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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검은 공익들

2015.11.30 23:1111.30

새로 온 후임은 곰같이 둔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것저것 나서서 할 만큼 눈치가 빠른 것도 아니고, 붙임성이 좋은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진상 민원인들 앞에서도 그런가보다 하고 눈만 끔뻑끔뻑 하며 속 좋게 앉아있는 것 뿐이었는데, 그런 이 녀석을 보고 더욱 혈압을 올려 대는 민원인도 있다 보니 이조차도 좋은 점이라고 봐 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딱히 장점이 있는 것도 아닌, 그 후임의 가장 큰 단점은, 우리보다 나이가 한참 많다는 점이었다. 

다른 부서 공익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레벨을 아득히 넘어서, 이 후임은 문자 그대로 아저씨였다. 나이는 20대 끝물이요, 얼굴은 이미 30대를 훌쩍 뛰어넘어 40대 중년 계장님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다 하는 말마다 얼마나 애늙은이 같은지, 스마트폰도 없고, 카톡을 하는 것도 아니고, SNS를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야한 걸 보면서 좀 시시덕거리려고 해도 맞춰 주는 법이 없었다. 사실 그런 걸 보면서 또 서로 친해지기도 하는 법인데, 불법이니 합법이니 타락이니 어쩌구니 혼자 점잔을 빼는 것이 영 재수가 없었다. 액면만 봐서는 답 없는 오타쿠의 스테레오 타입처럼 생겼는데, 하는 짓은 어디 조선시대에서 잘못 넘어온 것 같으니 이건 대체 어디다 써야 할지 모를 아저씨였다. 

“어이, 공익!”

엄밀히 말해, 우리의 정식 명칭은 공익이 아니라 사회복무요원이지만,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는 여기 구청의 공무원들조차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는 이 만민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허락한 검은 옷의 공노비들이었다. 술취한 민원인부터 높으신 국장님까지 두루두루, 성도 이름도 없이 공익이라고만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 뭐든 해드려야 하는, 따까리 오브 더 따까리. 그래도 이제 슬슬 말년이라, 구석에 조용히 짱박혀 있다가 귀찮은 건 후임들에게 적당히 시켜먹고, 덜떨어진 애들에게 잘못 시켰다가 두고두고 욕먹을만한 일만 느릿느릿 해치워도 시원치 않을 이 시기에, 이렇게 연만하신 후임을 모시게 될 줄이야. 

“임요한씨, 저기 좀 가 봐요.”
“예?”
“국장님이 부르시잖아.”

이름 하나는 전설적 프로게이머의 짝퉁 비슷하게 들리는데, 반응 속도를 보면 굼벵이도 저것보다는 낫겠다 싶은 이 후임께서는, 국장님께서 부르시는데도 느릿느릿 움직였다. 국장님은 짜증을 내셨다. 그때, 계장님이 국장님께 뭔가 말씀을 하셨다. 

“그 친구입니다. 그...... 다리가 좀 불편하다는.”
“아.”

국장님은 짜증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거, 오는 길에 커피 좀 타 와.”
“예.”

요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탕비실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갔다. 옆에서 상식이 녀석이 내게 수근거렸다. 

“다리가 불편하면 불편했지, 무슨 유세야. 안 그래요, 형?”

다리가 많이 불편한 걸까. 

하지만 아예 심각할 정도면 공익으로 오지도 못한다. 그리고 어차피 공익으로 오는 놈들이란, 허리든 무릎이든 어디가 부실하든가, 아예 평발이든가, 너무 키가 크거나 작거나 뚱뚱하거나 해서 군복이 맞지 않든가, 어찌 되었든 한 가지쯤은 부실한 걸 달고 오기 마련인데. 

“뭐, 어디 금수저라도 되나 보지.”
“그런 것 치고는 영 아닌데요.”
“뭐, 또 모르는 거고.”

그렇지, 모르는 거지. 저 놈이 뭐 하는 놈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하다못해 어느 학교를 다니다 왔는지, 졸업은 했는지. 우리는 아무 것도 들은 바가 없었다. 그저 임요한이라는 이름과, 스물아홉 살이라는, 공익이라기보다는 직원의 연배에 가까운 그 나이에 대해서만 들었을 뿐. 

아니, 그것도 어디까지 사실인지, 우리가 알 게 뭐람. 

그의, 묘하게 서늘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선임한데 잔소리를 했다고?”
“그렇다니까요?”
“현욱이 넌, 그래서 가만히 있었어?”

박 주무관은 담배를 피우다 말고 우리를 돌아보았다. 상식이는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거렸고, 나는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아휴, 나이가 많아도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여기선 여기 생활이 있는데.”

같은 20대 후반이라도, 이렇게 상큼한 사람도 있는 법인데. 

“그렇죠? 그렇다니까요?”
“현욱이가 잘못했네.”

아, 물론 상큼해 봤자 공무원이긴 하지만. 

