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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프레임에 가두다

2016.06.30 23:5106.30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빨려들어간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재현은 입맛을 다셨다. 아침부터 백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공포영화를 보는데, 자꾸만 입맛이 썼다. 아는 만큼만 보일 영화였다. 모르는 만큼은 있는 그대로 기분나쁜 찜찜함으로 남았다. 

사람의 눈이란 제 좋을 대로만 보는 법이었다. 종이 위에 제멋대로 그은 선들을 사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 눈에 가장 편안하게 보이는 가상선 하나를 찾아내곤 했다 법이다. 이 영화도 그런 식이었다. 제멋대로 던져놓은 논리적이지 못한 단서들이 군데군데 한 줌씩 불친절하게 쌓여 있었다. 마치, 보는 사람이 알아서 제 입에 맞는 결론을 찾아내라는 듯이. 

- 넌 심심하지도 않아?

예전같으면 이런 영화를 보는 것도 지루하진 않았다. 재현은 영화를 그렇게 복잡하게 따져가며 보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몇 관점으로 보고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영화를 보고 나와 밥을 먹으면서, 재현은 그 영화를 입체적으로 머릿속에 다시 그려볼 수 있었다. 

- 아주 떠서 입에 넣어달라고 그래. 어휴.

그 말 그대로였다. 남이 해석한 것을 그대로 떠먹기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생각하지 않는다고, 게으르다고 뭐라 해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으레 그렇게 사니까. 그런 것을 게으르니 뭐니, 생각을 하라며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나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두 시간 넘게 영화를 보며, 재현의 눈에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게 하나는 있었다. 

카메라였다. 

앞부분부터 계속 나오던 카메라를 볼 때 마다, 재현은 무릎에 얹어 놓은 카메라 가방을 힘주어 쥐었다.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특히 마지막에 무당이 주인공 일가의 집에 들어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장면은 오싹하기까지 했다. 그 오싹함에 몸을 맡긴 채 잠시 전율하고 있는데, 앞자리 남자애가 눈치없이 떠들어댔다. 

“옛날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빼앗긴다고 생각했대.” 

대학생 쯤 되었을까. 제 여자친구에게 잘난 척을 하고 싶었는지, 영화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마구 떠벌여대는 것을 보면, 눈치도 없고 매너도 없는 놈이었다. 여자들이 그런 남자와 같이 있는 것을 창피해 하는 줄도 모르고, 그 정도라면 여자 눈에도 다 보였으리라는 것도 생각하지 못한 채, 그저 잘난 척 하는 어린애 같았다. 

“그러니까 저 장면은 무당이 주인공 일가의 영혼을 붙잡아 가두었다는 뜻이야.”

짜증이 돋았다.

재현은 앞좌석 의자를 구두끝으로 걷어찼다. 공포영화에 일일이 주석을 달다니, 재미없는 놈이었다. 적어도 그런 말은 영화 다 보고 나가서, 밖에서 할 것이지. 남자애는 아이 씨, 하고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가, 재현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닥쳤다. 

스탭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일어났다. 앞자리 커플은 스탭롤이 나오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나는 그 커플을 향해 눈총을 보내며 재현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오후에는 집회가 있었다. 어제 공지를 들은 대로, 두 시까지 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 집결하라고 문자가 와 있었다. 

아직 시간은 좀 남아 있었다. 점심을 먹고 종로에 가도 시간이 남을 성 싶었다. 

맛있는 거라도 먹을까. 

기왕 영화도 보러 나왔는데, 이대로 김밥천국에서 밥 먹고 일하러 가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그런 데 자주 가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 찍기 좋게 꾸며놓은 예쁜 파스타집에 가고 싶었다. 누가 보면 궁상스럽게 그런 데를 여자친구도 없이 혼자 가느냐고 놀려대겠지만. 상관없었다. 아는 사람 눈에 띄는 것만 아니면. 

