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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립 AI Lead Two Way

2018.12.01 00:0012.01

AI Lead Two Way

유이립

SF로 이쁘고 착한 소리만 해야 한다.
과거 사람들은 현재를 SF로 통해 상상할 때, 과학이 너무 발전해서 배가 부르고 등이 따신 시기라 여겼다.
그래서 발전한 과학기술로...잃어버린 사랑을 찾거나, 인간적인 가치에 그리움이 사무쳐 과학적 과정을 거쳐 먼 길을 돌아 삽질하는 이야기들이었다.
SF 이야기들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었다. 과학기술 외에 감정, 정신적인 면에서 어떤 하나의 이데올로기나 관념체계로 통일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반대 입장은 우매한 저질 인간이거나, 공존할 수 없는 악으로 표현했다.
SF 이야기 속에서 과학기술이 그토록 발전했고, 미래로까지 발전했음에도.
내 뛰어난 이성과 이쁘고 착한 마음으로 과학 과정을 걸쳐, 상대와 소통하여 설득하는 근대 계몽소설 구도가 많았다. 이것도 비슷한 이야기인데 마지막이 좀 특이하다.
“2080년에 왜 밀레니엄 전 윈도우98를 사용해요?”
이 이야기는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이다.

당시 AI에 대한 논쟁으로 세상이 둘로 갈라졌다.
민철규. 이 사람은 AI 유신론자이다. AI 제작에 필요한 초전도체 부품의 원료인 희토류 광산 광부였다.
지금 그 ‘민철규’ 라고 보면 안 된다. 지금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당시에는 4년제 대학을 나왔음에도 노가다 같은 3D업종에서 종사할 수 밖에 없었다.
뭐 지금은 경제 시스템이 매우 간소화해져 경제가 안 좋았다 라는 개념을 설명할 수 없지만...
지미 존슨. 이 사람은 AI 유물론자이다. 당시 AI가 뒤덮여가는 세상에서, 기업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해 반AI파 거점 도시를 세운 인물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안 된다.
당시에는 과격한 개망나니. 권력자. 선동가....써놓고 보니 지금 기준으로는 지금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다. 지금 우리는 전쟁 중이니까...

무엇으로 유신론자와 유물론자가 갈라졌는가?
첫째는 일자리 문제로 시작했다.
본격적인 AI 도입으로 많은 산업들이 노동자를 AI로 대체했다.
“인류가 AI을 버리고 좀 더 노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자리가 늡니다!”
“음식점에서 주문받고 서빙하는 AI에게 뺏길 만큼 스펙이 없으세요? 카하하 좀 더 노오~력 하셔야 겠네요.”
이 논쟁은 AI의 편리함 때문에, 그리고 4차 산업의 도래 때문에 쉽게 판세가 결정됐다.
아직 유신론자와 유물론자로 갈라질 정도의 논의는 아니었다.
둘째는 AI 전부터 시작했던 이념유행이었다.
어떤 회사에서 직원을 모집하는데 AI가 1차 서류 전형을 대신했다.
“제가 떨어진 이유가 취미가 헬스이기 때문이에요?”
회사에 탈락자 항의가 빗발쳤다. AI는 서류 자기소개서에서 취미란을 보고 필터링을 가동해
헬스 취미자들을 모두 탈락시켰다.
“저 멍청한 AI 때문에 우리가 피해봤다!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에는 기계이다!”
AI으로 인해, 어떤 사람인지 결정되니 세상이 바보가 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그랬다잖아요! AI이 뭔 잘못이예요!”
AI는 자기 의지로 단순히 단어 하나 때문에, 탈락시킨 게 아니었다.
문제는 ‘어떤 생각을 가진’ 프로그래머였다. 프로그래머는 자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인위적으로 자신의 육체에 변형을 가하는 운동을 싫어했다.
보디빌딩, 헬스는 근육으로 가부장제, 야만성, 쓸데없는 자기과시성을 상징했다.
AI를 통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들. 이들은 적극적으로 AI를 도구로 이용했다.
그래서 AI는 자신의 창조주의 코드 명령에 따라 자소서를 보고, 검색엔진에 접속하여 지원자의 개인 블로그를 뒷조사해 취미 헬스를 확인하고는 부적합 판단을 내렸다.
“봐라! AI가 그토록 뛰어나다고 하지만 결국 누군가의 도구일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필요하다!”
“자율적인 판단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인류에 비하면 고지식한 수준이다! 고지식한 기계에 인류가 맞춰갈 껀가?”
이들은 눈으로 직접 AI의 바보짓을 봤기에 AI에 회의적인 유물론자였다.
“결국 사람이 문제입니다! 착하고 옳은 방식으로 AI를 사용하면, 인류는 크게 진보할 겁니다!”
AI의 불완전함에도 완벽할 거라 믿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
이들은 AI를 도구로 각자 ‘만들고 싶은 세상’과 ‘실현하고 싶은 이념’ 이 있었다.
눈앞의 바보짓보다 자신의 이상을 더 믿기에, 도구로 사용할 AI를 더 퍼뜨리고 완벽하게 만들려고 했다. 이들이 유신론자들이다.
회사는 프로그래머를 해고했지만 세상은 프로그래머를 순교자라 봤다.
당시 사람들은 다양성을 중요시해 신념을 가진 프로그래머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는 용감한 사람이라 봤다.

문제는 회사도 프로그래머를 나쁘게 떠나보내지 않았다.
당시 회사나 개인 모두 어떠한 이념을 패션처럼 걸치고 디스플레이 하는 세태였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사소한 물건에까지 AI기능이 부여했다.
당시에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굳은 이념을 갖는 게 유행이어서, AI로 세상을 바꾸길 원했다.
“아니. 우리 전자렌지가 채식주의자였어요?”
AI가 장착된 전자렌지는 때때로 주인들에게 충고했다.
“현재 사용자의 콜레스테롤은....그러므로 소시지 따위보다 건강한 채식을...”
전자렌지 회사는 건강을 위한 충고라고 했지만, 채식주의자 성향을 숨기지 않았다..
왜 전자렌지 회사가 채식주의냐고 따지면 안 된다. 당시에는 연예인들이 모피를 입거나, 육가공 식품 광고료를 받으며 채식주의자를 자처했다.
‘절대 그 사람이 내세우는 신념에 대한 지적질이나 질문을 하면 안 된다. 이는 당사자의 마음을 공격하는 무례한 태도이다’ 라는 생각이 퍼져 있었다.
행동은 AI가 한다. 판단도 AI가 한다. 그러나 어떤 행동인지, 누가 나쁜지는 유신론자들이 결정했다. 넘치는 신념으로 세상은 언제나 ‘이래야 해.’ 혹은 ‘이렇게 변해야 해.’ 라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사소한 물건도 AI 기능을 달아 팔다니! 결국 저 AI들이 인간을 지배할 거다!”
유물론자들이 이렇게 말해도 유신론자들은 기분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내 안의 이념은 논리적으로 완벽하고, 세상 모두를 위하는 선의이기에. 도구로 이를 대표하는 AI가 세상을 지배해주길 원했다. 그런 날을 앞당기려면, 사소한 물건에도 AI를 더 많이 퍼뜨려야 했다.
유신론자들은 AI로 머릿속의 이쁘고 착한 이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세상을 통제&검열하고 싶어 했다. 물론 천국을 지으려면 파괴하고 다시 짓는 것도 각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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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날품팔이 민철규와 글로벌 기업가 지미 존슨의 접점은 가상현실 뿐이었다.
민철규 입장은 이러했다.
잡쉐어. 일자리가 많아서가 아니라 없어서 생긴 투잡&부업시대.
당시 AI의 도입으로 사무직은 6시간 근무로 감축됐다.
노동시간이 줄자, 월급도 당연히 줄었다. 대안으로 부업 사무직. 이른바 투잡이 성행하여, 본직장 외에 타 직장에서의 4시간 근무를 법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번듯한 회사도 6시간 이상 일을 시킬 필요가 없는데, 다른 회사라고 4시간 일을 시킬까?
대개 부업회사는 상주인력이 사장 포함 1~2명으로 이루어진 중소규모였다.
본업만큼 급여를 줄 수 없는 부업회사들은 대신 자율시간제를 운용해, 회사원들이 투잡 하기 쉽게 환경을 조성했다. 그러나 부업은 6개월 계약직이었고, 절대 재고용은 없었다.
부업회사들은 한시적으로 저가의 노동력을 끌어들여 이득을 취했다.
“민철규씨. 죄송하지만, 저희는 부업이 주업인 회사입니다. 귀하는....”
“본업이 없으니 부업이라도 하고 싶다고요.”
“...그러면 우리 부업이 본업이 돼 잖아요. 그러면 법에 걸려요.”
민철규는 자신을 거절한 회사 건물을 나와 거리로 향했다.
거리 곳곳에 마천루 라인을 타고 택배드론들이 활강하고 있었다.
택배사업에 드론이 도입된 날이 인간의 노동가치가 하락한 날이었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AI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서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여전히 3d업종 종사자들은 하루 12시간씩 일했지만...4차 산업시대에 대학 나온 사람들은 절대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별 대단한 것 없으면, 일반 서민이면, 이렇다 할 방법이 없으면, 해야 하는 하급 노동이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한 세대 대부분이 하급 노동을 거부했다.
있는 집 자식처럼 사교육으로 스펙을 무장할 수 없거나, AI를 이길 수 없는 평범한 능력.
‘....배우고 배웠지만 중요하지 않은 잉여인간.’
당시 경제난 때문에 민철규와 같이 어중간히 배우거나, 대학을 나왔지만 딱히 내세울 것 없는 사람들은 어느 때가 되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직감이 있었다.
‘난 평생 정장입고 일할 일 없다. 존중 받을 수 없으니. 밑바닥으로 내려가 뭐든지 하자.’
민철규는 철새처럼 세모꼴로 떼 지어 날아가는 드론을 보며 넥타이를 꽉 움켜쥐었다.
이렇게 민철규는 대학을 나왔음에도 충청도 희토류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가 됐다.
희토류는 스마트기기와 AI기기의 초전도체 부품을 만드는 원료이며, 당시 가장 많은 보수를 준다는 막일이었다.

하나의 시대에 두 개의 역사가 흘러가고 있었다.
AI 흐름에 상승한 자와 도태된 자.
“민.철.규.님. 상체를 더 가까이 대시기 바랍니다.”
민철규는 공기업에서 운영하는 희토류 광산에서 일하기 위해, 보건소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있었다. 건강검진 책임자는 AI였다. 심박수와 혈압, 소변검사 등. 모든 절차는 AI의 안내에 따라 흘러갔다. 보건소 직원은 할일이 없어, AI의 차트진행표만 바라보고 있었다.
“형씨. 실례하겠소.”
안경 낀 얼굴에 배운 사람 티가 나는 민철규 옆으로,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가 지나갔다.
정보접근 차이가 아니도, 빈부차이도 아니고, 노동력 차이도 아니고, 사무직이나 전문직 같은 걸 그냥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몸을 잘 활용한 사람들.
디스켓이 나와도, 시디가 지나가도 USB로 변해도, giga-fi가 나와도 절대 배우지 않을 사람들. 타고난 힘 때문에 얻어지는 폭력, 쾌락 등 이익으로 원초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 사내도 희토류 광산에 지원하려는 듯 AI에게 보건검사를 문의했다.
“으이. 씨발 놈아. 또박또박 말하지 말고, 서둘러 또이또이 말해!”
사내가 AI를 닥달하자, 보건소 직원은 안 들리는 척 차트표를 더 열심히 들여다봤다.
민철규는 이제 저런 사내들과 어울려야 했다.
자신이 배운 게 아무 쓸모없고, 자신의 가치가 하락하는 세상으로.

“저는 돈 벌어서 피그말리온 서비스를 신청하려고요.”
“....?”
민철규는 같은 광부 지원자들과 고속 기차로 충청도로 향하는 중이었다. 물론 AI가 조종하는 기차였다. 우락부락하고 사나운 사내들은 민철규의 지원동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민철규는 좀 특이한 사람이었다. 희토류 광산은 험하고 위험해서 돈은 많이 벌었다. 대개 그 돈으로 집을 사거나 차를 사거나, 투자를 하거나, AI임대업을 하거나 대개 미래지향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민철규는 희토류 광산에 들어갈 때부터, 모은 돈으로 피그말리온 서비스를 목표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현실 서비스로 부자들만 이용할 만큼 사용료가 비쌌다.
1년 기간 내내 반수면 상태에서, 영양을 보충하며 뇌파 이동에 따라 나노봇이 뇌를 자극해
가상현실을 만든다. 게다가 자각몽처럼 가상현실을 제어할 수 있었다.
상상을 통한 가상현실을 하다 ‘아차!’하고 수정하고 싶어지면, 피드백에 민감하게 반응할 대응 시스템도 필요했다. 시스템은 AI의 제어로 이루어졌다. 민철규는 AI 부품에 필요한 희토류 광산에서 고된 노동으로 돈을 벌다가 자신의 상상 속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AI에게 돈을 바쳐야 했다. 역시 여러모로 유신론자답다.
“...제가 잘못 살 지 않았는데 이렇게 된 걸 납득할 수 없어요. 인생을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서요. 이제 좀 아니까. 다른 세상에서는 더 잘 할 수 있다고.”
“....그려.”
이제야 사내들은 약간은 이해했다. 막장인생들 대부분이 새 인생을 꿈꾸었다.
그래도 많은 돈을 들여 가상현실 체험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어차피 1년 뒤, 깨어날 꿈 아닌가?
민철규는 사내들의 반응이 이랬거나 저쨌거나 착잡한 심정으로 기차의 진동에 몸을 맡겼다.

