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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경 코퍼레이션

2017.12.01 00:0012.01

코퍼레이션

윤여경

남자들이 여자로 바뀌어버린 것은 여자의 룸메이트가 집을 나가버린 그 사건 보다 훨씬 이전인 십년 전 12월 22일부터였다. 소식 하나가 도시를 흔들었다. 신문과 뉴스에 대서특필된 그 내용은 그 후 한 달 동안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도시의 식수원이 남성호르몬활동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유해바이러스로 변질되어 식수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했다. 도시의 남자들은 모두 남성호르몬을 줄여주는 주사를 맞아야 했다. 지구상의 호르몬균형을 중재하는 HB Corp.(호르몬균형회)이 신설되어 그 대업을 맡았다. 그 덕분에 도시의 호르몬 균형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식수원을 중화할 백신은 개발 중이었고 곧 출시된다고 했다. 곧이 언제인지는 몰랐지만 언젠가는 해결된다는 얘기였고 흥분했던 사람들은 이내 잠잠해졌다. 그 ‘언젠가’는 십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고 그동안 남자들의 가슴은 둥글게 융기했고 돌출된 성기는 자취를 감췄다. 그들은 여자가 된 자신의 모습을 거울 속에서 발견했고 곧 자신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 여자사냥이나 취직사냥을 하는 대신 쇼핑몰에서 물건을 채집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남성호르몬을 유지하려면 눈이 튀어 나올 만큼 비싼 남성호르몬 배출권을 호르몬균형회에서 구입해야만 했다. 남성호르몬발산은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냥, 투쟁, 궐기, 도전 같은 일들은 스포츠선수나 TV연속극주인공에게만 허용되었다. 그 수는 매우 적어서 그런 남자나 또는 여자를 세상에서 찾아보기란 힘들었다. 결국 남자란 TV안에서만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

여자는 TV를 보고 있었다. 룸메이트가 남기고 간 유일한 물건이었다. 여자는 룸메이트에게 이십만원을 주었다. 3년 된 42인치 LCD TV로는 적당한 가격이었다.

TV에서는 연속극이 나오고 있었다. 한 남자가 주인공이었다. 그는 대기업소유주의 잃어버린 아들이었지만 출생의 비밀 때문에 이복여동생과 사랑에 빠졌다가 우연히 만난 아버지의 후계자인 김팀장에게 시련을 겪는 중이었다. 그는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을 당해서 청소부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소파에 몸을 붙이고 숨을 죽인 채 그의 비극적인 운명을 지켜보았다.

저녁 여덟시. 룸메이트와 같이 살았을 때에는 퇴근하자마자 청소기를 돌리고 있을 시간이었다. 이미 남성호르몬 수치가 많이 줄어들어 여성화된 룸메이트는 취직자리를 구하는 대신 아르바이트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여자를 만지고 싶어 하는 대신 컴퓨터자판을 만지작거렸다. 여자를 바라보는 대신 거울을 보거나 자신의 모습을 사진 찍으며 놀았다. 룸메이트와는 대조되게도 여자는 가끔 그를 만지고 싶었다. 그럴 때면 청소기를 들고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룸메이트는 청소기가 다가오면 발을 들었고 여자가 밥이라도 지어주면 컴퓨터 앞으로 가져가서 먹었다.

어느 날 여자는 청소기와 밥그릇 대신 자신의 손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룸메이트는 잠시 여자의 손을 보고 다시 컴퓨터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자는 뒤에서 그를 안았다. 여자를 떨쳐내려고 어깨와 팔을 흔드는 그는 물고기 같았다. 무한한 공기 속에서 숨 쉬는 방법을 몰라 죽어가는, 할딱거리는 물고기. 괜찮아. 여자는 더 세게 그를 안았다. 손끝에 그의 뭉클한 가슴몽우리와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룸메이트는 네게 필요한 건 남자야, 라고 말하고 짐을 싸들고 현관을 나섰다.

그의 뒷모습은 아직도 남자였다. 여자는 잠시 생각했다. 내 잘못일까? 여자가 스물네시간 옆에 있어도 룸메이트의 남성호르몬수치는 내려가기만 하고 그는 점점 더 여성화했다.

