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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정신으로 버티기 어려워


정 선배가 면담을 맡은 차례였다. 정 선배에게 이번 임무에서 돌아 온 우주비행사도 또 우주에서 자기가 외계인을 보았다고 말했다.

“진짜예요. 진짜 봤다니까요.”

그 말을 듣고도 정 선배는 한숨을 쉬지는 않았다. 우주비행사를 생각해서 참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말을 듣자 정 선배는 나를 살짝 일부러 한번 쳐다 보았다. 그녀의 눈은 ‘마음으로 한숨 쉬고 있다’는 마음을 내 쪽으로 전송하고 있었다.

이번 우주비행사의 이야기는 지난 번 우주비행사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우주 비행의 중간 시기가 지난 후, 이제 돌아 오는 길에 접어 들어섰다고 할 무렵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귀에 속삭이는 말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못들었는데요. 통신 이어폰에서 나는 소리는 절대 아니었고요. 처음 딱 들었을 때부터 이거는 통신기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 같았거든요.”

그리고 나서 점차 외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다. 외계인의 모습은 뿌옇게 빛나는 모습이었고 미끈한 느낌으로 헤엄치듯이 우주선 옆을 돌아 다니는 것 같았다고 했다. 외계인의 머리, 내지는 얼굴에 해당한다고 생각한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보려고 했지만, 외계인은 얄밉게도 살짝살짝 피하면서 주변을 맴돌았다고 했다. 그 와중에 계속 속삭이는 소리만 들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화면 녹화 영상에는 아무것도 안 나온 것 아시죠?”
“그런데, 진짜 제가 정확히 봤다니까요. 딱 정확히 봤어요.”

우주비행사는 다시 강하게 주장했다.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아 억울하다기 보다는, 자기도 어찌된 일인지 정확히 알고 싶다는 궁금해 하는 얼굴이었다.

정 선배가 대답했다.

“녹화 영상에 안 보인 건 보인 게 아니라고 봐야죠. 어떻게 된 건지는 저희도 계속 조사하고 있으니까, 더 확인되는 일 있으면 제가 바로 알려 드릴게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우주선에는 어차피 맨눈으로 우주선 밖을 볼 수 있는 창문이 없다. 우주비행사가 보는 모든 영상은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헬멧에 달린 화면으로 보는 것이고, 그 영상은 지상 기지에서 보는 영상과 동일했다. 지상 기지에서는 영상을 보정해서 더 정확하고 선명하게 보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영상이 우주선에 타고 있는 우주비행사가 보는 영상보다 더 선명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정 선배는 우주비행사를 돌려 보냈다. 그리고 이번에도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환각이 의심됨”이라고 보고서에 써 넣었다.

“정말 외계인이 저기 위에 있는 거 아니야?”

그녀는 농담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쯤 되니, 우리도 의심스러웠다. 우리가 맡은 우주비행사가 외계인을 보았다고 한 것만 벌써 세 번째였다.  정말 뭔가가 있어서 뭔가가 있다고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돌아서는 뒤통수에 계속 달라 붙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점심을 먹으면서 옛날 이야기를 몇 가지 하다 보니 그 생각을 떼어 내 버릴 수 있었다. 처음 소별왕 계획에 차출 되어서 설명을 들었을 때, 그 황당했던 기분이 다시 생생히 기억났던 것이다.

소별왕 계획은 지난번 대통령 임기 중반에 급작스럽게 편성된 우주 탐사 계획이었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틈바구니에서 헤게모니가 어쩌고, 패러다임이 어쩌고, 새로운 세대가 어쩌고 하는 장황한 헛소리들이 있기는 했는데, 지금 돌아 보면 다 하나 같이 버스 현금 승차하고 받는 잔돈 만큼도 쓸데 없는 소리였고, 요약하자면 지난번 대통령은 중국 우주 개발 계획과 일본 우주 개발 계획에 질투가 나니까 우리도 우주 개발을 꼭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처음에 계획 이름은 KSX 어쩌고 하는 이름이었다. 한국에서 하는 계획이니까 꼭 Korea의 K자를 첫머리 붙이는 게 멋있다고 다들 믿고 있었고, 계획이름에는 어쩐지 X도 하나쯤 들어 가야 멋있다고 생각하는 게 또 이쪽 공무원들의 감성이었다. S는 그나마 우주니까 Space를 집어 넣어서 붙인 글자였다.

