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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거리
(The Street That Wasn’t There)

클리포드 D. 시맥 & 칼 자코비

사은 옮김


   오후 7시 정각이 되자, 조나손 챔버스 씨는 지난 20년간 언제나 같은 시간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짐없이 해온 산책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경로는 불변했다. 그는 메이플 가에서 두 블록을 걸어내려가서 레드스타 제과점에 들러 로즈 트로페로 시거를 한 개피 산 후, 메이플 가의 네 번째 블록 끝까지 걸어간다. 거기서 우회전을 해 렉싱턴 가로 접어들고, 렉싱턴 가를 따라 오크 가로 들어가며, 오크 가를 내려가 링컨 가를 지나 다시 메이플 가로 돌아와 집으로 향한다.
   챔버스 씨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걸었고, 정확히 7시 45분에는 늘 현관문 앞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가 시거를 사는 레드스타 제과점의 점원조차도 시거를 팔 때 말을 건네지 않았다. 챔버스 씨가 카운터의 유리 상판을 동전으로 두드리면 점원은 팔을 뻗어 상자를 꺼냈고, 챔버스 씨는 상자에서 시거를 골랐다. 그게 다였다.
   이는 사람들이 이미 오래 전에 챔버스 씨가 그를 내버려두길 바란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동네의 젊은 세대는 이를 기행이라고 불렀다. 세련되지 않은 몇몇 이들은 또 다른 표현을 사용했다. 그리고 노인들은 검은 비단 머플러를 두르고 자단 지팡이를 짚고 보울러햇을 쓰고 다니는 별난 차림새의 남자가 옛날 주립 대학교의 교수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들은 챔버스 씨가 형이상학인지 하는 이상한 학문의 교수였음을 기억했다. 어쨌든지 간에 그의 이름은 무슨 소동, 학문적 스캔들에 연루되어 있었다. 그는 책을 한 권 집필했고, 집필한 책의 주제를 수업 시간에 가르쳤다. 주제가 뭐였는지는 이미 모두 오래 전에 잊어버렸지만, 무엇이었든지 간에 챔버스 씨가 대학에서 쫓겨나게 할 정도로 혁명적인 것이었다.
   챔버스 씨가 7시에 집을 나섰을 때 은빛 달은 굴뚝 너머로 은은히 빛났고 10월의 서늘하고 개구진 바람은 낙엽을 부스럭거렸다.
   가을의 맑고 상쾌한 공기와 멀리서 희미하게 흘러오는 탄 나무의 매캐한 냄새를 맡으며 그는 좋은 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20년 전보다는 약간 얌전하게 지팡이를 휘두르며 서두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오래된 외투의 빛바랜 옷감 아래로 머플러를 단단히 두르고 보울러햇을 좀 더 꽉 눌러썼다.
   챔버스 씨는 메이플 가와 제퍼슨 가가 만나는 모퉁이의 가로등이 꺼진 것을 눈여겨 보았고 경로를 이탈해서 새로 콘크리트를 붓고 그 주위를 막아놓은 816번지의 차도를 빙 둘러 걸어가며 조금 투덜거렸다.
평소보다 빨리 렉싱턴 가와 메이플 가의 모퉁이에 도착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챔버스 씨는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런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지난 20년 동안, 대학에서 제적된 이후로 그는 시계에 맞춰 살아온 것이다.
   언제나 같은 일을, 늘 같은 시간에, 매일 매일. 의도적으로 이렇게 판에 박힌 일상을 구축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적은 필요를 채워줄 충분한 돈이 있는 혼자 사는 독신 남자에게 때에 맞춘 생활은 조금씩 익숙해졌던 것이다.  
   그는 렉싱턴 가를 돌아 다시 오크 가로 돌아왔다. 오크 가와 제퍼슨 가 모퉁이에 있는 개가 오늘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그의 발꿈치를 깨물 것처럼 뒤를 쫓아왔다. 하지만 챔버스 씨가 모르는 척을 하자 개는 쫓기를 포기했다.
   거리로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라디오가 부르짖는 소리가 가느다란 조각이 되어 챔버스 씨에게도 흘러왔다.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사라졌습니다… 자취를… 저명한 과학자, 에드먼드 하코트 박사는…”
   바람이 들리지 않는 말을 휙 앗아갔고 챔버스 씨는 속으로 불평을 했다. 분명 또 말도 안되는 라디오 드라마인 모양이군. 그는 오래 전에 들었던 한 방송을 떠올렸다. 거기는 화성인이 나왔지. 그리고 하코트라니! 하코트는 왜 나온 건지? 그는 챔버스 씨가 쓴 책을 비웃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추론을 털어버렸고, 다시금 맑고 상쾌한 공기를 맡으며 그가 걸음을 옮김에 따라 늦가을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익숙한 것들을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아무 것도, 그가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허락할 것이라고는 정말로 아무 것도 없었다. 이것은 그가 20년 전 정한 원칙이었다.