룸메이트가 떠난 뒤 여자는 TV를 보기 시작했다. 회사에 가면 계속 졸았고 밥을 먹으면서도 졸았다. 몽롱한 상태로 시간의 흐름도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회사 가는 것도 잊었다. 전화가 걸려왔지만 상대방이 하는 말을 흘려들었다. 나중에는 전화도 오지 않았다. 여자는 TV를 밤낮으로 볼 수 있었다. 유선서비스를 통해 프로그램 다시보기도 할 수 있고 인터넷연결도 되었기에 잠을 잘 시간이 없었다. 가끔 수돗물에 비스킷을 적셔 먹으며 아랫배가 뒤틀리는 상태를 달랬다. 난방이 끊긴 것으로 보아 두 달은 족히 넘게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전기세와 다르게 지로용지로 납부하는 가스사용대금를 연체해서였다. 몸이 으슬으슬했지만 대금을 납부하러 밖으로 나가기가 망설여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무서워졌다. 어느 날 밤, 정규방송이 끝나자 TV가 지지직거렸다. 요금미납 때문에 인터넷연결도 유선방송도 해지된 것 같았다. 여자는 네모지고 말라빠진 TV에 손을 댔다. 온기가 손바닥에 스며들었다. 여자는 TV를 들어 바닥에 내려놓고 같이 누웠다.

여자의 홀아버지는 TV를 바닥에 놓아두었다. 도둑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항상 크게 틀어놓으라고도 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잠이 든 후에야 돌아왔기 때문에 여자는 더 빨리 잠에 들려고 초저녁부터 TV옆에 누워 숙제를 했다. 한밤중에 옆자리를 더듬으면 온기가 전해오거나 말소리가 들리곤 했다. 어느 날부터는 그 온기와 말소리가 TV인지 아버지의 목소리인지 잘 구분해내기 힘들어졌다. 서울로 올라와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여자는 TV를 사지 않았다. 대신 룸메이트를 구했다. 삼년 뒤 룸메이트는 TV를 놓고 떠났다.

어렸을 때 보일러가 고장이라도 나면 아버지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혼자 있으면 방은 더 춥고 무섭게 느껴졌다. 그 때 처음 TV를 안았다. 지금의 TV와는 차이가 많았지만 온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았다.

여자는 볼을 TV브라운관에 대어보았다.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말소리 같았다. 따스함도 마치 사람과 같았다. 지지직. 갑자기 화면이 여자의 뺨을 건드렸다. 정전기였을까? 여자는 자신의 뺨에 손을 댔다.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문 좀 열어주세요. 여자는 화면에서 얼굴을 떼고 TV를 다시 보았다.

다시 보니 소리는 화면 안이 아니라 현관 바깥에서 났다. 여자는 현관 쪽을 돌아보았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다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으로 다가가 외시경 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초인종소리가 울렸다. 여자는 차가운 철문에서 얼굴을 뗐다. 인터폰 안에서 한 남자가 하늘색 청소부제복을 입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여자는 문을 열었고 그들은 서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룸메이트가 필요하시죠?”

남자가 말했다.

“누구세요?”

여자가 물었다.

“저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기억을 잃어서 지금은 청소부로 일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대답했다.

“뒤를 돌아보세요.”

여자가 부탁하자 남자가 뒤를 돌았다. 여자는 뒤에서 남자를 안았다. 심장박동은 둥둥 울렸고 가슴팍은 따스했다.

“들어오세요.”

여자는 두 팔로 감싸 안은 채 남자에게 말했다.

“그럼 팔을 놔주세요.”

남자가 말했다.

방으로 들어 온 남자는 차를 한잔 달라고 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묻자 자신은 기억을 잃어버려서 알 수 없다고 했다. 몇시간동안 그들은 얘기를 했는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 여자는 잘 기억할 수는 없었다. 단지, 그는 이야기하는 내내 여자의 눈을 바라보았고 찻잔을 만지는 여자의 손을 물끄러미 보기도 했다는 것은 기억이 났다. 밤 여덟시 오분 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봐야 해요. 약속이 있어요.”

“이 밤에 어디로요?”

남자는 TV를 가리켰다. 여자는 TV를 켰다. 일일연속극 예고가 나오고 있었다. 남자가 기억을 찾은 뒤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기로 한 김팀장과 칼부림을 할 것이라는 내용의 예고였다.

“안 가면 안돼요? 거긴 너무 위험한 곳 같아요. 그냥 저와 있으면 안 되나요?”

여자가 부탁하자 남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 김팀장과는 만나지 마세요.”

여자는 당부했다.

“부탁이에요.”

여자는 또 한 번 당부했다. 남자는 손을 흔들며 TV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그는 온 몸에 피를 묻히고 돌아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배신한 놈에게 한수 가르쳐줬죠. 칼을 들었어요. 김팀장과 싸우다가 기억이 돌아왔어요. 이제 전 복수할 거예요.”

여자는 욕조에 찬 물을 가득 채워 옷을 담궜다. 핏물은 물속에서 음모처럼 번졌다. 여자는 옷을 손으로 세탁해서 락스를 넣은 물에 한번 삶은 뒤 빨랫대에 널었다. 티셔츠의 체크무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

“미안해서 어떡하죠?”

여자가 물었다.

“괜찮아요. 이젠 티셔츠 입을 일이 없으니까요.”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 피곤한지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남자는 저녁 여덟시면 TV속으로 들어갔다.

