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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za2 불사조의 꼬리

2014.05.31 23:0405.31

불사조의 꼬리


인적은커녕 동물 지나가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두메산골에서는 말 두 마리만으로도 천지가 뒤흔드는 요동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요란스럽게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날아가는 멧새는 그렇다 치고 까치마저 덩달아 반가운 손님이 아니냐는 희망 섞인 목소리로 우짖으며 나뭇가지를 흔들어 나뭇잎을 환영의 표시처럼 흩뿌리면서 뒤따라 날아올랐다.
두 사람뿐인 일행이지만 이곳에서는 정말 소란스러운 대규모의 여행자 행렬이 될 것만 같이 느껴질 정도로 작고 초라한 마을이었다. 하늘 아래 어디에서도 변함없는 배산임수의, 아니 정확히는 배산임해라고 해야 하나? 높은 구릉에 오르면 바다가 훤히 보이고, 뒷산으로 올라가면 어느새 넓고도 깊은 나무와 풀의 물결에 휩쓸려서 세상과 유리되어 버리고 마는 천해의 절경. 겨울의 북풍과 여름의 태풍 어느 것에게서도 도피할 장소가 되어주는 이곳이야말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영약을 캐낼 극락정토에 어울리리라. 그때가 되면 나는 목욕재개하고 지성기도를 드리던 심마니처럼 하늘을 향한 도발적인 외침으로 천도(天桃)를 탐식하던 신선들의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리라. 죽은 듯이 잠든 이의 눈도 번쩍 틔우게 만드는 만드라고라가 아닌 이상 나라도 그리 해야 되지 않겠는가? 당승(唐僧)처럼 고향의 흙을 한 줌 입에 털어 넣으며 떠난 여정의 고통이, 내 것이 아니로되 나보다 더욱 소중한 생명을 구하기 위한 연꽃 속의 보옥과도 같은 영약이 되어 마침내 모래알을 진주로 키워낸 조개처럼 품에 안고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하지만 힘들게 물어물어 찾아온 마을은 입구도 출구도 없고 경계선도 외곽도 없으며 그 형체마저도 조감할 수 없는, 그저 밭이랑의 사이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초가집을 뭉뚱그린 집합일 뿐이다. 장승 하나 보이지 않는 이 일대에서 유일하게 표지판처럼 눈에 뜨이는 인조물은 검붉은 기와로 지붕을 얹은 서낭당이다. 그 뒤에는 화전이 계단처럼 예닐곱 층을 이루고 있고 뒤로 이어진 숲은 산줄기를 뒤덮고 있었다. 근처는 강이나 호수는커녕 실개울 하나 찾기 힘든 바싹 마른 땅이었다.
밭은 한창 초록빛으로 흥건히 적셔져 있어야 할 계절임에도 대부분 아무런 작물도 심어져 있지 않은 상태였다. 눈에 보이는 건 초가집의 허름한 지붕처럼 메마르고 초라한 빛바랜 누른빛, 답답한 잿빛, 씁쓸한 황톳빛뿐이었다. 머리를 누르는 햇살과 후덥지근한 공기가 내 온몸을 이 불모지 안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우리도 대충 마을의 입구려니 싶은 어귀 아무데서나 어정쩡하게 멈추어 설 수밖에. 근처에 있던 비쩍 마르고 뒤틀린 나무들 중에서 좀 실한 놈을 찾아 말고삐를 묶은 뒤에 숨을 돌릴 겸 나무에 기대어 서서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산에서는 진득하고 알싸한 나무와 송진의 냄새가, 바다에서는 짠 바다와 텁텁한 모래의 냄새가 마을에서 하나로 뒤섞여 이도저도 아닌 악취가 되나 보다. 어쩌면 두엄 더미와 저기 돌아다니는 개가 조심성 없이 싸지른 똥의 냄새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서낭당 외에 딱히 눈에 띄는 대상은 없었다. 그저 집 앞마다 다른 지역보다도 짧은 별신대가 빠지지 않고 있는 점이 특이하달까. 움직이는 생물이라고는 소 한 마리를 몰고 밭을 가는 농부 한 명, 흘린 낱알이나 거친 흙을 이기고 살아남은 콩이라도 한 쪽 없나 이곳저곳에 주둥이를 박으며 밭이랑을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 그리고 저 멀리 나뭇가지에 앉아서 부지런히 낯선 손님을 살펴보는 산새들뿐이었다.
약간의 실망, 그보다 더 큰 막막함, 무엇보다 무거운 책임감이 내 눈을 저절로 감기게 만들었다. 빛이 사라지면 내 마음의 기억이 형체로 바뀌어 투영된다. 척신(斥神)이 어깨에 한쪽 손을 얹고 있는 듯이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 긴 세월 병고에 시달리며 피폐해진 육체 중에서도 오직 두 눈만은 벽사의 기운을 뿌리며 번쩍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바싹 마른 입술이 들썩인다. 기침소리에 섞여서 흘러나온 중얼거림이 들린다.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내게는 아득한 구름 너머에서 울려 퍼지는 신의 계시다.
“작은 도련님, 저 사람에게 물어볼까요?”
갑작스런 삼돌이의 목소리에 정신이 확 돌아오는 걸 느꼈다. 어느새 나무에 기댄 채로 졸고 있었나 보다. 긴 여행은 힘들고 지루했으며 그로 인해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된 상태였다. 삼돌이의 손이 가리킨 방향에는 지금까지 발견한 유일한 사람인 소를 모는 농부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지치지도 않았는지 성큼성큼 잘도 뛰어가는 삼돌이의 뒤를 거친 길 때문에 약간 비틀거리며 뒤따랐다.
농부는 아까부터 소를 잠시 세워두고 벗어든 밀짚모자를 부채삼아 부치면서 우리가 있는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삼돌이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이르자 큰 소리로 물어보았다.
“저기, 말씀 좀 묻겠습니다.”
“오데서 왔는교?”
“저희는 멀리 도시에서 왔습니다.”
농부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찌푸려졌다. 내가 삼돌이의 곁에 왔을 때는 마치 한 바탕 싸움이라도 할 기세처럼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뚝뚝한 얼굴과 빈정거리는 말투는 화가 난 사람처럼 보였다. 낯선 이방인들의 갑작스런 침입에 맞서는 마을의 수호자라도 된 모양이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작지만 매서운 빛을 뿌리는 눈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귀면와(鬼面瓦) 같았고, 비록 비쩍 말랐지만 당당하게 서있는 폼은 스스로를 이 마을을 지키는 장승처럼 느껴지게 했다.
“도시? 도시서 말라꼬 왔는교? 또 뭘 뺏아 갈라꼬? 맨날 도시 사람들이 잊을 만 하면 와싸서 우리 신랭님을 괴롭히사니까 오데 배기겠는교? 그카니까 마을이 죽어가고 사람들이 죄다 떠나삐는 거 아인교!”
농부는 찬물을 끼얹듯 쌓아놓았던 울분을 단숨에 토해내었다. 비록 무슨 소린지 반절도 알아먹지 못했지만, 그 과격한 말투만으로도 요점은 잡아낼 수 있었다. 요컨대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왔었고, 방문객들로 인하여 마을이 번창하기는커녕 반대급부만 낳았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마을 사람에게는 안 된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이곳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바로 그곳이라는 희소식을 얻은 셈이렷다.
삼돌이가 내 쪽을 보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농부는 여간해서는 협조해줄 사람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내가 아니지 않은가. 용기를 내어서 무섭게 버티고 선 장승에게 물어보았다.
“산할미라는 분을 찾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 계신지요?”
“내가 산할미요. 낼로 와 찾는교?”
엉뚱하게도 대답은 등 뒤에서 들려왔다. 해골에 거죽만 붙은 것처럼 생긴 노파가 덩굴로 짜서 만든 걸낭을 걸고 지팡이를 짚은 모습으로 지팡이만 없을 뿐 역시 비슷한 차림을 한 여자아이를 데리고 뒤쪽 산길에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크고 카랑카랑한지 처음엔 바로 내 옆에서 말을 한 줄 알았을 정도다.
노파의 목소리 역시 농부와 마찬가지로 호의적인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긴 세월 병마와 싸우며 명의란 명의는 다 찾아다니고 좋다는 약은 다 먹어보고도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주눅들어가는 자신을 추슬렀다.
“그놈의 꼬랑진가 뭔가 찾아왔는교? 일 없으니 고마 돌아가소.”
노파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활기찬 걸음으로 우리에게로 오더니 지팡이를 짚지 않은 손으로 파리라도 쫓듯 휘저으며 그렇게 매몰찬 선언을 남기고는 다시 가던 길을 이었다. 농부도 그걸로 이야기는 끝났다는 듯이 밭을 마저 갈러 소에게로 돌아갔다. 삼돌이는 당황해 하며 농부를 불렀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주저앉아 사탕을 빼앗긴 어린 아이처럼 목 놓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산할미라고 자처한 사람까지 만난 이상 물러설 순 없다.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져야 되지 않겠는가. 얼른 쫓아가서 함께 걸으면서 최대한 애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애걸했다.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저는 병고로 앓아누우신 아버님을 살리고자 여기까지 왔습니다. 세상 어떤 명의도 다스리지 못한 병입니다. 어느 날 아버님께서 ‘불사조의 꼬리’에 대한 소문을 떠올리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그것만 있으면 금방이라도 털고 일어나실 수 있을 것만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더 이상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불사조의 꼬리만 있으면, 그것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춤이라도 출 수 있을 것 같다고, 정확하게는 그리 말씀하셨다. 분명 아버지의 긴 삶 속 한 귀퉁이에 존재하는 영약의 이름이리라. 이제 거상의 영욕에 찬 한평생의 기억이 병마의 혓바닥에 하나씩 지워지면서 깊은 무의식 속에서 침전하고 있던 옛 기억의 잔재 하나가 마침내 삼(蔘)처럼 무르익어 이제 아버지에게 삶의 희망을 되찾아줄 수 있는 동아줄이 되어 내려온 것일 테니.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온 힘을 다 내어서 붙잡아야만 한다.
