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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그녀를 만나다

2009.09.25 23:4609.25

    1.
    내 목 뒷덜미에는 전자식 조절 장치가 박혀 있었다. 나는 그 장치에 손을 뻗었다. 좌우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장치를 이리저리 조금 움직였다. 살짝 고쳐 놓고 보니, 그제서야 눈앞이 깨끗하고 시력이 제대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커피며 차를 파는 실내의 모습과 서로 마주 앉은 남녀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더 잘 보였다. "The Good Life"를 화려하게 꾸며서 연주하고 있는 피아노 연주자의 모습도 또렷하게 눈에 상이 맺혔다.
   
    이 시청 앞 호텔에서 이렇게 일요일 오후에 앉아 있는 다른 여러 사람들처럼, 나도 그 자리에 나가기 전에 참 고민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서 길 하나를 건넌 도너츠 가게 즈음에는, 사람을 만나고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자체가 즐거운 시간이 되는 편안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이곳, 호텔에서 기적과 같은 가격의 커피를 마셔야 하는 사람들은 또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같이 있는다는 자체보다는, 그 동안 서로를 탐색하고 서로간의 가치가 자신의 가치 평가 기준에 맞는지 측정하는 것이 목적이 되는 것이다.
   
    나도 그 자리에 앉아서 그녀를 기다릴 때, 옆자리에 있는 다른 어떤 사람 못지 않게 온갖 생각이 뒤죽박죽이었다. 특히 지금 나는 사람을 만난다거나, 이렇게 많은 이들이 오가는 도시 가운데에서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접촉을 한다는 자체도 무척이나 낯선 상황이었다.
   
    하지만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에 비하면 어떻게 보면 내 상황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었다. 일단 나는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누구보다 익숙한, 익숙했던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만나는 것이었다. 비록 1년 반 동안 얼굴을 못보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래저래 어떻게 살아왔는지 대충은 전해 듣고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 1년반 동안 떨어져 있던 시간도 다른 어지간한 연인들이 1년 반동안 떨어져 있던 것 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그녀와 내가 서로 떨어지게 된 것이, 크게 다투었다거나한 때문도 아니었고,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현실적"이 되어서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일연속극처럼 어머니께서 그녀를 만나자고 해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께요. 우리 아들 만나지 마세요." 이런 대사를 한 것도 아니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간촐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빙빙돌리는 것을 호흡이나 심장 박동처럼 여기곤 하는 연속극에서, 이상하게 항상 이런자리에서만은 굳이 꼭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이유는 뭘까? 사실 작가든 연출자건 매끄럽게 장면을 상상해서 대사를 지어내기 귀찮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고보면, 어색하게 만난 두 사람이 서로 조마조마해하고 머뭇머뭇해가는 긴장감이야 말로 제대로 묘사한다면 얼마나 아슬아슬한 이야기거리가 될 것인가.
   
    그렇게 따지자면, 오늘 내가 여기서 그녀를 만나는 것도 못지 않은 이야기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내가 그녀와 헤어지게 된 까닭을 비교해 보자면,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경우들은 물론이거니와 전학으로 헤어지는 중고등학생들의 애틋함이라든가, 지방 연구소에 근무하게 되어 헤어지게 되는 연구원의 사연 등등보다도 훨씬 화끈했다. 내가 가는 곳은 훨씬 훨씬 먼 곳이었다. 얼마나 먼가하면 한번 가면 언제 올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먼 곳이었다.
   
    왜, 전통 민요 중에 널리 알려진 곡 하나 있지 않은가? "쾌지나칭칭 나네"나 "옹헤야"처럼 방정 맞은 것 말고. 상여 매고 장사지낼 때 부르는 노래. 말하자면, "장송행진곡"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노래. 메기는 부분과 받는 부분의 선명한 분화와 조화로 널리 애창되는 그 노래. 거기서, 아마 다른 가사는 잘 모를 지라도, 이 대목 하나만은 어린이들부터 노인들까지 잘 알 것이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지역에 따라서, "어어야- 데에야-"하고 따라 받는 곳도 있고, "어어어- 어어- 어어어-" 하고 따라 받는 곳도 있고, 앞뒤의 현란한 사설들에 해당하는 가사들은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는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핵심이자, 상여 매고 나갈 때 부르는 노래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가사는 단연, "이제 가면 언제 오나"이다. 노래 가사처럼, 바로 내가 그녀와 헤어진 이유인즉, 내가 바로 그 "이제 가면 언제 오는 지" 알 수 없는 곳 근처까지 거의 갈뻔했기 때문이다. 바로 나는 저승에 갈 뻔 했던 것이다.
   
    나를 그곳까지 안내했던 양반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는 다시 생각하기도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조그만한 주제에 떼거리는 어마어마한 놈이었는데, 무엇인고 하니 곧 요즘 세상에 다시 도졌다는 이종 독감이다. 나는 처음에 그냥 감기에 걸린 줄 알았다. 그렇지만 워낙에 힘들기에 동네 의원에서 종합병원으로, 대학 병원으로 전전하다가 독감인줄 알았고, 그나마 한 두 세 주 앓고 나면 털고 일어날 줄 알았는데, 별별 터무니 없는 합병증이 하나 둘 겹쳤다. 그래서 한 반년을 병상에서만 지긋지긋하게 골골거렸는데, 결국 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는 작별하게 되었건만, 대신에 그 즈음 해서, 내 폐와 심장이 아주 팍 삭아 버린 것이었다. 그 밖에도 반년 동안 헤메는 사이에 내 몸 곳곳 어느 하나 성한 구석이 없게 되었고, 결국 나는 폐와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해서, 만약 세상이 어떤 할 일 없는 신이 돌리는 가상 현실 게임이라면 "GAME OVER" 가 커다랗게 하늘에 나타나는 순간을 맞이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역시 사람이란 저승구경은 하고 싶지 않기 마련이지 않은가? 사방에 얼음 밖에 없는 알래스카도 구경하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모래 뿐인 사하라 사막도 관광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었는데, 하여간 저승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머리 셋 달린 개라든가 날개 달고 날아다니는 사람 같은 것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기쁘게 해 준다는 소문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거기를 내가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나는 몸은 극히 쇠약했지만 정신은 대충대충 멀쩡하게 돌아갔던 때문에, 곧 이런저런 살아날 궁리를 하면서 이런저런 치료법이나 치료사니 하는 작자들을 만나고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별별 잡스런 인간들을 다 만났는데, 개중에는 이종 독감으로 가망 없이 죽어가는 사람을 낫게하는 굿을 전문으로 한다는 무당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무당은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었다.
   
    "왜, 옛날에 영어로 나쁜 것을 배드라고 하고, 좋은 것을 굿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게 다, 바벨탑 쌓다가 인류의 말이 달라지기 전에 서로 말이 같았던 흔적입니다. 굿이 좋다고 굿이라는 겁니다. 굿이 비과학적이라고는 하지만, 현대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우주의 기와 만물의 에너지 이론이 응축된 것이 바로 굿이라는 것입니다. 배드한 것을 쫓아내는 굿한 것이 바로 굿입니다!"
   
    이런 따위의 이야기를 늘어 놓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놈들만 죽어라 만나다가 - 내 경우에는 "죽어라 만난다"가 과장법이 아니었다. -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택한 그나마 말이 되는 치료법이 바로, "뇌 이식법"이었다.
   
   
    2.
    내 몸은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걸을 수도 없고, 삼각김밥 포장을 해체할 정도로 손가락을 놀릴만한 체력도 없었다. 굳이 굳이 내 몸의 용도를 생각해 보자면, 체중계의 튼튼함을 측정할 때 사용해 보는 시험용 추 정도? 그 정도 외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 두뇌는 멀쩡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나의 뇌를 이 골골하는 꺼져가는 몸통에서 빼내서 새로 만들어낸 새 몸통에다 이식수술을 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뇌이식법이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새로 만든 몸은 원래 내 몸과 최대한 비슷하게 이런저런 방법으로 제조해낸 것이기는 하지만 아주 똑같지는 않았다. 거기다가 어머니께서 일체형 완제품으로 낳아주신 몸보다 완성도와 호환성도 좀 부족하다. 보통 만성 관절염이나 지나치게 이른 탈모 같은 것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소니 랩톱 컴퓨터 액정 화면을 뜯어서 도시바 랩톱 컴퓨터에 붙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컴퓨터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이 잘 조절해서 세밀하게 연결하면 어쨌거나 화면은 나오겠지만, 그래도 아무래도 불안정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런겁니다."
   
    의사는 그런 비유로 나에게 설명했다. 이 자식 참 기분 좋게 설명하네. 나는 중환자실에서 호흡장치를 달고 오늘 죽나 내일 죽나 하는 처지 였으므로 뭐라고 욕 한 마디 할 기운도 없었지만, 의사 녀석이 그렇게 설명하는 말을 듣자니 갑자기 욱하면서 확 엎어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 놈의 의사는 내 새 몸을 용산에서 용팔이랑 흥정해서 살 놈 같지 않은가?
   
    뇌이식법이란 것은 그런 시술이었던 까닭으로, 새 몸에 뇌를 이식한 뒤에는 부작용이 너무 심해지지 않도록 조절하기 위해서는 목덜미 즈음에 기계로된 조절장치를 하나 박아 놓고 평생 살아야 한다는 문제도 있었다. 더군다나 이식과정에서 뇌도 온전하게 이식되는 것도 아니었다. 원래 뇌의 많은 부분은 뜯어져 나가게 되고, 그 결과 상당한 기억과 지식을 잃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원래 뇌가 없어지니 새롭게 인공적으로 처음부터 키워낸 뇌조직으로 대체하는 부분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어쨌거나. 죽지는 않는다. 저승사자는 안만난다는 것이다. 손해보는 구석이 있고, 돈은 꽤 많이 들지만, 그래도 수술 성공률도 낮은 편은 아니었다.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성공할 가능성도 걸어 볼만한 도박 정도는 되었다. 만약 그 도박에서 이기기만 한다면, 땡일지 따라지일지는 모르겠지만, 잘만 풀려서 제대로 뇌이식법을 시술하고 나면, 나는 더 살 수 있다. 잘 살 수 있다. 멀쩡하게 한 사람 구실을 할만한 상태로 새로운 몸에서 다시 깨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뇌이식법은 성공했고, 새 몸에 뇌를 옮기고 나서 20개월 동안 나는 회복 프로그램을 따라 회복 훈련을 받았다. 새롭게 이식되는 몸은 모든 면에서 쉽게 적응될 수 있는 일종의 아기의 몸이었으므로, 나는 20개월 동안 성장 프로그램에 따라 단시간내에 성장할 수 있도록 날마다 수십개의 약품을 투여 받았고, 왠갖 영양액을 주입 받았다. 처음에는 머리가 엄청나게 아픈 두통에 시달릴 때도 많았고, 가끔 숨이 쉬어지지 않거나, 눈이 보이지 않는 증상에 시달릴 때도 꽤 많았다. 하지만, 뇌이식법 이전에 병상에서 괴로워하던 시간에 비하면 그렇게 견디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시간이 갈 수록 점점 그런 점은 좋아졌다. 특히 목 뒤에 붙여 놓은 조절장치를 적절히 이용할 수 있게 되자, 그런 문제로 갑자기 어려움을 겪는 일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내 "스스로도" 몸에 점점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꼭 어린애 같은 몸에 머리를 만져보면 커다란 흉터가 있는 꼴이 꼭 징그러운 괴물 같이 느껴졌다. - 실제로 회복프로그램 9개월까지는 거울을 주지도 않고 최대한 몸을 스스로 보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몸은 원래의 몸과 비슷해 졌다. 속눈썹이 조금 더 길어 보이고 턱이 약간 더 넙적해 보이기는 했지만, 얼굴 모습도 원래 내모습과 아주 많이 닮아 보였다. 언젠가 의사에게 한 번 물은 적이 있었다.
   
