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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재건축의 마신

2016.09.30 18:1209.30

재건축의 마신

– 곽재식 –

처음 가게의 영문 홈페이지를 만들 때만 해도 그것 때문에 내가 벨기에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부동산 중개업자 사무실은 원래 일하던 직장에서 잘리고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곳이었다. 애초에 이곳 홈페이지에 꼭 영문판이 필요하던 것도 아니었다. 사장에게는 잡다한 이유를 설명했지만 사실 그냥 내가 홈페이지 만드는 일에 대해 좀 아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사장조차 처음에는 쓸데 없는 일을 왜 벌이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장은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설령 영문판 홈페이지가 붙어 있는 것을 외국 사람이 보는 일은 없더라도, 그것을 보고 한국인 손님 중에는 어쩐지 더 좋은 부동산 중개업자가 아닐까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사장이 허락했고, 나는 적당히 영국과 아일랜드의 부동산 중개업자 홈페이지를 참조하되 우리 사무실의 특성을 충분히 집어 넣어서 영문판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두 달인가 석 달인가가 지난 후였다. 최근에 사장에게 속아서 집을 산 두 손님이 날마다 찾아와 사장에게 따지고 있고 사장은 장황한 말로 구질구질하게 변명을 하면서 “그래도 결국은 집값이 오를 거다”라고 말하던 많은 날 중 하루였다. 사장이, “집값이 설마 더 내리기야 하려고요”라고 말하던 순간, 전화가 걸려 왔다. 사장은 변명의 중요한 극적인 부분 한 가운데에 있었으므로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전화를 받았고, 전화의 상대방은 영어로 말을 걸어 왔다. 예전 회사에서 잘린 후로 전화 통화로 영어 대화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뭐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는 지 예상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한동안 나는 그 말뜻을 알아 듣는데 시간이 걸렸다. 더군다나 내 옆에 있는 사장과 두 손님 간의 대화는 최고의 격정에 진입하여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므로 전화 통화는 더욱 어려웠다.

 그렇지만 상대방은 의욕적이었고, 나 또한 오래간만에 벌어진 새로운 상황이었으므로 상당히 집중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결국 우리는 소통에 성공했다.

 전화를 건 쪽은 벨기에의 국경 가까이에 있는 한 작은 마을의 시장이었다. 시장이라고 생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치고는 젊은 사람이었는데, 마을에 있는 한 교회를 재건축하여 주상복합 건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이 시장의 사연이었다. 시장은 교회를 부순다는 소문이 나지 않도록 벨기에나 이웃 네델란드, 프랑스가 아닌 다른 먼 곳의 재건축 전문가를 원했는데, 영어로 된 홈페이지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보니 우리 사무실이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사무실이 첫번째 검색 결과는 아니었지만, 몇 십층 짜리 무슨무슨 타워나 무슨무슨 센터를 세운다는 거창한 회사가 아니라 싼 값에 일을 해 줄 만한 작은 회사를 찾다 보니 우리까지 보게 되었다.

 “우리가 벨기에나 유럽 법은 하나도 모르는데, 이런 거 맡아서 해도 될까요?”

 “걱정마. 돼. 된다고. 이 바닥은 어딜가나 똑같애. 바람 잡고, 진단 받고, 허가 받고, 부수고, 짓고. 그러면 끝이야. 그게 재건축이야.”

 재건축이라는 말을 듣자 사장은 눈빛이 변했다. 정말로 그 갈색 눈동자가 영화에 나오는 흡혈귀의 붉은 눈동자로 바뀌는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 얼굴색이 확 바뀐 것이다. 사장은 벨기에의 어디쯤에 있는 무슨 건물인지는 보지도 않고, 지도에서 주위에 무슨 건물이 얼마나 있는지 보고 건평과 용적률만 계산해 보더니 바로 계약을 하자고 결정했다.

 “우리 이거 해야 돼. 이게 기회야. 이게 풀려야 이번에 골치 아프게 된 거 손님 두 사람 껀도 막을 수 있다고.”

 그렇게 해서, 사장은 난데 없이 벨기에의 시골 마을 시장과 거래를 하기로 했고, 처음 홈페이지를 만들고 전화를 받았다는 죄로 내가 그 마을로 가게 되었다. 사장은 내가 비행기 안에 있는 동안 손님 둘을 설득해서 손해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라는 이유로 이번 벨기에 재건축 사업에 투자를 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독일 뒤셀도르프 공항에 도착하자 시장이 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시장은 깔끔한 정장을 차려 입은 사람으로, 어디서 익혔는지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익혀서 인사를 했다. 나는 허허허 하고 웃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 준 후, 인터넷에서 찾아 본 대로 벨기에에서 쓴다는 프랑스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시장은 박수를 치며 기뻐한 후, “그런데 저희 마을은 동쪽 국경 근처라서 프랑스 말을 안 쓰고 네델란드 말을 쓴답니다.” 하고 영어로 대답했다.

 나는 시장의 차를 같이 타고 3시간 가까이 이동 했다. 마지막 30분 정도는 한참 동안 아무것도 없고 초록 벌판에 가끔 양 떼나 소 떼만 있는 풍경이 계속 되었다. 드문드문 놀랍게도 큼직하게 지어진 저택 같은 농가가 보이기도 했고, 헛간이 있기도 했지만 그냥 풀밭이나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초록 밀밭이 더 많았다. 헛간 벽에 있는 요란한 색색깔 낙서가 없다면 100년, 200년 전 풍경이라고 해도 믿을 만할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신비로운 한량이 이런 아무것도 없는 곳까지 와서 낙서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던 끝에 도로 저편으로 뾰족뾰족하게 솟은 교회 첨탑과 지붕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저기입니다.”

