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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명당을 찾아서

2015.09.30 23:1309.30


남자는 군대 제대하면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안 싼다는 말이 있지? 그만큼 치가 떨린다는 말인데, 사실 고등학교도 어느 정도는 그래.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아빠에겐 그랬다. 그래서 졸업하고 지금까지, 어지간하면 이쪽 길로는 지나다니지도 않았어. 너희 작은할아버님 뵈러 김포에 갈 때를 빼면 말야. 

그러고보니 그게 벌써 27년...... 28년쯤 되었나? 여길 졸업한 게 말이다. 개교 30주년이라고 하는데, 내가 1회 졸업생이었거든. 세월 참 빠르네. 30년 사이에 학교도 정말 많이 변했고. 그때는 요 앞이 다 밭이었거든. 저기 아파트 단지 들어선 자리가 원래는 밭이었는데, 거기 밭 주인이 소를 몇 마리 키웠지 뭐냐. 여름에는 두엄 냄새가 진동을 했고. 아, 두엄이 뭔지 아니? 소똥 말이다. 옛날 시골에 가 보면 소똥을 썩혀서 밭에 거름으로 주고 그랬잖니. 그걸 그때도 하고 있었다. 세상에, 난 두엄 더미는 보기도 처음 봤지만, 그런 데서 뒹굴어 볼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다 모기는 또 얼마나 진동을 했는지. 소가죽 두껍잖니. 그 소가죽도 뚫고 다니던 모기에게 탱탱한 고등학생이 얼마나 좋은 간식거리였겠어. 그때 우리가 처음에는 교복 자율화라서 교복을 안 입다가, 아시안게임 지나고서 교복이 생겨서 그걸 입기 시작했는데 말이지, 소문으로는 그 모기의 침바늘이 학교 교복 코트도 뚫는다고 그랬다. 그만큼 교복 코트가 나달나달 얄팍하기도 했고. 

지금이야 여기도 제법 어지간한 고등학교 소리를 듣고, 한때는 인천에서 이 학교 하면 알아주던 명문고로 대접받던 시절도 있었다지만, 사실 이 학교 처음 생겼을 때는 꼴통도 그런 꼴통학교가 없었어. 인문계는 인문계인데 전수학교만도 못한 학교라고 수군거렸으니까. 교복 입고 버스 타는 게 쪽팔릴 수준이었지. 난리도 아니었어. 

저기 스탠드 밑에 도랑 보이지? 그 도랑이 저기 학교 후문 옆하고 이어지는데, 저기서 피가 냇물이 되어 흐르기도 하고. 아냐, 진짜야. 이건 소싯적에 17대 1로 싸워서 이겼다거나 그런 농담이 아니었어. 우리 학교에, 그때 저기 배다리에서 날리던 조직의 조직원이 하나 있었다. 소문에는 거기 보스의 숨겨놓은 아들이라든가 뭐라든가. 여튼 싸움을 겁나게 잘 해서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인데 행동대장 비슷하게 그런 게 있었어. 나이는 우리보다 두 살인가 많았지만, 여튼 스무 살도 안 되었잖니? 근데 그 친구가 그 조직에서 처음으로 고등학교에 온 거다. 사살 이야기를 안 들으면 얘가 조직원인 건 꿈에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학교에서는 점잖은 녀석이었어요. 교실에서 꽃 화분을 키우지 않나, 자기 것도 아닌 학교 화단을 그렇게 애지중지해서 화분도 아닌 화단에다 물도 주고 꽃씨도 뿌리고. 

예전에 두사부일체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다음 카페가 어디 단란주점인 줄 알 만큼 무식하던 조직 중간 보스가 가방끈 늘여 보겠다고 학교 가는 거. 말하자면 그런 셈이었지. 그런데 문제는 전수학교만도 못한 학교인 줄 알고 보냈는데, 의외로 선생들은 공부를 잘 가르쳤단 말이야. 이 새끼가 뒤늦게 공부에 눈을 떴어요. 공부 머리는 아닌데 의외로 이게 재미있어서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버린 게 탈이라면 탈이었지. 

근데 조직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데, 그 조직같은 데들이 그러면 도마뱀이 꼬리를 끊듯 부하들을 대신 학교에 보내는 게 보통이었거든. 아니, 그 학교 말고. 빵 말이다, 교도소. 그런데 이제 그 친구 차례가 된 거야. 학교는 학교래도 대학에 가고 싶은 애한테 빵에 가라니 그게 되나. 그래서 자긴 조직 그만둔다도 그런거야. 보스가 애들을 학교에 보냈지. 천 대를 맞고 버티면 나가게 해 준다고 그랬는데, 저기 운동장 한 복판에서 천 대를 다 맞았어요. 

근데 그럼 뭐 하나.

그 바람에 정학 먹었는걸,

그래도 나중에 어디 지방 전문대에 가긴 갔어. 가서 지금은 저기 아나지고개에 오파상 사무실 차려놓고 후라이팬 떼어다가 러시아에 팔고 있지. 사장님이야, 사장님. 지금도 아빠랑 친하게 지내잖니. 

아니, 그 친구 이야기가 아니구나. 피가 도랑에 흐른 건. 

걔 말고 또, 아주 내일도 없이 막 사는 놈이 하나 있었는데. 그 놈이 그만 저기 석남사거리파 조직의 어디 형님네 여자랑 눈이 맞았지 뭐야. 물론 눈만 맞진 않았겠지. 음? 고등학생에게 부적절하다고? 아, 그래. 알았다. 

여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삐리에게 자기 여자를 빼앗기고 그 형님이 가만히 있었겠니?

그때도 이 학교는 밤 늦게까지 애들을 잡아 놓았는데, 인천에서 날리던 쓰레기같은 새끼들이 다 이 학교에 와 있었단 말이지. 학교 야자 덕분에 저기 부평 쪽 밤거리가 평화로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그래도 도망치는 놈은 늘 있었거든. 이놈도 마찬가지였어. 겁대가리 없이 금요일에 야자를 째려고 들었지. 

