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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에서 월요일 아침까지

 

 

다음 이야기는 무척 진부한 결말이라서 진부한 결말의 예시로 드는 것조차 진부하게 느껴지는, 알고 보니이게 꿈이었다 끝나는 이야기이다. 다른 면을 부각해 보려고 했지만, 내가 겪은 이야기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어쩔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야기의 시작 또한 크게 박진감 넘치는 것은 못 된다. 이야기는 일요일 오후에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하품을 하면서 시작 된다.

 

일요일 오후였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멍하게 보고 있었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본다는 보다는 텔레비전이 있는 방향으로 눈동자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 맞았다. 아무 생각이 없던 가운데, 나는 하품을 했다.

 

하품으로 촉발된 호흡이 매듭지어질 무렵, 아무 생각이 없던 상태에서 가지 생각이 조그맣게 자리를 잡았다.

 

이제 일요일도 지나가고 있구나.’

 

처음에는 강남구에서 재개발 아파트를 거래하는 부동산 업자의 자비심만큼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일단 한 번 일요일도 이제 가고 있다 생각이 떠오르자, 머리 속으로 생각이 가득 퍼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어느새 금요일 저녁의 기대와 즐거움도 토요일의 나른함도 일요일 오전의 여유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무슨 수를 써도 세울 없는 시간의 흐름이 가차 없게도 월요일로, 월요일로 악랄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아직 오후 3 정도였다. 가까운 곳으로 차를 타고 바람을 쐬고 오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고, 그럴듯한 곳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계획을 세우기에도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기분은 안타깝고 갑갑하고 허하기만 하였다. 벌써 햇빛은 서쪽에서 비치고 있는 것이다. 오후의 황색 조명은 울적함을 뿌려 주기에 충분했다. 일요일은 지나갈 것이며, 이제 월요일이 오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 보여 주던 시어머니가 며느리 괴롭히는 텔레비전 연속극이 재방송으로 지금 다시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좋은 내용이었다. 또 시어머니가 또 며느리를 괴롭히는 내용이었다. 내 눈에 흙이 들어 가기 전에 어쩌고,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말대답이 어쩌고 하는 상투적인 표현이 아늑하게 들릴 정도였다. 관심도 갖고 있지 않은 텔레비전이 혼자 놀면서 화 내는 배우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그 열렬한 목소리가 묘하게도 권태롭고 무관심스럽게 방안에 퍼지고 있었다. 베란다 바깥쪽에서 멀리서 노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잠이 오는 것처럼 들려 왔다.

 

또 벌써 월요일이란 말인가, 싶었다. 괜히 어디 놀러 가면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너무 피곤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서, 이번 주말에는 별 다른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다. 그냥 집안에서 주로 쓸 데 없는 영화를 텔레비전으로 보고 더 쓸 데 없는 글들을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냈던 게 전부다. 그러느라 금요일, 토요일이 갔다. 결정적으로 쓸 데 없을 정도로 밤 늦게까지 잠을 안자고 대신 늦잠을 자기는 했지만, 대체로 아무 것도 한 것도 없다는 게 훌륭한 요약이 될만한 주말이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괴상하게 피로하다는 생각은 그대로였다. 활력이 넘치는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멍청하게도 발목과 무릎에 뻐근한 듯한 기분이 들었고 머리도 좀 띵한 것 같았다. 게다가 묘하게 졸음이 오락가락하기까지 했다. 내 주말.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심지어 그런데도 여전히 피곤한 가운데, 내 주말은 가 버렸고, 이제 곧 월요일이 올 것이다. 다섯 번이나 연속해서 출근을 해야 하는 한 주가 또 오는 것이다.

 

