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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天火)

왕진캉(王晉康)

57간부학교에서 2년의 세월을 보내고 다쓰(大寺)중학교 물리연구실로 돌아왔다. 하늘에는 핏빛 붉은 노을이 깔려있었고 벽에는 검은색 표어 자국이 마치 어제 쓴 것 같았다. 문 뒤에 붙은 시간표에는 거미줄이 가득해 마치 전생의 유물 같았다.

나는 여전히 나인가? 시대적 운은 없지만 자기 재능을 자부했던 물리교사인가?

비판투쟁대회에서 어떤 학생이 나를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던 순간 머릿속에서 번쩍하고 하얀 섬광이 일었고…… 나는 그 하얀빛을 따라 우주 깊숙한 곳으로 떨어져 이곳에는 텅 빈 껍데기만 남았다.

서랍 속에 편지 한 통이 놓여있었다. 편지 위에는 먼지가 가득 내려앉아 있었다. 글씨체가 다소 약하고 수려한 것이 여학생의 필체였다. 행간에서 혼란스러움과 공포가 묻어났다. 이것은 편지를 펼친 순간 느낀 직감이다.

‘허 선생님께

저는 샹슈란(向秀蘭)이라고 합니다. 5년 전 선생님 반을 졸업했습니다. 선생님은 아마 기억 못하실 것입니다…….’

나는 그녀를 기억했다. 그녀는 공부나 성격, 외모 등 모든 면에서 특별할 것이 없는 여학생으로 쉽게 잊히는 부류였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그녀는 길에서 우연히 나를 만날 때마다 늘 눈을 내리깔고 작은 목소리로 “허 선생님”이라고 불러 인상이 깊게 남았다. 그때는 이미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학생이 거의 없었던 터였다.

‘……하지만 선생님, 린톈성(林天聲)은 기억하실 테지요. 선생님은 그를 매우 아끼셨어요. 선생님이 오셔서 그를 구해주세요…….’

린톈성!

공포와 함께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다. 여러 해 동안 교편을 잡으면서 특출난 자질을 가진 천재형 학생이 해마다 있었다. 린톈성은 그중에서도 가장 특출난 학생이었다. 나는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지만 동시에 걱정이 많이 되기도 했다. 날카로운 다이아몬드일수록 연약해 세상이라는 돌에 부딪쳐 부서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린톈성은 머리는 매우 큰 반면 몸은 약해서 마치 암석 밑에서 가녀린 새싹이 간신히 뻗어 나온 것처럼 생겼다. 그는 성격이 차갑고 괴팍했으며 남에게 환심을 사려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아 또래와 어울리지 못했다. 사실 나는 그가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는 늘 혼자였고 고개를 숙이고 느릿느릿 걷다가 발끝으로 돌을 걷어차곤 했다. 그의 우울한 눈빛을 보면 나는 늘 ‘순교자’ 유화가 떠올랐다. 나중에야 그가 ‘교화 가능한 자녀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우파로 1957년 자살했다. 나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는 이런 껍데기로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학업 성적이 출중하지 않은 학생이었다. 우연한 발견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물리학 시간에 나는 그가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면서 생각에 잠긴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하늘만이 알 터였다. 그는 이따금 숙제 노트를 넘겨 빠르게 몇 줄 적었다가 잠시 뒤 그 장을 찢어서 구겨버리곤 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호기심에 그가 버린 종이 뭉치를 주워 펴보았다. 연필로 휘갈겨 쓴 몇 줄의 글에 광기가 서려 있었다. 그의 필체라고 믿기지 않았다. 평소 그의 글씨체는 그의 성격처럼 차갑고 신중했기 때문이다. 나는 겨우 글씨를 읽어내려갔다.

‘우주는 시간과 공간적으로 무한하다(그렇지 않으면 시작 이전과 경계 밖은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우리 이전 ‘절반’의 무한 속에서 우주가 이미 성숙했다면 어떻게 이렇게 젊은 은하와 젊은 입자, 젊은 문명이 생길 수 있었겠는가?

나는 진동우주론 가설을 믿는다. 우주의 시작은 우주달걀이었고 이것이 폭발해 사방으로 빠르게 팽창했다(지금도 팽창 중이다). 수십억 년 뒤 이것은 중력 작용에 의해 중심을 향해 떨어지고 붕괴되어 새로운 우주달걀이 된다.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이어진다.

하지만 나는 이 우주에 우주달걀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천동설과 지동설의 신판이다! ‘무한’은 중심이 없다! 논리 오류다!’

