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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단편 Beauty Maker

2004.12.29 23:1612.29

drwk.comark-leode@hanmail.net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 창세기 제1장 31절



  백(白)의 공간.
  모든 것은 창백한 흰색이었다. 마치 그 색이 아니면 그 공간 안에 있을 수 없는 것 인양, 천장도 바닥도 수술대도 그리고 그 수술대 위에 누운 여자와 그 옆에선 남자의 가운조차도 희디흰 하얀 색이었다.

  그곳은 수술실. 수술대 주변을 둘러싸듯 설치된 각종 의료장비들은 출입문과 전면의 유리창으로 트여진 한쪽 벽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과 천장을 가득 채운 채 그 차갑고 딱딱한 금속 특유의 질감을 뽐내고 있었다.

  유일한 일탈의 공간인 나머지 한 면의 투명 유리창으론 그 너머의 공간이 비쳐 보였다. 그 너머는 그 유리란 투명의 막을 경계로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듯 평범한 가정집의 거실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키 낮은 나무 탁자와 그 양옆에 놓인 가죽 소파, 한쪽으론 조리대 놓인 주방과 침실로 통하는 문도 엿보였다. 평범했다 거기까지는...
  그곳에도 역시 이질적인 것은 있었다. 정확히는 이질적이라기 보다는 특이하다 정의하는 것이 옮았다.

  거울, 거울, 거울...
  벽이란 벽은 모두 거울들로 점령당했고 선반과 탁자 위에도 손거울들이 놓여 있었다. 심지어는 천장과 바닥에 부분부분 거울이 붙어 있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주인에겐 거울을 모으는 취미라도 있는 건지 하나도 똑같은 형태와 크기가 없이  가지각색인 그 거울들에는 한결같이 똑같은 모습의 존재들이 곤충의 겹눈처럼 비쳐 보이고 있었다.
  선글라스와 검은 양복으로 그 속에 품어진 날카로운 눈빛과 인공으로 강화된 신경과 근육을 숨기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한 경비견들. 그들은 기계로 찍어낸 듯한 똑같은 무표정으로 유리창 너머의 수술실을 주시하고 있었다.

  선글라스의 흑색이 비쳐지는 수술실 안에선 수술이 한창이었다.
  환자 하나와 의사 하나. 의료기술의 발전은 수술과 치료에 많은 손을 필요치 않게 만든다.
  흡사 금속의 촉수 마냥 수술대위로 드려 내려진 의료용 로봇팔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의사를 도왔다.

흰 마스크와 야간투시경을 닮은 집도의용 고글로 얼굴의 대부분을 가린 의사가 말했다.

  “깊이 035, X21Y36부터 X23Y40까지 절단. 반대편도 대칭절단.”

  금속촉수의 끝에서 뿜어진 보이지 않는 빛의 칼날이 여자의 뽀얀 살을 찢어내었다. 접촉면의 탄화라는 레이저 특유의 특징에 의해 절단부에서는 피조차 나지 않는다. 흡사 플라스틱 마네킹을 잘라내는 듯이 보였다. 비슷했다. 수술대 위의 여자와 마네킹. 이 둘은 모두'남에게 보이기 위한'이란 동일의 목적을 지닌 ?조형물?이다.

  “각부 지방흡입.”

  절개된 부위로 지방을 빼내자 그 부분이 매몰되면서 초승달형의 주름이 잡혔다. 쌍꺼풀이 만들어졌다.

  “봉합.”

  의사의 손이 잘려진 피부사이에 젤 형태의 의료용 풀(*주2)을 삽입하고 마주 붙게 했다. 예술가의 그것처럼 빠르고 섬세한 손놀림이었다.
  마주 붙은 상처 위에 신진대사촉진기(新陳代謝促進機)의 전극을 가져다 대었다. 특수전극에 의해 급속활성화된 세포가 벌려졌던 상처의 틈을 완전히 매꿔 버린다.
  기계를 떼어낸 피부는 언제 잘렸던 적이 있었냐는 듯 흔적 없이 말끔했다.

   “레이저 쿨터치 모드(RAZER cool teach mode)!”

  쌍꺼풀 수술에 이어 표피 주름살 제거에 들어갔다.

  주름이란 총 5가지의 종류가 있다. 출생 후 지방층이 소멸되면서 나타나는 피부의 자연스러운 결인 기립주름, 피부 아래 안면 표정근의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근육방향의 수직으로 발생하는 동적 주름(일명 표정주름), 탄력이 떨어진 피부가 중력에 의해 아래로 처지면서 생성되는 중력주름, 피부노화에 따라 생기는 자연적인 현상인 노화주름, 노화주름과 중력주름, 그리고 표정주름이 합쳐진 복합주름이었다.
  그중 특히 노화주름은 인간이 나이를 먹어가며 일어나는 인체의 노화현상 중 하나로, 피부는 맨 바깥쪽 ?표피?와 그 아래 진피 및 피하지방층으로 이뤄지는데 주름살은 자외선 등이 만들어 내는 활성산소가 진피층 내 콜라겐은 섬유질과 히알루론산을 파괴하면서 생겨나고 특히 히알루론산은 섬유질을 지탱하고 수분을 유지시켜 피부가 탄력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신체의 노화가 진행되면서 피부 내 히알루론산이 부족해지게 되면서 이 때문에 피부는 탄력을 잃고 노화주름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의사가 택한 쿨터치 레이저는 신경독소를 주입해 해당근육을 마비시킴으로서 주름을 없애는 보톡스주사와 함께 가장 효과가 뛰어나고 부작용이 적은 주름제거 수술의 방편 중 하나였다.
  어느새 마술간은 의사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들의 피부가 랩의 그것처럼 팽팽함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모든 작업이 끝난 의사는 손을 멈추고 말했다.

  “마취해제.”

  여환자의 머리 옆에 씌워진 헤드폰에서 인간의 귀론 인식치 못하는 초음파를 발산했다. 마취제를 쓰는 마취는 그 위험성으로 인해 이미 오래 전에 초음파최면방식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최면마취상태에 있던 환자의 의식이 돌아왔다.

  “잘 됐겠지?”

그녀는 깨어나자 뜯어내듯 흰 가운을 벗어 젖히며 그것부터 물어 대었다. 흰 가운 밑으로  고급 투피스를 입고 있었다.

  “직접 확인하시죠.”

  의사는 가는 손가락으로 유리창 밖을 가리켰다. 날아가는 듯한 걸음으로 단숨에 수술실을 뛰쳐나간 그녀는 거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거울 중에 가장 큰 거울 앞에 섰다. 그 전신 거울 속에선 익숙하지만 색다른 미인이 기대감으로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 거울 속의 미인의 표정은 만족의 미소로 바뀌어 갔다.

  “만족하십니까?”

  따라나온 의사가 수술용 고무장갑을 벗으며 물었다. 그녀는 의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앞으론 인공썬탠은 절대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과도한 자외선의 피부의 적이란 사실은 제가 강조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자주 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날 그런 바보들과 같이 취급하지마!”

  그녀의 일갈에 의사가 굽실대며 변명했다.

  “하, 죄송합니다! 뭐 그런 놈들도 있다는 겁니다. 자. 그럼 수술비를 좀... 헤헤.”

  여자가 경멸스럽다는 얼굴로 턱짓을 하자. 옆의 검은 양복의 사내 중 하나가 의사에게 직사각형의 크레디트 카드를 꺼내었다. 카드는 거실의 조명아래 황금빛으로 찬연히 빛나고 있었다.

  “말해두겠는데..”

  그가 의사에게 카드를 막 건네기에 앞서 손을 멈추었다. 검은 옷과 선글라스의 덩치들이 위협하듯 의사의 주변을 둘러섰다.

  “저분은 네가 누군지 모른다. 그리고, 너 역시 저분을 모른다. 방금 일은 전부 기억에서 지워라. 그러는 게 네 신상에 좋을 것이다. 알겠나?”

  “이를 말이겠습니까?.”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카드를 의사의 손에 떨구었다. 의사는 휴대용 단말로 잔액을 확인하고 카드의 금액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시켰다.

  “됐습니다. 그럼 살펴 가시길.”

  “흥!”

  의사의 인사가 채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의사를 무시하며 보디가드에 휩싸여 문을 나섰다.

< 안녕히 가십시오! >

  스피커의 인사와 함께 문이 닫히자 의사는 안경과 마스크를 벗었다.
  방금 전의 환자와 대조되는 불독 같은 주름진 얼굴 위에 피식 경멸의 미소가 떠오른다.
  무시, 폄아, 경멸... 모든 것이 그에겐 익숙한 반응이었다.
그의 수술실에서 나가는 인간들은 모두 3부류로 나뉘어 진다. 감격의 표정을 지으며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나가는 부류, 지금과 같은 경멸의 표정을 지으며 도도한 뒷모습을 보이는 부류, 그리고 마지막은 걸어나가지 못하는 부류다.