사실 회사에서 하는 일, 그것만 떼어 놓고 보면 재미있는 점은 많았다. 나는 로켓 연료의 반응 보조제를 연구하는 일을 맡은 직원이었는데, 연구가 잘만 풀리면 잘 계산해서 만든 물질을 로켓에 넣어서 훨씬 더 적은 연료만으로도 더 큰 로켓을 더 멀리 보낼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제대로 연구를 할 수는 없었다. 선거 때 우주 개발 분야에도 예산을 대폭 늘리겠다고 했던 여당이 막상 당선되고 나니까 아무 득도 없는 우주에 로켓 날리는 일 따위 불꽃놀이에 큰 돈 쓸 수 없다고 예산을 줄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심지어 그렇다고는 해도 일은 재미있었다. 일만 보면 나는 불행한 편은 아니었다. 불행한 편으로 따지자면 연구소장의 불행이야 말로, 서먹서먹한 사람들 끼리도 우리 회사 사람이면 누구나 공통 화제로 삼을만한 불행이었다. 미국 항공우주국의 화성 기지 계획 부책임자였던 양반이, 글쎄 선거철에 하는 정치인들 이야기와 거기에 장단 맞춰 주는 재벌집 둘째 아들 말만 믿고, 이제 조국을 위해서 일할 때라는 둥, 한국에서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우주 로켓 회사를 키워 보라는 둥 하는 소리에, 거기 일자리를 때려 치우고 20년만에 서울로 돌아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이란, 날아간 예산 어떻게든 그 부스러기라도 긁어 와 보겠다고, 이 사람 저 사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공무원이란 공무원은 다 붙잡고 날마다 같이 밥먹고, 같이 술먹고, 날마다 빌고 또 비는 일이 전부이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하는 일도 주로 우리 회사의 우주선 사업이 굉장히 의미 있고 보람찬 사업이라는 홍보 자료를 만드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말을 꾸미고 울긋 불긋한 색칠과 여러 가지 도표로 중년 공무원 아저씨들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할만한 모양으로 자료를 꾸미는 일인 것이다.

 

그게 들리는 것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나는 우주 개발 사업을 하면, 우주 탐험 자체로 얻는 것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곁다리 연구 결과들이 쓸모 있는 것이 많고, 게다가 그런 곁다리 연구 결과 보다 도 더 중요한 것도 있다고 자료를 꾸몄다. 이런 거대한 첨단 기술 사업을 커다란 규모로 밀고 나가면서 사업에 참가하는 수많은 공무원, 회사, 직원, 연구원들이 일하는 태도와 방식에 대해 얻는 일이 많을 거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선전했던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그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하는 일을 큼지막하게 벌이게 되면, 일 하는 방식도 세계 최고의 수준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면 보람차게 회의 하는 방법, 능력 있는 인재를 발굴해서 제대로 대우하는 방법에서부터, 정말로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이끌어 내는 문화, 효과적이면서도 투명하게 예산을 쓰는 체계까지 한 단계 더 발전된 방식으로 일을 하는 방법을 온 나라에 퍼뜨릴 수 있게 된다고 썼다. 하물며 우주선을 만드는 정도의 일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철저히 안전하게 기계를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보안과 금융을우주 사업수준으로 갖출 수 있는지도 사업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똑똑히 체험시켜 줄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설득하려 했다.

 

그렇지만 이 일의 괴로운 점은 이 모든 일을 하는데, 내 상사와 내 상사의 상사의 기분과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어쩌다가 이런 양반들이 둘이 아래 위로 쌍으로 내가 일하는 팀으로 들어 왔는지, 하루 종일 회사에 있으면 일을 하는데 드는 노력 보다는, 이 사람들이 오늘은 무슨 기분 불편한 기색이 없는지 눈치를 보는 데 신경 쓰는 것이 훨씬 컸다.

 

부국장과 국장의 기분이 나쁜 이유는 내가 만든 자료의 글씨체에참신한 느낌이 없다는 투정에서부터, 아침에 차가 너무 많이 막혀서 짜증이 났다는 것까지 별별 것들이 다 있었다. 고차원적인 퍼즐과 같은 것으로는 국장이 부국장의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들어서 기분이 나빴다거나, 부국장이 국장의 비인간적인 언사에 상처를 받아 기분이 나빴다는 것과 같이 자기네들끼리 만들어 내서 기분 나빠하는 것들도 있었다.

 

이 인간들이 한 번 기분이 나빠지면, 자기 그 기분 나쁜 것을 모든 팀 사람들에게 퍼뜨린다. 그러면 그 악의 기운은 사람의 숫자만큼 배율로 늘어 나는 것이다. 갑자기 반말로 연구원들을 붙잡고, “너는 직장생활이 몇 년인데 보고서 하나 쓰는 게 어째 이 모양이냐따위의 주말 연속극스러운 어조의 대사를 질질질 길게 늘어 놓는 것이 있는가 하면, “, 넌 묻는 말에만 딱 대답하면 되지, 짜증나게 뭘 그렇게 변명을 해라고 묻지도 않은 짜증나는 소리를 부르짖어 내며 뭔가 자기 응어리 지는 걸 터뜨리면서 남에게 응어리를 남겨 주는 것 같은 것들도 있었다.

