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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손들: 환상

안드레이 쁠라또노프 지음
정보라 옮김


    그는 한 때, 어머니와, 고향의 친숙한 울타리와, 들판과, 이 모든 것 위에 펼쳐진 하늘을 사랑하는 다정하고 슬픔에 찬 어린 아이였다. 저녁이 되면 마을에는 친숙하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종이 울렸고, 기적 소리가 울부짖었고, 그리고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와 그를 양 팔에 안고 커다랗고 푸른 눈에 입맞추었다.
    그리고 짧고 부드러운 저녁이 집들 가까이로 몸을 굽혔고, 하루 일에 지친 사람들은 잠들 때까지 남은 이 짧은 시간 동안 서로를 상냥하게 대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했고 다음 날 다가올 행복을 꿈꾸었다. 다음 날도 기적 소리가 울렸고, 다시 한 번 교회의 종이 울었고, 소년에게는 마치 기적도 종도, 멀리 죽은 사람들에 대하여, 불가능하고 이 세상에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바라는 어떤 것에 대하여 노래하는 것만 같았다. 밤은 별들의 노래였고, 잠들기가 아쉬웠으며, 온 세상이 마치 순례자처럼 조용한 자정의 시간에 하늘을, 별들의 길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것 같았다.
    밤에 소년의 내면에서 영혼은 자라났고, 그 내면에서 깊이 잠든 힘이 괴로워했는데, 그 힘은 언젠가 터져나와 세상을 재창조할 것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소년의 내면에서 영혼이 꽃피었고, 그의 내면으로 세상의 어둡고 억제할 수 없는 열정적인 힘이 스며들어와 사람으로 변했다. 이것은 모든 어머니가 매일 자신의 아이에 대해 대견스러워하는 기적이다. 어머니는 세상을 구원하는데, 왜냐하면 세상을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 소년이 나중에 누가 될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 자라났고, 짓눌리고 압축되고 굽어진 힘이 그의 안에서 더욱 더 억제할 수 없이, 더 무섭게 들끓었다. 그는 깨끗하고 푸르고 기쁨에 찬 꿈을 꾸었고, 아침이 되면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 이른 아침의 평온한 햇빛이 그를 맞이했고, 내면은 모두 조용해졌으며, 전부 잊어버리고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는 꿈꾸는 동안 자라났다. 낮은 단지 태양의 불꽃, 바람과 길 위의 우울한 먼지일 뿐이었다.
    
***

    그는 위대한 전기와 지구 개축의 시대에 자라났다. 노동의 굉음이 지구를 흔들었고, 오랫동안 아무도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다 ――― 모든 시선은 땅으로 향했고, 모든 손은 일하느라 바빴다.
    라디오의 전자기파가 대기 중에서, 별들 사이의 에테르 속에서 노동하는 인간의 위협적인 단어를 속삭였다. 생각과 기계들이 더 완강하고 참을성 없이, 알 수 없고 정복되지 않은, 저항하는 물질 속으로 파고 들어 그것으로부터 인간의 노예를 만들어 냈다.
    지구 개축 작업의 총 지휘관은 엔지니어인 보굴로프였는데, 하얗게 센 머리에 허리가 굽고 증오에 찬 눈이 빛나는 사람으로 ――― 바로 이전의 그 상냥한 소년이었다. 그는 수백만 노동자의 군대를 지휘했고, 그들은 기계를 사용하여 땅을 물어뜯고 그 모습을 바꾸었으며, 땅에서 인류의 집을 만들어 냈다.
    보굴로프는 교대도 없이, 잠도 없이, 심장에 불타는 증오심으로, 광포하게, 무분별하고 불안하고 지치지 않는 천재성으로 일했다. 세계 노동 민중 협의회가 그에게 이 작업을 맡겼다. 그리고 보굴로프는 작업을 조직하면서 열 번이나 전 지구를 돌아보았고, 지구 개조의 사상을 전파했고, 인류의 검은 대중을 작업의 희열로 불붙였다. 온기의 순환을 연구하기 위해 그는 수백 개나 되는 탐험대를 지구상의 모든 산과 모든 대양과 바다에 파견했다. 기상 관상대가 수천 개 건설되었고, 가장 뛰어난 학자들의 수천 개나 되는 뇌가 대기를 전부 반추했다.
