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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조용한 집이다. 수연은 베개 밑으로 한 팔을 밀어넣고 몸을 옆으로 뉘어본다. 손이며 팔에 와닿는 베갯잇과 이불의 감촉이 서늘하고 미끄럽다. 어둠 속에 가라앉은 푸르스름한 빛깔이 이불에 켜켜이 쌓여있다. 수연은 눈을 깜박인다. 아무리 밤이라고 해도 이렇게 사방이 물 속에 잠긴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수 있다니. 조용하면 잠이 잘 와야 할 텐데 오히려 가면 갈수록 정신이 맑고 또렷해지는 것 같다. 벽지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눈을 감다가 다시 바라보자니 면벽수련이라도 하는 기분이 들어 수연은 혼자서 웃음을 흘린다. 이 집에는 아날로그시계가 없다. 지금 잠이 오지 않는 건 무엇보다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수연은 귀에 달라붙는 시계 초침 소리를 자장가처럼 여기며 잠드는 것이 자신도 모르는 습관처럼 되어있는데, 이 집에는 초침 소리가 없다. 한쪽에 있는 오디오에 디지털시계가 있어서 시간을 알 수는 있다. 00:12라는 초록색 글자가 점멸하고 있다. 눈이 아프다.
    수연은 몸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곧바로 널찍한 베란다 창문이 보인다. 아까는 맨 위쪽 창틀에 비스듬히 걸려있던 반달이 지금은 조금 내려와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저만치 또 내려와있을 것이다. 꽃이 피는 것, 살이 썩는 것, 달이 지는 것, 이런 것들은 가만히 들여다보고만 있으면 마냥 제자리에만 있는 것 같이 보인다고 수연은 생각한다. 누군가가 해준 말이다. 누가 한 말이었더라. 수연은 창문 위에 시선을 미끄러뜨리며 달이 떨어질 포물선을 가늠해본다. 곧 동그스름한 어깨 하나에 시선이 멎는다.
    좁고 가느다란 어깨와 등에는 움직임이 없다. 머리카락이 바위 위에 흐드러진 해초처럼 베개에 누워있다.
    “엄마.”
    수연은 조그맣게 불러본다.
    “자요?”
    “잠이 안 오니?”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말을 하려니 목이 잠겨서 약간은 그르릉 소리가 나는. 그 대답을 들으니 수연은 막상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서 잠시 가만히 있는다.
    “그렇네요.”
    “잠자리가 불편한가보다. 아직 날이 찬데 홑이불을 꺼냈으니……. 보일러좀 더 땔까?”
    “아니에요.”
    수연은 빠르게 말을 잇는다.
    “춥지는 않아요. 그리고 이렇게 바닥에 요 깔구 누워있는 것도 전 좋은데요. 콘도에 여행온 거 같잖아요. 밖에 경치도 좋고.”
    “경치는 무슨, 달 보이는 것도 경치라고.”
    엄마는 덤덤하게 말한다. 그 말에 어색한 거리가 배어있다. 수연은 이런 상황에서 ‘경치지 그럼!’이라든가 ‘좋은 말을 해도 난리야 엄만.’이라든가 하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뱉을 주말 드라마 여자 주인공들을 떠올려보지만, 그뿐이다. 잠시 침묵이 감돈다. 수연은 엄마가 몸을 조금 뒤척여 바로 눕는 것을 본다. 누가 정성껏 깎아놓은 것처럼 동그스름한 이마 선이 달빛에 비친다. 엄마의 이마. 여전히 서늘하겠지, 수연은 베개 밑에서 손을 빼서 자기 이마에 손등을 얹는다.
    “……시계 때문에.”
    “시계?”
    “오디오에 있는 시계가 깜빡거려서 그런가봐요. 자꾸 그리로 시선이 가네. 방 전체가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는 것도 같고.”
    엄마가 조금 웃는다.
    “수연이 넌 어릴 적에도 이랬어.”
    “어릴 때?”
    “기억 안 나니? 크리스마스트리.”
    “글쎄.”
    “그러니까 그게 다섯 살 때였나, 그쯤이었을 거야. 12월께였지.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자고 네가 막 졸랐어. 유치원에서 거기 선생들이 트리를 세워놓은 걸 보고서는. 봉고차에서 내리자마자 엄마, 츄리, 우리 집도 츄리 만들자, 하면서 다짜고짜 졸랐지.”
    “그랬어? 그래서?”
    “그래서 한 그루 샀지. 플라스틱으로 된 거 한 박스. 나무 만드는 거야 쉽잖니. 다리에다가 기둥 붙이고, 기둥에다가 가지 붙이고. 거기다가 뭐 주렁주렁 매다는 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그래 네가 그 앞에서 얼마나 오래 앉아서 이것저것 올리던지. 방울 같은 거나, 솜이나, 별이나 사탕이나 인형 같은 걸로도 부족해서 너는 주방에서 네가 좋아하던 노란색 컵도 갖고 오구, 서랍에서 어떻게 알약도 찾아와서 색색으로 달아놓구, 내가 다 쓴 쬐깐한 향수병도 걸쳐놓고 그랬거든. 꼬마전구까지 다 얹고 나무가 빤짝거리니까, 네가 입 헤 벌리고 그 앞에서 앉아있더라.”
    “그런데?”
    “그러고 그날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네가 잠이 안온다고 나를 막 불러.”
    “잠이 안온다고? 어린애가 잠이 안 오는 게 어딨어요.”
    “근데 그랬어. 트리에 전구가 깜빡거리는 것땜에 눈이 아프다고, 갑자기 짜증을 부리는 거야. 방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한다고, 치워달라고.”
    “…….”