 

그러면 졸리는 눈을 부비며 커피로 잠을 쫓는 아침부터, 조마조마하게 시간을 보내며 저녁까지. 그리고 오늘은 몇 시에 퇴근해야 욕을 안 먹을까 눈치를 보며 7, 8, 9, 10, 시간이 지나갈 때 마다 매번 상사와 상사의 상사의 기분을 살피며 희망도 품고 실망도 하는 퇴근이. 그 모든 것이, . . . . . 다섯 날 동안이나 겹겹히 도사리고 있는 이 괴로운 나날들이 이제 곧, 해가 지고 잠을 자고 나면 다시 펼쳐지는 것이다.

 

일요일 오후부터 섣불리 월요일을 두려워하며 모든 것이 평화롭기만한 분위기의 오후에 슬픈 마음으로 시간이 훌쩍 지나간 시계를 볼 때. 이때만큼, 모든 인간이 지나간 세월은 어떻게 해도 돌릴 수가 없고, 인생은 시간이 한번 흘러 허망하게도 늙고야 만다는 것을 누구나 진지한 철학으로 느끼게 되는 때가 또 있겠나. 그런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역설적으로 그 오후 그 와중에 나는 다시 한 번 더 하품을 했고, 시어머니의 괴롭힘에 며느리가 이혼을 하겠다고 말하고 그 남편이 당황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그 익숙한 느낌이 마치 고향 시골의 초가집처럼 포근할 때에 나는 또 더욱 졸음이 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러다가 낮잠을 자고 문득 일어나면 벌써 해가 진 밤이 되어, 휙 날아버린 일요일 시간이 더욱 후회스럽고 안타까워지리라고 걱정을 하면서도, 그야말로 철학자와 같은 불굴의 정신으로 그러한 번뇌는 그대로 잊고 그저 잠이 들고야 말았다.

 

회사 아래층의 인사팀에는 서 대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회사에 처음 들어올 때 같이 연수를 받았기 때문에 친해진 사이였다. 서 대리는 미혼의 여자였는데, 답답해 죽을 지경인 이 회사 사람들의 옷 입는 불문율을 거의 다 따르면서도 항상 내 가슴에 바람이 몰아치도록 전혀 답답하지 않게 옷을 입었다. 머지 않아 나는 어쩌다 서 대리와 마주치게 되는 것이 참으로 기쁜 일이 되었고, 저녁이나 같이 한 번 먹자고 자연스러운 척 말을 꺼냈다가 엄청 부자연스럽기만 했던 저녁 식사를 한 후에는 기 기쁨이 강도도 커졌거니와 초조함이나 부끄러움과도 연결 되었다.

 

그러나 서 대리는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확히 선을 긋고 있었고, 나도 그것을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서 대리는 심심한 데 저녁 시간에 밥을 얻어 먹을 사람이 없을 경우에, 내 얼굴을 살짝 올려다 보며 내 앞에 가까이 다가 서서는 향수 냄새와 화장품 냄새와 머리카락의 샴푸 냄새를 최적의 비율로 섞어서 나에게 풍기게 할 줄 아는 여자였고, 나는 그냥 실속도 없이 허허 웃으며 사람 좋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뭐든 해줄 게 가끔 이렇게 얼굴만 좀 보여줘 라는 식의 얼간이가 되길 바라는 인간이었다. 서 대리는 분명히 내 역할은 그 얼간이까지 이고, 그것보다 조금도 더 똑똑해져서는 안된다고 못 박았고, 나 역시 안타깝게도 어떠한 자포자기의 심정과도 같이 그 얼간이 노릇에 좋다고 나서는 얼간이였다.

 

그런데 그 날은 회사 휴게실에서 서 대리와 같이 커피를 마시다가, 창 바깥으로 보이는 구름 모양이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같이 했는데, 그러다가 옛날에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 본 구름이라든가, 누군가와 한강에서 유람선을 타러 갔을 때 본 구름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갑자기 서로를 쳐다 보았는데 그러자니, 문득 서 대리가 또 그 냄새를 풍기며 다가 서더니 이번에는 그 입술을 내 입술로 가까이 가져 오는 것이었다.

