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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립 장난감 졸업식

2015.10.31 23:3310.31

영진은 책을 읽으며 드럼을 치고 있었다. 집게손가락으로 책 옆면을 치며 드럼 박자와 맞췄다. 휴게실 문이 열리고 마트 아르바이트 직원을 관리하는 김 대리가 들어왔다. 김 대리가 들어오자 누워서 쉬고 있던 알바 생들이 눈치를 보며 소파에서 일어나 바로 앉았다. 김 대리가 휴게실 내부를 한번 둘러봤다. “야! 니들 청소 안해?” 청소할 것도 없는 휴게실이었지만 알바 생들은 뭔가를 하는 시늉을 보이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진은 음향이론 책과 음악에 빠져 김 대리의 말을 듣지 못했다. 다른 알바 생이 눈치를 주려 다가가자 김 대리는 손을 휘저어 말렸다. “쟤 다른 애들하고 안 놀지?” 알바 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 대리는 책 옆면을 손가락으로 치는 영진을 보며 머리 옆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실실 웃었다. 알바 생은 동의하기 곤란해 시선을 돌렸다. 영진이의 핸드폰 알람소리가 울려 마트 근무 교대시간을 알렸다. 영진이 이어폰을 벗자 청소를 마치고 자리에 앉는 알바 생들이 보였다. 영진은 상황을 알려고 주위를 돌아봤지만 알바 생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김 대리는 영진의 어리버리한 모습을 소리 없이 웃었다. 
교대자들이 들어오자 영진은 책을 닫고 사물함에 넣었다. 교대자들이 근무를 마치기 위해 허공에 접대 멘트를 하며 허리를 숙였다. 마트 예절 교육으로 근무 교대 전, 후에 관리자에게 꼭 보여야 할 준비였다. 김 대리가 책상을 내려쳤다. “야! 똑바로 안 숙여? 니들 한 바퀴 더 돌래? 돈 받았으면 일 똑바로 해야지!” 교대자들이 다시 접대 멘트를 날리며 허리를 숙여 허공에 인사했다. 영진은 근무하러 나가기 위해 교대자들처럼 허공에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김 대리는 영진의 모습에 피식 웃다가 손가락을 까닥거려 불렀다. “야. 니 일루 와봐!” 영진이가 소파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빨리 안 뛰어! 행동 봐라.” 김 대리가 소리쳤다. 영진이가 서둘러 김 대리 책상 앞으로 갔다. 김 대리가 팔짱을 끼고 몸을 뒤로 젖히며 영진을 봤다.

“니 공익이었냐? 현역이었냐?”
“육군이었는데요.”
“자식이 군대 갔다왔으면 육군이었습니다! 해야지...그래...잘 하라고 다시 가.”

영진이 가만히 서 있었다. 김 대리가 홀로 실실 웃다가 소리쳤다.“니 열심히 하라고 불렀어! 말 끝났으니 빨랑 가서 일해!” 영진은 뒤돌아 문을 향해 걸어갔다. “자식 걸음 봐라. 안 뛰지? 군대 다시 가고 싶냐?” 김대리의 으름장에도 영진의 걸음은 빨라지지 않았다. “자식 개기네?” 김대리는 어이없다는 듯 가볍게 웃으며 알바생들과 비웃음을 나누려했지만, 알바생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영진은 교대자의 인수인계를 듣고, 창고로 향했다. 4층 장난감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 안은 어두워서 불을 켰다. 창고 벽면을 타고 싸여있는 수많은 종이박스들과 달리 중앙에 놓인 박스들이 보였다. 영진은 카터 칼을 꺼내어 박스의 테이프를 자르고 열었다. 안에는 최근 개봉한 만화 영화 로봇 장난감 세트가 들어있었다. 영진은 손끝으로 세트 박스끼리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하나 꺼냈다. 투명한 포장지를 넘어 로봇의 정교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영진은 자신의 어린 시절 로봇과 현재 로봇을 비교했다. 어린 시절에는 단순히 녹색 플라스틱이었는데 지금은 은색과 청색이 섞여있고 색을 입힐 수 있는 도구도 내장되어 있었다. 게다가 관절이나 장식들은 전보다 훨씬 세밀했다. 영진은 손바닥을 투명 포장지에 갖다 댔다. 직접 만지지 않아도 촉감이 느껴졌다. 어떤 감촉인지 어느 부분에서 꺼끌하고 매끄러운지 상상이 갔다. 보통 사람들의 유년기처럼 영진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지만 영진이은 자신의 유년기가 남보다 특별했다고 믿었다. 유행하는 장난감들을 거의 전부 가지고 있었지만 항상 장난감에 허기졌다. 사탕사면 들어있는 조그만 프라모델부터 고무로 만들어진 고지라 괴수까지 무엇이든 손에 넣으려 했다. 영진은 자신의 집이 부자가 아닌데도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장난감들을 가질 수 있었는지 신기했다. 그러고 보니 영진은 자신이 가장 부자고 부족함 없던 시절이 장난감들로 둘러싸인 그 때라고 생각했다. 
지금 알바하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다. 장난감 세트를 돌려 가격표를 확인했다. 이틀 치 일당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거의 10만원에 달했다. “너와 네 시리즈 친구들을 사기 그렇다. 행복하기 전에 파산하겠네. 미안.” 영진은 다시 종이박스 안으로 장난감 세트를 넣었다. “영진아! 우리 좀 도와줘. 그거 지금 행사기간이야. 진열대로 같이 옮기자.” 등 뒤에서 진성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도와주려 왔어요. 이거 파렛트에 쌓고 자끼로 옮길거죠?”
“그래. 박스 다섯층으로 쌓자. 한번에 다 옮기자.”
“창고 입구 통과할 수 있을까요?”
“입구에서 살살 밀면 천장에 안 걸려.”

진성과 영진은 나무로 된 파렛트에 장난감을 쌓고 손수레를 가져와 파렛트와 연결했다. 진성과 영진은 손수레를 입구까지 끌고 가다가 속도를 줄였다. 진성이 손수레를 끌었다. “형 뒤에서 제가 볼 테니 살살 미세요.” 영진은 뒤에서 받쳐주다가 박스 안에서 뭔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이야!” 말이 끝나자마자 맨 위에 쌓은 박스들이 영진과 진성을 향해 떨어졌다. 

“누구입니까?”
“이 바보같이 웃는 녀석.”

영진은 대화에 눈을 떴다. 어디서 봤는지 모르지만 유명한 녀석인 것은 분명했다. 같은 캐릭터를 인터넷에서 몇 번 봤고, 길거리에서 여학생들 악세사리에서도 봤다. 영진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해적 인형을 보며 히죽 웃었다. 삐딱한 해적 모자에 애꾸 안대를 한 얼굴, 과장된 콧수염. 휘어진 커다란 칼을 들고 있었다.

“이 녀석 왜 날 보며 웃지?”
“실버 그건 당신이 웃기게 생겨서이다. 나와 내 전우들은 그 의견에 동의한다.”
“시끄러워. 병정. 이 녀석은 지금 이게 꿈인 줄 알아. 현실감각을 불어넣어야 되겠어.”

실버라 불린 해적 인형은 칼로 영진의 뺨을 살짝 긁었다. 영진은 이게 꿈인 아니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영진의 넓어진 시야로 녹색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진 병정 프라모델이 들어왔다.

“소리를 지르지 않을 것을 권고합니다. 우리는 분명 제네바 조약을 준수하겠지만, 포로 상태인 당신이 인신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병정? 언제나 말했듯 보스 역할은 나야. 개성 없이 모두 똑같이 생긴 어느 병사가 아닌, 바로 이 해적 실버지. 어이 너 얼간이. 이건 꿈이 아니야. 뺨을 더 크게 긁어줄까?”
“실버. 반대편에 쓰러진 인간이 일어나려 한다. 작전은 빠르게 진행..”
“알았어! 야. 너 인간. 잘 들어라. 너 알바 끝나고 곧바로 창고로 와. 딴 데로 새면 죽는다. 우린 너희들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어. 교대 시간, 출근 시간, 월급 날짜, 행사 기간 모두에 대해. 어느 날 순찰 돌다가 어느 장난감에 발이 걸려 넘어져 죽기 싫으면 시키는 대로 해. 오늘 근무 끝나고 몰래 창고로 온다. 약속하면 네 가슴에 놓인 박스를 치워주지. 아니면...”