허나 노파는 더 듣기도 싫다는 듯이 지팡이를 놀리며 성큼성큼 걸어갔고 나도 이에 질세라 끝까지 뒤쫓으며 말을 이었다. 여자아이는 서너 걸음 떨어진 뒤에서 따라가며 빈손이 허전한지 호미를 들고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부디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제 아버님께서는 부유한 상인이십니다. 도와주신다면 사례는 결코 섭섭지 않게 해드릴 겁니다.”
들은 척 만 척, 노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로 좁고도 꼬불꼬불한 이랑을 가로질러 서낭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지 않은 손을 걸낭에 넣고 약초와 열매, 뿌리 사이에서 작지만 매끄러운 돌을 하나 꺼내더니 서낭당 입구에 있는 돌무더기 위에 얹었다. 그때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돌아서며 지팡이로 발 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하마터면 걸려 넘어질 뻔 했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노파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외지 사람이 들어오믄 부정탄다!”
비록 절박하고 다급한 상황이긴 했지만 촌락의 전통과 미신을 깨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자칫 무모한 행동이 이들의 협조를 얻어내는데 있어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는 계산도 있었다. 뒤따라오던 여자아이도 주머니에서 작은 돌을 하나 꺼내 무더기 위에 얹고는 서낭당의 보이지 않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담벽은 주위를 채 반도 싸지 못하고 무너진 채로 드문드문 흔적만을 남기고 있었고 당집 건물 옆에는 다 말라죽은 나무가 가늘고 앙상한 가지 몇 개만을 하늘로 뻗어놓은 채로 삐뚜름하게 서있었다. 그 반대쪽, 서낭당의 오른쪽으로는 사람 키보다는 길지만 다른 고장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별신대 서넛이 흙 위에 꽂혀있었다. 모든 게 초라하고 볼품없었으며 천천히 부식되어 가는 주검처럼 보였다. 마을 안에는 활력도 푸르름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아이부터 노파에 이르기까지 땟국이 흐르는 피부와 흙이 묻은 옷, 세상사에 시달리다 못해 체념한 듯 지쳐있는 눈빛과 거친 말투만이 남아있었으니. 그리고 그들의 성지에 발 디딜 수 없는 부정 타는 존재인 나는 이렇게 경계에 서있을 뿐이었다.
“아나, 니 여다 물 떠오고 개똥이 애비 좀 오라케라.”
노파는 작은 동이를 내밀며 말했다. 아이는 걸낭을 당집 마루에 놓고 군말 없이 동이를 받아 머리에 이고 길을 나선다. 그들은 성스러운 장소여야 할 서낭당을 자기 집처럼 쓰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노파는 그 마을의 무당이자 지도자며 대표일지도 모른다.
마침 목도 마르고 여기서 당분간 지내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지라 물이 있는 곳도 알아낼 겸, 불친절한 노파보다야 아이가 더 쉬운 말상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겨나서 그 아이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마냥 따라다니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뭐라고 말을 붙일지가 난감했다. 두서없이 되는대로 입을 열었지만 말은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간신히 꺼낸 첫마디도 지극히 상투적인 이름 교환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저기, 난 정규라고 한단다. 넌 이름이 뭐니?”
아이는 귀머거리처럼 반응이 없었다. 한참 후에 마을을 벗어나 산으로 향하는 오솔길에 접어들자 비로소 슬쩍 돌아보더니 날 방금 발견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와 자꾸 따라오는교?”
“나? ……그냥, 목이 말라서.”
속마음까지 꿰뚫어볼 듯한 날카로운 눈빛에 그만 허둥지둥 얼버무리고 말았다. 다행히 아이는 더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듯 따라오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않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 오솔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몇 개의 커다란 바위가 산을 가르듯 꽂혀 있었고 그 사이에 작은 샘이 있었다. 절로 탄성이 나올 만한 멋진 광경이다. 돌의 틈에 꽂힌 대나무 대롱에서 물이 흘러나와 또르르 소리를 내며 몇 개의 나뭇잎이 동동 떠있는 조그만 샘으로 떨어져 내렸다. 가만히 옆에 쪼그리고 앉아 두 손을 담가보니 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고, 깨끗했다. 반가운 마음에 물을 마시고 얼굴을 씻었다. 아이는 동이에 물을 받으며 내 모습을 약간의 호기심을 담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찬물로 얼굴을 씻으니 어느 정도는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서 아까보다는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몰라서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선 아이와 노파에 대해서부터 묻기로 했다.
“널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아까 이름을 물어봤는데…….”
“천덕이라 부르이소.”
솔직히 말하자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어떤 이름이든 간에 ‘참 예쁜 이름이로구나.’라고 대답해서 아이의 환심을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지금 그랬다간 되레 약 올리는 것처럼 받아들일까봐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원체 천덕꾸러기로 맽끼지 갔고 천덕이, 천덕이 캐쌌다가 고마 이름이 돼삤어예.”
“아, 그렇구나…….”
잠시 말이 없었다. 나무들의 행렬이 뜸해지고 마을로 접어들자 다시 말을 붙였다.
“산할미는 어떤 사람이니?”
“우리 할매가 산할민데예?”
“아니, 그건 나도 아는데,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서.”
“산 지키는 사람이라예. 산신랭님께 제사도 지내고.”
“너는 불사조의 꼬리에 대해서 알고 있니?”
“할매가예, 아무한테나 말하지 말라 캤어예.”
고개까지 흔들며 대답을 거부했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나 말하지 말라는 얘기는, 말하면 안 되는 비밀이 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분명 노파와 이 아이, 천덕이는 무언가 알고 있는 거다. 노파라면 모른다고 대답했을지도 모르지만, 어린 아이의 그다운 순진한 대답이 내게 큰 실마리를 준 셈이었다.
“내 아버님께서는 말야, 오 년이 넘도록 깊은 병을 앓고 계셔. 백방으로 노력해봤지만 낫게 해드리지 못했거든. 이건 아버지를 살릴 마지막 희망이야. 제발 이렇게 부탁할게. 뭔가 알고 있다면 가르쳐주지 않겠니?”
거의 빌다시피 하며 부탁을 했건만 천덕이는 다시 처음처럼 묵묵부답이었다. 지나가면서 보니 이미 삼돌이는 빈집 하나를 임시거처로 정해놓고 안장에 싣고 온 단출한 여장을 풀고 있었다. 몸만큼이나 마음도 점점 지쳐가며 모든 걸 내팽개치고 안락한 도시의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부풀어 올랐지만 실마리를 잡은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오기로 버텨야만 했다.
마치 도망가나 안 가나 감시하는 것처럼 서낭당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으려니까, 천덕이는 물동이를 안에 갖다놓고 다시 달려 나와 어느 초가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앞을 휘휘 젓는 깡마른 초로의 남자의 손을 잡고 나왔다. 노파는 서낭당 안에서 예의 그 커다란 목소리로 눈 먼 남자에게 말했다.
“개똥이 애비요, 액땜할 부적 한 두어 개 기리주이소.”
“오야, 오야, 알았쇼.”
맹인은 손을 휘휘 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나에게 가까이 왔을 때 잠시 멈춰서며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는 기척이었는데, 그 감겨진 눈이 정확히 내쪽을 향하자 섬찟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사람은 어떻게 나를 발견했을까?
다행히도 입을 열기 전에 천덕이가 그의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여주었고 두 사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서낭당으로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더듬고 지나갔던 까닭모를 두려움을 털어내었다. 필시 그는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민감한 후각으로 냄새를 맡거나 내가 움직이며 내는 작은 소리를 듣고 날 감지했을 것이다.
잠시 후에 안에서는 그 남자의 뜻 모를 웅얼거림이 새어나왔고 노파는 손을 고쟁이에 툭툭 털며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직까지 물러서지 않고 있는 나를 보더니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쫌 이따 부적 줄 테니끼네 몸에 하나쓱 넣고 자는 데도 붙여 놓으소. 그케야 따라왔던 구신이 토끼삔다 아이가.”
그 말을 듣고 난 후에야 개똥이 아버지란 사람에게 부탁했던 부적은 우리를 위한 것임을 알았다. 물론 귀신이 따라와서 자신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심정에서 처한 대비였겠지만, 우리를 생각해서 한 일이라는 느낌도 그에 못지않게 들었다.
염불 비슷한 주문이 끝나고 그는 천덕이의 손에 이끌려 서낭당을 나왔다. 노파는 자기 못잖게 늙어 보이는 그 키 큰 남자의 등을 아이에게 하듯이 쓱쓱 쓰다듬어 주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가입시데이.”
“오야, 오야.”
개똥이 아버지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웃는 건지 신 음식이라도 먹은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마치 탈춤 출 때 쓰는 탈처럼 과장된 그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정감이 갔다. 천덕이는 그를 다시 집 안까지 안내해주고는 달음박질로 서낭당에 돌아왔다. 그 사이에 나는 노파가 내민 넉 장의 종이쪼가리를 받아들었다. 노랗고 약간의 향내 비슷한 냄새가 나는 얇은 종이에는 뜻도 모를 이상한 상형문자가 그려져 있었다. 얼핏 흘려 쓴 한자가 몇 보이기도 하지만 뜻은 절대 이해불가였다.