 

나는 이게 무든 신선한 내 인생의 대반격인가 싶어 그 다가오는 입술을 조금도 머뭇거리게 하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그 느낌을 느끼고 상대방에게도 내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것을 느끼게 해 주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해 보았다. 드디어, 드디어. 이제야 이루어지는구나, 감격하고 있는데. 그때 갑자기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꿈인 것이다. 왜 서 대리와 내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는지, 지금은 정확히 무슨 요일 몇 시인지, 생각할 수록 모든 것은 불문명했고, 그것을 고민할 수록 이것은 막연히 한 장면만 대뜸 떠오를 뿐인 꿈 속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 대리와 잘 되는 일은 역시 이번에도 꿈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 즈음해서 행복감과 즐거움이 정점을 찍었을 무렵에 슬슬 정신을 차릴 것이고, 잠에서 풀려 나면서 이 모든 것이 자리에 누워 넋 나간 표정으로 싱긋이 웃으며 자고 있는 사람의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허망함과 아쉬움과 출퇴근 시간 신도림역을 환승하는 인간의 떼거리처럼 가슴을 휘젓는 외로움이 밀려 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나에게는 일어 날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 낙심했기에 꿈에서 이런 걸 망상하며 빈 가슴을 달래고 있는지, 내 자신이 못나 보이고 한심하게 느껴지며, 마침내는 그런 꿈을 꾸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은 이미 너무 깊게 월요일이 다가 온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있었다. 게다가 잠이 들었다가 깨면 일요일 오후도 그냥 지날 거라는 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꿈이 채 깨기도 전에, 아직 서 대리가 내 입 속에서 뭔가를 소규모로 맛사지 하고 있는 것 같은 동작을 마치기도 전에, 이 모든 것이 내가 꾸고 있는 꿈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묘하게도 나는 꿈을 깨고 일어 나지는 않는 상태였다. 그것은 입을 맞추고 있는 것이 그래도 너무 꿈결 같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서 대리가 입술을 떼기 직전에, 나는 꿈 속에서는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생각났다. 이 꿈 속의 세상은 모든 것이 진짜처럼, 아주 생생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그저 내 머릿속에서 그냥 상상한 것일 뿐이기 때문에 내가 뭐든 꿈 속에서 이뤄지리라고 상상하면 그게 꿈에서 그대로 또 펼쳐진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얼른 내가 바라는 일을 떠올려서 꿈이 깨기 전에 그것을 꿈 속에서 한 번 실제로 느껴 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서 대리의 혀 끝이 내 혀에서 떨어지는 순간, 나는 본능 보다도 더 강렬하게 내 마음 속에 간절히 자리잡고 있던 상상 하나를 떠 올렸다. , 회사 가기 진짜 싫다. 월요일이 안 오고 계속 이러고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눈을 뜬 내 앞에 잠 든 소파에서 보는 내 방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꿈에서 깨지 않았던 것이다. 내 앞에 보이는 것은 서 대리였다. 어쩔 수 없이 약간 흥분하고 약간 부끄러워하며 약간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기억이 불분명하고 앞 뒤 이야기가 정확하게 연결되지 않는 그 꿈 속 세상의 몽롱하고 흐릿한 느낌은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안정 되어 있었고 자유로웠다. 나는 서 대리와 우리의 관계라든가, 감정의 깊이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나는 곧 알게 되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 이대로 영원히 월요일이 오지 않고 꿈 속이나 달콤하게 즐기고 싶다는 바로 그 생각을 품었던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꿈 속에서는 뭐든 생각하면 이루어지니까. 이제 나는 이 꿈 속에서 언제까지나 자유롭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것을 깨닫고 곧장 서 대리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내가 상상하는 가장 멋있는 용사와 같은 태도로 다시 한 번 열렬히 서 대리와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한 주먹으로 회사 건물 유리창을 깨 부수고 그대로 하늘로 날아 오르는 상상을 했다.