파스타집 테이블에는 제법 실감나게 만들어진 조화가 꽂혀 있었다. 보르미올리 유리병 안에 레몬 조각이 동동 떠 있었다. 상큼하게 레몬향이 나는 냉수를 와인잔에 따라 마시며 재현은 이런 시간도 퍽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충동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테이블의 조화를, 그리고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병을 찍었다. 적당히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리기에 나쁘지 않았다. 사진 설명은 뭐, 그녀와 함께, 뭐 그런 식으로 적어놓으면 되겠지. 계 차석이 국수는 언제 먹여 줄 거냐고 호들갑을 떨 지도 모르겠다. 상관없었다. 몇 번의 연애를 더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국수 먹여 줄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입자 굵은 인화지에 마지막으로 흑백사진을 인화해 본 게 언제였더라.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아득했다. 한때는 익숙했던 그 정착액 냄새가 코 끝에 시렸다. 요즘은 사진관에서도 어지간하면 그런 번거로운 일은 하지 않는다. 예술한다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요새는 증명사진을 찍어도, DSLR로 찍어서 순식간에 포토샵으로 턱을 깎고, 보기 흉한 데는 지우개 툴로 적당히 문지른다. 굵은 팔뚝이나 넓은 어깨 같은 것은 프레임을 잡기에 따라 아예 티도 안 나게 가려버릴 수도 있다. 오죽하면 포토샵 다이어트라는 말이 다 있을까. 재현은 카메라를 내려다보았다. 세상은 더 좋아진 것일까, 아니면 심심해진 것일까. 

크고 묵직한 카메라는 회사 물건이었다. 평소에는 캐비닛 속에 얌전히 들어있지만, 이렇게 시위라든가, 집회라든가, 그런 게 있는 날이면 이렇게 볕을 보곤 했다. 대체 무슨 생각들인지. 재현은 혀를 찼다. 사람들은 무슨 불만이 그렇게나 많은지, 날씨가 좀 풀리자마자 하루가 멀다하고 저 광화문 광장에 모여들었다. 미세먼지 농도도 이렇게 높다는데, 사람을 좀 하루 집에서 푹 쉬게 내버려두는 법이 없이. 

- 너, 아직도 그러고 다니니?

두 달 전, 세월호 집회 때 연우를 만났다. 

헤어지고 3년이 지났는데도, 그 애는 그대로였다.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은지, 끼어들 데 안 끼어들 데 가리지 않고 쫓아다녔다. 똥오줌 못 가리는 애를 보는 것 같았다. 

- 그래, 너야 그게 밥벌이니 어쩔 수 없지.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연우는 늘 재현을 어린애 취급만 했다. 헤어진 것도, 연우의 그 오만함 때문이었다. 어린애처럼 설쳐대면서, 자기가 마치 세상사 돌아가는 이치를 다 알고 있어서 어떻게든 고칠 수 있다고 믿는 듯한 그 오만함. 

- 그래도 말이야, 사람이 죽었어. 

마치, 그런 집회에 나가면 죽을 사람이 안 죽기라도 한다는 듯이. 
 
 
 
 
 
  
 
 
“사진과 좋지.”

정보과 1계에 발령받은 첫 날 점심시간에, 계장은 웃으며 말했다. 

본래 신규 팀원을 받은 첫 날의 회식이란 사실 호구조사나 다름없는 것이다. 조금은 말을 아끼고, 조금은 살을 붙이며 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시간. 재현은 아주 잠시 머뭇거리다, 그저 짧고 솔직하게 말했다. 적당한 지방대학교 사진과를 나와서, 퇴근하고는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헬스장에 가는 평범한 인생은 아낄 것도 붙일 것도 없었다. 사진과에 나와서 경찰 노릇이라니, 이걸 어디다 쓰나 싶었는데. 계장은 살면서 한 번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는 그 전공을 듣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가 말이야, 사진을 잘 찍어야 해.”

부끄러운 뿌듯함이 느껴진 것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연우의 빈정거림이 울려펴졌다. 

- 정보과는, 일제 강점기로 치면 고등계야, 고등계. 

“형사과나 수사과는 가서 범인을 이렇게 잡는 게 일이지만, 우리는 잘 찍는 게 일이다. 응?”

사진을 잘 찍는 형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보과의 채증요원을 모집한다고, 인트라넷에 공지가 올라왔다. 지구대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서, 신청을 했다. 본서로 바로 들어올 수 있었던 데는 이, 사진과를 전공이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말을 나중에야 들었다. 기왕이면 전문적으로 잘 찍는 놈이 낫지, 하고 계장님이 직접 선택하셨다고. 

“종북좌파들, 좌익세력들, 걸핏하면 나라가 망할 듯이 시끄럽게 구는데. 응? 이렇게 가서 채증을 딱 해 오면, 벌금이든 뭐든 때릴 수가 있지.”

