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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호호혜적 웬수 : 파손 배상은 몸으로


승지는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앞으로 봐도 옆으로 봐도, 미남이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한참 도취에 빠져있던 그는, 곧 넥타이를 메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아직 출근에는 여유가 있어서, 그는 커피머신으로 커피 한 잔을 더 내려 마시고 아이패드로 아침 뉴스를 확인했다. 출근가방에는 어제 마무리한 사건에 대한 서류가 들어 있었다. 흰 셔츠에 어울리는 감색 넥타이 차림으로 그는 기지개를 켜고, 온기가 남아있는 빈 커피잔을 개수대에 내려놓았다. 재킷을 입고, 거실을 지나며 거울을 한 번 더 들여다보며 마치 제임스 본드라도 된 듯 셔츠 소매를 매만지는 것도 그는 잊지 않았다.

변호사 좌승지.

잘 생긴 얼굴에 잘나가는 스펙, 군에서도 착실히 공부해서 제대하자마자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재학 중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서른 살 나이에 벌써 변호사 생활만 6년차. 어디 봐도, 나만한 남자 찾기 쉽지 않지. 그는 차 안에서도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한번 슥 비춰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귀자는 여자는 언제나 줄을 이었지만, 그는 아직도 자유로웠다. 누군가에게 얽매이는 것이 싫었다. 세상은 넓고, 잠깐씩 데이트할 수 있는 여자친구들은 많은데다, 그보다는 취미생활에 몰두하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맞추기 위해 밀고 당기며 연애놀음을 계속하는 것은 그에겐 아무래도 맞지 않았다.

“이거, 이러다가 중매로 장가가는 거 아냐.”

스스로도 믿지 않을 농담을 중얼거리며, 그는 스포츠카의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당장이라도 레이싱 트랙 위에 올라서야 할 듯한 요란한 엔진소리, 이 엔진으로 아우토반이 아니라 차 많고 사람 많은 테헤란로를 엉금엉금 기어가야 하다니 딱한 생각이 아니 드는 것도 아니었지만, 일단은 출근이 먼저다. 질주는 아쉽지만 다음 주말을 기약할 수 밖에. 그는 서초동 법원 쪽으로 길을 접어들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실은 변호사가 아니라 파일럿이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까지만 해도, 늘 그 생각을 했다.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의 인생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가끔, 하늘을 볼 때는 그 생각을 했다. 만약에, 그 최초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하고.
 
“좌변, 지각이다.”

날렵한 스포츠카로도, 교통체증을 단숨에 뛰어넘어 사무실까지 갈 방법은 없다. 정말로 파일럿이 되었어야 했어. 생각하며 승지는 안쪽에서 이미 시작한 사무장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성큼 제 사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 다시 한 번 그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좌승지 변호사!”
“아, 또 왜요.”
“넌 오너에게 말버릇이.”
“......죄송합니다.”

그렇게만 대답하고 끝냈으면 정말 좋았으련만.

“그런데 아침부터 왜 그래요, 고모.”

그렇게 한 마디를 꼭 덧붙인 것이 언제나 화근이다. 법무법인 좌현의 오너, 올해 서른 아홉 살인 좌의정 변호사는 승지가 문을 닫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 승지의 얼굴에 집어던졌다. 학교 다닐 때 소프트볼 선수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던 이 맹렬 커리어우먼은, 정확하게 조카의 얼굴 한가운데에 슬리퍼를 명중시키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사무실에서 고모라고 부르지 말랬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잘생긴 얼굴에 무슨 짓이에요.”
“닥쳐. 똥오줌도 못 가릴 때부터 업어 키웠더니만.”
“그러니까 고모가 언제요.”
“고모라고 부르지 말라니깐!”

나머지 한 쪽도 벗어 던지려는 것을, 승지는 얼른 제 얼굴을 가격한 슬리퍼를 주워다 바치며 의정의 눈치를 살폈다. 의정은 슬리퍼를 받아 신다가, 승지를 올려다보았다.

“......하긴, 생긴 것 반반한 것 말고는 별 장점도 없긴 하지.”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저 나름 잘 이기거든요?”
“자잘한 사건 몇 개 이겼다고 아주 기세가 등등하구나, 너. 너, 이긴 건 좋은데 대체 의뢰인들한테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무슨 짓이라뇨.”
“또 전화왔잖아!”

아, 그거.

승지는 뒷목을 벅벅 긁었다. 의정이 파르르 떨며 책상을 짚고 일어났다.

“너, 올해 그만둔 사무장이 몇 명인지 기억은 나냐?”
“글쎄요, 여섯 명?”
“......지금이 5월이야. 어제 5월 된 거라고. 어떻게 한 달에 한 명 이상 그만두고 나가니?”
“그건 오너가 인덕이 없......”
“너 들어오기 전엔 안 그랬어.”
“엄밀히 말해 제 탓은 아니죠.”
“아, 그러세요?”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승지는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의정은 자리에서 걸어나와, 물러서는 승지를 그대로 벽으로 몰아세웠다. 키는 작은데, 기세만큼은 무슨 백두산 호랑이를 그대로 갈아마신 것 같다. 의정의 손이, 승지의 멱살을 콱 움켜쥐었다. 유리창에 비친 모습만 보면 고목나무에 매미가 매달린 것 같은 꼴이건만, 이 매미라면 마음만 먹으면 전기톱을 가져와 고목나무를 작살낼수도 있는 매미라는 게 문제지.

“사무장에다가 의뢰인까지, 네놈의 여자 편력은 어떻게 때와 장소를 가리질 않는거야!”
“아니 저는 그냥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막앗!”
“예......”
“또 너 때문에 사무장이 그만둔다거나, 또 멀쩡한 의뢰인이 사건 끝났는데도 자꾸 우리 사무실에 얼씬거리거나 전화해서 좌승지씨 만나야 한다면서 훌쩍훌쩍거리기라도 하면, 죽여버리겠어.”
“......”
“네가 내 조카건 좌씨집안 삼대독자건 상관없이, 죽여버린다. 알았어?!”
“예......”
“목소리가 작앗!”
“예엣!”
“좋아.”

겨우, 손을 놓았다. 승지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힐뻔 했다가 겨우 살아난 기분으로 의정을, 용서를 모르는 포악하고 사나운 고모를 바라보았다.

“할 일이 생겼다.”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일거리를 던져주곤 했으니까, 승지는 조금 긴장을 풀며 의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의정은 신문 한 장을 불쑥 내밀 뿐이었다.

“이게 뭐예요?”
“눈이 있으면 봐.”
“......별 거 없어 보이는데요.”
“그 머리통을 하고도 잘도 사법고시를 통과했군.”
“......”
“거기 안 보여? 경찰 쪽.”
“수사독립권요? 그거 계속 나오던 이야기잖아요.”
“그래.”
“어차피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형태였잖아요? 기소독점에다가, 명백한 범죄행위가 드러난 형사사건도 검찰 입맛에 안 맞으면 캔슬시켜 버릴 수 있는 기소편의주의까지. 어차피 이거 여기저기 분할될 수 밖에 없다고요. 앞으로는 배심원제도 강화될거고.”
“그래서, 대책은?”
“무슨 대책요?”
“우리, 법무법인 좌현이 앞으로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글쎄요, 이제 검찰 말고 경찰에도 가서 비벼야 한다?”
“......”
“아니면, 배심원제가 강화되니까 배심원들의 호감을 끌 수 있는 미모의 변호사를 양성해야 한다? 그런 거라면 여기, 서초구 변호사들중에서도 빛나는 미남인 제가 어떻게 좀.”
“너, 사법시험 동기 중에 수석 한 친구 기억나냐?”

순간 승지의 얼굴이 굳어졌다. 의정은 승지의 낯빛을 흘낏 쳐다보고는 쉬지않고 말을 이었다.

“그 친구 내가 알기로 경찰대라고 그랬어. 성적도 우수하고, 그때 판검사 될 수도 있는 걸 그냥 경찰 한다고 연수원만 하고 나가버렸다고 들었는데...... 그 친구 아직 경찰이야?”
“아직...... 하죠.”
“좋아, 그 친구를 우리 법무법인으로 영입한다.”
“......왜요?”
“왜라니.”
“평양감사도 저 싫다면 못 하는 건데, 판검사도 부귀영화도 싫다고 안하고 나간 놈을 뭘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그게 벌써 8년 전이야. 8년이면, 사람은 바뀌고도 남지. 당장 처자식이 딸렸다고 생각해 봐.”

