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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하늘의 뜻

2021.09.30 00:1909.30

 

하늘의 뜻

 


정희의 외증조할머니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무당이었다. 외증조할머니의 어머니, 그 분의 외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 분은 호귀마마라는 신령을 모셨다고 한다. 호귀마마는 전염병, 특히 천연두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신령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호귀마마가 어떤 사람에게 잘못 씌이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아 천연두 같은 전염병에 걸리게 된다. 반대로 호귀마마가 괴롭힘을 멈추고 그 사람 곁에서 떠나면 그 사람은 다시 낫게 된다. 그러므로 호귀마마를 어떤 식으로 기쁘게 해 주어야 하는 지, 어떻게 호귀마마에게 기도하는 지를 잘 익히고 있으면 쉽게 신령에게 씌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병에서 낫게 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외증조할머니는 어느날 장터에 갔다가 천연두 예방을 위한 백신을 접종 해 준다는 간호사를 만났다고 한다.

마침 천연두 백신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 간호사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천연두는 천연두 바이러스라고 하는 바이러스가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만 막아내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백신이라는 것을 주사로 몸에 맞으면 그 약의 효험 때문에 천연두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 와도 힘없이 파괴된다고도 알려 주었다. 처음 외증조할머니는 그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의심 나는 것은 몇 번이나 간호사에게 물어 보고 또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것도 물어서 따져 보려고 했다. 물어 볼 수록, 간호사의 말은 맞는 이야기 같았다. 사람이 천연두에 걸리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호귀마마 신령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천연두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외증조할머니는 그 날로 무당 생활을 그만두었다.

대신에 무당으로 굿을 하면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냥 사람들에게 노래나 춤을 알려 주는 일을 하면서 지내게 되었다. 외증조할머니의 딸인 외할머니께서는 부지런히 학교에 다니셔서 결국 음악 선생님이 되었는데, 아마 외할머니가 음악 선생님이 된 것도 아마 그 어머니의 기질을 이어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희의 어머니는 스포츠센터에서 에어로빅과 줌바댄스를 가르치는 강사로 일하셨다. 가족들은 정희의 어머니도 외할머니와 그 조상들의 재주를 이어 받은 것 같다고들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정작 정희는 노래를 잘 하지도 못했고, 춤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아주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일을 별로 재미있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정희는 어릴 때부터 우주모험담이나 로봇 이야기를 좋아했다. SF 만화에 나오는 미래의 모험가들을 멋지다고 생각했고, 영화에 나오는 로봇이나 우주 괴물들을 좋아해서 그런 것들을 표현한 장난감을 모으곤 했다. 정희는 그런 이야기들을 다룬 책들을 읽기를 좋아했고, 그와 관련된 사연들을 끝없이 찾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했다. 그렇게 해서 정희는 과학에, 화학과 물리학에 차차 관심을 갖게 되었었다. 전자공학이나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것에도 호기심을 갖는 아이로 자라났다.

그러다가 열 세 살 때 정희가 심하게 한 번 앓은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는 독감에 걸린 거라고 했다.

그런데 마침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라, 독감을 경험하는 몸의 느낌이 그 전과는 전혀 달랐다. 정희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고, 독감을 앓는 동안 감각의 혼란을 느꼈다. 기이한 꿈을 꾸기도 했고, 난생 처음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 너무나 실제와 똑같이 느껴지는 생생한 기분 속에서, 정희는 화려하게 꾸민 한복을 입고 머리카락을 요란하게 장식한 어느 귀한 부인 같은 사람이 자기에게 다가 와서, 웃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고 긴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들려 주는 환영 같은 장면을 보기도 했다.

헛소리를 하며, 헛것을 볼 정도로 고생을 하는 정희를 지켜 보면서, 정희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당황하고 걱정했다. 정희가 독감을 앓던 때의 이야기는 가족과 친척들 사이에도 퍼져 나갔다. 그 때문에 그 이야기는 다른 주변 사람들에게도 더 널리 퍼졌다.