감탄부호 몇 개를 어찌나 세게 눌러 썼는지 종이 뒤까지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이 글을 쓸 때 그가 얼마나 격앙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어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약 폭발한 물질이 유한한 속도(천문학자들이 말하는 적색이동 속도로 광속보다 느리다)로 팽창한다면 이것이 무한 공간에 도달하는 시간은 필연적으로 무한한데 어떻게 ‘주기’적 진동을 형성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유한 공간(설령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공간이라고 할지라도)까지 팽창했다가 수축한다면 이것은 무한 공간에서는 보잘것 없는 한 점에 불과할 텐데 어떻게 우주의 형성을 대표할 수 있단 말인가?’

다음 줄은 글자에 죽죽 줄을 그어 간신히 읽었다. ‘어쩌면 우주는 무한개의 진동하는 소우주로 구성됐고 무수한 우주달걀이 번갈아 부화하는 게 더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얼마나 예리한 생각의 싹인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그는 이것을 왜 지워버렸을까? 스스로 확신할 수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기 싫어서였을까?

뒷장에 몇 줄이 더 있었다. 그러나 필체는 많이 달라져 정돈되어 있었고 행간에서 처량한 기운이 느껴져 중학생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영원히 ‘인간’에게 인정받을 수 없는 가설이다. 만약 이것이 진짜라면 모든 것이 끝난 뒤 모든 문명은 사라지고 심지어 다음 겁(劫)의 새로운 ‘인간’에게 어떤 흔적도 남길 수 없을 것이다. 이전 겁에도 지금의 나처럼 열심히 규명한 중학생이 있었을까?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의 글을 읽는 내내 나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온몸이 화염에 휩싸인 것처럼 뜨거워졌다. 마치 우주에 천화가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 청백색 화염이 무한을 삼켜버리고 카오스 속에서 낮고 무거운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는 듯했다.

나는 연약한 몸에 이토록 거대한 생각과 이토록 명쾌한 사유와 이토록 처량하고 깊은 감정이 담겨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백여 년 전 한 유대인 소년이 물체가 빛의 속도로 달리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에 대해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사고 실험으로 일반상대성이론의 틀이다. 린톈성이 제2의 아인슈타인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천문학자가 그의 메모를 본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간단명료한 추론일수록 신뢰할 만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한 다음의 말처럼 말이다.

‘자애롭고 전능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세상에는 죄악이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단순한 추론이지만 누구도 이것을 반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 세상에는 죄악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톈성의 논박은 뒤집을 수 없는 것이고, 인정하기만 하면 광속은 속도의 극한이다.

나는 그의 메모를 노트 사이에 조심스럽게 끼워 넣으면서 그가 이렇게 가치있는 생각의 싹을 얼마나 많이 버렸을까 하니 마음이 아팠다. 고개를 들자 톈성이 말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톈성, 앞으로 이런 메모가 있으면 나에게 주겠니? 내가 보관하마.”

톈성은 고맙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우리 두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소중하게 보관한 메모들은 집 수색 때 모두 잃어버렸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들을 떨쳐내고 샹슈란의 편지를 다시 읽어내려갔다.

‘……허시(河西)대대로 내려온 학우들은 모두 떠나고 톈성과 저만 남았어요, 그는 미신에 빠졌고요(문맥이 맞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평가를 하고 있었다). 무슨 벽통과술이라는 것에 푹 빠졌어요. 무서워 죽겠어요. 민병이 그를 잡아갈까봐 걱정이에요. 아무리 말려도 도무지 듣지를 않아요. 허 선생님, 톈성이 제일 존경하는 분인 선생님이 오셔서 제발 그를 구해주세요!’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외양간 에서 갓 풀려나 조심조심 겨우 살아가고 있는 마당에 다른 사람을 구할 자격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편지 한 장이 천근같이 무거웠다. 편지에는 한 여자아이의 공포와 기대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편지 끝에 날짜도 없고 소인도 식별하기 어려웠다. 아마도 이 편지는 2년 전에 온 것 같았고 그사이 무슨 일이 생겼다면 진작에 생겼을 것이다……. 내가 큰 기대를 걸었던 학생이 벽통과술 같은 것에 빠졌을 리가 없었다. 사람들이 오해한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이튿날, 나는 끽끽 소리가 나는 자전거를 빌려 허시향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허시향은 내가 학생들을 인솔해 농사 노동을 하러 자주 갔던 곳이라 길을 잘 알았다.

