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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단편 지지부(Zizibu)

2005.10.29 18:1110.29

drwk.com   그는 어느 때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생긴 이 불면증은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 돼 버렸다. 태양이 오줌 같이 누런 아침 햇빛을 아파트촌에 질질 흘릴 때, 그는 이미 자기 동네를 벗어나 단독 주택이 밀집한 낯선 동네에까지 이르렀다. 아무런 목적 없는 방황, 불면증이 만들어준 이 습관 덕에, 그는 그녀를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었다. 정원이 딸린 조그만 단독주택이었다. 그곳에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그녀는 그 밑에 서 있었다. 허리띠의 한쪽 끝은 목에 묶고, 다른 한쪽은 나무에 묶은 채로 말이다. 그녀의 발이 지면에서 약 30cm정도 떨어진 허공에서 대롱거리고 있었다. 양 손은 축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오른 손은 주먹을 꼭 쥔 상태였다.
  
   그는 웃으며 그녀를 머리끝에서 발끝가지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오른쪽 주먹에서 멈추었다. 저 멀리 골목 끝에서 개짓는 소리와, ‘시끄러워 녀석아!’ 라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잠에서 깨어나는 길고 나른한 신음이었다. 동네는 곧 눈을 뜨고 자기 안에 있는 이 반갑지 않은 시체를 눈치 챌 것이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침 특유의 차갑고 푸른 공기만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집 안에서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그는 신속하게 담을 뛰어 넘어 시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지문이 남지 않도록 옷으로 손을 감싸고 조심스럽게 시체가 쥐고 있던 것을 뺐다. 그리고 누가 보기 전에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골목을 돌아가는데, 아침 운동을 하는 어느 중년의 여인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딴 곳으로 돌리며 걸음을 재촉하였고, 곧 이어 째지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달음박질 쳤다. 자신의 아파트촌으로 왔을 때서야 그는 천천히 걸으며, 자기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에 맞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늘은 운이 좋은걸…….’

    그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은 좁았고, 어지러웠다. 벽에는 온갖 해골을 비롯한 기괴하고 섬뜩한 포스터들이 가득 붙여져 있었다. 책장에는 죽음의 역사, 자살에 대하여, 자살 심리학 등의 책이 가득히 꽂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방에 틀어 박혀, 손에 쥔 것을 조심스럽게 펼쳐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돌이었다. 예쁘거나 반짝 거리는 것도 아니었고, 어디 바위 덩어리에서 누군가 끌로 아무런 조심성 없이 내리쳐 깨트린 것 같은, 그런 아주 평범하고 거친 돌이었다. 크기는 한 주먹에 들어갈 정도였다. 그는 한참동안이나 돌을 이리 저리 굴리면서 관찰하였지만, 아무리 보아도 특이한 면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는 서랍 속에서 견출지를 꺼내어 기계적으로 각이 진 필체로 적어 내려갔다.
  
   ‘6월 17일. 20세 초반 여인. 목매닮. 왼손에 들고 있었음.’
  
   그는 견출지를 돌에 붙여 놓고, 다시 방 한구석에 있는 유리 커버가 덮여있는 자신의 수집 상자(그는 이것을 ‘내 이야기상자’라고 부르곤 했다)를 꺼내었다. 몇 년 전 불면증이 시작되었을 때 만든 그 상자는 그의 수집품들로 가득했다. 그는 ‘10월 20일. 8세 여아. 추락사. 나뭇가지에 뜯겨 있었음.’ 라고 적힌 검은 머리카락 한 줌의 왼편에, ‘1월 7일. 60대 노인. 교통사고. 30미터 후방에 떨어져 있었음.’  라고 적힌 나사와 손가락과 뼈가 완전히 하나로 뭉뚱그려져 그 기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작은 조각의 오른편에, 그 돌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상자는 빼곡하게 차 있어서 그 조그마한 돌덩이를 놓으려고 물건들을 밀착시켜 공간을 만들어야했다. 그는 유리 커버를 닫고, 그것을 약간 떨어뜨려 놓았다. 그는 의자를 약간 빼고 턱을 괸 후, 물끄러미 그 상자를 보았고, 그 안에 있는 돌을 보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빛나는 허상을…….

    그는 그렇게 오래도록 앉아 있었으나 고요하진 않았다. 돌을 보며 끊임없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주억거리기도 하고, 한 순간 너털웃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감탄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어느 때는 눈물을 흘리고 어느 때는 양 팔로 몸을 감싸고 두려운 듯 떨기도 하였다. 서너 시간이 지나도록 눈 뜬 채 빠져버린 어느 미지의 세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가 무언가 아주 수치스럽게 끔찍한, 그러나 매우 흥미로운 것을 볼 때의 표정을 짓는 순간쯤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집안에 울려 정적을 산산이 조각내었다. 그의 이맛살이 접혔다. 그는 손끝을 모으고 꽉 힘을 주었다. 팔이며 관자놀이가 부들부들 떨렸다. 얼굴이 금세 붉어졌고,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의 얼굴색이 다시 안온하게 변했을 때, 그는 긴 한숨과 함께 온 몸의 긴장을 풀었다. 그는 고개를 이리 저리 돌려 몸을 풀고는, 다시 유리 상자 속의 돌멩이를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아니, 시작하려 하였다. 그 순간 아까보다 훨씬 더 거칠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이번에는 아예 발로 차는 것처럼 시끄러웠다. 으으으! 그는 진저리를 치며 일어났다. 그리고 성큼 성큼 걸어가 문을 거칠게 열었다.

   “무슨 일이쇼!”
   “무, 물건을 찾으러 왔습니다.”

   문 앞에는 쥐처럼 작고 왜소한 노인이 서 있었다. 그는 양 손을 모아 잡고 주춤거리고 있었다. 과연 정말 그가 방금 전처럼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 노인은 잔뜩 고개를 어깨 속에 파묻고 입엣 말로 우물우물 거렸는데, 도저히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뭐라고 하는 거요?”
   “저……. 그게… 저로서는 그게 이제 마지막 남은… 뭐랄까… 밑천이어서…….”
   “노인장, 뭐가 말이요?”

   노인은 자기보다 한참 어린 이 젊은이가 무례하게 언성을 높일수록 더더욱 기가 죽는지, 계속 우물거리기만 했다. 노인은 그가 다시 무슨 말이냐고 소리를 치자, 깜짝 놀란 듯 떨면서 내뱉듯 말했다.

   “돌, 돌말입니다. 시체의 손에 있던, 저, 젊은이가 빼가지 않았습니까!”
  
    그는 얼른 노인을 집 안으로 끌어 들였다. 그는 노인을 의자에 거칠게 앉히고는 그 좁은 어깨를 부여잡고 눈을 부라렸다.
  
   “이런 젠장, 그건 어떻게 안거요?”
   “모, 모를 리가 없습죠. 저는 그 돌을 회수하려고 갔는데……. 갑자기 당신이 나타나서 몸을 숨겼지요. 그런데 당신이 주위를 둘러보더니만 담을 넘어 시체에게……. 당신이 떠나고 나서 시체를 보니, 손이, 꼭 쥐어진 손이 펴져 있었죠……. 사람들에게 들키는 줄 알고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릅니다. 그 여편네는 왠 목청이 그리 큰지. 하여튼 그래서 저는… 네, 저는 그냥……. 미행이라고 할 순 없고 그냥… 그냥……. 아, 아시겠지요? 제발 어깨의 손 좀 놔 주세요. 난 나이가 들어서 몸이 아주 약하다오…….”
  
   젊은이는 노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는 자신의 긴 머리를 마구 헝클더니만,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노인을 아래에서 위로 사납게 노려보았다.