    수연의 눈길이 베란다 창에 반사되는 디지털시계의 글씨 위에서 맴돈다. 없어졌다가 있어졌다가. 잊지 말라고 고함지르다가, 다시 사그러들다가, 다시 불쑥 솟아나서 빛을 내다가, 다시 사그라든다. 엄마가 말하는 일들은 수연에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까마득히 가슴 아래로 잠겨든 그날의 기분 같은 것이 몸 전체에 퍼지고 도는 것 같다. 뭔가가 수연을 끈덕지게 약 올리는 것 같았으리라. 단조로운 하논 연습곡처럼, 반박, 반박, 한박, 온음, 반박, 반박, 한박, 온음.
    “그랬나봐.”
    “그랬지. 그래서 어쩌냐. 일어나서 트리 스위치를 꺼줬지. 그러니깐 금세 네가 잠이 들었어. 도로롱 도로롱 코도 잘 골았지, 넌.”
    수연이 피시시 웃는다.
    “넌 한동안 계속 그랬어. 일어나면 전구 키고 싶어하고, 밤에는 꺼달라고 하고.”
    “그걸 밤마다 꺼줬어요?”
    “그럼 어떡하니 꺼야지.”
    “엄마두 참 징해요. 나같으면 트리를 내다 버려버렸을 거야.”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스위치 하나 딱 끄면 되는 일인데.”
    “아니. 어려워서가 아니라, 버릇 망치잖아.”
    “그러냐.”
    수연은 입을 다문다. 창 밖에 보이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요란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밖에 바람이 거센가보다. 일기예보에서 오늘 밤 태풍이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3월에 태풍이라니. 이제 물이 오르기 시작했을 가지들이 곧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다 다시 서고 휘청거리다 다시 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새순들이 몸을 움츠린다. 거대한 벽걸이 텔레비전 화면으로 옛 무성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굳게 닫힌 이중창 너머 또 다시 이중창으론, 바람소리가 한 줄기도 새어들어오지 않는다. 베토벤이나 브람스가 어울릴 밤이다. 침범받지 않는 공간 안에서 시간이 되살아나고, 빈틈이 메워지고, 엄마의 얼굴은 한 뼘 더 가까이에 있다.
    “그게, 요즘 가르치는 애가 완전히 온실 속의 소녀거든요.”
    “온실 속의 소녀?”
    엄마가 웃는다. 수연은 우르르 말을 쏟아놓는다.
    “어어. 부모가 너무 오냐오냐 키운 거예요. 이제 초등학교 사학년인데, 체르니 50번에 들어가는 앤데.”
    “빠르네.”
    “빠른 편이지. 근데 진도야 그냥 그런 거잖아요. 빠르게 나가려면 얼마든지 빠르게 나갈 수 있는 거니까. 애가 자존심이 강해서 어떻게든지 범위는 잘 익혀내요. 근데 악보 보는 눈이 없어. 처음 나가는 곡 악보 딱 펴주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막 당황하는 게 눈에 보여. 내가 이 곡은 어떤 곡이고, 작곡가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식으로 쳐야 하고, 그렇게 얘기하고 한번 시범 보여주면서 치고 있으면, 나는 딱 알죠. 애가 내 말도 내 연주도 전혀 안 듣고 있어.”
    “안 들어?”
    “응, 안 듣고. 악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내 말은 하나도 안 듣고 아주 악보를 잡아먹을 것처럼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무릎 위에서 손을 까닥까닥하면서 혼자서 예행연습을 하고 있더라고요. 처음부터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거지. 이제 첫 마디부터 한번 쳐보자, 오른손부터 시작! 들어가면 그때 헛짚지 않으려고 말예요. 어떤 때는 자기는 오른손 왼손 각각 안해도 된다고 처음부터 양손으로 덤벼드는 거예요.”
    엄마가 또 웃는다.
    “그게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체르니까지는 뭐 그런대로 해내는데, 애가 하도 졸라서 바흐 인벤션도 같이 시작했거든요. 바흐를 완전히 다 뭉개놓는다니까. 그런데 걔는 자기가 줄리아드 음대 정도는 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걔네 부모도 마찬가지야. 6학년 되면 중학교 입학 준비 시작하면서, 유명한 피아니스트한테로 레슨 보낸다고, 난리를 쳐.”
    “부모가 포부가 크구만.”
    “좋게 말하면 그렇지. 요즘 그런 애들이 워낙 많아서 문제래요, 엄마. 내성적이고, 자존심 세고, 고집 세고, 자기중심적인 애들. 사고 많이 치거나 농땡이 피우거나 머리가 좀 나쁜 애들보다도, 그렇게 귀하게 자란 애들이 난 더 가르치기 힘들더라. 가르치는 보람이 없잖우. 엄마는 그런 애들 없어요?”
    “있기야 있지. 근데 나는 오히려 편하던데. 손이 별로 안 가니까. 어쨌든 진도도 빨리 빼니까 레슨비 받기도 수월하고. 학부모 돈을 받는 거지 애 돈을 받는 거냐 그게 뭐.”
    “그렇구나. 나는 그냥 미워서 싫던데. 이쁜 애들은 이쁘고 미운 애들은 미워. 솔직한 말로, 나 애들 편애해요.”
    “어이구.”
    “그렇잖아. 사람 마음이 어떻게 같아요. 마음 가는 애들이 따로 있는 게 당연하죠. 선생들이 다 나 같을 거라고 생각하면, 우리 애는 과외 같은 건 안 시킬 거야. 내가 가르치고 말지.”
    수연은 거기까지 말하다가 입을 다물어버린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만둔다. 나직하게 입술이 떨어지다가 숨이 새어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화장실 쪽에선가 싱크대 쪽에선가, 물이 한 방울 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또 조용.