  의사는 가운을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후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 렌 이라크네 님으로부터 음성메일이 와있습니다. >

  DAC(Home Automatical Computer : 가사자동화 컴퓨터)가 음성메시지로 보지 않은 메일의 유무를 알렸다.

  “멜 오픈(mail open)!”

< 발신자 렌 이라크네. 발신시각 5시 38분. >

  거실에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급히 만날 일이 생겼거든 오늘 저녁에 8시까지 항상 만나는 거기로 와. 사랑해!”

< 편지 끝입니다. >

?손님인가??
  알선책인 랜이 그에게 연락하는 이유는 대부분 손님의 소개, 즉 사업 건이었다.
  시간에 여유는 있었지만 따로 할 일이 없었기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트를 걸치고 문을 나서자 쓰레기냄새가 섞인 퀴퀴한 공기가 그를 휘감았다. 시정부도 포기한 이곳 슬럼 가엔 쓰레기 청소차는 커녕 그나마 있던 공기 정화 시설도 마저도 고장난 채 방치되었다.
  그는 걸음을 떼며 명령했다.

  “보안장치가동.”

< 가동되었습니다.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어지럽게 발에 채이는 쓰레기들을 밟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을씨년스런 낡은 건물들이 양옆으로 병풍처럼 솟구쳐 있다. 옛날엔 비즈니스 타운이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높은 건물들은 상처입고 빼대 뿐인 그 더러워진 몸체 만으로라도 애써 하늘을 가려보이려는 듯 볼쌍사나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마치 자신의 옛 영광에 대한 미련이라도 풍기는 양.

  그 폐허의 그림자 밑으로 그를 힐끔거리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그들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들은 쥐새끼처럼 힐끔거리는 게 전부였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쥐구멍에 햇볕이 들기만을 마냥 기다리는 녀석들. 그들은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살아가겠지.. 이 시궁창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용기란 요소가 필요해..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녀석들처럼.

  “.....”

  그는 말없이 눈을 돌려 녀석들을 훑어보았다. 지저분한 옷을 겹쳐 입고 삐딱한 자세로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십대의 무리들. 이곳의 전형적인 청소년 불량그룹들이었다.
  그는 먼저 묻지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물을 필요 없이 그들이 그를 찾아오는 이유는 단 두 가지뿐이기에.. 강도 아니면 의뢰. 이번엔 의뢰라고 그는 판단했다.

  “해 쥐!”

  무리 중 가장 어린 소년이 대표로 나서며 그에게 말했다. 가장 귀염받는 무리의 막내쯤 되는 듯 하다. 그래봤자 다른 놈들처럼 얼굴 못 생긴 건 오십보 백보일 터였다.

  “돈은?”

  “있어!”

  그의 물음에 소년은 손을 내밀었다. 녀석의 손에 쥐어진 꼬깃꼬깃한 지폐들. 그들이 몇 달 이상의 벌이 - 합법이든 불법이든 -를 모은 돈이었다. 그런 노력의 결정체를 이 녀석에게 투자하기로 선택된 이유는 그래도 가장 나이어린 아이에게 수술로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들뜬 마음들은 다음 순간 피식하는 비웃음과 함께 흘러나온 그의 말에 싸늘히 가라앉았다.

  “지금 그런 껌 값도 안 되는 걸 나한테 내밀겠다는 거냐?”

  “나, 나머진 나중에 벌어서 갚으면 되잖아!”

  소년이 끝까지 매달지만 그의 말은 가차없었다.

  “닥치고 꺼져!”

  “이..!”

  “그만해. 제이!”

  발끈해 막 달려들려는 소년을 말리며 그중 리더격이 나섰다. 그래도 리더라고 녀석들 중에선 제일 나아 보였다. 얼굴이나 관록 그리고 몸매 면에서. 리더는 여자였다. 이제야 제대로 된 여자 티를 내기 시작하는 몸매로 보아 십대 후반일 꺼라 짐작 할 수 있었다.

  “다 들었어. 전엔 나중에 갚게 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이야.”

  목소리에 B+. 성대를 조금만 손대면 a+급도 충분할 것 같군. 차라리 이 정도라면 할만한 보람이 있는 소재로군.
  마치 물건을 감정하듯 눈앞의 여자를 품평한 그는 이어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까지는 듣지 못했나?”

  “....”

  그녀는 침묵으로 알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그 년은 아직도 갚고 있다. 어글리들의 정액받이가 되어서...

  “수술을 받고 싶으면 돈을 더 가져와!”

  그는 녀석들의 한가운데를 헤치며 지나쳐 갔다.
  거리를 나설 때면 늘쌍 겪는 일이었다. 적어도 녀석들에겐 그는 추함과 혐오라는 절망이 지배하는 이 나락의 땅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탈출구의 하나였기에 치기 어린 녀석들의 파리 떼 꼬이는 듯한 집적임은 한시도 거르지 않고 그를 귀찮게 한다.
  갑자기 뒤에서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야! 임마! 넌 뭐가 잘났어! 기술 좀 있다고 생색 내냐? 그러는 너도 같은 ?어글리?잖아! 자기 얼굴도 못 뜯어고치는 돌팔이 주제에! 이 개자식아!(Son of Bitch!)”

  그 말에 그의 발걸음이 딱하고 멈추었다. 천천히 뒤돌아 서는 그의 손이 코트 주머니에서 나왔다. 일순 불량그룹들은 긴장했다. 특히 그 소리를 지껄인 녀석은 표정이 거의 사색이었고 리더를 비롯한 다른 녀석들도 굳은 얼굴로 나이프를 빼들었다.
  그가 능글맞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래서?”

  그는 손에든 총구를 녀석들 쪽으로 향한 채 손가락에 힘을 가했다. 총구로 투명한 물줄기가 뻗어나갔다. 녀석들이 기겁하며 물러났고 그들 발치의 바닥이 취익하는 소리와 함께 녹아 내렸다.
  염산이었다. 고농도의 염산은 한 방울만 닿아도 살을 태우고 뼈까지 녹여버린다.

  “못생긴 얼굴을 더 추악하게 만들어 줄까? 예쁘게 하는 것만이 성형은 아니야.”

  “...가자!”

  결국 리더녀석이 부하들을 끌고 물러났다. 그는 염산이 든 주사총(고압으로 방출해 약물을 몸에 주입하는 주사기, 총의 형태를 닮았다.)을 다시 코트주머니에 쑤셔놓고 발걸음을 돌렸다.

  불법성형의사(不法成形醫師). 그것이 그의 직업이었다.
  인간이 미(美)라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마도 인간이라는 종이 발생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것은 본능이었고 인간이 걸어온 시대상의 반영이었다. 원시시대는 비만한 힙과 가슴, 배를 가진 절구형의 미인을 우대함으로서 굶주림에 대한 대비와 다산의 기능을 추구했으며 그리스 시대엔 탄탄한 몸과 둥근 사과 모양의 가슴, 화장기 없는 얼굴의 자연형으로서 건강한 인체미를 중시했다. 로마시대엔 일자눈썹과 날씬하고 털 없는 몸, 하얀 치아와 야한 화장으로서 그 시대가 물질적인 풍요로 몸을 가꾸기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을 증거 한다. 중세의 작은 가슴과 힙, 꿀을 녹인 듯한 금발과 넒은 이미, 그리고 흰 살결의 이상형은 암흑의 시대에 순결한 성녀를 바라는 민중의 바램이었고 르네상스시대의 원뿔모양가슴과 통통한 턱, 풍만한 허벅지의 성숙한 이상형은 이제 인간의 지적수준이 신이 아닌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또한 19세기말, 세기말적 염세주의 적이며 회의적 사회 분위기는 핏기 없는 피부와 야윈 몸매에 퀭한 눈을 하고 파인 볼을 지닌 병자와 유령형의 미인을 이상형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피부 중심의 자연스런 화장과 지적이면서도 섹시한 표정을 담은 환경문제의 인식과 변혁적 개성중심의 20세기를 거쳐 미의 변혁은 능숙한 변신술과 당당함, 당돌함, 묘함, 그리고 건강함등 모든 미의 이미지를 총합하며 또한 그 곳에서 조차 개성을 확립해야하는 카오스형의 이상형으로 발전해 와 있었다.
  이는 물론 서기 2000년을 훌쩍 뛰어넘은 지금에도 그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추종이 이어지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디처럼 이 더러운 슬럼의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넉넉한 품 큰 옷에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와 머플러가 필수였다.
  ?어글리?이기 때문이다. 못생긴 얼굴에 대한 자기혐오는 모든 어글리들의 공통적인 콤플렉스였다.
  완벽한 사회복지가 실현되어 - 적어도 세금을 낼 수 있는 ?시민?들에 한해서는 - 빈부의 격차가 옛 말이 되어버린 현재, 인류는 전혀 새로운 단 두 종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뷰티(BEAUTY) 그리고 어글리(UGLY).
  다른 말로는 미형인종(美形人種)과 추형인종(醜形人種)이라고도 말했다. 이 두 중의 형성은 전세기 끝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세기말 열병처럼 퍼진 탐미주의(貪美主義)는 배우자의 선택에서도 여지없이 적용되었고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처럼 미인들은 미인들끼리 어울려 자식을 낳았으며 그에 떨쳐져 나온 추인들은 추인들끼리 자식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자본과 정보의 독점에 의한 제 2의 암묵적 신분사회가 더해져 그 분화는 더욱더 심화되었다. 그 자식들은 자신들의 계급 속에서 배우자를 만나 유전자를 섞는다. 결국 ?미?의 유전자는 대를 이어 계승되면서 인종을 창출하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되어 만들어진 것이 ?뷰티?와 ?어글리?였다. 상류층은 뷰티가 되었고 하류층은 어글리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그 미의 결여는 더욱 심해져 이 슬럼에선 중류정도의 얼굴조차 찾아보기가 힘들어진다.

