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휠체어님께....


                         내가 사는 이곳은 머리카락이 끝까지 자랄 수 없다.
                         뽑혀진 사람들, 잘려진 사람들, 자르는 사람들,
                         모두가 불행하다.
                         그래서 난 외계인과 사랑에 빠지고 싶다.      
                                                                        
                                                      휠체어님, "머리카락"



  1. 등교 길
  "거기서 뭐하는 거야? 오늘은 학교도 가지 않는 거야?"
  햇살이 따뜻해서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지나가는 강아지가 슈에게 한 말이다. 슈는 도저히 그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개들은 좀처럼 구별되지 않았다. 목소리로도……. 얼굴 생김새로도……. 그러니 빨리 포기하자. 슈는 강아지의 눈을 맞추고 방긋 웃었다. 그러자 강아지는 가버렸다. 맞아. 학교에 가야겠다. 벌써 안 간지 일주일이 넘었군. 곧 슈는 깨달았다. 가방을 챙기려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엄마, 학교 갈 거야 밥 줘!"
  슈는 소리쳤다.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맞아 나에겐 엄마가 없지. 결국 밥은 포기했다. 화장실 문을 열었다. 언제 나처럼 문은 열리지 않았다. 여동생이 들어간 후 나오지 않았다.
  벌써 2년하고도 6개월 24일전의 일이다. 여동생은 나오지 않는다. 이번 변비는 정말로 오래가는군. 그는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학교 가서 해결해야겠군. 슈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섰다. 조금 걸어가자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조금 더운 날씨였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그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아무 때나 왕복하기 때문에 계속 기다려 줘야만 한다.
  "이봐 슈, 오랜만인데. 학교 가는 거야?"
  조그만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밑인데……. 그는 땅바닥을 내려다 봤다.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달팽이가 열심히 아스팔트를 기어오고 있었다. 달팽이의 시력도 목소리도 여전히 대단했다.
  "이봐 기다려 내가 그쪽으로 가지."
  달팽이가 말했다. 슈는 기다려야 한다. 조금 오래 걸리겠지만……. 기다려 줘야 한다. 그것은 슈가 예의 바르기 때문이다.

  슈는 그날 학교를 가지 못했다. 어두워지자 슈는 그만 졸음이 쏟아져 잤던 것을 기억한다. 늦은 아침에 그는 깨어났다. 달팽이는 이제 거의 다 왔다.
  “미안 그만 잠깐 졸았어.”
  슈는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누가 졸았다고? 슈, 네가 잤다는 거야. 나는 보지 못했는데…….”
  슈는 웃기만 할 뿐이었다.
  “너의 행동은 너무 빨라서 조금은 어지럽거든 그렇게 몸을 조금씩 흔들고 있는데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 보고 있으려니 어지러워…….”
  “아, 미안.”        
  슈는 조금도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눈도 돌리지 않고 말을 할 때는 입도 가급적 조금씩 움직였다.
  “그런데, 학교 가는 거야?”
  “응, 오랫동안 못 갔었어.”
  “그럼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거지?”
  “그래, 그런데 왜 버스가 안 오지?”
  “이제 버스는 오지 않아. 모르고 있었어?”
  “어째서?”
  “3일전에 운전기사 아저씨를 만났는데……. 이제 아무도 자기버스를 타지 않는다는 거야. 그 뒤로 그는 떠났어. 손님이라곤 너 밖에 없었잖아.”
  “그랬었군. 그 동안 계속 집에 있었어. 어쨌든 걸어가야 겠네.”
  슈는 달팽이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학교로 가는 길을 떠났다. 슈는 큰길을 따라 걸어가다가 좌측으로 빠지는 좁은 길의 입구에 다다랐다. 거기에는 조그마한 표지판이 하나 있었다. 그는 그것을 소리내서 읽었다.
  “전방 200미터 지점 전쟁 중 안전모를 착용하고 가시오.”      
  그는 안전모를 찾느라고 두리번거렸다. 쉽게 눈에 뛰지 않았다. 어디에 있지? 두리번두리번. 한참 후 슈는 찾았다. 바로 앞에 둥근 모자가 있긴 있었지만 거기에는 안전모라고 쓰여 있지 않았다. 그것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여기 있잖아 얼간아]

