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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자리를 본 사람

탕페이(糖匪)

A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칠흑 같은 어둠이 잿빛으로 변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그 여름날을, 그녀는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 위로 아버지의 거대한 그림자가 내려앉았을 때, 숙제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릴리안.”

 아버지가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창밖의 새빨간 구름이 어깨에 걸려, 아버지는 마치 군장이라도 차려 입은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다시 그녀 이름을 불렀고, 그리고 또 한 번 불렀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무척 익살맞아 보였다. 아마도 이 세상에 그 만큼 딸의 이름을 좋아하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결국 웃고 말았다.

 “왜 그러시나요?”

 “뭘 하고 있었니?”

 아버지는 그녀가 숙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어떻게든 부녀간의 대화를 계속 이어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언변이 별로 좋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는 특히 과묵해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로서는 그런 아버지를 상상하기조차 어려웠지만, 어쨌든 아버지가 말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아버지는 한 번 일하러 가면 반 달은 집을 비웠고, 돌아오면 가족들에게 이런 저런 쓸데없는 말들만 잔뜩 늘어놓곤 했다.

 아버지는 그녀 곁에 선 채, 몸을 굽혀 그녀의 숙제를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태블릿은 이미 화면보호기 상태로 접어든 상태였고, 검은 인터페이스 위로 초록빛 하트 모양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스크린을 스치자, 갈륨 니트라이드 스크린 중앙으로 갑자기 기차 안의 풍경이 나타났다. 차창 밖의 풍경은 빠르게 변했고, 객실 안 긴 의자에는 열네 마리의 분홍색 금붕어가 단정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금붕어들은 기차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객실 안을 떠도는 구름을 따라 눈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녀만을 위해 프로그래밍해준 화면보호기였다.

 전 우주에 단 하나뿐인 화면보호기. 아버지는 늘 귀찮아하지 않고 이런 이상하고도 독특한 선물을 만들어주곤 했다.

 아버지는 태블릿을 들어 올리더니, 이미 정해 둔 순서에 따라 금붕어의 머리 부분을 두드렸다. 태블릿의 잠금이 풀렸다.

 “여름방학 숙제구나, 이미 개학한 거 아니었니?”

 아버지가 물었다.

 아버지는 이것이 여름방학 숙제라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을 터였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보낸 것일 테니까.

 “내일까지 내면 돼요.”

 아버지는 태블릿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릴리안은 열 살에 불과한 어린아이였지만, 아버지가 난처해 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확실히 이런 일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 문제에는 왜 답을 하지 않았니?”

 아버지가 물었다. 이렇게 물어올 사람은 아버지뿐이었다. 아버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명확했지만, 또한 아주 당혹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어찌나 당혹스러운지, 릴리안은 차마 입을 뗄 수조차 없었다.

 “여름방학 중 경험한 잊을 수 없는 은하계 여행에 대해 기록하라.”

 아버지는 큰 소리로 문제를 읽었고,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바깥은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다. 멀지 않은 곳의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들의 경적이 날카롭게 들려왔다.

 그들은 마치 갑자기 가라앉아 버린 것 같았다. 광활하고도 화려한 우주에서 눈앞의 작고 작은, 낡은 아파트로. 칠이 벗겨지고 있는 외벽에 비한다면, 다 낡아빠진 가구는 눈에 거슬리지조차 않는 그런 세계로.

 빈곤하건 부유하건,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며 아름답게 살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어머니는 말해왔다. 그리고 릴리안의 부모는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들은 집을 가능한 한 편안하게 꾸미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릴리안이 친구들과 같은 학습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예를 들어 컴퓨터 임플란트를 할 돈이 없었을 때, 아버지는 릴리안의 낡은 그래핀 태블릿을 복고풍으로 꾸며주었고, 친구들은 릴리안의 태블릿이 세련되었다고 부러워했다.

 그래서, 그녀는 믿어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항상 빈곤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바로 그 문제를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잊을 수 없는 은하계 여행이라고? 그녀가 아는 한 그녀의 부모는 그만한 돈을 부담할 능력이 없었다. 아마 달에서 보내는 여름 캠프 비용이라 해도 지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부모에게 이 숙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 일만은 정말이지 그들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테니까. 친구들은 그룹 채팅방에 외성에서 찍은 사진들을 공유했다. 우주선 객실에서 다정한 자세로 함께 찍은 사진, 달에 처음으로 남긴 발자국의 사진, 목성의 두 번째 위성 해양에 떠도는 표류물들을 찍은 사진, 그리고 피닉스 벨트에 위치한 그 지구형 행성들의 기념이 될 만한 곳에서 찍은 사진도 당연히 올라왔다. 그녀는 집에 틀어박힌 채, 마치 중독된 것처럼 친구들의 소식을 새로고침하고 있었다. 이 천편일률적인 여행의 기록이며 영상에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개학 첫날, 수업에 가지 않았다.

 선생님은 분명히 어머니에게 그녀가 수업을 빼먹은 사실을 통보했을 것이고, 어머니는 마침 집에 막 돌아온 아버지를 릴리안에게 보낸 것임이 분명했다. 릴리안은 아버지와 이런 식으로 대면하느니, 차라리 온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에게 호되게 꾸짖음을 듣는 편이 나았겠다고 생각했다.