 

그것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나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서 대리를 웃으며 타이르면서 자유롭게 창공을 날았고, 방금 우리가 이야기했던 신기한 구름 옆을 마음껏 날아 다니며, 그 위에 누워 보기도 하고 뒹굴기도 했으며 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방탕한 시간을 늘어지게 즐긴 후에, 나는 애초에 내가 서 대리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 대리가 나를 사랑하지 않듯이, 나 또한 서 대리에게 끌리기도 하고 가끔 애타할 때도 있지만 알고 보면 별로 사랑한다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괴상한 이야기지만, 내가 사랑하지도 않는 서 대리를 그렇게 많이 생각한 것은 서 대리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서 대리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모습으로 이별을 했다.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상상했고, 그것이 그대로 꿈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대신에 나는 요즘 텔레비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한 여자 연예인을 만나러 갔다. 그 여자 연예인은 뭐가 정확하게 본업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자동차 경주나 게임 전시회에 모델로 나갔고, 여러 가지 옷차림으로 잡지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텔레비전에 나와서는 비슷한 여자 연예인들끼리 스펀지로 밀어서 물에 빠뜨리는 게임을 하다가 물에 빠진다거나, 물 속에서 서로 스펀지 위로 기어 오르는 게임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 직업이었다.

 

나는 그 모델과 자연스럽게 만나기 위해, 많은 돈을 모아 그 모델과 관련이 있을 만한 회사 몇 개를 거느리고 있는 재력가가 되었고, 그 모델을 만났으며 그 모델이 나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나는 저택을 짓고 그 모델과 함께 살면서, 내가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는 범위의 다양한 즐거운 일들을 모두 다 하나하나 경험해 보았다. 그 모든 일은 생각한 그대로 대단한 기쁨을 가져 왔으며, 꿈 속의 시간이 몇 달, 몇 년이 지나고 있던 간에, 나는 아직도 자고 있을 뿐이었다. 영원히 월요일은 오지 않으니까.

 

이런 부류의 이야기가 항상 그렇게 흘러 가듯이, 나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이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다 꿈 속에서 나 혼자 헛생각 하는 것 뿐이지 않는가. 느낌의 생생한 정도와 상황의 구체적인 정도만 다를 뿐, 멍청한 표정으로 지하철 자리에 앉아서 결코 이루어질 일이 없는 일을 공상하며 응큼한 짓이나 떠올리는 따위와 같은 일이지 않은가 싶었다.

 

고백하자면, 내가 그다지 도덕적인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허무감은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꿈 바깥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도저히 알 수는 없는데, 이 꿈은 영원히 계속 된다는 것은 정말 두려운 문제였다. 마음대로 기적을 일으키고, 마음껏 모든 것을 즐기느라 긴긴 시간을 보냈는데, 자면서 꿈을 꾸는 동안 보낸 시간은 얼마인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한 두 시간을 자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꽤 긴 시간을 잔 것인지, 아니면 잠깐 짧은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감정과 기억만이 머릿속에서 번쩍거렸을 뿐, 사실은 다만 몇 십초, 몇 분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신라의 조신이라는 사람은 하룻밤 사이에 사랑하는 사람과 인연을 맺고 한 평생을 지내는 모든 사연을 꿈으로 꾸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몇 십년, 몇 백년 동안 나는 이 꿈을 꾸어야 하는 것일까. 정말 영원히 이 꿈 속에서만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일까. 꿈을 깨지 않고 계속 자는 동안 혹시 며칠 몇십일의 시간이 흐른다면 현실 세계의 나는 굶어 죽기라도 하지 않을까.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는 이상, 영영 이곳에 계속 깨지 못하고 갇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괴롭고 두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생각이 이와 같이 점점 어두워질수록, 잠깐씩 무서운 것들에 대해 생각할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섬뜩한 괴물이나 악마가 꿈 속에서 잠깐씩 나타날 때도 있었다. 당연히 정신을 집중해서 그런 것들이 사라질 것을 상상하면 그런 악몽 속의 악당들은 곧 사라져버렸지만, 생각을 잘못 놓쳐 실수할 때마다 무서운 것이 툭툭 튀어 나오는 것은 아주 싫은 경험이었고, 그런 것을 보다가 너무 놀라서 정신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면 그것을 없애기까지 한참 시간을 끌며 시달릴 때도 생겼다.

 

나는 꿈을 깨는 방법을 찾아 내고 싶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우선 꿈 속에서는 모든 것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꿈을 깨는 것을 정신을 집중해서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만은 되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며 그 정도로 정신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이미 영원히 꿈이 깨지 않기를 생각해서 그것을 이루었기 때문에, 영원히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꿈을 깰 수 있을 정도로 노력을 할 수가 없었다. 영원히.

