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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립 우리는 하나

2016.01.31 23:3001.31

인간은 태초 이래 한 번도 하나였던 적이 없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신의 사랑을 아벨이 독차지해서가 아니라 둘이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타인. 나와 너. 이 세상은 수도 없이 많은 나와 너로 갈라져 있었다. 산산 조각난 유리조각은 본래 형체가 하나였지만, 인류의 원형은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는 갈라진 유리조각이었다. 

도시는 쉬지 않고 짖는 개처럼 불길을 토해냈다. 건물들은 철근 이빨을 드러내며 허물어졌다. 콘크리트 도로는 뒤틀려 시커먼 속이 바깥으로 삐져 나왔다. ‘왜 이렇게 됐는지 묻지 마라.’ 
군용 헬기의 기관총 사수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자신이 받은 지시를 떠올렸다. 단지 무엇이 만들어졌는지 봐라. 기총사수는 헬기 입구 옆에 거치된 기관총을 젖히고, 상체를 내밀었다. 그것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들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갈갈이 찢긴 도시의 풍경보다 더 한 구경거리가 나타났다는 듯. 그것들의 통일된 행동은 잘 짜여진 예식과 군대의 제식을 떠올리게 했다. 
기총사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인위적인 통일이 아니었다. 하나 된 행동이었다. 마치 그것들 전부가 한 몸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기총사수는 쌍안경을 꺼내 그것들의 눈동자를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기총사수는 이를 꽉 물었다. 자신이 뭘 봤는지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것들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뭘 보는가? 무엇을 봤다고 보고 할 수 있을까? 기총사수가 무전기를 켰다. 
“본부. 저 좀비들은...” 

거리의 모든 건물들은 할퀴어진 것처럼 벽면이 찢겨지고, 유리창이 갈라져 있었다. 거리에 쓰러져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절로 끊긴 사람들의 머릿속은 쉽게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눈앞에 선명한 티비 화면이 나타났다. 도시 곳곳에서 일어나는 연쇄폭발. 테러리스트의 공격이라 발표하는 대통령의 침통한 표정. 채널은 바뀌고, 정부의 거짓말을 규탄하는 아나운서의 성난 얼굴. 실제 화면이 아니었다.
 사람들 머릿속에서 갑자기 기억들이 떠올라 연상 작용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나운서의 성난 얼굴에서 방독면이 없으면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대책 위원회의 경고. 경고는 또 연상의 꼬리를 물고, 금연광고로 도약했다. 연상의 꼬리는 기억의 범주에서 넘어가 상상력으로 까지 이어져 규모가 방대해졌다.
일어난 사람들 중 어느 이름 모를 누군가는 한 걸음에 자기 이름을 잊었다. 깊게 생각하려 해도, 연상의 꼬리가 금연 광고에서 우주선, 슈퍼맨으로까지 터무니없이 길어져, 다른 생각을 위한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두 걸음 때 가족과 자신의 배경을 떠올리지 못했다. 세 걸음 때는 이곳에 무슨 볼일로 지나갔는지, 여기가 어딘지 떠올리지 못했다. 집중을 해서 과거의 책을 꺼내도 열리는 페이지는 엉뚱한 곳이었다. 왜 여기 왔냐는 과거 대신에 어렸을 적 해변에서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네 걸음 때는 서 있고, 천천히 걷는 것 외에 다른 동작을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만사가 귀찮았다. 
연상의 꼬리는 해변의 기억을 자연스레 흡수하여 해변에서 새로운 시작점을 가지고, 수박, 여름으로 쉬지 않고 질주했다. 누군가는 정보의 향연 속에서 온 감각이 자극 당했다. 수박의 생생한 감촉과 맛이 떠올랐다. 여름으로 넘어가자 뜨거운 햇살과 뜨거운 공기가 느껴지는 것처럼 피부가 달아올랐다. 여름에서 해수욕으로 넘어가자 누군가의 귀에 파도 소리와 시끄럽게 떠드는 피서객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피서 왔다가 엄마를 잃은 기억을 떠올랐다. 기억 속에서 자신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어머 이 여자애 봐라. 몇 살이니?”
그러나 이 정보를 재상영하는 뇌의 주인은 남자였다. 자신의 기억이 아니기에, 하지만 상상이라기에 너무 생생하기에 남자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같은 혼잣말을 하려 했다. 정작 입에서 나온 말은 말이 아니라 소리였다. 상처받은 짐승처럼 낮게 우- 하고 울었다.

‘여어이가 얼딘지 아눈 사라아람?“

누군가의 머릿속만이 아니었다. 같이 일어난 모든 사람들의 머리에 똑같은 말이 울렸다.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사람들의 얼굴은 가장 분노하였을 때 굳어진 것처럼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핏줄이 이마위로 튀어 오른 다혈질부터 얼굴이 중앙으로 몰린 답답한 얼굴, 붉어진 눈을 부릅떠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얼굴까지 각자의 개성을 담고 있었다. 피부는 색소가 죽어 창백하거나 검었다. 머릿속에 울린 말에 아무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누가 발신자인지 알 수 없지만 대답하려 해도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낮은 울음소리였다.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쓰러질 듯 걸어가고 있었다. 두세 걸음 앞에 크게 입을 벌린 맨홀 하수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 모두의 머릿속에 코미디 영화 주인공이 하수구에 빠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장면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에 감각이 붕 떠오른 순간, 코미디 영화는 아나운서가 맨홀에 빠져 죽은 노인에 대한 보도를 하는 뉴스로 이어졌다. 감각은 정보에 의해 예리해졌다. 

‘위험해!’

전 같은 불분명한 말이 아니라 또렷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말이 짧아 차이점을 확실히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 머릿속에 요란한 싸이렌 소리와 119구조대가 떠올랐다. 입을 벌려 경고했지만 말 대신 낮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수구로 걷는 사람도 머릿속에 싸이렌과 119구조대를 떠올리고는 멈춰 섰다. 

‘머얼릿에 울리는 이익게 뭐어진 아눈 살아람?’