   “이봐요, 노인장…. 좋소, 당신은… 아, 이름이 뭐요?”
   “세월이 다 깎아 먹어서 한 글자밖에 안 남았습죠, 은(隱)이라고 불러주십쇼.”
   “내 이름은 비덕이라고 합니다. 뭐, 이름 따윈 중요한 게 아니지. 하여튼 은노인, 당신은 그러니까 내 취미생활을 방해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소? 남들이 보면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죽은 자의 유품들을, 그렇소- 의지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 채, 그 죽음의 상황 그 자체에 대한 증명이 가능한 물건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오. 그리고 이렇게 상자 안에 두고 조용히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은 내 유일한 낙이요. 당신은 나보다 수배는 오래 살았을 테니 이해 할 법도 하지 않소? 사람이란 건 모두 제 각기 취향이란 게 있다는 걸. 그게 다른 사람에게는 기이한 괴벽, 혹은 미친 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할 지라도, 그건 그 사람의 취미인거요. 물론 죽은 자의 물건을 가져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지도 모르고… 내가 그 과정에서 시체를 손상시키거나, 경찰 업무에 방해가 되는 일도 조금 했다는 것을 인정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그건 뭐 사소한 것 아니요? 이런 걸 신고한다고 해 봐야 노인장에게 떨어지는 고물도 없고 말이요……. 게다가 죽음이란 건 뭐요? 죽음이란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을 거요. 왜냐하면 나 보다 노인장이 몇 배나 죽음에 더 가까우니까! 죽음이란 게 뭔지 알게 뭐 있소? 죽는다는 건 모조리 끝난다는 거요. 그 뒤에 뭔가 다른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하나는 알 수 있는바, 죽었다가 살아온 사람은 없단 거요. 예수는 사기꾼이고. 하여튼 간에, 이런 말 못 들었소?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고. 고인의 것이란… 예를 들어, 손가락 하나라든가, 살점 몇 개라든가, 머리카락이라든가, 피 묻은 옷쪼가리라든가, 손에 들린 돌 조각이라든가! 그런 것들의 주인이 있소? 없소. 그런 주인 없는 물건들을 내가 가져온다고 해서 뭐가 나빠지겠소? 어르신, 그러니 말이요……. 이 뭔지도 모를 돌조각은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에겐 쓸모없는 거요. 이 상자에 들어 있는 이 머리카락을 보시오. 아파트 32층에서 떨어져 내린 아홉 살짜리 소녀가 아래에 있던 나무에 가슴이 꿰뚫리고 내장을 쏟아내면서 떨어졌을 당시에, 그 근처 덤불에 엉켜 뜯어진 머리카락이라오. 이런 걸 대체 누가 가지고 싶어 하겠소? 나 말고서야, 그 아이 부모도 가지고 싶어 하지 않을 거요, 기겁이나 안하면 다행이지! 자, 이제 내 말 알아들었소? 그러니 얼른 가시오, 돈을 원한다면 차비 정도는 주지. 요즘 좆같이 생긴 시장 때문에 차비도 많이 올랐소…….”
   “저, 비덕 선생…….” 은노인은 비덕을 보고 선생이라고 불렀다. “죽은 자의 것은 주인이 없단 말씀은 과연 옳습니다. 하지만 그 돌멩이는 제가 그 젊은 처자에게 일정한 돈을 받고 임대한 것이어서, 본 주인인 저에게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덕은 놀라 외쳤다.

   “임대? 돌을? 이것 조그만 돌멩이가 무엇이관데?”
   “그, 그 돌엔 신비한 히, 힘이 있습니다. 네, 있습니다.”
   “힘? 이 하잘 것 없는 돌멩이에?”

   비덕은 상자에서 돌을 꺼내들어 다시 한 번 만지작거렸다. 아까와는 달리 무언가 특이한 것이 있나 싶어서 유심하게 관찰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회색빛의 그 돌멩이는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콘크리트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산 속의 바위 조각에서 떨어져 나온 듯도 한 그런 모양의 돌멩이였다.

   “아무것도 특이할 게 없잖소, 그냥 단단한 돌멩이란 것 밖에는…….”
   “네! 다, 단단함. 그게 바로 그 돌의 으뜸가는 특징입지요.”
   “단단함?”
   “보여드리지요……. 혹시 이 집에 망치가 있습니까?”
  
   비덕은 의아함과 조소를 함께 머금은 채 망치를 가져왔다. 은노인은 바닥에 돌을 놓고, 비덕에게 빌린 망치를 번쩍 들어 내리쳤다. 솜씨 좋게 내려쳤는지, 돌이 다른 곳으로 튀지 않았고, 그 대신 바닥에 박혀버렸다. 비덕은 깜짝 놀라며 은노인을 밀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바닥에 구멍이 났잖아!”
   “죄, 죄송합니다.”
    
   비덕은 짜증스런 표정으로 돌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구멍 뚫린 장판과는 상관없이, 아무런 흠집도 나지 않은 돌의 모습에 놀랐다. 은노인은 옆에서 계속 말을 했다.
  
   “단단합지요. 사실, 다이아몬드를 절단하는 기계가 있다는데 그거로도 잘리지 않습니다. 잘은 몰라도 다이아몬드보다도 단단한 자연물이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겁니다요.”
   “그럴리가! 다이아몬드는 경도가 10이란 말일세! 그 보다 단단한 물질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니 그렇게 책정한 거 아닌가! 노인장, 헛소리를 하는구먼. 확실히 이것이 철 보다 강한 것은 알 수 있겠어. 망치로 내리쳐도 흠하나 나지 않다니. 그렇지만 다이아몬드보다 강하다는 것은 좀 우습지 않아? 그리고, 그 여자가 단단한 돌을 뭐하려고 당신에게 임대하겠나? 남자친구라도 내려치려고?”
   “당연히, 아직 어떤 과학자도 이 돌을 본 적 없으니까요. 게다가 이 돌에는 단단함 말고 다른 신비한 힘도 있다고……. 사실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 그렇게 말하면서 돌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것이지요. 이 돌에는 사랑을 이루어주는 힘이 있다고 말입니다.”
   “…허!”

   사랑이란 말이 나오자, 비덕의 표정이 당장에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사기꾼에게 속은 느낌이었다. 그는 고개를 주억 거리며, 만면에 미소를 띤 채로 말했다.

   “아, 그래! 알아듣겠소, 노인장. 아주 뻔한 일이지. 아주 뻔뻔한 일이기도 하고. 실의에 빠진 계집들이란 언제나 가장 등쳐먹기 쉬우니 말이요. 가까이 다가가, 말하였겠지. 이 돌이 당신의 사랑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말이요! 아이구, 있지도 않은 것을 이룬다니 얼마나 뻔뻔한 사기인가! 세상에는 말이요, 나도 죽고 당신도 죽고 문명도 죽고, 하여튼 확실한 것은 오로지 하나 죽음뿐이요. 죄다 꿈꾸는 거나 다름없는 환상 속에서 놀고 있고, 결국은 명백한 환상만 무해한 거요. 사실인 척 하는 그따위 사랑 같은 것이 정말 나쁜 거지! 난 또 무슨 말인가 했네. 은씨, 어서 꺼지쇼, 내 집에서.”
   “다, 당신은 사랑을 믿지 않으시는군요…….”
   “난 두 번 말하기 싫소. 노인장.”
  
   은노인은 비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창백한 피부는 어두운 골방에 혼자 있어서 그런 것이고, 눈 밑의 검은 기미는 아주 오랫동안 자지 못해 생긴 것이었다. 몸은 앙상하면서 간혹 가다가 경련을 일으키듯 떨리는데 스스로는 인식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의 동채는 약간 풀려 있는 것이 속도 그다지 좋은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얼굴에 짜증을 숨기지 않으며 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일어서서 문으로 다가갔다. 내 직접 문을 열어 줄 터이니, 얼른 나가시오. 내가 발로 엉덩이를 걷어차 내 쫓기 전에. 은노인은 그런 비덕을 보다가, 문득 소리쳤다.

   “선생!”

   어깨에 머리를 푹 파묻고 말이나 더듬거리던 은노인이 그렇게 큰 소리를 칠 줄 예상치 못한 비덕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은노인이 구부정한 허리를 쫙 펴고, 턱을 쳐들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키가 컸던가? 그 모습을 보자 비덕의 마음 한편이 뒤로 밀리는 것 같았지만, 그는 근육의 힘으로 가슴을 피고는 맞장구 소리쳤다.
  