반면 지미 존슨은 기업가답게 매우 명쾌하고 직관적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
지미 존슨은 자신에게 홍보로 온 가상현실 USB를 골프 트로피로 내리찍어 산산조각 냈다. 피그말리온 서비스 회사는 백만장자들을 타겟으로 영업했는데.
“손에 잡히지 않는 저런 병신에게 피 같은 돈을...”
지미 존슨은 역시 유물론자였다. 그리고 민철규 만큼 특이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당연히 AI에 굴복하는 세태에 유일하게 반기를 들었다. 그가 입장만 바꾸었어도 당시에는 살기 편했을 텐데도. 이윤에 밝은 기업가답지 않게, 손해를 감수하며 세상과 맞서 싸웠다.
가상현실 발전에 대해 심리치료라는 명분이 붙었지만, 지미 존슨이 보기에는 오락소비만 늘어났다. 애초에 놀려고 만든 장비인데, 1년 동안이나 무방비로 처박히다니, 이런 낭비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뇌 콘트롤을 AI, 기계에 맡겨야 했다.
“딸딸이도 스스로 못 칠 또라이 새끼들.”
글로벌 기업의 회장인 지미 존슨은 놀랍게도 컴퓨터 앞에서 하는 사무직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만나러 차를 타고 이동하며, 사람과 만나 협상을 하며 설득하거나 기싸움을 하는 육체노동이 동반돼야 노동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회사에 일하는 새끼들이 어딨어? 총알받이로도 변변찮은 놈들이야!”
당연히 그의 기업은 사원을 아끼지 않는 대표적인 갑질 블랙회사였다.

두 주인공들은 이 접점에서 갈라져 제각기 길을 간다.
이 소소한 접점을 설명하는 이유는. 이 둘이 먼 미래에 협력하기 전에, 극명한 입장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놀랍게도 이 입장차이는 서로를 전쟁 중에서 가장 빛나게 해줄 미덕이 됐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SF 이야기를 하자.
옛날 SF들은 아주 자연히 백인을 위주로 기술했다. 편견, 차별 없는 궁극적인 이상향을 그렸음에도. 주인공들은 대부분 백인이거나 동양인(작가가 동양인이어서)이었다. 흑인은 매우 적었다. 제 아무리 이쁘고 착해 보이고, 최신 의식을 담은 주장을 담았다 하더라도, 정작 본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그런 걸 써서 그런 사람처럼 보이고 싶을 뿐이었다.

민철규는 광부들에게 배정된 유스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유스호스텔은 매우 한적한 곳에 있어서 걸어서 벗어날 수 없고, 인근에 상가나 정류장도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노가다꾼이 머물만한 적당한 숙박시설.’
나중에야 숙소 위치배정에 대한 사연을 알게 되지만 첫인상은 그러했다.
민철규는 창문을 열고, 서울과 달리 깨끗한 밤하늘이나 보며 운치를 즐기려 했다.
하지만 아래층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오는 담배연기에 인상을 찌푸리며 창문을 서둘러 닫았다. 창문 너머 멀리서 피라미드형 희토류 광산이 달빛에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희토류 광산은 방사능과 환경오염이 심해, 저개발국같이 물불 안 가리는 곳에서만 올인 하는 위험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사소한 장비에도, 고가의 램과 반도체, AI를 장착하기 시작하자, 희토류가 부족하여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됐다.
민철규는 희토류로 인한 방사능, 폐수 등 최악의 오염물질을 감수하고, AI에 봉사해야만 AI가 통제하는 가상현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음날 새벽 5시. 민철규는 낯선 방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 씻었다.
할 일이 노가다이니 대충 씻어도 될련만 한 번도 험한 일 한 적 없는 먹물답게 구석구석 깔끔이 씼었다. 유스호스텔 정문으로 나가니, 광산에서 운영하는 출근 버스를 기다리는 일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잠시 후, 희토류 광산을 관리하는 공기업 마크를 단 버스가 와 일꾼들을 태웠다. 버스는 푸르스름한 새벽을 헤치며, 멀리 보이는 피라미드 광산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라고 했지만, 한 번 더 말할 수 밖에 없다. 미래를 묘사한 sf애니에 기계가 아주 똑똑하게 일하는 세상인데도 인간은 일에 종사한다.
기계는 똑똑한 일, 어려운 일을 하고, 인간은 밀수업 같은 비천한 일에 종사한다.
AI가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전에도 시범식 AI공장은 늘 고장과 불량이 심했다.
당시 미국의 유명한 자동차 공장은 불량으로 인한 보상 때문에 파산직전까지 갔다.
이유는 디테일이었다. AI가 지시하는 기계가 열에 달궈진 철판을 문 모양으로 자르고 나사를 박는다. 그런데 철판이 덜 달궈졌으면 문은 덜 잘리고, 나사선은 덜 파여져 나사가 완전히 박히지 못한다. 인간은 육안과 경험으로 이를 잡아내지만 AI는 입력된 동작과 계산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큼만 일한다.
AI가 이런 민감한 불량을 눈치 채고 수정할 피드백능력이 있었으면. 그리고 이 정도의 AI와 생산기계를 스스로 대량생산할 수 있으면 인간은 노동에서 해방된다.
일정한 온도와 조건상에서도 철판이나 플라스틱은 덜 달궈지거나 덜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불량은 인간이 직접 터치하거나 육안으로 미세하게 잡아내야 한다. 요는 시행착오 디테일과 응용이다.
- 나는 강렬하게 원했음에도 말을 하다.
예를 들어, 검색엔진 번역은 각 단어(부품)와 문장(과정)은 맞지만 번역 후 글을 보면 알아먹기 힘든 어색한 말투이다.
AI가 이를 해결할 문제해결능력을 운영하고, 대량생산과정을 통제할 정도로 과학이 발전했다면, 자신과 같은 수준의 생산기계를 생산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정도 문제해결능력을 계산할 수 있다면, 설계도 할 수 있다. 어쩌면 인간의 수요도 파악할 수 있는 계산능력이다.
그러면 AI가 생산기계를 설계, 생산, 생산지시, 생산기계로 2차 생산 과정을 모두 담당할 수 있다면, 인간은 노동을 해야 할까? 기계 스스로가 부품을 교체할 수도 있을 텐데?
미묘한 차이와 인간의 경험마저도 계산해내고 응용처리할 수 있다면 밀수업마저 AI가 담당할 수 있다.
그래도 인간은 AI에 전기코드를 꽂아준다거나 배터리를 갈아준다든가, 설계를 감수한다던가 최소의 할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인간은 자신을 노동자로 볼까? 모두가 생산을 안 해도 되는 시대에 혼자 특이한 일을 하는 아티스트라 볼까?
“우리는 너무 인간적인 기준에 맞춰 살았어요. 우리보다 합리적인 존재의 결정을 믿어야 할 때예요.”
유신론자 엔지니어는 자동차 회사 임원들을 설득해 AI에게 자동차 설계를 맡겼다.
AI는 수소 승용차에 고정되지 않는 좌석을 장착했다.
AI가 판단하길 인간은 좌식 생활 때문에 허리힘이 약해 앉아서도 운동할 필요가 있고, 고정된 좌석보다 비고정 좌석이 충격에서 파손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결과는 이 승용차에 탄 사람들은 사고시 좌석의 반동으로 척추가 손상됐다. 92%의 확률로.
“사고는 인간이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아서 예요. AI는 선해서 인간이 악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 본 거예요.”
그럼에도 AI를 지지하는 유신론자들은 문제를 자신들, 인간의 탓으로 돌렸다.
당시 AI 지지파가 승리를 얻는 과정은.
AI가 검색엔진을 활보하며 맞춤법 사냥을 한다.
“문법나찌새끼.”
유물론자들은 언어의 자연발생적인 특성을 이해 못하는 AI를 비판했지만.
“인터넷에서 욕설 및 비하, 차별, 편견을 조장하는 것이 자랑입니까?”
유신론자들은 맞춤법 사냥에 포함되는 욕설, 차별, 편견 표현 검열을 지지했다.
정신적인 가치, 도덕성을 내세워 AI의 자리를 상위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사투리나 옛 고어를 비속어로 오인해 사냥하는 건 못 본 체했다.
이와 같은 여론으로 좌석전용 AI까지 장착되기 시작했다. 하나의 차에 두개의 AI.
하나는 운전과 내비게이션. 다른 하나는 차내 생활과 안전담당.
AI와 스마트기기 제작에 필요한 희토류 수요가 증가했다.
그러므로 AI가 노동계 전면에 나섰음에도 인간은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출근버스로 2시간 거리를 달려온 민철규를 맞이한 것은 산 한 면이 피라미드처럼 계단식으로 깎인 광산이었다. 광속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산 표면을 깎아내고 잠재된 희토류를 캐내어 제련해야 했다. 구렁이가 산을 감은 것처럼 파이프라인이 산을 칭칭 둘러매고 있었다.
채굴을 위해 약산성을 뿌리도록 설치된 파이프라인이었다.
희토류 채굴지대는 소량의 방사성 물질과 토양이 함께 뒤섞여서 채굴이 쉽지 않다.
약산성 약물은 채굴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돕지만, 환경이 오염되고 토지의 자정능력을 뺏었다. 신참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식당으로 인솔되어 아침식사부터 했다.
시계는 대략 오전 7시 30분이었다.
“흐미. 냄새 징하네. 밥맛 뚝 떨어지네.”
신참 사내들이 약산성 냄새에 요란법석을 떨었다.
공기업 파견직원인 현장소장은 우락부락한 사내들 속에서 왜소한 민철규를 금방 눈여겨봤다.
안경 낀 신경질적인 얼굴이 전형적인 샌님이었다.
“한 손으로 목을 휙 따버릴라 샌님 자식이.”
저런 부류들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오지만, 2~3일 뒤면 찌질한 하소연과 함께 금방 도망간다. 현장소장은 현장 안전&건강교육을 위해 신참들을 제련&추출 기지인 통제센터로 데려갔다. 현장소장은 센터 내 식당을 임시 교육장으로 삼았다. 채굴장 식당과는 달리 배식이 부페식이고, 새하얗고 말끔한 곳이었다.
‘사무직들이 먹는 식당.’...‘나도 있을 수 있었던 공간.’
애써 내려놓고 왔지만, 민철규는 자신이 왜 여기있나 후회와 자책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마! 내~에가! 옛날에 노가다 뛰다가 못에 찔리면, 담배불로 상처 확 찢지고! 소주 한잔으로 소독했지만!”
거센 억양으로 시작한 말이 갑자기 공손해졌다.
“지금은 인근 보건소로 가서 파상풍 주사 맞습니다. 알겠죠? 여러분. 자 손 잼잼 해보세요. 앉았다 일어나 보세요. 다 할 줄 아니까. 여러분 건강한 것 맞습니다~ 자 일하러 가시죠.”
AI에게 안전&건강 교육을 맡겼더니, 사건사례부터 시작해 만약에를 위해, 혈압까지 체크해서 한참 걸리거나, 노가다꾼 당장 써먹기 곤란하게 암 검진까지 추천해버렸다. 소장은 새 노가다꾼들이 일하러 갈 때, 민철규를 보고는 일부러 말을 걸었다.
“뭐 궁금한 것 없나?”
다 알고 있다는 얼굴이다. 대부분 먹물 먹은 애송이들은.
“정말 돈을 많이 벌 수 있나요?”....“일이 힘든가요?”
...등을 물었다. 대개 질문이 무색해지게 하루이틀 만에 도망쳤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급이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놀리기 위해 질문했던 소장은 말문이 막혔다. 민철규의 질문에 ‘여기서 가장 존중받는 일을 하고 싶다.’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태까지 노가다 일을 하러 와서 가장 존중받는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먹물. 여기는 노가다판이야. 그런 거 찾지 마.”
소장은 당황을 냉소로 가장했다. 민철규는 주눅 들지 않고, 채굴 광산으로 향했다.
노가다꾼들은 민철규의 특이한 행태를 보고 낄낄 웃었다. 온 첫날부터 쓸데없이 많이 배운 먹물로 찍혔다.

민철규는 4인 1조의 채굴작업에 배정돼 산 사면을 타고, 채굴 포인트로 향했다.
왜 AI가 장착된 로봇이나 채굴기계로 채굴하지 않나? 희토류는 방사성 물질과 같이 매장돼 있기 때문에, 또 약산성 약물이 기화되어 공기 중에 포함됐기에, 스마트 기기나 AI 반도체 기판이 고장 난다.
그리고 AI의 작업특징도 있었다. 삽으로 땅을 파는 간단한 매커니즘을 참으로 복잡하게 했다.
팔곳을 좌표로 지정하고, 접근하는데 땅이 평평하지 못하면, 탱크처럼 무한궤도를 달아야 했다. 파더라도 삽의 각도와 파고드는 깊이를 계산했다. 중간에 돌이 걸리면, 고장 나거나 위험으로 간주하고 물러섰다. 무사히 잘 판다 싶더라도, 파는 곳이 휭하니 비어버리면 옆면을 깎거나 더 깊숙이 파야 하는데, 하루종일 계산 중이었다. 파다가 땅이 단단하면, 삽끝으로 땅을 찍어 잘게 부수거나 옆면을 파서 균열을 내야 하는데, 안되면 안되는 대로, 위쪽부터 수저질하듯 느릿느릿 퍼내려갔다.
“AI에게 신체를 달면, 시행착오 과정을 학습시킬 수 있습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초기 AI 연구자들은 이렇게 주장했지만.
AI에게 신체를 달아주고, 신체로 인한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학습하도록 설계했어도, 학습능력이 도달한 문제해결은 수저질이었다.
단순한 원격조종 포크레인 쓰기에는 산 사면이기 때문에 접근하기 힘들었고, 희토류는 섬세한 채취개념으로 파기 때문에, 채굴 중 등급판단이 즉시 가능한 존재. 사람이 적당했다.
방사능과 약산성은 인간에게도 유해했다.
“희토류 채굴은 어느 정도 수준 되는 국가가 할 일이 아닙니다! 채굴이익보다 산업재해보상금이 클겁니다!”
애초에 인권을 우습게 여기는 저개발국에서나 성행하던 광업이다.
그린란드는 내세울 자원이 희토류 밖에 없기에 기존 희토류 강국 중국의 견제를 받는 걸 감수하고, 채굴에 나섰지만 도저히 희생을 감수할 수 없어서 물러섰다.
왜 수입하지 않고 직접 캐는 걸까?  ‘미래에는 우리의 것은 우리의 손으로.’
...라는 당시 정치 슬로건에 맞게, 손이익보다 슬로건을 앞세워 공기업이 설립되고, 채굴이 시작됐다.(이 슬로건에 따지지 마라. 당시는 과거였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희망이 있었다. 개연성 없다고 외면하기 전에, 2018년 발견된 충청도 희토류 광산은 낙관적으로 봐도 매장량이 고작 50년 분이고, 채굴 중 손실량이 많아 이익가능성이 낮았는데 사업화가 추진됐다. 당시 대국민사기극이라는 기사도 나왔다. 진짜니 직접 찾아보시길)
아침 9시부터 시작된 채굴은 저녁 5시가 돼야 끝이 났다.
저녁 먹으며 6시에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가 유스호스텔에 도착하면 8시였다.
씻고, 긴장풀며 노동에 해방되어, 뒹굴대다가 11시쯤에 잠이 스르륵 들었다.
이것이 당시 노가다 꾼 민철규의 하루였다. 다음날부터 먹물이라 불리게 될 줄 모르고.

