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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윤 자동차

2017.01.31 19:4701.31

자동차

– 엄길윤 –

‘빠아아아아아아아앙!’

 커다란 경적 소리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자동차가 때를 맞춰 한꺼번에 경적을 울린 것 같았다. 귀가 떨어져 나갈 듯 아프고 베란다 창문이 흔들릴 정도로 요란한 소리였다. 웅장하게 퍼지는 울림은 한참이나 계속되더니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귀속이 먹먹해지는 걸 느끼고 화들짝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가 채 안 됐다. 짜증이 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왜 한밤중에 경적을 울려 사람을 깨우는지 창문을 열고 고래고래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밖이 조용해지자 다시 자려고 누웠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방금 꾼 꿈이 생각났다. 아내와 세 아이가 위험에 빠진 끔찍한 꿈이었다. 뭔가에 가로막힌 듯 자세한 내용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공포에 질린 가족들의 얼굴만큼은 생생히 떠올랐다. 불길했다. 예사 꿈이 아닌 것 같았다.

 그저 꿈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옆을 더듬었다. 아내가 자리에 없었다. 베개에는 머리를 대고 누운 움푹 들어간 자국만 남았다. 소변이라도 보러 갔겠지. 마음을 추스르며 거실로 나갔다. 화장실은 깜깜했다. 불을 켠 후 안을 확인해 봐도 아내는 없었다. 자꾸 꿈 생각이 났다. 초조한 마음으로 아이들 방을 확인했다. 중학생인 두 아들도 이제 초등학생인 막내딸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보일러실과 창고를 비롯해 베란다를 샅샅이 뒤져봤다. 아내와 아이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안방으로 돌아가 침대 머리맡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먼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 음이 수차례 반복되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히 어린 딸아이에게는 휴대전화를 사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아빠 전화는 받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하지만 아내도 사라진 걸 보면 다 같이 어딘가로 간 게 분명했다. 혹시 애들을 데리고 친정이라도 갔을까? 근래에 다퉜거나 서로 얼굴 붉힌 일은 없었다. 워낙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아내였기에 내가 모르는 서운한 뭔가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염치 불구하고 장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받자마자 툭 끊겼다. 단단히 화가 나신 모양이었다. 이 시간에 처가에 가는 건 폐를 끼치는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동차 키를 주머니에 넣고 성큼성큼 현관으로 걸어갔다. 어떻게 해서든지 아내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신발을 신으려고 밑을 보니 현관 앞에 이리저리 굴러다녀야 할 신발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신발장을 열어봐도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화장실로 뛰어가 욕실화를 찾았지만, 그것마저 없었다. 며칠 전에 빨아서 베란다에 널어둔 운동화도 자취를 감췄다. 집안의 모든 신발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상했다. 쫓아오지 못하게 하려는 아내의 의도일까 의심해봤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다. 아무리 봐도 평상시의 아내는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들하고 같이 사라진 것도 못내 마음에 걸렸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아내가 아무 말도 없이 아이들을 데려갈 리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처가에 가서 확인해봐야 한다. 그곳에도 없다면 뭔가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일단은 차가 있는 곳까지 맨발로 가야 한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차를 세워둔 터라 조금만 참으면 된다. 반소매 티 하나만 걸치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야심한 새벽이라 그런지 여름인데도 몸이 떨릴 정도로 추웠다. 발바닥이 얼음장 위를 걷는 것처럼 시렸다.

 아파트 동의 현관을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앞의 주차 공간에 수많은 차가 선 게 보였다. 근처의 자동차란 자동차는 모조리 이곳으로 몰린 것 같았다. 경비 아저씨는 이걸 제지도 않고 뭐했지? 보나 마나 우리 아파트 오른편에 자리 잡은 임대 아파트 사람들의 소행임이 분명했다. 요즘은 임대 아파트를 살아도 차 한두 대씩은 몰고 다닌다. 방 평수가 적은데다가 주차장도 손바닥만 했던 게 기억났다. 주차할 데가 없었겠지. 반면, 왼쪽에는 평당 4천만 원이 훌쩍 넘는 고급 아파트가 위용을 과시하며 서 있었다. 으리으리한 그곳에다가 차를 댈 용기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워낙 경비가 삼엄해 쉽게 출입할 수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터였다. 하긴, 나도 기가 죽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 나오는 고급 차량이 내 차 옆에 설 때면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지곤 했었다.

 바닥이 너무 차가워 종종걸음으로 내 차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혼자서 차들 앞을 지나가려니 소름이 돋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건들건들 자동차 사이를 헤치고 지나갔다. 차들을 살피며 걷는 와중에 무심코 안을 들여다봤다. 뭔가가 있다는 걸 깨닫고 흠칫 놀랐다. 어두운 차 안에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숨을 죽이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이상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며 다시 걸었다. 얼마 걷지도 못하고 이번에는 두 명의 사람이 차 안에 있는 걸 목격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위화감이 들었다. 이런 새벽에 한 사람도 아닌 여러 명이 자동차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직은 의도적인지 우연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애써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지만 또 다른 자동차 안에서도 사람이 어둠 속에 숨어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이 굳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혹시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인가? 공모해서 나를 위협하고 돈이라도 갈취하려는 걸까?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니면 아내와 아이들이 사라진 것하고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재빨리 주차된 자동차들을 살폈다. 차 대부분에 사람이 탄 상태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돌아가는 일이 심상치 않았다.

