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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팔당 처리소

2020.04.30 01:0604.30

팔당 처리소

곽재식


서 대리가 팔당 처리소에 들어 서자, 로봇이 걸어 나와 맞아 주었다. 로봇은 근사한 모습이었다. 사람과 무척 닮은 모습이기도 했다.

로봇이 말했고, 서 대리가 대답했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신청 이유랑 신청자 세부 사항을 저희가 받아야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제가 집에서 인터넷으로 신청 할 때, 신청 이유랑 신청자 세부 사항은 먼저 다 작성해서 드렸었는데요.”

“예, 그렇죠. 그렇게 신청을 했으니까 저희 쪽으로 접수가 되어서 오시게 된 것이고. 그런데, 아무래도 중요한 내용이다보니까, 인터넷으로 신청을 다 했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대화를 하면서 말로도 다시 확인하게 되어 있어요.”

“예? 그러면 제가 인터넷에서 신청한 대로 다시 한 번 그대로 말을 못하면 신청을 안 받아 주시는 거예요?”

“아니오. 그런 건 전혀 아니고요. 인터넷 신청하실 때 쓰신 내용하고 오늘 지금 여기서 하시는 말씀하고 전혀 달라도 안 되는 거는 없어요. 그건 모든 시민들에게 보장된 처리보장법...”

“처리보장법 2조 1항의 기본 시민 권이니까요. 누구든 처리소에 오고 싶으면 사회는 받아 줄 의무가 있는거죠. 당연히 시민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권리가 있는 거고.”

“맞아요. 그래서, 정말로 오시고 싶으시면 저희가 결국 거부한다거나 할 수는 없는 거 거든요.”

“그런데 굳이 왜 인터넷 신청 내용을 다시 말로 다 물어 보신다는 건데요?”

“인터넷 신청 내용이랑 직접 여기서 오셔서 말씀하시는 거랑 혹시 다르면, 어떻게 다른 지 분석해서 저희가 최종 보고서에 기입을 하고, 종합 의견을 고객님께 드리게 되어 있어요.”

“그런 절차가 꼭 필요한가요?”

“처리보장법 8조에 있는 절차라서, 꼭 필요합니다. 이 절차는 누구든 다 예외 없이 밟아 주셔야지 처리소 안 쪽으로 가실 수가 있어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빨리 하죠.”

“감사합니다. 우선 기본 사항 부터 확인하겠습니다. 현재 기상 정보 회사의 회계팀에서 일하고 계시다고 하셨는데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소득 수준은 어느 정도고요?”

“낮죠.”

“많이 낮나요?”

“저희 회사 회계팀은 희귀 작업군이 아니잖아요. 제가 하는 일은 로봇과 인공지능 컴퓨터들한테 다 맡겨 놓을 수 있는 일이죠.”

“요즘 뭐 일자리란 게 대부분 그렇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제 일은 모든 일을 로봇들에게 다 맡기면 너무 일자리가 줄어들까봐 그냥 저한테 일을 시키는 것 뿐이예요. 회사에서 그냥 고용대체방지법 11조 규정 때문에 저를 고용해서 돈을 주고 있는 것 뿐이란 말이죠. 사실 저를 잘라 버리고 그냥 인공지능 컴퓨터에게 제 일을 맡겨 버리면 회사 입장에서는 더 일이 잘 돌아가겠죠.”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가 있으실까요? 업무 평가 자료를 보면, 그래도 실적이 좋으시던대요.”

“실적이 좋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니까 그런 것 뿐이죠. 인공지능 컴퓨터한테 맡길 때 하고 비교해 보면 제가 일하는 게 훨씬 못해요.”

“고객님 일하신, 지난 주 근무기록 대체지수가 96까지 나옵니다. 이 정도면 회계 업무하는 사람들 평균인 85보다 훨씬 높은데요.”