 

그래도 나는 어떤 바람과 상상의 힘을 이용해서 꿈을 깨고 박차고 나가는 길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그렇지만, 좋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전지전능한 자에게 자기가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바위를 만들어 보라는 상황을 말하는 고전 속의 옛 수수께끼와 같았다.

 

나는 세상 곳곳을 헤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지혜를 갖고 있는 사람을 찾아 다녔다. 나는 그런 지혜를 갖고 있는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마침내 나는 어느 산 속 깊은 곳에 산다는 깨달음을 얻은 현명한 사람이 있다는 믿을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주저 없이 그 사람을 찾아 갔다.

 

그 사람이 사는 곳은 산속 계곡 속에 자리 잡은 도산서원을 더 작게 축소해 놓은 것과 같은 모습으로 되어 있었다. 그 사람의 모습은 내가 어린 시절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생겼다고 생각했던 여배우의 모습이었다. 지금이야 TV에서 시어머니 역할 아니면 친정 어머니의 역할로 나오지만, 어린 시절 보았던 옛 영화에서 본 그 모습은 지금의 여느 배우들도 겨룰 수 없을 만큼 고결하고 희귀한 미모였다고 생각한다.

 

꿈 속의 그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모습은 요즘 TV 속 배우의 모습과 같은 연륜과 편안함을 그대로 갖추고 있으면서도, 젊은 시절의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움도 그대로 같이 갖고 있는 꿈과 같은 모습의 자태였다. 나는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그 배우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꿈 속을 탈출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배우는, 어차피 꿈 속의 바깥 세상이현실이라고 해도 지금 이대로 계속 버티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히려 꿈 속에서 겪은 세월이 꿈 바깥에서 살아 온 평생보다도 더 길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꿈 속 바깥의 삶이 과연 꿈 속에서 겪은 체험 보다 소중할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게다가, 꿈 속에서 겪는 일들은 꿈 바깥의 일들 보다도 훨씬 더 신나고 재미있지 않은가?”

 

그리고 배우는 한 술 더떠서 어차피 꿈 바깥의 인생이란 것도 100 몇십억년이 되는 우주의 역사 중에서 고작 그 1억분의 1도 안되는 잠깐의 기간 동안 아동바동 하다가 끝나는 덧없는 것일 뿐이 아니냐고 했다. 그렇다면 이래도 허무하고 저래도 허무한 것, 꿈 속의 세상과 꿈 바깥의 세상의 구분에 연연하지 말고 모든 것을 초탈한 마음의 평안 상태에 도달하는 깨달음을 얻는 것에 집중하라고 했다.

 

나는 그 신비로운 말과 거대한 서술한 잠시 감격했으나, 곧 이게다 무슨 개소리냐 싶어 그대로 산 길을 내려 왔다.

 

나는 분명히 다른 무슨 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번에는 그런 정신적인 깨달음으로 고민을 무마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깰 수 있는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방법을 가져올 수 있는 수단을 가진 사람을 찾아 보려고 했다.

 

나는 추적 끝에 온 우주를 마음대로 고치고 개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위대한 자와 소통을 할 수 있다는 단체를 찾아 갔다. 그 단체는 고층 빌딩의 한 층을 비밀리에 빌려 쓰고 있는 곳이었는데, 도심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그 내부는 고요한 분위기였다. 내부는 미래파 현대미술과 고대 그리스 양식의 신전 치장과 고딕 성당의 모습이 어색하게 섞여 있는 하얀 공간이었다.

 

나는 그 곳의 단체 지도자를 만났다. 지도자는 일전에 한 번 우연히 보고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던 간호사의 모습이었다. 지도자는 기도를 해서 우주를 개조하는 능력을 지닌 위대한 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 자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 보면 반드시 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중의 한 명입니다.”

