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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마녀의 피

2005.10.29 18:0010.29

비가 세차게 쏟아 졌다. 외딴 시골에서 버스는 놓쳐 버렸는데, 우산은 없다. 비를 피할 곳 조차 없는 들판에 서 있자니, 당황스러웠다. 두 시간은 지나야 버스가 올텐데. 가을비는 차가웠다. 이제는 주문사 연구소에서도 너무 걸어 나와서 다시 비를 피한다고 되돌아 가기도 뭣했다.

"흐브르어~"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초록색 물체에 괴성을 지르며 한쪽 다리를 들고 움찔비틀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은 비를 즐기며 길가로 나온 개구리였다. 개구리 따위에 이렇게 놀라다니, 보는 사람이 없는게 다행이었다. 개굴개굴. 놈은 무심하게 개굴거렸다. 비가 정말로 세찼다, 입고 있는 옷이 물에 풍덩 빠진 것처럼 완전히 젖을 듯 보였다.

되는 일도 참 없네. 요즘 들어 풀리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구만. 손수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 보고자,  새벽같이 일어나 이 먼곳까지 남의 회사 연구소에 찾아 왔건만, 어림없는 문전 박대. 쫓겨나고 나오는 길에 갈 곳 없이 세찬 비나 맞게 되다니. 인생이 서서히 무너져 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눈을 뜨기 힘들정도로 비가 많이 쏟아졌다. 먹구름에 어두움이 드리운 들녘. 개구리가 폴짝폴짝 뛰어가고 있는 방향을 살펴 보니, 아파트 단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미래의 개발계획과 부동산 시세를 어떤식으로 상상했는지 몰라도, 두 시간에 한 대씩 다니는 버스 하나를 빼고는 아무런 교통수단도 없는 논밭 사이에 덩그러니 아파트 하나를 지어 놓다니. 그야말로 그 광경은 괴이 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아무도 없는 시골길, 그 아파트 단지를 보고 있자니, 광야에 외로이 서 있는 마법사의 흰색 성을 보는 듯 했다.

그제서야 이사장님 생각이 났다. 한 번 밖에 안 가봤지만, 저 아파트에 사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든지 찾아와도 된다고 했다. 핸드폰을 꺼냈다. 나는 아마 처음으로 이사장님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전화를 하면서, 나는 허겁지겁 아파트 쪽을 향해 뛰었다.

"어휴, 어떡해요. 홀딱 다 젖었네."

그녀가 아파트 문을 열었다. 나이 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얼굴이긴 했지만 아마 40대쯤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주 오랫만에 만나는 그녀라서, 나는 "허헛, 죄송합니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맨날 신세만 집니다. 이사장님." 같은 부끄러운척 대사를 한참해야 했다.

"우선 씻으세요. 잠깐만요."

그녀의 아파트는 방이 예닐곱개는 되는 널찍한 집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사는 사람은 그녀 혼자 였다. 그녀는 어느 방으로 들어가더니, 수건과 속옷, 파자마를 꺼내와 나에게 주었다.

"씻고 일단 갈아 입어요. 맞을지 모르겠네."
"이런거 까지 주십니까? 햐. 감사합니다."

나는 머리칼에서 물을 뚝뚝흘리며 집안에 들어섰다. 혼자 사는 그녀가 갖고 있는 이 남자 옷들은 어디서 난 것일까? 물에 젖은 내 발이 집안에 발자국을 냈다. 그걸 보고는 의문이 미안한 당혹감에 싹 사라졌다. 이미 나는 트롬세탁기 속의 빨래와 같은 수분함량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이사장님의 욕실에 가서 좀 뜨겁다 싶은 물로 샤워를 했다. 아.아... 인간의 근원적인 탄식. 안락한 느낌. 차가운 가을비에 오들오들 떨던 느낌을 지우는데 충분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는 그녀가 준 파자마를 입었다. 나는 덩치가 좀 큰 편이었는데도 옷은 잘 맞았다.

욕실 밖에 나서니 그녀는 주방에서 물을 끓이고 있었다.

"춥죠? 감기 안걸리려면, 소파에서 이불 덮고 앉아 있어요."

나는 소파에 가서 몸을 이불로 감싸고 앉았다. 따뜻했다. 다리에서 힘이 편안하게 빠져나가며 소파 안과 이불속으로 푹 몸이 녹아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켜둔 텔레비전에서는 좀 두꺼운 안경을 쓴 진행자가 우스운 말로 시작 하는 TV쇼가 나오고 있었다. 텔레비전 소리와 그녀가 끓이는 물소리 외에는 다른 소리 없이 넓은 집안이 조용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베란다 밖으로 세차게 비가 내리는 소리도 조금 들려 왔다.

"커피 마시죠?"
"예? 예. 감사합니다.  야.. 이거 그냥, 옷이나 말리고 갔으면 했는데 이렇게 잘 대해 주시니, 항상 도움 받는 처지인데요.. 하하하."

그녀가 따뜻한 커피를 가져 왔다. 얼떨결에 그녀가 시키는데로 다 하긴 했지만,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집에 와서 이런 신세를 진다는 것도 참 어색한 일이었다. 이불 속에서 커피를 들고 나는 한 모금 마셨다. 몸에 열기가 미치는 느낌이 드니까, 그제서야 비맞고 떨고 있으면서 꽤 체온이 내려갔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같이 이일저일 사람 환장하도록 꼬이는 때에 감기몸살로 드러눕기라도 하면 정말 큰 일이지. 새삼 비를 피할 수 있는 이곳이 고맙게 생각 되었다.

나는 잠시 밖을 보았다. 소리는 작게 들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비는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오후 세 시 쯤 인가 싶은데, 짙은 먹구름과 끝없는 빗줄기들은 애저녁처럼 세상을 컴컴하게 보이게 했다. 꽤 높은 층인 그녀의 아파트에서 보면, 멀리까지 펼쳐진 파란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 멀리 끝에 가물가물 고속도로쯤 될 큰 길과 시내로 돌아나가는 언덕배기 산이 보였다. 비는 그 모든 것에 어둠을 드리우며 구석구석을 적시고 있었다.