 “자료들을 꽤 많이 조사해 두었어요. 삼십 분 정도면 자료들을 적당히 조합할 수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내 생각엔 이 화면보호기를 수정해 볼 수 있을 것 같구나.”

 아버지는 갑자기 두 눈을 빛내더니,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구름이 금붕어와 부딪칠 때마다, 금붕어가 커다란 물방울을 뿜어내게 하면 어떨까? 어때, 아주 예쁘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 순간의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었다. 열정에 가득 찬 아버지의 그 얼굴. 아버지는 마치 오래된 영화 속의 폭죽을 터뜨리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이 만들어내고 있는 신기한 사물에 집중하고 있었다. 결코 난처한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그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이미 그 전의 난처한 일은 모두 잊은 채 몰두하고 있었다.

B

그녀는 그 그래핀 태블릿을 계속 남겨두고 있었다. 그녀는 태블릿을 잘 싸서 얼마 되지 않는 가재도구와 함께 여행 가방에 담아 두었고, 그 태블릿은 그녀를 따라 꽤 많은 곳으로 옮겨 다녔다. 태블릿은 이제 매우 오래된 물건이었지만, 성능은 안정적이었고 겉으로 보기에도 멀쩡해 보였다. 심지어 분노한 집주인들이 몇 번이나 문밖으로 내동댕이쳤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이상이 없는 상태였다.

 스물 두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한 사람 앞에서 이 태블릿의 전원을 켰다. 그녀는 그에게 아버지가 만든 화면보호기를 보여주었고, 그는 감탄했다. 그는 그녀가 이미 십 년 동안이나 이 태블릿을 켜본 적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마치 당시 그녀 자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그녀의 기숙사의 구석에 함께 앉아있었고,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천천히 그에게 들려주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저질렀던 몇 가지 바보 같은 일들을 언급하게 되었고, 또 초등학교 시절의 여름방학 숙제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녀는 뜻밖에도 그 문제를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숙제는 만점을 받았어. 내 첫 번째 만점이었지.”

 “대단한데.”

 “너는 어땠는데?”

 그녀의 손가락이 스크린을 스쳤다. 여전히 단정하게 앉아있는 금붕어들. 빗소리는 점점 더 조밀하게 공간을 채웠고, 다른 소리가 섞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바람이 그녀의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고 그녀는 몸을 웅크렸다.

 “아버지가 나를 대신해서 그 숙제를 해주셨지. 사흘이나 걸렸어.”

 그러나 그 숙제는 설득력이 없었다. 선생님은 그녀가 묘사한 그 행성은 물리 법칙에 위배되기에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행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숙제는 거짓으로 꾸며낸 것으로 판단되어 0점 처리되었다. 아버지는 그녀보다 더 분노했다. 아버지는 선생님을 찾아가 논쟁을 벌였고, 뜻밖에도 선생님을 압박하여 성적을 고치는 데 성공했다.

 “사실, 선생님 말씀이 맞는 거였지. 그 숙제는 근본적으로 ‘나의 외성 여행’ 같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 행성도 결국은 아버지가 제멋대로 꾸며낸 거였고. 아버지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사실 나는 지금도 몰라. 하지만 아버지는 그 숙제 때문에 학교의 모든 선생님과 논쟁을 벌였어. 하루 종일, 24시간 동안 학교 커뮤니티에서 버티면서 말이야. 마지막엔 선생님들 모두 아버지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도저히 어떻게 상대할 방법이 없으니 그냥 성적을 고쳐준 거야. 평소에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뜻밖에도 말싸움에서 이겨버린 거지.”

 그러나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강제로 휴학하게 되었다.

 “휴학? 무슨 이유로?”

 “이유 따위는 없었어. 그저 어느 날 갑자기 그러라는 통지를 받았지.”

 “네 아버지는 뭐라고 하셨어?”

 “그때 아버지는 집에 계시지 않았어.”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 여름방학 숙제와 관련한 일을 처리한 후, 아버지는 바로 다른 도시로 떠났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외지에서 보내야 했다. 어쨌건 당시 아버지가 집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휴학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버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원거리 영상통화를 하며 그녀의 이름을 몇 번 반복해 중얼거리는 것뿐이었다. 아버지는 미안함이나 후회를 표현하는 방법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서툰 사람이었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는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을 뿐 아니라, 단호한 태도로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자면, 그녀의 숙제가 구현하고 있는 풍경이 실제로 존재하는 행성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아버지는 결국 선생님이 그 행성이 진짜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녀의 숙제가 진실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했다. 아무리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여긴 다른 일들처럼 말이다. 아버지는 죽음을 무릅쓰고 지켜내려 했다.

 그러므로 그 숙제는, 혹은 “그런 행성이 정말로 존재한다”라는 사실은, 아버지에게 그녀 자신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로부터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릴리안은 처음으로 이 사실을 마음 속에 떠올렸다.

 이전에는, 스스로가 왜 그리 괴로운지 고민하지 않았다.

 기억하지 않았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있기만 하면, 지금보다 더 괴로워질 일은 없을 테니까.

 릴리안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말없이 심장 박동의 수를 세면서 코가 더는 시큰거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마치 커다란 파도가 지나간 후, 얼음처럼 차갑고 어두운 물속에 잠겨 있다가 해수면으로 막 떠오른 듯한 기분이었다. 바로 그때 그 사람의 목소리가 햇빛처럼 그녀에게 쏟아져 내렸다.