    "저, 이제 몸 움직이고 먹고 자고 하는데는 큰 이상은 없는데요. 그래서 말인데, 그러다보니까 궁금한게 하나 있습니다. 제 원래 몸은 어디있습니까? 어떻게 된 건가요? 뇌를 빼내고 남은 몸은, 그냥 폐기해서 어디 버린건가요?"
   
    의사는 말 없이 나를 잠시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나는 무안해서 고개를 떨구고 말없이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시선을 아래로 하고 있자니, 30대 초반의 여자였던 이 의사가 스타킹을 신은 자기 다리의 모습에 자신감을 느끼는 듯하다는 생각이 괜히 한 번 들었다. 곧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듯 의사가 말했다.
   
    "아아, 그 부분이 결손부위시구나. 오퍼레이션 때 브레인에서 절제된 부분 때문에 그 부분 설명 드렸던 건 지금 메모리에 안남아 계시는 모양이네요. 그거 원래 오퍼레이션 전에 설명드렸었는데. 그 부분은 컷아웃 되는 바람에 기억을 못하시네. 그게..... 올드 바디가, 지금 환자분 지금 바디세요."
    "예? 이 몸은 새 몸 아니에요? 원래 몸은 폐랑 심장이 곯아서 못쓰는 병든 몸이었는데......"
    "그게, 시술법이 나온 초기에는 올드 바디는 따로 묻어두고 완전히 뉴 바디를 따로 드렸던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러니까 꼭 남의 바디에 영혼만 들어온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환자분들이 많아서 적응이 잘 안되고 회복 프로그램이 잘 프로시딩 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그렇게 안하죠. 지금은 지금 환자분 바디가 정말 환자분 바디가 맞다는 느낌이 들도록, 올드 바디를 다시 다 갈고 녹여서 분해처리해서 영양액으로 재처리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영양액을 지금 환자분 바디로 성장할 수 이루도록 다 공급해 드렸고요."
    "그러니까, 제가 지금까지 몸에 맞았던 영양제 같은 것들이 다 제 시체 갈아서 만든 주스라는 건가요?"
   
    의사는 입을 가리고 즐겁게 호호 하면서 웃었다.
   
    "에이, 환자분 말씀 되게 웃기세요. 그렇게 말하기 보다는, 예전 환자분 바디를 이루고 있던 단백질 아미노산 중에 대략 65% 정도는 지금 환자분 바디를 이루고 있다고 말하면 더 듣기 좋죠."
   
    그 말을 듣고 나는 한참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런데, 왜 옛날 몸, 새 몸, 뇌 이런 건 올드 바디 뉴 바디, 브레인 하시면서 영어로 말씀하시다가, 단백질 아미노산은 프로틴 아미노 액시드라고 안하십니까?"
   
    그 닥터가 잉글리쉬로 스피크하거나 말거나 간에, 그때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달았던 것은 확실히 뇌이식법을 쓰는 동안 날아간 기억이나 지식이 정말로 많았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영어를 썩 잘하는 편이었고,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 때 스페인어를 재미있게 배운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뇌이식법 이후에는 영어실력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스페인어는 도무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수영이나 어릴적 좋아했던 컴퓨터 게임 같은 것은 다시 접해도 문제가 없었지만, 원래 좋아했던 프로야구에 대해서는 도무지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뇌이식법이 성공할 수 있는 핵심은, 뇌가 35% 정도만 잘 보존되어 있으면, 새로운 뇌조직으로 금새 다시 학습을 통해 보충하고 적응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을 뇌이식법의 기본 이론이라고 부른다. 분명히 수술에서 깨어난 직후에 나는 프로야구에 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가 프로야구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스포츠 신문들과 한국 프로야구 연감을 살펴보기 시작하자 나는 다시 프로야구에 흥미를 갖고 빠져들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야구를 다시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완전히 없어진 상태에서 새로 보충된 뇌 조직으로 새로 익힌 것이었기 때문에, 예전과 똑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서, 예전의 일기를 보면 예전의 나는 손민한 선수를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대호 선수를 더 좋아한다. 그런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다른 여러 내 성격과 지식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보니까 서로 영향을 끼치고 조화를 이루어 전체적으로는 예전과 비슷해진다. 즉, 나는 세세한 상황은 좀 달라졌지만, 어쨌거나 여전히 프로야구를 좋아하고, 자이언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회복 프로그램의 뒷부분 10개월 동안, 나는 주로 이렇게 예전 기억이나 지식 중에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배우는 일들을 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다시 한 번 훑어 보았고, 학교 다니면서, 직장에서 일하면서 배우고 익혔던 일들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았다. 어릴 때 겪었던 일들과 그 동안 재미나게 읽었던 책들, 기억에 남는 영화들을 돌이켜 보았다. "전쟁과 평화"의 줄거리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뤼팽이 나오는 "수정마개"의 등장인물들은 어렴풋하게 기억이 났고, 친구와 함께 "괴물"을 보러갔다가 앞자리에 앉았던 어린이들이 괴물이 나올때 마다 눈을 가리고 무서워서 눈물을 흘렸던 것은 기억이 났는데, 정작 영화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 내용들을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새로 익히면서, 다시 예전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일들을 했다.
   
    이런 일들은 차근차근 일정에 맞게 진행 되었고, 특히 학습과 적응 작업이 너무 과해지지 않도록, 억제 교육과 안정성 훈련도 착착 함께 펼쳐졌다. 의사는 날마다 서로 다른 스타킹을 신고 나타나,
   
    "환자분 리커버리 스피드가 어패어런트 하시네요. 병원에서 수술기술자들끼리 하는 말 중에 그런 말이 있어요. 묵국수 먹을 때 젓가락질을 잘해서 젓가락으로 묵국수 먹어도 묵 잘 안부서지게 잘 잡는 사람이 수술할 때 대뇌 만질때도 잘한다고 그러거든요. 왜 묵 먹으려고 젓가락으로 잡았는데 젓가락 잡는 힘때문에 묵 쪼개져서 자꾸 놓치면 되게 짜증나잖아요. 대뇌 집을 때도 느낌 똑같거든요. 잘 안집히면 진짜 짜증나요. 제가 묵국수 되게 잘 먹는데, 역시 제 환자라서 다르시네."
   
    라고 말했다. 그 모습은 못미덥기 그지 없었고, 이 사람은 뇌이식법으로 죽기 직전의 사람을 건강하게 살려 놓는 것보다는 오히려 스타킹 자랑하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인 중생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부실한 의사의 말처럼 분명히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나는 예전 상태를 빠르게 회복해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회복 프로그램은 처삼촌 벌초하듯 건성으로 진행되는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주는 효과는 충분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처삼촌이 아니라 처팔촌 벌초라도 장비만  전기톱과 분묘용 잔디깎이 기계로 벌초하면 대충해도 꽤 말끔하게 된다는 느낌 이었다.
   
    역시 뇌이식법의 기본 이론은 맞는 것인지, 내 스스로도 수술 와중에 손실 된 것들을 회복하고 새로 익히는 일들의 속도가 빠르다는 느낌이 들 때도 많았다. 종종 그 증명이 극적인 경우까지 있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맡았던 일 중에는 회사에 회사가 운영하고 소유하는 대학원을 관리하는 업무가 있었다. 그런데, 이 대학원은 교육 프로그램도 형편 없고, 교수진이나 연구성과도 미미한 없는 것이나 다름 없는 그야말로 쓰레기 같은 조악하기 짝이 없는 대학원이었다. 그런데, 그런데도 회사가 소유한 이 대학원은 많은 입학자와 졸업자를 배출하면서 잘 돌아가고 있었다. 왜? 어떻게? 그 이유를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해내고 있는 것은, 예전의 내가 이따위 쓰레기 같은 대학원을 관리하는 일을 할 때는, 일을 잠시 미뤄두고 한참 동안 인터넷에서 서핑보드에 대한 것들을 검색하면서 서핑에 대한 상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는 것 정도 뿐이었다. 부서지는 파도와 따뜻한 공기. 탁트인 바다의 빛깔. 백사장을 달리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곧 나의 다른 지식으로 비추어 곧 문제의 대학원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 대학원의 목표는 무슨 연구를 하는 것이거나, 교육 사업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대학원은 회사 직원들을 반강제로 등록시켜서 대충 박사학위를 아무것이나 나눠주는 것이 목표였던 것이다. 어차피 제대로 된 교수진도 없고 연구 프로그램도 없어서 대학원생들이 할 일도 없다. 그냥 적당히 자리를 채우고 시간을 때워서 박사학위를 얻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자, 이렇게 하고 나면, 회사에서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을 수주했을 때, 이렇게 따낸 의미 없는 학위를 가진 직원들의 이름을 제출하고 "박사급의 인력을 활용해서 업무를 진행"한다고 보고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하면 정부에서 "전문인력을 전문적으로 활용한 전문성 업무"라는 명목으로 지급되는 "전문인력 활용비"를 잔뜩 타낼 수 있는 것이다.
   
    뛰어난 전문인력은 모두 해외에 취업을 하니 어쩌니, 외국에 유학간 전문이력들이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외국에 눌러앉으므로 두뇌유출이 발생하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신문에서 한동안 떠들어댄 결과, 우리 정부의 몇몇 공무원들은 "국내 전문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우수하게 대우 해준다"라는 정책을 만들어냈다. 때문에 직원이름 중에 박사학위증을 가진 사람 이름을 써 넣으면 정부에서 돈을 더 타낼 수 있는 제도가 생긴 것이었다. 바로 내가 관리했던, 우리 회사의 아무 쓸모 없는 헐랭이 대학원의 목적은 바로 정부에서 이 돈을 타내기 위한 장치였음을 나는, 옛 기억 없이도 다른 여러 지식들로 미루어 새롭게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3.
    새로 얻은 몸과 새롭게 뛰는 생명에 익숙해져갈 수록, 뭐니뭐니해도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그녀였다. 처음부터 선명했고 또 회복 프로그램이 진행될 수록 점점 더 뚜렷해져서 나를 사로 잡았던 것이 바로 그녀에 관한 것들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 훈련 기지 건물에서 눈을 뜨는 바로 그 날부터, 내 머릿속에는 그녀와 헤어지던 그 날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뇌이식법을 택하기로 결심하고부터 그녀는 두려워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일단 1년 반 동안 떨어져 있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쓸쓸하기 마련이었는데, 뇌이식법이 실패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고, 성공한다고 해도, 내가 예전의 몸과는 좀 다른 몸과 성격을 갖게 되거나, 최악의 경우에 내가 그녀를 거의 알아보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 않았는가. 의사는 그럴 가능성이 크게 높지는 않다고 했지만, 그녀는 어쩐지 나와 영영 이별하게 될 위험이 있지 않을까 자꾸만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래서인지, 그녀와 나는 뇌이식법 자체나, 뇌이식법 이후에 깨어나고 나서 어떻게 지낼지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우리는 결혼하기에 이미 조금 늦었다 싶을 만한 나이였다. 그래서 20개월의 회복기간이 만나면 언제 상견례를 정식으로 하고, 언제 어떻게 해서 결혼을 하고, 어떻게 저떻게 살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안전하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 만한  처지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내가 수술을 받는 날이나 내가 다시 깨어난 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짐짓 이야기를 피하곤 했다.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영영 나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까봐. 내 머리에서 빼낸 뇌를 새로운 어린 몸에 넣고 다시 적응 시키는 과정이 실패해서 내가 텅빈 시체 껍데기만 남기고 사라지게 될까봐 무서워했다.
   
