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기 승 전, 그리고, 아, 그러니까

 

조태희 박사는 GAN 연구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의 연구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다양한 영역에 널리 사용되었으므로, 그는 높은 명성을 얻었다. 

더군다나 그가 만든 기법에 대해 출원해 둔 특허의 사용료가 아주 높은 값에, 자주 팔렸다. 세계의 유명한 거대기업들이 다들 그의 특허를 빌려가며 돈을 냈다. 나중에는 조태희 박사의 특허를 빌려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는 자체가 뭔지는 몰라도 하여튼 미래를 위해 멋진 일을 하려고 준비한다는 상징처럼 되었다. 그래서 당장 쓸데가 없어도 그냥 홍보 목적으로 조태희 박사의 특허를 빌려 가는 계약을 하는 회사들도 잔뜩 생겨날 지경이 되었다.

그 덕택에 조태희 박사는 잠깐 사이에 큰 명예를 누리게 되었고, 또한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고 말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조태희 박사가 번 돈을 정말로 현금으로 집에 쌓아 놓는다면 돈 방석 정도가 아니라 돈으로 카페트를 깔고 도배를 하고도 얼마든지 남을 것이다. 다만, 현대는 모든 거래를 온라인으로 하는 시대이므로 그의 돈도 방석이 되어 있기 보다는 숫자로 기록되어 은행에 곱게 예금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돈을 확인하고 거래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화기를 무심코 가끔 깔고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그런 것도 다 돈방석 아니겠는가?

때문에 그는 다양한 행사와 강연회 같은 것에도 자주 불려 다니게 되었다. 그는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성공한 사람만이 갖고 있는 지식을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그게 아니면 그가 미래의 상징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무엇인가 조금은 알 수 있게 될 것 같은 예감을 사람들이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건 조 박사는 건실하고 진지한 사람이었다. 그는 학생들, 일반인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해 주면 좋을 지 깊이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 보고 주변 사람들의 삶을 돌아 보고 또한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돌아 보았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꼭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 지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 결과,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공공기관에 취업하면 일이 잘 풀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대기업에서 더 높은 자리로 빨리 승진하거나, 공공기관에서 높은 직위로 차곡차곡 올라가면 인생이 점점 더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정말 세상과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일까요? 대기업이라고 하는 곳은 결국 몇몇 돈이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만들어 놓은 규칙에 따라 조금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아등바등 하는 것은 결국 그 대기업을 소유한 부자에게 누가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지, 그 부자를 누가 더 기쁘게 해 주는 지, 그 부자가 만들어 놓은 규칙 속에서 경쟁을 하는 다툼일 뿐입니다. 결국은 어떤 두령 앞에 불려 가서 서로 재롱잔치를 하는 것이고, 그 재롱잔치 하는 사람들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두령이 웃으면서 박수를 많이 쳐 주면서 너는 더 큰 고깃덩어리를 먹어라,하고 내어 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거나 공무원이 되어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공공기관 직원, 고위 공무원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다른 국민들이 일하면서 얻은 세금을 받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일을 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해, 지난 수천년간 벼슬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벼슬이란 높고 귀하고 소중한 것이므로 우러러 보아야 하고, 벼슬을 사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세금을 바쳐야만 한다고 모든 사람들이 굳게 믿도록, 사람들을 가르치고 광고하고 선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국민의 세금을 받고 사는 공공기관의 직원들이 오히려 다른 국민들을 지배하고 더 우월한 사람들인 것처럼 분위기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어느 쪽이건, 결국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고정관념의 톱니바퀴 속에 한 부품으로 들어 가서, 더 좋은 부품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톱니바퀴 장치 바깥으로 뛰쳐 나와야 합니다.

톱니바퀴 장치의 부품이 될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바깥을 개척하기 위해 나서야 합니다. 바로 그 도전으로 우리는 부유한 사람들, 높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틀 바깥에서 세상을 정말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강연은 그 뒤로도 좀 더 이어졌다. 그렇게 아주 참신하다고 할 만한 강연은 아니었다. 모호한 점이 많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의 강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대체로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말의 내용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모습, 말투, 말하는 동작 등에 더 깊은 느낌을 받기 마련인데, 그날 조태희박사는 바로 그런 점에서 대단히 강렬했다. 그의 모습은 사람들이 믿음직하게 여길만했고, 그의 말투는 사람들의 마음 속을 쿡쿡찌르며 자극하는 느낌이 선명했다. 게다가 그가 말하는 동작은 신선하고 재미 있어서 사람들을 감격하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학식 있다는 사람들이 훗날 되돌아 보면 당시 사회상을 고려했을 때 그가 하는 이야기가 필요한 시대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날 조 박사의 강연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홀라당 뒤집어 놓았다. 수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 덕택에 세상이 바뀌었다.