그놈이 애아빠라니, 상상조차 되지 않았지만, 승지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공직이라, 거기 긍지를 갖고 사는 사람도 많지. 하지만 말이야, 애 낳고 키우고 살다 보면 아무래도 아무래도 한 푼이 아쉽지 않겠어? 하물며 변호사가 뭐 나쁜 짓 하는 사람들도 아니잖아? 충분히 명예롭고, 그러면서도 통장은 나날이 충만해질테고. 뭐, 내 입으로 장점을 더 열거하기 그렇지만 어쨌든 가서 그 친구, 낚아 와.”
“고모!”
“고모라고 부르지 말랬지, 좌승지 변호사!”
책상을 내리치는 기세에, 전화기가 들썩였다. 의정은 바로 전화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어, 김 사무장? 좌 변호사 책상 빼 버려. 안 되겠네.”
“아, 아뇨. 할께요. 하겠습니다!”
“책상은 두고, 짐만 빼 버려. 응. 장기 출장이야.”
“장기 출장이라뇨! 제가 어딜 간다고!”
“글세, 오늘 당장 설득해서 데려올 수 있다면 상관없지만. 가능해?”
“그러니까 저 보고 지금, 그 놈 잡아올 때 까진 일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에요?”
“사건 끝났겠다, 지금 달리 맡은 일도 없잖아? 할 일 없이 사무실에 앉아있어봤자 사무장들이나 뒤숭숭하게 만들 놈이. 가서, 목표물이나 잡아와. 평소에 여자 낚는 솜씨를 그대로 살려서, 사람 하나 제대로 낚아 오라고. 가 봐.”

뭐, 아무리 취업난이고 서초구의 변호사 사무실이나 로펌들도 경영이 어려워진 상황이라고는 해도, 좌승지 정도 되는 나름 잘나가는 변호사가 손가락만 빨아먹다 굶어죽을 일은 어지간해선 생기지 않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고모가 어지간한데는 다 잡고 있으니, 으......”

규모는 작아도 나름 짱짱한 실력, 빵빵한 인맥으로 무장한, 잘나가는 법무법인 좌현의 젊고 성격독한 오너 때문에, 여길 나가 어딜 간다고 한들 앞날이 수월할 것 같지는 않았다. 어느 직업군이든 전문직이라고 불리는 직종은 대개 그렇지만, 특히 이 법조계 쪽은 사법연수원 기수까지 앞뒤로 따져가며 호형호제 하는 이들은 그렇게나 많았고, 좋게 말해 가족같고 나쁘게 말해 군대의 연장선 같으며, 어쩐지 서로 사이가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부러 상대방의 심사를 긁으려 들지는 않으려 하는 미묘하게 복지부동적인 분위기가 아무래도 없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승지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아니, 서초구의 변호사 여러분들이 문제가 아니라, 고모한테 쫓겨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아버지한테 그야말로 박살이 날 텐데. 자식도 없고, 이제 사십이 다 되어 가니 어디 가서 연애해서 결혼할 전망도 없어 보이는 고모 밑에서 잘 붙어 지내다가 나중에 싹 물려받고 오너 노릇 하라는 게 아버지의 계획이긴 했는데, 그래봤자 열 살도 차이 안 나는 고모가 은퇴할 때 까지 기다리다가는 이쪽도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다 될 거라는 불편한 진실도 있기는 있고. 마음은 복잡했지만, 승지는 아직 할부가 덜 끝난 스포츠카에 아직도 새 것인 양 반짝이는 열쇠를 꽂으며 마음을 정했다.
까짓거, 잡아오라면 잡아오는 거지 뭐.
 
 
 
 
 
  
 
“뭐 하는 거냐.”

조금 전까지, 경찰서 앞마당에서 포돌이 포순이 가면을 쓴 의경들과 함께 유치원 아이들에게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던 잘 생긴 젊은 경찰관은,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보인 낯익은, 그러나 이 자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얼굴에 낯부터 찌푸렸다.

“오랜만이야, 아, 이제 윤 과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시끄러워.”
“오, 정말로 무궁화가 세 개네. 무궁화 세 개면 뭐야, 음. 저기 구청가면 발에 채이게 굴러다니는 사무관들하고 동급이던가?”
“그걸 왜 굳이 환산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변호사, 생각보다 한가한 직업인가보다?”
“설마.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평일 낮부터 경찰서에 왔다갔다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파리 날리는 모양이지.”

윤 관은 정복의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단추를 풀며 제 책상을 향해 걸어갔다. 관의 책상에 걸터앉아 발끝을 까딱거리던 좌승지는 미끄러지듯 책상에서 내려와 그의 앞에 섰다. 가죽 한 장으로 만든 미끈하고 날렵한 구두에, 관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몸에 잘 맞는 수트와 새하얀 셔츠 소맷단 밖으로 슬쩍 삐져나온 시계까지, 어디로 보아도 유능하게 생긴 변호사인 주제에 이 시각부터 이런 데서 죽치고 있는 것을 보면, 찾아온 이유야 뻔하다.

“역시 그거지?”
“뭐?”
“정 경장, 저 친구 좀 저 자리에서 끌어다가 분리수거장으로 데려다주지 않겠어요.”
“우와, 저 인권감수성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찾아볼 수 없는 경찰놈이 뭐라는거야.”
“반갑지 않은 동창이 오는 이유는 뻔하지 않나. 어디서 신호위반이나 과속이라도 하고는 딱지 끊을 까봐 온 거겠지. 미안하지만 우리 부서는 교통과가 아닌데다, 쓸데없는 청탁같은 게 들어오면 내 의사와 상관없이 감사실하고 면담을 해야 해. 귀찮은 일은 그 전에 없애버리는게 낫잖아.”
“그거 아니거든요?”
“그게 아닌데, 네놈이 여기 올 일이 뭐가 있어?”

관은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아 책꽂이 구경을 하고 있던 승지의 어깨를 붙잡아 그대로 책상에서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승지는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얼른 구석에 놓인 의자를 당겨 관의 책상 앞에 앉았다. 관은 보란 듯이, 승지가 앉았던 자리를 손바닥으로 털었다.

“바빠. 나 너랑 놀아줘야 할 만큼 한가한 사람 아니니까 용건만 간단히.”
“오오, 그래? 잠깐, 저 책꽂이에 저거 뭐야. 전직 대통령의 녹색성장 어쩌고.”
“디스플레이.”
“우와, 책을 읽지도 않고 과시용으로 꽂아놓는 건 윤 관 선생님이 제일 싫어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요. 근데 저런걸 세금으로 찍어서 과장님들한테 다 돌리나보지? 우와, 내 세금 돌려줘. 저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응?”
“그래서, 뭐 사람들을 탄압하는 검사가 되기보다는 사람들을 구해주는 변호사가 되겠다던 사람이, 얼마전에 누굴 변호했더라?”
“윽.”

승지의 기세가 아주 조금 꺾였다. 아, 그 일. 그 강간범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긴 한데,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오너가 자기 고모라도 그렇지, 명색이 변호사면서 자칭 인권변호사랍시고 이기기 어렵고, 사회적으로 조금은 이슈가 될 만한, 결정적으로 돈은 전혀 안 되는 일만 자기가 찾아다니며 하고 있으니 오너 보시기에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런 차원에서, 의정이 보편인권을 운운하며 법무법인 좌현 안에서도 다들 못본 척 외면하려 들던 그 흉악범을 변호하는 일을, 콕 집어다가 승지에게 맡긴 것이 아주 이해가 안 가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보편인권의 차원에서 그들도 변호를 받을 권리 정도는 있어.”
“실수로 살인하는 놈은 있어도 실수로 강간하는 새끼는 없다.”
“얌마.”
“그것도 임산부를 강간해 놓고. 그 새끼가 경찰서 잡혀와서, 증거 다 들이미니까 그때가서 범행 시인하면서 한 소리가 뭐였는지 알아? 임신한 여자는 어떤지 궁금해서 해봤댄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그런 말을 했어. 야, 그게 위법만 아니었으면 내 손으로 죽여버릴까 했다.”
“너였냐?”
“우리 서였지. 넌 변호사라는 새끼가 왜 기록은 제대로 안 읽어봐? 여길 찾아올 정신머리면.”
“......”
“여튼, 넌 그런 놈을, 심신미약에 어려운 가정환경, 심지어는 강간범이 감옥에 들어가면 어린 딸을 부양할 사람이 없다는 말까지 해 가면서.”
“과장은 했지만, 사실 아닌 건 없어.”
“됐어. 그 강간범 잡아들인 형사가 그 ‘악마같은 주둥아리를 가진 에미애비도 없는 변호사 새끼’ 잡으면 죽여버린다고 그러고 있는데, 난 그 변호사 이름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사람이라서 정말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이 쪽이 팔렸다. 혹시 어디서 늘씬하게 두들겨 맞고 싶으면, 저기 형사과 내려가서 ‘내 이름이 바로 좌승지다!’하고 가서 외쳐 봐. 스펙타클하게 얻어 터질 테니.”