“그래봤자죠. 대체지수가 96이라는 것은 저 대신에 컴퓨터가 일을 하면 100만큼 일을 할 수 있는데 거기서 4만큼 뒤쳐진다는 거 거든요. 그러니 제가 죽어라 일해서 조금이라도 좋은 성과를 내려고 애를 써도, 그냥 회사에서 무료 프로그램 설치해서 돌리는 것 보다 4만큼 더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실제로 외국 경쟁사들은 저 같은 회계팀 직원 안 쓰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대체하고 있어서 훨씬 더 잘 돌아 가고 있죠. 우리 회사가 돈을 갈 수록 못 벌고 있는 이유는, 사실 제가 일하는 회계팀 같은 데가 외국 경쟁사 보다 삐끗삐끗하면서 일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도 받고 있고요.”

“누가 정말로 그렇게 지적하는 데가 있나요?”

“비취업자 소득 지원 조합 사람들은 확실히 엄청 뭐라 그래요. 우리 회사가 돈 못 벌어서 망해 버리면 그만큼 세금 낼 회사가 없어지고 그러면 비취업자들에게 소득으로 줄 세금이 없어지잖아요. 조합 사람들은 그게 싫다는 거예요. 제가 일하는 대신 컴퓨터가 일하게 하면 그만큼 회사가 돈을 더 잘 벌 것이고 그러면 거기서 걷는 세금으로 비취업자들에게는 더 많이 소득을 줄 수 있다고 조합에서는 매일 의견서를 발표하거든요. 아닌게 아니라 고용대체방지법만 없으면 회사에서는 바로 저를 자르고 컴퓨터를 쓸 거예요. 대체지수가 96이라는 건 부질 없는 점수예요.”

“꼭 컴퓨터와 그렇게 비교를 해야 될까요?”

“비교를 할 수 밖에 없죠. 아예 제가 일하다 실수해서 회사에 손해를 입힐 때가 가끔 있어요. 요즘 회계일이라는 게 엄청 복잡하거든요. 그러면 그때마다 분명히 회사에서는 컴퓨터가 저 대신 일했으면 그런 일이 안 생겼을거라고 엄청 아까워해요.”

“그렇지만 고용대체방지법 21조에서는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더 일을 잘 했다고 해서 사람을 멸시하는 언행을 하거나 그를 지적해서 문제시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혹시 고객님 회사에서 고객님의 상사가 그런 법을 어기고 고객님에게 ‘컴퓨터보다 덜떨어진 것아’라고 욕을 하시거나 하셨습니까?”

“아니오. 전혀 아니죠.”

“그러면 괜찮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건 고용대체방지법 21조 때문에 그렇게 꾹 참고 있는 것 뿐이겠죠. 애초에 제가 기계로 대체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부질 없는 사람 역할로 보인다는 것은 그대로잖아요.”

“고객님, 고객님의 회사에서는 어차피 로봇과 인공지능 로봇이 대부분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사람 직원은 극 소수 밖에 없죠. 그 극소수의 사람들이 굳이 고객님을 의식 하면서 일부러 그렇게 비웃을까요? 더군다나 로봇과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은 사람을 비웃는다는 감정 인식 자체를 하지 않도록 설계 되어 있습니다. 하는 일이 컴퓨터만 못하다고 주눅 드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어차피 희귀 직업군은 아니잖아요. 로봇이 저에게 비웃는 표정을 보낸다, 아니다 하는 것은 애초에 별 문제가 아니에요. 전자 회로가 작동해서 웃는 얼굴을 화면에 출력하도록 전기가 통하는 것이나 존경심을 품은 얼굴을 화면에 출력하도록 전기가 통하는 것이나 딱히 무슨 의미가 있는 건 아니죠. 그런 건 무의미한 거예요.”

“그러면 본인이 희귀 직업군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불만이십니까?”

“불만을 품는 건 아니고요. 그냥 제가 희귀 직업군이었다면 좀 다른 마음을 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특별히 되고 싶어 하시는 직업이 있나요? 과학 연구원이나 의사 같은 직업?”

“아니오. 그런 직업은 그냥 준희귀 직업군일 뿐이잖아요. 과학 연구원이나 의사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대접을 받는 것은 그냥 고용대체방지법 15조 규정 때문에 그런 거죠. 사실은 과학 연구나 사람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도 로봇들이 더 잘 하잖아요. 어차피 제가 의사가 된다고 해도 대체지수가 얼마나 나올까요?”