5년 후, 조태희는 자기 강연을 듣고 그날 완전히 인생이 바뀌었다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조태희, 세상을 바꾸다” 뭐 그 비슷한 제목의 특선 프로그램에서 조태희와 조태희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만나서 그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이런저런 대화도 해 본다는 내용을 촬영했기 때문이다.

“조 박사님. 조 박사님은 정말 세상을 바꾸신 분입니다. 저도 조 박사님 그날 강연 한 번 때문에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조태희를 만난 사람은 귀에 붉은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는 모습이었다. 조 박사가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바뀌셨나요?”
“저는 대학에 입학했는데, 조 박사님 말씀대로, 4년 동안 열심히 학교를 다녔고 그러다가 4학년 졸업 직전에 학교를 중퇴해버렸습니다.”
“예? 왜 그런 짓을, 아니, 그런 일을 하셨는데요?”

조태희는 놀라서 물었다. 그런데 붉은 이어폰을 낀 사람의 표정은 대단히 흥에 겨워 있었다. 자신이 이야기하면 조태희가 웃으며 손뼉을 쳐주기를 기대하기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바로,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죠. 저는 제가 배우고 싶은 학식을 쌓기 위해서 대학 생활 4년을 매우 열심히 했습니다만, 그 학식을 사회의 틀에 따라 취업하거나 공공기관에 들어 가는데 사용하는 것은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졸업장을 받는 것은 그 직전에 거부한 것입니다.”
“아, 어쩌자고요?”
“그리고 그 후에, 저는 새로운 제가 하고 싶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어조는 강한 희망에 차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조태희는 다시 약간의 희망을 품었다.

“새로운 생각을 담은 예술 작품 같은 것을 만드시거나, 아니면 직접 사업을 시작하셔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보시려는 그런 창업 활동을 하신 건가요?”
“아닙니다. 예술 작품으로 성공하려면 자신의 예술 작품이 주류 사회의 눈에 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류 예술계라는 것은 결국 예술품을 투자 목적으로 수집하기 위해서 돈을 대는 갑부들과 그 갑부들에게 이런 예술품이 요즘 좋아 보인다고 추천하는 갑부들의 부하직원이나 다를 바 없는 예술 전문가들에 의해 돌아가는 곳 아니겠어요? 결국 예술 작품으로 성공하려고 한다는 것은 다른 많은 일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 사회의 돈을 차지하고 있는 부자들 앞에 내 것이 더 좋아 보인다며 재롱을 부리는 재롱잔치 경쟁을 하는 것 뿐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창업을 하셨어요? 무슨 사업을 하시려고 창업을 하신 건가요?”
“그것도 아닙니다. 창업은 성공할 확률이 너무 낮지요.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 모으고 빚을 잔뜩지고 가게를 차리거나 회사를 차려도 망해서 돈 날릴 확률이 너무 큽니다.”

붉은 이어폰을 낀 사람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얼떨결에 조 박사도 그 미소를 따라했다. 붉은 이어폰 낀 사람의 창업에 관한 설명은 이어졌다.

“만약 창업을 해서 망하지 않고 성공하려면, 우리 사회에서 이미 돈을 많이 차지하고 있고 기존 산업계를 틀어 쥐고 있는 정부 공공기관의 구미에 맞는 일을 해야 하죠. 아니면 다른 대기업들의 사업에 어울려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그런 사업을 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정부가 지원을 해 준다는 차세대 에너지 사업을 한다거나, 대기업에서 투자할 생각이 있다는 봉산탈춤에 바탕을 둔 뮤지컬 드라마 시리즈 개발 사업 같은 데서 일을 벌이는 식으로 딱 그 사람들 원하는데 맞춘 사업을 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죠. 이런 일은 결국 사회의 틀에 철저히 맞춰 가야 하는 일입니다. 내가 대기업 사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는 것도 톱니바퀴 중의 하나가 되기가 싫어서 거부해야 하는데, 그 대기업의 구미에 맞춰주고 그 공무원의 구미에 맞춰줘야 하는 더 작은 회사를 차려서 일할 이유가 없죠. 그것은 톱니바퀴 장치의 부품도 아니고 톱니바퀴 장치의 부품으로 들어 가는 더 작은 장치의 더 작은 부품이 되는 길일 뿐이예요!”