 차 옆으로 다가가 창문을 두드리며 여기 무슨 일 있는 거냐고 물었다. 안에 있는 사람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다른 차의 정면으로 가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비친 사람들을 살폈다. 그들도 어둠 속에서 가만히 앞을 응시했다.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몸을 덜덜 떨며 거친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주변을 훑어봐도 이상한 건 보이지 않았다. 차 주위를 돌아다니며 아무리 소리쳐도 사람들은 반응이 없었다. 까닭 없이 불안했다.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때, 옆에 있는 자동차의 조수석 문이 벌컥 열렸다. 분명히 운전석의 남자와 뒷좌석의 두 여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차 안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살피다 비어 있는 조수석이 눈에 들어왔다. 수상했다. 마치 빈자리가 있으니 얼른 타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타면 안된다는 걸 직감했다. 혹시 안의 사람들이 튀어나와 강제로 태우지 않을까 걱정됐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서둘러 내 차로 뛰었다. 사방에서 자동차들의 문이 차례차례 열리기 시작했다. 소름이 끼쳤다.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문이 열린 차를 이리저리 피해 가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겨우 경비실 앞에 세워둔 내 차에 도착했다.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불안해 뒤를 돌아보자 자동차들의 문이 모두 닫혔다. 마치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분이 나빠져 얼른 자동차 키를 찾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분명히 가지고 나온 것 같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다시 돌아갈까 망설이다가 내 차 안에 누군가 있는 걸 발견했다. 도둑이 든 걸까.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뒤쪽으로 접근했다. 상체를 숙이고 운전석 옆으로 와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짙은 어둠 사이로 조수석에 꼿꼿이 앉은 아내의 옆얼굴이 보였다. 가만히 앞을 바라보는 하얀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허겁지겁 뒤쪽을 살폈다. 두 아들과 딸아이가 아내와 똑같은 자세로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숨이 막히는 듯 연방 어깨를 들썩이며 헐떡였다.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쓰는지 아내의 몸이 움찔움찔 거렸다. 아이들의 놀란 눈이 어둠 속에서 유난히 커다랗게 보였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꿈에서 본 것과 비슷한 참담한 모습이었다. 단순한 악몽이 아니었단 말인가? 조수석 문을 왈칵 열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괜찮은 거냐고 소리쳤다. 가족들은 공포에 휩싸인 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왜 있는 거냐고, 그러지 말고 어서 나오라고 화를 내도 소용이 없었다. 모두 고통스럽게 헐떡이며 와들와들 떨기만 할 뿐이었다. 마치 안과 밖이 서로 단절되기라도 한 것 같았다.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어 초조했다. 가족이 위험에 빠진 것만은 확실했다. 아내를 끄집어내려고 손을 뻗다 중간에 멈췄다. 이상했다. 오면서 본 사람들도 그랬다. 자동차 안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혹시 나도 자동차 안으로 들어간다면 아내와 아이들처럼 될지도 모른다.

 혹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해서 주위를 살폈다. 이상하게 변해버린 자동차들 한가운데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으슬으슬해지는 몸을 부여잡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만 갈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112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이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자동차가 없는 아파트 뒤쪽으로 돌아 평소 자주 왕래하던 옆집으로 달렸다. 문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고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낭패감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야 했다. TV를 켜고 뉴스 전문 방송으로 채널을 돌렸다. 화면 가득 자동차의 모습이 잡혔다. 이번에 출시된 고급 SUV인 듯했다. 정면과 옆모습, 도로를 주행하는 모습이 펼쳐지는 걸 보니 광고라도 되는 것 같았다. 조금 기다리니 이번엔 경차가 나타났다. 요새 잘 나가는 최신형 모델이었다. 화면에서는 아무런 글귀도 보이지 않았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신형 경차의 모습만 이리저리 비춰주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려도 마찬가지였다. 수십 개의 채널에서 보이는 거라고는 하나같이 자동차뿐이었다.

 자동차에 사람들과 가족이 갇히고 TV에서는 자동차의 모습만 보인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한순간에 다른 뭔가로 뒤바뀌기라도 한 걸까? 섬뜩해지는 걸 느끼며 얼른 TV를 끄고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 뉴스라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모니터의 검은 화면이 밝아지자 부팅도 없이 사진 하나가 큼지막하게 떴다. 허리가 두 동강 난 사람을 담은 끔찍한 사진이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창을 닫자 또 다른 사진이 떴다. 입에서는 내장이 불거져 나오고, 뒤로는 대변이 쏟아진 사람이 보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닫았다. 갑자기 창들이 빠른 속도로 떠 화면을 뒤덮기 시작했다. 모두 참혹한 모습으로 죽은 사람의 사진이었다. 깜짝 놀라 전원 버튼을 눌렀다. 아무리 누르고 있어도 컴퓨터의 전원은 꺼지지 않았다. 뭔가가 잘못됐다. 두렵다. 손끝이 떨리는 걸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더는 참지 못하고 집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가족이 탄 차로 달려와 안을 확인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못했다. 초조하게 주변을 서성거렸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일단 어둠이 걷혀야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위가 파란빛으로 서서히 물들었다. 먹구름이 가득 뒤덮인 흐린 날씨라 평소보다 날이 밝아지는 시간이 늦어졌다. 오들오들 떨며 차에 기대앉아 있다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사방이 환해지자 두려움이 조금 사그라졌다. 가족을 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차를 살폈다. 안은 마치 밤처럼 어두웠다. 내 기억으로는 창문에 이렇게 짙은 선팅을 한 적이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차 문을 열었다. 날이 밝았는데도 내부는 어두웠다. 가족들의 얼굴과 몸의 윤곽만 간신히 보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에 그림자가 진 것도 아니었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는 햇볕 하나 비추지 않았다. 휴대전화 불빛으로 이리저리 비춰 봐도 차 안은 밝아지지 않았다. 빛은 어둠 속에서 맥없이 사라졌다. 음침한 내부를 바라보고 있자니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얼른 문을 닫고 주변을 살폈다. 다른 차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차 안은 하나같이 어두웠고, 한창 바쁜 아침 시간인데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눈앞의 세상은 전에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안절부절못하다가 뭔가 알 수 있을까 기대하며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갔다. 옆으로 길게 내뻗은 도로도 어딘가 이상했다. 모든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뀐 채 그대로 멈췄다. 자동차들도 도로 한가운데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흡사 사진을 보는 것처럼 사방이 고요했다. 자동차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으며 주변을 살폈다. 어두운 차 안에 사람이 갇혀 움직이지 못했다. 한 명이나 두 명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아무도 타지 않은 차도 있었다. 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아파트 안의 사람들과 같은 행동을 보였다. 공포에 넋이 나간 얼굴 하며 몸을 바들바들 떨거나 헐떡이는 것도 똑같았다.