 시장은 그곳이 우리가 가야할 곳이라고 말했다.

 시장은 차를 타고 마을 가운데의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이라고 하지만 어지간한 학교 운동장 보다도 작은 공터였다. 그래도 바닥은 벽돌로 차분하게 포장 되어 있었고, 그 주변을 오래 되어 보이는 가게들이 둘러 싸고 있었다. 음식점도 있었고 맥주나 커피를 파는 가게도 있었는데, 꽃 화분으로 장식한 곳들이 많았다. 우리가 광장 가운데로 들어 오자, 여러 가게 앞의 탁자에 앉아 있던 할 일 없던 노인들이 사방에서 일제히 우리 쪽을 바라 보았다.

 “호텔로 가는 길도 어차피 같은 방향이니, 우선 저희가 작업할 건물에 들렀다 가시면 어떨까요?”

 시장이 말했고 나는 그러자고 했다. 시장은 광장 한쪽 귀퉁이에 있는 한 예배당 앞에 차를 세웠다.

 “얼마나 오래된 건물이지요?”

 “지금이 딱 99년째 입니다. 저희 지방 규정에 100년이 넘은 건물은 문화재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올해 급하게 재건축을 끝내지 못하면 재건축하기가 정말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선생님 도움이 꼭 필요하지요.”

 나는 재건축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저 “무조건 사진을 많이 찍어 오라고”라는 사장의 말만 믿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예배당 건물을 유심히 쳐다 보며, 도대체 어디를 얼마나 많이 찍어야 “무조건 많이” 사진을 찍는 것인지 생각을 해 보았다.

 일단 나는 건물의 외관부터 사진을 찍기로 했다. 큰 교회는 아니었다. 주변의 3,4층 건물보다 약간 더 높은 정도였다. 수백년, 천 몇백년이 넘어 가는 성당이 어느 시골에나 널려 있는 유럽에서는 이 정도면 별로 오래된 곳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붉은 벽돌과 밝은 빛깔의 사암을 잘 조화시켜 쌓은 벽면은 괜찮아 보였고 몇 가지 장식 조각상과 곡선으로 만든 창문, 지붕 장식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특별히 다른 유럽 성당들 보다 화려할 것은 없었다. 멋드러진 건물이기는 하되, 언뜻 봐서는 꽤 흔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크지 않은 건물로 보였다.

 나는 전체적인 윤곽과 높이, 너비를 짐작할 수 있는 사진을 찍은 뒤에, 건물의 세부도 찍기 시작했다. 찬찬히 살펴 보니,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찾아낼 수 있었다. 건물 외관에 달려 있는 장식 조각들이 모두 한 가지 주제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모든 장식은 천사나 성 조지가 악마를 무찌르고 있는 조각이었다.

 강아지 만한 크기로 천사가 악마를 짓밟고 있는 돌조각이 벽에 달려 있기도 했고, 문 위의 돌에는 용의 심장에 창을 찌르는 기사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한편 창문에 달린 청동 장식은 손바닥 만한 크기로 악마의 목을 베는 성 조지의 모양이었다. 한 조각상이 악마가 울부짖는 모습이면, 그 옆에는 그 악마를 쫓아 내는 병사 모습의 조각상이 붙어 있기도 했다. 조각상들은 아주 사실적인 모습이라고 부를 만한 정교한 기술은 아니었지만 다들 생생히 알아 볼 수 있는 정도는 되는 솜씨였다.

 그런데 그 중에 머리가 없는 기사의 조각상이 있었다.

 “저건 뭐지요?”

 나는 머리 없는 조각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조각상은 가장 흉측하게 생긴 악마를 어떤 갑옷 입은 기사가 무릎으로 누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목 위로 얼굴과 머리 부분이 달려 있지 않았다.

 “그게, 전설이 있지요.”

 시장은 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막상 설명을 시작하자, 그의 설명은 요점이 정확하고 줄거리만 짚어 나가면서도 목소리는 무슨 랩 노래를 하거나 불경을 외는 것처럼 리듬에 따라 줄줄 흘러 갔다. 그동안 지역 신문이나 방송과 인터뷰할 때 “시장님 마을에 대해 소개 해 주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수백번 씩 설명해 본 내용이지 싶었다.

 “중세 전설 중에 보면 다리나 탑, 건물을 짓는데 너무 커다란 것을 지으려고 하다 보니까 어려워서, 악마의 도움을 빌린다는 뭐 그런 이야기 많지 않습니까? 이 교회도 그런 부류의 일종입니다.

 사실 이 교회는 카톨릭 교회 성당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청교도, 개신교 교회도 아니지요. 그렇다고 정교회나 이슬람교 모스크인 것도 아닙니다. 저희 마을의 교회는 겉모습은 성당과 비슷합니다만, 사실 99년 전에 하늘에서 내려온 괴상한 빛을 보고 신비한 것을 알게 되었다는 어떤 좀 이상한 할머니가 전적으로 애를 써서 건설한 것입니다. 안 그래도 전쟁 중이라서 물자도 부족하고 기술자도 부족했는데, 할머니 혼자서 모든 일을 벌이다 보니 더더욱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중세 전설처럼 별로 오랜 옛날 일도 아니고 그렇게 거대한 건물도 아닌데, 그 할머니가 교회 건물을 완성하기 위해 악마의 도움을 받았다는 전설이 생겼습니다.