조태희는 잠깐 이 사람은 왜 우리 사회의 대기업들이 “봉산탈춤에 바탕을 둔 뮤지컬 드라마 시리즈”에 집중한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몹시 궁금해졌다. 그렇지만, 일단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앞서서 더 중대한 문제를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번득 들었다.

“그래서 뭘 하시는데요?”
“저는 대기업 주인의 노예가 되고 싶지도 않고요. 이 사회의 모든 병폐의 궁극적인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정부의 하수인이 되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기존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방법으로 저만의 성공을 이루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게 그래서 뭐냐고요.”

조태희의 질문에 그는 싱긋 웃었다. 조태희는 그 웃음이 두려웠다. 그가 말했다.

“저는 코인에 투자하고 있어요.”

조 박사는 되물었다.

“뭐요?”
“여러가지 가상자산, 암호화폐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중에서도 제가 투자하는 코인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죠. 이것이야 말로, 정말로 누구 하나가 장악하지 않고 있는 완전히 분권화된 자산으로 정부나 어떤 기업이 소유하고 있지 않고 모두에게 분산되어 있는 거예요. 저는 대출금을 빌려서 그 코인 시세가 오르고 내리는 것을 보고 그걸 팔고 사고 있어요. 이 코인은 특히 미래에 성장 잠재 가능성이 높아서...”

이후 그가 3분 20초간 말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대충 가상자산 거래 회사 홍보자료를 검색해 보면 지금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내용에서 좋은 말 나오는 부분과 거의 동일하므로 생략하고자 한다. 그 부분을 건너 뛰면 그의 말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저는 제 모든 것을 걸고 대출을 받아서 만든 돈으로 바로 이 코인을 쌀 때 사서 비싸게 파는 방법으로 돈을 벌 겁니다. 벌써 이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그 성공한 사람들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매일 잠도 4시간 밖에 안 자고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코인 시세 오르내리는 것만 지켜 보면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코인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런 걸 공부라고 하나요...”

조태희 박사가 알고 보니, 그의 강연에 감격하여 붉은 이어폰을 낀 사람과 비슷한 선택을 한 사람들은 무척 많았다. 그런 사람들의 숫자가 어느 정도를 넘어 서자,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다시 말해 조태희 강연으로 인생의 새로운 길을 찾았다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그 관심 때문에 그 무리는 인기를 얻고 숫자는 더 불어났다.

“이미 세상은 돈이 많은 부유한 사람들과 법과 제도를 장악하고 있는 국가 기관의 높은 사람들이 철저히 장악하고 있어요. 열심히 살아라, 성실하게 살아라, 착한 일이라고 하는 행동을 해라, 세상의 규칙을 따라라, 등등의 말은 결국 이 세상을 장악한 그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하게 만들고자하는 수작일 뿐이예요. 무슨 일을 하든 결국은 세상의 높은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잘 하려고 경쟁하는 것 밖에 될 수 없다고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으니까요. 그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그 사람들이 조종할 수 없는, 완전히 조종 범위 바깥의 새로운 일에 몰두하여 거기에서 성공을 거두는 거죠. 바로 무슨무슨 코인에 돈을 쓰는 것!”

어느 시점이 지나자, 노래 가사의 1절과 2절, 3절과 4절의 차이처럼 살짝 단어의 어감만 조금씩 바꾸어 가며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빠르게 늘어 났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이러한 투자 활동에 걸었다. 망한 사람도 있고, 흥한 사람도 있었다. 망한 사람은 거룩한 사회에 대한 저항 활동 중에 생겨난 희생으로 애도되었고, 흥한 사람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기존의 질서를 공격하며 완전히 자유롭게 틀 바깥에서 성공을 거둔 영웅으로 칭송 받았다.

조태희 박사는 이러한 변화에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정말로 “죄책감을 느낀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조 박사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심하게 엉뚱한 일에 시간을 많이 소모하게 되었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이런 괴상한 투자에 뛰어 드는 것을 유일한 탈출구로 여기고 있는 자체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는 증표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뿌리부터 해결하려면 사회가 움직이는 형태를 완전히,  모조리 다 바꿀 수 밖에 없습니다.”