 하염없이 도로를 살피다가 목적지와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얼핏 보기에는 방향과 남은 거리만 표시되어 있었고, 지명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됐다. 가까이 다가가 올려다봤다. 누군가 손톱으로 지명이란 지명은 모조리 긁어놓았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손톱자국에 피가 맺혔다. 몇십 미터 뒤에 있는 사거리의 이정표도 마찬가지였다. 저 높은 곳까지 어떻게 올라갔을까? 사다리 같은 걸 이용해서 올라갔다고 하더라도 왜 지명을 지운 거지? 사다리를 이용할 정도면 시간이 있었다는 건데 뭐가 저렇게 급했는지 의아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도구도 사용하지 못하고 손으로 긁어댔을까?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 차 터져버릴 것 같았다. 교통안전표지판도 소름이 끼치기는 마찬가지였다. 표시된 그림이 모두 자동차가 사람을 덮치는 걸로 바뀌었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렸지만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다. 아파트 입구 옆의 텅 빈 편의점으로 들어가 신문을 펴들었다. 모두 어제 발행된 것뿐이었다. 어디에서도 이 상황에 대한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가족이 탄 차로 돌아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까와 같은 모습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고통스러워하는 그들을 들여다보는 순간, 차의 모든 문이 슬쩍 열렸다. 놀라서 움찔 물러났지만 이대로 달아날 수는 없었다. 바로 앞에 가족들이 있었다. 조금만 손을 뻗어도 어루만질 수 있다. 어쩌면 팔만 집어넣어 가족을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먼저 제일 어린 딸아이부터 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재빨리 안으로 손을 뻗어 딸의 옷깃을 잡았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 힘껏 팔에 힘을 줘 밖으로 끌어당겼다. 갑자기 움직이지도 못하던 딸이 내 팔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잡힌 팔이 뜯겨 나가듯 아팠다. 황급히 딸의 얼굴을 봤다. 공포로 눈을 치켜뜬 딸이 나를 잡아당겼다. 여자아이의 힘이 아니었다. 성인 남자인 나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발버둥을 치며 손길을 뿌리치려고 애썼다. 딸이 원망스러웠다. 도우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것도 몰라주고 나를 끌어들이려고 한다. 나도 모르게 울컥 화가 치밀어 힘껏 떼밀었다. 뒤로 밀려 넘어진 딸이 오뚝이처럼 곧추섰다. 나를 쥐어뜯으려는 듯 팔을 허우적거렸다. 허겁지겁 뒤로 물러서자 다시 움직임을 멈췄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저러는 거지? 또 가족들은 무엇을 보고 있기에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지옥이라도 보는 걸까?

 가까이 다가가기가 두려웠다. 변해버린 세상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늘은 여전히 시커멓게 찌푸려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보니 가까운 쪽 하늘에 틴들현상이 일어났다. 흔히 빛 내림이라고 부르는 거였다. 웅장하게 내리쬐는 빛의 기둥을 보자 힘이 났다. 마치 나를 응원하는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마음을 다잡았다. 적잖이 놀라긴 했지만 이대로 가족을 포기할 수 없었다. 가장으로서 당연히 아내와 아이들을 구해야 했다. 가족은 언제나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 얼마 후 먹구름이 묘하게 꿈틀거리면서 틴들현상은 사라졌다. 직접 손을 써서 구할 수 없다면 도구를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뭔가 좋은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편의점으로 뛰어들었다. 부산하게 안을 돌아다니다 뒤쪽 사무실에서 알맞은 도구를 발견했다. T자 모양으로 된 긴 유리창닦이였다. 냉큼 집어 들고 가족이 탄 차로 돌아왔다. 이걸 가족들의 몸에 걸어서 하나하나 끌어내면 된다. 혹, 안에서 잡아챈다고 하더라도 바로 빼버리면 그만이었다.

 어두운 차 안으로 유리창닦이를 밀어 넣었다. 이번에는 큰아들의 옆구리에 유리창닦이의 앞부분을 걸쳤다. 이상하게도 허공을 더듬는 느낌이 들었다. 직각으로 꺾인 부분이 아들의 몸에 걸린 걸 확인했는데도 손에서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숨을 죽이며 유리창닦이를 사방으로 휘저었다. 딸아이의 얼굴과 둘째 아들의 다리를 치고 간 유리창닦이는 아내가 앉은 좌석을 건드렸다. 손에서는 공기를 가르다가 마지막이 되서야 좌석에 닿았다는 느낌뿐이었다. 가족이 만져지질 않았다. 긴장감으로 손에 땀이 뱄다. 가족들이 사라지는 과정이라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두려운 마음에 무작정 큰아이의 몸에 유리창닦이를 걸었다. 이번에는 손끝에 뭔가가 걸렸다는 느낌이 왔다. 반색하며 큰아이를 살피다가 하마터면 유리창닦이를 놓칠 뻔 했다. 큰아이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보일 정도로 양이 많았다. 옆에 있던 둘째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얼굴 여기저기에서 솟은 땀은 볼을 타고 흘러 턱에 맺히더니 밑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두 아들의 얼굴이 금세 새하얗게 질렸다. 입에서는 괴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너무 놀라 유리창닦이를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손이 허전했다. 유리창닦이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고 그대로 빠져나왔다. 반동을 이기지 못한 채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이번에도 헛수고였다. 분통이 터지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서 가족을 돌려달라고 소리치며 유리창닦이로 트렁크를 내려쳤다. 쇠를 때리는 느낌과는 반대로 내리친 곳이 고무처럼 움푹 파였다. 동시에 차 안에서 아내의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허둥대며 안을 들여다보니 아내의 얼굴 한가운데가 차와 똑같이 패였다. 공포에 질린 얼굴이 더욱 큰 공포로 파르르 떨렸다.

