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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xk160 운명

2007.03.30 22:4703.30

시간  1.운명


  영안실에 들렀다가 너는 돌아오고 있다. 서쪽에서부터 하늘이 점차 낮아져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너는 그 쪽으로 걸었다. 오르막길이 굽이돌고 있다. 너는 골목을 돈다. 돌담의 모서리를 따라서. 이제 길을 따라 작달막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돌담집의 대문까지.
  너는 등 뒤에서 불빛을 느낀다. 곧 골목을 돌아 네 뒤쪽에서부터 차가 온다. 너는 한 걸음 옆으로 비키며 계속 걷는다. 차는 너보다 빨리 달린다. 그것은 네 뒤에서 와서 네 앞으로 사라진다.
  헤드라이트에 비친 그림자... 나무들의 그림자... 나무들의 그림자를 너는 본다... 그들은 달려서 차례로 모두 다 대문으로 들어가버린다... 차가 네 앞으로 지나간다. 차는 모퉁이 하나를 더 돌아 사라진다. 그림자들은 조용하다. 언제부터 그렇게 돌담에 붙박혀, 거기에, 너는 그림자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침묵하고 있다.
  너는 표지가 되어버린 나무들을 지나친다. 나무들은 한 방향으로 서 있다. 그 집의 대문을 향해서. 너는 대문을 향해간다. 대문은 역시 나무로 되어 있는데, 갈색 칠이 되어 있고 빗장은 걸려있지 않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명패가 걸려 있다.

*


  너는 몸을 눕히고 있다. 이불이 네 몸 위에 덮여있다. 창 쪽의 탁자 위에 마른 수건이 놓여있다. 네가 허리가 아플 때 돌돌 말아서 허리 밑에 넣고 눕는 수건이다. 너는 옆으로 누워 있다. 양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한쪽 손을 배게 밑에 넣고 있다. 이불과 네 몸 사이의 공기가 답답하고 따스하다. 너는 얼굴만 내놓고 찬 공기를 호흡하고 있다.
  네 방의 창을 열어두었다. 창문은 크다. 창은 미닫이 식으로 되어 있다. 모기장을 통해 빨래 냄새가 들어온다. 빨래는 베란다에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이 걸려있다. 빨래 그림자가 침대까지 늘어진다. 베란다는 부엌과 통해 있다. 부엌으로 통하는 문은 늘 열려 있다. 부엌에서 달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달칵거리는 소리는 마른 수건이 있는 곳에 떨어져서 거기에서 잠든다. 소리들의 숨소리만 들려온다. 이불 위에 늘어진 그림자. 냄새 때문에 이불이 새것처럼 느껴진다.
  너는 일어나서 머리를 긁적거린다. 방은 어스름하다. 부엌에서 베란다를 통해 노란 불빛이 들이치고 있다. 탁자 유리 덮개가 노랗게 반들거린다. 너는 입술과 뺨을 그림자에 담근 채로 빨래들을 바라본다. 빨래들이 색깔을 잃을 정도로 노랗게 물들어 있다. 너는 몸을 일으킨다.
  너는 위장 근처를 쓰다듬으며 부엌으로 간다. 저녁 때다. 너는 배가 고픈 것이다. 네 누나가 저녁을 짓고 있다. 너는 복도를 지나 부엌을 들여다본다. 부엌은 어둡고 비어있다.
  너는 방으로 돌아온다. 이불은 새 것처럼 까슬까슬하다. 너는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옆으로 눕는다.
  배가 고프다. 너는 달칵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네 누나가 저녁을 짓고 있다.


*


  너는 한쪽 손을 배에 댄다.
  창을 통해 빛이 흘러들고 있었다. 네 손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네 배로 빨려들어간다. 문이 닫히고 이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 네 손이 네 배 위에 얹혀있다 -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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