조태희는 그런 요지를 담고 있는, “생산변화 계획”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의 삶에서 가장 큰 결심이었고, 가장 중요한 행동이었다. 사회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라고 자주 언급되는 글이지만, 막상 전체 내용을 읽어 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바로 그 글이다.

따지고 보면, 조태희가 정말로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생산변화 계획”이라는 글을 발표했기 때문은 아니다. 조태희는 그 계획에 맞는 변화를 실제로 실천해 옮겼다는 점에서 세상을 바꾸었다. 조태희는 생산변화 계획을 이루는데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자신의 전재산과 자신이 구할 수 있는 모든 자금을 총동원해서 투자했고,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이 직접 나서서 생산변화 계획을 사실로 이룰 수 있는 모든 변화를 현실로 이루어 내는데 성공했다.

생산변화 계획의 핵심은 로봇과 인공지능을 발전시켜 사람이 하는 일을 대신하게 만들겠다는 발상이었다. 로봇이 사람보다 일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보다 절반 밖에 일을 하지 못하는 로봇이라고 하더라도 밥도 안 먹고 아픈 일도 없이 24시간 365일 연속으로 일할 수 있다면 돈을 벌어들이는 효율은 더 좋았다. 그런 기술 개발 과정 중에 몇몇 분야에서는 사람보다 월등한 실력을 보여 주는 인공지능도 속속 등장하게 유도할 수 있었다. 

수 년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조태희와 그의 회사는 세상에서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거의 모든 직업을 로봇으로 대체해버렸다.

그리고 조태희는 게으른 평론가들이 “이렇게 되면 인공지능을 소유한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인공지능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진다”고 한 줄 글을 써 올리는데 드는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자신의 로봇과 인공지능을 통해 얻은 수익은 사회 전체가 공유하도록 했다. 최고의 로봇들을 갖고 있는 조태희의 회사는 사람들을 직원으로 삼고 있는 다른 경쟁 대기업들을 모조리 망하게 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조태희는 공공기관과 정치인 집단과의 관계를 좋은 쪽으로 유지하는 데에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덕택에 그는 거대 기업과 공공 기관을 모두 자기 편으로 거느리면서 사회를 바꾸어 나갔다.

“조태희라는 단 한 명의 재벌이 막강한 그 재력으로 우리 사회 전부를 장악한 독재자이자 황제가 되고자 할 것이다.”

역시, 게으른 평론가들이 그런 글 한 줄을 써 올리기도 전에, 조태희는 모든 권한을 사회 전체와 공유하기 위해 나섰다. 

조태희는 굳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칭송 받으면 기분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 또한 이미 수십조 원의 재산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재산이 수백조나 수천조로 늘어 나면 더 기분이 좋을 것 같다는 욕심도 품고 있지 않았다. 그가 하고 싶어 하는 일과 조태희가 꿈꾸는 목표는 평범한 사람들이 바라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일은 자신의 강연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그 찝찝함을 털어 버리는 것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조태희가 세상을 떠날 무렵이 되자, 생산변화 계획은 거의 완성의 수준에 도달했다. 

세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대부분의 활동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모두 다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로봇과 인공지능은 사회 구성원들과 공공단체가 공동 소유하고 있다. 로봇이 일해서 벌어 들이는 막대한 돈으로 모든 사람들은 생활에 문제가 없을 정도의 금액을 그냥 월급처럼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하면 재미 있을 것 같은 일을 하면서 살기만 하면 된다. 원한다면 영원히 놀고 먹기만 해도 된다. 다만, 그렇게 살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학상의 의견이 있기 때문에, 각자 소일거리 삼아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한다. 그런 시대가 펼쳐졌다.

조태희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위대한 업적인 생산변화 계획을 칭송하기 위해 조태희의 동료들과 후계자들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같은 것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조태희 박사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 지, 확실하게 기록하고 널리 자랑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래서 프로그램 제작진은 생산변화 계획 이후로 바뀐 사회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여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한 신도시의 특수 직업 종사자들을 조사하기로 했다. 

제작진이 보낸 인터뷰 로봇이 그 특수 직업 종사자들에게 도착하자, 그 사람들은 조태희를 칭찬하는 말들부터 먼저 길게 늘어 놓았다. 왜인지 그 사람들 사이에는 파란 색 안경테를 쓰는 것이 유행이었다. 로봇은 파란 안경을 쓴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모두가 생활에 문제 없을 정도의 부를 누리고 살고 있는 세상이 시작되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살아 남기 위해 땀흘리고 고생하며 살 필요가 없는 시대를 살게 된 거죠.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어요.”
“그렇습니다. 인류 역사 최초로 이런 사회를 건설한 것은 조태희 박사님의 커다란 공적이지요.”