 “네 아버지는 종종 집에 계시지 않았던 모양이지?”

 “혹시 행위예술가에 대해 알고 있어? 우리 아버지는 행위예술가였어.”

 “보통 바디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비슷해. 온몸을 이용해 표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장치를 이용하기도 해. 거기에 연극적인 요소를 결합해서, 자신들의 경험이며 이념을 전달하는 예술가지. 배우와 비슷해 보이지만 배우와는 달라.”

 “아주 심오한데.”

 그는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도 않아.”

 그녀는 웃으며 말을 돌렸다. 그러나 그가 다시 화제를 이어갔다.

 “행위예술가는 한동안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거로 기억해. 파티할 때 행위예술가를 청하지 않으면 진짜 파티라고 여기지도 않을 정도로 말이야.”

 단순히 상업적인 공연만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행위예술가들을 고용해 정치적인 주장을 펴서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끼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굳이 그의 말을 바로잡지 않았다.

 “응,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아버지는 그저 평범한 행위예술가였어. 이름을 날린 적도 없고, 간신히 가족을 부양할 정도의 돈만 버셨을 정도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그 일을 정말로 좋아하셨지.”

 “나중에는 어떻게 되셨어?”

 “나중이란 건 없었어. 아버지는 마지막까지도 어느 단계 이상으로는 가지 못하셨거든.”

 그녀는 탁자 위의 작은 상자를 흘깃 바라보았다. 상자 위의 녹색 불이 춤추듯 반짝이고 있었다.

 “옛날 영화를 몇 편 다운받아 놨어. 함께 보자.”

 그들은 함께 VR 헤드셋을 착용했다. 감응 코드는 대뇌의 특정한 위치에 고정되었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미량의 전류가 감응 코드 위의 탐침을 통해 뇌를 자극했고, 마치 영화 속 풍경 안에 그대로 들어간 듯한 환각을 만들어냈다.

 진정한 환각.

 사람들은 이 환각에 열광했다. 이성으로는 계속 이것이 허구라고 일깨운다 해도, 사람의 몸과 모든 감각기관은 가상의 세계로 날아가 기이하고도 신비한 모험을 경험하고, 증오며 공포, 사랑과 기쁨 등의 페로몬을 분비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진실일 터였다.

 돈을 내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세계이니,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는 것도 탓할 수 없다. 이 VR 영화라는 거대한 산업은 이제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었고, 그중에는 예전의 행위예술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분명히 이런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직업을 바꾸지도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직도 살아있다면.

 그들은 함께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을 보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20분 정도 지났을 때, 그는 잠들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그에게 그녀가 이 영화를 수없이 많이 보았다는 사실을, 한 번은 필름 판으로 본 적도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영화 속의 마르첼로와 그녀의 아버지가 약간 닮았다고 계속 생각해왔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므로, 그녀는 또한 말하지 않았다. 마르첼로를 닮은 그녀의 아버지가 나중에 정신이 나가 사람을 죽였고, 지금까지 도망 중이라는 사실을.

 그날 밤, 비는 계속 내렸다. 영화를 다 본 후 그는 돌아갔다. 그가 빌려 간 우비는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았다.

C

그 후로 십 년 동안, 누군가에게 빌려준 오래된 물건들이 돌아오지 않은 채로 하나씩, 하나씩 사라졌다. 그녀 곁에도 빌렸다가 돌려주지 않은 물건이 한두 가지 이상 생겨났다. 그런 일은 나이를 먹으며 점차 줄어들었다. 이제 혼자가 된 그녀는 모든 것을 걸고 일에 몰두했다. 누구와도 쓸데없는 관계를 맺지 않았고, 다른 누구에게서 뭔가를 빌리거나 빌려주는 일도 없었다. 길거리에서 친한 사람과 마주쳐 이름을 불리는 일도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처음에는 건너편의 소파에 앉아있는 노인이 그녀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릴리안, 오랜만이구나.”

 그녀는 그 웃음소리를 알아들었다.

 “안녕하세요.”

 모든 프로 행위예술가는 매니저를 필요로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더욱 그랬다. 눈앞의 노인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매니저였다. 아버지가 실종된 후에도 그는 계속하여 아버지의 일을 처리해 주었다. 아버지의 작업 현장에 남아있던 장치며 영상 자료를 팔고, 또 기념품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그는 매달 정기적으로 릴리안 모녀에게 돈을 보내 주었다.

 “정말 냉담하구나. 너에 대한 기사를 봤다. 다음 주라며?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웜홀을 통과하는 것 말이다.”

 “제가 별로 우주비행사처럼 보이지는 않지요.”

 “최소한 어린 시절에는 그랬지. 정말 대단하구나.”

 사람들은 항상 그녀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곤 했다. 특히나 어린 시절부터 알아왔던 사람들은. 그녀는 가난한 편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이니 줄곧 위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고, 결국 일류 우주비행사가 되었으니 분명히 적지 않은 고생을 했을 거라고.

 그들은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알지 못한다.

 그 고통은, 상상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노인은 시간을 보더니 몸을 일으켰다.

