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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냥 백야(白夜)

2005.04.29 19:3204.29

백야(白夜)

 

 

 

 희게 빛나는 태양이기에 왕의 땅에서는 흔히 진주라고 이르곤 하였다. 태양은 어김없이 동에서 빛나기 시작하여 서로 지거늘, 수평선이 흐릿하게 밝아 오는 아침과 검게 타 들어가듯 침묵에 잠기는 밤을 누구 한 사람 감히 의심한 일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것’이 찾아왔다.
 백야(白夜).
 태양은 온전히 떠오르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채 뿌윰한 빛을 뿌렸으며 밤은 다시 찾아 오지 않았다. 박명(薄明)이 몇 날 몇일 반복되자 사람들은 지쳐 울부짖었다.
 왕이 하늘을 향해 탄원하고 뭇 제관이 깊이 궁리하였으나 태양은 답이 없었다. 하여 왕이 죄를 묻는 목소리에 무릎 꿇고 죽음으로 사죄 하니, 새로 그 아들이 옥좌에 앉았다. 신왕이 나도 백야는 그치지 않아 만방에 백성은 비탄하거니 제관이 머리를 맞대고 한 가지 묘안을 올리되, 오래 전에 종적 끊긴 땅으로 깃들어 세속에 물들지 않은 소년 소녀로 하여금 태양의 근원을 찾아 가게 함이 어떠한가 하는 바였다. 신왕이 다른 방도 없어 옥새를 내어 금 인장을 찍어 놓으니 바람처럼 내닫는 붉은 갈기 말을 타고 왕의 장수된 자가 종적 끊긴 땅으로 향하였다.
 이곳이 어드매요 한즉 닿는 땅마다 왕의 이름을 말하니 장수가 매양 실망하다가 일흔 날을 세고도 이레 되던 날에 비로소 자색 그림자가 지는 계곡 마을에 당도하였다. 개울은 복사향을 풍기고 사람은 모다 순박하며 위엄이 있으니, 이를 기이하게 여긴 장수가 어린 아이를 잡고 왕의 이름을 묻자 아이가 답하지 못했다. 장수가 크게 기뻐하며 비로소 마을 노인을 찾아 무릎 꿇고 저간의 일을 눈물로 고하거늘 노인이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고통을 애달피 여기어 기꺼이 한 명 소년과 한 명 소녀를 불러 주었다. 두 아이로 하여금 장수를 따라 가게 하며 그 이상 말하지 않으니 장수가 마을을 떠났는데 소년의 이름은 찬이고 소녀의 이름은 환이며 두 아이가 한 날 태어나 꼭 열 네 살이라 하였다.
 “얘들아, 너희들이 정녕 태양의 근원이 어드매인지 아느냐?”
 장수가 묻자 두 아이는 종이로 만든 옷을 입고 나뭇잎으로 만든 신을 신은 채 나란히 앞장 서서 답하였다.
 “그럼요. 우리들은 태양의 자손이니까요.”
 걷고 또 걸어 손으로 걷고 다리로 과일을 따는 족속의 땅을 지나고 짐승의 말을 할 수 있는 풀이 자라는 땅을 지났다. 붉은 꽃잎 사이로 검은 열매가 맺히는데 손을 대면 어린아이 울음소리를 내는 나무 아래에서 쉬고 몸에 기름을 바르지 않고 들어서면 뼈가 녹아 내리는 강을 건넜다. 검은 숲을 지날 때 흰 까마귀를 보았고 흰 계곡에서 검은 용을 보았다. 뱀 흉내를 내는 개와 여우 흉내를 내는 원숭이를 잡아 먹고 옥이 자라는 동굴에서 잤다. 일곱 해 하고도 이레를 갔을 때 비로소 근원 바다에 당도 하였다. 백야는 계속 되어 온 땅이 바야흐로 죽음의 내음을 풍기는데 근원 바다는 은은한 백옥 빛으로 밀려 왔다 붉은 매화 빛으로 밀려 갔다. 두 아이와 왕의 장수는 바다 앞에 서서 오래도록 연무에 싸인 양 안개와 구름 사이로 맥없이 떨고 있는 태양을 바라 보았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느냐?”
 왕의 장수가 묻자 소년이 답했다.
 “보고도 모르십니까? 태양은 본디 커다란 조가비 속에서 사는 것인데 한 사람이 있어 조가비를 열면 해가 뜨고 조가비를 닫으면 해가 집니다. 헌데 조가비를 여닫던 이가 죽으니 그 진주가 끝없이 빛을 발하는 수밖에요.”
 그리고 소녀가 답했다.
 “게다가 진주마저 빛이 닳고 뭇 생물의 원망을 받아 부정해 졌나니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장수께서는 우리와 함께 저 바다를 건너시어 진주를 씻도록 하십시다.”
 장수가 두 아이를 따라 나서자 아이는 장수의 말 목을 베어 그 피로써 제사를 지내고 종이 옷과 나뭇잎 신을 벗어 바닷가에 두었다. 그리고 옥으로 된 피리를 불자 흰 거북이 나와 세 사람을 실어 수평선으로 날라 주었다. 근원 바다 건너 태양의 땅에는 과연 희고 정결한 조가비가 놓였는데 그 섬이 온통 뼈로 이루어진 것으로 미루어 지키던 자가 내내 있어 왔음을 알았다. 소녀는 머리카락으로 진주를 닦고 소년은 자신의 뼈로 장대를 만들어 조가비를 여닫는데, 진주는 맑은 빛을 찾지 못하고 녹아 사라져 버렸다. 소녀와 소년이 나란히 울음을 터뜨리니 장수도 곁에서 함께 울었다. 두 아이가 장수의 눈물만을 따로 모아 한 줌이 되니 피를 떨어뜨리고 조가비 속살에 두었다. 장수가 물었다.
 “이제 태양이 녹아 사라지니 어떻게 하려는가?”
 실로 오랜 만에 깃든 밤 아래 두 아이는 샛별처럼 웃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속세에서 온 그대의 눈물과 우리의 피로 부정한 것을 만들어 조가비 안에 두었으니 곧 새 진주가 태어날 것입니다. 그러하면 우리 두 사람은 예 남아, 시간이 되면 조가비를 열고 시간이 끝나면 조가비를 닫겠사오니 이로하여 다시금 낮과 밤이 모두 평안 하리다. 한즉 장수께서는 안심하고 돌아가 왕께 고하십시오.”
 장수가 절하니 두 아이가 흰 거북을 불러 장수를 뭍으로 돌려 보냈다. 장수는 다시 일곱 해에 이레를 더 걸어 왕의 땅에 당도 하였는데 이미 일백 년이 흘러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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