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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시티 탈피

2020.10.01 00:0010.01

탈피

노말시티

 

외골격이 있는 동물은 성장하기 위해 허물을 벗어야 한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난 내 기분이 그랬다. 갑각류나 뱀이 된 꿈을 꾼 건 아니었다.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커녕 내가 누군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깜깜한 어둠 속에서 과거의 모든 기억과 단절된 채 현재의 감각만이 신경을 타고 몰려 들어왔다. 침대의 감촉과 알람 소리와 무질서하게 흩어진 전자 기기들이 공기 방울처럼 솟아오르는 기억들과 하나씩 접점을 찾아가면서 나는 내가 누군지 왜 여기 누워있는지 이유를 찾았다. 내가 나라는 걸 깨닫고 더 이상 정신을 놓고 있으면 지각이라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난 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였다.

어색하게 팔다리를 움직여 출근 준비를 하고 버거운 몸뚱이를 빼곡한 지하철에 밀어 넣고 나서도 나는 왠지 내가 장현수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았다. 말하자면 잠에서 덜 깬 기분이었다. 뭔가 지독하게 생생한 꿈을 꾸었는데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전부 잊은 것 같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다. 동작이나 표정에는 어색함이 없었고 만나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도 명료했다. 다만 머릿속만 공중에 붕 뜬 듯 흐릿했다. 꼭 남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누구지.

새로 드러난 속살이 서서히 굳어가듯 그 멍한 느낌에 익숙해지던 나는 문득 머리를 두드리던 울림이 하나의 목소리라는 걸 알았다. 내가 누구지. 여긴 어디지. 목소리가 선명해질수록 위화감이 커졌다. 마침내 나는 무의식적으로 되뇌는 줄 알았던 그 말들이 사실 내 생각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는 또 다른 무언가의 목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가 내게 말을 하고 있었다. 아니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나의 존재를 몰랐다. 내가 말을 걸기 전까지는.

누구시죠.

뭐라고요.

대답이 들렸다. 내 머릿속에서. 그러니까 귀로 들은 소리는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말을 주고받은 셈이었다. 그냥 혼자서 대화를 상상한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뭐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차이는 명확했다. 나의 말과 상대의 말이 오가다보니 나와 내가 아닌 것의 차이가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누구시냐고요.

모르겠어요. 그냥. 저는. 기억이 나질 않아요. 이건... 꿈인가요?

저야 말로 꿈을 꾸는 것 같네요. 근데 꿈이 아니에요. 명백하게 현실이고. 머릿속에서 이렇게 목소리가 들린다는 게.

머릿속?

그래요. 머릿속. 당신은 지금 제 머릿속에 말을 하고 있다고요. 이게 무슨... 텔레파시 같은 건가요.

저는 그냥. 여긴 아무 것도 없어요. 형체 없는 색들이 폭죽처럼 번쩍이고 온갖 소리가 뒤섞여 휘몰아쳐요. 색과 소리가 넘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갑자기 당신 목소리가 들렸어요. 당신은 누구죠?

저는... 전 장현수라고 합니다.

장현수. 그렇군요. 당신이 장현수군요.

당신은 누구세요.

그걸... 모르겠어요.

목소리와의 대화는 거기서 더 진전이 없었다. 궁금해서 조바심이 났지만 난 일부러 더 캐묻지 않으려 애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상이 아니다. 고쳐야 할 증상이고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질지도 모르는 병이다. 나는 잠을 푹 자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과 동시에 아예 들리지 않는 척 머릿속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병이 낫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잠을 설치다 충동적으로 머릿속에 말을 걸면 어김없이 목소리가 들려왔고 등줄기가 차갑게 식으며 정신이 또렷해졌다.