    “아기가 갖고 싶니?”
    엄마가 묻는다.
    “……아니야. 그건 엄마 탓 아녜요. 알잖아.”
    “알아.”
    “요즘은 독신이 많아요. 요즘은 딸한테, 너는 커서 절대로 결혼하지 말라거나, 결혼은 하더라도 애는 낳지 말라거나, 그런 엄마들도 많다.”
    “……응.”
    “동창회 같은 거 가도 애 낳은 친구들 별로 없어. 애 있는 친구들은 나 부러워해. 얼마나 편하겠냐고. 자기들은 하루에 단 1초도 쉬는 때가 없대. 일하고 집에 오면 애 데려오고 밥 먹이고 집안일하고. 사건 사고는 또 그렇게 많아서 애가 아프기라도 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고. 맨날 자고 일어나면 입 벌리고 자서 베개에 침이 눅눅하다고, 애도 이제 침받이는 안하는데 그거나 하라고 남편이 타박 준대.”
    “미안하다, 수연아.”
    “…….”
    수연은 가만히 눈을 감는다.
    눈을 감아도 수연은 훤히 알 수 있다. 집 구조가 옛날 인천의 그 집과 거의 똑같아서, 아까 저녁에 주춤거리며 현관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수연은 구두를 벗는 걸 잊고 잠깐 멈춰서서 숨을 골랐었다. 큰 안방이 있고, 작은 복도가 있고 양 옆에 화장실과 싱크대가 나란히 있고, 화장실 바로 옆에 식탁이 있다. 복도 바깥쪽으로 현관이 나 있고 현관 양 옆에는 방이 두 개. 한 방에는 레슨용 피아노가 놓여있고 한 방은 비어있다. 다른 방에 놓지 못하거나 당장은 쓰지 못하는 물건들이 한 편에 조금 쌓여있지만 그렇다고 창고방이 된 건 아니다. 우드락을 반듯하게 펴놓은 그 방은 휑하니 비어있다. 누굴 기다리는 것처럼.
    엄마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그 시절에 수연네 집은 과천과 부천과 인천을 왔다 갔다 했고, 지금 이 집은 서울 아현동이다. 이화여대에서 동쪽으로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면 하늘과 맞닿을 것 같이 높은 곳에 이 아파트가 있다. 이대나 연대의 음대를 가고싶어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엄마가 레슨을 하기 편한 곳이라고, 그래서 지내기 좋다고 말은 했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는 것을 수연은 알았다. 엄마는 바다보다 산을 좋아한 사람이었다. 수연과 엄마가 마지막으로 같이 살았던 인천의 그 아파트는 바로 맞은편에 산이 있었고, 산등성이에 큰 빌딩들이 몇 채 보이던 곳이었다. 엄마는 잠옷 바람으로 베란다에 우두커니 서서 큰 빌딩의 어스름한 간판을 내다보곤 했다.
    “내가 미안해.”
    엄마가 말한다.
    “엄마 탓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래도 내가 계속 옆에 있었으면 너 그렇게까지 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가 운다. 소리를 참으며. 수연은 몸을 움직여 엄마 쪽으로 다가가고 싶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든다. 엄마 말에 그렇지 않다고, 그런 후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선선히 말하든, 진심으로 울며 짜며 말하든, 거짓으로 말하든, 어떤 식으로든. 아직은 그런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엄마를 용서했기에 찾아나선 거라고 생각했다. 아현동의 웨딩드레스 샵 골목에서 악보집들을 안아들고 총총 걷고 있던 엄마의 손을 덥석 잡아쥐었을 때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그런 게 아니라고 목구멍에 걸린 뭔가가 침묵으로 말하고 있다.
    수연은 돌이켜본다. 자궁과 난소를 적출하는 수술을 했을 때가 열아홉이었다. 수연은 보육원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은 고3 아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수녀님들은 친절했고, 봉사를 하러 오는 청년들은 외려 보육원 아이들보다도 순진하고 여렸다. 불편할 일이 없었다.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과 달리, 고아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거나 이상한 수군거림을 듣거나 하지도 않았다. 다른 여자애들처럼 모의고사 성적이 나올 때마다 대학을 몇 번이고 고민했다. 다른 여자애들처럼 비밀 장소도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친한 친구와 함께 음악실에 남아서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이 페이보릿 띵스> 같은 곡을 멋대로 편곡해서 치거나 했다. 복부 집중 다이어트 체조 같은 걸 잡지에서 스크랩해다가 다이어리에 끼워두었고, 생리통으로 욱신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끙끙거렸다.
    월경이 너무 불규칙적이었다. 생리통도 너무 심했다. 한번 생리가 터지면 그때부터는 뱃속에 난리가 났다. 어떤 손이 뱃속을 거머쥐고 비틀어 짜고 헤집고 흔들어대는 것 같았다. 다른 여자애들도 그렇다고 했다. 아프긴 아팠지만 다들 그런 건줄 알았고, 다들 똑같이 겪는 일들을 겪는다고 생각하니 괜찮았다. 몸은 바싹 말랐는데 배만 불뚝하니 튀어나와서 소말리아녀라는 별명을 얻었다. 의료 봉사를 나온 오빠들이 병원에 가보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그 순진할 정도로 심각한 얼굴들이 우습기만 했다.