아닌게 아니라, 좌승지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저쪽에 앉아서 일 보던 경찰들의 얼굴이 거의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이쪽을 돌아보기는 했다. 승지는 어쩐지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 정도 말에 낯빛이 바뀌진 않았으리라고 확신했다. 승지는 관의 책상 위에 놓인 까만 명패 뒤에 흐릿하게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변호사 생활로 단련된 이 철벽의 마스크는, 이 순간에도 상대방의 속을 긁는 듯한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뿌듯할 정도로.
  
 
 
 
 
 
 
  
할 말이 있다는 승지를 억지로 문 밖으로 밀어내듯 하여 돌려보내고, 관은 한참동안 책상 앞에 앉아 말없이 일거리들만 처리했다. 그래도 한때, 같은 방에서 먹고 자고 1년동안 함께 생활했던 사람이다. 친구라면 친구라고도 부를 수 있을지 모르지. 그렇게까지 독하게 말하고 싶진 않았지만, 언젠가 얼굴 보면 한 번쯤 그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 볼 일이 있기는 할까 하고 그대로 잊고 넘기려 했는데, 마침 그 녀석이 찾아온 것 뿐이다.

“과장님.”

생각에 잠겨 있는데, 정 경장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이거 지난 주에 오셨던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답례품으로 보낸 겁니다. 간식 드세요.”
“고마워요, 그런데...... 지금 점심시간 다 된 것 같은데.”
“앗.”
“밥 먹으러 가죠. 정 경장, 계에 어디 나가신 분들 안 계시죠? 같이 냉면이나 먹으러 갑시다.”
“회식입니까, 과장님?”

정 경장이 눈을 빛냈다. 그렇지. 보통은 회식이라고 하면 좋아하는구나. 어지간해서는 남에게 얻어먹을 일 보다 지갑 열 일이 더 많았던, 그래서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일정 간격으로 점심식사를 대접하는 일이라고 의무적으로 생각하던 관은, 또래인 정 경장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조금 반성했다. 이래서, 좀 더 남의 밑에서 박박 기면서 일했어야 하는 건데.

북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 윤 관. 올해 나이 31세.

경찰대학 재학 중 사법고시에 차석으로 합격하여, 졸업하고 2년만에 경감, 3년만에 경정이 되어, 그야말로 이 시의 최연소 경정이 되었다. 본래, 경찰대 출신들이나 젊은 나이에 승진한 사람들은 지방청에서 실무자로 근무를 하며 올라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불행히도 자리가 부족했다. 승진을 하면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야 하는데, 지방청에서 경감으로 근무하다가 승진할 때가 되니 갈 데가 없었다. 외가가 있는 다른 지역으로 갈까 하는 생각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높으신 분들이 그를 붙잡았다.

“우수한 인재가 이 지역을 떠나면 쓰나. 자네가 전경대 근무했던 북산경찰서에 마침 과장 자리가 하나 생길 것 같으니, 그리 보내주지.”

어린이 대상 범죄와 청소년의 왕따 문제가 심각해지던 지난 겨울, 전국의 경찰서에는 “여성청소년과”라는 새로운 부서가 생겼다.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말도 많았지만, 필요성도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경찰서의 과장이 되기에도 아직 너무 어린 나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관은, 다시 지방청으로 부를 때 까지 당분간만이라는 조건을 스스로 단 채, 북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과장으로 부임했다. 나이 서른에 과장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인사라고 말들도 많았지만, 어쨌든 명령이었다. 당분간만 이 자리에 있을 거라고 선언하고 오기는 했지만, 사소한 흠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가짐 정도로는 부족했다. 어쨌든 이 지역의 다른 경찰서들과 비교해서, 최고가 되어야만 했다.
시끄러운 일이라면 질색이고 실없는 농담이라면 학을 떼는데다 아이들이 매달리면 십리 밖으로 도망치고 싶고 마술은 트릭이 다 보여 졸릴 뿐이며 모여라 꿈동산을 떠올리게 하는 포돌이 탈은 촌스럽기 이루 말할 수조차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했다. 예산을 받아내고 재능기부라는 명목으로 구청에서 풍선아트 배우시는 아주머니들을 동원하고 3월이 되자마자 유치원 아이들을 매일매일 경찰서로 불러들여 어린이 성범죄 예방교육을 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실적 하나는 확실하게 쌓였다. 그 사이, 구내에서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과 유아 성범죄 사건도 언론에 이야기가 흘러나갈 틈도 없이 먼저 해결해내기까지 했다. 이런 범죄가 일어나면 우선 경찰을 성토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던 기자들조차 혀를 내둘렀다.

“진짜, 최연소 과장이라고 어디 경대출신 낙하산이 떨어졌나 했더니만.”
“야야, 거기 직원들 얼마나 죽어나겠냐. 쯧.”
“뭐, 경찰이야 범인 빨리 잡으면 되는거지.”

윤 관은, 유능했다. 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털어 한 단어로 요약하여 설명한다면, 유능, 두 글자로 말할 수 있으리라. 승진하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관례라서 잠깐 나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가하게 지낼 수는 없었다. 계속 일을 했고, 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직원들을 데리고 나가 밥을 사 먹였다. 실적이 쌓였고 경찰서의 실적에도 보탬이 되었다. 역시 엘리트는 다르다는 칭찬과, 젊은 놈이 현장에 대해 뭘 알겠느냐는 질투어린 빈정거림이 동시에 들려왔다.
현장. 그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현장이라는 것을, 경찰이 되어서 범인을 잡으러 돌아다닌 시간보다 책상 앞에 앉아있던 시간이 더 길었다는 것을, 관은 분명히 인정했다.

“이번에 그 사건, 역시 그 부인이 범인인 것 같아요.”

냉면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중, 원래 형사과 출신인 김 경사가 어제 들어온 사건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어떤 사건이죠?”
“에, 발명가가 자기 창고에서 죽었잖습니까. 죽었는데, 그게 불에 타서 죽은 거예요.”
“방화?”
“정확히는 그 사람한테 휘발유 뿌리고 불 붙인 거죠. 그 불이 창고로도 옮겨붙었고. 그런데 그게 좀 이상하단 말입니다. 아니, 라면을 끓이다가 냄비만 잘못 짚어도 사람이 화들짝 놀라고 비명지르고 그러는 게 당연한데, 이 사람, 불 붙은 채로 어떻게 팔다리 휘저으면서 저항한 흔적이 없어요.”
“죽기 전에 불이 붙었는데?”
“예. 죽기 전에요. 후두에 검댕 자국이 있다더라고요.”

화재가 난 집에서 발견된 시체의 목 안쪽을 보면, 이 사람이 죽은 뒤에 불이 났는지, 화재 때문에 죽었는지를 알 수 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숨을 쉬면서 코와 목 안으로 검댕 자국이 남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저항한 흔적이 없다니, 어쩐지 묘했다.

“바닥에 넘어진채로, 몸이 버둥거린 흔적은 있어요. 그런데 팔다리를 버둥거린 흔적이 없다고 해야 하나.”
“팔다리는 그냥 두고 몸만 움직였다고요?”
“그러니까 꼭, 등 뒤로 팔다리가 묶였던 것 같은...... 그런데 정작 뭘로 묶었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꼭, 좀 굵은 철사로 묶은 것 같긴 한데. 아예 흔적도 없어요.”

