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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천선란

– 연작 1부 –

가만가만 지구의 심장소리를 듣는 심해를 생각해 아직은 죽지 마 아직은 죽지 마
곽은영, 「불한당들의 모험 27」


눈을 떴을 때 지구는 종말 이후였다. ‘종말을 종말 했습니다’ 인류는 끔찍했던 시기를 참혹한 방법으로 끝낸 뒤 승리에 대한 도취 대신 밋밋한 문장으로 시대의 설명을 끝냈다. 인간이 잔인했던 역사는 많았지만 인류 전체가 비참했던 역사는 없었으므로, 인구의 1/4를 앗아간 종말에 누구도 각주로 붙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해한다. 인간은 언제나 늘 숨기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양양의 연락을 받은 것은 12년의 동면상태를 끝냈을 때였다. 지구에서 온 송신은 잠에 빠진 동안 차곡하게 쌓여 내가 확인했을 때는 그 수가 300개에 도달해 있었다. 제일 처음에 도착한 메시지를 재생시키고 내가 먼저 한 일은 12년 만의 첫 오줌을 누는 일이었다. 발전 속도에서 홀로 동떨어진 깔때기를 조준하고는 참았던 배출을 하며 우습게도 동면에서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났음을 몸으로 확인하며, 양양의 메시지를 통해 ‘행성 92124’로 향하는 우리의 여정을 언론이 어떤 식으로 보도했는지를 듣고 있었다. 지구와 99% 흡사한 행성 92124의 마지막 관문은 ‘확인’이었다. 

물과 대기가 존재하는 이곳에 정말로 인간이 숨 쉴 수 있는지, 직접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뱉어 확인하는 것. X와 나는 이번 우주탐사를 준비하며 우리의 여정을 종종 생체실험이라고 일컬었다. 우리는 쥐다. 위대해서 뽑힌 것이 아니라 실험에 실패해 죽더라도 인류에 아무런 피해도 없는, 실험용 쥐와 같다. 우리가 스스로를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것이 과도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양양이 보내온 편지는 길고 다양했다. 지구의 아이들이 우주선 ‘키사 quizá’에게 잘 다녀오라는 편지를 썼다는 것과 행성 92124가 인류의 두 번째 터전이 됐을 때 지켜야 할 규정 따위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지구 전체가 마치 축제 전야처럼 들떠 있었다. 연말의 설렘이 칠월에 내린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젖은 수건으로 얼굴과 목을 닦으며 양양의 메시지를 웃으며 듣고 있었다. X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들은 것이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우주의 적막은 견디기 힘들다. 조용하면 생각이 많아졌다. 빈틈을 채우려고 뇌가 일으키는 소음처럼.

나는 돌아오지 않는 체온을 높이기 위해 담요를 둘렀다. 메시지는 선체 전체에 울렸고 나는 조종석에 앉으며 후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우리와 함께 탑승한 인공지능 ‘후 HU’는 내가 동면해 있는 동안 우주의 궤도가 틀어지지 않도록 무사히 우주선을 지켜주고 있었다.

“메시지가 들리는데 제가 말을 해도 될까요?”

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모를 테니까 괜찮아.”

후는 목표 지점까지 30시간이 남았음을 알렸다. 그리고 프러포즈를 준비한 것 마냥 이렇게 말했다.

“밖을 보세요.”

우주선의 둥근 창밖으로 빠르게 자전하는 푸른 행성이 보였다. 때마침 양양은 ‘네가 행성 92124를 실제로 보는 첫 인간이라는 게 너무 부러워. 꼭 그때 느낌 감정을 돌아와서 생생하게 들려줘야 해.’라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나는 몸이 창문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창문 옆 손잡이를 꽉 쥐고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바라봤다. 모두가 지구와 똑같이 파랗게 빛날 거라고 추측했던 예상을 깨고 행성 92124는 분홍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인류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목격하며, 내 몸의 알고리즘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예상치 못했던 경험에 몸이 당황하기 시작했고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후가 경고신호를 보낼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반응으로도 모자를 만큼 아름다웠던 분홍빛의 행성……. 후는 나에게 “흥분했어요.”라고 말했지만 내 몸은 정반대의 상태였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가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며 서서히 진정했다. 나는 양양에게 이 순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애초에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다. 지구에는 이 아름다움을 표현할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때 X를 예정 시간보다 일찍 깨울 생각이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X와 함께 행성을 보고 싶었다. 멀리 있어야만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지구가 그랬듯이.

하지만 곧 질 낮은 음질을 들었고 한동안 양양은 침묵을 지켰다. 나는 걸음을 돌려 도로 기계로 다가갔다. 고장 났다고 생각했다. 내가 재부팅시키려고 할 때 양양이 입을 열었다. 딱 13번째 메시지였다.

— 전염병이 퍼졌어.

나는 손을 멈추고 양양이 말을 기다렸다. 전염병은 인간과 함께 진화했다. 두려우면서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양양의 말을 들었을 때도 딱 그 정도의 심각성만 느꼈다.

— 이유는 정확히 몰라. 그냥 사람들이 죽어가. 증상이 모두 똑같고 모든 치료 방법을 동원해도 증상이 없어지지가 않아. 나흘 전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어. 발생지를 추측할 수도 없어, 지구 전체가 무언가에 오염이 된 것 같아.

그것이 내가 처음 들은 ‘종말’의 시초였다. 그 메시지를 다 들을 때까지도 지구 전체에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종류의 전염병이 생길 수 있는지 확률적으로 따지기 바빴다. 곤충에 의한 전염병이라고 하더라도 발생지로부터 퍼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고 이 역시도 지구 전역은 불가능이었다. 양양의 메시지는 지구 시간으로 사흘을 건너뛰고 다음 메시지를 녹음했다.

— 감염을 종잡을 수 없어. 정말로 심각해. 지구 전체에 재난사태가 발령됐어. 방독면을 쓰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전염병의 경로를 아직 찾지 못했으니까. 모든 게 다 멈췄어. 전염병은…… 그러니까 끔찍해. 첫 번째 증상은 팔이 전부 퍼렇게 멍이 드는 거야. 혈관이 다 터져서 그렇대. 상상을 해봐, 정말 끔찍해. 손가락 관절부터 어깨까지 전부 혈관이 터져서……그리고 더 끔찍한 건 그렇게 이틀 후면 온몸이 변한다는 거야. 전부가 다.

나는 지구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양양이 지어낸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다음 메시지에는, 해맑은 목소리로 ‘내 소설 어땠어? 지루한 건 조금 사라졌지?’하고 말하는 게 더 그럴듯했다. 하지만 뒤이어 흘러나오는 메시지는 참혹했고, 그 어떤 상상보다 비현실적이었다.

— 사람들이 전부 죽었어. 한 명도 빠짐없이 말이야. 집계로는 전 세계에 삼만 명 정도 돼. 결국 백신을 개발하지 못하고 전부 발병일로부터 열흘이 되자 죽었어. 모습도 전부 똑같아. 마치 알이 되는 과정 같았어. 앵커가 그랬지, 비난은 받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했을 거야. 지구 전체에 추모가 열렸어. 이런 합동장례식도 없을 거야. 이게 고작 열흘 만에 일어난 일이라는 게 말이 돼? 이들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라. 사람들은 여전히 방독면을 쓰고 다녀. 점점 행성 92124에 대한 희망만 커지고 있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어? 물론 잠을 자고 있겠지. 우주에 떠다니는 너희를 생각해. 희망이 우주에 있다고 말이야…….