"여! 닥터! “

  슬럼지구의 경계에 다다르자 구역관리순경이 반색을 하며 아는 척했다. 이 순경은 배지 단 건달에 불과하다.

  “또 데이튼가?”

  “문이나 열어.”

  “딱딱하기는..”

  순경은 그가 통행세 조로 약조한 약을 건네주자 헤헤거리며 ?미?와 ?추?의 영역을 나누는 철책의 문을 열어주었다. 아마 그가 다시 돌아올 때쯤엔 해롱해롱 맛이 가 있을 것이다.

  빛의 거리로 들어서자 잠시 눈이 부셨다. 이에 선글라스의 자동채광조절기능에 의해 적당한 조도가 맞추어졌다. 렌즈너머로 호화찬란한 빛들이 색색들이 빛나고 있었다. 그 밑에선 수많은 뷰티들이 그 늘씬한 다리를 뽐내며 걸어다니거나 자기들만큼이나 날렵하고 멋들어진 차를 굴린다.
  자신만만한 미소와 과감한 노출. 그것이 뷰티들의 특징이자 특권이었다.

  아까 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걸으며 그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비릿한 웃음이었다. 저 안엔 자신의 손을 거쳐간 자도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디의 뇌리에 떠올랐다.
  그와 반대로 주변의 뷰티들은 그를 보고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무슨 혐오스런 벌레라도 보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는 이 거리에선 이방인이었다. 슬럼에서도 다른 형태의 이방인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모세의 홍해처럼 뷰티들 사이로 갈라진 길을 걸었다. 어글리이든 로봇이든 하다 못해 애완동물일지라도 세금만 낸다면 시민으로서의 기본 권리를 가질 수가 있다. 시민이란 세금이란 의무를 치러 내기에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
  통행과 거주이전의 권리 또한 그 권리 안에 포함되기에 어글리중 그리 많지 않은 세금 내는 시민인 그는 - 비록 수입의 대부분은 불법수입인지라 탈세가 당연하지만 - 당당히 뷰티들의 사이를 걸었다. 물론 다른 어글리녀석들이라면 이곳엔 나설 생각을 하는 인간도 몇 없을 터였다.

  산책 삼아 한참을 걷다보니 약속장소인 고급레스토랑 앞에 당도했다. 다가가자 멋들어진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나비넥타이를 맨 훤칠한 키의 웨이터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그를 맞았다.

  “이런 더러운 새끼가 어딜..!? 어서 꺼지지 못해!”

  환영이 열렬했다.
  그를 모르는 걸 보니 신참인 모양이었다.

  “닥치고. 지배인이나 불러.”

  “이 어글리 자식이 어디라고!”

  “나 같은 어글리가 되고 싶나?”

  웨이터의 이마에 주사총이 겨누어졌다. 급격하게 변하는 녀석의 표정은 웨이터의 얼굴근육이 잘 발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아이구! 닥터!”

  소란스러워지자 그제야 지배인이 튀어나왔다. 그 멋들어진 콧수염은 여전히 잘 다듬어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닥터 디! 이놈이 들어온 지 얼마 안돼서 몰라 뵌 겁니다!”

  지배인이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고 웨이터녀석까지 머리를 숙여 사죄하게 했다.

  “따라오십시오. 렌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디가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은 아직 몇 십 분 여유가 있었다.
  지배인이 그를 안내한 자리는 스테이지가 한눈에 보이는 특등 자리였다. 그곳은 디와 렌의 고정석이기도 했다.
  그가 들어오자 먼저 앉아 있던 주변의 손님들이 그를 보자 인상을 찡그렸다. 개중엔 입맛이 떨어졌다며 불평하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지배인은 오히려 그들을 쫓아버렸다.
  돈의 힘은 이토록 막강하다.

  “또 한바탕 했어?”

  렌이 미의 여신도 울고 갈 듯한 미소를 지으며 디를 반겼다. 옆의 지배인이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해댈 만큼 렌의 미소는 뇌세적이었다. 그 아름다운 미소가 자신의 손에 의해 주물러진 입술점막과 알로덤(인조진피), 그리고 입주변 표정근이 만들어낸 예술품이란 것을 생각하면 디는 기분이 좋아졌다.
  저 아름다운 것이 자신의 손에서 만들어진 예술품인 것이다.
그가 자리에 앉자 지배인이 손수 그의 외투를 받아주었다.

  “무슨 일이야? 이렇게 급하게 보자고 하다니. 아무리 특급 손님이라도 이런 법은 없었잖아.”

  “미안. 재미있는 일이 생겨서 말이야.”

  쭉뻗은 콧날 아래 위치한 요염의 진홍 입술 끝이 위로 올라갔다. 최고급 포도주마저도 디가 만들어낸 렌의 입술 색깔엔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뭔데?”

  “치.. 닥터는 여전히 차갑단 말이야.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 아니면 ?보스(both)?는 자기취향이 아냐? 요샌 잘 안아주지도 않고 말이야. 설마 날 두고 바람이 난 거야? 아 싫어. 정말!”

  가슴에 손을 대며 눈을 흘기는 렌의 동작에 주변 곳곳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눈빛과 동작하나로도 남자를 발정난 개처럼 사정시킬 수 있고 여자를 지리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마(魔)의 뷰티. 과연 2년 연속 ?뷰티 오브 뷰티(Beauty of Beauty)(주3)? 다웠다.

  미의 정점(頂點), 역시 렌은 디, 그가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이었다. 하지만, 소재는 소재일 뿐. 디는 피그마리온(주4)이 아니었다. 또, 그 누구에게도 그런 감정 따윈 가져 본적이 없었다. 그의 가슴속엔 사랑이란 감정자체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보스(Both)라는 것은 양성(兩性)이라는 말이었다. 정확한 학술용어로는 간성(間性)이라고 불리며 남자, 여자, 게이에 이은 제4의 성별이었다. 자녀유전부모선택권리법(주6)에 의해서 자녀의 성별을 결정할 수 있게된 부모들 중에선 자신의 취향이나 또는 자식에게 스스로 자신의 성별을 선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양성을 택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이들 보스인데 중성적인 미모로 뷰티들 중에서도 빼어난 미인 많기로 유명하여 한때 크게 유행했었다.
  디는 렌의 가식된 연기에 조소로 답했다.

  “후. 별로 내키지도 않는 일 안 하니까 살 것 같았을 텐데.”

  렌이 좋아하는 체위는 후배위나 식스나인. 섹스시 디의 추한 얼굴이 보지 않기에 이런 체위를 선호했던 것이다. 그것만 봐도 렌의 진짜 맘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디이기에, 그리고 사업파트너이기에 렌은 그와 관계를 지속유지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무슨 소리야? 난 지금도 디의 품을 생각하면 몸이 달아오른다고.”

  “쓸데없이 말 돌리지 말고 빨리 용건이나 말해.”

  “저녁 먹으면서 천천히 이야기해 줄게. 급할 것 없으니까.”

  렌과 디는 항상 즐겨찾는 최고급 스테이크를 시켰다. 스테이지에는 요즘 한창 잘 나가는 아이돌이 출현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생기발랄한 러브송이 소화작용에 어떤 영향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그저 귀엽고 깜찍한 외모 때문에 기분 좋아한다.

  노래가 끝나고 영상이 바뀌었다. 리얼홀로그램(실제와 거의 차이를 찾아 볼 수 없는 고해상도 홀로그램)으로 재현된 CG걸(Computer Graphic Garl -  3차원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아이돌)이 미디어스페이스(Media-Space - 텔레비전 및 방송이란 형식을 띄는 여러 엔터테이먼트 세계)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을 몰아낸 것도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다.

  가슴에 단 마크가 낯선 걸 보니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신생 그래픽회사의 작품인 듯했다. 스캔들 없고 방송펑크 없으며 프로그램만 입력하면 못하는 것 없는 완벽한 엔터테이먼트. 아이돌. 그것이 바로 CG걸들이었다. 그녀들과 맞설 수 있는 살아있는 연예인은 뷰티들 중에서도 거의 없는 편이다. 물론 렌은 소수의 그 맞설 수 있는 자들 중 하나다.
  웰던(바짝 익힘)으로 조리된 타조고기(주7)를 썰면서 렌이 이야기를 꺼냈다.