“예상 수치로는 52정도가 나옵니다.”

“의사들이야 워낙 예전에 대접 받던 직업이니까, 갑자기 로봇으로 대체 해 버려도 상관 없는 직업이라고 하면 너무 기분 나빠할 것 같으니까 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것 뿐이지. 사실 다들 알잖아요. 어차피 그런 일들도 다 로봇들이 더 잘 한다는 거.”

“그러면 과학자 계통 직업은요?”

“그쪽은 더 하죠. 요즘 과학 분야 중에 인공지능의 연구 수준이 사람의 두 배가 안 되는 데도 잘 없다고 하더라고요. 과학자들을 주요 희귀 직업군으로 분류해 둔 것은 고용대체방지법이라는 법을 만들 때에 과학계 전문가들 의견을 듣고 법을 만들어야 된다고 해서 그 사람들 불러다가 의견 들었으니까, 그 사람들이 괜히 자기 자신을 높이고 싶어서 고용대체방지법 15조에 넣어 버린 것 뿐이예요. 모르긴 해도, 무슨 과학 분야 연구원들이 요즘 회계팀 대리보다 훨씬 더 쓸모 없는 직종일 걸요?”

“표현 주의 해 주십시오. 다른 사람의 직업을 쓸모 없다고 말씀하시면 고용대체방지법 21조 위반입니다.”

“네. 죄송해요. 하여튼 그렇다고요.”

“그러면 수영 선수나 야구 선수가 되고 싶으신 건가요?”

“수영이나 야구 같은 걸 좋아하기는 해요.”

“잘 하시나요?”

“못하죠.”

“그런데도 좋아하시나요?”

“사람이 수영이나 야구 같은 일을 하고, 그 기록을 보고 얼마나 잘 하는 지를 보는 것은 사람이 그렇게 잘 한다는 것 때문에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멋지죠. 모터 보트와 합체한 로봇이 물 위를 달려 가면 사람 보다 10배 빠른 속도로 물에서 나아갈 수도 있지만, 그걸 보는 재미하고 사람이 수영해서 빨리 헤엄친 기록을 보는 재미는 다르죠. 야구는 더 그렇고요. 뭐, 요즘은 로봇 야구도 인기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사람이 직접 사람 실력만으로 겨루는 야구가 확실히 보는 재미가 상대도 없지 크죠. 이런 것들은 대체지수도 거의 0이예요. 사람 대신에 로봇으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 인공지능이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는 과학자나 의사 일 보다야, 사람이 해야 가치가 있는 운동선수가 훨씬 더 멋지고 귀한 직업인 건 당연해요.”

“그러면 수영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다시 취업의 기회를 지원해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설마요. 저는 벌써 수영 선수 전성기 나이는 지났잖아요. 해봐야 아무 성적도 안 나올 거예요.”

“그래도 노력 선수로 편성해 드리면, 생활하실 수 있을 정도의 지원금은 나올 겁니다. 고용대체방지법 10조에 따라서 저성과 취업자 소득을 받으시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을 겁니다.”

“그런 돈 받자고 아무 의미도 없는 일에 뛰어 들어서 내가 수영 선수라고 해 봐야 무슨 소용이겠어요. 어차피 안 해도 더 좋을 쓰레기 같은 일을 하는 거고, 돈 주는 건 그냥 가만히 있어도 줄 돈을 그냥 받는 거죠. 그나마 회계팀 일은 제가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잘 하기라도 하지.”

“성공한 수영 선수가 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좌절하신 겁니까?”

“뭐 꼭 수영에 애착이 있는 건 아니고요. 그냥 지금 제 상황이 그렇다고요. 제 어릴 적 친구들 중에는 정말로 수영 선수나 야구 선수로 성공해서 멋지게 사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런 삶이 제 삶하고 차이는 극명하잖아요. 당장 생활 수준 자체도 너무 다르고. 아무래도 그런 생각하다 보면 제가 하는 일이 더 싫어지죠.”