 숨도 쉬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아내의 참혹한 얼굴을 차마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내가 가족을 구할 수 있을까?

 얼이 빠져 있어 문이 닫히는 것도 몰랐다. 가족이 탄 차가 시동도 걸리지 않았는데 스르르 움직였다. 천천히 아파트 입구로 향했다. 도로로 나가려는 모양이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시나마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제발 가지 말라고 악을 쓰며 자동차를 쫓아 뛰었다. 입구를 통과한 차는 도로로 나가는 길목에서 멈췄다. 어서 타라는 듯 4개의 문이 활짝 열렸다. 가까스로 가족이 탄 차로 달려와 안을 살폈다. 아까와 변함없는 아이들의 모습에 일단 마음을 놓았지만 아내의 처참한 얼굴이 눈에 밟혔다. 이제 아내의 얼굴은 어떻게 되는 걸까? 구하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대로면 어쩌지? 애써 불길한 생각을 떨쳐냈다. 지금은 가족을 구하는 것에 전념해야 한다. 언제 또 저 차가 움직일지 알 수 없었다. 한시라도 눈을 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


오후가 되자 아파트 앞 도로에는 어딘가로 떠나는 자동차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소리도 없이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 안은 어김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모두 어두운 차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자동차가 가는 데로 따라야만 했다.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저 멀리 사라지는 차들을 살피다가 전율이 일었다. 만약 가족이 탄 차가 도로로 나갔다면 마땅히 찾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가족을 영영 못 볼 뻔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잡아야 한다. 여유롭게 차들을 구경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날카로운 것을 찾다가 녹슨 못 몇 개를 발견했다. 반으로 갈라진 시멘트 벽돌도 눈에 띄었다. 못과 벽돌을 집어 들고 가족이 탄 차로 접근했다. 쭈그리고 앉아 벽돌을 망치 삼아 바퀴에 못을 박았다.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게 만들 셈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못 가지고 구멍을 낸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자동차 바퀴는 생각보다 단단해 아무리 못으로 두드려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잠시 궁리하다가 못을 버리고 벽돌을 치켜들었다. 그럴 바에는 아예 자동차 내부를 파괴하는 게 나았다. 설사 바퀴에 구멍을 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굴러가기는 할 터였다. 시동도 걸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보닛으로 손을 뻗다 불현듯 아내 생각이 났다. 자동차에 충격이 가면 그 안의 가족도 똑같이 충격을 받을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을 구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그 생각을 못했다. 벽돌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차가 가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럼 모두를 잃는 거였다. 가장이라면 때로 냉정해져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약간의 희생은 어쩔 수 없었다. 어찌 됐든 가족 전체의 구출이 최우선이었다.

 이를 악물고 차의 보닛을 열었다. 벽돌을 힘껏 들어 올리며 안을 살폈다. 믿기 어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어야 할 각종 부품이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훑어봐도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속이 비었는데 어떻게 움직이는지 의아했다. 설마 다른 차도?

 벽돌을 버리고 아파트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무도 타지 않은 채 방치된 차를 발견하고 얼른 보닛을 열었다. 역시 아무 것도 없었다. 주위의 다른 차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도로를 다니는 저 자동차들도 속이 비어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럼 저것들은 자동차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란 말인가? 처음부터 차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었다는 걸 깨달았다.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이제보니 시동도 걸리지 않은 차가 도로로 나가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였다. 게다가 아무런 소음도 내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가족이 탄 차로 돌아왔다. 다행히 아직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도로 안으로 한 걸음 내딛고,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봤다. 아무리 살펴봐도 저것들은 자동차일 뿐이었다. 저게 자동차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더는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진실과 맞닥뜨리게 될까 두려웠다.


어둠이 오지 않기만을 바랐지만, 어김없이 밤은 찾아왔다. 발을 동동 구르며 반소매 밑으로 드러난 팔을 문질렀다. 날이 한겨울보다 더 추웠다. 두 발의 감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까마득한 어둠이 안개처럼 밀려들었다. 평소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컴컴한 밤이었다. 자동차들은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고 소리 없이 도로를 오갔다. 차의 표면에 반사되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그곳에 자동차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런 괴이한 세상에서 밖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는 게 두려웠다.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자동차뿐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추운 날씨와 급격한 긴장 탓에 몸살이라도 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 쉴 수도 없었다. 내가 없으면 가족을 태운 차가 도로로 나갈 터였다. 사방을 에워싼 어둠을 노려봤다. 눈앞에 꾸물거리는 게 자동차인지 괴물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아주 잠깐이면 괜찮지 않을까? 몇 번이나 자리를 비웠는데도 차는 그대로였다. 아마 가족을 포기하거나 오랫동안 옆에 없으면 떠나는 걸 거였다. 더는 추위를 견디기가 어려웠다.