  “전부터 항상 묻던 건데 말이야. 오늘은 꼭 답을 들어야겠어.”

그 말에 고기 썰던 디의 손이 멈추었다.

  “왜 닥터는 수술하지 않아? 역시 중이 제 머리 목 깎는 다는 거야? 아니면 자기보다 실력 없는 남에게 맡기기가 싫은 거야?”

  “시끄러.”

  디는 별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라 치부하며 무시했다.

  “그것도 아니면 그 ?제이드?란 여자 때문?”

  그 한마디 이름에 디의 입에서 입맛이 사라졌다.

  “무슨 소리야?”

  디는 양손의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물었다.

  “오늘 내 뷰티센터에 한 여자가 찾아왔어. 그런데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드라고. 참나! 한때는 그래도 최고의 뷰티 오브 뷰티라고 찬사 받았던 사람이 그 꼴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어떻게 확인했지?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가명을 댔을 텐데..”

  “나도 그 정도 발은 있어. 알아보니 제이드란 본명이 나오더라고. 그리고 닥터가 기뻐 할 만한 소식하나. 그녀가 성형을 의뢰해 왔어.”

  “킥킥킥!”

  디는 자신도 모르게 배속으로부터 진한 웃음이 우러나왔다.
  드디어! 드디어 때가 온 것인가?  27년.. 길다면 길고 짧았다면 짧았던 시간이었다.
  결국 디는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어 젖히기 시작했다.

  “후하하하하하!”

  “디!”

  그의 입밖으로 터져 나오는 광소에 렌이 당황했다. 하지만,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크흐흐흐흐!”

  그는 웃으며 생각했다.
  운명의 신은 정말 잔인한 장난꾸러기라고...



  디는 기분이 좋았다. 그것은 간 효소의 분해량을 초과해 혈관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뇌기능을 마비시키는 에틸 알콜의 효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디는 몽롱하지만 아직 사고력엔 지장이 없는 상태로 길을 걷고 있었다. 지저분한 네온사인들이 슬럼지구의 밤거리를 알록달록한 색으로 물들인다. 그 밑에서 진한 화장으로 부족한 부분을 가린 ?정크뷰티(Junk-Beauty)?들이 손님을 유하고 있다.
  정크뷰티.. 말 그대로 쓰레기 신세로 추락한 뷰티들이다. 몰락한 뷰티이거나, 어글리에서 용케 수술을 했지만 잘못되어 재수술을 받아야 할 녀석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어글리들의 욕망과 열등감의 배수구로 벌리는 창녀들이었다.

  “오빠!”

  “닥터!”

  몇몇 그를 아는척하며 다가왔지만 디는 무시로 대응했다. 마치 뷰티들이 그에게 행동하는 것처럼.
  어글리 여자들중엔 몸을 준다거나 그의 호감을 사보려고 접근하는 이들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의 실력이면 비너스 뺨치는 얼굴이라도 눈감고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것이었다. 그러나 디에게 메스를 들게 할 수 있는 건 단 한가지 오직 돈뿐이었다.

  “저, 이것 좀 읽어보세요.”

  또, 어떤 골빈 년인가 하여 짐짓 무시하고 지나치려는 부드러운 손이 디 앞에 전단지를 내밀었다.

?짜증나는군..?

  “치워!”

  역정을 내며 뿌려 친 그의 우왁스런 손길이 옆에 서 있던 이를 향해 휘둘려 졌다. 술이 취한 탓에 힘조절이 안되던 그의 팔은 부드러운 뺨을 강하게 후려쳐 버렸고 얻어맞은 상대는 그만 작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쨍그랑.
  맑은 쇠소리가 소음 속에 울려퍼졌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넘어진 그녀는 특이한 옷을 입고 있었다. 전신을 가리는 길고 품 넓은 검은 옷. 가슴께의 십자 목걸이가 소리의 여운을 남기며 내온 불빛에 빨갛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두꺼운 책이 들려있었다. 그것은 성경. 그녀는 수녀였다.

  “저.. 조금만 제 말을 들어주세요..”

  바닥에 쓰러져서도 디에게 매달리는 수녀. 그런데 그 수녀의 얼굴이 좀 이상했다. 보통 어글리의 추한 얼굴은 여전했지만 단지 하나 눈을 뜨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디는 성형외과의의 안목으로 바로 그 이유를 알아 챌 수 있었다.
  그녀는 장님이었다. 거기다 그냥 감고 다니는 걸 보니 싸구려 인조의안조차 마련할 돈도 제대로 없는 모양이었다.

  “난 신 따윈 안 믿어.”

  디는 대뜸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쓰러져 있는 수녀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종교란 나약한 인간이 만들어낸 붙잡고 매달릴 수 있는 정신적인 기둥이다. 그건 가진 것 없고 기댈 것 없는 녀석들이 마지막으로나 비벼보는 언덕인 것이다. 그런 쓰잘대기 없는 것에 금쪽 같은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녀석들은 한마디로 멍청이다. 디에겐 종교란 이름 따윈 그런 정도의 의미에 불과했다.
  그때 디의 눈앞에서 무언가 번쩍였다.
  앞에서 쏘아진 붉은 빛의 화살은 정확히 디의 몸을 관통해 버렸다.

  어깨가 타는 듯이 아팠다. 눈앞이 일그러지듯 흔들리며 올라갔다. 디의 몸이 천천히 앞으로 꼬끄라져 갔다. 무릎이 꺾이고 배와 가슴이 뒤따른다 얼굴이 바닥에 처박혔다. 외마디의 소리들이 늘어붙는 듯히 들려오고 있었다. 처음의 아픔은 없다. 그저 멍할 뿐이다.
  디는 옆으로 돌려진 얼굴 앞으로 무언가가 다가옴을 막연히 보았다.
  은색... 반짝이... 직가의 교차 막대기...
  십자가..?
  불이 팍하고 나가 버렸다.



  그들이 말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겠나?]

  생각할 것도 없었다. 한 번 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화를 내었다.

[왜 그런 가당치도 않은 고집을 피우는가?]

[비용도 동문회가 다 댈 것이고, 최고의 기술진이 시술해주겠다는 데 뭐가 불만인가?]

  그들의 제안에 불만은 없었다. 단지 자신의 얼굴을 바꿀 맘이 없었을 뿐이다.
  바꾸면 못 알아볼 것만 같았다.
  자신을 버린 그녀가, 버림받은 자신을...

[추하기 그지없는 어글리를 우리 명예스런 대 S대 의학부 졸업생명단에 올릴 수는 없네! 자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마지막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어!]

  마지막 선고.
  그들은 그를 제적했다.
  불이 켜졌다.



  “거기서지 못해! 장난꾸러기 녀석들!”

  “와하하하하!”

  “꺄르르르르!”

  뭔가 왁자지껄한 소리와 톤 높은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디의 고막을 자극해 왔다.
  그가 눈을 뜨자 앞에 보이는 것은 지저분하고 노랗게 변색된 벽과 천정이었다. 그 벽 한켠에는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는 벌거숭이의 조각하나가 덩그러이 걸려있다. 그는 그 벌거숭이가 내려다보는 간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큭!”

  디는 상체를 일으키려다 오른 어깨로부터 퍼져오는 극심한 통증에 나직한 비명을 질렀다. 그의 오른 어깨엔 흰 고형제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누가 한 깁스 솜씨인지 형편없었지만 팔을 고정시킨다는 기능은 그럭저럭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어! 저 아저씨! 눈떴다!”

  “깼다! 깼어!”

  “수녀님!”

  다시 한번 더 소프라노의 오케스트라가 들려왔다. 어느새 그가 누워있는 침대는 아이들로 포위되었다.
  하나같이 못생긴 얼굴들... 추한 얼굴의 어글리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그의 침대 옆에 놓인 디의 물품들이 신기한 듯 만지며 장난쳤다.

  “아저씨! 이거 뭐에요?”

  “바보야! 그거 안경이라는 거야!”

  “아냐! 선글라스야!”

  “와! 이거 봐. 물총이다!”

  “쏴볼까?”

  아이하나가 집어든 물총의 끝을 디 쪽으로 향했다. 디는 자유로운 왼손을 내밀어 재빠르게 주사총을 빼앗았다. 어차피 DNA인식 기능이 달려 있어서 디가 아니면 발사되지도 않지만 그래도 총구가 자신을 향하는 것은 기분 나쁘기 그지없었다.

  “만지지마!”

  “에... 에.... 으... 으아아앙!”

  신기한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의 눈에 물기가 고이는 가 싶더니 금방 빽빽 울어버렸다. 연쇄작용으로 이어 다른 애 몇도 같이 울음을 터트렸고 몇몇은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군.?

  “다 꺼져!”

  디는 귀를 틀어막으며 다시 누워 버렸다.
  그 소동은 수녀들이 달려와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죄송해요! 애들이 뭘 몰라서 그런거에요. 용서하세요.”

  “여긴 어디지?”

  애들을 내 보낸 후 디가 수녀들에게 물었다.

  “고아원이요.”