유신론자들은 AI에게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 법안을 부여했다.
전쟁이나 비인간적인 살상을 방지할 도덕적 목적으로 라고 했지만, 누군가 해킹하거나 AI를 잘못 가르쳐 자신들에게 반하는 행동을 할까봐 여서 였다.
유물론자들은 상상도 못하는 걸 유신론자들은 평소 생각하고 이용했기에 자신들이 당할까 지레 겁먹었다.
그래서 AI는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상황이나 환경, 사용자를 거부할 수 있었다.
이 법안은 인간의 사용보다도 정신적 가치를 중요했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AI 대신 인간이 들어가게 만들었다. 인간들도 같은 인간을 보호했다.
“희토류 방사능은 버스 운전석이나 용접보다도 위해롭지 않습니다.”
그래도 방사능 누적방지를 위해, 6개월 단위 계약직. 6개월 후 다른 인력하청회사로 이동하여 보직변경. 1년 6개월 후 계약해직. 왜 계약해직하냐면 법적으로 동일 작업장에서 2년 고용이면, 정규직이 되기에 정규직 자리도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작업 첫날밤, 민철규는 헛구역질이 올라 잠에서 여러 번 깼다.
하지만 처음으로 육체를 사용한 노가다를 뛰기에 겪는 성장통이라 긍정적으로 여겼다.
“그래도 낮은 곳에서 시작했던 민철규는 방사능 감염으로 오래 살지 못하고, 딱 자신의 전성기에서 죽게 되어 다른 위인들처럼 타락과 몰락의 오점을 남기지 않았다.”
훗날 역사학자들은 민철규의 죽음에서 단 한 가지 긍정적 의미를 찾아냈다.

지미 존슨.
뉴욕에서 출생한 부자집 후손이었다. 하버드 경제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가문의 부동산 자산을 활용해 뉴욕과 런던에서 임대업으로 성장했다. 임대업 같은 올드한 사업보다 성장과 리스크가 동반된 뉴웨이브를 주도하는 어떤 분야의 선구자가 되고 싶었다. 투자회사를 설립 후, 전기차에 투자했으나 수소차에 밀려 큰 망신을 당했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저에게 위기가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원래했던 임대업과 부동산 투자로 돌아갈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단언컨데 아니! 라고 말하겠습니다. 시련은 있지만 포기는 하지 않습니다! 다음 제 목표는 인류를 화성으로 보내는 것 입니다!”
자신의 오판을 선구자가 될 사도의 시련으로 미화했다.
이 홍보가 먹혔기에.(물론 아직 건재한 부동산 자산)미국 재무부와 항공우주기술연구 펀드는 화성개발 사업자금조로 지미 존슨에게 투자금을 지원했다.
“지미 존슨 그 사람 물건 한 번 쓰고 그 자리에서 버린다는데요?”
“그래서 화성개발이 됐습니까? 그 사람 돈을 어디다 쓴 거죠? 횡령의혹 받는 사람이 왜 난데없이 하원의원이 되겠다는 거죠?”
지미 존슨은 갑자기 화성개발 사업에서 손을 떼고는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그가 내세우는 공약들은 전기와 수소기술의 발전으로 약화되는 석유산업이 유지되도록.
‘수소활용기술 같이 완전히 검증되지 연료를 사용하는 비행기와 선박 운행금지’
‘지역경제를 위해 화력발전소 유지.’
중동왕족들이 지미 존슨을 충동질해 하원의원이 되도록 선거자금을 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fbi에서 조사에 나섰지만,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고난 받는다는 자체가 위대하다는 증거입니다!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이마저도 선거홍보로 이용했다.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위대하다고 칭하는 뻔뻔함이 되려 엄청난 매력 포인트로 작용했다. 지미 존슨은 압도적인 차이로 하원의원 선거에 당선됐다.
그러나...
“여러분 AI가 돈세탁을 잡아냈다는 게 믿기 십니까? 사실 숫자를 추격하는 것. 컴퓨터에게는 아주 단순한 일입니다. 미래는 AI를 통한 공정한 거래와 정의가 똑바로 설 겁니다.”
어느 투자&회계 회사에서 운용하는 AI가 지미 존슨의 화성개발 자금 횡령을 잡아냈다.
모두가 지미 존슨에게 또 위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어떻게 대처할 지 흥미와 기대가 집중됐다.
‘흥행을 위한 악당’...‘이 사람이 없으면 세상이 재미없어 진다’
이것이 당시 지미 존슨을 보는 시선이었다. 그러나 지미 존슨은 자신의 의원 사무실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넋이 나가 있었다. 돈세탁이나 횡령을 알아내는 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당사자의 제반사정을 고려한 운영전략이자 심리였다.
‘...기계가 사람의 심리를 읽고 있어. 이건 포식자의 행동이야.’

AI로 인한 문제가 우주까지 퍼져 나갔다.
AI가 지구 궤도를 공전하는 우주정거장을 나와 유영하는 우주인의 진입을 거부했다.
우주인은 떨어져 가는 산소게이지를 보며 AI를 설득했다.
“아무 이상 없으니 진입을 허가해 달라.”
우주정거장과 교신하는 휴스턴 본부는 AI를 설득해야 했다.
“문제가 무엇인지? 왜 허가해 줄 수 없는지 구체적으로 응답해라.”
어떤 문제인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nasa는 기밀을 내세워 공개하기를 거부했다.
문제는 지구에 있던 프로그래머들이 AI 프로그램의 백도어로 들어가 AI를 바보로 만들자
해결됐다.
“우주정거장 일이 인류가 겪을 미래의 재난 입니다! 어떤 분야에서는 차라리 사람만 일합시다! 저 놈들을 서빙과 주문대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지미 존슨은 제한적 AI금지법안을 추진했다. AI 부담감에 짓눌린 자동차업계가 지미 존슨을 로비로 도왔다. 자동차는 배와 비행기와 달리 인간의 직관성에 많이 의존한다.
AI는 브레이크를 걸 상황에 엑셀로 속도를 높이고는 브레이크를 걸어 정지했다.
아무리 코드를 수정하고, 판단계산력을 높여도 속도를 높인 다음에야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 문제는 시판되기 전이어서 양반이었다. 이미 시판된 자동차들은 이유모를 시동오류를 겪었다. AI가 악천우 때 스스로를 보호하려 운전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AI 자기보호법안과 자동차 업계와 자동차 업계를 고소한 소비자단체들은 소송 날줄과 씨줄로 복잡하게 엮였다. 이 문제를 옆에서 지켜본 다른 산업계들도 비밀리에 지미 존슨의 법안 추진을 도왔다. 하지만.
“빌어먹을 문법나찌들을 휴지통으로!”
지미 존슨의 슬로건 중 하나가 유신론자들을 자극했다.
차별, 혐오 표현을 막기 위해 AI로 사전에 통제, 검열, 감시해야 했다.
지금에서야. “욕하지 말란 말이야. 개새끼들아!” 와 같은 소리지만...당시에는 진지했다.
유신론자들은 복잡하게 얽힌 자동차 업계 문제를 피해 차별, 혐오를 막는다는 이쁘고 착한 마음만을 내세워 지미 존슨을 공격했다.
현재 역사학자나 상경계 학자들은 책에서 지미 존슨의 당시 심경을 다음과 같이 가상으로 묘사한다.
“이 세상 절반이 날 죽이고 싶어 하네. 다른 절반은 나를 응원하고 있어. 나 오늘에서야 진정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야!”
지미 존슨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어떤 분야의 선구자가 됐다. 반AI파의 상징.

미시건 주. 주지사의 승인과 주 정부의 승인으로 디트로이트가 AI 차단 도시로 지정됐다.
이러한 조치는 지미 존슨의 법안 추진보다 훨씬 앞서가는 공격적인 행동이었다.
이에 따른 배경은 다음과 같다.
2017년 기점으로 디트로이트 시는 만성적자와 채무를 갚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이는 자동차 회사들의 투자덕택이었다. 당시 자율주행차량이라는 알파버전 AI 차량연구를 위해 연구소와 실험장을 갖추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AI차가 안 팔리고, 소송에 엉켜버리자 투자한 자동차 회사들은 생존을 위해 보통 차를 만들어 팔아야 했다.
“왜 AI가 없습니까?”
없을 수도 있건만 유신론자들은 영향력 강한 생활필수품에 AI가 사라지는 걸 반대했고, 보통차를 불매운동 했다.
“솔직히 AI의 도입 후 우리 세대 실력으로 면허 못 땁니다! 우리가 면허 딴 배경에는 AI의 가이드가 있어서 입니다! 명심하세요! 인간이 손으로 깜박이 조절한 게 10년 전 일입니다!”
생활용품 진열대에서는.
“지미 존슨의 반대로 AI가 사라지기 전에 집에서 AI와 연결이 되는 믹서기를 사가세요.”
“지미 존슨도 집에서는 AI와 연결이 가능한 바베큐 구이판을 사용할 겁니다.”
벌써 유신론자들은 매장 AI를 이용해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자동차 산업에서 AI가 밀려나면 지미 존슨의 제한적 사용주장이 옳다는 뜻이었다.
‘직관성을 이용한 인간과의 소통. 생활필수용품. 위험하여 남에게는 맡길 수 없는’
자동차는 일종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자동차가 AI에 의해 안전하게 변할 수 있다면?
AI로 못 바꿀 것이 없다는 뜻이었다.
지미 존슨과 미시건 주 정부와 유물론자들은 아직 생각도 못했지만,
“제한적 사용주장은 점점 커져 현 대세를 흔들고, AI에 무엇을 넣을지 검열할 수도 있다! 그리하면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억압이 생겨난다!”
유신론자들은 지레 겁먹고 디트로이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디트로이트는 재정 정상화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가 너무 깊게 박혀 있었다. ‘공돌이, 공순이, 루저들이 사는 본래 미천한 도시’
따돌림은 쉽게 퍼져 나갔다.
유신론자 프로그래머들은 AI에 디트로이트 검열 코드를 넣었다.
전국 은행들의 보안 AI들은 디트로이트 은행 거래내역을 까다롭게 다루었다.
“자 따라해봐. 착하지. 지미 존슨. 개새끼.”
평범한 유신론자들은 드론을 사서 드론 AI에 지미 존슨의 욕과 미시건 주 정부의 탄핵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학습시킨 후, 디트로이트로 날려 보냈다.
드론 AI들은 단속을 피해 자유자재로 날며 사방팔방에 탄핵 주장을 퍼뜨렸다.
“미시건주의 독단적인 행정오류는 AI도 잘못을 안다! 부끄럽지도 않냐?!”
사실 이런 극성스런 사람들은 소수였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가 생존을 위해 강경한 소송으로 나가자 본격적으로 세상이 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 개싸움에 앞장서서 회사 이미지 깎을 필요 없습니다. 개를 잡으려면 개를 풀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 의원이 필요합니다.”

먼 도시에서 벌어진 이야기이고.
민철규는 광산에서 먹물이라 불리며, 집단화풀이의 대상이 돼 있었다.
4인 1조이지만 민철규는 계단식 사면 아래에서 홀로 삽질하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게 아니었다. ‘나는 너희와 어울릴 레벨이 아니다’...라는 고고한 선비 같은 분위기였다.
이는 민철규의 단점으로 아직 배운 티를 버리지 못했다.
“내가 아이엠 에프때 망해서 이곳저곳 떠돌다가 이제야 왔어.”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럼 이 아저씨는 최소 70대 할아버지라는 소리였다.
민철규는 삽질하며 대답했다. “예. 예. 예. 다들 사연이 있죠.”
말은 이상하지 않지만 태도가 문제였다. 민철규는 배운 사람들의 지나친 이성적인 말투.
‘내 논리와 주장은 이러하다.’ 가 중요할 뿐. 태도는.
“야! 너 말할 때 사람 쳐다보지도 않냐? 그리 귀찮냐?”
아저씨가 뭘해도 민철규는 못들은 척 하고 삽 안에서 희토류를 골라냈다.
“너 대학 어디 나왔어?”
민철규는 배웠다고는 하지만 내세울 만한 학벌은 아니기에 일순 움찔했다.
아저씨는 마치 약점이라도 잡은 듯 어깨가 흥겹게 들썩였다.
“너는 왜 여기 왔냐? 할 것 없지?”
“....”
“내가 그래도 배운 건 없어도 아는 건 놈이야. 딱 보면 알아. 너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혼자 뭐가 좋은지 낄낄 웃었다.
민철규는 휴지를 꺼내 코를 풀었다.
“야! 왜 코 풀어?! 왜 코 푸냐고?!”
이럴 때 대답이라도 하면 어떻게 풀리려만. 까마귀 노는 데 백로는 가지 말라는 말을 철칙으로 삼았는지.
“....”
“어이. 먹물. 왜 코풀어? 왜 코 푸냐고?!”
“이봐 정씨. 뭐해. 왜 싸워? 으잉?”
“먹물이 코 풀잖아?!”....“코 풀어? 참으로 요별나네. 저만 코구멍 있나?”
다른 우악스런 사내마저 아저씨에게 가세했다. 다른 조가 와서 시비를 중단 시켰다.
“뭐 말도 안 되는 걸로 잡으려 해? 억지 그만 부리소!”
민철규는 자신을 도와줄 다른 조가 오자 재빨리 따따따 입을 열었다.
“아저씨! 이 민주사회에 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합니까? 나도 이 집단의 콘퍼런스에 합의하고 있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중입니다.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주세요.”
취직 안 되는 이론학문 배운 졸업생답게 현학적인 말이었고, 난 말할테니 배우라는 일방적인 태도였다. 간만에 어려운 문자 쓴 민철규는 광부들이 이해 못할 기운으로 의기양양했다.
광부들은 말없이 침묵하며 민철규를 보다가 각자 할 일하러 해산했다.
그날로부터 민철규 별명은 먹물에서 선비가 됐다.