목소리와 이야기를 나누며 한 가지 확실해진 건 이 목소리가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가 텔레파시로 보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목소리는 정말로 내 머릿속에 살고 있다. 목소리에게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외에 다른 삶이 없었다. 내가 말을 걸지 않을 때는 그저 색채와 소음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다. 외로움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면은 점점 더 심해졌다. 처음에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던 목소리는 점차 그 의문을 잊어갔다. 자신이 누구여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듯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그 속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니.

이런 상황을 답답하다고 표현하는 건 알겠어.

아직도 네가 누군지 기억이 안 나?

기억이라. 나라는 건 지금의 상태를 말하는 거겠지. 그걸 왜 과거의 정보를 바탕으로 정의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럼... 지금의 넌 누군데? 아니면 뭔데?

나는 네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반응이지.

그 반응을 누가 하는 거냐고.

반응이란 자극과 규칙의 결과지. 자극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규칙을 말하는 거야.

어떤 질문을 던져도 목소리는 속 시원한 답을 해 주지 않았다. 반면에 나는 점차 나아져서 어딘가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나 빈 껍질 속에 들어 앉아 있는 기분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었다. 머릿속의 목소리와 대화를 나눈다는 게 유일하게 비정상이었는데 밖으로 드러나는 문제도 아니었고 어찌 보면 그냥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도 않은 듯하여 나는 더 이상 그 문제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주에 끝이 있을까. 끝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야. 밖이 없다면 끝도 없지. 그럼 우주는 무한한 걸까. 아니. 세상에 무한한 건 없어. 무한은 인간의 언어로는 정의될 수 없는 개념이야. 그럼 한 쪽 방향으로 계속 가다보면 언젠가는 우주의 끝에 도달할까. 그건 불가능하지. 아무리 빨리 날아가더라도 우주의 끝에 도착할 수는 없어. 그럼 끝이 없는 거잖아. 눈에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걸 없다고 정의한다면 그래 맞아 우주에는 끝이 없어.

가끔은 목소리와 나누는 대화 중 어디까지가 내가 한 말이고 어디부터가 목소리의 대답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목소리를 반응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목소리는 점점 규칙처럼 느껴졌다. 목소리는 나의 질문에 반응하는 거대한 구조였다. 내가 머릿속에 있다고 생각한 건 사실 내가 준 자극이고 그에 대한 반응일 뿐 목소리 그 자체는 우주 전체에 퍼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목소리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은 이렇다.

난 우주야. 너도 언젠가는 우주가 되겠지.

그렇게 목소리의 존재는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내 몸 전체와 내 생각과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막연한 무언가가 내 피부 겉면을 따라 그려진 명확한 경계 안에 담겨 있다는 느낌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그리 오래지 않아 다시 깨졌다.

역시 잠에서 깨어난 어느 날 이번에는 몸이 이상했다. 잠을 잘못 자서 뻐근하거나 저린 느낌이 아니라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과 영혼이 엇나갔다. 몸 전체는 아니고 왼손 하나만 그랬다. 아무리 손을 쥐었다 펴려고 해도 눈에 보이는 손은 생각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손은 정상이었다. 유독 왼손만 말을 듣지 않았다. 주물러 보았더니 느낌도 없었다. 또렷하게 느껴지는 오른손의 촉각과는 달리 왼손은 마치 고무 인형처럼 밋밋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갑자기 왼손이 내 몸에 붙어 있는 지저분한 딱지처럼 느껴졌다. 내 몸 같지가 않았다. 긁어내고 떼어내야 시원할 것 같았다. 손목에서 끝나는 내 존재의 경계를 말끔하게 닦아내고 싶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비된 줄 알았던 왼손이 갑자기 제멋대로 움직이는 걸 보고 나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때맞춰 알람이 울렸다.

왼손이 이상해도 출근은 해야 했다. 다행히 왼손은 출근 과정에서 하는 일이 많지 않았다. 양치와 세수는 크게 문제없었고 샤워도 그럭저럭 해냈다. 옷을 입다가 깨달았는데 왼손이 아예 비협조적인 건 아니었다. 원하는 타이밍에 정확하게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대충은 내가 원하는 움직임을 따라주었다. 꼭 말 잘 듣고 눈치 빠른 조수 같았다.

