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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륜 기만과 협잡의 혼례

2004.11.26 20:5711.26

  머리를 찔러대는 강렬한 두통 때문에 억지로 잠에서 깨어버렸다. 몹시 머리가 무겁고 날카로운 통증, 나는 이마를 찌푸리며 머리에 손을 짚어보았다. 열같은 건 없는데, 최근에는 이렇듯 두통이 온 적이 거의 없었는데. 그런데 묘한 향기가 풍긴다. 손으로 침상을 짚는데 뭉클, 부드럽고 따스하게 잡히는 감각.

  “으응…….”

  여자의 희미한 목소리. 나는 두통을 부여잡고 옆을 돌아보았다. 여긴 내 방인데 웬 여자가. 이림의 얼굴이었다. 이불 위로 드러난 어깨와 가슴이 뽀얗게… 아침햇살을 받는 나신이 눈부시다. 역시 이런 몸매가 좋아. 지세린은 너무 말랐지. 단련된 몸도 좋고, 날씬한 것도 좋지만 역시 이렇게 제대로 손에 잡힐 것이 잡히는 몸매가 보기에도, 안기에도 좋아. 난 나직하게 휘파람을 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어제 책거리 때문에 가벼운 연회가 있긴 했었다. 주루를 빌려서 학사원 전체가 흐드러지게 놀았는데 결국 갈 놈은 가고 남아있는 놈만 남아서 놀았던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악우(惡友)놈들과 같이 어울렸던 것까지도 기억이 난다. 재신도 있었고, 내 친애하는 사촌도 있었지. 아무튼 몇몇 있었는데, 내가… 이림을 찾아내어 불렀지.
  나는 이림의 가슴에 입술을 갖다댔다. 이림이 달콤한 신음을 흘렸다. 어째서 집으로 데려왔을까? 내가 데려온 기억이 없는데. 이림이 유혹에 넘어올 듯 말 듯, 이림을 유혹하는 건 간만에 오싹오싹 밀고당기는 재미가 있었던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나는 집으로 여자를 끌고 오진 않아. 그런데 어째서?

  “이런 식으로 잠을 깨우는 거야?”

  아직까지 나른한 목소리였다. 잠이 덜 깨기도 하거니와 애교가 묻어있는 목소리였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잠결에도 아는 모양이지. 나는 웃으며, 내 숨결이 간지러웠는지 이림이 웃으면서 몸을 움츠렸다. 매끄럽고 탄탄한 허리를 살짝 훑자마자 이림이 손을 내젓다가 결국 길게 뻗어 내 머리를 끌어안았다.

  “항상 그렇진 않아.”
  “간지러워!”

  살갗을 탐하며 속삭이자 이림이 자지러지느라 등을 휘었다. 나는 이림의 가슴에서 입술을 미끄러뜨리고, 그리고 나는 이림이 토하는 숨결 사이로 선명하게 울리는 발소리를 들었다. 딱딱,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는 분명히 내 방으로 오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두통이 싹 날아갔다. 생각났다. 이림이 이상하다는 듯 반쯤 내려감았던 눈을 크게 떠서 올려다보았지만 나는 어느새 이마에 배는 식은땀을 닦으며 황급히 의관을 갖췄다.
  지금, 누님이, 포상휴가를 받아 돌아와 있다.

  “지금은 들어가지 않으시는 것이 좋으실 듯합니다, 아가씨.”

  애화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정중하게 고하고 있었다. 허리를 숙이고 있을 모양새가 눈에 선하게 잡혔다. 이림이 당황해서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손에 잡히는 대로 던져준 옷가지를 입고 있겠지.

  “무슨 소리지?”

  발소리가 딱 멎었다. 나는 침을 삼키면서 옷매무새를 확인했다.

  “도련님이 동행분과 아직 잠자리에 계십니다.”
  “그건 여자냐?”
  “예.”

  젠장! 애화녀석, 숙인 뒤통수 아래선 비죽이 웃고 있을 거다!

  “깨워.”
  “예.”

  잠깐의 간격을 두고 애화가 목소리를 높였다.

  “도련님, 아가씨께서 찾으십니다!”

  나는 이림을 돌아보았다. 이림은 상황을 파악했는지 창백한 낯빛으로 옷깃을 여미고 있었다. 살구빛 풍만한 가슴이 흘긋 보이다 사라졌다. 이림이 옷을 갖춰입은 것을 확인하고, 나는 입술을 질끈 물고, 문을 열었다. 누님이 노려보고 섰다가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이림이 일어서서 있다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누님은 어이없고, 기가 막히고, 천천히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인사드립니다, 미나단의 딸 이림이라 합니다, ”
  “미나단 지파의 수장 유소가님의 작은 따님 되시는 이림녀 아니시오?”

  공적인 자리에서나 불리는 정식 호칭을 그대로 불러대다니. 누님은 뼛속까지 무골이다. 간단하고 명료한 것을 좋아하는. 이렇게까지 화가 난 누님은 정말 오랜만… 젠장.

  “익히 소문은 듣고 있었지만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소.”

  이림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목까지 붉어진 채 입술을 지긋이 깨문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시겠지요. 최근에 묘한 풍속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내 눈앞에서 목격케 될 줄은 미처 몰랐소.”

  이림은 쥐고 있던 옷깃 앞섶을 꽈악 주먹속에서 구겨버렸다. 이림의 그런 모습에는 일체 신경쓰지 않은 채, 일말의 여지없이 냉정하게 말을 잘라버리며 누님은 아직까지 그대로 서있었던 방문앞에서 비켜섰다. 아직까지 누님은 나를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입술이 바싹바싹 마른다.

  “차후에 유소가님께 정식으로 사과를 드리겠소. 지금은 나도 아우도 경황이 없으니, 손님을 이대로 보낸다 해서 무례하다 탓하지는 마시오.”
  “누님!”

  나도 모르게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래도 누님은 날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림만을 쏘아보았다. 이림은 눈을 크게 뜨고 뭐라고 입술을 벌리기만 한 채 말도 끄집어내지 못했고, 파르르 입술을 떨며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애화가 문을 닫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누님-.”