 고생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어느날 밤, 악마가 나타나 교회가 무너지지 않고 완성되도록 해 줄 테니, 대신에 교회 건물이 완성되면 처음으로 교회에 들어 오는 사람의 영혼을 자신에게 팔라고 한 것입니다. 도저히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할머니는 악마와 계약하는 것을 받아 들였고, 그 때문인지 교회 건설은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걱정이 점점 커졌습니다. 누가 완성된 교회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을 지는 모르지만 한 사람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꾀를 냈습니다. 바로, 영원히 교회를 완성시키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원래 교회의 설계도에는 바로 이쪽 면에 용감한 기사가 마귀를 무찌르는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 딱 하나만 완성시키지 않기로 하고 일부러 그 머리를 만들지 않은 것입니다.”

 거기까지 설명한 시장은 건물의 철문을 열고 나를 안으로 들어 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시장이 연 건물의 문을 붙잡고 바깥에서 그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안쪽에는 교회 십자가가 있어야 할만한 위치에 커다란 악마가 괴로워 머리를 부여 잡고 있는 나무 조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악마의 등에 불을 붙이고 있는 천사의 모습을 한 조각이 있었다. 다른 종교적 상징들은 그 위와 그 뒤에 달려 있었는데, 워낙 악마의 모습이 크고 격정적으로 보여서 다른 것은 눈에 잘 들어 오지도 않았다.

 “온통 악마를 무찌르고 악마를 이기는 모습의 조각으로 이 건물이 뒤덮여 있는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속았다고 생각한 악마는 건물 안으로 비집고 들어 와 할머니에게 따지려고 했는데, 할머니가 계약은 계약이라고 하면서 철문을 강하게 닫았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악마의 손가락 하나가 문에 치여 잘려 나갔습니다. 지금 문을 잡고 있는 선생님 손에도 뭔가 물컹한 것이 볼록 튀어나온 느낌이 나는 부분이 있지요? 그게 우리 전설에서 악마의 손가락 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얼른 철문에서 손을 뗐다. 나는 그게 무슨 가죽으로 된 장식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혀 장식 같지 않은 모양으로 별 쓸데 없는 자리에 달려 있었다.

 시장은 나를 보고 웃었다.

 “아니오. 괜찮습니다. 그냥 전설 입니다. 아마 그것은 악마의 손가락이 아니라, 문이 닫힐 때 소리를 크게 나지 않게 하려고 가죽을 테두리에 씌우려고 하다가 실패한 자국일 겁니다.”

 시장은 호텔에서 하루를 묵은 뒤 그 다음날부터 차차 일을 하기로 하고, 작은 골목길 끝에 있는 숙소로 나를 안내 했다.

 따라 가면서 보니, 광장 한 가운데에는 악마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할머니의 작은 청동상이 있었다. 동상 자체는 자그마했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다들 아는 이야기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인지, 동상 바닥의 받침이 큼직하고 바닥돌은 아주 널찍했다.

 그날 밤 호텔에서 나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나무 널빤지를 깔아 만든 오래된 방의 바닥이 몸을 뒤척일 때마다 삐걱거려서 밤새 신경을 거슬리기도 했는데다가, 악마가 자기 손가락을 내어 놓으라고 소리 지르는 악몽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내가 잠을 잤거나 말거나 일은 계속 굴러가고 있었다. 새벽 시간 동안 이미 한국에서 사장이 잔뜩 작업을 해 놓은 상태였다. 사장은 대충 눈에 뜨이는 대로 찍은 사진 몇 장만으로도 얼마든지 일을 벌일 수 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해서 재건축 허가를 받고 만약에 허가가 잘 나오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어디를 어떻게 해서 압력을 가하겠다는 작전을 벌써 몇 단계에 걸쳐 상세하게 짜 놓은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언제쯤 어디부터 철거 공사를 시작해서, 어떤 모양의 어느 정도 크기가 되는 건물을 세우겠다는 계획까지 이야기 하고 있었다.

 사장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엇을 받으면 좋은 지 이야기하는 어린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99년 된 교회 건물을 없애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올린다는 계획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 하기 시작하자, 사장은 언제나 오직 그 생각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장이 이메일을 보낸 시각을 보면, 아침을 먹다가도, 출근 하는 길에도, 점심 때나 저녁 때나 한 밤 중에나 새벽에도 사장은 이번 재건축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역할은 흥분한 사장의 목소리를 정제하여 어느 정도 가라 앉혀 시장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되었다. 사장은 전화를 걸어 가능하면 오늘 당장 벨기에 법을 아는 싸구려 변호사 한 명을 구해 보고 할 수 있다면 내일 당장 기관에 서류를 제출하자고 떠들었다. 그러면 나는 그 말을 듣고 “빠르면 일주일 내에도 움직일 수 있겠다”는 정도로 적당히 애매하게 풀어서 시장에게 설명을 해 주는 것이었다. 애초에 내가 재건축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기도 했지만 나에게 이번 일은 건축이나 법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인간 심리에 관한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이거 대박이야. 완전 대박이야. 내가 은마 아파트 재건축 돌아 가는 꼴 보면서, 내가 돈만 조금만 더 있으면 저꼴 그냥 보고 있지는 않는건데…. 날마다 그랬던거, 알지? 이야, 진짜 그때 생각 난다. 대박이야 대박. 이번에 그때 한을 푼다고. 한을.”