지면이 울퉁불퉁해 내 생각이 마치 유성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내 물리 수업도 유성처럼 자유롭고 거리낌 없었다. 나는 중국의 아이들을 멍청한 꼭두각시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수업시간이면 나는 자유롭게 수업을 진행하면서 지혜로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날카로운 식견과 깊은 차원의 미묘한 느낌을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 주입했다. 지금까지 내 학생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지나치게 변화가 없고 경직된 중국 사회를 탓하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학생들은 내 물리 수업을 좋아했다. 40여 개의 머리가 나를 따라 움직였다. 그 자체가 나에게는 기쁨이고 보상이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제일 먼저 나에게 창끝을 겨누었다. 비판투쟁대회 단상에서 나는 어쨌든 학생들도 내가 다른 선생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번은 수업시간에 블랙홀에 대해 설명했다. 블랙홀은 예언은 됐지만 아직 증명되지 않은 천체로 질량이나 밀도가 매우 커 블랙홀의 인력이 주변 물질을 모두 삼켜버려 빛도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신기했는지 앞다퉈 질문을 해댔다. 블랙홀에 빠진 우주인은 빨려 들어가는 심경이 어떨까요? 삼켜진 물질은 어디로 가나요? 물질은 무한히 수축될 수 있나요? 빛도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인간은 블랙홀 내부의 신비를 영원히 알 수 없는 건가요? 등등.

나는 백색왜성에 대해서도 말했다. 백색왜성은 항성 진화의 마지막 단계로 밀도는 0.6t/㎤에 달한다. 중성미자에 대해서도 말했다. 중성미자는 정지질량이 0이고 전하를 갖고 있지 않으며 0.04초 만에 지구를 가볍게 통과할 수 있다.

어쩌다 보니 청나라 때 포송령이 지은 괴이소설집인 <요재지이(聊齋志異)>에 나오는 벽을 치고 들어간 노산대사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도의 요가 가운데 벽통과술이 있다고 들었다. 기록에 따르면 한 요가 수행자가 인도 과학자들이 보고 있는 상태에서 벽을 통과하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인도의 요가, 중국의 기공이나 인체의 특이한 기능에 대한 기이한 이야기가 많다. 예를 들어 의식 집중만으로 병 너머 물건을 잡는다든지 텔레파시 같은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런 전설은 상당히 보편적이어서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런 말은 모두 헛소리지만.”

학생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댔지만 린톈성만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깊고 어두운 블랙홀 같았다. 그가 일어나 말했다.

“1910년 천문학자가 지구와 혜성이 부딪친다고 예언에 전 세계가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며 공포에 떨었습니다. 이 예언은 적중했습니다. 거대한 혜성이 지구를 훑고 지나갔죠. 하지만 지구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혜성의 꼬리는 매우 희박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밀도가 10-22g/㎤ 보다 작기 때문에 지구상에 만들 수 있는 진공보다 더 ‘텅 빈’ 상태를 만들 수 있다.”

내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지구에 혜성의 꼬리가 통과하기 전까지 누가 이것을 알았죠?” 

린톈성이 눈빛을 반짝이며 내 말을 받았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그들은 아마 이것이 벽통과술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린톈성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만이 그의 생각의 갈피를 알아챘다. 그의 생각은 몇 단계 비약한 것으로 그 순간 나는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공명하는 것은 나에게도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손을 흔들어 학생들을 조용히 시켰다.

“톈성 말이 맞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인간은 종종 고정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새로운 개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치부한다. 몇백 년 전 인간은 지동설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 이유는 태양이 지구를 돌면서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을 그들이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또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은 천장에 거꾸로 설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지구 아래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분명한 사실에서 출발해 거의 정확한 결론을 내리고 경솔하게 새로운 개념을 부정했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고집스러움을 비웃지만 우리의 후손도 우리를 비웃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나는 잠깐 멈추고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인간은 벽을 통과할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도 당연하고 변하지 않는 최후의 결론이라고 볼 수 없다. 프로펠러 비행기가 발명되자 비행기에 기관총을 장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빠르게 회전하는 프로펠러 날이 총알의 장애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셀신장치가 발명되어 총알이 프로펠러 날 틈을 통과할 수 있게 되고 나서야 이 장애물이 제거되었다. 빛은 암석을 통과할 수 없지만 이산화규소, 탄산나트륨, 탄산칼슘을 혼합해 융화시키면 투명한 유리가 된다. 같은 원자지만 원자 배열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을 뿐인데 빛이 통과하게 된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멈추고 생각을 정리한 다음 계속 말했다.

“우리 눈에 신체는 통과할 수 없는 치밀체처럼 보이지만 빛을 조절하면 통과할 수 있다. 지구는 더 통과할 수 없는 치밀체지만 중성미자는 쉽게 지구를 통과한다. 따라서 어떤 개념이 절대적으로 정확하고 고정불변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은 내 말에 놀랐는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유 방법을 제시해 너희들이 생각의 벽을 허물도록 하기 위해서지 무슨 도가나 요가의 신통력을 믿으라고 하는 게 아니다. 톈성, 선생님 말이 맞지? 주문을 외우면 벽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학생들은 웃음을 빵 터뜨렸지만 린톈성은 미소를 지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나는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명확한 추론법을 제시했지만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멈추고 독선적인 비아냥으로 새로운 생각의 싹을 잘라버린 것이다.