“알다시피, 직원이 하나하나 불러서 애를 가르칠 수가 없잖아. 선임이 자기 후임에게 가르칠 건 가르쳐야지. 그나저나 영 말수가 없어서 어지간해선 먼저 그럴 것 같진 않았는데. 무슨 일 있었어?”
“아, 그게......”
“야동 공유하는 이야기 하다가요.”
“아하.”

박 주무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 하네. 그 친구, 신부야.”
“예?”
“아니, 아직은 신학생이지. 여튼 신부가 될 사람이야. 저런 거.”

박 주무관은 턱짓으로, 구청 옥상에서 바로 보이는 저쪽 CGV에 큼직하게 붙어 있는 대형 포스터를 가리켰다. 

무려 강동원이 주연을 맡은 엑소시즘 영화의 포스터였다. 

“저런 시커먼 거 입고, 평생 장가도 못 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하면서 살 텐데, 그런 사람한테 야동 같은 거 보여주면 어떡해.”
“그런......”

상식이는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아저씨하고 강동원이라니 비교가 굉장히 잘못된 것 같은데요.”
“뭐, 생긴 걸로 신부 하나.”
“근데, 신부도 공익을 해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에 신학교 나오는 다큐멘터리 본 적 있는데?”
“와아, 김현욱. 역시 좋은 대학 다닌다더니 다큐멘터리도 보고!”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요...... 신부님들은 군대도 두 번씩 간다면서요. 한번은 국방의 의무를 하러 가고 한 번은 사목을 하러 간다고.”
“국방의 의무고 사목이고 간에 몸이 멀쩡해야 군대를 가지.”

박 주무관은 혀를 찼다.

“한쪽을 절어서 아예 달리기를 못 해. 옛날에 무슨 사고가 있었다고 들은 것 같긴 한데, 공익들 사생활 다 캐고 앉은 것도 아니고. 여튼 저 친구, 답답하긴 해도 머리가 나쁜 건 아니니까 그런 쪽으로 써먹어, 응? 머리. 저래 봬도 신부 될 사람이라고, 3개국어인가를 한 대요, 우리 말 빼고도.”
 
 
 
 
 
 
 

신부 될 사람이니 유능하다는 것도 알겠다. 3개 국어를 능통하게 한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구청에서 쓰일 재주여야 말이지. 

물론 가끔 외국인 민원인들이 오기는 했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여자들이라든가. 사실 요즘이야 영어 못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 민원 창구에서도 영어로 어떻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 해결이 되겠지만, 그조차도 안 되는 사람도 가끔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요한은 그럴 때 슬그머니 일어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창구에 가서 그녀들이 필요로 하는 서류를 제대로 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대체 한 달에 몇 번이나 있겠어. 

“임요한씨, 베트남 말도 할 줄 알아...... 요?”
“중국어에요.”

새로 온 후임은, 그러니까 임요한씨는 짧게만 대답했다. 상식이 기가 막힌 듯 뒤에서 투덜거렸다. 

“와, 진짜 싸가지가......”
“됐어.”

나는,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입을 다무는 요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는, 어릴 때 다녔던 성당의 신부님도 저런 사람이었다. 말수가 적고, 신중한 사람. 임요한씨는 쓸모있는 공익은 아니겠지만, 신부로는 나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기는 들었다. 직원들은 입도 대지 않는, 맛대가리 없기로 소문난 구청 구내식당의 싸구려 짬밥을 앞에 두고도 그는 늘 경건하게 기도를 했다.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표정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듯, 그는 늘 자기 앞에 놓인 것에 집중했다. 

그런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님을 알겠다. 

한국에서, 남의 아랫사람으로 살기에는 지나치게 마이페이스라는 게 문제겠지만. 

뭐, 상관없나. 어차피 취직을 할 것도 아니고, 성직자인데. 가끔 짜증이 나고 신경이 쓰일 때도 있었지만, 가만 보니 그는 생각만큼 게으르고 눈치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조용히, 소리없이,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남들보다 일찍 와서 쓰레기를 치우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탕비실을 아침마다 정리했다. 늘 뚱하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구청 앞마당에 개인 CCTV라도 설치해 놓은 듯, 장애인이나 노인이 민원실 문을 열고 들어오기도 전에 먼저 문을 열어드렸다. 

어른들의 취향이라는 것도 제각각이라, 어떤 계장님은 그가 둔하다고 대놓고 구박을 하셨지만, 또 어떤 계장님은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근직한 구석이 있다고 좋아하셨으니, 그런 성격도 살기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 무한경쟁시대에 좀 어울리지 않을 뿐이지. 한 마디로 그는, 성직자나 공무원을 하기에는 나쁘지 않을 사람이었다. 

“에이, 그건 너무 좋게 보는 거예요.”

물론 상식이는 그 말도 마음에 들진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천주교 신부가 무슨 스님이야, 목사야. 을지훈련때 박박 기었으니까 한잔 하고 들어가자는데, 그것도 싫다고 마다하고.”
“뭐,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지.”
“그렇게 무르게 대하시니까, 저 아저씨가 여기선 그렇게 편하게 있어도 되나보다 하고 막가는 거예요. 아니, 말 나왔으니 말인데 여기만큼 편한 데가 또 어디 있어서.”
“정말?”
“......”
“난 아직도 빡센 것 같은데, 윤상식씨, 적응 너무 잘하시나보다.”
“......아니, 그렇다고요. 뭐.”