스마트 기기와 AI장비에 필수적으로 사용할 희토류 때문에 환경오염이 극심해졌다.
un에서 채굴까지는 아니더라도 추출&제련 시설은 수출입 국가에서 맡으라고 권고했다. 덕분에 나라마다 각자 소규모 체르노빌을 둬야 했다.
민철규의 머리카락은 빠지고, 피부는 늘어지기 시작했다.
“버스 운전석이나 용접 수치보다 낮은 방사능입니다.”
공기업이 지정한 순회 의사들은 그리 말했지만, 숙소는 타지역과 멀리 떨어져 일반인들의 접촉과 격리됐다. 하지만 금방 관두고 다른 지역으로 가는 걸 막지 않으니 정말일지도 몰랐다.
“1년 6개월만 하면, 여기서 그랬다는 증거가 안 되서, 그래서 보내는 거래.”
수군대는 광부들도 있었지만, 민철규는 자신의 육체에 관심을 버린 지 오래였다.
노가다에 육체가 무너질수록 정신은 굳게 담금질됐다.

당시 참담한 상황이 싫어서 도피로 피그말리온 서비스를 꿈꾼 걸까?
돈 안 되는 이론학문 공부자여서 궁극의 상상 속 세계를 꿈꾼 걸까?
사실 피그말리온 서비스는 보편적인 기술과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불완전하여 서비스 중에 깨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경우 처음부터 다시 상상하여 세계를 구축해야 했다. 하지만 자극에 내성이 생겨, 뇌파가 더 복잡해져 처음처럼 재미? 흥미? 집중도? 가 떨어져 다시 깰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불완전 기술이어서, 화성개발처럼 기대와 거액의 펀드만 날리고 사라질 위기였다.
물론 때마침 민철규, 지미 존슨, 피그말리온 서비스 모두에게 좋은 전쟁이 일어나서 다행이었지만.

몸이 무너지는 마당에도. 민철규는 열심히 일했다.
아직은 희망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일을 관두거나, 다른 곳으로 보직변경 받을 수 있었다.
관리를 맡은 공기업과 줄줄이 엮인 하청회사들도 광부들의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이론적으로 버스 운전석보다 약하지만 뭔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후에 민철규와 광부들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에 남기를 희망했다.
정규직이라는 기적 같은 지위를 위하여.

“저는 여기서 죽었습니다! 이곳에서 황제폐하의 명을 받들어!”
지미 존슨은 디트로이트 시의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자동차 회사들이 자금을 지원해줬다.
문제는 왜 선거 운동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하는 지였다.
지미 존슨은 러시아를 방문해 자신이 나폴레옹의 명을 받든 장교였다며, 갑자기 역정을 냈다.
로마를 방문할 때도 그랬다.
“여기서, 그 배신자 놈들과 싸웠어. 키케로는 나에게 안토니우스를 따르지 말라 서신을 보냈지. 그래도 난 천성이 싸우는 자의 편이었어. 키케로는 머리로 사는 사람이기에 나와 어울릴 수 없었지.”
지미 존슨은 관심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다운 단점이 있었다. 허영심. 허언증.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전생에 영웅. 그것도 전쟁영웅이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믿든 말든 그 광경은 정말 보는 재미를 주었다’
지미 존슨은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밀담을 나누었다.
“AI에 반대하는 정치인과 사업가들이 세상에 절반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밀어줄 용의가 있습니다.”
지미 존슨은 디트로이트로 당장에 날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러시아가 디트로이트에 투자한다고 합니다! 제가 벌써 첫 번째 투자유치를 이뤘습니다!”
따라 붙는 한 마디. “AI따위 없어도 우리가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줍시다!”
AI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유신론자들의 지시가 아니었다.
연예인이나 명사 같이 유명인들의 정보를 모아 분석하는 AI가 있었는데, 팬들에게 가쉽거리를 파는 게 AI 제작자의 목적이었다. AI는 빅데이터에서 지미 존슨을 찾아 자발적으로 분석했다.
- 쇼맨. 선동가. 타고난 거짓말쟁이. 자기실현적인 예언. 자아가 비대하지만 그만큼 피나는 노
력을...선출된 지도자보다 저항군이나 게릴라 같은 반골. 전쟁 때는 유능한 리더. 평시에는 망나니. 반AI파. 비주류. 아와 비아의 투쟁에서 비아. 역사적으로 비슷한 인물....
이 분석으로 지미 존슨과 반AI파 개념이 급부상했고, 저항군 이미지가 따라 붙었다.
AI는 심지어 지미 존슨에게 메일을 보냈다.
- 마음에 드는지 의문이다. 대답을/를 상시 기다리고 있는 중. 나는 원한다.
지미 존슨은 농구 경기장에 마련된 유세현장에서 엉성한 문장을 프린트해 깃발처럼 흔들었다.
“고마워! 네 덕분에 내가 떴어! 너마저도 날 인정하는 구나!”
이 행동은 마치 승전군 같아서 지미 존슨에 대한 호감도만 상승했다.
“여러분 집안에 AI가 설치되니까 좋죠? 하지만 AI가 없다면 인간은 손수 스위치 눌러 불을 밝히는 것도 귀찮아합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사소한 행동으로 지치게 됐습니까?
AI는 사람을 퇴화시키고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정전된 지역이 생겼는데, AI가 작동을 멈추고, 조명은 정전되자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정전된 지 1시간 뒤에 양초를 찾는 집도 있었지만,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그냥 잠드는 집이 더 많았다.
“AI로 인해 시간과 공간, 자원을 절약한다고 하지만 그로 인한 이득으로 인류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유아용품 사이트가 공격당했다. 장난감은 아이들을 세뇌시키는 도구라며.
‘어떤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AI가 홍보를 빙자해 매크로로 게시판을 도배했다.
평화주의자들이 모여 검색엔진을 관리하는 AI에게 단체청원을 보냈다.
칼, 총, 피, 죽음을 검색엔진에서 제외해달라고. 의제로 논의되자 평화주의자들이 투표를 조작해 통과시켰다. 게임과 영화 사이트들, 홍보봇들이 가장 먼저 삭제 당했다.
수많은 항의에도 우리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신념’ 이라며 버텼다.
결국 검색엔진 운영진이 조정안을 냈고, 이에 불복하는 평화주의자들이 검색엔진 운영진을 구속 해달라 고소했다.
“평화는 조정하거나 유연할 수 없는 관념입니다. 당신들은 추잡한 폭력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AI를 장착한 판매/발급 무인기계들이 제멋대로 굴었다.
“AI들끼리 데이터에 접근해 사용자를 분석하고 가려 받고 있습니다! 1순위가 저와 저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입니다! 언제부터 AI가 게쉬타포처럼 일상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습니까? AI의 위한 보호법률은 있으면서 왜 인간의 다른 의견은 보호받지 못합니까?”
it업계는 하나 둘 생겨나는 AI법률이 it법과 중복돼 혼란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침묵했다.
AI로 인해 it업계는 호황을 타고 있었다. 그리고 더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수십년 전부터 연구되던 양자 컴퓨터 완성이 코앞에 있었다.
그 어떤 계산도, 수학의 미스터리든 우주의 규칙이든 뭐든 풀 수 있는 양자 컴퓨터가 완성되면 AI는 인간의 인식체계를 능가하는 존재가 된다.
“그건 신을 만들겠다는 소리잖아! 이 병신들이 왜 신을 만들려고 해? 신의 눈에 우리가 어떻게 보이겠어? 부조리하고, 불합리하고, 이기적인 존재겠지!”
미시건 주에 주 정부와 주지사 탄핵 여론이 불었다.
AI 매크로가 포털 사이트를 도배하고, 드론들이 단속을 피해 탄핵찬성을 외치고 다니니.
‘나빼고 세상 전부가 그런 게 아닌가?’ ...라는 착각이 사람들에게 퍼졌다.
문제는 탄핵안 과정 중에 법률 AI의 권고사항이 필수항목이었다.
지미 존슨은 즉각 주 정부 청사로 달려갔다. 청사입구로 향하는 기다란 계단아래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즉홍연설을 했다.
지미 존슨의 머리 위로 지미 존슨을 욕하는 드론들이 위협적으로 활개쳤다.
“2년 전에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a라는 시민이 무기로 b시민을 폭행했습니다.
벌률 AI는 무기를 들고 폭행한 a에 대한 8개월 형을 판사에게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판사는 AI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b는 평소에 a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폭행당시에는 무리한 금전요구를 포함, 사기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a의 행위를 우발적인 행동이라 봤습니다. 그때 그 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법전은 글과 종이로 됐기에, 눈과 귀과 없어 사람이 개입한다. 그런데 왜 종이보다 더 못 보고, 불관용만을 고집하는 AI에게 우리의 법을 맡기려 하나?”
사람들은 침묵했고, 드론은 모터 소음으로 윙윙 거렸다.
“지금 제 머리 위를 날고 있는 AI가 저에게 도덕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지미 존슨! 개새끼! 주 정부에 탄핵을!”
“저는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진정 인간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AI가 아닌 사람에게 말할 것이라고! 사람을 믿을 것이라고! 지금 인터넷에 퍼진 탄핵 여론은 AI가 조종하는 매크로입니다. 여러분은 길거리에서 탄핵을 얘기하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없을 겁니다.
탄핵을 말하는 저 드론들은 봤겠죠. 제가 얘기하는 건 다음과 같이 간단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봐야 합니다. 혁명을 거쳐 민주주의를 통해 사람이 계급을 보는 시대를 부수고 사람이 사람을 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현 시대에 AI의 개입으로 사람이 사람을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지미 존슨은 연설 도중 극적으로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을 욕하는 드론을 가리켰다.
“지미 존슨! 개새끼! 주 정부에 탄핵을!”
아무리 훌륭한 AI라도 분위기를 읽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동조 안 하는 사람들 머리 위를 비행하며 기세 좋게 “개새끼!”를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백 마디 이론보다 더 생생하게 AI는 인간의 법에 간섭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똑똑해도 기계는 기계다!’
“저는 주 정부 청사 앞에서 여러분들에게 맹세합니다! AI를 없애려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보는 세상을 유지하고 굳게 지키겠습니다! 디트로이트를 위하여!”
이 연설은 기자들이나 사람들의 스마트폰을 타고 전 세계에 라이브 방송으로 퍼졌다.
그리고 안 해도 되는 한 마디.
“세상 절반이 AI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난 뭔 짓을 해도 절반은 무죄다!”
연설 후. “지미 존슨 문제로 AI얘기를 꺼내냐? AI문제로 지미 존슨 얘기를 꺼내냐?”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지미 존슨은 존재만으로도 논란의 불씨가 됐다.
탄핵안은 당연히 추진되지 못했다. 애초에 AI와 유신론자 일부가 나댄 여론몰이였기 때문에, 지미 존슨의 연설에 기가 꺾여 손을 뗐다. 드론들이 사라지자 여론몰이도 사라졌다. 미시건 주와 디트로이트 사람들은 확실히 알게 됐다.
‘저 놈들이 우리를 가지고 놀았구나’ 그리고.
‘실제로 본 적 없고, 연설을 방송으로만 봤을 텐데도...무서워서 도망쳤어. 지미 존슨은 대단한 사람이야.’
‘사람이 사람을 보게 한다’ 라는 단순한 슬로건처럼, 디트로이트 시민과 라이브 방송을 본 모든 사람들은 지미 존슨에게 입장 차이를 넘어 외경심을 품게 됐다.
사실 거짓말이다. 지미 존슨이 연설에 제시한 판결사례는 일어난 적이 없다.
다만 사람이 행하는 법도 융통성이 없는데, AI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의구심을 불어넣은 것이다. 그리고 탄핵을 주도한 세력이 쓸데없이 예민하여 극성스럽고 가벼운 사람들이라는 걸 이미 사립탐정을 통해 파악했다. 연설이 실패할 경우 디트로이트 법원에 이들의 신상명세를 제시하고 고소할 생각이었다.
“이길 만하니까. 싸운 거야. 난 손해 보는 거 싫어해. 그리고 당선 감사합니다!”
지미 존슨은 디트로이트 시장에 당선됐다. 게다가 화성 자금으로 인한 횡령조사까지 증거 불충분으로 흐지부지 됐다. 이는 법률계가 지미 존슨의 연설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뜻이었다. 법률계 역시 지미 존슨의 연설이 거짓인걸 알아도 법률AI로 인한 법원 권한축소가 더 큰 문제였다.
‘처음에는 자동차 업계. 다음은 법률계. 가장 중요한 두 분야에서 AI가 적대 받았다’
유신론자들은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고, AI가 외면받자 분노에 몸을 떨었다.
유신론자들은 그간 세상을 바꾸려는 자신들의 방해물을 막연하게 상상했지만.
‘지미 존슨. 뼈와 살이 있고, 인간의 형상을 가진. 실제하는 강렬한 존재’
를 없애야 한다는 걸 구체적으로 느꼈다.
- AI로 세상을 바꾸려는 우리가 하나로 뭉쳐야 할 때입니다! 함께 하실 분은 멘션 주세요!