 사장이 그렇게 전화기에 대고 말했던 날, 나는 시장과 같이 저녁을 먹으며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투자 금액 대비 은행 이자 이상으로는 이익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에 담당 전문가 분들이 이런 비슷한 시나리오로 그 동안 마침 대비하고 준비하고 있어서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 되고요.”

 그러나 그 정도만으로도 시장은 매우 만족했다. 시장은 벨기에의 자기 지역 사람들은 발전에 대한 꿈이 너무 부족하다고 답답해 했는데, 이 정도로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해 주는 회사를 만나 기쁘다는 것이다.

 시장은 상당히 솔직하게 자기 심정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저는 나중에는 유럽 의회로 가서 일하고 싶기도 하거든요. 한 나라에 대한 정치만 하는 게 아니라, 온 유럽에 대한 정치를 하는 거죠. 그런데 저 같은 젊은 정치인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인 것도 아닌데 어디서 경력을 시작할 수 있겠습니다. 겨우겨우 선거 이길만한 데를 찾아서 이런 조그마한 마을 시장 자리 얻은 것도 저한테는 기적이죠. 기적.

 그래서 저는 뭔가 정말 확 바뀌는 것을 좀 충격적으로 보여 주고 싶거든요. 그래야 되고요. 젊은 시장이 과감하게 일을 저질러서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풍차가 선풍기처럼 돈다. 이런 말이 나오게 하고 싶다고요.”

 나는 “정치판에서 젊은 사람이 뜻을 펴기가 여러 모로 쉽지가 않은데 대단하시다”고 대충 시장을 추켜 세워 주었다.

 우리는 한 동안 말이 없이 있었다. 시장이 한참 떠들었으니 내가 떠들 차례이기는 했는데, 어느 정도까지 시장에게 아부를 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당신 같은 사람이라면 다시 유럽을 하나로 통일해 거대한 제국을 만들어 과거 로마 제국에 버금가는 모양으로 바꾸어 놓을 거라고 말하자니, 좀 돈 사람 같이 들릴 것 같았고, 그렇다고 “한국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러저러한데 저러저러하거든요.”하고 판에 박힌 소리를 하자니 이 마을과 서울 내가 사는 동네에 닮은 것이라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 주민들은 주변에 산이 너무 없어 평지 뿐이라며 여름에는 산을 보고 싶다고 비행기를 타고 오스트리아나 스위스로 3주간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었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그 자체가 산비탈에 있었고 여름 방학이 되면 아이들을 해병대 캠프에 보내는 곳이었다.

 나는 시장의 입만 쳐다 보고 있기가 뭐해서 괜히 멍하니 먼 곳을 보았다. 광장 반대편, 맥주집의 처마 밑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체구가 작은 할아버지 한 명이 자기 몸집 보다도 더 큰 개의 줄을 잡고 앉아 있기도 했고, 서너명씩 애들을 몰고 나온 두 가족이 나란히 앉아 뭐가 즐거운지 맥주 잔을 들고 깔깔깔 웃어 대기도 했다. 아이들은 광장을 가로 질러 뛰어 다니곤 했는데, 그냥 제 부모 옆의 가장 자리에서 놀아도 될텐데 꼭 광장 가운데 할머니 동상이 있는 즈음까지 와서 소리를 지르거나 뜀뛰기를 하곤 했다. 중앙에서 그렇게 놀고 있으니, 광장을 둘러싼 사방의 가게 사람들이 무슨 공연을 보는 것처럼 모두 뛰어 다니는 아이들을 쳐다 보고 있었다.

 “왜 애-“

 내가 “왜 애들은 곱게 구석에서 안 놀고 꼭 이렇게 중앙에 다 보이는데 뛰어 가서 저렇게 소리를 지를까요? 광장 중앙에 도대체 뭐가 있다고.”하고 물으며 화제를 돌리려고 했는데, 마침 같은 순간 시장도 동시에 말을 꺼냈다.

 나는 내 말이 아무 쓸모 없이 단지 말 없는 시간이 어색해서 꺼내는 말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꺼이 시장에게 먼저 말을 하라고 했다.

 “제가 이번 재건축 추진하는 것도 그런 것 때문이에요. 마을이 계속 이대로 유지는 되고 있으니까, 다들 별로 바꾸고 싶어 하지를 않거든요.

 그렇지만, 제가 여기다가 싸고 방이 많은 건물을 지으면 그게 여기 사람들을 정말로 도울 수 있을 겁니다. 가게 세를 낼 형편이 안되지만 사업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더 싼 월세로 가게를 줄 수 있을 거고, 아이를 키울 엄두가 안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임대 주택을 줄 수가 있을 겁니다. 문화도 좋고, 전통도 좋지만, 당장 힘든 사람들이 있으면 좀 희생해서라도 도와야 된다, 뭐 그런 걸 보여 주고 싶어요.”

 노을 빛이 시장의 눈에 비쳤다. 해가 지고 있어서, 마침 어스름한 가운데에 모든 건물들이 하나 둘 등불을 밝히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그 모습은 대단히 진지해 보였다.

 악마 조각상이 많은 전설 깃든 옛 교회 하나를 파괴하는 대신에, 그 동안 적당히 고생하며 버티라고 했던 같은 마을의 가난한 이웃에게 일자리와 집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시장의 이념이었다. 나는 여전히 뭐라고 말을 이어 나가지 못해 말 없이 동상 곁에서 노는 아이들만 보고 있었지만, 그때부터는 그러고 있어도 밤이 다 되도록 별로 어색하지가 않았다.