    보굴로프의 계획은 아주 단순했다.
    지구는 주기적으로 가뭄, 혹은 반대로 너무 지나친 습기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 인류는 이런 자연력의 혼란 상태 때문에 몇백만 개의 조각으로 절멸된다. 그 뒤에는 계절의 변화, 그러니까 그 ――― 겨울과 여름과 기타등등이 인류 작업의 속도를 늦추고, 이런 변화에 적응하는 데 많은 힘을 빼앗아가며, 지구상의 거대한 공간을 불모지, 추위와 어둠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리고 지구상의 다른 부분은 ――― 흉폭한 바람, 모래와 광포한 불길이 된다.
    지구는 인류가 발전할수록 더욱 더 불편하고 무분별해졌다. 사람의 손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지구를 개조해야 한다. 그것은 필요 불가결한 일이 되었고, 인류의 계속적인 성장의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보굴로프는, 엔지니어이자 화력 제조 전문가로서, 이 기획을 완성했다. 기획의 요점은 자연력을 인공적으로 조절하고 지구 표면의 요철을 변화시켜 바람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었다. 공기가 순환하고 바람이 통과할 수 있도록 산에 운하를 굴착하고, 운하를 통해 하층토 안으로 냉기나 온기의 흐름이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게 전부였다. 왜냐하면 대기 중의 모든 상태 (습기, 건조함)는 바람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 작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만 명 내지 삼만 명 정도 인원의 노동자 군단을 히말라야의 대기 중으로 내보낼 수 있도록,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한 화력의 폭발물을 고안해내야 했다. 그리고 보굴로프는 자기 뇌를 달구고, 주위를 수천 명의 엔지니어로 둘러싸고, 폭발물에 관해 생각하여 자신을 돕도록 전 세계를 강요하여 ――― 폭발물을 찾아냈다.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 ――― 응축된 빛이었다. 빛은 전자기적 파장이고, 빛의 속도는 전 우주에서 최대 속도이다. 그리고 빛 자체도 극단적이고 필요 불가결한 물질의 원소이다.
    빛을 넘어서면 이미 또 다른 우주가 시작되고, 물질은 소멸된다. 빛보다 더 강력하고 응축된 에너지는 세상에 없다. 빛은 우주의 위기다. 그리고 보굴로프는 빛의 전자기적 파장을 응축하고 밀집할 방법을 발견했다. 그 결과 생겨난 것은 초광선, 이상할 정도로 파괴적인, 믿을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힘으로, 거꾸로 세상 안으로 “정상적인” 상태를 향하여 작렬하는 에너지였다. 그리고 이 초광선에서 보굴로프는 멈추었다. 이 에너지라면 땅에서 인류의 집을 건설해내는 데 충분했다.
    
    초광선은 카르파티아 산맥 [체코에서 폴란드, 우크라이나를 거쳐 루마니아로 이어지는 산맥 이름 – 역주]에서 실험했다.
    작은 터널 안으로, 농축된 초광선 충전재를 적재한 조그만 차량을 운전해 들어가서 초광선을 비정상적인 상태로 보존하는 전기 제동장치를 걸었고, 그러자 유럽 전체에 불꽃이 울부짖었고, 폭풍이 여러 나라를 휩쓸었고, 번개가 대기 중에서 날뛰었고, 대서양이 수백만 톤의 물을 여러 섬에 쏟아 부으며 밑바닥까지 심호흡을 했다. 화강암 구덩이가 울부짖으며 구름까지 솟아 올랐고, 측정할 수 없는 온도로 달아올라 가벼운 기체로 변했고, 기체는 가장 높은 대기층까지 떠올라서 그곳에서 어떻게든 에테르와 합류하여 영원히 지상을 떠났다. 카르파티아 산맥은 그 기억을 일깨워줄 만한 모래알 하나도 남지 않았다. 카르파티아 산맥은 별들에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질은 보굴로프의 발상을 거의 무(無)로 바꾸어 버렸다.
