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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러들리 침팬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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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베소자모 항성계에서 가장 큰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인, 수체르타 행성의 수도에 거대한 조니 러들리 침팬지(Johny Rudley Chimpanzee)의 동상이 있다. 3천 제곱킬로미터에 달하고 인구 2억이 넘는 수체르타 수도 한복판에 20제곱킬로미터 너비의 녹지공원이 펼쳐져 있다. 원래는 이 지역 원주민이 부르던 지명에서 딴 이름이 있었지만, 얼마 전부터 누코야모 공원이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조니의 동상은 길이 13미터, 무게 4톤으로 돌을 깎아 만든 낮은 단상 위에 서 있다. 그 외모는 실제 조니의 모습보다 베소자모 항성계의 지성체인 수체로 종족과 더 흡사하게 생겼다. 대신 단상 밑에는 실제 조니의 시신이 냉동된 채로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단상에는 지금도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그들이 두고 간 각양각색의 꽃다발이 놓여 있다. 그 동상은 외계에서 온 귀한 손님을 기리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자신들 수체로 종족이 이 우주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체임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게 조니는 머나먼 외계 행성에서 외계 종족의 역사에 길이길이 남아 있다.
단상에는 조니가 생전에 남긴 말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딱히 유언은 아니지만 수체로 종족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리라. 그 내용은 이렇다.
제가 여러분과 닮았다는 사실이 한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원래 살던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여러분들 모두 저를 이렇게 소중하게 대해주시니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종족입니다. 여러분과 다른 종족으로 태어나, 긴 시간과 먼 공간을 건너온 제가 드리는 말씀이니 믿어주세요.

 

1

존 러들리(John Rudley)는 1973년 10월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출생 직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러들리 부부에게 입양되었는데, 남편이 무정자증임을 안 이후로 부부는 몽골, 한국, 홍콩 등 아시아 각국에서 다섯 명의 아이를 입양하여 친자식처럼 정성스레 길렀다. 그는 조영석이라는 한국 이름을 일곱 살 때 부모를 통해 전해 들었을 뿐 한국어도 모른 채 평생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살았다. 생전에 한국을 방문하지도, 친부모를 찾지도 않았다.
존이 대학에 들어간 1990년대 초반은 인터넷 혁명과 함께 닷컴기업이 붐을 일으키는 때였다.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공학이 적성에 맞아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한 것이 그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대학을 다니며 친구들과 합심하여 만든 뉴스 검색 사이트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다만 당시에는 이렇다 할 수익모델이 없었기에 거대 방송사에 거액을 받고 팔았다. 돈은 함께 개발한 친구들과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다.
이후 대학을 졸업한 존은 취업 대신 이 자금을 종잣돈 삼아 투자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개발자보다 경영자, 투자자로서의 수완이 더 뛰어났음을 오래지 않아 증명하게 된다. 동영상 코덱, 파일 압축, 고속통신망 등 인터넷의 속도에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에 투자하고 주식을 사들였다. 인터넷의 태동과 발전 단계를 직접 보고 겪으며 현재도 향후에도 속도와 편의성이 인터넷 세상에서 중요한 가치가 될 것임을 꿰뚫어 본 덕분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벤처 열풍이 가라앉을 무렵, 가진 주식을 처분하여 막대한 현금을 쌓았다. 운이 좋았는지 직후에 버블이 꺼지면서 존 러들리는 마지막으로 성공한 닷컴벤처 투자자 중의 하나로 이름을 남겼다.
그는 인터넷 다음은 생명공학이라 주장했고, 실제로 기업을 설립하여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 유전공학 기업 하이놈(Highnome)의 CEO가 되었다.
벤처 붐이 일었을 때 그랬듯 유전공학의 성과를 알리고 인기를 높이기 위해서는 야후, 구글과 같이 상징적인 성공사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존은 복제양 돌리를 능가할 정도로 유명한 성과물을 만들어내리라고 결심했다.
당시는 인간복제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팽배했고 배아복제는 법률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소유물이나 다름없는 하이놈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인간 유전자 개조 연구를 시작했다. 존이 주목한 대상은 침팬지였다.
인간과 DNA의 98%가 동일하다고 알려진 침팬지. 하지만 단 2%의 차이가 그들을 전혀 다른 종으로 구분해주고 있었다. 그는 그 차이를 1%로, 0.5%로, 나아가 그 이하로 줄이고 싶었다. 바로 인간과 침팬지의 교배종 휴먼지(humanzee)를 만들어내려는 것이었다.
이는 유인원, 혹은 원숭이와 인간의 분기점(미싱 링크)을 직접 만들어내고자 하는 야심 찬 시도이기도 했다.
존 러들리는 이 실험에서 처음부터 자기 유전자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마흔이 될 때까지 사업가의 딸, 영화배우, 비서와 차례로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지만 아이가 없던 그는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았고, 결국 자기 힘으로 직접 자손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윤리적으로 꺼림칙한 실험의 재료를 제공하고 싶은 사람이 없기에 직접 나섰다는 이유도 있고.
하이놈은 당시 세계 최고의 유전체 편집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사실은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실험은 존 러들리의 정자와 침팬지의 난자를 체외수정시켜 얻은 배아의 유전체를 편집한 다음 침팬지 암컷의 자궁에 이식하는 과정을 거쳤다. 가능한 인간에 가까운 건강한 아기를 얻기 위해 하이놈 연구소는 심혈을 기울였다. 30번이 넘는 실패 끝에 침팬지 암컷이 출산에 성공했다.
마침내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 인간인지 원숭이인지 알 수 없는 새빨간 핏덩이에게 조니 러들리 주니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아들로 삼았다.

