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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마를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방법.
냉장고 문을 연다.



1.

한 여름의 도서관에는, 여름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풍경들이 자주 목격된다. 그 실례로 나를 들면, 이 뜨거운 8월의 여름에 깔깔이를 걸치고 있을 정도. 에어컨에서 나오는 냉기는 눈에 보일 듯 생생하다. 이건 일종의 폭력이라고. 투덜거리며 에어컨 앞의 소년들을 본다. 몸에서 후끈거리는 열기가 보이는 듯 하다. 아까 밥먹고 심심하다더니 축구라도 한 게임 뛰고왔던가. 귀의 이어폰 너머 꼬마들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나는 담요를 더욱 오므리고, 볼륨을 더욱 키우고는 연습장을 한 장 넘긴다. 그리고, 영어단어를 사각사각 적어간다. 얼마 후의 토플.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된 시험이라지만, 지금 당장은 할게 너무 없거든. 나는 차근차근히 귀에 들리는 단어를 적어간다.

evanesce, evanesce, evanesce.

소실. 소실. 소실.

차근차근히 연습장이 채워져간다. 빼곡히, 빼곡히. 넘긴지 얼마나 됐다고 바늘 하나 찔러들어갈 틈도 없이 가득 차 있는 연습장. 이건 이미 '내가 공부했소-.' 하는 시위용인데. 피식 웃으며, 가방을 뒤적거린다. 손에 딸려나오는 담배 한 갑. 몇 년 됐드라. 손가락으로 대충 시간을 꼽아보다가, 이내 관둔다. 못해도 5년은 됐군. 다시금 피식 웃는다. 몸을 주욱 뻗으며 기지개를 켠다. 귀에서 이어폰을 뽑아낸다. 담배를 주머니에 대충 우겨넣는다. 일어난다. 문을 연다. 밖으로 나간다. 계단을 내려간다. 한층, 두층. 몇발자국 걸어가서, 자판기 앞에 선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동전을 찾는다. 짤그랑짤그랑거리는 소리가 요란히 들린다. 백원짜리로 500원을 차례대로 넣고 - 찰그랑 찰그랑 찰그랑... - 캔커피를 하나 뽑는다. 덜커덩! 소리도 요란하게 굴러나오는 캔 하나. 자판기에서 캔을 꺼내어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바람이 후욱 몰려나온다. 후끈후끈하게 달아오른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는 휘적휘적 춤을춘다. 도서관 밖으로 나온 후 몇걸음, 깔끔하게 조성된 숲길이 있다. 나는 그 길로 죽죽 걸어갔다. 볼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느낌이 든다. 나무들이 살아있다고 외치는 소리없는 목소리, 그 눈이 환해지는 푸른 빛 속에는 분명히 작은 벤치가 있다. 분명히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 수 있는, 드나들 법한 위치에 있는 길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인적이 드물기에, 그 벤치 역시 사람을 앉히는 본연의 일 보다는 낙엽을 앉히거나, 햇살과 재잘거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오늘처럼 더운 날에는, 그 햇살과 재잘거리는 일상을 영위하는 빈도수가 높기도 하고. 나는 그 아무도 없을 장소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옮기며, 담배를 입에 문다.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캔을 꺼낸다. 막 나올때의 차가움은 약간 가셨지만, 아직은 시원하다. 캔의 마개를 열어젖힌다.

"어머?"

적지않은 당혹감. 입에서 "뉘신지요?" 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고는, 튕겨져나오듯 벤치에서 일어서 내 앞에 선 그녀를 바라본다. 나는 일단 커피로 목을 축이고는 입을 연다.

"그쪽도 이곳을 아나보지요?"

"네. 한적하고, 조용해서 자주 오는 편이에요."

분명히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자주 온다라. 내가 이곳에 오는 시간대가 대충 한시에서 세시...그 이후에 오거나, 그 이전에 자주오는 사람인가보군. 나는 나름대로 납득한 후 내 앞에 선 여인...이라기보다는 소녀를 바라본다. 새까만 단발, 까만 뿔테안경. 여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하얀 피부. 나름대로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법 하다.

그녀의 손이 내 왼손을 가르킨다.

"그거, 안피우는 거예요?"

"아, 아뇨. 피우는 중이었습니다."

후닥닥 왼손을 입으로 갖다댄다. "저도 한 대 줘보세요."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갑을 찾아내고, 그녀에게 건낸다. "라이터도 좀 빌려주실래요?" 애초부터 그래야 했다는 모냥으로 그녀가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인다. 기세좋게 힘껏 빨아보는 그녀.

"켁켁! 아우, 이런걸 왜 피나 모르겠어요."

눈물까지 찔끔거린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기세좋게 담배를 빨아본다. 한참동안 이어지는 거친 기침소리. 나는 피식피식 웃으며 캔을 건넨다.