얼마 후 서신보살이라는 사람이 정희네 집 사람들을 찾아 왔다. 서신보살은 그 전부터 얼굴은 알고 지내던 이로 옛날 외증조할머니의 제자의 제자의 제자라는 사람이었다. 서신보살은 정희가 아픈 것은 신령이 찾아 왔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다. 어쩌면 가위에 눌렸을 때 본 그 부인이 옛날 그 호귀마마 신령일 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찌 되었든 정희는 무속인이 되어 하늘의 신령들과 통하면서 그 뜻을 이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희의 어머니는 정희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다면서 거절했다. 그런데, 한번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가끔 또 정희가 아플 때가 있거나, 혹시 정희 주변에서 나쁜 일이 생기면 이것도 하늘에서 정희에게 내려올 운명에 있는 신령이 벌인 일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래도 정희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더 이상 서신보살을 만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서신보살은 정희의 등교길에 찾아 오거나 정희가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나타나곤 했다. 신령을 모시는 굿을 하고, 정희는 그 후로 하늘의 뜻을 받드는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자꾸 잡귀들이 들러붙을 것이고 신령이 정희를 아프게 하고 정희의 정신을 괴롭히게 될 것이라고 서신보살이 말했다.

주변에서 계속 그런 말을 듣다 보니, 정희는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때도 있었다.

남들은 그냥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우연한 형체를 보거나, 흘깃 별 것 아닌 모호한 것이 눈에 뜨였을 때, 혹시 자신이 귀신을 본 것은 아닐까 정희는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할 수록 생각은 점점 더 깊어지기 마련이어서, 나중에 정희는 우연히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동영상으로 신령에 대한 주문을 듣거나 의식 장면을 보았을 때, 그것이 너무 강렬하게 느껴져서 비명을 지르거나 호흡이 곤란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도 다 정희에게 하늘의 신령이 내려 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은 신기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남들보다 혼령을 느끼는 감이 뛰어나다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가끔 있다는 사실을 정희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희는 그런 아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정희는 여전히 화학과 물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수학 실력도 꽤 좋은 편이었다. 사춘기 아이였으니 정희도 남들에게 주목을 받고 싶다는 마음은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신비한 주술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말로 주목을 받기 보다는, 어릴 적 본 영화에서 나오는 멋있는 우주선 조종사나 로봇 기술자 같은 사람이 되어 존경을 받고 싶었다.

고민 끝에 정희는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학교 친구에게 이 모든 일을 다 털어 놓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어떻게 새어 나갔는 지, 학교에서 정희는 “무당집 딸”로 소문이 나 버렸다. 이미 외증조할머니 때 그 직업을 스스로 그만두고, 외할머니, 어머니 모두 무속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직업을 갖고 살았지만, 아이들은 정희를 그런 식으로 불렀다. 일단 그게 놀림거리가 될 수 있고, 사람을 낮추어 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여기자, 아이들은 정희를 모질게 대했다. 정희는 따돌림 당했고,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고 있으니, 정희는 점차 자기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운명을 타고 났으며 그냥 그 길로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빠지기도 했다.

중학교에 가서도 정희는 비슷한 생각에 계속해서 시달렸다. 견디다 못해 정희와 정희의 어머니는 다른 무속인을 찾아 가기도 하고, 실력이 뛰어나다는 역술인을 찾아 가기도 했다. 외증조할머니의 제자와 그 제자들 중에는 진지하게 이런 계통의 일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갖춘 분들이 있었고, 서신보살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중에는 소식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정희는 서로 다른 방법, 서로 다른 장기로 사람의 운명을 살펴 본다는 온갖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의 말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지, 모두 다 비슷비슷했다. 하늘의 뜻이다. 정희는 하늘의 뜻을 전해 주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했다. 하늘의 신령들이 어떻게 움직이면서 하늘의 뜻이 어떻게 변하는 지를 알려 주지 않고는 못 배길 사람이라는 운명이었다.