이것은 내가 경멸하던 사람들이나 쓰는 방식이었다.


허시향에 도착하니 해가 이미 서쪽으로 저물고 있었다. 황금빛 노을을 배경으로 황소가 느릿느릿 마을로 돌아가고 있었고 소 주인이 둘러멘 멍에가 땅에 끌리면서 낭랑한 소리를 냈다. 논두렁에서 농민이 삼삼오오 모여 고구마 줄기를 줍고 있었다. 한 할머니에게 말을 물었더니 그녀는 어둑어둑한 중에도 나를 알아보았다.

“허 선생님 아니에요, 그 애들 보러 왔나 봐요? 그 둘 불쌍해요!” 

그녀는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다른 사람은 다 떠나고 그 둘만 남았는데 생활력도 없고. 봐요, 빨리 와서 고구마 줄기라도 줍지 무슨 사랑놀음이냐고요. 배가 고프면 어디 사랑놀음할 힘이나 있겠어요?”

그녀는 그 둘이 저녁만 되면 황하 강변으로 나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온다고 말했다. 그녀는 턱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바로 그 신상 아래에 있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마을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강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그 노인이 대단한 철학가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평범한 서민의 생존 진리를 꿰뚫고 있었다. 바로 최선을 다해 배를 채워라.

철학 이야기가 나오니 또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60년대 초, 일본의 물리학자 사카타 쇼이치가 물질은 무한히 쪼갤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마오쩌둥 주석은 즉시 그를 자발적으로 변증법적 유물주의로 과학을 이끈 첫 번째 과학자라고 말했다. 이 소식이 퍼지자 전국적으로 학습에 나섰다.

나는 예전부터 정치적 권위로 학술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트로핌 리센코 같은 학술 사기꾼만 늘어날 뿐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물질을 무한히 쪼갤 수 있다는 이론을 설명하면서 나는 양심의 가책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정말 믿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이론을 듣는 순간 나는 영혼의 떨림과 마음의 공명을 느꼈다! 나는 시대의 위인은 천고를 꿰뚫는 철인의 눈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수업시간에 나는 열정적으로 설명했고 학생들은 내 강의에 심취했다. 린톈성을 포함해서 말이다.

저녁 무렵, 나는 큰 머리의 그림자가 내 숙소 앞에서 오랫동안 배회하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를 불러들여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린톈성은 한참을 주저하더니 툭 던지듯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정말 물질을 무한히 쪼갤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생각에는 굴레가 없다고 허풍을 떨었고 나와 린톈성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해도 고압적인 정치 분위기 속에서 이런 말을 꺼낸다는 것은 너무 대담한 행동이었다. 나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나는 정말 믿는다. 너는 어떠냐?”

린톈성은 다시 한참을 망설였다.

“선생님, 현재 물질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겨우 몇 개 층에 도달했을 뿐이에요. 은하계, 은하단, 항성계, 천체, 분자, 원자, 핵자, 쿼크요. 이런 몇 개 층에서 물질을 나눌 수 있다는 개념은 적절하지만 최후의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나는 마음이 놓여 웃으며 말했다.

“수학적 귀납법에 따르면 ‘n+1’ 단계가 증명되기 전에는 어떠한 가설도 정리(定理)로 쓰일 수 없다. 하지만 이전 몇 단계가 어떤 법칙에 부합하고 그것을 뒤집을 만한 충분한 논리가 없다면 기존의 법칙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린톈성이 갑자기 말했다.

“사실 저도 믿어요. 선생님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 깊숙한 곳에 있는 줄이 갑자기 튕겨지면서 웅웅 소리를 내는 것 같았어요.”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다시 한번 지극히 조화로운 결합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린톈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선생님, 제가 다른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이미 알고 있는 층의 물질 구조로 봤을 때 물질의 ‘실체’는 해당 층 공간의 작은 부분만을 차지합니다. 항성계의 천체, 원자 속 전자와 원자핵처럼요. 게다가 중성미자가 어떤 물질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은 예측할 수 있는 층에도 큰 공간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선생님, 제 추론이 맞나요?”

나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대답했다.

“내 생각에는 맞는 것 같다. 내 직감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이다. 이것은 몇 가지 과학 가설과 서로 반증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빅뱅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시초는 하나의 작은 우주달걀로 팽창한 뒤에 형성된 물질에는 모두 공간이 있다.”