  그 장님수녀가 대답했다. 그 날 밤 디를 붙들었던 수녀였다.
  통칭 ?고아원?. 일단 개인이나 사회단체가 세운 부모 없는 아이들의 보육시설이다. 정확히는 어글리들에게의 몇 안 되는 복지시설이었다. 뷰티들은 부모가 없다해도 이름부터 다른 최고급 국립양육기관 ?네스트(nest)?에서 먹이고 재워준다. ?고아원(orphanage)?따위 촌스러운 이름이 아닌 것이다.

  뷰티들은 아름다운 얼굴자체가 특권이자 타고나는 재산이었다. 그렇기에 세금을 들여 보호하고 양육하며 엘리트로 키워낸다. 하지만, 어글리들은 시당국이 어디서 나고 죽어가든 신경도 쓰지 않는다. 쓰레기에 세금을 낭비하는 건 세금 내는 시민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도한 가난한 어글리들은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쁘기에 고아원은 대부분 이곳처럼 종교단체가 사비를 털어 운영하는 곳이 많았다. 그나마 이런 조악한 손길조차 받을 수 있다면 그건 행운아다. 대부분 버려져 죽어가거나 스트리트키드(Street Kid)가 된다.

  “귀여운 천사들이에요.”

  “웃기는 군.. 천사들은 저렇게 못생기지 않아.”

  디는 장님수녀의 말에 콧방귀를 꿨다.
  고금을 막론하고 천사의 이미지는 극치의 미와 순결함이었다. 타락천사조차 요염하고 위험한 아름다움으로 그려지는 마당에 추악한 천사가 그려진 미술작품은 어디에도 없다. 거리의 아이들을 집 없는 천사라 부르던 시대는 반어법이 돼버린 지 오래였다.

  “근데 내가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습격을 받으셨어요. 레이저 광선이 왼 어깨를 뚫고 지나갔다고 하던데요.”

?왼 어깨.. 그나마 다행이군 젠장..?
  디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한편으론 안심했다.
  조금만 밑이었으면 바로 겨드랑이부분일터였다. 팔의 신경이 모이는 곳, 특히 오른 팔을  당했다면 메스를 놔야 할 판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디의 머리 속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누가? 그리고 왜 나를??

상처부위도 의심스러웠다

?미숙한 녀석이라 죽이려다 실패한 건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상처만 입힌 것인가...??

  아무튼 확실한 것은 그가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 무리하지 마세요!”

  디가 몸을 일으키자 수녀들이 그를 말리려 했다.

  “됐어! 이런 불결하고 짜증나는 곳에 머물다간 오히려 상처가 덧나! 돌아가서 제대로 치료하겠어.”

  “그러시다면 야..”

  그의 말에 더 이상은 말리지 않고 대신 디를 부축해 주려 했다.

  “됐어!”

  디는 뿌리치고 자신의 힘으로 일어섰다. 오른팔이외의 몸은 그대로 움직일 만했다.

  “그리고 이건 날 구해준 대가야!”

  돌려 받은 물품 중에서 지갑 속의 크레디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아뇨!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수녀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헌금으로나 해 뒤!”

  디는 침대 위에 카드를 던지고 그녀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저..이보세요!”

  “모든 일에는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이야!”

  디는 그렇게 소리치며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갔다.



  디는 스스로도 이상하리만큼 침착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조금은 흥분되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전혀 아니었다. 거울로 보는 좌우가 뒤바뀐 시계의 가장 짧은 바늘이 정확히 세 개의 기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드디어 그들이 도착했다.
  모니터로 렌과 검은 정장차림의 여자 한 명의 모습이 보였다. 둘은 보디가드들을 대동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디는 자리에서 일어나 둘을 맞았다. 예의는 갖추어주어야 할 것 같아서다.

  “일단 이쪽으로 앉으시죠.”

  평범한 얼굴의 그녀는 말없이 그의 지시에 따랐다.

  “그럼 맨 얼굴을 보여주시겠습니까?”

  “.....”

  디의 말에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눈짓을 하자 보디가드들은 알아서 다 밖으로 나가주었다. 허나 렌은 소개자로서의 마치 당연한 권리라는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디는 렌의 눈가가 미미하게 올라가 있는 것을 포착했다. 그건 흥분 될 때의 렌의 버릇이었다. 자신이 더 아름답다는 우월감 그리고 남의 치부를 보며 그 부끄러워하는 광경을 기대하는 가학성으로 랜은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제이드가 천천히 손을 자신의 얼굴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던 인조피부의 가면을 벗겨내었다. 그 안은 가관이었다. 웬만한 어글리도 저리 갈 만큼 완전히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예전부터 많이 쓰이는 표현의 하나인 ?얼굴이 무너졌다?고 하면 딱 알맞을 터였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이란 자연스런 미의 결손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던 무리한 성형수술의 결과였다. 고이며 높이 오른 수위가 한번에 터져 나오면 그 홍수의 위력은 상상을 불허하는 법이었다.

  디는 얼굴골격의 변형도 체크와 피부노화도 등의 몇가지 수술에 필요한 사항을 검사했다. 온 신경을 다 쏟아 아주 정성 들여 정확히 체크했다. 결과도 엉망이었다.

  “흠.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건 상당히 심하군요. 아직도 얼굴이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디의 말에 다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녀가 담담히 말했다.

  “그래서 당신을 찾아온 겁니다. 그 세상 어떤 성형의보다도 더 뛰어난 솜씨를 지녔다는 당신을 말이죠.”

  “송구스럽군요. 이거.”

  “할 수 있나요?”

  디는 간단히 대답했다.

  “물론이죠.”

  그녀가 간단히 요구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어 주세요.”

  “여전히 욕심쟁이시군요. 하하.”

  “여자는 욕망의 덩어리죠. 무린가요? 데빌핸드(Devil Hand)?”

  ?악마의 손?. 그녀는 뷰티사회에서의 디의 별명까지 들먹이며 교묘히 그를 자극했다. 그녀의 말에는 한마디가 감추어져 있었다.
  ?당신 솜씨론..??이라는..

  디는 미소지었다.

  “당연히 손님이 원하시는 데로 해드려 야죠.”

  “좋아요.”

  그녀는 핸드백에서 카드를 꺼내려 했다.

  “아뇨. 됐습니다. 보수는 수술이 끝난 후 한꺼번에 받도록 하죠. 맘에 들지 않으시면 안 주셔도 됩니다.”

  “정말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전 이 짓 하나로 먹고사니까요.”

  “맘에 들어요.”

  “대수술이 될 예정입니다. 한번에 하기는 힘드니 얼굴 골격세포와 밑 표정근세포, 피부세포들을 배양해서 2차에 걸쳐 차례로 교정 후 이식하겠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연락 드리죠. 며칠 안 걸릴 겁니다.”

  오늘은 일단 그녀를 돌려보냈다.
  그녀가 먼저 돌아가고 홀로 남은 렌이 디에게 물었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어? 그 추악한 얼굴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게 가능해?”

  “내가 허튼 소리하는 거 봤어? 내가 저번에 말했지. 그녀를 ?최고로 아름다운 얼굴?로 만들거라고. 그녀는 내게 있어서 최고의 작품이 될거야.”

  “에이.. 설마...”

  렌은 끝까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 전에 습격 받은 건 어떻게 됐어?”

  “끄덕 없어. 아직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상처는 다 나았으니까.”

  “그래? 다행이야.. 잘 있어!”

  렌은 인사하고 문을 나섰다.

  “후후후!”

  디는 차가 떠나는 것을 모니터로 보며 웃음 지었다. 그리고 나서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내 얼굴은 그대로 이것만... 난 기억에서조차 삭제해 버릴 만큼 당신에게 하찮은 존재였습니까? 겨우 그것밖에 안됐단 말입니까?”

  디는 그 자신밖엔 없는 곳에서, 그밖엔 듣지 못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밖에 이해치 못할 말을...
  숨막힐 듯한 살의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증오가 샘솟았다.
  그의 손에 집힌 손거울이 허공을 날아갔다.
  쨍그랑!
거울은 벽에 부딕쳐 은빛의 파편을 허공에 흩뿌리며 부서져 내렸다.

  “끄아아아아!”

  그 뒤로 그 깊은 마음속으로부터 짜내는 듯한 한 남자의 절규가 온 방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머리를 쥐어뜯고 발을 휘저으며  온몸을 떨면서 바닥위를 굴렀다. 갈질병과도  같은 미친 행동들...
  남자는 그렇게 발광하며 자식을 불태워 버렸다.