  이것은 안전모가 아니잖아. '여기있잖아얼간아'지 결코 안전모가 아니야.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슈는 학교에 늦었기 때문에 안전모 대신 그 '여기있잖아얼간아'를 쓰고 가기로 했다. 그리곤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벌써부터 탕~ 탕~ 쿵~ 퍽~ 으악~ 소음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자 사람들이 마구 소리치고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헬기와 비행기도 눈에 띄었다. 폭탄들도 투하되었다. 슈는 인상을 찡그리며 재빠르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두 손으로 안전모를 쥐고 한참을 그러며 가고 있는데 누군가 슈를 불렀다.
  "이봐 제군 그래 자네. 이리 오게."
  슈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쪽으로 갔다. 배가 불룩하게 뛰어나온 아저씨였다.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제복과 모자에는 번쩍이는 별들이 달려 있었다.
  "자네 정말 용감하군. 맨 손으로 적진에 뛰어들다니 본 지휘관은 제군의 용기를 치하하겠네. 이리 오게"
  그리곤 누군가 번쩍거리는 훈장을 가져왔다. 어느새 사내 한 명이 나타나더니 사진기를 들이밀었다. 그리곤 총소리가 나더니 그 사내가 쓰러졌다. 그러자 배가 불룩한 아저씨가 소리쳤다.
  "위생병!!"
  위생병이라고 가슴에 크게 쓴 남자가 달려왔다.
  "사진사 한 명 더 불러와."
  결국 사진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사진 8장을 찍고 그 배가 불룩한 아저씨는 슈에게 소총을 한 자루 주었다. 물론 탄을 담은 주머니도 하나 주었다.
  "자네가 있으니깐 국민들이 두발 뻗고 잠을 잘 수 있는 걸세. 자, 적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자고! 제군 권투를 비네."
  그리고 슈는 계속 나아갔다. 그는 학교에 가야했다. 총은 정말 무거웠다. 낑낑거리며 슈는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탕.탕.탕. 딱딱. 소란스러웠다.

  삐삐삑~~~ 빵빵~~~
  소음 때문에 귀가 너무 아픈 슈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야!! 이 얼간아! 죽으려고 환장했어!!”
  큰 도로였다. 언제 여기까지 와버렸지. 슈는 어리둥절했다. 자동차들이 빽빽하게 줄을 서 있었다.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부 차안에 앉아 죽어라 소리치고 있었다.
  "야! 미친놈아 죽고 싶어 저리 꺼지지 못해."
  "저런 놈이 죽을 때 안 죽으니깐 교통이 막히는 거라구 죽을 놈은 죽어야지"
  "썩 꺼지지 못해! 바빠 죽겠는데……."
  슈는 기뻤다. 이곳 사람들은 전부 슈가 죽을까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아직은 세상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군……. 그는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슈가 걱정이 되어 소리치고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 슈는 도로에 빠져 나와 건물 뒤쪽으로 돌아갔다. 학교가 이렇게 멀었던가? 슈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슈는 어느새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에 들어섰다. 하나같이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모습의 사람들……. 무엇이 그렇게 바쁘지 결코 멈추어 서는 경우 없이 지나쳐갔다. 슈도 바빴다. 일단 학교를 가겠다고 맘먹은 등교 길은 바빠야 한다.