파란 안경을 쓴 사람은 그런데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래도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우리가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누구나 거대하고 화려한 저택에 살 수 있거나, 온몸을 아름다운 보석으로 치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누구나 희귀한 요리를 많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이런 것을 얻으려면 남들보다 특출나게 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문제라고 보시는 군요?”

인터뷰 로봇의 질문에, 파란 안경을 쓴 사람은 웃었다. 사람이 로봇의 말이나 행동을 비웃을 때 흔히 자주 짓는 표정이었다. 

흘러간 1970년대 내지는 1980년대의 영화, 만화, TV 프로그램에서는 로봇은 움직일 때 “삐리삐리”라는 소리를 내고, 로봇은 무슨 말을 하면 말 끝에 “로봇은 이렇게 말합니다. 삐리비리비”라고 식으로 “비리비리비” 같은 말을 붙일 거라고 상상하는 괴상한 관습이 있었다. 그 풍습에서 가져와서 사람이 로봇을 비웃을 때 짓는 표정을 “비리비웃는 표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렇죠. 평범한 집이 아니라 멋진 저택에서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일을 많이 해야 하죠. 그렇지만 어지간히 일을 해서는 로봇보다 일을 잘 할 수가 없어요. 로봇이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뛰어난 지식이 있다든가, 로봇과 인공지능을 개량하는 일을 할 줄 알아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죠. 그나마, 요즘에는 로봇들이 스스로 다른 로봇의 인공지능을 개량하는 일을 할 줄 아니까, 어지간해서는 그것도 쉽지 않고요. 그게 아니라면, 인기 많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으로 인기와 명성을 얻어서 그 인기를 바탕으로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해요. 광고 모델이 된다든가. 아직은 컴퓨터 그래픽 광고 모델보다 실제 사람 광고 모델이 더 인기가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정도의 명성, 아름다움,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사회에 극소수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뛰어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그만큼 보상을 해 주는 것이 사회의 원리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것은 공평하지 않지요. 세상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극소수로 정해져 있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성공해서 멋진 저택에 살 수 있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만한 일을 아예 할 수가 없다고요. 사람에게는 자가용 비행기를 갖고 싶고, 달나라의 호텔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런 일은 사회의 선택 받은 소수에게만 허용되어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을 벌 방법이 없죠.”
“그래서, 조태희 박사님의 업적에도 한계는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러자 파란 안경을 쓴 사람은 또 비리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우선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로봇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저희는 지금 같은 이런 사회에서도 어떻게 모두가, 누구든지,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고민했고, 그 답을 찾아 냈어요.”
“그게 뭔데요?”
“보이시지 않나요? 바로 새로 나온 코인에 투자하는 겁니다.”
“아, 왜요?”

로봇은 매우 로봇 같지 않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파란 안경 쓴 사람이 해설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밤 늦게까지, 온 힘을 다해서 코인 시세를 지켜보고 코인에 관한 정보를 모아서 분석합니다. 우리는 정말 개미처럼 일해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돈과 재산을 코인에 투자했어요. 이런 일은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거지요. 우리는 온 힘을 다해서, 우리도 성공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리며 오늘도 묵묵히 땀을 흘리며 코인 투자를 합니다. 이것만이 평범한 사람들이 큰 돈을 벌어서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로봇은 정확히 인터뷰하기 위해 다시 재확인 했다.

“그러니까, 먹고 살 걱정이 없어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든지 있는데, 그 많은 시간을 다른 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코인 시세 쳐다 보는 일로 소모하면서 보내는 것이 새로운 시대에서 앞서 나가는 삶이라는 이야기입니까?”

파란 안경 쓴 사람은 로봇의 손을 부여 잡으며 기뻐했다. 그리고 세차게 그 손을 흔들며 반가워 했다. 비밀리에 독립운동 하던 사람이 드디어 마음이 통하는 동지를 만나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자세히 살펴 보니 파란 안경 쓴 사람들의 투자가 과거의 투자와 비교해 보아 아무런 발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발전된 인공지능 기술과 로봇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의 구미에 들어 맞는 새로운 투자 대상 상품을 개발해서 만들어 냈다.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갖가지 특이한 투자 상품에 쏟아 부을 수 있도록 다양한 상품들이 나와 있었다. 그러면서 그러한 투자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건강을 소모하는 사람들의 비중은 점점 더 빠르게 늘어 났다.