    가끔 그녀는, 문득 용기를 내어서 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기는 있었다.
   
    "너, 있잖아. 내가 부탁 있는데."
    "뭔데?"
    "들어줄 거야?"
    "귀는 들리니까 듣는 건 안어렵지."
    "장난하지 말고. 이거 잘 들어보고 내가 하라는 데로 해야 돼."
    "뭔데?"
    "수술해서 마취하면 점점 졸리잖아. 그때, 나 까먹지 않게. 꼭꼭 계속 기억해. 내 얼굴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계속 계속 내 이름을 말해. 아무래도 그러면 좀 더 효과가 좋지 않겠어. 그렇게 계속 계속 집중하고 있어야 나 안까먹지."
   
    그녀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유난히 말을 단어 마다 띄어 말했다. 그녀는 좀 울 것 같아 보여서, 그리고 나는 뭐라고 말해야 될 지 몰라서 - 또 호흡장치며 목에 끼워 놓은 관 같은 것 때문에 말할 때 마다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그냥 아무 말 안하고 있었다.
   
    "왜 너 아무말 안해? 너 나 잊어도 좋아? 응? 너 수술할 때 내 생각 계속 할 거라고 해. 그렇게 이야기 해줘."
   
    그때부터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치기 시작했다.
   
    "나는 너랑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계속 재밌게 오래오래 사이 좋게 같이 살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그런데 너는 막...... 막 이상하게 되면......"
   
    나는 갑자기 이 덩치 큰 아가씨가 고요한 중환자실에서 목놓아 꺼이꺼이 울기라도 할 것 같아, 허둥대면서 대답했다.
   
    "내가 어렸을 때 별명이 불량육포목숨 이었거든. 그러니까 그만큼 목숨이 질기다는 거야. 그러니까 절대 쉽게 죽지는 않을 거야. 걱정마. 걱정마."
    "어릴 때, 어릴때, 별명이 불량육포...... 육포 목숨이 어딨어. 거짓말 하지마......"
   
    그녀는 점차 울음이 터져 나와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흐느끼는 소리가 섞였다. 그녀는 어린애가 울 때처럼 눈썹 끝이 처지면서 곧 크게 울 것만 같았다. 나는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괜찮아. 그런 걱정 안해도 돼. 내 머릿속에는 너 생각 밖에 없거든. 그래서 그냥 살아남기만 하면, 너 잊고 그러는 일은 없어. 나 너 생각 너무 많이 하고 살아서 뇌에서 아무 부분이나 뽑아도 다 너 생각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우는 거 그쳐. 응? 그리고 오늘 뭐하고 지냈는지, 요즘 무슨 뉴스가 재밌는지 그런 거 재미난 거 나한테 이야기 해주라."
   
    그녀는 억지로 억지로 울음을 그치면서, 내 손을 꼭 붙잡았다.
   
    "너, 거짓말..... 진짜...... 잘한다."
   
    그리고 그녀는 겨우겨우 우는 것을 참으면서 왼손과 오른손을 우스꽝스럽게 꼬아 보였다.
   
    "너 말이 너무 닭살스러워서 손발이 이렇게 오그라들었어."
   
    눈물을 흘리다가 그렇게 생으로 갓 만든 순두부 같은 느낌의 몸동작으로(이게 무슨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비유인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그때 생각했다는 기억은 분명하다.) 한번 웃겨 보이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찌나 가슴에 남는지.
   
    답답한 회복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도중에, 그때 그녀의 그 울먹이던 목소리며, 30대 여자가 지어내는 그 착한 아이 같은 표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몇 번이나 떠올렸는지 모른다.
   
    물론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기억 나는 것이 기억나지 않는 것보다는 더 많다는 느낌이었다. 그녀와 처음으로 입을 맞춘 것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었지만, 그 느낌만은 그대로 떠올릴 수 있었다. 항상 마지막으로 아쉬운 듯 가볍게 아랫입술에 혀를 갖다 대는 그 버릇이라든가, 길가다 말고 갑자기 멈춰 서서 한 참 아무 말 없이 쳐다보다가는 문득 볼이 발그레해져서는 작은 목소리로 기어들어가듯이 입맞춰 달라고 하는 모습은 그대로 기억났다.
   
    수술을 하던 그 날. 그 날 그녀의 모습도 언제나 보다 생생하게 기억난다.
   
    우리는 병세라든가, 수술이라든가, 혹은 이제부터 내 머리를 쪼개서 그 안에 있는 뇌를 떼어낸 다음에 이리저리 가공해서 새로운 몸에 심는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나타나서 나를 수술실로 옮겨가는 그 순간까지도 그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우리는 그저 요즘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 중에 무엇이 제일 재미있다든가, 한강에서 낚시를 하기에 좋은 장소라든가, 밤 경치를 보기 좋은 장소나, 하다 못해 오대산 깊은 곳에 반달곰이 아직 살아 있는가 하는 등등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오늘도 어제와 똑같은 하루인 것처럼, 내일도 오늘과 같은 하루가 그저 이어지기만 할 것처럼 그런 저런 평범한 이야기들만을 계속했다. 그렇게 평범한 이야기들이었지만, 그녀와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은 어떤 누구와 같이 나누는 말보다 재미있고, 한 마디 한 마디 편안하고 느긋한 휴식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계속 내 옆에 머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내 한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많은 이야기들을 하다가 잠시 할 말이 없어지면, 그녀는 누워 있는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갑자기 울컥 눈꼬리가 쳐지더니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우는 얼굴이 되는 그녀의 모습은 우울 속에서 서글픈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어째 불쌍한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같이 슬퍼지기 보다는 그저 애처롭고 안타까운 마음이 되어, 어떻게든 다시 그녀에게 행복한 마음을 갖도록 해주고 싶기만 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어떨지도 좀 막막하기도 했다. 결국에는 "울지마, 왜 울어" 같은 말을 굳이 답답하고 재미없게 꺼내는 것마저도 좀 한심스러워지는 묘한 기분이 되었다.
   
    그녀와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그녀와 함께하는 마지막 아침이다. 그녀와 함께 보는 마지막 낮이다. 그런 시간들이 차츰차츰 흘러가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마다 차츰 차츰 마음이 가라앉는다. 나는 언제 어떻게 그녀와 떨어져야 하고, 뭐라고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말해야 할지 잠깐씩 생각해 보았다.
   
    괜히 멋있는 말, 멋있는 장면 만들려고 하는 것은 옳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자랑하려고 들려줄 이야기 거리 만드는 것도 아니고, 먼 훗날 내가 무용담으로 돌이켜 보면서 만족하려는 추억을 억지로 만드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시간이 다가 올 수록 내가 느끼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그녀를 볼지도 모를 그 순간이 코 앞으로, 눈 앞으로 가까워 진다. 항상 같이 했던, 재미난 일부터  귀찮은 일까지, 골치 아픈 문제부터 유쾌한 농담까지. 언제나 같이 나누었던, 내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지금 세상 사람 중에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녀를 이제는 곧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될 지 모른다. 그런 그 마당에 이별을 멋지게 꾸미는 일 따위에 내 진심과 정성을 조금이라도 소모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돌아서서 해설하는 이야기야, 무슨 70년대 영화 주인공의 긴긴 문어체 독백처럼 이렇게 둘러댄다만, 사실 정말 수술 직전까지의 심경은 말이 아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갑자기 엄청나게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러고 있는데 담담하고 일상적인 굳은 모습을 보여주려는 그녀가 가끔씩 자기도 모르게 자꾸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자니 가슴에 소행성 같은 것이 퍽퍽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막상 두개골을 부수어 내고 뇌를 꺼내어 메스로 자르고 바늘로 꿰어 내는 일아 닥치고 보니까 이거 이렇게 덜컥 죽는 거 아닌가 하는 겁도 갑자기 마구 몰려 왔다. 만약에. 만약에 지금 마취에 빠진 뒤에 죽는 다면. 떨어진 뇌 토막과 부수어진 머리통을 남긴 채로 그냥 수술이 끝난다면. 그러면, 나는? 나는 어디에 가는가.
   
    없어 진다.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냥 없는 것이 된다. 더 이상의 시간도 기회도 없다. 나는 사라진다. 내가 사라진다라는 것 조차 생각도 못하도록 내 모든 것이 날아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주변에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받고 살아온 인간이든지, 혹은 내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살아온 인간이든지, 얼마나 고상한 철학과 사상을 갖고 살아온 인간이든지. 그게 뭐 어떻든 아무 소용 없고 아무 상관 없이 나는 어떤 조건, 어떤 형태로건, 이 세상 어디에서건 더 이상은 없는 것이다.
   
    더이상 어떤 것도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한다는 이 무서움을 느낄 그 주인공 자체가 사라진다는 무서움이 나를 휘감았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압도적인 단 한 명의 내 인생의 주인공이 영원히 다시 볼 수 없는 무대의 막 뒤로 완전히 퇴장해서는 영원히 되돌아오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종 독감이나 뇌이식법과는 상관 없는 삶을 내가 살지라도 언제인가는 죽을 것이다. 치밀하게 건강을 관리하면서 누구보다도 모범적인 건강한 삶을 살지라도, 언제인가는 어느 때인가는 늙은 몸이 생명을 잃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무슨 짓을 하면서 어떻게 살든지 간에 나는 죽기는 죽을 것이다. 언제인가는 내 자신이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무서움을 느껴야만 한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죽는다는 자체는 마찬가지다. 지금 죽음을 맞이해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의 허무로 사라지는 것과, 한 30년 후 쯤에 죽게 되어  사라지는 것을 비교해 보면, 사실 어떻게 보면 잠깐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그래서, 더더욱, 그 죽음의 순간을 절절하게 눈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컸다.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는 마취의 순간과 다시는 정신을 차리고 내 자신을 느낄 시간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앞으로 영영 눈을 뜨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조그마한 온기와 작은 꿈마저 꾸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 그것을 바로 앞에 둔 기분은 족히 누구라도 겁에 질리게 할만 한 것이었다.
   
