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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환 문근영 대통령

2004.11.26 21:1511.26

1


  동쪽 하늘은 선명한 보라색, 서쪽 하늘은 완전한 청녹색이었다. 해는 보라색과 청녹색 하늘 중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를 결정하지 못해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마침내 해는 스스로 빛을 꺼버리고 모습을 감췄다. 이제 청녹색 하늘과 보라색 하늘은 서로를 밀어내려고 애쓰며 전쟁을 벌였다. 둘 중의 한 가지 색으로 하늘이 통일될 때까지 그 전쟁은 끝나지 않을 듯 싶었다. 파란 하늘은 어디 갔을까, 나는 의문조차 가질 수 없었다.
  나는 병원에 앉아, 창문을 통해 세상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팔에 붕대를 감기 위해 병원으로 왔다.
  붕대를 감아준 의사는 문어였다. 그의 팔(다리) 여덟 개는 소독약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일이 많다보니 소독약이 팔(다리)에서 마를 새가 없다고 문어 의사는 말했다.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문어 의사는 내 팔의 타박상이 심각하진 않다고 했다. 얼굴의 상처도 흉으로 남진 않을 거라고 했다. 그는 약도 처방해 주었다. 약봉지를 가져다 준 간호사 카나리아는 나를 병원 로비에 데려다 앉혔고, 곧 누군가 나를 모시러 올 거라고 말했다. 기다리는 동안 커피라도 드시겠느냐고, 카나리아 간호사는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것이 내가 오늘 처음 한 말이었다. 건조한 목소리로 카나리아에게 커피를 사양하는 이 순간이, 그리고 이 순간이 계속해서 불러오는 새로운 순간들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보라색 하늘이 청록색을 모두 덮어버릴 때쯤 그들이 나를 데리러왔다. 한 떼의 두더지들이었다. 선글라스를 쓴 그들은 나를 자동차로 안내했다. 나는 잠자코 차에 올라탔고, 두더지들이 모는 오토바이는 내가 탄 차를 앞뒤로 경호하며 달렸다.
  나는 운전사 두더지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문근영 대통령께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나는 잠시 동안 할말을 잃었다.
  “문근영이 대통령이에요?”
  두더지는 백미러로 흘낏 나를 보았다.
  “현재씨가 계신 곳에서는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었나요?”
  “네……”
  대통령이 누구였더라?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이 많은 아저씨였는데, 이마에 주름이 많은.
  “이곳에서는 문근영 각하께서 대통령이십니다.”
  문근영 각하라. 재미있는 단어였다.
  나는 창밖을 보았다. 이제 남쪽에서 일어난 붉은 하늘이 보라색 하늘에게 도전하고 있었다. 하늘은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색깔의 폭풍에 눈이 아파진 나는 세상을 둘러보았다. 청와대로 가는 길가의 건물들은 모두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무너져있었다. 그 괴물 때문이었다. 그 커다란 놈이 온 서울을 다 짓밟고 다녔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건물이 다 부서졌네요.”
  “괴물 때문이죠.” 두더지 운전사는 대답했다. “괴물을 없애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현재씨가 아니었으면 서울이 흔적도 남지 않았을 겁니다.”
  “별 말씀을요.”
  나는 부서진 건물과 내려앉은 차도, 끊어진 고가도로들을 보며 대답했다.
  “저도 제가 어떻게 없앴는지 잘 모르는 걸요.”

  청와대에 도착하자, 두더지 운전사들은 한 떼의 경호원에게 나를 넘기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경호원들은 다 내 나이 또래거나 나보다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들이었다. 그중 한 명이 츠마부키 사토시를 꼭 닮아서, 나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미팅룸에 도착하자, 츠마부키 사토시 닮은 경호원을 제외한 다른 경호원들은 사라졌다. 청와대에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라, 그리고 다시 들어올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나는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구경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으나 경호원은 도대체 눈을 마주치려고도, 대화를 나누려고도 하지 않았다.
  경호원이 갑자기 허리 숙여 인사했다. 나는 그가 허리를 숙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대통령을 보았다.
  여고생 교복을 입은 예쁜 문근영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문근영 대통령이에요.”
  나는 대답했다.
  “그렇…… 근영.”


2


  문근영 대통령이 나를 안내한 곳은 청와대의 지하 5층, 벙커 안에 마련된 비밀 회의실이었다. 벽은 핵폭탄이 떨어져도 끄덕 없을 것 같이 단단해 보였다. 문 대통령은 잠시 후 회의가 있을 예정이니 경호원과 함께 기다리라고 말한 뒤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래서 나는 츠마부키 사토시를 닮은 경호원과 회의실에 남아 그녀를 기다렸다.