 

7

베소자무는 흰색 주계열성으로 행성 4개를 거느리고 있다. 3개는 가스 행성이고 1개는 암석 행성이지만 어느 행성에도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행성 17개 중에 골디락스 존에 속한 수체로에서 생명체가 생겨났고, 이들 수체로 종족은 베소자무 항성계 내부를 탐사하고 암석 행성과 왜행성에 거주지를 건설할 정도의 기술 문명을 이루었다.
어느 날 항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왜행성에 위치한 과학기지는 항성계 내부로 진입하는 작은 물체를 발견하고 탐사선을 보내 회수했다. 굉장히 작은 크기였지만 전자제품을 내장하고 있어 발산하는 전파를 수신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수체로 종족은 최초로 외계에서 온 물체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매우 흥분했고 두 가지 이유에서 충격을 받았다.
첫째로 자기들 말고도 우주여행을 할 정도로 발달한 지성체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는데, 이는 어느 행성에 있는 어떤 종족이라도 똑같이 놀랄 일이었기에 특별한 사항은 아니었다. 두 번째 이유가 수체로 종족에게 특별히 더 큰 충격이었다.
외계의 물체는 커다란 태양전지 판을 돛처럼 판 배와 같은 형상이었다. 배는 길쭉한 직육면체인데, 내부에는 단 하나의 생물체가 누워 있었다. 수체로 종족은 이 물체의 정체를 즉시 알아냈다. 살아 있는 외계인이 여행하는 우주선도 아니고, 도중에 사고로 혹은 자의로 죽은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시신을 냉동보존시키기 이해 만들어진 관이었던 것이다. 그들을 놀라게 한 원인은 바로 외계인의 모습이었다.
둥근 머리, 길쭉한 몸통, 가늘고 긴 팔다리 각각 두 개. 그리고 몸에 무성하게 난 짧은 털. 자신들 수체로 종족과 매우 흡사한 외모였다. 굳이 이 개체를 냉동보존하여 우주로 보냈다는 것은 이 외계인이 높은 신분이거나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인물임을 의미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즉 저 광활한 우주 저편에는 털이 잔뜩 난 지성체 종족이 있음을 의미했다.
수체로 종족의 평균 키는 140센티미터, 머리 하나, 눈 두 개, 두 다리와 두 팔이 있어 지구 생물 중에서는 고릴라, 침팬지와 가장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음식을 섭취하는 기관(器官)과 음성을 수신하고 발신하는 기관이 따로 있다. 인간에 비유하자면 귀와 입을 합쳤다고 생각하면 된다. 엉덩이에 바닥까지 닿는 꼬리가 있어 짧은 다리를 도와 몸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팔이 길어서 서 있을 때 손이 땅에 닿는다.
이들 종족은 크게 몸에 털이 난 유모종(有毛種)과 털이 없는 무모종(無毛種)으로 나뉘어 있고, 이들 두 인종은 강렬한 인종차별로 인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선사시대부터 우주로 진출한 현재의 문명시대에 이르기까지 두 인종은 계속 반목해 왔다. 시대에 따라 한 종이 다른 종을 지배하기도 했고, 장벽을 세워 나누어 살기도 했다. 두 인종이 섞여서 평화로이 사는 순간은 작은 지역, 작은 국가, 짧은 시대에 간간이 존재했으나 종족의 역사 전체를 보면 늘 서로 다투고 죽이고 미워했다.
그러니 유모종 측에서 각별히 이 외계인의 시신을 반가워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운 좋게도 해당 과학기지는 유모종이 운영하고 있었기에 시신을 빼앗기 위한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유모종은 외계인에게 ‘귀한 손님’이라는 의미를 담은 누코야모라는 이름을 붙이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어쩌면 이 우주에는 이렇게 털이 잔뜩 난 종족이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우주를 다스리는 지성체의 표준 형상일 수도 있다, 같은 식으로.
이런 추측으로 자신감을 얻은 유모종은 더욱 일치단결했고 마침내 몇 번째인지도 모를 종족 전쟁을 일으켰다. 과거의 숱한 전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유모종이 정신적으로도 강인하게 무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받은 우주의 지성체라는 자부심과 종교적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의 신념이 있었다. 이렇게 유모종 전체가 똘똘 뭉친 적은 종족의 역사를 되짚어봐도 거의 없었기에 이 전쟁은 유모종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