 금방 돌아오겠다고 소리치며 집으로 뛰었다. 집으로 오자마자 두꺼운 점퍼와 손전등부터 챙겼다. 한 손에 우겨 들고 아이들 방 앞을 지나다가 문틈으로 침대 튜브가 보였다. 이번 여름휴가 때 바다에 놀러 가기 위해 아이들에게 사다 준 물건이었다. 맨바닥에 이불을 깔고 잘 수는 없었다. 매트리스를 끌고 가기도 버거웠다. 허겁지겁 침대 튜브와 공기펌프를 두 손에 나눠 들고 이불까지 어깨에 걸친 후 밖으로 뛰어나왔다. 얼마나 서둘렀는지 이마와 양 겨드랑이에 땀이 흠뻑 뱄다.

 헐떡이며 자동차로 돌아와 가족들이 무사한지 살폈다. 점퍼를 입고 주변을 서성대다 손전등으로 사방을 비췄다. 빛줄기가 어둠 속에서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자동차 안에서만 일어나던 일이 바깥에서도 일어났다. 쓸모가 없어진 손전등을 바닥에 내던졌다.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어둠 속을 두리번거렸다. 불안한 마음으로 어둠을 응시하다 다리가 아파 쭈그리고 앉았다. 온종일 뛰어다니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갑작스럽게 피곤이 몰려왔다. 잦아들었던 추위도 되살아났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오들오들 떨다가 침대 튜브에 공기를 넣어 잠자리를 만들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이불을 덮고 눕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시커먼 하늘이 나를 삼킬 것처럼 소용돌이쳤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침이 됐는데도 으슬으슬한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정신이 들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사방을 살폈다. 하얗게 밝아진 주변은 어제와 달라진 게 없었다. 다행히 간밤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늘은 여전히 시커먼 먹구름으로 뒤덮여 작은 빛줄기 하나 쏟아지지 않았다. 추위에 떨며 가족들의 안부를 확인하다가 잠이 확 달아났다. 차 안의 어둠이 어제보다 더 짙어졌다. 겨우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 심상치 않았다. 가족에게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징조 같았다. 마음이 조급해져 자동차 주위를 하염없이 맴돌았다. 한시라도 빨리 가족을 구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도로에 가까이 다가서자 지나가던 차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화들짝 놀라 인도로 뛰어올랐다. 자동차들이 방향을 바꿔 양옆으로 지나쳤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든 자동차가 나를 들이받으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일단은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도로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가족이 탄 차를 지켜봤다. 차를 분해할까 생각해봤지만, 그럼 얼굴이 움푹 파이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터였다. 잠시 궁리하다 견인차를 떠올렸다. 자동차에 견인 고리를 걸고 들어 올리면 옴짝달싹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견인차도 다른 차와 마찬가지로 이상하게 변했을 게 틀림없었다. 어디서 찾을지도 문제였다. 실망하며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줄을 이용하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의 앞과 뒤에 여러 개의 줄을 단단히 걸고 다시 기둥이나 가로수에 묶어 놓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집 창고에 등산용으로 쓰이는 질긴 줄이 있다.

 바로 집으로 뛰었다. 아파트 동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뭔가 이상했다. 현관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시멘트와 벽돌로 차근차근 막은 후 페인트를 싹 발라 놓은 것처럼 밋밋한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어떻게 순식간에 현관문을 막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우리 동이 맞다. 머리를 들어 올려 주위를 살피다가 충격을 받고 주저앉았다. 우리 아파트의 각 동이 거대한 자동차로 변했다. 동이 있던 자리마다 중형 자동차가 직각으로 세워져 하늘을 찌르듯 서 있었다. 거대한 자동차들을 올려보고 있자니 덜컥 겁이 났다. 그 크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나 아파트 입구로 내달렸다. 무릎이 후들거려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 언제 이렇게 바뀐 거지? 조금 전에?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전에?

 입구를 나오자마자 도시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의 모든 건물이 지진도 나지 않았는데 이리저리 흔들렸다. 마치 땅에서 솟은 수많은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는 것 같았다. 그건 흔들리는 게 아니었다. 제 의지로 스스로 움직이는 거였다. 건물들이 부풀어 오르고 오므라들면서 자꾸 어떤 형상을 만들어갔다. 너무나 끔찍한 모습에 숨이 턱턱 막혔다.

 헛구역질을 하며 평소 열등감을 느끼던 고급 아파트로 시선을 돌렸다. 세련된 외관이 꾸물거리며 뭔가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몇 명의 사람이 각자의 베란다 창문에 바짝 붙은 채 몸을 떨었다. 이상하게도 모두 알몸이었다. 그들은 닫힌 창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다가, 안 되겠는지 어깨로 부딪치고 주먹을 휘두르며 발로 찼다. 사람들의 온몸에 상처가 생기고 멍이 들었다. 아무리 발악을 해도 창문은 깨지지 않았다. 몇몇은 바닥에 퍼질러 앉아 살려달라고 절규했다. 자세히 보니 고급 아파트 안은 전부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이었다. 왜 이런 상황이 펼쳐지는 거지? 주위를 살피던 사람들이 다급히 창문을 긁으며 울부짖었다. 안이 점점 어두워졌다. 공간도 좁아진다. 고급 아파트가 몸을 뒤틀며 앞뒤로 요동쳤다. 그 사이 베란다 안이 시커먼 어둠 속에 잠겼다. 공간이 더 좁아졌는지 살과 뼈가 맞물리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단말마의 비명이 길게 울려 퍼졌다. 암흑으로 변한 창문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입술을 깨물며 귀를 틀어막았다.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가 얼마 후 다시 떴다. 이제는 창문마저 녹아들며 사라져갔다. 사람들이 흘린 핏자국만이 남았다.