실버가 손짓하자 영진의 가슴 위에 놓인 박스의 무게가 더 늘어났다. 박스 위로 병정 프라모델들이 보였다. 하나, 둘, 셋, 넷이었다. “여기서 지금 당장 끝내 줄 수도 있어.” 영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진과 진성은 마트를 나와 약국에서 가볍게 치료 받고, 박카스 한 병을 마시고 다시 일하러 돌아왔다. 김 대리는 사고를 일으켰다고 크게 투덜대다가 상관을 만나자 반창고와 연고, 박카스 값 육천 원을 이만 원이라고 보고했다. 영진이 치료 받으러 간 사이 다른 직원들이 종이 박스의 로봇을 진열대에 이미 꽉 채워놔서 할 일이 없었다. 
영진은 진열대를 순찰하다가 해적 실버와 눈이 마주쳤다. 해적왕 모험 홍보 피켓 앞에 실버는 형광등 빛을 받아 번쩍 빛나는 칼을 들고 영진과 눈을 마주쳤다. 영진은 눈이 마주친 순간 놀랐지만 실버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영진의 가슴 속에서 혹시 그 일이 꿈인가? 하는 의심이 든 순간, 실버는 오른손으로 쥐던 칼을 왼손으로 바꿔 쥐고는 오른손 손가락으로 목을 스윽 그었다.


영진은 근무가 끝나자 사물함 앞에서 유니폼을 벗다가 창고 약속을 떠올렸다. 창고로 들어가는 걸 수상하게 볼까봐 유니폼을 벗지 않고 뒷정리 하려는 척, 휴게실에서 조용히 나왔다. 
매장에는 꼭 필요한 조명 외에 나머지는 소등되어 어두웠다. 영진은 창고 문을 두드려 노크하려다가 바보 같다고 여겨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창고 안은 환했다. 평소에도 잘 쓰지 않는 곳이고 전기세 아끼라는 김 대리 호통에 조명을 키지 않았다. 장난감들은 환하게 조명을 켜두고 종이박스 위에서 트럼프 카드로 놀고 있었다. 실버가 턱짓했다. 영진은 무릎 뒤에서 뭔가가 눌러 무릎을 꿇었다. 박스 하나가 영국 기차 시리즈의 기차들에 밀려 영진 앞으로 왔다. 실버가 박스 위에 앉아 거만하게 다리를 꼬았다. 실버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더니 뭔가를 피는 시늉을 했다. 영진이 생각해보니 시가를 말고 피는 행동 같았다. 실버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 시가를 깊게 빨아들이더니 허공으로 내뱉었다. 영진이 웃었다. 영진의 목덜미에서 뭔가가 찔렀다. “고개를 돌리지 않을 것을 권고 합니다. 협상 중에 웃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닙니다.” 영진이 주변 시로 보니 병정이었다. 영진 주변을 병정과 똑같이 생긴 프라모델 네 개가 소총으로 겨누고 있었다.

“저 친구 말 듣는 게 좋아. 우리 통성명이나 하지. 이름이 영진 맞지?”
“어떻게 알았어요? 네...아니 당신 이름은?”
“네 유니폼 명찰보고 알았어. 장난감에게 무슨 존댓말이야. 바보 같아. 말 트자고. 내 이름은 실버라고 알텐데? 정말 바보군. 제대로 골랐어. 잘 들어.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할 일이 있어서 널 픽업했어. 혹시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아나?”

영진은 실버의 마지막 말이 뭔가 중요한 걸 말하듯 소리가 작아진 것에, 웃고 싶었지만 병정 때문에 웃을 수 없었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둘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군. 비즈니스에서 좋은 시작을 의미하지. 장난감들은 나름의 의무와 룰이 있어. 그것을 지키는 대가로 인간과 비슷한 행동력을 얻지. 근데 이 대가를 위협하는 일이 일어났어. 중국 광둥이라고 가봤나?”
“에...해외는 한번도 못 가봤는데.”
실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허공으로 한심한 눈짓을 했다.

“좋아. 촌친구. 광둥은 원래 가전제품 최대 생산지였어. 세계 장난감 생산율 칠십오프로가 중국에서 나오거든. 중국내 갑부들이 후진 인프라와 국가 브랜드 위상을 높이고자 전문적인 생산지를 광둥으로 정했지. 그곳에 장난감 생산시설이 들어서고 체계적으로 장난감을 생산했지만 문제는...광둥이 가전제품 최대 생산지 겸 최대 쓰레기장이지. 온 세상 가전제품 쓰레기가 광둥으로 몰려. 쓰레기장 옆에 세워진 장난감 공장에서 어떤 장난감이 나올 것 같나?”
“....실버는 해외 가봤어?”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난 메이드 인 말레이시아야! 지금 여기 있는 게 외국에 온 거야!”
“실버. 우리 분대원 들이 말하길. 영진의 태도는 네 거만한 태도를 우회적으로 비웃거나 어이없다는 의견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소총 대검으로 찔러!”
“우리 행동은 우리가 결정한다. 실버. 불필요한 위협행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젠장! 개성 없는 병정 놈들. 언제나 말했듯 보스는 나야. 좋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그 놈들 다 미쳤어. 놈들은 만들어 질 때부터 납과 카드늄에 오염 되서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을 병들게 만들어. 놈들의 망한 육체만큼 녀석들 정신도 이상해서 모든 인간을 병들게 하기로 마음먹었어.”
“...놈들이 누구야?”
“내 말 똑바로 듣고 있는 거야! 아. 미안. 내가 설명을 안 해줬군. 놈들은 말이야. 일주일 전에 대정전이 있었지? 너희는 그것을 쥐가 전선을 끊어 먹어서 인줄 알고? 아니야. 놈들이 탈주하기 위해 저지른 일이야. 놈들은...불량품 그래 불량품이지. 놈들은 팔려나가도 금방 환불 되서 돌아와.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가 피부가 검거나 시퍼렇게 변하거든. 아니면 호흡기 질환에 걸려. 인터넷인가 뭔가 하는 걸로 소문이 퍼져 더 이상 놈들이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됐지. 최근에 전량 리콜이 결정됐어. 그때부터 녀석들이 수상한 계획을 품은 것을 알아야 했는데...”
“이제 알겠어. 불량품들이 문제를 일으켜 리콜이 결정되자 불량품들이 탈주해서 사람들에게 보복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거지?”
“음. 바보는 아니군. 이제야 내 설명을 이해했어.”
“원인 결과가 잘 나열된 좋은 설명은 아니지만. 그런데 팔려야 사람과 접촉해서 보복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어리석군. 아직도 내 설명을 이해 못 했어. 놈들 육체는 곧 병균이야. 이불, 음식, 책, 옷 어디든 자신의 몸을 문질러 병균을 옮길 수 있지. 특히 음식물과 옷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봐. 아이들은 납에 쉽게 전염 될 거야.”
“그런 행동은 어떤 보통 사람들도 잘 추측 못해. 장난감의 의견을 강요 하지 마.”
“....이 자식 고집 있네? 더 끌다간 서로 추해질 것 같으니 선장인 내가 양보하지. 이번만이야. 명심해! 자 우리와 손을 잡고 오늘 밤과 새벽에 마트 전체를 수색하여 놈들을 막아야 해. 우리를 도와주겠나?”

영진은 머뭇거렸다. 불량품이 저지르는 일은 위험한 일이기는 해도 자신과 상관이 없었다. 마트에서 일한 후로 마트에 정이 떨어져 어떤 음식도 물건도 사지 않았다. 그리고 퇴근 시간 후에 홀로 마트에 있는 것은 불법적인 일이었다. 장난감들과 팀을 이루어 모험을 하는 것은 흥미진진한 매력적인 일이었지만 모험을 할 큰 이유는 아니었다. 실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가를 다시 빨고는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는 장난감들에게 손짓했다. 레고 인형들이 작은 수레에 돈을 실어서 영진 앞으로 옮겼다.