그때 학교 교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 형님이 얘를 잡아다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르게 두들겨 패서는 학주에게 야자를 도망치려 한 몹쓸 놈이라고 얌전히 갖다 바치기까지 했어요. 그날 밤에 다들 나오는데 학교 운동장에서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고,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여기 마른 도랑에 피가 흘렀다 이거야. 

뭐 그렇다고 그 학교가, 정말 내일은 없는 인생막장 개꼴통들만 다니는 그런 학교는 아니었어. 교장이 욕심이 많은 양반이어서, 학교 개교하면서 온 인천에 있는 남자애들 다니는 중학교란 중학교마다 공문을 싹 돌리고 나와서 직접 발품 팔아 홍보까지 한 거야. 공부 잘 하는데 고등학교에 갈 돈이 없는 애들이 있잖니. 실업계 나와서 일찍 취업한다거나 그런 것도 없는 애들 말이야. 그때는 지금같이 다들 고등학교 가는 시절이 아니었어. 서울 올림픽은 고사하고 아시안게임도 하기 전이었고, 섬이나 산간에는 아직 전기도 안 들어와서 호롱불 켜고 지냈던 시절이야. 그 얼마나 옛날 일이니. 

여튼 그런, 소위 가난한 수재라는 애들을 문과 한 반 이과 한 반 받아서 공짜로 가르쳐 준다고 한 거야. 그 애들이 학교 와서 죽자사자 공부를 해서 대학에 잘들 들어가고, 그렇게 3년을 하고 났더니 학교가 명문고라고 소문이 났지 뭐냐. 이 학교가 뜬 게 그렇게 초기투자를 잘 해서였지. 그렇게 두 반을 따로 뽑아서 잘 가르치고, 그럼 나머지 반이 있지 않니. 그때만 해도 요즘같지 않고 태어난 애들 인구도 많아서 반이 열두 반이었으니까. 열 반이 남지. 2학년 올라갈 때 그 열 반 중에서 공부 좀 하는 애들을 어떻게 따로 모아서 두 반을 더 만들었다. 이 아빠는 그 두 반에 들어 있었어. 신분같은 걸 나누자면 귀족은 아니어도 부르주아는 되었다, 이 말이다.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라고 해도 아까 말한 우등생 반 애들하고는 급이 달랐지. 그 반 애들은 거의 다 서울 안에 있는 한다하는 대학에 갔고, 서울대에 간 놈도 있었어. 그때는 대학입시가 전기 후기였는데, 전기에 어지간히 잘한다는 대학은 다 몰려 있었지. 그래도 전기 후기 나눠서 뽑는 학교들도 있었는데, 그 우등생 반 애들은 전기에서 떨어져도 대부분 후기에서 반을 뽑던 성균관대며 한양대며 인하대 공대에는 들어갔지. 우리 반은, 이름 들어본 대학에 턱걸이로라도 들어가면 성공이었고, 보통은 좀 괜찮은 전문대에 가거나 지방에 있는 4년제 대학에 갔지만, 그래도 대학에는 많이들 갔다. 80년대만 해도 지금 있는 대학교들 중에 한 2/3은 있지도 않았으니까, 그만하면 실적이 좋았지. 그렇게 네 반에서 열심히 하는 친구들 보고 일반 반에서도 같이 어울려 다니던 애들 중에도 전문대 가고 하는 애들이 나왔다. 그만하면 학교 새로 만들어서 첫 해 농사는 잘 지은 셈이지. 

그런데 말이야. 

그 첫 해 농사 잘 지은 것에 비밀이 있었단다. 

여기 학교 교가가 그렇게 시작할 거다. “계양산 바라보며.....” 하고. 인천이 저기 동인천 중심으로 하는 원인천이 있고, 부평부터 계양구 서구까지 몰아서 북인천 부평 지역이 있고, 그리고 송도가 있잖니. 원인천은 문학산이 중심이다. 송도는 청량산이 중심이고. 그래서 학교 교가들마다 문학산 힘찬 줄기니 청량산의 정기니 그런 말들이 나오는 게지. 북인천은 대체로 저 계양산이야. 가끔 철마산 자락을 이야기하는 학교도 있고, 서해의 힘찬 파도를 논하는 학교도 있긴 있는데, 많지는 않아요. 하긴 가소롭기로는 인천 교육의 노래라고 예전에 있었는데, 그 노래에서는 무려 “한강수 푸른 유역”을 논하고 있었단다. 웬만하면 시 경계 안에 있는 것만 챙길 것이지. 여튼 그렇게 그 지역의 중심이 되는 산이, 풍수적으로는 주산이라고 부르지. 그런데 말이다, 저기 학교 뒷산 보이지? 저건 사실은 계양산이 아니야.

그냥 계양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일 뿐이지. 풍수에서 좌청룡 우백호라고 하잖니. 그렇게 치면 저건 대충 백호 발가락 쯤 되려나. 

여튼간에. 

1학년때는 두 반 빼고는 전부, 그 인천시내 꼴통들을 총 집합해 놓은 것 같은 그놈의 학교에서, 아빠랑 같은 반에서 제일 친하게 지내던 놈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계양산 박수무당 집 아들 장수였고, 또 하나는 아까 말한 그, 배다리파 보스의 숨겨놓은 아들, 상구라는 놈이었다. 백호 발가락 소리도 그 장수가 자기 아버지한테 들은 말이었어. 물론 그 말을 들은 상구는 대단히 못마땅해 했었지.

“저놈의 뒷산이 백호 발가락이면, 그럼 우린 백호 발가락의 때라도 되냐?”

뭐 사실 크게 다를 건 없었다만. 