그러다 임기 중반쯤 되자, KSX 계획은 선거 때 선전만 요란하게 했지 사실 아무 성과도 없다는 게 들통이 났다. 그래서 임기 중반에 “무조건 보여 줄 수 있는 성과를 내라”는 지시에 따라 그래도 몇년 끌고 온 계획을 다 엎어 버리고 급히 새로 만든 것이 소별왕 계획이었다. 소별왕 계획이라는 이름은 다른 나라 우주 계획을 보니까, 무슨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태양의 신, 달의 신, 뭐 이런거 이름 따서 쓰듯이 신화에 나오는 이름을 많이 쓰던데, 우리도 그대로 베껴서 해야 겠다는 발상으로 붙은 이름이었다. 그때 그 이름 붙였던 차관님의 설명에 따르면 일제시대 때 조사한 무슨 무당이 읊은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떤 지방에는 대별왕과 소별왕이라는 신이 있어서 걔네들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름은 그래도 좋아한 사람이 꽤 있었지만, 그래서 이제 새로 이름 붙인 계획에서 어떻게 “무조건” 성과를 낼 수 있는지는 해답이 없었다. 그때 우리나라의 우주 탐사 기술이란 100 kg 쯤 되는 인공위성을 띄워 놓고 돌아올 수 있는 정도였을 뿐, 인간이 타는 우주선을 만들기에는 기술도 없고 돈도 없고 만들 사람도 없고 무엇보다 시간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 고통 받고 있던 소별왕 계획의 관리자들이 홀딱 빠진 새로운 발상을 보여준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이 사나이는 계획에 참여한 내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홀로 연 선지자 같은 인물이었지만, 외부에는 거의 알려 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부 사람들 중에도 그 사람의 본명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렇지만, 이 바닥에서 “압구정 쿤사”라고 별명을 댄다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압구정 쿤사는 본래 압구정동에서 청담동으로 살짝 넘어 온 지역에서 개업한 의사였다. 이 사람의 명성이 공식적으로 널리 홍보 되었다면, 청담동 주민들은 행정구역상 압구정 쿤사는 행정구역상 청담동 쿤사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시위라도 했겠지만, 압구정 쿤사는 그런 식으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압구정 쿤사라는 별명이 처음 붙었던 때에는 우주 계획과는 상관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에는 어떤 동의 주민도 압구정 쿤사의 이름을 탐내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네 동네하고는 상관 없이 애매하게 들리도록 도로명 주소를 써서 도산대로 쿤사 정도로 불리우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압구정 쿤사라는 별명은 그가 절묘하게 배합하는 신경정신과 약물을 쓰는 재주 때문에 붙었던 것이다.

그는 합법적인 약물만을 합법적으로 처방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러 약물을 잘 섞어서 처방하고 적당한 리듬으로 조절해서 투약하는 방식으로 강렬한 약물 효과를 만들어 내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적당한 진통제나 별 해가 없어 보이는 수면유도제를 처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처방한대로 약을 쓰면 어지간한 마약 보다도 뛰어난 효과를 얻을 수가 있었다.

전국의 약쟁이들에게 그의 명성은 꾸준히 퍼져 나갔다. 동남아시아의 마약왕이었던 쿤사의 별명을 가져와서 그를 압구정 쿤사라고 부르게 된 것도 그 명성 때문이었다. 그의 기술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현재 우리 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학자들은 압구정 쿤사의 기술을 과학적으로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밝힌다면 약물의 특성과 인간 신경계, 두뇌 활동의 특징을 밝히는 위대한 발견이 될 지도 모른다고 예상하는 사람도 나는 만나 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압구정 쿤사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힘들여 이 바닥에서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한다고 설쳐 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은 허구헌날 정부 기관에 시달려야 하는 조잡한 연구기관의 일자리 하나 정도이지 않겠는가? 그 보다야 그냥 약쟁이들에게 약 지어주고 돈 버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압구정 쿤사는 그것을 스스로 보람차고 뿌듯하게 여기기까지 했다. 자기가 아니었다면, 마약 밀매업자에게 목숨 걸고 비싼 돈 내고 위험한 약을 사다가 폐인이 될 인간들에게 자기는 합법적인 약을 지어 주고 합법적인 값만 받고 그래도 일상 생활은 가능한 선으로 유지시켜 주고 있지 않은가? 자기가 마약의 늪에 빠진 영혼을 완전히 건져 내지는 못했다고 해도, 그래도 적당히 발목 깊이 정도로 빠지는 진창 정도까지 끌어낸 사례는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별왕 계획까지 망하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거야.”

유난히 “죽어 난다” “죽는 거야” “죽자, 이거지” 같은 표현을 좋아했던 지난번 계획 총괄담당도 압구정 쿤사를 찾아가 그의 기술로 마음의 평화를 얻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것은 마음의 가짜 평화였다. 하지만, 그러다가 인간적으로도 그와 친해진 후에 들은 말은 진짜로 솔깃했다.