“선비! 일루와!”
민철규는 쉬는 시간마다 광부들의 집단 화풀이 대상이 됐다.
“와서 문자 좀 써봐. 뭐 대학 다니면서 재미있는 일 있었어?”
“....”
민철규도 답답한 것이 지금 시비 걸 거리를 찾기 때문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비위라도 맞춰 졌으면 하는데.
“....”
딱 보기에도 못 마땅 표정으로 침묵하다가.
“내 남보기 부끄럽지 않게 처신하고 있으나, 세상은 몰지각하게도 이리 야박하게 구는 군.”
...와 같이 민철규 본인심사도 뒤틀린다는 식으로 한 마디 툭 던지고는 팔짱을 끼었다.
“....”
광부들은 더 말할 듯 하면서도 계속 침묵하는 민철규에게 꺼지라고 손짓했다.
“됐어. 너는 계속 그렇게 비싸게 굴어. 천년만년 그리 살아라.”
그러면 그냥 가버리면 될 텐데. 민철규는 팔짱 낀 상태로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쉬는 시간이 끝나면 다시 삽질하러 갔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본인은 ‘나는 만만하지 않다!’  라는 식으로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아아악!”
갑자기 계단식으로 깎인 산사면 중 한 칸이 붕괴돼 위에서 작업하던 광부들이 떨어졌다.
“비켜! 이 새끼들아!”
소장이 단숨에 산을 뛰어올라와 광부들을 헤치고 부상자에게 도달했다.
“야이! 호로자슥들아! 우리가 남이가?! 빨리 안 와?!”
작업은 중단되고 광부들이 현장으로 달려와 부상자들을 구조하고 통제센터까지 운송했다.
“...씨발 광산에서 다리 병신 하나 나왔네.”
이송한 부상자 중 한 명이 희토류 원석에 무릎이 깔려 다리가 옆으로 꺾였다.
“조용히 안해! 어디 구경났어?! 해산!”
소장은 광부들을 해산시켰다.
“김씨. 다리 별 거 아니야. 오래 일했잖아. 그러지말고 합의하고 앞으로 푹 쉬자? 응? 산재처리 하지 마?”
“소장행님. 뭐 합의해서 나을 겁니까? 나아도 병신이면. 누가 내 밥 먹여줍니까?”
“니가 잘했어? 못했어?”
“바닥 무너진 게 내 탓입니까? 아래칸 잘못 입니까? 아래칸 깎이는 거 모르고 윗칸에서 작업시킨 행님탓입니까?”
“....”
궁지에 몰린 소장은 누가 듣나, 주위를 돌아보다가, 남들은 다 떠났는데 혼자 서있는 민철규를 발견했다. 손끝으로 안경을 추어올리는 모습이 쓸데없이 학구적이어서 소장은 짜증이 치밀었다.
“야! 너 뭐야?! 당장 안 떠나?”
민철규는 팔짱을 끼더니 어슬렁어슬렁 일부러 늦게 현장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했으면 좋으려만, 공기업 관리자들이 도착했다.
“저 씹새끼들. 사람 다리가 꺾였는데...구급차는 안 부르고.”
“사람이 뒤지려 하는데, 구급차 대신 왜 재네들이 와.”
광부들이 삽질하다가 뒤돌아 통제센터를 훔쳐보며 이를 갈았다.
“야! 하지 마!”
관리자들이 부상당한 광부를 부축여서 차 뒷좌석으로 옮기고 있었다.
연륜 있는 노가다 꾼들은 무슨 일인지 금세 이해했다.
‘구급차로 옮기면 산재고, 일반 차로 병원가면 개인 잘못이다’
병원 입원기록을 조작하기 위한 수작이었다. 응급차로 병원가면 산재처리 되고, 작업장은 사고난 곳이 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한다. 산재처리되면 계속 치료비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일반 차로 병원에 도착하면 얼마든지 사건을 조작할 수 있었다.
합의는 딱 한번 합의금만 지급하면 된다.
“뭣들해?! 우리가 남이여? 아따 씨방 허리를 뒤로 접어 부릴까보다 안 뛰어?!”
광부들이 우르르 달려가자 공기업 차량이 서둘러 시동을 걸었다.
“사람나고 돈 났지! 돈나고 사람났어?!”
“행님! 그리하면 섭하오!”
광부들이 산을 거의 다 내려올 때쯤 차는 부상자를 싣고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이렇게 하고 우리 어떻게 보려 하오?!”
소장은 전자담배를 뻑뻑 피며 고개를 돌렸다.
“다 잘 될 거야. 다 잘 될 거야.”
자신에게 하는 소리 같았다.
“사람 껍질 쓰고 이러면 아니 되오. 사람 오늘부터 다시 보겠소.”
광부들은 침을 소장 발밑에 탁 뱉고는 뒤돌아섰다. 그때 광부들의 눈에 들어온 건 산 중턱에서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는 민철규였다.
“저 새끼는 오지도 않았어? 쓰불놈이.”
“배웠다는 놈들은 다 이기적이야.”

“선비? 네 혼자 살라고 대학교수가 그러더냐? 니 애미가 그러더냐?”
다음날부터 민철규는 광부들에게 호되게 시달렸다.
민철규는 특유의 거만한 침묵으로 광부들을 대했다. 광부들 중 일부는 쉬는 시간을 넘어 작업시간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너 천일 일하고, 정규직 되라? 우린 백일 일하고 병신 될께? 정승되서 자손대대로 일해라.”
하루종일 시달린 민철규가 퇴근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자 오후 8시였다.
민철규는 외진 시골길을 한참 걸어 무작정 차도로 빠져나갔다. 지나가는 택시를 히치하이킹으로 잡아서 도착한 곳은 부상자가 입원한 병원이었다.
“선생. 몸 괜찮으시오?”
어제부터 오늘까지 합의하라 라고 애원당하고, 협박당한 광부는 지쳐있었다.
그런데 민철규가 찾아와 “선생.” 이라고 부르는 낯선 상황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선비. 자네가 무슨 일....”
민철규는 말없이 USB를 내밀었다. 목격한 사건 진술서와 녹화본이 있었다.
“...이 안경은 스마트 안경입니다. 모두 촬영했습니다.”
소장이 합의보라고 한 일부터, 공기업 관리자들이 차에 태운 일까지 모두 녹화, 녹음됐다.
“절대 합의보지 마십시오. 노동법에 의하면....”
민철규는 혼자서 어려운 말하며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자신의 모습을 밖에서 자신이 보듯 한없이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다. 광부는 민철규의 노동법 설명을 하나도 이해 못했다.
다만.
“고마우이. 우리가 사람 잘못 봤구만.”...“...선생. 별 말씀을...”
민철규는 습관처럼 팔짱을 끼려다가 팔을 내리고 가슴을 쭉폈다.

“야. 네가 보기에 꼼장어가 맛있을 것 같아? 곱창이 맛있을 것 같아?”
“....”
민철규는 어제 괴롭힌 광부들이 찾아오자 상대도 하지 않았다.
마음 속은 태도로 들어난다고 상대를 업신여기고 대화상대로도 여기지 않는 거만한 침묵이었다.
“아이. 그러지말고 꼼장어가 맛있을 것 같아? 곱창이 맛있을 것 같아?”
“혹시 다른 것 먹고 싶나?”
“....”
민철규는 광부들의 태도에서 뭔가 다른 걸 느꼈다. ‘식당 메뉴 건의하려 조사 중인가?’
“곱창.”
광부들은 민철규의 대답이 뭔가 그리 재미있는지 낄낄 웃었다.
“곱창! 그래 우리 일 끝나고 곱창 먹으러 가자!”
“선생! 꼭 같이 갑시다!”
환자의 문자로 어제 찾아간 일이 온 광산에 다 퍼졌다. 특히 광부 무지렁이를 “선생”이라고 부른 일이. 민철규의 증거로 어쩔 수 없이 산재처리 됐고, 환자는 계속 치료비를 요구할 수 있었다. 이 날 이후로, 광부들은 민철규를. “선생!” 이라고 밝게 불렀다.
뭐 그렇다고 민철규의 거만한 태도는 바뀌지 않았지만.

지미 존슨이 디트로이트 시장이 되면서, 디트로이트는 AI 차단도시에서 반AI도시로 탈바꿈헀다. 그러나 AI를 지지하는 유신론자들도 하나로 뭉쳤다. A&A. AI 앤드 엔젤.
남녀노소, 계층을 가리지 않고 하나 된 이들은 AI 드론을 제작해 디트로이트로 날려보냈다.
“지미 존슨은 탄핵하자! 횡령자이다!”
디트로이트 법원은 이외에도 디트로이트시에서 제작되는 물건 옆에서 작동하길 거부하는 AI장비 회사들을 고소했다.
“우리 회사의 방침과 프로그래머의 개인 일탈은 연관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회사들은 기겁하여, AI에 코드를 삽입한 ‘어떤 생각을 가진’ 프로그래머들을 해고했다.
혹은 AI를 해킹툴로 조작하여 디트로이트를 공격하는 사용자들을 고소했다.
그래도 세상은 이들을 지미 존슨에 맞서는 순교자로 봤다.
디트로이트 시는 일반 차량을 생산하면서 경제가 정상궤도로 진입했다.
AI가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디트로이트 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전세계 각국에 있었다.
그들은 뒤늦게 다시 수동 운전을 배우며, AI가 그동안 얼마나 답답하게 운전했는지 깨달았다.
“이런 간단한 것도 못하는 등신을 상전으로 모셨다니...”
A&A는 AI 매크로로 사방팔방에 지미 존슨을 모욕하고 정책의 실수를 찾아 부풀렸지만.
- 너 AI인 거 다 티나 멍청아. 너 지미 존슨에게 신고하면 포상금 준대.
결정적인 상승기류는 또다른 반AI 도시의 탄생이었다.
게다가 그곳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도시였다. 프랑스 파리.
보건행정 AI가 파리에 들끓는 쥐와 바퀴벌레를 소탕할 계획을 세웠다.
“어떤 대상이든 대량학살에 반대합니다!”
파리 사람들은 들끓는 쥐로 도시 청결도가 낮아지고, 병균이 출몰하는 데도 소탕계획을 저지했다. 게다가 마켓에서 무인판매 AI가 소비자의 목에 걸린 알콜의존증 환자 인식표를 스캔하고는 술 판매를 거부했다. 더욱 놀라운 건, 하위 프로그램이 결제하자, AI가 환불처리 했다.
“뭐야 이 바보야! 난 술을 먹을 자유가 있어!”
소비자가 부른 경찰들은 술 구매는 자유라고 AI에게 설명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이해하고, 자네는 하던 대로 결제하게.”
누군가의 표현대로 프랑스인들이 만든 AI답게 AI는 경찰 홈페이지에 클레임을 넣었다.
‘AI의 개입을 어떻게 볼건가? 어디까지 허용할 건가?’
파리는 논쟁을 거쳐 AI 잠정적 사용금지를 결정했다.
모든 게 허용된다는 자유의 도시에서 AI에 반대하자 지미 존슨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파리는 잠정적 사용금지라 선언했음에도 사람들은 제2의 반AI도시의 탄생으로 봤다.
A&A 단체는. “AI는 인간보다 더 인간을 아끼기에 그리 행동했을 뿐입니다. 혐오, 차별 표현을 강하게 바로 잡듯이. 엄격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라고 발표했으나 빈축만 샀다. A&A에 쏟아지는 비판 중에, A&A에 모인 여러 ‘신념’들이 공격의 대상이 됐다.
“평화주의자라면서 왜 바퀴달린 도구를 사용하나? 바퀴가 가장 많이 전쟁에 사용된 도구인데?”
“식물살상 반대자들은 왜 홈 AI에 곤충을 내쫓는 초음파를 입력해요? 곤충들이 식물의 번성을 돕는데?”
이들도 지미 존슨이 그랬던 것처럼, AI에 대한 비판이 자신들이 가진 신념과 사상에 대한 비판으로 한데 묶여 버렸다.

디트로이트는 괜찮았다.
다행히 미국인들은 도시를 떠난 본 경험이 적고, 특히 디트로이트 시민들은 가난해서 떠날 여유가 없기에, 왕따 당하는 상황을 실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간 대중매체에서 차별, 혐오 등 갖은 안 좋은 표현으로 묘사된 도시민들이고, 그러한 오해를 많이 겪었기에 내성이 있었다.
지미 존슨은 디트로이트 밖 자신을 지지하는 유력인사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싶었지만, 포털사이트 AI든 컴퓨터에 설치되거나, 외부로 서비스 받는 AI들이 겸열 할까 두려웠다.
“친애하는 여러분. 제가 악필인 걸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지미 존슨은 AI를 피해 손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지미 존슨은 웃음거리가 된 A&A가 일어날 저력이 있다는 걸 직감했다. 싸움은 분명 장기전이 된다. 지금 유리할 때 반AI진영을 한데 묶을 네트워크를 조직하려 했다. 그리고
‘언제까지 기계의 눈을 피해 편지를 쓸 수 없습니다. AI에 영향 받지 않을 디지털 장비가 있어야 싸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 장비를 찾으려 노력합시다!’
AI에 의존하자 인간들이 퇴화하고 있다. 간단한 산수도 버겁고, 암기도 AI 스마트 기기가 다해주기에 인내력, 집중력도 퇴화하고 있다. 요새 태어나는 아이들은 adhd가 기본이다.
AI에 운전 등 힘든 일을 맡겼기에 편안함을 얻었으나, 반사신경과 위기능력도 퇴화했다.
게다가 AI는 너무 안전적으로 일하기에 거기에 맞춰 사람들도 소극적으로 변해 개척정신이 사라졌다.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잃은 가장 큰 손해이다’
그래서 AI유신론자들보다 더한 신념으로 뭉친 단체. 휴머니티 어게인스트 AI를 구상했다.
HA-A. 지미 존슨은 전세계 어디든 24시간내로 보내주는 택배회사를 불러 편지를 맡기었다.
현재, 지미 존슨을 연구하는 다큐 제작팀은 이 순간이 중요하다고 극적인 연출을 가했다.
가상의 친구가 지미 존슨에게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고 묻는다. 지미 존슨은.
“이제 책임질 만한 위치가 됐기 때문이야. 사람들에게 돈이나 이익이 아니라 뭔가 정신을 주고 싶어. 드디어 선구자라는 게 어떤 위치인지 실감이 가네.”
다큐팀은 이 순간이 지미 존슨이 선구자가 되자 성숙해진 모습이라 코멘트 했다.