  어두컴컴한 회의실에 앉아 거의 두 시간을 기다렸다. 무슨 회의를 하는 건지, 그 회의에 내가 왜 참석해야 하는 건지는 누구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경호원도 말해주지 않았다.
  다시 한참이 지나서야 내가 만나야 할 사람들이 들어왔다.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백인 소년 소녀들로 이루어진 경호원이었다. 그들의 뒤를 따라온 것은 금발머리 소녀였다. 분홍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다코타 패닝이었다.
  그녀는 내 건너편에 앉더니, 나를 힐끗 보았다.
  “다코타 패닝 미국 대통령입니다.”
  경호원은 설명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뭘 깨달아서 고개를 끄덕인 건 아니었다. 나는 정신이 멍했다.
  그 다음엔 문근영 대통령이 들어왔다. 패닝 대통령의 옆자리에 앉은 그녀는 말했다.
  “엠마 왓슨 영국 총리와 이시하라 사토미 일본 총리는 약간 늦을 예정이랍니다.”
  미국 대통령, 한국 대통령, 영국 총리, 일본 총리…… 그러니까 이 회의는 한, 미, 일, 영 4개국 정상회담이었다. 그것도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극비리에 열린. 철없는 고등학생인 나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경호원은 벽에 붙어 선 채 침묵을 지켰다. 대통령들도 아무 말 않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때문에 생긴 어색한 침묵이 있은 후, 패닝 대통령은 말했다.
  “영국 총리가 너무 늦네요.”
  “일본 총리와 복도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문 대통령이 대답하자, 패닝 대통령은 투덜거렸다.
  “보나마나 대니얼 레드클리프 때문에 그런 걸 꺼야.”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과의 말과 함께 들어온 건 캘빈 클라인 티셔츠에 디젤 청바지를 입은 엠마 왓슨이었다. 그 뒤로 검은색 투피스 정장을 입은 이시하라 사토미 총리가 들어왔다.
  “잠시 이야기 할 게 있어서요.”
  자리에 앉은 왓슨 총리가 말하자 패닝 대통령은 다시 투덜거렸다.
  “대니얼 이야기요?”
  이시하라 총리가 수줍게 대답했다.
  “대니얼군이 일본에서 인기가 많잖아요.”
  “그래도 네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와서 피곤해 죽겠는데 별 필요도 없는 이야기 때문에 회의가 늦어지면……”
  “자, 자, 그만 진정들 하시고,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문근영 대통령은 각국의 정상들 사이에서 벌어진 신경전을 무마하려 애쓰며 말했다. 문근영만큼이나 어려 보이는 소녀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경호원은 그녀가 국방부 장관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여자아이가 군복을 입고 있는 거구나. 나는 그녀의 가슴팍에 붙은 커다란 훈장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오후 13시 13분경에, 서울 강서구 지역에 괴물이 출몰했습니다. 높이 약 15미터로 추측되는 이 괴물은 서울에 스물여섯 번째로 나타난 공룡형 괴수입니다. 이 괴물이 국군 레이다망에 포착된 것은 2분 후인 13시 15분이었습니다. 괴물은 십여 분 동안 학교와 가정 주책 및 상가건물 오십여 채를 부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전투기 두 대와 헬기 다섯 대가 출동했으나, 괴물과 직접적인 교전을 벌이진 않았습니다. 25분경에 등장한 다른 정체불명의 물체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 로보트입니다.”
  국방부 장관은 슬라이드를 넘겼다. 검은 로보트가 갈색 하늘을 배경으로 괴물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기체 높이 16미터, 검은 금속성 물질로 표면을 감싸고 있고, 모양은 일본 망가에 등장하는 거대 로보트들과 비슷합니다. 로보트는 갑자기 땅에서 솟아올랐습니다.  그 장면을 포착한 사진은 없습니다만, 투명한 그림자가 땅에서 일어나더니 단단한 물체로 변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습니다. 로보트는 괴물과 격투를 벌였으며, 십여 분간의 전투 후 괴물의 머리를 몸체에서 뜯어내어 활동을 정지시켰습니다.”
  국방부 장관의 지시 하에 차례대로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로보트가 괴물의 머리를 들고 있는 사진에 이르자 ‘으엑 징그러’ 라고 사토미 총리가 중얼거렸다.