그러니까 범인이, 사람을 불태워 죽인 뒤 그 사람을 묶었던 철사만 회수해 간 것 같다는 이야기다. 관은 자신이 거의 경험하지 못한 세계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창고의 다른 곳은, 다른 곳도 타 버렸나요?”
“뭐, 반쯤 탔습니다. 그나마 소소한 고철들 있는 쪽은 무사한데, 정작 그 죽은 남자가 열심히 만들던 게 다 타 버렸어요.”
“뭘 만들었는데요. 무한동력기관이라도 만들고 있던 건 아니겠죠.”
“아뇨.”

냉면이 나왔다. 슬슬, 범죄 이야기는 그만둘 시간이다. 제 그릇을 받아 겨자부터 풀며 김 경사가 얼른 덧붙였다.

“글쎄요, 아마 인공위성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 같던데요.”
 
 
 
 
 
 
 
  
  
“아, 그 발명가요?”
“예,”
“아니, 과장님께서 살인사건은 왜 궁금해 하세요. 그런건 그냥 우리가 잡게 놔 두시지.”

형사들 몇이 낄낄거렸다. 이럴 때는, 대학 때 사법고시에 덜컥 합격하는 바람에 졸업하자마자 논스톱으로 승진한 것이 후회될 지경이다. 동기들은 아직 경위, 빠르면 경감을 달고 있었다. 청에 들어와 근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경찰서에서 근무했고, 그 중에는 형사가 되어 범인을 잡거나 취조를 하며, 같은 사무실 사람들과 형님 동생 하며 잘들 지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관은, 입장이 달랐다. 신임순경중에는 그와 동갑이거나 심지어는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도 있는데, 과장님이다. 다른 부서의 과장들은 조카 뻘인 그를, 처음에는 귀여워하면서 데리고 다니다가도 곧 흥미를 잃어버렸고, 나이가 맞는 사람들은 어울려주질 않았으며, 이렇게 뭔가 궁금한 게 있어 형사과에 내려와도, 형사들이 영 불편해하는 눈치를 보이니 늘 조심스럽기만 했다. 아아, 저 사무실 구석에 경찰대 선배가 앉아 있건만, 말 끝마다 빈정거리며 “과.장.님”소리를 붙여대니 어디 말 한 마디 붙일 수가 있나. 이럴 때는, 현장과는 천만리 거리가 멀지언정 차라리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급으로 높으신 분들이 굴러다니는 본청에 가 있는 편이 마음 편하겠다. 거기라고 관이 승진이 빠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승진 빠른 사람들은 다 그쪽에 모여 있다 보니, 그나마 위화감이라도 덜 느껴졌지. 그는 속으로는 적잖이 주눅이 들었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은 채 대답했다.

“공부하려고요.”
“공부? 으하하하.”

형사들 사이에서, 별 시답잖은 말을 다 들어보겠다는 듯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니, 공부라면 우리 경찰서에서도 공부 가장 잘하시기로 도가 트신 분이 여기서 무슨 공부를 하신다고요,”

딱히, 그가 궁금해할 일은 아니긴 했다. 그는 여성청소년과 과장이고, 강간이나 학교폭력 사건이라면 몰라도 이런 살인 방화 사건에까지 촉을 세울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 죽은 사람의 아내가 유력한 용의자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죠. 아, 가정폭력?”
“그런 셈이죠.”
“그 사건이라면 우리보다는 저기 과학수사계에 가 보시죠. 거기서 지금 골머리 싸매고 있으니까요. 정 궁금하시면 이따가 현장이라도 좀 보여드릴까요?”
“예.”

아무래도 현장을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간의 살인은, 대개 그 가정의 문제가 최악의 방향으로 곪아 터진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것도, 아기 엄마가 아기를 살해하는 것도. 부부간의 살인 또한 마찬가지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경우에는, 우발적인 살인이라는 말이 먹힌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신체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아내가 남편을 살해했다면, 감경적용을 받지 못해 오히려 더 중형을 받을 수 있다.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는 것이 100%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진상을 알아보고, 도와주고 싶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어쩌면 이런 건, 경찰보다는 변호사에게 어울리는 판단기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관은 승지를 떠올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 녀석, 대체 여긴 왜 온 거였지.

“여깁니다.”

범행이 일어난 장소는 창고로 쓰이던 낡은 컨테이너였다. 입구와 창 쪽으로도 불이 번졌는지,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관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다른 형사들과 함께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막상 들어가보니 그리 좁지만은 않은 창고 가운데, 사람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던 흔적이 다른 인화물질의 흔적과 함께 바닥에 남아 있었다.

“불에 타 죽은 시체 보신 적 있습니까?”
“사진으로는요.”
“어떤 사람들은 물에 빠져 죽은 게 더 끔찍하다고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불에 타 죽은 게 더 끔찍하다고 봐요, 사람이 불에 타면, 그냥 삼겹살 태우듯이 까맣게 타서 재가 되어 부서지는 게 아니에요. 오징어 굽듯이 살갗이 말려들고, 뱃속에 공기 있잖아요. 그게 빵 터져서 내장이 다 새어나오기도 하고. 불 끈다고 소방차가 와서 물 뿌려대다 보면, 심하게 탄 부분들은 그대로 숯덩어리 밟으면 깨지듯이 부서지기도 하고.”

한 사람의 목숨이 타 버린 역한 냄새는 아직 채 빠지지도 않았다. 바닥에서부터 문 쪽까지가 특히 그을려 있지만, 그런 것 치고는 벽 쪽은 비교적 깨끗한 것을 보니 문가에서 인화물질을 뿌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관은, 자주 와 보지 못하는 현장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침착하게 관찰했다.

“여기서 집까지는 코 앞입니다. 올해 마흔 둘인 피해자 부인하고, 아들하고, 그리고 처남이 같이 살고 있었어요. 처남이 올해 서른 아홉이었나.”
“처남 쪽 가족들은요?”
“사업이 망해서 얹혀 지낸다고 했어요. 평소에도, 피해자가 부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해 온 모양입니다. 이웃 사람들도 다 그 이야기 하더라고요. 아들은 올해 고등학교 들어갔고요.”
“충격이 크겠군요.”
“그렇죠, 뭐. 사실 고등학생 아들 정도면...... 자기 아버지 때려눕힐 수도 있고. 자기 엄마 때리는 거 막으려다가 실수로 잘못 때려서 죽었다, 그런 일도 일어나긴 일어나는데......”
“만약 범인이 이 가족 안에 있다면, 정상참작이 될 수 있으면 좋겠군요.”

관은 한숨을 쉬었다. 어린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서, 한 주에도 몇 번씩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아이들을 데려다가 안전교육을 시키고 있었지만, 이런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아팠다. 평생 남편에게 두들겨 맞던 여자가, 겨우 돌파구로 선택한 것이 살인이라면.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더욱.

“일단 처남하고 아들은 그 때 알리바이가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부인 쪽을 의심하게 되는데.”
“알리바이?”
“아들은 학원 갔고요, 처남은 뭐 했더라.”
“술 마시러 갔댔죠. 술. 친구들이랑.”
“맞아요. 맞습니다. 전화해서 일단 다 확인해 봤는데, 딱히 말이 어긋나는 것 같진 않아요.”

여기 오기 전에, 관은 잠시 과학수사팀에 들러 시체에 대해 물어보았다. 정확한 것은 국과수에 보내 부검을 해 봐야 알겠지만, 일단 손과 발이 등 뒤로 놓인 자세로 죽어 있었는데다, 손목에 그리 굵지는 않은, 그러나 뭔가로 단단히 묶였다가 풀린 듯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휘발유에 푹 젖은 발목 쪽은 그야말로 활활 타 버리는 바람에 부서지고 끊어져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아마 손목을 묶은 끈과 한 끈에 묶여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도 그을리기만 했던 머리 쪽에, 치명적이진 않지만 잠깐 힘을 잃을 정도의 타박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무언가로 빠르게 목 앞쪽과 뺨을 긁은 듯한 상처도 남아 있었다. 아마도 그 타박상을 입은 과정에서 몸싸움이 있었던 것 같지만, 적어도 손톱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손톱으로만 사람을 할퀴거나 긁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니 누구든, 머리를 때리고 손발을 묶은 뒤 불을 질렀다면 죽일 수 있다. 아들이건, 아내건. 혹은 빚 받으러 온 사람이건 간에. 그 방법이, 일반적으로 볼 때 꽤 잔인한데다 번거롭고, 실패 확률도 높다기는 하겠지만.