 

그 지도자는 고관대작들과 부유하고 권세 있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이 단체에 갖다 바치고, 그 대단히 위대한 자가 삶을 사는 이유에 대해 답을 주고, 인생의 목적에 대해 좋은 설명을 들려 주어 뻐근하게 만족시킬 거라고 믿고 애절하게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나의 희망과는 달리 안타깝게도 이 지도자라는 사람은 어느날 아랫집에서 페인트칠 하면서 풍긴 냄새를 잘못 맡고 본 환각이 우주 먼 곳에서 날아온 위대한 메시지라고 생각하는 정신병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이 사람들을 만난 것은 내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잠깐 두려워했던 악몽이 나타난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뭔가 대단한 것을 알고 있다는 사람들이나, 엄청난 힘이 있다는 사람들이 똑바로 된 해결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잘못되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마어마한 생각을 자꾸 하다가 엄청나게 무서운 악몽을 끝도 없이 꾸다 보면, 충격이 너무 커서 정신에 해를 입지는 않을까 겁이 났다. 그렇게 된다면 행여나 요행 꿈에서 깨어난다고 해도 미친 채로 깨어날 것이다.

 

나는 인터넷에 이런 사연을 써서 올리고 비슷한 생각,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을 찾아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큰 일을 저지르는 느낌이 아니라 더 부드럽고 차분한 방법으로 답을 찾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짧지 않은 시간을 기다린 끝에 나는 나와 똑같은 일을 겪고 있다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의 모습은 결코 조금도 제대로 풀리지 않았던 10대 때의 내 첫사랑의 모습이었다. 공원을 산책하면서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기분은 그 자체로 행복했고, 그때 들은 이야기는 나름대로 그럴듯한 생각 같기도 했다.

 

이미 영원히, 절대, 깨어나지 않겠다는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어차피 깨어날 수는 없어. 그렇다면 포기하고 그 안에서 잘 사는 길을 찾아 보는 거지.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 아무리 슬퍼해도 다시 돌아오지는 않잖아.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보람차게 잘 살려고 노력을 해야 되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제시하는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소원을 빌어서, 이번에는 이 꿈 꾸고 있다는 느낌, 생각 자체를 완전히 지워 버려서 지금 꿈 속의 생각이 완벽히 현실과 똑같이 느껴지게 되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꿈 속에 갇혀 있다는 이 답답한 공포 없이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 그렇다면 그 영원히 못 깬다는 두려움이라도 없이 지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미리 마련해 놓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100년 후에는 다시 이 모든게 꿈이라는 사실을 잠시 깨닫도록 해 놓아서 혹시라도 지내는 게 부족한 게 있다거나, 다른 생각이 들면 그때 다시 소원을 바꾸거나 새로운 소원을 빌기도 하면 더 윤택한 꿈 속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원 한 바퀴를 다 돌고 벤치에 앉아서 학교 졸업하고 어떻게 지냈냐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 모든 이야기는 가장 타당한 해결책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해 버릴까 하다가, 혹시나 또 큰 후회를 할 일은 없을까 싶어서 망설였다. 나는 다른 방법을 몇 가지만 더 찾아 보고, 정 안되면 이 방법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꿈과 꿈 속의 생각에 대해서 차근차근히 배우고 공부해 보려고 했다. 나는 꿈과 꿈 속의 세계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의학과 뇌과학의 전문가들을 만나기를 기대하며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나는 어느 대학의 교수가 거느리는 제자가 되었다. 교수는 다름 아닌 지난 여자 친구였다. 전 여자 친구의 전공은 통계학이었지만, 이 꿈 세상에서 어찌저찌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이 과제 저 과제 따라다니는 사이에 어느 새 뇌과학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전 여자 친구는 꿈 속의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머릿 속에서 바로 그 일이 일어나는 기분을 느끼려고 하기 때문이며, 꿈이 깨지 않는 것을 내가 생각한 덕분에 지금 내 머릿 속의 꿈을 깨는 부분이 동작하지 않도록 묶여 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한번 그 부분이 동작하지 않게 된 이상은 지금 꿈 속 세상에서 뭘 상상하고 애를 쓰든지 머리의 다른 부분만을 사용해서 무엇인가를 느끼고 무엇인가를 겪을 뿐, 꿈을 깨는 부분, 바로 그 부분은 쓰지를 못하고 있다고 있다고 했다.

 

그 부분은 지금은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든지간에 도무지 접근이 안돼. 꿈 속에서 니가 뭘 하든지 간에 머리의 다른 부분만 건드리게 되거든. 너는 꿈을 꾸면서 딱 꿈을 꾸는 부분의 머리, 거기까지만 쓰고 있는 거야. 나머지 부분은 꿈에서 뭘 하든 못 건드려. 그러니까, 아무리 아둥바둥해도 꿈을 못 깨는 거지.”

