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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강남 외곽의 약국에서 일하는 조제 약사다. 나이는 서른 셋, 미혼, 키는 백 육십 팔 센티에 깡마르고 날카로운 표정을 짓는다. 목소리는 얇지만 단단해서 바늘처럼 사람의 귀를 찌르고, 세상에 관심이 없는 듯이 반쯤 감고 있는 눈매는 그래도 끝이 날카롭다. 늦은 퇴근 길, 핏기가 거의 없는 얇은 입술로 담배를 무는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하루 종일 약을 찧고 자르느라 가끔 저릴 때가 있는 오른 손으로 담배를 들고서 거리를 걷는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약국에서 도보로 삼십 분 거리에 있는 실 평수 12평짜리 전세방으로 향한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그녀의 하루는 그렇게 저문다.
오늘은 오랜만에 특별한 약속이 약국을 찾아 들어왔다. 동네 노인조차 3 시간이상 앉아 있는 일이 드문 약국 의자에 대학생 남짓한 여학생이 벌써 4시간이 넘도록 앉아 있다. 마지 못한 듯이 ‘부스코판 플러스’를 사고서는 먹지도 않고, 안절부절 못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슬쩍 시계를 본다. 이제 7시가 조금 넘었다. 약국을 닫으려면 아직 2시간 정도 남았다. 소개를 해줄 때에는 반드시 주의를 주라고 말했는데도, 왜 항상 이렇게 일찍 찾아와서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여학생은 들고 온 가방에서 작은 노트북을 꺼내어 불편한 자세로 들여다 본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그제서야 마음을 놓는다. 나름대로 시간을 보낼 준비는 해왔구나. 마음을 놓으니, 손님 몇 명이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온다. 금요일 퇴근 시간이니, 위장약이나 숙취 해소 음료를 찾는 손님이 부쩍 늘어날 시간이다. 그녀는 잠시 여학생에 대한 생각을 접는다. 그녀에게는 이번 주일의 마지막 대목이다.
여학생이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약국 문을 닫을 채비를 마친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 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눈을 떼고 있지 않은 모습을 보니 영화라도 보고 있는 듯싶었다. 오늘 하루 받은 처방전을 정리하고, 영수증과 현금을 정리해 금고에 넣어두고, 마지막으로 약국 열쇠를 챙긴다. 여학생은 여전히 노트북을 들여다 보고 있다. 그녀는 숨을 가다듬고, 여학생에게 다가간다.

“약국 닫을 시간인데.”

여학생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올려다 본다. 짧은 단발 머리가 잘 어울리는 작은 얼굴에 커다란 눈이 귀엽다.

“저기, 혹시 영미 선배님 아니세요?”

노트북을 닫고 주섬주섬 노트북이며 커다란 쇼핑백을 챙겨 들면서 여학생이 묻는다. 영미, 박 영미는 그녀의 이름이지만, 뒤에 붙는 호칭이 낯설다.

“맞는데.”
“저, 전 02학번 들판 22기 김 수영이에요. 안녕하세요.”

그제서야 선배님이라는 호칭이 이해가 간다. 학교에서 온 손님은 정말 오랜만이다. 워낙 까다로운 탓에 그녀가 일 년에 만나는 손님은 열 명 남짓했고, 여태까지 학교에서 온 손님은 고작 서너 명에 불과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학창 생활을 떠올렸다. 내가 들판 몇 기였더라?

“그래, 누구한테 이야기 듣고 왔어?”
“16기 도훈 선배님한테 들었어요.”

몇 번 도움을 준 적 있는 동기의 이름이다. 학교에서 맺은 인연 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하는 동기의 주선이다. 그래, 그래서 이렇게 말 잘 듣는 녀석을 손님으로 보냈구나.

“일단 나가자. 이야기는 좀 있다가 하고.”
“예.”

학교 후배는 마음에 쏙 들 만큼 그녀의 말을 잘 따른다. 약국 문을 닫고, 셔터를 내릴 때까지 정말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릴 뿐이다.

“담배 피우니?”
“예? 가끔…….”
“지금 있어?”

후배가 등에 맸던 가방을 다시 내려 놓고, 안쪽에서 담배를 꺼내 내민다. 그녀는 정말로 가끔 피우는 티가 나는 그 담배를 통째로 뺏어 든다. 몇 억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수고를 해주어야 하는 밤이니까 보수는 아무리 받아도 지나치지 않다. 뺏은 담배를 피워 물고는 앞장서 걷는다. 후배는 굳이 따라오라는 말이 없어도 잠자코 그녀의 뒤를 쫓아온다. 오늘은 어디가 좋을까? 그녀는 약국에서 가장 가까운 칵테일 바로 향한다.

“어서 오세요.”

