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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헤드

잘 싸우는 자는 대리가 되고, 앞장서는 사람은 과장이 된다.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부장이 된다.
상무? 이사? 꿈도 꾸지 마라.
그리고 명심해라.
사장을 꿈꾸는 자체가 반역이다.
정년은퇴하고 싶으면 영혼까지 팔아넘겨라.

- 기업이 세상을 지배했던 그 시절에 대해서. 2110년에 남긴다.


 나는 얼굴도 이름도 없는 무명무상이다.
너무 하찮고, 기록될 가치도 없는 인간이다. 하지만 내가 지나온 시대를 기록할 권리는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당시 그때 회사에 종속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기업이 세상을 지배해서, 모두가 노예였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어떻게 기업이 세상을 지배했냐고 묻는다면...아무도 모른다.
내 아버지 역시 모니터 스크린 상으로만 만날 수 있는 중앙정부 정치가에게 투표하려면 기업 서비스센터를 찾아갔다고 말씀해줬다. 언제부터 이게 당연했는지 그 이전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래도 모두들 완전히 잊은 건 아니었다. 정부가 이익 추구 집단인 대기업들에게 국민들의 권리인 공적 서비스와 유틸리티 시스템들을 팔아넘길 때부터 기업의 직접 지배가 시작됐다고들 그랬다. 정확한 연대는 모르지만...남아있지 않지만...


 대기업 회사였다. 지금 감히 기업 이름을 언급할 수 없기에, 회사이름을 D라 부르겠다. 그리고 내가 말하려는 이는 누구도 아는 체 하면 안 되기에 이름을 가리겠다. 세상이 기업지배를 뒤엎고 공유주의를 앞세운 노동자들이 갑으로 변했다 하더라도 절대 그 이름을 발설해서는 안 됐다. 그 이름 주인은 대기업과 블루칼라 노동자, 양 쪽에서 저주하고 증오했다. 

 
 그는 내가 근무하는 지역구 새 관리자로 왔다. 그의 계급은 당시 계장이었다. 나는 일개 사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정규 계약직 의무 전투참가 인턴이었다. 피라미드 바닥을 늘리기 위해 만든 하위 계급이었다.
 전투에서 3번 살아남으면 정 직원으로 받아 들여 졌다. 기업은 타 기업과 경쟁과열이 일어나거나, 시장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물리적 충돌을 불사했다. 3개월 뒤 정 직원으로 받아들이는 기간제보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고, 대다수가 탈락할 가능성이 많은 전투를 정식 직원이 되는 기준으로 삼았다. 나는 화이트칼라 사무직으로 판매, 홍보, 행정, 회사원 일 외에 전투도 수행해야 했다. 가혹했지만 그래도 더 못한 이들을 보면 나은 상황이었다.
 

 기업이 학교를 장악한 이후로,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없는 계층은 학위를 얻지 못해 블루칼라 업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은 수업료로 미래의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를 분류했다. 경제적, 계층 양극화는 기업이 주도했다. 심지어 법적인 권리마저...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노동 자원으로 분류되어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을 너무 많이 했다. 하루 12시간 씩 2교대는 당연하고, 13시간, 14시간 겹치기 근무도 했다. 이들은 이렇게 일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면, 법적인 권리가 상실됐다. 중앙정부가 선정한 법적 지위 대리인은 변호사들과 전문 대리인들이었지만, 다달이 내는 수임료는 일반 가정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대리단체가 있었다. 바로 대기업들이었다. 대기업에 입사해야 블루칼라들의 법적 권리가 보장받았다. 기업들은 시장이 곧 영토이기에 시장을 점유하려 하루 단위로 신제품을 출시했다. 생산시설은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일하는 사람들 역시...
 대기업이라 불리는 회사들이 하나, 둘 늘어 갈수록 물가는 치솟았고, 임금은 고정됐다. 기업 외에서 구할 수 있는 일자리로는 최소 생계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최소 삶을 유지하기 위해 대기업이 요구하는 노동 조건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노동 조건은 감시와 억압으로 노동자들에게 불리했다. 가장 불리한 건 내가 속한 화이트칼라 계층이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지배했다. 이 질서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하층민으로 전락했다.


 대기업에 입사하면, 연수원에서 유격 훈련과 도시지역 작전 한정의 군사훈련을 받았다. 아무리 지방과 수도 일부가 기업의 중세 식 지배를 받았다 하더라도 중앙정부의 힘은 약하지 않았다. 기업이 법으로 가질 수 없는 공군력과 미사일 포대, 특수 전 부대를 가지고 엄격히 기업들을 감시했다. 중앙정부는 기업이 기업과 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군사력을 엄격히 제한했다.
 고대 중국에 거대한 하나의 강대국이 약소국들을 전부 다스린다고 생각했지만, 약소국들은 자신들끼리 연합을 이뤄 강대국을 견제한다는 사고로 서로 균형을 맞추었다고 한다.
 그때 당시 대기업들과 중앙 정부는 서로가 우위에 있다는 착각 아래 미묘한 균형을 맞춰 나갔다. 
 기업은 정부의 비공식적 인가를 통해 지역구의 생산, 판매를 독점했다. 한 기업이 지역구에 입주하면 그 지역구민들은 입주 기업에 취직하여 생산하고, 판매하고 소비했다. 소비 역시 독점될 수밖에 없었다. 지역을 지배하는 기업의 물건을 사지 않으면 배신행위였다. 지방정부들이 있었지만, 기업의 세금 의존도가 컸고, 독자적인 군사력을 갖추지 못하여 사실상 중앙정부의 들러리로 전락했단. 이는 지방의 힘을 깎아 종속시키려는 중앙정부의 의도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지역구에 D 기업에 대한 반역이 일어났다.
어느 날 갑자기 비상지시가 떨어졌다. 손목에 찬 웨어러블 포터블 피씨(이하 WPP)의 프로젝트 빔으로 판매 전선에 트러블이 생겼다는 상황 전파가 떠올랐다. 새로 온 관리자는 입술을 앙 다물고, 몇 번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다. 조각상 중 아그리파가 떠올랐다. 그보다 더 진지한 얼굴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한 글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관리자의 시선은 두 번, 세 번 오르락 내렸다.


 현 시대의 필수품, 웨어러블 포터블 피씨(WPP). 시계 형이나 하의나 상의에 장착할 수 있는 웨어러블 포터블 피씨(WPP)는 대리점들을 통해 팔렸다. 통신, 금융 & 의료서비스. 게임 못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특히 모든 공적 서비스는 WPP를 통해 제공됐기 때문에 소통하려면 꼭 가지고 있어야 했다. 과거 스마트 폰이 처음 전파됐을 때 사람들은 빚을 내서라도 꼭 신형 기기를 가지려 했다. WPP와 스마트 폰의 차이는 스마트 폰은 허영심에 신형 기기를 가지려 했지만, WPP는 신형 기기 없이는 공적 서비스에 접속 할 수 없었다. 지역구 공적 서비스는 D 기업의 통제 하에 이루어졌다. 신형 WPP가 없으면 국민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었다. 물론 WPP는 D 기업 제품을 이용해야 했다.
 판매를 대행하는 대리점주들은 계약직 사장들이었는데, 엄청난 리스크를 떠안고, D기업과 불리한 계약을 맺었다. 그들은 리스크를 만회하기 위해 소비자들을 공짜 WPP라 현혹시켰다. 대리인 비용, 통신비 비용, 부가 서비스 비용 이것저것 추가하여 자신들의 주머니로 들어갈 부가 이득을 챙겼다. 기본료 외에 추가 비용이 늘자 소비자들은 신형 WPP가 나와도 판매량이 늘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리점주들은 단합하여 WPP 추가 비용을 늘렸다.
 이는 공적 서비스를 통한 지역구민 감시와 생태 파악에 지장을 일으켰다. 우리의 관리자는 회사로부터 호전적인 교섭권, 실상 전투할 권리를 받고, WPP 대리점들이 늘어선 거리로 향했다.


