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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은 돌고래 앨리

2022.10.01 00:0010.01

돌고래 앨리

박도은

 

먼 옛날 세상의 동쪽 끝에 한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의 조상들은 감수성이 뛰어나 각종 예술에 능통했다. 그런 재주는 지금에까지 이어져 주변국에도 널리 전해지고 있고, 현재는 세계 모두가 이 나라의 예술작품을 즐기고 있다. 이 나라에서 예부터 알음알음 알려지다 유명해진 전설이 있었는데, 이는 동화, 만화, 음악, 심지어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고 있다. 바로 돌고래가 어쩌다 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지금부터 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돌고래들이 지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실제로 돌고래들은 바다 속에서 그들만의 제국을 이루고 살고 있다. 그러다 가끔 뭍에 나가면 사람들이나 다른 동물들을 보곤 했다. 그들은 바다를 누비며 가끔 육지 쪽으로 목을 빼 물 밖을 구경하는 이런 유유자적한 삶을 좋아했다. 은색 돌고래 앨리와 푸른색 돌고래 로잔느도 어려서부터 세상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앨리와 로잔느의 구역 바닷가 마을에는 착한 사람들이 살았는데 앨리와 로잔느가 보일 때면 기뻐서 달려오는 어린 아이들도 있었고 두 돌고래를 향해 눈을 감고 손을 모아 기도하는 나이 많은 어른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뭍에 자주 올라오는 앨리와 로잔느는 그 동네에서 유명해져 흡사 수호동물 같은 것이 되어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돌고래는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좋았다.

사실 앨리와 로잔느 시대의 돌고래들은 물 밖에서도 꼬리로 서서 걸어 다닐 수 있었고, 숨도 쉴 수 있었다. 대신 물 밖으로 나오면 느려지고 온 몸이 무방비해졌기에 사람들 앞에서 그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깜깜한 밤 모두가 잠든 시간이 되면 두 돌고래는 몸을 일으켜 바닷가를 종종 걸었다. 물기가 섞이지 않은 공기가 얼마나 상쾌했던지 두 돌고래는 몸체 내부가 몹시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날 밤에도 앨리와 로잔느는 꼬리부분을 꼿꼿이 세우고 바닷가 돌 위를 뒤뚱뒤뚱 걸으며 야경을 보고 있었다. 두 돌고래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까르르하고 웃으며 작은 양 지느러미로 서로의 미끈한 몸통을 치기도 했고 아장아장 걷다가 넘어져 누워버릴 때면 그대로 몸을 굴려 바다 속에 담갔다가 다시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두 돌고래의 사이좋은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오직 그날 밤의 달과 별 뿐인 줄 알았다. 그러나 두 돌고래의 신기한 모습을 지켜본 목격자는 한명 더 있었다. 주의 깊은 앨리와 로잔느에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목격자는 우연한 계기로 밤늦게 바닷가에 나온 한 소년이었다. 소년은 은색 돌고래 앨리와 푸른색 돌고래 로잔느가 해변가를 거닐고 노는 모습을 큰 바위 뒤에서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너무나도 신비로운 모습이었기에 두 돌고래의 그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소년은 눈을 잠시도 떼지 않고 마치 머리가 캔버스라도 되는 양 뇌리에 아름다운 장면을 그려 넣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푸른색 돌고래 로잔느는 특유의 높은 소리로 까르르 웃으며 바닥을 뒹구는 동안 소년을 의식하지 못했지만, 은색 돌고래 앨리는 자신의 옆의 로잔느를 놀려주려 몸을 돌리다 문득 가까운 바위 뒤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며 주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무심결에 뒤뚱뒤뚱하며 소년이 있는 바위로 다가가 바위 뒤로 머리를 쑥 내밀어보았다. 앨리의 까만 콩알 같은 눈에 들어온 장면은 두 손으로 입을 꾹 틀어막고 들키지 않으려 몸을 잔뜩 웅크린 소년의 모습이었다.

소년의 나이는 사람의 나이로 열다섯, 열여섯 쯤 되어보였으며 키는 꽤 큰 편이었다. 얼굴에는 주근깨가 잔뜩 피어있었지만 건강해보이는 흰 피부에 빛나는 눈빛을 가져 개구쟁이 같아 보이는 모습이 더욱 두드러졌다. 머리칼은 부드러운 갈색 빛에 곱슬기가 있는 적당히 긴 머리였다. 앨리는 긴장한 채로 자신을 보고 있는 소년이 안쓰러워 그러지 말라고 작은 지느러미로 머리 위를 톡 하고 건드려주었다. 소년은 검은 달이 뜬 것만 같은 동그란 두 눈으로 앨리를 올려다보고는 입을 뗐다.