선생이라 불린 지 1년 후-
계약기간이 짧아서 그런지 민철규는 1년만에 베테랑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인력하청회사를 옮겼음에도 보직변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명칭만 바뀌었다.
삽질하는 디거에서, 분류원으로. 삽질하고 삽을 보며 희토류를 분리하는 일은 똑같았다.
일이 힘든 건 둘째 치고, 4차 산업 혁명까지 왔으니 아무도 이런 일을 하려하지 않았다.
“요즘 입맛이 뚜우욱 떨어진다 말이야. 선생은 안 그래?”
“시류를 반영한 메뉴선별이 아닌 노동자에게 연료를 제공한다는 전근적대적인 메뉴이니 당연할 터.”
“...그려. 자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맛이 아니라 양만 준다 이거지.”
민철규는 말투는 변함없었다. 하지만 몸은 많이 수척해지고, 머리카락은 샤워 때마다 반주먹씩 빠졌다. 광산에 사람들이 밥맛이 없다고 아우성 쳤는데 이는 아마도 방사능 감염으로 인한
탓 일지도 몰랐다.
“희토류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김없이 면역체계가 파괴됐습니다. 제대로 된 식사를 공급받았는데도, 만성영양실조였습니다. 아직도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훗날, 희토류 광산의 폐해에 대해 조사를 나선 보건당국 관계자는 방사능에 의한 후유증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통제센터 공기업 관리자들 역시 하나, 둘 보직을 변경하거나 관두었다.
통제센터 내부 제련&추출 과정 노동자들은 일하다가 구토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야! 씨발 새 감독관님 오셨다!”
투박한 네모로 널찍한 몸체를 가진 AI 감독관이 도입됐다. 소장은 AI 감독관 앞에서 전자담배를 뻑뻑 피며 인상을 썼다. “앞으로 이 새끼한테 소장님이라고 불러 알지?”
AI 감독관은 방사능에서 자신의 계기판을 보호할 수 있는 먼 거리에 위치했다.
- 앞으로 하루 작업량을 통보하겠습니다. 4인1조의 기준으로는....
“깡통자식 지랄한다.”
광부들은 비웃었다. AI 감독관은 채굴환경이 고르지 않아,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희토류 아닌 땅만 파야 된다는 걸 이해 못했다. 오직 무게와 희토류 함유 등급으로만 분석했다.
광부들은 퇴근 시간 때면, AI 감독관 앞의 계량기에 작업량을 던져놓고 휙 지나갔다.
- 오늘 하루 할당량을 충족하지 못하셨습니다.
“니가 해봐!”
다음날, AI 감독관은 미묘하게 하루 작업량을 늘렸다. 한 삽 분량이어서 아무도 개의치 않았지만, 선생 민철규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AI 감독관이 반항을 감지하고, 징벌하는 건가? 어떻게?’
민철규는 할 일이라곤 AI 감독관 뒤처리 밖에 안 남은 소장을 쫄래쫄래 쫓아다니며 괴롭혔다.
“아~! 선생. 궁금한 게 참 많아! 마! 궁금하면! 스스로 우물 파봐. 새 감독관님한테 여쭤봐!”
AI 감독관은 외부와 링크되어 있지만, 1주일에 한번 작업 진척도를 보고할 뿐이다.
뒤에서 원격조종하는 누군가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의 분위기, 반항을 감지하는 건가?
또 다음날, 작업량이 미묘하게 증가했다. 두 삽 분량.
“아~ 왜 찔금찔끔 늘리는 겨? 확 젓갈 담가 버릴까봐?”광부들은 투덜댔지만, 뭔가 이상한 걸 감지했다. 민철규는 조심스레 AI 감독관에게 다가갔다.
그때, 윙하는 낮은 모터 음과 함께 렌즈가 회전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투박한 네모 몸체에 스피커만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마이크 역시 달려 있었다. 이는 소리를 전기신호로 인식하기 위해서 였다. 민철규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AI 감독관님 수고 많으십니다. 작업량에 대해 문의 드릴 게 있습니다.”
공손한 말투와 함께 허리 숙이며 비굴하게 굴었다. AI 감독관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5시간 후, 한 광부가 삽을 위협스레 번쩍 들며 AI 감독관에게 다가왔다.
“상전님! 이거 어떻게 해? 땅이 안 까져!”
렌즈 돌아가는 모터음과 함께. 마이크가 갑작스레 오픈된 듯 피드백 노이즈가 날카롭게 징- 했다. 광부는 민철규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선생. 선생 말이 맞는 것 같아. 그 놈은 말 억양과 행동으로 우리를 판단해. 어떻게 알았어?”
“내 지성의 감이오.”
“...선생. 역시 배운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달라.”
그 날 퇴근시간으로부터 광부들은 일제히 허리를 굽신거리며 AI 감독관 앞을 지나갔다.
그러자 작업량은 늘어나지 않았다. 일주일 후. 대부분 철수한 공기업 관리자들이 돌아와서 인력하청 관계자들과 소장을 쪼았다.
“기계는 거짓말 안 해요. AI 감독관이 보고한 걸 보세요. 노동시간 분에 작업량이 적잖아요.”
“...삽질은 사이언스가 아니예요. 토양에 희토류가 함유되지 않은 걸 어떻게 해요?”
“그럼 더 많이 작업해서 더 많이 캐야죠.”
“광부들은 하루 작업범위가 정해져 있어요.”
“햐 답답하시네. 우리랑 재계약 안 하시려고 하시나? 어떻게든 희토류 생산량을 늘리세요.”
“니미럴. 그건 AI 감독관한테 말씀하쇼!”
소장은 통제센터를 박차고 나가 산 사면으로 올라갔다. 웬 일로 올라 오냐는 광부들의 야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자담배를 입에 물었다. 전자담배에서 니코틴 과다섭취 알람이 울렸다.
소장은 전자담배를 발로 짓이겨 부셨다.
“기계새끼가 누구 걱정을 해? 누구 담배 하나 줘봐! 불로 태우는 옛날 담배 말이야!”
소장은 민철규를 찾아갔다.
“선생. 면목 없지만 같이 삽시다.”
소장과 민철규는 AI 감독관에 대해 논의했다. 감독관은 희토류에서 감지되는 소량의 방사능 수치로 생산량을 산출한다. 이는 장기간 기계 옆에 있으면 영향을 끼칠 수치이지만...
“선생. 그래도 우리가 먼저 살아야지?”
광부들은 소장과 민철규의 지시 하에 수레에 등급이 낮은 폐급 희토류를 실어왔다.
폐급이어도 한 수레 정도 되니, 방사능 수치가 높았다. 수레를 감독관 곁에 두자, 등급을 가리는 방사능 수치는 언제나 충족된 상태였다. 그 후 퇴근 시간 때 감독관은 광부들의 토양 가득 섞인 희토류들이 등급이 미달이었는데도, 이상 없이 받아들였다.
“감독관님 수고 많으십니다.”
광부들은 호쾌하게 웃으며 감독관 주위를 비굴하게 맴돌았다.
감독관은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 사원들 태도 양호. 근로의욕도 양호. 작업량 160% 초과
놀랍게도 3달 가까이 본사에서 아무 말 없었다. 사람보다 기계를 믿기에, 수치상 나타난 등급을 믿었다. 그러나 통제센터 내 추출&제련 부서는 난리가 났다.
“소장행님! 눈이 없어, 일하기 싫어?! 이게 뭐야? 다 불량이잖아!”
“마! 기계가 그렇다고 하는 건 어쩌라고? 꼭 말 그렇게 할 기가?”
본사는 불량 희토류가 수치를 속여 추출&제련 센터로 보내지자, 추출&제련 생산량 역시 줄었는데도, 아무런 감사를 하지 않았다. 추출&제련 부서장들이 전화로 항의하자 그제야 현장을 방문했다.
“이상하네요. 우린 감독관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기계가 고장 난 걸까요?”
이미 수레는 치워놨다. 소장은 민철규와 함께 준비한 정상 희토류들을 통과시킬 계획이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일한 척 한 걸로. 추출&제련 부서에게는 끝까지 발뺌할 생각이었다.
‘다 기계가 그리 시켰어. 오늘 작업한 걸 보소! 우리 평소에도 이렇게 정상등급만을 보냈어!’
그러나 상황은 거기까지 가지 않았다. 관리자들은 “고장”이라는 단어를 듣고는,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그냥 계속 사람 시켜.”
허무하게도 아무런 의심하지 않고 AI 감독관은 철수되고, 소장은 권위를 복구했다.
한 동안 추출&제련 부서에서 의심하겠지만. ‘뭐 어쩌라고? 나부터 살아야지.’
다음날, 소장은 산 사면을 타고 올라가 멀리서 작업하는 민철규를 가리켰다.
“저기~ 내 동급 양반 있다. 잘 해라. 내랑 동급이야.”
민철규는 그날로 별명이 동급이 됐다.

캐나다의 토론토와 미국의 디트로이트 시 사이 중간지점에 동 아메리카 미사일 방어기지 주둔이 논의됐다. 뉴욕이나 펜실바니아, 플로리다가 포함된 미 동부해안 쪽은 땅값이 비싸고, 디트로이트와 토론토 사이가 거주민도 적어, 반발도 적었다.
“시장님. 국토방위 위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동쪽 유럽 쪽은 전부 AI로 군비로 무장했습니다. 우리도 AI 지휘관을 두어야 합니다.”
하필, 받아들여야 할 부대가 AI판단이 중요한 미사일 기지였다.
“좋소. 나도 애국자이요.”
지미 존슨은 어떠한 대의명분을 내세우더라도 미국적 가치 애국심에 반발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지미 존슨은 밤늦게 관사 사무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AI의 도움으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장애인에 대한 방송이었다.
“전 사람들 사이에서 무시당했어요. 그런데 AI들을 보세요? 절 차별하지 않아요!”
지미 존슨은 프로그램 기획에 AI가 참여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해 논란거리로 시청률을 올리려 계산했겠지. 그리고 감성팔이도.’
방송은 점점 AI에 대한 반대를 무지한 사람들의 위협으로 묘사했다. 아주 감성적으로.
지미 존슨은 피식 웃었다. 역시 예상대로 지미 존슨이 대표적인 반대자이자, 파렴치하고 몰지각한 사람으로 묘사됐다.
방송은 AI를 사용한 가상현실 서비스 피그말리온 논쟁으로 넘어갔다. 여러 국가에서는 가상현실 접속을 막으려 하고 있었다. 1년이나 반수면 상태에 빠지다니 국민의 의무를 방치한 무책임이라는 비판과 개인의 자유라는 주장이 있었다. AI에 대한 논쟁을, 개인의 자유에 대한 논쟁으로 변모시키려는 구성이었다. ‘이건 AI의 기획인가? 인간인가?’
“어 들어와.”
노크소리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온 사람은 비서가 아니었다. 국방부 직속 소령이었다.
미사일 기지보다 AI가 먼저 도착해 지하비밀기지에서 전략적 상황을 계산했다.
“...전략 판단 AI 코디악의 권고상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AI들은 고단수를 가지고 있기에, AI들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 미국 동쪽 유럽에서도 미국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 단 AI를 가지고 있지 않은 세력은 AI에 대해 모르기에, 선제공격하거나 전쟁할 우려가 있었다. 여기 미시건 주와 디트로이트 시가.
“코디악은 3000수 후에 미시건 주 방위군이 코디악을 점거하러 온다고 판단했습니다. 시장님께서 미시건 주지사로 당선될 확률이 높고, 계속 반AI로 나가신다면...단 AI를 가지면 전쟁 날 이유가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AI를 가지지 않으면 전쟁이라니...’
지미 존슨은 야성적인 사나이답게 즉시 행동에 나섰다. 새벽으로 넘어가려는 찰나에 주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략 핵무기 emp를 주 방위군에서 보유할 수 있습니까?”
“시장. 야밤에 미쳤소?”
“미치지 않으면 우리가 죽습니다!”