여튼 뭐, 상식이야 아직 임요한씨와 한참 더 생활해야 하니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때가 되면 또 새 후임도 받을 것이고, 임요한씨도 막내 생활 벗어나면 지금처럼 답답하다는 소리만 듣고 살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 원래는 우리가 하는 건 아니지만 주무관님들이 소소하게 떠넘기는 서류 일거리 같은 것은, 임요한씨가 상식이보다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을 봐 왔으니까. 상식이는 그것도, 자기가 먹은 짬이 더 있다며 짜증을 내긴 했지만. 

내가 없어도 자기보다 여덟 살이나 많은 사람을 박박 굴리진 않겠지. 

그러니 별 문제는 없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모든 것이 잘 굴러갈 거라고.

그러니까 그 일이 있기 전 까지는. 
 
 
 
 
 
 
 
 
 


여기 민원실의 터주대감 중 하나인, 양철중 계장님은 술이라면 주무시다가도 번쩍 눈을 뜨는 분이셨다. 임요한씨의 표현에 의하면 두주불사형이라고 했다. 그 말을 할 때는 그 돌부처같은, 아니, 돌로 깎은 예수님 같다고 해야 하나. 여튼 그 근엄하고 둔해 보이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스며 있어서,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도 기억하고 있었다. 

주무관님들이나 계장님 중에는 뒤쪽 아라비안 성인 나이트에 종종 다니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양 계장님은 그런 데는 또 안 다니셨다. 그분 취향은 구청 길 건너 골목 안쪽, 고등어 구이와 김치찌개백반을 기차게 잘하는 요만한 식당이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그 식당 아줌마가 과부라는 둥, 양 계장님과 그 식당 아줌마가 플라토닉한 사이라는 둥, 식당 안쪽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말도 있기는 있었다. 뭐, 설령 그런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도 공무원 품위 유지에 무슨 문제가 생길 것은 아닌 것이, 양 계장님도 홀아비였다. 중학생 아들이 하나 딸린 홀아비. 그러니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어떻게 어떻게 좋게 썸을 타시면 좋은 게 좋은 거겠거니, 우리는 양 계장님이 퇴근 시간 다 된 시각에 괜히 거울 앞에서, 몇 올 안 남은 머리카락을 점잖게 빗어 넘기시는 것을 보며 낄낄거리고, 한편으로는 잘 되시면 좋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양 계장님이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으셨다. 

그날 아홉 시 정각, 구청 민원실 문이 열리자마자, 식당 아줌마가 눈물 범벅이 되어서 달려들어왔다. 

“무슨 일이신지......”
“계장님이...... 여기 양 계장님이 쓰러졌어요.”

쓰러지다니. 

그 순간 우리는 물론 거기 앉아있는 직원 분들의 8할 이상이 복상사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것이라는 데 내 이번 달 남은 식권을 다 걸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병원에......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그게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이상해요. 어쩌면 좋아요.”
“저기, 아주머니...... 천천히 말씀해 보시고.”

박 주무관이 아주머니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아주머니의 흐느낌과 함께, 그 불안과 기묘한 흥분이 사방으로 번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구석에 앉은 우리까지도 공연히 마음이 뒤숭숭해질 만큼. 

그때 임요한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박 주무관에게 다가가 뭔가 말하더니, 아주머니를 모시고 민원인 대기실로 갔다. 아직 본격적으로 민원인들이 쏟아져 들어오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이었고, 주무관들은 저들끼리 모여 양 계장님의 일을 수군거렸다. 

“역시 그거겠지?”
“에이, 복상사면 저렇게 회사에 와서 그러겠어요. 어지간히 철판 깐 게 아니고서야.”
“모르는 거지. 뭐, 그쯤되면 사실혼이나 다름없는 거 아닌가?”
“거, 일들 합시다. 일.”

나는 슬그머니 민원인 대기실 근처를 오가며 안을 들여다 보았다. 임요한씨는 아주머니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흐느끼는 아주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기도를 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어깨 너머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얼른 못 본 체 돌아섰다. 어쩐지 가슴이 뜨끔했다. 
 
 
 
 
 
 
 
 

“선배님이 도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임요한씨는 나를 불러내더니, 다짜고짜 그렇게만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떡 벌렸다가, 다시 물었다. 

“아니,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제대로 해요.”
“예?”
“그러니까...... 임요한씨 머릿속에 들어있는 걸 처음부터 차근차근 조리있게 말해보라는 거예요. 결론만 냅다 던지지 말고.”
“지금으로서는 그 말씀밖에는 못 드립니다. 아직 정해진 게 아무 것도 없어서.”
“......좋아요, 양 계장님은 어디가 아프신 건데요?”
“아픈 게 아닙니다.”
“그러면?”
“일단은 제가 아는 보살님께 가 보시라고 했습니다.”
“보살님?”

