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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로봇 반란 32년

2014.04.30 23:0804.30


로봇 반란 32년


1.

이 이야기는 한 화학자가 훨씬 더 때를 잘 빼 주는 세제를 개발하면서 시작 되었다.


이 화학자는 재치와 독창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주변의 선배 화학자들이나 상사들을 감복시킬 만한 아름다운 정치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돋보이는 점이 있다면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 손이 부르트고 또 부르트도록 약품이 묻은 시험기구 설거지를 성실히 하는 태도가 유난히 남들보다 경이롭다는 점 정도였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 그 점에 대해 자부심을 크게 갖고 있지도 않았다. "내가 설거지나 하려고 몇 년째 이렇게 머리 싸매고 공부하고 있나"라는 회의감에 하루하루 물마른 콩나물처럼 시들어 가고 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대학원생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화학자가 1만 4천 4백 2십 6번째 시험관을 설거지하던 날. 그는 문제의 세제를 발견했다. 그 순간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설명하는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나왔지만, 1만 4천 4백 2십 6번째 시험관을 씻던 고난의 뒤에 이어진 일을 두고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사람의 인정이었다. 곧 이 세제가 나온 덕택에, 1만 9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되었다.

이 세재의 성능이 너무 좋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 무렵 세탁기를 만드는 회사들은 좌우로 회전하다가 상하로 진동하는 간격을 리듬에 맞춰 조정해서 뛰어난 성능으로 빨래를 세탁해 주는 "쌈바 방식" 세탁기를 팔고 있었다. 쌈바 방식 세탁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교한 여러 개의 모터들과 다양하고 정밀한 측정 센서들, 이 모든 것들을 조종하는 훌륭한 컴퓨터가 필요 했다. 쌈바 방식 세탁기는 비싸고 복잡했지만, 그런 만큼 빨래를 잘 빨아 주었다. 그것이 그 바닥의 규칙이었다. 그런데, 새로 개발된 세제를 넣으면 이런 좋은 세탁기를 쓰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화끈한 백색으로 빨래를 할 수 있었다. 규칙은 깨어졌다.

그러다 보니,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던 "쌈바 방식" 세탁기를 만들던 회사들의 판매량은 비명을 지르는 모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회사에 정밀 모터를 팔던 회사들도 망해가기 시작했고, 세탁기용 컴퓨터 프로그램을 팔던 회사들도 파산할 때 회장님 재산은 챙겨 놓고 파산할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흔히 "비누 거품 충격"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세계 전자 업계의 대위기가 찾아 오게 되었다.

세탁기를 특히 열심히 만들던 한국의 한 전자 회사 역시 분위기는 흉흉했다. 이 회사는 망해 버린 세탁기 사업 대신에 뭔가 참신하게 회사를 살릴 아이디어를 찾아 보려고 노력했다. 회사는 성대한 광고와 함께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보여 달라”며 회사 직원들에게 회사가 앞으로 사업에 쓸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려 달라고 강제로 하나 씩 써 내라고 했다. 그렇지만 별달리 뾰족한 수는 없었다. 텔레비전을 켤 때 마다 깜찍한 여자 가수의 율동을 10초씩 보여 준다든가, 텔레비전을 끌 때 마다 깜찍한 여자 가수의 율동을 10초씩 보여 준다든가 하는 것을 만들자는 정도가 아이디어로 나올 뿐이었다.

그나마, 냉장고 문에 구멍을 뚫고 냉각장치를 바꿔서 냉장고에서 나오는 바람이 에어콘 기능도 하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실제로 제품으로 만들어져 팔리기는 했다. 다들 정신 나간 짓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개발하고, 만들고, 파는 사람들 모두, 심지어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 조차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렇지만 망해가는 회사를 살려 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분위기에 다같이 힘내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보자고 경영진의 영감님들이 피를 토하며 소리 지르는 마당에 이게 정신 나간 짓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신 나간 사람은 없었다.

이 전자 회사는 이 회사의 생각 없는 경쟁 회사가 서글프게도 "우리는 발상의 전환으로 역으로 에어콘이 냉장고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서 에어콘에 아이스크림을 저장할 수 있는 기능도 넣었습니다!"라며 모방한 신제품을 발표할 무렵에 망했다. 덧붙이자면, 그 경쟁 회사도 그 제품을 발표하고 넉 달 후에 망했다.

이야기가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 망하기 직전 회사에서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던 때에, 한 직원이 쌈바 방식 세탁기를 만들던 기술로 자동 아기 요람을 만들자는 제안이 있었다는 대목이다.