   “내 집에서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마!”
   “과테말라. 마야의 고대 유적 엘미라도르 유적지는,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국경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7Km정도 떨어진 열대 우림 속에 있소. 그곳에는 길이 없고, 가려면 오로지 헬리콥터로 가든가, 당나귀에 짐을 싣고 안내인을 따라 열대우림을 며칠간 가야만 한다오.”
   “어서 꺼지라니까 무슨 헛소리하는 거요. 노인장? 엘미라도르 유적 정도는 나도 알아.”
   “그리고 그 유적에서 다시 일이주일 정도를 쭉 내려오게 되면 바다와 마주치게 되는데, 이 바다 역시 열대우림이나 마찬가지여서 아직까지 어떤 배도 근접하지 못한 바다요. 바다가 너무나 험한 탓이지요. 아주 상당히 좁은 해역을 가지고 있는 이 바다는, 결국은 엘미라도르를 거쳐 다시 일주일 정도 남으로 내려오는 것 외에는 길이 없소. 그곳에 사는 인간은 기원전부터 살아왔고, 또한 기원 전 부터의 생활습관이 변하지 않는 소수 부족 촌락이 전부요. 가장 아이가 많이 태어났을 때에도 100명이 채 넘지 않는 아주 작은 촌락이라오. 그리고 그곳에 바로 지지부가 있소.”
   “지지부?”
   “지지부Zizibu."

   *

   지지부는 이 세상에 있는 가장 경이로운 생명체입니다. 반유기물, 반 무기물인 바이러스보다 더욱 더 경이로운 생명체입니다. 동물학자들은 아직 지지부에 대하여 모르고 있죠. 옛 선인이 남겨주신 문헌에서 나오는 지지부라는 생물이 마치 유니콘이나 페가수스, 용이나 제강처럼 상상력의 산물로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지식을 자랑할 때나 말하곤 합니다. ‘옛날 문서에는 이런 특이한 요괴도 기록되어 있다네…….’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고작 해봐야 책 읽어주는 것에 불과하면서 엄청 뽐내는 거죠. 하지만 선생님. 저는 좀 다릅니다. 저는 지지부를 직접 보았습죠! 젊은날의 이야기입니다만, 그때는 저도 활발했었답니다. 에너지가 넘쳐났죠. 저는 이 세상 온갖곳을 다 가봤고, 온갖 고생, 온갖 경험을 다 해봤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는데, 제 고생을 다 팔수만 있다면 저는 전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호는 못 되더라도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부호가 될 수는 있을 겁니다. 하하하, 웃기겠지요. (그가 웃자 주름진 입가가 경련하는 것처럼 떨었다) 고생을 팝니다! 라고 적힌 상표라니……. 하여튼 저는 방금 전에 말한 과테말라의 엘미라도르를 보고 싶어서-네, 정말 그저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어느 소설처럼 왕도로 가는 길이라든가, 그럴듯한 유적을 파헤친다거나 하는 그런 목적이 아니었죠. 하여튼 손쉽게(그때 제 기준에서 손쉽게란 말입니다. 일반인이 가려면 10명 중 5명은 죽을 만한 길이지요) 도착했는데, 그 유적지의 폐허가 된 계단형 피라미드 그 꼭대기에 서 보니, 주위가 모두 한도 끝도 없는 수해(樹海)더란 말입니다. 바람이 불자 나무 끄트머리로 이루어진 바다가 물결치는데, 그 모습이 막 모내기를 심은 농촌에서 일렁이는 모들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잔잔한 바람이 있는 대양을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때 엉뚱하기도 합죠, 갑자기 바다를 보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정말 강하게 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갔습죠! 먹을 것도 다 떨어졌는데……. 그곳에서 돌아갔어야 하는데, 그저 즉흥적으로 아무런 대책 없이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단 말입니다.
  
   그 과정은 너무 지겨우실 겁니다. 결론만 말해서 저는 바다를 보았죠. 아주 좁은, 그러나 아름다운 내해였습니다. 그리고 그 인근에 방금 전에 말했던 소수부락도 찾아냈습니다. 아! 어떤 언어도 통하지 않더군요. 위험하진 않았습니다. 다행이었죠. 타지인은 무조건 잡아서 제물로 바치는 부락들도 심심치 않으니까요.피부색이 다른 인간을 처음 봤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지 짐작도 못하실 겁니다. 각각의 부락은 각각의 사람만큼이나 다양하지요. 어느 부락은 잡아먹으려 들고(비유적 표현이 아닙니다) 어느 부락은 제물로 바치려 하고, 어느 부락은 신으로 추앙하고, 어느 부락은 신묘한 짐승 취급하지요. 많고 많은 반응 중에 그래도 잡혀 먹지는 말아야겠지요. 저는 가지고 있던 총으로 짐승 몇 마리를 쏘아 그들에게 주니, 신까지는 아니어도 편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바다는 열대우림, 정글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숲 속에 파피스라는 질긴 식물줄기를 이용해 만든 집이 있고, 그곳에서 몇 걸음만 더 걸어가면 거친 돌밭해변이 나옵니다. 저는 그곳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색조가 말이지요. 짙은 초록색에서 몇 발자국만 더 나가면 물고기가 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하여 눈부신 바다와, 짙은 색의 하늘이 저 멀리서 서로 만나고……. 천국이 이런 곳인가 싶었습니다. 몇 달은 머물렀더랬지요. 슬슬 우기가 닥쳐옵디다. 우기란 건 벼락처럼 내리지요. 오늘 조금 습하다……. 라는 생각을 하면 바로 내일부터 우기인 겁니다. 엄청난 비가 쏟아져 말라붙었던 강을 범람케하고 몇아름들이 나무를 뿌리째 뽑아 강 아래로 수송하지요. 밑바닥에 있는 흙은 위로 올라가고, 바위 덩어리는 아래로 내려갑니다. 생태계는 완전히 변하여 수생식물이 득세를 하고 나무 열매는 그 틈을 타 자손을 번식시킵니다. 헤엄칠 줄 몰랐던 동물들은 헤엄을 치게 되고, 개미조차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이런 우기를, 사람들은 다만 바닥에서 몇 미터 정도 떨어진 집을 짓는 것으로 무난하게 넘기곤 하지요. 저 역시 원주민만큼은 아니지만 워낙이 오랫동안 떠돌아 다녔던 터라 우기가 어드매쯤에 올 것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습죠. 저는 나무 위에서 나무늘보를 마구 때리며 놀다가, 문득 우기를 감지했습니다. 사타구니에 보통 때 보다 땀이 조금 더 차더군요. 게다가 주변 동물들의 태도도 이상했습지요. 그래서 괜히 괴롭히던 나무늘보를 버려둔채 부락으로 돌아가니, 원주민들은 모두 짐을 싸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물었지요. (아. 전 아주 기초적인 회화정도는 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 가나?”
   “Saguatep.”
  
   그 언어는 이동과 회귀에 대한 언어가 상당히 발달한 편이었는데, 저 떠난다는 말에 사용된 어휘는 ‘사구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떠난 후, 약 4개월에서 5개월 정도 있다가 다시 돌아올 때 쓰는 말입니다. 저는 우기가 시작된다고 말했죠. 그러자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만 말하는 것이.

   “Ryitto d Zizibu.”

   이라고 말하며, 저를 잡아끄는 것이었습니다. ‘지지부의 계절’이란 소리입니다. 저는 지지부에 대하여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지지부에 대하여 침묵했었죠. 그때는 어떤 배신감마저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지지부라는 기묘한 생명체에 대하여 말하려면 높은 수준의 어휘가 필요하고, 저는 아마 알아듣지 못했을 겁니다. 그들은 답답한지 가슴을 두드리며 자꾸만 지지부, 지지부 그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꼭 그 지지부라는 말 다음에는 죽음 이란 단어가 나오더군요. 그들은 결국 모든 설명을 제외하고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더군요. -지지부의 계절. 너, 죽는다. 죽는거. 싫다. 사구텝- 즉, 지지부의 계절이고 여기 계속 남아 있으면 죽으니 4-5개월 정도 저희들과 함께 떠나 있자, 이 소리였습니다. 과테말라의 우기는 5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약 4-5개월 정도 지속됩니다. 아주 지긋지긋하지요. 그동안 그들이 대체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여튼 저는 지지부가 무엇인지 궁금한 나머지 자꾸만 물었으나,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지지부가 맹수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습니다. 수렵부족 답게 사냥에 대한 어휘가 많았는데, 사냥감의 위험도에 따라 칭하는 단어가 달랐습니다. 그런데 지지부를 칭할 때는 가장 위험한 맹수를 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Tayhs 라고 하는데 말이죠. 군대 개미를 부를 때나 씁니다. 글쎄요, 맹수라고 번역은 하겠지만, 차라리 ‘악마’라고 표현하는 게 더 잘 와 닿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분위기란 것이 있지요…….