그럼 대체 누가 피해자를 살해했을까. 그 질문은, 대체 누가 피해자의 손발을 그렇게 묶었을까, 라는 질문과도 아마 일치할 거다. 하다못해 무엇으로 묶었는지 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아, 경찰 분들이신가요.”

누군가 이쪽으로 온다 했더니, 피해자의 처남이었다.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뭐...... 예, 조금.”

아까 보고를 받기로는 서른 아홉이라고 했는데, 고생을 많이 한 것인지, 사십 대 중반은 족히 되어 보였다.

“누님은요.”
“그렇지 않아도 입원시키고 오는 길입니다.”
“입원?”
“예, 많이 놀랐어요. 그...... 그 사람, 매형 숯덩이 된 걸 봐서 그런지. 저도 놀랐는데 누나야 당연히 놀랐겠죠. 자꾸 울고 토하고 주저앉고 그래서.”
“그럼 조카 분도 병원에 같이 가셨습니까?”
“아뇨. 많이 놀랐을 텐데. 그래도 학교 간다고 나섰어요. 상중인데, 또 아직 장례식은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선생님께 말씀은 드렸어요. 애가 걱정이죠...... 아, 장례식은 언제 치를 수 있나요?”
“글쎄요, 아직 좀 더 조사를 해야 하다 보니.”
“예......”

피해자의 처남은 알았다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매형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들었습니다.”
“제 말은, 그러니까 뭐 아주 쳐죽일 놈이고 악당이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좋은 가장은 아니었죠. 제가 여기 머무른 게 지금 한 2년째 되어가는데, 그 사이에 누나와 꽤 많이 싸웠어요. 때리기도 많이 때렸고. 빚쟁이들이 쳐들어오면, 누나만 남겨두고 자기는 얼른 줄행랑을 쳤다가 밤 늦게 술에 취해서 들어오고.”
처남이라는 남자는, 심약한 얼굴에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누나가 많이 힘들어 했어요.”
“실례지만, 선생님 가족 분들은......”
“친정에 있어요. 이혼...... 할 거라서요.”
“저런.”
“뭐, 화목하게 살면 좋은 거지만 살다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 거니까요. 일단, 사내가 돈벌이도 제대로 못 하니 면목도 없고.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원래 하시던 일은 뭡니까.”
“연구원이었습니다.”

남자는 낮게 중얼거렸다.

“대전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죠. 수소저장합급이라고, 조건이 맞으면 수소를 흡수해서 저장하는 그런 금속을 개발하는 일을 했는데, 잘렸어요.”
“저런.”
“뭐, 연구소 연구원들이야 펀드 못 따면 가서 닭이나 튀겨야죠. 진작에 닭집 차릴 돈 정도는 만들어 놨어야 했는데 말이죠.”

남자는 겸연쩍게 웃다가, 폴리스라인이 쳐 진 창고를 지나 집 쪽으로 향했다. 형사들은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수첩에 뭔가 또 적었다. 젊은 형사 하나가 주변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관은 그 모든 풍경을 그저 눈에 담고 있었다.

  
 
  
 
 
 
 
“또 왔냐.”

기세좋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승지를 보고, 관은 짧게 대답하며 의자를 가리켰다. 어제와는 다른 태도에, 승지는 빙긋 웃으며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손님맞이가 시원치 않았던 건 인정하나봐?”
“그렇지 않아도 전화 좀 해 보려고 했는데, 마침 잘 왔어.”
“우와, 이게 웬 일이야. 천하의 윤관이 날 먼저 찾는다고?”
“......그래.”
“이거, 억울해서라도 다시 사무실 돌아가야겠다. 좀 튕겨 보게.”
“살인사건이 하나 있었어.”
“음?”
“가정폭력 끝에 남편을 살해한 것 같은데, 아직 수사 중이야.”
“흠, 이미 죽였으니까.”
“그래. 가정폭력 건이 아니라 강력사건이지. 너, 예전에 인권변호사 한다고 안 그랬냐?”
“그랬지.”
“인권 차원에서 변호 좀 하시지. 사이비 인권변호사님.”
“사이비 아니고 진짜거든?”
“그래, 범죄자의 변호사 선임할 권리에 대해 논하는 것 보면 인권이라는 개념이 아주 없는건 아닌 것 같긴 한데, 여튼 내 마음에는 안 든다. 내 눈에는 피해자 인권이 더 먼저 보여서.”
“아, 진짜.”
“뭐 국선변호사로 해서 어쩌다가 그놈을 변호하게 된 거면 모르겠는데, 로펌으로 의뢰 들어가서 수임료 받고 한 거라고 생각하면 참 내 마음이 아프지. 답답하고. 암.”
“야, 윤관.”
“특히 네 반짝반짝한 구두를 보니 더 많은 생각이 든다. 그래, 어딘가에는 네가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다니며 변호해주면 좀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데.”
“내 구두가 뭐? 얌마, 인권변호사는 맨날 컵라면만 끓여먹고, 그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청렴하게 살아야 해? 구두는 저도 번쩍번쩍 하면서.”
“네 건 지큐에 나오는 그런 거고, 내 구두야 제복이랑 같이 나오는 에스콰이어지. 그리고 난 다른 말 안 했다. 그냥 구두에 대해 사소한 감상을 늘어놓은 것 뿐이지.”
“그 강간범, 누가 좋아서 변호한 줄 아냐. 까라면 까는 거지.”
“그래, 이해한다. 이해하니까, 내가 좋은 일로 변호할 기회도 찾아주겠다는 거야.”
“우리 고모한테 공짜 사건을 가져갔다간 날 무슨 복어회 뜨듯이 얇게 회를 떠서 인천앞바다에 갖다버릴거야.”
“저런, 쓰레기 불법 투기잖아. 안 되는데.”
“임마.”
“그 변호가 네놈 양심에 한 점 거리낌도 없다면 나도 뭐 더 할 말은 없어. 여튼, 그거 가정폭력 건인 게 틀림없으면, 변호 좀 맡아 줘라. 뭐든 범인이 누구다 딱 나오면 그때 말하려고 했는데, 온 김에 말해 두는 거니까 좀 잘 부탁해.”
“사건 돌아가는 건 알고 맡아야지. 너 지금, 나보고 계약서도 안 읽어보고 사인부터 하라는 거냐?”
“미리 찜만 해 두는 거야. 부인이나 그 집 가족들이 살해한 게 아니길 바라야지.”

관은 한숨을 쉬었다.

“오지랖 넓기는.”

승지 입장에서는, 결코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이렇게 관에게 적당히 빚을 지우는 것이. 승지라고 해서 이 퀴퀴한 경찰서에 오고 싶어서 오는 상황은 아니었으므로, 어쩌면 이런 식으로 빚도 좀 지우고, 또 가정폭력 피해자를 걱정하는 것을 두고 그에게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다고 강조해 볼 수도 있을 듯 했다. 승지는 구석에 놓인 수갑을 만지작거리며 관을 쳐다보았다. 관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 그거 잠기면 고생한다. 안 풀어줄거야.”
“응?”
“수갑 갖고 놀지 마. 할 거야, 말 거야?”
“일단 이야기 좀 들어보고.”