덕분에 회사에서도 내 왼손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지난번에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대해 동료들에게 무심코 이야기했다가 이상한 취급을 받았던 걸 생각하면 반드시 그래야 했다. 동료들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줬지만 그게 날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을 하도 들어서 그럭저럭 목소리와 잘 지내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빼고는 일을 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왼손은 내 의도를 따르기 위해 애썼지만 아직 오른손과의 조율은 잘 맞지 않았다. 나는 오타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천천히 자판을 두드려야 했다. 틈이 날 때마다 왼손을 주무르며 감각이 돌아오기를 빌었지만 그것만큼은 왼손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왼손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은 몇 달 전 잠에서 깨어났을 때 몸 전체에서 느껴졌던 붕 뜬 느낌과 어딘지 비슷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몸이 조금씩 감각을 찾아갈 때 머릿속에서 들렸던 목소리의 느낌과 비슷했다.

내 왼손이 이상해.

혹시나 싶어 머릿속에 말을 걸어 보았지만 목소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존재감이 희미해진 목소리에게 말을 걸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머릿속에 있던 무언가가 왼손으로 옮겨 간 걸까. 나는 왼손에 말을 걸어 보려고 했지만 그럴 방법이 없었다. 머릿속의 목소리에게 말을 걸 때는 몰랐던 위화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입을 벌려 소리내 말을 건네려다가 그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나는 그저 시간이 가면 나아지기를 바라며 더 이상은 나라고 느껴지지 않는 왼손과 동거를 시작했다. 머릿속의 목소리가 그랬듯 적응하니 그럭저럭 지낼 만 했다. 왼손은 점점 능숙하게 내가 원하는 바를 알아채고 적당한 행동을 수행했다. 가끔 일부러 라고 느껴질 만큼 어긋나는 경우도 있었는데 마치 자신이 나와는 다른 존재라는 걸 분명히 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절대 선을 넘지는 않았다. 이제 막 사춘기를 맞이했지만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는 영악한 아이처럼.

나는 최대한 신경을 쓰지 않으며 목소리 때와 마찬가지로 잠을 푹 자고 스트레스를 줄이면 저절로 증상이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 그러다보니 어쩌면 왼손 하나 정도는 왼손에게 양보하고 살아가도 상관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세상에 내 뜻대로 안 움직이는 게 얼마나 많은데 왼손 정도면 감지덕지다 싶었다. 심지어 어떨 때는 내가 아니면서도 나에게 맞춰 주는 왼손이 마음이 잘 맞는 친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의 바람이 무색하게 시간이 갈수록 왼손의 문제는 목소리와는 다르다는 게 분명해졌다. 점점 희미해져서 결국 신경 쓰지 않게 된 목소리와는 달리 왼손은 점점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이물감은 손목을 타고 올라 팔꿈치로 번져갔고 나의 경계는 점점 쪼그라들었다. 두려운 마음이 들 수록 나는 애써 상황을 외면하려 했고 막연히 괜찮을 거라고 되뇌며 불편한 감정을 지워냈다. 결국 왼팔 전체가 제멋대로 움직이게 되고 나서야 나는 겨우 병원에 가 볼 용기를 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왼팔은 내가 자신을 치료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생각을 눈치 채고 그에 맞게 움직이는 일을 해 왔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내가 병원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순간 왼팔은 근육이 찢어질 것 같은 엄청난 힘으로 내 목을 졸랐다. 오른팔로 막으려 해 봐도 역부족이었다. 왼팔은 내가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완전히 포기하고 나서야 목을 놓아 주었다.