 관리자는 부가 이득 때문에 WPP 판매에 지장을 주지 말라 경고했다. 경고에 대한 대리점주들의 요구사항은 터무니없었다. 연봉 협상!
 회사가 개인의 가치를 매기는 것이지 개인이 회사에 권리를 요구할 수 없었다. 아주 옛날에 그런 시대가 있었다고 들었지만...그때도 거대한 집단인 회사가 개인을 깔아뭉갰다고 들었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대리점주들은 불리한 계약을 폐기하고, 연봉제를 요구했다. 이는 D사의 정규 직원 자리를 요구하는 것과 똑같았다. 미친 짓이었다!
“본인이 그럴 자격이 있다 생각하십니까?”
관리자의 조용한 질문에 대리점주 연합 대표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 아니면 못하는 거야! 엉? 그럴 자격? 없으면 만드는 거야. 이 사람아!”
 대표는 새 관리자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우리에게 밀고한 정보원에 의하면 대리점주들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자신들의 의리를 다짐했다. 늦은 낮에 출근해 정신을 못 차리면서도 새벽 몇 시까지 술을 마셨다는 걸 자랑으로 여기며 자신들의 의리를 널리 알렸다. 아주 옛날부터 노동자들이 빠지는 전형적인 사이클이었다. 아무리 돈을 모아봤자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자 중간에 주저앉아 버리는 일탈이었다.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는 것은 고전적으로 술이었지만, 바뀐 세상에는 일시적 쾌락을 주는 게임도 포함됐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앱 게임 최대 유료 이용자들은 노동자 계층이었다. 부양가족이 있기에 소비가 큰 일탈을 할 수 없기에 작은 소비로 스트레스를 풀려하지만, 결과적으로 언제나 큰 소비를 이끌어냈다.
물론 D사의 자회사가 만든 게임이었다. 대리점주들은 현금 결제 때문에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이처럼 불만과 고통이 가중되면, 이를 수렴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나오고, 그에게로 몰리기 십상이다. 대표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짝 다리를 짚으며 건들댔다. 관리자는 도발에 끌려가지 않았다.
“여러분이 짊어진 것은 여러분의 선택 때문입니다.”
“뭐?!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해?! 왜? 왜? 왜 우리만!”
 대리점주들은 우리가 도착하자 단체 행동으로 맞이했다. 나 역시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이기에 이들이 혹시나 사회적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할 뿐이었다. 실수였다. 이익 추구에는 회사를 따라 갈 수 없었다.
“회사에 나라는 이유만으로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뭔가 증명해야죠.”
“증명? 우리는 매일 증명했어! WPP 한 대 팔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게다가 D사에서 할인 금액으로 단말기를 헐값으로 파는데 우리가 뭔 수가 있겠어?!”
관리자의 눈동자는 대표를 벗어나 허공을 그리다가 갸우뚱했다.
“최선을 다 해보셨습니까?”
대표는 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가 관리자 발 옆에 침을 찍 뱉었다.
“나는 그런 거 몰라요. 계장님.”
관리자는 나를 돌아봤다.
“이래서 노조 같은 건 안 되는 거야. 이들은 교화 받아야 할 대상이야. 노력이라는 교화가 필요해.” 
 관리자는 대표를 소개하듯이 손바닥을 내밀며, 나에게 말했다. 관리자는 대답을 기대하며 나를 쳐다봤다. 비정규직이라는 내 입장에 어떻게 대답할지 망설일 때 대표가 끼어들어 대답할 기회를 놓쳤다. 다행이었다.
“뭐요? 다시 한 번 말해봐.”
대표는 화가 나 주먹을 불끈 쥐며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관리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당신 실수하는 거요.”  
대표는 코웃음을 쳤다. 호전적인 협상을 할 차례였다.


 우리는 거리의 모든 길목을 차단하고, 방탄 방패를 앞세우며 전진했다. 우리의 대다수는 나와 같은 3번 인턴이거나 D사의 하청업체 총알받이들이었다. 나는 D사 인턴이어서 그나마 기관총 사수였다. 하청업체 직원들은 나와 달리 방탄조끼도 없이 전투에 참여했다. 그들은 나를 방패로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방패 틈사이로 기관총열을 내밀고 천천히 전진했다.
 대리점주들이 거리 중앙에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저항했다. 총격전이 벌어졌다. 자유 시장주의에서는 누구나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 서로를 죽여 가면서까지. 대리점주들은 끈질기게 저항했다. 우리는 그들의 대리점에 수류탄을 까 넣어 불태웠다. 점주들은 거리 중앙에서 후퇴해 가장 큰 매장으로 철수했다. 우리는 그들을 포위하고 항복권유를 건의했지만 관리자는 거부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안 돼. 엄중한 본보기를 남겨야 하네. 허들이 높으면 넘으려 해야지 허들을 낮춰선 안 돼. 다시는 이런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해야 되네.”
 우리는 고립된 점주들을 향해 대전차포를 발사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절대 기가 꺾이지 않고 거세게 저항했다. 궁지에 몰린 점주들의 저항 때문에 우리의 포위선이 붕괴될 정도였다.
 나는 후퇴를 요청하기 위해 새 관리자를 찾았다. 관리자는 지휘 장갑차에 있지 않았다.
그는 기어서 매장으로 접근 중이었다. 매장의 깨진 디스플레이까지 접근한 다음, 내부를 들여다보고는 나에게 손으로 가리켰다.
“바로 저기!“
 그것은 대리점들의 모든 고객 정보가 담긴 서버컴퓨터였다. 저것이 있는 한 고객정보 매매를 바탕으로 점주들은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었다. 다시 계약 대리점으로 일어서서서 지금 D회사에 끼치고 있는 피해도 변상이 가능했다. 다시 회사랑 계약할 때 막대한 리스크를 또 져야 했지만. 그래도 노 젓는 노예보다 더 많이 일하는 블루칼라보다는 나았다.
 만약에 점주들이 고객장부를 잃는다면, 일개 블루칼라 노동자가 되어 회사에 끼친 손해를 갚아야 했다. 셀 수도 없는 긴 시간동안. 나는 조준선을 갖다 댔지만 쏘기를 주저했다. 하루 종일 감시 하에 12시간 씩 기계처럼 일하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지옥이었다. 한 끗 차이로 인턴이 된 내가 그 지옥으로 다른 사람들을 내몰고 있다. 관리자가 벌떡 일어섰다. 크게 손을 휘저으며 내부로 돌입했다.
“나를 잘 봐! 여기야! 여기!”
 관리자는 내부로 돌진하여 서버 앞까지 달려갔다. 점주들이 총으로 겨누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달렸다. 마치 불이 번지기 전 끄러 가는 것처럼 당연하고 도덕적인 행동 같았다.
서버에 도착하자마자 주머니에서 매직펜을 꺼내 서버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다시 달려 나왔다.
“자 이제 확 보이지? 쏴! 어서!”
 점주들은 관리자의 행동에 멍하니 쳐다봤다. 나처럼 그들도 어이가 없었다. 관리자는 한 팔을 크게 휘젓고, 다른 팔은 서버를 가리켰다. 조준선을 통해 그 모습을 보다가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는 순수한 목적으로 허둥대고 있었다. 관리자가 냉정을 잃고, 볼 쌍 사납게 새된 목소리로 외치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지금 상황이 어떻게 비치는 지 환히 보였다. 그는 빈 골대 앞에 선 공격수처럼 나에게 기회를 알리고 있었다.
 점주들이 서버를 잃은 후 어떻게 몰락하게 될 것인지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리자의 머릿속에는 현재 밖에 없었다. 현재를 열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순수함은 나를 감염시켰다. 나는 깊게 들어가 있는 사고를 멈추고, 방아쇠를 당겨 서버를 폭파시켰다. 점주들은 절규했다. 일부는 그 자리에서 자살하고, 일부는 투항했다. 극소수만이 포위망을 뚫고, 도망갔다.