 고급 아파트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자동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7억을 호가하는 롤스로이스의 팬텀이었다. 수십 대의 팬텀이 세로로 세워져 그 위세를 과시했다. 도시의 다른 건물들도 어느새 자동차로 바뀌었다. 저마다의 가격에 따라 고급 외제 차나 싸구려 자동차들로 변해 옆으로 뉘거나 직각으로 섰다. 주위의 모든 건물이 하나도 빠짐없이 거대한 자동차가 됐다. 그 광경에 오금이 저렸다. 세상이 걷잡을 수 없이 변해가고 있었다.

 정신없이 가족이 탄 차로로 돌아왔다. 가족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도로에는 수많은 차가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찼다. 재빨리 인도로 올라와 오가는 차들을 지켜봤다. 이런 상황 하나하나가 가족과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바로 앞을 지나는 트럭 안에서 사람의 얼굴이 꿈틀거린다고 느꼈다. 잘못 본 건가? 트럭의 꽁무니를 눈으로 좇다가 다른 자동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차 안에 있던 근처의 사람들이 일제히 머리를 한 곳으로 꺾었다. 내 등 뒤를 보거나 주변을 살피려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공포에 신음하는 얼굴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안전한 인도였지만, 위협을 느끼고 펄쩍 물러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름 끼쳤다. 움직이지 못하는 게 아니었나? 자동차들이 양옆으로 사라질 때도 그 안의 사람은 어둠 속에서 나에게 눈길을 떼지 않았다. 도로 끝에서 와 내 옆을 지나는 승용차의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더는 목이 안 돌아갈 정도까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충혈된 눈이 내 몸을 이리저리 훑었다. 도로의 모든 사람이 꼿꼿이 목을 세운 후 기를 쓰며 나를 쳐다봤다.

 가족의 안위가 걱정돼 얼른 차로 돌아갔다.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쳐다볼까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그렇게 될지 궁금했다. 성큼 다가서는데도 가족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운전석 옆에서 기웃거려도 앞만 볼 뿐이었다. 막상 그렇게 되자 안도감보다는 서운함이 앞섰다. 내가 이렇게 애쓴다는 걸 가족이 몰라주는 것 같았다. 자동차 안의 사람들은 멀리 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내가 가까이 가기만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왜 그러는 걸까? 가슴에 큰 바윗덩어리를 얹은 것처럼 답답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경찰서나 소방서 같은 국가 기관으로 달려가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걸어서 갈 수도 없을뿐더러, 설사 간다고 해도 그 사이에 가족을 태운 차가 도로로 나갈 게 뻔했다. 또 건물이란 건물은 모조리 자동차로 변했을 터였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가족을 보호할 사람은 늘 그래 왔듯 가장인 나뿐이었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틀이 지나자 가족이 탄 자동차의 어둠이 더 짙어졌다. 이제는 가족의 얼굴은 커녕 몸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차들도 모두 같은 상황이었다. 만약 자동차 안이 이대로 더 어두워지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빨리 무슨 수를 써야 한다.

 인도에 서서 빠른 속도로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을 살폈다. 혹시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도로 반대편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오가던 차들이 잠시 뜸해졌다. 그 틈을 타 도로를 건너려다 밑을 보고 멈칫했다. 도로가 싹 바뀌었다. 하룻밤 사이에 주변의 모든 도로가 이제 완공을 끝낸 것처럼 새로 깔렸다. 선명한 검은색을 띤 노면이 반짝반짝 빛을 냈다. 건물들이 자동차로 변하던 때와 같았다. 미심쩍었지만 상황이 급했다. 그대로 오른발을 내딛자 도로가 푹 꺼져 뻗은 발을 감쌌다. 휘청거리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풍덩 소리와 함께 물을 튀기며 도로에 빠졌다. 눈앞에 있는 도로는 더는 도로가 아니었다. 시커먼 물로 넘실거리는 커다란 강이었다. 점착성 강한 검은 물이 내 몸을 옭아맸다. 발이 닿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당황했다. 두려움으로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다가 인도의 각진 부분을 잡고 빠져나오려고 용을 썼다. 그 순간 아래에서 뭔가가 내 발목을 움켜쥐었다.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손이 나를 밑으로 잡아당겼다. 검은 물에 푹 잠겼다가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온몸을 비틀며 발버둥쳤다. 발목과 종아리에 손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나를 끌어당기는 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미친 듯이 발을 구르며 손들을 뿌리치고 인도로 기어 올라왔다. 벌떡 일어나 아래를 살폈다. 도로가 크게 출렁였다. 검은 물속에서 눈을 하얗게 빛내는 뭔가가 있다. 자세히 보니 수많은 짐승이 한데 뒤엉켜 고통스럽게 허우적댔다. 마치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혐오감으로 뒤로 펄쩍 물러섰다. 발광하던 짐승의 군체가 천천히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더욱 격렬해졌다. 검은 물이 사방으로 튀어 내 얼굴을 때렸다. 온몸을 뒤틀던 짐승의 군체는 마치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물속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요동치던 물결도 금세 잔잔해졌다.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지르며 가만히 도로를 내려다봤다. 검은 물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히 깊었다. 계속 보고 있자니 나조차도 한입에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현기증을 느끼고 비틀비틀 물러서다 주저앉았다. 발목을 살피니 짐승들의 발톱 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온몸은 진득한 검은 물로 뒤덮여 찝찝했다. 썩은 내가 났다. 아무리 문질러도 닦이지 않았다. 어느덧 검은 강은 평소의 도로로 돌아왔다.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차들이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은 여전히 공포에 짓눌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돌을 주워 도로에 던지자 퐁 하고 밑으로 가라앉았다. 파문이 일었다.