“말하자면 우린, 그 뭣이냐. 예방주사를 놓는 거야. 예방주사.”

계 차석이 웃으며 재현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점심시간이라, 소주는 네 사람이 앉은 이 테이블에 한 병만 시켰다. 

- 고등계 몰라? 독립 투사 잡는 고등계 형사 나까무라, 김두한 잡는 미와 경부, 그런 것 말이야. 넌 드라마도 안 보고 살았어?

낮에 마시는 술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고, 소주는 소독약처럼 쓰릿하게 속을 훑고 지나갔다. 그래도 재현은 한 잔 더 받았다. 머릿속에 울리는 연우의 목소리를 지우기 위해서. 

나는 선택받았다. 써먹을 일 없을 줄 알았던 내 전공 덕분으로. 재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뿌듯한 마음에 찬물을 끼얹은 듯 서늘하고 쓰라렸다. 소주병에 비친 제 얼굴은 묘하게 일그러져 보였다. 잠이 확 달아날 만큼. 

“예방주사요?”

“그래. 아니, 지금이 80년대도 아니고 말야. 거기 나오는 그 많은 사람이 다 강성이겠어? 선동하는 놈은 한둘이고, 나머지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나오는 거지.”

계 차석이 낄낄 웃었다.

“아주 골수 강성 빨갱이라면 모를까, 그렇게 분위기 쓸려 나온 보통 사람들은 경찰서에서 신호위반 딱지만 날아와도 몸을 사려요. 경찰서에서 법원에서 한두 번 서류 날아오고 그러면, 어지간한 강성 아니면 다 제풀에 그만둔다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자꾸 이상한 물이 들지 않게 관리하는거야, 관리. 쓸데없이 길바닥 기어나올 시간에 그냥 집에서 발 뻗고 잠이나 자는 게 낫다고, 확실하게 가르쳐 주는거라, 이거지.

“아니, 근데 요즘들어 그 인터넷 말이야. 그런 거 보고 선동당해 나오는 놈들은 왜 또 그렇게 많아.”

“그러니까 SNS죠, 계장님도 페이스북 좀 하시라니까.”

“이젠 그 뭐야, 경찰이 검문하면 어떻게 하라고 카드뉴스로 뿌리지 않나, 앱으로 만들지 않나. 번거롭게 꼬치꼬치. 뭐 하나만 빼먹어도 청문에다가 찔러버리지 않나. 시끄러운 놈들이 너무 많아. 에이.”

“원칙적으로야 틀린 말은 아니죠.”

“틀리지 않긴 뭐가 틀리지 않아.”

- 7, 80년 전 같았으면 독립투사 잡으러 다니고 그랬겠다, 너?

연우라면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녀석이라면 이런 상황을 듣고 있는 것 조차 할 수 없었을 거다. 어린애니까. 나를 참을성 없는 어린애 취급하면서도, 진짜 어린애는 늘 그 녀석이었으니까. 재현은 연우의 비웃는 듯한 표정을 떠올리며 입을 다물었다. 계 차석이 어깨를 두드렸다. 

“여튼, 집회시위 신고 했으니까 괜찮다고, 경찰이 불법 저지르는 거라고 그러는 놈들이 있는데. 경찰이 불법은 무슨 불법이야. 다 치안 유지를 위해서 하는 일이지.”

“예, 그렇습니다.”

“법에 어긋나게 잡아들이고, 그런 거 없어. 지금이 무슨 7, 80년대야. 안 되면 도로교통법이라도 적용하면 다 거를 수 있으니까, 넌 사진이나 잘 찍어.”

연우라면, 화를 냈을 것이다. 

수갑을 들고 범인을 잡는 대신, 카메라를 든다. 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시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마치 사진을 찍어, 사람의 영혼을 카메라로 붙잡듯이. 사진 속에 가둬버리듯, 그렇게 사진에 찍힌 사람들에게 소환장을 보낼 것이다. 경찰에서, 법원에서, 끌려다니며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하고 반성문을 받을 것이다. 

더러는 벌금을 물릴 것이다. 그거 못 내서 목 매달아 죽지는 않을 만큼, 하지만 소시민이 눈 하나 깜짝 않고 내기에는 가슴이 묵직해 질 만큼을. 