  “괴물의 활동이 정지하자 로보트 역시 활동이 정지했습니다.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기고 로보트를 확인하기 위해 파견된 군부대가 주변을 수색하던 도중, 로보트 조종사인 조현재씨를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았다.
  “조현재씨는 방금 병원에서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신체에는 별 이상이 없다고 의사가 확인해주셨습니다. 그럼 조현재씨가 오늘 있었던 일을 증언해 주시겠습니다.”
  그것이 내가 이 회의실에 온 이유였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문 대통령은 꼭 일어날 필요 없이 편하게 말하라고 했다.
  “음…… 뭐부터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더듬더듬 말했다.
  “처음 괴물을 봤을 때가 수학 시간이었어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어요. 점심시간 다음이라 무척 졸렸어요. 졸다가 딴 생각하다가 졸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창 밖으로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요.
  처음엔 헛 걸 듣나보다 했어요. 수업 중에 듣기엔 너무 괴상한 소리였거든요. 그 소리가 머리를 울릴 만큼 커지고 나서야 내가 헛 걸 듣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무슨 소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소리가 학교를 흔들 정도로 커지는 순간에야 무슨 소리인지를 떠올렸어요. 어렸을 때 극장에서 쥬라기공원을 봤는데, 그 영화에 보면 그런 장면이 있어요. 자동차 안에 갇혀 있는데 쿵쿵 소리가 들려서 보면, 컵의 물이 흔들리는 장면.”
  “멋진 장면이죠.”
  패닝 대통령이 말했다.
  “그것과 비슷했어요. 그 소리는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오면서 바닥을 쿵쿵 울리는 소리였고, 곧 그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눈앞에 나타났죠.
  창문 밖으로 괴물이 보였어요. 공룡과 악마의 중간쯤 되는 모습의 괴물이요. 얼마나 큰지, 머리가 창문을 다 채우더군요. 우리 반이 4층이었는데 4층에서 머리가 보일 정도면 십 몇 미터가 넘는 거잖아요. 저는 완전히 공포에 질렸어요.
  괴물은 저에게 물었어요. 네가 3학년 2반 27번 조현재냐고. 그래서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그렇다면 절 죽이겠다고 말했어요.
  놀라서 벌떡 일어났죠. 그런데 아무도 저에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전 옆자리의 친구를 흔들면서 창 밖을 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친구는 무신경하게 창문을 보더니, 다시 무신경하게 책으로 고개를 돌리더라고요. 선생님도 마찬가지였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괴물을 보는 건 저 뿐인 것처럼 다들 무관심해했어요.
  괴물은 교실로 팔을 들이밀었어요. 창문이 깨지고 벽이 부서져 나갔죠. 복도를 미친 듯이 달려갔어요. 계단을 구르듯 내려갔고요. 그래서 운동장으로 달려갔는데, 괴물은 제가 학교를 빠져 나온 걸 아직 모르고 있었어요. 운동장을 반쯤 달려가는데 그제야 눈치 채고 저를 따라오더라고요.
  그 때쯤 저도 세상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어요. 하늘은 하늘색이 아니었어요. 주변의 건물도 다 이상했고 길도 이상했어요. 게다가 모두 많이 부서져 있었어요. 오래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낯선 주변에 우왕좌왕하는 사이 괴물이 다가와서 저를 밟으려 했어요. 몇 번 피하니까, 이번에는 주둥이로 물려고 했어요. 거의 물리기 직전까지 갔죠. 이제 죽었구나 싶은 순간, 땅에서 로보트의 손이 솟아나서 괴물의 주둥이를 막았어요.
  증인들의 말이 맞아요. 로보트는 그림자처럼 투명한 상태로 땅에서 솟아올랐다가, 땅 위에 모습을 모두 드러내면서 실체를 찾아가더니 단단한 로보트가 되었어요. 로보트가 저에게 부탁하더군요, 저 괴물을 없애달라고. 저 괴물을 없애려면 제 힘이 필요하다고요. 그래서 전 그렇게 했어요.“
  나는 힐끗 슬라이드를 돌아보았다. 로보트가 괴물을 없애는 사진들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로보트가 손을 뻗어 저를 덮는 순간 저는 로보트 안에 있었어요…… 음, 정확히 설명하기가 힘든데, 저는 로보트의 안에 있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로보트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제가 로보트의 안을 꽉 채우고 자리 잡았어요. 마치 갑옷처럼 로보트를 입고 있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저는 십 몇 미터짜리 거대한 로보트가 돼있던 거죠. 로보트처럼 느끼고 로보트처럼 움직였어요. 괴물과 부딪혔을 때도 피부로 느낀 것이 아니라 로보트의 금속 표면으로 괴물을 느꼈어요.