비록 긴 세월이 걸렸고 엄청난 희생이 따랐어도 결과적으로 유모종이 무모종을 쓰러뜨리고 베소자무 항성계의 패권을 차지했다. 과거 역사에서 패배한 종족은 노예, 천민으로 대우받았지만 이번에는 철저하게 벌어진 인종 청소 끝에 무모종을 표면적으로는 전멸시켰다. 넓은 항성계 어딘가에는 생존자가 있겠지만 통계상으로는 멸종으로 판명되었다.
이후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고 사회에 안정이 돌아오자 수체로 종족은 본격적으로 누코야모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술로도 냉동된 시신을 회복시키기 불가능함을 알았다. 한 번 얼었던 세포를 녹이려다가 파괴될 가능성이 컸다. 섣불리 시도하다 소중한 누코야모를 잃고 싶지 않기에 결국 소생은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냉동된 두뇌에서 기억을 뽑아내어 데이터로 변환하는 시도를 하기로 했다.
숱한 시도와 실패를 거쳐 불완전하지만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조니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안에서 의식을 되찾았고, 비록 많은 양의 기억을 잃었으나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냈다.
수체로 종족은 자신들의 외형과 닮은 로봇을 만들어 컴퓨터 두뇌에 조니의 의식을 전송했다.
조니가 깨어나는 순간이 베소자무 항성계 전체에 방송되었고, 그는 이내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처음에는 누코야모라고 불렸지만, 본인의 요청으로 이후 계속 ‘조니’라고 불렸다. 조니는 머나먼 외계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간직하고 싶었다. 아빠가 지어준 그 이름.
이내 조니는 방송에 출연하거나 사교장의 귀빈으로 대접받는 등 명사로 활동했다. 비록 수체로 종족과의 언어 및 문화 차이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다행히 그들은 누코야모의 이상한 언행을 무식하거나 무례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비록 자신들이 우주에서 가장 우수하고 진보한 문명을 일군 지성체라는 자만과 우월감에 바탕을 두긴 했어도, 외계인의 기이한 언행을 자비롭게 받아들였다. 동물원의 동물처럼 취급한다고 비판하는 지성인도 있긴 했지만, 다수 대중은 조니를 신기하고 재미있는 연예인처럼 대했다.
그러나 외계인 사회 속에서 귀한 손님 대접을 받던 조니의 두 번째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의 컴퓨터 두뇌 기술이 외계인인 조니의 의식을 완전하게 보존할 정도로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니는 인지장애에 걸린 것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기존 기억을 잊었고 수체로 종족과 교류하며 얻은 새로운 기억도 금방 사라졌다.
아무리 움켜쥐어도 손을 펴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같다고, 조니는 그렇게 사라지는 자신의 기억을 묘사했다. 결국 그는 외계인의 기계 속에서 깨어난 지 지구 시간으로 17년 만에 완전히 사라졌다.
수체로 종족은 이대로 자신들의 귀한 손님을 잃고 싶지 않았다. 항성계를 제패하게 만든 원동력이었고 우주 최고의 종족이라는 자부심을 준 정신적인 지주였으니까.
그들은 시뮬레이션에 저장된 조니의 의식을 복제하여 두 번째 조니 로봇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첫 번째 조니와 똑같이 외계 문화에 적응하고 명사로 대우받으며 사는 삶을 즐겼으나, 사라졌던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자 마음이 바뀌었다.
비극적인 과거를 안 조니는 자신이 또 사라지면 세 번째 복제 로봇을 만들 거냐고 물었고, 수체로 종족은 당연히 그럴 거라고 대답했다. 이에 그는 강제로 반복되는 윤회전생을 거부한다고 방송을 통해 선언했다. 비록 이 기억마저도 곧 잊어버렸으나, 수체로 종족은 외계에서 온 귀한 손님 누코야모의 의지를 존중하여 두 번째 조니의 의식이 사라지자 더 이상 부활시키지 않기로 했다. 물론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고 오랜 토론과 반발과 시위를 거친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조니는 자신과 닮은 외계 지성종족 수체로의 세상에서 짧은 여생을 보내고 진정한 죽음을 맞았다.