    수연이 난소에 사과 한 알만한 혹이 있대. 수녀님이 머리맡에 앉아서 말했다. 혹시 수연이 엄마랑 헤어지기 전에 엄마가 크게 아픈 적 있었니? 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난소암은 가족력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엄마가 아니면 할머니가, 이모라도, 큰 수술을 받은 일이 없냐고. 그래서 물어본 것이었겠지만, 수연은 수녀님의 그 물음이 수술비를 대 줄 친지를 지금이라도 찾을 수 있겠느냐 하는 말로 들렸다.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엄마가 아픈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흔하디흔한 감기도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고 어디가 다치거나 멍이 든 적도 없었다. 엄마는 월경조차도 없었다. 수연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엄마랑 같이 살면서 생리대라는 물건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엄마는 아픔이라든지 더러움이라든지 고생이라든지 하는 비루한 것들이 씻어낸 듯이 없는 여자였다. 희고 말간 피부에 가늘한 몸이 마냥 예쁘기만 했다. 설거지를 아무리 해도 손가락에 습진 하나 돋지 않았다.
    그런 얘기를 하니 수녀님은 씁쓸하게 웃으며 묵주를 만지작거렸다. 사람들이 수연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들 수연이 공상 속에서 엄마에 대한 기억을 그리워하며 꾸며내다보니 그렇게 굳어진 거라고 여겼다.
    “넌 진작 알고 있었구나, 얘야.”
    “…….”
    “알고 있었어.”
    “어떻게 몰라요.”
    “그런데도 날 찾았니.”
    “…….”
    수연은 시계를 본다. 02:52. 비가 오고 있다. 창에 누가 호스로 물을 들이붓는 것처럼 물이 콸콸 흘러내리고 있다. 멀리서 다가오는 불빛들이 물기에 젖어 뿌옇게 맺힌다. 물과 얼음과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된 달은 창문의 한복판에 미끄러져있다.
 
    그런데도 엄마를 찾았느냐고.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엄마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4년 전이었다. 수연은 그날을 떠올린다.
    햇빛이 좋은 날이었다. 수연은 이대 정문 앞의 작은 악보사에서 바이엘 상권과 소곡집을 산 참이었다. 지하철 역 옆의 큰 길로 나오면 웨딩드레스 샵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아현동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 피기 시작한 목련이 희게 빛나고 있었다. 아직 싸늘한데도 거리마다 봄이 앉아있었다. 인터넷 쇼핑몰 사진가들이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옷가게 상인들이 가게 밖에 나와 스툴에 앉고, 평일 오전의 거리를 학생들이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쇼윈도마다 흰 공단이며 쉬폰이 빛을 담뿍 받아 너울거렸다. 앙고라 카디건이 따가워서 팔을 긁어도 가려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수연은 가려움을 내버려두고, 악보집들을 가슴에 안고 천천히 걸었다. 책이 무거웠다.
    버스 정류장에 섰을 때, 유모차를 끄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한 손에는 할리스 커피 종이컵을 들고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연을 올려다보았다. 곱실곱실한 머리에, 커다란 눈동자가 연한 갈색을 띤 여자아이였다. 눈이 아주 깊고 또렷했다. 수연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눈길이 사색이라도 하는 양 제법 진지해보여서 수연은 웃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수연이 까꿍, 하니 아이가 웃었다. 머리를 까딱 까딱 해보이니 또 아이가 웃었다.
    그러고 있다가 기다리고 있던 버스가 와서 타려고 했는데, 그때 아이가 갑자기 왈칵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발작같은 그 울음소리에 수연은 자기도 모르게 놀라서, 버스 문의 계단에 올려놓았던 발을 그대로 다시 땅으로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여자아이가 유모차 안에서 수연을 쳐다보면서 매섭게 울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유모차에서 꺼내 안아들고 어르면서 수연을 보고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얘가 아가씨가 좋은가봐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한 번만 안아봐도 돼요? 수연이 물었다.
    그러세요.
    수연은 들고 있던 악보를 유모차에 내려놓고 대신 아이를 안아들었다. 악보 세 권과 아이를 맞바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색한 손으로 아이의 엉덩이 밑을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등을 보듬어보았다.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에에에, 에에. 마. 엄마. 아이가 입을 짭짭 다셨다. 수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가 손을 허우적거려 수연의 머리에 꽂힌 초록색 비즈 머리핀을 확 잡아당겼다. 그때 수연은 아이를 안고 달렸다.
 
    수연은 돌아눕는다. 또다시 시계의 초록색 숫자가 보인다. 깜빡거리는 저 빛들. 태양 아래에서 반짝거렸을 초록색 비즈. 아이의 눈길을 잡아채던 빛들. 눈을 감아도 잔광이 아른거린다. 엄마에게 한 대답은 거짓말이다. 키워보고 싶었다. 아이를. 아이의 머리를 곱게 양 갈래로 따주고 초록색 비즈 머리핀을 꼽아주고 싶었다. 십대 시절부터 수연의 꿈은 피아니스트도 아니고, 피아노 레슨 선생은 더더욱 아니었고, 예쁜 딸을 키우는 좋은 엄마였다. 아기집이 철거되어버렸더라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더라도, 자신만은 아이의 곁을 영원히 떠나지 않고 곱고 총명하고 착하게 키워보고 싶다는 꿈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훔쳤다.
    하지만 수연은 엄마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못한다.
 
    “언제 알았니.”
    한참의 공백 끝에 엄마가 결국 묻는다.
    수연은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또렷한 눈. 길고 검은 생머리. 도톰하게 솟아오른 이마. 가지런한 눈썹. 막 주름이 지기 시작한 그대로 시간이 멎어버린 코와 입술, 목.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흰 슬립 끈. 야들야들한 팔의 살결. 한낮의 반달처럼 희고 어스름하니 나온 손톱. 수연은 그런 것들을 본다.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자신에게서 어렴풋이 나는 향수 냄새가 아니었더라면, 수연은 지금의 자신이 꼭 열한 살의 작은 계집애라고 생각했으리라. 엄마는 서른다섯 정도로 보인다. 딱 그만큼이다. 엄마는 전혀 나이를 먹지 않았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나이를 먹지 않는다.