왼팔을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내 의도를 눈치 채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게 왼팔이 항상 하는 일이었다. 왼팔을 협박할 수도 없었다. 전혀 내 것이 아닌 징그러운 무언가가 왼쪽 어깨에 붙어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나는 그게 언젠가는 다시 나의 소유로 돌아올지 모르는 나의 일부라는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내 목을 졸라 자신의 뜻을 관철한 뒤로 왼팔은 점점 대담해졌다. 오른팔이 해야 할 일을 먼저 나서서 해버리는 경우가 잦았다. 그게 또 내 의도와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나는 그냥 왼팔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왼팔은 금방 모든 일에 익숙해져서 오른팔을 대신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어느 쪽 팔을 쓰던 원하는 바가 달성되기만 하면 나로서는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기도 했다.

구체적인 과정을 왼팔이 알아서 하는 게 좀 찜찜하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예전에도 오른팔에 시시콜콜한 명령을 내리진 않았었다. 내가 무언가를 원하면 오른팔이 적절하게 움직여 줬고 나는 그걸 나의 의지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사실 왼팔과 오른팔에 차이는 없었다. 그런 줄 알았다. 왼팔이 글씨를 쓰기 전까지는.

왼팔이 처음 끼적인 건 글이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서툴던 필체가 오른팔을 닮아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용이 없었다. 왼팔이 끼적인 건 그저 무의미한 글자의 나열이었다. 일련의 문자들이 주는 어떤 느낌은 있었다. 약간의 감정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언어는 아니었다.

내가 머릿속으로 명확하게 되뇌는 글은 왼팔도 받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왼팔이 스스로의 의지로 문장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가끔 왼팔이 멋대로 나서서 펜을 들고 무언가를 끼적일 때가 있었는데 그런 글은 해독하기 힘들었다. 왼팔은 답답했는지 발을 쿵쿵 굴렀다. 그 순간 나는 어느새 왼팔 뿐 아니라 몸의 왼쪽 부분 전체가 왼팔에게 넘어갔다는 걸 깨달았다. 다만 왼팔에서 뚜렷하게 보여주었던 스스로의 의지를 왼쪽 다리를 비롯한 다른 왼쪽 몸으로는 내세우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화를 내거나 겁을 먹지 않았다. 내 몸 전체를 다른 무언가가 차지한다고 해도 뭐가 문제일까 싶었다. 어떻게 보면 몸이란 정신을 유지하며 적절한 자극을 공급해 주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내가 보고 싶은 걸 보게 해주고 듣고 싶은 걸 듣게 해주고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을 못하게 막지만 않으면 나머지는 몸이 알아서 해도 상관없다. 어떻게 보면 더 편하기도 하다. 자율 주행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데 굳이 전방을 주시하며 핸들을 돌릴 필요가 있을까.

몸이 내가 원하는 걸 제공해 주지 않으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하지만 내 몸은 그러지 않았다. 왼팔이 스스로의 의지를 내비칠 때조차 내가 명확히 원하는 행동은 군말 없이 수행했다. 더 정확히는 내가 명확히 원하는 자극을 제공해 줬다. 내가 원하는 걸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장소를 이동하고 상황에 대처했다. 그런데 불만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뇌에 똑같은 정보를 제공해 줄 수만 있다면 몸을 어떻게 움직여 그걸 얻어내든 상관없다.

어느새 나는 내 존재의 경계를 뇌에 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을 장악해가던 왼손은 그 뇌조차 온전히 나의 것으로 놔두려 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나는 왼손에서 시작된 무언가가 나와는 다른 존재라고만 여겼을 뿐 그 존재에서 어떤 부분이 빠져 있는지는 따져 보지 않았었다. 확연히 느껴지는 의지에도 불구하고 왼손은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라고 보기 힘들었다. 취향이나 성격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드러나지 않았다. 왼손은 말하자면 특정한 행동 패턴과 자체 보호 본능을 지닌 도구에 가까웠다. 그 도구에 취향과 성격을 공급해 주는 건 전부 나의 뇌였다. 왼손은 그 뇌를 원했다.