  2. 차례를 기다리는 자
  어느새 슈는 교문을 지나쳐서 붉은 색 건물이 즐비한 곳으로 나가갔다. 그가 자신의 교실을 찾기 위해 건물아래를 지나갈 때였다.
  "이봐! 여길 보라구!"
  어디서 모기만 한 소리가 들려왔다. 슈는 두리번거렸다. 바닥에 군데군데 썩은 시체 하나가 누워 있었다.
  "이름이?"
  "슈라고 해."
  "슈, 그래 슈. 좋은 이름이군. 나랑 얘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애원하는 듯 말했다. 그런데 표정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난 늦었다고."
  슈는 가까이 다가가서 쪼그려 앉으며 말을 꺼냈다.
  "이봐 내 왼팔을 봐. 완전히 부러져 버려서 피가 안통한다구……. 며칠 전부터 썩고 있어"
  "그렇게 보이는데."
  악취가 나고 있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알아?"
  "글쎄. 창문에서 떨어졌군."
  슈는 깨진 5층의 유리창을 보면서 추리해서 말했다.
  "그래. 그렇겠지. 아니면 내가 왜 맨 바닥에서 이 꼴로 누워있겠어? 난 스스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다 그 망할 선생 때문이었지."
  "선생이 유리창을 닦게 했나보지?"
  "거 참 넌 상상력이 건전하군. 그게 아냐! 날 유리창 너머로 던져 버렸지. 뭐 다 지난 일이지만. "
  "왜 선생이 널 던져버리고 싶은 생각을 했을까?"
  "그거야. 내가 녀석의 수업중 이해 못한 부분이 있었거든."
  "그게 뭔데?"
  "만유인력의 법칙"
  "그래. 나는 그만 가봐야겠는걸……."

  슈는 일어났다.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곤 그는 오래 되어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 3층 복도를 따라 교실에 도착했다. 교실 안은 매우 조용했다. 수업중인가? 슈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심스럽게 뒷문을 열었다. 끼리릭……. 그만 소리가 났다. 전부 슈를 쳐다봤다. 학생들도 선생님도. 그런데 학생들은 얼굴이 없었다. 다만 얼굴 한 가운데 큰 귀만 하나 달려있었다. 칠판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은 다만 입만 있을 뿐이다. 물론 귀는 없었다. 아이들이 성가시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엄한 얼굴을 했다. 슈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슈는 문을 닫고 싶어졌다. 그들은 슈와 너무나 달랐다. 이제 그는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앉아있었다.
  "왜 학교에 왔을까?"
  슈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학교에 가야 되는 거야.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슈는 동생 때문에 집에서 일을 보지 못한 것을 상기했다. 그래 화장실부터 다녀와야겠군.

  화장실은 제법 깨끗했다. 학생들은 청소를 자주 한다. 전부 4칸의 비좁은 문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잠시 슈는 멈칫 했다가 제일 가까운 문을 열기로 했다. 슈는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얼빠진 녀석 하나가 울고 있었다. 뭐라고 훌쩍거리며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 같은 녀석은 죽어야해. 흑. "
  슈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자는 긴 빨랫줄을 자기 애인인양 꼭 부둥켜 않고 울고 있었다.
  "감성은 집어치어줘. 이성으로 생각해야해."
  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며 줄창 울기 시작했다. 슈는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학교선생들은 저런 얼빠진 녀석을 아무 갈등 없이 창문으로 집어 던져야 한다. 제길 빌어먹을……. 슈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자는 계속해서 징징거리고 있었다.
  슈는 칸막이 문을 닫았다. 그리곤 두 번째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조금 전에 본 그 얼빠진 녀석이 훌쩍거리면서 빨랫줄을 천장에 매달고 있었다. 그자가 슈를 힐끔 보았다.
  "이봐 날 말리지마 난 이미 죽으려고 결심했으니깐."
  슈는 얼굴을 찡그렸다. 문을 닫았다. 아직 문이 2개 더 남았다.
  3번째 문을 열었을 때 그 빨래줄 얼간이는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얼굴은 똥 씹은 얼굴을 하고 험악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공중에 뜬 두 다리는 허공을 바둥거리고 있었다. 미치광이 같은 눈을 하고 슈를 쏘아보았다.
  "꺽. 깩. 살려줘. 제발……. 살고 싶어. 날 구해 줘. 난 아직 죽기 싫어."
  슈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슈는 기억력이 좋았다. 왜냐하면 '이봐 날 말리지마.'란 그의 말을 상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슈는 이해심도 많았다. 문을 닫았다.
  마지막 문이 남았다. 문을 열었다. 거의 썩은 시체 하나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뼈도 군데군데 보이고 악취가 진동을 했다. 하지만 빨랫줄은 여전하다. 단지 색이 바래있었을 뿐. 멀쩡했다. 슈는 정말 화가 났다.
  "학교는 뭘 하는 거야. 저런 얼간이가 화장실 4칸을 차지하고 있다니."
  슈는 버럭 소릴 지르면서 사납게 문들을 발로 걷어찼다.
  "이봐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복장을 한 사내 하나가 화장실로 들어오면서 슈에게 충고했다.
  "당신은 누구시죠?"
  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질문을 던졌다.
  "나는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자……."
  "그럼 계속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급하다면 다른 건물에 가봐 맞은편 건물에도 화장실은 있으니깐"
  "하지만 왜 당신은?"
  "이제 기다림도 다 끝나가. 조금만 있으면 시체도 썩지. 젊은이들은 참을성이 없구먼……."
  슈는 발걸음을 옮겼다. 사내는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시체가 썩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3. 이정표
  [좌변기 앞으로 47.7Km]
  슈가 옆 건물의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그곳은 드넓은 황량한 사막이었다. 모래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정표 하나. 거기에는 화살표와 '좌변기 앞으로 47.7km'라고 써 있었다. 슈는 한숨을 크게 한번 쉬었다.
  한차례 바람이 불었다. 모래들이 이리저리 날리었다. 슈는 걷기 시작했다. 서둘지는 않았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머리 꼭대기 위에 빛나는 태양만이 있었다. 새도 없었고 흔한 선인장조차도 사방팔방 건물들도 없었고 단지 모래뿐이었다. 슈는 한참을 걸어갔다. 목이 탔다. 정신이 어지러웠다. 의식도 점점 흐려져 갔다. 세찬 바람이 불었다. 슈는 마치 가벼운 종이 조각처럼 느껴졌다. 바람에 이리저리 날려갈 것 같았다. 어지러웠다.
  자기 자신이 바람에 아무렇게나 유린당하는 종이 쪼가리 같다고 생각했다. 슈는 높이 날았다가 낮게 날았다가 다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정신이 몽롱했다. 눈이 스스륵 감겨왔다. 그리고 그가 눈을 뜬것은 한참 후인 것 같았다.  