강남답게 한껏 어두우면서도 세련된 분위기의 칵테일 바로 들어선다. 가구와 장식은 정말 마음에 들지만, 한껏 재즈 바 흉내를 내었음에도 지나간 외국 댄스 곡이나 틀어주는 멍청함은 여전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크레이지라니, 차라리 아무나 폼으로 구해 듣는 흘러간 팝송이 백배 나을 텐데. 차라리 인테리어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마음 편히 발길을 끊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담배 연기를 거칠게 뱉어내며,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는다. 맞은 편에 후배가 조심스럽게 앉는다.

“갖고 왔어?”
“네.”

적당히 주문하고 나서, 약속한 보수부터 받는다. 후배가 들고 온 커다란 쇼핑백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그녀는 쇼핑백 속에서 조금 커다란 상자를 꺼내 들었다. 이틀 전에야 발매하기 시작한 유명한 회사의 PMP다. 손바닥보다 작은 액정 화면과 적은 용량이 마음에 걸리지만, 디자인만큼은 훌륭하다. 이미 같은 용도의 전자 제품은 산만큼 가지고 있지만, 이 회사 제품은 전부 모으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는 흡족하게 미소 지으며 상자를 도로 쇼핑백에 집어넣고는, 옆 자리에 내려 놓았다.

“좋아. 그럼 말해봐. 무슨 문제야?”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후배의 얼굴에 두려움이 깃든다. 보통 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이야기, 해보아도 믿어주지 않는 이야기, 이상한 취급 받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남에게 털어 놓아야 한다는 두려움이다.

“그 이야기 하려고 나 찾아온 거잖아?

후배가 멈칫거리며 손을 내밀어 탁자 위에 올려놓은 담배를 집는다.

“요즘 이상해요.”

담배 연기와 함께 후배가 마침내 말문을 연다.

“가끔 이상한 소리도 들리고, 이상한 것도 보이고, 정신이 아득해 진다 싶으면
이상한 짓을 하고 있을 때도 있어요.”

그러더니 왼쪽 소매를 걷어 내밀어 보인다. 손목 위에 붉은 선이 보인다. 단지 유세만 떨고 싶다면, 적당히 실패할 수 있는 자살 방법이다. 아예 칼로 깊게 찔러 넣지 않는 한, 죽기 힘든 부위니까. 하지만, 후배의 표정은 자못 진지하다.

“일주일 전에 문득 정신을 차리니까 동방에서 손목에 칼을 대고 있었어요.”

긴 한숨을 쉰다.

“저 원래 절대 이런 애가 아니거든요. 미치겠어요,
정말로. 귀신이라도 붙은 게 아닐까 싶어서.”

눈에 물기가 맺힌다. 다행히 울지는 않는다. 그녀는 후배가 눈물을 찍어 내기를 기다리며, 다시 담배를 물었다.

“도한이는 어떻게 알았어?”
“창립 모임에서 조금 사고를 쳐서요. 그 바람에.”
“부모님께는 말씀 드렸니?”

후배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녀는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잠깐 눈을 감았다. 대충 결론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머지는 시험해 보는 것뿐이다. 정말인지, 아닌지.

“이상한 게 보이고, 들린다고?”
“네.”
“지금도?”
“지금은 아니에요.”

그야 그렇겠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잘 봐.”

고개를 옆으로 돌며, 빈 자리에 담배 연기를 힘있게 뿜어본다. 제멋대로 곡선을 그리며 나아가던 담배 연기가 순간 무언가에 부딪혀 흩어진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따라 타고 흐르는 담배 연기에 후배가 순간 숨을 멈춘다. 그녀가 내뿜은 담배 연기는 빈 자리에 갈래 머리를 단정하게 빗은 소녀를 그리고는 금새 사라진다.

“1964년에 자살한 여고생이야.”

짧게 소개하고는 다시 한 번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흑백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먼 과거의 교복이, 먼 과거의 생김새가 후배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다가 자취를 감춘다.

“강한 원한을 갖고 있고, 더불어 강한 의지도 갖고 있어.”

그녀는 담배를 재떨이에 던져 넣고는 후배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로 강한 귀신은 영감이 약해도 대부분 볼 수 있는데, 안 보였지?
아까부터 너한테 이런 저런 말을 걸고 있었는데도, 그것도 안 들렸지?”

놀란 표정의 후배는 대답이 없다.

“이런 말해서 미안하지만, 이상한 게 보이고 들렸다는 건 네 착각일거야.”
“하지만, 분명히…….”
“괜찮아, 흔히 있는 일이니까.”

너처럼 심약한 아이들에게는 말이지. 그녀는 후배의 말을 끊고는 세 번째 담배를 피워 물었다.

“최근에 너도 모르게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야.
사람은 연약한 동물이라서 곧잘 그런 착각을 느낄 수 밖에 없거든.”