  “안돼! 안돼! 안돼! 지금은 참아야돼! 감정만으론 아무것도 해낼 수 없어! 이성으로서 이겨야해!”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디는 그렇게 소리치며 자신의 마음을 추수리려 했다.
  어글리면서 뷰티들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의과대에, 그것도 가장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는 성형외과에 학적을 올릴 수 있게 한 것은 그의 강인한 인내심과 끊임없는 노력 때문이었다. 뷰티들의 경멸 어린 시선과 조롱을 참으며 갈무리해 녀석들의 위에 올라서는 것으로 그는 모든 것을 되갚아 주었다.
  사실 그딴건 그에겐 아무의미도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한찮은 복수가 아닌 것이다.
  자신을 버린 그녀에 대한 복수...
  그것만이 그에게 있어서 진실괸 복수이자 삶의 의미고 목표이며 지표였다.
  그는 그것을 위해 자신의 영혼과 인생과 시간을 바쳤다.
  신의 자비인가? 아니면 그의 노력에 대한 상인것인가?
  이제 그 모든 것의 댓가처럼 그에겐 그토록 갈망하던 복수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 지정되지 않은 대상이 문 앞에 서있습니다. >

  그 소리에 디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귀찮게 하는 놈들을 막기 위해 입구에는 방범시스템을 설치되어 있다. 어글리중 디가 지정한 인간들이 아니면 손님대접은 커녕 따끔한 전기충격과 함께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것이 원칙대로일터인데 홈컴퓨터가 판단을 보류한 대상이라니...
  디의뇌리로 분노를 가라앉히는 또 다른 감정,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손님도 아니고 공격대상도 아닌 대상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거지??

  “화면에 비춰”

  화면이 바뀌며 문밖의 CCTV모니터화상이 보여졌다.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싼 수녀였다. 기본 시스템상으로 수녀복은 공격대상이 아닌 것이기에 디에게 질문을 해온 것이었다.
  디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감긴 양 눈. 그 장님수녀였다.

< 어떻게 할까요? >

  저년은 왜..? 그리고 어떻게 여길 온 거지..?
  디는 그녀가 참 용하다 생각되었다.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이 슬럼지구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인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다니. 이곳은 차 없이 걸어 출입하다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한편으론 그런데도 찾아오다니 정말 무모한 년이란 생각도 들었다.

  “열어줘라.”

< 예. 마스터! >

  디는 일단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
  안으로 들어온 디는 그녀가 귀 위에 자은 몽당연필모양의 물체를 꽂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시력보조 장비로 소형카메라로 인식되는 영상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뇌에 미약하나마 시각정보를 전해주는 장치였다. 가장 값싼 장비인데다 충전용이라 전기료만 드는 고물이었다. 그래도 그것이라도 있었기에 여기까지 찾아 올 수는 있었을 터였다.

  “무슨 일이지?”

  “이, 이거요.”

장님수녀는 머뭇거리더니 내게 디에게 내밀었다.
그가 준 크레디트 카드였다. 그걸 보고 디는 미간을 찡그렸다.
  겨우 이것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날 만나러 온 건가?

  “이건 받을 수 없어서 돌려드립니다.”

  수녀가 정중히 말했다.

  “요샌 교회는 헌금도 돌려주나?”

  “죄송합니다...”

  “흥.”

  디는 카드를 받았다. 자기가 싫어 안 받는 다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고로 종교인이란 예나 지금이나 꽉 막힌 녀석들뿐이군..?

  디는 문득 그녀를 놀려주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다.
  놀려주고 싶다. 부셔버리고 싶다. 장난치고 싶다.
  아직까지 늘어붙어 다 털어내지 못했던 분노와 광기의 잔재였다.

  “흠 그러고 보니 너 좀 고치면 꽤나 예쁠 것 같은데?”

  “예? 무슨 말씀이시죠?”

  “이리와!”

  “아악!”

디는 우왁스럽게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디의 힘을 못이긴 수녀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디가 이끄는 대로 소파위로 쓰러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의 몸 위로 묵직한 무게가 짓눌렸다. 디가 그녀 위에 올라타 눌러버린 것이다.

  “아, 안 돼...! 흡!”

  막 비명을 토하려는 수녀의 입에 디의 손이 덮여 버렸다.
  터져 나오려던 비명은 디의 손에 막혀 삭으러 들었다.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은 채 디가 말했다.

  “비명을 지르고 싶으면 질러. 어차피 밖으로 들릴 일도 없고 설사 들린다 해도 널 구하러 나타날 정의의 용사는 없으니까.”

디는 수녀의 입에서 손을 떼었다.

  “이래서는 안돼요!”

  “어린아이에게 꼭 어른들은 항상 그렇게 말하지. 안됀다고. 그럼 난 아이처럼 물어보겠어. 왜?”

  “이건 죄악이에요.”

  “죄악이 뭔데? 이런거 말인가?”

  쫘악!
  디의 손에 의해 수녀복이 길게 새로로 찢겨나갔다.그 찟긴 옷 사이로 흰색 속옷들과 하얀 피부가 비쳐보였다. 놀라는 수녀의 양 손목을 잡아서 수녀의 머리위로 올렸다. 그리고 찢은 옷조각으로 동여매여 움직이지 못하게 마무리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요리해 보실까나! 크크!”

  “이, 이러지 마세요! 아까 죄악이 뭐냐고 물으셨죠? 그건 인간이 나아가선 안돼는 잘못된 행동이에요.”

의외로 수녀는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허나 그래도 디의 손의 그녀의 옷 속을 파고드는 것엔 놀라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됐다는 걸 누가 정했는데?”

  혀로 그녀의 목덜미를 핥던 입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소근대었다.

  “하느님이세요.”

  “그딴 건 없어. 있으면 증거를 대봐.”

  디의 입속 달팽이는 목을 과 어깨를 지나 산맥에 당도했고, 산맥의 정상에서 한참을 노닐다가 다가 하산하여 평원을 지나가고 있었다. 깊게 패인 작은 구덩이를 지나치며 길게 그  흔적을 감기며 여로는 게속해서 내려가고 있었다.

  “세상 모두가 하느님께서 실재 하시다는 증거예요.”

  “킥킥킥. 하긴 이건 확실히 조물주란 놈이 잘한 것이지. 여자 다리사이에 이런걸 붙여준 건 말이야!”

  “흡!”

게속 내려가던 디의 얼굴이 끝내 다리 사이에 파묻히자 수녀는 작은 비명을 지르며 전신의 근육을 긴장 시켰다.

  “낄낄. 너무 긴장하지마. 오늘 이 몸의 환상적 테크닉으로 너한테 천국구경을 시켜줄려는 거니까! 그러니 찬양할 준비나 해. 이제 아주 열심히 지르게 될 테니까!     신음으로 된 허밍의 찬양을!”

다시 디의 얼굴이 위로 올라오며 속옷 밑으로 이번엔 차갑고 딱딱한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그러자 수녀는 몸에 힘을 빼버렸다.

  “후! 포기한건가?”

  “주님! 용서하세요!”

  그러나 위쪽에서 들려오는 수녀의 목소리에 그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묵인 팔을 가슴까지 내려 맞잡은 채 눈을 감고 무어라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는 단지 화가 나셨을 뿐입니다.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모르십니다. 그러니 부디 궁휼이 여기사 그를 용서해 주세요...”

  기도하고 있었다. 자신을 용서하라고...
  뭘 용서한단 말인가? 누가 누구를 용서한단 말인가? 왜 그걸 빌고 있는 것일까?
  디는 진지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표정과 기도를 보고 들으며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킥킥킥킥킥....”

휘파람 같은 긴 웃음소리가 그의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하! 넌 정말 웃기지도 않는 년이야...”

그녀의 기도는 그가 그녀의 몸 위에서 몸을 일으키고도 한참이나 계속 되었다.



  “...아멘...!”

오랜 기도가 끝나고 그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녀의 얼굴로 회색의 두터운 외투가 던져졌다.

  “그거라도 걸쳐서 가려. 찢어진 옷값은 물어주지.”

  “됐어요. 다시 고치면 되요.”

  “맘대로 해.”

  “.....”

  “.....”

잠시 둘만의 공간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디였다.

  “넌 확실히 신의 축복을 받은 몸인 것 같군. 눈이 안보이니 매일 어글리 아이들의 그 추한 상판을 보지 않아도 될테니까.”

  “추한 것은 인간의 기준 일 뿐. 주님이 지으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아름다운 것이에요.”

  수녀라는 직분에 충실한 대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그거야 이상이라는 헛지껄임이고. 아름다움과 추함은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이야. 나면서부터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누구는 아름답고 누구는 추해. 그 불공평함이 신의 뜻인가? 신도 아름다운 애들을 더 어여뻐할걸?”

  “우리는 모두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에요. 어버이 앞에서 우리모두는 평등하죠.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엔 차별이 없는 것처럼요.”

  “웃기지마!”

  그는 버럭 소리쳤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 후후후! 그딴 신파조는 이미 물 건너 간지 오래야! 자기가 낳아놓고도 필요 없다고 내버리고 아예 귀찮다고 배속에서 지워버리는 게 이 세상이야! 웃기지마!”

  “.....”

  그녀는 다시 침묵했고 디는 후회했다. 아까부터 자신답지 않게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자신이 싫었다.

  “뭔가 사연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

  이번엔 디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볼일 끝났으면 가봐!”

  디는 손가락으로 출입구를 가리켰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도하세요. 분명 주님께서 힘이 되어 주실 거예요!”