    한 달 후에 아시아의 홍안령 [만주 북서부 지방 – 역주]와 싸얀 산맥 [남시베리아의 산맥 이름 – 역주] 의 몇몇 지역에서 똑같은 실험을 시행했다. 그리고 또 한 달 후에 시베리아의 툰드라에는 이미 수줍게 꽃이 피었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비가 내렸으며, 온기를 쫓아 사람들이 몰려왔고, 비행기가 날고, 무거운 기차가 움직이고 묵직한 공장 건물들이 땅을 깊이 가르고 토대를 세웠다.
    보굴로프는 수백만 대나 되는 기계와 수십만 명의 기술자를 지휘했다. 광기와 광란 상태에서 인류는 자연과 싸웠다. 인간의 의식과 강철 이빨이 물질을 물어뜯고 그것을 깨물어 부수었다. 무분별한 작업이 인류를 사로잡았다. 노동의 온도는 극단까지 올라갔다 ――― 그 뒤로는 벌써 몸이 망가지고, 근육이 부서지고 광기가 시작되었다. 신문들은 작업 선전을 마치 종교적인 예언처럼 게재했다. 작곡가들은 자기 악단과 함께 클럽에서 의지와 자연적 인식을 위한 산과 운하 작업의 심포니를 연주했고, 인간은 꿈이 아니라 의식과 기계로 무장하고 우주를 향해 일어섰다.
    보굴로프는 무선 연락기에 둘러싸인 채 이미 4년째 도면과 숫자 위로 몸을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한계도 바닥도 없이 그의 앞에 노동의 대양이 펼쳐졌으며, 그는 잠도 자지 않고 거의 자각하지도 못한 채 생각의 규칙적인 폭발에 복종하여 이 작업의 대양 속에서 파멸하였고 구원을 찾지 못했으며 그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멀고 위대한 지평선이 그의 앞에 펼쳐졌으며, 그에게는 수천 개의 과제가 있었으나 그것을 모두 해결할 시간이 없었다. 가끔 보굴로프는 일어나서 자기 사무실 안, 두껍게 쌓인 서류와 투사지의 언덕 사이를 걸어다니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동가를 불렀다 ――― 다른 노래를 그는 알지 못했다. 노래를 부르면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익숙해진 잎담배를 피웠다. [마호르까 makhorka: 소련 시절의 보급형 담배 대용품으로, 가지과 식물의 잎을 말아서 만든 매운 담배 – 역주] 그러나 최대 속도로 일하는 기계는 그 기계를 운용할 기사를 요구했다. 작업의 바다는, 단 일 초라도 뇌와 기계로 짓밟기를 멈추면 당장 해안가를 뒤덮고 대재앙을 예고하며 위협했다 ――― 그리고 보굴로프는 다시 책상 앞에, 그를 전 세계와 연결해주는 무선기 앞에 앉아서, 계산을 하고, 글을 쓰고, 생각이 뛰노는 데 자신을 맡기고, 히말라야에서, 홍안령에서, 싸얀 산맥, 안데스 산맥, 시베리아 안으로 온류를 전달하는 북빙양의 인공 운하, 수압전도장치를 설비한 사하라 사막의 양수 장치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을 향해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고, 인도양의 대기 관측대와 이야기했고 ――― 그리고 보굴로프의 생각은 분명하게 소리를 내고, 빛을 비추고, 위대하고 영웅적인 작업 ――― 먼 곳에 있는 수백만 인류의 투쟁을 지휘했다.
    보굴로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 의식의 강점은 여러 가지 전혀 다른 종류의 것들을 분명하고 완전하게 동시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달성했다.