- 쌍차라고 들어는 봤어? 

연우가 빈정거렸다. 자기들이 해고해놓고는, 해고당한 노동자에게 끝내 47억을 배상하라고 그랬어. 미친 놈들이지. 

KTX 노동자들 말야. 신문에서 봤지? 정규직으로 고용해준다고 뽑아다가 비정규직으로 쓰고 버렸잖아. 그때 그 사람들, 스튜어디스 될 사람들이 KTX로 간다고들 떠들썩했지. 그만큼 고스펙인 사람들이, 안정된 직장이라는 말에 그만큼 몰렸는데. 흔한 이야기라고? 비정규직이 되었다고 다 그렇게 들고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 아휴, 공무원은 다르네. 그렇게 팔자 좋은 소리도 하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중간에 승소했을 때 정산받았던 돈. 그거 8천만원, 이번에 다시 내놓으라고 판결이 났어. 8천만원, 그래, 그게 어디 쉬운 돈이니? 그래서 결혼해서 애 낳고 살던 그때 그 승무원이 자살했잖아. 자기 가족에게 부담 지울까봐서. 겨우 돌이나 된 어린애를 남겨 두고서. 

씨발, 그 돈 갖고 목 매달아 죽지 않는다고? 

누가 그렇게 무식한 소리를 한 대? 너희 계장? 아, 그래. 박봉의 공무원이니 어쩌니 해도, 평생 월급 한 번 안 밀려봤을 사람이니까 그런 말을 하지. 야, 윤재현. 사람은 말야, 당장 100만원이 없어서 죽을 수도 있는 게 사람이야.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딸린 가족들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왜 주말에 시위하러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선동을 당하는 것 같다고? 야,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이 몇 프로인지 알아? 

그 사람들이 시간이 많고 돈이 많아서 거리로 나오는 게 아냐. 너무너무 힘들어서 못 살겠으니까, 살려달라고 소리지르러 나오는 거라고. 넌 어쩌면 그렇게 애가, 제 발 앞 밖에는 못 보니? 전에는 안 그러더니. 그 고리타분한 조직에 들어가 있으면, 멀쩡한 사람도 그렇게 앞뒤가 꽉 막히는 거니? 

왜, 언제까지나 강한 쪽에만 설 수 있을 것 같아? 연우의 목소리가 집요하게 그를 몰아세웠다. 

그만해. 재현은 고개를 저었다. 연우가 했던 말들과 하지도 않았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뒤섞여, 그를 내려다보며 소곤거리고 있었다. 이래서 술 같은 것은 마시지 말았어야 했다. 술을 마시면, 이렇게 그림자까지 따라올 만큼 구체적으로 그려진 그 애가 제 뒤통수 바로 뒤에서 소곤거리니까. 

그만 해 둬. 

필사적으로, 마음 속으로 외쳤다. 그만 해. 난 이 일이 소중해. 내가 무슨 조현병 환자야. 왜 눈 앞에 있지도 않은 네가, 자꾸 내게 잔소리를 하는데. 이런 일로 병원에라도 가야 해? 약이라도 먹어야 해? 재현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말대꾸를 했다. 
 
 
 
 
 
 
 
 
그날 이후, 카메라를 만질 때 마다 연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래된 필름 카메라의 필름을 갈아끼울 때, 회사의 DSLR의 메모리를 갈아끼울 때. 묵직한 배터리들을 카메라 가방에서 모두 꺼내어, 마치 총알로 탄창을 채우듯이 전원을 줄줄이 연결해놓을 때, 어김없이 그 목소리들은 그를 향해 빈정거렸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내, 연우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처음에는 두꺼운 경찰차벽 밖에서, 그 다음에는 인파 속에 섞여서 시위대 안으로 밀고들어간 채로, 마치 사람들의 영혼을 훔치듯이 사진을 찍었다. 프레임 안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작고 멍했으며, 남들이 하자는 대로 줄줄이 따라가 벼랑에서 몸을 던질 레밍처럼 초라해 보였다. 생각해보니 그 레밍떼의 이야기를 들려 준 것도 연우였다. 
저기, 거기요.”

누군가가 재현의 어깨를 쳤다. 마른침이 꿀꺽 넘어가 목울대가 울렸다. 