  싸움은 힘들었지만……”
  등 뒤의 슬라이드가 철컥 소리를 내며 멎었다. 맨 마지막 사진인, 초록색 피투성이의 괴물 머리를 손에 들고 있는 로보트 사진에서 슬라이드가 멈췄다.
  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싸움은 힘들었지만 결국 이겼어요. 사실 싸움은 잘 기억 안나요, 정신을 차리니까 손에 괴물 머리를 들고 있었어요.
  로보트는 저를 자신의 몸 밖으로 내려놓고 활동을 정지했어요. 주변을 통제하던 경찰하고 군인들이 저를 병원으로 데리고 왔어요. 진찰을 받고, 팔에 붕대를 감았어요. 그리고 이곳으로 왔죠.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아시겠죠.”
  나는 설명을 끝냈다. 4개국의 수뇌들은 침묵했다.
  “이상으로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문 대통령은 말했다.
  “잠시 휴식한 다음, 다시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3


  나는 다시 접견실에서 하늘을 보며 대통령을 기다렸다. 이제 하늘은 검은 색이었다. 밤이었다. 별들은 이리저리 하늘을 배회하며 어느 곳에서 자리를 잡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츠마부키 사토시를 닮은 경호원이 말하길, 열두시를 넘어서 별들이 자리를 잡을라치면 달이 나타나서 별들을 방해한다고 설명했다. 별들도 참 피곤하겠구나.
  경호원이 저녁을 먹겠느냐고 물어보는데, 대통령이 돌아왔다. 그녀는 별들만큼이나 피곤해 보였다.
  “회의는 잘 끝났나요?”
  문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3개국 모두 한국에 대한 지원금을 더 올리기로 합의했어요. 아, 무슨 지원금을 말하는 거냐면, 지구상에서 괴물과 전쟁을 벌이는 곳은 한국의 서울뿐이거든요. 그래서 각국에서 전쟁 때문에 생긴 피해를 지원하는 자금을 보내고 있어요. 이제 로보트까지 떠맡게 됐으니 로보트를 관리하는 돈이 더 필요할 것 같아 지원금을 올려달라는 회의를 한 거였어요. 회의는 별 탈없이 잘 끝났어요. 각자 선물을 주고받은 다음 자기 나라로 돌아갔어요. 왓슨 총리는 사토미에게 대니얼 래드클리프의 싸인을 주었고, 패닝 대통령은 저에게 어셔 리페키지 시디를 선물했어요. 저는 사토미 총리에게 동방신기 싱글을 선물했어요.”
  “돈을 지원 받아야 할 정도로 서울의 피해가 심각한가요?”
  “그렇다기보다는, 세계의 미래가 걸린 싸움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으니까 다른 나라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고 봐야 옳죠. 우리는 그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거고요.”
  복잡한 외교문제였다. 대통령이 잘 알아서 처신하고 있겠지. 나는 문 대통령을 믿기로 했다.
  나는 잠자코 서울의 야경을 보았다. 불이 환히 켜진 건물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괴물의 잔혹한 파괴 행위의 희생물이 되어있었다. 나는 미친 듯한 소비의 속도만큼이나 북적거렸던 서울의 야경을 생각했다. 그것에 비하면 이 서울은 폐허였다.
  “현재씨의 로보트가 없었다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을 거예요.”
  문 대통령은 말했다.
  “속수무책이었어요. 괴물은 어떤 화력으로도 막을 수 없었으니까요. 보시다시피 서울은 제대로 남아있는 건물이 없을 지경이에요. 사람들은 거의 떠났어요. 동물들만 남아서 서울을 지키고 있죠. 현재씨가 건너온 서울은 어떤 가요?”
  나는 서울을 설명했다. 그 거대한 건물들과 단단한 도로들과 바쁜 사람들을 말이다. 잡초가 자랄 틈이 없는 보도블럭과 빛보다도 빨리 변하는 유행들도 말했다. 문 대통령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대통령인 동안, 이 서울도 그런 서울로 만들고 싶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엔 현재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대통령이 말했다. 나라를 위해 로보트를 조종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문근영 대통령이.
  나는 말했다.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겠어요?”