 

그리고 전 여자친구는 생각하는 방법을 아주 특이하고 해괴하게 바꿔 버리거나, 뇌에게 좀 충격을 줄 정도로 엄청난 생각을 하거나 하게 되면, 그 자극으로 다시 꿈을 깨는 부분과 잠시 통하게 될 수도 있고 그 때 맞춰 뭘 잘 한다면 꿈에서 깰 수도 있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전 여자친구의 이야기는 멀고먼 이야기처럼만 들렸다. 금방 수를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나는 이제 도무지 어찌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가 될 지 모르는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최대한 건전하고 오래 버틸 수 있게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평범한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다시 모든 생활을 최대한 꿈 바깥처럼 바꾸고, 꿈 바깥과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꿈 바깥과 같은 일상을 살아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다만, 한 가지 지긋지긋했던 회사의 부국장과 국장은 요즘 가장 인기 있다는 여자 가수팀의 멤버와 막대한 돈을 쓸어 담고 있는 매력적인 할리우드 배우로 바꿔 버렸다.

 

그 때문인지 어째서인지 몰라도 힘들고 긴 일상이 반복되는 동안에도 일은 차근차근 잘 진행되어 갔다. 꿈 바깥의 현실 보다도 일은 훨씬 더 잘 진행되어서, 나는 본격적으로 연료 보조제에 대해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연료 보조제의 합성과 반응 속도를 계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연구하게 되었다.

 

직장의 동료인 그녀는 내가 그러는 동안 매우 새롭고도 유용한 새로운 수학 이론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연료 보조제 반응률을 계산하느라 만들어낸 방법은 써먹을 때가 많았다. 나는 이곳저곳에 그 새 수학이론을 들이 밀어 보다가, 문득 11차원 민코프스키 공간을 쉽게 설명하는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좀 더 11차원 민코프스키 공간에 대해 몇 가지 새로운 관점을 더 계산해 보는 일을 시도해 보았다. 날마다 머리가 아픈 계산의 연속이었지만, 어느 때 보다 보람차고 흥미 있는 작업이기도 했다. 나는 정신 없이 계산에 매달렸고, 마침내 시공간에 대한 전혀 다른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되었다.

 

이걸 이용하면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겠네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모든 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 냈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간 여행을 해서, 영원히 꿈을 깨지 않겠다고 결심하기 전의 나를 만나러 갈 것이다. 그리고 나를 말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영원히 꿈을 깨지 않는다는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곧 나는 꿈이 깰 것이다.

 

하지만 내가 시간 여행 장치를 가동 시키려고 하자, 그녀는 걱정했다.

 

그렇지만, 그건 역설이잖아요. 시간여행 장치를 만들어낸 이유는 그걸 연구할 만큼 충분히 긴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연구를 하려면 영원히 꿈을 깨지 말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영원히 꿈을 깨지 않는 걸 포기한다면, 연구할 시간도 없어지고 시간여행 장치도 만들어낼 수 없고 그렇다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서 영원히 꿈을 깨지 않는다는 소원을 방해할 수도 없잖아요. 아시겠죠. 과거로 돌아 가서 시간여행 장치를 부수는 역설하고 똑같잖아요. 인과율을 무너뜨린다고요.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 하나하나를 성립시키는 바탕이 다 부서져 없어져 버릴지도 몰라요. 온 세상이 통째로 한번에 깨져 없어져 버리는 것 아닌가요?”

 

그녀는 걱정했지만, 갑자기 연구소에서 실험용으로 기르다가 풀어준 개가 달려드는 통에 시간여행 장치의 작동 레버가 당겨져 버리고 말았다.

 

시간 여행 장치가 가동되자, 주변의 모든 것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 우주가 한꺼번에 천둥이 치며 흔들리는 것처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우주가 우는 것 같은 커다란 진동은 반복되었다. 반복되는 소리는 리듬이 있는 것 같았다. 익숙한 리듬이었다.

 

전화기에서 익숙한 리듬으로 아침 자명종 노래가 시끄럽게 흘러 나왔다. 나는 눈을 떴다. 아침부터 공기는 더웠고, 햇살은 뜨거웠고, 앞으로 이어질 시간은 지겨울 것 같기만 했다.

 

월요일 아침이었다.

 

- 2014, 올림픽대로 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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