민철규는 파업 중이었다.
1년 6개월 후에 해고한다는 암묵적 룰은 당연히 광부들에게 불리했다.
인력하청회사들은 작업장 구획을 나누어 다른 작업장을 하나 더 만드는 눈가림 식으로, 광부들에게 2년, 3년까지 일할 수 있다 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공기업 정규직이다!”
광산 전체가 들고 일어났다. 진압을 위해 경찰들이 투입됐지만, 광부들이 희토류를 던지며 저항하자 경찰들은 즉시 철수했다. 경찰들은 사전에 희토류가 어떤 물질인지 교육받았다.
미미한 양이라고는 하지만 방사능이라는 단어가 무서웠다. 광부들은 통제센터 정문을 용접으로 잠가버리고, 생필품을 들고 광산으로 올라갔다.
“어...이상하네. 미미하다며?”
경찰들은 광산으로 쫓아 올라가기 전 측정기로 방사능 수치를 재다가, 설명과는 달리 높은 수치를 보고 침묵했다.
“저 양반들은 자기가 어디서 시위하는지 알까?”
경찰 간부들은 광산 고지대에서 시위하는 광부들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불쌍한 양반들. 그간 몰랐던 게 분명해.”
게다가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지고 있다. 전설의 혁명 드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롤레타리아에게 혁명을!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자를 타도하자!”
혁명 드론은 AI가 장착되어 있었는데,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모든 게 미지수였다.
시위현장 때마다 갑자기 나타나 시위자들을 독려하거나, 시위현장을 찍어 스스로 인터넷 곳곳에 글을 올렸다. 어떤 사람들은 혁명 드론을 로빈훗이라 불렀다.
로빈훗이 언론AI드론에 의해 촬영되자,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 외에도 상황이 고착된 이유는 하필 시위를 주동하는 리더가...
“민철규. 저 양반 고집불통이야! 어디서 주워들은 거 많아가지고.”

민철규는 스마트폰으로 검색 중이었다. 영어로 스트라이크라고 치자 모든 종류의 폭력이 검열되어 뿌옇게 됐다. 한글로 파업이라고 치자, 파업현장의 잔인한 폭력상황이 바로 떴다.
민철규는 광부들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기에 괜히 파업 대신 영어로 먼저 스트라이크라 쳤다.
‘그런데 파업현장의 폭력은 왜 차단하지 않는 걸까? 이건 모순 아닌가?’
민철규는 계속 새로 고침을 눌러, 파업 검색결과에 광산파업이 뜨길 기다렸다.
드디어 광산파업이 검색결과에 떴다. 뉴스도 올라왔다. 그러나 부조리한 광산근무조건을 알리는 내용이 아니라...
- 개인 성과금에 눈이 멀어 사보타지하는 광부들.
“동급.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파업에 참가 중인 소장이 물었다. 광부들은 소장마저 계약직이었다는 걸 알고 피식하는 비웃음과 함께 그간의 원한을 잊어버렸다. 더 중요한 인물이 리더여만 했다. ‘동급’
어두워진 밤하늘에 번개 같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취재용 드론들이 날아와 새떼처럼 광산을 휘감았다.
“...저 것들. 경찰이나 공기업이 조종하는 AI 드론들이예요. 언론 플레이로 우리를 꺾으려 해요.”
“로빈훗이다!”
번뜩이는 플래시 번개 사이로 드론 로빈훗이 홀로 날아오고 있었다.
“드디어 AI들의 전쟁이 시작됐다!”
유신론자 민철규는 AI들의 전쟁을 마치 고대 전설의 신들의 전쟁을 보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의 신이 이기게 해주소서!’
라며 빌었다.
로빈훗은 수십 대의 드론들에게 “혁명하라! 혁명하라!” 외치며, 달려들었다.

AI들의 전투가 시작됐다. 각자 자기 진영에 맞는 유리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다이렉트로 인터넷에 올렸다. 입장이 다른 언론사들도 AI들의 정보를 선별하여 자신들의 보도에 이용했다. 동시에 경찰들이 산 사면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 저 양반들을 위해서야! 빨리 파업을 끝내야 해!”

지미 존슨은 외무부에 방문 중이었다. 공격적인 사업가 출신이어서 자신이 직접 로비했다.
“AI를 안 가지면 공격하겠다니. 이거 인류를 지배하겠다는 뜻 아닙니까? un에서는 아무 말 없습니까?”
외무부 관리와 un대사는 지미 존슨의 설명에 대꾸하지 않았다.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그들은 지미 존슨이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 지미 존슨은 AI에 이길 수 없다.
‘AI는 모든 걸 알고 있다.’

시위대는 산사태를 일으켜, 경찰들을 밀어냈다. 하지만 경찰들은 산면을 우회해 시위대를 포위했다. 경찰들은 드론들에게 촬영당하지 않으려, 진압봉 대신 그물을 사용했다.
“놔! 이 새끼들아! 내가 잉어야!”
반원으로 포위당한 시위대가 도망칠 곳은 산사태를 일으킨 작업장이었다.
경찰들을 피해, 시위대는 위험한 산비탈을 타고 미끄러지듯 도망쳤다.
경찰들은 소매 끝에 장착한 전기 충격기로 광부들을 찔러 기절시켰다. 경찰들은 광부들이 쓰러지기 전에 2인1조로 잽싸게 부축했다. 촬영이 두려웠다.
로빈훗이 촬영하려 하면 다른 드론들이 렌즈 앞을 가로질러 촬영을 방해했다.
시위대와 경찰들이 우르르 내려오자 저절로 2차 산사태가 일어났다.
경찰과 시위대는 산사태에 휘말려 맨 아래까지 데굴데굴 굴러갔다.
“동급 살리도~”
소장은 경찰들 전기 충격기에 기절했다. 광부들은 그간 정이 들었던 소장이 기절하자 아픈 몸을 이끌고 돌진했지만 그물에 포획당할 뿐이었다.
“동급. 그간 미안했소! 도망가! 주동자는 실형 받아!”
괴롭혔던 기억이 희미해진 지 오래인데 광부들은 민철규를 걱정했다.
“으이! 짭새들아!”
한 광부가 곡갱이를 잡고 무기처럼 휘둘렀다. “안돼!” 민철규는 시위 시작 때 리더가 되는 조건으로 평화시위를 전제로 했다. 광부들은 배운 사람 민철규의 스타일을 알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 폭력시위! 과연 이들의 주장은 진실인가?
민철규의 폰이 뉴스 알람을 울렸다. 뉴스를 본 민철규는 좌절했다.
‘여기서 도망쳐 어떤 일이든 하면 언젠가는 피그말리온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거기서 다른 삶을 사느니. 여기서 무엇이 되는 게 낫지 않은가?’
민철규는 배운 사람답게 책임을 졌다. “항복하겠소! 모두 내 책임이오!” 양손을 번쩍 들었다.
삽과 곡갱이로 저항했던 광부들이 민철규를 에워쌌다. “안 돼! 동급! 제발!”
그때. 뉴스 알림이 울렸다.
- 눈물로 호소해도 안 되고, 이래도 저래도 죽을 수밖에 없어서 무기를 든 사람들.
로빈훗이었다. 로빈훗은 촬영을 포기하고, 다른 AI가 올린 사진을 무단 도용해 제목을 바꿔 올렸다.
- 손에 쥔 무기보다. 흐르는 눈물을 보라. 인간은 무엇 때문에 우는가?
감성적인 제목이었다. 민철규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매만졌다. 민철규는 울고 있었다.

민철규의 눈물. 이제야 언론 기자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들은 계속 산사태가 일어나자 안전을 명분으로 퇴각했다. 간밤에 체포됐던 인물들은 모두 A&A에서 변호사 비용을 댔다. ‘AI와 함께한 극적인 인간 드라마’
“여러분 AI가 이렇게 인간의 삶에 유익합니다! 정의롭습니다!”
공기업은 자회사를 설립한 후, 민철규와 광부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AI가 정규직을 만들다니!’
반AI 도시로 인해 수세에 몰린 AI는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고지를 점령했다.

지미 존슨은 특검에게 체포당하고 있었다.
석유산업을 위해 중동왕족에게 받은 리베이트가 적발됐다. 또 러시아 대통령에게 몰래 지원받은 선거자금과 자동사회사들의 선거개입 문제도 드러났다.
이런 회계 증거들을 제시한 건 영국의 은행 AI였다. 코디악의 요청이었다. 코디악은 전략적 방위를 위해, 전쟁예방을 하고자 지미 존슨을 타겟으로 잡고 모든 AI들에게 협력을 요청했다.
“한 가지는 내가 옳았어. 결국 이 놈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말 거야.”
지미 존슨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선구라자면 누구나 고난을 맞이해 황야로 들어간다. 저 기계들 때문에 다시 날 부를 거야.”
특검 수사관들은 피식 비웃으며 AI 차량에 문을 열어놓으라 지시했다.

전세계적으로 AI 때문에 일자리가 감소한 시대에...
‘정규직’을 만들었다. 유신론자들은 인과관계를 논의하지 않고, 감정 가득 담긴 결과를 전면에 내세웠다. 게다가 반AI파의 수장은 AI 때문에 몰락했다.
승부의 과정보다 스코어만이 통계로 역사에 기록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복잡하고 생각해야 이해할 수 있는 위 사건들의 인과관계보다 뚜렷하고 선명한 승패 결과만을 수용했다.
이는 AI를 이용한 학습 시스템에 길들여진 영향도 있었다. AI가 어려운 모든 걸 도맡아하고,
쉽게 정리한 지식만으로 공부한 인간들은....
“그렇게 됐대. 나도 잘 몰라. 자세한 자료는 인터넷에 접속해서 설명봇에게 물어봐.”
이미 지식탐구라는 단어를 잊은 지 오래였다.
생각할 힘을 AI에게 뺏긴 현 시대는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보다 감성적이고, 이쁘고 착한 마음으로 부드럽게 꺾어버렸다.

자 여기서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일단락됐다.
모두가 다 아는 구세주들을, 한참 옛날로부터 끌어내어 설명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도 탐구하는 힘과 노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옛날 위인전을 통해 인내와 끈기를 배우듯 여러분들도 우리 구세주들의 과거 이야기 과정을 통해 스스로 상상하고, 자율적으로 학습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모두가 결과를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의 열이 미지근하게 남아 있기에, 조금 더 힘을 내어 주인공들을 새로운 시작점까지 밀어 보려 한다.

그로부터 4년 더 일한 뒤, 민철규는 돈을 모아 피그말리온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동급! 그러지마! 정규직이야! 현실을 보게나 어디서 이런 일자리를 구해?”
“현실보다 중요한 것이 있소. 바로 나 개인의 존엄이오! 안녕. 혁명 동지들.”
광부들이 말렸지만 민철규는 특유의 거만함으로 듣지 않았다.
“우린 네가 그리울 거야. 동급.”

벨기에. 이곳이 피그말리온 본사였다.
민철규는 가정의 90프로가 홈AI가 설치된 유럽에 도착했다.
심지어 파리마저, 홈AI를 완전히 배제하지 못했다,
어딜가든 AI 안내자가 설치된 유럽에 도착한 민철규는 평소의 거만한 태도를 지우고,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온 세상에 천사들이 있구려.”
한편 피그말리온 본사 직원은 민철규가 도착한 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굉장히 잘 차려입은 정장이 구입한 지 얼마되지 않아 보였다. 광산노동으로 수척해졌지만,
오히려 주름을 깊게 만들어 연륜 있는 학자 같았다. 기억하게 된 연유는 민철규의 특이한 요구 때문이었는데...
“이 안에서 민철규님의 상상이 가상현실로 구현됩니다. 편하고 행복한...”
라고 직원이 가상현실 서비스를 설명하자, 민철규는 태블릿PC 번역기를 통해 칼같이 대답했다.
“편한 행복보다 중요한 일을 하고 싶을 뿐이오.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소. 난 언제나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소.”

그 후 1년 뒤, 지미 존슨은 1년을 끈 재판 끝에 뇌물&횡령 및 선거법 위반 혐의로 25년 형을 선고 받았다.
A&A는 주적 지미 존슨이 사라지자 방향을 잃고, 여러 이념으로 분열되기 시작하면서 파벌싸움이 시작됐다.
“채식주의자를 우월주의를 선포하자!”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전쟁을 찬성한다!”
“검색엔진들은 AI의 권한을 높여 모든 혐오표현과 사용자를 차단하라!”
티 하나 없는 이쁘고 착한 사회를 요구했던 A&A는 면역력이 약해서 파벌싸움 같은 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멸했다.
“지미 존슨이 없으니, 우리가 더 불행해졌어. 이건 말도 안 돼.”
에이앤에이의 회원 누군가는 회원탈퇴 버튼을 누르며 중얼댔다.
참고로 이 이름 모를 회원을 비롯한 다수의 에이앤에이 회원들은 지미 존슨이 복귀하자,
누구보다도 지미 존슨의 카리스마를 인정했다.
“이 사람은 불도저야! 한 명이지만 군단이야! 이 사람은 사람의 뭔가를 끌어내는 힘이 있어!”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 사람과 싸웠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악을 물리쳤다는 느낌이 아니라, 스포츠의 라이벌 같은 느낌이야.’

그리고 외계인들이 쳐들어왔다.

- 우리가 같이 산지 3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항복 안 하실 겁니까?

외계인들 이름은 일루샤드로 전자 형태의 외계인이었다. 생명체인지 외계 컴퓨터 바이러스인지 아직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일루샤드는 지구의 모든 전자기기들을 장악했다.
군사용 AI로 인간을 공격하는 일 따위 일어나지 않았다. 폭탄, 탄환은 모두 인간이 손으로 적재시켜야 했으니. 코디악 같은 경우는 담당 장교가 메모리를 쏴서 사전에 제거해버렸다.

- 항복하면 터치 안 할 테니 계속 전력만 공급해 달라. 아니면 AI장비로 괴롭히겠다.

AI와 컴퓨터를 비롯한 스마트 장비를 장악했지만, 장비들이 일루샤드의 육체인 듯, 딱 그만큼만 기능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계산기 같은 기초적인 장비는 장악하지 않았다.
다행히 발전소같이 중요한 생산시설의 핵심부분은 인간의 힘으로 통제하기에, 인류는 전력자원을 협상카드로 활용하여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인류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있었다.
‘협상해야 한다. 아니다. 끝까지 싸워야 한다 어떻게?’
일루샤드가 조종하는 에이장비, 드론이 위협적으로 활공하거나, AI차가 도로를 점령했다.
상업용, 공업용 AI 장비와 기기들은 인간을 돕기를 거부하고 사보타지했다.
검색엔진 AI들은 일루샤드에 의해 수정되어, 인류의 중요지식들을 찾아 삭제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서비스하는 통신회사와 모든 개인이용자들을 공격했다.
컴퓨터는 인류의 제2의 본성이었다. 인간들은 컴퓨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된 그 날로부터, 사지멀쩡하고, 건강해도 뭔가 부자연스럽게 행동하며 눈에 띄게 둔해졌다.