***


   오크 가와 링컨 가 모퉁이에 있는 약국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흥분해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챔버스 씨는 흥분이 담긴 말을 얼핏 들었다: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는군… 뭐라고 생각하나… 과학자들도 설명을 못하는…”
   하지만 챔버스 씨가 다가가자 그들은 당황한 듯 입을 다물고서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기만 했다. 그리고 챔버스 씨는 그들을 봤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이렇게 지내왔다. 사람들이 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믿게 된 이후로 죽.
   사람들 중 한 명이 그에게 말을 걸려는 듯 다가오려다가, 다시금 뒤로 물러났다. 챔버스 씨는 산책을 계속했다.
   현관문 앞으로 돌아온 그는 걸음을 멈췄고, 지금까지 천 번도 더 했던 것처럼 주머니에서 묵직한 금 시계를 꺼냈다.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고작 7시 30분이다!
   긴 몇 분 동안 챔버스 씨는 그 자리에 서서 시계를 뚫어져라 비난하듯 쳐다보았다. 시계는 멈춘 것이 아니었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하지만 15분이나 빨리 오다니! 지난 20년 간 그는 날이면 날마다 7시에 집을 나서서 7시 45분에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는 그제서야 또 다른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시거가 없다. 사상 처음으로 저녁에 피울 담배를 사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챔버스 씨는 놀라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집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그는 현관의 옷걸이에 모자와 코트를 걸고 천천히 거실을 향해 걸어갔다. 가장 좋아하는 의자에 주저 앉아, 당황스러움을 느끼며 고개를 흔들었다.
   침묵이 방을 채웠다. 맨틀피스에 놓여진 고풍스러운 진자 시계의 째깍거림이 침묵을 측정했다.
   허나 챔버스 씨에게 침묵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그는 음악을 사랑했었다, 라디오를 틀어서 교향 악단의 연주를 찾으면 들을 수 있는 것 같은 음악 말이다. 하지만 라디오는 이제 플러그가 뽑힌 채로 묵묵히 구석에 서 있었다. 플러그는 수년 전 챔버스 씨가 뽑은 것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속보 때문에 교향악 방송이 중지되었던 밤에.
   그는 신문과 잡지를 잃는 것도 그만 두었고, 몇 블록으로 한정된 지역을 자신의 유배지로 삼았다. 그리고 해가 흘러감에 따라 자진 유배는 감옥이 되었고, 네 블록에 세 블록으로 제한된 넘어설 수 없는 무형의 벽으로 변했다. 그 너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전적인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 그 너머로는 절대 향하지 않았다.
   비록 이렇게 은둔하고 있었지만, 때때로 본의 아니게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신문팔이 소년이 거리에서 외치는 이야기, 그가 다가오는 줄 모르고 약국 앞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올해가 1960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유럽과 아시아에 일어난 전쟁이 불길로써 끝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그 후 끔찍한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고 병이 지금도 산불처럼 나라에 나라를 잇달아 삼키면서 세계 인구를 급속히 줄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염병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전쟁의 굶주림과 결핍과 비참함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었다.
   허나 그는 이러한 것들을 자신의 작은 세상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으로 여기며 저 멀리로 치워버렸다. 그는 이러한 소식을 무시했다. 들어본 적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일을 토론하고 걱정하고 싶어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면 된다. 그에게는 단순히 상관이 없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밤 일어난 두 가지 일은 그와 상관이 있는 일들이었다. 기이하고도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었다. 그는 15분이나 일찍 집에 돌아왔다. 그는 시거를 사는 것을 잊어버렸다.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는 천천히 미간을 좁혔다. 이런 일을 겪는 것은 매우 불안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오랜 유배가 드디어 그의 사고를… 아주 조금이지만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괴상하게 틀어버린 것은 아닌지? 그가 균형감과 원근감을 상실한 것은 아닌지?
   아니다, 그건 아니었다. 예로 지금 이 방을 보자. 20년이 지난 지금 이 방은 그가 입는 옷만큼이나 그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방의 세부사항은 단 하나도 남김없이 뚜렷하게 그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다. 초록색 천을 덮어둔 오래된 외다리 탁자와 스테인드글래스 전등, 먼지가 쌓인 골동품이 가득한 맨틀피스, 시간은 물론이요 요일과 달까지 알려주는 진자 시계, 타바렛에 놓여진 코끼리 재떨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인 바다 풍경화.
   챔버스 씨는 이 풍경화를 사랑했다. 이 그림에는 깊이가 있다고 늘 말하곤 했다. 전경에는 평온한 바다에 떠 있는 낡은 범선이 그려져 있었고, 저 멀리 거의 수평선에 닿을 정도로 먼 곳에는 더 큰 배의 희미한 윤곽선이 보였다.
   물론 다른 그림들도 있었다. 벽난로 위에 걸린 숲속 풍경, 그가 앉아있는 구석에 걸린 오래된 영국 그림들, 라디오 위에 걸린 커리어와 이브스 판화 등 말이다. 그러나 배 그림은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걸려있었다. 이 그림은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볼 수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라 그렇게 걸어둔 것이었다.
   챔버스 씨는 자신이 점점 피곤에 스러지는 것을 느꼈다. 생각을 더 하려면 애를 써야했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정의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모호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한 시간 동안 뜬눈으로 누워있었다.
   그가 드디어 잠에 들었을 때, 그는 일련의 끔찍한 악몽에 빠져들었다. 처음에 그는 바다 한 가운에 있는 작은 섬에 난파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섬 주변의 물은 바다뱀으로 들끓고 있었고, 뱀들은 천천히 섬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다른 꿈에서 그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상상할 수 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것에 쫓기고 있었다. 도망을 치려고 해도 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죽어라 다리를 움직이며 피스톤처럼 펌프질을 해댔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러닝머신에서 달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금 시커멓고 상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것이 그를 덮쳤고, 그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비명을 지를 수가 없었다. 입을 벌리고 성대에 힘을 주고 소리를 지르려는 욕구로 터질 듯한 허파를 채웠지만…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