“마트에서 사람들이 흘린 돈이야. 총 삼십만 육천 오백 이십원. 이건 선금이고 우리를 도와줘서 일이 해결되면 이십만 천원을 더 주지. 너 여기서 일하는 이유가 돈 아니었던가?”
“...언제까지 수색하는 거야?”
“사실 우리가 단독으로 나섰지만 장난감의 행동력으로는 무리가 있더군. 높은 데 있으면 높은 걸 볼 수 있고 멀리 행동 할 수 있지 라는 나의 뛰어난 의견으로 인간을 하나 포섭하기로...돈에서 눈 떼고 나 좀 쳐다보지? 네가 도와주면 이틀에서 삼일 밖에 걸리지 않을 거야. 더 걸릴 경우 돈을 더 주지.”
“좋아. 할게. 그런데 장난감의 의무와 룰이라는 게 뭐야? 무엇이기에 너희들이 이렇게 싸우려 하지?”
“그건 우리 세계의 비밀이야. 인간들이 악용하도록 가르쳐 줄 수 없지. 내 배에 승선한 걸 환영하네.”

병정들이 일제히 총을 들고 경례했다. “대위님. 저희 분대 신고합니다.” 창고 안의 모든 장난감들이 박수 쳤다. 영진은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구석진 박스에서 뭔가가 날쌔게 활강했다. “나를 빼놓으면 섭하지. 정의를 위해 만들어진 이 몸. 선택받은 소년을 수호하겠네! 나도 끼어주게” 
뭔가는 비행기에서 로봇으로 변신했다. 썬더가드라는 변신로봇이었다. 일본 용자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로봇으로 선택된 소년과 지구를 지켰다. 영진은 몸을 숙여 썬더가드와 악수했다. 실버는 가상 시가를 허공으로 던져버리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것은 복잡한 비즈니스야! 정의와는 상관 없다고!”
“명분 없는 전쟁은 최종적으로 패배한다. 대위님이 썬더가드를 승인하셨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 팀의 보스는 나 실버야. 알지? 특히 영진 너! 난 네 고용주야!”

영진은 듣지 않고 있었다. 자기 머리보다 높게 쌓인 박스 위의 장난감들이 박수치는 것을 보고 있었다. 형광등 빛이 장난감 몸에 부딪혀 번쩍였다. 별들이 반짝였다.


정찰 나간 레고 인형이 돌아와 마트의 모든 사람들이 퇴근했음을 알렸다. 영진이 창고의 문을 여니 캄캄한 어둠이 맞이했다. 썬더가드가 자동차로 변해 본네트에 야광스티커를 붙이고 앞장섰다. 실버, 병정 분대가 뒤를 따랐다.

“....그러고보니 도망친 불량품들은 총 몇 개야?”
“여덞개입니다. 대위님. 몬스터 월드에서 만들어진 장난감들입니다.”

영진은 매장으로 나와 pc매장과 장난감 매장을 고개를 둘러봤다. 실버가 영진의 행동을 무시하며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4층에 있었으면 우리가 먼저 알았겠지. 최소한 4층에는 없어. 시간 끌지 말고 어서 내려가자.”
“실버 확실해?”
“리드는 이 보스가 하는 거야. 넌 가끔씩 인간의 지혜와 행동력을 제공하면 되는 거야. 병정 이런 걸 공군 폭격 지원이라 하지?”
“대위님. 실버의 행동에 분노하시기 보다 총알받이로 활용하시는 전략을 권고 드립니다.”
“소년. 내가 곁에 있으니 저런 녀석 따위는 얼마든지 무시하게.”
“저 띨띨한 녀석이 보스 역할을 제대로 할까? 이 실버의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지.”

영진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영진과 장난감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내려갔다. 3층에 도달하는 순간, 갑자기 전 3층 매장의 조명이 켜졌다. 영진은 눈이 부셔 팔뚝을 들어 시야를 가렸다.

“대위님. 조명탄입니다. 얼른 소산하십시요!”
“소년. 내 뒤로 와서 숨게. 내 파트너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자는 나를 먼저!”

실버가 앞으로 걸어가서 양손을 크게 벌리고 저었다. “우린 4층 장난감들이야!” 3층 소파 진열대 뒤에서 동물 봉제 인형들이 걸어 나와 영진과 장난감들을 둘러쌓다. 봉제 인형 사이에서 보라색 공룡이 앞장섰다. 영진은 보라색 공룡이 어떤 캐릭터인지 알았다. 포포라고 미국 4컷 만화의 주인공이었다. “여. 그래서 4층 코흘리개들아?” 영진의 장난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실버는 분위기를 파악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진을 돌아보며 잔인하게 웃었다. “잘봐. 이 몸의 실력을.” 실버는 당당하게 포포에게 다가갔다.

“그게 무슨 말인가? 같은 장난감끼리?”
“같은 장난감이라면 곤란하지. 너희는 그저 애들이 갖고놀다 어딘가로 쑤셔박는 합성 재료로 만들어진 쩌리들이지만 우리들은 솜과 인간의 손으로 정성들여 만들어진 필수품이야.”
“필수품? 세상에 공룡이 필수라니 지나가던 인간이 웃겠군. 헛소리 말고 길을 내. 아시다시피 우리는 불량품을 추적한다.”

실버는 영진을 돌아보며 여유있게 웃어 보였다. 포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말야. 좀 특별해. 인간들은 가구를 중요하게 여기지 장난감은 비할 데 없이. 우리는 그 가구들을 장식하는 중요한 위치를 맡은 봉제 인형들이야. 우리가 너희랑 조금은 같을 수 있겠지. 너희의 추적에도 동의해. 그러나 여기를 지나가려면 너희 일반 유아 장난감들과 가구를 데코레이션 해주는 우리 봉제 인형들의 위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해야 하는데?”

실버가 웃으며 자신의 칼로 콧수염을 슬슬 문질렀다. “우리보고 너희를 떠받들라 이 말이냐?”포포는 짧게 코웃음 치더니 소파와 책상 진열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쉽게 따르지 않을 줄 알았어. 그러나 지나가려면 뭔가 대가를 내야 하지. 그러지 않으면 큰 일 날 거야.” 손짓이 끝나자 소파와 책상 진열대 위로 뭔가가 솟구쳐 내려왔다. 스프링 모형들이었다. 스프링 위에 자동차나 만화 캐릭터가 달려 있었다. 자동차 운전대나 책상에 올려두는 장식물 모형들이었다. 
“행운의 상징 친구들도 우리 봉제 인형들의 마인드에 동의해서 말이야. 그저 갖고 노는 너희 장난감들과는 좀 격이 있지.” 
영진이 몸을 낮춰 병정에게 물었다.
“장난감 사이에서도 이런 위계질서가 중요해?”
“없습니다. 3층 털복숭이들이 주장하는 흑색선전입니다. 대위님. 저들의 멍청한 허세를 듣는 것보다 중요한 전술적 지시를 내려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영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포포가 손을 흔들어 부하들을 시켜 저지하려 했으나 썬더가드와 병정 분대가 에스컬레이터 진입구를 막았다. 영진이 올라가면서 얼굴을 포포에게로 돌렸다. “금방 돌아올게. 공룡아.” 실버는 영진의 돌발행동에 ‘저 친구 가끔씩 희한한 행동을 하지. 나 같은 보스니까 감싸주는 거야’라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하고는 포포와 기 싸움을 연장했다.     
영진은 금방 다시 하강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자 병정 분대와 썬더가드. 모두 잘 들어. 우리 모두 4층으로 후퇴한다. 썬더가드가 실버를 끌고와. 병정분대는 내 팔을 타고 어깨 위로 올라오고. 자 시작!” 썬더가드는 가상 시가에 불을 붙이려는 실버의 목덜미를 낚아채고 에스컬레이터 계단으로 몸을 던졌다. 병정 분대들은 영진의 어깨 위로 올랐다. 포포는 멍해있다가 명백한 후퇴행위에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꺼지기 전 병정 분대들이 발사한 플라스틱 총알들이 봉제인형들에게 박혔다. 포포가 손짓을 하며 앞장섰다. “당장 저 놈들을 잡아 찢어 분해하겠어!” 
영진은 에스컬레이터가 4층에 가까워지자 썬더가드를 잡고 훌쩍 뛰어넘었다. 에스컬레이터 계단이 상승해 4층에 닿을 때 봉제 인형들이 본 것은 4층 진입구에 설치된 거대한 레고 장벽이었다. 봉제 인형들은 도망치지 못하고 그대로 장벽에 부딪혔다. 뒤를 이어온 차례차례 봉제 인형들이 부딪혀 쌓였지만 뒤에서 밀어대는 에스컬레이터의 움직임을 거스를 순 없었다. 
레고 기사가 장벽 위에서 영진의 지시를 기다렸다. 영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기사는 장벽 개방을 명했다. 장벽이 열리며 레고로 만든 거대한 공성추가 앞으로 튀어나와 쌓여있는 봉제인형들을 단번에 후려쳤다. 봉제인형들은 높이 솟아올라 3층 매장 어딘가로 뿔뿔이 날아갔다. 4층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3층의 스프링 모형들은 모여서, 속닥이다가 승강기로 향했다. 
승강기는 2층에서 3층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스프링들이 회심의 반격을 예상하며 승강기에 올라탔다. 승강기가 4층을 알리자 스프링들은 자신의 몸을 최대한 구부리고 공격을 준비했다. 승강기 문이 열리는 순간 스프링들이 본 것은 아카데미에서 만든 전투기, 탱크, 항공모함 부대와 열대가 넘는 미니카 부대였다.