 “다음 주에 바로 출발한다지? 출발하기 전에 너에게 전해주고 싶은 물건이 있단다. 잠시 후에 시간을 내줄 수 있을까? 내 사무실이 바로 위층에 있는데, 곧 고객과 미팅이 하나 잡혀 있어서 말이다. 대강 40분 정도면 끝날 텐데, 그 때 오면 좋겠구나.”

 그녀가 어떻게 거절할지 머뭇거리는 사이에, 거절할 수 있었던 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노인이 이미 찻집의 문 앞까지 가 있었던 것이다.

 “맞아, 네 어머니는 안녕하시냐?”

 “어머니는 칠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노인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매우 유감이구나.”

 그녀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럴 리가요, 전혀 마음에 두고 있지 않으시면서.”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실이라 해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노인에게 불공평한 처사일 수 있었다. 노인은 매니저로서 최선을 다했다. 아버지는 본래 노인이 맡은 행위예술가 중에서 가장 돈을 벌지 못했고, 또 그 악명 높은 사고 이후 사라져서 오늘까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노인에게는 아버지와의 종신 계약을 깰 만한 완벽한 이유가 있는 셈이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엽기적인 심리 때문인지 사고 이후 아버지의 작품이 갑자기 팔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노인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릴리안 모녀에게 때때로 적은 돈이나마 부쳐줄 수 있었고, 그들 모녀는 그 돈에 의지해 적지 않은 난관을 헤쳐 나올 수 있었다.

 어머니는 노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가 단순히 비즈니스적인 판단으로, 아버지와 맺은 계약서상의 약정을 이행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릴리안은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동시에 매우 존경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도 이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고, 마지막에는 온유한 감사의 마음을 품은 채 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도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최소한 그녀도 옛정을 생각할 줄은 알고 있었다. 찻집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후에 위층으로 올라가 인사하기로 마음먹고, 조심스럽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런 곳에서 차를 두 잔이나 마실 필요는 없으니까.

 “그가 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솔직하고도 담대하지요. 우리는 이 잔혹하고도 피비린내 나는 행위 속에서도 사랑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습니다.”

 어느 손님인가가 케이블 텔레비전을 튼 모양이었다. 찻집 중앙의 빈 공간에 잘생긴 남자의 홀로그램 영상이 나타났다. 얼굴, 자태, 그리고 목소리까지 어느 하나 완벽하지 않은 구석이 없는 남자였다. 또한, 유리섬유 아래로 드러나는 탄탄한 몸은, 동성이라 해도 끊임없는 상상에 빠지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가 이렇게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것도, 사람들이 그의 이러한 모습에 현혹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릴리안은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이 지구상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예술평론가였다.

 평소에 텔레비전을 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수는 없었다. 그는 어디에나 존재했으니까. 대단히 지루해진 릴리안은 그가 그런 몸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건 확실히 시간을 때우기에 좋은 방법이었다. 이 계산을 끝내고 나면, 대강 노인을 만나러 갈 시간이 되어 있을 테니까. 평론가는 바로 보이스 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그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고, 그의 말은 마치 진주가 옥쟁반 위에서 끊임없이 튀어 올랐다 떨어졌다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의 말이 자신의 발목을 잡기 전에, 릴리안은 빠른 걸음으로 찻집을 나왔다.

 노인의 사무실은 노인 자신과 마찬가지로 구식이었다. 20세기의 신고전주의 양식이라고 하면 적당할 것이다. 진짜 가죽으로 만든 소파며 초상화가 있었고, 마호가니로 만든 사무용 책상도 당연히 빠지지 않고 있었다.

 “어떠냐?”

 노인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녀는 웃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알고 있니? 너는 정말 네 아버지를 닮았단다. 네 아버지를 길에서 부를 때도, 내가 목구멍이 찢어지도록 불러야 겨우 알아차리곤 했지.”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변명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신가요?”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최근 네 아버지의 작품이 아주 잘 나가고 있단다. 수집가들이 잇달아 높은 가격에 네 아버지가 설치한 작품이며 영상을 사들이고 있어. 그 붐을 타고 대중들도 네 아버지 관련 상품들을 열광적으로 구매하고 있고 말이다. 네 아버지의 얼굴을 인쇄한 엽서가 하루 동안 수십만 장이나 팔렸을 정도야.”

 “이해가 안 가네요. 대체 누가 그렇게 아버지의 물건을 사는 건가요?”

 그녀는 매우 의아했다. 아버지의 작품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 네 아버지는 다른 이들의 감상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곤 했지. 네 아버지를 고용했던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을 간신히 받아들였고 말이다. 게다가 네 아버지는 항상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좋아했어.”

 “순수한 미학을 치료법으로 하여, 이 세계의 히스테리를 구원할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말투를 흉내 내어 영문을 알 수 없는 그 말을 했다.

 노인은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크게 웃었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미쳐버린 사람은 아버지였다.