   다음날 내내 그는 거북한 기분을 느꼈고, 그날 저녁 정확히 7시에 집을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재차 다짐을 시켰다: “오늘밤에는 잊어먹으면 안돼! 멈춰서 시거를 사야지!”
   제퍼슨 가 모퉁이의 가로등은 여전히 꺼진 채였고 816번지 앞 차로에는 아직도 울타리가 쳐져있었다. 모든 것이 어젯밤과 꼭 같았다.
   자, 레드스타 제과점이 다음 블록에 있지. 오늘밤에는 잊어버리면 안돼. 이틀을 연달아 잊어버리는 건 너무 심하잖아.
   그는 그 생각을 꽉 붙들고서 약간 빨리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는 모퉁이에서 대경실색하며 멈춰서고 말았다. 그는 당황해서 다음 블록을 내려다보았다. 주거 지역에 숨어있는 작은 가게를 알려주는 네온 사인도, 보도에 드리워진 반가운 불빛도 영 보이지가 않았다.
   그는 거리 명패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글을 읽었다: ‘그랜트’. 그리고 믿어지지가 않아 다시금 명패를 읽었다. 여기는 그랜트 가가 아니라 마샬 가여야 한다. 두 블록을 걸어왔고 제과점은 먀살 가와 그랜트 가 사이에 있다. 아직 마샬 가는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여기가 그랜트 가라니.
   설마 정신을 팔고 있다가 자기 생각보다 한 블록을 더 내려와버려 어젯밤처럼 가게를 지나쳐버린 건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챔버스 씨는 길을 되돌아갔다. 그는 제퍼슨 가로 돌아갔고, 다시 돌아서서 그랜트 가로 돌아가 렉싱턴 가로 들어섰다. 그리고 다시 그랜트 가로 돌아가 망연자실해하며 서 있을 때, 한 가지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 그의 머릿속에서 천천히 피어났다:
   제과점이 없었어! 마샬 가에서 그랜트 가까지의 블록이 사라진 거다!
   비로소 그는 전날 밤 그가 가게를 지나친 이유를 깨달았고, 그가 15분이나 일찍 집에 도착한 이유를 깨달았다.
   챔버스 씨는 죽은 것 같은 다리를 움직여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문을 쾅 닫고 잠근 후 위태로운 걸음을 옮겨 구석에 놓여진 의자로 향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무슨 뜻인가? 대체 어떤 터무니없는 마술을 쓰면 집과 나무와 건물이 있는 포장된 길이 통째로 사라지고 길이 있던 공간이 아물어버릴 수 있는 건가?
   격리된 삶을 사는 그가 전혀 모르는 일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었던 건가?
   챔버스 씨는 부르르 몸을 떨었고, 외투의 깃을 올리려고 손을 들었다가, 방이 따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손을 멈췄다. 확실히 벽난로의 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가 느낀 추위는 다른 것… 다른 곳에서 온 것이었다. 두려움과 공포의 추위, 반쯤 속삭여진 생각의 서늘함이었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 여전히 진자 시계로 측정되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 침묵은 지금까지 그가 느낀 침묵과는 다른 경향을 띄고 있었다. 포근하고 편안한 침묵이 아니라… 공허함과 무(無)를 암시하는 침묵이었다.
   무언가 뒤에 숨겨진 것이 있다고 챔버스 씨는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 깊은 구석으로 손을 뻗으면 닿을, 그가 알아봐주기를 바라는 무언가가 있었다. 약국 모퉁이에서 들은 이야기의 조각과 연결되는 무엇, 거리를 걸어갈 때 들었던 뉴스 방송과 이어지는 무엇, 신문팔이 소년의 외침과 맞닿는 무엇. 그가 자신을 격리시켜버린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무엇이었다.