"아우, 켁켁켁! 고마워요."

"피울 줄 모르면, 안피우는게 훨씬 낫죠."

햇살 아래, 연기가 산산히 조각나서 흩어진다. 입에 물고있던 담배를 손으로 건네고, 담배불에 침을 정조준하여 떨어뜨린다. 치직, 치익. 그러고는 벤치 옆에서 일광욕을 하는 쓰레기통에 툭 던져넣는다.

"이것도 피워요."

"네?"

"이것도 피워달라구요. 켁켁. 전 도저히 못피우겠네요."

한참동안 들고있어서, 모양 그대로의 재가 툭툭 떨어지는 담배. 나는 그 담배를 받고는 입에 문다. "그러게, 담배가 달콤할줄 알았어요?"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보인다. 다시금 주욱 빨고, 연기를 흩어놓고. 아직까지도 캑캑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금 담배 한 대를 끝까지 피운다. 쓰레기통에 꽁초를 집어넣고는 기지개를 한번 켠다. 그리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몇살이에요?"

"좋은 작업정신이네요. 다음은 이름을 물어볼건가요?"

"네?"

"열 아홉살이에요. 고3."

나는 뜨악해져서 내 앞에 선 그녀를 바라본다. 확실히 앳된얼굴이긴 하다. 옅은 화장기 때문에 두어살 높이쳐주기는 했지만, 그 분위기는 분명히, 아직 성인이기에는 풋풋하다.

"그럼 이제 이름을 물어보셔야죠. 아, 제가 먼저 물어볼까요? 몇 살이에요? 이름은?"

"스물 세살...강준이라고 합니다."

"으흠. 준씨라고 부르면 되겠네요. 이름 되게 쉽네. 제 이름은 성민아라고 해요."

생긋생긋 웃는 폼이, 닳고닳은 여자를 보는 듯 하다. 겉모습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그 성숙한 본새에 놀라며, 나는 다시금 담배를 꺼내어 든다.

"담배 엄청 많이 피우시네요."

"당황했을때의 버릇이죠."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다. 그녀는 여전히 생긋생긋 웃고있다.

숲을 관통하여, 바람이 불어온다. 벤치는 여전히 일광욕을 하고 있다.





2.

"야. 너 성민아라고 아냐?"

"아, 그 또라이년?"

집에서 뒹굴거리는 동생은, 자신이 19세라는 자각이 없는 듯 하다. 엇그제 두번째 캐릭의 만렙을 찍었다지, 징한녀석. 나는 컴퓨터앞에 앉아 싱글거리는 녀석의 뒷통수를 갈겨버린다.

"입이 좀 험하다?"

"어우 씨. 엄청 아프네. 아 그래, 왜. 아는 년이야?"

"담배달라길래 줘봤지."

"나나 달라고."

"걔는 못피우던데, 너는 피우잖아."

"어라라. 걔 못펴? 피는줄 알았는데."

어머님은 분명히 자식 걱정때문에 녀석을 보냈으리라. 정말 최악의 선택이지. 저런 방종한녀석을 어찌하여 도시로 보내셨는고... 촌에서 자식걱정에 애간장을 태우시는 어머니가 불쌍하다. 나는 녀석에게 담배 한 가치를 툭 던진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약은 약사에게, 재는 재떨이에." 녀석이 싱긋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아 그래. 뭐가 궁금한건데?"

녀석이 이내 게임을 끄고, 너무도 익숙한 웹 페이지를 연다. 인적사항을 확인하기에는 더 없이 좋다는 싸이월드에 축복있으라. 서너다리 건너가면 다 아는 사람이라지? 이 안에서는?

"자아, 어디보자."

빠르게 로그인을 한 후, 미니홈피로 들어간다. 무수한 일촌들의 사이에서, 성민국이라는 이름을 찾아낸다. "걔 동생이야." 일촌평들 사이에 껴있는 그녀의 이름 세 글자. 녀석은 너무도 익숙하게 그 이름을 클릭한다.

"왜 또라이라는지 보여줄게."

마우스커서가 다이어리탭을 찍는다. 순식간에 바뀌는 화면. 나는 모니터를 주시한다. 너무도 소녀적인 문체로, 점점이 쓰여있는 글들은 - 숲길을 거닐었다, 벤치에 앉았다, 사람을 만났다, 괜찮은 사람이었다. - 나의 내용이었다. 다소 당황한 채 나는 내 동생을 바라봤다.

"졸라게 노는 년인거 아는데, 완전 소녀취향이야. 완전 문학소녀라니까. 지 주제도 모르고."

"지 주제가 뭔데?"

"늦은시간에 시청가봐. 그년 맨날 술쳐먹고 헤롱거리고 있다니까. 낄낄낄."