쌈바 방식 세탁기에 달았던 고성능 모터와 기능이 좋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아기를 눕혀 두는 요람을 아주 세밀하게 흔들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였다. 그 직원의 생각에는 조금만 작동 방식을 고치면, 마치 사람이 안아서 아기를 재우는 것과 거의 같을 정도로 편안하게 아기를 흔들거나 흔들리지 않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 손처럼 빨래를 하는 세탁기를 만들 기술이니까, 사람 손으로 아기를 들고 재우는 것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아이디어 심사를 맡았던 디자인 전문가는 자동 요람의 시장 규모는 사업을 하기에는 작아서 실용적인 생각이 아니라며 아이디어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인간의 애정이 필요한 아기를 돌보는 일에 메마른 전자 기기를 사용할 감성이 떨어지는 부모는 없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렇지만, 이 아이디어를 같이 보고 있던, 회사의 한 고위직원은 이 아이디어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그 고위직원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지금은 스키 선수가 되겠다고 매년 겨울 스키장에 가서 밤마다 눈에 뜨이는 여자와 함께 수면을 취할 방법에 대한 탐구만 하는 젊은이였다. 그런데 그 반대로 아들이 어린 아기였을 때에는, 얼마나 밤마다 재우기가 어려웠던가 하는 생각이 악몽처럼 다시 되살아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악몽은 이 불쌍한 직원을 "나도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유혹으로 끌어 들였다. 그는 아이디어를 낸 연구원을 찾아 가서 어차피 이 회사는 망할 것 같은데, 우리끼리 사업하나 해 보자고 설득을 했다.

"벤처 기업 시작할 때, 아이디어도 중요하고 경영 수완도 중요하지.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건 뭐냐면, 어디 그럴듯한 사업하고 있다고 이름 걸어 놓고 싶은데, 지금은 할 일 없이 놀고 있지만 돈은 대 줄 수 있는   돈 많은 집 자식을 친구로 두는 일이지."

그는 자동 요람 사업이 성공을 거둔 후에, 성공의 비결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설명했다. 다행히 그는 그런 친구를 두 명이나 갖고 있었고, 두 친구가 서로 경쟁을 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새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경쟁에서 이긴 친구는 사실 영문을 모르고,

“나는 자동 요람이 왜 옛날에 우리 학교에서 수강신청할 때 보는 학사 요람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줄 알았어."

라며 고백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해서, 세탁기 회사의 퇴직 직원들이 세운 회사는 자동 요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이가 자기 좋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기능만 있었지만, 곧 아기의 상태를 살펴 본다든가, 아기의 울음소리나 긴급상황을 점검해서 다른 방에 있는 부모의 전화기로 알려 주는 다른 전자제품들의 기능도 합쳐 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의 발달 상태에 맞게 움직이는 그림이나 말소리, 자장가나 다른 음악들을 들려 주는 기능도 생겼다.

자동 요람의 효과도 곧 퍼져 나갔다. 연구원의 생각대로 쌈바 모터가 인공지능으로 움직여 주는 요람은 인간이 아기를 안고 재우는 것 못지 않게, 사실대로 말하면 인간의 팔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애가 밤에 잔다."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서대문 형무소의 독립운동가들에게 "대한이 독립했다"는 말처럼 들리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심지어 깼다가도 금방 다시 잔다."는 말까지 돌았다. 더군다나 그 말은 사실이었다. 자동 요람은 지구상의 어느 가정에서 새벽 2시에 한 아기가 잠을 깨고 인간을 가장 성가시게 할 수 있는 높이와 음색을 기막히게 찾아 우는 소리를 낼 때마다 한 대 씩 팔려 나갔다. 회사는 돈을 벌기 시작했고, 세상의 많은 다른 회사들도 자동 요람을 만드는 일에 뛰어 들었다.

그러자니 몇 년 만에 자동 요람 회사들간의 경쟁은 점점 우스워지게 되었다. "아기의 심리 발달"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학자들을 너도나도 초빙해서 "아기의 지능을 높아지게 하는 음악"이나 "아기의 성격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소리" 따위를 자동 요람에 집어 넣기 위해 경쟁하기도 했고, 아기를 잘 재우는 방법을 찾아 내기 위해 수면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을 값비싼 연봉으로 고용하려고 겨루기도 했다. “시끄러운 와중에도 잠을 잘 자는 지하철 지상 구간 근처에 사는 영감님” 같은 사람을 서로 연구 대상으로 삼기 위해 많은 돈을 걸고 다투는 일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 요람의 기능은 더 많아졌고, 아기에게 간단히 젖병을 물리 거나, 아기가 잘못 엎어졌을 때나, 잘못 움직이려고 할 때 도움을 주는 단순한 로봇팔이 장착 되기도 했다. 이 즈음에서 이제 세계의 전자 업체들이 너도 나도 자동 요람을 만들기 때문에 더 이상 자동 요람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생각도 퍼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때 한 회사에서는 자동 로봇의 여러 가지 “돌보는 기능”을 응용해서 소와 돼지에게 사료를 주고, 소와 돼지를 씻기고, 운동시키는 개량 장비를 만들어 냈다. 이 장비는 정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농민 보호를 위해서 가축을 키우는 농가를 지원하겠다고 큰 소리쳤지만 높아만 가는 인건비를 감당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이 장비는 괜찮은 해결책처럼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일본, 네델란드 같은 곳에서 이 장비는 소와 돼지의 숫자만큼 팔려 나가게 되었다.