별로 내키진 않았으나 예의상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삼돌이에게로 돌아가 부적을 내밀었다. 종놈은 나보다도 더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내 설득에 넘어가 품에 하나 넣고 우리가 잘 자리 머리맡에 하나씩 갖다 놓았다. 그런 다음에 삼돌이는 빈집의 마당에 뒹굴던 옹기 중에서 비교적 멀쩡하고 깨끗한 걸 하나 들고 내가 가르쳐준 샘으로 가서 물을 떠왔고, 가지고 다니던 비상식량을 꺼내어 대충 허기를 달랬다. 말을 타고 새벽부터 해가 중천에 뜬 지금껏 달려온지라 배를 채우고 나니 잠이 밀물처럼 밀려와 무기력하게 꿈의 파도 아래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 * * * *

거친 잠자리 때문이었는지, 불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밤새도록 뒤척이며 깊게 잠들지 못했다. 무언가 악몽을 꾼 것도 같은데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나고 나니 어둠과 함께 기억 속에서 스러져 버린 듯 했다. 다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아버지의 몸져누운 모습과, 천덕이의 시무룩한 표정과, 부적에 적힌 뜻 모를 문자들이 한데 뒤섞여 환영처럼 일렁였다는 느낌만이 남아 있었다.
삼돌이가 마련한 조촐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샘터로 가서 얼굴을 씻은 후에 서낭당으로 향했다. 어차피 내가 갈 곳은 거기밖에는 딱히 없었고, 할 수만 있다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산할미의 마음을 설득하여 불사조의 꼬리를 얻어내고야 말 작정이었다.
쉼 없이 이어지던 내 발걸음은 서낭당 문 앞에서 뚝 그치고 말았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문턱에 걸려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내게는 그 성스러운 마을의 수호자가 그려놓은 무형의 마법진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서낭당은 인기척이 없이 조용했다. 산새가 우는 소리와 그들이 날아다니며 휘젓고 다닌 나뭇가지가 내는 소리가 저 멀리의 파도소리와 섞였다.
“거서 뭐하고 섰소? 들어 올라카믄 들어오든가.”
약간 망설이는 표정으로 들어가도 되는 거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곧바로 대답이 이어졌다. 여전히 기운찬 노파의 새된 목소리였다.
“부적 기리줐다 아인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조심스레 발걸음을 떼었다. 똑같은 흙바닥이었지만 서낭당 안의 공간은, 발바닥의 감촉부터 시작해서 주위의 공기까지 모두 새롭고 성스러우며 비밀스럽게 느껴졌다.
“내, 천덕이가 하도 부탁해싸서 말하는 기라.”
마치 내가 어제 했던 말은 듣지도 않았다는 듯한 태도였지만, 나는 꾹 참고 있었다. 무엇보다 칼자루를 쥔 건 저쪽이었으니까. 구태여 이 촌로의 심기를 건드려 일을 그르쳐선 안 될 일이다.
“신랭님에 대해 뭘 알고 왔는가? 그 불사조에 대해서 말이라.”
산할미의 질문은 모르는 걸 물어보는 게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내 지식을 시험하려는 것 또한 아니었다. 내 마음 속을,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내 속셈이 무엇인지를 떠보려는 듯한 어조가 느껴졌다. 산할미의 사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애지중지하며 신령으로 떠받드는 희귀생물을 밀렵하려는 자들은 물론이요 돈을 주고 사겠다는 사람조차도 그에게는 얼마나 불경스럽고 잔인무도한 이들로 비치겠는가.
그런데 불사조에 대해 말하라면 사실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세상에 알려진 소문이나 옛 기록들을 들춰봐도 금빛 날개에 오색 벼슬을 지녔다든지, 입과 날개는 독수리요 얼굴과 몸은 사람과 같다는 둥, 머리는 새고 몸은 뱀이라는 둥 억측으로부터 비롯된 설화적 미화만이 가득할 뿐이다.
채 정리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두서없이 떠오르는 대로 주워섬겼지만 산할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은 채였다. 결국 나도 그렇고 그런 밀렵꾼 정도로만 비춰질 뿐이었던가.
“들어와 앉으소.”
산할미는 그리 말하고 당집의 문을 활짝 열었다. 불당과도 흡사한 내부는 뎅그러니 남루했지만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한 가운데 불상이 있음직한 자리에는 하얀 천이 덮여져 있는 큰 족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이윽고 천덕이가 당집 뒤에서 물이 담긴 놋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산할미는 놋그릇을 건네받아서 자기 앞에 내려놓고 잔가지가 무성히 달린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그 물에 담그고 몇 번 휘젓더니 꺼내어 휘두르며 당집 안에다 물방울을 뿌렸다. 내 몸에도 몇 방울이 튀었지만 마찬가지 상황이었던 천덕이가 너무나 태연했기에 나도 가만히 앉아있었다. 물방울에는 어떤 빛깔도 없었지만 쌉쌀한 약초 냄새가 났다.
마침내 향불 하나 피우지 않고도 당집 안을 향내와 비슷한 냄새로 가득 채운 후에야 산할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족자 옆에 있는 끝에 술이 달린 하얀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족자를 가리던 천이 위로 올라가며 그 안에 숨었던 신비를 밝은 태양 아래 드러내었다.
“이기 산신랭님입니더.”
천덕이가 그림을 힐끗 보고는 말해주었다. 정말로 상상도 못할 기이함에 잠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림만 쳐다보고 있다가 놀라움이 어느 정도 가신 후에야 옛날에 봤던 책 중에 있었던 그림 몇 점을 떠올리고 유사점을 비교할 수 있었다. 그건 이 세상에 없다는 상상 속의 괴물 같기도 하고, 선택된 사람만이 볼 수 있다고 믿어지는 영수(靈獸) 같기도 했으며, 세상 어딘가에 숨은 원주민들이 숭배하는 신의 모습 같기도 했다.
그림은 세월의 더께로 인해 구겨지고 얼룩이 졌으며 빛이 바래고 곰팡이가 슬었으며 일부 구겨지기도 했지만 안에 담겨진 존재의 상서로움만은 훼손당하지 않은 채로 온전했다. 나는 감히 범접하지 못할 신비함에 압도당해 마치 유서 깊은 사찰에 걸린 탱화를 대하듯 경건한 마음으로 그림을 살펴보았다. 그건 밑에서부터 위로 올려다보아야만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그림이었다.
땅 밑으로 조밀하게 얽히며 뻗어나간 잔뿌리들은 땅 위에서 하나로 모여 하늘을 향해 뱀처럼 비늘로 덮인 줄기로 이어졌다. 그 끝은 마치 연꽃처럼 활짝 핀 비늘, 혹은 깃털로 변한다. 그리고 그 깃털은 오색영롱한 날개를 지닌 표피를 덮고 있다.
머리와 날개는 새요, 몸통이자 줄기는 뱀이고, 그 끝은 나무처럼 땅에 붙박여 뿌리를 내린 불가해의 생물. 땅에 속한 식물이자 살아 움직이는 동물이고 하늘을 날고자 날개를 퍼덕이는 지성체.
“저기 와 뿌리가 그리 약인 줄 아는교? 저 산신랭님이 하늘로 갈라카믄 우째야 되겠노. 지 꼬랑지를 지가 부리로 짤라삐야 안 되겠는교. 그래갔고 나르면 오래 몬가고 마 떨가지삐는 기라. 주디로는 밥도 몬묵고 꼬리로 무야 카는데 그리 몬하니까.”
산할미는 누군가에게 투정부리는 듯한 퉁명스런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뿌리, 그래 뿌리였다. 꼬리이자 뿌리. 뿌리이자 꼬리.
그야말로 완벽한 순환이었다. 광물에 뿌리내린 식물이 땅 위에서 동물이 되어, 하늘의 더 높은 영적인 존재로 화(化)하는 수직상승의 구조. 불사조는 그 자체로 완전했다. 광물에서 시작된 생명력이 식물과 동물을 거치며 한 단계씩 진화한 뒤 마침내 영적인 존재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는, 마치 수슘나와도 같은 통로였다.
말쿠트에서 시작되어 케텔까지 상승하는 불사조의 모습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세피로트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을 하고 보면, 불사조의 머리는 마치 왕관을 쓴 듯이 화려해 보이고, 양옆으로 펼친 날개는 호크마와 비나처럼 보이질 않는가. 하지만 모순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불사조가 새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줄기와 뿌리는 생명의 원천에서 구속물로 전락해버린다. 만약 이 꼬리를 끊어버린다면, 산할미의 말대로라면 오래 가지 못하고 죽어버린다고 한다.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죽지 않는 새라는 그 이름도 무색해지는 것이다.
이를 테면 궁극의 목표, 소망에의 희구를 위해 순환의 고리를 끊었지만 그 앞은 헤칼로트[天宮]로의 등극이 아니라 게힌놈[地獄]으로의 추락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쿤달리니의 뱀이 꼬리를 버린다고 케찰코아틀이 될 수 있을까? 결국 더 높은 단계로 날아가기 위해 버려야만 하는 식물의 본성이 생명의 추를 쥐고 있다는 이 아이러니가 우로보로스처럼 끝없이 자기 꼬리를 물고 놓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정녕 아인 소프는 닿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심오한 지고의 개념인가. 아니면 그 생명마저 바쳐야 비로소 손을 뻗을 수 있는 금단의 열매인가. 분명한 건 저 불사조가 땅과 육체에 얽매인 생명체로서의 존재를 포기했을 때만이 그 꼬리가 땅에 남은 미천한 우리 인간들에게 소중한 약재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불사조가 더 남아있지 않거나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그들이 속세의 불멸을 버리지 않는 한 희망 없이 죽어가던 늙은 거상에게 살아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으리라.