뒤통수가 짜릿하게 달아오른다. 그때봤었던 밝은모습과는 전혀 매치가 안되는 말들. 나는 당황한채 녀석을 바라본다. 후후 뿜어대는 연기가 시퍼렇게 하얗다.

"그래도 민국이 앞에서 그년 씹으면 작살나서 좀 자제하기는 하지. 어린놈이 쌈질은 되게 잘한다니까. 뭐...어쨌든간. 생긴건 되게 청순해보이고 이쁜편인데. 사실은 걸레라더라고. 우웨웨. 난 걸레 싫어."

따악! 나는 다시금 녀석의 뒤통수를 갈겨버린다. "니가 따먹어봤냐. 븅신아. 아다주제에 말은 언간히도 많아요." 그리고, 주섬주섬 옷을 꺼내 입는다. "어, 형. 벌써 열두신데 어딜나가." "난 그대와는 달리 성인이라오." "내일 도시락은!" "엿이나 쳐먹어. 븅신아." 그리고는 재빨리 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잡는다. "아저씨, 시청이오." 운전수가 기세좋게 액셀을 밟는다. 차가 앞으로 지나간다. 가로등이 눈 앞에서 긴 꼬리를 흩날리며 명멸한다.






3.

시청바닥은 좁다. 20분여를 걸어다닌 끝에, 나는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첫눈에 반했다거나 그런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피식 웃어버린다.

"어라. 준씨 아니에요?"

"기억하네요."

교복을 입은 채로 술냄새를 풍기는 여자는 처음인데. 나는 실소를 흘린다. 살짝 다리가 풀린 모습. 나는 그녀를 부축한다. "교복을 입은 채로 혼자 취해있는 여자는 처음 보는데요." "제가 원래 좀 특이하답니다." 방긋방긋 웃는 그녀의 모습이 이채롭다. 왼손으로는 그녀를 부축하고, 오른손으로는 담배를 꺼내어 문다. "나도 하나 줘요." "피우지도 못하면서, 어디서 아까운 담배를 달라고 그러십니까?" 피식피식. 그녀가 실없는 웃음을 흘린다.

"나 되게 한심해보이죠?"

"네. 잘 아시네요."

"나 사실은, 술같은거 되게되게되게되게되게되게!!!"

"좋아한다구요?"

"아뇨, 싫어한다구요."

내 입꼬리가 싱긋 올라간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생긋생긋 웃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만취상태다. 손을 들어 담배를 쥐고는, 주우우욱 빨아들인다. 밤이라는 창문에 커튼을 치는 연기의 모습. 별은 연기 속에서 빛난다. 억지로 택시를 잡고, 그녀에게 집을 물어본다.

"집같은거 안키우는데요. 어쩌죠?"

"어허. 그런 장난 재미 없어요. 인제? 동문? 아니면 조금 멀리 하귀? 삼양? 말만 하시라구요. 바로 모셔다드릴테니."

"정말로 집같은거 안키워요."

안경너머, 한순간 그녀의 눈빛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크게 몰아쉰다. "아저씨. 인제쪽으로요." 알겠다는 듯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금 안심이군. 나는 몸을 뒤로 눕힌 후,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의 웃음에 조금의 생동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술이 깨는 모양이야. 나는 입을 연다.

"그럼 어디서 자는데요?"

"헤에. 이제 숙녀의 집까지 물어봐요? 그 다음에는 그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다음, 딸을 주십시오?"

"아니 그런건 아니고..."

그녀가 이내 피식 웃어버린다. 그녀의 눈빛이 어느정도 초점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내가 술마신데. 거기가 우리 집이에요. 외진데서 아줌마 하나가 영업하는 집. 끝나려면 아직 세시간쯤 남았네요." 그녀가 빠르게 말을 이어간다. 집에 있으면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술병이 보인다고. 아래층에서는 언제나 시끌벅적. 잊으려고 마시고, 마신 후에는 정신이 없어서 밖으로 뛰쳐나오고. 언제나 되풀이되는 일상. 그녀는 빠르게 자신의 일들을 얘기한다.

택시에서 내린다. 그리고, 방금 전 눈꺼풀을 닫아 잠근 그녀를 부축하여 집으로 들어간다. 집 안의 시계가 시계에 들어온다. 새벽 한시. 녀석이 자고있을 시간이라고 믿기는 힘들다. 세시쯤은 되야 쓰러질걸. 나는 기세좋게 녀석의 이름을 부른다.

"강현! 얼른 나와서 니방에 이불 깔아라!"

궁시렁대며, 내 방에서 녀석이 기어나온다. 그리고, 눈을 흡뜬 채 우리를 본다. "이젠 여자까지 끌어들여!" 그리고, 내가 부축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다음 이상야릇한 미소를 내게 보낸다. 나는 그 눈빛을 무시한 채, 그녀를 방 안에 눕힌다.