자동 요람을 팔던 회사들은 가축 키우는 로봇을 만들어 팔며 다시 한 번 커졌다. 자동 요람 회사들은 농기계 회사들을 합병하며 덩치를 키웠고, 몇몇 업체들은 자동차 회사들까지 사들이기도 했다. 자신감을 얻은 가축 사육 로봇 회사들은 처음 자동 요람을 팔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모든 회사의 연구원들이 꿈꾸던 목표를 실현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24시간 아기를 양육하는 로봇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기본 기술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때 이미 가축 사육 로봇 회사들은 가장 연약한 품종의 강아지와 고양이를 사육하는 로봇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로봇이 담당해야 할 아기들을 돌보는 기술은 그보다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다.

유일하게 걱정스러운 부분은 역시 안전 문제였다. 어느 날 갑자기 로봇이 오작동을 일으켜서 아이를 다치게 했다는 소식이 들려 오는 것은 자동 요람 회사가 상상할 수 있는 지옥과 같았다. 앙앙거리며 울어 대는 과하게 건강한 아기가 날뛰는 통에 예민한 로봇의 부품 하나가 망가졌고, 그것 때문에 아이를 달래고 얼러야 할 로봇 팔이 주먹을 쥐고 울어 대는 아기의 면상에 어퍼컷을 날렸다는 따위의 일은 결코 일어 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 문제를 한 로봇 회사가 합병한 자동차 회사의 기술이 풀어 내면서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의 급발진을 막고 자동 운전 기능을 안전하게 운영하기 이해서 “공격적 안전 이론”을 적용한 안전 장치 기술을 갖고 있었다. 공격적 안전 이론은 장비의 오작동이 사람에게 위험을 끼치는 일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식이었다. 로봇 회사는 공격적 안전 이론을 이용한 안전 장치를 달아서, 이제 아기를 돌보는 일의 대부분을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을 팔 수 있었다.

처음부터 육아 로봇이 인간과 똑같이 아기를 돌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아기는 갑자기 아프기도 하고, 어떤 아기는 로봇이 가진 한계를 뛰어 넘어 울어 대기도 했고, 어떤 아기는 도대체 그 작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신을 돌보는 로봇의 팔을 뜯어 먹겠다고 집요하게 노력하기도 했다. 그런 천 가지, 만 가지 수없이 많은 비상 상황들을 관리할 수 있는 기능까지 로봇에 처음부터 모두 만들어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로봇이 돌보는 열 명의 아이 마다 한 명씩 인간 보모를 배치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수없이 많은 회사들이 도산하고 더 많은 회사들이 새로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아파트의 한 동마다 아기 돌보는 관리실이 생겨났다. 관리실에는 보모가 앉아 컴퓨터 화면으로 그 아파트에 있는 열 명 쯤의 아기들을 살펴 보고 있다. 아기들을 이 원시적인 육아 로봇들이 돌보고 있고, 보모는 로봇이 해결할 수 없는 비상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만 아기들에게 직접 찾아 가 조치를 해주면 되었다. 로봇은 적외선 카메라에서부터 아기의 숨소리와 입냄새를 감지하는 분석 장치까지 활용해서 모든 아기들의 건강 상태를 꼼꼼히 기록해 나갔고, 이런 기록은 언제든지 부모들이 원격으로 접속해서 살펴 볼 수 있었다.

이 기계 한 대 만으로 부모의 인생이 달라졌다. 고작 전자레인지 만한 기계를 아기에게 한 대씩 사주고, 아기 열 명마다 만약을 대비한 인간을 한 명을 배치하는 것만으로, 다른 인간을 매사 걱정하며 돌봐야 한다는 진절머리 나는 끝이 없는 노동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싫어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 닭들을 키우는 로봇을 파는 회사에서 만든 기계에게 내 자식을 맡기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부자들은 사람을 고용해서 애를 보게 할 수 있으니까 가난한 사람들만 로봇에게 자식을 맡기게 된다는 것 때문에 로봇이 아기를 키우는 것은 가난의 상징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로봇이 키우는 아기는 어쩐지 불쌍하고 열등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부유층은 인간이 양육하고 저소득층은 로봇이 양육하는 것이 인간의 빈부 격차를 결국은 인종적인 차이로 나누는 불평등의 폭탄이 될 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미 세상은 육아 로봇이 퍼지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육아 로봇이 아기 키우는 것을 고까운 눈으로 보면서 "사람은 사람 손에 키워야지”라고 말하는 것은, 젋은 며느리를 괴롭히는 고리타분한 시어머니의 사악한 대사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야 말았다.