  퍼억, 입안이 터졌다. 피할 틈도 없었다. 여기서 피했다면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짓이겠지만, 그럴 틈도 없었다. 찝찌름하고 비릿한 피냄새가 입안에 가득 찼다. 단순히 따귀를 갈긴 게 아니다. 주먹으로 있는 힘을 다해 후려친 거다. 입술도 터졌다. 나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검붉은 피가 길게 묻어났다.

  “내가 내 집에 와서 이런 꼴을 봐야 하는 거냐?”

  누님의 눈에서 파랗게 불꽃이 일었다. 나는 양손을 들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누님. 내 불찰이야. 잘못했습니다.”

  누님은 말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몹시 거북스럽고, 할 말도 없었다. 아무리 취했어도 집으로 데려온 적이 없었는데 어째서 집으로 데려왔을까. 식은땀이 축축히 배어 등줄기가 젖는 게 느껴졌다.

  “시영랑.”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누님을 쳐다보았다. 누님의 시선은 오싹오싹하다. 군대에 들어간 이후 안그래도 매섭던 눈길이 이제는 여차하면 살기를 뿜는다. 누님이 냉랭하게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자하니 하진 지파의 시영랑은 최근 유행하는 자유연애에 능숙하기 이를 데 없다고, 시영랑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여인네가 아니라지?”
  “무슨 소리야?”

  나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내가 그 정도는 아니다. 어디서 그런 유언비어를. 누님의 시선이 여전히 차가워 금세 웃음을 거두기는 했지만 나는 단호히 부정했다.

  “아냐. 내가 무슨 여자에 굶주린 것도 아니고, 집까지 데려온 건 처음이지만, 나도 내 상대는 까다롭게 고른다고.”

  이번엔 발이, 관자놀이를 노리고 날아왔다. 진심으로 화가 났다. 발까지. 그리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피해버렸다. 저거 맞으면 죽는다. 우리 지파는 원래 발기술이 유명하고, 누님의 실력은 그중에서도 발군. 좀 맞아야 누님의 화가 풀리고 뒷수습이 가능하겠지만 그대로 직격하면 정말 죽어.

  “누님, 날 죽일 셈이야?”

  긴장한 탓에 말끝이 떨리는 걸 간신히 억눌렀다.

  “닥쳐. 정식으로 내일, 유소가님께 매파를 보내 청혼을 드린다. 근신하고 있어.”

  나는 사태를 수습해야 된다는 생각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누나! 말도 안돼! 고작 하룻밤이었고, 이림도 나도 진심은 아니었어! 이림이 임신한 것도 아니잖아? 둘 다 하룻밤 갖고 가약 맺을 생각은 추호도 없고! 누나가 별일 아니라 지나간다면 누구도 신경쓰지 않아! 왜 화내는지 알지만, 나도 분명히 잘못한 건 있지만! 고작 이런 일로……!”

  몸이 문짝에 쿵 부딪쳤다. 누님이 내 배를 그대로 차버려 몸이 뒤로 날아가버렸다. 쿨럭, 위액이 올라왔다. 만약 팔로 막았으면 최소한 뼈에 금이 갔겠다. 살짝 뒤로 몸을 뺐기에 망정이지, 여전히 누님은 조금도 봐주지 않는다. 고개를 들자 누님의 살벌한 눈이 번쩍이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따가워.”
  “참으십시오.”

  의식을 잃었던 것 같은데 그건 아주 잠깐이었나 보다. 애화가 들어와 나를 눕히고 나간 틈에 잠들었던 건지, 다시 들어오는 기척에 의식이 돌아왔다. 나는 속옷 하나만 걸치고 누워있었다. 얼마나 꼼꼼하게 두들겼는지 내가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면 온통 몸이 울긋불긋 검붉은 멍이 들었다. 나는 쓰게 웃었다. 누님이 어지간히 화났던 모양이다.

  “웃음이 나오십니까?”

  애화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짐짓 지으며 약을 입술에 꾹 발랐다.

  “아파.”
  “참으십시오.”

  태연하게 대꾸하고, 애화는 내게 옷을 건네주었다. 팔을 꿰는데 신음이 절로 나온다.

  “누님은?”
  “외출하셨습니다. 재신님이 오셔서 바깥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만.”

  나는 끙, 신음을 흘렸다. 빠르기도 하지. 소식을 벌써 들었단 말야?

  “응, 불러줘.”

  그리고 애화는 약상자를 닫으며 물끄러미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말없는 응시에 나는 당황한 속내를 감추며 마주 보았다. 내 눈과 얼굴을 면밀히 살피던 애화가 조용히 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건방진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도련님, 아가씨께선 진심으로 유소가님께 청혼을 넣으실 요량이십니다. 지금 아가씨는 숙부님을 찾아가셨습니다. 매파를 찾아 도련님의 사주를 드리시겠지요.”

  나는 얼굴에서 핏기가 싸악 가시는 걸 느꼈다.

  “도련님께서 설마 이림녀를 반려로 맞이하실 생각이 없다 하셔도 이제부터 마음을 달리 바꾸셔야 합니다.”

  그 말을 남기고 애화는 물러났다.
  나는 일어나 앉아서 멍하니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얼굴이 굳었다.”
  “아.”

  언제 들어왔는지 재신이 씨익 웃고 있었다.

  “뭐야, 이쯤이면 끝났겠지 싶어 왔더니 집안이 가관이더군? 간만에 하유라누님이 벼락치고, 웬일인가 싶었다네, 친구.”

  이죽이는 말투에 나는 재신을 노려보았다.

  “그러길래 왜 이림을 집에 데려왔어?”

  재신이 슬그머니 말꼬리를 돌린다. 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몰라. 난 데려온 기억이 없는데, 대체 왜 집에….”
  “너 어제 분명히 이림을 데리고 사라졌다고.

  재신이 싱글싱글 웃어댔다.

  “내가 이림한테 작업을 걸었던 것까진 기억이 난다고.”
  “데려간 것도 기억나?”
  “난 분명히 주루로 데려갔는데.”
  “흐응, 2차도 뛰었단 말이지. 너 희한하게 많이 취했던데, 호오-.”
  “무슨 의미냐.”
  “아니, 별로.”

  녀석을 보니 그래도 기억이 하나 둘씩 되살아난다. 그래. 그것도 있었지.

  “그래도 내기에는 이겼다고.”
  “으응? 무슨 내기?”
  “아.”

  내가 씨익 웃자 재신이 다그쳤다.