“혹시 말… 할 수 있어요?”

아마 몰랐겠지만 태고적부터 돌고래들은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반응도 해줄 수 있었다. 다만 성대를 통한 음성은 낼 수 없지만 말이다. 
앨리는 허우적허우적 미끈한 몸을 흔들며 끄덕이고는 처음 가까이 만난 사람이 반갑다는 듯 맑은 소리를 내보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서 로잔느도 바위를 향해 오고 있었다. 앨리는 소년이 있는 곳에서 로잔느 쪽으로 몸을 내밀어 그만 오라고, 바다로 나가자고 신호를 보냈다. 
회색 돌고래 앨리가 소년을 두고 바다 속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소년이 앨리의 작은 지느러미를 꼭 잡으면서 말했다.

“내 이름은 타야라고 해요. 돌고래님 이름은 뭐에요?”

앨리는 로잔느를 보던 눈을 타야에게로 돌려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준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굳이 전해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앨리는 눈앞의 소년이 왠지 좋았다. 그리고 앨리는 기본적으로 워낙 사람을 좋아했다. 처음으로 물 밖에서 만난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건지 앨리는 바닥에 꼬리로 자신의 이름을 썼다. 

‘앨… 리….’

자신의 이야기를 잘 이해하는 것 같은 타야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앨리는 꼬리로 타야의 이름도 한번 써 보았다. 그러자 타야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앉은 채로 너무 기뻐했다. 덩치는 앨리의 몇 배는 될 것 같았는데 하는 행동은 참 귀여웠다. 앨리는 사람의 소년시절이라는 것은 그런 것인가 싶었다.

“우리 또 만나요 앨리. 난 매일 밤마다 바다에 나올 수 있거든요.”

앨리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로잔느가 있는 바다를 향해 걸어나갔다. ‘언젠가 인연이 닿는다면 또 만나겠지.’ 앨리는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생각만 그렇게 했을 뿐 며칠이 지나자 앨리는 타야를 만났던 그 바닷가로 매일 밤 나가기 시작했다. 로잔느도 함께였다. 뭍으로 나가 꼬리로 걷지는 않았지만 물속에서 그 까맣고 동그란 검은콩 같은 눈으로 타야가 오지는 않았는지 지켜보았다. 혹시나 타야가 자신을 며칠 간 기다리다 오지 않아 실망하고 돌아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앨리는 잠시나마 소통이 가능한 인간이었던 타야와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연인 로잔느에게도 이번에는 소개해주고 싶었다. 회색 돌고래 앨리와 푸른색 돌고래 로잔느는 그렇게 물가에 머리만 삐쭉하니 내밀고 물가를 오랜 시간 관망했다. 이들이 물가로 올라왔던 저녁시간이 지나 어느 새 해가 석양이 되어 바다 속으로 저물고 하늘에는 어두운 밤길을 헤메이는 나그네들의 빛이 되어주는 달과 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때, 저 멀리 길쭉한 다리를 하고 바닷가로 달려오는 소년이 있었다. 타야였다. 로잔느는 타야를 처음 봤기 때문에 사람이 제게로 달려오는 모습이 놀랍고 무서워 순간 바다 속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앨리는 로잔느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다독여주면서도 앨리의 앞으로 달려오는 타야를 맞이하기 위해 목청껏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타야가 정말 눈앞에 가까이 다가오자 얼굴에 물도 뿜어버렸다. 타야는 경쾌한 소리를 질렀다. 앨리 나름대로는 반가워서 그런 것인데 장난스러운 표정을 한 채 입을 꽉 물고 얼굴의 물을 닦아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겨서 앨리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타야는 마을에서 나는 호두만한 붉은 색 과일을 광주리에 따 왔다. 앨리를 만나게 된다면 마을에 있는 무언가를 대접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타야는 앨 리가 물가에 오지 않았던 며칠 동안 혼자서 여기를 배회했던 것일까. 앨리는 궁금했다. 타야는 그 궁금한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이 바다에 폭 빠져 머리만 내밀고 있는 앨리를 향해 말했다.