   뭐, 쉽게 말해서. 저는 남았습니다. 왜 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남고 싶었을 뿐입니다. 저는 제 일평생 저도 모를 감정에 휘말려 살았으니 말입니다. 원주민들은 가기 전에 저에게 악어이빨 목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 그 목걸이는 죽은 전사에게 걸어주는 목걸이입니다. 그들은 저에게 죽은 사람에게 하는 방식으로 인사하고는 떠나갔습니다. 친했던 어느 아이는 절 보고 울기 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제 죽음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죠. 저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총과 정글도 였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기에서 비란 사방에서 내리는 것이지요. 아래에서도 내립니다. 빗방울이 튀겨서 콧구멍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아주 빈번합니다. 우기에 몸을 보호하려면 사방이 막힌 곳 아니면 아닙니다. 저는 제 몸보다 화약을 더욱 더 조심스럽게 다루었습니다. 먹을 것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루, 이틀, 기다렸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침상에서 일어났습니다. 무슨 소리가 들렸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 반대였죠. 새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전쟁터의 포화 같이 시끄러운 빗소리, 그 사이사이로 들리는 새소리가 얼마나 선명한지 경험하지 않으셨다면 아마 모르실 겁니다. 그런데, 그 새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옆에 있던 산탄총을 집어 들고 천천히 바깥을 내다보았지요. 하늘이라는 수영장 밑바닥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비는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빗방울은 보이지 않고 폭포 같은 물줄기만 보일 뿐입니다.  물 장막 너머로 정글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눈으로는 아무것도 판별할 수 없었기에, 전 차라리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자 아주 끔찍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언제나 시끄럽던 정글이 너무나 조용해졌다는 점입니다. 그게 무슨 느낌인 줄 아십니까? 시끄러운 빗소리는 총알 소리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전쟁터에 총알 소리만 있고 사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만큼 기괴한 것이 있는가! 내리는 빗소리가 참을 수 없이 비현실적으로, 또 무섭게 느껴지는 겁니다. 온갖 모험을 다 했던 저지만 그런 시끄러운 침묵은 참을 수가 없더군요. 저는 총신을 움켜잡았습니다. 저는 그 순간 어머니보다 총을 더 의지를 했을 겁니다.

   그때 저 멀리에서 큰 북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습니다. 몇 아름드리나무가 북채고 지구가 북이라면 그런 소리가 날 겁니다. 창피한 말이지만 그때 저는 창백하게 떨렸을 겁니다. 쿵 쿵 소리는 점점 다가왔습니다. 소리 사이의 간격은 넓었으나, 한번 쿵 소리가 나올 때 마다 성큼 성큼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몸을 숨기고 벌어진 나무의 틈새로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이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지요. 맹수들은 눈이 아니라 코로 짐승을 보니 말입니다. 이윽고, 수막 너머에서도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거대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괴물의 모습을 보고, 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과 동시에 총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쉰 이유는 그 괴물이 제가 알고 있던 짐승이었기 때문이고, 긴장을 조인 것은 그 괴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괴물은 곰의 변형체라고 하면 적절한데, 곰처럼 가끔 이족보행을 할 때 머리까지의 높이가 적어도 2.4미터는 되는 괴물입니다. 거대하다는 것 외에 곰과 또 다른 점은 멧돼지처럼 얼굴에 어금니가 날카롭게 도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아랫니는 위로, 윗니는 아래로, 마치 범치호 같은 모습이지요. 입도 무지하게 커서 악어 따윈 한 입에 베어 먹습니다. 왜 악어 이야기를 꺼내느냐면, 그 괴물이 다가와서 한 짓이 바로 길이 4-5미터 정도 되는 대형 악어를 잡아먹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기여서 강으로 변한 마을에는 악어가 자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괴물을 처음 본 곳은 남아메리카의 오지였습니다. 그곳의 어느 부락은 저 괴물을 신으로 섬기고 있더군요. 이건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전 총 한 자루 가지고 그 녀석을 잡았었지요……. 하여튼, 정체를 아는 놈이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저는 총을 장전했습니다. 그때도 저 녀석을 잡는데 죽을 뻔 했었지요. 그 녀석은 벌써 악어를 뼈째로 반쯤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저는 틈새로 총구를 내밀고 신중하게 조준했습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오, 제가 단 1초만 빠르게 당겼어도 죽었을 겁니다.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체구는 작았지요. 회색빛이었습니다. 표범이나 재규어, 퓨마 같은 체형이었습니다. 번개처럼, 정말 번개처럼 어디선가 나타나더니만 그 녀석의 숨통을 콱 물어 채는 겁니다. 그리고 그 덩치를 한 순간에 들어 올리더니만 정글 속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곰 비슷하다던 짐승은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악어를 놓치도 못했습니다. 전 그제야 알았죠. 그 회색빛 호랑이 비슷한 녀석이 바로 지지부로구나. 저는 그토록 날렵한 짐승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 없었습니다.

   유령처럼 흐릿하게, 정체를 반만 드러내준 셈이었죠. 그것이 두려움을 더욱 자극했습니다. 무서웠죠. 저는 삼일 간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고 내리는 빗소리와 그 안의 괴이할 정도의 정적에 감금되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조용했는지, 하잘 것 없는 개구리 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빗소리 말고 무언가 다른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허겁지겁 창가로 나가 바깥을 내다보곤 했지요. 그러나 그것은 거의 대부분 거친 날씨에 못 이겨 부러진 나무가 수면을 치는 소리인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미칠 것 같더군요. 결국 사흘째 되는 날 저는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총 한 자루와, 폭음탄이라고 불리는 폭탄 댓 개를 들고 말입니다. 제 성격이 그러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지부는 아주 신비롭고 무섭기는 해도 눈에 보인 야수이나, 비와 정적은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전 유령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유령을 두려워하진 않지만 그런 무형의 공포에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그 지지부와 한판 떠서 내가 죽거나 그놈을 죽이거나 할 생각이었지요.

   정글을 소란스레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비에 튀겨 움직이는 거대한 잎들이 칼처럼 제 몸을 베었습니다만, 그런 건 상관없었습니다. 정글에 어느 정도 깊이 들어갔을 때, 저는 작은 새소리를 들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저는 당장에 소리가 난 위쪽을 쳐다보았고, 적어도 10여 미터 정도 높이의 나무 끝에 작은 새가 막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글에 들어온 지 이틀 만에 처음 보는 생명체였습니다. 저는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는데, 바로 그 순간 쿵쿵쿵 거리는 소리가 매우 빠르게 나고 굵은 나무들이 우수수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숲의 바다에서 갑자기 지지부가 높게 치솟더니만 날아올라 하늘에 있는 새를 한 입에 덥썩 먹었습니다. 쿵쿵거리는 소리는 지지부가 땅에서 나무를 밟고 도약하는 소리였던 겁니다. 저는 오싹 소름이 돋았습니다. 생명체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지지부는 어느새 제 눈앞에 있었죠. 지금도 그녀석이 저를 덮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세상을 지배하는 우연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그 새를 씹어 먹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볼 것 없이 총을 갈기고, 폭음탄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저는 지지부의 모습을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지지부의 몸체는 정말로 돌이었습니다. 돌처럼 단단한 것이 아니라 돌이었습니다. 전체적 체형은 대호라고 할만 했습니다만, 다리는 거미처럼 여덟 개였습니다. 샛노란 눈은 돌로 만들어진 가면 뒤에서 빛나는 것처럼 번뜩이고 있었고, 온 몸은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지지부는 아가리를 벌렸습니다. 상어 이빨처럼 서너 줄로 이루어진 이빨들이 입안 가득하게 박혀 있었고, 혀는 까칠해보였습니다. 지지부와 저와의 거리는 약 4미터도 안되었는데, 제가 그 거리에서 총을 발포했다고 방금 전에 말씀드렸지요. 그리고 결과를 보지도 않고 폭음탄을 던졌는데, 그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 근접거리에서 발사한 총알은 지지부의 돌 피부에 조그마한 흠집도 내지 못했습니다. 폭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 밑의 땅만 파였을 뿐, 지지부는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행인 것은, 그 폭탄이 터질 때 어마어마한 굉음이 정글을 강타했고, 지지부는 폭발력과는 상관없이 그 굉음에 놀라 달아났단 것입니다.