 

2

세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와 함께 유명한 TV쇼에 출연하면서 조니 러들리 주니어는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당시 조니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옷을 입었음에도 사람보다 원숭이에 더 가까워 보였다. 동그란 눈, 납작한 코, 길쭉한 턱, 크고 둥근 귀까지. 시청자들은 충격을 받았고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존은 이런 반응까지 예측했기에 처음부터 아들을 원했다. 인간과 침팬지의 교배종은 현재 인간의 미적 감각으로 볼 때 도저히 예쁘다고 느낄 수 없는 외모였다. 그러니 여자아이라면 외모로 인해 대중에게 더 안 좋은 인상을 주고 훨씬 많은 비난을 받을 게 분명하니까, 적어도 남자아이인 편이 나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휴먼지가 세상에 공개되자 당연히 이종교배에 대한 윤리적 비난이 쏟아졌지만 존 러들리는 정면돌파로 대응했다. 그가 유명한 사업가인 동시에 부자이고 셀럽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니를 모델로 한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고, 유명 연예인과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그들의 지지선언을 퍼뜨리는 등 미디어를 이용한 선전에 힘을 기울이자 긍정적인 여론이 제법 커졌다.
조니는 여러 별명으로 불렸으나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은 단순 명료한 ‘조니’ 혹은 ‘조니 러들리 침팬지’였다.
아버지 존은 자신의 기업 하이놈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 아이의 유명세를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생각에 집 안에 카메라 6대를 설치하고 조니의 일거수일투족을 24시간 인터넷으로 방송했다. 해당 영상에서 재미있는 장면만 간추린 2시간짜리 영상이 미국 전역에 방송되는 인기 쇼프로그램을 통해 매주 공개되었고, 여러 주(州)의 지역 방송에서도 저마다 특집 혹은 실황 방송을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보여주었기에 거의 매일 TV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인터넷 방송에는 안 좋은 댓글이 훨씬 많았다. 추한 외모, 윤리적인 문제,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 등 그 모두가 틀린 사실은 아니지만 표현은 자극적이고 욕설이 난무했다. 명예훼손 정도를 넘어서 살해협박까지 이어지자 결국 댓글 기능은 폐지되었고, 방송 자체도 1년을 조금 넘기고 종료했다.
조니 러들리 침팬지가 다섯 살이 될 무렵에는 좀 더 인간에 가까운 외형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아기였던 시절엔 원숭이라고밖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나, 점차 얼굴과 손이 인간의 모습을 띠었다.
이제 몸의 털을 제거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히면 그저 등이 좀 구부정하고 못생긴 소년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렇지만 무릎까지 오는 긴 팔과 무척 짧은 다리, 어른용 신발을 신어야 할 정도로 커다란 발은 멀리서 봐도 그를 사람과 다르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큰 특징이었다.
또한 다섯 살의 조니는 이미 인간 아이보다 몇 살은 더 나이 들어 보일 정도로 육체의 발육이 빨랐다. 하지만 지능의 발육은 정반대로 아직 세 살 정도에 불과했고 말을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인간과 유사하지만 똑같지 않은 발성기관 때문에 발음도 어눌했다.
하지만 존은 아들을 무리하게 학교로 보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조니가 완전한 인간이 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고 애초에 인간으로 만들 생각조차 없었다. 더구나 학교에서 환영해줄 리도 만무했다. 이미 존의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입학 반대 시위가 열리고 있었으니까. 존은 소아청소년과 의사, 수의사, 영장류 사육사를 고용하여 집에서 조니의 건강관리와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특히 의사가 매주 방문하여 진찰하는 반면, 나이 든 남성 사육사는 아예 집에서 상주하며 늘 조니를 곁에서 돌보도록 조치했다.
이렇게 집에서만 지냈고 인터넷 방송도 종료되자 일곱 살이 될 무렵엔 조니를 향한 대중의 인기와 관심도 사그라들었다. 신체 나이는 12세 사람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했으나 지능은 크게 나아지지 못하고 7세 사람보다 뒤떨어진 상태였다.