신부가 될 사람 입에서 나오기에는 뭔가 위화감이 있는 단어에, 나는 다시 한번 입을 벌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보살님이라고 하면, 저, 그......”
“무속인 말입니다.”
“왜요?”
“왜겠습니까.”

그는 답답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로 답답한 건 이쪽인데도. 

“뭔가에 들려 있어요. 귀신일 수도 있고, 마귀일 수도 있습니다.”
“잠깐, 그게 뭐가 다른지......”
“어느 쪽이든 전문가가 필요해요. 귀신이라면 차라리 간단할 겁니다. 박 보살님은 워낙 그쪽으로 뛰어난 분이셔서요. 하지만 마귀라면......”
“그러니까 귀신은 귀신이고......”
“귀신은 한이 맺혀 구천을 떠도는 망자의 혼령이고, 마귀나 사탄, 악령은 천사가 타락한 것이죠.”

임요한씨는 나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물론 카톨릭에서는, 망자의 영은 원칙적으로 심판을 받고 제 자리로, 천국이든 연옥이든 지옥이 되었든 가야 할 곳으로 가게 되어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귀신은 악령이 망자를 흉내내어 산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을 망자의 영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귀신의 존재나 무속신앙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왜 저한테 하시는 건데요.”

나는 내 한참 후임인 그에게 잔뜩 주눅든 채 물었다. 

“전 그런 거 모르고요, 신부님 하실 분 한테 이런 말 하는 건 죄송하지만 제가 그...... 냉담자로 돌아선 게 이미 벌써 십 년이 넘었고요.”
“선배님의 도움이 필요할 지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무슨 도움요.”
“양 계장님을 악으로부터 구하는 일 말입니다.”

그는 지극히 엄숙한 태도로 말했지만, 나로서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도 이런 헛소리가 있을 수 없다 싶었다. 

말이 좋아 악으로부터 구하는 거지, 그건 엑소시즘이잖아. 

“저기, 그러니까 그거...... 엑소시스트 같은 거잖아요.”
“영화적 과장이 있긴 합니다만, 뭐 그렇겠지요.”
“그렇다는 건, 지금 양 계장님이 이렇게 뒤집어져서 거꾸로 계단을 내려오시기라도 한다는 거예요?”
“영화적 과장이 있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아니, 좋아요. 그런 게 있다고 치고. 그런데 엑소시즘이라니, 지금이 몇 년도인지 알아요?”
“2015년입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교황청에서는 세계구마사제협회, 다시 말해서 국제 퇴마사 협회를 공인하셨지요.”
“퇴마사 협회?”
“1990년 설립된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exorcists 말입니다. 만화에 나오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있는 겁니다. 전 세계에서 250분의 사제님들이 활동하고 계시지요.”
“헐.”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물론,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게 꼭 마귀라는 보장은 없고, 운이 좋으면 박 보살님 선에서 해결이 날 수도 있는 문제지만, 마귀라면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 이쪽 교구에 부탁해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제님이 와 주셔야 하는데, 짐작하시겠지만 엑소시즘이라는 게 그냥 행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이전에 정신과라든가, 검사를 잔뜩 받은 뒤에, 주교님의 허락을 득하고 나서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으로 엑소시즘을 행하는 거라서요. 물론 원칙적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만,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죠.”
“그렇다면 양 계장님은......”
“악에서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양가족이 있는 가장이 하루빨리 사무실로 돌아오시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임요한씨는 성호를 그으며 중얼거렸다. 

“저도 일이 커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만...... 두고 봐야죠. 만약 일이 복잡해지면, 선배님의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도울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제가 말이에요, 지금까지 22년 살았는데 그 중에 11년을 성당에 안 갔거든요?”
“상관없습니다.”
“대체 왜 난데요?”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선배님을 만나기 위해 이 구청에 왔는지도 모릅니다.”
“와, 그런 오글오글한 말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믿으시겠습니까.”

하마터면, 믿겠다고 말할 뻔 했다. 

그러나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농담이었습니다.”
“지금 선임한테 그런 농담을!”
“하지만 선배님이 도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대체 왜 나냐고요!”
“이런 말을, 이 구청에 계신 분 중에 누가 믿겠습니까.”

그건 그랬다. 

당장 상식이만 해도, 이 비상식적인 말을 들으면 대놓고 배를 잡고 웃은 뒤, 비웃고, SNS에다가 올린 뒤, 앞으로 20년은 술자리 안줏감으로 쓸 게 틀림없었다. 

“......도와 줄 일이 안 생기기만 바라야겠네요.”
“물론입니다.”

그가 소리없이 웃었다. 
아니, 웃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보살님이 그거 못 한 대요......”

아주머니는 이틀 뒤, 다시 찾아오셨다. 

“큰 굿을 해도 못 쫓는대요, 그건.”
“그렇군요.”
“그래서 박 보살님이 같이 가 줘서 요 동네 성당에 갔는데......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고...... 그런 거 취급 안 한다고......”

아주머니는 훌쩍이며 연신 눈물을 닦아내셨다. 임요한씨는 그 이야기를 묵묵히 다 듣고 있다가,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기도를 했다. 그리고 침착하게 말했다. 