지금 우리 나라 우주선이 갖지 못한 것은 정교한 제어 기술과 우주 비행사의 안전을 유지시켜 주기 위한 기술 뿐이었다. 단순히 우주 비행사의 몸무게 만큼을 우주로 쏘아 보냈다가 데려오는 기술은 대충 갖추고 있다. 추위와 더위를 막고, 호흡과 균형을 유지하는 기술이 없었고, 그런식으로 날아가는 우주선이란 칵테일 셰이커에 위스키와 함께 집어 넣어 흔들어 대는 것처럼 어지럽게 돌고 흔들려서 도저히 인간을 태울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압구정 쿤사가 장난처럼 이야기한 해법은 이런 것이었다. 우주선을 인간에 맞게 개량할 수 없다면, 인간을 우주선에 맞추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 총괄담당은 40년 묵은 군대 농담이 지금 또 말해도 재밌어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그렇죠. 군대에서도 그러잖아요. 발에 군화를 맞추는 게 아니라, 군화에 발을 맞추라고.”

압구정 쿤사는 적당히 약물을 잘 처방하면, 사람을 반쯤 넋나간 상태처럼 만들 수 있고, 그렇게 하면 우주선이 아무리 요란하게 흔들리건 뱅뱅 돌건 멍하니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거기다가 몸 동작과 두뇌가 둔해 지기는 하겠지만 몸을 반쯤 잠들듯이 만들어서 산소 소모량도 줄일 수 있겠다고 했고, 추위나 더위도 거의 느끼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반 시체처럼 멍한 사람을 우주선에 태우면 조종은 어떻게 합니까?”
“조종은 우주선에 탄 사람이 안하고 기지에서 원격 조종하는 거죠. 어차피 인공위성 띄울 때 누가 타고 조종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면 우주선에 사람을 태우는 건, 우주에서 창문으로 지구를 내려다 본 감상 뭐 그런 걸 느낀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겁니까?”
“뭐 그것도 꼭 그럴 필요도 없죠. 창문 다는 것도 쉽지 않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안 깨지는 창문 만드는 기술 개발하는 데도 시간 들고 돈 들겠죠. 그냥 아무것도 안 보이는 철통 속에서 사람 태워서 보냈다가 돌아 오게 하는 거죠.”
“그러면 도대체 우주선에 사람을 태우는 의미가 뭡니까?”
“우주선에 사람을 태웠다는 자체가 의미인거죠.”

그 말을 들은 순간, 총괄담당은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것과 같은 충격을 느꼈다. 총괄담당은 벅찬 감격에 젖어 집에 돌아 갔고, 당당히 이 사실을 차관과 위원회에 보고 했다.

위원회는 깨달음의 충격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압구정 쿤사의 방안을 하늘이 내린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깊게 신앙하게 되었다. 특히 차관은 이 방법만이 유일한 길일 뿐이라는 생각을 넘어서, 이 방법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 했다. 위원회는 압구정 쿤사를 소별왕 계획에 끌어 들였고, 압구정 쿤사가 거절하지 않도록 온갖 이상한 방법들을 동원했다고 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갖가지 괴상망칙한 이야기들이 풍문으로 떠돌고 있지만, 가장 믿을 만한 한 가지 정론이 아직 없는 까닭에 굳이 설명하지는 않기로 한다.

이렇게 해서, 압구정 쿤사의 방안대로 우리의 우주 탐사 계획은 추진 되었다.

“어차피 옛날에 선진국 애들도 비슷하게 했대. 걔네들도 우주 비행사들 긴장하지 말라고 진정제 먹이고, 조종 잘하라고 각성제 먹이고, 그렇게 약 먹인 다음에 우주선에 태웠다는 말이 있더라고.”

이 말이 계획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향해 위에서부터 아래로 빗물처럼 계속 내려 왔다. 워낙 이 말이 많이 쓰여서 무슨 주문처럼 들릴 때도 있었다. 옛날 삼국시대에 원효대사가 나무아미타불만 계속 외어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는데, 여기 사람들은 “옛날에 선진국 애들도 똑같이 했대”라는 말만 계속 외고 다니면 우주로 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약을 먹이는 데 배려한 정도가 아니라, 오직 약을 먹이는 기술에만 달라 붙었다. 각서를 쓰고 지원한 우주비행사 후보들에게 우리는 다양한 약물을 주입해 보았다. 압구정 쿤사의 기술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압구정 쿤사는 하나의 약물과 다른 약물을 쓰는 그 조화를 마치 음악처럼 인식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 음과 다른 음이 어울리면 좋은 화음이 난다는 감성이 있는 것처럼, 압구정 쿤사는 한 약물과 다른 약물을 집어 넣으면 어떤 효과가 나올 지 가슴으로 느끼며 투약 순서를 설계한다고 했다.

거기까지는 전설의 영역이었지만, 뒤이어진 것은 역사의 영역이다. 기어코 우리는 첫번째 한국산 유인 우주선을 성공시켰다.

그 유인 우주선이라는 것이 온몸을 줄에 꽁꽁 묶은 채로 누워서 들어 가면 사방이 꽉 끼이는 좁디 좁은 음료수캔 같은 것일 뿐이고, 타고 갔다 오면 반쯤 술 취한 상태로 비틀 거리면서 걸어 나오는 우주비행사가 몸 곳곳에 화상을 입고 있고 한쪽 폐는 망가진 채로 돌아 와서 히죽히죽 웃고 있게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그걸 우주에 보냈고, 12% 이상 파손되지 않고 지구로 돌아 오게 만들었다.