    또 일 년이 지나면 지구는 개조될 것이다. 겨울도 없고, 여름도 없고, 폭염도 없고, 홍수도 없을 것이다. 지구 전체가 기후 지역으로 구분될 것이다. 각 지역에는 언제나 균등하게, 그 나라의 토양에 가장 적합한 식물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기온이 유지될 것이다. 인류는 남극 지방으로 이주할 것이다 ――― 지구상의 나머지 평지는 곡물을 키우고 인류의 발상을 실험하고 시험하는 용도로 사용될 것이며, 그것은 작업장, 기계와 경작지의 수도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드물게 찾아오는 몰아(沒我) 혹은 환희의 순간에 보굴로프의 부풀어오른 머릿속에서는 뭔가 다른, 이 시대의 것이 아닌 생각이 반짝였다.
    보굴로프에게는, 시간과 작업으로 인해 더욱 강력해진 머리와 불꽃 같은 의식만이 남았다. 이 때까지 사람들은 몽상가들이나 마음 약한 시인들이었고, 여자나 울어대는 아이들과 비슷했다. 사람들은 세상을 알 자격이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물질의 무시무시한 저항, 혼자 스스로 먹어치우는, 너무나 기괴한 우주는 그들에게 낯설었다. 여기서는 흉폭하게 이를 가는, 뜨겁게 달아오른 생각이 있어야 하고, 그 생각은 물질보다도 더 확고하고 물질적이어야만, 세상을 이해하고, 그 심연 안으로 내려가고,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지식과 작업의 지옥을 전부 끝까지 거쳐 가서 우주를 재창조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언젠가 놀이 삼아 별과 공간을 만들어낸 그 야만적인 창조자의 주먹보다 더 가차없고 완고한 손을 지녀야만 했다. 그리고 보굴로프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태어나서, 믿을 수 없이 거대한 작업을 통해 스스로를 발전시켜서, 그러한 ――― 물질보다 더 확고하고 완고한 ――― 의식의 화신이 되었다. 그것은 우주를 혼란 속으로 무너뜨리고 그 혼란 속에서 다른 ――― 별들도 해들도 없는 ――― 우주를 창조하는 데에만 적합한, 오로지 기쁨에 환호하는, 눈부시게 전능한 의식이었으며, 만약 원한다면, 만약 그런 창조가 즐겁다면, 모든 형태를 자유롭게 하고 더 나은 지구를 건조할 수 있는 의식이었다. 그러나 창조하지 않고, 파괴하지 않고, 대신 다른 상태에 있을 수도 있었다. 기뻐하지 않고 고통받지 않고 평온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 그것은 비상 (飛上)이고, 평온하고 깨끗하고 환희에 찬, 높은 곳의 대기였다.
    지구상의 인류가 세상과 세상들을 향해 일어나서 그들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 스스로를 위하여 사탄의 의식(意識), 악마의 생각을 낳고, 자기 안에서 헤엄치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하나님의 심장을 죽여야만 한다.

***

    그리고 보굴로프는 천천히,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 ――― 지구 개축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모자랐다. 생각은 작업 중에 흉폭해지고 강해져서, 작업과 향상과 거대한, 불가항력적 저항을 요구했다.
    보굴로프는 우주 앞에 앉아 있었다. 이 우주라는 수수께끼는 끝내 풀려야만 했고, 완전히 해결되었다. 그리고 인식한다는 것은 4분의 3의 승리다. 그는 시인이나 철학자로서가 아니라 노동자로서 우주에 접근했다.
    일 년 간의 실험과 숙고 끝에 그는, 당연히 전 인류의 도움을 받아서, 인류의 이 우주적인 마지막 과제를 해결했다. 그는 우리 우주가 들어 있는 그 타원형, 그 엄밀한 형태를 발견했다. 그는 언제나, 우주는 엄밀하게 제한되어 있고, 한계와 끝, 정확한 형태를 지녔으며, ――― 오직 이 때문에 저항성을 지니며, 즉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저항성은 물체가 지니는 현실성의 가장 첫 번째,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리고 저항하는 것은 형태를 지니는 것들 뿐이다. 무한함에 대한 논의는 바로 이 때문에 논의일 뿐 사실이 아니다.