    그렇게 이상한 왠갖 기분에 뒤섞인 나를 찾아 드디어 의료진들이 도착했다. 사람들의 손에 내가 침대째로 옮겨지기 시작할 때, 나는 그 장면들을 천천히 선명하게 머릿속에 담는다. 어쩌면 내가 마지막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사소하게 내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나 이유 없이 들리는 소음마저도 하나하나 마음 속에 새겨 본다. 분주히 움직이는 간호사들과 마지막으로 신체 반응의 측정치를 살피는 의사들이 내 눈앞에 움직인다. 바쁜 동작 때문에 감정 없이 보이는 이 의료진들의 표정은 살가운 이 세상의 감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에 더 무섭게 느껴진다. 이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나타나 내 눈앞에 마스크로 가린 얼굴들을 보여주자, 그 얼굴들이 무표정하고 살벌한 피사체로 눈에 담긴다. 나는 그 사람들이 무슨 저승의 사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마지막으로 끝까지 내 손을 꼭 쥐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 온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따라서 시선을 옮긴다. 그녀의 표정과 마지막 목소리들은 놓치지 않는다. 내가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 간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는 바보 같은 입모양이 되어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한다. 우는 목소리의 그녀는 몇 번 숨을 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잘 잇지 못한다.
   
    또 어린애처럼 우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나는 문득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잊고 그녀에게 말한다.
   
    "에이, 너무 그렇게 울고 걱정하지마. 괜찮아. 살아 돌아오면 땡잡는 거고, 실패해도 너랑 이렇게 재미나게 지냈으니까 이 정도면 누구한테라도 뽐낼만큼 잘 산 거 잖아. 너 맨날 '나 같은 복덩이가 너 애인 해주는 걸 영광으로 알아야지' 그랬잖아. 영광 맞아. 아니아니. 이런 소리 해 봤자 재수 없겠다. 어지간하면 수술 잘 되어서 살아 돌아올거야. 오늘 머리도 잘 굴러가고, 뼈와 살이 좀 잘 분리될 것 같은 느낌도 나고 말이야."
   
    뭐 이런 걸로 사람을 달래는 농담이 될 수 있겠나 싶은 회의감이 혼란한 와중에도 잠깐 든다. 심지어 별로 웃기지도 않다. 그녀는 울음을 잠깐 그치고,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정돈하여 나에게 당부한다.
   
    "수술 잘 해... 잘... 깨어나서 나 맨 먼저 보러 오고."
   
    마지막 단어를 발음할 때 쯤 해서, 그녀는 다시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는다. 언제까지나 내 손을 붙잡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녀는 그렇게 말을 하고 내 손을 놓는다. 괜히 정말로 죽어서 못 볼 것처럼 울고 불고 하면 재수 없게 영영 다시 못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당연히 수술은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려 한다. 이런 것도 따지고 보면, 지푸라기 잡는 듯한 미신 이다. 참 잡을 지푸라기도 없는 사람들이 잡게 되는 마지막 미신이 "수술 잘 못 될 거 걱장하면 말이 씨가 된다"는 따위 아닌가. 그리고 그녀는 내 곁에서 빠르게 멀어진다. 어쩌면 다시는 마주하지 못할 그 마지막 모습이 점차 눈 앞에서 사라진다. 안녕. 안녕.
   
    수술실을 향해 침대가 옮겨진다. 내 눈에는 병원 복도의 형광등이 들어온다. 침대의 바퀴가 구르는 소리와 복도를 지나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나는 그녀와 약속했던 것을 떠올린다. 반드시 마지막까지 그녀를 잊지 않도록 나는 계속 그녀를 떠올린다. 그녀의 하얀 손과 조용하고도 분명한 그 목소리를 떠올린다. 길지 않게 잘라 경쾌해 보이는 까만 머리칼과 천사 같은 웃는 모습을 떠올린다. 처음 그 얼굴을 보았을 때 내 어딘가에 남아 있는 사춘기 첫사랑 같은 열정으로 빠져 들었던 그 맑은 검은 눈동자를 떠올린다. 발갛게 부끄러워진 얼굴로 내 품속에 안겨서 정말 정말 좋아해서 계속 같이 있고 싶다고 조그맣게 말하던 그 모습을 떠올린다. 언젠가 억수 같이 비가 쏟아지던 여름 오후에 지하철역으로 같이 비를 피했다가 지하철역 안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따뜻한 라면을 같이 사먹고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바깥으로 나왔을 때, 어느새 그친 비에 개인 날씨의 하얀 구름 사이 다시 드는 햇볕과 물에 젖은 밝은 거리의 물기가 햇살을 반사하며 반짝거리는 것과 파란 하늘 사이로 청량한 바람이 가볍게 한 줄기 부는 것을 보면서, 같이 보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던 그날을 떠올린다.
   
    그렇게 수술한 날 정신을 잃고, 나는. 그리고 나서 더 이상 아무 것도 없을 수도 있었는데, 나는. 나는 그게 아니라, 깨어났다. 수술을 이겨 내고 나는 깨어난 것이다. 정신을 잃고, 그리고 나서 더이상 없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잃은 뒤에 깨어나서 다시 생각하고 느끼는 일을 한 것이다. 나는 수술 때 죽지 않은 것이다!
   
    처음으로 내가 느낀 것은 머리가 엄청나게 아프다는 것이었다. 진짜 무지막지하게 마구잡이로 끝도 없이 아팠다. 죽도록 아팠다. 죽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하다가 깨어나서 느낀 것치고 비유가 이상하긴 하다만, 와아. 정말 그때는 머리가 죽도록 아팠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다는 표현이 있는데, 나는 실제로 머리를 깨 부순 상황이었기 때문에, 머리가 깨어진 아픔 그 자체 였다. 글쎄. 나는 아직까지도 어지간한 두통에는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다"라는 표현은 쓰지 않고, 가끔 책이나 인터넷의 글에서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다"라는 글을 보면, 슬며시 비웃으면서 "어딜, 머리가 한 번 깨어져 보면 거품처럼 깨어질 직유법"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고통의 강도로만 따지면 도무지 다시 돌이키기 싫을 만한 그때 그 두통을 이렇게 잘 기억하는 것은 머리가 엄청나게 말도 안될 정도로 아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아픔을 느끼고 있다는 자체가 그때는 기쁘고 좋았기 때문이다. 수술을 하고 나면 변태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게 아니라 아프다는 것 조차도 어쨌거나 계속 느낌과 고통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살아 있는 상태"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증명이었으므로,  그만큼 즐거웠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고맙다, 의료진!" 나는 새 몸을 찾아서 새롭게 깨어나는 데 성공한 것이었고, 그 후로 줄기차게 쏟아진 회복치료, 성장치료와, 수없이 이어진 적응평가, 회복평가를 받으면서 드디어 점차 다시 멀쩡한 한 사람으로, 건강한 몸으로 차근차근 돌아왔다. 나는 죽음의 문턱, 지옥에서 다시 돌아온 것이다.
   
    20개월. 따지고 보면 별로 긴 시간도 아니었다. 그러나 길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막 입대한 신병이 외로운 피곤함으로 막사에 누워서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는 저녁에 하루하루 꼽아 보는 시간처럼 지긋지긋하게 천천히 지나간 시간이었다. 금새 지나간다고 하는 의사와 기술진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얄미워서, 악마의 꼬리 길이처럼 긴듯 짧은 듯 하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드디어 다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 긴긴 회복기간과 치료기간의 마지막 단계로, 시험 삼아 회복 기관 밖으로 외출해서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과 만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나는, 뇌이식법 적응기간의 마지막 단계, "면접 반응 심사" 과정으로, 드디어 오늘 마침내 그녀를 만나기 위해 시청 앞 호텔로 나서게 된 것이었다.
   
   
    4.
    수술에서 깨어나서 20개월 동안 나는 회복시설 안에서 살았다. 그 회복시설의 분위기라는 것은 분명히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있었지만 그만큼 구연동화 선생의 간드러지는 목소리 같기도 했다. 평소에 게을러터진 월급 도둑 공무원일 뿐이었던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장학사들 앞에서 수업을 할 때는 요란한 알록달록한 발표자료를 웃기지도 않게 이리저리 늘어 놓고 호사스러운 웃음과 함께 "수업목표", "학습내용" 따위를 짚어가는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이 이 회복시설에 서려 있었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회복시설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시청으로 가게 되었다. 간호사를 따라 출입증을 받고, 서류에 서명을 한두 가지 하고, 오늘은 허벅지에서 끝나는 스타킹을 신고 있는 의사와 함께 회복시설 정문까지 나섰다. 자동문으로 되어 있는 중앙 정문은 예전에도 드나들려면 얼마든지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돌아다니면 충격이라든가 위험요소가 있다고 해서 나는 그 동안 이 문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그 난리를 치고 지긋지긋한 시간 동안 여기에서 버티면서 다시 찾은 건강한 몸인데 혹시나 삐끗해서 다시 병석에 누워서 골골하는 처지가 되기는 싫었다. 그래서 나는 의사들이 하라는 것들은 다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로 아무것도 안했다.
   
    그리고 문득 문득 그녀의 그 마지막 모습이 자꾸만 생각 났다. 눈물을 흘리면서 꼭 건강해 져서 다시 만나자고 말하고는, 다시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두려워하는 낯을 애써 감추면서 내 손을 꼭 잡던 그녀. 그리고 별것 아니라는 듯이 다시 건강해져서 돌아올거라고 대담하게 돌아서서 멀어지던 그 얼굴을 나는 몇 번이고 떠올렸다. 항상 같이 했고, 언제나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고, 매 끼니 밥을 먹고 매일 저녁 자는 자리에서 꾼 꿈을 같이 이야기했던 그녀였다. 그렇게 언제나 같이 했던 그녀였기에, 수술 이후 갑자기 그녀를 보지 못하게 되니 정말 이상했다. 각오는 하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또 달랐다. 꼭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쉽게 다시 만나고 내일 점심 약속을 간단히 해서 곧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아직까지 어떻게 새 몸에 적응해서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처지였고, 그녀는 머나먼 나라의 잊혀진 전설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처럼, 분명히 어딘가 있겠지만 만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그녀를 보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나는 꼭 다시 그녀를 보겠노라고 결심했고, 반드시 여기에서 건강한 몸으로 다시 걸어나가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나는 목 뒤에 척수에 별별 전자 장비를 달았다 떼어냈다 하는 짓거리들을 아무 불만 없이 감내했고, 커피를 마시지 말라는 것에서부터 한 발로 서는 것이 뇌가 몸에 적응하는 데 좋다는 이야기까지 잘 회복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건 시키는 대로 다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이었고, 곧 그녀를 만나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고, 지하철을 타고, 계단을 오르고, 호텔 회전문을 통과하고, 내 자리를 정해 앉아서 점원에게 차를 한 잔 주문한 채 기다릴 것이다.
   