첫번째 우주비행사만 해도 이제 다 잘 된 줄 알았다. 그 사람은 외계인에 관해서 이야기 하지도 않았다. 사실 그는 외계인이 아니라 뭐라도 우주에 관해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거의 없었다. 압구정 쿤사는 그를 불쌍히 여겨서 지나치게 강한 약물을 처방해 주었고, 그는 그 때문에 마취에 빠진 채 꿈을 꾸며 우주에 다녀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 

“소별왕1호, 괜찮은가?”
“예”
“이상 없나?”
“예”
“현재 상황 보고하라.”
“이상 없음”

꾸준히 대화를 할 수 있기는 했지만, 그 대화를 하는데 인간의 뇌가 필요한 것 같지 않은 말 밖에 못했다. 심지어 그는 계속 눈을 뜨고 있지도 못했고, 그걸 숨기기 위해서 검은색 색안경으로 윗 얼굴이 보이지 않게 한 헬멧을 씌워 놓아야 했다. 그때 TV에 얼굴이 나갈텐데 눈은 뜨고 있어야 하는데 어쩌면 좋냐고, 약물 투입 조합을 다시 고쳐야 된다 어쩐다 난리가 났을 때, “그러지 말고 색안경을 씌우자”는 제안을 했던 사람이 바로 정 선배였다. 정권이 바뀌고 예산이 줄어 들어 우리가 잡일 하는 부서로 밀려 났어도 쫓겨나지는 않은 것은, 그때 그 아이디어를 정 선배가 냈기 때문 아닌가 싶다.

압구정 쿤사는 사람의 마음을 깊게 안정시켜서 우주에서 10만 조각의 먼지로 폭발해 버리기 직전이라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미세먼지가 더 심해지면 어쩌나 걱정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주었다. 참치캔이나 다를 바 없는 우주선에 갇혀 캔 속의 참지 보다 못한 신세로 우주에 올라가는 우주 비행사에게 압구정 쿤사는 그게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장관, 차관, 대통령 같은 어르신들이 첫번째 우주비행사에게 기념 삼아 지상에서 쓸모 없는 질문을 했을 때, 그는 공손히 재밌는 대답을 하지 못했고, 그것을 위원회에서는 치명적이라고 여겼다. 위원회는 압구정 쿤사에게 퇴직을 제안했고, 압구정 쿤사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 들였다.

두번째 우주비행사부터 급히 그의 기술을 배운 제자들이 조금 더 약한 약물을 집어 넣은 사람을 보냈다. 두번째, 세번째 우주비행사들은 술에 취해 한 가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 주정뱅이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눈을 뜨고 주변을 보고 뭔가를 느끼고 그것에 대해 뭐든 말을 해 줄 수가 있었다. 거기까지 직접 사람이 올라가서 볼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여기서 내려다 보는 지구는 아름답다” 어쩐다 하는 기자들이 기대하고 있던 말도 해 줄 수 있었다.

나름대로 장점도 있었다. 어차피 이미 과거의 우주선이 다 관측해 놓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영상을 보는 것이고 그나마, 우주선에서도 LCD로 보는 것 뿐이니, 우주비행사가 뭘 보기도 전에 이미 뭘 볼 지 다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었다. 지상팀에서는 기자들과 의논해서 기사에 실리면 좋을 만한 말을 생각해서 우주비행사에게 미리 알려 줬다. 그러면 그걸 적어 놨다가 우주비행사는 때가 되면 우주에서 그걸 그대로 자기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동이라면서 읽어 주었다. 미리 준비해 놓은 기사를 그대로 내 보내면 되니 기사 쓰기가 아주 편했고 기자들은 행복해 했고, 언론을 이쪽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비록 생동감도 없고, 재미도 없었고, 무엇보다 정말로 우주비행사가 느낀 것을 말해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다들 좋아했다.

그런데 그렇게 다 잘 풀리는 줄 알았는데, 지구에 다시 내려온 우주비행사가 미리 약속해 둔 말에 없던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바로 우주에 있을 때 외계인을 봤다는 이야기였다.

외계인을 보았다는 선진국의 사례도 없었고, 외계인을 찾는 것이 목표도 아니었고, 대통령이든 누구든 외계인을 찾아내라고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의외로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 때문에 “종합 후속 연구”라는 명목으로 모든 잡무를 다 몰아서 맡은 정 선배와 나, 할 일 없는 두 사람이 그 일도 같이 맡게 되었다. 우리도 별 고민도 없이 그냥 다른 불빛을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주비행사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다른 불빛이 보였다는 것 자체부터가 문제 아니야?”
“왜요?”
“우주선이란게 그냥 단단한 철통이잖아. 거기에 어디 불빛이 보이고 말고 할 데가 어디있어?”
“무슨 스파크가 튄다든가, 어디 틈으로 바깥쪽 기계장치가 살짝 삐져 나와 보인다든가 한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그렇다면 진짜 문제라고. 우주선이 어디 망가졌다거나 고장났다는 말이잖아.”