    어릴 땐 엄마가 예쁘다는 게 좋았다. 다른 애들의 엄마들은 다들 뚱뚱하거나 괴팍한데 수연의 엄마는 혼자 아름다웠다. 수연의 눈에 비친 엄마는 어떤 만화 주인공이나 어떤 위인보다도 위대했다. 누가 장래희망을 물으면 수연은 항상 엄마라고 답했다. 으레 여자아이들이 커서 아빠랑 결혼하고 싶다고 당연하다는 듯이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어조로, 수연은 커서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가 언제나 예쁘기만 하다는 것이었다. 수연이 유치원에 들어가도,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어도 엄마는 예쁘기만 했다. 늙지도 바래지고 구겨지지도 않고 머리카락 한 끝도 변하지 않고 항상 그대로. 어딜 가면 사람들은 수연을 두고 조카냐고 물었다. 수연은 이 상황이 좋기만 한 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이가 안 먹는 병이 걸린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양호 선생님에게 그런 병이 있느냐고 물어보았지만 양호 선생님은 웃어넘기기만 했다. 엄마가 젊어보이면 좋지 뭘 그러니, 그러면서.
    “그게 다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건 엄마랑 헤어지고 난 다음이었어요.”
    엄마는 말이 없다.
    “중학교 때. 친구 집에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라는 괴기영화를 본 적이 있거든요. 엄마도 봤어요?”
    “아니.”
    “으음.”
    “그래서?”
    “거기서 클로디아라는 여자애가 나와요. 꼬마앤데. 걘 너무 어릴 때 뱀파이어가 됐거든요. 그러다보니까 피를 굉장히 무절제하게 마셔서 사람들을 죽이기 일쑤였어. 가령 드레스를 맞춰주던 재단사를 물어뜯여 죽이고, 식당 여종업원을 물어뜯여 죽이고, 피아노를 가르쳐주던 선생을 물어뜯여 죽이고, 그런 식……, 근데 그 피아노 장면이.”
    “…….”
    “아주 짧은 장면이었지만. 피아노 의자에 클로디아랑,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피아노 선생이랑 나란히 앉아있었는데. 그 피아노 선생이 피를 빨리는 바람에 앞쪽으로 확 고꾸라져서, 이렇게, 머리가 확 떨어져서 죽거든요. 머리가 건반 위에 처박히더라구요. 좀 무거운 그릇 몇 개가 한꺼번에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요. 꽈광 챙그랑 뭐 그런 소리.”
    “…….”
    “거기 그 집에 모여서 영화를 같이 보던 애들은 무섭다고 꺅꺅거리거나 신기하고 멋있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거나 했는데, 나는 그런 게 아니었어. 기시감이라고 하던가요, 그런 걸. 기시감이 강하게 들었어요. 난 분명히 그거랑 똑같은 장면을 본 적이 있었던 거예요. 아주 어릴 때. 엄마가 레슨을…….”
    “난 죽이지 않았다.”
    수연은 엄마를 돌아본다. 엄마는 한 손으로 얼굴을 덮고 있다. 번개가 번쩍 빛나 엄마의 손이 파르스름하게 빛나고 다시 어두워진다. 그리고 곧 천둥이 우르릉 울린다. 천둥소리만은 이 조용한 집으로도 파고든다. 피아노 레슨을 위해 겹겹이 방음이 되어있는 이 집으로도. 수연은 다시 고개를 돌려 천장을 올려다본다. 양손을 나란히 배 위에 얹는다. 텅 비어있는 아랫배가 만져진다. 꺼진 형광등이 회색으로 바래 있다.
    “네가 말하는 게 언제였는지 나도 알아. 그때……, 그 전날에 잡혀있던 레슨이 뭔가 사정 때문에 다 취소됐었을 거야. 하루 종일 학생이 없었던 거지. 그래서 엄만 무척 굶……, 자제가 잘 되지 않았어. 그래서 그날 첫 시간으로 레슨을 하러 온 그 여자애를 보고 고만 멍해지는 거야. 정신이 없었지. 마셔야 하는 양보다 너무 많이 마셨어. 당연히 빈혈이 생긴 거고……. 그 애는 레슨을 마치고 의자에서 일어나려다가, 순간 얼굴이 노래지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머리를 피아노에 묻어버리더라.”
    묻어버리더라. 그 표현이 수연의 귓바퀴에 고인다. 엄마는 몇 단어들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다른 것으로 바꾼다. 띄엄띄엄, 박자가 느리다. 이제는 안 그래도 괜찮은데.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다 컸는데. 망가질 인격이나 도덕성이나 가능성 같은 것도 없는데. 뭐 하러 그렇게 몸을 사려요. 수연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말로 꺼내진 않는다.
    또다시 번쩍, 번개가 내린다. 엄마의 얼굴에 차가운 섬광이 번진다. 습한 공기 속에 비릿한 냄새가 묻어난다. 피 냄새. 수연은 들숨을 마시며 엄마의 기억들을 단숨에 헤아린다. 엄마에게서 레슨을 받던 아이들은 오직 엄마가 마실 수 있던 음료들이 떠오른다. 술이라고, 어른들만이 마실 수 있는 거라고 했지만, 거기서는 짙은 피 냄새가 났던 게 기억이 난다. 엄마가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잇는다.
    “걘 네 단짝이었지.”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수연은 묻는다.
    “그랬어요?”