라디오 잡음 같은 말소리가 모두의 머릿속에 울렸다. 사람들은 누군가 해답을 내주기 원하는 것처럼 서로를 쳐다봤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턱에 올리고 생각에 잠기는 만화 장면이 떠올랐다. 이 장면 역시 모두의 머릿속에서 공유됐다. 사람들은 처음에 정신을 차렸을 때,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연상의 질주에 끌려갔는데, 지금은 상황에 맞게 떠올릴 수 있었다. 점점 이 상황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변이상태가 진행돼 전부 좀비로 변했다. 아직 위협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하는지?”
무전기 잡음소리로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느새 헬기에서 내려온 특공대가 소총으로 사람들을 조준하고 있었다. 무전기에서 응답이 나왔다.
“전부 제압이 가능한지?”
“제압이라면 사격하라는 말인가?”
“그렇다. 비무장 상태이니 쉽지 않은가?”

누군가의 상상력인지 기억인지 짧게 빛이 깜박이더니 모두의 머릿속에서 상영됐다. 조그만 아이가 큰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구타당하고 있었다. 이 정보가 모두에게 전파되자 사람들의 감각으로 부당한 일에 대한 정당한 분노가 퍼졌다. 분노는 커다랗고 질긴 줄이 가슴 속에서 크게 꿈틀대는 것처럼 모두를 자극했다. 자극을 못 이기고 사람들이 한 걸음씩 크게 걸어 특공대들에게 다가갔다. 
특공대가 긴장하며, 총구를 들어 올리자 천천히 다가가던 사람들의 대열이 무너지며 거센 파도처럼 특공대를 덮쳤다. 사람들은 정상인이었을 때 한 번도 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턱을 크게 벌려 특공대의 목을 물어뜯었다. 기절한 사이 턱이 발달한 것처럼 다리나 팔을 사용하는 것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특공대가 총을 발사하자 달려들던 선두가 우르르 무너졌다. 무전기의 잡음이 스파크처럼 튀었다. 

“본부. 좀비들이 갑자기 공격을 시작했다. 지원 부탁한다.”

티비, 영화, 소설에서 본 복수하는 장면이 사람들 머릿속에서 요동치다가 상상력이 더해졌다. 모두의 머리를 통해 가슴 속으로 묵직하게 스며들었다. 

‘뭣들 해? 저들은 우릴 전부 죽일 거야. 그전에 우리가 산산조각 내야해! 우리가 훨씬 수가 많아. 공격하자!’

그전과는 달리 분명한 의사가 사람들을 재촉했다. 사람들은 말이 되지 않는 머릿속 울림과 달리 이번에는 또렷하게 인지했다. 사람들은 낮고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며 특공대들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정상인 때와 달리 움직임이 마치 손목과 발목에 묵직한 무게 추를 단 것처럼 느렸고, 힘겨웠다. 땀 대신 진물이 몸을 따라 줄줄 흘러내렸다. 특공대원들의 살과 전투복은 사람들의 손톱과 이빨에 유린당했다. 쓰러진 특공대원의 목에 이를 박아 넣은 한 사람이 새콤달콤한 맛을 느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새콤달콤한 맛의 기억이 모두에게 퍼졌다. 그 특공대원의 손목을 물고 있던 다른 사람은 콩국수의 국물 같은 진하고 걸쭉한 맛을 느꼈다. 
모두에게 공유된 맛의 정보에 의해 사람들은 입에 특공대원의 피보다 침이 더 많이 흘렀다. 특공대원들은 넘어져도 훈련으로 단련된 강인한 팔, 다리를 저항했지만 몰려드는 사람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특공대원들은 사람들에게 내리 찍혀 점점 조금씩 뜯겨 나갔다. 비명소리가 잦아지면서 저항이 줄어들었다. 특공대원의 침묵이 끊겼다가 이어졌다가 마침내 끊겼다. 시간이 흘러도 특공대원들은 침묵을 깨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오는 파동 존재를 인지했다. 분위기와 타인의 모습으로 감지하는 감정이 아니라 뇌로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파동이었다. 승리. 성취감. 정복에 대한 연상이 머릿속에 연속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의 입으로 특공대원을 무는 행동은 어디까지나 주된 목적이 공격이었지만 특공대원이 멈춰 서자 식사로 넘어갔다. 식사에 관한 다양한 기억들이 떠올라 사람들 머릿속을 바쁘게 오갔다. 저녁에 가족과 둘러앉아 먹는 장면은 휴가 가서 특별히 먹는 별식으로 이어졌고, 직장 식당에서 급한 일에 쫓기어 먹는 장면 등 식사 기억들이 끝도 없이 샘솟았다. 사람들의 기억은 서로에게 음식 소스처럼 범벅이 돼서 무엇이 누구 기억인지 구분하지 않고 모두 자신의 기억으로 받아들였다.
아직은 지워지지 않은 자아라 해야 하나? 아니면 문명적 판단력? 주관성? 일말의 이성? 한 개인이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는 행위에 거부감을 표출했다. 이 거부감은 다른 누군가에게 퍼지려 했지만, 강한 장벽을 만났다. 사람들 사이의 파동 공유가 활발해지자 그것은 굳건히 형체를 갖추었다. 집단 공유의식. 그것은 거부감을 느낀 개인에게 일관되게 집단 모두의 생각을 흘려보냈다. 사람들은 특공대원들의 무전내용과 정당방위를 떠올리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상인일 때, 평범한 사람이었을 때 가졌던 가치관이 사라지고 새로운 기준을 새웠다. 모두가 같은 행위를 하기 때문에. 개인이 식인을 하면 이상한 행동이지만 모두일 경우에는 하지 않는 개인이 이상했다. 
개인의 도덕성과 사고의 깊이보다 집단은 단순하기에 집단의식은 새로운 기준을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집단의식은 이러한 결정이 담긴 파동으로 개인의 거부감을 희석시켜 사라지게 만들었다. 특공대는 잘못 보고 했다. 변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행위를 인정한 지금 이 순간 변이가 한 단계 빨라졌다. 
공격할 때는 절반은 인간으로 남아있었지만, 식인 후 일어 설 때는 좀비였다. 
좀비들이 일어서서 서로를 쳐다봤다. 서로의 입에 묻은 피와 살점으로 집단 공유 의식의 탄생을 자각했다. 이에 대한 복잡하고 다양한 기억, 상상력, 이미지가 좀비들 사이를 떠돌았다. 뜬금없이 새로 발매된 밴드의 앨범부터 친구와의 사소한 말다툼 기억까지 기준점 없는 수많은 생각들이 파동으로 서로의 뇌로 들어갔다. 좀비 중 하나가 무전기를 떠올렸다. 우연히 맞춘 무전기 채널에 주변 무전기 송신과 수신이 뒤섞이던 경험이었다. 집단의식은 천천히 정리되어 잡다한 파동은 가라앉고, 무전기 경험을 띄웠다. 
모두가 자신이 직접 한 것처럼 반복적으로 무전기를 떠올렸다. 집단 공유 의식을 무전기에 비유한 것이 모두의 동의를 받았다. 좀비들은 더는 인간이 아니기에 지성으로 인지한 것이 아닌 본능이 이끈 것이었다.