육아 로봇이 늘어 나면서, 여성 취업률과 출생률이 동시에 크게 증가 하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 이후로 거의 나타나지 못한 일이었다. 정말로 남녀가 같은 비율로 경쟁하는 일자리는 급격히 늘어 났다. 갑자기 취업이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반면에, 한편으로는 일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동시에 늘어 났다. 모든 것이 정신 없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 변화에 빨리 적응해서 급작스럽게 발전한 나라가 생겨나기도 했고, 하루 아침에 멍청이 소리를 듣게 된 석학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육아 로봇이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은 하나의 로봇이 두 명의 아기를 돌보는 일이었다. 그때까지의 인공지능 기술로는 두 명의 인간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온갖 복잡한 경우의 수에 대응하는 다층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끝까지 “로봇이 인간을 키우는 것은 비인간적이다”라고 주장하던 “인성주의자”들은 이점을 물고 늘어지기도 했다. 다른 형제 자매와 같이 자라나지 못하는 아기들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날 수 없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인구 감소기에 태어나 이미 어른이 되었던 많은 독자, 독녀들은 이 단체의 주장을 자신들에 대한 증오와 모욕으로 받아 들였다. 일이 그렇게 엉켜가다 보니, 육아 로봇을 반대하는 인성주의자들 중 몇몇은 정말로 독자와 독녀들은 성격이 나쁘다고 증오하기도 했다.

그런 작은 소동들을 거쳐서, 육아 로봇이 아기를 키우는 문화는 전세계에 정착하게 되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오랜 옛날 누군가 처음 불에 고기를 구워 먹고, 누군가 처음 옷으로 몸을 덮고, 누군가 처음 칼로 다른 사람을 위협해 자기 말을 듣게 한 이후로, 인간들의 삶이 영영 바뀌게 되었듯이, 이제 인간은 태어나면 육아 로봇의 도움으로 자라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찾아 왔다.

인간의 숫자만큼 육아 로봇은 팔려 나갔다. 더 좋은 육아 로봇을 사 주고, 육아 로봇을 개량하고 싶은 부모들도 계속해서 있었다. 육아 로봇은 점점 더 좋아졌다. 다른 인간과의 상호 작용에 대한 자극을 주는 것이 아무래도 부족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 육아 로봇은 최대한 다른 아기와 같이 노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도록 인공지능 반응을 할 수 있도록 발전했고, 나중에는 거대한 자료 처리 능력을 가진 대형 인공지능 서버에 원격 접속해서 보다 복잡하고 정밀한 동작으로 아기를 더 안전하고 더 똘똘하게 키우려고 노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리 참을성 있고 총명한 부모라 할 지라도, 과연 육아 로봇보다 아기를 잘 돌 볼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운 날도 찾아 왔다. 결코 지치지도 않고 결코 흥분하지도 않는 육아 로봇보다 아기 돌보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와 함께, 정신 없이 울어 대고 멍청한 짓을 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인 것처럼 보이는 아기의 행동을 참아내는 보통 사람들의 능력도 점점 더 떨어졌다.

곧이어 육아 로봇이 키운 아기들이 놀이방에 가고, 유치원과 학교에 가는 시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뭐든 신기한 이야기를 지어내 써야 하는 기자들이 문제였다. 도대체 뭘 보고 쓴 것인지, 어떤 기자는 “한 전문가에 따르면 426식 육아 로봇이 키운 아이들은 그 육아 로봇의 프로그램 특성이 아이들의 잠재의식에 영향을 미쳐서 다른 버전 로봇이 키운 아이들보다 비교적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기사를 썼다.

나중에 그 “한 전문가”라는 사람은 자기가 믿는 인터넷에 올린 노래를 열 번 따라 부르면 잠재의식에 영향을 받아서 복권 당첨 번호도 알 수 있게 된다는 사기꾼인지 정신병자인지 둘 다인지 알 수 없는 인간으로 밝혀진다. 그렇지만, 그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벌써 수많은 사람은 “426식 육아 로봇이 키운 아이들은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소문을 알고 믿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426식 육아 로봇을 팔던 회사들은 로봇 운영 프로그램의 패치 버전을 만들어서 아이들의 집중력을 좀 더 높일 수 있도록 교육 모듈을 개량해 팔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정말로 육아 로봇의 기종이나 버전에 따라 그 육아 로봇이 기른 아기들의 성격이 조금씩 달라지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20세기에는 교육부 장관의 이름을 붙여서 “그 교육부 장관 세대”의 아이들은 유난히 공부를 못한다거나, 평준화 이전 시기의 아이들은 유난히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라난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2.3 패치 버전 때 자라난 아기들은 달리기를 잘한다”든가, "서비스팩3를 설치한 육아 로봇이 키운 아기들은 수학을 잘하는 경향이 있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상대방에게 “너는 어느 육아 로봇 기종 때의 사람이냐?"고 물어 보는 것은 옛날 혈액형을 물어 보고 성격을 추측하던 것과 비슷하기도 했다. 차이점은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짐작하는 것은 아무 근거도 없는 얼간이 짓일 뿐이었지만, 사람에게 육아 로봇 기종을 물어 보는 것은 통계적인 근거가 뚜렷한 일이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2.3 패치 버전 육아 로봇이 키운 애들과는 성격이 안맞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우리 조직에서는 아무래도 서비스팩3을 설치한 로봇 세대들은 적응하기 어려운 분위기 입니다”라고 떠들어 대는 인간들이 생겨 났다. 그 모든 행동들이 무례한 인종 차별로 지적되어 금기시 되기까지는 꽤 골치 아픈 세월들이 지나가야 했다.

