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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시티 최악의 변신

2022.06.01 00:0006.01

최악의 변신

노말시티

 

쨍그랑.

무언가가 산산이 조각나 흩어지는 소리가 주방에서 들려왔다. 불안한 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예감이랄 것도 없었다. 당신은 이번 주에만 벌써 세 개의 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원망보다 걱정이 걱정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커다란 유리 조각을 쓸어내고 진공청소기로 가루를 빨아들이고 빡빡 걸레질해대는 동안 당신은 붙어버린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맨 처음 컵을 떨어뜨렸던 때처럼 말도 안 되는 농담이라도 늘어놓으면 좋으련만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이 허세를 떨면 나는 타박하고. 당신이 허허 웃으면 나도 따라 웃고. 그게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이었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두려움이 다시 이유 없는 원망으로 돌아왔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 건 분명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는 손목터널증후군이나 뇌졸중을 의심하며 온갖 불길한 상상에 시달렸다. 검사 결과는 멀쩡했다. 처음에는 병명을 하나씩 지워나갈수록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예상되는 병명이 몇 개 남지 않자 미뤄뒀던 불안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증상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그 불안은 세상 무엇도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던 당신의 낙천까지 잡아먹었다. 당신은 말수가 줄었다.

“이참에 그냥 남은 컵들 다 플라스틱으로 바꿔 버리자. 그까짓 게 뭐 대수라고.”

내가 청소를 끝낼 때까지도 당신은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주물럭거리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병원에서 멀쩡하다니까. 컵을 떨어뜨리는 걸 막을 수 없으면 떨어져도 안 깨지는 컵을 사면 되지. 당신이 컵을 떨어뜨리는 것보다 말수가 줄어든 게 더 싫어. 내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기 직전에 당신이 입을 열었다.

“내 손이 아닌 거 같아. 하. 정말. 그냥 잘라 버리고 싶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병원에서 멀쩡하다잖아. 손이...”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당신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느꼈다. 당신의 손은 이상했다. 당신의 손이 아닌 것 같았다. 왜 이러지. 나는 세상에서 당신의 손을 가장 많이 잡아 본 사람이다. 당신보다도 훨씬 많이 잡아 봤을 거다. 당신의 손등이 얼마나 매끄러운지. 마디의 굴곡이 어떤 느낌인지. 기다란 손가락 끝의 둥근 살집이 얼마나 탄력 있는지. 눈을 감고 만져도 나는 당신의 손을 구별해 낼 자신이 있다. 그런데 달랐다.

“손가락이 조금 짧아진 거 같은데.”

당신의 기다란 손가락이 좋았다. 실수로 잘라낸 것처럼 몽땅한 내 손가락과 달리 당신의 손가락은 길고 매끈했다. 유심히 살펴보고 착각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당신의 손가락 중에서도 중지와 검지 두 개만 짧았다. 내 손과 맞대어 보니 확실했다. 내 손가락 위쪽으로 비쭉 튀어나온 다른 손가락과 달리 중지와 검지는 길이가 똑같았다.

“이것 때문에 자꾸 컵을 놓쳤나 봐. 몸에 밴 습관보다 손가락이 짧아서.”

손가락이 짧아지다니. 이상한 일이다.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른다. 뇌졸중보다는 나으니까. 신경 계통이나 뇌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보다는 손가락이 짧은 게 당연히 낫다. 비정상적으로 짧은 것도 아니다. 유난히 길었던 손가락이 평균보다 조금 짧아진 것뿐이니까.

원인을 알게 되자 컵을 떨어뜨리는 일도 줄었다. 당신은 짧아진 손가락에 빠르게 적응했다. 나머지 손가락들도 하나둘 짧아지기 시작하더니 불과 보름 만에 열 개의 손가락이 모두 짧아졌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길이가 뒤죽박죽인 것보다는 똑같이 짧은 게 차라리 나으니 오히려 좋아졌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하나는 확실히 좋아졌다. 당신의 말수가 다시 늘었다.

당신의 기다란 손가락을 쓰다듬을 수 없게 된 걸 제외하고는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갔다. 돌아간 줄 알았다.

“나 가슴이 좀 나와 보이지 않아? 운동해서 그러나?”

“운동을 얼마나 했다고. 어깨는 더 좁아진 거 같은데.”

“그래?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는 당신을 끌고 병원으로 갔다. 이번에도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다만 이번에는 확실한 진단이 나왔다. 호르몬 이상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당신에게는 남성호르몬 대신 여성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인데 다만 그 정도가 조금 과하다고 했다. 운동하고 체중을 조절하면 된다. 약도 처방받았다. 당신은 꽤 열심히 의사의 처방에 따랐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당신의 몸은 이제 누가 봐도 여성의 몸이다. 그게 단순히 호르몬의 과다 분비 때문은 아니라는 걸 나는 진작에 눈치챘다. 당신의 몸은 서서히 변해가지 않았다. 손가락의 경우처럼 하나씩 하나씩 교체되는 식이었다. 가슴이 커지고 어깨가 좁아지고 골반이 넓어졌다. 그건 그럴 수 있다 치자. 불과 일주일 만에 남성기가 여성기로 바뀐 걸 대체 어떤 현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건강이 나빠진 건 아니잖아.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뭐가 중요해.”