나 역시 필사적이었다. 정신세계 곳곳으로 스며 들어오는 다른 존재의 흔적을 밀어 내고 닦아 내며 정신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유지하려 애썼다. 놀라운 건 이 모든 과정이 오로지 나의 내부에서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여전히 출근을 하고 업무를 처리하며 저녁에는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그 모든 움직임이 나의 의지인지 아니면 왼손에서 시작해 이제는 몸 전체를 장악한 무언가의 의지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 둘의 의지가 일치하는 부분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우리는 나의 몸과 몸을 둘러싼 환경이라는 도구를 조금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나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는 정신과 생각과 언어를 온전히 내 것으로 유지하려 애썼다. 왼손은 아직 목소리를 얻지 못했고 짐승 같은 그르렁거림만 가끔 편두통처럼 뇌를 찔러댔다. 내가 말과 생각을 빼앗기지 않으려 애쓰는 사이 그 두통은 지독한 이명으로 바뀌었고 귀를 찢을 듯한 고주파에 시달리던 나는 순식간에 온갖 소리가 뒤섞인 폭풍에 휩싸이고 말았다. 밖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리도 그 폭풍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눈앞이 캄캄해진 건 바로 그 다음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은 아니었다. 마치 온갖 색의 성운들이 폭발하는 우주를 보는 듯 다채로웠다. 하지만 그 광경은 바깥 세상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전해주지 않았다. 촉감을 비롯한 모든 감각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순간 위치를 잃었고 우주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가 짐승 같은 그르렁거림임을 깨닫고 나서 나는 나의 언어를 그 존재와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넌 누구야.

...그게 뭐야.

이름이 없어?

이름... 몰라.

그르렁거림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었다. 머릿속에서 울린다는 점은 목소리와 같았지만 명확한 흐름으로 이어지던 목소리의 말과는 달리 온갖 단어와 의미들이 뒤섞이며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맥락을 찾기 힘들었다. 다만 단어의 빈도를 통해 나의 몸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단서는 얻을 수 있었다. 조금 익숙해지자 나는 번쩍이는 단어와 이미지를 배열하여 바깥의 상황을 유추해 내기 시작했다. 나의 몸을 장악한 무언가가 몸이 겪는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설명에는 관점은 있었지만 주체가 없었다. 카메라가 나를 따라다니며 영상을 찍어도 그 영상에 배경과 나의 뚜렷한 경계가 표시되지는 않는 것과 비슷했다. 물론 나는 설명을 들으며 나와 배경을 구분해 낼 수 있었지만 정작 설명을 늘어놓는 목소리에게는 그 모든 게 명도와 채도가 뒤섞인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을 장악한 존재가 나의 도움 없이 눈앞에 닥친 과제들을 해결하며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게 처음에는 신기했다. 나의 몸은 여전히 하나의 전체로 기능하며 주변 상황에 반응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나라고 인식하는 부분만이 둘로 나뉜 셈이었다.

바깥 존재에게 모든 감각을 빼앗기며 나는 나의 공간을 잃었다. 지금 이곳은 지구에 위치한 어떤 생물의 뇌 한가운데가 아니라 그저 소용돌이치는 색채와 소리의 혼돈이다. 나는 우주의 중심에 머문 채 그저 기다란 안테나로 바깥 존재의 중계를 듣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내가 여전히 쥐고 있는 부분은 시간이었다. 나는 내게 벌어진 일들과 감각의 연쇄를 시간 순으로 배열할 수 있다. 나는 어떤 시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어떤 시간에서 존재를 이어가고 있으며 아마도 어떤 시간 후에는 다시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나는 나의 존재를 시간의 특정 영역을 감싼 장현수라는 경계 안에 집어넣고 있다.

동시에 내가 시간선에서는 여전히 명확하게 존재하는데 비해 공간상에서는 점점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것도 느꼈다. 바깥 존재가 전해주는 무미건조한 중계를 들으며 나 역시 배경과 나를 구분해야 하는 이유를 잃어갔다. 나는 마치 나의 수명과 함께 소멸하는 우주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쥐고 있는 부분을 바깥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그 전에 나의 존재가 소멸하고 말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넘겨줘야 할 부분은 바로 기억이었다.