"이제 오후 시간에 회사 들어간다고 해도 근무시간에 들어가기는 어렵겠네요."
"벌써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렇네요. 벌써 세 시니까, 사무실까지 부리나케 간다고 해도. 에효. 오늘 하루 또 공쳤네요."

지나친 고마움과 어색한 마음이 겹쳐 뭐라고 말할 줄 몰라 멍하니 바깥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리며 웃는 낯으로 답했다. 젊은이다운 감정의 발랄한 기복과 대화의 재미라도 제공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감사를 나타낼 수 있는 그나마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어느새 그녀는 텔레비전 채널을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코메디 만화영화로 바꿔 두었다. 문득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실없이 웃었다.

"정말로 오랫만에 이렇게 얼굴 보는 거 같은데, 기왕 늦은거 저녁에 특별한 일 없으시면 저녁 먹고 갈래요?"
"예?"

나는 그녀의 집에 들어선 후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고 표정을 살폈다. 호의가 깃듯 미소 어린 표정이긴 했지만, 미묘한 이상한 분위기가 있어 어딘지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곧 이 큰 집에서 혼자 사는 그녀에 대한 상상을 해 보았다. 그녀의 저녁 식사 제안을 내가 거절하는 것도 그녀에게 실망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지긋한 나이에, 혼자 살면서 하루 세끼 매일 혼자 먹는 밥. 친구는 있을까.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쓸데없이 그녀에게 이런 동정어린 상상을 하는 것은 사실 좀 무례한 일일 것이다. 그저 멍청하고 짤막한 상상력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랬거나 말거나, 나는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따뜻한 샤워를 마치고 이불속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 안락함이 너무나 좋아서, 그녀의 제안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예. 뭐, 예. 감사합니다. 하핫. 핫. 예."

하고 어정쩡하게 대답해버렸다.

"그래요. 잘 됐네요. 쇠고기 먹죠?"
"기꺼이."
"가져온 옷은 다 젖었으니까, 저쪽 방에 있는 양복을 입으면 되겠네."

그녀는 어느 식당으로 나가서 저녁을 먹을 것인지? 옷을 차려 입으라고 했다. 나는 주춤주춤 기웃기웃 걸어갔다.

"아, 이과장? 난 데요. 스트로게노프 먹으러 가려고 하거든요."

그녀는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아마, 이거저것 이사장님의 일을 처리해주고, 차 운전도 하는 그 재단 직원을 부르는 것일게다.

이사장님이 말한 옷은 짙은 파란색의 정장으로, 자켓의 단추가 양쪽으로 달린 것이었다. 안감에 뭐라고 어느 유럽어로 만든 이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몇몇 행사에 참여하려고 입는 양복 쯤 나는 항상 동대문에서 야바위로 사서 몇 시간 잠깐 걸칠 뿐이었다. 그런즉, 도대체 이 옷이 어떤 가치를 갖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거울을 보고 모습을 보니. 오호, 나도 의외로 꽤 그럴 듯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맨날 덥수룩한 수염에 충혈된 눈으로 한별을 만나는 대신, 지금 정도만 되는 모습을 유지하기만 했어도, 그렇게 매몰차게 차였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그래, 혹시나 한별이랑 다시 어떻게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궁리를 했고, 그 잠시가 지나자, 부질 없다는 대답이 마음속에서 피어 올랐다. 버스 떠난 거리에서 손 들어 봐야......

옷을 입고 거실로 다시 돌아가자, 이사장님도 단장을 하러 갔는지 집안에는 아무도 없는 듯 했다. 적막함. 다시 또 좀 으스스해 졌다. 곧 벨소리가 울리고, 이사장님 연배의 한 중년 남자가 나타났고, 그는 나와 이사장님을 차로 안내했다.

나도 차를 사야해. 차만 있었어도 오늘 같은 꼴은 안당했지. 망상. 허상. 공상. 면허는 있냐? 기름값 댈 돈은 있고? 차 뒷자리에 앉아서 그러고 있는데 이사장님이 나를 보았다.

"여권 갖고 있어요?"

40분후. 나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비행기의 이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먹고 싶은 게 있다면서 어차피 오늘 저녁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잠자코 따라오라고 했다. 고속도로로 들어서기에 나는 어디 천안 근처의 한우 고기집에 가는가 상상했었는데, 이 과장은 차를 공항쪽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 말고, 그냥 일단 가요."

그녀에게 이과장은 극동 러시아의 항구도시로 가는 비행기표 석장을 보여 주었다. 이코노미석 밖에 구하지 못했다면서 대단히 죄송하다는 말도 곁들였다.

"괜찮아요. 어차피 두 시간도 못 되어서 도착할텐데."

저녁을 먹으러 비행기 타고 러시아에 간다...라. 당황해서 어벙벙해 있으니, 어느새 비행기 안에는 한국어, 영어, 러시아어로 기장의 말이 울려 퍼졌다. 곧  언제 봐도 기분이 담백해지는 비상구-구명조끼 안내가 이어졌다.

그녀는 기내지를 넘기며 사진을 주욱 훑어 보았다. 비가 내리는 활주로를 비행기는 달렸다. 나는 내가 입고 있는 그녀가 빌려준 옷을 다시 다시 한 번 내려다 보았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녀는 이렇게 멀리 다니며 먹는 저녁식사를 자주 하는 것일까.  몇가지 생각해 봤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서 아는게 정말 없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었다. 가만 돌이켜보니, 그녀의 집 조차, 넓고 좀 썰렁했다는 것 외에, 그녀의 삶에 대해 짐작해 볼만한 무엇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도 않았다.