 

6

보이저 1호와 2호를 이어, 조니 러들리 침팬지의 시신을 냉동보존한 관이 세 번째로 태양계를 벗어난 인공물이 되었다. 비록 보이저와 달리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인류가 공식적으로 존재를 확인한 외우주 인공물 지위를 얻었다. 로켓의 파편 등 지구에서 궤도를 벗어나 우주로 퍼진 쓰레기는 몇 억 개에 달한다고 하지만, 인류가 위치를 파악하고 주목하는 대상으로 세 번째라는 의미를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나 보이저와 달리 지구와 통신이 불가능하고 크기가 매우 작다는 점도 있어 조니의 관은 위성궤도를 벗어난 이후 찾아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대신 전 세계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의 흥미를 끄는 관측대상이었기에 2년 정도 목격 정보가 이어졌다.
존의 사후에도 관을 우주로 보내는 일을 지휘했던 고코스모스(GoCosmos)의 에릭 회장은 회사 내부는 물론 외부에도 직접 현상금을 내걸며 조니의 관을 추적하려 애썼다. 비록 잘못되거나 거짓된 정보도 많았지만 2년 동안 제보가 이어졌다. 이후 조니의 관은 완전히 행방불명 상태가 되었고, 세월이 흘러 에릭도 이후 소식을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조니의 관은 소행성이나 보이저에 비하면 느린 초속 3만 킬로미터로 이동하고 있기에 60에서 80년 사이에 태양계를 벗어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후 수백, 수천, 수만 년에 걸쳐 관은 은하계 안을 나아갔다. 이대로 우리 은하가 존재하는 한 은하 내부를 공전하는 인공천체로 남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대로 끝날 운명이 아니었다.
80만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정확히 76만 1977년 후에 조니의 관은 베소자무 항성계 내부로 진입하게 된다. 마침내 인류가 아닌 다른 지성체에 의해 발견되는 데 성공한 것이다.

 