   저는 곧바로 짐을 꾸려 정글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우기가 지나서야 다시 부락으로 돌아왔지요. 원주민들은 제가 죽은 줄 알고 있다가 갑자기 등장하자 까무러치더군요. 제가 총을 그들에게 처음 보여줬을 때 보다 더더욱 놀랐습니다. 유령 취급하더군요. 그들이 보는 앞에서 목에 걸린 악어이빨 목걸이를 끊으니, 그제야 제가 살아 있는 사람이란 것을 믿었습니다. 지지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

   비덕은 은노인의 말을 끊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 돌조각과 무슨 상관이란 거지? 게다가 돌로 만들어진, 다리 여덟 개 달린 호랑이라니!”
   “그것이 바로 지지부의 파편입니다.”

   비덕은 다시 한 번 회색빛 돌조각을 살펴보았다. 그는 힘을 다해 주먹을 쥐어 보았다. 어쩐지 파괴할 수 없는 힘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미약한 온기 역시. 그러나 그런 것은 이야기를 들은 후의 착각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돌멩이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걸 보며 은노인은 빙긋 웃었다.

   “방금 전 보다 훨씬 조심스레 다루시는군요.”
   “헛소리야! 게다가 당신 말은 이게 아주 신기한 짐승의 살 조각이란 거 아닌가. 뭐가 사랑이고 뭐가 죽음인가!”
   “당신은 사랑해 본 적이 있습니까?”
   “……어, 없어!”
   “마치 당신이 한 번도 죽어 본 적 없는 것처럼?”
  
   그 말에, 비덕은 얼굴 끝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말도 하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며 은노인의 가느다란 어깨뼈를 움켜쥐었다. 그런데 은노인은 천천히 그의 손을 잡아떼었는데, 비덕이 저항할 수 없었다. 은노인은 차분하게 말했다.

   “가끔은 죽음과 사랑이 겹쳐지는 경우도 있답니다.”
   “사랑 때문에 죽는 이들 말이지? 이 돌멩이를 쥐고 있던 그 병신 같은 년처럼. 하지만....”
   “그들을 욕되게 하지 마세요!”

   은노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좋습니다. 이야기를 전부 해 드리지요.”

   *

   밤에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눈앞에서 지지부를 보았을 때의 그 흥분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네, 저 역시 당신과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죽음에 대한 흥미는 인류가 인간다운 의식을 갖기 이전부터 존재해오던 것이었으니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지요. 죽음의 위협 바로 눈앞에 갔다는 그 짜릿함이 침상에 누워 잠들기 전에 하는 희미한 공상만 하게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저는 전율했습니다. 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지지부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조사 과정은 굉장히 힘들었지만 지금 이곳에서 말하기엔 너무 지겨운 이야기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원주민도 그다지 많은 것을 알지 못했고, 문서기록으로 남은 것도 없었습니다. 옛날이야기에서 나오는 지지부의 모습을 최대한 말이 되는 것만 짜 맞추어야 했지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3년 동안 조사를 했지요. 그 말은 그 후로도 3번이나 더 지지부의 계절을 겪었단 소리입니다. 그 후 3번이나 지지부를 볼 수 있었는데, 처음처럼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았습니다. 멀리에서 망원경으로, 또 카메라에 잡힌 지지부의 모습만 살펴보았으니까요. 하여튼 그런 경험들은 귀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지지부의 생활에 대해 알아냈는데, 경이로웠습니다. 네, 그것은 경이였습니다.

   Zizibu란, 원주민의 말로 ‘Zi’라는 단어와 ‘Bu’라는 단어의 조합어입니다. Zi 라는 단어에 담긴 뜻은 ‘암석, 단단함, 강함, 딱딱함’ 이라는 정도의 의미이고, bu 라는 단어는 그 근처 사는 거대 포유류 맥의 오줌통으로 만든 공이란 뜻입니다. 보통 부드럽고 말랑 말랑한 공을 뜻하는 단어지요. 딱딱한 공은 bu 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 부락의 아이들이 흔히 가지고 놀지요. 꽤 신기한 조합어 아닙니까? 지지부란, 강한, 강한, 부드러운 공. 이란 뜻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이 단어야 말로 지지부의 특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었지요.

   가장 먼저, 지지부는 암컷과 수컷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암컷은 Zizi. 수컷은 Bu 라고 하지요. 여기서부터 잘 들으셔야 합니다. 지지부는 이 생명체의 어떤 특수한 경우에서만 부를 수 있는 이름이란 걸 말입니다. 지지와 부는 서로 그 형태에서부터 생태 습관까지 모조리 다릅니다. Bu, 그러니까 수컷은 심해에 살지요. 촌락의 바로 앞에 있는 그 내해는 내해답지 않고 그 깊이가 약 2000m정도 되는 아주 깊은 바다입니다. 글쎄요, 해구라고 할 수도 있을까요? 하여튼 부는 바로 그런 깊고 깊은 바다에만 산다고 합니다. 그 생김새는 해파리 처럼 물렁물렁하며, 오징어처럼 촉수에 가까운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해 밑바닥에서 아주 작은 물고기라든가 이끼, 플랑크톤 따위를 먹고 살아가지요. 독도 없고, 강하지도 않으며, 자기 자신을 지킬 무기라고는 반투명해서 잘 안 보인다는 점 외엔 아무것도 없는 생명입니다. 연약하고 여리기 짝이 없는 바다생명체지요. 이것이 바로 지지부의 반쪽, 수컷인 Bu입니다. 암컷인 지지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나중으로 미루지요.

   이런 여린 생명체인 부가, 교미 철이 되면 천천히 심해에서 올라옵니다. 그리고 바다 바깥으로 나와 해변으로 기어오르지요. 천적들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아주 어두운 달 없는 밤 외엔 움직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 역시 부를 본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지막 4번째 우기 때였습니다. 하여튼 부는 기어오릅니다. 오로지 심해에만 살아 육상 움직임에 발달된 몸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건 해파리가 숲길을 걷는 것만큼이나 부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이제 지지부의 다른 한쪽, 암컷인 Zizi에 대해서 말할 때가 되었군요. 지지는 부 보다 훨씬 경이롭습니다. 지지는 생명체가 아닙니다! 그건 바위입니다! 아마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실 겁니다. 그 해변은 모래보다는 자갈이 더 많고 바다에서 밀물 시 바다에서 약 10미터 떨어진 곳은 커다란 바위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위 중 하나가 바로 지지입니다. 둥글고 길쭉한 바위가 반쪽이 쪼개져 있는 형태이지요. 그것은 진짜 바위로, 생명의 기미 따윈 아무것도 없습니다. 온기도 없고, 호흡도 없지요. 소화기관이나 그런 것들 역시 흔적조차 볼 수 없습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Zizi란 말의 의미는 ‘강한 바위’란 뜻입니다. 색도 근처 바위와 똑같아서 그 수많은 바위들 중에서 지지를 찾기란 정말 힘든 일입니다.

   바닷물이 최대한 밀려온, 달 없는 어두컴컴한 밤. 아무런 빛도 없어 해변과 바다가 똑같은 어둠이 되어 경계가 사라진 밤. 이제 경이가 시작되는 겁니다. 쏴아- 밀려오는 파도가 한 번 물러가면 어느 사이에 투명하고 말랑 말랑한 부를 해변에 놓여 있습니다. 하늘거리는 천 조각을 떨어뜨린 것 같지요. 이제 그것은 스믈스믈 해변을 기어가기 시작합니다. 너무나 부드럽고 말랑거려서 돌 조각이 아무리 날카롭다고 하더라도 부를 찢을 수는 없지요. 부는 지지를 찾아갑니다. 어떻게? 저도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후각으로? 시각으로? 아니면 천성의 본능으로? 새가 남국으로 가는 길을 찾듯,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로? 하여튼 부는 매우 정확하게 지지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으로, 우리의 입속으로 푸딩이 들어갈 때처럼 슈르륵, 들어가 버립니다. 그럼 경이가 시작되는 거지요. 부는 지지의 몸 속 어딘가에 안착하고, 돌덩이에 불과하던 지지는 생명을 되찾게 됩니다! 바위의 아래에 파묻어 놨던 여덟 개의 다리와 머리를 번쩍 쳐듭니다. 바위는 순식간에 세상에서 가장 재빠르고, 가장 무서운 야수로 변합니다. 상어처럼 몇 줄씩이나 하는 이빨을 온 세상에 드러내며, 한 번 하품을 쩍 하고는 자리를 이동하는 겁니다. 그리고 야성의 본능은 자연에 부합이라도 하는 것처럼, 바로 그때부터 우기가 시작하는 겁니다. 비가 내리는 거지요. 바싹하게 마른 돌 피부에 촉촉하게 비가 적시면, 그 단단함을 잃지 않고서도 고무처럼 탄력적인 몸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지지와 부의 교미입니다. 이렇게 서로 합쳐져 하나가 된 생명체를 원주민들은 Zizibu라고 부르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지지부는 어느 특수 경우에서만 말할 수 있는 단어란 것을? 바로 지지부의 계절의 시작이지요.