 히스테리에서 이 세상을 구하려고 했던 사람이, 최후에는 히스테리의 궁극적인 산물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는 계속 그녀가 그 영상을 보는 것을 금지했다. 심지어 임종 때에는 그녀에게 영원히 그 영상을 보지 않겠다고 맹세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영상을 보았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었다. 인생에서 가장 최악이었던 시기에는 거의 병적으로 그 영상을 반복해서 보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마치 똑같은 히스테리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전율하고 있었다- 그 전율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문제의 답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의 마지막 행위예술. 아버지는 자신과 어린 코끼리 한 마리를 컨테이너 크기의 유리로 만든 집에 가두었다. 유리집의 네 벽에는 우주가 탄생하고 진화하는 시뮬레이션 영상이 번쩍이고 있었다. 초신성이 폭발하고, 성운이 형성되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양의 성간물질이 생겨나고, 제2세대 항성이 만들어지고, 다시 거대 가스 행성이 형성되었다. 행성 군은 연성을 둘러싸고 공전하고, 어느 순간 자전을 멈추고 사멸해가는 별은 절반은 얼어붙고 절반은 불타오르는 지옥을 연출했으며, 대기가 희박한 행성에서는 모든 수면이 끓어올랐다. 이 모든 것은 빠른 속도로 진행될 뿐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인간이 계산할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은 시간과 공간이, 그 순간 이 컨테이너 크기의 유리 집에 응축되었다.

 한 마리 코끼리와 한 사람만의 우주.

 영상은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무서운 굉음과 함께.

 일곱 시간 후, 어린 코끼리는 자신의 오줌과 똥 속에서 미쳐버리고 말았다. 코끼리는 포효하며 벽으로 돌진했고, 곧 다시 아버지에게 돌진했다. 코끼리는 온몸의 무게를 실어 이미 피범벅이 되어 있던 아버지를 짓누른 후 뒹굴었다. 혈액, 내장, 부서진 뼛조각이며 안구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가, 우주 깊은 곳 별들의 영상 위로 떨어졌다.

 퍼포먼스가 끝났다.

 본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시체 한 구와 미쳐버린 코끼리 한 마리가 이 퍼포먼스의 결말이었다.

 최초의 경악이 지나간 후, 사람들은 행위예술가가 정말로 죽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행위예술가는 수치를 모르고 부정한 수단을 쓴 것임이 틀림없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클론이 본인을 대신하여 이 죽음의 퍼포먼스를 펼치게 했으리라.

 “이런 잔인한 살인은 법률을 짓밟는 행위일 뿐 아니라, 미학과 도덕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그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품위를 더럽혔다.”

 먼저 이 점을 지적한 사람은 바로 그 평론가였다. 그는 아버지를 비난했다.

 경찰도 즉시 아버지를 체포하기 위해 서둘렀고, 해커들은 아버지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아버지의 모든 프라이버시는 대중에게 공표되었고, 현상금 사냥꾼들이며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조직들도 잇달아 이 살인범을 잡기 위한 행동을 개시했다. 그들은 일체의 대가를 아끼지 않고 아버지를 쫓았지만, 아버지는 그들 모두를 피해 도망쳤다.

 그 거대한 그물 아래서도 아버지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그 소란스러움에서 도망쳤고, 다시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난 지금, 예술계의 수집가들이 갑자기 이 악명 높은 살인범을 인정하고 있다고?

 “그들이 아버지를 용서한 건가요?”

 그녀가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더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작별을 고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노인이 그녀를 불러 세우더니, 서랍에서 커다란 상자를 하나 꺼냈다.

 그녀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고, 잠시 아연해지고 말았다.

 “지금이라면 이 물건을 거액을 내고 사려 할 사람이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네가 이걸 남겨둘 것 같구나.”

 노인이 말했다.

 상자 안의 물건은 바로 배나무로 만든 입체경이었다.

 뷰잉박스 위의 덮개며 칸막이는 모두 빛이 새지 않았다. 렌즈의 상태도 괜찮았고, 지지대의 슬라이드 레일도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슬라이드 레일 위의 구리 손잡이는 마치 새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입체경은 아주 잘 보관된 상태였고, 언뜻 보기에는 12년 전 아버지가 그녀에게 보여주었을 때처럼 완전히 새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당연히, 상자 안에는 그 사진도 있었다.

 그녀는 사진에 손을 대지 않았다.

 십이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사진은 그저 약간 누렇게 변했을 뿐이었다.

 “내 여름방학 숙제예요.”

 그녀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정말인 모양이구나. 나는 네 아버지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단다. 너무 제멋대로라고 말이지. 네 아버지가 이걸 가지고 소재로 삼겠다고 했을 때 말이다.”

 노인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 사진은 실제로 찍은 것이냐, 아니면 합성한 것이냐?”

 “아버지는 실제로 찍은 사진이라고 했어요.”

 그녀는 더 말하지 않고, 가볍게 상자의 뚜껑을 덮었다.

 그때 갑자기,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텔레비전이 미리 지정해 둔 시간에 맞춰 켜진 모양이었다. 익숙한 사람의 실루엣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최근 들어 이 사람은 네 아버지를 특별히 높게 평가하고 있지. 가장 권위 있는 예술평론가가 말이다.”

 노인이 말했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두 번째로 보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지 말아라, 릴리안.”

 노인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다 지난 일이지 않니.”

 “저 사람은 예전보다 더 젊어 보이는군요.”

 “네 아버지의 일로 그를 책망해서는 안 된다. 그는 평론가야. 그게 그의 직업이지. 그리고, 그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란다.”

D

십이 년 전은, 그렇게 오래된 과거라고 할 수 없다.