***


   그는 그러한 소식들을 되새기며 우연히 듣게 되었던 이야기의 핵심 주제를 곱씹었다: 전쟁과 전염병. 유럽과 아시아의 인구가 거의 싹 사라졌다는 암시와, 전염병으로 황폐해진 아프리카와, 남미에 전염병이 나타났다는 소식과, 국내로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는 미국의 정신없는 노력.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수백 만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몇십 억명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끔찍한 수치는 그의 경험과 모종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인지 어디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그의 옛 삶의 한 부분이 이를 설명해줄 열쇠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애를 써봐도 어리둥절해하는 뇌는 해답을 찾아주지 못했다.
   진자 시계가 천천히 종을 치기 시작했다. 맨틀피스에 놓여진 백랍 꽃병이 종소리의 짝수 울림에 맞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챔버스 씨는 일어나서 문으로 걸어갔고,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달빛이 검은색과 은색의 격자무늬로 거리를 덮으며 은빛 하늘을 뒤로 하는 굴뚝과 나무를 검게 새겼다.
   그러나 길 건너의 집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이상하게 기울어져 있었고, 마치 갑자기 미쳐버린 집처럼 치수의 균형이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놀라서 건너편 집을 빤히 쳐다보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혀보려 했다. 그는 저 집이 빅토리아 시대 중기의 굳건한 정사각형 건축물이며 늘 곧게 서 있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서 집이 다시금 똑바로 일어섰다. 집은 천천히 몸을 곧추세우더니 뒤틀린 각도를 다려냈고, 넓이를 재정립하여 다시금 그가 잘 아는 마땅하고 단단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챔버스 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현관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문을 닫기 전에 그는 한 번 더 밖을 내다보았다. 집은 또 기울어져 있었다… 이전처럼, 아니, 어쩌면 아까보다 더 심하게!
   겁에 질려 침을 꿀꺽 삼키며 챔버스 씨는 문을 쾅 닫고 잠근 후 이중 빗장을 질렀다. 그리고 침실로 가서 수면제를 두 봉 먹었다.
   그날 밤의 꿈은 전날 밤과 똑같았다. 이번에도 배경은 대양의 작은 섬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그 섬에 홀로 있었다. 그리고 꿈틀거리는 바다뱀이 그가 발디딘 곳을 한입씩 확실하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는 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잠에서 깨어났다. 이른 아침의 희미한 빛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어왔다. 침대 옆 탁자에 놓여진 시계가 현재 시간이 7시 반임을 알려주었다. 그는 오랫동안 미동도 않고 그리 누워있었다.
   전날 밤의 기상천외한 일들이 누워있는 그를 다시금 덮쳐오기 시작했고, 그는 창밖을 내다보며 일어난 일을 하나씩 되새겨보았다. 하지만 아직 잠과 충격의 안개로 덮여있는 그의 마음은 사건을 그냥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곱씹었고, 사건을 둘러싼 환상적인 공포의 신랄함을 밋밋하게 만들었다.
   창밖의 빛이 천천히 밝아졌다. 챔버스 씨는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의 찬 기운이 발을 깨무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방을 가로질러 창문으로 걸어갔다. 그는 의지를 발휘해 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림자도 없었다. 마치 안개가 끼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아무리 짙은 안개라도 집 가까이에 자라나고 있는 사과나무를 가릴 수는 없을 터였다.
   나무는 있었다… 잿빛 속에서 어슴푸레하고 희미하게, 가지에 꽉 매달린 쪼그라든 사과를 몇 개 데롱거리는 채, 부모 가지를 떠나기 싫어하는 메마른 낙엽을 몇 매단 채로 말이다.
   지금은 나무가 있다. 하지만 그가 처음 밖을 내다봤을 때는 없었다. 챔버스 씨는 이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