중요한 건 장수 아버지, 그러니까 그 계양산에서 용하기로 소문난 박수무당이라는 아저씨가 한 말 때문이었어. 지금도 기억이 나네. 그러니까 7월 셋째 주 토요일, 여름방학 하던 날이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장수 아버지가 한복에다 도포까지 입은 채로 장수를 데리러 학교에 오셨단 말이야. 말이 한복에 도포지, 햇볕이 학교를 통째 구워버리고도 남을 것 같은 한여름 땡볕인데, 무슨 번듯한 모시옷도 아니고, 그 반짝반짝 하는 인견 있잖니. 그런 걸로 만든 한복에 도포였으니 장수 아버지는 온 머리며 얼굴에서 연신 땀이 흘러서 계속 그, 저기 계산탕 한증막을 등에 지고 다니시는 것 같았지. 

거두절미하고 우리 셋은 1번 버스를 타고서 계산동 삼거리까지 갔다가, 거기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갔지. 지금은 거기 구청에 경찰서에 회사들이 번듯하게 들어섰고, 은행마을이니 무슨 마일으니 아파트 단지에 대형 마트에 없는 것이 없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거긴 죄 논밭이었다. 거기서도 한참을 더 산기슭으로 올라갔는데, 산비탈에 자갈이 반인 배추밭 옆구리에, 밖에서 보면 영 평범한 슬레이트 지붕 얹은 집이 한 채 있었어요. 

거기가 장수네 집이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평범한데, 문 열고 들어가니 마당에서부터 향 냄새가 진동을 했고, 안마당에는 백구 한 마리가 된장국에 밥 말아놓은 것을 발로 밀어놓고 꾸벅꾸벅 졸고 앉았는데, 집 안에 들어가 보니 그야말로 무당집답게, 알록달록 색색 천이 여기 저기 널려 있었다. 장수는 집에 가방을 벗어 던져놓고 우리에게 마당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했지. 마당에 나와서 샤쓰를 벗어놓고 장수와 장수 아버지를 따라서 시원하게 등목을 하고 났더니, 장수네 어머니 같은 여자가 나와서 콩국수 네 그릇을 시원하게 말아 놓으셨어. 

“너희 어머니는 왜 같이 안 드시고?”

“어머니 아이다.”

장수 아버지는 슬그머니 돌아 앉으셨고, 장수는 퉁명을 떨었지. 

나중에 알았지만, 장수는 국민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더라. 그리고 돌봐주는 이 없이 천둥벌거숭이 같이 굴다 보니 공부가 그 짝이 났던 거고. 장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고. 그 여자분은 나중에 장수 새어머니가 되신 분이었는데, 장수는 아버지가 이삼 년 마다 여자를 갈아치우니 이번 여자도 고등학교 졸업 전에 보따리 싸들고 도망치겠거니, 아예 정을 안 붙이고 있었던 거지. 2학년 때였나, 장수 아버지 새장가 드실 때 우리도 가서 국수 얻어먹고 왔었다. 

여튼 우리는 그날, 그 기묘한 집구석이며 장수네 사정에 홀랑 마음을 빼앗겨서는, 해가 지도록 장수네 집에 모기에 뜯겨 가며 붙어 있었다. 사방이 논밭인데다 산자락에 붙어있는 동네다 보니, 버스도 일찍 끊어졌고. 이왕 이렇게 된 것 하루 자고 가라고 장수 아버지가 권해 주시는 바람에, 우린 정말 염치불고하고 눌러앉았지. 너도 알겠지만 그 나이 때 남자애들이면 귀신이라든가 담력시험이라든가 납량특집 같은 것에 환장을 하잖니. 전설따라 삼천리니 전설의 고향이니, 그런 라디오며 TV 드라마 같은 것도 어디어디의 전설 그런 것 보다는 사실 머리 풀어헤친 귀신 이야기가 더 매력적인 법이고. 요새도 스포츠 신문 같은 데 무슨무슨 영험한 법사라는 분들이 퇴마한 이야기 같은 것 나오잖니? 그런데 장수 아버지는 박수다 보니 그런 이야기가 끝도 없이 쏟아지는 거라. 게다가 입담도 보통 입담이 아니었어. 귀신 이야기, 원귀 이야기, 어디에 묘를 잘못 쓴 이야기. 우리는 장수네 텃밭 구석에서 난 수박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장수 아버지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어. 그런데 그러다가 장수 아버지가 재미있는 말씀을 하나 하셨다. 

“그, 너희 학교가 말이다.”

“학교가 왜요?”

“그 학교가 검바위가 있던 자리 아이냐.”

검바위가 뭐냐 하면, 저기 학교 뒤에 있는 교실만한 크기의 시커먼 바위인데, 사실은 학주를 피해서 담배를 피우기 좋은 곳이었어요. 요새는 거기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만. 

“그거 지금도 있어요.”

“그래, 여기 이 산이 뭐냐. 여기가 계양산이다. 이 계양산을 주산으로 생각하면, 여기서 백호세로 뻗어나가 뚝 떨어진 데가 그 학교 아래, 검바위인 게다.”

“백호 발가락 때 같은 거라는 말씀이시죠?”

“아니, 누가 그래.”

장수 아버지는 막걸리에 얼근하게 취한 채 장수를 돌아보셨지. 장수는 자라처럼 이렇게 목을 움츠렸어.

“사내새끼가 입은 싸서는. 그래, 뭐. 계양산만 똑 떼어놓고 보면 그렇다. 그런데 너희들, 장릉이라고 아나.”

“장릉요?”

“저기 김포에, 성산이라는 산이 하나 있다. 그 산 밑에 있는 왕릉인데, 그 왕릉의 주인은 원래는 왕이 아니지. 너희들 그, 임진왜란 때 선조 알지? 선조. 들어는 봤나?”

우리 셋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지.

“아이고오, 말세다. 너네 드라마는 뭐 보나. 조선왕조 오백년은 보나?”

“아뇨.”