“앨리가 다시 보고 싶어서 달이 뜰 때면 매일 밤 여기에 왔었죠. 이 광주리를 들고.”

그러면서 타야는 앨리의 입에 붉은색 과일을 먹여주었다. 앨리는 어떤 맛일까 상상하며 과일을 깨물어보았다. 바다에서 먹어본 적이 없는 맛이었다. 타야는 “달죠?”라고 물었다. ‘달다’ 라, 달다는 표현이 이 맛에 어울리는 표현인가보다 하고 앨리는 생각했다. 앨리는 기분이 좋아져 까르륵하고 웃어보았다. 어느새 앨리의 옆에는 로잔느도 함께였다. 앨리가 타야와 별 위험 없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스르륵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로잔느도 타야가 주는 과일을 입에 물고 와드득 와드득 씹어보았다. 그리고는 만족스러운 듯 몸을 뭍으로 조금 더 꺼내 타야의 몸에 가까이 들이대었다. 타야는 그런 로잔느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로잔느의 매끈하게 반짝이는 머리 위에 과일을 살포시 올려놓아 보았다. 로잔느는 이 정도 장난은 우습다는 듯 머리를 탁 위로 쳐내어 과일을 허공에 띄우고는 그대로 과일을 입 속으로 골인시켰다. 그리고는 작은 두 지느러미를 허공을 향해 올리고는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렸다. 로잔느의 묘기 아닌 묘기를 본 타야는 쪼그려 앉은 자리에서 입을 크게 벌린 채 웃으며 박수를 쳤다. 

앨리와 로잔느, 타야는 이 날 이후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자주 바닷가에서 만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로잔느도 앨리만큼이나 타야를 좋아했다. 타야를 귀여워했고 사람이라는 존재에 신비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앨리는 로잔느와 함께 바다를 헤엄칠 때, 물 밖에서 보고만 있는 타야에게 등을 빌려주기도 했다. 타야는 앨리의 등에 타 바다를 헤엄치면서 처음에는 엄마를 부르며 무서워하더니 나중에는 앨리를 꼭 껴안은 채 바다를 진심으로 즐겼다. 앨리는 타야가 숨을 쉴 수 있게 물 속 깊숙이는 들어가지 않은 채 먼 바다까지 나가보기도 했다. 앨리와 로잔느의 도움이 없었다면 타야는 이렇게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바다를 경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타야는 망망대해를 보며 마음속에 잠겨 있던 소리를 내지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앨리는 그저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 타야가 감격에 젖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럴만큼 두 돌고래의 바다는 광활하고, 빛나고, 끝을 알 수 없었기에 어두우면서도 아름다운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앨리와 로잔느가 타야가 바다를 더 잘 즐길 수 있게 도와주고자 등을 맞대어 타야가 바다 위에 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타야는 앨리와 로잔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앨리를 감싼 손을 풀어 두 돌고래의 등 위에 누워보았다. 하늘에는 태양이 작열했고 추상적인 모양을 그리는 구름들이 바다보다 옅은 푸른빛을 띤 하늘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앨리, 로잔느. 열기구라고 알아요?”

알 턱이 없었다. 앨리와 로잔느는 물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갸웃거릴 뿐이었다. 타야는 하늘에 손을 쭉 뻗어 태양을 잡을 듯이 손을 쥐더니 열기구에 대해 말했다.

“열기구를 타면 하늘로 올라갈 수 있어요. 구름도 볼 수 있고 태양에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요. 나는 며칠 뒤이면 그걸 타러 가요. 너무 기대돼요.”