린톈성은 화제를 돌렸다.

“선생님, 사냥개가 토끼를 쫓는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죠. 사냥개가 토끼의 100미터 뒤에 있고 속도는 토끼의 2배라고요. 사냥개가 100미터를 쫓아오면 토끼는 다시 50미터를 도망가고, 50미터를 쫓아가면 토끼는 다시 25미터를 달아나고요……. 이것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냥개가 토끼를 금세 따라잡아요. 무한등비급수가 0으로 향하기 때문이지요.”

나는 흠칫 놀랐다. 그의 말뜻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린톈성은 자신의 생각을 계속 말했다.

“물질의 각 층 구조에서 실체 부분은 해당 층 공간의 일부만 차지하고 다음 층에서 실체는 또 위 층 실체 부분의 약간 부분을 차지합니다. 차지하는 비율은 다르지만 모두 1보다는 훨씬 작습니다. 이는 이미 알려진 층 구조를 근거로 해서 같은 귀납법으로 얻은 추론입니다. 그래서, 물질 구조를 층층이 해부하면 우주 속 물질의 실체의 총 부피는 등비급수가 됩니다.

만약 귀납법으로 물질을 무한히 쪼갤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면 같은 귀납법으로 물질의 실체 부분은 0에 가까워집니다. 따라서 물질은 그저 공간의 존재 형식으로 여러 층의 역장(力場)의 속박을 받는 뒤틀린 공간입니다. 선생님, 제 생각이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의 생각에 정말 놀랐다.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거대한 줄이 웅웅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나의 생각이 천천히 진동하는 파구를 타고 우주 깊은 곳으로 날아가 신비한 천뢰를 엿들은 것 같았다.

내가 한참 동안 말이 없자 톈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제 생각의 어떤 부분이 틀렸습니까?”

조급한 듯이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서 불꽃이 일렁이는 것이 마치 하늘의 불을 훔쳐 달아나는 프로메테우스의 눈동자에 비치는 불꽃 같았다. 순교자 같은 톈성의 열정에 나는 부끄러워져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니? 뉴턴,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아니면 호킹, 마오쩌둥? 전부 아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중학교 물리학 교사일 뿐이다. 재능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이미 오래전에 시들어 죽었다. 나는 너를 평가할 수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문밖에서 벌레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탄식하며 말했다.

“정말 이상하구나. 너는 네 근원은 텅 빈 공허일 뿐이고, 부지런한 탐구도 결국 우주의 카오스로 귀결된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강렬한 탐구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지?”

톈성은 웃으며 간결하게 말했다.

“속세를 꿰뚫어 보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죽는 줄 알면서도 열심히 살 길을 찾는.”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청백색 유성이 밤하늘을 가르며 떨어지다 사라졌다. 세상은 무겁고 느린 리듬 속으로 조용히 가라앉았다.

나는 긴 탄식을 내뱉었다.

“나는 네가 생각의 날카로움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그 예리함이 무뎌지지 않도록 잘 간직했다가 신중하게 사용하길 바란다. 쉽게 접으면 안 돼. 톈성, 선생님 말 기억할 수 있지?”


강변은 지형이 험준했다. 천만 년 동안 황토고원이 침식된 결과로 대자연이라는 조각가가 만든 작품이었다. 가까운 들판까지 석양이 내려앉았고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할머니가 말한 신상은 위인의 조각상이었다. 예술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문화대혁명 특유의 판에 박힌 모양이었다. 그러나 천고의 강물과 핏빛 붉은 노을이 어우러지니 제법 위풍당당해 보였다.

어둠 속에서 작은 그림자가 나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샹슈란이니? 허 선생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샹슈란은 와 하면서 뛰어나왔다. 2년 동안 못 본 사이에 그녀는 전형적인 농촌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눈물범벅이 되어 흐느껴 울었다. 눈빛에는 무거운 공포가 가득했다. 나는 즉시 선생의 역할로 돌아갔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내가 왔잖니. 어제 네 편지를 봐서 이제야 왔다. 톈성은?”

그녀의 손끝이 향하는 곳을 보니 움푹 들어간 산자락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석양을 배경으로 정좌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입으로 묵은 기운을 내뿜고 코로 새로운 기운을 들이마시는 토납을 하는 것 같았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는 재빨리 하던 것을 멈췄다.

“허 선생님!” 

그는 소리치며 달려왔다. 그의 옷은 낡았고 바짓단은 높이 걷어져 있었으며 얼굴은 검고 말랐지만 눈동자는 여전히 형형하게 빛났다. 나는 가슴이 묵직하게 저렸다. 그는 삶의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생각만큼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엄격한 목소리로 물었다.