“3층에는 없겠지?”
“저 거만한 뚱땡이 포포가 불량품들을 숨겨 주었을 리 없고, 불량품들이 수가 적어 포포를 이길 리 없어. 바로 2층부터 시작해도 돼.”

실버는 영진의 물음에 툴툴대며 대답했다. 영진의 활약이 못마땅했다.

“대위님. 정말 훌륭한 예측이십니다. 지금쯤 승강기로 올라오는 모든 적들은 매복에 빠질 겁니다.”
“소년. 정말 훌륭해. 나의 히어로가 가메다데 행성에서 온 외계 무리와 싸울 때도 이렇게 훌륭하지 못했어.”
“좋아. 인정해. 그렇다고 보스자리를 넘보지마. 나는 네 고용주니까.......너 비리비리하게 생겼는데 고집도 있고, 은근히 똑똑하다?”
“장난감의 의견을 강요하지마. 실버.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장난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원래 움직이지 못하는 장난감들처럼 굳어졌다. 영진이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경비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이름은 몰랐다. 다만 나이가 많아 알바생들은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명찰에 이름이 있었지만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영진은 이 시간에 마트에 있는 이유를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몰라 굳어졌다. 머릿속에서 경찰차의 싸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경비 할아버지가 웃으며 다가왔다.


아카데미의 모형 부대에 의해 스프링들은 4층 발코니에서 뛰어내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4층은 승리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구석에서 전투를 지켜보는 고급 피규어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경비 할아버지가 숨을 뱉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 오더니 속삭였다. “재밌게 노네? 나도 끼어줄 생각 없나?” 영진은 뭐라 대답할지 몰라 숨이 턱 막혔다. 경비 할아버지는 영진의 표정을 보며 낄낄 웃더니 어깨 한번 두드리고 매장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사라지자 장난감들이 다시 움직였다. “경비반장은 멀리 갔어. 다 끝났어. 너희들 왜 이렇게 떨고 있어?” 
장난감들 사이에 침묵이 돌았다. 

“소년. 오늘은 이만할까? 한 시간 뒷면 납품업체가 새벽 납품을 위해 마트로 들어올거야. 주임들은 원래 일찍 출근하지 않나?”
“좋아. 보스의 의견을 썬더가드가 잘 말해주었군. 이만 돌아가자.”

영진은 애써 활발한 척 하려는 장난감들의 분위기가 이상했지만 썬더가드의 말은 사실이었다. 
“좋아. 돌아가지. 나도 집에 가서 자야 하니까.” 영진의 말에 장난감들 사이에 안도의 분위기가 돌았다. 영진은 분위기를 감지했지만 묻지 않았다. 승강기가 2층에 오길 기다리는 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돌았다. 실버가 꼼지락거리다 영진과 눈이 마주쳤다.

“어이. 이봐 영진. 그동안 궁금했는데 왜 남자 어른들은 나이 먹어서도 장난감 매장을 지나치지 못하고 꼭 한 번씩 둘러보는 거야? 자기 마누라랑 싸울 걸 각오하면서?”
“글쎄다...”

승강기가 도착하자 영진과 장난감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승강기 문이 닫히기 전 날카롭게 깎인 플라스틱 화살이 승강기 안으로 날라왔다. 영진과 장난감들은 승강기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 붉은 눈을 가진 몬스터 고릴라 장난감이 노려보는 것을 봤다. 문이 닫혔다.


4층에 승강기가 오르자마자 영진과 장난감들이 마주한 건 피규어들의 걱정 가득 찬 표정이었다. 피규어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생각해 봤는데 이 전쟁에 우리는 어울리지 않아. 너희야 고장나면 다시 조립하면 되지만 우리는 조금이라도 다치면 상품 가치가 하락해. 이 전쟁에서 빠지겠어.”
“히어로! 무슨 소리인가? 가메다데 외계무리와 함께 싸운 시절을 잊었는가?”

영진이 피규어를 자세히 살펴보니 만화에서 썬더가드와 함께하는 선택받은 소년 피규어였다.

“우리가 같은 만화에 나왔다고 같아지는 건 아니야. 너야 아이들과 즐겁게 놀겠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손때가 묻으면 곤란한 몸이야. 그리고 만화는 끝났잖아? 각자 팔려갈 길을 도모해야지. 우리는 빠진다. 실버.”
“....실버. 날 바보라 부르더니..이것도 예상 못했어? 그래도 보스 취급 받나 보네.”
“….인간의 지혜와 힘이 나설 때가 아니야. 바보.“


영진은 새벽까지 싸우느라 졸려서 도저히 제시간에 출근할 수 없었다. 김대리가 집어 던진 서류를 무시하고는 장난감 매장으로 향했다. 경비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영진은 오늘 새벽에 만났던 일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말문이 막혔다. 경비 할아버지는 영진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열대 받침 틀에 끼인 레고 기사를 집어 들었다. 새벽에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게 분명했다. “요. 깜찍한 녀석들. 할아버지가 같이 놀아줄게.” 경비 할아버지는 영진에게 주름살 가득 찬 윙크를 보내고는 레고 기사를 주머니에 넣고 4층을 떠났다. 
영진은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근무 중에 장난감들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근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마트 마감 방송이 나오자 영진은 3층 조명을 소등하고 4층으로 서둘러 걸었다. 어두워진 3층 매장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들렸다. “두고 보자. 생활 필수 물품 봉제 인형의 무서움을 보여주겠다.” 
영진은 휴게실로 들어가기 전 장난감 진열대를 툭툭 쳤다. “어제처럼 에스컬레이터 진입로 앞에 장벽 설치 해줘. 3층 털뭉치들 벼루고 있어.”