나는 그 상태로 굳어 양양의 메시지를 쭉 들었다.

— 정말 다들 미쳤어! 죽은 사람들을 묻지 않고 산처럼 쌓아두는 게 말이 돼? 나는 그들이 죽은 사람을 묻지 않고 쌓아둘 때부터 비 인륜적이라고 생각했어. 전염병의 원인을 알 수 없으니 토양을 오염시킬 까 봐 묻지 못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이유야? 심지어 화장도 시키지 못해. 연기로 무언가 퍼져나갈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저렇게 쌓아만 두고 있는 거야. 썩은 물고기 떼를 쌓아 놓듯이! 너희가 지구에 없는 게 다행이야. 이런 걸 함께 보고 괴로워할 순 없으니까. 정말 다들 미친 것 같아.

거기까지 들었을 때도 내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삼만 명의 사람이 열흘 안에 전부 죽을 만한 이유가 무엇이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내가 들은 건 그다음에 들을 메시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젠장!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

그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기계에 “뭐?”하고 되물었다.

— 새벽에 전부 다 사라졌어. 정말, 정말 외계인의 짓인 게 차라리 나아. 하루아침에 그 많던 시체들이 움직여서…… 한 곳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시체들이…… 그 질병으로 죽은…… 아, 세상에. 말도 안 돼…….

양양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듣고 있는 나는 답답해져 괜히 모니터만 부여잡았다. 분명 듣고 있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잘못 듣고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산 사람을 먹는다는 말을 누가 믿고 싶을까. 하지만 양양은 몇 번이고 그 말을 되풀이했다.

— 사람이 아니야. 짐승처럼 달려들어. 달리는 속도도 빠르고 힘은 더 엄청 나. 하루 만에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물어 뜯겨 죽었어. 지구가 아수라장이야. 재앙이고 재난이고…… 종말이야.

나는 목석처럼 서서 한 동안 다음 메시지를 넘기지 못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좀비 영화의 몇 장면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재생됐고, 나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리고는 내심 그 영화들의 결말은 어떻게 됐더라…… 따위를 간절히 생각했다. 그것이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증적인 희망이었다. 어쩌면 그다음 메시지는 백신을 개발해 사태를 해결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나는 애써 진정하려 노력했으나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손을 계속 떨고 있었다. 후가 나에게 괜찮으냐고 몇 차례 물었다. 휴식 취하기를 권고했으나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모든 메시지를 끝까지 들었다. 내가 구태여 그때 들은 메시지를 전부 말하지 않더라도 이 송신을 듣는 지구인이라면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다 알 것이다. 33일간의 사태 이후, 인류는 종말을 마무리 지었다. 백신을 개발하지는 못했다. 죽은 자들에게 물린 자들은 그들과 똑같이 변했고 인류는 감염 속도를 늦추지 못해 100일 이후 지구 인구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자마자 전부 ‘사살’했다.

양양의 말로 보아 감염자와 생존자를 구분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처를 입었으나 아직 죽지 않은 이들까지 전부 사살했다는 것에는 어떤 기준을 세웠을지 짐작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그 일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인구의 1/4가 33일 만에 사라졌다. 많은 곳이 화재로 불타 사라졌다고 했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던 그 많은 것들이. 사람들은 혼돈 속에서 서로를 쏘아 죽였고 끝내 홀로 남았다. 종말을 끝났으나 끝나지 않았다. 양양의 마지막 메시지는 많이 지쳐 있었다.

— 언제 지구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사람들은 아직도 방독면을 쓰고 다니고 물 한 방울조차도 정화를 거치지 않으면 마시지 않아. 비를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어느 한 편에서는 새로운 종교가 생겨나기도 했어…… 그 전염병이 신이 인간을 벌하기 위해 푼 벌레라는 거야. 그들은 무장을 하고 집단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을 찾아가 폭행을 저질러. 그런 일들이 아직도 비일비재해. 그 사태가 일어난 후 반년이 넘어가도록 사람들은 여전히 미쳐 있지. 믿고 있던 게 전부 가라앉은 기분이야. 벗어날 구석이 보이지 않아. 내 메시지를 너희가 듣기는 할까? 십이 년 후에 이걸 듣게 되겠지? 누가 먼저 듣게 될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내 말을 듣고 있을지……. 너희가 지금 이 지구의 희망이야. 너희의 여정이 반드시 이곳에 남은 우리에게 빛이 되기를.

그 후로 지구에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 가장 원초적인 문제는 블랙홀을 통과하며 메시지 전달에 오류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지구와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만일 그 이유가 아니라면. 나는 십이 년 전 지구에서 온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창을 닫았다. 행성 92124까지 20시간이 남았던 때였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우주선의 모든 전력은 최소화되어 있었다. 나는 짧은 고민을 끝으로 행성에 도착 후 지구에 연락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두려웠다. 두려움이 가장 컸다. 지구에게 연락을 보냈을 때 답신이 끝내 오지 않으면, 나는 그 광활한 우주의 한가운데서 집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돌아갈 곳을 잃으면 그때부터 여정은 표류가 되었다.

그때 선체에 X의 동면상태가 30분 남았다는 안내가 나왔다. 안도했다. 우주에 홀로 남은 것 같던 공허함의 두려움으로부터 빠져나왔다. 설령 지구의 인류가 십이 년 동안 전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혼자 남지 않았다. X가 있다. ……나에게는 X가 있었다. 예전처럼.

여기까지 내 메시지를 들은 당신이라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지구의 상황을 굳이 반복해 설명하는 내 메시지에 의구심을 품을 가질 것이다. 나는 지구의 종말을 들었던 당시의 나를 설명하기 위해 이 메시지를 남기는 것이 아니다. 만일 지구에 이 메시지가 들린다면, 누군가 듣고 있다면 행성 92124에 우리가 살 수 있는지를 어서 듣고 싶어 하겠지. 그렇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양양은 마지막 감염자까지, 그리고 감염의 가능성이 있는 자들까지 모두 사살했다고 말했다. 감염자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양의 말은 틀렸다.

감염자는 남아 있었다. 우주선 키사에.


X는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캄보디아로 의료봉사를 3년 동안 떠났다. 2015년 여름이었다. 나는 몇 번씩 서울의 대학병원 두고 그 먼 캄보디아까지 그토록 오래 떠나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X는 별 다른 거창한 이유 없이, 10명의 의사로 꾸려진 봉사대원 중 여의사가 자신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걸 알면서도 내게는 X를 말릴 수 있는 이유도, 그럴 명분도 없었다.