   자리에서 일어난 지지부는 독수리보다 뛰어난 시각, 상어보다 뛰어난 후각, 문어보다 예민한 촉각등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그는 육상의 생체병기라고 할 만한 것이지요. 여덟 개의 다리는 네 개의 다리를 가진 어떤 야수보다도 훨씬 부드럽고 강하며 빠르게 움직입니다. 자아, 이런 지지부가 비 내리는 정글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잡아먹지요. 모든 것을! 저 역시 너무나 놀란 일이긴 하지만, 지지부에게도 혀가 있습니다. 아주 유연하면서 깔깔한 혀로, 스쳐지나가는 곤충까지 핥아 먹어가며 정글을 초토화 시킵니다. 이 지지부의 계절에 정글에서 도망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야수라도 지지부 앞에서는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저 하늘을 나는 새든! 강물 속에 사는 물고기든! 뭐라든지 상관없습니다. 다 잡아먹는 거지요. 원주민들은 그저 도망가고 우기가 끝날 때 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돌로 된 얼굴 속에 박힌, 마옥같이 빛나는 노란 눈. 정글에서 노란 선이 전혀 예측 할 수 없는 춤을 추며 기다란 잔상을 남긴다면, 그것이야 말로 지지부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지지부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갈 수 없지요. 잔상만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물론, 그걸 본 순간 당신은 죽겠지만요. 지지부의 뱃속으로 들어가 있을 겁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잡아먹는 지지부는 배설조차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몸의 내부에 쌓아두지요. 그리고 우기가 끝나기 전 마지막 달 없는……. 그믐밤. 그때 지지부는 돌아갑니다. 해변으로. 그리고 그 바위 틈 어딘가에 여덟 개의 다리와 머리를 묻고 등판만을 바깥에 내놓습니다. 그렇게 되면 감쪽같이 바위지요.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등판이 쩍, 갈라지면서 수컷인 부가 나옵니다. 새끼 8-10마리 정도를 이끌고 말이지요. 새끼는 모두 부와 같은 모습으로, 부의 등판에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대체 이 지지부라는 생명체가 알을 낳는 동물인지 새끼를 낳는 동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부는 바다로 돌아가고, 지지는 다시 생명이 사라진 채 바위가 되어 일 년을 기다리지요. 지지부의 평생은 너무나도 깁니다. 일 년에 고작 3개월 외엔 살지 않기 때문이지요. 아니, 혹시 지지는 영원히 살고, 부만이 계속 교체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영원히…….

   바다로 내려간 새끼들은 몇 개월에 걸쳐 성장하게 되는데, 이건 상당히 불확실한 것이긴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 새끼들 중 단 한 놈만은 해변으로 나가 지지로 성장하지 않을까요? 나머지는 부가 되어 또 다른 전설을 잉태하는 겁니다. 물론, 그 부락에서 지지부는 단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전설에서부터 그랬지요. 하지만 아마도 이 세상에는 다른 지지부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 어느 제가 아직 못 가본 오지 바위 더미 속에는 지지가 한 마리 더 바위처럼 굳어져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렇습니다. 지지가 한 마리 있다면, 부는 계속 교체되며, 영원히 지지부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

   “그렇게 생각했다고? 그럼 그 말이 틀렸단 말이요?”

   비덕의 기분은 이제 좋고 나쁨을 가릴 수도 없이 되었다. 은노인의 이야기가 너무나 신비로웠기에, 그는 오로지 그 지지부란 생명체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일 쏠리고 있었다. 은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말이 틀렸더군요. 저는 뭐라고 해야 할까. 지지가 벌집이고, 부는 벌들인 줄 알았습니다. 여왕벌도 아니지요. 벌들이 죽는다고 벌집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영속하지요. 그런데……. 글쎄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건 어째서 그런 거요?”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또 해드리지요.”

   *

   인간이란 잔혹하지요. 벌써 40년도 전 이야기니, 제 성급함과 잔혹함을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떻게 해서든 지지부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아니, 파괴하고 싶었습니다. 증오도 경외도 없는 강한 사냥감을 바라보는 사냥꾼이란, 파괴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의 이런 노력은 매우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행해야했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은 간혹 가다가 애정과 존경, 경외를 동반하기도 합니다. 바로 그 촌락의 사람들이 그 짝이었지요. 그들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대에도 지지부는 있었습니다. 그 먼 조상에서부터 내려온 두려움과 공포는 유전자에 새겨져, 그들은 지지부란 이름만 듣고도 벌벌 떨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오래 되었다는 것은 사랑을 일으킵니다. 또한 그것이 무섭다면 경외를 일으킵니다. 가장 단순한 예로 신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지부를 악마로 생각하며 증오합니다. 그 증오는 외지인인 저 따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도 거대합니다.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크기만큼이나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는 애정역시 그 만큼 크다는 것을 알아야만합니다. 애정의 다른 표현은 경외입니다. 아, 지지부를 파괴시키겠다는 열망은 그에 대한 애정도 공포도 얕은, 저 같은 외지인이나 할 것이었습니다. 한 대상에 대해 어떤 감정이 너무나 깊으면, 그것이 한 인간의 차원이 아니라 수십 세대에 걸쳐 쌓아올린 감정이라면, 그것이 설혹 증오라 할지라도 감히 그 대상을 없앨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증오는 이미 그들의 영혼, 분리될 수 없는 한 부분입니다. 저는 혼자 지지부를 파괴시키겠다고 마음을 먹고 일을 진행했습니다. 온갖 고생 끝에,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결국에는 지지를 찾아냈지요. 우기의 마지막 무렵, 지지부의 뒤를 따라가겠다는 미친 짓을 했던 겁니다. 면밀하게 계획해서, 1년 전부터 세워오던 계획이었지요. 제가 가지고 있는 힘은 모두 동원했습니다. 저의 색, 향기를 모두 감지할 수 없도록 수많은 피비린내 나는 고기를 지지부 앞길에 뿌려 놨으며 저는 나무향료에 아예 목욕을 하고 움직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지부가 어찌나 예민한지, 짧은 정글을 이동하는데 수십 번은 죽을 고비를 느꼈습니다. 곤충 하나라고 밟아 터트리면 그걸로 끝인 겁니다……. 하여튼, 결과적으로 저는 경이의 한 순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적외선 스코프로 말이지요. 눈에 보이지도 않게 민첩했던 지지부가 한순간 움직임이 둔해지더니, 천천히 바위 속으로 다리와 머리를 파묻었습니다. 소금에 젓가락을 찔러 넣는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바위 속으로 쑤욱 들어가더군요. 완전히 바위와 하나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단 한 번도 깜빡인 적 없는, 그래서 단 한 번도 꺼진 적 없는 지지부의 눈이 감겼습니다. 한참동안 빛을 내던 백열전구가 천천히 꺼지는 것처럼, 황금색 광채가 천천히 희미해지더니만 결국 사라졌죠. 그리고 머리 역시 바위 속에 쑥 들이밀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리가 들렸습니다. 선명하게 바위 갈라지는, 쯔컥 하는 소리가. 그와 함께 등판이 갈라졌고, 그 틈에서 부가 새끼 십여 마리를 업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그러나 너무나 느린 속도로, 발작하듯 바닷가로 들어가 사라지더군요. 지지와 부가 나뉜 겁니다. 이 모든 일이 끝나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습니다. 우기가 끝난 것이지요.