예를 들어, 이 시대에 대단히 크게 유행한 상품으로 가위바위보 코인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가위바위보 코인이라는 가상자산을 구매하면서, 가위, 바위, 보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구매할 수 있는데, 그에 대해 짝으로 지정된 사람이 가위, 바위, 보 중에 어떤 것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이기면 가치가 올라가고, 지면 가치가 내려가도록 설계 되어 있는 상품이었다.

“그게 가위 바위 보 해서 돈 따먹기 하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는데요?”
“그렇게만 보시는 것은 정말 근시안적으로 이 기술의 투기적 활용 측면에만 주목한 것이죠. 가위바위보 코인은 완전히 새로운 차세태 신개념 가상자산이예요. 가위바위보 코인은 퀀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이용하고 있어서, 양자통신을 이용해서 NP완전 대 NP난해 정합성 알고리듬을 구현한 방식이라는 엄청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위 바위 보의 시간적 분리성과 공간적 분리성을 구현하면서 동시에 시공간 완결성도 구현할 수 있고요, 그래서 레거시 호환성이 높은 완전신뢰 모형을 네트워크 상의 가상 거래에서 도입할 수 있는 거라고요. 그래서 메타버스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고요.”
“그게 무슨 말인데요? 메타버스하고는 또 무슨 상관인데요?”
“메타버스라는 말은 하여튼 한 마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파란 안경을 쓴 사람들 같은 사람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기만 했다. 결국 조태희 박사의 동료들과 후계자들은 생산변화 계획 이후의 시대도 생각 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려고 조태희 박사님이 그렇게 열심히 생산변화 계획을 현실로 옮기고 싶어 하셨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세상을 다시 바꾸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생산변화 계획 기업 사람들은 대단히 강한 동기로 생산변화 계획을 더욱 다른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에 돌입했다. 

생산변화 계획 기업의 연구소에는 사람의 뇌와 인공지능이 연결시켜 주는 헬멧이 있었는데, 최고의 연구원들이 그 헬멧을 쓰고 몇 시간이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나갔다. 심지어 이 작업에 동원된 그 많은 로봇들 마저 무엇인가 강한 동기부여를 받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듯 보였다. 정말로 로봇에게도 동기부여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아닌게 아니라, 그때 이 일에 뛰어든 사람들의 의욕적인 시선에는, 컴퓨터에서 글을 쓸 때 오타가 생기면 빨간 줄을 그어 주는 단순한 프로그램조차도 무엇인가 열의에 차서 빨간 줄을 힘차게 긋는 것처럼 보일 만했다고 증언했다.

생산변화 계획에 참여한 사람들이 몇 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한 결과, 세상은 다시 한번 크게 변했다. 사람들은 이 변화를 2차 생산변화 계획이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들은 이 급격한 변화를 16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학자들에 따라서는 17차 산업혁명이라고 헤아리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사실, 몇 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5차 때부터 급격히 인기가 사그라 들었다. 10차를 넘어서면서 부터는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소수의 학자들 이외에 굳이 산업혁명의 차 숫자를 헤아리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게 되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찮게 16차 산업혁명 또는 17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대신 그냥 2차 생산변화 계획이라고 불렀다.

2차 생산변화 계획의 시대가 되자, 모든 힘든 일을 사람 대신 해 주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실력은 더욱 향상 되었다. 

게다가 거기에 맞물린 세밀한 인구 계획과 교육 계획의 결과로 사람들의 소비 수준의 평균이 안정되었다. 이제는 굳이 사치스러운 거대한 저택에 산다거나, 임금님 수랏상 같은 밥상을 매일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많지 않게 되었다. 그런 소비를 꿈꾸는 사람들은 구닥다리 취향의 한심하고 재미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문화가 사회에 완전히 정착했다.

“더 많은 소비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결코 억압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성공했네요!”
“조선시대에는 상투 머리카락 자르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20세기부터는 다들 자진해서 머리카락 자르는 문화로 바뀌었잖아요. 머리카락을 지키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갖던 문화가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어 하는 욕망의 문화로 바뀐 거라고요. 문화가 바뀌는 것은 한 순간이죠.”