“제가 신학생이라고 말씀드렸죠?”
“예...... 학사님.”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오늘 근무 끝나고 가 볼께요. 그럼 계장님은 아주머니 댁에 계신 거예요?”
“예......”
“계장님 아드님은요.”
“아빠가 편찮으시다고 전화는 했어요. 양 계장님 그러신 것 보면 충격 받으실 것 같아서.”
“예, 잘 하셨습니다. 가서 제가 계장님을 위해 기도 드리겠습니다.”
“예, 학사님.”

아주머니는 임요한씨에게 몇 번이나 연신 굽실거리고는 돌아 나갔다. 

“그러고 보니 계장님 쓰러지시고서 가게도 안 열고 간호한다던데.”

뒤쪽에서 주무관들이 수군거렸다. 

“이렇게 된 거, 양 계장님도 더 늦기 전에 재혼이나 하시면 좋겠는데.”
“그런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무슨 보살이 어떻고.”
“낸들 알아? 저기, 공익. 요한씨. 와서 설명 좀 해 줘 봐요.”

임요한씨는 주무관들이 부르는 대로 갔다. 다들, 굿이라는 둥, 보살이라는 둥,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양 계장님의 상태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요한씨는 태연했다. 

“계장님 쓰러지신 것은 스트레스 때문이랍니다.”
“그럼 보살님은? 계장님 귀신 같은 것 들린 건 아니고?”
“아닙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렇다니까, 거 봐.”
“근데 왜 요한씨가 거긴 가 본다고.”
“아주머니가 많이 불안해 하시니까요. 저라도 가서 함께 기도해 드리면 안심하실 것 같아서 가 보겠다고 했습니다.”
“아아.”

주무관들은 곧 흥미를 잃은 듯,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임요한씨는 묘하게 모든 것을 꿰뚫어 볼 것 같은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민원실을 한바퀴 휘 둘러본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웃었다. 
 
 
 
 
 
 
 
 
“그런데, 이런 것 해본 적은 있어요?”

양 계장님은, 아주머니의 손바닥만한 가게 구석 쪽방에 누워 있었다. 열이 절절 끓는데 발은 차가웠고, 눈은 희번득거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무시무시한 것은, 양 계장님이 쉴새없이 내뱉는 말이었다. 
내가 알기로 양 계장님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공무원이 된 데다, 평생 외국 땅 한 번 밟아보지 않은 분이었다. 그런 분이, 영어도 아니고 어쩐지 못 알아들을 말을 쉴 새 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기름때가 덕지덕지 앉은 천정을 올려다보면서. 

“있어요.”

그 좁은 방 구석에서, 임요한씨는 성당에서 가져온 성수와 손때묻은 성경책을 꺼내놓으며 태연히 대답했다. 

“열두 살 때였지만.”
“열두 살?”
“아버지가 마귀에 들리셨죠.”

경악할만한 이야기를, 임요한씨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남 이야기하듯 말했다. 

“술 먹고 들어오시다가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셨어요. 처음에는 간질이나, 뭐 그런 발작인 줄 알았죠. 그런데 뭔가 이상한 말을 계속 하시는 거예요.”
“계장님...... 처럼요?”
“예. 발작이었으면 말이 끊어졌을 텐데. 정말 쉬지 않고 말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는 계장님의 이불가에 소금을 죽 이어지게 뿌려놓고, 그 소금 결계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래서요? 신부님한테 모시고 갔어요?”
“우리 성당에, 구마기도를 하신다는 소문이 있는 분이 계셨어요. 마침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셔서, 급히 달려가서 도와달라고 했어요.”
“잠깐, 신부님 아닌데도 그런 걸 할 수 있어요? 그런 건 신부님들이 영대같은 것 목에 걸고......”
“그런 건 장엄구마식. 영화에 나오는 엑소시즘이 그런 거죠.”
“실제로 있긴 있어요?”
“있어요. 신학교에서도 배우니까. 하지만 평신도들도, 직접 물러나라, 나가라, 그렇게 말하지는 못하지만, 구마를 청하는 기도는 할 수 있죠. 마리아님께 성모송 바치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소서,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그는 품에서 십자가를 꺼내 양 계장님의 베개 옆에 내려놓았다. 계장님은 고통스러운 듯 몸을 움찔거렸다. 

“그분은 실제로, 몇 시간에 걸쳐서 저희 아버지를 위해 기도해 주셨어요.”
“효과가 있었어요?”
“그분은 성령쇄신봉사회에서 봉사하고 계신 분이셨어요. 구마와 치유의 은사를 받으신 분이어서.”

그는 손가락에 성유를 찍어 양 계장님의 이마에 십자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양 계장님이 꿈틀거리다 눈을 번쩍 떴다. 임요한씨는 손으로 양 계장님의 어깨를 눌렀다. 

“해가 뜰 때 까지 그분은 미카엘 대천사와 성모님께 구마를 청하는 기도를 해 주셨고, 저는 그 옆에서 아버지의 팔다리를 주무르면서 묵주기도를 했어요.”
“어머니는......?”