“일이 삶에서 차지 하는 비중이 그렇게까지 커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희귀 직업군이 아닌 일을 해서는 아무래도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지지는 않을 거 거든요.”

“고객님은 공동 기본 주택 거주자에 공공 기본 식량 취득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사회 중류층 정도의 생활 수준입니다. 일보다 취미 생활이라든가,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서 노는 것에 집중해 보시면 어떨까요?”
“제 삶의 수준을 중류층이라고 부르니 만족하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좀 짜증스러운 것 아시죠?”

“죄송합니다. 처리보장법 3조에 있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감성 반응을 저희가 예측하는 데에 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일보다 취미 생활이라든가,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서 노는 것에 집중하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제가 별로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거든요. 친구들 만나고 사귀고 하면 좋기도 하지만 너무 피곤한 일이죠. 사람을 대하고, 남의 감정을 매번 조심스럽게 고려하고 맞춰 주고 그런다는게.”

“그러면, 음악이나, 미술을 취미로 해 보시는 건요?”

“재능이 없죠. 제가 중간 만큼은 한다고 해도 저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절반은 될 만큼 널렸다는 거고.”

“꼭 누구보다 잘 해야 의미가 있는 겁니까? 그냥 음악을 연주하거나 만드는 것 자체를 즐기면 어떨까요?”

“뭐, 어릴 때는 그럴 수도 있었을 거 같기도 한대요. 요리사가 멋지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조약돌이랑 모래로 소꿉놀이 하는 일을 어른이 되어서도 매일 같이 즐겁게 하는 게 쉽지는 않지요. 뭐, 그런 비슷한 마음이에요.”

“그럼 글을 써 보시는 건 어때요? 소설을 쓰신다든가?”

“으으... 소설 쓴다는 사람들 진짜 싫어요.”

“그러면 은퇴자 프로그램 쪽에 참여해서 알아 보시면 어떨까요? 요즘에는 오히려 그 쪽이 더 재미있다고 젊은 분들도 은퇴자 프로그램 쪽으로 참여해 보시는 경우도 있던데.”

“어차피, 그런 건 다 이 사회에서 소란 일으키지 말고 순응하라고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을 따라 가면서 죽어 지내는 거 같아요. 그냥 사회에서 물러 서서 지내라는 거죠.”

“꼭 서울에서 사시면서 은퇴자 프로그램에 참여 하셔야 되는 건 아닙니다. 알아 보시고, 다른 도시의 은퇴자 프로그램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이주 하셔도 되고, 고용대체방지법 36조에 따라 우리나라와 협약이 있는 세계 11개국 중에 하나를 택해서 그런 나라로 이민을 가셔서 은퇴자 프로그램을 따라 가셔도 되죠. 지금 막연히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삶에 대한 더 다채로운 기회가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일에 대해 존경을 받고 제 삶에 대해 존중을 받으면서 따뜻하게 사는 인생을 사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불가능한 것 같아요. 사회가 영영 잘못 돌아가고 있어요.”

“우리 사회의 수준 자체를 낮게 평가하십니까?”

“뭐, 굶어 죽는 사람이 넘쳐 나는 사회라거나 그렇지는 않으니까 아주 심하게 낮게 평가할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굶어 죽는 사람이 없으니 행복한 사회다? 이런 건 정말 수준 낮은 발상이죠. 지금 우리 사회가 분명히 뭔가 큰 게 부족한 사회인 것은 맞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다고요. 특히 요즘에는 사회가 비판 의식이 없다고 해야 하나? 너무 억지로 자화자찬하는 느낌이 돌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좀 있어서 점점 견디기가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저희 처리를 찾아 오신 겁니까?”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요. 훨씬 더 많은 문제가 또 있어요. 일일히 다 대화하면서 확인해야 하나요? 저를 멸시하고 공격한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제가 쌓아 온 것이 모두 다 날아가 버린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다 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도입 개요를 확인해 주셨으니까, 나머지는 저희가 자동 분석한 내용을 대조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더 진행해 나갈 수 없는 고통이 있으실 것이고, 반대로 더 진행해 나갈 수 없는 이유는 있으실테니까,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여기에 오시는 것도 한 가지 선택 사항이다고 보시고 직접 판단해서 선택하셨겠지요.”