    보굴로프는 우주의 외형과 한계를 발견했고 이렇게 알려진 극단적인 크기로부터 그 중간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발견했다. 우주에는 두 가지 극단적이며 결정적인 점이 있다. 빛은 고도로 응축된 우주로서, 빛을 넘어서면 그 때부터는 우주가 소멸되기 시작하며, 빛의 한계는 넘어서서는 안 되는데, 왜냐하면 여기서 우주의 저항은 무한하기 때문이며, 이는 곧 두 번째 결정적인 점인 하부 전자기장인데, 이것은 일반적인 전자기장과 비슷하지만 응축도가 0에 가까우며 파장이 무한히 길고 주파수의 주기는 1대 영원이다.
    이런 한계 사이에 모든 나머지 과도기적 형태, 즉 온기라든가, 물질이 그 구조의 화학적 안정성을 지향하는 성질, 방사성 등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빛에서 하부 전자기장을 향하는 동요는 사실상 대단히 미미하다. 예를 들어, 방사능의 속도는 빛의 속도에 가까우며, 전기의 흐름도 거의 같은 속도를 지닌다. 그리고 자연, 빛의 내밀함, 하부 자장과 그 내부의 모든 과도기적 형태는 하나이며 모두 같다.
    보굴로프는 실험을 하면서, 우주라 불리우는 것이 이 닫힌 원 안에서 어떻게 몸부림치는지 발견했다. 하부 자장은 불가항력적으로 빛의 상태까지 성장하고, 빛은 자기 자신과 부딪쳐 다시 그 반대쪽 극단 ――― 하부 자장으로 내려간다. 이렇게, 원형으로, 오른쪽 절반은 위로, 왼쪽 절반은 아래로, 우주는 감금된 독방 안에서 동요하고 부딪치며, 그 독방이 바로 우주 그 자체이다.
    하부 자장은 (규정할 수 없고 포착할 수도 없는) 한 순간 사이에 이미 빛으로 변하고, 이에 응답하여 빛은 또 그런 순간이 지나면 하부 자장이 된다. 결과는 변화조차 하지 않는, 죽은 상태이다.
    하부 자장은 무한을 향하여 뻗어가면서 그 안에 일정하지 않은 내부 저항성을 가지는데 ――― 초기 파장에서는 이 저항이 더 크고, 말기에서는 작으며, 이로 인해 파장의 다양한 속도 ――― 혹은 전율 ――― 를 얻게 된다. 자장의 응집성은 최대, 즉 빛에 도달하고, 그 뒤에는 다시 1초당 20도에 50번의 전율 상태에서 1대 영원, 즉 전율이 전혀 없는 상태로 떨어진다.
    그리고 보굴로프가 자기 실험실에서 모든 기능을 포함한 우주의 사본을 축조했을 때, 그리고 실험이 모든 결과를 검증했을 때, 보굴로프는 전혀 기뻐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기계 장치, 즉 우주 안에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고, 그의 생각은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전과 똑같은, 하부 자장에서 빛으로,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의 원형 흐름이 그의 실험실 책상 위에서도, 마치 극단적인 세상의 공간 속에서처럼 생겨났다. 우주는 인간에 의해 바닥까지 정체를 드러내고 복제되었다.
    그러자 보굴로프는 초광선과 자신의 폭발적 에너지를 기억해 냈고, 오랜만에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인간은 우주를 초월했는데, 왜냐하면 초광선은 이미 우리 우주의 원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굴로프는 연필을 집어 일천 세제곱 킬로미터 분량의 응축된 초광선이면 우주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데 충분한지 계산했다.