 다음날부터 나는 좀 더 열심히 일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알아낼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섰다. 그래서 뭔가 열심히 해 보려고 했다. 예를 들어 해체한 교회 건물을 그냥 매립지에 갖다 버린 것이 아니라 모두 인근 박물관에 기증하여 보존 되도록 한 것은 주로 내가 노력해서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 별 일은 아니었다. 정말 기막힌 일을 해 내는 사람은 역시 서울에 있는 사장이었다. 사장은 재건축 허가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무슨 바둑이나 체스의 수를 읽는 것처럼 예상하고 대비했다.

 “그래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그러면 이런 수가 있지.”

 사장이 이렇게 말할 때, 그것이 장기를 두면서 하는 말인지, 건축물 안전 점검 대장 심사 평가서를 보고 하는 말인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재건축에 대해서는 사장이 벨기에 당국 보다는 더 고수였다. 얍삽함의 정도에서 둘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사장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고, 이곳 당국의 공무원들은 “내 코가 너무 커서 보기 좋으라고 조금 베어 준 것일까?”하고 갸우뚱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사장은 서울에서 직접 연락을 해서 건물이 무너질 것 같아서 불안하다고 불평 하는 주변 사람 네 사람의 의견서를 받아 냈고, 일본 간사이 지방의 아주 오래된 사무실 하나를 연결 해서 “만약 화산 폭발이 있을 경우 건물은 매우 취약함”이라는 안전 진단 결과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화산은 2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지만, 사장은 그런 것 따위는 따지지 않았다. 사장에게 필요한 것은 수십 개의 서류에 서로 떨어져 있는 몇 개의 단어들이었고, 원하는 단어 들이 충분히 서류에 흩어져 있으면 그것을 재료로 해서 마치 예술품을 빚어 내듯 신청서와 지원서를 꾸려낼 수 있었다. 나는 사장이 이런 정도로 재주가 있을 줄은 몰랐기에 더욱 놀랐다. 한 인간의 경험과 열정이 폭발적으로 만나면, 얼마나 땅투기를 잘 할 수 있는지, 나는 이전에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실제로 교회 해체 작업이 진행 되고, 새 건물의 공사가 진행 되는 중에도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사장은 자기 자신과 성난 두 손님에게 넉넉한 투기 이익을 누릴 수 있을 만큼 새 건물을 올릴 수 있었고, 시장으로서는 그 정도를 떼어 주고도 본인에게 생색이 날 만큼 넉넉한 건물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아쉬워하는 사람들이라면, 평소 악마를 무찌르는 모습의 조각상이 영험하다고 생각해서 기도를 하러 오던 지역 주민들 정도였다. 예전 조각상을 보려면 한참 떨어진 주변 대도시의 박물관으로 가야 했고, 거기에 간다고 해도 무슨 대가의 작품도 아니고 크게 오래된 것도 아닌 그 조각상들은 볼품 없이 초라한 구석에 박혀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야 기분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박물관에서 마을 교회의 조각상들은 진정한 걸작들과 비교 되어 보였다. 엉뚱하게도 조각상 앞에 가서 둘째 아들 입학 시험을 잘 보라고 기도하러 갔다가 램브란트나 로댕의 팬이 되어 돌아 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처음 전설 속의 할머니가 교회를 세운 지 100년 만에 그 자리에는 재건축 된 새 건물이 세워졌다. 악마와 악마를 무찌르는 사람의 모습, 머리 없는 기사와 묘하게 흔적만 남은 가죽 장식으로 치장 되었던 지난 세기 초의 건물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철근과 콘크리트로 가장 값싸게 지은 네모 반듯하고 판판하게 생긴 13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다.

 건물이 완성된 것은 일요일 오후였다. 시장은 월요일 오전이 되면 지역 신문 기자들을 불러 공식적으로 완공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같이 일하는 마지막 저녁을 아쉬워 하며 식사를 같이 했다. 식사를 같이 하다 보니, 또 맥주를 한 두 잔 같이 하게 되었고, 맥주를 같이 하다 보니 할 이야기가 점차 더 많아져서 우리는 더 많은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밤이 깊었고, 하늘에는 별들이 떠올랐다. 일요일 늦게까지 놀며 취하는 술꾼은 드물었기에 그 무렵이 되자 광장의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우리가 식사를 하던 가게에서도 이제는 문을 닫을 시각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되니 주위는 너무나 조용해졌다. 광장에 있는 식당과 술집들을 제외하면 일요일 오후부터 진작에 마을의 다른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애초에 24시간 편의점이나 새벽에도 문을 여는 해장국집 같은 것은 전혀 없는 동네였다. 거리가 텅빈 마을의 적막이 심해서, 마치 세상이 모두 끝나고 사람들은 다들 천국으로 가 버린 것 아닌가 싶었다.

 너무 조용해서, 건물 밖에 펴 놓았던 탁자와 의자들을 치우느라 드르륵 끌고 가는 소리가 텅빈 광장에 커다랗게 메아리치며 울렸다. 그리고 났더니, 아무것도 없는 빈 곳에 가득한 밤하늘 별빛과 술 취한 작은 마을 시장과 술 취한 부동산 사무실의 아르바이트생 밖에 없었다.

 “저기 앉아서 마시지요.”