앨리와 로잔느는 하늘로 올라가려고 마음먹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바다 속에 사는 것이 익숙하기도 하고 그들에게 하늘은 정말 닿지 못할 공간, 눈으로 가득 담으면 그 뿐인 공간이라고 여겼을 뿐이었다. 그런 하늘로 타야가 올라간다니, 앨리는 그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그리고 타야에게 하늘이 어땠는지 꼭 물어보고 싶었다.
타야는 정말 며칠 뒤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앨리와 로잔느는 물 밖으로 고개만 빼꼼히 내민 채 타야가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늘은 왜 이리 높은지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앨리는 타야가 열기구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타야가 육지에 없는 며칠 동안, 앨리와 로잔느도 오랜만에 바닷가에서 떨어진 그들의 제국으로 돌아갔다. 제국은 여전히 푸르렀고 웅장했고 고요했다. 제국에 도착하니 앨리의 가족이 나와 앨리와 로잔느를 맞이했다. 육지로 나가지 않고 오랫동안 바다 속에서만 머무른 앨리의 가족은 녹색, 분홍색, 보라색 등 다양한 몸의 색깔을 가진 채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아마 뭍에 나가 사람들이 본다면 아름답다며 뛰어와 누군가는 구경을 하고 누군가는 기도를 올릴 것이었다.
앨리는 가족들에게 로잔느와 함께 봤던 타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돌고래와 이야기를 하는데도 겁도 먹지 않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소년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가족들은 앨리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보이는 듯 했다. 돌고래라는 것이 원래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천성이기 때문이다. 귀여운 소년 타야와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있자니 앨리 자신도 행복해지는 것을 느꼈으며 가족들 또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앨리는 로잔느와 곧 집을 합쳐 살 곳을 정해야 한다면 타야가 있는 곳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앨리가 제국이 아닌 곳에 살 마음을 먹은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타야와의 만남에 행복해하고 있는 앨리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로잔느는 바다 속에서도 열매나무를 심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앨리의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타야가 준 빨간 과일이 너무나도 신비롭고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로잔느는 타야를 다시 만난다면 타야에게서 그 과일을 얻어 제국에 가져오고 싶다고 말했다. 앨리의 어머니는 과일이 둥둥 떠내려가 제국에까지 가져올 수 없지 않을까 하며 미소를 지었지만 로잔느가 말하는 과일의 정체를 자신의 눈으로 한번쯤 보고 싶어 했다. 만약 로잔느가 제국으로 과일을 가져온다면 재배하는 방법을 연구해보겠다고 대답했다. 로잔느는 크게 기뻐했다. 

앨리는 이번에는 열기구에 대해 가족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가족들도 열기구라는 것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기에 알리 만무했다. 작은 바구니를 타고 산을 넘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라고 했을 때 앨리의 형제들은 작은 지느러미로 입을 가리며 아연실색했다. ‘바구니가 어떻게 하늘에 올라간다는거야!’
앨리는 자신이 눈으로 본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타야가 열기구를 정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 산을 넘어 다른 도시로 향하는 장면까지 말이다. 앨리의 형제들은 산을 넘는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물이 필요하면 뛰어들 곳도 없고 제국으로 돌아오고 싶을 때 당장 돌아올 수 있는 방법도 없는 산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앨리가 열기구라는 것에 빠져 산을 넘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앨리는 형제들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다. 앨리는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로잔느는 하늘로 올라가던 타야를 보며 품었던 앨리의 열망을 모르지 않았지만 제국에 돌아와 모두에게 열기구를 이야기하는 앨리를 보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다에서 사는 돌고래가 하늘을 그린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아무도 막는 자는 없었다. 오로지 앨리의 의지와 가족의 걱정만 있을 뿐이었다. 로잔느는 타야가 여행을 끝내고 무사히 돌아온다면 그 열기구를 타고 앨리가 떠날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로잔느는 타야에게 말했다. 당신이 홀로 가는 것을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나도 함께 가겠노라고 말이다. 앨리는 로잔느의 말을 흔쾌히 승낙했다. 애초에 함께 타야를 경험한 로잔느와 같이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앨리의 어머니는 앨리에게 우려의 말을 남겼다. “하늘로 올라가다보면 무엇을 만날지 모른다. 그러니 바다가 보이면 언제든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거라.” 고 말이다. 

앨리는 타야가 돌아오는 날만을 기다렸다. 타야가 돌아오면 열기구를 빌려달라고 말하고는 당장 타고 하늘로 올라가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앨리는 타야가 건강히, 행복한 소식을 들고 돌아오기를 바랐다. 
해와 달이 몇 번이고 서로의 자리를 바꾼 후에 타야는 바닷가 마을로 돌아왔다. 흰 피부가 까맣게 그을려있었지만 눈은 여전히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고 육지에 다다라 바구니에서 내리는 타야의 만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꽤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던 것 같았다. 타야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만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활짝 웃으며 나누며 며칠을 보냈다. 앨리와 로잔느는 밤이고 낮이고 물가에 나와 타야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만을 기다렸다. 타야 또한 돌고래들에게 여행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겠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타야의 곁에 있었기에 쉽게 바닷가로 나올 수 없었다.