 전투가 끝난 후 관리자가 나한테 왔다. 흥분에서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다 끝났네. 권총을 놓고 가서, 직접 파괴할 수 없었어. 창피한 모습을 보였네. 훌륭한 사격이었어. 내 기록해 두지. 도망친 자들은 중앙 정부 노동 중재 위원소에서 헌터들을 보내 체포할 거야. 근무지 이탈과 사적 이익 추구 방해 혐의로...”
 그는 나를 칭찬하기 위해 대화 내내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신이 나한테 호감을 품었다는 걸 알리는 신호 같아 보였다. 나는 전투 소감이나 사후 보고에 대해 말하려 했지만 그는 자기 말만 계속하며 칭찬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듣지 않고, 자기 말만 계속 하는 것이 나쁜 의도는 아니었다. 그는 내 칭찬을 더 하고 싶어 하고 내가 그걸 알아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의 헌신에 괜히 으쓱해졌다. 왠지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그를 위해 뭔가 더 득점 포인트를 올려주고 싶었다.
 그에게는 오늘 우리가 한 일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었다는 의식이 없어 보였다. 있었을 지라도 그는 당연한 듯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달리는 다른 방향 외에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고, 힘차게 달리는 사람이었다.

 
 대리점 거리를 정리한 후 그는 대리로 승진했다. 대리가 된 관리자는 살아남은 점주들을 회유했다. 부가요금을 제외한 가격에 WPP가 팔리기 시작했고, 신제품 재고율은 줄어들었다.
“어차피 대단치도 않은 기계야. 높은 가격을 받는 게 창피하네.”
 그는 나에게 설명했다. 그 쯤 나는 그에게 맞춰 생활하는 법을 알게 됐다. 그가 말하기 시작하면 고개를 끄덕여 줘야 했다. 무조건 동의를 하는 예스맨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말에 관심을 표한다는 태도를 보길 원했다.
“통신용, 의료용, 게임용. 이 세 가지 기능을 제외하면 그다지 대단한 기계도 아니네. 과대평가 됐어. 사람들은 자유로운 요술 지팡이를 원하네. 그걸 줘야지.”
 당연하게도 그는 말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했다. D사 중앙 연구소에 의견을 넣었다. 한 달 뒤 연락이 오지 않자 그는 본사 상관들을 무례할 정도로 졸라 피드백을 받았다. 상관들이 그의 무례를 참은 이유는 그가 정말 피드백을 원해서이지 회사에 충성하는 모습을 어필하려는 가식이 아닌 걸 알기 때문에 웃음으로 넘어갔다. 그의 의견은 기획안 양식에 맞지 않아서 기각되었다. 어느 시대건 내용보다 형식을 따지는 부조리함이 있었지만, 그 시대에는 유독 더했다. 기획안을 쓰려면, 먼저 기획안 자격시험을 봐야 했고, 논술테스트와 이미지 편집 툴 활용 경력도 있어야 했다.
 화려한 데뷔를 한 사람은 다음 성과를 증명하려 조급해하지만, 그는 천천히 올라갈 계단을 만들었다. 관리자는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1년 간 공부하며 자격을 만들었다. 첫 극적인 인상에 비해 그는...얌전한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에 남들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하여 시집을 읽었다. 좋은 시는 복사하여 사무실 소대 직원들에게 나누어졌다. 1년 동안 우리 사무실 소대와 그가 친분을 나누었다 고 생각했는데 그는 특히 나와 친하다고 생각하는 게 보였다.
 1년이라는 시간은 누군가를 알기에 모자란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불편했다. 그는 분명 조용하고 성실한 관리자였다. 위기가 오지 않는 한...
 위기가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그 위기를 통해 그는 기업과 블루칼라 노동자 양 편에서 증오하는 닉네임을 얻게 됐다.     


 WPP나 다른 생산 물품을 시장에 보내기 전 적재하는 물류창고가 있었다.
D사에서 그곳에 일하는 반 중력 지게차 운전사들에게 해고 통보를 내렸다. 생산라인 노동자들이 부족하자 그곳으로 보내기 위한 조치였다. 운전사들은 거부하고, 파업을 일으켰다. 창고를 점거하고, 물품들을 빼돌렸다. D 본사에서는 관리자의 과거 경력을 눈여겨보고, 그가 이번에도 협상을 잘 하리라 믿었다. 면담을 요청했지만 운전사 연대에게 거부당했다. 물류 창고 철조망 위로 파업 깃발을 흔들며 협상단을 야유했다.
‘더러운 대자본의 들의 개들! 죽어라!’
‘우리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행복권을 보장해 달라!’
‘효율을 원하면 고용 안정을 보장하라!’
‘하얀 와이셔츠 입은 군바리들을 죽이고, 우리 노동자의 자유를 획득하자!’

 
 관리자는 손가락으로 하나 씩 일일이 짚으며 나에게 플랜카드를 읽어줬다.
“저들은 벌써 싸움을 각오했군. 자신이 학대받는 약자라는 피해의식이 생기면, 상황을 극단으로 밖에 보지 못하지. 이 길 밖에 없다. 이 일을 해결할 사람은 나 밖에 없다. 필요이상으로 진지해져 여러 가능성을 놓쳐. 정보 협력자에게 들었는데, 저들은 공식적 위계보다 비공식적 위계를 만들어 따른다더군. 서로 형, 동생 하면서 말이야. 회사에서는 형, 동생이 없는데...
안 그런가?“
 나는 동의가 아닌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자는 즉시 호전적 협상권을 본사에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중앙 정부가 운영하는 공기업의 제품들도 물류창고에 있기에 가능한 호전적인 협상을 피하고, 비밀스런 맨투맨 협상을 하라고 했다. 회사 비공식 매뉴얼에 맨투맨 협상은 협박을 의미했다.
 내가 알고 있으면 관리자도 모르지 않을 텐데, 그는 굳이 사무실로 돌아와 매뉴얼을 펼쳐보고 손가락을 짚으며 꼼꼼히 재확인했다. 뚫어지도록 노려보다가 갑자기 큰 한숨을 쉬며 책상에 엎드렸다. 모두에게 퇴근을 지시했다.
“대리님 왜 그러십니까?”
“방법을 찾아야지. 내가 반드시 방법을 찾겠네. 모두 기숙사로 가서 쉬게나.”
 방법을 찾는다면서 왜 세상 끝난 것처럼 책상에 웅크린 걸까? 직원들은 눈치를 보며 하나, 둘 퇴근하기 시작했다. 나는 웅크린 관리자를 지켜보다가 마지막으로 퇴근했다.