그녀는 장학재단의 이사장이었고, 나는 그 장학금을 대학 시절과 대학원 시절 줄기차게 받았던 학생이었다. 성화원이라는 아동 복지 시설 - 열여덟 살 때부터 고아원이라고 부르지 말고 그렇게 부르라고 했다. - 에서 자란 나는 사립 대학에 입학할 경우 국가 보조금을 받을 수가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내 주변 아이들의 9할 9푼 9리가 증오하는 적분 응용 문제들을 잘 해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최대한 벗어나려 했던 벡터 연산을 응용하는 것들을 꽤 신기하고 재미있게 여겼다. 덕택에 성화원 원장님은 어디서 누가 취재 나오거나 돈주러 들르면 맨날 나를 자랑하곤 했다. 원장님은 나를 무슨 경이로운 과학 천재의 현신 쯤으로 선전하곤 했는데, 사실 나는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시험을 치고 보니 운이 좋으면 이름있는 사립대학의 이름없는 자연과학 계열 전공에 겨우 기어들어갈 수 있을 성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부질없는 짓이었는데, 그 때는, 대학 1학년 때 무슨 대학에 다닌다면서 학교 이름 거들먹거리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처럼 여겨졌다. 당시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온갖 자금책을 고려해 봐도, 나는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어느 학교의 무지하게 이름긴 헐렁한 신설학과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바이오 양자 대체 정신 나노 신공학과" 였던가. 분명치는 않지만 꽤나 한심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인지, 학벌의 허상은 신기루처럼 더 달콤한 안타까움으로 느껴졌다.

그 때, 나를 도와준 곳이 바로 이사장님의 장학재단이었다. 그녀의 재단은 입학금과 첫학기 등록금을 내 주었고, 학과 성적을 반영해서 지속적으로 등록금과 "격려금"을 준다고 했다. 수혜자는 나 말고 비슷한 처지의 학생 몇몇이 더 있었으나, 숫자는 적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식날 저녁에 돈주인인 그녀와 함께 저녁을 먹었고, 그것이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난 인연의 시작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대강 계산해보니, 그럭저럭 대학, 대학원 기간동안 그녀의 재단이 나를 위해 쓴 돈은 5천만원이 훨씬 넘어갔다. 좀 더 따져나가면 더 많은 금액이 될까도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그녀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사실에 대해 좀 놀라서 계산하는 것을 멈췄다.

사실 대부분 마찬 가지 일 것이다. 사립고교나 사립대학을 다니는 사람치고, 누가 학교를 굴리는지 이사장의 이름 석자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피끓는 시사 청년이면 또 모르겠다만. 더군다나 이사장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더 드물 것이요, 그 중에서도 길가다가 그 사람과 마주쳤을 때 알아보고 인사라도 할만큼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더욱 드물 것이다.

내가 그녀를 지금처럼 그나마 좀 더 친밀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일단 장학금을 많이 줄기차게 받았다는 것 때문이었고, 둘째로는 그녀 연배의 나이 든 사람을 내가 거의 알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주 가끔 한 두 번씩 그녀를 만나고 그녀에게 점심을 얻어 먹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하는 일들이 아주 인상 깊게 마음에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거의 다 왔습니다. 이제, 한 2,30분만 가면 됩니다."

이과장님이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자, 이미 해는 저물어서 어슴프레한 남은 빛만 서편에 남겨두고 있었다. 출발한 곳과는 달리 맑게 갠 하늘에는, 밝은 별 몇 개가 벌써 반짝 거리고 있었다.

이과장은 공항으로 불러 놓은 빌린 차로 우리를 안내했다. 자동차는 아주 오래된 예스런 모델로 보였지만, 관리를 잘해서 낡은 느낌은 전혀 없었다. 자동차는 어둠 속을 알 수 없는 길로 굽이 굽이 돌며 내달렸다. 언뜻 언뜻 언덕배기를 오르기도 하고, 창밖으로 잠시 바다와 항구의 경치가 비치는 듯도 할 뿐, 이 낯선 도시에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와 나는 러시아와 더 쌀쌀해진 날씨에 대한 이야기. 비와 맑은 날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나누었다.

그녀의 이름. 집. 모습.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은 터미네이터가 사라 코너에 대해 아는 정도와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그녀가 왜 꽤 많은 재산을 모았는지. 돈을 버는 진짜 직업은 무엇인지. 나는 아는 바가 없었다.

소문이라면 이것저것 들은 것들은 많았다. 그녀는 엄청나게 냉혹한 사업가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거대한 범죄조직과 닿아있다는 식의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었다. 미국에 본가가 있다는 이야기나, 도쿄에 큰 대금회사를 갖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그냥 낭설일 뿐이었다.

유일하게 좀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그녀가 자기가 투자한 음식점 프랜차이즈를 위해서, 세금을 안내는 조그마한 음식점들 2백군데를 모조리 고발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부부끼리 하는 테이블 두 서너개의 영세한 가게들치고 세금 계산을 철저히 하는 곳은 없기 마련이었고, 그런 곳을 탈세로 엮어서 조사와 재판에 시달리게 해서는 장사를 방해하는 작전이었다. 그러다가 영업 정지라도 먹으면 더 좋고. 이 이야기는 해장국집 주인이 누가 그런 일을 꾸몄다며 욕하는 것을 내가 들은 적이 있었다. 다만, 그 장본인이 이사장인가 하는데 대해서는 역시나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그녀의 정체를 둘러싼 수수께끼들은 아무것도 확인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역시나 수수께끼 이거나 말거나 장학재단 이사장 정도에게 관심을 갖는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 보다야 성화원 동생들이 SS501에 대해 갖는 관심이 구백오십만배 정도 더 컸다. 그래서 가끔 그냥 몇몇 흉흉한 상상과 추측들을 해 볼 뿐, 그녀에 대한 진실이라고는 굳이 알아내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차는 나무가 우거진 좁은 길로 접어 들었다. 숲인지, 넓은 정원인지 모르겠다. 밤과 울창한 나무에 가리워서 도시의 불빛은 모두 사라졌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돌로 포장된 길을 비추었다. 그런 길을 잠깐 돌아 나가자, 곧 평평하게 정리된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에는 노란색 등을 화사하게 밝힌 저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는 호텔입니까? 무슨 레스토랑이예요?"
"뭐, 호텔이기도 하고, 레스토랑이기도 하고."

나는 그녀의 옆에 서서 그녀를 따라 저택의 입구로 걸어 갔다. 나는 건물과 그 주변을 계속 두리번 거렸다. 건축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놀이 공원에 있는 유럽식 건물과 다른 점은 아주 오래되어 보인다는 점 정도 였다. 그리고 화려하지만 요란하지 않다고 해야 되나. 하여간 나는 꼭 시골쥐 처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에 비해 그녀와 이과장님은 이미 이 곳에 익숙한 듯 했다.