결국은 현실 도피다. 남들은 다 견디는 일을 혼자 견딜 수 없어서 어디로든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어할 뿐이다. 자신이 느끼는 불행과 절망을 주변에 알리고 싶어서, 도움을 구하고 싶어서, 그리고 관심을 받고 싶어서.

“부모님께 말씀 드리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봐. 그 편이 더 도움이 될 거야.”
“그건 안 되요. 이런 거 어떻게 말해요.”

후배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 역시 가정 문제인 걸까? 정신병에 걸리는 미친 딸년이 되어서는 안 되는 그런 집안인 걸까?

“그럼 도한이한테 상담해봐. 정신과 치료까지는 아니더라도, 카운셀링 정도는
주선해 줄 수 있을 거야.”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후배가 부담스럽다. 오히려 실망한 사람은 그녀다. 오늘은 혹시 정말 귀신이 붙은 손님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었으니까. 다시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무슨 말을 해야 이 상황을 쉽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휴학하고 좀 쉬는 게 어떨까 싶어.”
“휴학이요?”

후배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본다.

“어학 연수도 괜찮고. 아무튼 이럴 때는 쉬는 게 제일이니까.
부모님께 솔직하게 말씀 드릴 자신이 없으면, 거짓말을 하든 핑계를 대든
1년 정도 쉬어봐.”
“그럼 나을까요?”
“너 지금까지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지? 초등학교 때부터 쭉 말이야.
사람한테는 휴식도 꼭 필요한 거야.”

어둡던 얼굴이 조금 밝아진다.

“그럴게요.”
“도한이한테 상담 받아보는 거 잊지 말고.”
“네.”

후배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잔을 들어 기울인다.

- 그 말,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해.

오랜만에 마시는 칵테일을 즐기려는데, 옆에 머물고 있는 귀신이 귀를 찌른다. 임 영희, 벌써 십 년이 넘도록 그녀에게 붙어있는 귀신의 감정도 운율조차 없는 목소리다.

- 보수까지 받아놓고…….

등을 떠밀어 달라고 찾아왔길래 떠밀어 줬을 뿐이다. 그녀는 슬쩍 영희의 말을 무시했다.

“그런데, 선배님…….”

휴학하라는 말에 밝은 얼굴을 한 후배가 문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까 그건, 아니, 그 귀신은요?”
“갔어.”

귀찮은 호기심을 짧게 잘라낸다. 귀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관심 받는 것처럼 거슬리는 일은 달리 없다. 후배는 겸연쩍은 얼굴로 술잔을 기울인다.

“그런데 관심 갖지마. 그러다 정말로 홀리면 대책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
“네.”

마무리를 하고 나니, 어쩐지 지루하다. 철 지난 유행 팝송도 적지 않게 귀에 거슬린다. 얼른 마시고 일어서야지. 그녀는 담배를 한 대 참기로 하고, 대신 술잔을 입술에 붙인다. 알싸한 알코올 기운이 코를 찌른다.

“선배님, 저 10시 반까지는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 따분한 자리를 어떻게 끝내야 할는지, 그런 고민에 빠져 있으려니 문득 후배가 먼저 몸을 뺀다. 반가운 마음을 애써 감추면서, 그녀는 품 안에서 작은 부적을 꺼내 들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기원하는, 그저 그런 내용을 예쁜 모양으로 작게 접은 부적이었다.

“받아.”
“부적이네요.”
“응, 이거만 믿지 말고, 꼭 휴학하고 한 학기라도 쉬어.”
“네, 고마워요, 선배님.”

절에서 삼사천원에 파는 부적을 꼭 쥐고서 후배는 그녀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종종 걸음으로 칵테일 바를 나선다. 창 밖으로 내다보는 후배의 얼굴과 걸음걸이가 조금 전보다 훨씬 가볍다. 귀가 시간까지 통제 하는 엄격한 부모에게 휴학하고 싶다는 말을 꺼낼 수단은 없겠지만, 그래도 부적이 무슨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 이러다 벌 받아.

말없던 영희가 다시 그녀를 나무란다. 그녀는 후배에게서 받은 보수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배는 고작해야 쉬라고 말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고, 그녀는 쉬라고 충고해 준 것뿐이다. 혹시라도 용기를 잃을 까봐 부적으로 슬쩍 용기까지 돋아주었다. 더 이상 해줄 건 아무것도 없다.

- 또 비싼 거 받았지?

아무래도 좋다. 어서 집에 가서 보수로 받은 PMP를 사용해보고 싶었다. 어디에 놓아도 장식처럼 어울리는 신제품이다. 포장을 뜯고, 전원을 넣어보고, 그리고 이전에는 없었던 기능을 하나하나 시험해 보고 싶다.

“집에 가자.”

조그맣게 중얼거린 그녀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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