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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단편 OK TO DISCONNECT

2013.05.31 23:4905.31

“안녕히 주무셨나요, 피그말리온.”
피그말리온은 그녀가 드리우는 부드러운 그늘 속에서 잠을 깼다. 혈색이 도는 살결은 햇빛을 받아 건강한 복숭아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에게 모닝 키스를 해주고 피그말리온도 침대에서 내려와 맨발로 바닥을 디뎠다. 그는 곧바로 탁 트인 테라스로 나가서 날씨를 확인했다. 무척 맑았다.
“어제 같은 밤에도 잠은 잘 오더군.”
“그렇게 태어났으니까요.” 갈라테이아가 다정하게 웃었다.
“산책을 할까.”
갈라테이아의 흰 손이 피그말리온의 다부진 손바닥 위에 사뿐히 덮였다. 둘은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들이 사는 곳은 벽돌로 지은 2층 집이었다. 2층에 낡은 침대가 있는 방이 하나.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과 1층 구석에 자리 잡은 주방. 3분의 1쯤 남은 거실. 모양을 알아보기 힘든 소파. 문틀만 남은 현관이 집의 내용이자 외모였다. 집의 절반 이상이 대폭발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산책을 하는 길은 정해져 있다. 현관 앞 돌계단을 밟고 내려와서 오른쪽으로 돈다. 그들의 집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허허벌판이다. 자주 밟고 다녀서 길처럼 단단하게 다져진 흙더미 위를 걷는다. 평평한 지평선을 향해서 가다보면 커다란 나무가 저 멀리에 보인다.
그 나무는 기적적으로 대폭발을 겪고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피그말리온은 처음 그 나무를 발견했을 땐 너무나 흥분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미 죽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땐 아주 실망스러웠지만, 나무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벅찼다. 그렇다. 죽은 나무다. 대폭발 당시 모든 생명체가 그랬듯이, 죽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흔적도 남지 않아서 피그말리온은 오랫동안 외로웠다. 그랬었다.
둘은 늘 나무가 멀리서나마 보이는 곳에 다다르면 걷기를 멈춘다. 일정한 장소였다. 그리고 언젠가 가져다 놓았던 의자에 앉아 바람과 햇빛을 즐긴다. 
“…….”
“저 나무는 앞으로도 저기에 있을 거예요.”
피그말리온이 그 나무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갈라테이아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죽어도 말이지.”
“두려우신가요?”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무척 떨려.”
죽음. 그 어두운 색 망토에 싸이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도 손바닥이 축축했다.
“당신의 이야기를 해주세요, 피그말리온.”
“그래. 어차피 시간도 많으니까 말이야.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피그말리온은 손바닥으로 입술 위를 쓰다듬었다. 그의 시선은 갈라테이아를 비껴서 먼 곳을 향했다. 초점은 흐리게 고정되어 있었고 갈색 눈동자는 땅바닥이 아닌 먼 과거를 보았다.
“난 오래 전에 태어났어. 날 낳아준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셨지. 원하던 교육을 충분히 받고…… 내가 전에 너에게 학교가 뭔지 설명했었지……. 그래, 난 로봇공학자가 됐지. 평생의 꿈이었어.”
갈라테이아는 미소를 지으며 경청하고 있었다.
“대폭발이 일어나기 전의 세계는 말이야, 갈라테이아. 정말 어마어마했다고.”
두 손을 벌리며 피그말리온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갈라테이아로서는 알 수 없는 그 때의 풍경을 손에 잡힐 듯 그려보는 것 같았다. 그는 짜릿하게 주먹을 쥐면서 눈동자를 빛냈다. 대폭발 전의 과거를 얘기할 때 피그말리온은 늘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넌 상상도 못할 거야. 유리가 햇빛을 받고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빌딩숲…… 날아다니는 자동차. 도시 곳곳에 가득한 홀로그램 전광판. 도시에는 비어있거나 도태된 곳이 없었고 모든 것은 편리한 기계로 가득했어. 난 기계문명의 신봉자였지. 기계문명은 인류가 발전했다는 ‘사실’의 증명 그 자체였어. 로봇은…… 인간과 똑같은 로봇은……” 피그말리온이 후후 웃으면서 말했다. “그 바벨탑의 꼭대기에 올려놓은 돌이었고 말이야…….”