"Добрый вечер."
"Привет, Как поживаете?"

문 앞에 서 있는 흰 콧수염을 기른 노인이 인사했다. 이미 우리가 도착한다고 연락해 놓았지 싶다. 이과장님은 그 노인과 악수를 하며 반가워 했고, 이사장님도 러시아어로 가볍게 한 마디 인사를 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쭈뼛거리는 나는 괜히 문 옆에 조각된 가고일에 시선을 두었다.

문 앞에서 우리를 맞았던 노인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건물 내부로 들어가 현관과 복도를 걸었다.  분명히 단순한 형태 였겠지만, 건물 내부에 들어서 몇 개의 문과 꺾어진 길을 지나자니 꼭 미로처럼 느껴졌다. 이곳에 접어들 때 분명히 외딴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현관 로비는 무척 넓고 크고 화려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넓은 계단이 있었는데, 2층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다른 직원들이 있는지, 다른 손님들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디선가 조용한 음악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첼로, 플룻, 바이올린 둘 정도의 소리였고, 어디에선가 직접 연주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보던 멜로디였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집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안마당 정원이었다. 사방 복도의 창에서 나오는 불빛이 은은하게 주변을 밝혔고, 가운데에는 탁자 하나가 있었다. 탁자 위에는 촛대가 탁자 위를 밝히고 있었다. 아, 이제 노래 제목을 알것 같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를 편곡한 것이었다. 건물 주변 어디엔가 멀리서 들리는 듯 했지만, 워낙 조용해서 선명하게 그 선율을 알 수 있었다.

그녀와 내가 테이블에 앉고 보니, 어느새 우리를 안내한 노인과 이과장님은 어딘가로 사라져 있었다. 우리말고 다른 손님이 또 있는지 없는지. 음악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작게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스트로게노프가 입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그게 음식 제목입니까?"
"쇠고기로 된 거예요. 좀 냄새가 이상하려나."
"에에. 제가 뭐 음식 가리는게 있습니까. 분명히 굉장히 맛있을 겁니다."

나는 웃어 보였다. 언뜻 하늘을 보니, 이미 밤이 되어, 맑은 밤하늘에 별이 빛나고 있었다. 서울에서 보는 것 보다 수백만배는 많아 보이는 굉장한 숫자였다.

"이거 어떻게 읽는 거죠?"
"Saperavi."

웨이터가 잔에 붉은 포도주를 채우며 답했다. 그리고 그는 포도주 병 뒤쪽에 영어로 붙어 있는 레이블을 가리켜 주었다.

"고맙다는 말을 러시아어로 어떻게 하죠?"
"Спасибо."
"스파시바. 스파시바."

나는 그녀가 가르쳐준 대로 웨이터에게 말했다. 웨이터는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사페라비 라는, 그루지아산 포도주의 맛은, 좀 시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내가 포도주 맛에 대해 뭘 알겠냐만은. 검붉은 빛의 그 포도주를 마시는 그녀의 손이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이 사페라비 포도주는 맛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지 싶다. 아니, 그녀의 취향은 굉장히 이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내가 저녁을 먹는다고 앉아 있는 이 자리 자체가 별로 평범하지는 않다.

사페라비가 시거나 말거나 맛있는 것이거나 아니거나, 나는 괴상하게도 그걸 잘 먹었다. 뒤이어 나온 "플로프"라는 음식은 맛없는 볶음밥 같은 것이엇는데, 그 맛없는 맛이 이상하게 시큼한 포도주를 당기게 하는 맛이 또 있었다. 그래서 한 잔 마시면, 이제는 그 시큼털털한 맛이 또 그 맛없는 볶음밥을 당기게 하는 것 아닌가.

내 잔은 쉽사리 바닥을 드러냈고, 그럼 어디선가 홀연 웨이터가 나타나 다시 그 붉은 포도주를 채워 주었다.

"Приятного аппетита."

웨이터는 즐겁게 웃으며 새 포도주 병을 내어 왔다. 웨이터는 내가 굉장히 그 포도주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것이 틀림 없다.

포도주와 플로프는 모르지만, 쇠고기 요리인 스트로게노프는 정말 맛있었다. 그녀는 이것은 러시아 방식 그대로 만든 것에서 약간 양념과 맛을 다르게 한 것이라고 했다. 이사장님 자기가 좋아할만한 것으로, 그 지시대로 주방장이 좀 바꿔서 내놓았다는 말이었다. 정통이 아닐지라도, 러시아 요리의 전통이라고는 언젠가 부산 러시아인 거리에서 싸구려 보드카에 곁들인 안주 밖에 모르는 나에게, 그것은 그저 굉장히 맛있는 음식일 뿐이었다.

코르사코프의 음악은 미묘하게 이어지면서 계속 흐르고 있었다. 야외의 공기는 약간 선선한 듯도 했지만, 약간의 취기와 아늑한 분위기 때문에 쾌적한 정도였다. 나는 이사장님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화제는 음식과 술에 관한 것에서 친구와 사람에 관한 것으로 이어졌다.

"어때요? 사귀는 사람은 있어요?"
"저..요?"
"그럼 여기서 한국말을 알아 들을 사람이 누가 있나요? 이과장에게 들리라고 하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게 말한 것 아닌가?"
"뭐, 예, 흠. 그게."

나는 다시 한 번 한 모금의 포도주를 삼켰다.

"저기 왜, 그런 말 들어 보셨습니까. 저도 어디서 들어봤는지는 모르겠는데, 행복한 집은 한 가지 일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집은 수백가지 문제가 있다고."
"Все счастливые семьи похожи друг на друга, каждая несчастливая семья несчастлива по-своему."
"예?예?"
"안나 카레니나 맨 처음 부분이잖아요. 레오 톨스토이."
"아, 맞는 거 같네요. 참 재미나게 읽어 본 거였는데. 예. 맞죠. 톨스토이. 이름이 레오 였습니까? 나름대로 밀림의 왕자였던 겁니까. 핫핫... 그런데 무슨 말 하던 거 였습니까?"
"사귀는 사람 있냐고요."
"아, 예. 지금 없고요. 있었죠. 16일전까지만 해도 있었죠."
"왜 헤어졌어요?"
"뭐 다 그런거 아니겠어요. 만나고, 헤어지고. 예. 그런거죠 뭐."