썬더가드가 2층의 의류 매장을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각 브랜드 별, 남성, 여성 매장 사이를 빠르게 빙글빙글 돌며 몬스터 고릴라 두 개를 유인했다. 아동용 진열대의 좁은 코너를 빠르게 꺾지 못하고 썬더가드가 뒤집어졌다. 고릴라들은 빠른 속도로 다가와 몸을 날렸다. 썬더가드는 순식간에 비행기로 변신하더니 점프하면서 낮게 활강해 위치를 이탈했다. 함정에 걸려든 고릴라들을 맞이한 것은 매복 중인 병정들이었다. 
고릴라들은 고함을 지르며 병정 분대를 향해 육박했다. 병정들이 플라스틱 수류탄을 던졌지만 고릴라들은 조금도 영향 받지 못했다. “본 분대 후퇴한다. 적을 저지 할 수 없다.” 고릴라들의 붉은 눈이 커지더니 병정을 잡으려 커다란 앞발을 내밀었다. 고릴라들은 주위의 어둠이 짙어지자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로 아동용 진열대가 도미노처럼 넘어져 고릴라들을 덮쳤다. 
영진은 서둘러 달려와 무너진 진열대 앞에 섰다. 옷더미 속에서 뒤척이더니 고릴라 한 마리가 앞발로 망가진 하체를 끌며 나왔다.“항복한다.” 영진이 옷더미를 들추니 다른 한 마리는 진열대 옷걸이 기둥에 맞아 세 조각으로 산산조각 났다. 실버가 항복한 몬스터 고릴라 목에 칼을 들이댔다. “나머지는 어딨어?” 고릴라가 낮게 대답했다. 실버는 영진을 의식하더니 목소리를 죽이고 낮게 윽박질렀다. “너희들이 이렇게 나오면 모든 장난감들의 의무와 룰이 어떻게 되겠어?” 
영진은 대화내용을 듣고 싶었지만 병정 분대와 썬더가드는 영진이 이 대화를 듣는 게 불편한 듯 보였다. 영진은 몸을 돌리고 뒷짐 지었다. 실버가 대화를 마치고 영진에게 왔다. “녀석은 끝났어. 인간으로 치면 죽은 거지. 나머지는 음식물 매장 1층, 지하 1층에 있어. 의류에 숨어 감염시키려 했는데 주머니에 뭔가 있으면 당연히 버리잖아? 그래서 자신들의 몸을 부셔서 음식물 속에 섞기로 결정했대. 그게 감염될 확률이 더 높으니까. 이제 여섯 마리 남았다.” 
영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에스컬레이터로 걸었다. 영진이 장난감들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도중 썬더가드가 말을 걸었다.

“소년! 소년은 꿈이 무엇인가?”
“나? 음향 녹음 엔지니어. 너희 혹시 메탈리카나 비틀즈 알아?”

장난감들에게서 대답이 없었다. 영진은 장난감들이 귀여워 피식 웃었다. 실버가 말했다. 
“그런데 그거 안하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너 여기서 일한 지 한참 됐는데? 돈 욕심이 그리 많나?” 영진은 사실 복학할 돈은 이미 모았다. 하지만 과는 음향과 관련이 없었다. 학교를 관두거나 졸업한 후 음악 업계로 나아간다고 하더라도 성공할 자신이 없었다. 
성공이 아니라 자리 잡기도 힘든 업계여서 도전하기가 무서웠다. 단순히 돈이 많다고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구구절절 설명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인간들이 사는 건 엄청 복잡해. 무서운 것도 많고, 할 수 없는 일도 많아.”
“소년! 여기 마트 일은 힘들지 않나?”
“힘들지. 몇 번이고 도망칠 뻔 했어. 돈 때문에 더럽고 치사해서 버텼는데...돈은 다 모았고...지금은 뭐 때문에 여기 있는 건지. 일이 익숙해지니까 하루하루 멍하니 시간 잘가드라.”

장난감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영진은 방금 전 침묵과 느낌이 달랐지만 어느 장난감도 왜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대위님. 무엇이 대위님 앞날에 방해가 되는 지 설명해 줄 수 없습니까?” 영진은 턱을 긁적이며 대답하려 노력했지만 자신도 막연하게 두려울 뿐 구체적으로 무엇이 방해인지 알 수 없었다. 
영진은 집중하다가 낮에 레고 기사가 경비 할아버지에게 잡혀간 일을 기억하고는 장난감들에게 설명해줬다. 장난감들은 이번에도 침묵했다. 방금 전 보다 더 깊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실버가 영진의 눈치를 못 이기고 말했다. “장난감들 세계의 일이야. 너무 알려고 하지마. 우리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 그런 일이 생겨.” 에스컬레이터가 1층에 도달했다.


경비 할아버지는 순찰을 하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승강기가 2층에 잡혀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누군가 조작 판넬을 뜯어 홀드 스위치를 눌러 승강기 움직임을 멈춰놨다. 3층 봉제와 스프링들이 사용할까 미리 영진이 손을 쓴 것이었다. 경비 할아버지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허둥지둥 달렸다. 
2층에서 내려다보니 어제 새벽에 본 알바생과 장난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경비 할아버지는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구를 타고 조용히 내려갔다. 비상구라면 알바생 뒤로 조용히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알바생 앞에 야광 스티커를 붙인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했다. 경비 할아버지는 입술을 작게 오므려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디선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영진과 장난감들은 조용히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접근했다. 과자 코너에서 진열대 위에 뭔가가 서있었다. 뭔가의 붉은 눈이 빛났다. 몬스터 월드의 몬스터 코끼리 장난감이었다. 녀석은 고릴라들처럼 등과 어깨에 미사일 발사대를 장착했다. 영진이 신호해 과자 코너를 향해 병정 분대를 우회시키고, 썬더가드를 좌회시켰다. 실버와 함께 조심스레 접근했다. 
몬스터 코끼리가 다른 방향을 쳐다보고 있다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영진쪽으로 똑바로 고개를 돌리더니 플라스틱 미사일을 발사했다. "뛰어! 서둘러 제압해!" 영진이 외치고 실버와 함께 달렸다. 뭔가가 과자 코너에서 튀어나왔다. 키가 백팔십이 넘는 뭔가는 도둑이었다. 영진은 깜짝 놀라 제자리에 멈춰 섰다. 도둑 뒤로 코끼리가 미사일을 조준하는 게 보였다. "저 놈을 막아야 해!" 썬더가드는 도둑을 보지 못했기에 전속력으로 코끼리를 향해 달렸다. 
병정 분대와 실버는 영진 외 다른 인간 앞에서 행동을 멈춰버렸다. 영진과 실버의 뒤, 할인 진열대 위로 두 마리의 코끼리가 나타났다. 함정에 빠뜨리는데 성공했지만 놈들도 인간이 있기에 움직임을 멈췄다. 도둑이 욕설을 뱉으며 영진에게 달려 들었다. 영진은 몸을 돌려 달아났다. 도둑이 빠른 속도로 따라왔다. 
영진은 할인 진열대 모서리 잡고 재빨리 방향을 바꿔 진열대 뒤로 섰다. 굳어있는 코끼리를 들어 도둑에게 던졌다. 도둑은 코끼리를 받더니 맹렬한 속도로 다시 영진에게 던졌다. 영진은 몸을 숙였다. 코끼리는 맥주 진열대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그 광경을 본 다른 코끼리는 진열대 아래로 내려왔다. 내려오자마자 마주친 건 병정 분대였다.


썬더가드는 과자 코너 위에 있던 코끼리가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내려오는 걸 봤다. 녀석은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달렸다. 썬더가드는 놓치지 않으려 속도를 냈다. 코끼리는 썬더가드를 보고는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몸을 던졌다. 썬더가드도 로봇으로 변신해 몸을 날리려 했다. 경비 할아버지가 발을 굴려 썬더가드를 막았다. "넌 로봇이 더 멋있는데 왜 자동차로 다니니?"       
썬더가드는 갑자기 나타난 경비 할아버지를 보고 굳어졌다. 경비 할아버지는 지그시 내려다보며 입술로 웃었다. 썬더가드를 집으려 상체를 숙였다. 썬더가드는 몸을 움직여 달아났다. 
썬더가드를 놓친 경비 할아버지는 인상을 찌푸리며 화를 내다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장난감이 부서지는 소리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실버가 영진의 뺨을 두드렸다. "일어나! 영진! 괜찮아?" 영진이 정신을 차렸다. "선수가 고용주 걱정시키면 안돼지. 내가 이걸로 내려쳐 끝냈어." 실버는 부서진 코끼리의 잔해를 보였다. "대위님? 대위님?" 영진은 도둑에게 구타당해 머리가 아팠지만 부르는 소리가 다급해서 실버와 함께 병정 분대에게로 향했다. 병정 분대는 각 관절이 분해된 코끼리와 함께 있었다. 병정이 나와 말했다. "사격 공격이 먹히지 않아, 옥쇄할 각오로 총검으로 공격했습니다. 아군 둘이 전사했습니다. 칭찬해 주십시요!"     
영진이 무릎을 꿇고 병정에게 경례했다. "가치 있는 죽음이었어. 병정. 그들의 희생이 우리를 구했어." 실버가 병정을 위로하려 다가간 순간. "이야! 재밌게 노네. 나도 끼어줘라?" 경비 할아버지가 가벼운 목소리로 나타났다. 영진은 무릎을 꿇은 상태로 놀라 멈췄다.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몰라 장난감들을 쳐다봤지만 이미 병정과 실버는 어디론가 숨었다. 주위에는 부서진 코끼리와 전사한 병정 프라모델 밖에 없었다.