28인치 캐리어와 20인치 캐리어 두 개를 가지고 떠났다. 28인치에는 옷과 생필품, 잡다한 것들을 가득 담았고 20인치에는 오롯이 생리대만 담았다. 부족하면 보내준다고 말했지만 X는 꾸역꾸역 캐리어 가득 생리대를 챙겨 담고 떠났다. 더운 나라에서 한 달에 한 주 씩은 통풍되지 않는 생리대를 차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어떤 악조건보다 가장 괴롭다는 투정을 부리고서 말이다. X는 자신에게 생리통이 없는 것을 그나마 감사히 여겼다.

X는 자신의 집 도어락 비밀번호를 내 생일 여섯 자리로 바꾸었다. 청소는 필요 없고 생각날 때마다 가끔씩 들려 가구가 외로움을 타지 않게 흔적을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멀리 가지 않고 X의 집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많은 걱정 대신 서로를 한 번 끌어안음으로써, 대수로운 일을 대수롭지 않게 하고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게 입을 닫을 수 있었다.

X가 떠난 이후로 나는 줄곧 X의 집에서 살았다. 밤마다 보풀 일어난 이불속에 몸을 웅크렸다. 외로움이 쌓인 곳은 X의 집이 아니라 내 집이었다. 그렇지만 그곳은 원래 과적過積이었다.

내가 X의 감염을 처음 눈치챈 것은 동면 장치를 확인하기 위해 기계에 다가갔을 때였다. 나는 X가 깨어나자마자 쓸 수 있도록 커다란 담요와 수건을 준비한 뒤 기계로 향했고 유리벽 너머로 자고 있는 X의 얼굴을 확인했다. 동면은 죽어 있는 상태와 다를 게 없기에 우리는 두 번 환생해야 도로 지구에 돌아올 수 있다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저 해프닝처럼 느껴졌고 설령 사고로 해동되지 못하더라도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었던 것에 축복을 보내자고 말했지만 동면한 X의 얼굴을 보며 나는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고작 20분 남은 동면 기계 앞에 서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도록 유리에 이마를 붙이고 눈을 감았다. 지구에 벌어진 일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한 편으로는 너와 함께 우주선에 탔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우리에게는 지구에 아쉬움을 묻히고 온 가족이 없었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우주선에 탈 수 있었던 이유였다. 몸속 깊이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숨이 유리를 뿌옇게 흐렸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것이 느껴졌다. 10분 남았다는 방송을 들었을 때가 되어서야 눈을 떴고, 나는 그때 보았다. X의 두 팔에 시퍼런 멍이 가득 피어 있는 것을.

당신은 그걸 봤을 때의 내 심정을 어느 정도까지 헤아릴 수 있을까? 달리 생각하면 쉬운 일이다, 인간에게 절망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크기로 판단 가능하니 말이다. 그러니 부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절망을 떠올려 주기를……. 그것을 확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절망뿐이었다. 소리치며 울었다. 아닐 것이라고 외치며 빌었지만 지구와 거리가 너무 멀어 지구의 신에게 닿을 수 없었다. 단순히 어딘가에 부딪혀 생긴 멍이 아니었다. 팔의 모든 혈관이 터지기 시작하며 생긴 멍이었다. 

감염 증상이 막 시작했을 때 동면에 들어가 그대로 감염 증세가 멈춘 거였다. 나는 3분이 남았다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그 앞에서 소리 내 울었다. 이 우주에 둘 밖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종말을 보았음을. 어쩌면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먼저 비슷한 고통을 겪었으니.

동면 해체까지 30초 남았다는 소리를 듣고서 내가 한 일은 기계의 화면을 손가락으로 누르는 일이었다. 눈물과 콧물이 뒤섞인 액체가 턱에서 떨어졌고 손을 떨며, 화면서도 동면 시간을 연장했다.

「30시간 더 연장하시겠습니까?」 화면에 문구가 떴다.

“우주선 행성 진입 시에는 두 명의 조종사가 필요합니다.”

후가 말했다. 후의 말이 맞았다. 혼자서는 행성 진입 시 우주선의 평행을 맞추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우주선에서 X를 깨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한정적인 우주선에게 내가 X를 통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X의 남은 수명이 그때부터 카운트다운될 거라는 불안감이 뒤섞였다.

“괜찮아, 혼자 할 수 있어.”

나는 그렇게 X의 동면 시간을 연장했다.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비슷한 증상일 뿐 지구에 퍼진 전염병과 다른 것일 수도, 동면에 들어가며 혈관이 다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당신도 짐작하겠지. 내 바람은 희망에서 끝났다는 것을. 행성 92124에 진입하여 나는 한 번 기절했고 눈을 떴을 때는 우주선이 40도 기울어진 채 정박해 있었다. 

안전벨트를 풀자 몸이 힘없이 기울며 의자에서 떨어졌다. 두꺼운 우주복을 감당할 힘이 없었다. 헬멧이 벽에 부딪히며 소리가 울렸다. 두통을 이기지 못해 그 자리에서 구토를 하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혈압 수치가 낮아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후의 말에도 몸을 일으켰다. 가오리 형태의 선체를 건너 꼬리 부분의 출입구로 향했다. 초점이 잡히지 않아 손으로 벽을 짚어가며 걸어야만 했다. 내가 출입문 개폐장치를 내리자, 후가 다급하게 말했다.

“대기 분석이 아직 되지 않아 위험합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레버를 돌렸다.

“선체와 통로 차단하겠습니다.”

꼬리 칸의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완전히 차단되었을 때 나는 겁 없이 두꺼운 문을 열었다.

내가 그토록 성급히 결단을 내린 점에서 누군가는 인류의 미래를 무책임하게 이끌고 갔다고 볼지도 모른다. 이 행성을 감싼 대기가 사람이 살 수 없는 불활성 기체로만 가득해 사람이 살 수 없을 시 이를 전달해야 했으므로, 실험용 쥐로 왔으나 죽을 권리는 지구에 두고 온 것과 같았다. 죽음 이전에 나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했다. 그 이후는 모른다. 거기까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주복에 밟히는 갈대의 소리를 들었고,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새를 보았다. 갈대와 키가 비슷한 하얀 새였다. 헬멧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새를 지그시 쳐다보며 헬멧을 천천히 벗었다.

내가 과호흡 증후군을 앓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X 밖에 없었다. 신체적인 문제보다 정신적인 문제였는데 기록이 남을 까 봐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증상은 2017년 말에 나타나 2018년 초반까지 나를 괴롭히다 다행히 사그라졌지만 악몽을 꾸는 새벽이면 여과 없이 호흡이 나를 괴롭혔다. X는 그럴 때면 새벽이라도 잠옷 차림으로 찾아왔다. 내가 숨 쉬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나를 끌어안고 아주 먼, 지금 생각하면 정말 까마득히 멀었던 우리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X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학습지를 집에 있던 파쇄기에 갈아버린 것 까지도. 나에게 우주비행사가 절대로 가져서는 안 되는 심리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당신은 격분할지도 모른다. 모로 생각해도 나는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었을 테지……. 하지만 그것마저도 나는 나의 일부였고, 내 불안은 기어코 헬멧을 벗겨 그곳이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공기라는 것을 알았다. 당신의 기준에 나는 미달일지언정 나는 내 삶에서 단 한 번도 미달인 적 없었으므로, 이해하기를.