  “네. 뭐 필요하신 것이라도?”
  나와 대통령은 마주보았다.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 나는 물었다. “마리아의 아들이 뭔가요?”
  “마리아의 아들……마리아의 아들…… 그 단어를 어디서 들으셨나요?”
  “괴물과 처음 마주쳤을 때 괴물이 나에게 물었어요. 네가 마리아의 아들인 3학년 2반 27번 조현재냐고. 다른 대통령이 있는 정상회담에서는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말 안했어요. 하지만 문 대통령께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마리아의 아들이 뭐죠?”
  문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팔을 잡았다.
  “저를 따라오세요.”

  그곳은 비밀 회의실보다도 다섯 층을 더 내려간 곳이었다. 마지막 출입문을 통과하는 순간, 문 대통령은 이 문을 지나가도록 허락 받은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단 여섯 명뿐이라고 말했다.
  회의실보다도 더 단단해 보이는 벽이 둘러싼 작은 병실이 있었다. 최첨단 의학기기로 보이는 기계들이 가득했으며 창백한 형광등이 유일한 조명이었다. 조명이 비추는 것은 죽은 듯이 잠든 한 소녀였다.
  “서울에 첫 번째 괴물이 나타났을 때였어요.”
  열한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나는 소녀의 붉은 머리카락, 흰 피부, 조용히 잠든 미소를 차례대로 보며 문 대통령의 설명을 들었다.
  “괴물은 서울의 건물이란 건물은 모조리 파괴해나갔죠. 대한민국의 병력으로는 괴물을 막을 수 없었어요. 아니, 인간의 어떤 화기로도 괴물을 막을 수 없었어요. 속수무책으로 괴물에게 당하고 있던 순간 마리아가 세상에 나타났어요. 이 소녀가 바로 ‘마리아’에요. 우리들이 지은 암호명이죠.
  마리아가 괴물을 무력화시키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이 남아있느니 보여드리겠어요. 마치 그림자에 빛을 비춰 그림자를 없애버리듯, 자신의 힘으로 괴물을 비현실화 했어요. 기적적인 일이었어요.
  그리고 마리아는 자신의 힘으로 세상까지 바꿔놓았어요. 이전까지 세상을 지배하던 규칙을 모두 뒤집어 놓았죠.
  모든 성인 남자들은 다 사라졌어요. 그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어요. 아이들은 어른이 되지 않아요. 자신이 성장하겠다고 자각하면 청소년은 될 수 있지만 어른은 되지 않아요. 대통령은 19세 미만의 여자아이들만이 될 수 있어요. 오직 소녀들만이 가능한 거죠.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거고요.
  더 거친 변화도 많았어요. 기존의 고정된 것들은 모두 자유스러워졌어요. 동물도 말을 할 수 있어요.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권리가 주어졌죠. 하늘의 색은 제멋 대로죠. 해와 달과 별도 마음대로 뜨고 져요. 시간 역시 불규칙하게 흐르고요. 계절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아요. 자연에 ‘법칙’이라는 것이 모두 없어졌다고 생각하셔도 좋아요.
  마리아의 강림 이후 생긴 변화를 기억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아요. 마리아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그러니까 자신을 돌봐줄 몇 사람에게만 이 기억을 남기고 나머지 사람들의 기억은 모두 지워버렸어요. 나머지 사람들은 그런 과거가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거죠. 저 역시 몰랐어요. 대통령이 되고서야 전 대통령에게서 정보를 받았죠.
  그 후로 괴물은 자주 나타났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마리아가 깨어나 괴물을 없애고 다시 잠들었어요. 그때까지는 아무 문제없었죠. 하지만 얼마 전부터 괴물이 나타났는데도 마리아가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괴물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 와중에 현재씨와 현재씨의 로보트가 나타난 거예요.”
  문 대통령과 서울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중요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을지를 그때야 짐작할 수 있었다. 경호원의 무뚝뚝한 태도조차도, 나에 대한 예우에서 비롯됐던 것이다.
  하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던가? 괴물은 세상에 왜 나타나고, 마리아는 왜 강림했던 걸까? 그걸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대통령에게 물었다. 대통령은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평행우주라는 개념 아세요?”
  “잘 모르지만 들어본 적은 있어요.”
