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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단편 10분간의 추리여행

2006.09.30 01:1709.30

readingfantasy.pe.kr이 이야기는 실화다.
실제 일인 만큼 신중해지고 손이 떨리는것은 어쩔수 없지만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진실은 말해져야 하며 진실은 강압이나 공포 따위로 사그라들 간단한 가치가 아니므로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진실을 공개한다.

그날, 비오는 토요일 오후 5시경, 나는 도서관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131번 버스에 탔다. 다행히 젖지 않은 가방속에서 5천원짜리 추리소설 한권을 꺼내 읽다가 급정거한 버스기사를 향해 몇마디 중얼거릴 무렵이었다.
미라 아파트 앞에서 탄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그녀가 끼어있었다.
사실 그녀라는 말 대신 좀더 정확한 말을 쓰고 싶지만 어떠한 주장이 다른사람에게 충분히 설득되기 전에는 다른이의 의견과 상태를 고려해야 하므로 한동안 '그녀'라는 말을 써보겠다.

검은 비닐봉지 두개를 든 아줌마와 보따리를 낀 할머니 뒤에서 그녀가 동전을 내고 타면서부터 내 시선은 순간 그녀에게 고정되었다. 여기서 시선이라는 말이 맞는 것일까? 주로 사용하는 인식의 감각이 시각이고 인식의 표현인 언어또한 시각에 맞춰 발명되었지만 사실 그렇기에 시각은 가장 속기 쉬운 감각기다. 그녀의 정체를 먼저 탐지한건 아직 원시적 감각이 남아있는 코였다. 그녀가 아줌마의 뒤를 이어 버스에 타는 순간 내 후각은 피비린내를 감지했다.

누군가 나를 추리소설과다탐독성 과대망상증으로 치부해도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사회에서 어쩔수 없는 일이지만 내 직감은 확고했다.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막연한 직감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지만 그녀가 평범하지 않다는것은 확실했다.

피비린내를 동반한 모자를 푹 눌러쓴 범상찮은 여인.

검은 때에 낡은 것이 확연한 미라 아파트는 그리 번화가라 불릴 곳은 되지 못한다. 몇년전 이 지방에서 생겼던 거품때 마구 지어진 많은 아파트중 하나다. 왜 그녀는 미라아파트 앞에서 버스를 탄걸까?
우선 그녀는 미라 아파트 주민이 아니다. 5시라면 보통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저녁약속 같은 걸로 보기에 그녀의 옷차림은 센스와 거리가 한참 먼 내 눈에도 허술하게 보였다. 더구나 비가 오지 않는가. 어떠한 이유로 저물어가는 시간에 버스를 탄 것일까? 이렇게 늦었으니 저녁이라도 한끼 먹고 가야하지 않을까? 왜 이 시간에? 왜 버스카드를 쓰지 않지? 왜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그리고, 피비린내는?

'있을 수 없는일을 제외하고 남는것이 아무리 믿을 수 없더라도 진실이다.'

셜록홈즈의 그 유명한 대사가 머릿속을 스치는것과 동시에 무작위로 산재되어있던 사실들이 하나의 추리를 구성했다.

그녀는 오늘 미라아파트에서 사람을 죽인것이다.

살인자가 이 버스에 있다.

'집까지 찾아온걸 보니 피해자와 가까운 사람이었겠지. 가다가 들렸다며 자연스럽게 집에 들어가 경계가 허술해진 피해자를 죽이고....'

여기까지 추리가 진행됐을 무렵, 내 뒷자리에 앉아게시던 아저씨 한분이 내리고 그녀가 내 뒷쪽으로 이동해 앉았다. 소름이 쫙 끼처왔다. 필사적으로 침착을 찾으려 했지만 난 지금 살인자를 '등뒤에' 두고 있는것이다. 등줄기에 흐르는 오싹함을 감추고 손에 들린 5천원짜리 해문책에 애써 시선을 고정시켰다. 읽을수 없었다. 다만 그곳에 두지 않으면 미칠듯이 굴러갈 시선을 적당히 처리할 곳이 없기에 그리 했을 뿐이다. 범인이 누구더라, 트릭은 어떤걸까, 아까 증언에 모순이 있었던거 같은데....  평소라면 절대로 흘릴수 있는 의문이 아니지만 내 뒤에 진짜 사람을 하나─어쩌면 여럿일지도 모른다─처리하고 온 살인자가 있을 경우에는 소설속의 고상한 살인자들은 필요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 뒷자리에 앉은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보통 벨소리와 달리 시끄럽다기 보다는 차분하고 느리게 들렸다. 그 벨소리를 듣자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 지면서 내 안의 홈즈가 눈뜨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서다.' 모닝콜로 쓰면 십중팔구 잠들기 딱 좋은 벨소리.
벨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녀가 살인자라는 심증을 더욱 굳혔다. 성격 더러운 사람이 살인도 할것이라 생각해서는 안된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지능적으로 신속간단하게 처리하려면 차분하고 냉철한 사고의 필요성이 절대적이다. 탐정보다 철저한 사람은 범인뿐이라던가. 나는 주의깊게 벨소리를 세겨들었다.