그럴 리가 없어. 속으로 중얼거리며 재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연우가 아니었다. 시위대의 집행부, 소위 강성이라도 되는 것인지, 시위대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젊은 여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찍으셔서요.”

“예?”

“프레스 명찰도 없고......”

어느새 몇몇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재현은 가짜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요즘 우후죽순처럼 인터넷 언론사들이 생겨난 것을 틈타, 이름도 직함도 회사 이름까지도 적당히 만들어 낸 가짜였다. 이대로 넘어가주면 좋을텐데. 집행부들은 그를 빙 둘러쌌다. 

“카메라 보여줘 보세요.”

“이거 사이트 접속이 안되는데......”

“아저씨 정말 기자 맞아요?”

“아니, 기자라도 이런 걸 찍으면 안 되죠.”

“기자라고, 경찰이 잘못하는 것만 찍으라는 법 있어요?”

재현은 필사적으로 항변했다. 메모리 카드에 담긴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집행부들은 저마다 수군거렸다. 

한 대만 때려라. 재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몸에 손이 닿으면, 바로 카메라를 끌어안고 나뒹굴 참이었다. 흥분한 시위대가 기자를 두들겨 팼다고 언론에 내보내는 건 일도 아니다. 눈 딱 감고 저질러 버리면 된다. 눈 딱 감고. 그때 누군가가 재현에게 알은 체를 했다. 

“아, 저 형 이상한 사람 아냐.”

누굴까. 재현은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았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남자애였다. 

“연우 형 남친이잖아. 아저씨, 맞죠?”

재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집행부의 손에 들린 카메라를 빼앗듯 끌어안고, 달렸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의경들이 어깨를 걸고 서 있는 틈을 지나쳐, 창문 하나 없이 용접해서 멀리서 보면 두부처럼 보이는 진압용 차량 뒤로 몸을 던지듯 빠져나왔다. 찰칵, 찰칵, 찰칵. 귓속에 셔터 소리가 메아리쳤다. 

아까 시위대를 찍으며 들었던 셔터 소리였을까.

혹은 그들이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자신을 찍는 소리였을까. 

낯익은, 심장소리처럼 가까운 그 셔터음이 어디서 나는 것인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심장이 멈춰버릴 듯이 아프기만 했다. 겨우 달려서, 의경 차량의 벽을 붙잡고서야 재현은 숨을 몰아쉬었다. 토할 것 같았다. 

“괜찮아?”

무전기를 들고 있던 계 차석이 다가와 물었다. 

“아까 시위대 애들에게 붙잡혔지? 괜찮아. 채증 다 했으니까......”

담배가 고팠다. 

“시위대한테 잡혀 본 거 처음인가?”

“.......”

“물이라도 먹고 와. 간이 작아서는......”

재현은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숨만 몰아쉬었다. 차석은 그를 내려다보다, 주머니에 들어 있던 담배 한 갑을 통째로 건네주고 자리를 떴다. 서투르게 담배를 물었다. 마른기침이 눈물처럼 쏟아졌다. 

수도 없이 사진을 찍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랬겠지. 수상한 사진을 잔뜩 찍은 사람이, 갑자기 그런 식으로 도망을 갔다면. 누가 보더라도 경찰 프락치라는 소리를 듣기 딱 좋았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아마도, 경찰 프락치가 시위대 틈에서 사람들 채증을 하고 있었다고 올라올 것이다. 재수가 없으면 그의 사진이, 비겁하게 도망치는 그 뒷모습이 한참을 떠돌아다닐 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는 것으로 사람의 영혼을 붙잡아 가둘 수 있다면, 그의 영혼도 그 자리에 붙박히고 말았을 것이다. 

“씨발......”

흐느적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담배연기에 그을린 듯 목이 탔다. 

숨이 막히고,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았다. 

- 서 있는 자리에 따라 보이는 게 달라진다는 말 알아?

헤어지기 얼마 전에도, 연우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안정적으로 살고 싶은 게 뭐가 나쁘냐고, 그 애에게 소리를 지른 직후의 일이었다. 

- 그래, 안정적인 것 좋지. 서른 살이 되면 다들 결혼을 하는 게 당연하고, 결혼을 하면 애를 낳아야 하고. 하나만 낳으면 모자라니 둘이나 셋쯤 낳아서 국가에 충성해야 하고. 그렇게 못 살면 모지리 취급을 받고. 뭐 그것도 나쁘진 않지. 생각하지 않고 살기엔 얼마나 좋으니.