 당시, 대평론가는 아직 이류 평론가에 불과했다. 나이는 쉰이었고, 동료들 사이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해 안달복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대평론가는 시청 광장 가의 극장 안 칠흑처럼 컴컴한 관중석으로 안내되었다. 그의 손에는 모든 관람객에게 주어진 망원경과 비슷한 물건이 들려 있었는데, 안내원은 그 물건이 입체경이라고 했다. 푸른 빛의 빔이 무대 앞 관중석에 쏟아지기 시작하자, 그는 지시에 따라 입체경을 들어 올렸다. 우주 비행복을 입은 사람이 무대 위로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푸른빛은 우주비행사를 따라 조금씩 무대 깊숙한 곳으로 옮겨갔고, 마침내 조명이 꺼지면서 우주비행사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강한 빛이 들이닥쳤다. 온 극장은 마치 한 여름날의 함석판 지붕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저것은 나무일까? 그것은 마치 폭풍우 속 먹구름과 같은 형태의 나무처럼 보였다.

 나무의 줄기는 섬세하고 가느다란 황금빛 파이프로 이루어져 있었다. 파이프는 규칙적으로 휘감기며 복잡하게 꼬인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이 꼬임은 다시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게 서로를 휘감고 있었다. 나무의 줄기 위로는 잔가지들이 수없이 많이 뻗어 나와 있었고, 잔가지는 다시 더 가느다란 가지로 나뉘고 있었다. 이렇게 반복되며 나무는 계란 흰자 빛 하늘까지 자욱하게 널리 퍼져 있었고,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나무의 줄기 아래로는 마치 가지들이 거울에 비치기라도 한 것처럼 거대한 뿌리가 똑같이 놀라운 방식으로 자라고 확산되어 끊임없이 퍼져 있었는데, 가장 끝의 뿌리는 마치 사람의 머리카락이 은색의 암석 표면에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믿을 수 없는 형태는 얼핏 보기에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나무줄기처럼 보였다.

 어째서 이것이 나무를 닮았다고 생각했을까? 명백하게 맞지 않는 부분이 이렇게 많은데 말이다. 그의 눈이 닿는 모든 곳은 사람의 인기척 하나 없이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새하얀 하늘과 땅을 제외하면, 마치 거인처럼 우뚝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최초의 충격에서 빠져나온 평론가는 겨우 극장에 자신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묵중한 우주복을 입은 우주비행사도 그와 함께 이 거대한 것을 마주 하며 미동도 없이 서 있었던 것이다.

 대평론가는 입체경을 내려놓았다.

 사방은 칠흑처럼 어두워졌고, 그는 다시 관중석으로 돌아와 있었다. 무대 위에는 같은 크기의 스크린이 둘 있었는데, 스크린에는 거의 같은 화면이 나타나 있었다. 바로 은백색 세계에 떠 있는 한 그루 거대한 나무였다.

 우주비행사는 아직도 그곳에 있었다. 그는 헬멧을 벗고, 관중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제 딸에게 바치는 퍼포먼스입니다. 그 애의 숙제랍니다.”

 관중석에서 드문드문 박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많지 않은 관중들은 몸을 일으켜 맥이 풀린 듯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당신의 작품은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겁니까?”

 대평론가는 아버지의 곁으로 다가갔다.

 행위예술가는 자신의 작품 의도를 설명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반 시간 후에 퍼포먼스가 또 한 번 있으니, 남아서 다시 한번 보셔도 좋습니다.”

 “이거, 입체경이라고 했던가요?”

 그는 화제를 돌렸다.

 “그렇습니다. 광학반사경 두 개를 합쳐 만든 것인데, 시선을 평행하게 이동시켜줄 수 있지요. 아시겠지만, 사람의 좌우 눈이 볼 수 있는 이미지는 완전히 같지 않습니다. 시차가 존재하지요. 마치 일정한 거리를 사이에 둔 카메라의 렌즈로, 같은 물체를 동시에 찍고 있는 것과 같은 거지요. 입체경은 시선을 평행하게 이동시켜 주어 양쪽 눈이 바라보는 각각 다른 사진 두 장을 함께 결합해서, 입체적인 효과를 내준답니다.”

 “사진이라고요?”

 “진짜 사진입니다. 3D 프린터를 사용해서 우주망원경을 만든 후,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확대했지요. 처음에는 내 딸의 여름방학 숙제를 대신 해주기 위해서 시작했는데, 그때 이 두 장의 사진을 찍게 되었지요. 나는 먼저 작은 3D 입체경을 만들었고, 그다음에 사진을 확대해서 이 퍼포먼스에 사용한 겁니다.”

 “이 이미지가 합성한 것이 아니라면, 진짜로 존재하는 별의 풍경이란 말입니까? 대체 어느 행성이죠?”

 “고래자리 델타(δ) 3이랍니다.”

 대평론가는 결코 행위예술가를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조사한 결과,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인류의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고래자리 델타 3을 관측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고래자리 델타 3 부근의 제2 항성이 폭발하면서 행성상 성운을 만들어내고 있는 참이었다. 그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먼지와 가스는 고래자리 델타 3의 관측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또렷한 근접 사진을 찍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그가 직접 그곳에 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던 사진이, 이제는 가치 없는 합성사진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퍼포먼스는 결국 싸구려 거짓에 불과했던 것이다. 대평론가는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 퍼포먼스를 본 감상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반쯤은 놀리고 반쯤은 장난을 치는 듯한 평론을 한 편 썼다. <천진난만한 조작>. 평론을 발표하기 1분 전, 평론가는 자신의 글에 이런 제목을 붙였다.