대강 얼버무리고 넘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녀의 말투며 눈빛이 나를 압도해서, 한별에 대한 생각을 불타오르게 하는데가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강하고 약간 무서운 듯 하면서도 또 따뜻한 면이 숨겨져 있는 그런 면이, 한별과 이사장님이 닮았기 때문일까. 알 수 없었다. 밤공기 때문에, 혹은 포도주 때문에, 아니면 세헤라자데 때문에, 나는 이 북녘의 이국에서 밥먹다 말고 갑자기 한별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쳤다.

"이 번 껀만 잘 넘어가면 회사도 자리 잡을 거고, 그러면 걔한테 결혼하자고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일이 꼬이더니, 그 간단한 일이 안풀리고, 그러면서 몇 날 몇 달을 고생하고 헤메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정신차려 보니까 관계가 아주 냉랭해져 있더라고요."
"그래서요?"
"뭐 나름대로 냉랭한 거 다시 덥혀 볼려고 골치아픈 중에도 신경써 가면서 이리저리 해 봤는데, 그게 한 번 꺾이고 나니까 다시 붙이는게 너무 어려웠어요. 아무 소용 없는 거 같더라고요. 그러다가 뭐 '관계의 장래와 미래가 안 보인데나' 그러면서 뻥~하고 차였습니다. 핫."
"자기 관계를 가지고 술마시면서 잔인한 농담을 한다고 멋있어 보이지는 않지요. 더군다나 '뻥'하는 의성어 한 번 이상하게 끼워 놓은 표현만 갖고는 재미도 하나도 없는 농담이고."

나의 가식으로 가득찬 마지막 '핫' 하는 웃음은 그녀의 포크에 정통으로 찍혔다.

사실이었다. 나는 한별을 만난지 일주일이 지난 뒤부터 이 여자랑 결혼해서 평생동안 알콩달콩 살아야지. 하고 결심했다. 한심한 내 상황 때문에 한 번도 그 말을 꺼내 본 적은 없지만, 나는 그 진실함을 의심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그처럼 허무한 이별 뒤에, 한별의 친구들로부터, 요즘 그녀가 선 보러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그 심정. 아, 심장이 철렁 내려 앉아 무겁게 가라 앉아서 다시 일어서지도 못하게 되는 그 심정. 이런 마음으로 어줍잖은 멋부림 말투나 구사하는 것은 참 처량한 짓이다.

"야, 그런데, 이 쇠고기. 되게 맛있네요. 거의 한상궁과 장금이가 숨겨진 비밀을 알고 의기투합해서 만들어낸 대작 요리의 수준이지 싶습니다."

화제를 돌리려고 어줍잖은 과장 한 마디를 꺼냈다. 이사장님의 표정에는 싸늘한 어둠이 비쳤다.

"무슨 일이 그렇게 꼬이기에 그렇게 사랑도 미래도 다 날려 먹는 거예요?"
"아, 그게요."

나는 어떻게 해서 내가 여기에 앉아 있게 되었느냐를 다시 궁리하기 시작했다. 외딴 연구소 방문, 갑작스런 비, 이사장님의 집, 저녁 약속, 공항.

"사실 오늘 아침에 이사장님 동네쪽으로 온 것도 그거 때문인데요. 이거 아주 말하자면 미치겠습니다."
"듣는 사람이 미치나요, 말하는 사람이 미치나요?"
"뭐, 말하는 사람이 열통 터져서..."
"그러면, 이야기 해주세요."

나는 한 숨을 한 번 푹 쉬고 말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잔이 바닥을 보여 다시 한 병의 사페라비가 등장해야 했다. 이번에는 그녀의 잔도 비어 있어 있었다.

"제가 일하는 회사가 뭐 하는 회사인지는 혹시 기억하고 계십니까?"
"수질오염, 대기오염 그런거 측정하는 데라고 하지 않았나?"
"예. 뭐 그거 말고 다른 일도 하지만, 사실 그게 제일 큰 수입원이죠.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뭐 수질오염 측정 같은 거 대규모 주문 하는 데가 없거든요. 정부에서나 몇 군데 할까."
"그렇겠죠.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이 굳이 오염 같은 거 아직도 당장 큰 문제가 없는 다음에야."
"그래서 정부 주문을 따는게 관건인데, 여기에 대기업들도 참여를 한다고요.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 오염 측정 작업이기 때문에 첨단 기술을 보유한 대기업이 이점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러면, 나라에서 손 꼽는 초대형 대기업하고, 저희 같이 구멍가게 같은 중소기업하고 같이 입찰을 하면, 사실 저희 한테는 눈길도 안주거든요.

가격을 확 낮춰서 좀 낯선 신생업체에 주문주거나 하면 까딱 잘못하면, 대기업이 '자격도 없는 업체에게 주문을 줬다. 뇌물 받거나 특혜 준거 아니냐.'하면서 신문에 내고 소송걸고 그러니까, 공무원들도 몸을 사리고요."
"그렇게 대기업들이 정부 주문을 다 차지해가면, 지금까지는 뭐 먹고 산거죠?"

웨이터가 다 먹은 접시를 치워주러 나타났다. 나는 웨이터에게 신경쓰느라 잠시 말이 끊겼는데, 그녀는 개의치 않고 나에게 물었다.