    마침내 회복 시설 중앙 정문이 열렸고, 나는 그 문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회복 시설 밖으로 나서서 바깥 세상을 보는 그 순간의 느낌은 어떨 것인가. 그것도 지내는 동안 많이 상상하던 것이었다. 서서히 문이 열리면서 바깥 세상의 자유로운 햇살이 축복처럼 내 눈 위로 가득 쏟아지는 화려한 장면을 상상할만도 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으로 나를 보내던 그녀처럼, 마지막 순간은 단호하게, 아무것도 아닌 듯 잘 해낼 수 있다는 듯이 성큼성큼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걸음걸이는 언제나보다 자연스러웠고, 약간 현기증이 생기는 듯 하기도 했지만 머리도 개운한 편이었다. "잘 하고 오라"는 의사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고, 정장을 차려 입고 걸음을 내 딛는 나의 구두 발자국 소리와 옷자락이 사각거리는 소리들이 느껴졌다.
   
    그렇게 거리로 나서자, 콧 속으로 세상의 온갖 냄새들이 온통 몰아 닥쳤다. 완전히 새로운 몸을 얻어 시설 안에서만 갇혀 있다 보니, 내 코로 도시의 냄새를 받아들이는 이 일이 이렇게 풍부한 진한 감각일 줄은 그때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침에 조금 내린 비 때문에 땅이 젖은 그 촉촉한 감촉과 함께 거리를 따라 심어 놓은 가로수의 나무 냄새도 있었고, 자동차가 내뿜는 냄새와 길가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향수 냄새, 화장품 냄새, 음식 냄새, 땀냄새도 어지럽게 섞여 있었다. 희미하게 아직도 내 몸에 베어 있는 회복시설의 방향제 냄새도 있었다. 곧이어 소리가 온통 귀를 가득 채웠다. 자동차들은 차 크기 마다 엔진의 형태마다 저마다 서로 다른 박자와 높이로 소리를 내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가 멀어지곤 했다. 거리를 지나는 그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발자국 소리를 냈고, 가끔 재잘거리면서 전화기에 대고 말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시위대들이 더 이상 이식용 몸을 만들어내지 말아야 한다고 외치는 소리들 까지도 하나하나 들을 수 있었다.
   
    도시의 거리가 내뿜는 이 넉넉하고 푸짐한 감각의 성찬은 한참 넋을 잃고 마음껏 누려보고 싶을 만큼 신기했다. 내 눈에  끝없이 많은 물체들이 보이고 있었고, 갖가지 사람들의 소리와 온갖 사물들의 냄새는 끝없이 모양을 바꾸어가며 계속 밀려들었다. 나는 어떤 냄새가 어디에서 나고 있는지 찾아 보았고, 어떤 소리를 내는 물체는 어떻게 생겼는지 보았다. 그러는 한편으로 나는 이런 것들이 모두 놀랍고 아름답지만 사소한 감각보다는 너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지하철을 타고 그녀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 다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알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호텔까지 가는 것도 순조로웠다. 나는 수술 부작용으로 지하철에 대한 기억은 잃은 상태였다. 지하철 노선은 커녕 서울 지하철을 어떤 식으로 이용해야 하는지 조차 기억해 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하철 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 리는 없었다. 회복 시설에서 신문이며 책, TV로 보고 금새 다시 친숙해질 수 있었다. 물론 막상 지하철을 타자니 승차권을 어떻게 사서 어떤 식으로 문을 통과해야 하는지 약간 알 수 없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살아 있는 또다른 사람에게 말로 물어 볼 수 있었고, 그러면 그 사람이 말해준 정보를 나는 다시 익힐 수 있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그 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옷차림들과 저마다 다른 행색의 수많은 얼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나는 수천, 수만개의 초상화들이 펼쳐져 있는 거대한 미술관을 떠올렸다. 한동안 화가들은 실제와 똑같은 모양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살아 있는 몸의 눈으로 계속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느 그림 보다 생생한 영상을 계속해서 지켜 볼 수 있는 화랑과 같았다.
   
    호텔에 도착해서 그녀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은 좀 더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가 올 때 까지 시간은 그만큼 더 초조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나는 아무래도 새로운 몸을 얻었기 때문에 얼굴과 몸은 달라진 구석이 꽤 있었고, 그것을 그녀가 어떻게 생각할지, 혹은 목 뒤에 달려 있는 기계 장치를 혹 무서워하거나 징그럽게 여기지는 않을지 하는 것도 좀 궁금하기도 했다.
   
    당장 처음 만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뭐라고 첫 마디를 건네야 할지 하는 것도 고민거리 였다. 와락 껴안으면서 보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역시 그저 평범하게 어제 만난 그녀를 다시 또 만나는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볍게 웃으면서 오느라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좋을지. 이런저런 고민은 계속해서 머릿속을 들락거렸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지. 아직까지도 나를 예전처럼 그대로 좋아하고 있는지. 그것도 정말로 걱정이었다. 20개월. 새로운 몸을 얻고 엄청난 수술비를 날린 끝에 척수에 기계장치를 박고 나타난 낯선 구석도 많은 사람이 나였다. 애초에 나는 백마 탄 왕자도 아니고 춘향이를 구하러 마패를 꺼내 드는 몽룡이도 아니었다. 그녀가 한 20개월 혼자 지내는 동안 내가 별볼일 없는 세상의 많은 남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다. 결혼이야 돈 내고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해서 사랑할 사람을 찾아내면 그녀는 얼마든지 더 번듯한 배우자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게 아니라도 그녀는 소소하게 같이 세상을 사는 재미가 더 잘 맞는 녀석이나 여자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놀라운 놈을 어딘가에서 만났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고민은 하나 둘 떠오르면서 점차 정신을 혼란하게 하였고, 홍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앉아 있는 시간 동안 그런 생각들은 계속 더 빠른 속도로 머릿속에 가득 찼다. 시간은 더 천천히 흘러 갔다. 나는 하나하나 실내 여기저기에 앉은 사람들을 살펴 보기도 했고, 차분히 메뉴의 글자를 또박또박 읽어 보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은 답답하게만 꾸물거려서, 20개월만에 만나는 그녀를 어떻게 대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보내야 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그녀가 나타나고, 금새 알아보지 못하면 어떻게 할 지, 머릿속은 더 복잡해져만 갔다. 목덜미 뒤에 달린 장치로 한 번 어떻게 뇌가 싸악 정리되는 전압을 걸어 버릴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다 해볼 정도 였다.
   
    어쩌나 어쩌나 하고 있는데, 멍하니 보고 있던 내 눈앞에, 바로 그녀가 걸어 나왔다.
   
    "어!"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 그렇게 소리를 냈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똑같지는 않았다. 내가 꿈속에서 매일 만났던 그 모습과는 좀 달랐다. 하지만, 그녀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엉뚱하게도 처음 떠오른 생각은 좀 괴상한 것이었다. 오랫만에 연인을 만난 감격이 아니었고, 이제야 정말로 다시 건강해진 것 같다는 뭉클함도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맨먼저 그녀의 얼굴이 생각보다 작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내가 그녀와 마주보는 그 얼굴 모습 하나하나를 그 동안 자꾸만 몇백번이고 몇천번이고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다보니까, 항상 시야에 가득 찰 정도로 그녀의 얼굴 모습을 상상하는 때가 많았다. 그러자니, 자연히 괜히 그녀의 얼굴을 크게 생각했던 것이다. 항상 눈앞에 가득 그녀의 얼굴이 있는 것처럼만 생각하다가 정말로 그녀의 전신을 보게 되자, 그 몸에서 차지하는 얼굴 크기는 그 과장된 내 상상보다는 좀 작게 느껴진 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짧게 요약해서 말하자면,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서 그냥 어리벙벙 했다는 것이다. 그 많은 고민거리 중에 하나 제대로 결론을 내고 결심을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녀가 나타났다. 나는 괜히 한 번 자리에서 일어 섰다가, 이상한 웃는 표정 비슷한 것을 얼굴에 한 번 나타냈다. 그리고 정신 나간 놈 같은 이상한 손 동작으로 인사를 하는 듯한 모양으로 움직였다. 정신 나간 놈이라. 뇌를 꺼내서 빼낸 사람이니 어찌 보면 정신이 나가기는 아주 확실히 나간 놈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정말, 진짜. 진짜 오랫만이다."
   
    "정말" 까지 말했을 때, 나는 내 목소리가 이렇게 떨리나 싶어서 가슴이 덜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렇게 떨어. 바보 같아 보이잖아. 그리고 나니까, "진짜 오랫만이다"를 말할 때는 목소리가 더 심하게 떨렸다.
   
    하지만, 한 마디 그렇게 말을 하고 나니까, 좀 진정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붕 뜬 기분이 되긴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다시 내 얼굴을 한 번 들여다 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잘 지냈어?"
    "응. 골을 뽀개버렸더는 것만 빼면은. 뭐. 평화로운 데서 잘 지냈지. 넌?"
   
    작년에 수술하고 깨어나서 한 참 머리 아플 때, 그녀를 다시 만나면 써먹어야할 웃긴 대사라고 생각해 낸 것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웃고는 - 그 웃는 눈에는 분명 촉촉한 눈물이 보였다. - 답했다.
   
    "나도 잘 지냈어."
    "다니던 회사 계속 다니고 있고?"
    "응."
    "부모님도 다 잘 계시고?"
    "응."
    "너도 건강하지?"
    "너하고 비교하겠니."
   
    그때 느끼기에는 차츰 우리는 예전에 같이 이야기하고, 말하던 습관대로 다시 찾아가는 듯했다. 조금씩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내는 때도 있었지만 대화는 잘 이어졌다. 그녀는 그동안 그녀가 직장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것저것 하나씩 이야기했다.  나는 차분하게 듣고 있다가 한마디씩 중간에 끼어들어서,
   
    "우리 팀 팀장님이 그 쪽으로는 또 좀 빽이 있으시더라고."
    "그 팀장님은 남자분이신대도 빽 같은데 또 관심이 많네. 크리스마스 때 악어가죽 빽 하나 사다 드려."
   
    따위의 말로 헛웃음을 한 번 끌어내 보려고 하다가 실패하곤 했다.
   
    점차 그녀가 말 할 거리가 없어질 때 즈음 해서는, 내가 나서기 시작했다. 그때는 워낙 마음이 떨려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내가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알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오랫만에 만난 그녀가 나와 같이 있는 시간은 즐겁고, 또 길게 대화가 끝없이 이어지는 날이어야 할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억지로 화제를 엮어가며 계속 대화를 빠르게 이어가려고 했다. 그래서 차츰 나는 이것저것 그녀가 흥미를 가질만해 하는 것들을 떠들기 시작했다.
   