그리고 듣고 나서는, 내 이야기도 들어 보고. 그 속마음을 아직 입속에 담아둔 채로, 승지는 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떤 면에서는 참으로, 한결같은 놈이다. 고모의 성질머리를 생각하면, 이 놈을 잡아가야 월급이 나오기는 나올 모양인데. 까놓고 말해 현상금 사냥꾼이 된 기분으로 여기 왔지만, 막상 하나도 변하지 않은 녀석을 보고 있으려니 이게 되기는 될 일인가 싶어 막막하기도 했다. 어제 입었던 군청색 정복도 잘 어울렸지만, 회색 근무복도 잘 어울렸다. 섬세한 손가락으로 안경을 슬쩍 밀어올리며, 백지에 창고 내부 구조를 그려가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디로 보아도 경찰보다는 학자나 선생님을 하면 더 어울릴 텐데. 제복 대신, 셔츠에 가디건을 입혀 보면 꽤 봐줄 만 하지 않을까 싶었다. 돈은 없어도 성실한 학자라든가, 그런 타입으로 보일 텐데. 생긴 것도 꽤 괜찮고. 그렇게 따져보면, 이 녀석을 낚아 오라는 고모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윤관, 사법연수원에서부터 돋보이던 녀석이었지. 능력도, 외모도, 양쪽 모두, 좌승지의 경쟁상대가 될 만한 사람은 윤관 뿐이었다. 뜻밖에 고리타분하고 심심한 녀석이라, 승지가 치는 사소한 장난에 매번 걸려들어 화를 내긴 했지만.

“듣고는 있는 거냐, 너?”
“아, 물론.”
“......정말로?”
“물론이지. 내가 맡을 지도 모르는 사건인데, 당연히 신경 쓸 수 밖에 없잖아.”

대꾸하면서도, 승지는 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관은 그제야 제 얼굴에 쏟아지는 묘한 시선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삐뚜름하게 꺾으며 시선을 모니터 쪽으로 돌렸다. 참, 잘 나기는 잘 난 놈이다. 이런 녀석이, 왜 꼭 굳이 경찰을 하겠다고 열을 올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승지는 혀를 찼다. 학벌 좋고, 능력 좋고, 생긴것도 저만하면 반반한데다 일처리도 꼼꼼하고, 변호사로서의 경력은 없지만 이 일이 그냥 사법연수원 나와서 바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보니, 경찰로서의 사회 경력이 도움이 되면 되었지 방해가 되진 않을 테고, 무엇보다도 경찰대 졸업생이자 이 지역 지방청의 높은 분들의 총애를 두루두루 받는 녀석이라고 들었으니 수사권이 독립되고 나면 확실히 쓸모가 있긴 있겠다. 쉽지 않겠지만, 허들이 높을수록 뛰어넘는 보람도 커지는 법. 이왕 이렇게 된 것, 법무법인 좌현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설득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이런 상황이다.”
“확실히 그 부인인 거 아니잖아? 그냥 심증이네, 뭐.”
“심증이지. 심증이긴 해도,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 알리바이가 없는 사람, 원한이 있는 사람부터 찾아보게 되니까.”
“흠.”
“뭔가 더 조사해보고 싶지만, 사건은 기본적으로 담당 형사의 몫이야. 과장이든 뭐든, 다른 과 사람이 가서 간섭하는 게 아니라서.”
“그거야 그렇겠지. 근데 정말 그 부인은 아니면 좋겠다. 좀 안됐네.”
“아무래도 그렇지.”

관은 쓰디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차라리 진작에 우리에게 연락을 했어도...... 사실 솔직히, 했어도 어떻게 확실한 대책이 있는 건 아냐. 여긴 한국이고, 아직도 ‘남의 가정사’라고 넘기는 일 많아. 경찰에 신고해도, 피해자가 어지간히 강경하게 나오는게 아니라면 가족 일이니까 화해하시라고 하는 일이 더 많으니까. 하지만 이럴 때는 정말, 회의가 든다.”
“경찰 일에?”
“좀 더 많은 사람을 보호하는 쪽으로 가야 하지 않나 싶어서.”
“야, 윤관.”
“왜.”
“경찰 아니라도, 길은 많아.”
“뭐라는 거야, 저 놈이.”
“너야말로 인권 변호사 하면 딱 어울릴 놈인데. 왜 경찰을 해서는.”

승지는 낚시터에 떡밥을 던지듯, 한 마디 했다. 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승지는 기회다 싶어 몇 마디 더 얹었다.

“너, 예전에도 변호사 같은 건 안 한다고 했었잖아.”
“그랬지.”
“야, 그래도 이거 공권력이 부당하게 사람들 괴롭힐 때 맞서 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야. 안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물었구나.

낚시터에서 찌를 드리우고 기다리다가, 던져놓은 미끼를 물고기가 얼른 잡아무는 이 탱탱한 느낌. 그 손맛같은 것이 등골을 오싹하게 타고 내려갔다. 변호를 하는 것은 사람을 설득하는 것. 그 설득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본능의 영역에 묶여 있는 것이기 때문일까. 설득은 본질적으로 낚시와 닿아 있었다. 사람들이 관심 끌 만한 것을 떡밥이라고 던져놓고, 자기 뜻대로 끌고 가는 것을 “낚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결코 어린애들 은어 같은 게 아닌 것이다. 자고로 예수님도 물고기는 그만 낚고 사람을 낚자고 베드로를 낚아내셨거늘, 이 얼마나 문화적인 원형에 깊이 닿아있는 이야기란 말인가. 승지는 낡은 수갑을 만지작거리며 속으로만 미소지었다. 이 설득이라는 것은, 아주 작은 동의 하나를 받아 내는 데서 시작되는 거다. 철벽에 난 아주 작은 균열 하나. 그 균열이 결국은 제방을 무너뜨리는 법이니까. 이대로 슬슬 기다리다가 어느 순간에 홱 낚아채면, 저 고지식한 윤관은 언제 낚였는지 감도 잡지 못한 채 아무래도 경찰은 내 길이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다 늦은 사춘기와 인생의 고뇌를 겪게 될 거다. 그때, 손만 내밀어주면 테크트리 갈아타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니지. 이게 사실은 다, 저 쓸데없이 잉여롭게 뛰어난 능력을 갖고 경찰서에서 저러고 썩고 있는 윤관 저 놈을 구제하기 위한 거라고. 암. 음? 물론 시작이야 우리 고모의 희한한 아이디어 때문이긴 했지만, 일단 나 자신을 설득해야 저 놈도 낚을 수 있지. 당연하잖아. 변호사와 사기꾼이란 종이 한 장 차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따위 잠시 잊어버리려 애쓰며, 승지는 손에 쥐고 있는 이 수갑으로 관의 손목을 묶어 의기양양하게 의정에게 끌고 가는 상상을 했다.

-철컥.

“야, 너......”

그런데 그게 상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너 지금 이거 뭐야!!!!!”
“어?”
“나한테 수갑을 채워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이 멍청한 변호사놈아!”
“아, 그게......”

일 났다. 사고 났다. 차라리 화를 내는 거면 장난이라고 말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넘기면 그만인데, 이 녀석 정말로 당황한 모양이다. 하긴, 이해가 갔다. 경찰이, 그것도 과장님씩이나 되는 사람이, 자기 수갑에 묶여서 쩔쩔 매는 풍경이라니. 이런 모습을 아랫사람들에게 보이면 곤란하긴 할 거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 들어올 때 보니 여기 이 과의 계장도 젊게 봐도 40대 후반, 늙수그레한 아저씨던데. 그렇지 않아도 어린 과장이라고 무시 당할 마당에 이런 꼴을 보이기야 죽기보다 싫긴 하겠지. 수갑은 차가웠다. 손목에 닿는 이 금속의 느낌은 낯설었다. 그런데다 수갑이 손목을 긁는 것이, 아팠다. 모르긴 몰라도 시계까지 다 긁힐 것 같은데.
이 상황에서 왜 자기 손목까지 긁히는 건가 생각하던 승지의 팔이, 갑자기 뭐에 끌려 올라가듯 확 들렸다. 그의 손목에도 수갑이 걸려 있었다. 끝에만, 겨우 톱니 몇 칸 물려 들어갔을 뿐이지만.

“어어어, 야! 이거 어떻게 빼는 거야!”
“그거 한 번 물리면 안 빠져.”
“야!”
“네가 한 거잖아!”
“내가?”
“네가. 그래. 좀 전에 내 이야기 들으면서 그거 고리 만들어서 손 넣었다 뺐다 할 때무터 알아봤다 했다. 어떻게 손 좀 오므려 봐.”
“그럼 뺄 수 있어?”
“모르지.”
“이거 열쇠도 없냐?”
“......”
“열쇠, 없냐고. 이거 수갑 열쇠 잃어버리면 피의자는 영영 수갑에 묶여 지내는거야? 아닐거잖아. 경찰서든 경찰청이든 하다못해 검찰청에라도......”
“나 보고 이 꼴을 하고 그런 데 가서 수갑을 풀고 오라는 거냐.”
“그럼 나는!”
“그러니까 내가 너, 수갑 갖고 놀지 말라고 했잖아! 어린애도 아니고, 남의 체포용 장구를 갖고 이게 무슨 짓이야. 손, 어떻게든 해 보라니까?”
“......야, 내가 좀 손이 커.”
“그걸 말이라고 해!”