 온몸에 힘이 쫙 빠져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정신이 나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가 너무 버거웠다. 가족을 구하기 위해 도로 반대편조차 건널 수 없었던 것이다. 이대로 포기해야 할까? 뭘 해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력했다. 차들은 검은 물에 빠지지 않고 태연히 도로를 오갔다. 씁쓸히 자동차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번호판이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하나같이 숫자 대신 글씨 같은 게 쓰여 있었다. 모든 자동차가 그랬다. 다시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왔다. 이번에는 또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진 지 몰라 불안했다. 그렇다고 확인을 안 할 수도 없어 힘겹게 일어섰다. 도로 가까이에 가 번호판을 훑는 순간 머리털이 쭈뼛 곤두섰다. 자동차들의 번호판에 ‘살려 주세요’ ‘갑갑해’ ‘숨을 쉴 수가 없어’ 등의 글씨가 급하게 쓴 듯 휘갈겨 있었다. 모두 안에 갇힌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말이었다. 놀라서 주춤주춤 물러서다 가족이 생각났다. 혹시 내 차의 번호판에도 저런 글이 나타나 있을까? 헐떡거리며 서둘러 가족이 탄 자동차로 향했다. 어떤 괴로움과 슬픔이 담겨 있을지 걱정됐다. 지금도 고통 받고 있을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차로 다가가 처연히 번호판을 살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글은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붉은색으로 쓰인 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포기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껏 가족을 위해 온몸을 바쳤는데도 저런 퉁명스러운 말이 돌아오니 서운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걸까? 입안이 씁쓸했다.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저런 글이 쓰였을까 의아해하다가 불쑥 소름이 돋았다. 아까 잠깐이긴 했지만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란 생각을 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저 글자는 분명히 나의 심리를 고스란히 읽었다는 걸 암시했다. 그래서 포기하지 말라는 협박을 하고 있는 거였다.

혹시 자동차의 수작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안에 탄 가족도 어떻게든 내가 품은 생각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야 말이 된다. 말 그대로 번호판에 나타난 글은 가족들이 나에 대해 느끼는 감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런 결론에 도달하자 오한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본심을 들킨 것만 같아 두려웠다. 가슴에 뭐가 꽉 들어찬 듯 숨을 쉴 수 없었다. 또한, 저 글자가 뜻하는 바도 심상치 않았다. 만약 끝내 가족을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정말 나에게 무슨 짓이라도 저지른다는 걸까? 불길한 예감이 온몸으로 스멀스멀 번졌다. 가족들이 잘못되면 나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 생각 때문이었을까? 사방이 급격히 추워졌다.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침대 튜브에 쪼그리고 앉아 이불을 몸에 둘둘 말아도 소용없었다. 여전히 날은 좋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틀 내내 햇빛 하나 비치지 않는 흐린 날씨였다. 이를 딱딱 부딪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낮게 깔린 먹구름들이 빠른 속도로 흘렀다. 그 속에서 조그마한 틈이 열리는가 싶더니 한 줄기 빛이 쏟아졌다. 구름을 뚫고 나온 햇살은 정확히 나를 비췄다. 기분 좋은 온기가 머리부터 시작해 온몸으로 퍼졌다. 따스한 기운을 만끽하니 좀 살 것 같았다. 다른 곳에서는 틴들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직 나를 향해서만 내리쬐는 빛을 보니 마치 하늘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빛 내림은 전처럼 금방 사라졌다. 그래도 덕분에 가족을 구할 수 있다는 힘과 용기를 얻었다.

 기운을 내 침대 튜브에서 일어났다. 앉았던 곳이 뿌드득거리며 살짝 쳐졌다. 사용한 지 며칠이 되지도 않았는데 그새 바람이 빠졌다. 공기를 넣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까지는 내가 직접 가족을 구하려고 했었다. 그렇게 하면 무슨 시도를 하더라도 다 실패하게끔 되어 있는 게 아닐까? 다른 식으로 시도해야 한다.

 침대 튜브의 공기 주입구를 열었다. 쉬익 소리를 내며 공기가 새어 나왔다. 손과 발로 침대 튜브를 꾹꾹 눌러 나머지 공기도 뺐다. 아까의 햇빛 때문인지 몸에 활기가 넘쳤다. 쭈글쭈글해진 침대 튜브에 다시 공기펌프를 연결했다. 시험 삼아 페달을 밟아봤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공기가 들어갔다. 공기펌프의 호스를 그대로 꽂은 채 차의 조수석을 열었다. 아내와 변속 레버 사이에 침대 튜브를 잽싸게 내려놓았다. 이제 남은 건 밖에서 공기를 집어넣는 일이었다. 침대 튜브가 부풀어 오르면서 레버에 걸려 고정된 상태로 아내를 밀어낼 터였다.

 긴장된 마음으로 페달을 밟았다.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침대 튜브에 공기가 주입되면서 축 처졌던 형체가 차츰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꼼짝도 하지 않던 아내의 몸이 움찔거리며 움직였다. 발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내 판단이 맞았다. 조금씩이나마 밖으로 떠밀리는 아내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숨도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댔다. 아내의 양팔이 움직여 침대 튜브를 붙잡았다. 뭐하는 거지?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스스로 움직였다. 상체를 숙인 채 침대 튜브를 붙든 아내의 양팔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아내는 밀리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침대 튜브를 들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왜 그러는 거야?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구해 줄 텐데 왜 그걸 들어 올리려는 거냐고?

 아내는 야속하게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침대 튜브를 들어 올리려고 용을 썼다. 방해하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 이 여편네야!