“사람이 꼭 대학에 가야 출세하는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 하지 않나. 그래, 임진왜란 때 조선 왕이 선조였는데, 이 선조대왕의 다섯 번째 아들로 정원군이라는 이가 있었다. 대군이 아니라 군이니까, 그러니까 후궁 자식인거다. 응? 그런데 이 정원군이 결혼을 일찍 해 싸서, 선조의 아들들 중에 자손을 제일 먼저 봤어요. 첫 손자니까 그 아아를 대왕이 얼마나 예뻐했겠나. 그 아아가 나중에 인조대왕이 된다.”

“그러면 선조 다음이 인조예요?”

“뭐 이렇게 무식해 싼 놈들이 다 있나.”

장수 아버지가 혀를 차셨어.

“선조대왕은 큰아들이 임해군이 멍청하고, 중전이 아아를 못 낳아서 둘째아들인 광해군을 세자로 삼았는데, 나중에 중전이 죽고 새로 맞은 중전이 그만 덜컥, 아들을 낳아버린 거다. 광해군은 그 동생이 자기 왕위를 빼앗을 것 같아서, 새어머니인 인목대비는 여동생과 함께 가두어 두고, 남동생은 멀리 귀양을 보내서 죽여버리고 말았는데, 그게 영창대군이었지. 광해군이 그렇게 못돼 싼 놈이다 보니 신하들이 뒤집어 엎었는데, 그때 왕으로 추대한 게 이 정원군의 아들인 인조대왕이셨다. 장릉은 그 정원군의 무덤인데, 인조대왕이 왕이 되기 몇 년 전에 죽어 거기 묻혔지. 그런데 그 땅이 소위, 왕이 나실 자리라 이거다.”

“명당자리였던 거예요?”

“그렇지. 그렇게 사람 묏자리를 써서 자손 발복하는 자리를 음택명당이라고 한다. 산이라는 것은 그냥 혼자 똑 떨어져 나 잘났소, 하고 있는 게 아니지. 백두산에서부터 뻗어내려온 산줄기가 온 나라를 등뼈처럼 갈비뼈처럼 감싸고 있으니, 그걸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그 백두대간에서도 기가 맑은 속리산에서 갈라진 산줄기를 한남금북정맥이라고 하는데, 그 한남금북정맥은 칠장산에서 탁 갈라져서, 한 줄기가 김포 문수산까지 쭉 올라오는 것이라. 그 기가 뭉친 것이 문수산 안쪽 장릉산, 옛날에는 성산이라고도 했다만 그 장릉산 아래인데, 형국으로 보자면 어머니가 자식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모양새인 것이다. 응?”

“저기, 저 풍수나 점쟁이 되면 저희 조직에서 절 그냥 안 둘 텐데요.”

“예끼, 누가 너보고 풍수가 되라고 했더냐. 보는 눈깔이 없는 놈은 밤낮 해봤다 안 되는 게 이쪽 일이다. 여하튼 내 말은, 그 장릉산에서 다시 기가 뻗어나오다가 방향을 휙 꺾어 마주보는 것이 저 계양산이라는 말이다. 왕이 나실 자리에서 뻗어나왔으니, 어찌 큰 인물이 아니 나겠는가, 그런.”

그때까지 숨도 안 쉬고 말씀하시던 장수 아버지가, 갑자기 뜸을 들이며 우리를 바라보셨다. 우리는 무슨 중요한 이야기를 하시는 건가 해서 빤히 장수 아버지를 바라봤어. 

“그러니까, 그 계양산에서 다시 뻗어나간 너희 학교 뒷산.”

“......”

“거기 어디에 좋은 자리가 있다는 말이지.”

“좋은 자리요?”

“그래, 좋은 자리......”

장수 아버지는 하회탈처럼 씩 웃으시다가, 그만 뒤로 벌렁 나자빠지셨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들여다 봤는데, 그냥 술에 취하신 거였어. 

“오늘 한 이야기, 너희 다 그냥 못 들은 걸로 해라.”

아버지를 방으로 밀어 넣어 놓고, 장수는 우리한테 신신당부를 했다. 

“그냥 술김에 막 헛소리 하시는 건데, 대체 왜 우리 붙들고 명당 타령이신지 모르겠다. 명당이 있으면, 있어서 우리가 뭘 할라고.”

“우리 큰형님 돌아가시면 묏자리를......”

“아서라, 그러다가 네가 무덤에 들어갈라.”

우리 셋은 낄낄거렸지.

그러다가 누가 그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이야기가 나왔어. 

정말로 저기 명당이 있다면, 그 명당을 찾아내면 대학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때 우리 동네에 박철민이라고, 나랑 같은 중학교를 나왔는데 소위 가난한 수재라고 우등생반에 스카웃되어 들어간 비리비리한 놈이 하나 있었다. 멸치같이 깡마른 것이 거짓말 좀 보태서 머리통은 농구공만 해서 다들 그놈을 대가리라고 불렀지. 

우리 셋은 그 방학 내내 점심 먹을 때 쯤 만나서 우리 집에서 자주 놀고 먹고 했어. 우리 집이 저기 부평 있는데라 교통이 편하기도 했지만, 그 무렵에 우리 오마니, 그러니까 너희 할머니가, 형님 형님 하고 부르던 그 복부인들 따라서 여기저기 김포며 강화에 땅 보러 다니고 계셨거든. 자식새끼라는 게 공부는 더럽게 못하니 믿을 건 돈밖에 없다고 그러고 다니셨지. 결과적으로 그때 사 두신 땅들이 대박까진 아니어도 죄 중박은 쳤지만 말이다. 집에 엄마도 안 계시니 고삐리 셋이서 과자 사다가 먹고 놀고, 다른 과목은 제껴도 수학선생이 아주 악질이라서 숙제 안 해오면 아주 사람을 패 죽이려 들었거든. 그해 여름방학에도 수학문제 천 문제를 풀어 오라고 시험지를 이만큼을 내 준 거였다. 그래서 그놈의 수학숙제나 좀 깨작깨작 하다가, 그러다가 밤 늦으면 집에 가고 그랬지. 