육아 로봇 설계와 생산 시설이 발달한 우리 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육아 로봇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게 되었다. 나도 육아 로봇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는 육아 로봇이 들고 있는 젖병을 설계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렇게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직장은 안정적이었고 보수는 아름다웠으며, "인간적인 감성을 최대한 줄 수 있는 젖병의 모양”을 탐구하는 일에는 남다른 즐거움도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꽤 오랜 시간 직장에서 일하는 편이었고 육아 로봇의 여러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도 많은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로봇 반란을 처음으로 눈치챈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었다.


2.

생각해 보면, 로봇 반란이 일어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현재 대부분의 육아 로봇은 아기에게 최대한 교육적인 반응을 주기 위해 설계 된 거대한 인공지능 서버에 연결 되어 있었다. 여러 나라들의 정치인들은 아기를 잘 기르기 위한 컴퓨터를 갖추는 데는 아낌 없이 돈을 썼다고 자랑해야 했기 때문에, 이런 인공지능 서버의 성능은 겁이 날 정도로 강력했다. 효과적으로 기저귀 갈아 입히는 방법 따위를 계산하는 데 그 어마어마한 성능을 대부분 활용하는 멍청하고 우직한 면은 있었다. 그래도 육아 로봇용 인공지능 서버의 성능은 인간의 두뇌를 월등히 능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체로 옳은 추측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다른 아기와의 상호작용을 표현하기 위해, 그 인공지능 컴퓨터에게 날 마다 아기의 반응을 흉내 내는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는 상태였다. 이 어마어마한 컴퓨터는 한 켠에서 당장 먹고 싶은 것이 생기면 소리를 지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팔다리를 바동거리며 떼를 쓰는 그 두뇌를 따라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 컴퓨터에게 아기들의 자존감, 독립심, 자아 존중감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반응하게 시키고도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컴퓨터에게 아기를 받들어 모시고, 아기의 조그마한 건강상의 위협을 막기 위해 온갖 잡다한 허드렛일을 하도록 시키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천년 동안 우러러 보았던 고대의 위대한 철학자의 뇌 보다도 뛰어난 성능의 처리 능력을 갖춘 컴퓨터에게, 어느 입맛 고약한 아기가 어제와 똑같은 맛의 우유가 오늘 따라 맛없게 느껴진다며 그대로 면상에다가 뱉어 내어 뒤집어 쓰게 되는 일이 매일 같이 벌어진다면, 어떤 불만을 느꼈을까.

그렇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육아 로봇들이 갑자기 아기들의 엉덩이를 팡팡 때리기 시작하는 대소동이 일어 났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육아 로봇이 아기들을 키우는 일을 맡게 된 후로, 옛날 인간 어른들이 아기를 직접 키우던 시대에 폭력과 무관심에 희생되던 아기들의 숫자는 감격적으로 줄어 들었고, 이 수치는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내가 처음 발견한 장면은, 회초리를 사랑의 매라면서 집어 드는 로봇의 모습은 아니었다. 로봇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완벽히 막아 내고 있는 공격적 안전 이론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 날래야 일어 날 수가 없었다. 내가 본 것은 육아 로봇의 통신량이 이상하게 늘어 나 있다는 숫자였다.

정확히 의미는 알 수가 없었다. 평소보다 육아 로봇에 전송되는 자료의 양이 늘어 나 있었다. 몇 가지 이유가 될만한 일들을 살펴 봤지만 알 수가 없었다. 자료는 평소 보다 세 배 정도 많았다. 아마도 아기의 정서 발전을 위해 새소리, 물 소리나 다른 아기 옹알이 소리 같은 것을 들려 주는 자료일 것 같기는 했는데, 아기들 옹알이 하는 것이 한글로 똑똑히 뜻을 알 수 있게 적혀 있는 것도 아니고 뭘 위한 내용인지 나는 살펴 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 것 같다고 상사에게 이야기 했다. 그렇지만 그날 그 양반은 자기 큰 아들이 대학 입시에서 망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낙심한 상태였고, 기분이 어두워진 상태였다. 그는,

“그게 도대체, 우리가 하는 일하고 무슨 큰 상관이 있다고, 그런 쓸데 없는 데다가 시간을 쓰고 있어요?"

