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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단편 아들의 방

2007.05.26 22:5305.26

   아들의 방에는 남자들이 드나든다. 그들이 이사 온 후 제일 처음 그 방에 들어간 사람은 물론 그 방을 도배한 남자였다. 새로 바꾼 방의 장판은 원목형 리놀륨, 벽지는 은은한 베이지색이었다. 그 다음에는 이삿짐센터 남자들이 들어갔다. 남자들은 아들의 가구를 재빨리 배치해 주었다. 컴퓨터와 책상과 책장은 벽에 붙이고, 반대편 벽에는 침대를 붙였다. 창문 밑에는 미니 컴포넌트를 놓고 벽에 거울을 걸어주었다. 아들은 방을 한번 휘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들의 친구들이 왔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아들의 친구들은 그 뒤로도 가끔 드나들었다. 그리고 친구들 외의 남자들도 드나들었다.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가끔 고함 소리가 들리고,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는 소리와 물건을 던지는 소리도 들렸다. 한 명이 들어갈 때도 있었고, 여러 명이 들어갈 때도 있었다. 아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말해 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들이 벗어 내놓은 팬티에 정액이 엉겨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 후로, 어머니는 아들에게 물어보지 못하는 것이 많아졌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조용히 TV 앞에 놓여 있었다. 하루에 세 번 식탁에 기대 있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저 애하고 이야기를 좀 해 보세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 저 애도 다 컸어.”라고 말하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늙은 수컷의 무력감이 고여 있었다. 어머니를 쳐다보던 아버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제 자기 앞가림은 할 때야.”라고 말하더니 다시 TV를 바라보았다. 거실이 어두워질 때까지. 시계가 열두 시를 가리킬 때까지.
   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들어갈까 말까 몇 번이나 망설였다. 어쩌다 물건을 사러 나와 집 밖에서 바라보면 아들의 방 창문은 늘 열려 있었다. 밤이 되면 창문에 불이 켜졌다. 어머니는 낯선 남자들이 집 밖에 서성거리다가 창문의 불빛을 바라보는 것을 몇 번이고 보았다. 그들은 숲 속의 짐승들처럼 탐욕스러운 눈길로 불빛을 바라보았다. 한번은 창문에서 무엇인가 나부끼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의 방문을 열지 못했다. 방문은 완강하게 어머니를 바라보며 거부하고 있었다.
   어느 날 쾅 소리가 났다. 이어 괴괴한 정적이 흘렀다. 어머니는 그 정적에 놀라 아들의 방문을 열었다. 아들은 늘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소리인지는 몰랐다. 앞으로도 어머니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들은 천정에 목을 매고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눈이 튀어나왔고, 혀가 늘어졌다. 목매단 아들은 바지를 벗고 시계추처럼 진동하고 있었다. 한쪽 손에 발기한 음경이 단단히 끼워져 있었다. 어머니는 낯선 사람을 보듯이, 낯선 물체를 보듯이 한쪽 손에 음경을 쥐고 흔들리고 있는 아들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보고 있는 가운데 아들의 시체는 천천히 입을 열고 소리 나지 않는 음성을 뱉어냈다. 그것이 ‘엄.마.미.안.해.요.’인지, ‘엄.마.사.랑.해.요.’인지는 알 수 없었다. 소리가 나지 않는 입 움직임만으로는 둘 다 똑같이 보인다.
   어머니는 아들을 부엌 냉장고 속에 묻었다. 어렸을 때 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환성을 질렀다. 그럴 때의 아들은 참으로 기뻐 보였다. 냉장고 문을 열어도 기뻐하지 않게 된 다음부터 아들은 쑥쑥 커 갔고, 어머니에게서 멀어졌고, 방에 남자들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냉장고 속, 저녁 반찬거리와 과일과 음료수 속에 파묻힌 아들은 그때처럼 어려 보였다.
   어머니는 냉장고 문을 닫고 울었다. 시계가 열두 시를 울렸다. 어머니는 울다 말고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딸도 하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어머니는 딸을 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부엌에서 딸의 방까지가 사막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방 앞에서 어머니는 걸음을 멈추었다. 딸의 방에는 남자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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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No Profile
    07.05.27 21:12 댓글 수정 삭제
    ... 마지막 두 문단에서 흠칫 놀라고 말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아이 07.11.28 08:46 댓글 수정 삭제
    이제야 읽어봤네요. '잘 읽었습니다' 하고 덧글을 꼭 남겨야 할 것 같아서요.
  • No Profile
    강동하 15.09.03 15:55 댓글

    이해가 안 되네요. 남자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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