그날도 셋이서 구멍가게에서 과자에 뭐에 사다가, 술도 먹어볼까 하고 오비 맥주를 사서는, 바로 집에 들어가면 얼마나 좋아. 백마장 올라가는 길가에 공사장에 가서 그걸 먹고 앉았었다. 거기 부평에서도 요렇게 북쪽을 보면 계양산이 보이거든. 그거 보면 그 계양산이 얼마나 여기를 끌어안듯이 생겨먹었나 싶었지. 그래서 그 이야기가 또 나왔다. 

“헛소리 하고 자빠졌네. 또 그소리가.”

장수는 고개를 저었지만, 상구와 나는 집요했어. 

“장수 너, 니 혼자 그 발복 다 먹으려고 그러는 거 아냐? 우리랑 같이 하면 셋으로 나뉠까봐.”

“그런 게 아이다. 야, 우리 아버지 돌팔이야. 돌팔이도 그런 돌팔이가 없어. 복권 사와서 맞는 꼴을 본 적이 없다. 무당이면 그 정도는 어떻게 좀 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

“밑져야 본전이라고, 우리가 지금 그거 해봐서 잃을 게 뭐가 있냐?”

“그러게. 파서 아무것도 안 나와도, 나중에 근사한 무용담 하나는 남는 거 아냐.”

“하여간 공부도 못 하는 새끼들이 대학 욕심을......”

장수가 투덜거렸지만, 우리는 알 수 있었어. 장수도 우리 말에 마음이 계속 살랑살랑 흔들린다는 것을. 

“그래, 찾아 보면 될 거 아냐. 대학 가는 명당.”

“오예.”

셋이서 삼총사처럼 손을 탁, 모아서 치는데. 

그 대가리가 뒤에서 얼굴을 쑥 내밀지 뭐야. 

“명당이 뭐가?”

“헉.”

대가리는 제 몸에 비해 한참은 큰, 동아일보 몇 장이 뒤에 꽂힌 짐자전거를 세워둔 채 우리 말을 듣고 있었던 거야. 

웬만하면 그냥 상구가 적당히 을러대고 말았을 텐데, 상구 이 놈이 그만 맥주에 취했는지. 

“......그래서 저기 계양산에서 학교 쪽으로 온 어딘가에, 명당이 있을 거라는 거지.”

그만 할 말 안 할 말을 가리지 않고 다 해 버린 거였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택도 없는 소리지. 대학 가는 명당이라니. 애초에 장수 아버지는 대학에 잘 가는 명당이 있다는 말씀은 하지도 않으셨건만. 우리끼리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렇게 흘러간 것 까진 좋은데. 여기 대가리까지 끼어들 판이었어. 

“야야, 그런 건 우리같은 꼴통새끼들이나 하는 거야. 넌 그냥 가라.”

내가 좋게 대가리를 달랬는데, 대가리가 심각한 얼굴로 우리에게 손짓을 했어. 

그 공사장 뒤쪽에, 쓰레기장 같은 데가 있었지.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그리 다 들어오는 모양이었어, 그 쓰레기장에서도 더 지나가서, 다 쓰러져가는 집이 있었어. 초가집이라고도 못 불러 줄, 비바람이나 가릴까 싶은, 그런 집 말이야. 

“여기가 우리 집이다.”

대가리는 자전거를 묶어 두고,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쿨럭쿨럭, 기침 소리가 났다. 

“우리 오마니는 폐병을 앓으시고. 보다시피 나는 이래 비실비실해서 노동하는 데 가도 품도 제대로 못 쳐 받는다.”

대가리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잘 하는 것은 공부밖에 없고, 내가 어떻게든 출세해서 우리 오마니를 병원 치료라도 제대로 받게 해 드릴 방법도 그것밖에는 없다. 대학에 가는 것. 대학에, 장학금을 받아서 가는 것. 그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알겠나?”

“......”

“아주 부질없는 거라도 좋으니 내겐 믿을 구석이 필요하다 이거다. 응?”

그렇게, 대가리는 우리의 어처구니없는 계획에 끼어들었지. 

대가리는 새벽에는 우유를 돌리고, 낮에는 깡시장에서 옷감 배달을 하고, 저녁이 되면 신문을 돌리며 쉴 틈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해가 질 녘이 되면 우리 집으로 왔지. 와서 우리에게 수학 숙제를 보여주고, 같이 라디오를 듣거나 이야기를 하고. 그게 그 놈 나름대로는 쉬는 것이었을 거야. 정말 대단한 건 대가리의 자전거 실력이었는데, 그놈은 옷감을 제 키 높이만큼 쌓아서 자전거 뒤에 싣고 가면서도 영어 단어장을 볼 수 있었어. 하긴, 그러니 그 비리비리한 놈이 깡시장 포목전에서 주말마다 방학마다 일을 할 수 있었겠지. 그 우유 배달은 대학 입시 보던 날까지 했고, 포목전은 방학마다 가서 일을 했다고 들었어. 대단한 친구였다고.

그 친구는 화요일에 쉬었는데, 깡시장은 원래 쉬는 날이 없지만 그래도 화요일이나 수요일에 쉬는 가게들이 많았어. 포목전은 격주로 쉬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그래도 그 친구에게는 화요일에 쉬라고 해 주시고, 그 집 아들이 입던 옷이며 공부하던 책 같은 것도 주시고 그랬지. 그렇게 돌아온 첫 번째 화요일에, 나와 상구와 대가리는 김밥에 칠성사이다를 싸들고 1번 버스를 목이 빠져라 기다려서, 학교에 갔다. 알고 보니 하도 외진 동네라서, 출퇴근 시간이 아니면 아예 한 시간에 한 번이나 버스가 갈까 말까 그런 것이었어. 우리가 버스를 타고 계산삼거리에 갔더니, 장수도 거기서 마침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지. 하긴, 그때 검단 가는 버스가 얼마 없기는 없었다. 