이제 내게는 더 이상 고민도 망설임도 없었다. 당장 노파의 걸낭 안에 든 낫을 움켜쥐고 산 속으로 달려 들어가 어딘가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두 눈을 부라리는 기괴한 꽃을 피운 저 기형식물─아니면 뿌리를 지닌 기형동물이던가─의 줄기를 잘라버리고 뿌리를 캐어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물과 식물이 유별한 자연의 섭리마저 무시한 근원적 합일이 영혼의 상승과 완성을 훼방하고 있다면 기꺼이 도와주리라. 창조가 대대의 분리로부터 시작된다면 저 창조주의 의지마저 거스른 양생물구유(兩生物具有) 혹은 동식물추니라고 불러야 할 저 이단자를 자연의 순리로 환원시키는 것이 어찌 죄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좀 더 솔직해지자. 노골적이고 천박해지자. 저 불사조는 내 관심거리가 아니다. 지고의 경지는 알고 싶지도 않다. 난 신성을 추구하는 구도자도 아니요 산신령을 모시는 토템 숭배자도 아니다. 내게 필요한 건 뜬구름처럼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아인 소프가 아니다. 그저 가장 낮은 단계인 인간의 장소 말쿠트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불사조가 신성한 영광을 얻기 위해 승천한 뒤에 남은 허물과도 같은 꼬리를 얻겠다는 데 안 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난 이제 이그드라실의 끝없이 뻗어나간 뿌리를 갉아먹는 니드호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무릇 인간이란 모두 그 저주받고 불쌍한 뱀이 되어 세계수의 뿌리를 갉아먹으며 살아가는 신세가 아니던가. 성급하게 열매만을 취한 인간은 그 눈이 틔워진 만큼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실락은 근원을 망각한 채 결과만을 원했던 경솔함에 대한 벌이다.
이제 필요해진 건 그 뿌리다. 라돈은 그 이백 개의 눈에 불을 켜고 황금사과만 지키고 있으라고 하고, 나는 뿌리만 살짝 캐어 가면 그만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아무도 그 가치를 생각하지 못했던 뿌리를 말이다. 언제까지 만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길 기다리며 입만 벌리고 누워있을 것인가.
열매를 따기 위해 나무를 오르는 행위는 도전이요 모험이고 쟁취이다. 반면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끝없이 기도드리는 심정으로 뿌리는 캐내는 것이야말로 수확이고 경배이며 참회다. 신이 수확을 거부하고 도륙을 권장한다면 수확물은 오직 우리 자신만을 위해 베푸리라. 그리하여 심마니의 삶은 곧 구도자의 고행으로 승격된다.
조금씩 경이로움과 신비로움, 그로 인해 밀려오는 두려움과 죄의식을 효심에서부터 창조주에 이르기까지 믿을 만한 방패막이를 내세우며 서서히 누그러뜨리고, 기필코 저 불사조를 찾아 뿌리를 손에 넣으리라는 결심을 다진 후 노파에게 물었다.
“알고 계시지요. 저 불사조가, 산신령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저 산 어딘가에는 한두 마리쯤 살아남아 있겠지요. 부디 가르쳐주십시오.”
그러나 산신령을 모시며 산을 지키는 걸 숙명으로 살아간 산할미의 의지는 내 효심 못지않게 확고했다. 어떤 절박한 사정과 간절한 부탁에도 뚫리지 않는 불괴의 정신을 지니고 있는 듯, 손을 내저으며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말투로 내뱉었다.
“씰데 없는 짓 하지 말고 가소. 인자는 산신랭님도 음쓰니까. 있어도 내사 말 몬한다.”
“정말로 산신령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여기에 있는 이유는 뭡니까? 당신은 산신령을 모신다고 하지 않았나요?”
“내는 산을 지키야 되니까!”
“산신령이 승천했다면 끊고 남은 뿌리가 있을 것 아닙니까?”
어느새 나는 반쯤 몸을 일으키며 격한 목소리로 따지고 있었다. 산할미가 대답 대신 몸을 반쯤 옆으로 돌리며 외면하자 천덕이가 대신 대답했다.
“그기는 도시사람들이 죄 와서 다 캐가고 없어예. 글칸다고 산을 다 파헤치 뿌니까 산이 벵들어 삤지예.”
하나 남은 희망의 불씨도 꺼져가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아버지를 내팽개쳐둔 채 그놈의 뿌리를 찾아서 이산저산을 타고 다니며 살아야 하는가 싶기도 했다. 구도는 말 뿐, 더없이 구차하고 비루한 인생만이 내 앞을 예비하고 있었다.
허탈함을 못 이겨 시선을 억지로 밖으로 돌리니 문득 서낭당 앞의 별신대가 눈에 들어왔다. 아래쪽으로 갈수록 굵어지는 장대, 날개를 펴고 있는 새의 모양, 머리에 붙인 커다란 볏 등 다른 지방에서 보지 못한 독특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불사조의 초상을 보고 나서야 왜 그런 모습인지 확연히 알 수가 있었다. 그 별신대는 이 산신령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었음이 틀림없다.
마치 솟대처럼 땅에서 하늘을 지향하는 것인가, 연처럼 하늘을 날되 땅에 매여 있는 구속자인가, 아니면 깃발처럼 자유를 향해 그저 날개를 속절없이 흔드는 희구자일 뿐인가. 아마 그 모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운명은 연이 아니라 풍선이다. 언젠가는 추락하고 마는.
내게 남은 희망 역시 꼬리가 끊어진 불사조처럼 무력하게 땅으로 떨어졌다. 멍하니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불사조의 초상화만 들여다보고 있는 사이에 산할미와 천덕이는 산에 올라갈 차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껏 한 가닥 기대에 온 인생을 걸고 달려온 시절이 아득한 옛일처럼 떠올랐다.
이미 적당한 재산을 물려받고 자신의 입지를 다질 만한 상권을 나눠가진 형님과 누님의 무관심과 차라리 얼른 죽어서 남은 유산마저 빼앗아왔으면 좋겠다는 발칙하고 패륜적인 일말의 저주까지 품은 냉소 속에서 오직 나 혼자만이, 그것도 후첩의 늦둥이로 태어나 갖은 천시와 멸시 속에서 아버지의 사랑이란 것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내가 아버지를 살려보겠다고 오만가지 방도를 수소문하여 용하다는 명의, 좋다는 약재, 돌하루방 코를 긁어 물에 타먹으면 아들 낳는다는 허언 이상으로 미신적인 민간신앙과 설화, 전설과 소문을 좇아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탕진하였던지.
파리가 진수성찬과 오물 덩어리를 가리지 않듯이 내 주위에 꾀어든 돌팔이들의 각종 감언이설과 그만큼이나 달콤한 고명을 잔뜩 얹은 가짜 약과 치유법으로 인해 아버지의 병세는 악화되면 악화되었지 호전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종내는 화타(華陀)라도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은,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장님도 눈뜨게 만드는 야소(耶蘇)가 재림하지 않는 한은 가망이 없을 거란 말만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잠든 건지 깬 건지 구분도 가지 않은 혼미한 상태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시던 그분이, 과거와 현재의 기억도 오락가락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며 점점 어린 아기로 돌아가 버린 듯 살아가던 그분이 내게 말씀하셨다. 기침소리가 섞인 중얼거림마저도 아득한 구름 너머 어딘가에서 들려온 신의 계시처럼 들렸다.
“니는 아뭇소리도 하지 말그레이!”
산할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산으로 올라가면서 천덕이에게 윽박지르듯 거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완전히 꺼졌다고 생각한 희망이 다시 반짝였다. 역시 산할미는, 천덕이는 무언가 알고 있음이 틀림없다. 저 완고한 늙은이보다는 천덕이 쪽이 더 쉬운 설득 상대가 될 것도 확실하다. 나는 두 사람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는 대신, 여기에 남아서 어떻게 천덕이의 입을 열게 할지를 궁리했다.

* * * * *

저녁 해가 뉘엿뉘엿 서산 너머로 자취를 감추며 주위 하늘을 온통 붉게 칠해놓을 무렵 두 사람이 산에서 내려왔다. 그 모습을 멀찍이에서 바라보는 내 손은 주머니 안의 물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유품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끼는 비녀였다. 행운을 가져다주리라는 믿음, 어머니와 함께 있다는 안도감, 그 모든 걸 선사했던 내 애장품이지만 이제 이걸 아버지의 목숨과 바꿔야 할 때가 왔다. 옥을 깎아서 만들고 온갖 보석으로 장식한 이 호화로운 보배라면 천덕이의 마음을 빼앗고도 남으리라.
당집 뒤에 바짝 붙은 두 사람의 숙소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며, 삼돌이와 나도 근처 농가에서 과분할 정도로 많은,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전혀 짐작도 못할 금액을 치르고는 저녁을 먹었다. 꽁보리밥에 고추와 나물뿐인 빈한한 식탁이었지만 여행을 떠나 온 뒤로 숱한 고생을 겪었고 노숙을 하며 말린 북어만으로 끼니를 때운 적도 있는 터라 그럭저럭 먹을 수 있었다.