“네, 이것저것 고려해서 제 나름대로는 신중히 판단한 거예요.”

“쉬운 결정은 아니셨을 텐데요? 고객님의 인생을 포기하시는 건데요.”

“제 삶과 제 몸에 대해서는 제가 모든 권리를 다 갖고 있고, 그에 대해서 저는 뭐든 할 수 있어요. 그건 처리보장법 1조 1항의 원칙이죠. 제 인생인만큼, 누구도 그걸 강제로 저한테 지울 수는 없어요. 제가 어떻게 할 지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죠.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인간다운 방법으로 저는 제 자신을 통제하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선택하신 조건에 따라 처리소에서 처리 작업을 진행하겠습니다. 여기 보이는 조건이 맞으신지 마지막으로 최종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맞아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하나만 저도 여쭤 볼게요. 여기서 처리 되면, 결국 저는 죽는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처리 된다고 해서 죽는 건 아니라는 거죠?”

“전혀 아닙니다. 사람을 죽여 주는 그런 장치를 시립 공공기관에서 이렇게 대놓고 가동할 수는 없없습니다.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 아닙니까? 사람을 공공기관이 죽여 준다는 법이 쉽게 통과될 리도 없습니다. 그런 법을 만든다면 반대하는 사람들도 엄청 많을 겁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그런 제도를 만들면 국회 사법처리 컴퓨터에서 ‘인도적으로 적합함’이라는 분석 결과를 못 받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런 안건은 아예 법 자체를 발의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죠? 확실히 제가 여기서 죽는 건 아니죠?”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명확하게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저희로부터 처리를 받는 과정에는 아무 고통도 없고, 아주 편안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신경 정신 안정제를 충분히 처방해 드리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갈 수록 기분 좋고 행복한 기분도 드실 겁니다. 그런 기쁨 속에서 모든 과정을 다 진행하실 수 있는 겁니다.”

“정말 하나도 안 아파요?”

“하나도 안 아픕니다.”

“정말 통증이 없나요?”

“신경에서 측정되는 통증 지수 자체가 0입니다. 0.”

“아픈 느낌은 전혀 없다는 거죠?”

“고객님, 저희 기본 목적을 정리해서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처리소는 고객님이 이 사회에서 도저히 살 지 못하시겠다고 결정하셨을 때 무기한으로 냉동처리해서 보관해 주는 곳입니다. 몸 전체의 기능은 정지해서 잠 자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지만, 그 상태로 지하 저장고에서 1년이고, 10년이고, 계속 잠 들어 계시면서 보관되는 겁니다. 그러다가 고객님께서는 고객님이 설정하신 조건이 되는 사회가 도래하면 다시 깨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객님께서 정말로 원하는 사회가 될 때까지 그냥 잠 자면서 기다리시는 겁니다. 그거 뿐입니다.”

“기술은 믿을 만 하죠?”

“공개 처리를 통해서 처리 과정에 어떠한 고통도 없다는 것, 처리 후에도 안전히 보관 되고 있다는 것을 항상 증거로 남기고 매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저희 팔당 처리소에서 보관되어 있는 분들 중에 가장 오래 전에 들어 오신 분은 42년 전에 처리 보관 되셨고 지금까지 계속 그대로 보관되어 계십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처리 되었다가 다시 깨어나서 새로운 사회에서 삶을 계속하고 있는 분은 없습니다. 처리되시던 분들이 각자 처리될 때 설정하신 조건에 맞는 행복한 사회가 지금까지도 이룩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처리소 운영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텐데, 이런 걸 정부에서 무료로 해 준다는 것도 좀 안 믿기는데요. 정말 믿을 수 있는 거 맞나요?”