    “잊어먹었나보구나. 단짝이었어. 그때 네가 걔한테 얼마나 심술이 나 있었는지 아니. 걔가 너보다 진도가 훨씬 빨랐거든. 명곡집으로 치면, 꽃노래였나.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편곡된 녹턴 같은 거였을 텐데, 아무튼 그런 걸 치고 있었어. 너는 아직 엘리제 정도였고.”
    피아노 이야기를 둘러가면서 엄마의 어조는 빠르고 매끄러워진다. 크레센도. 칸타빌레.
    “너는 그게 무척 질투가 났나봐. 어떻게든 진도를 빨리 나가고 싶어서 억지를 부렸어. 그 왜, 내가 연습을 항상 열 번씩 시켰잖니.”
    “응.”
    “그래서 악보 위쪽에 남은 데다가, 꽃잎 다섯 개 달린 꽃을 두 개 그리고, 한번 다 칠 때마다 꽃잎을 한 개씩 까맣게 색칠을 하라고 했었지. 그렇게 연습을 시켜놓고 다른 쪽 방으로 가서 걔를 가르치고 있을 때면, 네가 도 도 도 미 미 미 몇 번 좀 하다가 꽃잎을 멋대로 다 칠해버리곤 했어. 그리고서 자기는 연습 다 했다고 오리발을 내밀었지. 그래서 내가 너한테 뭐라고 잔소리를 했어.”
    “응.”
    “거짓말 하면 안 된다고. 엄마는 거짓말 하는 거 제일 싫어한다고. 그랬더니 네가, 쟤도 똑같이 거짓말한단 말야! 쟤도 연습 안해놓구 했다고 하는데. 엄마는 나만 미워해! 그러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그러고는 아주 토라져갖고, 입이 잔뜩 나와서는 한동안 말도 안했어. 걔한테도. 아는 척도 안 하더라구. 싸웠냐고 물어도 너는 입만 삐죽 내밀고선 가타부타 말이 없었어. 걔도 마찬가지였고. 레슨 끝나고 나서 한번 둘이 붙잡고 얘기를 시켜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네가 방문 틈으로 엿보고 있었던 거야. 쟤가 잘하면 얼마나 잘 하나, 어디 한번 보자는 심산이었겠지, 너는.”
    그제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수연은 이불을 꽉 그러쥔다. 방문 틈으로 보이던 풍경. 조금 낯설고 이상하던 풍경. 그때는, 그 친구가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엄마가 벌을 준 거라고 생각했었다. 피아노 선생들이 긴 막대기로 제대로 못 치는 애들의 손가락을 아프게 탁탁 때리는 것과 똑같은 의미로, 목을 물어서 벌을 준 거라고 생각했었다. 수연에게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딴 친구한테만 벌을 준다고. 그러니까 그건 수연이 그 친구보다 피아노를 잘 치기 때문인 거라고. 어린 수연은 그런 식으로 사태를 해석했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밖에서 하고 다녔다. 뭣도 모르고 친구들에게 떠들고 다녔다. 그 친구에게 창피를 줄 요량으로.
    아줌마들 한 무리가 집으로 찾아와서 사나운 얼굴로 소리를 지르고 엄마를 밀쳤다. 수연은 무서워서, 방에 틀어박혀 피아노 다리를 붙들고 쭈그려 앉아만 있었다. 부천으로 이사를 간 건 그 무렵이었다. 수연은 낯선 동네로 이사를 가는 게 싫어서 칭얼거렸다. 칭얼거린 건 그때만은 아니었다. 항상 그랬다. 엄마는 이사를 너무 자주 다녔고, 이삿짐을 쌀 때마다 수연은 옆에서 울고불고 발을 동동 굴렀다. 엄마는 왜 그렇게 자기밖에 몰라? 엄마가 자꾸 이사하니까 내가 친구가 안 생기잖아! 가려면 혼자 가! 아빠 불러주고 가!
    “……진심이 아니었어요.”
    “알아.”
    수연은 몸을 일으켜 앉는다. 옛날 그때처럼 무릎을 안고서 쭈그려 앉는다. 엄마의 텅 빈 눈이 수연을 올려다본다. 수연은 시선을 돌린다.
    수연은 착한 딸은 아니었다. 내성적이고, 자존심 세고, 고집 세고, 자기중심적인 아이였다. 예쁜 옷, 읽고 싶은 책, 먹고 싶은 음식이나 과자는 다 갖고 싶어 했다. 공주님처럼 키워지는 걸 당연하다고 여기면서도, 때로 엄마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가 엄마 인형이냐고 소리를 지르기 일쑤였다. 치고 싶은 곡은 무조건 치려고 했고 너무 어려워서 잘 되지 않으면 제풀에 성질을 냈다. 아빠를 내놓으라는 소리는 거의 하루에 한번 꼴로 했다. 그런 수연의 말을 엄마는 곧이곧대로 다 들어주었다. 아빠를 내놓으라는 요구만 빼놓고.
    “엄만 나한테 무진 잘 해줬어.”
    “…….”
    “정말요. 잘 해줬어요. 다른 애들 엄마가 막 손찌검하고, 부부싸움하면서 뭐 깨부수고, 회사 다닌다고 밤늦게야 얼굴 보고, 그런다는 거 알고 난 걔네들이 되게 불쌍했어. 엄마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
    “으응.”
    “언젠가 그런 일도 있었다. 이건 엄마도 모를 거야.”
    “뭔데.”
    “왜 학부모 참관 수업 왔을 때, 엄마가 쟤랑은 같이 놀지 말라고 한 애 있었던 거 기억  나요?”
    “아니.”
