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초청 단편 변덕

2005.07.30 02:1507.30

drwk.com  "이... 이것인가?"

  내 연락을 받고 달려온 연구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미경을 통해 보이는 것은 뭐라 규정짓기 힘든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쉴새없이 외형을 바꾸는 이것이 대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있는 사람에 서식하는 이 바이러스를 우리는 변덕이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다. 이 바이러스의 특징은 보통의 바이러스와는 달리 숙주의 몸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 다는것과 생물로서 지녀야 할 여러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었다. 이것은 증식하지 않았다. 아니, 증식에 대한 사실여부는 조사해봐야겠지만, 증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활동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았다. 하나의 개체처럼 보였던 것이 어느순간 수백!  수천개의 개체로 나뉘는가하면 그것은 또 어느 순간 하나 또는 두개의 개체로 변해있었다. 이것은 먼 조상 대대로 불리워왔던 이름처럼 변덕스러웠다.

  "이제 우린 이것이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과 그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검토해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네. 이것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왜 뻔히 보이는 선택의 기로에서 수없는 고민과 후회를 야기하게 했는지를 밝혀낸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네. 이건 정말 획기적인 발견이야."

  소장은 흥분해서 마구 떠들어댔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내가 이 실험을 하겠다고 처음 말했을 때의 소장의 반응에 대해 기억해냈다. 소장은 내게 망상이 심하다고 말했다. 피같은 연구비를 나같은 망상가에게 쓸 수는 없다고도 말했다. 그래서 나는 몰래 숨어서 AIDS바이러스의 연구를 하는 동안 짬짬히 할 수 밖에 없었다. 가족과 연구소 동료들의 샘플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연구를 해야하는 그 귀한시간에 샘플을 채취하러 밤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녀야만했다. 샘플의 분류작업은 정말 어려웠다. 게다가 하나의 샘플을 채취할 때마다 그 샘플이 변덕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며칠이고 샘플을 제공한&nb! sp;사람을 미행해야만 했다. 스토커로 몰려 유치장에 다녀온 것도 4번이나 된다. 그 때마다 연구소장은 나를 팀에서 빼야한다며 펄펄 뛰었었지. 밤새 연구실에서 현미경에 눈을 파묻고 있는 나를 보며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비웃었었다. 난 그 때마다 보란듯이 이 연구를 성공시켜 소장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겠다고 별뤘다. 그리고, 난 드디어 변덕 바이러스를 발견하는데 성공했고, 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내 연구결과를 소장에게 알렸다. 하지만 그는 내 연구의 성공에 우리라는 단어를 쓰며 기뻐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잘 된일일까?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소장의 기죽은 얼굴이었다. 저런 들뜬 모습이 ! ;아니었다.

  "지금, 굉장한 일이 벌어지고 있네. 바이러스가 엄청나게 증식하고 있어. 이유가 무언지 혹시 아는가?"

  연구소장은 줄곧 눈을 붙이고 있던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보며 물었지만, 나는 방긋 웃으며 현미경을 밀쳤다. 요란한 소리가 나며 현미경은 부서졌다. 그리고, 현미경 주위에 몇 개씩 쌓여있던 샬레가 함께 깨졌다.

  "자...자네 뭐하는 짓인가? 새...샘플은 더 있는거겠지?"

  연구소장은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당연히 여분은 없다. 그가 내게 여분의 샘플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지 않았었지. 나는 연구소장의 얼굴을 보며 통쾌함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변덕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자그마치 4년 7개월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바쳤던 연구를...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던, 단지 운이 좋아서 발견했을뿐인 이 바이러스를 나는 다시 놓아주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하찮은 이유로...


-----------

드림워커 초청 단편입니다.
mirror
댓글 0
분류 제목 날짜
초청 단편 누가 폴 오스터를 죽였나 2005.09.30
초청 단편 달 가르기 2005.09.30
초청 단편 이 달은 초청 단편이 없습니다. 2005.08.26
초청 단편 변덕 2005.07.30
초청 단편 착시현상3 2005.06.25
초청 단편 당신의 뇌, 당신의 유전자1 2005.05.28
초청 단편 모든 우연에 관한 변증법 - 우주 복고 로맨스 2005.04.29
초청 단편 아테나의 기원起原 2005.03.25
초청 단편 날개(과욕) - 신화 삐딱하게 보기. 2005.02.26
초청 단편 복사인간 2005.01.28
초청 단편 나쁜 꿈의 대하 드라마 2004.12.29
초청 단편 Beauty Maker 2004.12.29
초청 단편 곱하기 무한대 2004.11.26
초청 단편 애염(哀炎) 2004.11.26
초청 단편 봄ㆍ봄1 2004.10.30
초청 단편 공포소설을 쓰는 남자7 2004.09.24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