“지금 현재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살아 가시는 분들 입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저희 같은 처리소에 기꺼이 투자할 만 합니다. 세상에 있는 현재 사회를 싫어하고 적응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바로 이런 방법을 통해 처리 되어서 사회 밖으로 사라져 주면 그만큼 더 안전하고 평화로워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현대 사회를 너무 싫어하시는 분들이 만약 범죄나 폭동이나 혹은 다른 방법으로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려고 하면 그것을 처리하는 것이 오히려 훨씬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들어 가는 일입니다. 설령 그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괴롭고 슬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 가는 것 자체가 주위에서 지켜 보기에 힘든 일입니다. 그 사람들을 다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끄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그럴 바에야 현대 사회에서 못 살겠다고 하시는 분들은...”

“그냥 얼린 채로 보관 되어 스스로 사회 바깥으로 편안히 사라질 기회를 만들어 주면 문제를 치워 버릴 수 있으니 편리하다는 것이지요?”

“처리보장법 8조에 따라 그런 표현은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만, 비슷한 방향인 것은 맞습니다.”

“이해 했어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최종 확인하겠습니다. 동의 하시면, 확인 말씀을 따라 해 주시면 됩니다. 저는 자발적으로 제 판단에 의해 제 삶을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에 따라 스스로 처리를 선택하였습니다.”

“저는 자발적으로 제 판단에 의해 제 삶을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에 따라 스스로 처리를 선택하였습니다.”

“제가 정해 놓은 조건의 사회가 미래에 이루어질 때까지, 저는 이 사회를 떠나 냉동 처리되어 보관되어 있을 것을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따라 원합니다.”

“제가 정해 놓은 조건의 사회가 미래에 이루어질 때까지, 저는 이 사회를 떠나 냉동 처리되어 보관되어 있을 것을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따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안쪽으로 들어 와서 침대에 누우시면 처리 절차를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 과정에서는 어떠한 육체적 고통도 정신적 불안감도 없이 가장 편안한 상태로 처리될 것임을 보장해 드립니다.”

서 대리는 팔당 처리소 안 쪽으로 들어 갔다. 침대에 누워 심리 안정 약물을 먼저 주입 받았다. 곧 편안하고 느긋한 기분에 빠질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느껴 보는 평화로운 기분 속에서 서 대리는 마취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팔당 처리소의 지하 저장고에서 앞으로 수 백 년, 수 천 년, 혹은 언제가 될 지 모를 세월 동안 지하에 묻혀 있을 2만 3천 4백 2십 6개의 인간 신체 보관통 무더기 중 하나에 보태졌다.

- 2020년, 서초에서


그런데 이야기가 그렇게 끝나기 직전, 점점 엷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서 대리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보관통 안에 있는 비상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보관통의 이동은 정지 되었고 서 대리의 냉동 처리 절차도 중단 되었다.

서 대리는 회복실로 옮겨졌다. 희미하게 회복실의 조명을 느끼고 눈을 떠서 평범한 시멘트 건물의 천장이 보였을 때, 서 대리는 역한 기분을 느꼈다. 로봇이 다가 온 것이 느껴졌다.

서 대리는 로봇에게 말했다.

“조약돌이랑 모래로 소꿉놀이 하는 일도 아직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막판에 갑자기 들더라고요.”

로봇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친절한 목소리로 안내 해야 할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처리 절차 직전의 평화로운 기분은 중독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처리보장법 13조에 따라 중독성을 없애기 위해 방독 약물을 주입 받으셨습니다. 지금 기분 나쁜 감각이 예전의 기억을 덮어 버릴 겁니다. 처리 절차에는 아무런 고통이 없다는 것이 보장 되어 있지만, 여기에서 나가실 때에 이 불쾌한 느낌과 괴로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점을 양해 하시기 바랍니다.”

로봇은 그대로 멀어졌다.

- 2020년, 서초에서
 

댓글 4
  • No Profile
    윤새턴 20.05.03 23:05 댓글

    이 소설 하나가 처리되지 않을 이유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너무 잘 읽었습니다.

  • 윤새턴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0.05.07 08:30 댓글

    힘이 되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봄 맞이 하십시오!

  • No Profile
    전자군 20.07.10 14:11 댓글

    잘 읽었습니다 ^^

  • 전자군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0.07.14 21:39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여름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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