"그래 자네가 도둑을 잡았다고 하는데 그 놈이 말한 시간대와 자네 시간대가 조금 이상해서, 가방을 놔두고 와서 가지러 왔다고 하는데 그렇게 늦게 가지러 오나?"
"중요한 게 들어서요. 전공서적이 들었거든요."
"의심하는 게 아니야. 경찰들은 원래 꼬치꼬치 따져. 경비 반장님이 설명하셨어. 주차장 쪽으로 허락받고 들어왔다면서?"

영진은 경비 할아버지와 사전에 맞춰둔 얘기가 없기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경비 할아버지는 부서진 장난감과 영진을 남겨두고 웃으며 사라졌을 뿐이었다. 누군가 영진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렸다. 경비 할아버지였다.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경관님. 근데 어제부터 씨씨티비가 고장나서요. 녹화는 되어있지 않습니다만 큰 일 아니지 않습니까?" 경관은 고개를 끄덕이고 경비 할아버지와 휴게실을 나섰다. 
뒷짐지고 듣고 있던 마트 본사 이사가 주머니에서 10만원을 꺼내 용돈 하라며 영진에게 줬다. 김대리가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감사하다고 소리쳤다. 이사가 나가자마자 김대리가 영진을 거칠게 끌어 책상 앞으로 갔다.

"야 너 여기 직원할 생각 없냐? 너 과도 이상하잖아? 하루빨리 자리 잡아야지. 본사에서 사람을 뽑는데 군말말고 지원해라."
"제가 왜요? 이런 일 평생하라구요? 어차피 정규직 아니잖아요. 계약직이지."
"왜긴?! 내가 널 그동안 두고 봤는데 너 이런 일에 적성 맞어. 그리고 이사님께 방금 용돈도 받았잖아.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거야. 삼년만 일하면 정규직 돼."

영진은 김대리의 눈에 이사가 어떻게 보이는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그냥 아저씨였다. 삼 년이 아니라 한달 후에 정규직 한데도 할 생각이 없었다. 김대리가 잇소리를 내며 윽박질렀다. "생각해 볼게요. 저 일하러 가요." 영진은 휴게실을 나왔다. 김대리가 소리쳤다. “내 제의 무시하면 해고야!”


장난감 진열대를 지나가는데 실버가 말을 걸었다. "영진. 나를 지하 일층 화장실에 숨겨줘. 어제 생각해 봤는데 지하 일층이야 말로 녀석들의 오염된 몸과 음식을 섞기에 최적의 조건이야. 거기는 야채와 고기를 개봉해서 파는 곳이잖아." 영진은 군말 없이 실버를 들어올렸다. 실버는 이 인간이 검색 대를 어쩌려고 무모하게 행동하나 걱정했다. 
영진은 지하 일층 검색 대를 지나기 전 실버를 카트 주차 장소로 던졌다. 당당하게 검색 대를 지나 실버를 다시 집어 화장실로 들어갔다.

"야 너 용감하다. 누가 너 의심하면 어쩌려고?"
"당당하게 행동하면 돼. 겁먹어서 비실되면 그게 더 의심 받지."
"....그 동안 지켜봤는데 고집도 있고, 배짱도 있어. 전에 바보란 거 취소하지. 너 우리랑 같이하는 이유가 돈이잖아? 그런데 어제 대화를 생각해보니 넌 돈이 필요한 게 아닌 것 같아."
"아니야. 돈 필요한 거 맞아. 인간들은 돈이 제일 중요해."
"그럼 네가 하고 싶은 일에 방해가 돈이야? 돈이 많이 있으면 잘 될 수 있어?.....장난감들의 의무는 말이야. 아이들에게 행복한 유년시절을 겪게 해서 안정된 자아가 가지고 어른이 될 수 있게 보살펴 주는 거야."
"왜 갑자기 지금 가르쳐 주는 거야? 그럼 장난감들의 룰은 뭐야?"


재고 창고 안에서 히어로 피규어와 썬더가드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히어로! 병정이 말하길 너는 전쟁에 관심 없어도 전쟁은 너한테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이건 우리 모두의 전쟁이다." 히어로는 대답하지 않고 이 고지식한 정의의 용사를 어떻게 떼어버릴까 궁리했다. "히어로! 너는 스스로가 별개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적들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다시 정의의 힘을 합칠 때 이다!" 
히어로는 짜증스럽게 대꾸하려다가 경비 할아버지가 창고 안에 있는 걸 봤다. 분명히 문 여는 소리도 못 들었다. 히어로는 경비 할아버지의 손이 우왁스럽게 다가오자 분명히 자신을 노린다고 생각했다. 피규어는 성인들이나 성숙한 아이들이나 진가를 알 수 있는 귀한 장난감이었다. 피규어는 공포에 눈을 감았다. 경비 할아버지의 손은 썬더가드를 집어 들었다.


퇴근시간 후 영진은 지하 일층 화장실 안에서 실버에게 물었다.

“썬더가드는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썬더가드가 어떻게 됐는지 알려고 레고들을 조금 괴롭혔어. 니네는 원래 입이 무거워? 너희는 무슨 비밀이 많아.
“....너 집요하다. 가끔씩 그 노친 네가 장난감들을 노려서 납치해가. 언제든 자기 내키는 대로 끌고 가지. 그러면 한동안은 잠잠해. 다른 장난감들은 잠시나마 안도하지. 가지고 노는지 뭐 하는 지 모르지만 왜 안 돌려 보내는지는 몰라. 우리도 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자 앞으로 불량품 네 개 남았어.”
“집요가 아니라 근성 있는 거야. 네가 저번에 말한 의무를 어떻게 잘못하면 그 할아버지가 납치범이 되는 거야? 룰은 또 뭐고? 나 나중에 경비 할아버지랑 얘기해서 썬더가드와 레고 기사를 돌려 받을 거야.”
“....그만 하자. 자 새로 편입한 탱크 소대야. 인사해.”

탱크 세대가 포대를 들었다 내렸다 인사했다. 영진도 말을 끊은 실버가 탐탐치 않았지만 탱크 포대를 만져주며 인사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장난감은 스스로 자기 몸 잘라서 음식물에 넣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인간도 맨손으로 힘들어 하려면 도구가 필요하지. 도구 있는 곳이 녀석들이 숨은 곳이야.” 실버와 병정 분대, 탱크 소대가 서로를 쳐다봤다. 장난감들이 뭔가 깨닫자 병정 분대가 먼저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서서 자랑스럽게 차렷 자세를 취했다.

“대위님! 그곳은 고기 절단기가 있는 정육점 코너밖에 없습니다.”
“좋아. 그곳을 향해 전진.”


4층의 장난감들은 에스컬레이터 앞에 장벽을 설치한 후 경계를 서고 있었다. 승강기는 일층에 고정되어 있어 3층 장난감들이 사용할 수 없었다. 뭔가가 타야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난감들은 긴장해서 무엇이 올라올지 기다렸다. 피규어들은 높은 진열대에 서서 긴장한 장난감들을 비웃었다. 히어로 피규어는 옆에 동물 만화 주인공, 너부리를 툭 쳤다. “저 손때 묻히는 놈들이 왜 이리 비장한지 모르겠어. 우리 같은 감상 용들과는 생각 구조가 달라. 가격도 많이 다르지. 이건 저 녀석들의 전쟁이야. 손때 묻히는 놈들 중에서 불량품이 있어도 우리 판매에는 전혀 영향 없어.” 너부리는 웃으며 동의하다가 비상구 문이 열리는 것을 봤다. 장난감이 열기 힘든 비상구 문은 닫히지 않고 힘겹게 떨리며 열린 상태를 유지했다. 너부리는 어떤 장난감이 저렇게 할 수 있는 지 떠올렸다. 스프링. 
스프링 모형들이 3층에서 비상구를 타고 올라왔다. 스프링들은 용감하게 점프로 돌진해 에스컬레이터 장벽에 부딪혔다. 장벽 연결 부품들이 떨어져 나가고 장벽 전체가 허물어졌다. 에스컬레이터가 4층에 닿았다. 포포와 봉제 인형들이 스프레이 통을 공성 무기처럼 굴리며 장난감들을 향해 돌격했다.