나는 최초의 발자국이었다. 헬멧을 바닥에 내팽겨 치고 주저앉아 울었다. 당신은 내 울음이 그저 위대함에 전복된 북받친 감정쯤으로 여기겠지. 하지만 내 말을 다 듣고 다시 내 울음소리를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우주선으로 돌아온 나는 동면 해제까지 고작 5분을 남긴 X의 앞에 서 있었다. X를 그렇게 영원히 잠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감염이 확정이라면……. 열흘 안에 죽고, 그렇게 다시 살아나 인간을 뜯어 죽인다는 괴물로 변하는 것을 아예 막을 수도 있었으나 나에게는 X의 생사를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5분 후, 동면이 해제되었고 이산화탄소의 흰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오며 기계가 열렸다. 

창백하게 얼어있던 피부에 혈색이 돎과 동시에 팔에 피었던 퍼런 멍들은 검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괴사 한 것처럼. 끔찍했지만 그 생생한 변화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검붉은 팔에 우주가 생겨나듯 계속해서 무언가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X의 몸에 수건을 덮었고 눈을 뜬 X는 마치 잠들기 전에 나를 봤던 것처럼 익숙하게 이름을 불렀다. 12년이 흐르고 마주한 얼굴이었지만 우리는 3년을 떨어져 지냈던 때보다 짧게 느꼈다. 그렇게 느끼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지만…….

나는 우리에게 들이닥친 절망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했을까. 나에게 그럴 기회가 다시 생겨난다고 하더라도 나는 지금과 똑같이 양양의 메시지를 들려주는 것 외에 다른 행동을 하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또 마찬가지로 X에게 나타난 이 증상은 지구의 전염병과 다를 거라는 어리숙한 안심을 깔려고 아등바등거릴 테고, 오히려 X가 나를 위로하겠지. 우리의 관계는 그 위치에서 단 한 번도 전복된 적 없었다.

 X는 대범하고 담담했으며 용감했다. 우주 항해에 망설이지 않고 지원한 것도 X이기에 가능했다. X는 보이지 않도록 소매가 긴 셔츠로 옷을 갈아입고 밥을 먹자고 말했다. 식물 칸에 채소가 무성히 자라 있을 거라고 웃으면서. X의 제안이 옳았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잠들어 있던 몸을 아주 조심스럽게 깨우는 일이었다.

행성 92124에는 지구와 비슷한 형태의 동식물 외에 ‘인류’라고 부를 만한 문명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았다. 지구에서 종으로 분류하는 개체들과 비슷한 종들이 있었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지구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특성들을 가지고 있었다. 쥐와 피부가 똑같은 개구리와 갈기가 깃털로 되어 있는 사자, 꽃과 잎사귀의 색이 뒤바뀐 식물……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지구의 돌연변이 같다. 아름답다. 분홍빛 바다까지도. 

나와 X는 무성하게 자란 식물을 뜯어 불린 쌀과 함께 갈아 죽처럼 다져 먹는 식사를 마친 후 카메라와 무지 노트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X는 팔의 멍이 보이지 않도록 소매가 긴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딱 그 정도 옷차림을 취하기 좋은 온도였다. 후는 우주선에서 대기분석을 하는 중이었고 우리는 그때부터 그 행성의 모습을 사진과 그림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태평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은 정해져 있고 우리는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완수해야만 했다.

내가 스케치를 뜰 때면 X는 카메라를 손에 쥐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나를 기다렸다. 종종 혼자 무언가를 적기도 했다. 첫날은 그렇게 보냈다. 이곳에서의 시간 개념이 지구와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하루는 마치 이틀처럼 길게 느껴졌다. X는 내 어깨에 턱을 올리며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지켜봤다.

“사진보다 네 그림이 더 정확해.”

X는 내가 그린 동물에게서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사진이 찍는 거라면 그림은 저장한다고 말했다. X는 내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내가 가둔 세계를 언제나 좋아했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그림으로 업을 삼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자랐던 한국에서는 순수미술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과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야근과 과로를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포기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남기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남겨둔 것들이 많았다. 좋아하던 것으로 남기고 싶어서 끝내 품지 않은 것들……. 그런 의미로 우주비행사라는 직업은 내게 도전정신과 더불어 도피할 수 있는 수단이었을 뿐 나는 우주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다.

X의 팔은 첫날 하루 동안은 그 상태를 유지했다. 우리는 그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X는 챙겨 온 장비로 자신의 혈액을 뽑았다. 이 행성에 있는 생태를 분석하기 위해 가져 온 장비였는데 자신에게 쓸 줄 몰랐다며 태평하게 웃어 보이기도 했다. X는 혈액을 담은 튜브를 분석기에 올려두고 커피를 내렸다. 그 커피가 X가 맛을 느낀 마지막 음식이었을 것이다. 이튿날, 온몸에 멍이 퍼지고 혀의 감각 기능이 서서히 사라질 줄 알았더라면 우리는 그 커피를 더 오래, 천천히 음미했겠지.

그렇지만 나와 X는 커피보다 처음 보는 우주에 취해 있었다. 내가 절망을 소리쳤던 우주는 이 행성에서 이토록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달 보다 두 배는 큰 하나의 위성과 촘촘히 박힌 별, 그리고 은하수……. 지구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밤하늘이었다. 선사시대 때에는 이런 밤하늘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하늘이 얼마나 두렵고 아름다운 존재였을지, 필시 전지전능한 누군가 펼쳐 놓은 세계가 아니고서는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의 찬란함이었다.

우리는 X의 감염 원인을 찾아보려고 했다. 정확한 원인을 도출하려면 감염된 사람들의 대략적인 통계가 필요할 테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정보를 얻는 게 불리했으므로, 우리는 고작 우리 두 사람의 삶을 비교할 뿐이었다.

“중학생 때 우리 수학여행 다르게 가지 않았나. 반 각자 다른 곳으로 갔잖아.”

X가 말을 꺼냈다.

“우리 반은 동해 가서 갯벌 체험하고 고기 구워 먹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대부분이 퇴색되거나 다른 기억과 섞인 상태였다.

“근데 그거는 너무 먼 과거 아니야? 감염자 중에는 열 살짜리 애도 있다고 했어. 그때 걔네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라고.”

“하긴 그렇겠구나.”

X는 빈 잔을 손에 쥐고 있다가 “캄보디아…….”하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그게 문제는 아닐 거라고 말했다. 특정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였다면 그렇게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염병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첫째 날 우주선에서 잠을 청했다. 둥근 창으로 손에 잡힐 듯한 오로라가 펼쳐졌다.

눈을 뜨자마자 소리를 지른 건 나였다. 내가 그랬던 것은 이 메시지를 녹음하는 순간까지도 후회하고 있다. 내 비명에 일어난 X는 자신의 몸을 보고도 도리어 놀란 나를 위로했다. 검붉은 멍이 온몸으로 퍼졌다. X의 목과 등, 사타구니와 발등, 손가락에까지 내려앉았다. 도저히 사람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오색나비의 날개가 전신을 감싼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X가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놀란 숨을 진정시키며 X에게 사과했지만 X는 자신이었어도 그렇게 소리 질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 지 이튿날이 되던 때였다.