"그게 재미있는 부분이죠. 그렇게 정부 주문을 대기업이 따긴 하는데, 사실 그렇게 돈이 크지가 않거든요. 그러니까 대기업이 대기업 월급 주는 자기 인력 들여서 하면 인건비도 안나와요. 그러니까, 중소기업을 이기고 딴 그 주문을, 진 중소기업한테 그대로 하청을 주는 거죠."
"그러니까,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직접 주문을 딸 수 있었던 정부 프로젝트를 한 단계 거쳐서 하게 되는 거네요."
"그래서 짜증이 나는거죠. 일은 우리가 다하는데, 그렇게 중간 단계가 있으니까 돈은 조금 밖에 못 받고, 정부는 예산을 많이 잡아 놔도 중간에서 대기업들이 가져가는 몫만 커지니까요. 저희들이 남기는 이윤은 중간에 빠지는 그 '소개비'에 비하면 10분의 1도 못되거든요."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도 계속 해야될걸요. 그나마 짜증난다고 때려치웠다가는, 고생고생해서 대기업이랑 연줄 만들어 놓은 거 날리고, 영영 정부 주문이라고는 구경도 못할 거 아닙니까. 대기업 숫자는 적고, 중소기업 숫자는 많고. 누가 새로 차려도 중소기업이 생기지 대기업이 생기지는 않잖아요."
"맞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떨어지는 돈이나마 감사히 여기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무슨 자기들 하인인 줄 아는 거예요. 그냥 기분 내키는대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나도 안 중요한 거 같은데 보고서 몇 페이지 모양 다듬으라고 사람 괴롭히질 않나. 이것저것 사오고 연구소 지키라는 심부름도 시키고, 가끔 술 안사주냐고 농담 비슷하게 바라는 것도 많죠."
"골치아픈 손님 상대하자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녜요?"
"역시 맞습니다. 그래서 참지요. 왜 필요한지도 모르면서 시키니까 전 직원이 달려 들어서 장비 색깔 초록색으로 바꿔 칠하는데 목숨걸고 있다가, 한 이틀 지나고 나면, 갑자기 그거 할 필요 없고 딴 거 하라고 그러고...... 도대체 배가 큰건지 배꼽이 큰 건지. 해괴한 데 신경써서 하라고 이것저것 이랬다 저랬다 하는 통에 정작 일 알맹이는 어처구니 없어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처음 계약 날짜 마감 다가와서 조금만 기간 늦춰달라고 하면, 욕도 하고, 가끔 뭐 집어 던지기도 하고 그러죠."
"Больше ничего не нужно, спасибо."

웨이터에게 그녀가 말했다. 웨이터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후식을 내어 오려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맨날 하는 일이거니, 하면서 지금까지는 계속 버텨왔거든요. 이제는 좀 익숙해지기도 했고."
"그런데 뭐가 더 어쨌길래, 그렇게 '속터져 미치고', 돈에 울고 사랑에 속아요?"
"이번에 저희들이 인하공단 수질 검사를 하청 받았는데요, 애초에 KR966 방식으로 검사를 하기로 했었거든요."
"주문사쪽에서 뭔가 시비를 건거예요?"
"예. 갑자기 KR723 방식으로 검사 하래요. KR723 방식은 정확도는 높지만 일하기도 힘들고 돈도 많이 들거든요."
"왜요?"
"그게... 정부 쪽에서 프로젝트 따 올 때 대기업의 최신 기술을 쓴다고 선전하고 따 왔는데, 이번에 담당으로 앉은 사무관은 이쪽일을 좀 안대요. 그래서 보통 사용하는 KR966방식으로 하면 별로 최신 처럼 안 보일 거 같다... 이거죠."
"그래서 계약서 보다 더 한 걸 요구하는 거 군요."
"어떡하겠습니까. 계약이 두리뭉실해서 돈 더달라고 할 수도 없고, 뭐 바득바득 소송 걸어서 돈 더 받아내 봤자, 다음부터 일거리 없어질테니, 그냥 시키는데로 KR723 으로 했죠. 우리 회사 연구원들 전부 밤새서 고민해서는 겨우겨우 적자 안나는 선에서 KR723 방식으로 일을 끝냈어요."
"그럼 됐네요."
"이제 부터 미칠 겁니다. 준비하십쇼."

나는 잠깐 말을 멈추고, 포도주를 마셨다. 그 붉은 빛깔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취해 간다는 뜻이겠지.

"석 달짜리 일이었고, 마감이 다음주 거든요. 그런데, 주문사 놈들이 뭘 알아 냈냐면, KR723 방식으로 검사를 하면, 지네들이 옛날에 KR966 방식으로 구리 공단에서 검사했던 거, 그 오차가 드러날 수도 있다는 걸 알아내 버렸어요."
"새로 하는 KR723 검사가 옛날 검사법을 뒤집게 되는군요."
"그래서, 이쪽 회사 마케팅팀에서 KR723 방식은 옳지 않고, 옛날 KR966 방식이 옳다고 선전하자고 가닥을 잡았거든요. 그거 이야기하느라 대학 교수들도 많이 구워삶고 있고요."
"그럼, 이번 검사를 더 좋은 기술로 했다면서 KR723 방식으로 하는 건 말이 맞지 않게 되는군요."
"예. KR966 방식은 특수한 잠재 염기성 물질을 놓치는 경우가 있거든요. KR723 방식은 그걸 잘 잡아내죠."
"잠재 염기성이요?"
"예, 왜 양잿물 마시면 죽는다 그러잖아요. 그런 양잿물 같은 걸 만들어 내는 성질이요."

나는 "양잿물 마시면" 이라는 말을 하면서 씩 웃어보이고는, 남아 있는 그 붉은 포도주를 다 마셨다.

"그래서 1주일 남겨 놓고, 갑자기 애초대로 KR966 방식으로 다시 검사하라는 겁니다."
"항의를 해 보지 그랬어요."
"항의 했죠. 그랬더니, 애초에 계약상으로 KR966 방식으로 하기로 하지 않았냐 면서, KR966으로 안 하면 우리가 계약 위반한거라고 호통치는 겁니다. 무슨 부장인가 하나는 내가 말버릇 없다면서 좀 길고 험난하게 욕설도 좀 섞더군요."
"그 때 계약을 들먹이는군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그나마 시간이라도 좀 더 달라고 사정하려고 이사장님 사시는 동네에 갔죠. 그 회사 연구소가 그 동네에 있거든요. 그래서 거기까지 갔던 겁니다. 뭐, 말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바로 쫓겨났죠. 이제 돈 날리고, 주문 날리고, 욕먹고, 망하는 일만 남은 겁니다."

웨이터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가져 왔다.

"마로제노예."
"무슨 뜻입니까?"
"이 음식 이름이예요."