3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며 잊혔던 존과 그의 아들이 다시 언론과 대중 사이에 화제로 떠오른 계기는 전직 주치의의 폭로였다. 개인 병원 설립을 이유로 물러난 전 주치의가 자신이 쓴 책과 TV 인터뷰를 통해 조니의 노화가 실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빠르며 하이놈 연구소에선 존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조니는 현재 열다섯 살이지만 성장은 이미 성인 단계를 지나 노화가 시작되고 있으며, 이대로라면 스무 살 무렵에 이미 신체 나이는 인간의 예순 살에 이르고 이 추세로는 수명이 서른을 넘기지 못한다고 전 주치의가 말했다.
복제 동물이 그랬듯 빠른 노화는 유전공학으로 인체를 개조하여 무병장수를 줄 거라는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였다. 이 소식을 듣고 격노한 존은 연구소에 다시 정밀한 검사를 하라고 지시했으나, 결국 밝혀낸 결론이 전 주치의의 폭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자 낙담했다. 하이놈의 주가는 급락하고 있었다.
존은 이번에도 정면돌파를 선택하여 유전자 편집은 복제 동물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조니는 건강하다고 홍보해서 이 위기를 넘기려 했다. 이때는 바야흐로 유전학이 대중에게 퍼지고 있는 단계로, 아직은 소수의 부유층만이 혜택을 보고 있는 단계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용은 낮아지고 절차는 단순해지고 있었다. 질병치료에서 장애해결을 거쳐 수명연장에 이르기까지, 컴퓨터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듯 인간의 DNA를 업그레이드하여 뭐든지 다 이룰 수 있다는 전망이 밝아지고 있었다. 존은 바로 이런 추세를 이용하여 기업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 다시 아들을 내세우기로 했다.
덕분에 다시 세상의 주목을 얻은 조니 러들리 침팬지는 오랜 칩거에서 벗어나 쇼프로그램의 패널, 영화와 드라마의 카메오 출연, 개인 인터넷 방송 등으로 본인을 알렸다. 열다섯 살이 된 조니의 외모는 침팬지보다는 사람에 더 가까워 보였다. 물론 길쭉한 얼굴과 납작한 코, 둥근 귀, 긴 팔과 짧은 다리, 구부정한 허리, 커다란 손과 발은 감출 수 없었지만 제모(除毛)를 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으면 그래도 얼추 사람 같이는 보였다.
특이한 외모뿐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성격과 세상사에 무지한 부분이 특히 쇼프로그램에서 인기를 얻는 요인이 되었다. 진행자의 질문에 입을 헤벌쭉 벌리며 엉뚱한 대답을 하는 모습은 인터넷에 퍼지며 인기를 얻었다.
물론 그를 향한 심한 악플 역시 여전했다. 당시 신문과 방송이 여러 차례 언급했듯 조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사람─그가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을 일단 무시하자면─이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조니를 향한 욕설, 혐오, 비웃음, 두려움, 증오를 발견할 수 있다. 조니가 직접적으로 끼친 피해가 없음에도 그를 향해 원한과 살해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정도였다. 존은 인기 연예인에게 늘 따라붙는 악플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조니가 직접 악플을 읽지 못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사춘기 아이의 인터넷을 통제할 수 있는 부모는 아마도 없으리라. 이미 아버지 모르게 조니는 자신을 향한 어마어마한 혐오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었다. 세상으로 나와 많은 사람과 교류하며 기쁨을 느낀 것도 잠시, 그는 점점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되면서 1년도 안 되어 개인 방송을 포함한 모든 방송 출연을 중단하고 다시 집에 틀어박혔다.
이후 열여섯 살 생일이 다가오자 조니는 아버지에게 생전 처음으로 커다란 부탁을 했다. 이미지 쇄신을 위해 존이 주선하여 맡았던 유니세프 친선대사에 애착을 가졌던 그는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여 수익금을 유니세프에 기부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계기는 OTT에서 자신을 다룬 다큐멘터리 방송을 봤기 때문이었다. 성인의 육체에 어린아이의 지능을 가진 그를 옛날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에 비유하며 검프가 달리기를 통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것처럼 조니도 자신의 인생을 잘 살기를 바란다는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조니는 곧바로 〈포레스트 검프〉를 봤고 큰 감명을 받아 이후에도 몇 번이고 거듭해서 보았다.
영화에서 받은 감동을 마라톤 대회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일까. 주치의는 급격한 노화와 운동부족으로 인한 약한 체력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으나 조니는 자신이 참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고집을 부렸다. 결국 몸에 이상이 보이면 즉시 중단한다는 약속을 받고 대회를 개최했다.
당연히 실제 대회를 주최하고 자금을 지원한 사람은 아버지인데, 세금 감면 등의 목적 없이는 평생 기부를 하지 않아 경제지 등에서 비겁한 부자, 부도덕한 거부로 언급되었던 존이 처음으로 연 대규모의 기부 행사가 된 셈이었다.
그래도 이름만은 처음 제안한 아들에게서 따서 〈조니 러들리 주니어배 하프 마라톤 대회〉로 정해졌다. 하프 마라톤은 성인 코스였고 조니 스스로 4.2킬로미터를 뛰는 청소년 코스에 참여했다. 그의 유명세 덕분인지 많은 구경꾼이 몰렸고 여러 방송사에서 취재를 오기도 했다.
모두의 관심은 조니에게 쏠렸기에 이례적으로 성인보다 청소년 경주가 더 인기가 많았다. 그 역시 다른 10대 아이들과 함께 출발선에 섰다. 방송을 중단한 지 약 6개월 만에 대중 앞에 다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그 사이에 입원설, 사망설, 약물중독설, 심지어 남자임에도 임신 및 출산설 등 온갖 소문이 들끓고 있었기에 건강한 모습을 보인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조니는 긴장되어 온몸을 떨면서도 사춘기 소년 특유의 자존심 때문에 겁먹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지만 여름인데 혼자 팔과 다리 소매가 긴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유달리 많은 체모를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사춘기의 증표였다.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조니는 밝은 얼굴로 뛰기 시작했으나 초반부터 후미 그룹으로 처졌고, 1킬로미터도 가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치의의 우려 대로였다.
주치의는 구급차를 타고 나란히 달리며 포기를 종용했으나 그는 완강하게 거부하며 완주 의사를 밝혔다. 결국 아버지까지 나서서 소리치고 달래기도 했으나 고집불통이었다.
고집이 강한 것은 내 DNA가 들어갔기 때문인가. 존은 그런 생각에 결국 포기하고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어차피 지쳐 쓰러질 테고 그때 구급차에 실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존의 안일한 생각과는 달리 조니는 거의 비틀대고 걸으면서 꼴찌로 들어왔지만 완주를 해냈고 수많은 이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언론은 대서특필하며 그의 ‘인간다운’ 열정을 칭송했다.
그렇지만 그토록 많은 응원을 받았음에도 조니는 경주 직후 응급실로 실려 갔다.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했는지 이후로 1년이 넘도록 입원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 자신은 몰랐지만 병실에 은밀히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조니의 투병 생활도 공개되고 있었다. 이후 존은 아들의 비극마저 홍보에 이용했다고 거센 비난을 받았다. 어린 시절만큼 뜨거운 인기는 얻지 못했기에 TV가 아닌 인터넷 방송뿐이었지만 여전히 그를 지켜보는 눈길은 끊이지 않았다. 그중에는 마라톤을 계기로 늘어난 팬들도 있었다.
결국 조니는 몇 달 뒤에 이 사실을 알았지만 방송을 그냥 하도록 허용했고, 긴 손가락으로 직접 자판을 두드려 방송을 보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기며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여 퇴원하겠다는 의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시 전 세계의 인터넷 커뮤니티는 투병마저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부자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고 조니 자신이 다 보지 못했지만 악플은 변함없이 많았다.
회복하겠다는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조니 러들리 침팬지는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고 나날이 쇠약해지다가 병실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5