전화벨이 몇번 울리자마자 그녀는 기다린듯이 전화를 받았고 통화를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엿들으려 노력했지만 소설과 현실의 결정적인 차이를 실감했다. 홈즈라면 무리없이 엿들었겠지만 나는 긴장을 너무 한 탓인지 버스기사의 라디오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영어듣기평가 마냥 제대로 들리는것이 별로 없었다. 아니, 그녀가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여보세요?  ───.........어디서?...... 132번 탔으니까─── ......... 알았어......그럼──..."


'132번'

버스를 세차게 때리는 빗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3자리 숫자는 그녀의 휴대폰과 내 고막 사이의 공간을 순간적으로 접어버렸다. 뒷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것은 큰 실수지만 제대로 들은 132번이라는 버스번호와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거짓말을 하고있다'

지금 버스는 분명 131번이다. 같이 미라아파트 앞을 지나는 131번과 132번은 덕산주유소부터 길이 갈려 전혀 다른 노선을 달린다. 왜 거짓말을 한것일까? 131번이 어디를 지나더라? 덕산주유소를 지나 청과물 시장, 중앙고등학교, 삼도상가, 상정육교........ 하정리! 비록 내가 상정육교에서 내리기에 하정리가 어디쯤이고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하정리와 함께 떠오르는 지명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하정저수지. 저수지에서 뭘 할 생각일까? 시체유기? 시체가 들어갈만한 큰 짐은 없는듯 한데... 그녀가 가진 짐이라고는 3단우산 끄트머리가 비죽한 손가방 하나뿐이다. 손가방 하나. 머리 하나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까? 수시로 여닫는 손가방안에 시체머리가 들어있으리라고 생각하진 못하겠지만 그런 생각이 만든 가장 안전한 사각지대가 손가방이다. 신원 확인을 못하게 머리만 저수지에 가라 앉혀 버리려는건가? 도려진 지문이 비닐봉지에 담겨 같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저 손가방에 머리가 들어있는 걸까? 나는 손에 들고있는 책에서 천천히 눈을 때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창문에 그녀의 모습이 반사되어 보였다. 천만다행이게도 그녀는 핸드폰으로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었고 나는 문제의 손가방을 보기위해 고개를 조금 더 기울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빠른속도로 책에 코를 박듯이 고개를 숙였다.
시야 언저리로 그녀가 창문을, 그녀를 빤이 처다보던 내 모습이 분명이 비첬을 창문을 보았다는걸 알고, 정말 그땐 심장이 멎는줄 알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살해당하는건 아닐까? 난 왜 도대체 왜 이 버스를 탔을까? 극도로 긴장한 내 귀에 그녀의 낮은 속삭임이 들렸다.

"젠장."

당신은 상상 할 수 있겠는가? 비오는 날 사람하나 처리하고 온 살인마의 나지막한 음성으로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 말을 듣는 기분을. 이전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공포가 몰려왔다. 이것이 죽음의 예감일까? 상정육교에서 내리는 나를 그녀가 쫓아온다면 그때부터는 대책이 없다.

'골목골목으로 가득찬 집 근처 어두운 곳에서 소리없이 사라지겠지.'

'아니, 굳이 그녀가 죽이기 쉬운곳에 내릴 필요가 없다.'

종점까지 가서 많은 인파에 섞여 살인자를 따돌리고 집으로 오면 된다. 아니면 전화를 하든지. 그러자, 놀랍게도 머릿속이 한결 차분해지면서 사정없이 뛰는 심장도 가라앉힐수 있었다. 물론 평소에는 이런 누구나 예측가능하고 안일한 계획에 의존할정도로 바보는 아니지만 그때는 침착을 되찾는 것이 가장 중요했으므로 별로 탓하고 싶지 않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단순한 계획이라도 생각하고 믿어서 상당히 차분하고 의연하게 대처한 내가 대견할정도다. 조금이라도 늦게 의연한 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난 지금 이곳에서 키보드를 두드린다는 단순한 행동조차 못할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다음 정거장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는 쏜살같이 바깥으로 뛰쳐나가 사라졌다!

그녀는 내 행동에서 당혹스러웠던것이 분명하다. 그녀가 살인자인걸 내가 알았다고 그녀가 확신했다면 그녀는 당연히 나를 죽여야한다. 그러나 모든것이 그녀의 착각에 불과하다면 나를 죽이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위험을 품고있는 만큼 엄청난 도박에 뛰어드는 셈이다. 결국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난처한 지경에 빠진 살인자는 목격자를 지우는게 아닌 자신을 버스안에서 지움으로써 이 난제를 해결했다. 살인자에게도, 내게도 정말 최상의 선택이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버스안 시계를 보았다. 살인자가 타고 있었던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는 천년같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이상이 내가 살인자와 함께 버스 안에 있었던 10분간의 기록이며 살인자를 잡을 단서이다. 한 겁쟁이가 끝까지 추적하지 못한 정의를 누군가 실현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글을 마친다....

* * *

김지현. 청년실업의 백조. 비오는날 기숙사에서 돌아오는 동생이나 마중나가 버스 잘못타고 가득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 그녀에게 같이 탄 아줌마의 비닐봉지 속에 들어있는 포장 허술한 고기 때문에 살인자로 오해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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