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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단편 Rebirth

2007.02.24 00:0402.24

readingfantasy.pe.kr  어떤 마을이 있었다. 야트막한 산이 두 뭉텅이 합쳐지는 바로 그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소박한 마을이었다. 산은 옛날에는 좀 더 가팔랐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또 흘러 마치 언덕처럼 풍화된 것이다. 마을은 그 풍화를 오랫동안 지켜보아왔다. 마을의 주민들은 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 나무들이 파수꾼처럼 마을을 에워싸고 있다는 것에, 까마득한 조상에서부터 그들의 피가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에, 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이 셀 수 없을 만큼 범람하여 만든 비옥한 농토에, 왼쪽을 차지하고 있는 산의 절반 이상을 무덤이 점령하고 있다는 그 사실에, 마을사람들은 언제나 가슴 벅차게 감동스러워 하였다.
  끊임없이 펼쳐진 무덤 평원을 지키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다. 무덤에는 순수하게 사람만 넣었기 때문에 굳이 도굴꾼들이 있을 리가 없기도 했겠지만, 얼마 전부터 대대로 무덤 평원을 지켜오던 가문에 단 한 사람만 남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열여섯살의 작은 소녀는 순식간에 이름 대신 묘지기 소녀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불에 타 죽었다. 그녀가 개천으로 물놀이를 간 사이에 집에 난 불은 순식간에 부모님과 집과 기르던 강아지를 소각시켰다. 깨끗하게.
  그러나 그녀는 고운 흙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 전에 별똥별이라고 생각했다. 별이 날아와 집에 박히고 있다고 생각했다. 불은 도무지 꺼지질 않았고 그녀는 별이 너무 뜨거워서 조금 코끝이 찡했다. 그녀는 별 속에 도금된 엄마를 언뜻 보았다. 엄마는 눈이 부셨다. 그녀가 불타고 있는 집으로 다가가려고 하자 엄마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살고 있던 집은 묘지 한 가운데 있었고, 주위에 더 탈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불은 번지지 않고 그녀의 집만 태우고 사라졌다. 탄 집에서는 고운 가루들이 나왔다. 소녀는 그것이 별의 대지라고 생각하였다. 하얀 별이었던 것이라고, 그 별이 우리 집에 부딪혀 활활 타올랐던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마을 사람들은 결국 정신이 나갔다며 외면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묘지기라는 평생의 역할이 주어졌다. 다니던 학교에서도, 놀던 아이들에게서도, 소녀는 철저하게 추방당했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이 엉성하게 지어준 묘지 근처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녀의 배가 불러오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 아이의 아버지를 추궁하였다. 묘지기의 딸과 인연을 맺은 남자는 이제 대대로 묘지기를 맡아야 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그걸 아는 마을 사람들은 집요하게 묘지기 소녀를 추궁하였다. 그러나 소녀는 물을 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그럴수록 마을 사람들의 추궁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결국엔 아이의 아버지를 실토하지 않으면 정기적으로 식량을 공급해주던 것을 그만두겠다는 협박을 하기에 이르렀다. 소녀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외계인이에요, 별에서 추락한."

  외계인? 마을 사람들은 모두 당혹해 하였다. 그들은 소녀의 말이 남자를 위해서거나 아니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이라고 단정 지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젠 소녀를 구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이름을 말하라고, 그 남자의 이름을 말하면 네게 주어진 묘지기의 숙명을 벗을 수 있다고 구슬렸다. 소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발 학교도 가고 싶고, 애들이랑도 다시 놀고 싶어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죽어도 외계인이란다. 마을 사람들은 질문을 바꾸었다. 그럼 그 남자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에 소녀가 가리킨 곳은 무덤이 수북이 쌓인 가운데였다.

  "여기."


  그 후로 마을에는 괴소문이 떠돌았다. 시체와 소녀가 관계했다는 소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소녀가 이렇게 되기까지 입을 다물고 있지 않았으리라는 신빙성 있는 근거도 함께. 그렇다면 그 배에서 나올 아이는 정녕 악마란 말인가. 마을 사람들은 소녀의 배가 불러올수록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또 다른 두려움도 점점 커져갔다. 그것은 시체가 다른 마을 여자들과 묘지기 소녀처럼 관계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는 두려움이었다. 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무덤들은 더 이상 마을의 자랑거리가 되지 못했다. 그것은 밝은 대낮엔 그 위용을 명백히 드러내며 마을 사람들을 공포로 질리게 했고 저녁엔 또 저녁대로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공포로 질리게 했다.
  문제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시체한테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의 남편이나 가족은 이젠 두려움이 아니라 분노에 떨기 시작했다. 마을은 점점 뾰족한 감정들이 포화되어가고 있었다. 그 감정에 찔리지 않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출입을 자제하고 과민해졌다. 묘지기 소녀의 배가 산더미처럼 부풀어 터질 것 같이 되어갈 무렵 마을 촌장의 딸이 불러오는 배의 아버지를 시체라고 주장했고, 포화되어가던 마을의 긴장감은 빵 터졌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저 악독한 시체 덩어리들을 모두 없앱시다! 우와아아악!"

  마을 사람들은 제각각 곡괭이와 삽 같은 것들을 들고 떼를 지어 무덤으로 몰려갔다. 물론 환한 대낮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홀린 것처럼 무덤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밭이 갈리듯 무덤들이 뒤집어졌다. 사람들은 유골이 나오면 나올수록 더욱 광기에 휩싸였다.
  소녀는 그 광경을 정말 묵묵히 모두 목도하고 있었다. 그 까맣고 푸르던 무덤 더미들은 희게 변해가고 있었다. 내팽개친 유골들이 이곳저곳 내팽개쳐지고 있었다. 드문드문 흰 유골들이 빗살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들의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 아버지들이 모두 내팽개쳐지고 있었다. 소녀는 고운 가루를 생각했다. 별들이 이 대지에 부딪히고 있었다. 그 별의 흰 대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외계인을 생각했다. 그는 외계에서 왔다. 그렇다.

  유해는 모두 모아 불을 지르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보는 가운데서 시체는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은 거셌다. 소년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들을 달래다가 그들의 아비도 울기 시작했다. 타는 소리와 함께 울음소리가 마을을 뒤엎어나갔다. 하늘은 타는 연기로 회색빛이었다. 석양이 진하게 붉은 물통을 엎질렀다. 피처럼 울음이 물들었다.
  묘지기 소녀는 그 모든 것을 조용하게 보고 있었다. 소녀의 눈에서 회색빛의 피들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소녀는 붉은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그리고 불꽃을 향해 천천히 정말 느릿하게 걸어갔다. 소녀는 그 순간 금박이 입혀진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외계인과 함께 별에 부딪혔다. 불. 그녀는 그 하얀 흙을 생각했다. 까만 흙과 버무려진 그 하얀 모래는 회색빛 하늘처럼 물들 것이다. 마을은 풍화되어가는 산 사이에서 이 불이 타오른 흰 자국이 뭉텅거리며 퍼져나가 회색으로 도색될 것이다. 그리고 외계인은 자기의 별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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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향 님은 현재 대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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