드디어 어느 날 밤, 타야는 언제나처럼 붉은 과일을 광주리에 담고서 바닷가로 나왔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앨리와 로잔느를 불렀다. 앨리와 로잔느는 타야가 그들의 이름을 두 번 부르기도 전에 물가에 얼굴을 쏜살같이 내밀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반가워 앨리는 끼르륵, 끼르륵 하고 소리를 냈다. 로잔느는 붉은 과일을 보고는 작은 지느러미를 들어 박수를 쳤다. 타야는 은은하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앨리와 로잔느의 맨질맨질하고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은 뒤 가지고 온 과일을 두 돌고래의 입에 넣어주었다. 돌고래들은 타야의 보드라운 손에 뾰족한 주둥이를 잔뜩 문질렀다. 보고 싶었다는 뜻이었다. 

타야는 앨리와 로잔느에게 열기구를 타고 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늘로 올라갔더니 마을이 손가락보다 작아져 어디가 어딘지 알아볼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그래도 자신의 집은 눈에 확 들어오더라는 이야기, 하늘로 올라갈수록 태양 때문에 더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추워서 옷을 껴입게 되더라는 이야기, 머리칼을 흩날리게 하는 기분 좋은 바람이 내내 함께 있었다는 이야기, 산을 넘을 때 산에 사는 동물들과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 산을 넘어가니 새로운 큰 마을이 있었다는 이야기 등 이야기를 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었다. 열기구를 타고 간 새로운 마을들에 대해서는 하나 같이 친절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했다. 타야는 세상의 나쁜 것이라고는 볼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을 잘 발견하고, 만들고,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돌고래들은 생각했다. 타야의 곁에는 항상 아름다운 경험들이 함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앨리는 타야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몸이 달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앨리는 타야가 있는 해변가로 몸을 일으켜 걸어나갔다. 타야는 앨리가 붉은 열매를 더 먹고 싶어 그러는 줄 알고 광주리를 안은 채로 열매를 건네주었다. 앨리는 타야가 주는 붉은 열매를 거절하지 않고 하나 먹더니 그 이야기가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꼿꼿이 선 채로 타야가 보게끔 꼬리로 바닥에 글자를 썼다.

‘열…기…구….’

타야가 앨리의 글자를 읽자 앨리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잔느도 물속에서 동그랗게 헤엄치며 물을 뿜었다. 하지만 타야는 열기구를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열기구가 좋아보인다고? 열기구가 신기하다고? 도대체 뭐!’ 

앨리는 작은 지느러미로 머리를 탁 치더니 다시 한 번 땅에 꼬리로 글자를 썼다. 이번에는 흥에 겨워 춤을 추듯이 썼다.

‘타…고…싶…어….’

타야는 멍하니 앉아 앨리와 로잔느를 바라만 보더니 앨리의 글자를 뒤늦게서야 이해하고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세상에, 돌고래가 열기구를 타겠다고?” 

앨리는 의미가 전달되었음을 알고는 다시 로잔느가 있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열정이 잔뜩 담긴 까만콩 같은 눈으로 타야를 응시했다. 

타야는 돌고래가 하늘로 올라가도 괜찮은거냐고 물어봤다. 앨리와 로잔느는 서로를 보며 까르륵, 까르륵 소리만 낼 뿐이었다. 타야는 하늘에는 가까이에 물도 없고 어떤 위험이 있을지 사실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섣불리 앨리와 로잔느에게 열기구를 빌려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자 앨리는 꼬리로 힘껏 물을 차며 반대 의사를 표출했다. 하늘에 꼭 올라가보고 싶다는 것이 앨리의 의지였다. 로잔느는 앨리의 퍼덕거림에 타야가 놀랄까 싶어 앨리를 진정시켰다. 타야는 머리를 탁 짚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조건이 있어요.”

앨리와 로잔느는 숨을 죽이고 타야에게 집중했다.

“다른 땅으로 내려가지 말고 여기 나에게로 돌아와야 해요. 앨리와 로잔느가 사람이랑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면 괴롭히는 무리가 생길지도 몰라요.”

앨리는 힘껏 끄덕였다. 너무 끄덕여서 머리가 배에 닿을 것만 같았다. 로잔느는 그런 앨리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저렇게도 좋을까 싶었던 것이다. 타야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끝내 앨리에게 열기구를 빌려주기로 약속했다.