정 선배는 그 점을 지적했다. 나는 몇몇 다른 부서 사람들을 붙잡고 그 사실을 말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외계인 목격담을 조사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선 우주비행사들의 목격담이 얼마나 비슷한지 서로 비교해 보기로 했다. 만약 각자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환상이나 꿈, 약물 부작용일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뭔가를 본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떠올렸을 것이다. 외계인 괴물과 싸우는 공포 영화를 어릴 때 보고 두려워 했던 기억이 강한 우주비행사는 무서운 괴물과 닮은 형체를 볼 것이다. 우주에서 외계 행성의 공주가 찾아 오는 SF 모험담을 좋아했다면, 아마 외계인은 미녀의 모습일 것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우주비행사들이 본 것이 서로 비슷하다면, 아마 어떤 한 가지 실체가 그 자리에 있고 그것을 우주비행사들이 본 것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게 외계인인지, 우주선이 망가지면서 어디에 불이 붙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뭔가가 저 위에서 나타났다는 뜻이라고 볼만 했다.

정 선배와 나는 우주비행사들을 찾아 다니며 계속 면담했고, 그 기록을 남겼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기억을 최대한 선입견 없이 말하게 하려고 애썼다. 사람들의 기억은 조금씩 달랐지만 비슷한 점도 분명히 있었다.

“빛나는 모양이었거든요. 노랑색인지 파랑색인지 약간 그런 기가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어쨌건 밝고요. 거의 흰색처럼 빛이 났고요.”

그들은 흰 빛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었고, 대부분 주변을 돌며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정확하게 볼 수 없었다고도 말했다.

우리는 우주비행사들에게 투약한 약의 종류와 양, 우주비행사들의 나이와 성별, 괴상한 형체를 본 시간과 위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분석해 보기도 했다. 만약 약을 많이 먹일 수록 더 기억이 강렬했다면 약과 관련이 있다는 뜻일지 모르고, 수면부족 상태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일 수록 외계인을 또렷이 느꼈다고 하면 아마 그건 꿈일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해 본 것이다.

그렇지만 특별히 관련이 있는 사실은 없었다. 남자건 여자건, 나이든 사람이건 어린 사람이건, 우주에 올라가면 외계인 같은 것을 잠깐 만나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데 생긴 환상이라기보다는 그런 착각을 불러 온 뭔가가 있다는 쪽으로 점점 의견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제일 지구에서 먼 고도 쯤에서 봤다고 하니까, 외계인을 본 장소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높이는 그렇긴 한데. 그래도 위도와 경도가 정해진 위치는 관계가 없는데.”
“외계인도 인공위성처럼 궤도를 따라 빙빙 돌고 있나 보죠. 그러다가 우주선이 나타난 것을 보면, 신기하다고 가까이 찾아 오는 거 아닐까요?”
“그럴거면, 왜 찾아 와서 말도 안하고 그냥 그렇게 장난치듯이 하기만 하다가 그냥 가는 건데.”

모든 공식 보고서에 우리는 그때까지 “외계인”이라는 단어는 전혀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화 중에는 외계인이 이미 저 위에 와 있다는 것처럼 이야기 했다. 그 편이 재미 있었다. 우리에게 떨어진 왠갖 잡다한 지원 업무를 하다 보면 재미라는 것은 일을 버텨내는데 아주 중요 했다.

일이 재미 없어진 것은 세번째 우주비행사가 우리를 다시 찾아 온 저녁 때 부터였다. 돈을 펑펑 써 대기로 악명 높은 홍보팀에서 쓴 비용의 영수증 맞춰주는 것을 도와주는 일을 막 끝낸 뒤였다. 세번째 우주비행사는 우리에게 인사치레 말을 몇 마디 하고 나서는, 이제 외계인의 정체를 알아 냈냐고 물었다.

정 선배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없습니다. 우리가 네번째 유인 우주 비행 때부터는, 혹시 다른 흔적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우주선 내부 측정을 더 강화했고, 그 자료도 저희들이 다 받아서 봤습니다. 그런데, 외부에서 그런 뭔가가 들어 왔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우주비행사들도 그걸 보긴 본 거죠?”
“뭐 말씀이십니까?”
“제가 본 외계인이요. 뿌옇게 빛나고 이렇게 돌고래 움직이는 것처럼 막 돌면서 날아다니는거요.”

우주비행사는 돌고래 움직이는 모양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 팔을 움직였다. 정 선배는 이어서 대답했다.