   이제 그는 이웃집의 희미한 윤곽선을 보았다… 하지만 윤곽선은 모두 뒤틀려 있었다. 윤곽선은 조화를 이루며 맞춰져 있지 않았고, 수직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손이 집을 그러잡아 원래 위치로부터 비틀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어젯밤 그가 보았던 길 건너편의 집처럼, 그가 원래 어떻게 생겼는지를 떠올리자 힘겹게 다시금 몸을 곧추세웠던 그 집처럼 말이다.
   그가 옆집이 본디 어떻게 생겼는지를 떠올리면, 옆집도 제대로 설지 모른다. 하지만 챔버스 씨는 너무 지쳐있었다. 집에 대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그는 창문에서 돌아서서 천천히 옷을 입었다. 거실의 자기 의자에 풀썩 쓰러지듯 앉아서, 낡아 갈라진 발판에 발을 얹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는 그렇게 앉아서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갑자기, 마치 전류와도 같은 무엇이 그를 관통했다. 그러자 그의 속은 떠오른 생각에 힘이 쭉 빠졌고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몇 분 후 그는 일어나서 거의 달리다시피 방을 가로질러 벽에 등을 댄 오래된 마호가니 책꽂이로 향했다.
   책꽂이에는 책이 잔뜩 꽂혀있었다: 그가 사랑하는 고전이 맨 윗칸에, 그리고 여러 권의 과학 서적이 아래에 죽 꽂혀있었다. 두 번째 칸에는 책이 단 한 권 밖에 꽂혀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이야말로 챔버스 씨의 전생의 구심점이 되는 책이었다.
   그가 20년 전에 쓴 책, 속에 담긴 철학을 대학생들에게 가르치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했던 책이었다. 당시 신문들이 큰 소란을 일으켰음을 그는 기억했다. 무성한 말이 돌았다. 편협한 사람들은 그의 철학도, 목표도 이해하지 못했고, 그를 반 이성적 신흥 이론의 해설자라 여기며 대학에서 쫓아냈다.
   실은 아주 단순한 책이었고, 대부분의 권위자들에게 그저 지나치게 열심인 사람의 괴팍한 이론에 불과하다며 내쳐진 책이었다.
   챔버스 씨는 책을 꺼내 표지를 열고 천천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좀 더 행복했던 나날의 기억이 그를 덮어왔다.
   그리고 그의 눈은 한 단락에, 너무나 오래 전에 쓴 것이라 단어 하나 하나가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단락에 머물렀다:
   [오직 인간 만이, 집단 암시의 힘으로 이 지구의 물리적 운명을 자유한다… 그렇다, 우주까지도 말이다. 나무를 나무로, 집을 집으로, 거리를 거리로… 그외에는 다른 것으로 보지 않는 수십 억의 마음이 말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유지해주는 마음들… 이러한 마음들이 사라진다면 재생력을 잃어버린 물질의 근거는 마치 모래기둥처럼 허물어지며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의 눈은 계속 글을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이는 물질 자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그저 물질의 형태에만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마음이 오랜 세월의 걸쳐 그가 사는 공간의 이미지를 구성했다 해도, 마음이 이 물질의 실존에 뚜렷한 영향력을 미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며 절대로 파괴될 수 없다. 그저 바뀌고 변화할 뿐이다.
   허나 현대의 천체 물리학과 수학에서, 우리는 한 가지 가능성을 보게 된다… 그렇다, 가능성… 바로 다른 차원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리가 차지하는 시공을 침해하는 다른 시공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만약 바늘로 그림자를 찌른다면, 그림자가 이 바늘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럴 리는 없다. 그림자는 2차원이고 바늘은 3차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 다 같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다.
   오직 인간의 마음 만이 우주를 붙들고 있다고, 아니, 최소한 우주의 지금 형태를 유지해준다고 인정한다면, 한층 더 나아가 다른 차원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보고 기다리며, 물질의 지배권을 탈취할 수 있을 때를 교활히 기다리고 있는 존재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발상도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이중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결론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이 모든 물질의 구성을 제어하고, 우리 세계와 병렬하는 다른 세계들이 존재한다는.
   어쩌면 먼 훗날, 우리의 차원, 우리의 세계가 우리 발 아래 사라지고, 우리가 사는 바로 이 공간의 차원의 그림자 속에서 더욱 우월한 지적 존재가 나타나 우리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물질을 우리의 손에서 앗아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


   그는 멍한 눈을 벽난로의 불꽃에 고정한 채로, 책꽂이 옆에 넋이 나가 우뚝 서 있었다.
   그가 쓴 글이었다. 그는 이 글 때문에 이단이라고 불렸고, 대학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고, 이런 은둔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어지러운 생각이 그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전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 수천 명의 지성이 있던 지역에 이제 불과 한둘 만이 남았다. 물질의 형태를 제대로 유지하는 힘이 너무나도 연약해진 것이다.