갈라테이아가 피그말리온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
“당신은 로봇을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그건 사랑과는 달랐어. 경외감에 가까웠지.”
피그말리온은 심호흡을 했다.
“인간은 무척 불완전한 존재야. 하지만 기계는 완벽했어. 난 기계가 인간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엄청난 급진주의자였지. 기계에게 감탄할 때마다 난 인간에게 점점 실망하고 있던 것 같아. 인간은 기계문명과 자연을 동시에 지켜내지 못했거든. 인간은 언제나 실수를 하고 모든 걸 망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하지만 당신은 인간이었어요.”
“그래. 인간을 싫어하는 인간이었지. 내가 얼마나 웃음거리가 됐는지 알아. 하지만 다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은 기계의 완벽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고, 기계가 인간들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늘 안전장치를 만들어놓았지. 갈라테이아 너에게 그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나? 로봇 공학 3원칙 같은 것들 말이야.”
“네.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난 꾸준히 노력했음에도 기계로 인간을 만드는 일을 금지 당했지.”
“대신 당신 혼자만을 로봇으로 만드셨잖아요.”
피그말리온이 싱긋 웃었다.
“대폭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로봇이 되었기 때문이고 말이야.”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자신의 두 팔을 내려다보았다. 인간과 똑같은 모조피부였다. 소용없음을 알지만 그 밑에 흐르는 피까지도 똑같이 재현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과는 전혀 다른 물질로 되어있었다. 대폭발을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했다.
“대폭발…. 나는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지 못했던 거지. 기계문명에 의해 인류가 진보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았던 거야. 세계는 지나치게 많은 가치와 그 가치만을 옹호하는 문화로 쪼개져버렸어. 모두가 그게 ‘다양해진’ 거라고 믿었지. 사실은 ‘해체된’ 것일 뿐이었는데 말이야.”
“서로의 문화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이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상호간 문화교류를 하는 과정에 발전이 있다는 얘기를 해주셨잖아요?”
갈라테이아가 퍽 너그럽게 대답했다.
“이상론이야.” 피그말리온이 말허리를 잘랐다. “인간이란 건 그래서 불완전하지. 착하게 바르게 만은 살지 않거든. 그럴 수 없는 걸지도…. 인간은 다르다는 걸 두려워해. 결국 자기가 아닌 것은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야. 이성으로 머리로 가르쳐서 그래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가슴은 본능을 따라가.”
그의 표정은 무척 피곤해져있었다.
“다들 자기 목소리만 내다가 일이 터진 거지. 한 순간에 빵.”
갈라테이아가 피그말리온의 손을 쓰다듬었다.
“지나고서야 알았어. 너무나 위험한 세상이었다는 걸…. 기계문명이 발전된 만큼 한 번에 모든 터뜨려버릴 수 있는 위험성도 함께 커졌다는 걸. 당시에도 그럴 가능성은 있다는 걸 모두 알았지. 단지 그 가능성마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오만이었을 뿐….”
피그말리온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갈라테이아가 걷기 시작한 그의 곁을 따랐다. 그들은 정해진 산책길을 걷고 있었다. 또 다른 허허벌판을 걸었다.
“눈을 떴을 때 로봇들만 살아있는 걸 보고 내가 얼마나 유쾌한 기분이었는지 상상할 수 있겠어, 갈라테이아?”
“당신이 박장대소하며 웃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걸요.”
“하지만 정말 그렇게 웃었어. …로봇들이 하나둘 죽기 전까지는 말이야.”
갈라테이아의 다정한 손길이 팔에 닿았다.
“넌 그렇게 늘 나를 위로해주는 구나. 넌 질책할 줄을 몰라.”
“그게 살인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피그말리온은 무섭게 굳은 표정을 했다. 그 자신의 내면을 향한 반감이었다.
“…그래. 난 그들이 왜 죽는지 알고 있었고, 그 죽음을 막을 방법도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인간은 늘 기계를, 로봇을 완전하게 만들지 않았어. 로봇들은 자신이 깨어있는 이유가 ‘전지’ 때문이라는 것을 평생 몰랐지. 자신의 동력원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했을 거야….”