문이 닫히고 그녀의 말이 여운처럼 허공에 맴돌았다.



  1차 집도가 시작되었다. 수술의 내용은 간단했다. 그녀의 깎이고 겹질러진 얼굴 뼈대를 프로텍트로 바로잡아 교정하는 2차 수술에 앞선 예비준비였다. 그래도 범위가 넓었기에 시간은 꽤 걸린 편이었다. 기술의 발달로 지금은 보통 몇 십 분 안에 끝나는 수술이 이번엔 배가 걸린 것이다 그것도 2차에서 더 걸릴지도 몰랐다. 뼈대가 굳기를 기다려 얼굴근육들을 완전히 새로 배열해야만 하는 대수술이었다.

  “벌써 예뻐지는 것 같군요.”

  그런대로 형태는 갖췄다는 디의 말에 그녀가 웃었다.
  그녀를 보낸 후 홀로 남은 렌이 디를 불렀다.

  “디!”

  렌의 얼굴은 딱딱히 굳어 있었다. 그녀가 핸드백에서 손을 빼내었다. 그녀의 손엔 작은 권총이 들려있었다. 그런 돌연한 렌의 행동에 디가 긴장했다.

  “왜.. 이래..? 렌?”

  “난 용납할 수 없어!”

  렌도 긴장했는지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총구의 끝은 여전히 디를 겨누고 있었다.

  “뭘 말이야?”

  디는 침착하게 맞섰다.

  “제이드, 그 여자..! 내가 봐도 예뻐지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어. 확실히 전설의 뷰티 오브 뷰티 답더군! 말해봐! 정말 그 여잘 나보다도 더 예쁘게 할거야?”

  “그때 내가 저격당한 건 네가 사주한 일이었냐?”

  렌이 들고 있는 소수경의 레이저권총. 레이저답게 살상력은 약하지만 머리나 심장같은 주요 부위를 맞는 다면 충분히 목숨을 끝낼 수 있는 무기였다, 그리고 디를 저격한 것과 같은 무기이기도 했다. 디는 이제서야 명확해진 의혹에 혀를 찼다.

  “부상을 입혀서 수술 못하게 할 셈이었지! 그것도 봐 준거야! 완전히 죽여버릴수도 있었으니까! 넌 나 이외엔 다른 사람을 손대면 안돼! 너의 기술은 내 꺼야! 넌 나를 최고로 만들기 위해 존재해!”

  렌이 그 요염한 입술로 추악한 마음을 내뱉었다.

  “참나! 내 손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야. 오직 나만의 것이지. 그만하고 총 치워.”
  디는 어깨를 으쓱이며 한 발 짝 뒤로 물러나 소파 위에 털썩 엉덩이를 떨어트렸다.

  “아니, 난 알아! 디는 절대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 다는 거!”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예쁜 건 오직 나야! 앞으로 예뻐야 할 사람도 바로 나고! “

  “그러니까 내가 말을 안 들으면 날 죽여서라도 너보다 그 여자가 더 예뻐지는 걸 막겠다? 이거냐?”

  “그래!”

  참으로 간단명료하며 단순무식한 논리였다.

  “후...”

  디는 길게 한숨 쉬며 미소지었다. 예의 비웃음이 섞인.. 그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틀렸어. 다음 뷰티 오브 뷰티 대회에서도 그 여잔 너와 경쟁할 수가 없을 거야.”

  “왜지?”

  “아무리 참가에 제한이 없다지만 참가할 수 없는 부류도 있거든.”

  “그게 뭔데?”

  “시체. 죽은 자는 산 자의 영역에 간섭할 수 없거든 그게 세상의 ?법칙?이야.”

  기계가 작동했다. 그리고 렌은 다음 대회엔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한가지 물어도 될까?”

  “아.. 예..”

  고해실 커튼너머로 수녀가 조금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저 좁은 창문 너머론 그 장님수녀가 있었다.

  “음.. 뭐라고 부르면 되지?”

  막상 디는 자신이 그녀의 이름도 모른 다는 사실을 깨닫고 먼저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마리아라고 부르세요..”

  마리아 고아원. 마리아.
  가장 흔하고 널리 알려진 성모의 이름이었다.

  “선생님은...”

  “그냥 닥터라고 불러.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예.. 고해하러 오셨나요?”

  “그런 셈이지.”

  “어떤 죄를 지으셨나요?”

  “살인.”

  디의 짧고 가벼운 대답에 벽 너머로 수녀가 움찔 놀라는 게 느껴졌다.

  “...저, 정말이신가요...?”

  그녀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어. 정당방위였지. 그러나 다음엔 의도적인 게 될 거야.”

  “제발 그만두세요.! 그리고 회계하세요.! 주님께 용서를 구하세요! 살인은 그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 될 수 없어요.! 생명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디의 말에 마리아 수녀가 열변을 토하듯 말했다.

  생명과 그 생명을 소멸시키는 행위인 살인에 대한 일반론을 펼치며 호들갑떠는 그녀. 디는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걸 정말 아쉬워했다.
  디는 빈정임을 한껏 담아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수녀님! 그럼 이 죄많은 죄인이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자식을 죽인 어머니와 어머니를 죽인 자식.. 어느 쪽이 더 무거운 죄를 지은 것입니까?”

  “그, 그건....”

  디는 대답을 채 듣지도 않고 말없이 고해실의 문을 나섰다.

  “그분을 용서하세요. 그리고 그분을 위해 기도하세요.”

  끝머리의 수녀의 말이 디의 귓가에 머물다 희석돼갔다.



  디는 천천히 집도를 마쳤다. 그리고 그녀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초침 움직이는 것이 꼭 시침처럼 느껴졌다.

  “잘 됐나요?”

  성형수술이 끝난 환자들이 깨어나 처음 내뱉는 말은 항상 비슷한 했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울 속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환생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녀가 반색했다. 당연했다. 그녀는 디가 심혈을 기울인 최고의 역작이었다.

  “얼마죠? 얼마든지 말하세요.”

  그녀는 달라면 얼굴만 빼고 목숨이라도 다 줄 것 같은 얼굴로 디에게 물었다. 하지만 디는 고개를 저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그럼 보석으로 지불할까요? 아니면 채권?”

  그녀는 흥분해 마구 말을 주체못하고 있었다.

  “그런 듯이 아닙니다. 잠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분과 몇 분 정도만 차를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광이면 족합니다.”

  “그러죠.”

  디의 말에 그녀가 쾌히 승낙했다. 거실로 자리를 옮겨 디는 그녀에게 차를 대접했다.

  “안에 거울이 많군요. 거울을 모으시나 보죠?”

  어글리가 자신의 추한 얼굴이 비쳐 보이는 거울로 응접실을 도배하고 있다면 확실히 신기한 일이었다. 혹 그가 자학의 취미가 있거나 정신구조가 특이하지는 않은지 하는 의심을 받은 적도 있었다.
  자신이 만든 차맛을 음미하고 나서 디가 입을 열었다.

  “제가 한가지 재밌는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해보세요.”

  “한 어글리 소녀가 있었습니다.”

  디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소녀는 다른 모든 어글리들이 그러하듯히 뷰티가 되는게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기로 했죠.”

  그녀는 아직까진 무슨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글리 소녀에겐 성형수술에 필요한 그 큰 돈을 벌 방법이 업었습니다. 있는 것이라고는 그래도 건강한 몸뚱아리 하나뿐. 수술비는 몸을 판다해도 일평생을 벌어도 모자르죠. 그래서 소녀는 한가지 생각을 해냈습니다. 몸을 팔기로 한 겁니다. 정확힌 장기를 팔기로 했죠. 물론 소녀 자신의 장기가 아닌 자기가 임신한 아이들의 장기였죠. 뭐, 요즘엔 값 싼 장기복제기술이 개발되서 물 건너 가버린 일이긴 하지만요. 소녀의 아기들 장기는 아주 비싼 값에 팔려나갔습니다. 심장, 두뇌, 안구, 신장, 간, 폐 등둥.. 하나도 남김없이 말입니다. 덕분에 소녀는 단 3년만에 성형수술이 가능할 정도의 돈을 모았죠.”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런데 성형수술에 걸림돌은 뱃속에 든 4번째 아이였습니다. 당시 7개월 째. 낙태하기엔 너무 늦은 때였죠. 건강상 안 좋으니까요.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조기유도 분만으로 뱃속에서 그 아기를 끄집어내고는 아기를 놔둔 채 병원에서 총총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후 소녀는 최고급 성형수술을 받고 뷰티 오브 뷰티에 올라 온갖 찬사와 시선을 한 몸에 받았죠. 꿈을 이룬 겁니다.”

  그녀의 손에 든 찻잔이 천천히 차 접시 위해 놓여졌다.
  달그락.
  그 소리가 냉랭히 주변에 울려 퍼졌다.