 가게가 문을 닫기 전에 병 맥주 몇 병을 먼저 사 놓은 시장이 말했다. 시장은 완성된 건물 앞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찬성했고, 우리는 우리가 지은 건물 시멘트 바닥에 앉아 병뚜껑을 땄다. 원래 가게에서 팔던 맥주도 아니었고 그냥 대충 쌓여 있던 여기 저기 맥주를 적당한 값에 손에 넣은 것이어서 무슨 맛인 줄도 모를 판이었지만 싫지 않았다.

 “좀 불편하지 않아요?”

 “뭐 약간 불편하기는 한데.”

 시장은 치마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바닥에 주저 앉기가 불편한 듯 했다. 우리는 같이 건물 안을 쳐다 보았다. 건물 유리문을 열고 들어 가면 입구에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다시 일어 나서 건물 안으로 들어 갔다.

 그런데 건물 안으로 첫발을 내딛었을 때, 갑자기 아무도 없는 광장이 통째로 웅웅거리면서 울리는 소리가 났다.

 “뭐죠?”

 놀라서 되돌아 보니, 광장 가운데에 있던 할머니와 악마가 싸우고 있는 동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할머니 동상이나 악마 동상이 입을 벌려 소리를 내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소리가 컸다. 그러나, 소리는 동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동상 주변의 바닥 전체가 흔들리며 소리가 나고 있었다.

 얼마 후, 동상 아래 바닥에서 하얀 빛이 새어 나왔다.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밝은 흰 빛이었지만 또 주변을 밝힐 만큼 널리 퍼지는 빛은 아닌 신기한 것이었다. 빛은 점점 커졌고, 그와 함께 동상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악마가 하늘로 날아 오르고 할머니가 그걸 붙들고 딸려 올라 가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동상이 하늘로 뜬 것이 아니라, 동상을 바치고 있던 그 아래의 받침대와 바닥이 하늘로 올라왔고 동상은 그 위에 올려져 있었던 것이었다.

 “조심하세요.”

 온통 주변이 떨리는 통에 우리는 똑바로 서 있기도 어려웠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부축했다. 그러면서도 둘 다 눈은 광장 중앙을 향하고 있었다.

 광장 바닥에 깔린 벽돌들을 뚫고, 할머니 동상의 바닥돌 아래에 묻혀 있던 것이 땅 위로 올라 왔다. 그것은 큼지막한 빛나는 물체였다. 사장이라면 단숨에 10평 크기라거나 15평 크기라거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겠지만 당황한 내 눈에는 그냥 집 한 채 만큼 커 보이는 정도였다. 그 빛나는 물체는 둥글고 납작해서 원반이나 접시처럼 생긴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접시 모양의 물체가 바닥에서 완전히 솟아 올랐을 때, 그 안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보통 사람 키 절반을 조금 넘을까 싶어 보였는데, 꼭 야광 스티커 같은 빛을 온몸에서 내뿜고 있었다.

 “저거 악마… 아니에요?”

 시장이 말했다. 걸어 나온 그것은 과연 우리가 부순 건물에서 보았던 악마와 아주 비슷해 보였다.

 똑같지는 않았다. 뱀 같은 혓바닥이나 박쥐 같은 귀는 없었다. 대신에 지상의 어느 동물과도 비슷하지 않은 혓바닥과 지상의 어느 동물과도 비슷하지 않은 귀가 달려 있었다. 눈빛도 불처럼 이글거린다기 보다는 곤충의 눈처럼 초점이 없이 그냥 까매 보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눈이 있을 법한 위치에 달려 있는 것이 과연 눈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악마 조각상을 보았을 때, 우리는 막연히 색깔이 검은 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의 색깔은 회색에 가까웠다.

 그러나 한 가지 특징 만은 아주 치명적으로 우리 마음 속의 모습과 똑같아 보였다. 그것의 왼손에는 손가락이 열 두 개가 있었지만, 오른손에는 손가락이 열 한 개 밖에 없었다는 특징이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 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치밀었지만, 건물 안으로 몰린 형국이어서 달리 갈 곳도 없었다.

 “드디어, 완공 되었네요.”

 그것이 우리를 향해 말을 했다. 말을 했다고는 하지만 입을 열지도 않았고,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한국어나 네델란드어나 영어를 쓴 것도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 수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것은 고개를 움직여 우리의 주상복합 건물을 한 번 둘러 보는 듯이 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100년만에 드디어 완공이 되었으니 축하 드립니다. 이제 계약대로 잔금을 치르셔야 겠지요. 잔금은 가장 먼저 이 건물에 들어 오신 분의 영혼입니다.”

 “잠깐만요. 이게 뭔데요?”

 “계약을 모르신다고 하시지는 않겠지요? 이 마을 광장 중앙에 있는 동상하며, 시장님이 계속 전해 주신 이야기하며, 잘 아시는 조건 아닙니까? 건물이 완성 되면, 대가로 처음 들어 오신 분 영혼을 주셔야 되는 겁니다.”

 나는 무섭다 못해 멍멍할 정도였다. 안 그래도 맥주에 진탕 취해 있었는데, 정신 속을 계속 긁어 내리는 형식으로 그것이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멍한 느낌은 더 심해졌다. 다행히 시장은 낯선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한 정치인으로 단련된 사람이었기에 나보다는 조금 더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시장이 물었다.