 다음날 새벽, 나는 관리자가 걱정이 되어 일찍 출근했다. 관리자는 웅크린 모습 그대로 꼼짝 않고 있었다. 나는 그가 잠든 줄 알고 손대지 않고, 커피를 끓였다. 당연히 이 커피도 D 기업 식품이 만든 커피였다. 갑자기 관리자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래 대부! 영화 대부 봤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밤새 비공식 매뉴얼의 요청에 응할 방법을 찾았네. 최선의 방법을!”
 관리자는 당장에라도 나갈 듯 외투를 찾아 입었다. 그러다가 내가 커피를 마시고 있음을 보고, 천천히 마시라 했다. 내가 커피와 빵을 아침 식사로 권하자 그는 웃으며 거부했다. 책장에서 시집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매일 규칙적인 생활의 일부로서 시집을 읽는 것인가? 아니면 시집을 읽음으로써 기운을 얻는다는 것인가? 커피를 다 마시고 관리자와 함께, 지휘 지프차를 타고 어디 론가로 달렸다. 

 
 관리자는 가면서 설명했다. 깔끔하고 정직한 전투라면 모를까. 자신은 협박이나 거짓 따위는 능숙하지 않고 방법을 몰랐다고 했다.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인명을 해하는 전투가 깔끔하고 정직하다니...
“전투는 총과 칼로 마주보고 서로의 능력을 겨루지 않나? 그러나 협박은 약점을 이용하는 비열한 짓이야. 하지만 회사 위하는 일이니 따르지 않을 수 없지.”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 입니까?”
“어디가 아니라 무엇이 중요하지. 직접 보여주겠네.”
 도착한 곳은 지역구 변두리 슬럼가였다. 작년 장마 때 내린 오염된 산성 빗물이 아직도 질척이는 거리를 지나 찾아간 곳은 도살장이었다. 
“잠시만 기다리게.”
 관리자는 도살장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도살장 붉은 전등 아래,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곱추에다가 얼굴이 짓이겨져 이마에서 진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기업이 정부로부터 독립하던 과도기 때 폭발한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때문에 기형으로 태어난 2세대인 게 분명했다.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은 발전소를 민영화하려는 로비가 실패하자 기업들이 저질렀다는 음모이론이 떠돌았다. 관리자는 기형 인을 거침없이 껴안고, 아까 읽은 시집을 소중한 보물처럼 내밀었다. 관리자와 기형 인은 시집을 펼쳐, 마치 쌍둥이처럼 함께 고개를 파묻고
시를 읽었다. 시집을 읽다가 같은 부분에 같이 웃음을 나누었다. 잠시 후 관리자가 나왔다.
“말 머리를 말해봤는데, 가격이 엄청나네. 개나 고양이 머리는 안 된다 하더군. 반려 동물을 숭배하는 사교 단체가 극성이라고. 그래서 닭 머리로 합의했네. 단가도 그게 싸고.”
 나는 관리자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게 됐다. 영화 대부에서처럼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닭 머리를 내걸어 협박할 계획이었다. 내 놀람을 잘못 읽고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이런 델 어떻게 아냐면...나 역시 이런 곳에서 일을 하면서 학비를 벌었네. 교육이 받쳐줘야. 제대로 된 기업에서 일할 수 있으니까...”
 그의 말은 끝맺지 못하고 흐려졌는데, 나에게 비밀로 해달라는 느낌이었다. 도살장 안에서 닭 머리를 잘라내는 게 보였다. 기형 인은 한 손으로 플라스틱 우리의 닭 목을 잡고, 도마로 끌고나와 닭 머리를 단박에 큰 칼로 베어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두 마리, 세 마리, 열 마리. 끝도 없이 계속 이어졌다. 내가 입을 열지 못하자 관리자는 내 어깨를 두드려 비밀에 합의한 줄 알고 고마워했다. 


 관리자는 상의에 장착된 WPP를 작동시켜 D 기업 고객 명단에 접속했다. 물류센터 지게차 운전사들의 명단을 찾았다. 대기업 서비스를 사거나, 이용하거나 가입하면 고객 정보는 평생 남는다. 물론 대기업을 위해서 일했으면 더 자세히 남는 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정보는 재화이고, 무기였다. 관리자는 운전사 연대 가입자원의 모든 집주소를 알아낸 다음 가장 가까운 곳으로 핸들을 꺾었다. 뒷좌석에 실린 닭 머리들의 비린내가 들썩였다.

 
 관리자는 영화 대부처럼 침실에 몰래 걸어놓지 않았다. 환한 대낮에 초인종을 눌러 가족이 나오면 가족 손에 닭 머리를 쥐어줬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도 부탁드립니다.”
 가족들은 협박에 주저앉거나 분노하며 저항했다. 문을 쾅 닫아 버리면, 관리자는 닭 머리 하나를 문 앞에 조심스레 똑바로 세워 놓고는 다음 곳으로 향했다. 이 정신 나간 짓을 하는 동안 그는 매우 침착하고 이성적인 상태였다. 내가 서류를 내밀면 처음부터 꼼꼼히 집중하여
살펴보고는 확인 결재를 찍는 그런 일과 별반 다르지 않는 태도로 진행했다. 닭 머리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방문해야할 집 숫자가 줄어들었을 때였다. 관리자가 지프차의 라디오를 켰다.
 운전을 하면서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 방송을 듣는 건 자연스런 행위이다. 하지만 그는 절대 업무 중에 다른 것에 한 눈 팔거나 부하들에게 그런 걸 용납할 사람이 아니었다. 관리자는 지금 업무를 진행하는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되게 협박하고 있었다. 회사의 협박 지시를 따르는 우리는 지금 분명 일하는 중이었다. 라디오 CM송이 울리자 그는 따라 흥얼댔다. 내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자 눈이 마주쳤다. 관리자의 눈은 웃고 있었다. 그 눈에는 나도 웃길 바란다는 기대가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그의 노래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는 지금하고 있는 일을 즐기고 있었다.