 평론가는 눈앞의 이 이름 없는 행위예술가가, 운명이 자기 자신에게 건네준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손 가는 대로 쉽게 쓴 그 평론은 예전과는 다른 관심과 인지를 얻었다. 극히 개인적인 스타일로 제멋대로 쓴 조롱과도 같은 평론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퍼포먼스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은 솔직하고 용기 있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평론을 읽은 후, 행위예술의 팬이 되었다.

 한순간에 그는 대중의 추앙을 받는 존재가 되었고, 예술계의 총아가 되었다. 그의 호오는 모든 이의 호오가 되었고, 그의 관점은 모든 이의 관점이 되었다. 대평론가는 진정으로 대평론가가 되었다.

 이제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그의 의견에 반대할 만큼 아둔하지 않았다.

 특히 관계자라면 더더욱.

 그러나 아버지는 했다. 아버지는 성명을 발표했고, 사진의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자신의 작품의 가치를 지키려고 했다. 논쟁과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아버지가 가장 서툰 일이었다. 평론가와 몇 번 논쟁을 주고받는 중에 아버지는 가차 없이 웃음거리가 되었고, 뻔히 보이는 함정에 무수하게 빠져버리고 말았는데 그 함정 중 많은 수는 아버지 스스로가 만든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이 엄청난 조롱의 물결에 참여했다. 아버지의 말이며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도 모두 포착된 후 크게 부풀려졌고, 아버지는 예술계며 연예계, 코미디언이며 재치 있는 말을 잘 만들어내는 사람 등등의 먹잇감이 되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고래자리를 본 사람”이라고 불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아버지는 사람들이 계속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던 목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당시 그들은 평론가를 사랑하는 만큼 아버지를 미워했다.

 그때부터 아버지에게는 고객이 단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미치기 시작했던 것일까?

 고객이 없다 해도, 아버지는 여전히 행위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평론가와의 논쟁을 포기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작품을 낸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대평론가에게 선전포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대평론가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가장 잘하는 수단을 써서 반격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면, 아버지는 패배하며 더욱 더 비참한 상황이 되었고, 대평론가는 점점 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들이 원했건 아니 건, 또한 그들이 인정하건 아니건, 그들의 만남은 각자의 운명에 있어 중요한 지점이 되었다.

 승자가 승리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패자는 자기 자신에게도 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전쟁은 가짜 사진에서 시작되어, 가짜 자살로 끝났다.

 아마도, 그는 정말 그렇게 죽고 싶었을 것이다.

 그 사람, 항상 어떤 일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던, 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곤 했던 그 사람은, 대체 무엇 때문에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한 순수함을 자신이 갖고자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대평론가가 아니었다 해도, 갑자기 심연으로 떨어져 내릴 그의 운명에는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고래자리를 본 사람.

 노인의 말이 옳았다. 평론가와는 무관한 일이다. 그리고,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다.

 다만 릴리안은 평론가가 무엇 때문에 지금에 와서 아버지에 대한 판단을 번복하고, 아버지의 작품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평론가는 심지어 당시 자신이 썼던 평론조차 뒤집었다. 물론, 대중들은 과거의 그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모든 퍼포먼스 영상을 보았고, 평론가의 모든 평론을 읽었으니까.

 그녀는 상자를 품에 안은 채 노인의 사무실에서 나와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라면 그녀를 편안한 기분으로 만들어주던 작은 집이, 바로 그 상자의 존재로 인해 갑자기 좌불안석할 정도로 불편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다시 상자를 열었다. 입체경, 사진, 그리고 쪽지가 하나 들어 있었다.

 이런 방식은 확실히 노인의 스타일이었다. 예전에도 그는 아버지에게 하기 어렵지만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이런 식으로 쪽지를 남기곤 했다.

 “릴리안, 네가 반드시 알아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사실, 만약 네가 바깥 세계 일에 좀 더 관심을 가졌다면 이미 알고 있을 일이지만 말이다- 최신 DNA 측정 결과에 따르면, 그때 퍼포먼스 현장에 남아있던 혈액에 변이가 일어난 부분이 있다고 하더구나. 막 복제된 클론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변이지. 그러니, 그 퍼포먼스를 했던 사람은 바로 네 아버지였단다.”

 그녀는 쪽지에 쓰인 두 줄의 의미를 곱씹으며 종이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심장에서 이가 자라났다. 그녀의 대뇌, 언어중추에서도 이가 자라났다. 그 이들은 이 무쇠보다도 단단한 글자들을 씹기 시작했다. 이가 무쇠를 갉아내는 소리 때문에 온 몸이 근질거렸다.

 아버지가 죽었다.

 십이 년 전 그 퍼포먼스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바로 자기자신을 죽였다.

 그것은 진정한 죽음의 공연이었다.

 마침내 이 사실을 명백하게 인식한 그녀는 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E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데.”

 곁에 있는 우주비행사가 말했다.