    "몸의 다른 부분은 보존하고 되살리고 다시 적응시키고 이런 게 정말 어렵거든. 그런데, 희한하게 뇌만 보존하고 다시 되살려서 적응시키는 기술은 발달해 있다. 이상하지? 왜 백혈병 걸린 애들. 불쌍한 애들 많잖아. 그런데 그런 애들 피를 정상적으로 보존하고 망가진 골수를 다시 되살리고 그런 건 방법이 없거든. 그런데 뇌는 된다고. 다 죽어가던 뇌도 그대로 보존할 수도 있고, 뇌세포가 많이 망가지고 모자라던 게 많아도 다시 정비해서 되살릴 수 있어. 신기하지. 이상하지?"
    "그러네."
    "그게 왜 그러냐면. 세상이란 것이 대부분 다 노인들이 돈이 많고, 젊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돈이 별로 없잖아. 그러니까 의학 연구를 해도 노인들 대상으로 하는 게 돈이 되고, 실제로 부자 노인들도 노인들을 위한 연구에다가 기부도 많이 한단 말이야. 그래서 그런쪽으로 의학이 훨씬 빨리 발전한다고.
    옛날에 부자 노인들이 제일 겁내는게 알츠하이머였거든. 뇌세포가 막 망가지는 알츠하이머 말이야. 그래서 갑부들 치고 알츠하이머 연구하는 기금, 재단에 돈 안퍼부은 사람이 없어요. 그러다보니까 그쪽으로만 어마어마하게 기술이 발전해서, 알츠하이머로 망가진 뇌세포 되살리고 보존하고 하는 기술은 기막히게 말도 안될 정도로 정교해졌다고. 그러다보니까 그 기술로 뇌를 떼어내서 새 몸에 옮겨 넣는 뇌이식법도 다 가능해진거지.
    어린애들은 돈도 없고, 어린 아이들 부모도 다 젊은 사람들이니까 돈 많은 사람 많지 않단 말이야. 그래서 아기들 병은 아직도 치료하기 어려운 게 많은데, 노인들 뇌세포 망가지는 건 벌써 다 해결 됐어.
    내가 이거 해보니까 알겠던데, 정말 정말 돈 많아서 최고 기술진으로 뇌이식법 잘 성공시킬 수 있는 사람 있으면, 이 사람들은 진짜 영원히 사는 것도 가능하겠더라. 살다가 큰 병 걸리면 뇌만 빼내서 또 새 몸으로 옮기고, 살다가 큰 병 걸리면 또 뇌만 빼내서 다시 새 몸으로 옮기고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 것 같더라고."
   
    한참 주절주절 두개골 쪼개는 이야기만 떠들다 보니, 재미없고 한심스러워 보이겠다는 생각도 확 들었다. 그렇지만은 새 몸을 얻고 갓난아기나 다를 바 없이 천천히 몸에 적응해서 20개월 동안 격리생활 한 내가 평범한 사람처럼 대인관계를 잘 풀어나간다는 것 자체도 도전이었다. 그렇게 보면, 오늘처럼 그저 "맞선에서 만나서 갑자기 뜬금없이 재미없는 기술적인 일 이야기만 하는 남자" 정도의 수준만 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었다. 그렇게 선보이는 자리에서 따분한 맞선남은 세상에 많다. 그렇다는 것은 "흔한 사람"이라는 것이었고, 그렇다면 어쨌거나 "정상"이라는 것 아닌가. 나는 처음으로 혼자 외부에 나와서 새 몸으로 대화를 하고, 또 사람을 만나고 있다. 그렇다면 어딘가 잘못되어서 갑자기 머리에 통증이 폭발해서 머리통을 붙잡고 데굴데굴 구르게 될 위험도 있었다. 혹은 갑자기 감각과 행동 중추가 이상하게 꼬이면서 문득 내가 물속에 빠졌다고 착각해서 홍차를 마시다 말고 헤엄을 치려고 해도 큰 부작용은 아니라고 할 만한 처지였다. 이 정도만 해도. 선 보이는 자리에 나가서 망한 맞선 본 남자의 수준만 해 내어도 나는 아직까지 크게 망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별 재미도 없을 만한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있는데도, 그녀는 흥미롭게 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 속에는 분명히 내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그 표정에, 그 바라보는 얼굴에, 어디가 어떻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그녀가 예전부터 나에게 주던 그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회복시설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는 "신체 적응용 컴퓨터 게임" 따위에 대해서 내가 떠들고 있는데, 그걸 듣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좋았다. 그녀의 얼굴은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직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분명하다고, 그렇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입원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에 대해 이런저런 아쉬운 것들을 떠올릴 때가 있었다. 아니. 아니. 그렇다고 내가 감히 그녀를 구박했던 것은 전혀 아니다. 내가 그녀를 내팽개치고 더 좋은 짝을 찾아 떠날 계획을 마음속으로 음흉하게 품고 있었다든가 하는 것도 전혀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를 소중하고도 귀한 행운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키가 조금만 더 컸으면. 조금만 더 차분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으면. 누가 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확 눈에 뜨이게 예쁜 사람이라면. 어쩌다 잘못해서 자기 고등학교 때 첫사랑을 떠올리고 혼자 잠깐 괴로워하는 그 짓거리 좀 안했으면.
   
    그런데, 새 몸을 찾아서 겨우 병을 떨쳐 버리고 그녀를 만났을 때, 그런 생각이 얼마나 소용 없는 생각이었는지 나는 알 수 있었다. 20개월만에 다시 건강한 새 심장이 그녀를 보고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지금, 나는 그녀에게 내가 우리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더 자랑스럽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그녀에게 다정하게 말해 줄 걸. 내가 좀 더 멋있어 보이도록 뱃살이라도 좀 뺄 걸. 좀 더 좋은 직장에서 좀 더 돈을 잘 벌어서 가끔은 좋은 남자를 만나 편안하게 사는 귀부인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느끼게 해 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저녁에 귀찮고 피곤해서 좀 일찍 집에 들어가 자고 싶더라도 그래도 뭐 죽는 것도 아닌데 조금 더 기운내서 그녀 집까지 바래다 줘도 되었을 걸. 네가 너만 나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고 서운해 하지 않도록, 나도 너 없으면 못살만큼 너를 좋아하고 있다고 언제나 느낄 수 있도록 해 줄 걸.
   
    압도적인 미인은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귀엽고 호감 갈만한 인상이었고, 그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그 목소리와 여자다운 매력으로 가득한 걸음걸이는 멋졌다. 그러면서도 어디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좋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세상 어떤 일에라도 성실하고 착실한 식견을 갖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 그 찾아보기 어렵다는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이었다.
   
    뭘. 뭘 더 바라나. 이 정도면 백년해로할 짝으로 차고 넘치지 않는가. 가끔 좀 마음에 안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참 이 모습은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될 때도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분명히 얘랑 결혼해서 한 평생 살라고 하면, 조금씩 조금씩 티격태격하면서 평생 부드럽게 잘 살아지지 않겠는가? 그리고나서 그 정다운 시간을 돌이키면서 행복한 회상에 젖을만한 그런 날이 선명하게 보이는 여자 아닌가? 혹시 세상을 같이 살아가다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그녀가 겁을 먹고 또 다시 나에게, "나 어떻게 하지? 큰일 나는거 아냐?"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쳐다보게 되면, 내가 그녀를 위안해 주면서 다시 힘을 내서 같이 잘 헤쳐나가 보자고 말 할 때. 그럴 때면, 고달픈 세상의 어떤 팍팍함이라도 두 사람이 같이 힘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콩깍지가 눈에 한 번 씌이면 죽었다 깨어나도 사람을 냉정하게 보지 못한 다는데. 나는 한 번 죽었다 깨어나고 나서야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고, 내가 지금 붙잡아야 하는 기회인지 알게 되었다. 무슨 긴 말이 더 필요한가.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이 세상을 몇 번 다시 고쳐 살고, 지옥의 문을 부수고 다니는 모험을 겪든, 영혼을 철수세미로 문질러 세척하는 듯한 그 끔찍한 수술을 몇 번 더 하든지 간에.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의 모습과 애틋한 내 마음 속 사랑은 고달픈 메스와 가위의 날붙이에 모양이 이지러지고 색이 바래졌을지언정, 분명히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감상에 젖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혼자 한참 떠들다보니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내 눈앞에 온통 가득 차 있는 그녀의 모습과, 내 귀에 계속해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와, 내 몸을 감싸고 퍼져 나오는 그녀의 옷과 피부와 숨결의 냄새를 계속해서 느끼다보니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알기란 쉽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한참 말하던 것을 멈추고, 잠깐 침묵하게 되는 순간이 왔고, 그제서야 나는 두 시간째 그녀와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원래 한 시간 동안 그녀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어느새 그 시간이 훌쩍 지나가 넘어 버렸던 것이다.
   
    어색한 것인지, 아니면 수줍어서인지, 혹은 또다른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약간은 침통한 듯 보이기도 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조금은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말 수는 적었고, 그녀가 말을 하기 보다는 의미 없이 떠드는 내 말을 들으며 계속 고개를 끄덕이는 일만 많았다. 지금은 고개를 숙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약간은 어두운 얼굴이다. 그렇지만, 그 태도에서, 목소리에서 나는 아직 그녀와 나 사이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 끈끈한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은 이미 많이 지났다. 곧 다시 헤어져야 할 텐데, 그 전에 그녀를 안심시키고 나도 확실히 해두자. 나 너 많이 사랑한다고. 우리 예전처럼 매일 만나서 오래오래 사이 좋게 재미나게 지내자고. 그렇게 이야기 하자. 지금 두 손을 잡고, 저 그리웠던 눈을 보면서 똑똑히 이야기 하자. 나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온 몸에 또렷하게 전해졌다. 이제 나는 이 긴장이 살아 있는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귀중하고 좋은 멋진 느낌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그녀에게 말한다.
   
    "응... 저..."
   
    그녀가 고개를 들어 다시 나를 쳐다 보았다.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궁금해 한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내 전화가 울렸다. 회복 시설에서 들려준 전화였다.
   
    전화를 받았다. 흘러나오는 것은, 컴퓨터로 합성된 아나운서의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뇌이식 재단 운영공사입니다.
   
    면접 반응 심사를 치르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이제 모든 평가가 완료되었으므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설명드립니다만, 뇌이식법은 뇌이식법의 기본 원리에 따라 35%의 뇌만 이식에 성공해도 건강한 사람으로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몸은 아직 미성숙한 신체이므로 그 두개골의 크기가 작고 또한 적응을 위해서는 새로운 몸의 조직을 일부 살려 두어야 하기 때문에 원래의 뇌를 그대로 새로운 몸에 옮기기에는 너무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의 뇌 중에 일부만을 새로운 몸에 옮길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뇌이식법을 시행할 때에는 보통 원래의 뇌를 두 조각에서 세 조각 정도로 나누어 두 개 이상의 몸에 따로 따로 이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하나라도 성공적으로 이식해서 성공하면 새로운 몸에서 뇌가 적응해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의 몸에서 뇌이식 시술에 실수가 생긴다고 해도 전체적인 성공률은 높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경우에는 원래의 뇌를 상층부와 하층부 둘로 나누어 두 개의 새로운 몸에 이식했습니다. 따라서 원래의 뇌로 두 명의 몸을 깨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상층부의 뇌와 하층부의 뇌, 둘 다 이식수술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회복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하층부에서 회복하신 분이며, 상층부에서 회복하신 분은 회복시설 가426 구역에서 현재 생활 중이십니다.
   