존 러들리는 생전에 아들의 유해를 영원히 남길 것이라고 선언했다.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서 태어난 최초의 존재, 워낙 유명하고 상징적인 인물이기에 그런 발상 자체는 있을 법하다.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보통은 미라로 만드는 쪽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2대에 걸쳐 성공리에 통치한 독재자 부자를 미라로 만들어 전시하는 나라도 있으니까. 그런데 존은 색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조니의 시신을 냉동보존하여 대기권에 영원히 전시하겠다는 발상이다.
우주공간에 둔다면 굳이 냉동보존을 할 필요가 없을 텐데? 우주의 온도가 영하 270도니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기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태양복사 에너지가 대기권이라는 차단막 없이 전달된다면 조니의 시신은 곧바로 익어버리고 말 것이다. 더구나 우주는 기압이 극도로 낮아 섭씨 20도에서 물이 끓는다고 한다. 우주에 노출된 맨몸의 인간은 태양열과 낮은 기압으로 혈액을 비롯한 온몸의 액체가 끓어서 죽게 된다. 얼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 전에 진공으로 인한 산소 고갈로 인해 1분 이내에 심정지로 죽는다는 의견도 있다.
따라서 존은 거대한 태양전지 패널을 붙여 얻은 전력으로 냉동보존시키는 조니의 관을 만들기로 했다. 연에 매달린 냉장고 같은 모습을 상상하면 비슷하다.
액체질소로 급속 냉각시킨 조니의 육체는 우주로 쏘아올려져 위성궤도에서 오랫동안 지구를 내려다보게 될 것이다.
존은 같은 벤처 기업가 출신이자 친구인 에릭이 경영하는 항공우주 기업 고코스모스를 통해 관을 우주로 보내려 했다.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나 마침내 염원이 이루어졌다. 우주선에 태운 조니의 관이 지구를 떠났다.
그런데 작은 계산상의 오차로 인한 사고로 관은 위성궤도에 안착하지 못하고 지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고코스모스는 이토록 작은 물체를 우주로 보낸 경험이 없어 벌어진 실수라고 해명했다. 공표하지는 않았으나 가능한 한 빨리 시행하라는 클라이언트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일정이 촉박했던 것도 큰 이유였다.
에릭은 존을 만나 실패를 사과했지만, 다시 찾아올 수 있느냐는 요청에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너무나 작은 조니의 관은 스페이스 데브리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위성궤도에는 이런 파편과 쓰레기들이 3만 개 이상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만 콕 집어서 회수하는 일은 현재 기술로는 무리였다.
어쩔 수 없이 체념한 존은 마지막으로 남긴 인터넷 영상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멀고 먼 우주로 떠난 조니의 여행을 축복해주겠다고 말했다. 조니가 가는 곳은 신만이 안다는 미국인다운 수사도 덧붙이면서.
존이 세상을 떠난 것은 이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4