***


   전염병은 유럽과 아시아의 사람들을 거의 전멸시키고, 아프리카를 파괴했고, 남미로까지 퍼졌으며… 이미 미국까지 왔을지 모른다. 그는 얼핏 들었던 속삭임과 약국 모퉁이의 사람들이 하던 이야기와 사라진 건물을 떠올렸다. 과학자들이 설명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정보의 파편에 불과했다. 그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몰랐고, 알 수가 없었다. 라디오를 듣지도 않았고 신문을 읽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갑자기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서 잃어버린 퍼즐 조각이 제자리에 들어가듯 착착 맞춰지기 시작했다. 일의 의의가 끔찍할 정도로 명쾌하게 그를 사로잡았다.
   물질 세계의 평범한 형태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지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차원의 어떤 힘이 인간의 통제력을 갈취해 그의 우주를 자기의 차원으로 가져가려고 싸우고 있다!
   챔버스 씨는 책을 탁 닫아 다시 책꽂이에 꽂은 후 모자와 외투를 집었다.
   그는 좀 더 알아야만 했다. 그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는 현관을 지나 현관문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섰다. 길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태양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하늘에는 태양이 없었고… 오직 모든 것을 덮는 회색만이 사방에 퍼져있었다. 회색 안개가 아니라, 생명도 움직임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회색의 무(無)뿐이었다.
   길은 대문에 닿으며 끊어졌지만, 그가 걸음을 옮기자 보도가 눈에 들어왔고 회색으로부터 앞집이, 형태가 달라진 앞집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서둘러 걸어갔다. 시계(視界)는 몇 피트에 불과했고 거리의 집들은 그가 가까워질 때에야 겨우 원근감을 잃은 2차원의 그림처럼, 안개낀 아침에 사찰을 위해 줄을 서는 뒤틀린 종이 병정들처럼 나타났다.
   멈춰서서 뒤를 돌아봤을 때 그는 회색이 그의 등을 포위하고 있음을 보았다. 집들은 싹 사라지고 없었고 보도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는 누군가의 주의를 끌기를 바라며 소리를 질러보았다. 그러나 자신의 목소리에 겁에 질리고 말았다. 소리는 마치 머리 위 높은 곳의 큰 방이 열리기라도 한 것처럼, 하늘의 높은 곳까지 탄환처럼 솟구치는 듯했다.
   그는 렉싱턴 가 모퉁이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걸어갔다. 그리고 모퉁이에 멈춰서서 앞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 곳의 회색 벽은 한층 더 두꺼웠지만, 그는 땅을 내려다보고 연석 너머로 아무 것도, 정말로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벽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젖은 아스팔트의 둔한 번쩍임도, 거리의 징표도, 아무 것도 없었다. 메이플 가와 렉싱턴 가 모퉁이에서 영원이 끝나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요란한 비명과 함께 챔버스 씨는 돌아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에 외투를 휘날리며, 머리의 보울러햇을 펄떡이며 그는 왔던 길을 도로 달려갔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대문을 열었고 집이 아직 존재하는 것에 감사하며 집으로 향했고, 현관문의 계단에 잠시 멈춰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보았을 때, 마치 속이 굳어버리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그를 가득 채웠다. 그 순간 회색의 무(無)가 연하게 변하며… 모든 것을 감싸는 장막이 걷혔고, 그는 보았다…
모호하고 흐릿하지만, 입체적 윤곽선을 그리는 거대한 도시가 거뭇한 하늘을 배경으로 드러나 있었다. 입방형의 돔과 첨탑, 공중 다리와 벽받이로 가득한 신기한 도시였다. 양옆으로 철제 진입로와 활주로가 펼쳐지는 터널 같은 거리가 소실점까지 끝없이 뻗어나갔다. 거대한 다색의 빛줄기가 고층 너머의 펄럭이는 깃발 장식과 투원을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는 최후의 배경과도 같은 거대한 벽이 솟아있었다. 챔버스 씨는 저 벽, 총안을 갖춘 난간과 흉벽으로부터 그를 쳐다보고 있는 시선을 느꼈다.
수천 개의 눈이 단 한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또 다른 무언가가 벽 위에서 형태를 띄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용돌이치고 뒤틀리는, 빛의 줄기였다가 순식간에 합체하여 정확한 선도 세부도 없이 괴상한 기하학적 형상으로 변하는 무늬였다. 무늬는 거대한 얼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력과 악으로 가득한 얼굴로 변했고, 얼굴은 악의로 가득한 침착함을 담은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