임요한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한 손으로 계장님의 가슴을 짚은 채, 다른 한 손으로 내게 묵주를 건네주며 물었다. 

“할 줄 알죠?”
“......중간에 까먹었을 지도 모르는데.”
“하다 보면 생각날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 계장님은 입에 거품을 문 채로 온 몸을 덜덜 떨었다. 임요한씨는 계장님의 가슴에 걸터앉은 채, 평소와는 다른 울림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미카엘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천상 군대의 영광스러운 지휘자이신 성 미카엘 대천사여, 권세와 폭력과의 싸움에서 저희를 보호하시며, 이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 아래 있는 악신들과의 싸움에서 저희를 보호하소서.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고, 사탄의 압제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빼내신 인간을 도우러 오소서......”
“놔! 놓으란 말이다!”

기도가 효험이 있었던 것인지, 그게 아니면 임요한씨 때문에 숨이 막히신 것인지, 계장님은 우리가 이 방에 들어온지 한 시간 15분 만에 국적불명의 외국어 대신 우리말로 소리를 지르셨다. 

“이 새끼가 넌 어디서 공익이 똥오줌 못 가리고 계장한테 이 지랄이야. 당장 일어나!!!!!!”
“성 미카엘 대천사여, 평화의 하느님께서 사탄의 세력을 저희 발 아래에 섬멸하여, 사탄이 더는 인간을 지배치 못하고, 교회를 해치지 못하도록 간구하여 주소서.”
“내가 계장이야! 빡빡 기면서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딱 이십 칠 년 걸렸는데, 야 이 놈아. 어디 새파란 공익새끼가 계장한테 대들고 있어!”
“악마와 사탄에 불과한 용과 늙은 뱀을 붙들어, 쇠사슬로 묶어 심연에 빠뜨리고, 백성들을 더 이상 유혹하지 못하게 하소서.”
“누가 늙었다는 거야!!!!! 이 개새끼야!!!!!!”
“저기, 계장님 정신 차리신 것 같은데요. 평소보다 입이 좀 험하긴 하지만......”
“아뇨.”

임요한씨는 나를 얼른 노려보았다가, 다시 양 계장님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선배님은 묵주기도나 계속하세요.”
“그치만 저분은 계장님이고 우린 공익인데요.”
“계장님이 무사히 근무하시다가 정년에 은퇴하실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어서요!”

어쩔 수 없지. 

아무리 봐도 계장님은 멀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어 보였지만, 저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오는데야. 하지만 불안했다. 그런 내 불안을 읽었는지, 임요한씨는 계장님의 머리 위에 가차없이 성수를 부었다. 계장님은 온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악!!!!!!”
“불결한 신아, 네가 누구든 우리는 너와 마귀의 모든 세력과, 지옥의 원수들의 모든 공격과, 마귀의 모든 군단과 동맹과 씨족을 추방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능으로 너를 추방하노니, 성교회와......”
“누가 성교를 했다는 거야!!!!!”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어 하느님의 어린양의 고귀한 피로 구속된 영혼들에게서 나갈지어다. 간악한 뱀아, 너 더 이상 인류를 기만하고 성...... 교회를 박해하지 말것이며, 밀을 체에 거르듯 택된 자들을 까부르고 거르지 말지어다.”
“네가 지금, 응? 계장을 보고 까분다고 그러고 있어? 그러고도 곱게 말년까지 버틸 줄 알아? 어디서 출근 안 하면 분실 처리되는 놈들이 말이야. 분실!”
“모든 사람이 복되고 진리를 인식하게 되기를 바라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큰 교만으로 항상 같은 자리에 있으려는 너에게 명하노라.”
“크억!”
“성부께서 네게 명하시고, 성자께서 네게 명하시며, 성령께서 네게 명하노라. 너 저주받은 용과 마귀의 모든 무리들아.”
“난 계장이고 너흰 공익이야! 이 씨발놈들아!”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이시며, 진실하신 하느님이시고, 거룩하신 하느님이시며, 당신의 외아들을 희생으로 바치심으로써 당신을 믿는 모든 이가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실 만큼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선언하노라. 인간들을 속여 저들을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하기를 그만 둘지어다. 교회를 해치고 그 자유를 묶으려 꾀하지 말지어다.”
“크어어어억!!!!!!”
“자비하시고 애정이 깊으신 어머니시여, 언제나 저희의 사랑과 희망의 대상이 되어 주소서. 천주의 성모님, 천사들을 보내 주시어 악한 원수들에게서 저희를 보호해 주소서.”

계장님은 임요한씨를 밀쳐내려 하다가, 비명을 지르다가, 이제는 아이고, 나 죽네 하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문 밖에서, 아주머니가 안절부절 못 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임요한씨는 굴하지 않고, 외우던 기도문을 계속 외울 뿐이었다. 그야말로 사람이 아니라 철벽같았다. 