    각각 오백 세제곱 킬로미터의 폭발 두 번이면 될 것이었다. 첫 번째 폭발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빛의 상태에 이르게 하고, 두 번째가 광선을 초광선으로 전환하면, 관성에 의해 응축되어 초광선 스스로 어떤 새로운 초에너지 상태의 형상을, 다른 우주를 창조할 것이다.
    그리고 보굴로프는 쓸쓸한 듯 기분이 좋아졌고, 벽에 균열이 생겨 ―――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1년 후에 보굴로프는 초광선으로 우주를 재창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시 그의 안에서 생각이 우뢰처럼 울렸고 작업장과 실험실의 도면과 예산 기획서가 끝없는 리본처럼 이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불가항력의 저항에 부닥쳤다. 지구상의 모든 에너지로도 일천 세제곱 킬로미터의 초광선을 이끌어내는 데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자 보굴로프는 작업대에 무한함을, 공간 자체를, 우주적 에너지 자체를 ――― 빛을 잡아 매었다. 이를 위해 그는 광전자기적 공명 전환기를 고안했다. 그것은 빛의 전자기적 파장을 전기 모터에 적합한 일반적인 노동력의 흐름으로 전환하는 기구였다. 보굴로프는 공간에서 직접 얻어낸 광선을 ‘식혀서’, 하부 자장으로 제동을 걸어 필요한 길이와 주파수의 파장을 얻어냈다. 눈에 띄지 않게, 그리고 자신도 예상하지 못하게, 그는 인류 에너지 역사 전반에 있어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는데, 그것은 유효한 힘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노동에 적합한 최대량의 에너지를 얻어낸 것이었다. 여기서 유효한 힘의 손실은 차단되었다 ――― 빛을 흐름으로 바꾸는 공명 전환기의 업적이었고, 에너지는 정확히 말하자면 무한한 용량으로 얻어냈는데, 왜냐하면, 우주의 먼 한계점들을 조건적으로 무한이라 이름붙일 수 있다면, 우주는 물리적 광선이며, 전 우주가 인간의 작업대에 붙잡아 매어졌기 때문이다. 에너지론(論)과, 즉 세계의 경제가 전복되었다. 인류에게는 진실로 황금 시기가 도래하였다 ――― 우주가 인간을 위해 일하고, 인간을 양육하고 기쁘게 했다.
    보굴로프는 초광선 제작을 위해 자기 작업장에서 우주에게 노동을 강요했는데, 이것은 바로 그러한 우주를 소멸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짧은 시간 안에 필요한 갯수의 공명기 ――― 수백만 대를 준비하기에 인간은 너무 느리고 게으르게 일했다. 작업 속도를 극단적으로 빠르게 해야 했고, 보굴로프는 노동 대중에게 미량의 에너지를 주입했다. 그는 이를 위해 하부 자장의 요소를 그 최대 상태, 즉 빛을 향한 무시무시한 지향성과 함께 뽑아내어 몇 조(兆)나 되는 이 원소들의 군체를 배양하여 대기 중에 흩뿌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작업 중에 죽어갔고, 순수한 용기를 표현하는 책을 썼고, 단테처럼 사랑했고, 몇 년이 아니라 며칠 단위로 생을 살았으나, 그 사실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첫 해에 이미 일백 세제곱 킬로미터의 초광선이 생산되었다. 보굴로프는 그 이후로 1년마다생산을 두 배로 늘려서, 3년 정도 후에는 일천 세제곱 킬로미터의 초광선이 준비되게 할 생각이었다.
    인류는 마치 폭풍 속에서처럼 살아갔다. 하루에 천 년 분량의 귀중품이 생산되었다. 세대가 질풍처럼 빨리 바뀐 결과 새롭고 완전한 인간 유형이 만들어졌다 ――― 흉폭한 에너지와 계몽된 천재성을 갖춘 유형이었다.
    미량의 에너지는 불필요한 영원함을 만들었다 ――― 삶을 배불리 만끽하고, 마치 즐겁게 본능을 충족시키듯이 죽음을 느끼는 데는 짧은 순간만으로도 충분하게 되었다.