  “간단해요, 우주의 개수가 무한하다는 거예요. 우주의 개수가 무한한만큼 어딘가에는 나와 같은 내가 존재하는 우주 역시 있을 수 있는 거죠. 그 나는 이곳의 나와 다른 선택을 하며 다르게 살아갈 수도 있는 거고요. 그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어요. 제가 아니라 권보아 과기부장관이 하려 애썼는데, 그래서 저도 잘은 몰라요. 과탐은 너무 어렵거든요. 하지만 아는 대로 설명하자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리아는 다른 평행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마리아는 우주를 조정해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우주에 지금의 우주를 대체했어요.
  이해하실 수 있나요? 마리아는 자신이 원래 있던 우주에, 신으로 군림하는 우주를 덮어놓은 거예요. 그 두 우주간의 거리는 무한했지만 이제는 0에 가깝죠. 그리고 둘은 마리아를 통해 연결되어있고요. 현재씨 역시 마리아를 통해 이곳으로 온 거죠.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리아는 원래의 우주를 없애진 않았어요. 단지 마리아가 지배하는 우주가 우위를 점하고 있을 뿐이죠. 괴물도 그 때문에 등장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로보트는 마리아가 이 괴물을 이기기 위해 현재씨에게 준 선물일 거예요. 현재씨는 로보트의 힘을 증폭하는, 즉 마리아를 돕는 존재이고 인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은 남아요. 왜 현재씨를 선택했냐는 거죠. 그 이유는 현재씨만이 짐작해낼 수 있을 텐데, 혹시 아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여전히 시선은 마리아에게 향한 채였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아무 것도 생각해내지 못하자, 문 대통령은 물었다.
  “처음 괴물을 봤을 때,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지 않았나요?
  “아뇨, 그냥 수업 중이었어요.”
  “그러면 로보트에 탑승했을 때는?”
  “모르겠어요. 제가 탑승하게된 건 제 의지가 아니라 로보트의 권유였으니까요.”
  더 이상 진전이 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마리아로 다가갔다. 그녀의 옷자락을 건드려 보았다. 너무나 위험한 인물이라 옷자락을 만지는 것조차도 불경스럽게 느껴졌다. 문 대통령은 조용히 나를 지켜보았다.
  나는 천천히 마리아의 손을 잡았다. 문 대통령이 약간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문 대통령님은, 스너프라는 것을 아나요?”
  “실제로 일어나는 성폭행을 담은 포르노그라피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알고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그렇다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스너프 필름이 있는 것도 아시겠네요?”
  “현재씨가 있던 세상에는 그런 것이 있었나요?”
  “네.”
  “우리에겐 그런 것이 있을 수 없어요. 이 세상은 소녀들이 중심이니까.”
  “우리에겐 그런 것이 있었어요. 더럽기 짝이 없는 것이죠.”
  더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죠, 나는 중얼거렸다. 더럽기 짝이없는 것이었죠…… 동시에 문 대통령이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갑자기, 현재씨가 희미해졌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주변의 세상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저도 알아요. 두 세상을 넘나드는 방법을 방금 깨달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온 세상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문 대통령은 다급하게, 그리고 절박하게 말했다.
  “괴물이 나타나면 로보트를 조종하기 위해 돌아와 주세요. 현재씨가 없으면 괴물을 이길 수 없어요. 돌아와 주실 거죠?”
  나는 대답했다.
  “네, 문근영 대통령 각하.”
  나는 사라졌다.


4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두 개의 세계를 건너는 방법은 쉬웠다. 그 구조를 이해했으므로 이해한 대로 행동만 하면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창 밖으로 괴물을 본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가 생각난 것이다. 로보트에 올라탔을 때 했던 생각도, 로보트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괴물을 없앴을 때 했던 생각 역시 떠올랐던 것이다. 그 세 순간에 공통적으로 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리는 순간, 그것이 마리아를 자극해서 두 세계의 통로를 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친구들은 내가 점심시간 내내 잠들어 있었다며 어디 아프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멍했다.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두 대나 놓친 다음에야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도 여전히 머리 속은 멍했다. 나는 괴물을 죽였던 때의 일이 자꾸만 떠올라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로보트에 올라타 로보트 조종사가 되자, 곧바로 괴물은 나에게 덤볐다. 초반에는 내가 유리했다. 나는 괴물을 두들겨 패는데 성공했고 녀석을 때려 눕혔다. 하지만 괴물은 그것으로 죽지 않았다. 나는 괴물의 양쪽 눈을 터트렸는데, 괴물은 시력을 눈에만 의존하지 않았는지 여전히 쌩쌩하게 나를 공격했다. 그래서 팔과 다리를 무력하게 만들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괴물은 팔과 다리를 재생해 나에게 덤볐다. 그런데 눈은 왜 재생하지 않았을까? 역시 눈은 장식용이었던 것이다.