   떠오르는 해와 함께 저는 지지의 앞에 섰습니다. 커다란 망치를 들고 말입니다. 저는 흥분으로 손이 떨렸습니다. 내 손으로! 지상 최고의 야수를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온 몸이 전율로 벌벌 떨리더군요. 망치질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한참동안이나 아름다운 일출을 보며 심호흡을 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 태양은 아름답더군요. 저는 망치를 최대한 높이 올려, 힘껏 내리쳤습니다. 그리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망치가 튕겨 나가면서 제 손을 찢어 놨던 겁니다. 피가 지지를 적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수많은 영화에서 본 피가 묻자 움직이기 시작하는 동상들이 떠오르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극도의 공포 속에서 숨도 쉬지 못하고 지지를 바라보았으나, 다행이도 피가 묻는다고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더군요. 다행이었습니다. 하여튼 생각해보니 제가 바보 같았었지요. 폭탄에도 흠 하나 나지 않던 지지부가 망치 따위로 깨질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말입니다. 저는 그 후로 지지부를 깨려고 노력했습니다. 저의 행동은 원주민에게 금세 들켰는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지지가 깨질리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건, 선조 때부터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게 그들의 말이었습니다. 그들이 저 보다 먼저 지지의 위치를 알았다는 것 역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 봤자 바위 아닌가!’

   전 당장 적외선 스코프며, 카메라를 가져 왔을 때 가지고 왔던 사제 폭탄을 들고 왔습니다. 그때 폭음탄이라 불리는 그 폭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화력을 가진 폭탄이었지요. 폭발이라는 것은 연소의 일종으로, 고체가 순간적으로 기체가 되면서 고열과 과팽창이 일어납니다. 이 갑작스러운 팽창이 사물을 찢어발기는 것입지요. 집 하나는 우습지도 않게 날려버릴 수 있고, 구조를 잘 아는 건축가가 사용한다면 아파트도 무너뜨릴 수 있는 분량의 폭탄(작약을 전체 중량의 46%까지 채워 넣은 폭탄이었습니다!)을 지지의 근처와 그 틈에 끼워 넣고도 도화선을 모두 연결하였습니다. 그리고 정글로 숨었다가, 아무래도 불안하여서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지요. 아무래도 바다가 더 안전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곧 엄청난 굉음이, 바다 속에 있던 저 까지 크게 뒤흔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바다가 붉게 변했을 정도니까요. 저는 고개를 빼들고 지지가 있는 곳을 살펴보았습니다. 곧 후회가 들더군요. 그 파편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날려 버리면, 기념품이 없을 테니까요. 그건 마치 곰을 잡았는데 가죽이고 살코기고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사진 한 장 없는 행복한 시절의 추억 같이 허무하기 짝이 없지요. 검은 연기가 하늘까지 닿았고, 없어지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돌아가 보니, 지지의 근처 바위들은 모조리 날아갔으나, 지지만큼은 멀쩡했습니다. 지독한 폭발물 냄새를 참아가며 지지를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어디 하나 금 간 곳도 없었습니다. 지지는 그만큼이나 강했던 겁니다. 그리고 제가 했던 시도들을 일일이 모두 설명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 될 겁니다. 짤막하게만 설명해드리지요. 두 번째로 제가 한 것은 드릴로 지지를 깨보자는 것이었습니다만, 드릴의 날이 부러지면서 제 어깨 한쪽을 꿰뚫고 갔을 뿐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늘에게 감사기도까지 올렸죠. 조금만 더 옆으로 날아왔으면 머리가 부셔졌을 테니까요. 더 이상은 모든 재료가 떨어져, 다시 도심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화염기와 냉각기를 가져와 지지를 번갈아가면서 태우고 얼리고를 반복했지요. 무슨 물체든 간에 그런 식의 급격한 온도 변화를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단 생각이었지요. 결론부터 말해서, 이 역시 실패했습니다. 지지는 다만 반짝 거리게 되었을 뿐입니다. 세 번째로 한 것은 지지의 틈에 물을 흘려 넣고 그 입구를 막은 후 냉각기로 얼려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기원전부터 이집트인이 쓰던 방법 중의 하나였지요. 물이 얼며 부피가 늘어나는 힘은 막강합니다. 부셔지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금이나마 틈이 벌어진다면 희망이 보일 것 같았습니다. 지금 이렇게 말로 간략하게 부수기 위한 과정을 설명하고는 있지만, 이런 모든 것들을 실제로 실험하면서 거의 1년에 가까운 세월이 소요되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우선, 도심에서 그곳까지 간다는 것 자체가 넉넉잡아 두 달을 소요하는 모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두 번이나 왕복했으니, 틈새에 물을 흘려 넣고 그것을 냉각하는 순간 저는 완전히 지쳐있었습니다. 한발자국도 움직이기 싫었고, 냉각기 버튼을 누르는 것 까지 힘들었습니다. 지금 제가 여기서 이렇게 쉽게 냉각기니 화염기니 하고 있지만, 그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것들을 돌리기 위해서라면 발전기까지 가져가야합니다. 두달 동안 그 거대한 기기들을 모두 이끌고 정글을 헤치며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자화자찬 갔지만 그건 저 외에는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앞에 걸리는 나무들이 너무나 번거로워 이 정글을 모조리 태워버리고 싶었을 정도였죠. 뜨거운 발전기에 등을 기대어 이제는 지긋지긋하기까지한 단조로운 파도소리를 배경삼아, 저는 천천히 물이 어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기대했던 대로, 물은 얼음이 되며 부피가 늘어났고 지지를 움직이지 못하고 뚜껑을 퉁기며 위로 치솟아 오를 뿐이었습니다. 지지는 결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 온갖 괴성을 다 지르며 포악스럽게 발전기며 냉각기며 모조리 걷어찼습니다. 그 당시 저는 강했기 때문에 기기들은 형편없이 일그러지며 폐물이 되어버렸죠. 저는 모든 걸 포기하고, 짐을 꾸려 도심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다시는 이곳에 발도 디디기 싫었죠. 게다가 이제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습니다. 우기가 다가오고 있었죠.

   저는 안띠꾸아의 산토도밍고 호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나무와 기화요초로 뒤덮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호텔 입구는 저를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거칠고 난폭한 정글의 식물들만 보다가 그런 담쟁이덩굴들과 꽃을 보니, 마치 남성의 세계에서 여성의 세계로 넘어온 것 같았습니다. 저는 창가마다 놓인 낙원의 횃불(아, 식물 이름입니다)을 바라보며 나른한 기분에 젖어 들었습니다. 일주일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고 자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지요. 과테말라시티에서 150Km정도 떨어진 아티틀란 호수도 가보면서 말이지요. 저는 온갖 곳을 여행하면서도 도리어 그 나라의 유명한 관광지는 거의 가 본 적이 없었죠. 그런 관광과 여행 역시 나쁘지는 않더군요. 동적이며 조용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우기가 시작되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의 우기와 정글의 우기란 결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서바이벌 게임과 전쟁터의 차이입니다. 하지만 서바이벌 게임도 전쟁터를 상기시키지요. 전쟁에 진물이 난 병사라면 서바이벌 게임을 유쾌하게 만은 볼 수 없습니다. 우기가 시작되자, 저는 기분 나쁜 기분이 들어 비행기 표를 예약했습니다. 어디든 상관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요. 40년 된 이야기 이야기니까요. 제 기억이 이렇게 또렷한 것도 이 지지부가 제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저는 휴식이 필요했습니다. 우기를 보며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으나, 짐짓 편히 쉬었습니다.

   가장 처음의 징조는, 라디오였습니다. 수많은 사건 사고들의 뉴스 중에서 저 남쪽 참피리코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도로붕괴와 더불어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저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 낙후된 나라에서 무슨 일인 듯 못 일어나겠습니까? 그런데 한 보름 쯤 돼서는 마자타냉고에서 뭔가 이상한 것이 도시를 헤집어 놨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동물원의 야수가 풀어진 게 아닌가 추측중이라는 뉴스가 떠오르는데, 신기한 것은 그 어떤 뉴스도 정확하게 그 야수가 뭔지, 사진 한 장 찍은 게 없다는 겁니다. 참피리티코에서 마자타냉고라, 그것은 그 지지부의 내해에서 안띠꾸아까지의 직선루트에 근접해 있는 도시들이었습니다. 온 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설마? 그렇습니다. 그 단어 외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설마?
  