  “이번엔 남은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그 아기는 보육시설로 보내져 그곳에서 자라났지요. 어머니에게 받은 것은 남들보다 조금 더 뛰어난 머리와 추악한 얼굴이었습니다. 아이는 자라 소년이 되었고 천재적인 지능을 인정받아서 어글리 임에도 예외적으로 학교도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항상 궁금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요. 아이는 청년이 되어 의학부에 들어갔습니다. 그때쯤 아이는 알게되었죠. 자신을 버린 어머니의 대해서.. 그후 아이는 의대에서 쫓겨나 불법성형이나 하면서 먹고살게 된 겁니다. 언젠간 수술 부작용으로 고생하게 될 어머니를 자신의 손으로 낫게 해드릴 날이 올 거란 확신을 가지고.”

  “....”

  정적이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제이드는 시선을 내리깐 채 찻잔의 스푼만을 돌렸다. 스푼이 부딪치는 맑은 소리가 종소리처럼 메아리쳤다.

  “그 이야기 누구에게 한 적 있나요?”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택지 A와 B...
  그녀는 전자를 택했다. 디도 그러리라 생각했었다.
  디의 가슴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후 내가 조금이나마 적어도 마음 한구석에선 후자 ?..그 아이는 어머니를 미워할까요...?? 이런 질문을 택해주길 바라고 있었나..? 웃기는 군.?

  디 스스로 질문하며 자조했다.

  “아무에게도..”

  “그렇군요.”

  안도하는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가늘고 아름다운 손가락이 탁자 밑으로 들어갔다. 핸드백 속으로 들어간 그녀의 손이 스위치를 눌렀다.
  곧 디는 신호를 받고 안으로 달려 들어온 그녀의 경호원들에 의해 둘러 쌓인 채 마지막 차 맛을 음미하는 신세가 되었다.

  “먼저 일어나야겠네요. 실례.”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자리를 뜨려했다. 경호원들의 대장쯤에게 귓속말로 모종의 지시를 내린 채. 고개를 끄덕인 녀석은 디를 향해 돌아섰다. 장갑을 낀 손에 쥐어진 한 개의 총구가 디의 내 관자놀이에 닿았다. 장갑을 낀 것은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아이가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증오하지 않는 다면 거짓이겠죠. 자기 환자로 온 어머니를 수술도중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말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디는 떠나가는 그녀의 등에 대고 말했다. 마지막 기회였다. 미련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조금 망설여졌을 뿐이었다.

  “흥.”

  그녀는 멈취서는 기색도 없이 앙칼진 콧방귀와 함께 그대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끝났다.
  디는 맘을 굳혔다. 그리고 말했다.

  “역시군요.. 이거 아십니까? 유전이라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닮는 ?법칙?입니다.”

  다음 순간 빛이 쏘아졌다. 음성키워드입력에 따라 작동된 최대출력의 레이저 메스들이 수술실을 뛰쳐나온 것이다. 수술실에서 거실로 통하는 유리창을 통과한 빛의 칼들은 응접실로 들어온 후 주변을 가득 매운 거울들에 요란히 반사되면서 그 교묘한 각도에 따라 디가 앉아 있는 자리만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난도질했다.

  검은 사내들과 디가 만든 최고의 걸작은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벌집이 되어 버렸다. 레이저 광선으로 뚫린 지라 피도 나지 않아 주변은 마치 쓰러진 마네킹들로 가득 매워진 것 같다.

  렌과 어머닌 한가지를 잊고 있었다. 이곳은 그의 홈그라운드. ?슬럼?과 ?불법?이라는 위험을 항시 안고 살아가는 그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장치 하나 없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자신이 아닌 다른 녀석에게 그런 것을 알려줄 일도 없었다.
  디의 수술실에서 나가는 3분류 중 마지막 하나는 제 발로 못 걸어 나가는 자들인 것이다.

  “경찰에 연락해라.”

<예! 마스터!>

  숨겨진 CCTV로 촬영된 영상이 자신의 정당방위를 말해줄 것이었다.
  디는 제이드의 시신으로 다가가 덩그러히 잘린 머리통을 집어들었다. 렌과 제이드는 한가지를 더 모르고 있었다. 그가 말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의 의미를.
  디는 제이드의 머리를 탁자 위에 놓은 후 표피를 힘껏 잡아 뜯어내었다. 그 밑에서 위에 덮힌 눈부신 아름다움만큼이나 추하기 그지없는 얼굴이 드러났다. 그건 디의 현재 얼굴과 닮아 있었다. 아들을 닮은 어머니의 얼굴. 디가 맘속으로 상상하던 그리고 수없이 꿈에서 보아오던 자신의 어머니의 얼굴이다.
  자식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바로 사랑하는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그의 발걸음이 성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왜 인지는 몰랐다. 디는 그저 그쪽으로 가도 싶었다.
  성당 옆 고아원 한켠에선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그 속엔 마리아 수녀도 있었다. 그녀는 어글리 아이들과 함께 장난치며 웃고 있었다. 순간 디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름답다..!??

  디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햇살이 마치 천사나 성자의 후광처럼 역광효과를 내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저 디의 마음에 그 모습들이 진심으로 아름답게 보일 뿐이었다.
  아이들이 그리고 그 속의 마리아 수녀가 너무나 아름답게만 보였다.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이상했다.

?왜 저  어글리인 아들까지 이처럼 어여쁘게 보이는 거지? 내 정신상태가 좀 불안한 게 아닐까? 아냐. 좀 피곤할 뿐이야.. 그래. 그럴지도..?

  디는 그렇게 고개를 내저으며 생각을 지웠다.

  “닥터...”

  문득 그녀가 디의 출현을 알아채고는 놀란 얼굴을 했다.

  “안녕..?”

  디가 인사했다.
  그녀는 잠시 아이들을 다른 수녀에게 맡기고는 디쪽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구석의 벤치로 디를 데리고 갔다.

  “어쩐 일로...”

  “그냥. 그런데 희한해..”

  디는 화제를 돌렸다.

  “뭐가요?”

  “잠시 저기서 뛰노는 아이들과 당신이 이상하게 예쁘게 보이더라고. 마치 아프로디테와 그 주변을 뛰노는 큐피트들 같다고나 할까? 어글리여신과 어글리 큐피트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데도 말이야.”

  “웃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웃는 아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예쁠테니까요.”

  마리아 수녀는 간단히 디의 궁금을 자기식으로 정의해 주었다.

  “그런가..? 웃기 때문에 예쁘다라.. 그럼 당신은 아이들을 웃게 만든 사람이니. 당신이 그 미를 만들어낸 것인가?”

  그때쯤 입구 쪽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제복의 그들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고아원 안으로 뛰었다. 제복 입은 괴한들의 난입에 아이들이 소리질렀고 그 속에서 그은 정확히 디를 향해 쇄도해 왔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군. 그저 잠시 보고 싶어서 들렀을 뿐이야.”

  디는 천천히 일어났다.
  경관들이 디의 양옆에서 팔을 잡고 그의 손목에 자력식 수갑을 채웠다.

  “당신을 시신훼손 및 유기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과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단지 유일한 친자이기에 자신의 것이 될 어머니의 유체를 음식쓰레기 분쇄기에 넣어 잘게 썰었다는 것이 그의 죄명이었다. 디는 그저 전설의 뷰티를 원료로 한 비료를 만들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더욱더 아름다운 꽃이 필지도 모르기에..

  디는 고아들과 수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우왁스런 손길에 끌려나가 차에 태워졌다.
  투명한 유리창너머로 마리아 수녀의 얼굴이 있었다. 불안과 슬픔을 머금은 것이 이상하게도 디에겐 너무나 귀여워 보였다.

  디를 태운 경찰차는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그녀로부터 멀어져 갔다.


<< Beauty Maker Outed >>

[용어설명]

#주1 shadow run
  모든 비합법적인 일의 총칭.

#주2 의료용 풀
상처를 꿰매 봉합하는 기존의 방식에 반하여 개발된 풀로써 인체에 무해한 접착제로 상처부위를 접합하는 방식이다. 의료용 풀의 사용은 현대 의학 일부에서도 조금씩 사용되고 있다.

#주3 뷰티 오브 뷰티(Beauty of Beauty)
매년 열리는 미스코리아와 같은 미인 선발대회의 챔피언, 성별, 기혼 등 출전에 있어선 어떠한 제한도 없다. 오직 얼마나 아름다운가 만을 심사함.

#4 피그마리온(PYGMALI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자기가 만든 상아조각상 갈라테아를 사랑한 키프로스의 조각가이자 왕.

#주5 자녀유전부모선택권리법
  부모가 자녀의 유전적인 요소를 선택 할 수 있다는 권리를 명시한 법. 성별 및 지능, 체모와 눈동자의 색, 키, 비만 등의 체형, 근시와 유전병 등을 선택, 정제한다. 단 게놈클리닉에는 상당한 돈이 들므로 옵션으로 몇 가지씩만 하는 것이 보통. 그나마 돈 없는 어글리에겐 강 건너의 이야기다.

#주6 타조고기
  먹이를 가리지 않고 어떤 환경에서도 생존력이 강한 타조는 미래의 식량자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근육질이기에 그 육질의 양과 맛에서도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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