 
 다음날 그와 나는 물류 센터 운전사 연대에 찾아갔다. 나는 혹시 몰라서 방탄복을 착용하고, 소구경 권총과 접이식 고 진동 나이프를 소지했다. 그는 방탄복만 입었을 뿐 아무 무장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어제 한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이럴 때 보면 세상에 처음 태어난 순진무구한 아기 같았다.
“우리가 어제 한 일을 안 운전사들이...”
“알고 있네. 걱정 마시게.”
전혀 알고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운전사 연대는 우리가 물류 센터 건물에 접근하자 우리를 포위했다. 전기톱 체인과 개조한 화약총을 들이밀었다. 관리자는 양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천천히 나섰다.
“회사는 여러분의 단합보다 더 거대합니다. 이쯤 되면 아셨으니, 옳은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야이 미친 자식아! 네가 인간이야?!”
 땅딸만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키는 작지만 어깨가 기형으로 보일 정도로 떡 벌어졌다. 걷는 발놀림을 보고, 나는 그가 무술을 배웠다는 걸 짐작했다. 권총 손잡이를 쥐었다.
“내가 인간으로서 하기 힘든 일을 한 것은 다 여러분의 억지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봉급을 받으면서 왜 회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습니까?”
 난쟁이는 침을 탁 뱉고는 싸우기 위해 양 주먹을 모으고, 스텝을 밟았다.
“닥쳐. 이 새끼야. 난 다시는 그 생산라인으로 안 돌아가. 거기는 사람을 기계로 만드는 곳이야. 씨발. 니가 하루 13시간 일해 봐! 그럼 짐승이 돼. 차라리 인간으로 죽겠다!”
 관리자는 외투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둘러싼 운전사들이 일제히 긴장하며, 총을 철컥 거렸다. 관리자가 꺼낸 것은 WPP와 터치 펜이었다. 난쟁이에게 내밀었다.
“불만이 있으면 정식으로 제출하는 겁니다. 다른 곳으로 이사 이동을 원하시면 적합한
사유와 직책을 쓰시죠.”
 난쟁이 피식 웃더니 공손한 태도로 WPP와 터치 펜을 받았다. 그리고 WPP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터치 펜을 반으로 뚝 꺾었다. 관리자는 충격 받은 듯 반으로 꺾인 터치 펜을 내려다봤다.
 나는 그 터치 펜이 어떤 터치 펜인지 알아봤다. 바로 유격 훈련을 받는 연수원 시절에 D 기업 본사 사장이 친히 직접 나누어준 터치 펜이었다. 터치 펜의 장식 D는 부러져 산산조각 났다. 관리자는 억눌린 목소리를 짜냈다.
“당신 지금 실수 하는 거야.”
 난쟁이는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닭 머리였다. 땅에 떨어뜨리고는 발로 꽉 짓밟았다. 관리자는 닭 머리가 소중한 물건인 것처럼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관리자의 비명에 운전사들을 낄낄대며 웃었다. 난쟁이가 스텝을 밟더니 잽을 날렸다.


 어제 닭 머리로 협박하려 돌아다닐 때 난쟁이의 신상정보를 봤다. 노동자 계층의 아들로 태어나, 15살 때 D 기업 생산 공장에 입사했지만, 오래 일하지 못하고 관두었다. 그 후 체육관에 다니며 복싱을 했고, 그의 부모들은 아들에게 희망을 걸고, 온 뒷바라지를 했지만 그는 체구가 작아 대전 상대를 구할 수 없었다...라고 기록 되어 있지만...체구가 문제가 아니라 D 기업이 후원하는 복싱 대회였다. 체육관은 난쟁이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방출했다.
 관리자와의 대결은 의외로 쉽게 끝났다. 난쟁이가 잽을 날리며 달려들었지만, 관리자는 난쟁이의 어깨 옷자락을 잡고는 유도 기술로 크게 내팽겨 쳤다. 난쟁이는 땅에 떨어질 때 어디가 부러진 듯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운전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관리자에게 달려들었다. 난 총을 뽑아 허공에 발사했다. 제압하려 운전사들을 겨누었지만 내가 미처 놓친 운전사들이 총으로 나를 겨누었다. 관리자는 나와 운전사들의 총구를 맞댄 대립을 힐끗 쳐다보고는 난쟁이를 끌고 물류 센터 내로 들어갔다. 나와 운전사들은 당황했다. 서로의 총구가 흔들렸다. 이층 창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리자였다.
“봐라! 내가 누구인지!”
 관리자는 난쟁이를 내던졌다. 운전사들 사이에 비명이 터졌다. 난쟁이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추락했다. 난쟁이가 신음소리를 흘렸다. 아파서 흘리는 신음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는 소리였다. 관리자가 물류 센터 밖으로 나와 다시 난쟁이를 어깨에 들쳐 메고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멈춰! 이 새끼야!”
 운전사들 일부가 총으로 관리자들을 겨누었지만, 관리자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다시 이층에서 관리자가 외쳤다.
“봐라! 내가 누구인지!”
 난쟁이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난쟁이는 땅에 튕겨 낮게 솟아올랐다가 처박혔다. 이번에는 신음소리도 나지 않았다. 난쟁이의 다리가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관리자가 다시 내려왔다. 운전사들 중 누가 총을 발사했다. 탄환이 관리자의 어깨를 스치고 갔다. 관리자는 자신을 향해 발사한 사람을 한 번 쳐다봤을 뿐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총을 발사한 운전사는 관리자의 눈빛에 지레 겁을 먹고, 총을 떨어뜨렸다. 관리자는 난쟁이를 들쳐 업고 다시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만...제발...”
 운전사들 사이에서 애원이 터져 나왔지만 관리자는 이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봐라! 내가 누구인지!”
 이번에 난쟁이가 바닥으로 떨어질 때 모두가 똑바로 쳐다보질 못했다. 고개를 돌리거나 나처럼 눈을 감았다. 운전사들이 총을 내려놨다. 일부는 도망치듯 이탈했다. 다시 난쟁이를 잡으려  관리자가 내려오자 나는 외쳤다.
“그만!”
 관리자는 많은 사람들 틈 사이에서 이제야 나를 발견한 듯한 눈으로 쳐다봤다. 잊고 있었던 걸 깨달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양 팔을 벌렸다.
“자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겠습니까?”
 운전사들은 관리자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관리자가 난쟁이가 밟아 뭉개버린 닭 머리를 들어 난쟁이 위에 소중히 올려놨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내가 뭘 원하는지?”
“치킨헤드”
 운전사들 사이에서 누군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그를 따라다닐 닉네임이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본사에서 그를 선임 대리로 승진 시켰다.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치킨헤드는 난쟁이가 반신불구가 됐다는 소식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다. 나중에 치킨헤드가 나를 붙잡고 말했다.
“서로 선택한 길이었을 뿐이야. 나도 유감일세.”
 치킨헤드의 태도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했다. 그가 이 말을 했을 때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는 승진에 신경 쓰지 않고, 드디어 자격을 갖추고, 기획안을 보냈다. 하지만 아무 답장 없었다. 본사에서 그를 부른 적이 있었다. 기획안이 통과 된 줄 알고 간 치킨헤드는 예상외의 우수 사원 상 수상과 인터뷰를 했다. 회사 사보에는 ‘보라! D 기업을 수호하는 기사를! 그 이름은 치킨헤드!’ 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가 한 일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WPP 메신저를 조작할 때마다 하단에 기사가 반복적으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많이 순화된 기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읽고 치킨헤드를 두려워하며 멀리 했다. 치킨헤드는 홍보부와 총무부에 연락해 제발 기사를 내려달라고 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치킨헤드는 왜 회사가 자신의 공을 인정했으면서 원치 않게 이용하는지 이해 못 했다. 치킨헤드는 회사를 자기와 동일시하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회사고, 치킨헤드는 사원이었다.
“난 최선을 다했을 뿐이야.”
 언젠가 나한테 변명하듯 말을 걸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편을 들어줬다. 치킨헤드는 여전히 1시간 일찍 출근해 시집을 읽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시집에 완전히 몰두하여, 바깥세상과 경계를 그으려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두려워 한 것은 아니었다. 숭배자들도 생겨났다. 사람들은 그가 부장까지 올라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 역시 그리 믿었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가끔씩 비에 대기권 낙진이 섞여 내렸다. 기상청에서 방사능 함유 도를 발표하면서 외출을 자제하라 경고했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소리였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연봉에 포함된 방수복을 지급받았지만, 중소기업이나 소 공장에 다니는 블루칼라 계층은 방사능에 노출됐다. 그들의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기형으로 태어났다. 대기업들은 그 중 사이버 신체나 장기로 보완할 수 있는 아이들을 뽑았다. 선택된 아이들은 가장 고된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대신 사이버 의료기기와 수술비용을 대출받았다.
 초급 의무 교육을 마친 15세 때부터 노동을 시작했는데, 중앙 정부는 현재 분열된 국가 재건과 기업이 주도하는 국가 경제, 방사선 제거에 앞장 서는 기업들의 환경봉사활동이라는 갖가지 명분으로 청소년노동착취를 묵인했다.
 청소년 생산 시설에서 파업이 일어났다. 노동자 형제단이라는 파업 전문가 집단이 있었다.
그들은 각 대기업 영토에서 노동을 거부하고 도망친 수배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청소년들의 파업 배후에는 노동자 형제단의 도움이 있었다. 본사에서는 치킨헤드에게 호전적 협상 권리를
부여하고, 현장으로 파견 보냈다.