  “무슨 내기?”
  “이림과 밤을 보내는지.”
  “명조? 네 그 선머슴아같은 사촌?”
  “아.”

  재신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내 어깨를 주먹으로 슬쩍 밀어쳤다.

  “아프다.”
  “여자애랑 그런 내기를 걸어? 너답다. 아니, 명조다운가.”

  언제 가져다두었는지 탁자 위에 얹어놓은 찻잔을 들어 짐짓 점잔빼면서 녀석은 입술을 갖다댔다. 이미 식어빠져 맛도 없을 텐데.

  “그래, 뭘 걸었지?”
  “돈을 걸었지.”

  명조와 하는 내기는 항상 돈을 건다. 오죽 돈을 밝히는 녀석이어야지.

  “얼마나 걸었어?”
  “뭐, 얼마 안돼. 명조한테 이겼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고.”
  “그래, 내기까지 걸었다는 걸 알면 이번엔 벼락, 다음에는 네 뼈마디라도 부러뜨려놓으시겠군?”

  명조를 이기는 건 정말 간만이었고, 덕분에 의기양양하던 기분이 순식간에 찌그러든다. 나는 다시 재신을 노려보았다. 재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맛없는 차를 마시는 척 재고 있었다. 이 자식, 내가 당하는 게 그저 재밌단 말이지.

  “도련님, 명조아가씨이십니다.”
  “제 말할 때 찾아오네.”

  재신이 재밌다는 말투로 말하고 나는 가볍게 손짓했다. 재신이 손끝으로 내 가슴을 가리켰다. 아, 아직까지 허리띠를 묶지 않았지. 색칠이라도 한 것처럼 배가 현란하다. 얼굴은 숨길 수 없겠지만, 나는 재빨리 옷깃을 여몄다. 명조는 아니나다를까, 들어오자마자 내 얼굴을 가리키며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 누님한테 들켰다며?”

  젠장. 내 표정을 보고는 재신까지 덩달아 싱긋 웃으면서 활달하게 걷는 명조를 위해 일어섰다. 명조를 앉히고는 자신이 의자를 침상 옆에 갖고 와 앉는다.

  “하지만 내기에는 이겼지.”
  “아.”

  …뭔가, 이상하다. 명조의 표정이 이상했다.

  “정말 맞아? 이림이 순순히 넘어왔단 말이지.”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할까?”

  명조가 순식간에 물러섰다.

  “아니, 그래?”

  정말 이상하다. 명조가 이렇게 쉬운 내기를 할 리가 없고, 생각보다 표정이 뭔가 마음에 걸린다. 나는 명조의 얼굴을 훑었지만, 명조는 포옥 한숨을 내쉬고 품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어 내게 던졌다.

  “쳇, 졌단 말이지.”
  “명조.”
  “응?”

  명조가 생긋 웃어 보였다. 재신도 명조를 마주보고 똑같은 얼굴로 웃었다. 쳇, 여우 두 마리.

  “돈이 그렇게 좋아?”
  “세상은 돈이거든.”

  씩 웃는 명조의 눈빛이 명민하게 빛났다. 자뭇 희극적인 어조로 웅변하듯이 손을 벌리고 노래하듯이 말한다.

  “내가 위급할 때 날 도와줄 최대의 아군이지.”
  “순전히 돈이 좋아서가 아니고!”
  “어머. 숙녀의 취미를 그렇게 헐뜯는 게 아니지.”
  “숙녀어?”

  순간 튀어나온 재신과 나의 합창에 명조의 눈썹이 치켜져 올라갔다. 재신이 먼저 머쓱함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나도 순간 미안해졌다고나 할까. 그녀는 척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럴 때가 아닐걸. 체면을 중시하는 유소가 아저씨는 이 혼담을 승낙할 의중이시지!”
  “뭐야!”
  “뭐야? 정말로?”
  “하하! 당연하지! 이렇게까지 일이 커졌는데 곧 소문이 짜할 테니까! 각오하라구요, 시영랑. 그대의 신랑예복을 맞추러 재단사가 올 거랍니다.”

  명조는 깔깔 웃으면서 단숨에 달아나버렸다.
  맙소사-. 재신까지 찢어진 눈을 희번덕거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유소가님이 그렇게 나오신다면…… 함은 내가 지도록 하지.”

  나는 대뜸 베개를 집어던졌다.
  아니나다를까, 정오를 지나자 재단사들이 들이닥쳤다. 무슨 일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진행되는지 어이가 없었지만 애화는 평소대로 묵묵한 표정을 한 채 재단사들을 지휘했다.

  “이거 봐, 애화!”
  “신부의 의상이 죽지 않도록 너무 화려한 건 피할 예정입니다.”
  “저희가 가져온 옷감 견본을 보여드립지요.”
  “애화!”
  “그래요. 하지만 너무 얌전해도 안됩니다. 뭐니뭐니해도 항렬의 첫 번째 혼례, 전례를 남기게 됩니다.”
  “충분히 명심하고 있습니다, 애화님.”

  이익, 계속 무시라 이거지.

  “애화, 너무 빠르잖아? 유소가님이 제대로 답하신 게 맞아?”
  “물론이지요, 도련님.”

  여태껏 무시하던 애화가 역시 이 말에는 재깍 고개를 들어 답해왔다.

  “심려 놓으시지요. 내일 예단을 보내온다 전하셨으며, 혼례날짜도 길일로 받아놓았답니다.”

  애화는 뿌듯하다는 모양으로 웃었다.
  치수만 재고 물러가버리는 바람에 나는 정작 내 예복을 견본조차 못 봤다. 어차피 그 모양이 그 모양, 여자의 것과는 달리 남자는 관복이 기본이다. 한 번, 학사원에 들어오면서 관례를 올렸을 때 입어봤었다. 진절머리나도록 입기 까다로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혼례의 것은 관복에 외의(外衣)를 한 겹 더 입는데, 외의라기보다는 장식에 가깝다. 거추장스럽게 땅에 질질 끌리는. 혼례용 관복에는 흉배의 문양이 양 가문의 것, 원앙과 학 한쌍이 각각 들어가기 마련. 여자 것은 붉은색, 황금색을 많이 넣어 정말 공작새처럼 화려했었지.
  하지만 이대로 앉아서 입히는 대로 신랑역을 할 수는 없다! 해가 기울어갈 무렵, 저녁상을 물리고 나는 문밖을 슬쩍 보았다. 지키는 사람은 없다. 이 시간은 식솔들의 시간, 저택이 온통 분주하다. 나는 방을 빠져나와 내원(內園)을 가로질렀다. 감나무를 타고 담을 넘으면 바깥채. 나는 쪽문으로 향하다 딱, 들어오던 시비 하나와 마주쳤다.