    두 분 모두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는데 성공하셨기 때문에, 뇌이식법 11조에 따라, 상층부와 하층부 중에 어느 분이 원래의 뇌 주인인지 판정하는 검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판정 검사에서 우세 판정을 받으신 분이, 원래 환자의 이름, 기록, 권리를 모두 승계 받게 되며, 공식적으로 원래 뇌의 주인으로서 삶을 살아 가실 수 있게 됩니다.
   
    현재 면접 반응 심사 결과가 전송되지 않았으므로, 총점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의 타 검사 결과에서 이미 압도적인 결과가 도출되어 나왔으므로 판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상층부 뇌에서 회복하신 분에 비해, 직무 기억 검사가 35대 75로 열세 합니다. 직무 기억 분야에서 당신은 원래의 뇌를 온전하게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상층부 뇌에서 회복하신 분에 비해, 생활 적응 검사가 18대 82로 열세 합니다. 생활 적응 분야에서 당신은 원래의 뇌를 온전하게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상층부 뇌에서 회복하신 분에 비해, 일반 기억 검사가 40대 60으로 열세 합니다. 일반 기억 분야에서 당신은 원래의 뇌를 온전하게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상층부 뇌에서 회복하신 분에 비해, 대인 관계 능력이 11대 89로 열세 합니다. 대인 관계 분야에서 당신은 원래의 뇌를 온전하게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상층부 뇌에서 회복하신 분에 비해, 배우자 인식 능력이 53대 47로 우세 합니다. 배우자 인식 분야에서 당신은 원래의 뇌를 온전하게 계승하였습니다.
   
    당신은 상층부 뇌에서 회복하신 분에 비해, 신체 적응 반응이 39대 61로 열세 합니다. 신체 적응 분야에서 당신은 원래의 뇌를 온전하게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배우자 인식 능력에서 근소하게 우세할 뿐, 모든 분야에서 상층부 뇌에서 회복하신 분에 비해 원래의 뇌를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원래 뇌 주인은 법적, 과학적으로, 당신이 아닌 상층부 뇌에서 회복하신 분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쉽게도 당신은 새로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발급 받고 가상 생년월일을 배정 받아 새로운 사람으로 생활하셔야 합니다.
   
    당신이 갖고 있는 원래의 뇌 주인에 대한 기억과 감정은 법적, 과학적으로 모두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의식들은 모두 출생 과정에서 겪은 사고로 인해 잘못 전달 된 것으로 판정 됩니다. 회복 시설에서 그동안 교육 받고 훈련 받으신 대로, 이제부터 당신은 당신이 예전의 뇌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버리시고, 새로운 다른 사람임을 자각하시기 바랍니다.
   
    뇌이식 시술 계약에 따라, 당신은 원래 뇌의 주인이 기탁한 재산의 30%를 정착금으로 배분 받게 됩니다. 또한 당신은 뇌이식 재단에서 교육과 취업에 대하여 향후 5년간 후원을 받게 됩니다."
   
    전화기에서는 뭐라고 계속해서 장황한 설명이 계속되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쳐다 보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5.
    뇌를 반으로 쪼개서 두 명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중에 한 명이 "나"이다. 검사결과, 둘 중에 원래 뇌에 더 가까운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한 쪽이었다. 그러므로 상층부의 뇌로 만든 그 사람이 원래의 사람이고, 나는 뇌수술 과정에서 우연히 새롭게 생긴 다른 한 사람일 뿐인 것으로 판정된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마음 한 켠에는 내가 바로 원래 그 사람이라는 강한 마음이 울컥울컥 치솟는다.
   
    회복 기간 동안 나는 이런 결과를 받게 되어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계속 교육 받았다. 내가 예전에 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20개월 전에 나는 새로 생겨난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다시 결심하는 법을 훈련 받았다. 서로 다른 두 사람 간에는 서로 생각이 다르고 느끼는 것이 다르고,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과 다른 사람임을 스스로 안다. 상층부의 그 자와 하층부의 내가 그런 것처럼,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둘 다 바로 예전에는 원래 그 사람이었다. 20개월 전 수술 받기 전의 그 때 내 삶을 나는 선명하게 알고 있다. 예전 그 사람이 나라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살아온 그 내가 지금 나라는 것은 선명하게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상층부의 그 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자는 내 뇌의 일부다. 뇌의 상층부를 이식해서 회복시킨 사람이다. 말하자면, 그 자는 내 뇌의 잘려나간 한 부분일 뿐이다. 마치 내가 손톱을 잘라서 버린 것처럼. 그 자는 내 잘려나간 손톱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 손톱이 우연히 놀라운 기술에 의해 걷고 말하고 생각하게 된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 자는 정반대로 자신이 원래의 나를 이어간 것이고, 나야 말로 잘려나간 손톱 같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검사 결과는 그 자의 편인 것이다. 나는 원래의 뇌에서 잘려나가 생긴 좀 기능이 떨어지는 뇌의 아래쪽 반토막일 뿐인 것이다.
   
    나는 뇌가 반으로 쪼개어져서 한 사람이 두 사람으로 나뉘어지는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적도 있어서, 꼭 상층부의 그 자와 나 사이에 텔레파시 같은 의식의 연결이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도 했다. 원래 한 사람, 하나의 의식으로 되어 있던 것이 나뉘어졌는데, 지금은 다른 쪽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뭘 보고 듣는지도 모른다니. 내가 한 번 마취에 빠졌다가 깨어난 것일 뿐인데, 깨어난 후의 나보다 더 나다운 진짜 원래 나는 따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회복 시설에 있던 때에 이런 것들 때문에 혼란을 겪지 않도록 계속 교육 받았다.  인생과 영혼이 무엇인지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 중에는 마취를 하지 않고 똑똑히 깨어 있는 상태에서 뇌를 두 개로 나누어 두 명의 분리된 사람으로 변해가는 상태를 느끼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미친 짓인지 똑똑히 배웠다.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뇌를 반으로 자르는 그 순간, 한 덩어리 뇌가 나타내던 과거의 그 사람은 죽은 것입니다. 뇌가 반토막으로 잘렸는데, 아무리 세포들이 살아 있다고는 하지만, 안 죽었다고 하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지금의 당신은 그 과거의 사람의 뇌를 재료로 만들어낸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아기가 걷고 말하는 것을 배우고 학교를 다녀서 사람이 되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니까, 당신은 이미 많은 지식과 기억이 들어 있는 뇌를 알약처럼 삼켜서 금새 많은 경험을 갖고 있게 된 것 뿐입니다. 그렇게 당신이 새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하다고 매일 몇 번씩 회복 시설에서 반복 학습을 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렇게 수술전의 나와 지금의 나가 뻔히 똑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는데도 그것을 부정하고 새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받아 들인다는 것은 굉장한 정신적 도약일 수도 있었다. 무슨 삶과 죽음의 경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득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마음을 한 사람의 마음처럼 여길 수 있는 숭고한 지혜의 단초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런저런 많은 생각보다 그저 당황할 뿐이었다. 오늘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만 해도, 나는 그녀가 나를 다시 예전처럼 사랑하게 될 지 조마조마하게 고민했고, 내가 뭐라고 말해야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그렇지만 이미 그녀와 뭘 어떻게 하는가와 관계없이 나는 워낙에 다른 부분의 점수가 낮아서 이미 원래의 뇌가 아닌 것으로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나는 그녀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 아닌 것으로 판정되어 있었고, 나에게도 역시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추억은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미 뻔히 그런 사실을 알고 이 자리에 나왔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지루하지 않게 해준답시고, 긴긴 이야기를 하고, 그녀에게 뭐라고 말할까 고민하면서 초조하게 용기를 내던 그 순간에, 이미 그녀는 내가 그녀가 사랑한 그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다. 혼자 그녀의 운명적인 사랑이 나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멍청하게. 멍청하게. 그 자는 따로 있는데. 어쩌면, 그 자라면 나보다 훨씬 더 나았을 지도 모른다. 그 자라면, 오늘 나처럼 지루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멍청하게 의료 기술과 기부에 관한 이야기만 주절주절 늘어 놓아서 긴장한 마음으로 나를 선보이는 자리를 망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훨씬 상태가 좋았다는 상층부 뇌에서 회복한 그 자라면, 그녀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었던 것으로 판정을 받은 그 자라면, 훨씬 더 멋있게, 침착하게, 여유롭게 더 즐거운 대화를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가 완전히 바보짓을 했다는 것을 뻔히 깨닫고 나서도, 막상 그 때 그 자리에서 나는 놀라지 않은 "척"을 했다. 그녀에게 나약해 보이기 싫었는지 뭔지 당황하지 않은 것처럼 태연한 척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억지로 미소를 짓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자니 한 마디 한 마디 입에서 나가는 단어 하나하나, 나의 손동작 고개짓 하나하나까지 어찌나 그렇게 부자연스러운지. 어찌나 부끄러워서 숨고 싶은 못난 사람 같기만 한지.
   
    고작 5분 전에 그녀의 눈빛이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듯했다는 신뢰를 느꼈다 어쨌다 하고 생각했던 것도, 순전한 나의 헛착각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몸을 웅크려서 굴러가는 바퀴가 되어서 산 기슭 저 아래 편으로 데굴데굴 도망치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졌다. 아니 그냥 착각이 아니라, 이런저런 기억과 지식은 다 날려 버린 뇌의 열세한 한 덩어리에, 그녀에 대한 미약한 생각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이 지난 20개월 동안 내 머릿속을 이리저리 휘저어서 생각을 이상하게 꼬아 놓은 결과 였을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나는 그런 그녀의 평범하게 쓸쓸한 눈빛 조차도 내 가장 소중한 사랑의 증거라고 보는 그런 마음을 갖게 되어 버린 것이다. 어쩌면 옛 기억의 많은 덩어리를 잃고 약한 몸과 깜깜한 미래를 앞에 둔 내가 그나마 확실한 그녀의 기억에 집착한 것일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직업을 갖고 똑바로 가정을 꾸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초라한 내가, 그나마 아름답고 멋지게 남아 있는 것이 그녀의 환영이었으니까, 그렇게 사랑하고 있다고, 그렇게 그리워하고 있다고 괜히 혼자 매달린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 그날 나는 그녀에게 아무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나는 판정 결과도 듣고, 그녀도 떠나 보낸 후였지만, 한참 동안이나 우두커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았는지 어땠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냥 한숨이나 몇 번 푹푹 쉬면서 계속 앉아만 있었던 것 같다. 무슨 다른 행동을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일어나서 회복시설로 돌아가버리면 모든 것이 바스라져서 없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가 나와 함께 이야기했고 아직 내가 판정 결과도 듣기 전에 있었던 이 곳에 아직도 무엇인가 남아 있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나는 호텔에서 나와서도 시청에서 한참을 서서 분수대 주변에서 노는 어린이며 여학생들을 오랫동안 쳐다 보았다. 밤이 다 되어서야 나는 겨우 돌아오게 되었다.
   