“뭔가를 봤다고 하시는 분이 있기는 합니다. 그렇게 아주 똑같이 확인된 건 아닙니다.”

정 선배는 그때 이미 이 우주비행사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조사 결과는 정 선배의 대답 보다는 훨씬 더 “뭔가가 있다”는  쪽에 더 가까운 상황이었는데 정 선배는 굳이 “외계인은 없다”는 느낌을 말에 불어 넣어 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비슷한 걸 봤다는 이야기잖아요. 진짜 뭔가 있다니까요.”
“그래도 객관적인 측정 장치에는 잡히는 게 없으니까, 죄송합니다만, 아직은 더 말씀 드릴 게 없습니다.”
“기계에는 아무것도 안나온다고요?”

우주비행사는 당황하는 눈치였다. 나는 정 선배를 거들었다.

“안 나옵니다. 영상도 안 잡히고, 방사능 수치도 달라지는 게 없고, 특별한 온도 변화도 없고. 다 없습니다.”

우주비행사는 그때부터 심각한 갈등과 고민에 빠진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우주비행사는 계속 외계인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이제 우리도 퇴근하고 싶으니 좀 가주시겠어요”라는 말을 최대한 정중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낌새도 눈치채지 못하고 시간을 오래 끌었다.

“아주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는 외계인이기 때문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거 아닐까요? 로켓 같은 걸 타고 날아 다니는 것은 위험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는 걸 이미 안 거죠. 그래서 기계에 잡히지 않는 형체가 없는 방식으로 우주를 돌아 다니면서, 인간이 우주에 나오면 그 인간의 정신을 집적 건드리면서 의사 소통을 하려고 하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기계 장치에는 안 잡히지만 정신이 있는 인간만은 느낄 수 있는 거죠.”

그게 우주비행사가 그날 마지막으로 주장한 것이었다. 그 주장에 대해 정 선배는 퇴근길에 이렇게 설명했다.

“무슨 수로든 외계인이 있고 자기가 외계인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거 같아. 그 사람이 우주비행사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이제 프로그램 끝나면서 다시 돌아갈 팀이 없어졌거든. 그런데 임무가 더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일 없는 사람 된 거지. 이제 갑자기 예산 줄인다고 해서 잘리면 그냥 실업자 되는 거야.”

실업자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정 선배는 잡무 전문팀에라도 틀어 박히게 해 준 자신의 수완을 뽐내려는 것 같았다. 나는 기꺼이 그에 대한 감사의 눈빛을 보내 주었다.

“그래도 우주비행사라고 자존심은 높은데 실업자 되었다고 갑자기 다른 일 하기도 그렇잖아. 그나마 이력서에 ‘우주비행사’라고 경력 써 내고, 어디 대학 교수나 홍보 담당 임원 자리라도 하나 얻어야 되는데, 요즘 그런데 자리가 어디 많길 하나. 불안한거지. 그러니까 자기가 그냥 실업자가 아니라 아주 엄청난 대단한 것을 생각한다는 그런 느낌에라도 빠지고 싶어서 저러는 거 아니겠어.”

정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거기다가 약쟁이가 됐으니 맛이 가는 것도 당연하지”라는 말을 덧붙일 듯한 기세였는데, 그 말은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 했는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우주비행사는 그 다음날 무슨 신문사인지 인터넷 뉴스인지 어디를 찾아 가 그 외계인 이야기를 털어 놓아 버렸다.

“우주비행사의 외계인 목격담 줄이어... 안전 문제인가?”

첫번째 기사 제목은 그것이었고, 두번째, 세번째 기사와 그 기사를 베낀 일흔 두 개의 다른 기사들이 뒤이어 달라 붙었다. 기사가 나오자 마자, 우리는 소별왕 계획의 거의 모든 화 잘내는 높은 사람들 앞에 불려 가 설명 해달라, 해명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거 이제 어떻게 해야 되냐?”

난감한 처지였다. 아직 우리 우주선의 처지에 대해서는 “선진국의 90% 수준” “세계적인 우주 강국” 어쩌고 하는 두리뭉실한 그럴싸한 홍보 자료만 있었지 실체가 알려진 것이 없었다. “우리는 약을 먹여서 우주비행사를 만든 겁니다”라고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현재 내부에서 소용되는 공식 해명인 “약을 많이 먹였기 때문에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라는 대답을 외부로는 발표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진짜 우리는 외계인을 본 것 같다”고 하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다.

다른 나라의 기록을 참고할 만한 것도 없었다.

“미국이나 중국에서 우주비행사들이 외계인을 만났다고 해도, 그 자료를 우리한테 그냥 공개해 주지는 않겠지. 설마 주겠어.”