“하늘의 숭고한 여왕이시며 천사들의 여주인이신 마리아님, 당신께서는 하느님으로부터 사탄의 머리를 밟아 부서뜨릴 능력과 위탁을 받으셨나이다.”
“그래, 아주 밟아서 죽여라, 죽여!!!!!!”
“당신의 영도 하에서 악신들과 대적하고 싸워, 그들의 교만을 꺾고 지옥에 몰아넣게 하소서. 성 미카엘 대천사여, 악과 전투로부터 저희를 보호하시고 악마의 책략으로부터 저희를 도우소서. 주님께서 악마에게 명하실 수 있도록 간구해 주소서.”
“야, 이 빌어먹을 놈아!”
“천상 군대의 지휘자이신 대천사여, 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영혼들을 파멸로 이끄는 사탄과 다른 악마들을, 하느님께서 주신 힘으로 지옥으로 쫓아 버리소서.”

임요한씨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성유로 계장님의 이마 위에 다시 한 번 십자를 그렸다.

“주님, 당신의 뜻대로, 당신이 아시는 대로, 당신의 종 양철중 계장님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고 자비없이 계장님의 아랫배를 꽉 눌렀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으아아아아아악!”

나는 계장님이 옆구리든 아랫배든 어딘가 터지는게 아닐까, 저 되다 만 돌팔이 신부가 사람을 잡는 게 아닐까,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그때, 계장님의 입에서 뭔가 퍼덕거리며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미꾸라지였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여섯 마리나 되는 미꾸라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중 한 마리는, 임요한씨가 이 일을 시작하리 전에 뿌려놓은 소금에 닿고 감전이라도 된 듯 튀어올랐다. 임요한씨는 계장님의 배를 한두 번 더 꾹꾹 눌러 보고는, 그 미꾸라지들 위로 성수를 부었다. 

물을 만난 미꾸라지는, 오히려 몸서리를 치며 파들거리다가 죽어버렸다. 임요한씨는 자신의 셔츠를 벗어 그 미꾸라지들을 감싸고, 기절한 계장님의 가슴 위에 자신의 묵주 끝에 매달린 기적의 패를 떼어 올려놓았다. 

“내다 버려도 되는 그릇 하나만 얻어 와요. 이거 갖다 버려야 하니까.”
 
 
 
 
 
 
 
 
 
임요한씨는 그 미꾸라지들을 굳이 아라뱃길까지 가져와서 태웠다. 재는 흘러가는 강물에 흩뿌렸다. 남은 성수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손을 씻고 나서야 그는 안심했다. 나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두 캔 사다가, 한 캔을 그에게 건넸다. 

“정말로 구마가 된 거예요?”
“아까 그 미꾸라지들 봤잖아요. 사람 배에서, 산 미꾸라지가 그렇게 튀어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단하네......”
“뭐가요.”
“무슨 구마가 45분만에 끝나요. 아주, 내추럴 본 엑소시스트네. 이제 신부 되면 저런 거 다 때려잡으면서, 아주 날아다니겠어요.”

임요한씨는 한숨을 쉬었다. 

“원래는 축복의 기도나 하고, 딱 마리아님이나 미카엘 천사님께 구마를 청하는 선 까지만 했어야 하는데. 너무 나갔어요.”
“너무 나가요?”
“위에 알려지면 징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괜찮아요?”
“안 괜찮으면 어쩌겠어요.”

임요한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맥주 캔을 땄다. 그는 목이 마른지, 목울대를 울리며 맥주를 마셨다. 나는 그의 옆모습을, 생각이 많아 보이고, 유난히 나이가 들어 보이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는, 엄마를 죽도록 패곤 했어요.”
“......”
“그래서 그 날도, 엄마는 아버지가 술 마시러 갔다고 하니까 어디 도망쳐 있었죠. 난, 기도를 열심히 하고 마귀를 쫓아내서 아버지가 살아나면, 내가 어렸을 때처럼 좋은 아빠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되었는데요.”
“살아나긴 했는데, 여전히 엄마를 때렸어요. 여전히 술 많이 마셨고, 여전히 바람도 피웠고.”

임요한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뱀 껍질 같은 걸 토했어요, 아버지는. 그걸 갖다버려야 하는데 징그러워서 손도 못 댔던 기억이 나요. 그거 알아요? 난 그때 열두 살 밖에 안 되었고,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셔서, 계속 묵주기도를 하지 않으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하셔서 계속 옆에서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는데, 위험하고 무서워도 아빠를 구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라는 작자는 무엇 하나 변하지 않더라고요.”
“......”
“그 일을 계기로 성당 일을 열심히 돕게 되었는데, 착실하게 복사 같은 걸 맡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신학교 추천을 받고 있었어요.”
“신부가 되려고 했던 게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될 생각도 있었는데...... 결국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고 해야 하나. 어린애가 애정결핍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 땅을 파고 들어가는 짓도 하는 법이에요.”