X는 2차 혈액 샘플을 채취했다. 관찰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팔에 있던 멍이 전신으로 퍼졌으나 통증은 없다. 몸에 색 잉크를 쏟은 것 같다. 어제와 오늘의 혈액 샘플에서는 크게 다른 점이 보이지 않았다.’X는 담담하게 일지를 마치고 조종실에 앉아 있던 나에게 다가와 등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행성을 탐험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X가 일부러 조사나 수색이 아닌 탐험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학교가 끝나면 늘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를 껴입고 동네 뒷산에 있는 저수지에서 미생물을 찾기 위해 떠돌던 중학생 탐험가였으므로, 우리는 드디어 좁았던 저수지를 벗어나 어떤 인류도 당도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이륙한 것이다.

우리는 녹음 카세트와 카메라를 챙겨 동쪽으로 떠났다. 큰 강의 하류를 따라 걸었다. 맹그로브와 비슷한 목본식물이 하류를 따라 자라 있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그때 가져갔던 녹음테이프에 기록되어 있다. 행성 도착 후 현재까지 녹음한 테이프는 열 개에 도달하니 차분히 들어주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그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맹세컨대 이 행성에는 현재까지 인간을 목숨을 위협할 만큼 사나운 짐승이 살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들은 식물과 미생물을 먹고 산다. 동물들은 서로를 죽이지 않고 개체의 수가 많아 보이지 않다. 이곳 동물들은 평생 한 마리의 자식만을 낳는다. 

동물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은 더 많다. 이곳의 동물들은 성별이 구별되지 않고 암수를 전부 지니고 있다. 한 마리가 자웅동체인 셈이다. 하지만 스스로는 새끼를 밸 수 없다. 갈기가 있는 개과 동물의 교배를 지켜본 적 있다. 둘은 서로를 탐색하고 애무하며, 마치 장난을 치듯 놀다 다른 한 마리가 먼저 등을 내보이며 편안히 자리에 앉았고 그렇게 삽입이 이루어졌다. 나와 X는 그 경이로운 모습을 숨죽인 채 바라보았다. 잉태의 기간은 대략 일주일 내지이다. 새끼를 출산함과 동시에 포궁을 함께 배출한다. 그렇게 출산을 한 동물에게는 암수의 역할이 모두 사라지고 남은 생을 보낸다. 이 행성에 사는 동물들의 삶의 순환이 흥미롭다. 모든 것이 꼭짓점 위에 완벽히 균형을 이룬 채 돌고 있는 원반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강에서 조금 멀어지자 곧 니파야자와 비슷하게 생긴 야자나무과의 식물 숲을 만났다. 지구에 있는 니파야자보다 두 배는 큰 식물이었다. 마치 나와 X가 소인국의 백성이 된 기분이었다. 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생전 처음 듣는 새의 울음소리가 계속 들렸고 우리는 그때쯤 앉아서 쉬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의 하루는 지구의 하루와 다르다. 반나절 이상은 걸은 것 같았지만 해는 이제 막 중천에 뜨기 시작했다. 정수리로 내리꽂는 뜨거운 태양은 니파야자(편의상 그렇게 부르겠다) 덕분에 피할 수 있었다. 

준비한 도시락을 그곳에서 먹었다. 물은 잎사귀에 고인 물을 마셨다. X는 먼저 땅에 누웠다. 잎사귀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X의 몸을 덮을 때마다 그 푸른 몸은 마치 보석처럼 빛났다. X는 이곳과 잘 어울렸다. 이 행성에서 낯선 이방인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아 문득 외로워져, 나도 X를 따라 드러누웠다. 우리는 낮잠을 빌미로 아주 깊은 잠을 잤다. 생체 시계가 하루를 마무리한 것이다. 그렇지만 낯선 땅에서의 잠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고 내가 눈을 떴을 때 분홍빛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옆에 X는 없었다.


부모님의 불화가 왜 내 감정에까지 영향을 끼쳐야 했는지 억울할 때가 있었다. 어쩌면 이미 지구의 사람들은 내 가족이 그들이 말하는 ‘보편적인 가족’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수십 년 전에 인연은 끊은 부모에게 한 번도 나의 영광을 돌린 적 없었고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방송국 피디들도 전부 쫓아냈으니 말이다. 나는 오래도록 죽지 않는 것을 원망했고 죽이지 못하는 것을 원망했다. 누군가 내게 조금만 더 일찍 나의 원망이 누구에게나 있는 당연한 원망이고, 행복한 가족이라는 것이 실체 없는 환상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더라면 그 원망이 내 속에 우울이라는 돌덩이로 내려앉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불면증이 있다고 생각했고 누구나 화를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울은 언제나 옆에 있었지만 내가 불편하지 않게 끔만 자리 잡고 있었다. X가 옆에 있어서 가능했던 것을, X가 캄보디아로 떠난 후 나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느끼며 알아차렸다. 나를 잡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 정신과 진료 기록은 내가 목표했던 것들을 전부 무너트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던 선배에게 연락을 해 수면제를 부탁했다. 그대들의 입장에서 내 행동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일로 비치는지 충분히 알면서도 이렇게 말을 하는 이유는, 언젠가는 반드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X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다. 하지만 확실히 말하건대 감정은 영구적인 불치병이 아니다. 나는 언제든 그곳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고 과거로써 완전히 온점 찍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고 말한 것은 당신들일 뿐이다. 나는 선배를 통해 수면제를 받았고 항우울증 처방제를 받았으며 그렇게 교재를 시작했다. X가 캄보디아에서 나와 똑같았던 아이들을 품에 끌어안고 괜찮다고 귓가에 속삭여줄 때…….

X는 오래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X의 몸에 가득 피었던 멍은 전부 사라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나는 X를 보고 믿을 수 없어 물었다.

“나도 몰라. 그냥 눈을 뜨니까 다 내려가 있던 걸.”