겉으로는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이미 선진국에서는 외계인에 대해 뭔가 자료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걸 숨길거라는 말을 심각하게 하는 사람도 있기는 했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사용하는 우주선 궤도는 다른 나라에서는 쓰지 않는 궤도라서 우주 비행 방식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냥 우주비행사를 가둬 놓고 한번 올렸다가 내리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한국식 우주선이 가는 길은 아무 나라도 택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지구 바깥에 수없이 많은 인공위성이랑 다른 나라 우주선이 있지만, 거기는 외계인들이 돌아 다니지 않는 구역이고 하필이면 우리나라가 택한 그 길에만 외계인이 있다고? 설마 그렇겠어?”
“그런데 그게 아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닌게, KSX 궤도 대로 우주선이 가다 보면 안드로메다 은하계 방향과 딱 마주치는 순간이 한 번 있거든요. 혹시 안드로메다 은하계에서 뭘 보내고 있는 거라면, 그때 마주치기에는 우리 우주선이 아주 좋은 편이기는 합니다.”

총괄 담당은 이 소동을 어떻게든 빨리 덮고 지나가고 싶어 했다고 한다. 총괄 담당은 마지막까지 따졌다고 했다.

“그래도 말이 안되잖아요. 무슨 외계인들이 지구에 찾아 오려면 화끈하게 찾아 오든지. 확 시비를 걸려면 걸든지. 무슨 우주 바로 밖에 계속 기다리고 있다고 한 명 나올 때 마다 깨작깨작 한 번 얼굴만 보여 주고 도망 가고, 보여 주고 도망 가고, 왜 그러는건데?”
“저희가 외계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게 그쪽 예의 일 수도 있고, 그런게 그쪽의 놀이 문화일 수도 있는 거고요.”

어쩔 수 없이 수습해야 하는 처지가 되자, 첫번째 작전은 그냥 그 우주비행사 한 사람이 정신병자라고 몰아 붙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우주비행사가 자기도 외계인 같은 것을 본 것 같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비슷한 처지였던 그 사람은 갑자기 다시 화제거리가 되는 게 부러워 보였던 것 같았다. 돈을 집어 주고 입 닫고 있으라고 하는 방안도 있었는데, 한 번 돈을 집어 주면 너도 나도 계속 “나도 외계인 봤다” “나도 봤다”고 나설 것 같아서 그 방법을 쓰지도 못했다. 정부에서는 그냥 대충 아무 명목이나 갖다 붙이고 확 체포해서 감옥에 집어 넣는 것도 고려해 보라는 지시가 내려 오기도 했다.

“국가 기밀 유출이나 뭐 그런 명목으로 갖다 붙이면 안될 것도 없잖아요.”
“그런데, 외계인을 봤다는 것이 국가 기밀 유출이라고 하면, 외계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양새이지 않습니까.”
“뭐 어때요. 큰일 나겠어요?”

먼 훗날의 일이지만, 이 때야 말로 우리의 총괄 담당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바빴던 때라고 이야기 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총괄 담당은 똑똑한 사람이었고, 거기에서 자기 기회를 찾아낼 줄 알았다.

“새 예산이 필요 합니다. 정확하게 외계인이 있는 지 없는 지 증거를 찾아 낼 수 있는 새로운 우주 계획을 추진해야 합니다.”

사고를 쳤지만, 수습을 해야 하니 예산을 달라고 얼굴에 철판을 까는 총괄 담당의 그때 태도는 일반인은 상상하기 어려운 영웅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마침 뭐라도 대책을 내 놓으라고 정부가 시달리던 판이라 그가 원했던 예산은, 꿈에서도 그리워 했던 어마어마한 액수가, 간단히 장난처럼 손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소별왕 계획의 후속인 대별왕 계획이었다. “실용적 목적으로 일반인의 우주 체류가 가능한 수준의 차세대 우주선 발사 체계의 조기 개발”이 대별왕 계획의 공식 목적으로 제시 되었다. 모든 연구원들은 그 뜻이 “이제 약에 취하게 하는 것 없이 우주에 사람을 보내자”라는 뜻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환각과 망상에 빠지지 않을 제 정신인 사람을 같은 길로 보내서, 정말로 외계인이 직접 뇌에 접속하는 것인지 어떤지 똑똑히 체험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계인 보다 더 알기 어려운 수수께끼는 그 많은 예산이 다 어디로 사라지느냐 하는 것이었다. 정 선배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지만, 그러면 실패하면 실패했지 돈은 왜 그렇게 많이 없어졌는지는 더 알기 어려웠다. 미국이나 러시아에 그만한 돈을 지원해 주고, 당신들 우주선으로 우리가 원하는 궤도대로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해도 되었는데, 돈은 돈대로 쓰고 일은 일대로 망하고 있었다.

결국 시한이 다가 오자, 또다시 “무슨 수로든” 약 없이 사람을 우주에 보내라고 다들 들볶이는 계절이 되었다. 그리고 아무 수도 없다고 했을 때, 어느 참신한 연구원이 다시 참신한 의견을 냈다고 한다.