다음 순간 도시와 얼굴은 초점을 잃고 사라졌다. 보이던 것이 불이 꺼진 환등기처럼 자취를 감추자 다시금 회색이 모든 것을 덮었다.
챔버스 씨는 현관문을 열었다. 하지만 잠그지는 않았다. 자물쇠는 소용이 없었다… 더 이상은.
벽난로에서 석탄이 아직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벽난로로 다가가 불씨를 일깨우고 재를 쓸어내고 나무를 더 얹었다. 불꽃은 활기차게 솟아오르며 굴뚝의 목구멍에 닿을 정도로 높이 춤을 췄다.
그는 외투도 모자도 벗지 않고서 가장 좋아하는 의자에 지친 몸을 뉘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방이 여전한 것을 보고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있었다: 시계도, 전등도, 코끼리 재떨이도, 벽에 걸린 바다 풍경화도.
모두 그대로였다. 시계는 정연한 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침묵을 측정했고, 갑자기 종이 울리자 언제나처럼 꽃병이 그에 맞춰 공명했다.
여기는 그의 방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방은 방에 사는 사람의 성격을 가지게 되고, 그의 일부가 된다. 여기는 그의 세계, 그의 개인적 세상이었으며, 그러니만큼 최후에 사라질 곳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는… 그의 뇌는… 아픙로 얼마나 더 존재할 수 있을까?
챔버스 씨는 바다 풍경화를 응시했고, 잠시 동안 안도의 작은 한숨이 그에게로 돌아왔다. 그들도 이것은 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다른 세상은 외부적 형태를 유지하게 해줄 생각의 힘이 부족해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이 방은 그의 것이었다. 그가 혼자서 꾸민 방이었다. 이 건물을 계획한 사람이 그였기 때문에, 여기 산 사람도 그 뿐이었다.
이 방은 남을 것이다. 남아야 한다… 반드시 남아야…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을 가로질러 책꽂이로 걸어갔고, 책꽂이 앞에 서서 단 한 권의 책이 꽂힌 두 번째 칸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가 맨 윗칸으로 눈을 돌렸을 때, 날렵한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다.
책이 다 꽂혀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라진 책이 아주 많았다! 가장 아끼는, 가장 친숙한 책만이 남아있었다.
여기서도 이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친숙하지 않은 책은 사라졌다. 이는 양식대로다… 가장 낯선 것부터 사라지기 시작할테니 말이다.
그는 빙글 돌며 방을 둘러보았다. 탁자의 전등이 흐릿하게 번지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건 그의 착각인가, 아니면 실제로 그러고 있는가?
하지만 그의 시선 아래 전등은 다시 또렷해지며 단단하고 튼튼한 물건으로 변했다.
잠깐 동안 진정한 공포가 서늘한 손가락으로 그를 건드렸다. 그는 이 방 또한 이제 거리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면,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기는 할까? 이 모든 일이 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닐까? 거리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웃는 아이와 짖는 개로 가득차 있는 것은 아닐까? 레드스타 제과점이 여전히 존재하며, 거리를 네온사인의 붉은 빛으로 적시고 있지는 않을까?
그가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주부들이 그가 지나가는 줄을 모르고 속삭이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가 걸어갈 때 소년들이 외치는 말도 들었다. 그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가 정말로 미쳐버린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는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제정신인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 오직 그 만이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다른 이들은 그의 주장을 비웃었었다.
어딘가의 한 거리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거리일 것이다. 아이들 또한 의심할 여지 없이 다른 아이들일 것이고.
거리와 거리에 있었던 모든 것을 구성하던 물질은 다른 차원의 다른 마음들에게 훔쳐져 다른 틀에 부어질 것이니 말이다.
[어쩌면 먼 훗날, 우리의 차원, 우리의 세계가 우리 발 아래 사라지고, 우리가 사는 바로 이 공간의 차원의 그림자 속에서 더욱 우월한 지적 존재가 나타나 우리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물질을 우리의 손에서 앗아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먼 훗날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그가 예언과도 같은 말을 쓰고 고작 몇 년이 흐른 후에 벌써 그 일이 일어나버렸으니 말이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새 다른 차원의 다른 지성의 계략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인간은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이 역병을 낳았다. 막대한 일련의 사건은 거대한 계획의 세부 사항에 불과했다.
   이제 그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다른 차원의 부하들이… 또는 최상의 지성 하나가… 교활한 집단 최면을 사용하며 찬찬히 불화의 씨를 심었던 것이다. 세계의 정신력을 줄이는 일은 악마와도 같은 계획성을 번뜩이며 조심스럽게 진행된 것이다.
   그는 충동적으로 갑자기 훽 돌아서 방을 가로질러가, 침실로 연결되는 문을 열었다. 그는 문지방에서 멈춰섰고, 울음이 기어코 그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침실은 없었다. 견고한 사주식 침대와 서랍장이 있던 자리는 회색의 무(無)로 채워져 있었다.
그는 로보트처럼 돌아서서 현관의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이번에도 예상한 것을 발견했다. 현관은 없었고, 낯익은 모자 걸이와 우산 꽂이도 없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챔버스 씨는 힘없이 구석의 의자로 돌아왔다.
“나만 남았군.”
그가 나직히 말했다.
그는 남아있었다. 그에게 남겨진 세계의 마지막 한 구석에 포위당한 채.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한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의 변천을 시도하는 무(無)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 사랑하는 것들과 밀접히 생활하며 마음의 힘으로 물건에 너무나도 참다운 형태를 부여해서, 이제는 더욱 큰 마음의 위력에 홀로 맞서게 된 사람들.
거리는 사라졌다. 집의 다른 부분도 모두 사라졌다. 이 방만이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방이 가장 오래 갈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방의 다른 부분이 다 사라져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의자가 놓여진 이 구석은 남을 것이다. 이 자리야 말로 그가 지난 20년간 살아온 자리이기 때문이다. 침실은 잠을 위해, 부엌은 식사를 위해. 그리고 이 방은 살기 위한 곳이었다. 여기는 그의 마지막 보루였다.
이 벽과 바닥과 그림과 전등은 그의 의지를 빨아들여 벽과 그림과 전등으로 존재해온 것들이었다.
그는 창문 너머의 텅 빈 세계를 바라보았다. 이웃의 집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들은 그가 이 방과 함께 살듯이 집과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흥미는 나뉘어 있었고 얇게 퍼져 있었다. 그들의 생각은 그처럼 네 블록에 세 블록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나, 14피트에 12피트로 이루어진 방에 집중되어 있지 않았다.