조니가 죽기 사흘 전 마지막으로 문병한 아버지와 병실에서 나눈 대화는 짧은 동영상으로 편집되어 인터넷 세상을 오랫동안 떠돌아다녔다.
존은 머리맡에 앉아 조니의 긴 손가락을 잡고 오랜만이자 마지막으로 다른 누구도 없는 상태에서 부자간의 대화를 나누었다.
좀 어떠니?
아빠, 저 꿈을 꿨어요. 구름 위에 있는 하늘나라로 가는 꿈이요. 거긴 천국이겠죠?
그래, 천국일 거야.
제가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럼, 갈 수 있고말고. 천국은 착한 사람이 가는 곳이라며? 넌 누구보다 착하게 살았잖아. 내가 알지.
그럼 아빠, 절 위해 기도해주세요. 제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그래. 기도하자…… (명확히 들리지 않으나 기도문을 외우는 것으로 보임) 아멘.
아빠, 꿈속에서 본 하늘나라는 넓고 아름다웠어요.
좋았겠구나.
아뇨, 무서웠어요. 조금 슬펐어요.
왜?
거긴 아무도 없었거든요. 저 혼자 있었어요. 사람도 없고, 개도 고양이도 새도 없었어요.
꿈이라서 그랬나보지.
동물들도 죽으면 천국으로 가나요?
글쎄……. 생각을 안 해봤네.
아빠, 정말 제가 사람들의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동물이 천국으로 갈 수 있다면 분명 저도 갈 수 있겠죠?
…….
저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누가 그래? 누가 뭐래도 넌 사람이고 내 아들이야.
고마워요, 아빠. 하지만 저는 악플을 봤어요. 저보고 사람이 아니라고, 원숭이라거나 괴물이라고 욕하는 수많은 악플을…….
그건 신경 쓰지 마라. 유명인에게 늘 따라붙는 거야.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저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믿는 신께서도 저를 사람이라고 여겨주실까요? 저를 사람들의 천국에 넣어주실까요? 저 혼자 있던 하늘나라는…… 마치 제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전 무서웠어요. 슬펐어요.
미안하구나……. 아들아…….
사람들은 이 영상이야말로 존이 조니를 ‘아들’이라고 부른 유일한 장면이었음에 주목한다. 그는 여러 미디어에서 아이를 아기, 주니어, 리틀 조니, 귀여운 원숭이 등 다양한 애칭으로 불렀으나 아들이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는 이유로 실은 그가 조니를 자식으로 여기고 있지 않을 거란 소문이 파다한 상태였기 때문에 영상이 인기를 끈 것이다.
존은 아들이 세상이 떠나고 1년 7개월 후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나중에 주치의가 밝힌 바에 따르면 심한 우울증을 앓으며 술과 약물에 의지하며 지냈다고 한다. 직계가족이 없는 그의 재산은 유언에 따라 절반을 유니세프와 WWF에 기부했고 절반은 하이놈 연구소에 후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유산 일부는 소송을 통해 교류도 거의 없던 형제 및 친척들에게 돌아갔다.


(2022.10.23.)

댓글 2
  • No Profile
    scholasty 23.06.30 21:40 댓글

    정말 생생해요. 수루룩 하고 잘 읽히고...최고입니다... 저도 이렇게 쓰고 싶어요

  • scholasty님께
    글쓴이 pilza2 23.06.30 21:56 댓글

    많이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제가 쓴 글이 몇 없어서 이렇게 한꺼번에 읽으시면 더 볼 게 없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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