  “도련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상황을 파악한 그녀가 낮게 속삭였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자아, 빨리빨리, 누가 오기 전에. 나는 잽싸게 그녀의 손에 든 소쿠리를 빼앗아들고 뺨에 손을 얹었다. 눈이 동그래진다. 심장소리가 들려오는 듯, 시비의 눈이 설레임과 동경, 기대로 반짝였다. 나는 턱을 받쳐들며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저물어가는 노을볕을 받아 뺨의 솜털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사과를 먹었는지 달콤한 향기가 입술에 아직까지 어려 있었다. 조금 단내가 나긴 했지만, 이 정도야.

  “도련님!”

  원망스러운 말투는 그래도 나직했다. 홀린 듯 애정을 듬뿍 담고 쳐다보는 눈은 언제나 보아온 익숙한 것이다. 나는 쿡쿡 웃었다.

  “금방 돌아올 테니까 못본 걸로 해줘.”

  소쿠리를 도로 그녀에게 안기고 나는 쏜살같이 빠져나와 마시장으로 달렸다. 이대로 당할 순 없다! 우리 집이나 그녀의 집이나, 결국 구조는 비슷하다. 하지만 유소가님은 지파의 수장이시니 규모가 훨씬 크겠지. 이림의 거처는 나와 마찬가지로 내원 안쪽에 있을 것이다. 그녀는 형제들이 많지만 어릴수록 거처를 안쪽에 두는 법. 이림은 둘째고, 내원 서쪽의 안채가 그녀의 것일 거다.
  평소같으면 값을 흥정했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돈을 쥐어주고 나는 말을 달렸다. 미나단 지파가 사는 밤골은 우리 동네와는 거의 수도의 끝과 끝. 학사원을 돌아 한참을 달렸다. 해가 서산을 넘어가버릴 무렵, 뉘엿뉘엿 땅거미가 깔려 달빛이 본격적으로 훤해져갈 무렵 거의 밤골에 다다랐다. 달리는 동안 어쩐지 마음이 초조했다. 달려가서 뭘 어쩌자는 건지.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이 시영랑이, 고스란히 앉아서 꼭두각시 신랑놀음 놀아날 수는 없어. 사방팔방에서 다들 날 신랑으로 몰아붙이는데! 팔짱끼고 앉아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그런데, 밤골에 가까이 갈수록 뭔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징과 꽹과리를 쳐대면서 뭔가 흥겹다. 지금은 날이 저물어가고- 낮동안 뜨겁게 달아올랐던 공기가 차갑게 식어가면서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퍼지는 시간, 사람들의 신난 듯한 목소리가, 제법 추임새까지 넣어가면서 뭔가 본격적인 놀이가 한판 시작되려는 모양새였다. 피어오르는 연기, 집들이 뻘겋게 물들었다. 모닥불까지 피우고, 정말 뭔가 하려는 건가?
  유소가님의 저택은 밤골에서 두 번째로 크다. 그러고보니 불이 그 앞에서 타오른다. 나는 말을 묶어두기 전에 정문쪽으로 말을 몰았다. 단순히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어쩐지 매우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혹시, 혹시…… 만에 하나 모르니까.

  “아버님! 저도 들어가고는 싶은데요! 너무 추워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아! 술이 있으면 몸이 풀릴 것 같습니다아!”

  기세좋게 고함을 질러대는 목소리는 늘상 듣던 것이다. 하하……. 어째서 안좋은 예감은 이렇게 항상 맞는 거냐. 태형, 이 빌어먹을 자식! 신랑 몰래 함 팔러 가는 자식이 어딨단 말이야! 이 자식!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안돼안돼, 여기서 뛰쳐 나가면 이림을 보지도 못한 채 바가지만 깨고 고스란히 집으로 끌려갈 거다. 어쩌면 저기서 저렇게 함진아비 태형을 참을성 있게 달래는 유소가님과 그 일가친척 어른들에게 녹신녹신 두들겨 맞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럴 거야. 나는 저도 흥분하려고 푸르릉거리는 말 목덜미를 살살 두들겨 달랬다.
  함진아비를 재신이 잘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체 저건 누가 선별해서 맡겼을까. 생각대로 태형에게 함진아비를 맡기고, 그 종자를 재신이 하고. 악우 놈들 몇 명이 재주좋게 추임새를 넣는다. 그리고 치마를 입은 처자들이 근처에서 일렁일렁 치맛자락을 흔들며 돌아다닌다. 내가 아는 얼굴도 몇몇 보이는 걸 보니 이림의 친구들이다. 악우놈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모양이다. 고생이겠군. 모닥불의 불똥이 탁탁 튀어오른다. 불꽃이 이따금 퍼엉, 소리를 내며 높게 치솟는다. 그녀들은 제멋대로 춤추는 불꽃을 등지고 있어 검은 그림자로만 보이며, 이따금 보이는 발놀림이 여간 잽싼 게 아닌지라 흡사 그녀들의 움직임이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 밤골 사람들이 전부 모여서 구경 중인지 사람도 오지게 많다! 유소가님은 인심도 좋으신지 놈들에게만 음식을 풀어놓는 게 아니라 모닥불 주위에도 술과 음식을 풀고 계시다. 흐응- 완전 잔치판이구만. 이 와중에도 함진아비는 조금씩, 아주 느리게 전진 중이다.
  휘익-!
  놈 중 하나가 날카롭게 휘파람을 불어젖혔다. 응?

  “지세린이다!”