우리는 그때까지 그게 좋아진 현상인 줄 알았다. 하루아침에 그 많던 멍이 깨끗하게 사라졌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목도하고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곧바로 우주선에 돌아가기로 했다. X의 몸 상태를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신이 나서 먼저 걸음을 옮겼고 어린애처럼 들뜬 목소리로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느라 X의 발걸음이 끊겼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바보처럼 그렇게 한참을 걷다 기척이 들리지 않아 뒤돌아 봤을 때서야 X가 내 뒤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X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고, 얼마 걷지 않아 쓰러진 X를 발견했다. X의 피부가 얼마나 차가웠는지, 얼마나 하얗게 질려있었는지…… 마치 몸이 살아가기를 완전히 포기한 것 같았다. 그것은 내 체온으로 덥힐 수 없을 만큼 차갑디 차가웠다. 나는 떨어진 니파야자 잎사귀 하나를 주워 X를 위에 눕히고 끌고 갔다. X가 깰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으나 체온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지체할 수 없었다. 나는 최대한 지면이 평평한 곳을 골라 걸었다. 이따금씩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 뒤돌아봤고, X는 늘어진 인형처럼 쓰러질 뿐이었다.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악 물고, 숨을 깊게 쉬면서 보폭을 크게 걸었다. 내가 울면 힘이 금방 빠져 왔던 길을 전부 되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도와달라고 누구에게도 소리칠 수 없는 낯선 타지에서의 그 걸음을, 듣고 있는 당신이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소리도 없이 지각이 움직여 길을 잃는 것은 아닐까. 돌아가야 하는데 아무리 걸어도 길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 정말로 이 우주에 나 혼자 떨어진 것 같던 그런 낙오자의 설움. 뒤돌아볼 때마다 차마 X의 차가운 몸은 만지지 못하고 윗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확인해야만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멈추거나 쉬지 않았다. 해가 지고 나서는 은하수를 길잡이로 걸었다. 다행히 나는 길을 잃지 않았다. 우주선에 도착하자 후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고 다급하게 물었고 나는 X가 잃은 체온을 후에게 느끼면서, 우주선의 온도를 높여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X를 덮을 담요를 가지러 가려고 할 때, 후가 우주선의 온도를 높이고는 “당신부터 치료해요.”하고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그때서야 새끼발톱이 양쪽 다 빠져 피가 흐르는 발을 보았다.

“괜찮아, 아프지 않아.”

정말로 아프지 않았다. 피가 딱딱하게 굳어 출혈이 더 발생하지도 않았다. X를 간이침대에 옮겨 눕히고는 담요 몇 겹을 품에 안고 돌아가다가 문턱에 발가락이 찍히며 멈췄던 피가 다시 났고 그때 통증이 몰아서 밀려왔다. 새빨갛게 부은 새끼발가락은 그게 내 발가락인지 구분되지도 않았다. 잠시 주저앉아 발가락을 만지지도 못한 채 고통을 참아내다 끝내 울었다. 이보다 더 한 수술도 참아냈는데 고작 이 발가락이 뭐라고……. 정말로 이깟 고통에도 이렇게 눈물이 터질 거였으면 그때 나는 추운 수술실 침대 위에서 무엇을 그토록 애달프게 참았던 것일까. 모든 것은 한꺼번에 밀려오는 해일 같았다. 잠길 것이다. 예상은 빗나간 적이 없었다.

X의 체온은 다행히도 올라왔지만 살갗은 여전히 차가웠고 피부를 만져도 혈관이 올라오지 않았다. X의 몸을 스캔한 후는 “이상하네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끝내 “동맥을 제외한 자잘한 혈관들은 전부 죽었어요.”하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괜찮아, 괜찮은 거야, 하고 중얼거리며 X의 침대 옆에서 웅크린 채 잠에 들었다. 발가락에 어설프게 붕대를 감아두고서. 후는 “잘 자요, 무슨 일 있으면 깨울게요.”하고 우주선의 조명을 천천히 껐다.

우주 어느 한 곳에서, 고요한 절망을 들으면서 잠에 들었다.


비행사 자격 심사를 위해 지대가 가파른 협곡을 오른 적이 있었다. 함께 참여했던 비행사들은 초반에 비슷한 속도로 달렸으나 점차 자신만의 길을 찾아 떠났고 나는 승부에 눈이 먼 나머지 안전요원이 위험하다고 했던, 그렇지만 가장 가파르고 거리가 짧은 암벽으로 향했다. 자료를 조금만 찾으면 이때 기사가 나올 것이다. 내가 그 산에서 일주일간 실종되었다는 것을. 나는 예고되지 않은 폭우를 만났고 바위로 이루어졌던 암벽은 발을 내딛기 힘들 정도로 미끄러웠다. 나는 발을 접질리며 침니로 떨어졌다. 다리를 접질리며 골절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았던 협곡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떨어지며 고장 난 무전기와 한 통의 생수, 비상용 라이터, 손전등, 붕대, 그릇용 깡통 따위가 끝이었다. 나는 금방 구해질 줄 알았으나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깡통에 빗물을 받아두고 기다렸다.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낮과 밤이 오가는 것을 보며 날짜를 헤아렸다. 내가 볼 수 있는 거라고는 높은 절벽 위로 종이를 찢어 엿볼 수 있게 만든 듯한 하늘뿐이었다. 일주일 후 어느 정도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조금씩 몇 시간을 움직이다 나는 끝내 구조되었다. 나는 생존수칙대로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그것이 내게 가산점이 되었다. 모두가 내게 잘 견뎠다고 말했지만 나는 죽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배고픔보다 두려움과 외로움이 더 컸고, 나는 그럴 때면 땅에 귀를 맞대고 언젠가 X가 나에게 말했던 시 한 구절을 소리 내어 읊었다.

‘가만가만 지구의 심장소리를 듣는 심해를 생각해 아직은 죽지 마 아직은 죽지 마’

말을 하면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시를 생각하면 X가 생각났다.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한 명쯤은 내가 살아있기를, 아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죽지 마, 아직은 죽지 마…… 나는 X가 내게 그 말을 처음 해줬던 추웠던 수술대 위 침대를 떠올리며 버텼다.

내게 항우울증 약을 처방해줬던 선배와는 3년을 만났다. 어쩌면 당신들은 이 사랑이야기를 흥미로워할 수도 있고 진부해할 수도 있겠다. 내가 애인과 3년을 만났다 결별했다는 사실도 인터뷰를 통해 이미 알고 있겠지. 하지만 당신들이 추측하는, 아름답지만 구차하고 진부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는 못 된다. 나는 선배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내게는 그저 X의 자리를 대신해 나를 지탱해 줄 버팀목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선배도 그걸 알고 있었다. 내 심리상태가 누군가와 정상적인 교감을 나눌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선배는 그러고도 나를 만났다. 처음에는 정말로 내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 초심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인이란, 지구 행성의 어떤 개체보다도 빠르게 변화했다. 유전자에 심어진 것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다가 버려지고 상처 받고 죽는다. 어쩌면 그것이 선배의 생존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원망하지 않는다. 사실은 원망해봤자 할 수 있는 것이 내게 없었다. X가 캄보디아에서 단번에 한국으로 날아온 것은 내 부탁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X에게 돌아와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X는 그곳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 소녀들에게는 X가 꼭 필요했었으니까.

X는 우주선 화장실에서 코피를 쏟아냈다. 내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화장실 문을 꾹 잠가두었다. 하지만 불러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때 나는 결국 화장실 문고리를 열쇠로 열고 들어갔다. X는 코에서 쏟아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피를 변기와 세면대, 화장실 바닥에 뿌려놓고는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기절한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X는 일어날 기력이 없어 거울에 부딪힌 새처럼 엎으려 고릉고릉 숨을 뱉고 있었다. 

X의 팔을 어깨에 두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던 와중에 몇 번이고 피에 미끄러져 휘청거렸다. X의 콧구멍에서는 아직도 검붉고 진득한 피가 실처럼 늘어지고 있었다. X는 두 발로 걷지 못해 끌려왔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으며 눈을 뒤집으며 계속 기절하려고 했다. X는 간신히 정신을 붙잡으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너무 힘들어 보였다.