다음 날, 앨리와 로잔느는 해변가가 조용한 틈을 타 타야의 도움을 받아 열기구를 타고 먼 하늘로 올라갔다. 열기구가 천천히 뱅글뱅글 돌면서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앨리는 어떤 자유로운 느낌을 느꼈다. 바구니를 타고 올라가는 모양새가 좀 웃기기는 하지만 세상에 어떤 돌고래도 하늘을 경험해본 적은 없을 것이었다. 로잔느는 앨리가 너무 움직이다 바구니 아래로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그의 곁을 지켰다.
앨리와 로잔느는 천천히 하늘 높이 올라갔다. 구름을 뚫고 태양의 곁으로 가까이 갔다. 그 동안 바람도 잔잔하게 불어 두 돌고래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올라가 어느 산 정상을 내려다보았더니 수염이 덮수룩한 늙은 남자가 열기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앨리는 그 모습이 신기해 타야의 조언을 무시하고 열기구를 내려 늙은 남자에게로 가려 했다. 로잔느는 그런 앨리에게 경고하며 막았지만 앨리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두 돌고래는 산 정상의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세상에, 돌고래들이 하늘로 올라왔구나.”

늙은 남자는 열기구에 탄 앨리와 로잔느를 보고는 두 눈이 동그래져 감탄을 표시했다. 늙은 남자는 남루하지만 하얀색으로 빛나는 옷차림에 까만 중절모를 쓰고 있었는데 푸른 산과 은근히 잘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남자가 손을 한번 튕기자 남자의 손에는 갖가지 색의 들꽃들이 가득 들려 있었다. 남자는 그 꽃을 열기구 안에 탄 앨리와 로잔느에게 건네주었다. 두 돌고래는 꽃이라는 것을 직접 만져보는 것이 처음이라 꽃을 먹어도 보고 지느러미로 건드려도 보았다. 향기를 맡으려 코를 대 보았다가 꽃가루가 코에 들어가 재채기를 몇 번이고 하기도 했다. 남자는 그런 앨리와 로잔느를 보며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이 산의 정령이야. 사람이 이렇게 올라오는 것은 자주 봤는데 돌고래들이 올라온 것은 내 생전 처음 본다. 누가 너희를 이렇게 올려준거야?”

앨리와 로잔느는 정령이라는 말에 꾸벅 인사를 하고는 그저 말없이 남자를 보기만 했다. 원래 말할 수 없는 동물이었으니 그렇게 보고만 있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정령에게 굳이 타야의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말이 없는 돌고래들이구나. 여기서 더 올라가면 바람의 정령이랑 태양의 정령, 구름의 정령 같은 무시무시한 존재들이 너희를 반길거야. 보통 사람들은 여기 나 산의 정령 주위를 맴돌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가긴 하지만 말야. 더 올라가볼테야?”

앨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까르륵 소리를 냈다. 로잔느는 깜짝 놀라며 지느러미로 그런 앨리의 등을 찰싹 쳤다. 하지만 앨리는 이왕 열기구를 타고 올라온 거, 하늘에 있는 정령들을 더 만나보고 싶었다. 산의 정령은 그런 앨리의 모습을 보고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하늘로 더 올라가면 정령들이 바다에 있어야 하는 너희가 하늘에 올라왔다고 꾸중을 하고 다시는 사람 친구랑 만나지 못하게 할지도 몰라.”

앨리는 타야를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답을 망설였다. 하지만 왜 정령께서 그런 슬픈 일을 작은 돌고래들에게 겪게 하려 한단 말인가. 앨리는 그럴리 없다고 믿으며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용기를 내 여행을 계속 하기로 결심했다. 산의 정령은 앨리와 로잔느가 산에 조금 더 머물기를 바랐었다는 듯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조금 둘러보더니 어느 크고 울창한 나무 아래로 가 기둥 위로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는 아주 달콤해보이는 노란색 열매를 따 앨리와 로잔느의 열기구 바구니에 넣어주었다. 

“맛있게 먹고, 다른 정령들을 보면 나눠주기도 하고 그래.”