나도 동의한다. 당신은 여전히 낙천적이었다. 처음 컵을 떨어뜨리기 시작했을 때와 달리 당신은 이미 신체의 변화를 받아들인 듯했다. 당신은 여전히 말이 많았고 허세가 심했다. 내가 그 허세를 타박하면 허허 웃는 것도 여전했다. 그러나 나는 더는 당신을 따라 웃지 못했다. 그렇다면 변한 건 당신이 아니라 나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게 어떤 몸이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여전히 그 안에 들어있었다. 옷을 입으면 그다지 티가 나지도 않았다. 스포츠 브라를 입고 품이 넓은 옷으로 가리면 그럭저럭 예전의 모습과 비슷했다. 키높이 구두까지 신으니 체격도 대충 맞출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당신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목소리가 문제였는데 당신은 노력으로 극복했다.

“어때. 비슷하지? 내가 원래 성대모사에 좀 재능이 있었잖아.”

당신은 원래 당신의 목소리였던 목소리를 흉내 냈다. 꽤 그럴듯했다. 하지만 예전에 날 그렇게 웃게 했던 당신의 성대모사 실력은 이제 재미있지 않았다. 그저 몸이 변했을 뿐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었다. 하지만 몸이 그대로인 나는 어딘가 다른 부분이 변한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이제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다.

내가 사랑한 건 당신의 몸이었을까.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당신의 영혼과 생각과 마음에 더해 당연히 당신의 몸도 사랑했다. 당신의 몸이 달라졌으니 나의 사랑이 조금 식을 수도 있다. 그걸 가지고 내가 변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무언가 훨씬 불길한 어떤 예감이 당신에게서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당신의 몸이 바뀌어서가 아니다. 당신의 몸이 나와 같은 여성으로 바뀌어서도 아니다.

놀랍게도 나는 당신과의 육체관계에서 예전보다 더 큰 쾌감을 느꼈다. 당신은 능숙하게 나를 리드하면서 우리의 성별이 같다는 사실에서 단점보다 더 많은 장점을 찾아냈다. 그 과정이 당신에게도 즐거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거부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걸 티 내지 않기 위해 당신이 얼마나 노력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니까.

당신이 내게 보여주는 헌신에 보답하려면 나는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해야 했다. 당신이 내게 주고 내가 기꺼이 받아들인 쾌락으로 나는 당신에게 더 매달려야 했다. 변함없는 당신의 마음도 변해 버린 당신의 몸도 나의 변화를 설명하지 못했다. 더 이상 내게는 핑계가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랑은 내게서 빠져나가 버렸다. 그 모든 건 나의 책임이었다. 나는 절박했다.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당신의 몸이 뒤바뀌고 나서야 결국 나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았다.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없다.

얼굴이 변하기 시작하면서 당신은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입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바뀌어 가는 당신의 얼굴은 누가 봐도 조화롭지 못했다. 마치 서로 다른 사람의 얼굴을 억지로 섞어 놓은 몽타주 같았다. 얼굴 형태와 관계없이 배치된 이목구비는 자연스럽지 못했다. 마스크로 가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얼굴의 모든 부분이 뒤바뀌고 나서야 당신은 겨우 다시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를 포기해야 했다.

아마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위화감을 느끼는 건 거울을 볼 때뿐이니까. 당신은 나와 눈을 마주칠 때 당신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아니. 당신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의 얼굴이 아무리 추하게 변했다고 해도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 설령 당신의 얼굴이 사람이 아니라 털로 뒤덮인 짐승의 얼굴이라고 해도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 당신의 머리가 뎅겅 잘려서 목 위에 덜렁덜렁 붙어 있다고 해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목 위에 올려져 있는 게 내 얼굴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얼굴뿐만 아니라 당신의 가슴과 골반과 손가락 하나까지 모두 나와 똑같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뱃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모두 쏟아 내야 했다. 당신의 몸을 붙들고 아니 나의 몸을 붙들고 흘려댔던 신음까지도 모두 토해내고 싶었다.

나는 나를 좋아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할 수는 없다. 나는 나와 비슷한 당신의 어떤 면을 좋아했다. 편하고 익숙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한 당신의 모습은 하나같이 나와는 다른 부분이었다. 나는 당신의 기다란 손가락을 사랑했다. 나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낙천과 허세를 사랑했다. 사랑은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와 똑같은 당신을 나는 사랑할 이유가 없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건 끔찍한 일이다.

그래.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다. 당신은 여전히 낙천적이고 싸늘하게 굳은 내 표정을 보면서도 허허 웃으며 따라 웃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당신이 나와 똑같은 몸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당신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나의 결핍을 내 피부 위에 칼로 그어 새기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차라리 두 눈을 찔러 버린다면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 눈을 감아도 나는 내 앞에서 웃는 게 나의 몸이라는 걸 안다. 알고 있게 되어 버렸다. 나는 도저히 나의 몸을 안을 수 없다. 손을 대는 것만으로 소름 끼친다. 나의 사랑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는 몰라야 했다. 너무도 잔인한 방식으로 나는 그걸 깨달아 버렸다. 나의 사랑은 이미 깨져버린 컵처럼 산산이 조각나 흩어졌다. 쨍그랑,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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