해가 진 후에 서낭당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어떻게 산할미 모르게 천덕이만 불러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천덕이가 소반을 들고 집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천덕아.”
막 서낭당을 나오는 아이를 나직이 불러 세웠다. 천덕이는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그다지 달갑지 않다는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와예?”
“잠깐 얘기 좀 할까?”
어린 아이지만 여전히 말을 붙이기가 껄끄러웠다. 지금껏 상대해보지 못한 산골사람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툭툭 내뱉는 거친 말투 때문인지, 어른스럽게 노려보는 눈초리와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잡아끌 정도로 반짝이는 눈동자 때문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아마 그 모두 다 이유가 될 것이다.
“내는 할 일이 있어 갖고예……”
“여기서 기다릴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라믄 쪼매만 기다리시소.”
천덕이는 밥상을 들고 부적을 썼던 남자의 집에 들어갔다가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나왔다. 이제 주위는 어두워져 밤이 되어 있었다. 옷차림도 그렇고 뛰어오는 폼도 어둠 속에서 보니 영락없이 남자아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와서 보니 야생동물처럼 반짝이는 눈만은 어엿한 소녀의 것이었다.
나는 천덕이를 데리고 말을 묶어놓은 나무로 갔다. 아이는 말을 보고 신기해하며 갈기를 만져보려고 발끝으로 서서 손을 내밀었다. 이것도 마음을 돌리는데 효과가 있겠다 싶어서 말을 태워주겠노라고 하자 역시나 좋아했다. 줄은 묶어놓은 상태에서 천덕이를 태우고 고삐를 잡아 주위를 어슬렁거리게 해주었더니 함박웃음을 머금고 갈기를 쓰다듬으며 무척이나 기뻐했다. 이제야 아이다운 모습을 처음으로 보는 것 같아 내 마음도 한결 나아졌다.
천덕이를 말에 태운 상태에서 두서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매우 위독하다는 것, 살리기 위해 안 해본 방법 없이 다 써봤다는 것, 그럼에도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 그런 아버지를 살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 처음 만났을 때는 간략하게 했던 말이지만 이번에는 훨씬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풀어놓았다. 듣고 있는 천덕이의 얼굴에서 웃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대답은 한결 같았다.
“아제한테는 미안케도, 내는 말 몬합니더.”
“저 산에 산신령이 있구나? 그렇지?”
아이는 입을 꾹 다물었지만 그게 곧 무엇보다 강한 긍정임을 알 수 있었다.
“부탁이야. 그 산신령을 한 번 보게만이라도 해다오. 그저 보기만 할게. 어떻게 생겼는지 실물을 보고 싶어.”
이제 천덕이는 반쯤 우는 표정이었다. 내 사정과 산할미의 당부, 천덕이의 마음속에서는 아마 둘 중에 무엇을 더 중히 여겨야 할지 심한 갈등을 겪고 있으리라. 문득 나는 천덕이에 대한 일이 궁금해졌다. 산할미는 친할머니일까? 천덕꾸러기로 맡겨졌다는 말은, 혹시 고아라는 얘기일까? 왜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을까?
천덕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혹은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내 설득이 좀 더 강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더불어 어머니에 대한 마음까지도 불러일으키기 위해 나는 준비해둔 비녀를 꺼냈다.
“천덕아, 이게 뭔지 아니? 우리 어머니의 유품이야. 가장 아끼셨던 물건인데, 돌아가시기 전에 내 손에 쥐어주셨어. 그 뒤로 나는 항상 이걸 지니고 다녔단다.”
어둠 속에서도 비녀는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비녀를 내밀자 천덕이는 깜짝 놀라며 두 손을 내밀었다가 마치 불덩어리라도 되는 양 도로 손을 움츠리고 다시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와’하는 감탄사가 그의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나는 비녀가 어떤 보석으로 얼마나 정성들여 만들어진 값진 것인지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리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마음에 드니?”
“하모예.”
천덕이는 고개를 위아래로 힘차게 끄덕였다. 그 천진난만한 얼굴에 대고 할 소리는 아니지만 내 마음은 덫에 걸린 동물을 보는 사냥꾼의 심정을 닮아 있었다.
“갖고 싶니?”
“이거 아제 어무이 거라 안 캤심니꺼?”
“갖고 싶으면 너에게 줄게.”
“참말인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비녀를 도로 집어 들었다.
“그 불사조 있는 곳에 데려다주면 줄게.”
천덕이의 표정은 삽시간에 여러 가지로 바뀌며 그 작은 얼굴로 희로애락을 일시에 담아내었다. 아이는 말의 목을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우야면 좋노……?”
“그냥 보기만 한다니까. 불사조가, 아니 산신령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그래.”
“참말로 보기만 할 낍니꺼?”
“아무렴.”
천덕이는 한참 망설이더니 말에서 내려오려 했다. 나는 가볍게 안아서 내려주었다. 아이의 가슴이 세차게 뛰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바람에 괜히 나까지 두근거렸다.
“내일 아침에 계신 곳으로 갈게예.”
천덕이는 내 손에 든 비녀를 보며 그렇게 말하더니 서낭당 쪽으로 달음박질하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드디어, 간신히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안도감에 크게 한숨을 내쉬고 말의 갈기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소중한 비녀를 잃게 되었지만 천덕이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니 그 전보다는 아깝다는 생각이 훨씬 줄어들었다. 그 비녀로 장식하고 정갈한 옷을 입은 천덕이의 예쁜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더욱 좋으련만. 아니, 내가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비녀는 아버지의 목숨값으로 지불한 거다. 그렇게 생각해야 마땅한 일이다.

* * * * *

다음날 아침을 먹고 조금 지난 후에 천덕이는 약속을 지켰다. 무엇보다 궁금하고 우려되는 사항부터 물어보았다.
“산할미는 어디 가셨니?”
“읍내에 가셨심더. 원래 내도 따라가는데 오늘은 다리가 아프다 캤심더.”
“그래, 잘 했다.”
나는 천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헝클어지고 거친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더니 둥근 얼굴이 한결 고와 보였다. 약속대로 나는 비녀를 꺼내어 내밀었고 천덕이는 약간 떨리는 손길로 받아서 품에 넣은 후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의 앞에는 높지는 않으나 결코 만만하게 보이지는 않는 산이, 그리고 그 위를 뒤덮은 숲이 있었다. 드디어 나는 천덕이를 따라 불사조를 보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다.
숲은 넓고 깊으며 아득하며 천천히 일렁거렸다. 그저 울창하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하고 마치 살아있는 하나의 점액질 덩어리 위를 헤집고 다니는 듯 싶었다. 바다를 가리키는 듯한 이런 표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게 당연했다. 정말로 숲은 바다 같았으니까.
저 서쪽으로, 그리고 북쪽으로 아득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해가 지기가 무섭게 떠올라 밤을 하얗게 태워 없애는 습지대에 사는 용맹한 전사들은 숲을 가리켜 ‘바다(vada)’라고 불렀다던가.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바다 건너 사는 섬사람들은 바다처럼 푸르고 넓은 숲을 수해(樹海)라고 불렀다. 나무의 바다. 물 대신 나무로 들어찬 바다. 그 어느 쪽이든 푸르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푸른 바다를 푸른 숲과 동일한 시지각으로 받아들였을 테니까. 녹림은 곧 벽해가 된다.
정말로 나는,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어디 용궁이라도 찾아다니는 모양으로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물속인 것처럼 발은 무겁고 다리는 느리게 움직였으며, 숨은 턱턱 막히고 옆구리가 뒤틀리는 듯 아팠다.
머리 위로는 바람 따라 일렁이는 푸른─綠이던가, 靑이던가?─그림자가 정말 바다 밑바닥에서 올려다본 수면처럼 보였고, 일렁이는 그 틈새로 햇빛을 간간이 비추었다 도로 감추곤 했다. 물고기 떼처럼 잠자리며 벌이며 작은 곤충들이 잠시 쉬던 내 주위로 날아와 잠시 물결을 타듯 천천히 움직이더니 다시 걸음을 옮기니까 쏜살같이 도망쳤다.
어릴 적 생이별한 어미를 찾아 용궁을 헤매는 전설 속의 어린아이처럼, 용왕님 드릴 간을 품에 안은 별주부처럼 나 역시 내 아버지 살려보겠다고 익숙지도 않은 거친 산길을 연신 나뭇가지며 등걸이며 길쭉한 풀에 스치며 생겨나는 생채기에도 아랑곳없이 천덕이 등만 보고 따라가고 있었다. 나와 대조적으로 천덕이는 자기가 나무의 숲에 사는 인어라도 되는 양 가벼운 몸놀림으로 헤엄치듯 나무 사이를 유유히 노닐었다. 그렇게 우리는 푸른 바다(vada)를 외로이 헤쳐 나갔다.
헉헉거리는 숨소리를 겉으로 내며, 중간에 주운 굵은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서 간신히 경사진 산길을 오르다보니 마침내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서 얼굴을 씻고 목을 축인 후에 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출발했다.
다행스럽게도, 처음 출발해서 물가에 이른 거리보다 더 짧은 거리를 걸었을 때 천덕이가 멈춰 섰다. 그리곤 잠시 숨을 고르더니 옷매무새를 고치는 것이다. 준비를 마친 후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 왔어예. 산신령님 가채론 가지 마이소.”