  어느틈엔가 대문위에 한 그림자가 당당하게 올라서 있었다. 양 손에 커다란 방울을 각각 들고, 황금빛 활옷을 너풀거리며. 너무 느리게 움직이니까 지파 어르신들이 빨리 당기라고 하셨나. 짜라라라랑! 방울소리가 완전히 어두워진 밤을 찢는다. 일제히 시선이 대문위로 쏠렸다. 그렇게 주목을 끌고 지세린은 팔을 들어올렸다. 우아하게 휘도는 춤사위. 손에 들린 방울은 아까 그리도 높게 울렸던 주제에 새삼 부끄럽다는 듯 감질나게 울린다. 하지만 이어지는 춤사위만은 누가 봐도 명백한 유혹이었다. 맙소사, 저런 춤도 출 줄 알았나. 저 지세린이? 하하! 지세린의 저런 춤이라니, 놈들을 끌어오기에는 최고의 패다! 놈들이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장정들이 주르륵, 놈들의 몸을 밀어버렸다. 단숨에 거리가 좁혀져버린다. 이걸 알아차리고 버티려는 놈들과 미나단의 장정들, 어른들의 실랑이가 소란스럽다.
  쳇, 신났다 이거지.
  신부는 방에 갇혀 있을 거다. 나는 말에 올라 다시 쪽문으로 향했다. 그 때, 대문의 높게 솟아오른 기와를 위태위태하게 밟으며 춤을 추던 지세린과 눈이 마주쳤다. 거리는 좀 멀었지만 분명했다. 아뿔사, 한번만 더 보고 간다는 게 그만. 그리고 방긋, 지세린이 웃었다. 뭐 잘 보이진 않지만 웃는 듯한 느낌이. 한 번 서쪽을 향해 방울을 뿌린다. 이 거리에선 내 얼굴이 보이지 않겠지. 어린애도 아니건만, 불같이 달아오른 얼굴이 보이지 않을 거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말을 매어두고 나는 쪽문을 들어섰다. 시비들이 다니는 문에 문지기는 없다. 지세린이 가르쳐준 대로, 내가 생각했던 대로 신부는 서쪽의 안채에 있겠지. 사뿐히 담을 넘자 우리 집과는 비교도 안될 규모의 내원이었다. 굳이 방향을 찾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불이 훤한 채 아무 기척 없이 도란도란 말이 오가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바깥채에서 음식을 하느라 정신없는 통에 이쪽은 사람도 거의 드물었다. 나는 몸을 낮춰 열린 창문 밑에 몸을 붙였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이림의 목소리였다.

  “응, 나도 이제 유부녀가 되어버릴 테니까 지세린같은 역할을 한 번도 못해본다는 것 정도.”
  “네가 하면 무서울 거야.”

  명조의 목소리였다. 아, 그러고보니 명조녀석, 이림과는 육촌간이지. 하긴 나한텐 명조가 외가쪽이니까.

  “확실하게 역할을 다해줘야지.”
  “그게 무섭다는 거지.”
  “네 혼사때 해주고 싶었는데.”

  나지막이 한숨을 쉬는 이림의 목소리였다. 명조가 웃었다. 흐응, 명조녀석 여자들끼리 있을 땐 이렇게 고분고분한가? 의외인건 이림인데.

  “어차피 둘 중 누구 하나는 먼저 하는 거잖아? 넌 무서우니까 네가 먼저 하는 게 수도의 총각들을 구제하는 길이지.”
  “나는 타락으로 이끄는 여자인 거냐?”

  이림이 어이없다는 말투로 실소했다. 하하, 명조가 명랑하게 웃었다.

  “난 실제로 네가 시영과 혼례를 올리게 될 줄 몰랐어.”
  “거짓말.”
  “그러니까 내기에 졌잖아?”
  “뭔가 숨기는 게 있을걸, 명조 너는.”

  ……흐응, 그래.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다는 거지. 결국은 마찬가지라는 거지?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럼 내가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겠지. 자,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누구냐?”

  이림이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창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잠깐 이림의 얼굴이 굳었다.

  “왜 그래?”

  명조도 따라서 내려다보다가 입술을 벌렸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곧 안색을 회복하고 나를 나무란다.

  “바가지도 안깼는데 신부를 보러오는 신랑이 어딨어!”
  “사소한 건 따지지 말자고. 네가 그런 말 할 처지던가?”

  나는 툭툭 엉덩이를 털었다. 명조가 기죽은 얼굴로 한 발 물러선다.

  “비켜줘. 할 말이 있어.”

  명조가 힐끗 이림의 눈치를 살폈다. 이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하려고 고개를 드는데, 이림이 먼저 선수를 쳤다.

  “미안해.”
  “무슨 소리야?”

  뜬금없는 소리에 나는 멀뚱멀뚱 이림을 바라보았다. 방안에 있기 때문에 이림의 키가 더 크다. 이림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문득 한숨쉬며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하지만 아직도 시선이 훨씬 더 높았다.

  “나도 네 누님, 미안, 하유라님한테 그렇게 들킬 줄은 몰랐어.”
  “이거 봐, 이림.”
  “하유라님이 그렇게 아버지께 단숨에 청혼서를 보내실 거라고 미처 생각도 못했고, 더더군다나 아버지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빨리 진행하실 거라고도 생각 못했어.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어.”

  눈을 깜박이면서 이림이 나를 보았다. 나는 손을 창틀에 짚고 몸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창틀에 올라앉자 이림과의 거리가 숨결이라도 느껴질 듯 가까워졌다. 하지만 이림도 나도 물러설 기색없이 마주보았다. 이림은 단정하게 양 소매에 손을 넣고 허리를 곧게 편, 당당한 자세였다. 나는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그건 피장파장이야. 나도 네게 그런 창피를 줘서 미안하니까 그건 없던 걸로 치자고.”

  이림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잘 들어, 이림녀. 난, 부모없는 후레자식한테 딸내미를 시집보내준다는 은혜따윌 입고 싶진 않다고. 내 배우자는 내가 선택해. 이렇게 끌려다니면서, 더군다나 본격적으로 우리가 끌려다닐 게 뻔한 혼인, 그 앞에 어떤 특혜가 기다리고 있어도 할 생각 없어.”
  “생각해봐, 시영랑.”

  이림은 곧은, 올바른 얼굴을 하고 말을 꺼냈다.

  “나와 네가 들킨 게 바로 어제야. 어제 아침이었는데 벌써 청혼서와 허혼서가 왔다갔다하고 혼례날까지 잡고 함까지 왔지. 왜 이렇게 빨리 진행하는 거라고 생각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본래 너와 나 사이에 혼담이 오갔기 때문이야. 하유라님이 반대하셨기 때문에 물밑에서 오가던 혼담이 무산되었지.”
  “내가 거절했거든.”