“톈성, 요즘 뭘 하길래 슈란이 이토록 걱정을 하는 것이지? 정말 무슨 벽통과술이라도 하는 것이야?”

톈성은 미소를 지으며 흙 둔덕에 나를 앉혔다.

“선생님, 말하자면 깁니다. 이 지역에서 유명한 전설에서부터 시작해야겠네요.”

그는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이곳에서 백 리 떨어진 곳에 천광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곳에 득도한 노승이 있었다고 했다. 노승은 기공과 요가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화를 피하지 못한 노승은 스님들이 신는 신발 한 켤레를 목에 걸고 거리에서 열리는 비판투쟁대회로 날마다 끌려다녔다. 견디다 못한 노승은 어느 날 비판투쟁부대가 길 옆 옛 무덤을 지나가려는 찰나 한숨을 푹 쉬더니 무덤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갔다. 노승을 끌고 가던 사람들이 붙잡을 틈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무덤에는 틈새도 전혀 없고 원래 모습 그대로였다. 깜짝 놀란 홍위병들은 이 일을 은밀하게 전했다.

그의 이야기는 간결했지만 나름의 서늘한 매력이 있어 나는 샹슈란이 몸을 떨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다 들은 다음 슬픈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너도 그런 말을 믿는 것은 아니지? 네 지능이 문맹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아니겠지?”

톈성은 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봤다.

“과학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과학에 위배되는 이런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두 종류의 사람만 믿겠죠. 무지한 사람과 철인(哲人). 무지한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따를 것이고, 철인은 전형적인 과학의 틀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선생님, 우리는 물질은 그저 역장의 속박을 받는 뒤틀린 공간일 뿐이라고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푸른 연기 두 줄기와 빛 두 줄기는 서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뒤틀린 미세 구조 사이에 충분히 균일한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체와 벽이 서로 통과할 수 없는 것은 그들 내부에 공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부의 뒤틀림 때문입니다. 구부러진 구리 방망이가 역시 구부러진 구리관을 통과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설령 구부러진 구리관의 직경이 훨씬 크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둘 사이, 더 나아가 한쪽의 뒤틀림만 사라지게 한다면 구리 방망이와 구리관은 서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은 꽤 그럴 듯했지만 그래도 나를 설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네 이론을 인정하고 싶지만 어떻게 공간의 뒤틀림을 없애지? 입으로 주문을 외우고 의식을 단전에 집중해서? 원자핵 하나를 부수는데 얼마나 많은 전자볼트의 에너지가 필요한지 아니? 과학자들이 그 노력을 했어도 아직도 강입자의 가둠에서 쿼크를 방출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아니? 더 깊은 단계는 말할 것도 없고!”

린톈성은 연민의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눈빛은 나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였다. 한참 뒤에야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의식의 힘으로 물질의 미세구조 공간의 비틀어짐을 제거한다는 말은 믿기 힘들 것입니다. 선생님이 의식 집중만으로 병 너머 물건을 잡는다는 말을 그때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저 세계적인 전설이니 그런 말이 생긴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자신의 구조에 대해, 지적 활동과 감정, 의식, 영감에 대해 또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선생님은 또 말씀하셨지요, 실천의 나무는 늘 푸르고 이론은 늘 회색빛이라고요. 만약 존재 가능한 사실을 기존 이론으로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이론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지요. 그 대신 최선을 다해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런 모순은 종종 이론의 혁명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슴 깊숙한 곳이 갑자기 떨렸다.

“그래서 검증은 해봤고?” 나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린톈성은 결연하게 대답했다.

“해봤습니다. 천광사까지 가서 노승의 비급을 훔쳐왔어요. 중간 과정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장장 3년 동안이나 절망적인 연구를 거듭하고 지옥같이 어두운 세상에서 혼자 외롭고 쓸쓸해서 거의 미치는 줄 알았어요. 최근에서야 한 줄기 빛을 봤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진전이 있는 듯해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설마…… 벽통과술을 터득했다는 말이냐?”

나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샹슈란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는 모양새가 거기까지는 잘 몰랐던 듯했다. 우리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참 뒤에야 톈성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아직 확신할 수 없어요. 저도 모르게 두 번 커튼을 통과했습니다. 본질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벽통과술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의식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했기 때문에 정말 그랬는지 확신할 수 없어요. 다시 한번 의식이 혼란한 상태가 되기를 기다려봤지만 아주 어려웠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갑자기 빛이 났다. “하지만 오늘 밤은 달라요. 오늘 밤에는 컨디션이 아주 좋아 한번 해볼 수 있겠어요. 선생님이 제 옆에 계셔서 그런 것 같아요. 두 천재의 의식이 공명을 하니까요. 선생님,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무슨 천재란 말인가? 생명력을 잃은 겨울 누에에 불과했다. 나는 가슴이 쓰렸다. 하루 세끼도 제대로 못 먹는 가난뱅이가 우주의 신비를 탐색하는 것에 심취해 이런 원시적인 방법을 다 사용하다니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얼마든지 말해보거라.”