  한 아이 하나가 땅바닥을 붉은 액체로 색칠하고 있었다. 슈는 다가갔다. 슈는 아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뭐라고 있니?"
  슈가 먼저 물었다. 아이는 슈를 힐끔 쳐다봤다. 그리곤 방긋 웃어 보였다.
  "이것은 피야. 모두 내꺼야."
  "그래. 많기도 하구나."
  아이 옆으로 큼직한 원형 통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것은 식구들 것, 이것은 친구들 것, 이것은 모르는 이들 것."
  아이는 통들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친절하게 말한다.
  "세상을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이고 싶어."
  아이는 넋두리처럼 말했다.
  "그렇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거야."
  "무슨 문제인데?"
  슈는 궁금했다. 아이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나와 타자 사이의 문제. 이해의 문제. 우리는 서로 상처만 줄 뿐이야. 이번 차원은 완전한 실패야. 나는 사람들은 다른 차원으로 옮기고 있어. 나를 도와주겠어."
  "어떻게 하는 건데?"
  "사람들을 죽이기만 하면 돼."
  아이는 너무나 간단하게 말을 한다.
  "어째서 사람들을 죽여야 하지?"
  "사람이 죽는 건 천국이나 지옥 따위로 가는 게 아니야 윤회도 더더욱 아니고 내말 알겠어? 사람이 죽으면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것 뿐이야. 나는 그걸 앞당기고 있어. 그리고 다른 차원에서 사람들이 이쪽 차원으로 오는 걸을 막고 있어."
  "어떻게?"
  "시간이 남아돌아서 세상을 피로 색칠하는지 알아? 이것으로 이 차원을 폐쇄 할거야. 차원의 이동 경로를 변경하는 것 뿐이야. 이번 차원은 실패작이야 물론 내 잘못도 있지만 너희들이 더 문제야. 구제불능이라구."
  "하지만 폐쇄는 오래 걸릴 거야."
  "시간은 충분해 사람들을 죽이는 것도 오래 걸릴 거구. 도와주지 않는다면 비켜줘. 방해가 되니깐."
  슈는 뒤로 물러났다. 세상이 온통 붉은색이었다. 하늘도 땅도 바람들도……. 그는 또다시 혼란스러웠다. 무릎은 땅에 닿아본다. 세상은 온통 붉은색이다. 잠을 자고 싶었다. 너무나 피곤했다. 잠시 시원한 바람이 그의 뺨을 스쳤다. 슈는 기분이 좋았다. 사막의 불쾌감은 없었다.
  눈을 뜨자 슈는 자신이 그늘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직사각형의 그늘. 눈에 익은 버스 하나가 태양을 막고 있었다. 늘 그를 학교까지 태워 주었던 그 기사 아저씨였다. 반가운 듯 방긋 웃었다. 슈도 웃었다.
  "좌변기 관리국에 가는 거라면 버스를 타고 가도 좋아."
  기사 아저씨는 친절하게 말했다. 슈는 아저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곧 버스 안의 사람들이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슈는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운전석과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네가 더 이상 버스를 타지 않아서 이곳으로 왔어. 보시다 시피 여긴 꽤 바쁜 곳이지. 사람들은 매우 바쁘단다. 출발시간, 도착시간도 반드시 지켜야 하고."
  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고 아저씨도 매우 바쁘게 버스를 몰았다. 그리고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슈는 사람들에 떠밀려 내려야 했다. 아저씨도 출발시간에 쫓겨 버스를 돌리더니 다시 사막에 먼지를 뿌리며 달려가 버렸다. 슈는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앞 다투어 들어갔던 큰 회색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마치 은행과 비슷했다. 안경을 낀 깐깐하게 생겨먹은 사람들이 창구에 앉아 있었고 창구마다 사람들의 긴 줄이 보기 흉하게 늘어져 있었다. 슈는 그중 가장 왼쪽에 있는 직원에게 질문을 하려고 다가갔다.
  "줄을 서 얼간아."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은 마치 몇 년 동안 준비한 것처럼 입을 모아 소리쳤다. 얼간이가 된 슈는 줄의 맨 끝 쪽에 섰다. 그리고 차례를 기다렸다. 시간이 흐를 수록 슈의 뒤에도 사람들이 잔뜩 줄을 섰다.
  "이봐 청년 배가 아파서 그러는데. 설사인가 봐. 자리 좀 양보할 수 없나?"
  슈의 뒤에 서있던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슈에게 말을 걸어왔다. 슈는 웃으며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그리고 노인이 슈의 앞에 서자 갑자기 천장과 벽에 붙어 있던 수많은 벨들이 일제히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 시꺼먼 제복을 입은 경찰 4명이 사방에서 노인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너를 공공질서위반 및 설사사칭혐의로 체포하게겠다."
  제일 키가 큰 경찰이 그렇게 말하고는 그들은 노인을 끌고 갔다. 그리곤 슈는 계속 차례를 기다렸다.