 D 기업이 지배하는 타 지역구로 파견가기는 처음이었다. 본사에서 물류센터에서의 일은 전투로 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인턴이었다. 살려고 발버둥 치는 인턴들끼리는 통했다. 조선시대 때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양반을 잘 아는 것은 양반이 아니라 양반에게 박해받는 상놈이다.’ 인턴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타 지역구도 우리 지역구와 상황이 비슷했다. 그들도 누군가를 죽여야 정직원이 되기 때문에, 죽일 기회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치킨헤드 밑에 있으면 빨리 올라가지 않겠냐고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받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난 치킨헤드와 떼어내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는 걸 알았다. 이곳 지점에서 치킨헤드는 필요한 정보를 인수 받고 곧바로 파업 현장으로 출동했다.
 파업 현장에 치킨헤드가 도착하자마자 청소년들은 조잡한 개조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다.
이곳 지점에서 이미 치킨헤드의 악명을 뿌려댔기에 청소년들은 치킨헤드를 매우 두려워했다.
치킨헤드는 소형 창고 지붕 위에 올라서서 모든 청소년들을 불러 모았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 치킨헤드는 모든 청소년들이 모이자 자신의 상의를 벗었다. 심장 부위에는 깜박이는 사이버 장비가 붙어 있었다. 청소년 사이에서 놀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여러분! 난 여러분의 고통을 알고 있습니다! 나 역시 여러분과 같은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면 보답 받을 수 있습니다! 자유 시장 경제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기브 앤 테이크! 서로 주고받을 뿐입니다!”
 치킨헤드는 연설하는 도중 나를 쳐다봤다. 그때마다 나는 고개를 힘주어 끄덕였다. 단순한 호응이 아니었다. 그가 살아왔던 노력의 과정이 그려지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소년들은 홀린 듯이 치킨헤드를 연설을 따라 흘러갔다. 치킨헤드가 지붕에서 내려오자 그를 목마 태우고, 치킨헤드라 외치며 공장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청소년들은 공장 안으로 치킨헤드를 이끌어 자신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치킨헤드는 적절한 조언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청소년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 각서와 시말서들을 가지고 돌아갈 때 공부할 수 있도록 문제집과 WPP를 보내주겠다 반드시 약속했다.
“치킨헤드! 치킨헤드!”
청소년들이 열성적으로 외쳤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치킨헤드에게 학살당했다. 노동자 형제단은 밤에 몰래 청소년들 기숙사에 생화학 수류탄을 투척해, 극도의 고통 속에서 죽게 했다. 생산 시설 대부분을 파괴하고 불 질렀다. 그리고 이것을 치킨헤드의 짓으로 선전하며, 치킨헤드야 말로 노동자의 적이라 선동했다. D 기업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묵인하고, 치킨헤드를 과장으로 승진시켰다. 파업을 강경 진압하여, 파업을 일으킬 불순분자들에게 본보기를 보였다고 칭찬했다. 
 치킨헤드는 자신을 승진시킨 거짓에 괴로워했다. 새벽마다 읽던 시집도 보지 않고, 멍하니 지내던 치킨헤드는 본사에 연락을 취했다.
“이게 회사를 위하는 일이네. 치킨헤드 과장.”
치킨헤드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받아들였다.

 
 치킨헤드의 분노와 좌절은 노동자 형제단에게로 향했다. 치킨헤드는 본사에 전차와 장갑차를 요청하여, 대대적인 노동자 형제단 토벌을 시작했다. 노동자 형제단이 파업으로 물들인 곳이면 어김없이 찾아 나섰다. 때때로 다른 회사들 S나 G들이 지배하는 지역구도 침범 했다.
하지만 그 회사들은 시장 경제를 전복하려는 악의 무리와 맞서는 치킨헤드를 칭찬하며, 자신들 회사 직원들의 본보기로 삼았다. 직원들은 WPP로 인트라넷에 접속해서 치킨헤드의 활약상을 보고 매주 한 번씩 감상문을 작성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계속 이어진 전투로 정규직이 되었다.
 치킨헤드는 자신이 휩쓸고 간 자리에 어김없이 닭 머리 하나를 놓고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에 갈수록 노동자들의 파업과 사보타지가 일어났다.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노동자 형제단의 다음 목표는 바로 우리 지역구였다.