그때, 정 경장이 차와 간식거리를 들고 들어왔다. 관은 당장 어디 책상 모서리에라도 머리를 들이받고 칵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정 경장을 조용히 손짓해 불렀다.

“헉.”
“조용히, 다른 데에 이 꼴 안 보이고 형사계에 내려가야겠으니 도와줘요.”
“아...... 알겠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둘 다 오른손에 묶였으니까...... 내가 좌 변호사를 부축하는 걸로 하죠. 정 경장이 옆에서 도와줘요.”
“예.”

정 경장은 잠시 승지를 노려보고는, 승지의 왼쪽에 섰다. 관은 승지의 오른팔을 제 어깨 위로 넘겨서 부축하듯 잡았다. 계단의 어둑어둑한 쪽으로만 걸어 내려가면, 별로 티 안 나게 형사과까지 이동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너 왼손잡이였냐?”
“어.”
“그럼 오른손은 안 써도 되겠네. 그냥 엄지손가락을 부러뜨리는게 빠르지 않을까.”
“얌마.”

흉흉한 농담이었다. 어지간해서는 농담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관의 성격까지 감안하면 정말로 흉흉해서 도망이라도 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근데 어떻게 알았어? 나, 글씨 쓰는 거랑 밥 먹는 건 오른 손으로 하는데.”
“이런 장난은 아무래도 많이 쓰는 손으로 덜 쓰는 손에다가 쩔걱거리고 놀다가...... 아, 됐고. 그러니까 오른손이 밥 먹고 일하는 손이고 왼손은 이런 못된 장난을 치는 손이라 이거군. 부러뜨리려면 저 쪽을 부러뜨려야 했어.”
“야.”
“정 경장, 이쪽 복도에 CCTV 없지?”
“그럼요.”
“아, 진짜 이 경찰들이...... 근데 이거 왜 이래? 전에 보니 잘만 풀리던데.”
“그건 구형 수갑이고.”
“현장 나갈 일도 없으면서 신형 수갑 같은 건 다 챙겨 받았냐? 못 쓰겠네. 현장의 형사양반들이 쓰는건 분리수거나 해야 할 물건이던데, 과장님이라고 너무 유세하는 거 아냐?”
“이건 사제란 말이다.”

관이 중얼거렸다. 사제. 군대에서나 쓰다가 오랜만에 다시 머릿속에 들어온 단어에, 승지는 눈을 깜빡였다.

“사제.”
“그래. 독일제.”
“......그럼 내려가도 열쇠 없는거야?”
“응.”
“그럼 어떡해!”
“......누가 이런 짓 하래?”
“얌마, 이게 빠져서는...... 사제품이나 쓰고......”
“닥쳐.”

관은 입술을 깨물었다.

“부수는 수 밖에 없다고. 젠장.”

아무래도 실수한 것 같아 승지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관이 이렇게, 사소한 물건에 집착할 때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중요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더 한들, 관의 화만 돋울 것 같았다.

잘 나가다가 이게 무슨 짓이야.

평소같으면 자랑거리였던 그의 장난기와 유머감각이,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 아니 손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명색이 변호사님이, 오른손을 수갑에 묶인 채 경찰 둘에게 끌려가다니. 뭐 이런 스타일 안 나는 일이 다 있는 거야.
  
 
 
 
 
 
  
“과장님 욕 보십니다.”

애써 웃음을 참고 있는 형사들의 머리 뒤로, “ㅋㅋㅋ”같은 이모티콘이 떠다닐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관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신 거래요.”
“......제가 장난 치다가요.”
“아이고, 선생님이 잘못했네. 그럼 선생님은, 윤 과장님 친구십니까?”
“예. 변호사예요. 아, 잠깐...... 명함이......”

이 와중에도 영업모드가 발동한 승지는, 자유로운 왼손으로 품을 뒤지더니 명함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형사들에게 죽 돌렸다. 그러지 말라고 고개를 젓는 관의 표정은 보지도 못한 채. 관은, 이제 곧 다가올 소란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대체, 일껏 잡아다 준 흉악범을, 형량을 대패로 밀 듯이 죽죽 깎아내버려놓은 주제에 뭘 잘했다고 여기서 영업질이야.

“변호사 좌승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형사님들.”
“좌승지?”

형사 중 누군가가, 들고 있던 커피잔을 구겨버렸다. 아차. 그제야 어제 관이 했던 말을 겨우 떠올린 승지는, 한없이 어색한 영업용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거, 변호사 형씨 이름 한번 참으로 겁나게 유니크하네.”
“하하하...... 그, 그렇죠?”
“내가 얼마전에, 임산부 강간하고 토낀 썩을놈의 새끼를 잡아왔더니만.”
“아, 맞다.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이라 했더니.”
“심신상실 좋아하네, 심신상실.”

아아아아.

무슨 조폭 소굴에 단신으로 뛰어들었다가 걸린 풋내기 형사의 심정이 이럴까. 그것도, 수갑을 잘라야 한다는 말에 형사들이 챙겨온 연장의 위용이라니. 이런, 뒷산에 암매장을 당해도 시원치 않을 것 같은 분위기는 아무래도 익숙할 수가 없었다.

“그게...... 저도 말만 변호사지 월급쟁이라서요......”
“아아, 물론 그렇겠지.”
“죄송합니다아......”
“뭐, 우리한테 죄송할 것 까지야. 형씨야 형씨 일 한 건데.”

설마 형사들이 자길 끌고가서 어디다 파묻지는 않을 거라고 애써 생각하면서도, 승지는 잔뜩 주눅이 든 채 형사들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공사현장의 H형빔을 자를 때 쓰는 것 같은, 칼날이 시퍼런 절삭기가 그의 눈 앞에서 톱니바퀴를 빙빙 돌리고 있었다.

“괜찮아, 손모가지 자르진 않으니까.”
“아니, 그게...... 정말 괜찮은거 맞아?”
“괜찮다니까.”

관은 지친 듯 중얼거렸다. 손목과 수갑 사이의 좁은 틈에, 혹시나 몰라서 수사연구 과월호를 끼워넣고, 절삭기를 들이댔다.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는 톱날이 수갑에 닿자, 불꽃이 길게 튀었다. 그렇게 두 번 날이 들어가자, 수갑의 한 쪽이 짤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이야......”

괜히 손목이 아픈 느낌마저 들어, 승지는 손목을 털었다. 발치에 잘려나간 수갑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형사님들, 이거, 수갑은 뭘로 만드는 거예요?”
“수갑을 뭘로 만들긴, 쇳덩이로 만들지 그럼 밀가루로 만드나.”
“아니, 합금 있잖아요.”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아, 윤 과장님. 이번에 그 죽은 사람 처남이 합금 일 했다고 하지 않았어?”
“응?”

역시 손목과 수갑 사이에 수사연구 과월호를 밀어넣던 관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안경을 치어올렸다.

“합금 연구하던 연구원이었지. 왜.”
“아니,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금속은 커피 정도의 온도에도 녹아버린다고. 그냥 그 이야기가 생각나서.”
“음?”

뒤죽박죽 섞여 있던 퍼즐이, 갑자기 제 윤곽을 찾아가는 것 같은 느낌. 관은 여전히 수갑이 매달려 있는 왼손으로 승지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더 말해 봐. 그래서?”
“그래서는 뭐 그래서야. 내 말은, 꼭 끈이라든가 불에 타는 거라든가 그런게 아니라도 사람 손을 묶을 수 있다 이거지. 정말로 그, 낮은 온도에 녹아버리는 금속 같은 걸로 이렇게 수갑을 만들었을 수도 있고 말이야. 그거 7, 80도면 녹는다던가? 그런 것 같으면, 불 났을 때 바로 녹아서 없어질 수도 있지 않겠어?”