  4. 기다림
  이윽고 슈의 차례가 되었다. 긴 시간을 서 있었던지 슈는 온몸의 뻐근했다.
  "이용자 카드를 보여주세요."
  직원은 매우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고 있지 못했다.
  "저는 그런 것 없어요."
  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직원은 험상궂은 얼굴을 했다.
  "그럼 서류를 제출해 주세요."
  "무슨 서류요?"
  "주민등록 등본 2통, 호적등본 1통, 변기 사용계획서, 증명사진 2장, 보증인 2명입니다."
  직원은 쉬지도 않고 재빠르게 말을 한다.
  "그런 것 없는데요."
  슈의 말에 직원은 갖은 인상을 쓰며 대꾸도 없이 오른쪽의 작은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곳도 마찬가지로 긴 줄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슈는 다시 줄을 섰다.
  그곳은 매우 조용했다. 가끔씩 사람들의 기침 소리만이 오고 갔다. 많은 시간을 지나 보냈다. 그리곤 슈의 차례가 되자 방안으로 들어갔다. 마찬가지로 직원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것은 변기사용계획서이다. 이름을 쓰고 주소를 쓰고 이것저것 많이도 썼다. 그리고는 다시 이 종이를 직원에게 주었다. 직원은 힐끔 한번 훑어보더니 다시 슈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사진을 붙여 주세요."
  슈는 사진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등교 길에 전장에서 훈장을 준 장군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것을 잘라서 계획서에 붙였다. 다시 직원에게 계획서를 내밀자 직원은 다음 방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방의 뒷문을 열자 바로 조그마한 방이 나왔다. 그곳은 신체검사실이었다. 흰 가운을 입은 직원 4명이 바쁘게 움직였다. 제일 처음 슈의 엉덩이 사이즈를 측정하고 팔 길이도 재보고 키, 앉은키, 몸무게 시력, 청력, 그리고 알 수 없는 이것저것 많이도 검사했다. 마지막으로 피검사까지 모두 끝났다. 슈는 매우 지친 표정으로 다음 방으로 향했다. 다음 방은 조그만 책상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조그만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마치 학교의 시험시간 같았다. 슈는 제일 뒤쪽의 의자에 앉았다. 곧 직원이 슈에게 종이 한 장을 주었다. 그 종이에는 주관식형 문제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변기 청소는 얼마나 자주 해야 합니까?(정확한 기간과 주기를 기입하시오.)
  바닥과 변기(전체변기)와의 길이는 얼마입니까?(mm단위까지 표기하시오.)
  좌변기의 내림물의 속도는 매 시 몇 km입니까?(최고 속도와 최저 속도를 기입하시오)
  다음 중 일시적인 고장으로 변기의 내림물이 내려가지 않을 때 응급조치 5가지 중 3가지만 서술하시오.