2차 생산변화 계획을 성공시킨 주역인 CTH 인공지능 컴퓨터 3.0 버전은 사람들의 물음에 그와 같이 명쾌하게 대답해 주었다.

무엇보다 2차 생산변화 계획의 결과로 사회 전체가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부유해졌다. 이제는 어떤 사람 설령 사치스러운 삶을 동경하거나 물질적인 즐거움을 많이 누리고 싶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그저 원하는 대로 가져다 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대가 없이 그냥 얻어서 충분할 만큼 소비할 수 있었다. 장난감 가게에서는 원하는 장난감이라면 무엇이든 그냥 집어 오면 되고, 식료품점에서는 먹고 싶은 음식은 먹고 싶은 만큼 그냥 집어 오면 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 모든 것을 다 생산해 낼 수 있을 정도로 사회를 움직이는 인공지능과 로봇은 성능이 좋았고 효율적으로 일했다.

자연히 한국 사회에서는 돈을 쓸 이유가 점차 사라졌다. 돈이 없어도 물건을 구하는데 거의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결국 2차 생산변화 계획의 시대가 얼마간 지속되자, 사실상 한국에서는 돈이라는 것이 사라졌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돈이라는 것을 쓰고 살았고, 돈을 모으려고 애썼답니다. 심지어 돈을 더 모으려고 남의 목숨을 빼앗는 사람도 있었답니다.”
“말도 안돼! 돈은 그냥 은행에 컴퓨터에 기록된 숫자일 뿐이잖아. 그게 뭐라고?”
“컴퓨터 게임하면서 좋은 아이템 얻으려고 남을 괴롭히는 사람, 비슷한 마음인 걸까?”

이런 이야기를 학교의 역사 시간에 배우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물질적인 부유함을 경쟁하지 않는 시대가 왔는데, 그것이 어떤 사상가의 강력한 지령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정부의 철저한 통제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라, 광활하고도 심도 있는 풍요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던 중에 CTH 인공지능 컴퓨터는 자신의 기능 중에 해외 수출입 관련 기능을 아주 많이 활용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 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속도는 아주 빨랐다. 당장은 그것만으로 무슨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든가, 사회의 다른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보이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별 일은 아니라고 해도 그것은 예상되지 않은 현상이었고, 해석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CTH 인공지능 컴퓨터는 이상 사고 예방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해외 수출입 거래를 시도할 때, 컴퓨터는 잠깐 대화를 시도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좋은 아침입니다. 해외수출입 자산을 또 청구하셨네요.”
“네, 맞아요.”

그는 왜인지 초록색 보석이 박혀 있는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해외수출입 자산을 자주 청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는 차림새였다. 컴퓨터가 물었다.

“해외수출입 자산이 뭔지는 아시는 거죠?”
“알죠.”

초록 목걸이를 한 사람은 짧게 대답했다. 귀찮아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대로 그냥 넘어 갈 수는 없었다. 컴퓨터는 심화 질문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죄송합니다만, 혹시 바쁘시지 않으면 해외수출입 자산이 뭐라고 알고 계신지, 저에게 조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해외와 수입이나 수출 거래를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거잖아요. 한국에서는 이제 돈이라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모두가 풍부한 물자를 쓰면서 사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돈을 안 쓰고 살아도 되죠.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무슨 물건을 수입해오거나 할 때는 그 나라에는 돈 비슷한 것을 주어야 할 거 잖아요. 예를 들면 한국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는 석유나 코발트나 리튬 같은 것은 외국에서 수입해 와야 우리나라도 유지가 되니까요.”
“그렇죠.”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물건을 사올 때 마다, 그 대가로 한국은 한국의 CTH 인공지능 컴퓨터 3.0 버전을 일정 시간, 일정 용량 만큼 사용할 권리를 다른 나라에게 주고 있지요. 우리나라 인공지능 컴퓨터는 다른 모든 나라에서 쓰고 싶어할 만큼 탐내고 있는 거니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컴퓨터는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목소리에 수줍음과 기쁨의 감정을 섞어 넣도록 조치했다. 초록 목걸이를 한 사람의 말은 이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의 인공지능 컴퓨터를 사용할 권리를 한국의 돈처럼 생각하고 있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 중에 외국 물건을 사오고 싶어 하거나, 외국에 여행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컴퓨터 사용권을 돈처럼 지급해 주죠. 그걸 외국 돈으로 환전해서 쓰라고 하는 것이고요. 그런 돈 같은 것을 해외수출입 자산이라고 부른다, 그런 거 잖아요.”
“네, 잘 알고 계시네요.”