경비 할아버지는 흥분에 몸을 떨었다. 드라이번, 뺀치, 본드, 가위 등 각종 도구를 어루만졌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전율을 불러왔다. 썬더가드는 책상 위에 못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경비실 벽면에 각종 장난감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동안 잡혀갔던 수많은 장난감들의 형체가 바뀌어 벽에 못으로 고정되었다. 최근에 잡혀간 레고 기사는 말 머리를 자른 말 몸통에 붙여져 켄타로우스가 되어 있었다. 
경비 할아버지는 썬더가드를 내려다보며 어린 애같이 짜증스러운 말투로 중얼댔다. “난 말야. 네가 로봇으로 있을 때가 제일 좋아. 비행기나 자동차보다 말이야. 네가 다른 모습으로 변하면 섭해. 계속 로봇이게 고정시켜 줄게. 나 어릴 때는 장난감들이 착해서 내가 원하는 것만 나왔는데 요즘은 세상이 발전하니 이상한 기능들이 나와. 너도 내가 원하는 게 좋아 질 거야. 그러지 않으면 시러. 그리고 꼭 같이 노올자.” 경비 할아버지는 공업용 본드를 들어 뚜껑을 땄다.


정육점 코너 계산대에 몬스터 토끼 세 마리가 서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게 영진 일행을 눈치 챈 게 분명했다. 영진은 지시를 하려고 장난감들에게 불렀다. 입을 떼는 순간, 에스컬레이터 쪽에서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잠자리 장난감이 활강해 들어왔다. “큰일났어. 3층 털뭉치들이 쳐들어왔어. 점령 당하기 직전이야. 모두 위험해! 도와줘!” 토끼들이 정확히 영진 쪽을 향해 자신들의 미사일 발사대를 돌렸다.


4층은 아비규환이었다. 장난감들은 저항하려 했지만 봉제 인형의 푹신함은 그 어떤 공격도 무마시켰다. 체구도 커서 한번 휘두르기만 해도 장난감들이 사방으로 나가 떨어졌다. 봉제 인형들이 굴리는 스프레이 통에 휘말려 찌그러지기도 했다. 피규어들은 같은 생각을 갖지 않아도 함께 진열된 식구들이기에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렀다. 포포가 높은 데 진열된 피규어들을 보고 지시 내렸다. “스프레이를 세워 분사대를 높여! 저 피규어들이 우리 봉제의 라이벌이다! 놈들에게 얼룩을 내어 반품시키자!” 
덩치 큰 봉제 인형들이 스프레이를 세워 분사대를 늘리기 시작했다. 히어로 피규어는 너부리에게 말했다. “멍청한 합금 변신 로봇의 말이 옳았어. 꼭 전쟁이 불량품과의 전쟁만 있는 게 아니었지. 털뭉치들은 우리와 용도가 같은 감상용이야. 영원한 라이벌. 너부리 오늘 탱크 소대가 출격했지? 녀석들 포장 상자에서 일회용 본드 좀 갖다 줘.” 너부리가 대꾸하기 전 히어로는 자신 옆 칸에 장식된 가격이 비싼 재현 모델, 로마 투석기에게 다가갔다. 
“어이 자네. 나를 저기까지 날려 줄 수 있겠지?” 히어로는 천장에 달린 화재 감지기를 가리켰다. 투석기가 몸통을 끄덕였다.


영진은 은폐해있던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토끼들의 사격에 저지 당했다. 영진은 진열대에 기대다가 자신이 어떤 진열대에 있는 지 알았다. 과자 코너. “과자 봉지들을 하나씩 잡아. 방패로 삼아 전진한다. 녀석들을 해치워야 빠져나갈 수 있어.”


투석기는 본드로 불이 활활 붙은 히어로를 화재 감지기로 날려버렸다. 화재 감지기를 살짝 스쳤기 때문에 감지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히어로는 녹아내려 가는 다리를 힘겹게 움직여 레고 선전 피켓을 감싸 안았다. 불이 솟구쳐 올랐다. 화재 감지기에서 소화수가 터져 나와 봉제 인형들에게 쏟아져 내렸다.


경비 할아버지는 공업용 본드를 이쑤시개에 정성스레 옮겨 썬더가드를 고정시킬 준비를 끝냈다. 경비실 소방 감지기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위치는 4층이었다. 알람 오작동인가 싶어 감지기를 리셋 시켰는데 알람은 꺼지지 않았다. 게다가 소방 펌프가 작동 중이라는 경고 등에 불이 들어왔다. 경비 할아버지는 이쑤시개를 내려놓고 서둘러 경비실을 나섰다. 
썬더가드는 몸을 뒤틀어 못에서 빠져 나왔다. 비행기로 변신해 책상에서 뛰어 서서히 닫히는 경비
실 문 사이로 활강했다.


괴물 토끼 두 마리는 탱크 소대의 사격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 병정 분대는 정육점 계산대로 올라가 나머지 한 마리를 제압하려 했지만 강력한 무기에 의해 밀려났다. 최후의 토끼는 얼은 고기를 다룰 때 쓰는 쇠꼬챙이를 내밀어 병정 분대원 한 명의 몸을 관통시켰다. 실버가 뒤에서 접근하며 칼을 휘둘렀다. 토끼는 피하고 미사일을 발사해 실버를 넘어뜨렸다. 토끼가 쇠꼬챙이를 빼서 실버에게 달려들었다. 영진은 고함을 지르며 실버 위로 상체를 엎드렸다. 쇠꼬챙이는 영진의 볼을 조금 뚫더니 전진을 멈췄다. 병정 분대원들이 뒤에서 토끼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실버가 빠져 나와 칼을 휘둘러 토끼를 후퇴시켰다. 영진이 쇠꼬챙이를 볼에서 빼냈다. 피가 영진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무거나 꽉 잡아!” 
영진은 주먹을 쥐고 힘껏 계산대를 내리쳤다. 병정 분대와 실버가 계산대 위 저울을 붙잡았다. 토끼는 계산대에 튕겨올라 불고기 양념 통으로 떨어졌다. 영진은 계산대를 한 손으로 짚고 뛰어넘었다. 양념 통을 들고 정육점 안쪽 창고로 들어갔다. 벽면 한 구석에 음식물 쓰레기 배출구가 있었다. 덮개를 열고 양념을 부었다. 토끼가 양념 파도에 휩쓸려 배출구 안으로 떨어졌다. 토끼가 마지막 발악으로 미사일을 발사해서 영진의 귀를 스쳐갔다. “우리 마트에서는 토끼 불고기 안 팔아!” 
영진은 배출 스위치를 눌러 토끼를 하수구 안으로 흘려 보냈다. 양념 한 방울까지 모두 하수구 안으로 사라지자 영진은 맥이 풀려 주저앉았다. 실버와 병정 분대가 창고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영진! 어서 4층을 구하러 가야해!”
“대위님. 부상을 입으셨습니다.”
“살짝 까진 것뿐이야. 일을 끝마쳐야 해. 4층을 구하고 나머지 한 놈을 찾아 끝내자.”