  등등……. 그 뒤로 비슷한 문제가 많았다. 슈는 알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어나갔다. 시험이 끝나고도 몇까지 까다롭고 복잡한 일들이 슈를 기다리고 있었다. 슈는 불평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 방에 들어섰을 때 그 좁은 방은 이미 많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많아서 숨조차 쉬기 힘든 곳이었다. 그곳에서도 슈는 기다렸다.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었을 때 슈의 차례가 되었다. 직원은 매우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플라스틱 카드와 종이 쪼가리 한 장을 슈에게 건넸다. 슈는 사람들에 밀려서 직원에게 멀어졌다. 그리곤 방밖으로 밀려나왔다. 다시 처음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곳은 여전했다. 아직도 사람들은 긴 줄을 서 있었다. 슈는 종이쪽지를 보았다.

  성명 : 슈
  등급 : D
  예정 변기 사용일 : 2021년 8월 28일
  (다음 예정일은 좌변기 관리국의 사정에 의해 임의로 변경될 수 있음.
  사용 예정일로부터 유효 1주에 안에 사용치 않으면 자동으로 등록신청은 말소됨)


  2021년이라고……. 앞으로 3년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슈는 절망스러웠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색 건물을 나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시체가 썩기를 기다리는 것이 더 빠르겠군. 슈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5. 집으로 오는 길 (동화는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는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쨌든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서 슈는 더 이상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슈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아이 하나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었다. 슈는 다가갔다. 그 아이는 사막을 가로지를 때 본 아이였다.
  아직도 차원을 폐쇄하는 중이었다.
  "그 피는 누구의 것이지?"
  슈가 물어보았다. 아이는 잠시 놀라서 슈를 쳐다봤다. 하지만 경계심은 없었다.
  "저를 비난하지 마세요. 저는 색칠 중이에요. 엄마는 제가 물감을 길바닥에 버린다고 화를 냈지만 저는 여기에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땅바닥에 말이야? 피가 아니고? 차원을 폐쇄하는 것이 아니야?"
  슈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아이는 하나도 대답하지 않았다.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빨간 물감도 이제 다 떨어졌는데……."
  하지만 슈는 상관없었다. 슈는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봐. 부탁이야. 아직 차원을 폐쇄하지 말아 줘.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어. 그리고 충분히 가능성도 있고……. 쉽게 포기하지 말아 줘. 모든 사람들이 전부 똑같은 것은 아니야. 언젠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 거야. 인간이란 쉽게 변화하거든 대신 쉽게 잘못을 깨닫기도 해. 부탁이야."
  아이는 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웃었다.
  "저는 사람을 그리고 있어요. 땅바닥에요. 그런데 빨간 물감이 떨어졌지요."
  슈는 웃었다. 아이도 웃었다. 그리고 슈는 그곳을 빠져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가 한참 길을 가고 있을 때. 뒤에서 낯익은 소음이 들려왔다. 슈는 금방 알아차렸다. 아저씨의 버스였다. 그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봐 슈. 집에 간다면 버스를 기다려야지. 이제 그 일은 그만 두기로 했어. 거기는 너무 바쁘거든 다시 돌아오기로 마음먹었어."