버스는 산을 넘어, 사거리를 지나 공촌천을 지나갔어. 

상구가 짜장면을 먹자고 했다. 학교 근처에는 실로암이라고 포장마차 비슷한 게 있어서, 칼국수며 짜장면이며 팔기는 다 팔았지만 거긴 주인 아저씨가 그릇에 엄지손가락을 척 넣어서 다니는 게 트레이드 마크였거든. 주인 아저씨의 엄지손가락을 우려낸 맛이 그다지 좋지는 않아서, 우리는 학교에서 한 정류장을 더 갔어. 한 정거장 위쪽에는 태양각이라고, 그 동네 하나뿐인 짜장면집이 있었으니까. 일단 짱개 한 그릇씩에다가 탕수육을, 그때는 청요리라고 했지. 그걸 먹었어. 상구가 냈지. 김밥도 있었지만, 그건 산에 올라가서 먹기로 했고. 태양각에서 나와 고물상과 논밭을 지나, 지금은 서곶로라고 하고 예전에는 검단 가는 신도로라고 했던 그 큰 길, 그때만 해도 거기가 아직 길이 아니었지. 산 중턱이었어. 생각해보니 그때는 저기 종합고도 없고, 과수원 하나 달랑 있었던 것 같구나. 과수원집에 어른은 출타하셨는지 없고 대여섯 살 나 보이는 아기가 혼자 소꿉놀이를 하길래 아기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고 아오리 사과 하나씩 서리해서 물고는 우리는 거기서부터 학교 뒷산을 기어오르기 시작했어. 한참 올라가서, 꼭대기 비슷한 데 까지 올라오니 한여름인데도 바람이 시원한게, 왜 영감님들이 그렇게 등산을 좋아하는지 조금 알 것 같더라. 

“이거 우리 아버지 책인데, 오늘 굿 있는 날이라서 슬쩍 들고 나왔어.”

장수가 티셔츠 아래에서 꼬리꼬리하게 땀냄새가 밴 책을 꺼냈어. 

붓으로 산과 냇물이 요상하게 그려진 그림 아래에는, 뭔지 모를 한문이 적혀 있었지. 

“풍수 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그거야. 좌청룡 우백호.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면 좋다고 하는데. 여긴 산자락이라서 일단 그건 아니란 말이지.”

“그러게.”

“잠깐, 내가 동사무소에서 봤는데 말야. 이 산이 저쪽으로 계양산하고 이어지긴 하는데, 이 산에 이름이 따로 있어. 험봉산이라고. 그럼 그냥 이 험봉산을 기준으로 보면 안 되나?”

“어, 그럴듯하네. 좋아, 그럼 다음으로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봐야 하고,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데 낮은 쪽에 물이 있으면 좋고. 이거 봐, 여기 그림에도 아래쪽에 다 냇물이나 연못이 있잖아?”

“저기 공촌천이 있으니까 그건 되었나?”

“그런 것 같은데. 물길이 직선이면 안 좋고, 여자 허리처럼 나긋하게 휘어져야 좋다고 그러지.”

“뭘 그리 따져, 공촌천이야 저기 경서동 있는데서 한번 휘잖아. 그럼 됐지.”

“하긴 그래. 그럼 여기 이 산이 주산이고, 주산 뒤에 높은 산이 있어서 산줄기가 이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건 계양산이 있고. 안산이 없는데?”

“안산이 뭔데?”

“명당 앞에 이렇게 바라보는 얕은 산 말야.”

“저기 공촌사거리 오기 전이 여기보다 좀 언덕이니까 그걸로 치자.”

“그래, 그래. 그럼 이 산 이쪽 경사로 어딘가에 그, 명당이라는 게 있는 건데.”

장수는 일어나서 사병을 돌아보며 가슴을 쭉 폈어. 하는 행동만은 무슨 왕릉을 점지하러 온 대 풍수 쯤 되는 것 같았다. 

“우리 아버지가 술만 드시면, 딱 한번만 가르쳐 주는 거라고 하면서 맨날 고장난 녹음기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지. 명당자리라는 게, 그 여자하고 비슷하게 생겼다고.”

“여자?”

우리 셋은 눈이 휘둥그레졌어.

그러다가 상구가 문득 책을 들여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하고 대가리는 영문을 몰랐고, 상구는 낄낄거리며 여기저기, 산등성이 따라 어디 계곡 진 데가 없는지 높은 곳에서 둘러 보기 시작했어. 

밀림의 왕자 타잔이라도 된 듯이, 한참을 산등성이와 골짜기를 따라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 새 저녁이 다 되어 있었지만, 어린애들도 아니고 고등학생 씩이나 되었는데, 뭘. 그러다가 저기, 지금은 서구청이 들어 선 자리가 잘 내려다 보이는 골 중턱에 우리는 자리를 잡고 드러누웠어. 도려낸 듯 나무도 몇 그루 없고, 발목 정도까지 올라오는 풀이 자란 것이 폭신하고 좋았지. 상구가 품에서 뭘 주섬주섬 꺼내서 우리에게 한 가치씩 줬다. 난 처음엔 그게 담배인 줄 알았어. 신문쪼가리로 또르르 말려 있는, 딱 담배 만한데 담배보다 조금 긴 것 말이야.

“재주 좋네, 담배도 직접 말아서 피우냐?”

물론 담배라는 거야 담배인삼공사에서 수매를 하는 거고, 그때도 전매청이 있어서 담뱃잎을 싹 들여다가 나라에서 세금 떼어가며 팔긴 했는데, 그래도 농사 짓는 집에서 구석에 담배풀 한두 뿌리 키우는 것까지 뭐라고 하진 않았던 시절이었어. 그래서 난 그게, 어디 화분에라도 직접 담배를 키웠나 했지. 그런데 상구 이놈 말이 가관이었어.

