 내지른 비명은 소리를 이루기 전에 불씨가 되어 흩어졌고 부서진 몸은 움직이지 못한 채 사방을 둘러싼 불길과 함께 일렁이며 타오를 뿐이었다.
 그리고 어두운 하늘 저편에서 누군가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지은 뒤 검은 날개를 거두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서서 조용히 무한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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