‘자자. 모두 시끄러워. 나를 봐!’

파동을 타고 집단의식으로 거칠고 위협적인 감정이 흘러 들어왔다. 

‘이 느림보들아. 나를 보라고 어서!’

좀비들은 주변을 둘러봤지만 누가 발신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남자, 여자, 노인, 아이가 모두 제각기 외형을 가졌지만, 집단의식으로 하나로 묶이자 외형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좀비였다. 한 좀비가 앞으로 나섰다. 녹색 눈을 가진 특이한 좀비였다. 녹색 눈을 가져서가 아니라 행동이 특이했다. 다른 좀비들은 육체의 변화를 겪어 동작이 느리고, 목구멍과 코 내부를 울려 낮은 울음소리를 냈는데, 녹색 눈만은 마치 정상인 때처럼 육체가 활발하고 빠르게 이동했다. 울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녹색 눈을 바라보는 좀비들은 머릿속에 금방 돌연변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녹색 눈에게는 돌연변이라는 단어가 늦게 도달했다. 녹색 눈은 집단의식에 덜 동화되어 개인의 주관을 강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모두 모여!’

특수 개체인 녹색 눈이 집단의식을 통할 때마다 다른 좀비들은 이질감을 느꼈다. 녹색 눈은 홀로 사고 할 수 있었다. 인간일 때처럼 깊은 사고가 아니라 짐승 같은 계산이었다. 집단의식의 이질감 속에서 희미한 공포를 감지했다.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우월한 느낌이 몸 속 가득히 차오르고 자신감을 부여했다. 약자를 앞에 두고 계산은 빨라졌다. 녹색 눈은 공포를 조장하기로 했다. 짐승은 무리를 꾸려야 했다. 공포를 주어 약육강식의 법칙을 세우기로 했다. 그리고 공포로 통치해야 했다. 녹색 눈 스스로도 왜 자신이 이런 추론 과정을 거쳤는지 몰랐다. 어쩌면 인간일 때 본성이 남아 있어서, 이런 역할을 추구했는지도 몰랐다. 인간일 때 무엇이었는지, 누구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쩌면 천성은 종이 변해도 사라지지 않는지도. 

‘바아보 같이 써 있히 말고 일루와!’

녹색 눈의 기세 등등한 파동은 울음소리와 섞여 어눌해졌다. 녹색 눈은 무리와 리더의 이미지를 집단의식으로 송신했다. 집단의식에 의해 나누어진 이미지를 본 좀비들은 서로 기억을 주고받으며 반대와 찬성을 표했다. 집단의식에 좋은 상관, 대장에 대한 인상이 떠오르면 부정적인 기억이 떠올라 반박했다. 
때로는 너무 과장되어 기억이 아니라 극단적 이미지로 만든 상상력 같았다. 모두가 집단의식의 창구를 두드려서 인지 싸움의 도구로 낭비해서인지 집단의식의 공유 속도가 서서히 느려졌다. 점점이 줄어가던 파동이 뚝 끊기자 좀비들은 거리에서 막 일어났을 때처럼 무의미한 연상의 질주에 끌려가 혼란에 빠졌다. 생각을 제어할 수 없자 몸은 아무 의미 없이 떠돌며 낮은 울음을 터뜨렸다. 녹색 눈은 혼란에 끌려가지 않았지만 갑작스런 상황변화에 잠잠해졌다. 어디선가 날카롭고 짧은 통신 잡음이 들렸다. 갈기갈기 찢겨진 특공대의 전투 조끼에 걸린 무전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하나 파파. 여기는 본부다. 응답하지 않으면 당한 걸로 간주하고 지원군을 보내겠다.”

군인 말투와 지원군이라는 단어는 좀비들의 뇌 속을 뾰족한 송곳처럼 찔렀다. 좀비들의 기억 속에 잠긴 전쟁 영화와 전쟁 참상이 집단의식에 확 떠올랐다. 집단의식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풍선처럼 팽팽해졌다. 

‘빨리 여기를 뜨자. 달아나야 해.’

파동이 갑자기 또렷해졌다. 좀비들은 갑작스레 또렷해진 파동에 의문을 가지기보다 본능을 따라 위기에서 벗어나려 이동했다. 그런데 누구도 어디로 갈지 아무도 집단의식에 게시하지 않았다.

좀비들은 방향이나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속보로 걸었다. 좀비가 되자 높은 수준의 집중력은 유지하기 힘들어 속보는 오래가지 못하고 끊겼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좀비 중 하나가 뜨거운 뭔가가 목덜미를 지지자 크게 울었다. 다른 좀비들은 집단의식을 통해 아픔에 대한 정보를 건네받고 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뜨거운 뭔가는 바로 햇빛이었다. 변이 상태가 진행되자 햇빛은 무서운 불이 되어 좀비들 위로 불벼락을 내렸다. 좀비들의 눈에 주차 타워 옆의 커다란 그늘이 보였다. 좀비가 되자 이성과 논리를 담당하는 좌뇌 부분이 보라색으로 변색되어 거의 죽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본능과 감성을 담당하는 우뇌에서 화학물질이 생성돼 부족한 논리를 추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했다. 
그늘이 커다란 방패가 되어 불벼락을 막아주는 장면이었다. 좀비들은 허겁지겁 느린 발걸음을 이끌어 그늘 안으로 들어갔다. 녹색 눈은 이동 중에 좀비들을 멈춰 세우고 집단을 장악하고 싶었지만 집단의식이 줄어들어 소통을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이유는 모르지만 집단의식이 활성화 되자 다시 또렷한 파동을 모두에게 전송했다.