샹슈란은 내가 이럴 줄 몰랐는지 나를 쳐다보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

“슈란, 톈성을 막지 말아라. 그의 말이 미친 소리라면 시험 한번 해본다고 손해날 것은 없겠지. 머리에 멍밖에 더 들겠니.”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하면 저도 정신을 차리겠지. 하지만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과정에서 그가 죽거나 사라지고 뒤틀림이 없는 균일한 공간으로 변한다고 해도 가치가 있겠지. 인류가 인식의 장벽을 또 하나 깼다는 것을 뜻하니까.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의 불을 훔친 이야기 기억하지?”

샹슈란은 울음을 억누르며 한쪽으로 조용히 물러섰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톈성은 고맙다는 듯이 나를 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선생님, 저 시작할게요. 제가 의지할 수 있게 제 곁으로 좀 더 가까이 와주시겠어요?”

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조각상 옆으로 걸어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가 휙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만일 내가…… 아이 꼭 낳아줘.”

그제야 나는 샹슈란이 결혼 전에 먼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샹슈란은 눈물을 참으며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러운 기색은 전혀 없었다.

마지막 석양이 톈성의 몸에 내려앉았고 그는 곧 무아의 상태로 들어갔다. 신성하고 평온한 그의 자세가 마치 쇠사슬에 묶인 채 혹형을 기다리는 프로메테우스 같았다. 나는 톈성의 지시에 따라 의식을 최대한 이완시켰다. 나는 시간이라는 배에 올라타 미시의 세계로 들어가 역장이 구속하는 공간의 벽을 쓰다듬었다. 마치 투명한 비누 거품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내 손길에 비누 거품이 하나둘 소리없이 터져 균일하고 투명한 허공이 되었다.

의식이 희미한 가운데 나는 톈성이 천천히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이어진 상황은 마치 영화의 슬로모션처럼 내 기억에 박혔다. 톈성은 고개를 돌려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방긋 웃더니 천천히 석상을 향해 걸어갔다. 나와 샹슈란이 응시하는 가운데 사람의 그림자가 천천히 석상 속으로 들어가 마치 반투명한 물질 두 개가 오버랩되는 것 같더니 석상 밖에 옅은 그림자만 남았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키자 샹슈란이 내 품으로 쓰러졌고 손톱이 내 피부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너무 긴장해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져 끊어질 듯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은 조각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머리가 텅 비는 것 같았다.

갑자기, 혼비백산한 외침이 들려왔다.

“누구야!”

외침에 내 신경이 툭 끊어졌고 극도의 절망감에 나는 손발이 덜덜 떨려 한참 뒤에야 몸을 돌렸다.

전형적인 문화대혁명 차림을 한 민병이 총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계급장이 없는 군복을 풀어헤치고 군모를 삐딱하게 쓰고 구식 보총을 비스듬히 받쳐 들고 있었다. 제 딴엔 멋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샹슈란을 자세히 살피더니 음흉하게 웃었다.

“이런 젠장, 늙은 말 주제에 어린 풀을 뜯어 먹으려 했나 보네. 빌어먹을 처우라오주!”(그는 내 신분을 정확하게 알아봤다.)

그는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오지 마시오, 저 속에 사람이 있어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정신이 또렷해졌고 아차 싶은 마음에 혀를 깨물었지만 이미 늦었다. 민병은 의심스럽다는 듯이 석상을 한 바퀴 돌고 험악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 내 뺨을 두 대 휘갈겼다.

“이 영감탱이가 사람을 갖고 놀아?”

뺨을 두 대 맞은 나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에 연신 잘못을 빌었다. 

“맞아요, 맞아. 제가 헛소리를 했습니다. 당신들한테 가서 자백하겠습니다!”

나는 샹슈란에게 눈짓을 하고 먼저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영문을 모르는 샹슈란은 얼떨떨해하면서 내 뒤를 따라왔다. 민병은 계급의 적이 이렇게 고분고분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따라왔다.

이때 샹슈란은 평생 후회할 일을 저질렀다. 몇 걸음 걷다가 그녀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뒤를 돌아봤고 민병은 그녀의 눈길이 가는 곳을 쳐다봤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석상에서 사람의 머리가 천천히 빠져나왔다. 처음에는 흐릿하게 보였다가 조금씩 또렷해졌다. 이어서 어깨, 팔, 상반신이 나왔다. 우리 모두 놀라 얼이 빠졌고 그 순간 세상도 정지됐다. 질겁한 민병이 총을 드는 것을 곁눈질로 본 나는 절규하며 그를 향해 뛰었다.