“당신이 살기 위해서였어요. 당신도 그 전지가 필요했으니까.”
둘은 잠시 묵묵히 걷기만 했다. 다음 목적지까지는 지루한 풍경만이 이어졌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시간은 꽤 흘러있었고 푸르렀던 하늘 역시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잠들었다고 생각해요.”
갈라테이아가 속삭였다. 피그말리온이 그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녀는 언제나 그렇게 이야기했다. 피그말리온은 그녀의 한 마디로 마음이 가라앉는 스스로가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 내용에 위안 받는 것인지, 단지 그녀의 호의가 따뜻해서인지는 답을 알 수 없었다.
“너는 정말 다정해.”
이윽고 둘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 곳은 로봇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공터였다. 두 사람이 여기저기에 쓰러져있던 로봇들을 하나 둘 모아서 만들어진 모습이었다. 으스스한 시체 더미 같기도 했고 하나의 커다란 조형물 같기도 했다.
피그말리온은 가장 가까이 누워있는 로봇 앞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의 몸을 열어서 빨간색 네모난 전지를 하나 꺼냈다. 비상용으로 내장되어 있는 전지였다. 로봇은 스스로는 그 전지를 꺼내서 쓸 수 없었다. 그래서 피그말리온은 모든 로봇에게서 그 전지를 꺼내서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세상에 단 하나 남은 마지막 전지였다. 더 이상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자.”
두 사람은 다 쓰러져가는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으로 들어가서 계단을 올라가 침실로 갔다. 사실 두 사람은 화장실도 주방도 쓸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만으로도 인간적인 느낌을 주었다.
“밤이 찾아오는군.”
“밤까지는 깨어있고 싶군요.”
피그말리온은 침대에 앉았다. 갈라테이아는 그의 옆이 아닌 발치를 택했다.
“하지만 감각이 무뎌져 가는 게 느껴져요. 전지가 다 되어가고 있는 것이겠죠.”
갈라테이아의 목소리는 꿈꾸는 것처럼 들렸다.
“피그말리온, 무엇 하나 물어도 될까요?”
“질문을?” 피그말리온은 놀란 듯 했다. “……좋아.”
“왜 절 만드셨어요?”
그녀의 가녀린 손이 피그말리온의 발목을 감쌌다.
“저를 만드는 건…… 낭비라고 생각하시지 않았나요? 당신 몫의 전지를 제가 나누어 쓰게 되니까요.”
피그말리온의 표정은 더욱 야릇하게 굳어졌다. 말이 없던 그는 그녀의 질문과는 다른 대답을 했다.
“내가 궁금했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피그말리온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넌…… 나에 대해 당장 가지고 있는 지식들을 ‘전부 안다’는 전제 하에 행동하도록 되어 있을 텐데.”
“네에.”
“왜 궁금했지?”
피그말리온이 쉰 목소리로 물었다. 갈라테이아는 잠시 웃기만 했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서 말했다.
“당신을 몰라서요.”
“…….”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요.”
“오, 갈라테이아…….”
갈라테이아는 피그말리온을 쓰다듬었다. 그는 어떤 경이에 떨고 있었다. 동시에 혼란에 휩싸였다. 그는 갈라테이아를 인간으로 만들었다. 로봇인 그녀의 완전함에 허점을 발견한 순간, 오히려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이아가 완전해졌다는 깨달음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이제 갈라테이아의 눈은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피그말리온은 격정적인 감정에 허덕이면서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껴안았다.
“갈라테이아. 전지를 네게 주지 않는 건 널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단지 나는 네가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잠들었으면 좋겠어.”
“네.”
“네가 집으로 오는 길을 혼자 걷지 않도록….”
해가 지고 있었다. 붉게 타는 종말이었다. 잠이 든 뒤의 세계가 어떻게 숨을 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깨어 돌아다니는 이 없이 고요하리라.



2046
환상 문학 혹은 SF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 대학생. 교양수업에서 기회가 되어 소설까지 써보게 되었다.
남에게 글을 내보인다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럽다. 아직도 쑥쓰러워 하는 중.
글에 나름의 소소한 은유를 담을 수 있다는 것, 배운 것을 녹여낼 수 있다는 것이 재밌다는 걸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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