  "하지만 아저씨 이제 학교에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을 거에요. 여기에서는 누구도 버스를 타지 않는다고요. 승객이 없잖아요."
  기사 아저씨는 슈에게 방긋 웃음을 보여주었다.
  "그런 건 상관없어. 단지 난 여기가 좋은 거야. 다시는 떠나지 않을 거야."
  슈도 웃었다. 버스는 집 앞 정류장에 섰다. 슈는 내렸다. 슈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고 했다.
  "언젠가 다시 버스 탈 일이 있으면 정류장에서 기다려. "
  아저씨는 휘파람을 불면서 정류장을 출발했다. 슈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기분은 좋았다. 좁은 길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정원이 보였다. 정원에는 꽃들이 잔뜩 피어있었다. 슈는 꽃들의 이름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꽃들 사이로 예쁜 아가씨 한 명도 발견했다. 슈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 근처에 저렇게 예쁜 아가씨가 있었었나! 슈는 가까이 가서 말을 붙여 보기로 했다. 그녀는 꽃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래서 슈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슈도 상당히 큰 키인데 그 아가씨의 키도 제법 컸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슈가 먼저 물어보았다. 그제야 그녀는 슈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매우 반가운 표정을 했다.
  "오빠. 이제야 오는 거야. 며칠 동안 안 보이는데 어디 갔었어?"
  슈는 매우 놀랐다. 하지만 진정하고 정말 동생인가? 많이 변했네.
  "어떻게 그렇게 변했어?"
  슈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 2년이란 시간은 여자에게 너무나 길다고 자신에게 변화를 주기에 충분해. 하지만 오빠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네. 예전과 똑같아."
  동생은 2년 만에 소녀에서 아가씨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슈는 너무나 기뻤다. 오랜만에 동생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제 변비는 끝난 거야."
  "응, 이젠 더 이상…….   오빠, 들어가자. 내가 저녁 차려 줄께."
  그녀는 슈의 팔짱을 끼고 그의 곁에서 방긋 웃어 보였다. 슈는 다정하게 그녀와 집으로 들어갔다.

(끝)
mirror
댓글 2
  • No Profile
    필바라 03.08.31 09:34 댓글 수정 삭제
    "이제 변비는 끝난 거야"
    하하;
  • No Profile
    아이 03.09.17 14:02 댓글 수정 삭제
    소설에 저도 나오는군요. (아이) ^^ 거침없는 상상이 돋보입니다. 그러면서도 왠지 정곡을 찌르는 느낌...
    잘 읽었습니다. ^^
분류 제목 날짜
양원영 그녀, 사랑스런 아줌마 - 본문 삭제 -2 2003.12.26
은림 거울 성 이야기2 2003.12.26
아밀 H 이야기 - 본문 삭제 -8 2003.12.26
pena 마왕 2003.12.26
김수륜 오래된 사람 2003.11.28
赤魚 분실의 도시 - 본문 삭제 -1 2003.11.28
양원영 만병통치 병원 - 본문 삭제 -1 2003.11.28
가는달 지구로 돌아오다 2003.11.28
세이지 달의 고치(月の繭) 2003.11.01
bluewind 축제1 2003.11.01
김수륜 그녀는 목이 길다 - 본문 삭제 -1 2003.11.01
pena 누메논 2003.11.01
赤魚 신의 정원 - 본문삭제 - 2003.09.26
가는달 우주화(宇宙花) 2003.09.26
은림 할머니 나무3 2003.09.26
bluewind 물고기와 소년1 2003.08.30
은림 얼음 공주6 2003.08.30
정해복 좌변기를 찾아 떠나는 모험2 2003.08.30
세이지 사라방드Sarabande1 2003.07.26
가는달 윤회의 끝1 2003.07.26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