 조금 전, 인류는 처음으로 웜홀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릴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현기증이 있었고, 근육도 팽팽하게 긴장한 상태였다. 웜홀을 통과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우주만큼이나 거대하게 느껴졌다. 현재 인류가 웜홀에 대해 가진 지식으로는 웜홀의 환경을 만들어낼 수 없었기에, 웜홀을 통과하기 위한 훈련도 불가능했다. 그러니 비록 이론상으로는 웜홀을 통과하기 위한 기술을 장악한 상태라 하더라도, 실험을 통해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 우주국의 높은 분들에게 있어 이번 비행은 실험에 불과했다. 이 실험이 성공하기만 하면, 인류는 핵융합 비행선을 타고 수백 광년 밖의 머나먼 별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류는 이런 유혹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녀는 실험체가 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GU형 인공지능이 다른 우주비행사를 대신 하도록 하고 그녀 혼자 우주선을 조종하겠다고도 건의했다. 그녀는 그들이 승낙하리라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그들은 그녀 곁의 이 동료를 보내왔다.

 계산대로, 그들이 웜홀을 통과할 때 고래자리 델타 성은 바로 밝은 시기 였다. 그들은 곧 델타 성 근처의 차가운 푸른 점을 찾았다. 바로 그들의 목적인 고래자리 델타 3이었다. 우주선은 속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다.

 발끝이 별 표면의 얼어 있는 암석층에 닿은 그 순간, 그녀는 마치 전기가 통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팠다. 헬멧의 바이저 부분이 습기로 인해 흐려지고, 눈물이 머리카락 끝을 적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이곳의 중력은 지구의 1/4이다)

 그녀는 갑자기 그 여름날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그녀 위로 내려앉았던 그 날, 그의 어깨에는 붉은 구름이 걸려 있었지.

 “괜찮아?”

 통제실에 있던 동료가 물었다.

 “앞에 있는 숲이 보여? 황금빛의 숲, 거대한 나무들이 만들어낸 숲 말이야.”

 “나무라고? 아주 큰가?”

 릴리안은 허리를 굽힌 채 소리 없이 흐느꼈다.

 “무슨 일이야?”

 동료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그저 갑자기 내가 왜 이곳에 오려 했는지 생각해 냈을 뿐이야.”


*원작은 《gogomook大宇宙》에 발표되었다.

* 작가 : 糖匪(Tang Fei, 탕 페이)
탕 페이는 다작하는 여성 사변 소설가로서 과환세계, 오디세이 중국 판타지, 뉴 사이언스 픽션을 비롯한 여러 잡지에 작품을 게재하였다. 판타지, 공상 과학, 동화, 무협 등 장르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을 쓰는 작가이다. 6편의 단편이 영어로 번역되어 『Clarkesworld』『Apex』 및 『SQ Mag』에 게재되었다. 「고래자리를 본 사람」은 『Clarkesworld』의 최신호에 수록된 작품이다.
* 번역가 : 이소정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북경대에서 중국고대사로 석사를 받은 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중국어 사전실 연구원을 역임했다. 《증허락》을 번역했고, 현재 《장상사》, 《특공황비 초교전》을 번역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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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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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dHatter 17.09.05 00:10 댓글

    먹먹한 작품이네요. ㅠㅠ 역시 델타 3에 나무 같은 건 없었던 거겠죠?

    해석까지는 아니고 딱 읽었을 때 받은 인상으로 생각하면 역시 아버지가 지키려고 한 건 사진의 진위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평론가에게 순수한 감동을 주었던 미학적 실체 자체였던 것 같네요. 진짜 행성의 풍경은 아니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는 면에서는 분명히 그 형태 그대로 실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아버지가 히스테리라고 표현한 건 사진의 진위여부를 따지면서 촉발된 군중의 광기였고, 아버지의 마지막 작품은 평론가에게 휩쓸린 대중 (코끼리)이 예술가 (본인)를 압살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런 일이 온 역사에 걸쳐 장구하게 반복 (벽면의 영상)된다는 것을 표현한 것 같고요. 뭐가 되었든 코끼리가 불쌍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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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 17.09.06 10:34 댓글 수정 삭제

    먹먹하다에 한 표 추가합니다.ㅠㅠ 보았다와 그것이 거기에-존재한다의 차이에 대해 멍하니 생각해 버렸어요. 이 이야기는 평론가와 릴리안, 아버지의 시점에서 쓰여진다면 셋이 각각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고래자리라고 해서 어떤 고래일까 상상해 봤는데, 역시 중국의 스케일을 생각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큰 흰수염고래 정도는 되어야겠죠... 큰 고래! 고래 좋아하는 사람에게 정말 최고의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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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an 17.09.10 00:44 댓글 수정 삭제

    저도 먹먹함에 한표 추가요. 하드 SF도 좋지만, 이렇게 섬세한 감성이 살아있는 SF도 좋네요. 이젠 과학기술이 현실과 더욱 밀접하게 맞닿아 있어서 그런지 공감이 많이 됩니다. 언젠가는 이런 일도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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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pil 17.09.10 11:30 댓글 수정 삭제
    진짜가 아니길 빌었던 것은 진짜이고
    사실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은 부정되어버린... 그녀의 울음이 너무나도 슬플 뿐이네요... 정말 좋은 작품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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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阿明 17.09.12 12:48 댓글 수정 삭제
    厉害呀,我佩服你的宇宙,谢谢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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