연속극 속의 남자는 비싼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회사를 인수해 성공가도를 달렸다. 회사의 경영진들이 실무경험이 없는 남자의 실력을 무시하자 육개월만에 남자는 획기적인 제안으로 도산위기에 처한 대기업을 세계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미 미국유학 십년동안 MBA까지 취득해서 돌아왔던 동생은 다시 미국유학길에 올랐다.

“당분간 안 나가도 되요.”

어느 날 남자가 여자에게 말했다. 연속극은 끝났다. 남자의 이복여동생과 배신한 김팀장과 그의 측근들과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회사 경영진들이 모두 미국유학을 떠난 후였다.

“정말 통쾌했어요. 나의 적들을 비행기에 태워 멀리 보내는 기분이란.”

남자가 말했다.

“저도 시원했어요. 그 김팀장의 표정 봤어요? 얼마나 초라하던지.”

여자도 맞장구를 치며 남자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남자의 표정이 변하더니 자신의 어깨에 올린 여자의 손을 잡았다. 여자는 놀라서 손을 뺐다. 차를 만들겠다고 주방으로 오면서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오늘 집에 있을 거죠?”

여자는 차를 건네면서 남자에게 물었다.

“아니오.”

남자가 말했다.

TV속에서 남자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남자는 재벌의 아들이었다. 그는 한 여고생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이미 언론사 거물의 아들과 정치 거물의 아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었다. 암사자 한 마리를 놓고 싸우는 사자들처럼 남자는 남고생들과 쟁탈전을 벌였다. 혈기왕성한 남고생들이 몸을 뒹굴며 싸우는 장면은 동물의 세계를 찍은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했다. 두명의 흠모자는 결국 남자의 우세한 힘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수하가 되었다. 그 이후에도 여고생은 한시도 쉬지 않고 납치되었다가 강간당할 뻔하는 등 악인의 계락에 빠졌기 때문에 남자는 그녀를 구출해내느라 바빴다.

집에 돌아온 남자는 말할 기운도 없어서 소파에 쓰러졌다. 다른 여자를 쫓아다니는 남자가 미웠지만 좁고 음습한 방안에 팔다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누워있는 그가 고마웠다. 그렇게 삼개월을 보내고 나서 남자는 일주일간 쉰다고 여자에게 말했다.

“그럼 푹 쉬어요.”

여자는 그에게 따스한 차를 건네고 돌아섰다.

“따스한 차 항상 고마워요.”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여자의 손을 잡았다. 여자는 뒤를 돌았고 남자의 눈에 불꽃을 머금은 것을 보았다. 누구의 손이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탐했다. 좁고 음습한 방이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해변처럼 느껴졌던 시간이 흐른 뒤 남자가 팔베개를 해주자 여자는 미소 지었다.

“당신도 제가 가는 곳에 함께 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괜찮아요. 볼 수는 있으니까요. 그리고 당신은 매일 위험한 일만 벌이잖아요. 인생이 그렇게 박진감 넘치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전 그냥 지금처럼 평온한 게 좋아요. 당신은 밖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집에만 돌아오면 되요.”

집이라고 발음하는 순간 여자의 입술이 약간 떨렸다.

일주일 뒤 남자는 TV 속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는 빌딩 20층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렸다가 5층에서 창유리를 부수고 들어가 총격전을 벌였다. 빌딩을 점거하고 백일동안이나 질질 끈 노사협상사태를 특공대원 남자 한 명이 영웅처럼 한 순간에 진압하는 장면은 미국영화처럼 속도감이 있었다. 일이 끝난 뒤 그는 제임스 본드처럼 축하연에서 축배를 들었는데 옆에서는 아슬아슬한 옷차림의 여자들이 선망의 눈으로 그를 보았다.

“며칠간 못 들어와요.”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 집을 비우는 일들이 잦아졌다.

아침에 일어나 TV를 켜면 남자는 북한에 혼자 침투해서 총격전과 육탄전을 벌였다. 전투 중에도 헐벗은 북한주민들이 몰려나와 남자를 영웅처럼 응원했다. 소음처럼 울려대는 총격소리에 지친 여자는 저도 모르게 TV를 껐다.

여자는 남자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아서 항상 걱정에 마음을 졸이곤 했다.

“걱정 말아요. 전 당신과 오래 있을 거예요.”

어느 날 남자가 말했다. 그 눈을 보며 여자는 편안함을 느꼈다. 여자가 불안해 할 때마다 남자는 그 말을 반복해주었다.

“이번엔 오래 쉴 것 같아요.”

십여년이 흐른 어느 날 남자가 말했다. 그는 정말로 오래 쉬었다. 그동안 TV속의 남자의 빈 자리는 젊고 새로운 얼굴의 남자들이 채워줬다. TV가 오랫동안 그를 불러주지 않자 그는 평범한 사람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일 년 육 개월이나 쉬던 어느 날 남자가 욕실에서 여자를 불렀다.

