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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인 도시의 거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

 

헤르만 오스트발트 쇤하이페츠가 설계했다는 서울시의 최신 청사 부속 건물에 대해서는 항상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재미 없게 생겼고 이상해 보인다는 의견이 절반이었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절반이었다. 그러나 김도현은 그 건물에 들어 가면서 누가 이 건물을 가장 사랑하는 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차가운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근처의 노숙인들이 건물에 가까운 쪽으로 모여 들었다. 건물의 윗부분이 부드러운 곡선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어서 처마 역할을 해 주면서 비를 막아 주고 있었다. 비를 피할 곳을 찾는 노숙인들은 새 건물이 생긴 후에 그 곡선을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김도현은 건물 지하 1층에 있는 중B회의실로 걸어 갔다. “아트 엔비 프로젝트 킥오프 심사 회의 4”라는 푯말을 찾아야 했다. 두 번 지하 1층을 돌고 나니 “Art Envi”라고 써 놓은 화면이 보였다. 그제서야 김도현은 “아트 엔비 프로젝트”의 “엔비”라는 말이 영어 단어로 환경이라는 뜻의 “environment”에서 앞 부분을 따 놓은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요한 심사가 아니니까 많이 준비할 필요 없고 대충 앉아 있다가 오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는 것이기는 했지만, 제목 뜻조차 모르고 왔구나 싶었다.

회의실에 들어 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이번에 만들 거라는 “아트 엔비 작품”을 심사한다는 사람들이었다. 공무원들, 대학 교수들, 대학 교수가 아닌 예술가 들이 정확히 삼 분의 일 씩 와 있었다. 세 부류의 사람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서로 완전히 달라 보여서 선명히 구분되어 보였다. 운동회 단체 복장처럼 서로 색깔이 다른 옷을 입고 있다거나 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렇게들 달라 보였다. 어떻게 보면 정글의 습지에 홍학과 물을 마시는 영양과 그 사이에 가끔 나타나는 하마가 뒤섞여 있는 풍경과도 닮은 점이 있어 보였다.

“어이쿠, 안녕하십니까?” “하하, 여기서 또 뵙네요.” “안녕하세요. 어디의 누구라고 합니다” 그런 소리가 잠깐 울려 퍼졌다. 그 울려퍼지는 소리 사이에서 김도현은 마침 전에 본 적이 있는 교수 한 사람을 찾아 냈다.

“이번에 저희가 어느 작품에 투자할 지 선정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번 킥오프 미팅은 그렇게 심각한 회의는 아니고요. 어차피 시에서 이 작품은 가기로 정해 놓아서 벌써 추진이 시작됐고요. 저희는 이번에 혹시 큰 문제는 없는 지, 지적할 사항이나 우려 되는 사항은 없는 지, 예산을 좀 더 주어야 하는 지, 뭐 그런 정도만 간단하게 잠깐 더 이야기하는 거예요.”

김도현은 깊게 안심했다. 이런 정도라면 특별히 신경을 쓸 필요도 없고,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다. 마침 자리에 메모지와 볼펜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 회의를 하는 동안 메모지에 이것저것을 써 가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아마 내일까지 직장에서 제출해야 할 결산표를 어떻게 짜야 할 지 준비하면 보람있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후 “아트 엔비 프로젝트 작품 4”를 담당한 작가가 자기 발표를 시작했다.

“정말로 한 도시의 성격을 아주 깊게 담아서 나타낼 수 있는 게 뭘까요? 건물일까요? 도로일까요? 가로수나 화단일까요? 저희는 도시가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인 만큼 사람이야 말로 도시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전시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세계 여러 도시 거리의 사람들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 중에서도 저희는 그 도시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사람은 역시 그 도시의 거리에서 살아 가는 노숙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런던의 노숙인은 런던을 나타내고, 뉴욕의 노숙인은 뉴욕을 나타내고, 방콕의 노숙인은 방콕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 가지로, 서울의 노숙인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과연 어떤 곳인지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대상입니다.”

다음 화면에서는 전자제품들의 사진이 나왔다.

“세상이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면 자꾸 옛 것은 없어집니다. 이제 브라운관으로 되어 있는 텔레비전이나 브라운관 화면의 전자 제품은 거의 다 사라져서 찾아 보기도 힘들지요? 2000년대 초에는 그렇게 많던 춤 추면서 몸을 움직이며 노는 비디오게임 오락실도 이제는 거의 다 사라져서 찾아 보기가 어렵지요. 그렇지만, 노숙인은 항상 있습니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20세기에도, 조선시대에도 서울에는 계속 노숙인이 있었고, 지금도 노숙인이 있지요.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 어쩐다 말이 많지만, 노숙인은 계속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제 화면에는 지도가 나왔다.

“10년 전인 2018년 서울시 노숙인 대책 현황 자료를 보면 서울역, 시청, 을지로입구역, 영등표역 같은 곳에 노숙인들이 많았다고 되어 있지요. 지금은 분포 지도가 조금은 바뀌었습니다. 새 지도를 따라 가면 노숙인을 찾는 것은 여전히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팀을 소개 했다.

“저희는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저희 작품에 참여한다는 동의를 받을 겁니다. 그리고 나서 저희는 그 노숙인들을 씻기고,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해 줄 겁니다. 그리고 저희 팀원들이 토론하고 논의해서 그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새 옷을 입히고, 새 신발과 새 장신구를 줄 것입니다. 혹시 눈빛이 불안하거나 돌발 행동을 하는 증상이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의료팀이 진료를 거쳐서 안정제와 증세 개선을 위한 약물도 처방해서 투여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말끔한 모습으로 겉모습을 단장할 수 있을 겁니다. 여유로운 미소를 띄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겁니다. 지금 예산으로 볼 때, 저희는 노숙인들 다섯 명 정도의 모습을 이렇게 완전히 말끔한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게 될 겁니다. 이런 꾸미는 기술의 효과는 상당히 훌륭해서, 그렇게만 해도 노숙인의 모습은 서울의 어느 훌륭한 지식인, 어느 중산층 회사원, 그럴듯한 자산가와 별 다를바 없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때 회의 자리에 앉아 있던 어느 예술가 한 사람이 질문했다.

“그렇게 해서, 노숙인들을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 섞어 놓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서, ‘이 중에 누가 노숙인인 줄 알아 맞춰 보세요’, 그런 작품을 만든다는 계획입니까? 그런 계획은 이미 다른 데서 몇 번 본 것 같은데요. 아주 호사스러운 오페라 공연의 VIP 석에 부자들과 치장해 놓은 노숙인들을 나란히 앉혀 놓은 사진이 작년에 인터넷에서도 엄청 유행했잖아요.”

그 질문에 이렇게 작가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희 작품은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저희는 그 뒤에 계속 노숙인들을 따라 다니면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분들을 계속 관찰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노숙인들은 조금씩 조금씩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겠지요. 저희는 그 과정을 촬영할 것입니다. 그것이 저희 예술 작품입니다.”

마침 그때 김도현은 다음 날 결산표를 어떻게 만들면 좋겠다는 계획을 메모지에 다 써 넣을 수 있었다.

 

- 2019년, 테헤란로에서
(SEOUL MADE 1호에 실렸던 글을 일부 수정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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