“어, 그거 담배 아냐.”

“음?”

“담배보다 좀 더 좋은 거. 그거 대마다.”

불을 붙이다 말고 나는 그 담배를, 아니, 대마를 떨어뜨리고 말았어. 

“야!”

“그거 지난번에 너희 집 베란다방에서 말았는데, 몰랐나?”

“우리 집에서 그 향...... 향 뭐시기를......”

“향정신성 의약품.”

우리 중에 유일하게 복잡한 말을 제대로 기억하는 대가리가 끼어들었어. 대가리는 어찌 된 게 놀라지도 않고, 그 담배 비슷하게 생긴, 갖고 있으면 잡혀가는 그것을 이리 저리 뒤집어 보더라고. 

“대체 이런 건 어디서 나는 거야?”

“키웠다.”

“뭐?”

“학교 화단에 키웠는데.”

“와, 이 미친 새끼. 이거 우리 걸리면 단체로 끄윽......”

“끝장나는 거 아인가.”

장수가 기막혀 하며 손을 털었지.

“대체 그런 걸 어쩌자고 학교에다 키우고 자빠졌나.”

“땅이 놀길래.”

그러니까 이 미친 놈은, 점잖은 얼굴을 하고 남들보다 두 살 많은 나이로 학교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가능하면 전문대라도 가고 싶다고 그러던 이 새끼의 눈에는, 학교 화단이 노는 땅으로 보였던 거야. 우리 셋은 상구 이 새끼 정신 차리라고 매달려서 등짝을 손바닥으로 철썩철썩 때렸지. 상구는 웃으면서 그 대마 찌꺼기를 저기, 아래쪽에 공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작은 냇물이 있었거든. 거기다 갖다버렸다. 모르긴 몰라도 그때 이미 조직에서 나와야겠다고 슬슬 생각하던 게 아니었나 싶어. 우리가 그걸 같이 피웠으면, 글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걸 피웠으면 다 함께 배다리파 조직원으로 들어갔다가 지금쯤 별을 다섯 개 쯤 달지 않았을까. 인생 모르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남은 김밥과 음료수를 먹어치우고, 우리 넷은 풀밭에 드러누웠지.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하늘이 깨끗해서, 여름 밤 하늘에 별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어. 

“대가리 너는 머리도 좋은 놈이 왜 여기 와서 놀고 있나.”

“왜.”

“그냥 딱 생각해도, 풍수같은 게 진짜로 맞을 리가 없잖아. 그런 게 맞으면 점쟁이며 풍수들은 다 자기 조상 명당에 묻고서 발복을 했게.”

“그게 말이야, 부평부터 여기까지 학교란 학교들이 죄 다 계양산의 정기를 자기네 학교가 받았자고 하잖아.”

“그렇지.”

“무슨 그...... 여기가 진짜 계양산의 정기를 받은 명당이라고 서로 싸우는 것 같지 않냐? 웃기더라고.”

“......저것도 미친 놈이네, 그래.”

“그러게. 응......”

여름의 대삼각형이라고 하던가? 여름 밤 별자리 중에 유난히 빛이 반짝반짝한 별 세 개에 대해서 장수가 떠들어댔고, 대가리게 그 별이 무슨 별자리의 무슨 별이라고 또 한참 먹물 든 소리를 하던 끝에, 우리는 그 풍수 이야기로 돌아왔어. 조선 태조 이성계가 아버지 묘를 어디다 썼다더라 하는 전설따라 삼천리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 터가 어떻고 그때 대통령이던 전두환 대통령의 조상 무덤이 어떻다더라 하는 선데이 서울같은 이야기까지. 그러다 보니 우리가 중요한 걸 하나 놓치고 있지 않나 싶었던 거야. 

“명당이라는 건 찾으면 거기에 뭘 묻어야 하는 거 아냐?”

“묻어?”

“그 발복이라는 게 명당을 찾는게 문제가 아니라, 거기다 조상님을 묻어야 하는 거 아냐?”

그렇지. 

명당이 있어도 거기에 조상을 묻어야 명당이지. 

묻지도 않을 거면 명당 그거 아무 짝에도 쓸모도 없지. 

근데 우리는 그때야 그걸 깨달은 거지. 

“......어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명당을 찾아서 우리만 덕을 볼 수는 없지. 의리없게.”

상구가 심각하게 말했다. 우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였어.

“이왕이면, 우리 학교 전체가 다 그 덕을 봐야 하지 않겠어?”

“어떻게?”

“교장을 파묻어 버리면 어떨까.”

물론 평범한 고등학생이 저런 말을 하면 이런 미친새끼 철딱서니를 어디로 먹었냐 하고 뒤통수를 쌔리 갈기고 웃어넘길 일이었지만. 

배다리파 행동대장 겸 두목의 숨겨놓은 자제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이건 농담같질 않았어. 

우리는 갖다버린 대마초 대신 상구가 품에 넣고 다니던 담배를, 그나마 돛대인 걸 서로 돌아가며 한 모금씩 빨았어. 담배 맛이 유난히 쓰더구나. 

바로 그 때, 풀숲에서 경찰들의 손전등 불빛이 이쪽을 향했어. 

“반풍수가 집안을 망친다더니 네놈들이 그 짝이야!”

굿 하고 돌아오셨다가 소식 듣고 바로 달려오신 장수 아버지가 그 큼직하고 두꺼운 손으로 우리 넷의 머리를 터져라 쥐어박아 대신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뒤의 일이었지. 