“이상해요. 가슴이… 제 가슴이 세모가 돼버렸어요.”

남자가 말했다.

“운동한 게 효과가 있었나 보죠. 식스팩은 안 생겼나요?”

여자가 물었다.

“운동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하긴. 생각보다 근육이 잘 만들어지는 체질인가봐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거울 속의 자신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십분 정도 뒤에 여자가 ‘거울 좀 그만 보고 나오세요’라고 소리 질렀다.

몇달 뒤 남자의 가슴은 확연히 봉긋해졌다. 남자는 완전히 여성화되었다. 몸매는 둥글어졌고 수염도 사라졌다. 하지만 십여년 전의 그 룸메이트와는 반대로 여자를 아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육체적으로는 불가능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완벽했다. 친구처럼 지냈지만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처럼 서로에게 헌신했다.

남자는 더 이상 TV속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자와 함께 살기로 했다. 여자가 직장을 구하기로 했다. 운이 좋으면 어쩌면 그녀가 남성호르몬배출권을 구입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녀 자신이 남자가 되어도 둘 사이는 달라질 것이 없다고 느꼈다.

일 년 동안 여자는 두 사람의 밥값과 난방비와 전기세를 낼 수 있는 돈을 벌었다. 일 년이 지나면 월급이 오르기 때문에 둘은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년이 지나자 밥값과 난방비와 전기세는 월급인상분보다 더 올랐다.

둘은 남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인내심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돈으로 할 수 있는 더 좋은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누구의 생각이 먼저랄 것도 없었다. 그들은 아이가 하나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하지만 호르몬불균형으로 인해 보통사람들이 아이를 갖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를 가지려면 호르몬균형회에 거액을 내고 시술을 받아야 했다.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서 오년을 더 일하고 그들은 마침내 시술권을 구매할 수 있었다.

시술일 당일. 웨이브를 낸 헤어스타일도 비슷하고 물방울무늬 원피스도 비슷한 차림의 두 여자, 아니 두 남녀는 손을 맞잡고 시술대기실에서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흰 가운을 입은 시술실 간호사가 말했다. 남자와 여자는 손을 잡고 간호사를 따라 긴 복도를 지났다. 간호사는 패스워드를 눌러야 통과되는 두 개의 문을 지나서 마지막 철문 앞에 다다르자 그들을 세웠다.

“시술 내역서는 보셨죠? 그리고 동의하셨다시피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아직 한 사람도 그 동의서내용을 위반한 분이 없으시니 그 부분은 안심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간호사는 남자와 여자를 보며 말했다.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술내용을 발설하지 않을 것을 확인해주었다.

간호사는 문을 열었고 들어가라는 듯 손짓을 했다. 안은 눈부시게 환해서 남자와 여자는 손으로 눈을 가려야 했다. 곧 문이 잠기고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시술이 곧 시작되니 두 분은 침대위에 편안한 마음으로 누워계시면 됩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울렸다.

둘은 식은땀을 흘리며 기대반 걱정반으로 침대위로 올랐다. 나란히 누워서 서로 손을 잡았다.

“걱정 말아요. 제가 옆에 있잖아요.”

이제는 여자인 남자가 말했다.

갑자기 낮고 굵직한 저음이 방안에 울렸다.

“어서와요.”

TV 속에서나 들을 수 있는 진짜 남자의 목소리였다. 둘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사방으로 흰 벽만 보일 뿐이었다.

“나는 남자 중의 남자. 남자위의 남자. 가장 위대한 남자다. 나는 이 도시의 단 하나의 남성호르몬, 코퍼레이션이다. 도시의 아이들은 모두 내 아이들이다. 너희들이 낳을 아이도 내 아이이고 그 아이가 낳은 아이도 내 아이일 것이다.”

목소리가 말했다. 그리고 벽인 줄 알았던 문이 열렸다. 길이 3미터 폭이 1미터 가량의 대포만한 크기의 남근이 천장을 찌를 듯이 서서 다가왔다. 그것은 눈도 코도 입도 발도 없었지만 말하고 생각하고 걸었다.

“너희들이 오늘밤을 달궈줄 내 연인들인가?”

남근은 침을 흘리며 말했다.

여자는 두려움에 눈을 감고 옆에 누워있던 남자를 안았다. 남자의 볼이 여자의 볼에 와 닿았다. 눈물이 흘렀다. 거대한 남근이 말하는 소리가 지지직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여자는 눈을 떴다. 자신의 방안이었다. TV가 지직거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문 좀 열어주세요. 여자는 TV에서 눈을 떼서 현관 쪽을 보았다. 문을 열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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