아니, 그게 아니다. 그렇게 낮은 온도에 녹아버리는 금속이나 합금 이야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그건 그만큼 구하기 어려운 금속일 수도 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많이 가까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방 안에,

“김 형사님. 그 현장 사진 좀 볼 수 있을까요.”

여전히 한 손에 수갑의 잔해를 매단 채로, 관은 현장 사진을 띄워놓은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창고, 그을린 창고, 바닥에 남은, 다른 그을음과는 구별되는, 사람의 형상을 한 유기체가 타들어간 흔적, 그리고 벽쪽, 문가 쪽에 놓여있던 기계덩어리. 관은 그 기계덩어리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본다고 아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 물건이, 인공위성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고철덩어리라는 사실만은 안다. 상단에 붙은 태양전지, 중간에 빙 둘러 붙은 회로와 방열판들. 그리고 그 틈새에, 무언가 코일이 돌돌 말려 있었다.

“이것.”
“이거요?”
“예, 과수팀에 이야기해서, 이 코일에서 혈액반응 나오는지 좀 봐 달라고 하세요.”
“뭘 생각한 거야?”
“그 있잖아. 그 뭐라고 하지?”
“그러니까 뭐?”
“......그, 여자들 속옷에 들어가는 금속 있잖아. 특정 온도에 맞게 모양을 기억해서.”
“형상기억합금?”
“그래, 그거.”

하필 비유를 해도 여자 속옷 이야기를 꺼낸 게 실수다 싶어, 관은 벌개진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아마 이 코일이 안테나일 거야. 인공위성의 안테나는, 지상에서는 이렇게 말려 있다가 우주로 나가면 자동으로 펴져. 다른 기계장치를 쓰는 게 아니라 그 합금을 쓴다고 들었거든.”
“별걸 다 아네. 어디서?”
“고등학교 때. 과학 선생님이.”
“그래서, 이게 펴지는 온도가 몇 도인데?”
“잠깐만.”

관은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해 보고 대답했다.

“위성궤도 쪽은 120도쯤 나오는 모양이야. 그러니까 100도 넘어가면 이 코일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지. 여기 보니까, 이걸 휘어놓는 힘보다 특정 온도가 되었을 때 원래대로 돌아가는 힘이 더 강하다고 되어 있어. 어쩌면 이 코일을 풀어서 목을 감고 손발도 감아놓았는데, 사람 몸에 불이 붙으면서 이게 풀려서 제 자리로 돌아갔을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아마 목을 할퀴었을 때 혈액이 묻었을 지도 몰라.”
“뭔 말씀인진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저 코일이라는게 펴졌다가 뜨거운데 갖다놓으면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말씀이시죠?”
“예.”
“대단해요, 과장님. 명탐정 홈즈같은데요.”
“그 가설이 맞는다면요.”

관은 얌전히 대답하고는 책상을 손으로 짚으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절삭기를 들고 있는 형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번 가설은 이 친구가 헛소리를 하는 덕에 떠올린 거니까, 혹시라도 그 추측이 맞는다면 이 친구 일은 봐 주십쇼. 뭐, 고작 서른 살 밖에 안 된, 잘리지 않으려면 시키는대로 일해야 하는 월급쟁이 변호사니까요.”
“뭐, 과장님 친구분인데 나쁘게 본다고 우리가 뭘 어쩌겠습니까.”
“아아, 어쩌면 자주 불러들일지도 모르거든요.”

관은 제 손목에 묶여 있던 수갑이 반으로 쪼개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덧붙였다.

“우리 쪽 사건 피해자든 가해자든, 필요한 사람 있으면 이 수갑 값 만큼 공짜로 변호를 시켜 보려고요.”
 
 
 
 
 
 
 
 
  
  
“그래서.”

이틀만에 돌아온 조카놈이, 비록 목적은 이루지 못하였지만 일거리를 들고 왔다고 해서 뭔가 했더니, 무료 변론이라. 양쪽 슬리퍼를 다 집어던지다 못해 이젠 명패까지 집어들고, 의정은 슬리퍼를 주워드는 승지를 노려보았다.

“내가 널, 거기 봉사활동 하러 보냈냐?”
“그건 아니지만요.”
“그럼 나가.”
“잠깐만요, 고모.”
“잠깐이고 뭐고 어디 있어!”
“그게, 결심을 했다고요!”

승지는 일단 슬리퍼를 의정의 발치에 내려놓고, 의정의 손에 들린 명패도 받아다가 제 자리에 돌려놓았다.

“나 예전에 추리소설 좋아하던 거 알죠?”
“알지. 너 학교 다닐 때, 나 갓 변호사 되어서는 돈도 못 버는데 맨날 해문추리문고 사달라고 매달렸잖아.”
“그 추리소설 보는 것 같았어요. 윤관 그 녀석.”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 친구가 셜록 홈즈라도 돼? 나한테 필요한 건 존 그리샴이지 셜록 홈즈가 아냐.”
“여튼요. 전에도 똑똑한 줄은 알았지만.”

물론, 그 추리에 작은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진짜 명탐정 같았거든요.”

두근거렸다. 합금 생각을 한 것은, 그 사건 이야기에 나왔던 처남이 그쪽 일을 했더라는 게 그 수갑 단면을 들여다보다 문득 떠오른 것일 뿐이었지만, 그 사소한 이야기에서 퍼즐의 잃어버린 조각을 줄줄이 찾아내는 듯한 그 녀석의 모습은, 정말로 빛나고 있었다.

그 좋은 능력을 갖고 있으면 뭐 하나, 일선 현장에서 뛰기에는 젊은 나이에 너무 높이까지 올라가 버렸고, 아마도 평생 이런저런 기획서나 만들며 살게 될 텐데. 젊어서 고시에 합격한 구청 시청의 젊은 사무장들이 그렇듯이, 이왕 그 자리에서 출발한 것, 가능하면 더 높이 올라갈 궁리만 하면서 서류만 만지는 것은, 적어도 승지가 생각하기에는 관의 체질에 맞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따분하고, 지루하고, 모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생이라니.

“그 재주를 썩히게 두는 건, 너무 시시하다고요. 어떻게든 경찰복을 벗기고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지.”
“왜 그 말을 네가 하니까 엄청나게 불결하게 들리는거냐.”
“에이, 그건 듣는 사람 잘못이죠. 애초에 그 녀석 경찰복 벗게 만들라고 한 건 고모잖아요.”
“경찰을 그만두고 변호사고 전직하게 하랬지, 누가 옷을 벗긴다고 했어?”
“관용적인 표현이에요. 에이.”
“시끄러워, 그래서 그 봉사활동은 뭐야?”
“아.”

승지는 사건 개요를 복사한 내용을 의정에게 내밀며 빙긋 웃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누나를 구하기 위해 매형을 살해한 남자. 어떻게든 변호해 주라고요.”
 
 
 
 
 
 
  
  
“정말 대단하셨어요, 과장님.”

오늘도 포돌이 포순이와 더불어 경찰서 문 앞까지 나가 유치원생들이 탄 버스가 멀어질 때 까지 손을 흔들어주고 돌아온 관에게 냉커피를 내밀며, 정 경장은 괜히 자기가 더 뿌듯한 듯 웃었다.

“정말로 그 처남이 범인이었다니. 피해자를 묶은 것도 과장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였잖아요.”
“범인이 그 가족이 아니길 바랐는데.”

관은 커피를 받아들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 와중에도 피해자의 아내는, 처자식 있는 동생이 아니라 자기가 죄인이라고, 자기를 잡아가라고 그랬다더군요.”
“뭐, 범인도 자기 누나를 지키려다 그렇게 된 거라니까요. 정상참작이 될까요?”
“능력있는 변호사가 공짜로 변호를 맡아주기로 했으니, 도움이 되면 좋겠군요.”
“......그 수갑 그분요?”
“예.”
“수갑 어떡해요. 과장님이 아끼시던 잖아요.”
“그러게요. 그런데 그 녀석 손가락을 부러뜨려서 빼냈으면 사건 해결이 늦어졌을 테니까 그냥 할 수 없죠.”

관은 모니터 아래, 쓰지도 않는 재떨이 위에 그대로 모아둔 수갑의 잔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미소지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내가, 현장에서 범인을 잡을 일은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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