두 돌고래는 산의 정령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다시 열기구를 하늘로 띄웠다. 산 정상과 멀어지는 동안 산의 정령은 앨리와 로잔느에게 손을 계속 흔들어줬다. 검은 모자를 벗으니 타야와 마찬가지로 곱슬곱슬하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산들바람에 흩날렸다. 앨리와 로잔느는 인사를 뒤로 하고 산의 정령이 준 열매를 한 개씩 깨물어 먹었다. 그러자 두 돌고래는 신기하게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어 사람 말을 하게 되었다. 정령이 앞으로의 여행에 도움이 되라고 준 선물이었던 것이다. 
앨리와 로잔느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신기하고 기뻐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여러 다양한 주제들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타야와 이렇게 대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두 돌고래는 어깨춤이 절로 났다. 하지만 아쉽게도 노란 열매가 다 소화되면 두 돌고래는 다시 말을 할 수 없었다. 열매의 약효가 다 되면 말하는 능력도 없어지는 듯 했다. 앨리와 로잔느는 이 사실을 알기 전에는 열매를 마구 먹다가 나중에는 타야를 만나기 전까지 열매를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주 조금씩만 먹기 시작했다.

산의 정령과 얼마나 멀어졌을까, 멀리 올라간 열기구 옆에는 구름의 정령이 옆선이 깊게 파인 하늘색 기다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두 돌고래를 구경했다. 굵게 펌이 되어있는 짧은 하얀색 머리칼이 우아하고 예뻐보였다. 앨리와 로잔느는 구름의 정령에게 손을 흔들며 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구름의 정령은 누워있다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돌고래들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이내 호탕하게 웃음을 지었다. 

“돌고래들이 하늘에도 올라오고 말도 하네?”
“네, 사람 친구가 하늘에 올라오는 것을 도와줬고 산의 정령이 말을 할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구름의 정령이라면 비를 내리는 정령이니 물과 친한 돌고래들과도 인연이 있다면 있는 것이었다. 구름의 정령은 하늘에 올라온 돌고래들을 친근하게 생각하며 가까이에 있는 태양의 정령을 만나기 전에 주의해야 할 사항을 이야기 해줬다.

“태양의 정령은 할 일이 아주 많아서 너희를 귀찮아할지도 몰라. 그리고 조만간에 사람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 줄 일이 있다면서 불의 정령을 불러들였어. 태양의 정령과 불의 정령이 같이 일을 벌이면 보통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

앨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모릅니다, 정령님.”

구름의 정령은 하얀 구름을 솜사탕처럼 뭉쳐 앨리와 로잔느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앨리와 로잔느는 한입 베어 물었다. 언젠가 타야가 줬던 붉은 열매의 맛이 났다.

“사람의 마을에 큰 불이 날거야. 산의 정령이 있는 산도 탈거고.”
“그럼 안됩니다 정령님. 마을에 불이 난다면 저를 하늘로 올려준 친구가 고통스러워 할거에요.”
“그럼 조금 더 올라가서 태양의 정령을 만나면 한번 이야기해보려무나.”

구름의 정령은 열기구를 올려 구름을 떠나려는 앨리와 로잔느에게 작은 얼음알갱이들로 이루어진 얼굴 가리개를 선물로 줬다. 두 돌고래는 구름의 정령과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하늘로 향했다.
열기구의 공기를 데워 더 높은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한 앨리와 로잔느는 오래 걸리지 않아 태양의 정령의 집무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태양의 정령은 사방에 가득한 태양의 햇살을 움직이기 위한 연료를 쬐는 마냥 마음껏 받으며 커다란 집무실 책상에 앉아 수도 없이 쌓인 종이들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는 따분하다는 듯 기지개를 켰다. 하품을 하자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앨리와 로잔느는 구름의 정령이 준 시원한 얼굴가리개를 꺼내 태양의 열기에 익으려고 하는 둘의 작은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산의 정령이 준 노란 열매를 하나 꽉 깨물어 먹은 뒤 태양의 정령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태양의 정령님.”
“너희는 누구야?”
“저 먼 바다에 사는 돌고래 앨리와 로잔느라고 합니다.”
“돌고래가 용케도 여기까지 올라왔구나. 무슨 일로 나를 불렀니?”
“불의 정령님과 협심해서 사람의 마을에 불을 내려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 그거? 별 의미 없는거야. 우리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랄까?”
“그 결정을 거두어주세요. 저를 여기 하늘에까지 오르게 한 친구가 슬퍼합니다.”
“돌고래야, 그건 불가능해. 이미 정해진 일인걸. 불의 정령은 이미 나와의 협의를 거쳐 마을에 불을 내려고 땅으로 내려갔단다.”