  나는 웃었다. 이림의 눈에 상처입은 듯한 기색이 스쳤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말했지. 난 멋대로 끌려다닐 생각 없어. 그러니까 네가 확실하게 거부해줘.”
  “그럴 수 없어.”
  “뭐?”

  이림이 일어섰다. 곱게 차려입은 복색, 혼례복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비단과 금박을 써서 화려하게 치장한 이림은 평소에는 풀어놓는 머리를 한올한올 꽁꽁 땋아서 깨끗한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이림은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난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해. 네가 거절했다고 말했지만.”

  이림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하유라님도 혼담이 내키지 않으셨으니까 거절하셨겠지. 그러니까 하유라님은 그렇게 화를 내셨을 거야. 하유라님의 성품에 그대로 지나칠 수는 없으실 테고, 더군다나 거절했던 혼담의 상대를 끌어들여버렸으니 못본 척 넘어가시는 건 우리 아버지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도 하고, 싫은 아이를 올케로 들이기도 싫으시니까 화를 내셨을 거야. 아버지도 이미 거절당한 혼담을 억지로 다시 진행해야 하니까, 널 마음에 두고 계셨지만 자존심이 몹시 상하셨을 텐데 일이 이렇게까지 커져버리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진행하고 계시는 거야.”
  “알아.”

  이림의 소매가 구겨지고 있었다. 소매 안에서 천을 잡아뜯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림은 억지로 평정한 말투를 가장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이림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보니, 이림의 뺨이 부어 있다. 희미하지만 붉은 자국도 남아있는 것 같다. 쳇.

  “나는 혼담 모르고 있던 거 아냐. 알면서도 너와 밤을 보냈어. 만약 들키면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했어. 그러니까,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여자가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오면 대체 어쩌라는 거야.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쥐뜯고 싶은 심정을 억눌렀다.

  “어차피 한번 거절했던 건데 한번이든 두 번이든 상관없지 않겠어?”

  하지만 두 번이나 같은 사람에게 거절당한다면 유소가님에게 단단히 미움받겠지. 대체 왜 이렇게 오도가도 못할 상황에 빠진 거야.

  “시영랑, 내가 싫어?”

  아아, 젠장.  
  이림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가장했지만, 이게 여우짓이든 어쨌든, 여기에 대고 내가 대항할 만한 무기가 없다. 제기랄, 본전도 못 건지고 가는구나.
  나는 이림의 뺨을 양 손으로 감싸쥐고 노골적으로 한숨쉬는 표정을 만들어보였다.

  “이림, 그런 질문을 하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미안.”

  이림은 다시 한번 사과했다.

  “미안해.”

  미나단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하진 지파의 내 항렬 중에선 내 혼례가 제일 첫 번째다. 내가 말을 타고, 누님과 이미 숙부님들, 숙모님들,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이미 밤골에 가 계시다. 내 말고삐는 재신이 잡았고- 본래는 신랑친구 몇이 따라붙는, 그렇게 단촐한 행렬이건만, 내 행렬은 길었다. 구경꾼들이 많았던 까닭이다. 학사원에서도 거의 다 구경나와 하나 둘씩 가는 길목에 행렬의 끝에 따라붙었다. 점점 행렬이 많아져간다. 하하. 하지만 막상 밤골에 도착해보자 내가 몰고온 것보다 더한 인파가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아아, 유소가님은 수장이셨지. 친척도 많으실 게다. 각 지파의 어른들도 무수히 나오실 거다. 유소가님의 저택 앞에 빽빽이 깔린 천막을 보고 나는 나도 모르게 신음을 뱉었다. 재신이 씩 웃었다.

  “사상 최대의 혼례다. 실수 하나라도 하면 안그래도 소문이 자자한데 20년은 우려먹을걸.”
  “재수없는 소린 닥쳐라.”

  아무리 나라지만 식은땀이 절로 난다. 내가 도착한 걸 보자 웅성웅성 사람들이 말한다. 마치 말소리가 파도치듯, 작게 시작한 파도가 몰리고 몰려 크게 바위를 덮치듯 나중에는 거의 소리지르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신랑이 도착했다!”

  젠장,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안다고. 초례청을 둘러싼 천막들이 기울어가는 해의 마지막 볕을 받고 있었다. 하하. 이 공터 내에 기름냄새와 음식냄새가 말도 못하게 풍긴다. 게다가 인파가 많은 곳에 으레 있기 마련인 아이들의 울음소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얼마나 많이 먹고 갈지. 이제 시작이건만 나는 벌써부터 규모에 질려버렸다. 예의 입술이 비틀리려는 걸 억누르며 말을 몰아간다.

  “여기선 도망갈 수도 없겠지.”

  재신이 낮게 쿡,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자식.
  사람들이 조금씩 투덜거리며 길을 텄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아슬아슬하게 좁다란 길이 열렸다.

  “미안하다, 친구여. 나는 이정도의 즐거움이라도 있어야겠다.”

  무슨 소리야? 재신의 뜬금없는 소리에 되묻기도 전에 초례청이 보였다. 재신이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보자기에 꽁꽁 싸놓은 자그마한 함을 하나 꺼냈다. 나는 말에서 내렸다.
  혼례의 절차는 간단하다. 내가 나무기러기를 초례청에 바치고, 이림과 내가 검무(劍舞)를 나누는 것이다. 나는 무심히 재신이 내주는 함을 받아든 뒤에야, 초례청을 온통 둘러싼 사람들 앞에서 정신을 차렸다. 생각해보니 이림과 검무를 춰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건 고사하고, 이림이 검을 쓰는 것도 거의 보지 못했다! 딱 한번인가? 아니 두 번인가? 대체 왜 이렇게 인륜지대사를 이렇게 대충대충 치러야 하는 거냐! 보통은 신랑신부가 죽어라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뒤에야 추는 거라고!

  “검무도 연습안했잖아!”
  “이제야 그 생각이 드냐.”

  재신이 불퉁하게 말하면서 내 어깨를 떠밀었다.

  “자, 빨리 가라고. 사람들이 너만 쳐다보고 있다.”