굵은 나무 뒤에서 고개만 내민 모습으로 우린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 속의 불가사의가 고스란히 실제로 구현된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불사조는 정말로 존재하고 있었다. 바실리스크와는 달리, 나라는 목격자가 있는 이상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전까지 반신반의하던 내 마음은 감당하기 벅찰 정도의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에 압도당해서 만약 천덕이가 큰절이라도 올렸다면 그대로 따라할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비록 아주 작아서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에 묻힐 정도이지만, 불사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린 아이의 흐느낌 소리 같기도 하고, 잘못 조율된 피리에서 나는 불협화음 같기도 했다. 분명한 건, 태어나서 한 번도 듣지 못했고 상상도 못해본 소리라는 사실 뿐이다.
외형은 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약간의 낙엽이 덮인 잔디 위에 나무껍질처럼 굵고 거친 비늘로 뒤덮인 줄기가 솟아 있고 그 위에는 뱀에 먹히고 있는 새처럼 보이는 작은 몸통이 붙어 있었다. 그 깃털 하나하나가 낮이지만 어둑한 깊은 숲 속에서도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반사되어 무엇 하나로 꼬집어 말하기 힘든 색을 띄었다. 어머니의 비녀마저 초라하게 보일 정도로 오색찬란한 벼슬과 깃털을 지닌 새.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 줄기, 날개를 천천히 펼쳐 마치 수면처럼 유유히 노니는 모습이 내 온 정신을 송두리째 휘어잡았다.
우담바라가 실존한다면 저럴까 싶은, 꽃처럼 날개를 편 불사조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문득 금시조(金翅鳥)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용을 잡아먹고도 제대로 소화를 시키지 못해 그대로 항문으로 배설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신성한 영물이 어느새 추악하고 세속적으로 보였다.
그렇다. 어차피 이 세상에 목숨을 달고 살아가는 것들은 다 똑같은 것이다. 다 태어나서 빽빽거리고 울다가 어미젖을 뗀 다음에는 온갖 것들을 먹고 소화시켜 똥으로 바꿔 쏟아내다가 죽는다. 얼마나 구차하고 지저분한 삶이런가. 이런 세상 속에서 성스러움이 뭐란 말인가. 그런데 저놈의 불사조란 놈은 식물의 몸뚱이를 하고 있다. 먹기는 하되 도대체 배설기관이 없는 구조다.
잠시 요망한 잡상에 홀려 있었지만 이제야 제정신을 차리고, 저것의 뿌리를 어떻게 얻어낼지를 생각했다. 일단 손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어차피 지금은 위치만 알아놓고 밤에 다시 와서 뿌리를 캐낼 생각이었기에, 줄기의 굵기가 아래쪽은 내 다리의 두 배 정도, 맨 위로 갈수록 가늘어진다는 정도만 눈짐작으로 가늠해 두었다.
“고마 갑시데이.”
천덕이의 얼굴에 불안함이 떠올랐다. 나는 안심시키기 위해 그러마고 대답했으나, 사실 내 한 손은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고, 그 안에는 미리 준비해둔 붉은색 천 조각이 가득 있었다. 숲을 내려오면서 일부러 천덕이가 눈치 채지 않도록 거리를 좀 띄운 후 일정 거리마다 나뭇가지에 붉은 천을 묶어서 표시를 해놓았다. 밤이 깊으면 알아보기가 어려울 테고 산할미가 읍내에 다녀와서 산으로 올라가지 않는 한 오후에는 출발해야 한다.
다행히 내려오는 길은 한결 수월했지만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해 있었다. 한 번 더 산을 올라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노래지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했지만 억지로라도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천덕이가 집으로 들어간 뒤에 비틀거리며 숙소로 돌아와 평상에 대(大)자로 눕자 삼돌이가 걱정스레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문득 그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불사조의 꼬리를 캐는 일은 반드시 내 손으로 직접 하리라는 의지가 더 강했기에 그저 산을 구경했노라고 둘러댔다.
삼돌이에게 산할미가 무슨 일을 하는지, 특히 산에 올라가지는 않는지 들키지 않게 감시하라고 일러두고, 해가 지기 전에 깨워달라고 당부하고 잠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그가 잠을 깨웠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나는 왜 이제야 깨웠냐며 역성을 냈다.
“하도 달게 주무시기에 차마 깨우질 못했습죠.”
“그래, 산할미는 지금 어디 있니?”
“조금 전에야 돌아와서 지금 집에 있을 겁니다.”
나는 산에서 갖고 온 나무 작대기를 들고, 호신용으로 말안장에 매달았던 단검을 허리춤에 차고서 재차 산으로 향했다.
숲 입구에서 기억을 더듬어 길을 찾고 나니 비록 어둡지만 아직 붉은 천을 알아볼 수는 있었다. 더 어두워질 걸 대비해서 부싯돌도 준비하긴 했지만 불안했다. 내려가는 길이야 어떻게든 내려가면 마을이나 근처에 나오게 될 테지만 올라가는 도중에 길을 잃는다면 곤란한 일이니까.
그런 마음에 심하게 헐떡거리면서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올라갈 때 본 바로는 큰 산짐승도 없는 것 같았지만 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벌써 살쾡이 몇 마리가 근처를 지나갔다. 더 깊이 들어가면 훨씬 크고 사나운 놈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 불사조가 있는 곳까지만 무사히 가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누구에게 빌어야 할까? 이 산의 주인이 산신령이라면 내 기도는 헛된 일이 되고 말리라. 산신령을 지키기 위해 호랑이라도 뛰어나올지 모를 일이니.
하지만 결과적으로 불사조는 이 산의 신령님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무사히 불사조가 있는 곳에 이르렀고,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어두워지자 더욱 밝게 빛나는 그의 몸뚱아리 덕분이었다. 낮에는 그저 반짝이는 금붙이 정도로 보였던 깃털과 벼슬이 이제는 등불보다도 강하게, 찬란하고 영롱하게 빛을 사방으로 뿜어대고 있었다. 주위에 병풍처럼 에워싼 나무들은 오색 물결로 일렁였고 아래의 풀은 불을 붙인 듯 환했다.
그 장엄한 광경에 처음 보았을 이상으로 기가 죽었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생각에 억지로 허세를 부리듯 불사조에게서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버티고 서서 단검을 뽑아들고 칼끝을 머리 쪽으로 겨누며 계백을 만난 철없는 관창처럼 외쳤다.
“비록 너와 원한은 없지만 내 아버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네 꼬리를 취하고자 하니 순순히 꼬리를 내어 준다면 더는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불사조는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늘 그랬듯 주위를 천천히 떠다니며 이따금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성스러운 산신이 머리 검은 새앙쥐의 잡소리에 어디 귀나 기울여줄 리 만무하겠는가.
“너도 지각이 있는 영물이라면 나의 효심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닐 터, 네 깃털과 벼슬이 매우 값지고 탐스럽게 보이지만 절대로 손대지 않을 것이며 몸통에 손상을 입히지도 않을 테니 꼬리를 가져가는 나를 방해하지 말거라.”
나의 말을 알아들었든 그렇지 못했든 나의 다음 행동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제 줄기 바로 아래까지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제야 불사조는 침입자가 있다는 걸 알았다는 듯 낮에서보다 더 큰 소리로 울었다. 하지만 줄기가 구부러져도 불사조의 부리가 나에게까지 닫지는 못했다. 힘차게 날갯짓을 했지만 어째선지 깃털 하나도 빠져 떨어지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기념 삼아 깃털 하나쯤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치고 단검을 칼집에 꽂은 채로 줄기 주위의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잡초와 좀 큰 돌은 손으로 걷어내고 칼끝으로 땅을 쑤셨다. 세계수여, 세계수여, 그 뿌리를 내게! 심마니의 마음이 이럴까, 수확을 앞둔 농부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 아버지를 살릴 약을 달이는 심정으로 나는 서서히 드러나는 가느다란 뿌리를 목도했다. 넝쿨처럼 얽힌 뿌리는 모습을 드러내자 내 손길을 거부하는 듯이 뱀처럼, 지렁이처럼 천천히 꿈틀거렸다. 당장이라도 뿌리의 끝에서 뱀 대가리가 튀어나와 내 손을 덥석 물어버릴 것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손을 움츠렸다.
살아서 움직이는 뿌리라니, 이런 건 생전 처음 보았고 들어본 적도 없었다. 정말로 이건 뿌리가 아니라 꼬리일런지도 모르겠다. 문득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목숨을 앗아가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에 잠시 망설이기도 했으나, 지금껏 거쳤던 시련과 고생을 생각하며, 어머니의 비녀까지 내주었던 일을 떠올리며 최후의 최후까지 거듭 고개를 내미는 망설임과 두려움을 단호히 내던지고 칼집에서 검을 뽑았다.
마침내 검으로 뿌리를 내리쳤으나, 아주 작은 비늘로 뒤덮인 뿌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흙을 파헤칠수록 뿌리의 수와 길이가 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많고 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두려움이 커져 갔다. 마침내 내 등 뒤에서 흙이 파헤쳐지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잔뿌리들이 땅 위로 솟구쳤다. 어느새 나는 뿌리에게 포위된 셈이었다!
가장 굵은 놈도 내 팔뚝보다는 가늘었고 대부분 손가락과 비슷한 정도의 굵기였으나 수십 수백의 뿌리가 뱀처럼 꿈틀대며 일거에 나를 에워싸니 꼼짝도 못하고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 촉수들은 내 손발목과 허리를, 사타구니와 목을 사정없이 휘감고 조여들고 있었다. 땅에 오래 묻혀 있어서 그런지 감촉은 거칠지 않았고 따뜻했지만 온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소름이 끼쳐왔다. 눈앞에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 없는 공허한 불사조의 눈이 있었고, 나를 조롱하듯 벼슬이 까닥까닥 움직였고, 뿌리는 그대로 나를 땅 밑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작정인지 점점 단단하게 몸을 옭죄었다.