앨리와 로잔느는 얼굴가리개로 얼굴을 가린 채로 땅에 있는 타야가 가여워 눈물을 뚝뚝 흘렸다. 구름 모양 얼굴 가리개 아래로 흐르는 눈물방울은 마치 작은 구름으로부터 떨어지는 빗물 같았다. 그러자 태양의 정령은 돌고래들의 눈물을 보고는 마음이 약해졌다. 사람과 우정을 맺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

“돌고래야, 내가 너의 친구가 있는 곳으로 곧장 보내줄테니 앞으로 일어날 화마로부터 무사히 피하도록 소식을 전해주면 되지 않겠니?”

앨리는 눈물을 닦고 태양의 정령에게 말했다.

“정령님, 앞으로도 제가 어디에서든 정령님의 이야기를 듣고 저의 친구가 위험한 순간에 닥치는 것을 피하도록 도울 수 있게 해주세요.”

태양의 정령은 하늘까지 올라온 돌고래들의 용기와 사람 친구를 향한 마음이 기특해 그 소원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돌고래들은 태양의 정령이 열어준 길을 따라 열기구를 타고 내려가며 앞으로는 정령의 목소리를 원할 때마다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태양의 정령이 열어준 길이 흐릿하게 지워져가자 해가 지고 저녁이 찾아왔다. 앨리와 로잔느의 열기구도 저녁바람과 함께 바닷가에 무사히 안착했다. 두 돌고래가 언제쯤 돌아올까 기다리며 밤마다 바닷가를 거닐던 타야가 열기구를 발견하고 멀리서 달려왔다. 앨리는 타야를 보자마자 노란 열매를 하나 아작아작 씹어먹더니 타야에게 꼭 안겼다. 

“타야…”
“으악!”

타야는 앨리가 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놀라 뒤로 자빠졌다. 그러나 이내 여행 중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은은하게 웃었다. 앨리는 타야가 너무 반가웠지만 같이 웃을 여유는 없었다. 타야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타야, 우리가 하늘에서 보고 온 것들에 의하면 이 마을에는 곧 불이 날거야. 마을도 다 타고 산도 타고 사람들이 다칠거라고. 그걸 막기 위해서, 너에게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 여행을 빨리 마치고 돌아왔어. 그러니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피하든 대비를 하든 너희를 지키기 위한 일을 해.”
“앨리, 내가 여기를 떠나면 이제 앨리를 다시는 못보는 거에요?”

앨리는 노란 열매를 타야에게 하나 줬다.

“나와 로잔느는 이제 태양의 정령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어. 그러니 너에게 전해야 할 말이 생기면 네가 머무는 마을의 바닷가에 나타날게. 내가 언제든 갈 수 있게 바다 근처에서 살아줘.”

타야는 앨리가 준 노란 열매를 깨물어 먹었다. 타야가 두 돌고래에게 주던 붉은 열매만큼이나 달았다. 마치 타야는 이 열매를 먹은 순간 앨리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연을 맺게 된 것만 같았다. 
이후, 타야의 마을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화마에 휩싸였지만 타야의 노력과 지혜로 인해 마을사람 모두 큰 피해 없이 불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래서 타야는 다행히 마을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다. 이후 타야와 앨리, 로잔느는 바닷가에서 여느때처럼 종종 만났다. 그 사이 앨리와 로잔느는 아이가 생겼고, 집을 타야의 마을이 있는 바다로 옮겼다. 

앨리와 로잔느의 후손은 앨리 세대의 인연으로 태양의 정령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을 가지고 살게 되었으며, 돌고래가 준 노란 열매를 먹은 타야의 후손은 신비로운 돌고래들과 알 수 없는 고리로 연결된, 남들보다 더 앞을 내다보는 사람들이 되었다. 먼 훗날 세상에서 미래를 보는 능력을 지닌 여자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도 대부분 타야의 후손이었다. 

돌고래가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오르는 일은 앨리와 타야의 인연으로 단 한번 일어났던 일일 뿐,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산의 정령이 준 노란 열매가 이제는 바닷가에 없었기 때문에 돌고래가 말을 하는 일도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서로 오가는 말이 없어도 돌고래와 사람의 우정은 오랜 시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바다의 넓고 깊은 크기만큼이나 서로를 향한 애정 어린 우정의 빛을 꺼뜨리지 않고 영원히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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