나는 그녀가 무슨 나에게 인생의 희망을 주는 속담 같은 걸 말하는 줄 알았건만. 왜 영화에서 보면, "어쩌고외국어저쩌고외국어-" 하면, "예?" 하고 그러면 느끼한 표정으로 "스페인 속담에는 닐리리야라는 말이 있죠" 이런 식으로 멋있게 대화가 진행되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그 아이스크림 비슷한 음식은 독특하게 맛있긴 했다.

"나름대로, 지금까지 힘겹지만 꿋꿋하게 인생을 잘 헤쳐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남들보다 힘든 처지에서 잘 해왔다는 자신감이나 오만한 자부심같은 것도 좀 있고...... 그런데, 여기가 벽인 것 같습니다. 그냥 뭐 왜 이렇게 일이 안되나...... 하는 생각 듭니다.  좀 울고 싶기도 하고. 피폐해진 몸과 정신을 가진 지금 나 같은 사람이라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걔도 당연했던 거죠."

나는 다시 한별을 생각했다. 술기운인지, 정말로 이제는 나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숨을 푹 쉬다말고, 갑자기 너무 주절주절 내 신세한탄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신세한탄, 어쩔 때는 참 듣기 싫고 짜증나는 법이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무표정했다. 어딘가 섬뜩한 느낌이 드는 무표정이었다. 어느새 코르사코프 음악은 연주를 멈추고 있었다. 촛불 위로, 별빛과 달빛을 받은 그녀의 표정은 솔직히 이 세상의 것이 아닌것 처럼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서울의 집에 돌아온 것은 새벽 1시가 넘어서 였다. 이과장님은 친절히 공항에서 내가 사는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예기치 못했던 의외의 저녁 식사는 어쩌면, 꿋꿋했던 내 인생의 무너짐을 알리는 마지막 불꽃놀이쯤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튿날. 회사에서는 전 직원들을 모아 놓고, 지방 대도시를 돌면서 회사 이름과 사장 이름으로 사채를 빌릴 수 있는지 알아 보라고 했다.

나는 주문사인 대기업에게 마지막으로 소송을 걸어보자고 했지만, 소송을 건다고 하루아침에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에 1주일 남은 마감일을 넘기고 나면 회사가 도산하는 것은 자명했다. 결국 무슨 수로든 일단 막아야할 빚을 막을 새로운 빚을 얻는 것만이 길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사채업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방방곡곡으로 흩어졌다. 나는 지방으로 나선 김에 밤에는 옛날 친구들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낯선 길을 지나치면서, 회사가 망하고 나면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가만히 고민도 곰곰 해 보았다. 내년쯤에는 결혼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건 또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차분하고도 냉정하게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지방출장은 거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지방 사채를 끌어다 써 보려 했던 사장님도 그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짐짓 차분한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체념한 심정으로 아마 마지막 출근으로 생각될, 출근길에 올랐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 나는 아침에 길에 나선 4백만명의 다른 서울 시민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광경을 보았다.

나는 생각에 잠겨서 버스에 앉아 있다가 주변에서 수근수근 소란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두리번 거렸다. 차가 막 한강 다리 위로 접어든 순간이었다. 창 밖으로 펼쳐진 드넓은 한강. 멀리 보이는 강변의 아파트들과 빌딩들. 여의도. 다른 한강 다리들. 익숙한 풍경이었다. 문제는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 거대한 강물이, 납득할 수 없게도, 피처럼 붉은 색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그 초자연적인 광경에 버스 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강물이, 이 강물이 모두 이렇게 붉은 색으로 변하다니.

다리위나 강변 도로의 몇몇 운전자들은 잠시 차를 세워 놓고, 차 밖에 나와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바라 보았다. 성급한 사람 몇몇은 강변으로 내려와 손으로 한 웅큼 강물을 떠 보기도 했다. 정말이었다. 한강물이 붉게 변해서 흐르고 있었다.

성경책을 들고 있던 한 아주머니는 재빨리 출애굽기를 펴 놓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 기괴하지만 너무나 강렬한 광경에 대해, 감상주의의 늪을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버스 기사가 라디오를 켜자 라디오에서는 붉게 변한 강물에 대한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날 하루종일 텔레비전에서 심심하게만 흐르던 저 강물을 계속 비춰주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수백만톤은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마치 악마에게 당한 거인의 피인냥 하루아침에 붉은 빛이 되어 철철 넘치고 있지 않은가.

회사에 나와 보니 그야말로 난리였다. 시와 환경부, 내무부는 물론이고 국방부까지 온통 비상이 걸린 형편이었다. 수질 검사와 관련된 수도권의 모든 회사들은 총동원 되어 한강변의 각지로 보내졌다. 각각의 회사가 갖고 있는 온갖 검사기법이 동원되어 붉은 강물을 조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를 비롯한 우리 회사의 기술자와 연구원들은 밀려오는 전화와 폭발할 듯한 팩스에 정신이 없었다.

한강물에서 나온 것은 어이 없이 검출하기 간단한 물질이었다. 그것은 초등학교 실험실에도 널린 페놀프탈레인 이었다. 리트머스 시험지 대신 몇 방울 떨어뜨리곤 하는 바로 그 용액의 성분이었다.

문제는 페놀프탈레인이 아니었다. 페놀프탈레인은 염기성 용액을 붉게 물들인다. 말인 즉슨, 한강물이 이처럼 온통 붉어졌다는 것은 한강이 염기성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붉은 한강물은 서울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계속 그 염기성 독성을 포효하고 있는 셈이었다.

텔레비전에 나간다고 바삐 머리에 빗질을 한 우리 회사 사장님은 환경부 장관과 함께 서서 질의 답변을 했다.

"구식 KR966 방식 검사에서는... 에... 염기성으로 변할 수 있는 몇몇 물질을 놓칠 수 있습니다... 에, 그러므로, 한강변의 공장에서 방류된 폐수에 들어 있는 독성을 검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처럼 한강물에 염기성 독성이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KR723 방식으로..."

사장이 그 말을 하면서 웃는 표정을 감추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것을 우리 회사 직원은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언론의 선정주의는 화산과 같았다. 귀가 따갑도록 염기성 독성과 그 원인, 검출에 대한 이야기가 사방에 들끓었다. 공기중의 전파는 붉은 한강물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찼다. 잠재 염기성 폐수를 의심 받는 공장은 95개소에 달한다는 자극적인 기사가 인터넷을 통해 흘러 나왔다.