‘야이. 얼간이들아. 이제부터 내 말을 잘 들어. 내가 대장이다.’

녹색 눈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하더라도 정상인일 때처럼 말을 길게 할 수 없었다. 대장이 되려는 짧고 강렬한 이미지를 파동으로 쏘았다. 좀비들은 녹색 눈에 대한 생각을 집단의식에 올려 합의점을 찾다가 녹색 눈의 파동에 밀려났다. 녹색 눈은 왜인지는 모르지만 자신만이 집단의식 내에서 다른 좀비들의 파동을 끊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녹색 눈의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갔다. 좀비들 중 일부가 집단의식을 통해 녹색 눈에 반대하는 의견을 올리면 녹색 눈은 빠르게 끊었다. 싸움에 지능적으로 대처한 것이 아니라 본능을 따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는 공격이었다. 
파동이 끊긴 좀비들이 반발하며 으르렁댔다. 녹색 눈은 코 속을 울려 킁킁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도발했다. 집단의식에 특공대가 떠올랐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몰렸다. 노을을 등지고 특공대원 한 명이 골목에서 나오다가 좀비 떼들을 보고 놀라 굳어졌다. 좀비들이 으르렁대며 집단의식을 통해 빠르게 파동을 주고받았다. 특공대원은 좀비들을 향해 총을 겨눴다. 총을 보고 공포가 떠올랐으나 반격도 떠올랐다. 집단의식이 팽팽해져 모두에게 빠르게 목표를 파동으로 전달했다. 좀비들은 집단의식이 적극적으로 리드하자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상승했다. 좀비 특유의 느린 몸짓이 아닌 먹이를 덮치려는 맹수처럼 빠르게 몸을 날렸다. 
특공대원을 깔아뭉개고 이로 목과 손을 물어뜯었다. 특공대원의 비명이 좀비들을 뚫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골목 안쪽에서 다른 특공대원이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이리 와봐. 정찰조가 당했어. 어서 이리로 탱크를 불러!” 

탱크라는 단어가 끝나기도 전에 사방을 울리는 진동이 좀비들에게 전해졌다. 파동들은 집단의식을 통해 만장일치했다. 도주하기 위해 좀비들은 반대편 골목으로 달려갔다. 녹색 눈은 지금 활성화 된 집단의식이 다시 수그러들 수도 있기에 불안했다. 노을이 져서 어둠이 깔렸다. 골목 중간에 전봇대를 사이에 두고 양 갈래의 길이 있었다. 집단의식의 결정은 좀비의 달리기를 따라잡지 못했다. 선두의 좀비가 전봇대를 앞에 두고 속도를 줄였다. 녹색 눈은 망설이는 선두를 밀치고 왼쪽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좀비들은 정상인이었을 때 오른손잡이고 오른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본능에 남아있기에 오른쪽을 선택했다. 후미의 좀비들을 뒤늦게 도착해 다른 좀비들과 거리가 벌어지자 집단의식 연결이 희미해가는 것을 느끼고 울음을 터뜨렸다. 좀비들은 집단의식을 통해 다양한 감정,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지만, 육체로는 오로지 울 수밖에 없었다. 어미를 잃은 짐승마냥 울면서 제자리를 맴돌았다. 날카로운 파동이 좀비들의 뇌를 강타했다. 송신자는 녹색 눈이었다. 
녹색 눈은 왼쪽 길 안으로 깊게 들어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울음인지 웃음인지 기괴한 소리가 녹색 눈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이리와 바보들아. 너희는 내꺼야.’

녹색 눈과 헤어진 후 24시간이 지났다. 좀비들은 탱크로부터 멀어진 후 다시 집단의식이 쪼그라들어 공유 할 수 없었다. 발이 이끄는 대로 길이 있으면 걷고, 없으면 있는 곳으로 정처 없이 걸었다. 어둠 속 멀리 불빛이 보였다. 좀비들은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게 아니었다. 발길 닿는 곳에 불빛이 있었다. 그곳에는 옆으로 쓰러진 버스가 있었다. 쓰러진 버스 건너편에서 특공대원들의 말소리와 라이트 불빛이 새어 나왔다. 특공대원의 말소리가 향기로운 음식처럼 좀비들의 위장을 자극했다. 정상인이었을 때 좋아했던 음식처럼 특공대원들이 좀비들을 이끌었다. 집단의식이 서서히 열리더니, 좀비들이 다시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각자 특공대원을 목표로 두고 창의적인 사냥 방법을 띄웠다. 입에 침이 고이고, 피부는 팽팽해져 진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집중력도 높아져 팔과 다리가 가벼워졌다. 

‘자 계획을 짜자. 우리. 생각을. 나눠서. 잘. 해보자.’

울음소리가 많이 걷힌 의사가 모두에게 전달됐다. 집단의식에 전선으로 연결된 전구처럼 다양한 아이디어가 번쩍였다. 수 백 가지의 아이디어는 집단의식 속에서 선택을 받아 수십으로 줄어들고 다시 수개로 들어들었다. 적어질수록 치열해지는 아이디어 교류 과정을 거쳐 최후의 하나가 결정됐다. 좀비들은 공격 계획을 가지게 됐지만 누가, 언제, 어떻게,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분류할 수 없었다. 

“이만 철수하자고. 이렇게 추운데 있어봐야 고생이야.”