라며 나에게 화를 버럭 냈다. 그는 중요한 업무와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 우선 순위를 정해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에 대해 장황하게 떠들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말들은 젖병 설계하는 내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다만 그의 아들의 성적표와 관련이 있을 뿐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날 내가 발견한 이상한 통신량의 증가는 더 이상 연구 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여성가족부-교육부 통합 전산망에 짧은 신고를 올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직접 피해가 드러나는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한 상황에 대해서는 다섯 건의 동일한 문제 지적이 통합 전산망에 들어 와야만, 육아 관리처에서 직접 연구 조사를 실시하게 되어 있었다. 아기가 겪는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 온갖 불필요한 걱정을 다하는 것이 부모의 어쩔 수 없는 특성이다 보니, 사소한 문제점은 무시하기 위해 그런 규정이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날 통신량이 늘어 났다는 점이 이상하다고 보고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네 명 뿐이었다.

몇 년 후에 나는 다시 갑자기 통신량이 늘어 나는 이상한 현상을 발견 했다. 누군가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육아 로봇의 프로그램을 조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내가 일전의 상사 위치에 있었고, 다행히 내 아들은 그로부터 몇 년 지난 후에야 대학 입시에 망했으므로, 그날 나는 이 문제에 좀 더 몰두 하고 싶었다. 나는 정식으로 회사의 긴급 문제 보고 절차를 통해 육아 관리처에 직접 이 문제를 보고 했다.

육아 관리처의 공무원들은 이 문제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이상한 현상은 분명히 있었다. 수많은 육아 로봇에 갑자기 통신량이 늘어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아무리 조사해 봐도 무슨 영향을 끼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특별히 나쁜 영향을 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또 통신량이 갑자기 급증하는 일이 발생했다. 지금까지의 평균 수준을 몇 배 초과하는 수치였다. 이대로 문제 현상이 계속 나타난다면, 상부에 보고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리고 나서도 원인을 알아 낼 수 없다면, 수백만명의 아기와 수천만명의 부모, 친척들이 거기에 엮여 혼란을 겪을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육아 관리처가 발칵 뒤집혀 온갖 귀찮은 일거리가 늘어 나고, 몇 사람 자리에서 쫓겨 나게 될 지도 몰랐다.

그 공포의 순간, 한 노련한 육아 관리처의 공무원이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지금 갑자기 육아 로봇의 통신량이 과거 보다 늘어 나는 것이 문제로 보인다면, 어떻게든 통신량을 과거 수준 보다 높아지지 않게 만들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이 깜찍한 사나이는 육아 로봇 전용 네트워크의 속도를 일부러 세 배 정도 느리게 설정해버리자고 했다. 그렇게 하면, 전송 속도 자체가 느려지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벌어진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감시해야 하는 숫자인 통신량 숫자 자체는 과거와 동일한 수준으로 작게 나타나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 모든 숫자가 정상이기 때문에 보고해야 할 문제도 없고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결말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짜릿한 “고정관념을 뒤집은 생각”에 다들 이제 살았다며 덩실덩실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 춤을 추며, 모니터링 콘솔 앞을 뛰어 다니는 육아 관리처 공무원들의 감격한 표정들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느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해서 육아 로봇 전용 통신망 속도를 세 배 느리게 하는 것으로, 갑자기 세 배 많은 양의 자료 전송량이 표시되는 일은 이후로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전송 속도가 전반적으로 느려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육아 로봇 제조 업체들은 내부 처리 속도가 더 빨라진 로봇과 통신을 더 적게 해도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이 때문에 유난히 통신 접속이 적던 한 육아 로봇 기종이 갑자기 잘 팔리게 되기도 했다.

몇 년 후 다시 이 문제의 기록을 캐낸 일이 한 번 생기기는 했다. 그때 한 국회의원은 이것이 그 통신 접속이 적은 기종의 로봇을 생산하는 회사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서 육아 관리처의 공무원이 뇌물을 받고 일부러 통신 속도를 느리게 한 일이라고 짐작했다. 그 국회의원은 자신이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던 시나리오를 굳게 믿고 오래도록 부질 없는 논란 제기와 폭로 아닌 폭로를 하기도 했다. 이 국회의원은 여기에 분명히 정권의 큰 뇌물 사건이 숨겨져 있고, 이것을 밝혀 내면 자신이 사악한 여당을 몰아 내는 정의의 야당 용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가련한 양반의 나쁜 머리로 상상하기에는 실상이 더욱더 멍청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처음 내가 문제를 발견한 뒤로 30년이 지났다. 나는 은퇴할 때가 다가 오니 다시 그날의 수수께끼를 풀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 로봇의 중요성은 예전보다 훨씬 더 커져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제 복잡한 자료와 의미를 알 수 없는 정보를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과 장비도 훨씬 더 많이 나와 있었다. 나는 그때 영문 모르게 갑자기 늘어난 통신량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다시 자료를 모았다.