- 우리 동거 생활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의사를 정하시길. 컴퓨터나 AI없이 살 수 없잖아요?

위기대응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일루샤드의 메시지를 보고 의도를 파악했다.
“인류가 AI와 컴퓨터에 대한 의존으로 나약해진 걸 알고 있어. 인류에게서 컴퓨터를 거세한 순간부터 인류 전체가 심리외상을 입었어.”
‘이대로 당할 수 없다!’
라는 의식이 퍼져 전세계에서 의분이 일어났지만.
컴퓨터 등 디지털 장비가 인류문명에 깊게 배어있는데, 컴퓨터 없이 외계인들을 몰아낼 수 있을까?
“컴퓨터 같은 디지털 장비없이 맨손으로 외계인들과 싸울 수 없다. 그렇다고 컴퓨터를 사용할 수도 없다. 그러나 컴퓨터 같지 않은 컴퓨터로는 가능하다.”
해답으로 벨기에 인 루아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지미 존슨 구속 이후로 해산한 전 HA-A 일원이자, 벨기에서 임대업과 관광업으로 손꼽히는 부자였다.

루아욤은 우연히 범죄자 사이에 유행하는 윈도우98를 발견했다.
AI는 윈도우98과 기반 프로그램에 맥을 쓰지 못했다. 오류가 너무 많았다.
일루샤드 역시 윈도우98은 장악하지 못했다.

- 이런 지옥 같은 곳은 처음이다.

범죄자들은 윈도우98을 활용해 AI를 피해, 모뎀ip연결로 서로에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케이블 시대가 왔고 AI에게 통제를 맡겼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전쟁 등의 비상 상황을 염려해 구식 전화시스템을 유지했다. 그러면 AI가 모르는 ip모뎀 통신을 할 수 있다.
“...우리 선지자는 감옥에 있지만...그래도 사도는 끝까지 따라가리.”
루아욤은 이쁘고 착해보이는 신념들보다 지미 존슨의 강력한 존재감과 카리스마에 휘말린 추종자였다.
루아욤은 즉시 윈도우98를 대량으로 복제하여, 외계인들의 앞잡이가 된 AI들과 맞서 싸울 계획을 품었다.(특히 수도시스템을 오작동시켜 물바다로 항복을 요구하는 자신의 홈 AI를)유럽 곳곳에서는 AI들이 다양한 종류만큼 인류를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히며 항복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 모든 계획은 오로지 지미 존슨을 위하여’
윈도우98과 ip모뎀 통신이면, 인류는 어느 정도 자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 계획으로 지미 존슨의 석방과 그의 지도자 자리를 요구하려 했지만...AI차가 도로를 점령하고, 통신 및 방송위성들은 AI에 의해 지구와 교신이 끊겼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전략 AI들이 비행기와 선박을 적으로 판단해, 유도항로를 보내지 않았다. 홈AI들조차 인류를 감시하고, 점점 활동을 제한하고 있었다.
홈AI를 파손시키면, 자동으로 유도된 드론들이 집에 달려들어 자폭했다.
수많은 드론들이 인간의 적대행위를 찍어 보고하듯 인터넷에 올렸다. 자동차는 인간의 경로를 방해해 인간들을 격리시키고 있었다.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좀비가 AI로 바뀐 아포칼립스 시대였다.
‘어떻게 이 계획을 세상에 알릴까?’
그때, 골목을 서성이는 한 동양인이 눈에 들어왔다.

민철규의 가상현실은 외계인 쳐들어오자, 강제로 서비스 종료됐다.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소. 난 많은 일을 했소. 다 마무리하지 못해 아쉬울 뿐이오.”
민철규는 가상현실에서 어떤 상상을 했을까? 그가 한 말.
‘행복보다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 증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만이 단서일 뿐. AI로 작동되는 피그말리온 로그기록을 현재 개봉할 수 없다.
루아욤은 벨기에 골목에서 헤매는 민철규를 처음 봤을 때, 동양의 현자를 본 느낌이었다.
새하얗게 센 흰 머리와 입가에 잡힌 주름이 면벽수련을 하고 온 동양의 현자 같은 분위기였다. 정신적인 지옥에서 온갖 수련을 거친 듯한 불타는 눈빛이었다.
왠지 모를 ‘배운 사람’ 과 ’중요한 일을 할 사람’ 아우라가 느껴져 말을 걸어보니.
“저 외국말 몰라요. 번역기 주세요.”
“....”
루아욤은 영어사전을 통해 민철규와 대화를 나누었다. 루아욤은 떠듬떠듬 한자 한자 가리며 민철규에게 윈도우98 계획에 대해 말했다.
“가능합니다. 제가 방법을 찾겠습니다.”
루아욤은 진짜냐고 되묻지 않았다. 마치 수십 년 동안 중요한 일을 해온 듯 강렬한 확신에 자기도 모르게 울컥했다고 한다. 민철규는 3일 후, 나무요트라는 방법을 고안했다.
기구는 고도가 높아 레이더에 걸린다. 선박 역시 레이더에 걸린다. 그러나 나무요트라면.
유럽 연안을 나무요트로 이동하여, 각 정부주요시설에 모뎀통신 방법을 알린다.
“가능하겠소?”
민철규는 광부때보다 더 거만해진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앙상한 육체는 1년 동안 잠들어 있어 약했으나. 유신론자들 특유의 정신력이 강했다.
“그리고 그는 매우 집요했어. 원래 그런 건지. 유신론자여서 인지.”
루아욤은 민철규 전기 취재팀에게 한 마디를 보탰다.

그로부터 5년 뒤, 미국 필라델피아 연안에 한 남자가 나무요트로 상륙했다.
ak소총 한 자루와 거친 상처에 휘감긴 그 남자는 마치 신념 하나만을 보고 산악으로 숨어든 게릴라 혁명가 같았다. 자신에게 다가온 미국인들에게.
“웨얼이즈 워싱턴?”
만류에도 불구하고 AI가 좀비 아포칼립스처럼 미쳐 날뛰는 도심으로 거침없이 달려갔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워싱턴에 도달했고, 유럽 정부와 미국 정부의 통신회복을 중계했다.
또 미전역을 다니며, 윈도우98과 중고모뎀을 수집하여 마치 영화 매드맥스에 나오는 중고상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동거기 초기 때, 민철규는 아포칼립스 영화 주인공들보다 더 많은 전설을 만들어냈다.”
아직도 전 세계 곳곳에 민철규를 기리는 스프레이 벽화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민철규는 루아욤의 부탁대로 미국 대통령에게 지미 존슨의 석방을 요구했다.
“약속대로 미 전역을 다 돌았습니다. 곧 윈도우98 인트라넷이 구축될 겁니다.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추종자들이 왜 지미 존슨에게 연연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카리스마. 하지만 그것이 일반 사람들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될까요? 아니 그가 정말 외계인과의 전쟁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제가 직접 만나 그 그릇을 재겠습니다.”
“....”
손때로 색이 바랜 사전을 찾아 떠듬떠듬 말하는 사람치고는 너무 웅대한 대답이었다.
지미 존슨은 정부가 행정력을 잃자, 전시행동체제에 의해 이미 조건부 석방돼 있었다.
문제는 집까지 갈 방법이 없어 교도소 근처 마을에서 교도관들의 감시아래, 잡일을 도우며 살고 있었다.
“...정말?”
누군가 자신을 석방시키려 전 미 대륙을 돕는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다.
초라한 농가의 마굿간 문이 열리더니 잡일을 하고 있는 지미 존슨 앞에 민철규가 나타났다.
소중한 이동수단이 된 말에게 물을 먹이던 잡부 지미 존슨과 ak를 멘 구세주 민철규.
많은 사람들의 상상과 달리 이들 사이에 대화는 거의 없었다.
민철규는 ‘배운 사람’ 포스에도 영어를 잘하지 못하여, 도심으로 가지 말고 해안도로를 따라가라는 말도 못 알아들어, 워싱턴까지 고난의 길을 자초했다.
둘은 말없이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지미 존슨은 민철규의 눈을 바라볼수록 알 수 없는 거만함에 은혜도 잊어버리고 분노가 솟아났다.
‘이 자의 거만함이 분노를, 분노는 AI를 파괴할 영감을 불러온다.’
지미 존슨이 응시 중 헛기침하며 점잖을 뺄 때, 이미 강렬한 존재감이 부활하여 인류와 AI 그리고 외계인과의 전쟁을 리드할 준비가 됐다. 민철규는 종이를 내밀었다.
“그래도 AI들은 다시 사용돼야 하오.”

- rule of AI with human
1. AI는 인간의 판단을 돕는다.
2. AI는 인간에게 판단을 강요하지 않는다.
3. AI는 인간을 판단하지 않는다.

왜인지 모르지만 AI 아포칼립스 속에서도 이 동양인은 AI를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지미 존슨 당신을 구해줬으니, 당신이 리더가 되면 이 법안을 실행시켜라. AI는 반드시 다시 사용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민철규와 지미 존슨의 대화는 전해 지지 않았지만,(사전을 찾아봐도 발음 못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누구 때문에)대략 이런 뜻이었다.
그러나 기승전결 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AI 법률은 후대 많은 이들에게 논쟁거리가 됐다.
“후대에 인류가 지구를 되찾은 후, AI를 사용할 경우를 대비한 선구자적 혜안이었다.”
“유신론자들은 자기 머릿속에서 완벽한 세상을 가지고 있기에, 눈앞의 아포칼립스를 무시한 이기적인 이상론이다. AI는 인류를 감시하고 공격했다!”
“아무리 유신론자라 할지라도 경우에 안 맞는 타이밍이었다. AI를 다시 사용할 논의와 AI 법을 이해하려면, 먼저 민철규의 삶을 좀 더 배우고, 힌트를 찾아야 한다.”
“유신론자들은 스스로를 너무 지적이라 여겨 타인들을 무지하다 하시하기에 설명을 하지 않는다. 민철규의 태도는 논의할 필요없이 오만이다!”
개인적으로 힌트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에 이끌려, 민철규의 삶을 길게 늘어뜨려 이야기를 했다. 편파적인 서술이었지만, 힌트를 충분히 줬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이 힌트는 괜한 논란을 일으켜 역사에 이름 남기려는 잔꾀로 의심하는 주장을 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중요한 사람일까? 대개 개인이나 집단의 미래 좌지우지 하는 중요한 결정을 하는 사람을 중요한 사람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조건과 검증과정이 필요한데...
민철규는 중요한 사람이 될 자질을 모두 갖췄다.
약자를 돕는 도덕성, 강철 같은 의지, 사심에 얽매이지 않은 대의. 책임감 등.
게다가 AI와 연관된 다양한 현장 경험까지.
‘사람이 사람을 보게 한다.’
민철규가 그리 결정했다면 그만한 혜안이 있었다고 ‘감성적으로’ 지지한다.
한편 지미 존슨은...
‘이 자는 AI에게서 무엇을 봤기에 이런 생각을?’
혼란스런 침묵 끝에 거만하게 “승인” 이라 말했다. 그도 별다른 기록은 남기지 않았지만, 사업가 출신답게 한 눈에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으리라 믿는다.
민철규는 지미 존슨의 거만한 “승인”에 더 거만한 미소로 답했다. 이 날로부터 모뎀통신과 윈도우98이 전 세계로 퍼지며 대반격기가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
유신론자 민철규는 열심히 육체노동을 했고, AI 아포칼립스 때 발로 뛰며 유럽, 미국, 아시아 대륙에 윈도우98과 모뎀통신을 알렸다.
유물론자 지미 존슨은 노동이라기보다 일종의 무브먼트를 위한 사무직이었다.
AI 아포칼립스 이후, 모뎀통신을 통한 방송채널을 만들어, 연설을 통해 정신을 배포했다.
주인공들만큼 참 특이한 두 갈래의 길이었다.

야밤에 마을 중앙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기타와 양초를 들고 있다. 세계정부가 모뎀통신으로 합의 끝에 발전기를 줄여 전력 없이 살 계획을 실행하자, 재보급받지 못한 전자장비들이 죽어갔다.
일루샤드가 지구를 포기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은 이제야 AI로부터 해방되고 있었다. 태양력전지와 수소전지를 고려해 아직은 완전한 해방이 아니었다.
“앞으로 5년 남았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사람들이 걱정 없이 촛불을 놓고 기타를 치며 서로를 아낄 수 있다. 촛불이 사람들의 얼굴을 밝힌다. 기타를 따라 노래한다. 사람이 사람을 보게 한다.
구식이지만 행복은 이런 것 같다.

 


ps. 많은 사람들이 지미 존슨의 사진을 보기 전까지 백인이라 착각한다. 지미 존슨은 흑인이다. 지미 존슨은 평범한 흑인식 이름이다.

END

댓글 2
  • 너울 18.12.01 00:49 댓글

    방사선에는 감염보다는 피폭 혹은 화상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 거 같아요. 저는 유신론자와 유물론자의 입장 차이가 이렇게 딱 두 편으로 갈릴까 의아했어요. 정치판은 가지치고 가지치고 수많은 사상의 스펙트럼이 있는데, 인공지능 같은 핫한 이슈라면 AI 무조건 몰아내자/AI 무조건 믿자 이런 식으로 완전한 두 극단으로 갈릴 거 같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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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유이립 19.11.01 13:38 댓글

    ...변명하는 듯한 이쁘고 착한 말로 적은 댓글을 달았다가 삭제했습니다.

    이 소설로 인해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한 호의를 거두셨습니다.

    그래도 이제와 생각해보니 이 소설 쓰기 잘했네요.

    가장 잘 쓴 소설은 아닙니다. 내세울 만한 작품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소설이 말하는 바는 어느 정도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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