“나 있으니까 잠시 눈을 붙여. 내가 옆에 계속 있을게. 여기 있으니까 걱정 말고 쉬어.”

다행히도 내 말을 알아듣고 X는 곧바로 눈을 감았다. 나는 따뜻한 물수건으로 피로 얼룩진 X의 몸을 닦으며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지구와 이곳의 중력이 달라, 아마도 이 행성이 지구보다 더 높은 중력을 가지고 있어서 눈물은 마음과 다르게 계속해서 떨어졌고 수건은 끝내 마르지 않았다.

눈물로 닦아내는 것들은 얼룩이 남는다. 너의 몸에 얼룩이 졌다.

그로부터 X의 손톱과 발톱이 다 빠지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X가 캄보디아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왜 여자들에게 X가 꼭 필요한 존재였는지 조금은 짐작하는가? X는 캄보디아에서 성매매나 강간으로 원치 않게 임신한 여자들의 낙태를 도왔다. 성인 여성도 있었고 주부도 있었으며 아주 어린 소녀도 있었다.

‘너는 사람 살리러 온 게 아니고 죽이러 왔구나.’

같이 간 X의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지만, X는 3년 만에 내 곁에 돌아와 꿋꿋하게 ‘사람을 살리고 왔어.’라고 말했다. 나는 X를 할 수 있는 한 세게 끌어안았다.

당신이 <하얀 사람>의 이야기를 알까? 듣고 있는 누군가는 알지도 모르겠다. 나는 X에게 처음 들었다. 이야기의 발설지가 어디인지는 모른다. X는 캄보디아의 소녀에게서 듣고 왔지만 이야기의 배경지가 설원이었다. 하얀 사람은 온몸에 털이 없고 손톱과 발톱도 없다. 피부는 입술과 함께 하얀 눈을 뒤집어쓴 듯이 새하얗고 홍채 역시도 하얀색이라, 설원에 서 있으면 누구도 하얀 사람이 거기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얀 사람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하얀 사람은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는다. 그래서 설원에서 하얀 사람을 발견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들은 것은 수술이 있던 당일 새벽이었다. X는 내가 잡생각에 빠지지 않고 잠들 수 있도록 해 준 말이었지만 나는 새벽 내내 하얀 사람의 하얀 눈동자를 상상했다. 동공조차도 하얀 색인 것일까, 그렇지만 동공은 공간이어서 하얀색일 수 없는데…… 따위를 생각하며 밤새 하얀 눈동자를 마주 봤다.

X의 눈동자는 막을 씌운 것처럼 탁해졌고 홍채에 흰 반점들이 생겼다.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졌고 곧 동공을 제외한 모든 눈동자가 하얗게 변했다. X는 초점이 잘 맞춰지지 않는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시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양쪽 1.8을 유지하던 X의 시력이 마이너스 가까이 떨어진 것으로 추측한다. 다섯 걸음만 떨어져도 안내 책자의 글을 읽을 수 없는 정도였다. 그날을 기점으로 X의 시력을 점점 떨어졌다. 마지막에는 빛만 알아볼 수 있는 수준까지 떨어졌으니 이 역시도 지구 감염자들과 비슷한 증상이었으리라. 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감각기관들은 오히려 그 반대로 예민해졌다. 시력의 기능을 나눠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멀리서 도약한 새의 날갯짓과 바람 속에 흩어진 꽃향기까지 맡을 정도로. 시력과 함께 나빠진 것은 딱 한 곳 밖에 없었다.

우주선 앞에 텐트를 쳤고 X는 온종일 그곳에 앉아 있었다. 우주선 안은 갑갑했고 시력이 좋지 않아 어제처럼 멀리 나갈 수도 없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믹스 커피 한 잔을 X에게 내밀었다. X는 먼저 “커피네.”하고 받고는 웃으며 한 모금 마셨다. X는 티 내지 않으려고 커피 한 잔을 끝내 다 마셨지만 나는 X가 한 모금 마시고서 지었던 표정을 보았다. X는 그때부터 어떤 맛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살아갈수록 침묵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렇지만 사실 알아차리고도 모르는 척하는 일들이 더 많았다. 사람들은 귀의 존재를 자주 잊는다. 귀를 닫아도 소용없을 때에는 상대방의 입을 틀어막는다. 아주 소수만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했다. 나에게는 X가 유일하게 소리에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만일 X마저 내 소리를 듣지 못했더라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지 못한 채 터졌을 것이다. 쌓이고 쌓이다, 몸속에서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위험 가스가 되었겠지.

다 마신 커피 잔을 보고 있던 X가 돌연 물었다.

“방금 들었어?”

X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해가 지기 시작했던 때라 주변이 어둑했다.

“무슨 소리?”

“날벌레 소리였는데, 아주 많은……”

X의 말이 끝나고 몇 초 뒤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날벌레 소리. 반딧불이처럼 빛을 뿜는 날벌레 수십만 마리가 하늘을 가득 메울 듯이 날아왔다. 이곳의 반딧불이는 보라색 빛을 내뿜는다.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을 붙잡았다. X의 몸은 여전히 차가웠다. 하늘을 바라보는 X의 옆모습을 지켜봤다. 언젠가 호러 영화에서 보았던 좀비의 눈동자도 딱 저랬을 것이다. 인간은 지구의 많은 종말을 예측했지만 그중 가장 최악에 당첨되고 만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공격하는 것, 서로 함께 지구의 종말을 기다리며 손을 잡고 사랑한다고 속삭일 수 없는, 가장 최악의 종말.

“네 말이 맞아.”

내가 말했다. X가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그때는 내가 보랏빛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도 사랑하지 잘 사랑하지 않아.”

양양이 남긴 메시지의 내용처럼 X의 증상도 똑같았다. 눈동자가 하얗게 변한 다음에는 머리카락이 전부 빠졌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 메시지는 지구 인류의 1/4를 죽인 원인불명 바이러스의 정보를 주기 위해서 녹음한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도 아니다. 나는 그저 우리가 최초로 도달한 행성에서 함께 보낸 날들을, 삶의 변두리에서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싶을 뿐이다. 이제 나에게는 인류를 책임져야 할 어떤 책임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바랐던 대로 죽지 않고 행성 92124에 왔으며 이 행성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다. 내 임무는 끝이다. 내 임무는 여기까지인 것이지 ‘그곳에서 살아남는다’는 속하지 않는다.

우주선에는 탄환 두 발이 들어 있는 권총 한 자루가 있다. 우주에서 혹시나 마주칠 줄 모르는 외계 생명체를 위한 권총은 아니다. 우리를 위한 총이었다. 우주선의 에너지가 편도였으므로.

나는 의식을 잃은 X를 우주선 침대에 눕혔다. X가 숨을 쉴 때마다 이물질이 걸린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잠깐씩 숨이 멈추기도 했다. 그렇지만 곧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숨을 토해냈다. 살고자 하는 X의 욕망이 스스로를 쉽게 놓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피부는 창백했고 체온은 차가울 정도로 낮았으며 손톱과 발톱, 머리카락과 눈썹, 그리고 음모까지 모두 빠졌다. 내 노력은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다. 그때가 이곳의 시간으로 사흘, 지구의 시간으로 193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

후는 인간에 대해 잘 안다. 인간이 만들었으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침묵은 기쁨이나 행복 같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아무 생각도 안 해.”