“약을 주사 안해도, 그냥 정신력으로 참으면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마비시키는 약 없이 그냥 아주아주 튼튼한 사람이 온 힘을 다해서 꾹 참고 우주선 안에서 버티게 하자는 것이었다. 어지러움도 고통도 두려움도, 그냥 아주 강하게 정신력으로 버티면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다들 그 방법 밖에 없겠다고 믿는 계절이 뒤이어 찾아 왔고, 대별왕 계획에서는 아주 아주 잘 견디는 뛰어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 애썼다. 고통을 좋아하는 괴상한 취향을 가진 별난 사람들이 대거 몰려 왔고, 선발 방식에서 무서움과 괴로움을 견디는 능력을 측정한다는 것이 소문 나자,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 왔다. 그 와중에 우리는 사회에서 정신적인 문제가 없는 사람을 뽑아 와야 했고, 여러 기준으로 “정상”이라고 할만한 사람을 추려 내는 것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그 혹독한 모험과 도전과 시련과 야근의 세월을 어찌 짧은 글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뭐가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아주 크게 망하라고 그랬는지, 기한 전에 이 사람들은 불길과 얼음과 진공을 뚫고 다니며 사람 죽이겠다는 것처럼 핑핑 도는 우주선에서 끝까지 참고 버티고 있을 사람을 한 명 찾아 냈다. 대별왕 계획의 첫번째 우주비행사인 이 무시무시하게 정신력이 강하면서 또한 지극히 “정상”인 사람은 우주선에 실렸고, 우리는 다시 한 번 그 미치광이 궤도를 따라 그 사람을 쏘아 올렸다.

“그 사람도 뭘 봤대요. 자기 말로는 외계인 느낌은 아니라고는 하는데, 따뜻한 빛이 나고 아름답고 뭐 그랬대요.”
“이거 신경정신과 연구원을 고용해서 어떻게 봐야 할 것 같은데.”

정 선배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사람 죽기 전에 다들 이상한 터널 같은 거 보고 빛을 향해서 날아 가는 같은 경험을 하고 그런 게, 저승으로 가는 느낌이라고 하잖아. 그런데 그게 사실은 사망 직전이 되면 뇌가 서서히 꺼지면서 물질이 이상하게 오락가락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거라고 하거든. 그런 식으로, 다들 우주선만 타면 이상한 걸 보는 걸 보면, 저런 사람 잡는 우주선에 갇혀서 공기가 희박한 지역으로 단숨에 가게 될 때, 뇌나 신경이 어떻게 망가져서 그런 게 보이는 거 아닌가 싶은데.”

정 선배에 설명이 나는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말로 대답했다.

“아니면 진짜로 인간을 찾아 온 안드로메다 외계인이 있거나, 아니면 우주 공간을 떠다니면서 이상한 형태로 사는 빛덩어리로 된 돌고래 같은 생명체가 있는데, 그거랑 우리가 자주 마주치는 걸 수도 있고.”

내 상상력은 그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실제로 이번 우주비행사는 언론에 나가서 한 사연은 훨씬 더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것이었다.

“저는 천사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아주 고귀하고 성스러워 보였습니다. 보자마자 저는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확신이 가슴 깊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지상의 인간 언어로는 설명조차 못하겠습니다. 우리를 항상 돌보시는 그분이, 드디어 우리 인류가 46억년 동안 항상 생명이 갇혀 있었던 이 지구라는 공간을 마침내 벗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축하해 주기 위해 보내신 사절이라는 점을 저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 모든 진리를 이제 저 위에서 우리들에게 알려 주려고 천상의 사자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주비행사는 무슨 친숙하지도 않은 종교를 아주 아주 굳건히 믿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강한 신념 덕택에 그런 말을 하면서도 조금도 망설이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걸 TV에서 보고 이건 또 무슨 난리냐고 당황하고 있는데, 정 선배는 의외로 한 번 즐겁게 웃었다. 오히려 총괄 담당이나 차관은 좋아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제 대충 둘러 대고, 여기 저기 말 떠들어서 종교계에서 지원금 받아낼 거라고. 종교계 지원금이, 그게 또 돈이 한 두 푼이 아닐 거거든.”

나는 그 말을 믿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며칠 더 살아 보니 과연 맞는 말이었다.

- 2015년, 역삼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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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No Profile
    신나라 15.11.02 06:48 댓글

    아무튼 대동강은 흐른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 신나라님께
    No Profile
    곽재식 15.11.02 08:01 댓글

    사실 저 스스로는 우주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한다는 발상에 상당히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오리무중의 성장 정체기에 우주개발이 성장의 돌파구가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경제 성과도 아주 없을 것 같지는 않은데다가, 무엇보다 우주개발 과정이 현재 우리 기업과 사회에 부족한 연구개발 방법, 프로젝트 관리 방법, 그 밖의 여러 가지 의사 결정 방식, 조직 문화에 대해 새로운 수준의 경험을 주고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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