나중에 알고 보니, 웬 미친놈들이 사과 하나씩 훔쳐 물고 인적 없는 산에서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동네의 어느 민주 애국 시민 영감님께서 그만 우리를 파출소에 신고하신 거야. 사실 경찰들도 실적 내야 하니까 고등학생인 우리들을 그냥 묶어서 간첩입니다 하고 넘겨 버릴 수도 있었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이 사라져도 다들 남의 눈치만 보고, 그러던 세상이었으니까. 그런데 천만다행히도 우릴 잡아 간 파출소의 경찰 아저씨네 아들도 우리 학교에 다니고 있었거든. 덕분에 살긴 살았지만 큰 일 날 뻔 했지. 만약에 상구가 대마초를 갖다 버리지 않았어 봐. 우리는 마약으로 남한을 어지럽히려 한 간첩들이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을 뒤집어 쓰고 그 동네 경찰 아저씨들의 혁혁한 승진의 밑거름이 되었을지도 모르거든. 

“뭐? 명당을 찾아서 산에 올라가? 이 멍청한 놈들을 그냥!!!!!!”

“잘못했어요......”

경찰에게 잡혀가서는, 상구를 제외하고는 다들 엉엉 울면서 대학에 갈 수 있는 명당을 찾고 있었다고 이실직고를 해 버렸으니까. 경찰 아저씨들도 그런 게 있으면 자기들이 먼저 찾아서 자식 대학 보내겠다며 우리를 한 대씩 더 때렸지. 그때는 경찰이 사람을 탁하고 쳤는데 억하고 죽었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해도 그러려니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철없는 동네 고등학생들 꿀밤 몇 대 때려서 훈방하는 것 정도야 그냥 훈훈한 미담이었지. 

“너희가 누워 있던 데가 묏자리 쓸 자리인 건 맞는데, 대체 앞날이 구만리인 놈들이 묏자리를 찾아서 뭐에다 쓰려고? 그것도 임자 있는 남의 산에다가!”

“거기 이, 임자가 있어요?”

“이 무식한 놈들을 봤나. 조선 팔도에 임자 없는 땅이 어디 있나!”

여튼 우리는 천만 다행히도, 학교에 연락이 들어 간 것도 아니고, 편찮으신 대가리네 어머니께 연락이 간 것도 아닌 채, 그냥 장수 아버지께 붙잡혀서 욕을 진탕 먹으면서 파출소를 나섰어. 

얼마 지나지 않아 방학은 끝났고, 우리는 언제나처럼 시답잖은 농담으로 낄낄거렸지. 상구는 화단에 심어놓은 대마들을 모두 뽑아서 소각장에 처넣었어. 그리고 무슨 생각인지, 1학기때 공들여 키우던 꽃 화분도 내다 버렸어. 말라 죽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참 희한한 일이었지. 꽃이 빨갛고 화려한 게 시커먼 남학생들만 가득한 교실에서 혼자 요사스럽게 화려한 것이 아주 예뻤는데. 버릴 거면 나나 달라고 했는데, 상구는 굳이 뿌리까지 똑똑 부러뜨려서 소각장에 집어넣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개양귀비 꽃 비슷하게 생겼다 싶긴 한데, 설마 정말로 양귀비를 학교에서 키운 것은 아니겠지. 아무리 학교에서 대마를 키운 미친 놈이라고 해도 말이야. 

그리고 바로 그 무렵, 학교에서는 작은 소동이 있었단다. 

본관 1층 현관 벽에 시험지만한 크기의 태극기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에는 나무판을 깎아서 학교 마크 모양으로 만든 것이 있었는데, 어떤 미친놈이 학교 마크를 훔쳐갖고 도망갔지 뭐냐.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거기에 학교 마크는 물론이고 태극기가 걸려 있는 줄도 몰랐지만, 선생님들은 우리가 졸업할 때 까지 그 일을 잊을 만 하면 말씀하셨어. 아마 어지간히 속이 상하셨던 모양이야. 

우리는 2학년으로 진급을 했지. 진급을 하면서, 아까 말한 대로 우등생 반 말고도, 꼴통들 중에서도 공부 좀 해보려는 애들, 대학 갈 욕심이 있는 애들을 따로 두 반을 추려 모았고. 상구는 조직에서 나오겠다고 학교 운동장에서 그 뭇매를 다 맞고, 정학까지 맞고도 되돌아와 공부를 했다. 나중에는 선생님들도 상구의 열의를 알아 주실 정도였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2년동안 비교적 수험생답게 지냈고, 학력고사 날짜는 코앞까지 다가왔지. 

상구가 나와 장수, 그리고 대가리까지 불러낸 것은, 학력고사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던 어느 날의 일이었어. 상구는 우리들에게 부적이라면서, 짙은 남색 페인트질이 된 네모난 나뭇조각들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래, 바로 저 색깔 말이다. 

저기 학교 건물에 매달려 있는 저 학교 마크의 색깔. 

“와...... 시발...... 이......”

장수가 입을 못 다물고 상구를 노려보았어. 

“너 대체 그걸로 뭘 한 건가? 엿을 바꿔 먹었나?”

“누가 그딴 나뭇조각 떼어간다고 엿을 주겠냐.”

“그럼 이건 뭔데?”

이건 비밀인데, 하고 상구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어. 

뭐 그렇게 된 발복으로, 우리 셋은 대학에 갔고, 대가리는 그 이름도 찬란한 샤대,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에 가서는, 졸업하자마자 모교에 선생으로 돌아 온 데다, 이 학교가 전체적으로 첫 해 진학 농사가 풍작이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한 3년 학교가 애들 대학 잘 보내더라고 소문이 났더니, 그 다음부터는 부평 이쪽에서 공부 좀 한다 하는 애들이 알아서들 모였고. 그렇게 학교가 잘 되었으니, 사실은 상구가 이 학교를 위해 큰 일을 하긴 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가끔 들긴 든단다. 

여튼 그렇게 되었으니, 너도 여기서 아빠처럼 사고 치지 말고, 공부 좀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고. 

아, 그러고 보니 대가리가 올해 1학년 수학 맡았다더라. 혹시 머리가 농구공만한 수학 선생을 보거들랑, 아빠 안부 좀 전해 주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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