    “왜 있잖아. 입버릇 험한 애. 까무잡잡하고 좀 통통한 애였는데. 아무튼, 나 사실은 엄마한테 말 안하고 걔랑 논 적 많아요. 나한텐 그게 멋있어 보였거든. 나는 하얀 색 스타킹 신고 원피스 입고 피아노 악보 들고 종종거리면서 다니는데, 걔는 머슴애처럼 짧은 머리에다가 반바지 입고 막 뛰어다니니까. 남자애들이 여자애 붙잡고 괴롭히고 놀리면 걔가 나서서 막 주먹질하면서 남자애들을 혼내주고 그랬어요. 빗자루 들고 막 쫓아다니고 패고. 재미있었지.”
    “…….”
    “그래서 걔랑 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걔네 집에도 놀러갔었는데, 그 집 엄마가 애한테 막 욕을 하는 거야. 이년아 저년아. 설거지 10분 동안 하는데 열 가지 욕이 막 튀어나와. 그래서 내가 당돌하게 따졌어요. 아줌마는 왜 딸한테 욕해요? 우리 엄마는 안 그러는데.”
    “……그랬더니?”
    “그랬더니 아줌마가 대뜸 그러시는 거야. 너네 엄마는 계모니까 그렇지!”
    “…….”
    “나는 벙 쪄가지고 대꾸도 못했어요. 엄마가 딸을 못살게 굴면 계모지, 잘해주는데 왜 계모라고…….”
    수연은 문득 말을 삼킨 채 얼굴을 무릎에 묻는다. 피아노 건반에 얼굴을 박았던,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단짝친구처럼, 고개를 고꾸라트린다. 엄마는 옅게 웃고 만다.
    말하고 싶다. 오래 품었던 생각을. 그렇게 힘들었으면, 차라리 엄마처럼 만들어주지 그랬어요. 엄마는 항상 삼십 대 새댁으로, 나는 항상 열 살 여자애로, 그렇게 2인 가족으로다가, 떠돌아다니면서 살 수도 있었잖아요. 언제 보니까 뱀파이어 가족 시트콤도 나오더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수연은 그것이 억지라는 것을 알고 있다.
    빗줄기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 구름이 지나가는지 방 안의 어둠과 빛이 천천히 쓸려갔다 돌아온다. 수연은 가만히 앉아서 그 흐름을 눈으로 좇는다. 장롱. 장롱 옆의 행거. 행거 한쪽에 걸려있는, 빨아서 널어놓은 걸레 두 장. 싱글 침대. 구형 모델의 텔레비전. 화장대. 화장대 위의 화장품들. 빗이며 솔 같은 것들이 들어있는 통. 뚜껑이 열려있는 섀도 팔레트. 그런 것들이 흐린 회색빛으로 눈에 들어왔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꺼져든다. 엄마는 항상 화장을 곱게 했었다. 붉은 입술이 아름다웠다.
 
    수연은 그날을 떠올린다.
    햇빛이 좋은 날이었다. 그날 엄마는 곱게 화장한 얼굴로 수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작은 문방구에서 바이엘 상권과 소곡집을 산 참이었다. 문방구를 끼고 큰 길을 돌아 나가면 시장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 피기 시작한 목련이 희게 빛나고 있었다. 아직 싸늘한데도 거리마다 봄이 앉아있었다. 이제 개업하는 분식집 아줌마가 물엿 한 통을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생선 장수가 가게 밖에 나와 스툴에 앉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떡꼬치를 사들고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아동복이 몰려있는 골목으로 흰 원피스며 철 지난 목도리가 빛을 담뿍 받아 너울거렸다. 엄마의 손은 길고 하얗고 가늘었다. 한낮의 반달처럼 희고 어스름하니 솟아나온 손톱이 간지러웠다. 따가운 햇볕 속에서 엄마의 까만 머리카락은 반짝반짝 윤이 났다. 흰 투피스에 길고 검은 생머리를 하고 곱게 화장을 한 엄마는, 뚱뚱한 몸집에 뽀글거리는 머리에 요란한 꽃무늬의 치마를 펄럭거리며 종횡무진하는 아줌마들 사이에서 홀로 동화책 속의 여왕님처럼 우아했다. 수연은 엄마를 놓칠세라 손을 꽉 붙잡았다.
    수연이 몇 살이지?
    열한 살.
    아가씨가 다 됐네.
    끄덕끄덕.
    엄마는 초록색 머리핀을 하나 사주었다. 흰 리본 위에 에메랄드빛 큐빅이 종종 수 놓여 있는 머리핀이었다.
    수연아, 엄마 잠깐 어디 갔다 올게.
    어디?
    수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저어기, 전화 한통 하고 올게. 금방 올 거야.
    언제?
    금방.
    수연은 한 손으로는 머리핀을 조물락거리면서, 한 손으로는 엄마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나도 같이 갈래.
    안돼, 수연이는 오면 안돼.
    왜?
    ……엄마 금방 올게.
    수연은 우두커니 서 있는다. 버스가 온다. 수연은 갑자기 왈칵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발작같은 그 울음소리에 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놀라서, 버스 문의 계단에 올려놓았던 발을 그대로 다시 땅으로 내려놓는다.
    엄마가 돌아본다.
 
    한 여자아이가 유모차 안에서 엄마를 쳐다보면서 매섭게 울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유모차에서 꺼내 안아들고 어르면서 엄마를 보고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얘가 아가씨가 좋은가봐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한 번만 안아봐도 돼요? 엄마가 물었다.
    그러세요.