너무나 답답해서 정희는 심지어 타로카드로 그 사람에 대해서 살펴 준다는 사람까지 만나 보았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희는 두 번이나 탑이 그려진 카드를 뽑았다. 몇 차례 무엇인가를 더 따져 보더니 타로카드를 읽는 사람은 그 카드의 의미는 신이 사는 집이라는 뜻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정희가 하늘의 뜻을 읽거나, 하늘의 신령과 대화하는 일을 해야 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정희는 눈물을 흘렸다. 타로카드를 읽어 주는 사람은 갑작스레 정희가 눈물을 흘리는 것에 놀라서 괜찮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다.

정희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즈음에는 이제는 그냥 다른 직업 보다는 무속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자주 했던 것 같다. 마침 학교 공부하는 것도 어렵고 지겨울 무렵이었다. 그러니 공부가 하기 싫어서라도 더 그런 계획에 더 이끌릴 만 했다. 정희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학교에서는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냥 혼자서 새기기만 하는 생각이었다. 말도 없이 자기 혼자만 끝없이 곱씹는 생각이다 보니 정희는 그 생각에 더욱 빠져들었다. 정희의 외할머니는 끝까지 탐탁치 않게 생각했지만, 정희의 어머니는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이 정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굿을 하고, 정희가 운명에 따르는 직업을 갖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엉뚱한 것이어서, 평소에 별로 관심이 없던 것이라도 자신이 그것을 부당한 이유로 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그것이 조금은 소중하게 느껴지게 되고 아깝게 여기게 되며, 눈길이라도 한 번 더 가게 된다. 지겨운 수학 문제나, 재미 없는 물리학 이론에 관한 것이라도 마찬가지 현상이 생길 수 있다.

게다가 사실 정희는 어릴 때부터 그런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신의 운명으로는 접할 수 없는 것이 그런 과목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니까, 이상하게도 그런 과목에 정희는 더 애착이 가고 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내 운명을 누가 정해 주길래, 나는 이런 건 못하는 거지? 돌이킬 수록 마음은 갑갑했다. 어느날 한번 후련하게 마음껏 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정신 없이 공부하다가도, 또 다른 날은 다 부질 없는 생각에 맥이 풀려서 울기도 했고, 그러다 보면 멍한 정신 사이에 귓가에서 무슨 신령인지 귀신인지가 꼭 속삭이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이명이 들리기도 했다.

 4월 26일. 정희는 날짜도 기억한다. 어느 날씨가 굉장히 좋은 봄날이었다.

정희는 학교 뒷동산에 앉아 그 무렵 문득 친해지고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던 학교 후배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몇 년 동안 가장 큰 고민으로 마음에 담아 두던 그 이야기까지 꺼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또 소문이 나면 학교 생활이 곤란해질테니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도 그 이야기만은 하지 않으려고 하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후배에게만은 설령 그런 나쁜 일들이 생겨서 앞으로 남은 삶이 온통 꼬여 버린다고 해도 그냥 후련하게 털어 놓고 싶었다. 너무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될대로 대라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하늘의 뜻을 전해주어야 되는 그런 운명이래.”

그런데 후배는 정희의 이야기를 끝까지 제대로 듣지도 않고도, 무슨 재미난 농담이라도 되는 것 처럼 이렇게 대답했다.

“선배, 그거 대박인데요. 그러면 선배는 지구물리학과나 기상학과 같은 데로 진학해서 기상대 같은  대로 취업하시면 되겠다. 그거 멋진대요? 선배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구름이 얼마나 끼는 지, 하늘에서 눈이나 비는 내리는 지, 그런 거 미래를 예측해서 알려 주는 거, 그런 게 하늘의 뜻을 알려 주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러면 산 위에 있는 높은 탑같이 생긴 그런 기상대 같은 데서도 근무하고 그러면 힘들래나. 선배, 왜 그렇게 저를 쳐다 봐요? 선배? 왜 그래요?”

그렇게 해서 정희는 기상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심했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기 위해 가장 신나게 애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은 매일 저녁 텔레비전에서 정희가 출연하는 일기예보 방송을 본다. 기상예보회사의 일간 예보 책임팀장이 된 정희는 매일 팀원들과 함께 모든 측정결과를 종합해서 계산한 결과를 가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전해 주는 일을 하며 산다. 내일, 저 하늘은 과연 정말로 어떤 모습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


- 2021년, 뚝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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