***

    그리고 엔지니어 보굴로프에게도 심장과 고통이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 심장과 그런 영혼은 인간이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는 스물 두 살에 어느 소녀와 사랑에 빠졌는데, 소녀는 그들이 만난 지 일주일 되었을 때 죽었다.
    삼 년 간 보굴로프는 광기와 그리움 속에 땅을 뒹굴었다. 그는 버려진 도로에서 소리내어 울고, 찬송하고, 욕하고 울부짖었다. 그는 너무나 무시무시해서, 재판에서 그를 소멸시키기로 결의했다. 그는 너무나 고통받고 괴로워하여, 이제는 죽을 수조차 없었다. 그의 육체는 상처가 되었고 썩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영혼은 스스로 절멸하였다.
    그리고 후에 그의 내면에서는 유기적 재앙이 일어났다. 사랑의 힘이, 심장의 에너지가 뇌로 쏟아져 들어가 두개골을 열어 젖히고 전무후무한, 있을 수 없는, 믿을 수 없는 힘을 가진 뇌를 형성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 그저 사랑이 생각이 되고, 생각은 증오와 절망 속에서 인간에게 유일하게 필요한 것 ――― 다른 인간의 영혼을 얻는 것이 불가능한, 그런 세상을 절멸시켰을 뿐이다….
    보굴로프는 공포도 후회도 없이, 그러나 돌이킬 수 없고 상실된 것에 대한 아픔을 느끼며 우주를 해체했는데, 인간은 이런 아픔으로 숨을 쉬며, 또한 이것은 인간에게 무수한 시간이 지난 뒤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보굴로프는 이 불가능한 일을 자기 손으로 지금 당장 이루고자 했다.

---

    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불가능을 알고, 그런 사람만이 이 불가능한 것을 죽도록 원하며, 어떠한 길을 통해서라도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1922년

댓글 4
  • No Profile
    as 09.06.27 14:57 댓글 수정 삭제
    다정한 아이가 우주를 해체하기까지...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보라 09.06.28 14:08 댓글 수정 삭제
    앗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은 이 작가 작품치고 완성도가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이라 번역해봤습니다. (.. 제가 안 하면 한국말로는 영원히 번역 안 될 거 같기도 했구요..;;)
  • No Profile
    거울 09.08.01 21:49 댓글 수정 삭제
    감사히 읽고갑니다~
  • No Profile
    보라 09.08.29 11:12 댓글 수정 삭제
    옙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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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SF교류프로젝트 [초청 중국SF단편 ②] 고래자리를 본 사람 – 탕 페이 (비공개:전자책 『후빙하시대 연대기 』에 수록)5 2017.08.30
해외 단편 태양의 후손들: 환상4 2009.06.26
해외 단편 위층 남자1 2011.01.01
해외 단편 열쇠8 2009.03.27
해외 단편 사납고 멋진 세상3 2010.08.28
해외 단편 문 너머(Beyond the Door) 2011.03.26
한중SF교류프로젝트 [초청 중국SF단편 ⑤] 우주표 담배 – 텅예 (비공개:전자책 『후빙하시대 연대기 』에 수록)2 2017.10.31
해외 단편 사라진 거리1 2011.07.30
한중SF교류프로젝트 [초청 중국SF단편 ④] 인류의 여신 G – 천츄판 (비공개:전자책 『후빙하시대 연대기 』에 수록)3 2017.09.30
한중SF교류프로젝트 [초청 중국SF단편 ⑩] 우주 끝의 책방 – 장보 (비공개:전자책 『후빙하시대 연대기 』에 수록)1 2018.04.08
해외 단편 울름 (An Ulm)2 2009.03.27
한중SF교류프로젝트 [초청 중국SF단편 ⑦] 천화(天火) – 왕진캉 (비공개:전자책 『후빙하시대 연대기 』에 수록)1 2018.01.08
해외 단편 크리스마스 특집 ② 크리스마스 200,000 B.C. - 스탠리 워털루4 200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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