    엄마는 들고 있던 악보를 유모차에 내려놓고 대신 아이를 안아들었다. 악보 세 권과 아이를 맞바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색한 손으로 아이의 엉덩이 밑을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등을 보듬어보았다.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에에에, 에에. 마. 엄마. 아이가 입을 짭짭 다셨다. 엄마는 입술을 깨물었다.
    키워보고 싶었다. 아이를. 아이의 머리를 곱게 양 갈래로 따주고 초록색 비즈 머리핀을 꼽아주고 싶었다. 십대 시절부터 엄마의 꿈은 피아니스트도 아니고, 피아노 레슨 선생은 더더욱 아니었고, 예쁜 딸을 키우는 좋은 엄마였다. 사람의 피를 먹고 살아야 하게 되었더라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더라도, 자신만은 아이의 곁을 영원히 떠나지 않고 곱고 총명하고 착하게 키워보고 싶다는 꿈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훔쳤다. 수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지만 엄마는 수연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못한다.
 
    “수연아.”
    “응.”
    “내가 너를 안 찾았냐고 묻고 싶지.”
    “…….”
    수연은 엄마를 보지 않는다. 창밖을 본다. 비가 멎었다. 물방울이 맺힌 창문 너머로 청회색으로 가라앉은 하늘과 산이 보인다. 방 안으로 푸른빛이 스민다. 괴괴한 빛이다. 가장 듣고 싶고, 묻고 싶었던 말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떠나고 나를 한 번도 찾지 않았느냐고. 나를 보고싶지 않았느냐고. 나를 잊었느냐고. 그게 가장 궁금했다. 단지 그게 궁금해서, 단지 그 대답을 듣고 싶어서 엄마를 찾았다고 해도 좋았다.
    “찾고싶었어, 수연아.”
    엄마가 말한다.
    “그렇게 보고싶었어. 정류장에서 남의 아이가 엄마, 부르는 소리만 들려도 그렇게 버스에 타다 말고 내려서 돌아볼 정도로. 잠을 잘 수도 없었어. 네가 엄마, 부르는 소리가 이명처럼 울려서.”
    “…….”
    “주민등록증을 몇 번이고 바꾸고, 이름을 몇 번이고 바꾸고, 이사를 몇 번이나 다니면서, 항상 너를 한번쯤 찾아보고 싶었어. 하지만 내가 어떻게, 널 찾을 수 있었겠니. 너를 다시는 찾지 않는 게 차라리 너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어. 엄마일 자격이 없기 이전에 사람도 아닌, 내가 어떻게 너를 찾아. 너는 나이가 먹어갔을텐데,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처녀가 되고 서른 살이 되고 하면서 그렇게……,”
    “…….”
   “후회스러웠어. 내가 너를 처음부터 거두지 말았어야 했던 건데 하고. 내 몸이 이렇게……, 이렇게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 네가 엄마, 그렇게 말을 할 수도 없었을 요만한 아기였을 때, 너를 어디 좋은 집에 맡기기라도 했어야 했던 건데 하고. 그런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
    “…….”
    수연은 한참을 말이 없다.
    “알아, 엄마. 알아요.”
    “응.”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으응.”
    수연은 화장실로 간다. 옛날과 다를 바 없는 구조의 집, 다를 바 없는 화장실로 간다. 바닥의 벽돌색 타일에 머리카락이 말라붙어있다. 깨진 타일의 시멘트에 거뭇하게 때가 껴 있다. 전에 살고 간 집 아이가 붙여놓았는지, 거울에는 금붕어 모양의 스티커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 집은 전셋집이다. 엄마는 한 번도 자기 집을 사본 적이 없다. 그럴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한 군데서 오래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수연은 문을 꽉 닫아 잠근다. 세면대 앞에 서서 수도꼭지를 튼다. 피 냄새가 난다.
    엄마가 수연 몰래 화장실에서 피가 담긴 병을 꾸역꾸역 마신다. 피가 묻은 입술을 북북 문질러 닦는다. 새빨개진 눈으로 몇 번이고 양치질을 한다.
    물이 찬 세면대에 수연은 얼굴을 푹 박는다.
 
    수연이 다시 안방으로 갔을 땐 금세 더 밝아져 있었다. 푸르게 젖은 하늘로 새들이 날아가는 게 보인다. 커튼도 블라인드도 없는 너른 창에 안방의 정경이 어스름히 비친다. 바닥에 깔아놓은 요 위에 덩그라니 누워있는 여자의 몸도 창문에 비친다. 좁고 가느다란 어깨와 등에는 움직임이 없다. 머리카락이 바위 위에 흐드러진 해초처럼 베개에 누워있다. 한 여자의 낯선 얼굴이 흐릿하게 떠올라 있다. 100년 동안 서른다섯이었던 여자가 눈을 깜빡인다.
    유난히 조용한 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 안방 가득히 깊은 숨소리가 울리고 있다. 수연은 그 여자 옆자리에 눕는다. 여자의 미끈한 목덜미 밑으로 한 팔을 밀어넣고 몸을 옆으로 뉘어본다. 손이며 팔에 와닿는 목과 허리의 감촉이 차갑고 미끄럽다. 어둠 속에 가라앉은 푸르스름한 빛깔이 이불에 켜켜이 쌓여있다. 수연은 눈을 깜박인다. 수건이 채 닦아내지 못한 물기가 여자의 살갗에 스며든다.
    “안 졸리니.”
    여자가 묻는다.
    “안 졸려요.”
    “시계, 꺼줄까?”
    “……아니, 됐어. 몇신데요?”
    “다섯 시가 다 돼가네.”
    네 개의 손이 얽혀든다. 여자의 이마는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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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지 선운사 200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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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 이주 사업 횡단 사령부 최후미 민간 선박 DU1888-0 (본문 삭제)2 200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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