임요한씨는 맥주를 몇 모금 마시고, 뱃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머니라도 말렸으면, 못 이기는 척 그만뒀을 텐데.”
“후회해요, 신학교 간 것?”
“어머니가, 너무 기뻐하시더라고요...... 자식이 사제가 된다는데. 모르겠어요. 그러면 갑남을녀들이 지지고 볶고 사는, 그런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걸까요. 그게 아니면, 자식이 하느님을 섬기면 어머니는 나중에 천국에 가실 수 있을 거라고 믿으신 걸까요. 여튼, 그렇다 보니 그만 둘 수도 없었어요.”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작년에.”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작게 성호를 그었다. 

“어쩌면, 어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나도 이런 무리수를 두진 않았을지도 몰라요.”
 
 
 
 
 
 
 
 
그의 우려대로였다. 

이런 일은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드렸건만, 저기 구청에 공익으로 근무하는 신학교 학사님이 마귀를 쫓아 주셨다고, 아주머니가 동네방네 소문을 퍼뜨리는 데는 닷새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이, 다시 성당에, 그리고 신학교에까지 들어가는 것도. 

“뭐, 말하자면 방법을 배우긴 했어도 아직 써먹으면 안 되는 거였죠.”

임요한씨는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태연하게 말했다. 

구마의식 이후에는 정말로 몸살에라도 걸린 듯 열이 펄펄 끓어, 요 앞 한림병원에 입원해 있던 양 계장님이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다시 정상적인 출근을 하게 된 지 나흘 째 되던 날의 일이었다. 

“연습면허 때 아무리 차를 잘 몰아도, 연습면허 반납하고 운전면허증 나올 동안에 차 몰면 무면허 운전 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말하자면 저는 무면허 운전을 한 거고, 그에 상응하는 징계를 받는 겁니다.”

나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계장님을 구했잖아요!”
“그런데다가, 먼저 박 보살님께 가 보시라고 권한 것도 문제가 있었어요. 원래는 무속인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에게 보냈어야 했겠죠. 박 보살님이 아무리 이 인근에서는 영험한 분이라고 해도, 원칙적으로 성직자나 성무를 맡을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요?”
“뭐, 짤릴 수도 있고.”

임요한씨는,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이거 큰일이군요. 신부 될 생각만 하고 취직준비도 따로 안 했는데, 이제와서 짤리면 뭐 해서 먹고 사나.”
“웃을 일이 아니잖아요!”
“뭐, 일단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는 동안에 다른 진로를 모색해 봐야죠. 선배님 혹시 나이는 서른이 다 된데다, 영어, 중국어, 라틴어 할 줄 아는 사람 어디 필요 없을까요.”
“영어랑 중국어는 그렇다고 치고 라틴어를 어디다 써요......”
“이거 큰 일이네요.”

전혀 심각하지 않은 표정으로 그는 중얼거렸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하느님께 맡기려 했는데.”
“좀 심각하게 생각해 봐요.”
“난 지금 굉장히 심각하게 말하는 거예요. 진짜, 라틴어 어디 써먹을 데는...... 없겠군요.”

임요한씨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때, 상식이가 옥상으로 뛰어올라왔다. 

“아, 여기 있으면 어떡해요.”
“무슨 일이야.”
“누가 저기, 왔어요. 아저씨 좀 보자던데.”
“저 말입니까?”
“그럼 여기 아저씨가 누가 더 있어요.”

스무 살 난 상식이는 스물두 살 난 나와, 그리고 스물아홉 살 되는 임요한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우리는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1층 민원실에는, 굉장히 묘한 느낌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낮에 만났으니 망정이지, 밤에 만났으면 어쩐지 정체 모를 오싹한 느낌이 들었을 것 같은 그런 남자였다. 

“사회복무요원 임요한 씨.”

그는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완벽하게 수트를 빼 입은 채 우리를 돌아보았다. 

“소속에 변동사항이 생겼어요. 다음 주부터 마포구청으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어째서요?”
“지난 주에 하신 일 때문입니다.”
“징계인가요?”
“단순 소속 변경입니다. 그런데, 저는 임요한 씨와 말씀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만.”

그는 임요한씨 대신 캐묻던 나를 돌아보았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
“저는 김독각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임요한 씨 일이 궁금하면 제게 연락하시면 됩니다. 홈페이지에 제 소속과 전화번호가 나와 있을 겁니다.”
“그때 일을 함께 하신 분이로군요.”
“저는......”
“알겠습니다.”

임요한씨는, 내 어깨 너머에서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리 갈게요.”
“임요한씨.”
“괜찮습니다, 선배님.”

그는 웃었다. 그리고 내게만 들릴락 말락하게 속삭였다. 

“저 사람, 인간이 아니에요.”
“뭐?”

나는 깜짝 놀라 그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마포구청에서 온 수상한 남자를, 김독각이라는 이를 바라보았다. 

묘하게 서늘하고도 쓸쓸한 느낌.

이 세상에, 억지로 발을 걸치고 있는 것 같은 그 불안정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슬픔을 등에 업은 채, 김독각이라는 남자는 임요한씨에게, 이곳에 있으나,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겁고 쓰라린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이곳을 떠날 그에게. 잊혀질 그에게. 

사제복 대신, 검은 공익복을 어깨에 걸친 그의, 둔하고 쓸쓸한 뒷모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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