특공대원들이 장비를 챙기는 소리와 움직이는 걸음소리가 들렸다. 공격에 적합한 타이밍이 사라지려 하자 좀비들은 컥 하고 짧은 신음소리를 냈다. 집단의식에서 강렬하고 뾰족한 파동이 나와 좀비들을 자극했다. 재촉을 못 이긴 좀비 하나가 버스를 돌아 특공대원들에게 접근했다. 집단의식의 파동이 보낸 몰이에 다른 좀비들은 버스 뒤를 돌아 특공대원들 후방으로 접근했다. 특공대원들이 갑작스런 소리에 긴장해 총을 꼬나들고 있다가 좀비가 나타나자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은 좀비의 어깨에 깊게 박혔다. 좀비가 밤하늘을 향해 울부짖자 다른 좀비들이 특공대원들 뒤에서 달려들었다. 특공대원들은 앞에 나타난 좀비에 시선이 빼앗겼다가 뒤에서 나타난 좀비 떼에 놀라 당황했다. 좀비들은 특공대원들을 물고 늘어져 쓰러뜨렸다. 
쓰러진 특공대원들 위로 계속 좀비들이 쌓여 좀비들끼리 팔, 다리를 부러뜨렸지만 집단의식은 고통을 끊어버리고 목표를 재촉했다. 좀비들은 밑에 깔린 인간의 부드러운 살에 손톱과 이를 박았다.
좀비들에게 눌린 특공대원들은 두세 번 크게 꿈틀대다가 잠잠해졌다. 좀비들은 입안에 들어오는 살점보다 집단의식이 뿌려주는 성취감에 심취했다. 그것은 마치 주변 풀들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분수대 같았다. 좀비들은 뇌가 아니라 온 몸으로 성취감을 받는 것처럼 피부가 기분 좋게 간지러웠다. 좀비들의 입에서 울음소리이지만 즐겁다는 듯 높은 톤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죽은 특공대원들의 전투조끼에서 무전기가 잡음을 내며 특공대원들을 찾았다. 

“지금 현 위치에 좀비 떼 발견.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듯 하다. 뒤에서 접근 중이다. 근처에 있을 경우 지원 부탁한다. 현 위치는...”

좀비들은 특공대원 시식을 멈추고 느릿느릿 일어섰다. 뭉그러진 특공대원들 시신을 식탁처럼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모여 섰다. 무전기는 현 위치와 좀비들에 대해 계속 송신했다. 집단의식은 무전기 내용을 간단하게 이미지로 표현했다. 녹색 눈. 좀비들은 울음소리를 길게 끌었다.
하지만 집단의식이 방금 전 공격처럼 자신들을 재촉하자 좀비들은 무전이 오는 곳으로 이동했다. 
녹색 눈은 자신이 끌고 온 좀비들에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녹색 눈은 분리된 좀비들의 집단의식을 정복했다. 녹색 눈은 다른 좀비들의 파동을 끊을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해 집단의식의 모든 의견을 검열 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끊었다. 녹색 눈은 능력은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녹색 눈은 파동을 무기처럼 이용해 공격하기 위해 강렬하게 좀비들에게 뿜어서, 좀비들을 고통에 빠트렸다. 좀비들은 녹색 눈의 지시에 따라 이유 없이 빙글빙글 돌며 녹색 눈의 장단에 맞추고 있었다. 간간히 고개를 숙이고 요청하는 파동도 있었지만, 녹색 눈은 가차 없이 끊어버렸다.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 리더의 위엄을 갖는다는 계획이 아니라 권력을 쥔 어린 아이 같은 가벼운 기분이었다. 뭔가를 알고 행하는 어른의 폭력보다, 결과를 모르고 저지르는 순수한 호기심이 더 잔인할 때가 있었다. 좀비들은 녹색 눈의 변덕에 모두가 서로의 엉덩이를 보며 빙글빙글 돌았다. 녹색 눈은 괴기한 울음소리를 내며 즐거워했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좀 더 자극적인 게 필요했다. 좀비들에게 서로 싸우라는 지시를 보냈다. 좀비들은 싸우라는 지시에 그동안 참아왔던 인내심을 뚫고 격렬하게 반발했다. 저항하는 이미지들이 끓어올라 녹색 눈에게 향했지만 녹색 눈은 쉽게 거세했다. 녹색 눈은 가장 격렬하게 저항하는 좀비 하나를 지명해 자신의 파동을 강하게 보내 집단과 격리시켰다. 연결이 끊긴 좀비는 눈앞에 있는 다른 좀비들이 있어도, 접촉할 수 없는 고립감에 허우적댔다. 5분도 지나지 않아 고립감은 좀비를 절망으로 이끌어 땅바닥을 뒹굴며 울부짖게 만들었다. 
녹색 눈은 파동으로 다른 좀비들에게 이 절망을 전달했다. 좀비들은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온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잠잠해졌다. 녹색 눈은 하늘을 보며 탁한 울음소리를 퍼뜨리며 의기양양했다. 녹색 눈 뒤에서 쇳소리가 났다. 녹색 눈의 계산기는 그것이 총이라 상기시켰다. 다른 좀비들이 두서없이 보내는 파동에 특공대원의 모습이 보였다. 특공대원은 녹색 눈 뒤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녹색 눈은 당황하여 파동으로 의미 없는 이미지를 남발하다가 자신을 에워싸 보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좀비들은 자신만 살겠다는 명령에 반발했지만, 녹색 눈의 파동에 길들여져 어쩔 수 없었다.