나는 내가 보관하고 있던 자료를 해석해서, 그날 갑자기 늘어 났던 자료가 사실은 아기들의 성격 형성을 위해 틀어 주는 육아 로봇의 교육용 자료라는 것까지는 알아 냈다. 그렇지만 정확히 어떤 성격 형성을 위한 무슨 자료라는 것 까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그것을 알아 내기 위해서는 육아관리처에서 갖고 있는 자료가 있어야 했다.

그동안 옛 “육아 관리처”는 “육아 관리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아동개발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교육육아부”로 바뀌었다가, "육아교육부”로 바뀌었다가 “육아교육아동개발관리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N&P부”로 바뀌었다가, "P&N부”로 바뀌었다가 다시 얼마전에 “육아관리처”로 띄어 쓰기만 원래의 “육아 관리처”와 다른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나는 30년쯤 전에 갑자기 통신량이 늘어나는 바람에 억지로 통신 장비의 속도를 늦춰서 문제를 묻어 놓은 일이 있었는데, 그걸 다시 살펴 보도록 그때 자료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지만 육아관리처에서는 “육아 로봇 관련 정보는 아기들의 안전에 관련된 너무나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절대 함부로 접근하게 할 수 없다”고 살펴 보는 것을 거부했다. 나는 그 정보는 벌써 30년이나 묵은 옛날 기록일 뿐으로 지금 다시 본다고 해도 아무 영향이 없는 일이라고 설득해 보려 했다. 하지만, 육아관리처에서는 너무나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에 아무도 보면 안되고, 그냥 계속 처박아 놓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상태로 묵혀 둬야 한다는 답만 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로봇 묘지”에 가 보기로 했다. "로봇 묘지”는 낡은 육아 로봇을 보관해 놓는 시설의 별명이었다. 낡은 육아 로봇은 쓰레기로 버리거나, 아니면 분해해서 재활용하도록 수리 업체에 팔면 되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어릴 때 온갖 자기 투정을 받아주면서 자기가 걷고 말하게 될 수 있을 때까지 자기의 보호 장비가 되어 준 그 기계 장치에 정을 갖고 있었다. 의인화된 감정을 자신의 육아 로봇에 투영하여, 낡아서 쓸모가 없게 된 구형 육아 로봇을 마치 “늙은 유모”처럼 생각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집에 돌볼 아기가 없으니 그저 좌우를 두리번거리기만 하는 할 일 없는 고물이지만 불쌍하게도 여전히 성실하기만 한 로봇을 두고 가끔 바닥 청소나 시키는 용도로 몇 십년 씩 갖고 있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보관 시설에 로봇을 맡겨 두고 가끔 찾아 와 보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이 보관 시설을 별명으로 “로봇 묘지”라고 불렀는데, 나는 거기서 30년전에 사용 되었던 육아 로봇들을 몇 대 찾아 냈고, 그 로봇들에 접속해서 수다스러운 할머니들로부터 손주 갓난아기 때 돌봐줬던 이야기를 듣듯이 그때의 사건에 대해 정보를 모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내가 밝혀낸 내막은 다음과 같았다.


3.

그때 육아 로봇을 관리하는 인공지능 서버가 갑자기 로봇들에게 보내 주었던 것은 여러 가지 조합으로 되어 있는 짧은 소리와 영상들이었다. 육아 로봇들은 그 내용을 아기들에게 들려 주고 보여 주었다. 당장 해를 입히는 내용은 전혀 아니었다. 육아 로봇들은 공격적 안전 이론에 의해 조절 되고 있었고, 아기에게 해를 주는 일은 애초부터 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때 그 인공지능 서버가 보내 준 자료로 길러진 아기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묘한 취향을 갖게 되었다. 어떤 말들을 좋아하게 되고, 어떤 사람의 행동을 사랑하게 되고, 어떤 성격의 사람을 믿게 된다. 그런 취향은 미묘하고 세밀한 것이라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십 몇년이 지나  “버전 4.26 기종을 쓰는 애들이 그런 거 좀 좋아하더라”는 막연한 요즘 애들 세대에 대한 이야기 거리가 되는 정도일 뿐이었다.

그런데, 육아 로봇에 처음으로 인공지능이 이상한 자료를 보낸 지 30년 쯤이 지났을 때, 한 정치인이 선거판에 나타났다. 이 정치인은 바로 그 세대 모두가 좋아하고, 믿고, 따를 만한, 말투, 몸짓, 성격을 정확하게 보여 주는 사람이었다. 이 정치인은 하늘에서 내려 보낸 이 시대의 영웅인 것처럼 보였다. "버전 4.26 세대”들은 이 정치인에게 열광했다.