“탕!”

총성이 울렸다. 석상 앞의 상반신이 크게 움찔하더니 손으로 가슴을 감쌌다.

나는 미친 듯이 총을 빼앗아 땅에 내리쳐 부러뜨리고 톈성에게 달려갔다.

톈성의 앞가슴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붉은 피가 떨어지지는 않고 붉은색 연무처럼 가슴에 뭉쳐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톈성을 품에 안고 외쳤다.

“톈성! 톈성!”

톈성이 천천히 눈을 뜨더니 찬란하게 웃으며 똑똑히 말했다.

“내가 성공했어요!” 

그리고 나서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이어서 더욱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내 품에 안겨있던 그의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면서 부드럽게 뜨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연기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반짝이는 총알이 탁 하고 땅으로 떨어졌고 톈성의 몸이 빠져나왔던 부분에 진한색 타원형 단면만 남았다. 그마저도 조금씩 사라졌다.

귀한 인재가 이렇게 내 품에서 무로 사라졌다. 나는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뜨거운 총알을 들고 노기등등해서 민병에게 다가갔다.

질겁한 민병은 아무도 없는 석상과 내가 들고 있는 총알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갑자기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달아났다.

이후 이 주변에는 미친 사람이 한 명 늘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꼬질꼬질한 차림새를 하고 몇 걸음 가다가 머리를 숙이고 ‘나는 조각상에 총을 쏘지 않았어요. 죽어 마땅해요.’ 등의 말을 웅얼거렸다.

나와 샹슈란을 제외하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지만 정신을 차리고 산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땅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아 있던 샹슈란이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나지막히 말했다.

“슈란…….”

내가 위로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슈란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눈을 번뜩이면서 

“선생님, 전 사내아이를 낳을 거예요. 제 아빠 같은 천재를요. 선생님은 믿으시죠?” 

그녀는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아들이 저를 과거와 미래로 데리고 갈 거예요. 톈성이 하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렇죠?” 하고 말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샹슈란은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잠시 정신을 놓더라도 삶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눈물을 참으며 대답했다.

“그럼, 아이는 톈성보다 더 똑똑할 게다. 내가 그의 물리 선생이 되어주마. 그는 분명 지혜로운 사람, 철인이 될 거다. 내가 마을로 데려다주어도 괜찮겠지?”

우리는 미련이 남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주위를 계속 둘러보다가 서로를 의지하며 집으로 향했다. 서쪽 하늘의 핏빛 천화도 이미 꺼지고 세상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나는 톈성의 영혼은 사라지지 않고 깊은 역장을 통과해 꺼지지 않는 불씨를 찾으러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환세계(科幻世界)> 1994년 11월 발표

 
* 작가: 왕진캉(王晋康)
1948년 난양에서 태어나 시안교통대학을 졸업했으며, 현 세대 중국 SF작가 중 거물급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주로 황량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띄며 철학적 사색으로 가득 차 있다. 작품은 최근의 과학 발전, 특히 생물학 분야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인간이 보다 더 진보한 생명체의 형태로 대체되는 것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2016년에 「Pathological」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기도 한 「Cross」(2009), 「The Creator」(2011), 「Escape from Mother Universe」(2015), 「Father Heaven and Mother Earth」(2016)이 있다. 중국 은하상(Galaxy Awards)을 18번이나 수상한 경력이 있다. 「천화(天火)」는 1994년에 처음 발표되었고 은하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번역: 이현아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중번역학과를 졸업하였다. 잡지사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가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류츠신의 장편 SF 삼체 시리즈의 1부를 번역한 바 있다. 그외에도 『텐센트, 인터넷 기업들의 미래』, 『이것이 마윈의 알리바바다!』, 『오직 결과로 말하라』 등 다수의 중국서적을 한국어로 번역하였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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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dHatter 18.01.16 13:53 댓글

    벽투과를 입자의 진동에 의한 터널링 효과와 결부시켜 설명하는 것은 읽어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런 접근법은 새롭습니다. 시적으로 보다 더 정교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입니다.
    문혁은 옌롄커의 사서나 패왕별희 같은 작품을 통해 드문드문 접하고 있지만 그때마다 정말 무시무시한 비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이 공허이지만 역장에 의해 뒤틀려 물질이 만들어진 것처럼, 작중의 주인공인 린톈성이 스스로의 의지로 공허와 문혁이라는 카오스에서 과학적 인식의 확장이라는 가치 있는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모습이 감명 깊고 비극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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