깜박이는 가로등 아래에서 특공대원 하나가 몸을 가리고 총으로 녹색 눈이 지휘하는 무리들을 겨누고 있었다. 특공대원이 뭔가를 느끼고 뒤돌아 본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좀비들이 달려들어 특공대원을 물어뜯었다. 다른 특공대원들은 녹색 눈의 무리들에게 사격을 시작했다. 좀비들은 녹색 눈 무리를 도우려가다가 기괴한 이질감을 느꼈다. 녹색 눈의 무리는 상호작용이 아닌 녹색 눈의 일방적 파동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파동이 너무 독특하여 불길했다. 녹색 눈은 못 본 사이, 자신의 무리를 이끌면서 더욱 강해져 있었다. 녹색 눈은 당연하다는 듯이 다른 좀비들을 지시하며 이용했다. 좀비들은 녹색 눈에게로 다가가기 전에 강한 경계심을 주고받았다. 집단의식 수위는 조용히 상승해서 다른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을 만큼 꽉 차올랐다.
녹색 눈이 보내는 파동에는 특공대원에 대한 공포가 있어 좀비들은 우왕좌왕 혼란에 빠졌다.
특공대원의 사격에 녹색 눈의 무리가 하나, 둘 줄어들었다. 좀비들이 뒤에서 특공대원들을 덮쳤다. 특공대원들은 갑작스런 기습에 대열이 허물어졌다. 좀비들은 특공대원들 위를 올라타고 부지런히 살육을 실행했다. 녹색 눈의 무리가 녹색 눈에게서 벗어나 좀비들에게로 합류했다.
좀비들이 특공대원들을 충분히 피로 물들인 후 일어나자 녹색 눈이 당당하게 앞에 섰다. 고압적인 파동을 보냈지만 집단의식은 들어오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녹색 눈의 독특한 파동은 끈질겨서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좀비들은 끌려 갈 뻔 했지만 녹색 눈에 속해있던 무리들이 좀비들에게 자신이 겪은 감옥을 전송했기에 단단하게 저항했다. 녹색 눈은 기분 나쁘게 울면서 씩씩댔다. 

‘너희둘 이제어야 나아타안ㅆㄷ. 내 마알 안 들러.’

녹색 눈의 말은 집단의식에 가로막히어 일그러졌다. 녹색 눈은 자신의 송신이 닿지 않는 것을 느끼고 악을 써대며 여러 번 강렬한 이미지를 담은 파동을 보냈지만 허사였다. 좀비 집단은 녹색 눈을 따돌렸다. 녹색 눈은 잠잠히 있다가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잠재우고 집단의식에 얌전히 들어갔다. 들어올 때는 얌전했지만 집요하게 자신의 고집을 집단의식에 올렸다. 과거 녹색 눈의 무리들이 녹색 눈이 특공대를 만났을 때 보인 비겁함과 두려움을 이미지로 치환하여 모든 좀비들에게 배포했다. 좀비들은 폐암말기환자 같은 기침 소리를 내며 웃었다. 
녹색 눈의 분노가 집단의식에 닿자 집단의식은 홀로 살아 움직이는 주체적인 존재처럼 녹색 눈의 연결을 끊었다. 녹색 눈은 굵은 울음소리를 내며 으르렁댔다. 녹색 눈이 달려들려 하자 좀비들의 집단의식은 연결이 폭주하는 무전기처럼 심하게 요동쳤다. 녹색 눈을 짓밟자는 의견에서 갈기갈기 찢어놓자는 이미지까지 모든 적대감이 한 번에 몰려와 연산이 불가능해진 컴퓨터처럼 집단의식은 느려졌다. 집단의식의 저하에 좀비들 역시 저하됐다. 녹색 눈은 공격하기 적절한 타이밍이라 느끼고 행동하려 했으나 하늘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헬리콥터가 고도를 낮추며 접근하고 있었다. 녹색 눈의 고집은 헬기의 위압감에 주눅 들었다. 집단의식이 도주를 결정하자 이미 꺾인 녹색 눈은 집단에 휩쓸려 조용히 따라갔다.

대형마트의 커다란 진열창으로 햇빛이 쏟아졌다. 좀비들은 햇빛을 피해 깊숙이 안쪽에 숨어 있었다. 엉망진창으로 엎어진 진열대를 회의장 테이블로 삼아 둘러싸고 낮은 울음소리를 이어갔다. 단순한 울음소리와 달리 집단의식은 점점 정교해졌다. 그 전처럼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기억과 상상력을 파동으로 보냈던 거와 달리 골라서 선택했다. 주고받는 정보들은 정상인 일 때 직접 겪은 경험이지만, 좀비가 된 후 제3자가 됐거나 간접 경험한 것처럼 무감각해져 책장에서 아는 내용이 담긴 책을 권하는 듯이 건넸다. 오히려 자신의 것이 아닌 정보에 더 민감하게 자극받아 깊게 공감했다. 집단의식에 이러한 연대감이 가득 차올랐다. 좀비들이 느끼는 자극은 정상인일 때와 달리 다양하지 않고 단순한 것이지만 좀비들의 행동동기의 거의 전부를 차지했다. 식욕을 느끼면 특공대원을 습격하고, 적대감을 느끼면 따돌림 시켰다. 
좀비들은 회의를 진행하면서 점점 가까워져 서로의 어깨가 맞닿을 만큼 가까워졌지만, 녹색 눈은 이 흐름에 합류하지 못하고 바깥에서 홀로 빙빙 돌고 있었다. 녹색 눈은 육식 동물들이 괜히 그러는 것처럼 위협적으로 파동을 뿜어댔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회의에 열중하고 있는 좀비들은 녹색 눈의 관심 끌기에 넘어가지 않았다. 좀비들은 특공대를 피해 생존할 계획을 세우려 집중하는 동안 코나 귀가 조이고, 피부가 빳빳하게 당기 는 느낌을 받았다.
정상인 일 때 소리가 귀를 통해 고막을 거쳐 뇌로 전달돼 들렸다면, 지금 좀비들은 보내려는 정보가 집단의식을 도달해 반짝만 해도 파동이 뇌까지 전달될 필요 없이 다른 좀비들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진화했다. 좀비들은 자신들의 진화를 자각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좀비의 머리로는 복잡한 추론을 할 수 없어 깊게 사고할 수 없지만, 허전한 부분은 싸늘한 자극으로 모든 좀비들을 스쳐갔다. 녹색 눈이 관심을 끌려고, 우르렁 댔다. 좀비들은 집단의식에서 모두의 동의를 한데모아 녹색 눈에게 거세게 던졌다. 녹색 눈은 눈을 부라렸지만 한데 뭉친 좀비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 
더 정교해진 집단의식 능력을 집중시켜, 결정된 사항을 무기처럼 파동으로 발사했다. 녹색 눈은 뇌의 용량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파동에 피부를 부들부들 떨며 저항했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좀비들은 노래 부르듯이 울었다.