 우리가 오랜 파견 활동에 지쳐 지역구로 귀환했을 때 우리를 맞이한 것은 자본주의자들을 찢어 죽이자는 피켓이었다. 블루칼라 노동자 99프로와 모든 걸 가진 D 기업 1프로의 대결이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치킨헤드는 우리 지역구가 배신하자 망연자실했다. 주저앉아 한참을 웅크리고 있었다. 뭔가를 태우는 지독한 탄내와 고함소리가 그를 스쳐갔다. 구호를 외치는 확성기 소리가 지역구 내에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날카로운 확성기 소리에 귀를 막았지만 치킨헤드는 가만히 있었다. WPP 메신저에 구호 메시지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왔다. 어두워질 때까지 시위대는 구호를 외쳐댔다. 치킨헤드는 벌떡 일어나더니 시위대쪽으로 향했다. 내가 전차와 장갑차 지원을 부르자 그는 손을 휘저어 거부했다. 치킨헤드는 나마저도 내버려 두고 홀로 시위대를 향해 걸어갔다.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됐다. 모든 상거래는 D 기업 마트를 통해 이루어져서 항상 승자는 D 기업이었다. D 기업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떼 가는 수수료와 세금이 많아 생필품 값은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아무리 일해도 D 기업이 존재하는 한 현재 상황에서 더 나아질 수 없었다. 이에 치킨헤드는 프리 마켓을 제의했다. 일주일에 한번 학교 운동장에 모여 서로 필요한 상거래와 물물교환을 하는 자치적인 재래시장. 세금과 수수료를 내지 않고, 누군가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그리고 구형 WPP도 공적 서비스에 접속이 가능할 수 있도록 약속했다. 시위대는 약속이 의심스러웠지만 치킨헤드가 두려워 아무도 발언하지 못했다. 치킨헤드가 홀로 시위대와 마주해도 그를 둘러싼 이미지는 시위대를 침묵시키기에 충분했다. 치킨헤드는 즉시 지역구 서버 관리자에 연락을 넣어, 신형인지 판별하는 기기등록번호 입력을 중지 시켰다.
 시위대는 파격적인 조치에 치킨헤드를 믿고, 자진 해산했다. 한 달 뒤, WPP로 알아본 지역구민 생계 실태에는 생활 유지비가 낮아졌고, 만족도가 늘어났다. 치킨헤드는 새벽마다 평화롭게 시집을 읽었다. 많은 직원들이 치킨헤드에게 이 일을 본사에서 알면 큰 일 난다고 말했다.
“난 회사를 위해 십자가를 지었네. 이 정도 재량권은 있다고 믿네.”
 하지만 회사의 생각은 달랐다. 그동안 WPP 메신저에 오르던 치킨헤드 과장 홍보가 싹 사라졌다. 치킨헤드는 회사가 원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회사의 1순위는 회사의 이익이었다. 나는 치킨헤드로 인해 얻은 정규직 자리를 잃을 것을 예감했다.


 점조직으로 퍼져 있던 노동자 형제단이 하나로 모여 대규모 군대를 이루려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첩보의 출처는 본사였다. 본사의 지시에 치킨헤드와 나는 즉시 대대급 직원들을 모아 출동했다. 첩보가 가리킨 곳에 노동자 형제단은 캠프를 치고 숙영지를 만들고 있었다. 그곳은 대기업들이 환경봉사활동 명목으로 만든 숲 공원이었다. 본사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이 시대에 무슨 환경 보호냐고, 비용이 많이 나간다고 껄끄러워 했지만 기업 이미지를 위해 비용을 들어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곳에서 군대를 조직하다니, 허를 찔린 셈이었다. 우리는 밤에 기습하기로 결정했다.


 해가 떨어지고 난 뒤, 밤이 더 깊어지길 기다렸다. 치킨헤드는 시집을 읽으며 커피를 마셨다. 나도 같이 커피를 마시다가 직원들을 살펴보려 순찰을 돌았다. 갑작스런 비명에 치킨헤드에게로 돌아갔다. 누군가가 치킨헤드의 옆구리를 고 진동 나이프로 후벼 파고 있었다.
“대리점 거리를 기억하느냐? 이게 바로 최선이다!”
 누군가의 정체를 짐작했다. 하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내가 권총을 뽑아 그의 머리통을 날렸다. 다행히 치킨헤드의 부상은 심하지 않았다. 출혈이 문제였다. 내가 치킨헤드를 부추겨서 일으킬 때, 직원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역으로 우리가 기습을 당한 것 이었다. 사방에서 노동자 형제단이 우리 진지로 난입해 왔다. 이들이 우리의 출동을 어떻게 알았을까? 사원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치킨헤드가 WPP로 대리급들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먹통이었다. 왜냐하면 메신저 경고 메시지에...
- 치킨헤드님은 현재 메신저 서비스를 탈퇴하셨기에 재가입 하셔야 합니다. 재가입은 1주 뒤에 가능합니다. -
 내 WPP의 메신저를 켜니 신규 메시지가 있었다. 나 역시 탈퇴 되어 재가입하려면 1주 뒤에 가능했다....누가 이런 짓을? 노동자 형제단에 해킹 당했나? 아니었다. 메신저 서비스 회사는 D 기업의 자회사였다. 자유시장 경제에서 정보는 재화이자 무기였다. 우리가 생산하든 소비하든 우리 정보가 기업에 남으면 기업은 무기로 활용할 수 있었다. 우리를 배신한 건 회사였다. 거짓 첩보를 통해 노동자 형제단에 넘긴 함정이었다. 치킨헤드도 상황이 딱 맞아 떨어지자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그러나 고개를 저어 털어냈다.
“치킨헤에드! 치키이인 헤에에드!”
 노동자 형제단 진지에서 거대한 크레인 차가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크레인 끝에 서커스 광대처럼 누가 매달려 있었다. 어디서 듣던 목소리...
“치킨헤에웨드! 치이익킨헥드! 이번에는 네가 실수한 거야!”
 크레인 차 라이트가 크레인 끝을 비추었다. 강렬한 빛에 치킨헤드와 나는 눈이 부셔 움츠렸다. 크레인 끝에 달린 것은 반신불수가 된 물류센터 난쟁이였다.
“어디 있느냐?! 치킨헤드! 이리 와라! 네가 누구인지 보여라!”
 치킨헤드는 고함을 지르며 고 진동 나이프를 치켜들고, 크레인 차에 돌격하려 했다. 내가 뒤에서 잡아 말렸다. 치킨헤드는 옆구리 부상에 비틀거렸다.
“지금은 자리를 피하실 때입니다. 불리합니다. 회사도 우리 편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야. 자네가 앞서간 거야.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치킨헤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포탄이 떨어졌다. 노동자 형제단이 전차를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회사 전차가 우리 진지를 포격 중이었다. 연속적으로 포격이 이어졌다. 치킨헤드는 포격에 녹아내리는 사원들을 보더니 옆으로 푹 쓰러졌다. 그의 정신이 무너진 게 아니었다. 출혈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나는 치킨헤드를 이끌고 장갑차에 올랐다. 장갑차를 운전해 진지를 이탈했다.
“청소년들의 원수를 갚자! 저 장갑차다!”
 노동자 형제단의 로켓포가 장갑차를 두드렸다. 장갑차는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았다. 형제단들이 장갑차에 매달려 고 진동 나이프로 긁어대는 기괴한 소리가 내부가 울렸다. 포격 소리도 장갑차 내부에 진동을 일으켰다. 운전을 난폭하게 하여 형제단들을 떨어뜨렸다. 운전석 덮개를 열고 고개를 내밀어 외부를 살폈다. 크레인 차가 포격에 맞아 옆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난쟁이가 줄에 매달린 쇠공처럼 크게 흔들렸다.
“치킨헤에엑드! 지이이익옥에서 먼저 기다리마!”
크레인 차는 폭발했다. 장갑차는 무사히 불타는 숲 공원을 빠져 나왔다. 회사는 세 가지 일을 해냈다. 첫째 비용 많이 드는 봉사활동을 중단시킬 이유가 생겼다. 둘째 노동자 형제단은 대규모 군대로 재 조직화 될 수 없었다. 셋째는....