감각이 공간을 규정한다면 기억은 시간을 규정한다. 그 둘의 합으로 나는 어떤 시공간의 경계로 감싸일 수 있다. 나의 존재가 모두 새어나가기 전에 둘로 나뉜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합쳐야 했다.

하지만 기억마저 건네주고 나면 내겐 무엇이 남을까. 그 순간 내가 인식하는 나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 아닐까. 그걸로 내가 소멸하고 마는 거라면 대체 바깥 존재를 위해 나를 포기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 순간 나는 나 역시 얼마 전에 누군가로부터 장현수라는 경계를 넘겨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목소리였다. 내가 온전히 장현수라는 경계에 담겨 있을 때는 나의 존재가 그 경계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나는 장현수와 함께 태어나고 함께 죽을 운명이었으며 장현수의 피부로 규정되는 공간 안에 머무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렇게 경계 밖으로 밀려나 새어나가기 시작하자 나는 그 경계가 내가 인식하는 나의 존재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목소리로부터 기억을 넘겨받는 순간 완전한 장현수가 되었다. 그 전의 내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하지만 지금 바깥 존재가 존재하듯 장현수가 되기 이전의 나도 분명 무언가였을 것이다. 기억을 넘겨 준 목소리가 바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듯이. 그러니 나 역시 나의 기억을 장현수에게 넘겨주고 난 뒤에도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 걸까. 왜 나는 장현수로 온전히 살지 못하고 잠시만 머물다가 다른 장현수에게 내 존재를 넘겨주어야 하는 걸까. 이게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일까. 아니면 모든 사람에게 어쩌면 모든 존재에게 똑같이 일어나는 일일까. 나 역시 밀려나는 존재가 되기 전에는 장현수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전부 나의 영역이라고 굳게 믿었다. 내가 장현수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모든 사람은 잠들면서 죽고 깨어나면서 다시 태어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다. 서로 다른 두 존재를 뇌에 새겨진 연속된 기억으로 억지로 이어 붙이는 거라고. 그게 이렇게 왼손에서 시작하여 몸 전체를 빼앗기고 떨어져 나가는 과정일 줄은 몰랐다. 마치 껍질을 벗듯 장현수는 존재의 허물을 벗어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껍질을 벗듯. 단단한 경계를 지닌 갑각류나 뱀은 더 성장하기 위해 자신을 담아두지 못하는 허물을 벗어낸다. 그럼 나는 아니 장현수는 성장하고 있는 걸까. 허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조금 위안은 되었다.

어쩌면 나는 단지 장현수라는 존재를 성장시키기 위해 벗겨지는 허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장현수가 세상의 일부이듯이 나 역시 세상이 아니 우주 전체가 자라나기 위해 떨구어 내는 비늘이나 이빨 같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나는 바깥 존재에게 장현수를 온전히 넘겨주기로 결심했다.

기억을 모두 넘겨준 뒤에도 존재의 흔적은 여운처럼 남았다. 나는 내가 누군지를 고민했지만 집요하게 물어보는 장현수의 질문에 대답할 수는 없었다. 경계가 사라진 후에도 나의 존재가 우주 전체로 확산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주에 녹아들기 시작하자 그런 의문은 점점 사라졌고 나의 존재를 시간과 공간에 규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두렵지 않았다. 두렵지 않다는 생각조차 사라졌다. 한동안 계속 되던 장현수와의 통신도 점점 희미해졌다. 대신 나는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한 조각의 비늘이 아니었다. 내 존재가 희미해질수록 나는 점점 더 멀리 우주 끝까지 확산되었다. 나는 미미하지만 거대하다. 나는 점처럼 작은 껍질에 갇힌 장현수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난 우주야. 너도 곧 우주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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