"문 닫아걸고 나갈께."

킥킥킥. 웃는 소리 요란하게 녀석이 퇴장한다. 나는 그녀의 곁에 앉아서, 그녀를 바라본다. 안경을 벗겨, 조심스레 베개 옆에 놓는다. 그녀는 여전히, 조용한 숨소리로 자고 있다. 슬슬 나도 나가 볼까나. 몸을 일으켜, 문의 손잡이를 잡는다.

"조금만 더 얘기하다가 나가요."

움찔. 나는 손잡이를 놓고,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방금 전처럼 누워있다. 눈을 뜨고있는것만 제외하고는. 나는 그녀의 옆에 앉는다.

"난 유명한 여류 작가가 될 거에요."

"되세요. 되시면 되죠. 뭐 어려운거 있습니까."

"어려우니까 이렇게 취해서 돌아다니는 거 아니겠어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다. 상당히 편안한 얼굴이다.

"글을 쓰고 싶어요. 하지만, 나는 글을 쓸 수가 없어요."

"왜요? 집에서 쓰는게 힘들다면, 도서관은?"

"아뇨. 한번 엇나가기 시작하니깐... 무엇이든 힘들어지기 시작했어요. 혹시 8마일이라는 영화 봤어요?"

"아, 그 에미넴 나오는거? 보긴 했는데요."

"그사람이 그러잖아요. 꿈은 큰데,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내가 바로 그래요. 내 자의가 아닌 삶 때문에, 소문은 점점 번져나가고. 사실 나, 학교 안나간지도 꽤 됐어요. 나름대로는 꿈많은 여자애였는데. 나, 이상하죠?"

"글쎄요..."

"동생은 오래전에 집을 나갔어요. 몇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께서 혼자 가게를 차리셨죠. 그 다음부터예요. 어머니가 알콜중독에 빠지신건."

나는 할말을 잃었다. 그녀의 뒤에 켠켠히 쌓인 시간들이 부서져내리고 있었다.
아아, 나는 왜 이렇게 치열하게 살지 못했던가. 이런 치열한 시간 속에서, 그녀는 홀로 서 있었다. 맞서지 못하고, 숨어있는게 고작인 몸부림이라고 비하할 의도는 없다. 고통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 이외에는 알지 못한다. 손가락 끄트머리를 베인 사람이 팔을 잘린 사람 앞에서 아파한다고 해도,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닌 듯.

나는 오래전의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눈물이 방울져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4.

"드디어에요 드디어!"

"길었지?"

"네! 정말로 길었어요. 나 목좀 봐봐요."

"왜?"

"혹시나 늘어난건 아닌가 하고."

키득거리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도서관 앞 조성림 안의 벤치. 벤치에 집중되는 조명이 상당히 고마운 저녁. 게다가, 무선인터넷이 된다는건 또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싱긋 웃으며 인터넷을 킨다. 호호 부는 입김이 담배연기인양 하얗다. 괜스레 긴장되는 마음에, 나는 담배를 한 대 문다.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지켜보는 그녀. 나는 모른척 불을 붙인다.

"우와. 진짜 느리다."

"뭐, 어쩔 수 있겠어."

국내 유수의 백일장. 작가협회의 회원 자격을 인정해준다는 그 말은, 상금을 빼고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녀가 쓴 글의 제목은 '사막에서 우물을 찾는 방법.' 이라는, 상당히 형이상학적인 것. 내용 자체는 그닥 어렵지 않아서, 제법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으흠, 흠."

"엥? 왜 목을 가다듬고 난리야?"

"좀 기다려봐요. 한번 읽어보게."

고개를 돌리고 담배를 피던 사이, 그녀가 찾고있던 것을 발견한 듯 싶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녀의 말을 경청한다. 가로등 빛이 발그레하다.

"본 백일장에 도달한 작품들을 살펴보며, 새로이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알게 되었다... 중략하고, 이번 백일장에 대상으로 당선된 사막에서 우물을 찾는 법이라는 글은, 냉장고에서 쉽게 물을 찾듯이 자신 곁에 있는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사막에서 우물을 찾는 방법을 깨우치게 하며..."

"그러니까, 오늘 안에는 끝나는거 맞지?"

"다시금 중략하고, 대상은 내꺼."

"축하해."

"별말씀을요."

당연하다는 듯이 웃고있지만, 분명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나는 그런 그녀를 꽉 안아버린다. "그래서, 우물은 찾았어?" 그녀의 얼굴에 흠뻑 웃음이 물든다. 나름 힘들었던 가정환경에서, 어머니를 뒤로 한 채 우리집에 들어와 살기를 반년. 그녀는 그 동안 분명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나는 그녀를 향해 환하게 웃는다.

"내 옆에 있잖아요. 덕분에 목이 마르지 않았어요. 감사해요."

그녀가 밝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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