  젠장! 당장 이걸 패대기치면 전례에 없는 패륜아가 돼버리겠지!
  함안에는 얌전하게 청홍비단에 폭 싸인 나무기러기 한 쌍이 들어앉아 있었다. 나는 비단째 들어 초례청에 올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장인어른에게 삼배(三拜). 공터내에는 정적이 깔렸지만 그렇다고 쥐죽은 듯한 건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해 있지만 그건 팽팽한 긴장이 아니다. 사람들은 수군수군 서로 이야기하고 억지로 목소리를 낮춘 척하며 키득거렸다.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는 소리, 엄마가 당황해서 아이를 달래는 소리도 난다. 악우들이 노골적으로 히히덕거리고 처자들이 소리가 들릴리도 없건만 소곤대며 깔깔거린다. 어른들까지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쳇, 딱 좋은 안주감이다.
  항아님들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내게 검을 내주었다. 이렇게 치렁한 포(袍)를 내린 상태로 어떻게 검을 쓴다? 뭐, 춤이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쉽게 포기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신부는 휘황한 활옷차림으로 검을 받아쥐고 있었다.  붉은 감에 금실로 모란과 연꽃을 가득 수놓고 소매에 흰 감을 덧댄, 수없이 구슬들을 얽어 움직일 때마다 맑은 소리가 울리는 활옷이었다.  대체 저런 차림으로 대체 어떻게 움직일 생각이지? 치렁한 머리를 둥글게 땋아 얹고 그 위에 칠보(七寶)로 장식한 화관까지 썼다. 바닥에 치맛자락이 끌린다. 금박을 두 겹이나 두른 대란치마가, 그녀가 한 발 움직이자 사락 끌렸다. 이림은 나를 향해 생긋 웃었다. 이미 해가 기울었는데도 공터는 대낮같이 환했다. 달빛이 제 역할을 하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곳곳에 밝혀놓은 횃불이 일렁이며 초례청 앞의 자리를 밝혔다. 우리가 춤출 자리를. 횃불 아래서 붉은 기운을 받고 있는 이림은 아름다웠다. 이림은 저렇게 춤을 출 작정이다. 그렇담 나도 응해줘야지.
  눈이 마주치고, 우리는 거의 동시에 검을 뽑았다. 검무용이므로 날을 다 죽여 놓은 데다 두께가 몹시 얇은 것이었지만 손질만은 잘해두었는지 검신이 번득였다. 일순 좌중이 숨을 죽였다. 이림과 내가 각자 한 발씩 옮겼다. 아무리 춤이라지만 단 한번도 호흡을 맞춰본 적이 없다. 날이 죽었어도 검은 검, 나는 검을 놀이로 잡은 적은 없다. 한데 나는 이림의 검놀림을 전혀 모른다.
  먼저 움직인 건 이림이었다. 흔들흔들, 낭창낭창하게 팔이 움직이다가 내 어깨를 향해 찔러왔다. 느릿하게. 나도 마찬가지의 속도로 이림의 검에 부딪쳐 창 소리를 내며 막았다. 언젠가 혼례의 검무를 본 적이 있다. 되도록이면 소리를 많이 낼 것, 두 사람의 호흡이 딱딱 맞을 것, 찌르고 막아내고 당기고 미는 호흡이 한 호흡 느릴 것, 신랑은 신부에게 져줄 것.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신부의 저렇게나 긴 치맛자락을 밟지 말 것.
  하지만 이림의 검이 점점 빨라지는데? 나는 아무렇게나 휘둘러, 찔러들어오는 이림의 검을 먼저 막았다. 헤에, 이림의 검이 빠른 와중에도 제법 무겁다. 하지만 이정도의 무게도 이림의 전력은 아니다. 힘을 생각해서 조절하고 있지만 점점 조절하기가 난처하다. 검이 빨라지니까. 이림은 움직이기 곤란한지, 하긴 만약 치마가 찢어지기라도 하면 아직 검무끝에 맞절도 해야 하는데, 되도록 움직임을 삼가고 검만을 종횡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발은 느리고 검은 빠르다.
  그 와중에 이림과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그녀는 바닥을 차고 뛰어올랐다. 치맛자락을 가볍게 걷어찬 이림은 위에서부터 검을 쳐내린다. 붉은 치맛자락을 배경으로 발이 언뜻 보였다. 운혜(雲鞋)는 작았다. 흰 버선, 짙은 색, 또렷한 파란색의 앞코가 유난히도 선명했다. 그 발은 금세 다시 치맛자락의 금박에 감겨 사라져버렸고 검만이 나를 향해 내려꽂히고 있었다. 나는 오히려 한 발을 뒤로 뻗으며 자세를 낮춰 이림의 검을 받았다. 이림이 미소를 띠었다. 검신이 교차해 부딪친다. 창! 체중까지 실어내린 검은 꽤 묵직했지만 버텨주기가 어려운 건 아니었다. 이림의 발이 다시 한번 치맛자락을 쳐내고 땅바닥을 딛을 때까지 나는 이림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대로 버텨주었다. 이림의 눈동자에 어린  계산의 빛. 저게 싫었지. 명민하고 영리한 머리를 그대로 비춰주는 저 눈이 거슬렸지. 청혼을 거절당하고도 태연한 척, 모르는 척, 계산하는 속내가 싫었어.
  이림이 한 발 내딛으며 낮게 허리를 숙여 검을 내뻗었다. 나는 허벅지로 찔러들어오는 검을 먼저 움직여 가로막고 위로 쳐올렸다. 잃어버린 몸의 균형을 삽시간에 되찾으며 이림은 검을 거두지 않고 턱을 향해 찔러올린다. 나는 힘을 가해 날려버릴 생각으로 휘둘렀지만 맞부딪치자마자 이림은 그 반동을 이용해 빙글 몸을 돌렸다. 내 계산을 읽고 있었나? 젠장, 이렇게 되면 치맛자락을 밟게 되잖아! 내가 한 발 물러서자 쇄도해오는 검. 창! 검이 부딪쳤다. 이림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입술에서 단숨이 흘러나왔지만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시영랑, 너는 마냥 싫기만 한 것 같지만.”
  “네가 사태를 책임진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도망가겠어?”