 “그, 영혼을 팔아 넘긴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제가 애초에 여기까지 온 목적이 지구인 정신 활동에 대해서 연구를 하려고 온 거 거든요. 그래서 적당한 샘플을 구해서 저희 행성으로 갖고 돌아 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저희 행성의 연구실에 지구인 정신을 보관해 놓고, 다른 행성의 지적 생명체는 어떤 정신을 갖고 있는지 연구를 하는 거죠. 뭐 여러가지 실험을 할 겁니다. 공포도 줘 보고, 고통도 줘 보고, 세뇌도 시켜 보고, 얼마나 잘 버티나 이것저것 괴롭혀 보기도 하고. 뭐 실험의 종류라면 한 42만6천년 정도는 연속으로 할 수 있을 만한 다양한 실험을 준비해 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시장은 바닥에 주저 앉았다. 이제 시장도 나만큼 멍멍해졌다.

 “사실 저 할머니께서 건물 짓는 걸 도와 달라고 하셨을 때, 저도 쉽지 않았죠. 제가 지구인 건물 짓는 것에 대해 뭐 아는 게 있어야죠. 그래서 계약서에 그런 독소 조항이 있는 줄도 모르고 덥석 계약을 했고. 솔직히 너무 하지 않습니까? 건물이 통재로 다 되어 있는데 겉면 장식에 있는 조각상 머리 하나 안 만들었다고 완공이 아니라니.

 80년전까지는 원망도 많이 했어요. 이거 완전 사기 아니냐고. 손가락이 잘렸는데 그게 산재보험으로 처리도 안 되더라고요. 대신에 그 동안 지구인들의 부동산 거래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지요. 뭐, 이제는 지나간 일은 문화의 차이려니, 하고 이해 합니다. 지구인들이 부동산으로 이것저것 할 때는 이런 식으로 사기 비슷한 것 잘 하더라고요. 아, 자꾸 사기라고 불러서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뭐, 이제 괜찮아요. 이해 합니다.”

 “할머니가 건물을 지을 때 어떻게 도와 주신 건데요? 벽에 무너지지 않는 마법이라도 걸었던 건가요?”

 “저희가 기술이 지구에 비해 많이 발전한 것은 맞지만 그때 처음 지구에 왔을 때 지구의 건축에 대해서 제가 뭘 알았겠어요? 그냥 할머니께서 시키시는대로 벽돌 나르라면 벽돌 나르고, 시멘트랑 모래랑 섞으라고 하면 섞고. 할머니께서 사람들 눈에 띄면 안된다고 밤에 일을 주로 시키시더라고요. 할머니께서 십장 역할을 하고 제가 힘든 일 하고 뭐 그랬죠.”

 내가 상상했던 “악마의 도움으로 건설된 건물”이라는 이야기와는 많이 달랐지만, 오히려 원한은 더 깊을 것처럼 들리는 이야기였다.

 “두 분 중에 누가 먼저 들어 오셨죠?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저도 정확하게 못 봐서요. 먼저 오신 분 정신을 제가 빨아 당겨서 저희 행성으로 갖고 가겠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 보았다. 우리도 누가 먼저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용감하게 내가 먼저 들어 왔다고 소리쳐 보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무서웠다. 대신 그래서 비겁한 소리가 먼저 입에서 나왔다.

 “잠깐, 잠깐. 그런데, 아직 이 건물에 인터넷 회선이 안 들어 와 있다고요. 요즘 건물 짓는데 인터넷이 안 깔려 있다면 어디 그걸 건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아직도 정확하게 따지자면 완공된 것은 아닐 겁니다. 나중에 인터넷 다 깔리고 나면 그때 다시 와 주시죠.”

 내 말을 듣고, 그것은 웃는 소리에 해당하는 어떤 느낌을 우리에게 주었다. 소리도 안 났고 표정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지만, 전해지는 그 느낌은 진짜 무서웠다. 정말 악마의 웃음소리 같았다.

 “유쾌한 농담을 잘 하시네요. 옛 추억을 회상하는 지구인의 농담 방식입니까? 제가 100년 동안 한 게 건축이랑 부동산 관련 규정을 따져 본 겁니다. 인터넷 회선은 법령상 건축물의 일부가 아니라, 제B종 부가 편의 시설에 해당 되지요. 제A종과 제C종 4항의 시설이라면 모를까, 제B종 부가 편의 시설은 건축물의 완공 여부를 판정하는데 법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한 손가락이 없는 손을 우리 쪽으로 향했다. 이제 그 손으로 어떻게 잡아 채면 거기에 우리 둘 중 한 명의 영혼이 붙잡힐 것 같았다.

 나는 시장을 바라 보았다. 시장도 나를 보고 있었다. 공포감에 짓눌려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시장 역시 나와 비슷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만약 내 영혼이 팔리게 된다면 그래도 보통 사람은 도저히 구경해 보지 못할 곳을 구경하게 되는 셈이니,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피하지 못하면 즐기자고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만, 저것들의 목표 자체가 어떻게든 나를 즐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절망에 가득 찼다. 시장의 얼굴도 점점 더 큰 안타까움으로 빠져 들었다.

 “둘 중에 한 분으로 어서 정해 주셔야겠는데요. 아니면 제가 고르겠습니다.”

 그것이 말했다. 그때 나를 쳐다 보는 시장의 눈이 마지막 순간 갑자기 힘을 내뿜는 것 같았다.