저녁노을이 하늘을 가득 채우자 헬기와 특공대원들의 자취가 사라졌다. 밤이 오길 기다리던 좀비들이 마트 밖으로 나섰다. 좀비들은 기억과 상상력, 이미지로 정보를 주고받아 자신들이 살았던 도시에 대해 연구하여 도시를 탈출하는 계획을 얼기설기 짜 맞추었다. 좀비들은 계획대로 도시 경계선으로 향했다. 좀비들은 으슥한 골목과 빈 건물들을 가로질러 도시 외곽으로 향하다가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의 행렬을 보고 멈춰 섰다. 야간에 움직이는 좀비들을 잡기 위해 특공대에서 설치한 것이었다. 경고 사이렌 행렬 끝에 도시 경계선을 차단하는 철조망이 반짝였다. 
좀비들은 빈 건물에서 나와 커다란 쓰레기 통 뒤에서 논의했다. 철조망에 의해 마구 떠오르는 정보를 잘 간추려 현재 난관을 헤쳐 나갈 정보를 추려냈다. 철조망에 대한 대책은 단순했다. 철조망을 넘는 고도의 행동을 할 수 없으니 둔한 만큼 덜 민감한 육체로 철조망에 부딪혀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단 특공대원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쐐기대형으로 한 곳에 힘을 집중해야했다. 히트 앤 런. 밤이 깊어져서 경계가 해이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좀비들은 집단의식이 활발할 때 집중력이 느는 걸 감지했었는데, 지금은 월등하게 더 발달하여 고도의 집중력으로 과거의 기억에서 논리와 이성적 판단력을 끌어냈다. 좀비들은 집단의식에 비추어 자신들의 현 재 모습을 진단했다. 집단이 나태할 때는 집단의식이 느려지고, 둔화된다. 위기를 만나거나 협동할 때마다 집단의식은 빨라지고 성장한다. 지금 철조망의 등장으로 더욱 전진했다. 그런데 왜 뭔가가 부족한 느낌일까? 
녹색 눈은 자신을 놔두고 겉으로는 잠잠하지만 바쁘게 토론하는 좀비들이 못마땅해서 위협적인 소음을 냈다. 좀비들은 일치단결해서 강렬한 파동을 보내어 녹색 눈의 뇌를 괴롭혔다. 몰락한 독재자가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하자 좀비들은 가학적인 즐거움이 솟아나 한번 더 보내려 했다. 하지만 고통당한 것은 좀비들이었다. 좀비들은 일제히 허리를 꺾으며 머리를 감싸 쥐고 울음을 터트렸다. 

‘이이익게 어어찌도닌 일일까?’

집단의식은 소리 없이 바닥을 쳤다가 고통과 함께 떠올랐다. 좀비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집단의식이 재촉하여 녹색 눈을 찾아 나섰을 때를 떠올렸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인가? 이번에는 무엇을 재촉하는 걸까? 좀비들이 고통과 함께 울어버렸다. 밤하늘에 헬기의 날카로운 회전익 소리와 함께 서치라이트가 좀비들을 밝혔다. 특공대원들의 비상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사이렌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점멸했다. 

“좀비들이다! 한 곳에 모여 있다. 기관총 사격 요청!”

좀비들이 기관총이란 단어를 집단의식에 넣기 전에 헬기에서 불이 뿜어지더니 좀비들 서넛이 쓰러졌다. 

‘달려!’

이번에는 누가 집단의식을 통해 알리는 게 아니라. 집단의식 자체였다. 좀비들보다 상위의 존재인 것처럼 좀비들을 강하게 밀었다. 좀비들은 집단의식의 리드에 혼란을 극복하고 철조망으로 돌격을 감행했다. 위기 상황에 마주치자 역시 집단의식이 활성화되어 고도의 집중상태가 되어 달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정상인 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좀비들의 귓가로 바람이 빠르게 스쳐갔다. 특공대원들은 좀비들의 돌격에 수선 떨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게 바리케이트 뒤에 위치를 잡고 조준했다. 

“아직 발사하지 마. 들어오면 지시내리겠다!”

좀비들은 철조망에 튀는 짧은 스파크를 보고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됐다. 전기 철조망. 좀비 중 하나가 본 전기 철조망 통제실이 집단의식 속에 떠올랐다. 나무로 엉성하게 지은 작은 한 칸짜리 건물로 철조망 근처에 있었다. 조준하고 있는 특공대와 통제실 때문에 집단의식은 좀비들 의견차이로 두 개로 갈라졌다. 갈라졌기에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뒤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좀비들 몇이 쓰러졌다. 
집단의식에 공포가 엄습했다. 집단의식에 뒤에서 쫓아오는 특공대원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집단의식은 공포에 서서히 잠식됐다. 녹색 눈이 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녹색 눈의 상처는 좀비의 몸으로 별 것 아니었지만 심리적인 무력감 때문에 일어서지 못했다. 녹색 눈은 집단이 자신을 버리고 갈 것이라는 공포 에 울부짖었다. 집단의식에 들어와 도와달라고 모두에게 파동으로 외쳤다. 좀비들의 의견이 떠올랐다. 녹색 눈의 과거 행동 때문에 내버려 두자와 약육강식을 내세워 녹색 눈의 위험은 어찌할 수 없다는 부정들이었다. 바리케이트 뒤에서 기다리던 특공대가 사격을 시작했다. 좀비들의 우선순위는 특공대에게 기울어졌지만 통제실을 어찌하지 않는 한 철조망을 건널 수 없었다. 특공대원들이 달려드는 좀비들에게 웃으며 여유 있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녹색 눈이 다시 한 번 구원의 파동을 뿌렸다. 좀비들은 집단의식을 굳건히 해 파동을 끊었다.

‘안 돼!’