  나는 괴물을 반으로 갈라놓거나 찢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해냈을 때에는 내가 많이 지쳐있었다. 나는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다가 괴물에게 목을 물렸다……
  나는 내가 왜 이런 괴물을 상대로 싸우다가 목을 물어 뜯겨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순간 떠오른 것은 한 명의 소녀였다.
  나는 어제 밤 컴퓨터로 포르노그라피 한편을 보았다. 친구가 어렵게 구한 거라며 건네준 스너프 필름이었다. 진짜 스너프가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어설픈 포르노그라피였다. 하지만 소녀는 진짜였다. 성폭행은 진짜가 아니었지만, 섹스를 하고 있는 건 진짜 소녀였다.
  붉은 머리에 흰 피부를 한 그 소녀를 보며 마치 온 몸으로 전쟁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소녀를 착취하려는 어른들에 맞서, 삶을 두고 밀고 당기는 전쟁을 하는 것 같다고. 소녀는 포르노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포르노를 하지 않으면 먹고 살수 없을 것이다. 자신을 착취하려는 어른들에게 대항했다간 포르노 보다 더 심한 일을 해야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내가 수업 시간에 했던 생각도 그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소년 소녀들이 어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을까? 착취하려는 어른들과, 우리를 지키려는 어른들 사이에 얽혀서 말이다.
  나 역시 세상과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이렇게 괴물에게 목을 물려있는 것처럼, 전쟁을 벌이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
  그것이 내가 했던 생각이었다!
  그 다음 순간 나는 마리아에게서 무시무시한 힘을 얻어, 괴물을 죽였다.
  괴물에게 쫓기다가 죽을 뻔한 순간에도, 그 소녀를 생각했다. 그러자 마리아는 나에게 괴물과 맞서 싸울 로보트를 주었다.
  수업시간에도 그 소녀 생각을 했다. 소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그러자 마자 창 밖에서 괴물을 보았다.
  그리고 청와대 지하에 누워있는 마리아를 보는 순간, 마리아가 내가 본 포르노그라피의 그 소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녀의 손을 더듬는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마리아가 나에게 말한 것이다.
  이 전쟁을 도와달라고.
  더러운 어른들에게서 착취당하는 소녀들을 구할 수 있도록 자신을 대신해서 싸워달라고.
  그래서 나에게 로보트를 주었으니, 제발 자신을 위해 로보트를 조종해 달라고……
  그것을 깨달은 나는, 내가 있던 세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았다. 이 세상에서는 밤하늘의 별이 하늘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달도 별을 훼방놓거나 하지 않았다.
  오늘은 초승달이었다. 나는 달의 가늘고 날카로운 곡선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문 대통령이 설명했듯, 소녀는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건 확실했다. 그것이 평행우주라는 개념으로 설명가능 한 것도 확실했다. 그러므로 나는 차근차근 생각해보았다.
  내가 만약 어린 나이에 포르노그라피 배우가 되어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다면, 그런데 내가 무한히 많은 평행우주를 조종하는 능력이 생겼다면, 그렇다면 나는 그 능력을 이용해 무엇을 할 것인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 나는 내가 존재하는 평행우주를 없애버리고, 내가 신처럼 군림할 수 있는 평행우주로 갈 것이다.
  하지만 그녀만 그런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녀를 착취하는 쪽에도 역시 그녀와 같은 힘이 있다면? 둘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나겠지.
  그 전쟁이 바로 이 전쟁이다. 괴물은 그녀를 막으려는 자들의 힘이고, 로보트는 그 괴물에 대항하기 위한 마리아의 힘일 것이다.
  문근영 대통령은 괴물을 먼저 봤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마리아가 세상에 강림했고,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괴물이 그녀를 막으려 했고, 그녀는 괴물을 무력화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는 괴물 먼저 보일 수밖에 없었겠지.
  한동안 세상이 평화로웠던 건 마리아의 힘이 상대편보다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의 힘이 약해졌고, 그녀는 괴물을 이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것이 나였다. 그래서 마리아는 나에게 로보트를 주었고 나는 로보트의 조종사가 되었으며 괴물은 나를 죽이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건 모두 가정이다. 평행 우주를 조종하는 능력이라니, 그런 게 있을 수 있나? 정말 그런지는 나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말했다시피 과탐은 너무 어렵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누구 보는 사람 없겠지, 아니, 보면 어때, 나는 오늘 죽었다가 살아났고 서울을 괴물로부터 구해냈는데 담배 한가치 쯤은 피울 수 있는 것 아닐까.