 다행히 튜브를 들어 올리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침대 튜브는 묘하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천근만근의 무게를 지닌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떨어진 땀방울이 차 바닥에 번졌다. 그사이 한껏 팽팽해진 침대 튜브에 밀려 아내가 차 밖으로 튕겨 나왔다. 드디어 성공이다! 순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아내의 몸이 덜컥 멈췄다. 침대 튜브는 계속 부풀어 오르는데 아내는 안과 밖의 경계선에 걸려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 같았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침대 튜브의 부피가 커질수록 아내의 몸은 투명한 벽에 막힌 채 짓눌려졌다. 밀가루 반죽처럼 아내의 가슴과 얼굴이 납작해졌다. 도저히 사람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었다. 신체가 저렇게 쉽게 변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지속적인 힘을 받지 못한 침대 튜브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끔찍하게 눌린 아내도 밑으로 힘없이 처졌다.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야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비통함인지 후련함인지 모를 눈물이 볼을 적셨다. 그렇다. 내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바람 빠진 침대 튜브가 차 안에서 내던져졌다. 가족을 태운 자동차가 천천히 도로로 나가다 다시 한 번 도로와 길목의 경계에서 멈췄다. 운전석 문이 활짝 열렸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차로 걸어갔다.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기회였다. 운전석 앞에 우두커니 서 아내와 아이들을 살폈다. 모두 짙은 어둠 속에서 공포에 가득 찬 얼굴로 앞만 보고 있다. 차에 타게 되면 나도 저런 일을 겪는다고 생각하자 두려웠다. 저렇게 되기는 싫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물러섰다.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내 귀를 때렸다. 자동차는 문을 닫고 미련 없이 도로로 들어섰다. 아주 느린 속도로 멀어지는 자동차를 보면서도 쫓아가지 못했다. 죄책감과 무력감이 뒤섞여 감정을 제어할 수 없었다. 무릎을 꿇고 엉엉 울었다. 다시는 가족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가족이 탄 차는 안이 시커먼 차들 사이에 묻혔다. 포기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가족의 말이 떠올랐다. 나를 원망하고 있겠지? 이제 무슨 일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남편과 아버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 어디선가 아내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 소리는 점차 선명해졌다. 가족들이 정말 그런 무서운 생각을 품은 걸까? 

 갑자기 왼쪽 뺨이 불이 난 듯 따끔했다. 황급히 주위를 살피다가 하늘의 먹구름이 기묘하게 꿈틀거리면서 어떤 형상을 만드는 게 보였다. 구름이 사라짐과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 부품들이 온 하늘에 펼쳐졌다. 이제껏 보이지 않던 자동차 안의 부품이 모두 하늘로 모인 것 같았다. 다시 오른쪽 뺨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저 멀리 사라지던 가족의 차가 그 자리에 멈췄다. 그에 반해 멈춰있던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눈앞의 자동차들과 거대한 자동차로 변한 건물들이 땅속으로 가라앉는다. 세상이 휙휙 돌아가며 하늘의 기계 부품이 눈앞까지 성큼 내려왔다. 이게 가족이 말했던 가만두지 않는다는 뜻일까?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뒤로 머리를 젖혔다. 뭔가에 가로막혀 고개를 앞뒤로 움직일 수 없었다. 유독 내 주위에만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눈알을 굴려 주위를 살폈다. 나는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커다란 무언가의 아래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숨이 막혀 호흡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차갑고 무거운 물체가 온몸을 짓눌렀다. 떨림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이러다가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움직이려고 몸을 뒤틀었지만 너무 좁은 공간이라 꼼짝도 하지 못했다. 공포에 휩싸인 채 헐떡거리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앞에 굳게 버티고 선 자동차 바퀴가 보였다. 바퀴 너머의 검은 도로에 작은 짐승의 시체가 납작하게 깔린 채 말라붙어 있었다. 차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짐승의 시체를 밟고 지나쳤다. 그제야 내가 자동차에 깔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선가 딸아이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죽지 말라고, 어서 숨을 쉬라고 화를 내며 울부짖었다. 목소리를 좇아 반대편으로 고개를 틀었다. 딸아이가 내 뺨을 때리더니 팔을 잡고 밖으로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내와 두 아들은 나를 깔아뭉갠 차를 붙들고 들어 올리려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눈물로 얼룩졌다. 나를 구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 조금 전부터 깨어난 것도 몰랐다. 가족들 뒤에서 한데 모인 사람들은 멀리서 수군대기만 했다. 모두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 채 도우려고 다가오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섬뜩함을 느꼈다.

놀랍게도 자동차의 앞부분이 위로 조금씩 들렸다. 그 사이에 딸의 가녀린 손길이 나를 밖으로 잡아당겼다. 이를 악문 딸의 얼굴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미약한 힘에 불과했지만 내 몸은 조금씩 자동차 밖으로 끌려나갔다. 사람들이 탄성과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낑낑대며 차를 들어 올린 아내와 두 아들의 얼굴에서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딸에 의해 밖으로 이끌린 나는 따스한 햇볕을 만끽하며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보았다. 차에 짓눌려 공기를 들이마시지 못하던 폐가 신선한 공기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몸도 차츰 움직일 수 있었다. 비로소 살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가족과 건널목을 건너다가 사고가 났다는 기억도 되살아났다.

 끙끙대며 상체를 일으켰다. 감전된 것처럼 온몸이 찌르르 아팠다. 특히 옆구리와 오른쪽 다리의 통증이 심했다. 갈비뼈가 몇 대 나가고 다리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살아 남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힘겹게 몸을 돌려 나를 깔아뭉갠 차를 바라봤다. 이제껏 겪은 일이 모두 환상이었단 말인가?

 혼란스러워 하는 나를 딸이 와락 껴안았다. 아내와 두 아들도 정신없이 달려와 나를 부둥켜안았다. 가족들의 따뜻한 품에 안기자 안도감과 함께 벅찬 감동이 밀려들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 코와 입으로 들어왔다. 아내와 아이들도 나를 따라 목 놓아 울었다. 열에 들뜬 입김이 얼굴에 수없이 와 닿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품에 안고, 서로의 손을 부서져라 쥔 채 펑펑 울었다. 나는 가족을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족은 나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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