이번에도 집단의식이었다. 집단의식은 홀로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존재처럼 수많은 반대를 꺾고, 단독 결정으로 녹색 눈과 집단의식을 이었다. 녹색 눈은 마지막 기회에 모든 걸 내던지고, 자신의 모든 고집을 풀어버렸다. 녹색 눈동자가 점점 벌게지더니 다른 좀비와 같은 핏줄이 붉은 눈동자로 변했다. 녹색 눈의 모든 것은 집단의식 안으로 융해됐다. 좀비들은 한 장갑 안에 자신과 남의 손이 같이 들어있는 듯한 자극을 느꼈다. 녹색 눈의 완전한 순응에 집단의식이 밝아지며 커다란 빛이 가득 찼다. 집단의식 속에서 천국의 문이 열렸다. 좀비들은 일제히 하늘을 쳐다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말로 할 수 없고, 그 어떤 이미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일체감이 교회 종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좀비들이 정상인이었을 때 상상한 각자의 천국이 모두 한데 뒤엉켜 눈앞에 펼쳐졌다. 
특공대들에게 기울어진 행동들이 균형을 잡았다. 좀비들은 두 무리로 갈라졌다. 한 무리는 특공대들에게 달려들고, 다른 한 무리는 통제실로 향했다. 녹색 눈은 계시를 받은 예언자처럼 벌떡 일어서서 힘차게 팔을 휘저으며 달렸다. 좀비들은 녹색 눈의 질주에 쓰레기 통 뒤에서 느낀 허전함이 채워지고 완벽해지는 걸 느꼈다. 좀비들의 뇌 속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깨끗하며 투명해졌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집단을 위한, 세상을 위한 자신의 역할을 안 것처럼 누군가는 총을 두려워하지 않고, 특공대들에게 놈을 날리고 누군가는 빈틈을 노리고 옆에서 물어뜯었다. 
통제실로 달려든 좀비들도 통제실을 지키는 통제 반장의 권총 앞에 아무 두려움 없이 당당히 몸을 세웠다. 통제 반장의 권총이 불을 뿜어 선두의 좀비 몇을 쓰러뜨렸다. 좀비들은 동요하지 않고 전진했다. 통제 반장의 권총이 찰칵 소리를 내며 탄창이 비었을 알렸다. 좀비 하나가 통제 반장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짧게 끊기고, 분명하게 말을 했다. 

“혼자 인 너는 하나인 우리를 막지 못한다. 철조망에 전기를 해제해라.”

통제 반장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는 권총을 떨어뜨렸다. 좀비가 괴성을 지르자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모르게 판넬의 버튼을 눌러 전기를 해제했다. 좀비들이 통제 반장을 에워싸고 짊어 들었다. 특공대원들을 공격 중이던 좀비들은 전기가 해제됐음을 연락받고 철조망에 몸을 던져 철조망을 쓰러뜨렸다. 좀비들은 쓰러진 철조망과 동료들을 밟고 도시 경계선을 넘었다. 철조망에 엉키거나 특공대원들의 총에 영영 함께하지 못한 동료들도 있었으나 좀비들은 개의치 않았다. 
몸은 여기 있어도, 그들은 집단의식 내에서 영원히 함께였다. 특공대원들이 바쁘게 무전을 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졌다.

“둘 파파. 여기는 사 세라장. 좀비들이 경계선을 넘었다.”
“여기는 하나 파파. 방금 뭐라 했는가?”
“하나 파파. 둘 파파를 불렀다.”
“다기 송신 바란다.”
“하나 파파 여기는 삼 세라장. 연결이 되지 않는다. 재송신 바란다.”

내가 남을 찾으며 혼선을 빚는 모습에 좀비들은 자신들이 진정한 힘을 깨달았다. 그리고 집단의식이 무엇을 향해 이끌었는지 알게 됐다. 나와 너가 서로를 오해하고 닿지 않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을 공유하고 함께한다. 어느 하나가 다른 누구들을 지배할 수 없고, 집단이 개인을 따돌리지 않을 때 될 수 있는 진정한 일심동체. 
좀비들이 단순히 위기를 만날 때 집단의식이 진화하는 것이 아닌 위기를 만나 집단이 하나로 뭉쳐질 때 집단의식이 진화하는 것이었다. 그 동안 느꼈던 허전함은 녹색 눈을 배척했기에 완전한 하나가 아니어서 느끼는 공백이었다. 갑작스런 집단의식의 변덕은 따돌림에 대한 벌이었다. 이제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것과 따돌림 하는 일은 이 공동체 안에 더는 없을 게 분명했다. 아름답지 않은가? 

어디선가 조그만 소리나 불빛이 있으면 귀신같이 알고 무리를 지어 몰려든다. 총이나 칼로 위협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든다. 어떠한 상황,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집요하게 쫓아온다.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저돌적으로 공격한다. 목적 없이 계속 배회하는 것 같아도 절대 피해갈 수 없다. 행동이 느려도 방심하는 순간 끝장난다. 가장 무서운 점은 이 포식자의 행동이 예측 가능해도 언제나 한 수 앞서 간다. 인간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어 두려운 존재 좀비가 이제 막 최종 변이에 도달했다.

좀비들은 도로를 걷다가 세 갈래의 갈림길에서 멈춰 섰다. 짊어지고 온 통제 반장을 내려 놨다. 좀비들은 갈림길에서 통제 반장을 사이 좋게 다같이 뜯어 먹었다. 누군가 말했다.

‘인간들이 많아도 그들은 모두 갈라져 있다. 우리 같은 하나는 오직 우리뿐이며, 이 안에서 내가 너희고, 너희가 나이로다. 우리는 하나의 세계이다.’ 

좀비들은 갈림길에서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가볍게 발걸음을 떼었다.

THE END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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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6.02.01 20:31 댓글

    50년대 SF에서 의식을 공유하는 하이브 마인드가 공산주의자의 은유로 활용되었던 것이 문득 생각 납니다. 좀비와 하이브 마인드가 연결된 것은 또 새롭네요.


    이면의 이야기도 궁금해지는 내용이었습니다. 의식을 공유시키고 공유시킨 의식의 주인이 되는 것 같은 것, 흑막의 정체는 뭘까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무선 통신처럼 서로의 정신이 연결되고 있는 걸까요? 여러 가지 상상해 보며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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