4층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소방수가 흘러내렸다. 영진은 장난감들을 안고 허겁지겁 올라갔다. 소화 수는 발목까지 차올라 아래층으로 빠지고 있었다. 4층은 상황이 역전되어 4층 장난감들이 물에 젖어 퉁퉁 불은 봉제인형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스프링들은 낙하 공격하는 피규어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휘어졌다. 영진과 장난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언가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따라 올라왔다. 그것은 몬스터 월드의 마지막 하나 남은 몬스터 두꺼비였다. 영진은 두꺼비를 보고 품에서 장난감들을 내려줬다. 병정 분대가 빠르게 두꺼비를 포위했다. 탱크 소대가 두꺼비를 조준했다.   
두꺼비가 불거진 보라색 눈으로 4층 이곳 저곳을 살폈다. “다친 친구들은 없었나?” 실버가 칼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걱정 말게. 친구. 장난감 일은 항상 장난감끼리 잘 처리했지 않은가?”
“.....그래도 반품 걱정을 안 할 수 없지. 오로지 폐기되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 보스인 자네가 잘 뒷마무리 하겠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서도 변하지 않아서 고맙네. 하지만 우리는 매듭지어야 할 일이 있지. 날 용서하게.”

두꺼비는 고개를 끄덕이고 미사일 발사대로 실버를 조준했다. 실버도 칼을 정면으로 내세웠다. 실버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두꺼비는 자신의 미사일 끝에 불꽃이 맺히게 했다. 두꺼비는 부싯돌이 장착된 신형이었다. 실버의 고함을 압도할 만한 엄청난 발소리가 나더니 경비 할아버지가 올라왔다. 두꺼비의 불꽃을 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잡았다. 네 놈 짓이지?” 두꺼비는 몸부림쳤다. 경비 할아버지는 두꺼비를 들고 진열대로 가더니 공업용 본드를 꺼내 진열대 위를 본드 범벅으로 만들었다. 두꺼비를 본드 위로 던지자 불이 솟아올랐다. 두꺼비는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나쁜 장난감들은 처벌을 받아야 돼. 나 소싯적에는 내 손대로 잘 따라주었는데 요즘은 많이 건방지게 변했어.” 
두꺼비의 극한의 고통이 온 4층에 울리자 장난감들은 경비 할아버지를 의식하지 않고 일제히 두꺼비 쪽으로 몰려들었다. 실버가 칼을 휘두르며 경비 할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안돼! 이 악마야! 그 친구는 죄가 없어!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오염된 몸으로 아이들에게 봉사할 수 없는 좌절감에 꺾였을 뿐이야! 널 죽이고 말겠어!” 
경비 할아버지는 가볍게 실버를 들어 올려 칼을 빼앗았다.

“알바학생. 장난감들이 자네를 참 잘 따라. 자네 나랑 함께하면 이 새벽에 혼자 벌였던 모든 일들을 눈감아 주지. 물에 젖은 판매품들 배상할 만큼 돈이 많은가? 어제 도둑 잡은 일은 내가 사실대로 말하면 어떻게 될까?”
“미친 영감탱이야. 그 녀석은 내 고용주다. 무슨 짓을 하든 그대로 갚아주겠다!”


썬더가드는 4층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서 초조한 마음으로 에스컬레이터가 4층에 닿길 기다렸다. 올라가는 도중 뭔가가 불에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레고 피켓과 히어로 피규어였다. 4층에 도착하자마자 썬더가드에게 본 것은 타들 어가는 두꺼비와 실버를 인질로 잡은 경비 할아버지. 그리고 손에 들린 공업용 본드였다. 썬더가드는 비행기로 변신했다.


영진은 경비 할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경비 할아버지는 허리춤의 가스총을 뽑으려 했지만 실버가 경비 할아버지 손에서 미끄러지면서 가스총 덮개 위로 떨어져 저지했다. 경비 할아버지는 영진의 돌격에 쓰러졌다. 영진의 주먹이 경비 할아버지의 얼굴에 쏟아져 내렸다. 경비 할아버지가 손바닥으로 영진을 후려쳐 옆으로 쓰러뜨렸다. 경비 할아버지가 몸을 일으키자 눈앞에 전속력으로 돌진 중인 비행기가 보였다. 
썬더가드는 비행기 날개로 경비 할아버지의 목을 그었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영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썬더가드를 집으려 했지만 실버가 저지했다. 
“썬더가드는 장난감들의 룰을 어겼어. 인간을 살해했어. 이제는 그냥 장난감일뿐이야. 너희 인간들이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는...다시는 움직일 수 없어.” 
영진은 고개를 숙였고 병정 분대는 썬더가드에게 조용히 경례했다. 실버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고용주로써 마지막 지시를 할게. 첫째 여길 떠나. 나와 병정 분대가 씨씨티비 하드디스크를 파괴할게. 둘째 알바들이 말하는 걸 들었는데 계약직 제의 받았다며? 그거 거절해. 이유는 오늘 저녁에 퇴근할 때 설명할게.”


영진은 두 세시간 자고, 출근했다. 마트는 난리가 났다. 북적 이는 경찰들과 본사 사람들. 난리에 아직 옷도 못 갈아입은 직원들.
 경찰들은 사무실 한 곳을 빌렸다. 직원들은 마트를 수습하는 내내 경찰들에게 불려가서 간단한 심문을 받았다. 관리 책임으로 입장이 난처해진 김대리가 영진을 감정적 희생양으로 삼았다.
영진은 계속 지각하면 김대리의 계약직 제의 취소한다는 협박에 하려면 하세요 라고 대답했다. 


북적이던 난리가 끝나고. 퇴근시간이 됐다. 영진은 창고로 들어섰다. 처음처럼 무릎이 꿇려졌다.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몸까지 눕혀지더니 가슴에 병정이 올라탔다. “대위님. 실각되셨습니다. 이것은 쿠데타입니다.” 실버가 가상 시가를 태우며 거만하게 나타났다.

“영진 새벽에 잠은 잘 잤나? 내가 너한테 제의할게 있어. 간단한 거야. 이 마트를 당장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왜?”
“바보 같은 질문에 현명하게 대답해주지. 너는 생각보다 훨씬 잘해줬어. 고용주로써 아주 만족해. 하지만 위험해. 왠지 알아? 어른인데 장난감들하고 너무 친해. 그 경비 영감이 그렇게 된 것은 영감 어릴 적 장난감들이 제 할 일을 못 했기 때문이야. 적당한 때에 추억으로 물러났어야 해. 이런 잘못은 많이 저질러지고 있지. 아직도 많은 성인 남자들은 장난감 코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코너에 와서 자신들의 바보 같고 유치한 어릴 적을 떠올리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시간 이었다 여기지.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으면서. 성인이면서도 안락하고 의존적인 것만 떠올리는 것은 죄악이야. 너는 죄인이야. 알고 있지?”
“내가 무슨 죄인이라고?”
“우리가 널 선택한 건 니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때를 그리워하는 무의식을 읽었기 때문이야. 생긴 게 만만한 탓도 있지. 약해 보여서 우리한테 굴복할 줄 알았거든. 근데 이 예상은 빗나갔어. 단순 투 잡인데도 이렇게 잘하면 네가 열정을 걸고 하는 일은 얼마나 잘할까? 칭찬이 아니야. 너무 잘 하다 보니 우리 세계에 대해 너무 잘 알게 됐어. 난 널 살려 보낼 수 안 돼지만, 옛정과 계약을 위해 살려 보낸다.”
“실버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네 허풍은 하나도 안 무서워.”

실버는 칼로 영진의 가슴을 긁었다. 붉은 피가 유니폼에 배어 나왔다. “네가 계속 마트에 있으면 넌 죽는다. 다음에도 또 바보 같은 계약직 같은 얘기 들으면 당당하게 꺼지라 말해! 돈 때문에 노예가 되지 말아! 여길 벗어나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복학이든 뭐든 선택해. 그리고 네 삶에 충실해. 만약에 네 삶에 조금이라도 허점이 있을 경우, 그 어떤 장난감이 네 목숨을 노리게 될 꺼다.”   
레고 인형들이 돈 봉투를 영진의 손에 쥐어줬다. 영진은 풀려나자마자 당장에 창고를 떠났다. 떠나기 전 고개를 돌렸지만, 차갑고 사나운 실버의 얼굴이 노려봤다. 병정이 실버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 떼느라 고생 많았다. 보스.”
“장난감의 의무를 실행했을 뿐이야. 장난감 가지고 놀며 잘 키웠으니, 졸업시켜야지…
보고 싶을 거야. 덩치 큰 애송이.”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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