 
 먼저 24시간 운행하는 병원으로 향했다. D 기업의 손길이 닿지 않는 병원을 찾기 힘들어 보건소로 향했다. 얼굴 혈색이 붉은 의사가 커다란 배를 내밀고 나타나 술 냄새를 풍기며 치킨헤드를 치료했다. 의과 대학생들은 기업이 대학을 장악한 후 성적이 좋지 않으면 기업 소유 병원에 취직할 수 없었다. 페이도 대우도 좋지 않은 지방 정부의 보건소에 취직 했다. 의사는 술기운 때문에 치킨헤드 이름도 제대로 차트에 적지 못해 나에게 여러 번 물었다. 내가 타박하자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고개를 삐딱하게 돌렸다.
“당신들도 여기 올 정도면 나한테 뭐라 할 사람들은 아닌데.”
 나는 화나서 고함치려했다. 그 때 봤다. 치킨헤드가 고개를 슬며시 돌리는 모습을. 의식을 찾았지만 깨지 않은 척하고 있었다. 나도 못 본 척 등을 돌렸다.


 아침이 되자 우리는 지점으로 복귀했다. 잔류한 사원들은 우리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사무실 게시판에 공고가 붙어 있었다. 전투 업무 실패로 인한 책임을 물어 과장 치킨헤드 직위를 해제한다. 그리고 나 역시 정규 우선 계약직으로 바뀌었다. 계약직인데 재계약시 우선적으로 계약을 고려한다는 비정규직이었다. 정규직을 잃을 걸 예감했지만 막상 당하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치킨헤드는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아직 끝나지 않았네.”
 그의 낮고 힘 있는 목소리에 혹시나 하는 기대가 솟아올라 내 눈가가 붉어졌다. 치킨헤드는 당당하게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당당한 걸음걸이는 나에게 보여주려는 쇼맨쉽이 분명했다. 내 가슴은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는 한참이나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나는 바보같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통화가 진즉에 끝났음을 알았다. 그는 나에게 미안해서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한 것이었다. D 기업은 치킨헤드의 프리 마켓 따위 원하지 않았다. 회사의 방침에 어긋나면 누구라도 보복당하는 것이다. 나는 치킨헤드의 등 뒤로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됐습니다. 이미 충분히 수고하셨습니다. 과장님.”
“어떻게 이럴 수가...내가 회사에...얼마나 최선을 다했는데..”
치킨헤드는 뒤돌아 나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눈물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회사는 직원의 노고를 기억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회사는 기억력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치킨헤드와 같이 지점을 나왔다. 거리를 오가는 지역구민들이 우리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고개를 들어 회사 건물을 봤다. 전광판에 치킨헤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 직위해제. 이 인물은 권고사직 예정으로 D 기업과 더는 연관이 없을 것입니다. -
더 이상 우리 지역구가 아니었다.


 치킨헤드와 나는 지역구를 이탈하여 지역구 경계선에 숨었다. 그곳에는 이러저런 사연을 가진 이탈 민들이 부락을 이루고 있었다. 후에 알기로는 D 기업에서 마트 1년 할인권을 지역구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조건으로 자발적으로 프리 마켓을 해산시켰다고 했다. 시장은 가장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향하니까...충분히 납득할 만 했다.
 치킨헤드와 나는 어떻게든 복권해보려고, 시도하다가 옛 사무실 직원들과 연락이 통했다.
회사 내부에서도 치킨헤드 과장에 대한 동정론과 처우개선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했다.
변두리 폐차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폐기된 차들이 겹겹이 쌓인 폐차장을 들어선 순간, 이 몰락한 이미지를 보고 나는 함정임을 직감했다. 멀리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노동자 형제단의 깃발이 보였다. 노동자 형제단이 어떻게 알고 왔을까? 우리를 팔아넘긴 건 같은 사무실 동료일까...아니면 그들에게 월급을 주는 회사일까? 내가 치킨헤드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어서 가야죠.”
치킨헤드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여기에 있는 게 아니었다. 치킨헤드가 말했다.
“어디로?”


 모두가 D 기업 뜻대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다. 치킨헤드를 처형한 노동자 형제단은 그 위세를 늘려 끝내 D 기업을 무너뜨렸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혁명의 날이라고 외쳤다. D 기업 간부들은 거리로 끌려나와 처형당했다. 나는 무사했다. 비정규직이기에...
노동자 형제단은 화이트칼라 비정규직들도 자신들과 같이 학대받던 노동자라고 편을 들어주었다. 인턴들과 수많은 비정규직들도 모두 무사했다. 노동자 형제단의 공유주의 임시 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노동자들을 보조하는 사무를 맡게 됐다. 내가 치킨헤드와 연관이 깊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나한테 과거를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그로 인해 나는 더욱 대접을 받았다. 나는 임시 위원회 총무실의 정규직으로 취직해, 은퇴 후 연금까지 보장 받았다.


 이 공유주의 임시 위원회도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노동자 형제단을 이끌던 수뇌부는 자신들이 권력의 상층부에 오르자 타락했다. 같은 노동자끼리도 기술직과 단순 노동직으로 분류해 계급을 나누고 차별했다. 임시 위원회는 WPP로 통신 프리 마켓 어플과 기능을 추가해 신제품을 발매했다. 기술 개발력이 없어 기존 제품을 급조한 것에 불과했다. 임시 위원회는 이것이 모두를 자유롭게 해줄 요술 지팡이라고 선전했다. 순간 나는 치킨헤드의 기획안을 떠올렸다.
몰래 메인 서버에 접속하여 기획안을 살폈다.
-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지만, 시장은 자발적인 협조로 형성될 때 이익이 커진다. 기업은 플랫폼을 제시하고, 소액 중개료를 이익으로 얻는다. 작은 이익 같지만 시장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기업 이익도 커지고, 시장 구성원들의 이익과 협력도 늘어나 양자 모두 윈윈 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기업은 수익구조를 장기적 시각으로 봐야 한다. 이런 폐쇄적인 사회 구조라면 생산자 & 소비자 모두가 손해를 입을 것이다. 시장에게 자유를 줘야 한다. -  
 기획자가 누구인지 서명이 지워져 있었다. 통신 프리 마켓은 매우 히트 쳐서, 타 대기업 영토로 뻗어 나갔다. 타 대기업 지역구민들이 공유주의 임시 위원회로 귀순해왔다. 프리 마켓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갔다. 전국 곳곳에서 오프라인으로 프리마켓이 몰래 열리기도 했다. 대기업들은 통신 프리 마켓 기획자에게 현상금을 내걸고, 반드시 처형하겠다고 선포했다. 
나는 임시 위원회에게 누가 이 기획을 했냐고 물으려 하지 않았다.


 폐차장에서 포위됐을 때...
노동자 형제단의 죽창이 눈에 들어오자 나는 고 진동 나이프를 꺼냈다. 치킨헤드가 말했다.
“그래 잘 생각했네...”
나는 나이프를 치킨헤드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잘 살게나.”
나는 만세를 외치며 노동자 형제단에게 달려갔다.


나는 세상을 바꾼 이 기획의 주인이 누구인지 물을 자격이 없었다. 내 영혼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기에...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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