연우는 빈정거렸다. 

그런 것을 몰라서, 경찰이 된 게 아니었다.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계속, 주위의 잔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하는 세계라는 것을 몰라서 들어온 게 아니었다. 살아가면서, 조금이라도 튀어나온 못으로 살아가는 게 어떤 것인지 질리도록 보고 듣고 겪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다르다는 것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기고, 먹고 사는 것을 위협받을 수는 없었다. 

평생 조롱거리가 되어도 좋았다. 장가도 못 가는 모지리 소리를 들어도 상관없었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는다니, 팔자 좋다는 비웃음 같은 것은 한 귀로 듣고 흘릴 수 있었다. 아이를 낳지 않는 건 국가에 충성하지 않는 거라는, 자식이 넷이나 딸린 과장님의 말씀 같은 것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남과 다르다는 것 때문에 밥그릇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그건 생존의 문제였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인정을 받고 자리를 잡아야 했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결혼만 안 했을 뿐 성실하고 재미없는 공무원 노릇을 감수하고, 필요하면 연인의 뜻과 반대되는 일로 먹고 살아야 하더라도, 견뎌야 했다. 

살아남지 못하면,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을 테니까. 

연우가 쫓아다니는 온갖 집회시위의, 그 싸울 이유가 되어주는 사람들처럼. 

더러는 직장을 잃고, 더러는 무시무시한 벌금이나 징벌적 배상금에 가족마저 잃어버리고, 목숨을 잃고도 숨죽여 울어야 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아야 할 지도 모르니까. 

- 그렇게 살고 싶었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 그렇게 모든 것을 감추고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래서 무서웠다. 

누군가의 카메라에 찍히는 것이, 누군가의 증거가 되는 것이. 수도 없이, 연우의 사진을 찍었지만 한 장도 현상하지 않았다. 연우가 가끔 스마트폰을 들이대며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했던 것도 냉정하게 거부했다. 그 애를 사랑해도, 그 애와 함께 있는 것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왜, 셜록 홈즈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지. 보헤미아의 국왕 씩이나 되어서는, 한때 여배우를 사랑했던 증거를 찾아 없애려고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구는 이야기가. 구질하고, 너절하고, 밥맛 떨어져 견딜 수 없는 짓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프레임 안에서,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 

총을 들 듯이, 카메라를 들었다.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목을 잡는, 연우의 목소리를 끊어내듯, 타다 남은 담배를 짓밟아 껐다. 재현은 고개를 들었다. 살기 위해서는 찍어야 했다. 그것이 자신의 시선이 아니라도 좋았다. 자신의 등 뒤에는 국가가 있었다. 자신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크고 강대한 존재가, 재현에게 눈이 되고 귀가 되라 요구하고 있었다. 
렌즈를 조절했다. 먼 거리에서도 선명하게 얼굴들을 잡아낼 수 있도록. 

옷깃으로 뺨을 가린 채, 마치 스나이퍼처럼, 그는 차량을 딛고 올라가 카메라를 들었다. 하나하나, 그들 모두에게 수갑을 채우고 입을 막아버릴 듯이, 그들 모두를 가두어 버릴 듯이, 셔터를 눌렀다. 문득 이곳 어딘가에서 연우가 자신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끄러워.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연우를 향해 말했다. 꺼져버려, 너 따위는. 프레임 속에, 낯설고 낯익은 얼굴들이 들어와 갇혔다. 

거대한 ‘도로교통법 위반 목록’을 만들어야지. 어설프게 튀어나와 덤비지 못하도록. 꾹꾹 눌러 닫아, 자꾸만 내 머릿속에 고개를 들이밀지 못하도록. 재현은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그는 프레임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마치 눈과 손가락을, 누군가에게 빌려주기라도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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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따주십시오의 의미에 관한 신고찰6 201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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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영혼을 팔아도 본전도 못 찾는다(본문삭제)4 2016.04.30
유이립 피그말리온넷은 왜 다운됐는가4 201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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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아이템 획득2 201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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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뺑덕어멈 수난기5 2016.03.01
곽재식 케플러 452B 행성에서 구한 기차표5 2016.01.31
정세랑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10 2016.01.31
pilza2 뚜공! 우리의 지구1 201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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