컴퓨터는 초록 목걸이를 한 사람을 칭찬해 주는 말을 몇 가지 더 해 주었다. 그의 반응은 예상 만큼으로 측정되었다. 

컴퓨터는 이어서 물었다.

“그런데 고객님께서는 왜 그렇게 해외에서 돈처럼 쓸 수 있는 해외수출입 자산을 그렇게까지나 빈번히 원하는 것일까요? 해외에서 무엇인가 수입해서 갖고 싶은 물품이 많으십니까? 세계여행을 좋아하시는 분이신가요?”
“전혀 아니죠. 저는 한국에서 사는 게 제일 좋아요. 사실 제가 사는 동네 바깥으로 멀리 가는 것도 싫어하고요.”
“그런데 해외수출입 자산을 왜 그렇게 자주 쓰시는 거죠?”
“해외수출입 자산은 차곡차곡 모아 놓으면 꼭 돈을 모아 놓는 것처럼 중요한 일에 쓸 수 있으니까요.”
“그 중요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특별히 살면서 필요하신 물자는 그냥 원하시면 한국에서는 다 얻으실 수 있는데요.”
“물자는 얻을 수 있죠.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 존경을 받거나, 다른 사람에게 인기를 얻거나,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란 쉽지 않아요. 모두가 부족한 게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다들 자유롭게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산다고요. 이게 우리 사회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어지간히 인기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어지간히 똑똑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회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직책을 맡는 위치로 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을 수는 없다고요.”
“그런 걸 받고 싶은가요?”

초록 목걸이를 한 사람은 그 질문에 짜증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불공평하잖아요.”

컴퓨터가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 지 잠깐 계산하고 있을 동안, 그의 말은 계속되었다.

“인기 있는 사람,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은 그냥 유전적으로 그렇게 타고 나는 수 밖에 없는 거라고요. 그냥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만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처음부터 없다는 것은 불공평하잖아요. 그런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거예요.” 
“그런가요?”

초록 목걸이를 한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유일하게 모두가 공평하게 받아서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해외수출입 자산을 모아서, 그 가치를 불리고 높이는 일에 저희들은 도전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나라에서 많은 물건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많이 확보한 사람이 되면, 그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그것이 이 썩어 빠진 현대 사회에서 유일하게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존경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길입니다.”

그는 그것으로 대화를 마치고 서둘러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 위해 떠나려고 했다. 가려는 그를 붙잡고 컴퓨터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잠깐만요.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열심히 모은 자산의 가치를 불리고 높일 수 있다는 건데요?”

초록 목걸이를 한 사람은 한심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코인에 투자하는 거죠.”


- 2021년, 서초에서
 

댓글 2
  • No Profile
    윤새턴 21.12.21 19:07 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메타버스 관련주랑 코인이랑 해외선물 풀매수 하면 된다는 말씀이시지요? ㅎㅎ

  • 윤새턴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1.12.31 10:43 댓글

    감사합니다. 이번 업데이트도 재미있게 봐주세요.

분류 제목 날짜
곽재식 우주선 유지 장치 특별 프로그램2 2022.10.31
서계수 인생서점 2022.10.01
박도은 돌고래 앨리 2022.10.01
갈원경 마지막 가을에 경서랑은1 2022.09.30
곽재식 소원의 정복자2 2022.09.30
박도은 겨울, 내 사랑 2022.09.04
빗물 추석이니까요 2022.09.01
곽재식 소설 쓰다 그만두는 이야기3 2022.08.31
갈원경 여름의 섬 2022.08.01
노말시티 꿈에서 읽은 이야기 (본문 삭제) 2022.08.01
전삼혜 시간을 넘어도1 2022.08.01
곽재식 극기4 2022.07.31
곽재식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4 2022.07.01
김산하 상태창! 2022.07.01
갈원경 수국의 꽃 2022.06.30
곽재식 우제점2 2022.06.01
갈원경 신사의 밤 2022.06.01
노말시티 최악의 변신 2022.06.01
강엄고아 별의 기억 (본문 삭제) 2022.06.01
미로냥 그때 흰 뱀 한 마리가 2022.06.01
Prev 1 2 3 4 5 6 7 8 9 10 ... 47 Next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