  어둠 너머로 흩어지는 연기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과학 이론이 아니다. 왜 마리아에게 그런 힘이 있고 괴물이 누구고 평행우주가 어쩌고 하는 것들이 아니다. 그건 어찌되든 상관없다. 내가 신경 써야 하는 건 현실이다.
  내가 수능시험을 준비해야하는 현실, 로보트 조종사가 되어 목숨을 걸고 괴물과 싸워야 하는 현실, 그리고 문근영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이 두 대통령이 있는 세상에서 번갈아 살아야 한다는 현실 말이다.
  나는 두 현실간의 전쟁에 말려들었고 둘 중 하나의 편을 들어 싸워야 한다. 내가 만난 현실은 바로 그것이다.
  괴물을 도울 것인가 마리아를 도울 것인가.
  아저씨들의 세상을 도울 것인가 문근영 대통령의 세상을 도울 것인가.
  한 쪽 세상에서는 노예처럼 착취되는 아동이 천만 명이 넘는다. 인터넷에는 페도파일 포르노그라피들이 넘쳐난다. 영계를 좋아하는 아저씨들은 오늘도 밤거리를 방황하고, 소녀들은 사고 팔린다. 한해에 전 세계적으로 120만 명의 아동이 매매된다고 한다. 미친 듯이 돌아가는 세상은 소녀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새싹들은 도시의 가속도에 밟혀죽는다.
  다른 한쪽에서는 소녀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곳의 아이들은 미친 하늘 밑에서 점점 부서져 가는 서울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어떤 어린아이들도 어른에게 착취당하지 않으며, 소녀들은 세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곳의 대통령은 문근영이다.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내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선택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한 세상일까?



1) ‘로봇’을 일부러 ‘로보트’로 표기했습니다.

2) 문근영, 엠마 왓슨, 다코타 패닝, 이시하라 사토미, 츠마부키 사토시, 대니얼 레드클리프 등은 대충 누군지 아실 것 같아 따로 설명을 붙이진 않겠습니다.

3) ‘문근영 대통령’이라는 제목은 디시인사이드의 문근영 갤러리에 올라온 이 게시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http://kr.dcinside5.imagesearch.yahoo.com/zb40/zboard.php?id=moon&page=1&sn1=&divpage=1&banner=&sn=off&ss=on&sc=on&keyword=대통령&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77

4) 11월 9일. 인터넷 한겨례.

『유엔아동기금(UNICEF)은 8일 인터넷을 통한 아동 포르노물의 폭발적 증가로 미성년 매매춘이나 음란물 제작, 섹스 관광 등 아동 성학대가 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UNICEF의 책임 고문 고팔란 발라고팔은 이날 아동 성학대를 주제로 태국 방콕에서 열린 국제회의 참석에 앞서 "인터넷 사용자 수가 급격히 늘고 있는 아시아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난 수년간 우리는 인터넷상 아동 음란물과 그로 인해 미국, 러시아 등에서 어마어마한 문제를 일으킨 아동 학대 문제를 지켜봐 왔다"고 말했다.
영국 자선단체 `국립 아동의 가정(NCH)'의 통계에 따르면 인터넷 아동 포르노산업의 55% 정도는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러시아가 23%로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존 카 NCH 부회장은 "(예전에는) 그런 친구를 알고 있거나 소아성도착증과 관련돼야 했는데 지금은 단순한 흥미를 가졌거나 아예 알지 못하는 사람까지도 인터넷에서 아동 포르노물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카 부회장은 지난 2001년 영국에서 아동 음란물과 관련, 경고를 받거나 기소된 사람들이 550여명으로 지난 1988년의 35명보다 훨씬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6-7년 전만 해도 상업적 시장은 전혀 없었으나 (지금은) 범죄 단체, 특히 러시아나 동유럽 국가의 단체들이 체계적으로 포르노를 찍기 위한 아동들을 모은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찰에 의해 폐쇄된 동유럽의 한 웹사이트에서는 아동 음란물로 한 달에200만 달러를 벌어들인 바 있다"고 덧붙였다.
카 부회장은 일본과 한국 역시 아동 포르노 산업이 심각하며 상당수 개발도상국에서 기술 발전이 빨라 법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아동 성학대가 더욱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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