나는 침대 옆 바닥에 앉아 X의 손을 붙잡고는 침대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노래를 들려줄까요?”

“……최신곡이야? 그러니까 2032년 노래야?”

“아니요, 2020년에 담아온 곡들이에요.”

“몇 곡이나 있어?”

“대략 천 곡정도 담아왔어요.”

“그럼 한국 노래 아무거나 틀어줘.”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어쩌면 이미 이 우주에서 사라졌을지 모르는 사람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가장 먼 곳에서 들었다. 만약 살아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이 행성에서 가장 먼저 퍼진 곡이 당신의 노래입니다. 

X가 나에게 말해주었던 그 아이의 나이는 고작 열네 살이었다고 했다. 생명을 품기에는 너무 작은 몸이었다. X는 거기까지 말하고 구태여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나는 X가 숨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아이는 똑똑하게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과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알고 있었고 그렇게 또 영리하게 이런 일련의 일들이 자신의 잘못이 아닌 걸 받아들였다. 

아이는 X를 보며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X처럼 세계를 떠다니며 슬픈 사람들에게서 슬픔의 혹을 떼어내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X는 꼭 그렇게 될 거라는 예언과도 같은 점지를 내렸지만 X의 예언은 빗나갔다. 아이는 수술을 한지 하루 만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일을 나갔고 무거운 봇짐을 들고 신호를 건너다 쓰러졌으며 달려오던 차는 아이를 보고도 피하지 못했다.

‘후회해.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애는 그렇게 쓰러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탈모를 앓고 있던 내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빗어주던 손길이 멈췄다.

‘내가 정말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몸을 돌렸다. X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고 나는 방석을 깐 채 바닥에 앉아 있던 상태였다. 나는 팔을 벌려 X를 끌어안았다.

‘하얀 사람한테 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아이가 잘못된 건 그 애 아빠가 아픈 애를 끌고 나가 서고 차를 멈추지 못했던 운전사 때문인지 네 탓이 아니야.’

‘…….’

‘우리는 사람을 살리고 있어.’

‘…….’

‘이 행성에는 사람을 좀 살릴 필요가 있어.’

그때 X의 손가락에 한 움큼 얽혀 있던 내 머리카락을 기억한다. 내가 가지고 있던 스트레스와 내 몸이 품고 있던 생명과 그 절망을 사람들에게 감추기 위해 오십 도를 육박하는 날씨에도 가발과 모자를 썼던 여름을 기억한다. 대답을 들을 수 있다면 당신들에게 묻고 싶다. 혹 방금 했던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에 동감하는가? 그 아이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노라고. 내가 예상하건대 이 메시지를 듣는 모두가 잘못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이미 지나 타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사건에는 모두가 관대하다. 그리고 정말로 모두가 그 아이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느낀 불안감과 두려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던 것일까. 나는 누구도 잘못이라고 지적하지 않는 죄를 왜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X는 5일째 아침이 되던 날 속을 게워냈다. 그것이 단순하게 속을 게워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당신들도 알 것이다. X의 몸은 무언가를 ‘쏟아내고’ 있었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악취가 났다. 하지만 X는 자신의 상태를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나는 X의 구역질이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붉은 핏덩이와 검붉은 덩어리들이 진득하게 뒤엉킨 토사물이었다. 우주선을 전부 열어놓고 토사물을 치웠지만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X의 몸 전체에서 썩은 내가 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입이었다. 

입 속에서 토사물에서 났던 냄새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파리와 비슷한 벌레들이 자꾸만 날아들었다. 날려 보내도 소용없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X의 몸에는 수백 마리의 벌레가 들러붙었다. 입과 코, 귀를 통해 X의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고 나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모든 벌레들을 내쫓고 우주선을 전부 닫았다. 우주복을 입고 냄새를 견뎠다. 그러다 두 시간은 구석에 웅크려 앉아 울었다. 우주복에 습기가 가득 찰 정도로. 내 울음소리에도 X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렇게 울다가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내가 캄보디아에 있던 X에게 울며 전화를 걸었던 그날처럼. 나는 그날도 크게 소리치며 울었지만 아무도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귀를 잃은 것이 아니라 내가 소리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우주선 가득 노을빛이 들어찼다. X는 아까와 다를 것 없이 누워 있었다. 숨 쉬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가갔을 때 나는 X의 함몰된 가슴을 봤다. 그리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배도……. X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의 몸을 자세히 본 적이 있는가? 시체를 산처럼 쌓아뒀다고 했으니 나처럼 고요하고 적막한 곳에서 본 사람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희미하게 있던 X의 혈관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숨은 점점 느려져만 간다. 머리카락도 없고 눈썹도 없다. 가슴이 함몰된 X는 어떤 성별도 가지지 않은, 이 행성의 낯선 동물 같았다. 나는 우주복을 벗고 걸치고 있던 옷도 전부 벗어 맨 몸으로 X의 옆에 섰다.

내가 차디찬 수술대 위에 누워 몸을 떨고 있을 때, X는 입고 있던 가운을 벗고 맨 살로 내 몸을 전부 끌어안았다. 이가 부딪힐 정도로 추위에 떨고 있던 나에게 X의 체온은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웠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울었다. 내 몸에 싹텄으나 결국 인간으로 자라지 못한, 생명이었을지도 모르는 씨앗을 보낸 것을 실감하면서. 실은 내게서 떨어져 나간 것에 후련함을 느끼는 내가 너무 무서워서 울었다. 행성 92124에 가지 못하게 될까 봐 무서웠고 비행사를 포기해야 할까 봐 무서웠다. 나는 모든 것을 지켜냈다. 그렇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X는 맨 살로 나를 더 세게 끌어안으며,

‘괜찮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어.’하고 말하고

‘보이는 것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지 못한 걸 어떻게 사랑하겠어.’하고 말했다.

화상을 입히는 말이었다. 3년 동안 나를 떠났던 X는 나를 살리기 위해 이곳으로 돌아왔다. X가 생명공학자로 우주선에 탄 것도, 함께 우주에서 생을 마감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당신들은 몰랐을 것이다. 아무도 나에게 아주 잠깐 생명이 스쳤다 간 것을 모를 것이다. 알아서는 안 됐으니까. 당신들도, 그 선배도, 나를 아는 모두가.

나는 숨이 멈춰가는 X의 옆에 누워 맨 몸으로 X를 끌어안았다. X가 언젠가 나에게 말해주었던 시 구절을 속으로 읊으면서. 당신들이 얼마만큼 이 바이러스를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X가 채취한 혈액 샘플에서 성염색체 두 쌍이 기이한 형태로 합쳐지는 것을 발견했다. X가 죽지 이틀 후에야 그 변화를 발견했다. 이 사실이 이제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지만.

이 메시지를 지구의 누군가는 듣기를 바란다. 아직 지구에 생존자가 있고, 여전히 행성 92124에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면.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이 행성에는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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