벌을 받은 건가, 아니면 먹잇감이 되어버린 걸까. 이대로 목이 졸려 죽고 마는 걸까, 아니면 땅에 묻혀서 정기를 빨리며 서서히 죽게 될까.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발버둥을 쳐봤지만 수많은 뿌리가 내 몸 곳곳을 단단히 묶고 있어 옴짝달싹도 할 수 없다. 단검은 이미 내 손을 떠나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삼돌이를 데리고 올 것을 괜히 혼자 왔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고, 산할미의 말을 들을 걸 그랬다는 생각까지 했다. 점점 목을 졸리고 숨쉬기가 불편하고 답답해지면서 빙글빙글 돌던 주위 풍경도 희미해지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내로 인정받지도 못한 채 살았던 어머니. 나를 한 번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않았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살려보겠다고 정말 목숨을 바쳐서 노력했건만 이제 그간의 모든 일이 헛수고로 돌아가고 속절없이 죽고 마는 걸까.
“살리주이소!”
귀에 환청처럼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몸에 감긴 뿌리를 붙잡는 작은 손이 느껴졌다. 천덕이가 반쯤 우는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신랭님예, 아제를 살리주이소!”
벌써 해가 진 후인데도, 어째서 천덕이가 여기에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우선 살고 싶다는 생각, 천덕이가 나를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숨이 막혀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고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였지만 나는 칼을 가리키며 그걸로 뿌리를 끊고 나를 살려달라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천덕이는 내 쪽은 보지도 않고 불사조를 향해서 계속 소리를 질렀다.
“산신랭님예, 살리주이소! 함만 살리주이소! 예?”
불사조는 이제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날개를 활짝 피더니 하늘을 향해 날아가려고 용을 쓰고 있다. 반쯤 땅 위로 드러난 뿌리가 들썩였고, 줄기는 태풍을 만난 듯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문득 뿌리가 나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달음처럼 별안간 든 생각이지만 점점 확실해졌다. 산할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 산신랭님이 하늘로 갈라카믄 우째야 되겠노. 지 꼬랑지를 지가 부리로 짤라삐야 안 되겠는교.’
날아오르기 위해 뿌리를, 혹은 꼬리를 자른다면 죽어버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뿌리를 매달고 날아오른다면 어떨까? 지금 불사조는 그걸 시도해보려고 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불사조의 머리와 몸통은 하늘로 날아가려고 했고, 뿌리는 계속 땅에 붙어 있으려고 했다. 지금 불사조에게 나는 아무런 관심의 대상도 못되는 것이다. 뿌리는 나를 죽이려거나 정기를 빨아먹으려고 꽁꽁 묶은 게 아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땅에 붙박기 위한 지지대가 필요할 뿐이었다.
뿌리가 드러나며 지지력이 약해진 걸 알아챈 불사조의 몸통은 기를 쓰고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했고, 뿌리는 나름의 본능으로 나를 붙잡고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던 것이다. 이제 뿌리는 천덕이의 양 발목을 휘감고 있었다.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목이 아프고 숨이 갑갑했다. 이놈의 뿌리가 사람의 목을 휘감으면 안 된다는 정도는 알아주었으면 좋으련만!
이제 불사조는 낮에 보여줬던 그 품위와 위엄을 다 내버린 듯이 날개를 마구 퍼덕이며 아까보다 더 거칠게 울어댔다. 찢어지고 갈라진 새의 비명소리가 몸에서 뿜어나는 빛보다도 더 멀리 퍼져나갔고, 천덕이는 거의 악을 쓰며 그만하라고, 살려달라고 외쳤다.
그 어지러움 속에서, 처절한 소리와 숨 막힘과 오싹함과 그 모두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럽고 찬란한 빛 속에서 나는 서서히 정신을 잃어갔다. 문득 몸이 가벼워지며 공중으로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나는 숨을 거두고 영육이탈을 경험하는가 보다. 그런데 아니었다. 몸을 휘감은 뿌리들이 일시에 내 몸에서 빠져나오며 도로 몸의 무게를 느끼면서 땅으로 떨어졌다. 도로 숨을 자유로이 들이쉬게 되자 정신이 맑아지는 걸 느꼈다.
묶여 있느라 몸에 피가 통하지 않아 팔다리가 저리고 뿌리가 꿈틀거리며 지나가 온몸이 간지러웠다. 거기에 땅에 떨어지면서 느낀 아픔까지 참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이럴 수가! 주위는 어두웠고 땅이 파헤쳐진 채로 불사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천덕이는 반쯤 화난 듯이, 무언가 아쉬운 듯이 하늘 어딘가를 보고 있었고 내 시선도 그쪽을 향했다.
별이 뿌려진 밤하늘에 그 어떤 별보다 밝고 아름다운 유성이 하나 솟구치고 있었다. 땅에서 하늘로 향하는 별을 내 평생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불사조는 그렇게 긴 꼬리를 매달고 말쿠트에서 케텔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 여정이 성공으로 끝날지 아니면 다른 별똥별처럼 추락으로 끝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직 확실한 건, 내 긴 고난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음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흙 주위로 손을 더듬어 잘려나간 뿌리 끝이라도 남지 않았을까 찾아보았지만 헛일이었다. 어둠 속에서 손가락 사이로 쥐었던 흙이 빠져나가는 걸 보면서, 내 모든 삶도 그렇게 부질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인가 싶었다.
그때 천덕이가 다가왔다. 오른손에는 내 단검을 쥐고 있었고,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검으로 인해 왼손에 들고 있는 길쭉한 노끈 같은 것도 보였다.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덕이가 왼손을 나에게로 내밀었다. 어두웠지만 내 손에 잡히는 그 감촉은, 온몸을 휘감았던 그 뿌리의 느낌 그대로였다.
얼떨떨한 내 표정은, 비녀를 처음 본 천덕이의 것을 능가할 정도이리라. 나는 뿌리와 천덕이의 얼굴을 연거푸 쳐다본 후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이걸 어떻게……?”
“아제 아부지께 쓰이소.”
“고맙다.”
내 눈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샘솟았다. 비록 내 손바닥 정도 길이의 짧은 잔뿌리였지만 아무튼 꿈에도 그리던 걸 마침내 손에 넣은 것이다. 그때 산할미의 노한 얼굴이 떠올랐다. 산신령에게 칼을 들이대고 결과적으로 불사조를 날려 보낸 나와 그걸 도와준 셈이 된 천덕이를 용서해줄 수 있을까. 아마도 용서 못하겠지. 나야 지금이라도 도망치듯 떠나면 그만이지만 천덕이를 놔두고 무책임하게 그럴 순 없다. 이렇게 된 이상은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는 방법밖엔 없으리라.
산을 내려가려고 일어났지만 팔다리가 저리고 몸이 덜덜 떨려서 서있을 수가 없었다. 이내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도로 쓰러지자 천덕이가 내게로 다가와 몸을 부축했다. 하지만 아무리 산을 타며 자랐다고 해도 나를 데리고 산을 내려갈 정도의 체력은 지니지 못했다.
“나는 괜찮으니 내려가거라. 내려가서 삼돌이에게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해주렴.”
“안 됩니더. 인자 신랭님이 없으니 밤짐승들이 싸돌아댕길 거라예.”
천덕이는 등 뒤에서 내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고 끌어당겨 나무 밑까지 옮겼다. 나는 부싯돌을 꺼내어 내밀며 말했다.
“그럼 이걸로 불을 피워주고 내려가렴. 불이 있으면 괜찮을 거야.”
“그케도 위험합니더.”
천덕이는 낙엽과 나뭇가지를 그러모아 부싯돌로 불을 붙이더니 내 옆에 앉았다. 불에 비친 내 몸을 내려다보니 옷은 찢어지고 곳곳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손목을 비롯해 곳곳에 뿌리가 휘감았던 흔적이 그대로 보였고, 목을 만지니 자국이 느껴졌고 따끔거렸다. 고통스럽게 기침을 하니 천덕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춥습니꺼?”
밤의 숲은 생각보다도 추웠다. 바람이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얼굴을 때리고 지나갔다. 작은 모닥불은 불사조라도 되고 싶은 양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자기도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다는 듯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작은 불티를 바라보며 불사조를 떠올렸다. 자기를 구속하던 뿌리를 끊지 않고, 온전히 몸에 지닌 채로 영원한 자유를 향해 날아오른 불사조. 나는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걸 벗어버릴 수도 없는 나는 다른 이들처럼 땅에 붙박여 살아갈 수밖에.
천덕이의 잠든 머리가 내 어깨에 기대였다. 나는 팔을 둘러 안아주었다.
“천덕아.”
“와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니?”
“그냥 그럴 끼라 생각했심더.”
“그럼 넌, 내가 꼬리를 훔치러 다시 올 줄 알고도 산신령님께 데려다준 거였어?”
“…….”
천덕이는 고개를 돌려 대답을 피했다. 나도 더 추궁하지 않기로 하고 눈을 하늘 멀리에 있는 별로 돌렸다.
“아제예.”
한참 지나서 천덕이가 어색한 침묵을 깨트렸다.
“왜?”
“산신랭님이 와 산을 떠나고 싶어 하는지 아십니꺼?”