    그 후, 나는 곧 회복시설을 나와서 새 이름을 등록하고, 새 주민등록번호를 받고, 새 집을 골라서 살게 되었다. 나는 예전부터 - 이제 정확하게 말하자면, 뇌 주인의 전해진 기억의 옛부분에서부터 -  생각했던 대로, 다시 대학원을 다녀 보기로 하고 "수상스포츠공학과"라는 곳에 진학했다. 내 몸은 아직은 제트 스키나 서핑을 하기에는 심하게 무리였다. 하지만, 내 재능은 서핑 보드의 설계나 휴양시설의 배경 음악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연구를 하는 데는 분명히 쓸모가 많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음악과 서핑의 관계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게 되었고, 그야말로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열심히 살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간혹 모차르트 음악이 좌뇌를 좋게 한다느니 바그너 음악은 우뇌를 좋게 한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 "어디 한 번 쪼개서 실험해 보지 그러냐"하고 농담 아닌 농담으로 비웃어 보이곤 한다.
   
    부모형제라고 생각하던 사람들과도 최대한 떨어져서 살게 되었으니, 가장 아쉬운 것은 아는 사람, 친구가 없어서 외롭고 심심하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멀리 타국으로 유학 온 유학생들이나 해외 파견 근무를 나온 직원들이 느끼는 마음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내 경우에는 저승에서부터 유학 왔다고 할 수 있었으므로 정도가 극심한 정도이기는 했다. 하지만, 여느 유학생과 주재원들처럼 나는 새로 친구들을 사귀어 나가면서 적당히 관계를 만들어 나가면서 안착해 나갈 수 있었다. 특히 그 스타킹 의사는 자기 경험 중에서 분할 된 두 개의 뇌가 둘 다 이렇게 잘 회복하고 적응한 사례가 전무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나에게 관심을 보여 주었고, 요즘까지도 꽤 친한 친구로 자주 만나고 있다.
   
    그녀와는 그리고 나서 얼마 전에 한 번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 금요일이었는데, 저녁을 안먹은 나는 지하철 역 안에 있는 작은 라면 가게에서 혼자 앉아서 가게 주인과 잡담을 하면서  따뜻한 라면을 간단하게 사 먹었다. 그리고나서 집에 들어가자니, 금요일 저녁인데 만날 사람도, 반겨줄 사람도 아무도 없는 것이 좀 아쉬워서 영화나 한 편 보고 들어갈까 생각했다. 요즘 "펜타곤"이라는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그걸 한 번 보나 어쩌나 하고 한 몇 분 라면 가게에서 고민했다. 결국 그러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회복 시설에 있던 동안에 새로 생긴 신한강 인도교를 걸어 건너가서는 극장에 가기로 하였다.
   
    하루 종일 비가 오고 오후가 되어서야 개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길은 젖어 있었다. 아직 초가을이었지만, 비가 한 번 지나간 저녁이라서 바람은 서늘하였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요즘 논문을 쓰고 있는 곡들을 듣느라 이리저리 조정을 하면서 인도교를 걸었다. 이쪽편의 빌딩들 사이에 뻗은 도로가 하늘로 다리가 되어 뻗고, 저녁 하늘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다시 저 편의 빌딩들 사이로 사라지고 있었다. 인도교를 걷는 사람들은 저마다, 걸어보면 무척 높게 느껴지는지, 혹은 그래서 공기가 다르게 느껴지는지, 한번씩 멀리 강물과 도시 정경을 바라다 보곤 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다리 저편에서 걸어 오던 그녀와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나는 그녀가 추위를 많이 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역시 그녀는 약간 떨고 있었다. 그녀는 좀 놀라기도 했고 어떻게 나를 대해야 할지 잘 모르기도 해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좀 떨어진 채로 멈춰서서 한 동안 그렇게 말 없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말했다. 그냥 말하기가 뭣해서, 나는 말을 하고 나서 가볍게 웃음을 한 번 지어 보였다. 굳은 표정이었던 그녀는 그제서야 같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원래 그런 목소리였지만, 목소리는 더 낮고 가라앉게 들렸다. 그렇지만 얼굴의 웃음은 무척 보기 좋았다. 다시 한참 서로 말이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녀가 내게 말을 붙였다.
   
    "잘, 잘... 지내요?"
   
    그녀는 눈물을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달래는 듯한 말투가 되어 말한다.
   
    "학교 다니는 것도 재밌고. 생각보다 친구들도 생기고. 잘 지내고 있어요. 이제는 머리에 통증이나 현기증도 거의 없고. 알아야 될 거 기억해야 될 것들도 왠만한 것들은 다 익혔고요."
   
    다시 우리는 말이 없다. 머뭇머뭇 하다가 내가 먼저 말한다.
   
    "요즘에 논문 쓰느라 정신 없어요."
    "무슨 논문......?"
    "서핑과 음악의 상호 작용사... 뭐 그런거요."
    "아......"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잘 됐네요."
   
    그녀는 목소리를 좀 잘 추스리지 못했는지, 고개를 잠시 돌려서 얼굴을 감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이내 내가 물었다.
   
    "어디, 약속 있어서 가시나 보네요?"
   
    그녀는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나는 계속 그녀를 다리 위에 붙잡아 둘 수도 없겠다 싶어서 다시 한 번 웃어 보이고는 인사했다.
   
    "그럼, 조심해서 잘 가세요."
   
    그녀는 손을 들어서 인사한다.
   
    "안녕, 안녕..."
   
    그녀와 나는 다시 등을 돌린다. 우리는 서로 반대편으로 걸어 서로 지나친다. 나는 앞을 보고 걷는다. 앞을 보고 걷는다.
   
    다리를 걸으면서 보니, 해가 진 직후의 하늘이 온통 붉게 변하여 막 어두워져가는 세상을 붉은 빛으로 가득 비추고 있었다. 강물 위로 비에 씻긴 하늘이 그 붉은 빛을 담고 있어서, 거대한 까만 융단 같은 강물이 그 잔물결 마다 반짝반짝 온통 빛났다. 한강 주변에 늘어선 빌딩과 가로등들은 이제 막 불을 밝혀서 드문드문 영롱한 불빛들을 비추는데, 초저녁 어둠에 검게 서 있는 건물 너머 사이 사이로 노을이 들어 찼다. 하늘 끝으로 번져 나가며 저물어가는 노을과 강물과 불빛들이 서늘한 젖은 공기 속에서 조용하게 펼쳐지는 그 모습은, 꼭 지금 이 광경이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아닌, 머나먼 은하계 저편의 외딴 행성에서 펼쳐지는 경이인 것만 같았다.
   
    그 풍경을 바라 보면서 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나는 문득 강 이편 기슭 강둑에 그녀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같이 나란히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영원히 오늘 그녀와 함께 이 풍경을 같이 볼 기회를 놓쳐 버렸지만. 이제 몇 백번을 다시 태어나 몇 천년을 산다고 해도 오늘 보낸 그녀와 내 꿈꾸던 것처럼 다시 마주할 날은 찾아 올 수 없겠지만. 나는 느끼고 또 생각한다. 아직 가끔 문제를 일으키는 시력이 정말로 본 것이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고 해도, 어쨌거나, 그녀와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아름다운 저녁의 강풍경을 두고 느긋하게 한 두 시간 같이 보고 있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잊지 않겠다고 했던 그녀의 기억이 아직 머릿속에 그대로 똑똑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 추억이건,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진 옛 흔적이건, 또는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의 사랑이었건, 그것은 꺼져가는 생명 앞에서도 마지막까지 잊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그녀의 기억이기 때문이었다.
   
     - 2009년 가양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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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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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희 09.09.28 13:01 댓글 수정 삭제
    이어질 수 없는 사랑, 그 사랑하는 사람의 연인이 또 다른 자신이라는 것이 너무 슬프네요. 죽음이라는 것, 존재가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 느낄수 있는 것이지만, 내가 둘일 수 있다는 것이 웬지 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을 것 같다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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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09.09.28 20:21 댓글 수정 삭제
    오랫만에 올리는 글이라서 너무 전형적인 SF물 밖에 안되어 진부하지 않은가 싶었는데, 진지한 감상 정말 감사합니다. 더 분발해서 재미난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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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씨 09.09.29 12:54 댓글 수정 삭제
    정말이지 곽재식님의 글을 읽을때마다 환희를 느낌니다. 이런 반전은 미처 생각지 못했네요. 반전도 반전이지만 그 주위에 흩어져 있는 분위기들이 참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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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09.09.29 14:41 댓글 수정 삭제
    반전에만 너무 매달리면 많이 부족해보일법한 느낌이 들어서, 꾸미고 치장하려고 한 구석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좋은 평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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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ckoo 09.09.29 18:57 댓글 수정 삭제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나 그녀와 헤어질 때, 그리고 그녀를 다시 만날 때의 주인공을 그리는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참, 주인공의 검사 결과에서 직무 기억 검사만 35대 75로 다른 검사 결과와 달리 합이 110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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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컹크 09.09.30 10:31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애잔하고 슬퍼서 눈물이 나오네요. 간만의 곽재식님 소설이라 무척 반가워요! 앞으로도 또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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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09.09.30 10:33 댓글 수정 삭제
    tuckoo/ 감사합니다. 숫자들을 좀 그럴듯하게 보이게 한다고 만지다가 직무 기억 검사 수치에서 실수했나 봅니다. 이런 걸 찾아내는 게 또 숨은 재미 아니겠습니까......

    스컹크/ 감사합니다. 스컹크님. 좀 더 자주 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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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10.09 16:43 댓글 수정 삭제
    재밌게 잘봤어요! 근데 .. 월...월급도둑! 아 이거 어디서 너무 자주보던 표현이라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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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09.10.17 13:09 댓글 수정 삭제
    무심코 저도 쓰게 되는 말이었습니다. 재밌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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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잘 읽고가요.>>^^<<

    오랜만에 글이라서 더욱더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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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09.10.21 17:14 댓글 수정 삭제
    카미트리아님, 언제나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또다른 이야기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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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i 09.12.06 23:17 댓글 수정 삭제
    major의 삶을 꿈꿨지만, 결국 minor의 삶을 살게 되어버린 주인공.

    맘이 아프네요.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구.

    그치만, 오래간만에 집필하신 글은 잘 읽었습니다.~^^


    늘 화이팅입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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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6.03 14:07 댓글 수정 삭제
    으악...초속 5cm 같이 씁쓸한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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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0.06.04 09:44 댓글 수정 삭제
    나름대로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주인공이 새 생명을 얻어서 힘차게 잘 살고 있다는데 희망을 걸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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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ernar 10.12.02 13:56 댓글 수정 삭제
    '아빠의 우주여행' 에 실린 것 읽고 그냥 좀 먹먹해져서 댓글달아봅니다. 평소에 곽재식님 글은 참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이번 글도 그렇게 잼나게 읽다가 또 제가 처한 상황 때문에 감정이입이 좀 되고 그랬습니다. 하여튼 재미있게 읽었고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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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0.12.03 13:45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다음 번에는 기분 전환 차원에서라도 좀 밝고 명랑한 이야기로 찾아 모시겠습니다.
  • No Profile
    미람 14.12.20 17:26 댓글

    늦게 아빠의 우주여행에서 보고 찾아왔습니다. 펜타곤은 역시 듀나님의 펜타곤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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