   돌은 기억했었습니다. 제 냄새를, 제가 한 모든 일들을 똑똑하게 기억했던 겁니다. 그리고 먹을 것도 마다하고 제 냄새를 따라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는 겁니다. 과테말라 국토를 횡단하면서! 제 이런 추측은 억측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이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이었습니다. 약 나흘이 지난 후, 그 정체 모를 야수의 사진이 공개되었습니다. 너무나 빨랐기 때문에 회색빛 흐릿한 덩어리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전 당장에 그것이 저를 노리고 달려드는 지지부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눈을 뜬 채로 꿈을 꾸었습니다. 황금빛 눈을 가진 지지부가 저를 향해 한 순간에 달려들어, 제 목을 물어뜯는 꿈을. 그 생각이 든 후부터, 길거리를 걷다가 차가 한 대라도 스쳐 지나갈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지르곤 했었습니다. 제 마음은 단 한순간에 심약하게 변해갔습니다. 저는 지치지 않고 저를 쫓는 지지부를 피해 도망 다녔습니다. 비행기는 대체 왜 인지 뜰 수 없었습니다. 저도 그 이유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지 못하지만, 지지부나 다른 것과는 상관없는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다만 운이 없었을 뿐이지요.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북부로 향해 멕시코로 건너갔습니다. 그러자 괴이한 사고는 당장에 방향을 틀어 북상하기 시작하더군요.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지지부는 정확하게 제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구 상 어디에 있더라도 지지부는 내가 어디 있는지 알 것이라는. 우기가 끝날 때 까지 도망 다녔습니다만, 온 우주가 저를 죽이고 싶어 하는지,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기차를 타려고 하면 심지어 열차가 납치되어 아까운 시간을 이주일 이상 한 곳에 머물러야 했으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 머리에 겨눈 총구보다 다가오는 지지부의 눈빛이 어른 거려서 제 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더군요. 결국 저는 제 힘으로 테러리스트를 제압하고 도망 나왔습니다. 못할 일이라곤 없더군요.

   결국 우리는 바다에서 만났습니다. 선장을 거의 때려눕히면서 까지 배를 빌리고는 바다로 나가려 했습니다. 그 순간 과테말라 우기의 특징, 스콜이 불어 닥치더군요.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의 바람이 1분에 수십 번씩 그 방향을 바꾸며 불어 닥치는 것을 스콜이라고 합니다. 그 스콜의 한가운데에 있다면 영혼까지 모조리 분산되어버릴 것 같지요. 바다조차 어디로 파도쳐야할지 모르게 됩니다. 하지만 뭐라도 상관없었습니다. 스콜이 오건, 토네이도가 오건, 소용돌이가 있던 상관없었습니다. 바다 밑에서 물고기 밥이 되더라도, 그 당시엔 지지부를 피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배가 바다에 나서 극심하게 요동칠 때, 저는 드디어 봤습니다. 그 돌풍과 뇌우 속에서 눈을 빛내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지지부를.

   지지부의 황금빛 눈은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눈빛은 제 모든 운명을 결정해버리더군요. 누구 하나가 죽지 않는 이상 이 추격전은 끝나지 않는다고 그 황금빛 눈은 아득하게 일렁이며 제 가슴을 쑤셨습니다. 저는 거친 돌풍 속에서 난간을 껴안다 시피 하고 있었습니다만, 순간이나마 모든 게 아득하게, 온 세상이 멀어져가고 남는 건 황금빛살 외엔 아무것도 의식할 수 없게 되어 난간을 놓치고 바다에 풍덩 빠지고 말았습니다. 소용돌이치는 물살의 사이로 지지부가 저를 내려다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터무니 없게도 마지막 한 생각은, 지지부가 울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다음 날 아침 해변에서 눈을 떴습니다. 제 예상과 달리,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지지부가 어째서 절 죽이지 않았는지, 제 생존이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옆을 보니 모든 것이 이해되었습니다. 옆에는 등이 갈라진 채, 여덟 개의 다리와 고개를 모래밭에 묻은 지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전 그제야, 바로 어제가 우기의 마지막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 근처에 노란색 사금 가루들이 알알이 떨어져 있었는데, 그것이야 말로 지지부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는 저를 차마 죽이지 못한 것이 너무나 원통해서 울었던 겁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년 까지 이것을 파괴하지 못하면, 이번에는 정말 내가 어디에 있든 간에 죽을 것이라는 확신이 저를 휘감았습니다. 저는 당장에 지지를 파괴하기 위해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모든 것들이 반복되었습니다. 모든 건 저 혼자서 했지요. 하지만, 모조리, 모조리 실패였습니다. 모든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고, 피부로 느낀바 바로 내일이 우기였습니다. 저는 모든 걸 포기했습니다. 자고 싶었지만, 지지부에게 먹힐 때 자고 있다는 건, 뭐라고 해야 할까요……. 무례한 행위 같았습니다. 인간이란 게 이렇습디다. 상대는 상관없이 지 혼자 우정을 느끼기도 하지요. 저는 지지의 동상 앞에 앉아서 말없이 밤을 기다렸습니다.

   *

   “잠깐만. 노인장, 왜 혼자서 한 거요? 뭔가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건…….” 은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 마음의 신비라고 생각할 수밖에요. 죽을 때 죽더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은 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없는 공포와 운명을 느끼게 해준 대가라고 한다면 너무 우스꽝스럽겠지요? 어리석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소…….”

   비덕은 입을 다물고는 은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은노인은 그 지지부의 파편이라는 돌조각을 만지작거릴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덕은 그 정적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은 안달 하며 물었다.

   “왜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소! 그래, 노인장이 아직 살아있고 저 돌멩이가 지금 이곳에 있는 걸 보면 분명 지지부를 파괴시킨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한 거요? 말해 봐요!”
   “아……. 그건…….”  은노인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결말은 너무나 시시해서, 들으시면 화를 내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상관없소! 당신은 내게 사랑과 죽음에 관하여 가르쳐주겠다 하지 않았소? 뭘 가르쳐도, 무슨 설교를 해도 좋으니 빨리 말하시오. 대체 어떻게 지지부를 죽인 거요?”
   “그건…….”

   *

   그믐밤이었습니다. 파도가 밀려오고, 드디어 부가 도착했습니다. 저는 아마 눈치 채지 못했을 겁니다. 부가 아주 우연찮게 제 손등을 타고 지지 쪽으로 가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저는 부를 낚아챘습니다. 양 주먹을 합친 것 보다 조금 컸고, 여덟 개의 촉수를 가진 해파리였습니다. 너무나도 연약했고 여려보였습니다. 그때,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지지가 난자요, 부가 정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지는 지지부의 핵심 실체이며, 유일하고 고유한 것으로 영원히 살지만, 부는 수 없이 대를 바꿔간다고……. 그렇기 때문에 제가 단도로 부를 자른 것은 별 다른 의미가 있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무의식에 가까운 행동이었지요…….

   그 순간 지지는 허물어졌습니다. 썩은 나무처럼…….

   *

   이야기를 마친 은노인은 천천히 비덕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안한 웃음을 어색하게 지었다.

   “이야기를 하고 보니, 사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군요. 세상에, 경우에 맞지도 않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다니……. 하지만 선생님. 이런 일화가 담긴 돌멩이랍니다. 그것이 제 것이 아닌 것 같습니까?”
   “아니, 믿소. 이건 분명히 당신걸 거요.”
   “그럼 이제 돌려주십시오. 저는 그 일이 있은 후 단 한 번도 모험을 나가지 않았답니다. 그 돌멩이는 제 큰 소득원이랍니다.”

   비덕은 노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못 돌려주겠소.”
   “선생님!”
   “대신…….”

    비덕은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의 가방에서 두툼한 현금뭉치를 꺼내 들었다. “…내가 빌리리다.” 은노인은 그 돈을 받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그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그럼, 나중에 회수하러 오겠습니다.”
   “……얼른 가쇼.”
  
   은노인은 문을 닫고 나가면서 찡긋 윙크했다.  

   “그때 그 말, 거짓말인 줄 알아차렸었죠.”

   비덕은 ‘건방진 소리를…….’ 이라고 중얼 거렸지만, 그 발음은 분명치 못해서 자기 자신도 듣지 못했다. 그는 방안에 홀로 앉아, 한쪽 구석에 치워 뒀던 이야기 상자를 끌어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자잘한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책상 위에 쏟아 내팽개치고, 밑의 나무 판을 들어 올렸다. 숨어있던 낡은 사진 한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뒷면을 보았다. 썼다 지운 전화번호가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뒷자리수를 알아 볼 수 없었지만, 그는 전화기를 들어올렸다. 잊었다 생각했던 그 번호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 그는 방금 전에 눌렀던 번호를 다시 누르듯 자연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지지부의 파편을 손에 꼭 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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