물론 주문사에서는 KR966 생각일랑 당장 다 때려치우고, 즉시 KR723 방식으로 작업한 결과를 그대로 결과로 제출하라고 전화를 해 왔다. 저 드높은 거대 기업의 지엄하신 상무님께서 직접 전화해 주신 내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사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주말에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자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그 주말, 호텔 커피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이사장님이 아니라,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한별이었다.

사연이 어찌 되었건 나는, 그녀와 마주 앉자 마자, 아무런 다른 생각 없이, 바로 말했다. 사실 예전부터 청혼하려 했었다면서 그렇게 단도직입으로 말했던 것이다. 그녀는 당황했지만, 분명히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임은 분명했고, 결과적으로 그녀가 바랬던 것은 나의 굳은 청혼이었다는 데로 맺어 졌다.

한편 강물은 주말까지 붉은 색이다가  토요일 밤을 기점으로 서서히 투명해졌다. 그리고 그 때까지 조사가 계속 된 결과, 그 날 한강에 염기성 독성이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한강에 페놀프탈레인을 대량 살포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밝혀졌다.

해괴하게도 범인은 어느 신화 팬클럽의 10대들이었다. 누군가 그런 짓을 하면 돈을 준다고 하기에 밤새도록 한강 여기저기에 페놀프탈레인을 풀었던 것이다. 그 아이들은 약간의 팬클럽 활동비만 준다고 하면 지옥에 가서 케르베로스라도 사냥해올만한 아이들이었다. 문제는 배후가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강인하고도 고집스런 아이들은 혹여나 어떻게든 "오빠"의 여러 활동에 누가 될가 싶어서,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은 흘렀고, 회사는 고비를 넘기고 코스닥으로 나갈 수 있었으다. 물론 나는 한별과 결혼했다. 나는 빌렸던 양복을 갖다 주려고 이사장님 댁에 다시 한 번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이후로도 이사장님과는 연락이 되지도 않았다. 결혼식장에서 잠깐 이사장님의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한데, 사진 찍느라 부산한 틈에 놓쳐버리고 말았다. 내 결혼식장에 이사장님이 왔던 것인지 어떤 것인지 알 길은 없었다.

세월이 꽤 지나서야, 나는 아내가 된 한별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사장님이 뭐라고 했기에 그날 호텔 커피숍에 나를 만나러 왔냐고. 한별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 나는 그 아줌마, 그냥 결혼 정보 회사 직원인 줄 알았는데? 그날 시간 약속 잡아 주길래."

도대체 이사장님은 뭐하는 사람일까. 알 길은 없었다. 그리고 이사장님과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눠 본 그날 그녀의 아파트와, 러시아의 외딴 저택에도 그 날 단 한 번의 기억일 뿐. 앞으로 다시는 가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잔인한 사업가일 수도 있었고, 냉정한 자산가일 수도 있었으며, 혹은 아주아주 돈을 잘 버는 결혼 정보 회사 직원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나에게 비를 맞고 나서 그녀와 함께 저녁을 먹었던 그 기억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본 가장 장엄한 풍경의 전주로서 남아 있다. 또한 그 기억은 가장 골치 아팠던 위기를 지나던 기억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나는 가끔씩 이사장님의 정체를 고민하기도 하고 한별과 거기에 대해서 이상한 상상들을 하며 같이 추측해 보기도 했다. 언제나 깔끔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더 이상 장학금 같은 것을 받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나에게, 재단 이사장 같은 멀고 먼 사람과 다시 만날 이유도 없을 듯 했다. 때문에 나는 그 정답을 확인할 길도 없었다.

"야, 우리 제국의 역습 보까?"
"그거 또 보냐?"
"스타워즈 중에 그게 제일 재미있잖아."
"The Empire Strikes Back!"

한별이 과장된 발음으로 읊조리자, 나는 경쾌한 목소리로 배경음악을 흥얼거렸다. 와이프 앤 허스번드 풀리 싱크로나이즈드!

뭐, 알 수 없는 일은 영영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다만, 어느새 신기한 우연으로 자리잡은 지금의 내 행복에 충실하자고 생각하며, 리모콘 버튼을 눌렀다. 팝콘을 먹고 있자니, 유난히 내 입맛에 잘 맞았던, 어디에서도 다시 찾기 힘들, 외딴 저택의 쇠고기 요리 맛이 잠깐 기억나긴 했다.


-- 2005년 10월, 톱클라우드에서


* 한별 이라는 이름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방영중인 한 만화영화에서 따온 것입니다. 현실의 비슷한 이름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mirror
댓글 7
  • No Profile
    곽재식 05.10.30 00:08 댓글 수정 삭제
    이번편은 좀 재미없어서 죄송한 마음을 숨기기 위하여...

    퀴즈-
    1. 무슨 만화영화 일까요?
    2. 이사장의 정체를 드러내는 증거들은 무엇이 있었을지요.
  • No Profile
    Nitro 05.10.30 16:15 댓글 수정 삭제
    케이블TV라면 아무래도 '케로로중사'에 등장하는 '한별'일 확률이 높군요. 원래 이름은 '히나타 나츠미'이지만서도...
  • No Profile
    이중 05.10.31 03:16 댓글 수정 삭제
    하하. 읽다가 나오는 SS501의 이름에 놀랬고, 신화 팬클럽(신화창조)에 다시한번 놀랬네요; 재식씨 센쓰쟁이~
  • No Profile
    곽재식 05.11.05 14:12 댓글 수정 삭제
    Nitro/ 히나타 나츠미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자세히 읽어 보시면 힌트가 없는 바 아닙니다.

    이중/ 예, 이중님이시라면, 하필 왜 하고 많은 팀들 중에서 신화 였는지도 감잡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 No Profile
    궁금이 06.04.23 15:55 댓글 수정 삭제
    "위대한 유산"이 연상되는군요 ^^
  • No Profile
    -_- 07.08.22 18:02 댓글 수정 삭제
    이수만 사장은 남잔데... 아 궁금타
  • No Profile
    블루 08.09.27 23:36 댓글 수정 삭제
    허허허; 왜 신화창조일까요 ?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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