 그녀는 대뜸 나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이 보세요. 재건축을 하라고 했더니, 이렇게 전에 있던 걸 싹 다 무시하고 그냥 막 밀어 버리고 아무 상관도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만 덜렁하니 이렇게 세워 놓으면 어떡해요? 지금까지 백년 가까이 계속 여기서 지나다니면서 사람들이 보고 겪은 게 있는데. 지금까지 이 공간에 있었던 전통이나, 역사나, 경험에 대한 아무 고려가 없잖아요. 별게 아니라도 이 자리에 있던 건물에 그 개성도 있었고, 지금까지 그 안팎에서 건물에 얽혀 있던 사람들 사연도 몇 십년 동안 있었는데. 그저 그냥 땅값으로 돈만 많이 챙길 모양으로 아무 개성 없이 어디에나 있는 천 개, 만 개 있는 건물만 세우면 어쩌냐고요. 이런 걸 갖고 뭘 만들어 완성했다고 할 수가 있어요? 이게 무슨 재건축이냐고요. 그냥 파괴 아니에요? 원래 있던 걸 다 부수기만 했지, 이렇게 일을 저질러 놓은 걸 갖고 뭘 다시 재건축 했다고 할 수가 있냐고요. 이런 건 완성이 아니라 그냥 돈 벌려고 오염시키는 공해죠. 건축 공해!”

 시장의 성난 목소리는 아주 진실하게 들렸고 성심을 다해 진짜 감정을 내뿜는 것처럼 들렸다. 지금까지 우리가 같이 일했던 사연은 다 뭔지, 어떤 것이 진짜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였다. 마침 위기의 순간 마다 발현되어 온 내 안의 비굴함이 깨어나 용솟음쳐, 나는 시장에게 계속 굽신거리며 “죄송합니다.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밖에 안 됐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고 빌었다.

 이 꼴을 보고 우리 앞에 서 있던 그 회색의 빛나는 것은 분위기가 바뀌었다. 실제 눈으로 보이는 모양이 변화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마음으로 느끼기에 그 얼굴이 시무룩하게 변한 것 같았다.

 “부정할 수가 없네요.”

 그것이 말했다. 그리고 돌아 서더니 “지구인들은 왜 이렇게 얍삽하지”라고 중얼거리면서, 울면서 되돌아 갔다. 그것이 돌아 가자 다시 원반 모양의 물체는 땅 속으로 들어 갔고, 치솟아 있던 돌더미와 할머니, 악마 동상도 원래 자리로 되돌아 갔다.

 잠시 후, 별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광장은 고요해졌다. 정말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 같았다. 할머니 동상이 들썩인 탓에 약간 더 기울어진 모양으로 바뀐 정도였다. 그나마 다음날 아침이 되자, 원래부터 그 정도 기울어져 있었던 것 아닌가 싶었다. 간밤에 있었던 일이 정말 있었던 일인지, 암스테르담에서 사온 맥주 중에 뭐 이상한 성분이 있어서 취해서 헛것을 본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하기까지 했다.

 어쨌거나 시장은 건물을 부수고 짓는 것에 얽힌 골치 아픈 문제로 조명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대충 덮어 놓고 넘어 가기로 했다. 서울의 사장 역시 일 끝냈으면 그냥 오라고 말했다. 다 끝난 마당에 돈 받고 손 씻어야지 투자한 사람들에게도 한 몫씩 챙겨 주지, 귀찮은 일에 휘말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칫 이 근처가 무슨 특별한 현상을 조사하기 위한 보존 구역이나 제한 구역으로 설정되면 큰일 난다는 점까지 지적 했다.

 다만 시장은 모든 마을의 공식 문서에서 “완공 기념식”이나 “공사 종료일”이라는 말을 쓰지 말고, “입주 기념식”이라든가 “입주 개시일”이라는 말을 대신 쓰라고 특별히 강조했다.

 그리고 요즘 사장은 중국어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

– 2016년, 헌터스빌에서
– 2016년, 역삼동에서

 
댓글 7
  • No Profile
    이지훈 16.09.30 23:28 댓글

    치마란 말이 나오기도 전에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젊은' 이라는 단어와 '여자'라는 단어랑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연결되어진 게 제 안의 뭔가를 뜻하는 거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군요

  • 이지훈님께
    No Profile
    곽재식 16.10.04 08:28 댓글

    사실 이번편은 제가 썼지만 막판에 악마를 물리치는 방법이 저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혹시 나중에 다른 곳에 다시 낼 기회가 있다면 결말을 조금 개선해 볼 수도 있지 않겠나 생각하며 틈틈히 떠올려 보고 있습니다.

  • No Profile
    百工 16.10.28 04:15 댓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악마(?)가 새로 지은 건물이 엉터리라고 납득하는 장면에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 百工님께
    No Profile
    곽재식 16.10.31 08:53 댓글

    다행입니다. 저는 그부분이 가장 어거지 같다고 생각했는데, 의도했던대로 웃어주셨으니 그나마 안심입니다.

  • No Profile
    연심 16.10.31 11:04 댓글 수정 삭제

    말씀드린대로 삭제하러 왔다가 대댓글 때문에 삭제불가로 나옵니다. 편집장님께서 코멘을 모두 지워주시면 좋겠지만 번거로우실 것 같아 스샷찍고 수정으로 지웁니다. 이 아래 따로 단 댓글은 스샷찍는 것을 깜박했네요. 혹시 못보셨다면, 별말 아니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으신 작품 많이 써주시기를 기원합니다. :D

  • 연심님께
    No Profile
    곽재식 16.10.31 19:35 댓글

    감상 감사합니다. 여기 올라온 제 초기작 중에는 밝고 즐거운 소설들이 널려 있으니 뭐든 골라잡아 즐거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No Profile
    청야 18.03.19 12:37 댓글

    항상 느끼는거지만 인간이 제일 얍삽합니다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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