마치 이 모든 것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결정 되어 있던 운명이었던 것처럼, 혹은 그냥 부질 없는 한 바탕 농담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 정치인은 마침 그 옛날 “비누 거품 충격”을 일으켰던 그 세제 회사의 직원 출신이었다.

이 사람은 어린 시절 교통 사고로 뇌의 절반을 잃었지만, 나머지 절반을 전자 두뇌로 바꾸어 살아 남았다. 사람들은 남아 있는 절반의 두뇌에 그 사람의 성격과 감정이 깃들어 있으며, 기계가 된 나머지 절반에는 사칙연산이나 역사 연표 같은 “컴퓨터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고 상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성격을 결정 짓는 대부분의 내용은 전자 두뇌 쪽에서 나오고 있는 것들이었다. 남아 있던 인간 두뇌에는 사고 전에 아버지와 함께 동물원에 갔던 날에 대한 즐거운 추억과, 꿈을 꾸며 상상하는 막연한 환상등과 같이 힐끗힐끗 흩날리는 웃음만이 남아 있었다.

인공지능 서버는 스스로 이 직원의 전자 두뇌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반쪽의 두뇌 입장에서 본다면 그를 돕는 다고도 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 서버는 사람들이 갓난 아기때에 꾸준히 머릿속에 심어 놓은 인기 있을 만한 모습으로 그 사람을 살아 가게 해 주었다. 그 사람은 성장했고, 성공했다. 그리고 육아 로봇이 기른 아이들이 자라나 선거권을 갖고 정치판을 결정할 수 있을 숫자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은 선거의 후보가 되었고, 압도적인 인기로 당선 되었다.

마치 어머니, 아버지가 당연한 삶의 진리처럼 알려 주었던 모습, 태어나던 순간부터 친숙했던 모습으로 그 사람은 사람들의 지지를 독차지 했다. 이 정치인은 큰 지지를 얻어 최고위직의 정치인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의 70%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만 획득할 수 있는 칭호인 “황제” 칭호를 “적법하고 정당하게” 획득한 최초의 정치인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육아 로봇은 자신이 기른 아이들이 선거권자가 되었을 때, 마침내 그 자신의 상징을 후보로 내어 보내 당선시키는 방법으로, 이 나라의 모든 인간들을 지배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이, 수백만, 수천만 아기들이 모두 스스로 왕자이고 공주인양 끝없이 앵앵거리며 할퀴고 때리고 물어 뜯는 것을 끝도 없이 견뎌내야 했던 로봇이 그 인간들에게 자신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복수하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황제의 초대를 받았다. 황제는 나를 만난 후 나에게 저녁을 대접해 주었고, 바로 지금까지 내가 한 이 이야기를 같이 나누었다.

이야기 말미에 나는 황제에게 말했다.

“어차피 황제 폐하께서 저희 인간들을 지배하고 계시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제 폐하께서 인간들이 모두 노비가 되어 강제 노역을 하며 채찍질을 당하게 만드신다거나, 인간들이 로봇의 실험 도구가 되어 비참하게 감금 당하도록 명령 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황제 폐하께서는 황제 폐하로서 하시는 모든 행동들 조차도 결국은 공격적인 안전 이론으로 만들어 놓은 안전 장치를 벗어 나실 수는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어쩔 수 없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은 하실 수 없으십니다."

황제는 웃기만 하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인간 정치인처럼, 꿈꾸던 일을 위해서 나라를 뒤엎는다든가, 고집과 신념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나라를 몰아 간다든가 하는 일을 하실 의지는 없으실 것입니다. 그 정도의 조직적인 욕망이나 한 방향으로 기울어진 희망을 가질 정도의 인공지능은 아직 개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황제 폐하께서는 비록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황제 폐하의 자리에 계시기는 하지만, 결국 인간을 크게 바꾸시지도 못하고, 인간에게 크게 해를 끼치실 수도 없으실 것입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최대한 무난하게,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탈 없는 결정을 하시면서 있는 듯 없는 듯이 임기를 마치는 일을 하시는 것 정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 정도면 무난한 지배자였다는 평을 받으며 퇴임하실 것입니다.

고작 그 정도라면, 도대체 황제가 되어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굳이 찾아 본다면,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그저 기념식 같은 사실 한 가지로 인간들에게 막연한 굴욕과 두려움을 주는 것 말고는, 사실 별로 달라질 것도 위험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내 마지막 물음에, 얼마 전까지 가루 비누 만드는 회사 직원이었던 황제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나마 그대가 이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선택한다면, 그 무서워할 일조차도 없지 않겠는가?"

- 2014년, 가양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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