***


창밖을 내다보다, 그는 그것을 또 보았다. 전에 올려다 보았던 바로 그 광경,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달라진 광경이었다. 하늘에는 빛에 감싸인 도시가 있었다.
타원형의 탑과 작은 탑, 입방체의 돔과 총안이 있는 흉벽. 그는 공중 다리와 끝없이 뻗어나가는 번쩍이는 대로의 입체적인 모습을 매우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광경은 한층 더 가까워져 있었지만, 깊이와 비율은 바뀌어 있어서… 마치 두 개의 동심 각도에서 동시에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얼굴… 거대한… 무한한 술책과 악의 힘으로 거대한 저 얼굴.
챔버스 씨는 다시 방으로 눈을 돌렸다. 시계는 천천히, 차분히 째깍거리고 있었다. 회색이 방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제일 먼저 탁자와 라디오가 사라졌다. 그저 희미해지며 사라졌고, 그와 함께 방의 한 구석도 사라졌다.
그 다음은 코끼리 재떨이였다.
“아, 어쩔수 없지. 어차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어.”
챔버스 씨가 말했다.
그렇게 앉아있노라니 탁자도 라디오도 없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어쩌면, 만약 그가 열심히 생각을 한다면,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단 한 명뿐인 사람이 무(無)의 거부할 수 없는 행군을 막을 수 있을리 없었다. 혼자인, 단 한 사람이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있을리가.
그는 다른 차원에서 코끼리 재떨이가 어떤 모양일지를 궁금하게 여겼다. 코끼리 재떨이는 분명 아닐테지. 라디오도 라디오가 아닐게다. 침범하는 차원에 재떨이나 라디오나 코끼리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는 자기 자신이 결국 미지에 빠져버렸을 때 어떤 모습일지를 또한 생각했다. 재떨이와 라디오가 물질이듯 그 또한 물질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자신의 개성이 남아있을지가 궁금했다… 그가 여전히 사람일지가. 아니면 그저 물건이 되려나?
이 모든 질문의 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그는 영 알 수가 없었다.
무(無)가 차츰차츰 방을 먹어치우며 그를 향해 전진해왔고, 전등 아래 의자에 앉아있는 그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오기를 기다렸다.
방은, 아니, 방의 남아있는 부분은 무시무시한 침묵에 빠져들었다.
챔버스 씨는 펄쩍 뛰었다. 시계가 멈춘 모양이다. 이상한 일이다… 20년 만의 처음이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앉고 말았다.
시계는 멈춘 것이 아니라.
없었다.
그의 발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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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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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래유거 16.08.21 02:44 댓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기발한 소재와 짜임새 있는 구성의 걸작이네요.

    랭고리얼이란 영화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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