  내가 생각해도 목소리가 무뚝뚝했다. 이림이 검을 떼내고 이번엔 베어버릴 심산으로 들어온다. 역시 가로막았다. 다시 창! 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이번엔 같이 이림의 몸에서도 낮고 맑은 방울소리가 들렸다. 활옷과 머리에- 안보이도록 고정시킨 화관에 매달린 구슬들의 소리였다. 여지껏 내가 못들은 거겠지. 그정도로 긴장했었나?
  다시 얼굴이 마주본다. 이림이 붉은 색 또렷한 입술을 움직여 웃음지었다.

  “하지만 난 너를 사랑해.”

  나는 검을 놓쳐버렸다. 일순 이림이 검을 거두었다가 다시 가볍게, 그렇지만 매섭게 작정하고 휘두른 검에 부딪쳐 맥없이 놓쳐버렸다. 호흡이 흐트러져버렸다. 이림이 멋쩍은 듯 웃으면서 뺨을 붉혔다. 해가 완전히 져버리고 달도 드높게 떠올랐다. 하지만 횃불 때문에 달빛은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한다. 이림의 무척 부끄러워하는 표정이 횃불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워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얼굴의 윤곽은 더욱 뚜렷해 보여 아름다웠지만, 발갛게 달아오른 볼도, 단내를 토하는 입술도 아름다웠지만- 나는 문득 떠올렸다.
  실제로 시영과 결혼하게 될 줄은 몰랐어.
  그러니까 내기에 졌잖아?
  진다고 해서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아니, 그게 아니지. 그런 건가. 그러니까, 나와 결혼을 내기에 걸었다는 거겠지?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림이 이상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마를 찌푸렸다. 이림의 의혹어린 눈이 이제는 불안을 담는다. 나는 실소하고 싶은 기분, 나 자신을 비웃고 싶은 기분, 허탈한 기분을 억누르며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다. 그래도.
  나는 가까이 다가온 이림의 허리를 낚아챘다. 이림이 당황해서 발버둥치는 순간 뒷 머리를 받치고, 무수한 핀이 있는 걸 깨닫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어깨로 손을 옮겼다. 이러면 분위기가 없지만 그래도, 입을 맞췄다. 매끄럽고 말랑말랑하고, 둘 다 땀냄새에, 이림도 긴장했었는지 아직까지 팽팽한 긴장이 품에서 느껴졌지만, 그래도 입술의 즐거움은 충분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야유와 비난, 격려의 웃음소리가 쏟아지고 노발대발한 목소리는 아, 유소가님, 이제 장인어른의 것인가. 누님도 보기 드물게 목소리 높여 화를 내고 계시고. 더군다나 이제 품안의 몸이 명백히 거부를 표명하며 퍼득거린다. 나는 그녀의 입술을 한번 잘근 깨물어주고 입술을 떼어냈다. 나는 정면으로 이림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어지간히 화났는지 눈빛이 다 형형하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돌연 얼굴에서 화가 사라졌다. 이림이 움찔, 뒤로 팔을 뻗었지만 내가 안고 있다. 그녀를 받치고 있는 건 내 무릎과 팔뿐.

  “사실대로 말해봐. 약을 풀었지?”

  깜박, 속눈썹이 오르내렸다. 품안의 몸이 흑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까짓 청주(淸酒) 두어 병 마셨다고 그렇게 머리아플 리가.”

  나는 이림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붉은 석류석 귀걸이가 이림의 머리카락사이로 흘러내려 있었다. 잔뜩 긴장한 그녀의 귓불을 입술로 건드리며 나는 목소리를 깔고 나지막하게, 다시 한 번 속삭였다.

  “약을 풀었지?”

  이림이 숨을 죽였다. 아무런 말도 못한 채 그저 물끄러미 눈만 크게 뜨고 있을 뿐. 나는 그녀를 풀어주었다.
  어른스럽지 못해! 아무래도 이대로 넘어가기에는 분한데, 아무래도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이림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대로 웃어주고 싶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 얼굴은 껄끄러웠다. 이림이 선뜻 마주 잡지 못한 채 마주본다. 그 잠깐의 시간, 눈을 마주치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내가 길게 느낀 건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길었다. 나는 덥석 이림의 손을 쥐었다. 맞절을 돕기 위해 항아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상하게 길어진 검무 - 우리의 기색을 양가 친척들과 하객들이 면밀하게 살핀다.

  “빨리 절하고 끝내버리자.”

  이림이 쿡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힘없이 잡혀 있던 손이 힘을 꽉 주어 마주 잡아왔다.
  맞절을 올리고 술까지 나누어마시어 혼례를 마무리지은 뒤, 폐백을 드리기 전에 나는 잠깐 빠져나왔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내 신부고 밤에 초야도 치를 건데  뭐가 어떻다고, 팔팔 날뛰는 이림의 형제들을 피하기는 조금 어려웠는데, 뭐…… 어쨌든 살짝 빠져나와 나는 친구놈들의 천막을 찾았다. 일은 마무리지어야지.
  의기양양한 자세로 술잔을 들고 있는 명조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툭, 툭, 불만어린 얼굴로 놈들이 주머니를 명조에게 던지고 있었다. 명조는 비어있는 손, 한 손만으로도 그 주머니들을 능숙하게 공중에서 잡아챘다. 나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치사해, 명조녀.”
  “어머, 뭐가?”

  명조가 방긋 웃었다. 재신이 손을 내저었다. 술을 많이 마셨는지 제법 불콰한 낯빛이었다.

  “두 번 다시 너랑 내기 안해. 이쪽저쪽 자존심을 있는 대로 긁어놓고, 너는 네 실속을 다 차렸다 이거냐, 쳇.”
  “정당한 내기지. 내기에서 이기려고 노력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재신랑.”

  그랬다는 거지?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궤짝들 뒤에서 나타나는 순간 이쪽을 향하고 있던 재신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내가 말하려고 팔짱을 끼는데 턱하고 누가 뒷덜미를 잡는다. 어쩐지 익숙한 느낌, 그리고 몹시 불안한 느낌이 든다?

  “숙부님이 기다리신다, 시영.”
  “누님?”

  누님은 그 말 한 마디밖에 안했지만 나는 더 이상 말할 수가 없었다. 누님의 뒤에서 우르르 이림의 형제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던 까닭이다. 이림의 오빠, 이림의 사촌들, 이림의 남동생들. 왜이리 형제들이 많은 거야?
  등뒤에서 명조가 명랑하게 웃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사흘 뒤엔 술이라도 사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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