“글쎄. 어째설까.”
“지는예, 이리 생각합니더. 날개는 날기 위해 있는 깁니더. 근데 날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 아입니꺼.”
“그럼 뿌리는? 뿌리는 한 자리에 머물러 있기 위해 있단다.”
“그카니 알 수 없는 깁니더. 둘 중에서 하나는 버리삐야 할 거 아입니꺼.”
“뿌리를 끊고 날아간다면 불사조는 오래가지 않아 죽고 만다고 산할미가 말했잖아.”
“금방 죽더라도 함 날아보고 싶은 길 깁니더, 하모.”
“나는 걸 포기한다면 오래오래 살 수 있을 텐데.”
천덕이는 더 대답을 잇지 못했다. 아이의 짧은 삶으로는 미처 이해하지 못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다지 오래 살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불사조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의 비상, 비록 이번에는 뿌리까지 함께 날아올랐지만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짐에만 불과한 뿌리가 무슨 소용이 있으리. 모체로부터 끊어진 탯줄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허물이나 마찬가지인 불필요한 잉여물을, 그 미련과 번뇌를 끌어안은 채로 불사조는 니르바나를 지향하고 있었던가. 솟아오른 유성의 끝은 비록 지극히 절망적이었지만 혹시 달이나 별 위 어딘가에 뿌리를 내릴 수만 있다면, 이전보다는 훨씬 더 영속에의 가능성과 희망이 담긴 비행이 될 테지.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며, 불사조의 비행을 그려보았다. 반짝이는 몸을 하고 기다란 꼬리를 늘어뜨린 유성처럼 생긴 새 한 마리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저 타오르는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광경을. 그래, 이왕 뿌리내리려면 저 태양 위에서여야 하지 않겠느냐. 유성의 모습은 내 마음 속에서도 점점 작아졌고, 마침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 *


그 후의 일은 화살에 매단 것처럼 순식간에 흘렀다. 이튿날 아침에 나는 천덕이를 대동하고 산할미의 집에 내려갔고, 노파는 마치 간밤에 일어난 일을 다 안다는 듯 내 말을 등을 돌리고 앉은 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내가 뿌리를 끊으려 했고, 불사조가 마침내 뿌리째로 하늘 너머로 날아갔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이어졌는데도 노파의 몸은 조금도 움찔거리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할 말은 끝났고 산할미의 판결만 남은 셈이었다. 천덕이는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울음보를 터뜨릴 듯한 얼굴로 내 옆에 서있었고, 산할미는 등을 돌린 채 불상처럼 미동도 없는 상태였다.
“뿌리는?”
돌연한 질문에 얼이 빠져서 대답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여전히 성마르고 날이 선 목소리였다.
“……예?”
“뿌리는 얻었소?”
“네. 잔뿌리 하나를 끊어내었습니다.”
어차피 감추어봤자 허사라는 생각에 털어놨지만 혹시나 더 큰 벌을 받을까 싶어 천덕이가 잘랐다는 부분은 빼놓고 내가 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라믄 고마 가보소. 다시는 이곳에 발들일 생각일랑 하지 마소.”
뜻밖의 기운 없는 목소리라 어리둥절했다. 오늘 아침 산을 내려올 때만 해도 불같이 성을 내며 부지깽이를 들고 나에게 덤벼드는 괄괄한 노파를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반응은 너무 당혹스러웠다.
산할미는 고개를 살짝 돌려 어깨 너머로 쭈뼛거리며 서 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투덜대듯 말했다.
“또 뭐 물 거 있다고 게 서 있는교? 퍼뜩 가소!”
“아, 네. 그,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신세 많이 졌습니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황망히 서낭당을 나서는데 마을 어귀의 커다란 향나무 아래 통나무를 잘라 만든 의자에 개똥이 애비라 불렸던, 눈이 먼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 발자국 소리를 들어서 알았는지 몰라도 정확히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가라앉고 갈라져서 목이 쉰 소리로 말을 건넸다.
“신랭님을 만났는교?”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산할미와 무척 친한 사이처럼 보였으니, 분명 나에 대한 이야기도 했으려니 싶었다. 그는 그냥 무시할 요량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 스쳐 지나는 나를 향해 거듭 말했다.
“내미가 난다 아이가, 신랭님의 내미가.”
“…….”
“보소, 내가 와 눈이 멀어삤는가 아는교? 내는 신랭님을 죽일라꼬 했으니께.”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졌다. 고개를 돌린 순간 그와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여전히 굳게 감긴 눈 주위에는 눈곱이 가득했고 제대로 깎지 않은 수염이 지저분한 얼굴 곳곳에 돋아나서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가 입을 벌릴 때마다 듬성듬성 나 있는 썩은 이빨이 보였다. 평소라면 이내 고개를 돌려버릴 추한 얼굴이었건만, 주술에 사로잡힌 것처럼 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마르고 갈라진 입술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마, 벌 받은기라. 내는 낫으로 그 꼬리를, 꼬릴 짤라 버릴라꼬 해쌌제. 밤이었는데, 올매나 눈이 부신지. 뿌릴 끊었더니 글마가 내 주위를 날아 댕기는데, 그기 마지막이라. 눈앞이 허얘지더니 그 길로……. 그때 내가 서른이 안 되었을 무렵인데, 삼십 년이 넘도록 앞을 몬보고 있는기라.”
불사조에게 시신경을, 아니 혼을 빼앗긴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도 무사한데 그만은 황홀경을 바라본 대가로 다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단 말인가.
“돈 때문은 아이지, 하모. 도시 사람들이 그 꼬랑지 길이만큼 금뗑이를 준다캐도 내는 눈도 꿈쩍 안 캤는기라. 근데 신랭님을 가채서 지켜본 내는 점점 신령님이 꼬리에 묶여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내는 마 도시로 나가고 싶어도 몬가고, 내 조상대대로 살아온 이 마을을 지키라꼬…… 늘 그리 살아왔으니…… 신랭님이나 내나 매한가지라. 지 살고 싶은대로 몬살고 이 땅에 묶이갔고……. 그날 밤에 술을 억병으로 처묵고 낫 하나 들고 산으로 올라삤지. 고마 그길로 내는 눈멀고 마을은 난리가 나삤지. 그캐도 내가 잘몬했다 생각은 안 하고, 그 모습은 지금도 생생한기라. 다른 모습은 보질 몬하니 기억에도 없는데, 딱 고거만 또릿하게 남은기라…….”
노인은 머리를 나무에 기대고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불사조의 비상을 도와주고도 그로 인해 형벌을 받은 듯 눈이 멀어버린 남자는 자신에게 짐 지어진 업보를 감내하며 살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광경 하나만을 감겨진 눈 안에 깊이 새겨놓은 채, 평생 동안 그 장면만을 되풀이해 바라보며 살아야만 하는 운명. 정말로 영원히 오직 하나의 모습만을 바라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혼을 빼앗겼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지니.
그래, 아마 그 때문이리라. 그는 나완 달리 너무나 순수했다. 종교적인 열망과 헌신적인 신념이 어긋난 분노와 만나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어내고 말았건만,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했던 세속적이고 비천한 나는 그 성스러움에 눈멀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어느새 볕을 쬐며 졸고 있는 노인의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렇게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숙여 작별인사를 건넨 다음 삼돌이와 말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느새 천덕이가 손에는 내가 준 비녀를 들고 말 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녀를 만지작거리면서 머뭇머뭇 내게 말을 건넸다.
“인자 가믄 몬봅니꺼?”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말은 그리 했지만 기약 없는 약속일 뿐, 줄이 끊긴 연처럼, 꼬리가 잘린 불사조처럼 나 역시 떠나야 할 운명이었다. 불사조는 둥지와 다름없는, 저 뿌리내렸던 산으로 되돌아올 날이 올까? 그만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면 분명 돌아와서 다시 뿌리를 내리지 않을까. 사람이 언젠가 죽어 흙에 묻히듯, 불사조의 뿌리도 언젠가는 다시 흙 속으로 돌아가겠지. 잿빛과 흙빛만이 가득했던 이곳, 나로 하여금 죽어서 썩어가는 주검을 연상케 만들었던 이곳의 정체는 어쩌면 겹겹이 쌓인 불사조의 묘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천덕이의 헝클어진 머리를 잘 빗어주고 비녀를 머리에 꽂아주었다. 이 비녀만 있다면 언제 어디에 있어도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잘 어울리네. 앞으로도 머리에 꽂고 있으렴.”
“안녕히 가시소.”
천덕이의 작별인사를 등지고 말에 올랐다. 어느새 내 발치에서 가느다란 잔뿌리가 몇 개 얽혀 나와 이 산자락에 박혀 들어갔는지, 말에 올라타는 동작이 유난히 더뎌졌다. 천덕이는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 쪽으로 달려갔다. 어차피 헤어질 것, 길게 배웅할 필요 없다는 의미일까? 하지만 이내 이유를 알았다. 천덕이는 산기슭에 불쑥 튀어나온 바위 위로 올라가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듯이 작아진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나뭇가지에 옹기종기 앉은 새들처럼.
그 새들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인상과는 달리 헤어지는 작별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다. 항상 하늘에서 살아가는 저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대지 위에 뿌리내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그리고 그 모든 굳건한 안정과 영원한 평온을 훌훌 털어버리고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을 일순의 환희와 최후의 성취를 위해 불태우는 불사조의 심정을 말이다.
그저 내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감정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분명 더 아름답게 보이리라는 추측뿐이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절망적인 비상을 절대 후회하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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